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39) 마님과 노복 <36~40회>

오늘의 쉼터 2014. 6. 26. 11:39

 

금병매 (39)

 

 

 

마님과 노복 36회 

 

 

 

 이튿날 손설아는 여느 때보다 월등히 늦게 일어났다.

 

간밤에 반금련의 침실을 염탐하느라 밤이 이슥토록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크게 하품을 하며 세수를 하러 가는데, 소옥이가 달려왔다.

“마님, 제가 봤다구요. 오늘 새벽에...”

 

 

 

소옥이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무엇을 말이냐?”

“반금련 마님이 말이에요. 새벽에 금동이의 숙소에서 나오더라구요.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일어나 변소에 가는데 글쎄 누군가가 정원을 가만가만 걸어와

회랑으로 올라서지 않겠어요.

아직 날이 밝기 전인데 누군가 싶어서 자세히 보니 바로 반금련 마님이지 뭐예요”

“그게 정말이야?”

“예, 정말이라구요. 제 이 두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요.

동쪽 하늘이 조금 희붐한 때여서 분명히 누군지 알 수가 있더라구요.

그리고 반금련 마님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봤다니까요”

“오냐 요년 잘됐다. 어디 두고보다”

손설아는 대뜸 독기부터 나직이 내뿜고서 다시 묻는다.

확실한 근거를 잡기 위해서 신중을 기하는 셈이다.

“그런데 말이야, 소옥아. 그 년이 금동이한테서 자고 오는지,

혹시 다른데 갔다오는 건지 확실치 않잖아”

“그 시간에 다른데 어딜 갔다오겠어요.

바로 금동이의 숙소가 있는 쪽 정원을 걸어오더라니까요.

틀림없다니까 그러시네요”

“오냐, 알았다. 소옥아 네가 한 말 책임져야 한다.

나중에 나는 몰라요, 하고 꽁무니를 빼면 안된다 그거야. 알겠지?”

소옥이는 약간 긴장이 되는 듯 얼른 대답을 않고 좀 망설이더니,

“예, 알겠어요”

결심을 굳힌 듯이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뜻밖에 소옥이 덕분에 쉽사리 확실한 근거를 잡게 되어 손설아는 기쁘기 한량 없었다.

그리고 반금련이 그처럼 남자를 밝히는 년인가 하고 새삼 놀라며 속으로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남자 맛에 환장을 해도 분수가 있지,

그래도 명색이 마님이라는 것이 종의 좁고 누추한 숙소로까지 찾아가서 같이 자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줄을 모르고 간밤에 자기는 그 년의 침실 쪽만 염탐했으니,

어쩐지 자기가 한수 아래인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씁쓰름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간밤에 방문을 당겨 보았을 때 안으로 걸려 있었으니,

그때는 아마 혼자 잤던 게 틀림없고,

그러다가 새벽녘에 잠이 깨어 생각이 나서 금동이를 찾아가 한바탕 놀고 온 게 틀림 없었다.

“아이고 더러운 년”

손설아는 공연히 침을 한 덩어리 냅다 내뱉었다.

아침을 먹고 곧 손설아는 또 오월랑을 찾아갔다.

이번에는 혼자서였다.

“형님, 확실한 근거를 잡았지 뭐예요”

손설아는 대뜸 이렇게 허두를 떼어놓았다.

 

 

 

마님과 노복 37회 

 

 

 

 “자네가 봤단 말인가?”

“내가 본 것은 아니고요...”

“그럼?”

오월랑은 살짝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다.

자기가 보지도 않고서 또 무슨 수작이냐 싶은 모양이다.

“소옥이가 봤다지 뭐예요”

“우리 소옥이가?”

“예, 오늘 새벽에 반금련 그 년이 글쎄 금동이의 방에서 자고 나오더라지 뭡니까”

“그게 정말인가?”

“정말이라니까요. 내 말이 믿어지지 않으면 소옥이한테 직접 물어보시라구요.

그러면 될 거 아니예요”

손설아는 오월랑을 똑바로 바라보며 약간 대드는 투로 말한다.

“알았네. 자네는 가서 자네 할 일이나 하고 있게나”

오월랑은 기어이 좋지 않은 일이 또 터지고 마는구나 싶은 듯 짜증스러운 그런 기색이다.

반금련이 더럽고 못마땅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복수를 하기 위해 오냐 잘됐다는 듯이 한사코 물고 늘어지는

손설아 역시 결코 좋게 보아지지가 않는 것이다.

“형님, 그런 년을 그냥 가만히 내버려둬서는 안된다구요.

눈감아줄 일이 따로 있지,

그런 더러운 년을 한 집안에 두고서 같이 산다는 것은 될말이 아니라구요.

아시겠죠?”

손설아는 은근히 으름장을 놓듯이 말하고는 일어선다.

곧 오월랑은 소옥이를 불러 물어보았다.

자기의 몸종인 소옥이의 말을 듣고 난 오월랑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반금련이가 기어이 또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겠군. 아이고 지겨워. 지겨워. 이 놈의 집안”

공교롭게도 그날 오후 서문경이 집에 돌아왔다. 열이레만이었다.

계저에게 푹 빠져서 애초의 약속보다 이틀이나 더 그 집에 머물렀던 것이다.

서문경은 마치 어디 먼 곳에 여행이라도 갔다가 돌아온 것처럼 기분이 유쾌해 보였다.

집 안 사람들도 제각기 속으로야 어떻게 생각하든 모두 겉으로는 반가운 얼굴로

오래간만에 귀가한 주인을 반겼다.

반금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다른 네 부인과는 달리 속으로는 몹시 두렵고 불안했다.

지은 잘못이 엄청나니 말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싹 가면을 쓰고 여우가 꼬리를 흔들 듯 유달리 방실방실 미소를 띠어가며

갖은 아양을 다 떨었다.

 정말 먼 나그넷길에서 돌아오느라고 수고했다는 듯이.

그러나 서문경은 그처럼 유난스레 아양을 떨어대는 반금련을 잠시 멀리하듯

귀가한 첫날밤을 오월랑의 방에서 묵었다.

아무리 위세가 당당하고 낯가죽이 두꺼운 서문경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으로서 십칠일간이나 집을 비우고 외도를 하고서 돌아온 터이라

정실에게는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날 밤 오래간만에 두 부부는 탁자에 정갈한 안주와 특급주를 차려놓고 마주앉았다.

 

 

 

마님과 노복 38회 

 

 

 

 서문경은 오월랑이 따라주는 술을 두어 모금 마시고나서 입을 열었다.

“이번에 내가 너무 오래 집을 비워서 당신 적적하지 않았소?”

 

 

 

오월랑은 말없이 남편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 얼굴에 조금은 미안해 하는 기색이 떠올라 보이자 약간 빈정거리는 투로 말한다.

“당신이 집에 계신다고 뭐 내가 언제는 적적하지 않았나요?”

“허허허... 그랬던가? 여보, 그래서 말이야, 내가 이렇게 오늘밤 당신 방에 왔잖소”

“예, 알아요. 어서 드세요”

“당신도 한잔 하라구. 오늘밤 오래간만에 우리 신나게 한 번 뒹굴어 보자구”

오월랑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아무리 정숙한 정실이라도 남편의 그런 말에는 절로 웃음이 나오는 모양이다.

먼저 그렇게 아내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르도록 해놓고나서 서문경은 물었다.

“내가 없는 동안에 여보, 집안에 뭐 별다른 일이 없었겠지?”

오월랑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왜 대답이 없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가?”

오월랑은 반금련의 얘기를 꺼낼까 하다가 그러면 당장 오늘밤에

집안이 발칵 뒤집힐게 틀림없으니 그렇게 되면 오래간만에 좀 재미를 보려는 일도

 허사가 될 것 같아 내일로 미루기로 마음먹는다.

“여보, 그런 얘기는 내일 아침에 하기로 해요. 오늘 밤은 그런 얘기는 하고 싶지가 않군요”

“응, 알겠어. 허허허... 기분 잡친다 그거지.

좋아. 오래간만에 신나게 한번 놀려는 판인데 기분 잡치면 안되지.

자, 쭉 한잔 비우라구”

오월랑은 부부 사이지만 조금은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얼른 술잔을 든다.

그날 밤 서문경은 온갖 기교를 다해서 오월랑이 축 늘어질 지경으로 행복하게 해 주었다.

일회전(一回戰)으로 그치질 않고 이회전까지 치렀다.

정실을 비롯한 둘째 셋째 넷째에게 이회전이란 극치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오월랑은 속으로 이양반이 집을 비우고 오래도록 외도를 한게

무척 미안한 모양이군 싶으며 오히려 앞으로도 종종 그런 외도를 하고

돌아와 주었으면 싶기도 했다.

이튿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 서문경은 문득 간밤의 아내의 말이

 머리에 떠오른 듯 불쑥 물었다.

“여보,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인데, 무슨 일이지?”

오월랑은 약간 긴장이 된 표정으로 가만히 남편을 바라본다.

얼른 입이 떨어지질 않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얘기하기로 했잖소. 어서 말해 보구려”

“예, 얘기할게요”

도리없다는 듯이 오월랑은 살포시 눈을 감으며 크게 숨을 한번 들이쉰다.

그리고 입을 연다.

 

 

 

마님과 노복 39회 

 

 

 

 “다름이 아니라 반금련이 고약한 짓을 저질렀지 뭐예요”

“고약한 짓이라니, 무슨...?”

 

 

 

“아, 글쎄, 기가 막혀서 얼른 말이 나오질 않는군요. 금동이를 말이에요, 꼬셔가지고...”

“뭐라구? 금동이를 꼬셔? 그게 정말이야?”

서문경은 대번에 이마에 여덟 팔자를 거꾸로 불끈 세우며 두 눈을 부릅뜬다.

오월랑은 의당 그러려니 여겼던 터이지만 약간 가슴이 철렁했다.

너무 그 기세가 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꺼낸 말이니 도리가 없었고,

또 한바탕 집안이 뒤집힐 수밖에 없는 일리라고 각오를 한 터여서

애써 차분한 어조로 말을 잇는다.

“정말인 것 같아요”

“같애요라니?”

“내 눈으로 직접 본 게 아니니까 말이에요.

그러나 반금련이가 새벽에 금동이의 방에서 자고 나오는 것을 본 사람이 있지 뭡니까.

그렇다면 틀림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게 누구아?”

“우리 소옥이가 새벽녘에 소변을 누러 나갔다가 봤다는 거에요”

“음-”

“소옥이가 목격하기 전부터 수상한 말이 들려오더라구요”

“어떤 말이?”

오월랑은 향낭과 용돈에 관한 얘기를 들은 대로 늘어놓았다.

그 말을 손설아가 이교아와 함께 와서 알려 주었고,

다음에는 손설아 혼자서 찾아와 소옥이가 목격한 일을 얘기해 주어서

직접 소옥이에게 확인해 보았다는 것까지 사실대로 고했다.

“그렇다면 음-”

서문경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싶으면서도 살짝 고개가 기울어진다.

손설아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손설아와 반금련 사이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어 있으니

어쩌면 손설아의 복수를 위한 모략일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알았어. 내가 직접 밝혀봐서 두 연놈을...”

서문경은 자리를 박차듯 벌떡 일어난다.

자기의 거처로 돌아간 서문경은 몸종인 아량이에게 속히 금동이를 불러오라고 일렀다.

곧 금동이가 방으로 들어섰다.

“주인 어른 부르셨습니까?”

금동이는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약간 상체를 숙인 자세로 서서 대령하고 있다.

서문경은 잠시 말없이 금동이의 기색을 살피듯 가만히 노려본다.

그 시선과 마주치자 금동이는 어쩐지 섬뜩한 느낌이어서 속으로 찔끔 놀라며

얼른 눈길을 돌려 버린다.

불쑥 서문경이 내뱉는다.

“너 웃옷을 벗어봐”

 

 

 

마님과 노복 40회 

 

 

 

 금동이는 당황했다. 웃옷을 벗어 보라니, 여느 때에는 결코 없던 일이었다.

 

필경 반금련 마님과의 관계를 눈치챈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그러나 그런 기색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금동이는 웃옷을 벗는다.

“옷을 뒤집어봐”

서문경의 명에 따라 금동이를 벗어든 웃옷을 뒤집는다.

뒤집은 옷을 서문경은 자기 눈앞에서 이리 저리 돌려보도록 이른다.

“옷 속에 차고 있던 향낭을 어떻게 했지?”

그것이 눈에 띄질 않자 노려보며 묻는다.

금동이는 순간 가벼운 현기증을 느낀다.

반금련 마님과의 관계를 알아차린 게 틀림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죽은 목숨인데, 어떻게 대답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는지...

이런 경우에는 결사적으로 시치미를 떼고 말을 꾸미는 수밖에 없다 싶어

애써 예사로운 어조로 대답한다.

“방에다가 두었는데요. 옷 속에 차고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 보고 놀리지 뭐예요. 그래서...”

그것은 사실이었다.

술을 마시다가 두 친구에게 그것이 발각된 뒤로 안되겠다 싶어서 떼내었던 것이다.

“그 향낭을 누구한테 받았나? 솔직하게 말하라구. 다 알고 있으니까.

정직하게 고백하면 용서해 주지만, 만약 거짓말을 하면 그때는... 알겠지?”

그러나 금동이는 주저없이 대답한다.

“누구한테 받은 게 아니라 정원을 소재하다가 주웠습니다요”

“뭐라구? 이 녀석이 거짓말을 하네. 다 알고 있다는데...”

“거짓말이 아닙니다. 정말이라구요”

“이 녀석 맞아야 실토를 하겠군”

“주인어른, 제가 무엇 때문에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절대로 거짓말이 아닙니다요. 만약 거짓말이라면 저를 죽여주십시오”

금동이는 서문경을 똑바로 바라보며 결연히 이렇게 말한다.

어쩌면 이 일로 인해서 반금련 마님까지 목숨을 잃을 지경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그렇다면 차라리 자기 혼자서 죽음으로써 마님을 구해야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순간적으로 뭉클하게 가슴속에 솟구쳤던 것이다.

한낱 종에 불과한 자기를 그처럼 사랑해준 마님에 대한 보은(報恩)이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금동이의 말하는 투가 어찌나 진지한지 서문경은 어쩌면 손설아의 모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다시 머리에 떠올랐다.

“가서 그럼 향낭을 이리 가지고 와봐”

“예”

금동이는 벗었던 웃옷을 입으며 얼른 돌아서서 방을 나간다.

그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서문경은 고개를 두어번 가만 가만 끄덕인다.

아무래도 손설아의 복수극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