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38)
마님과 노복 31회
금동이가 일으키는 물결은 너무나 허망했다.
제법 파고(波高)도 높고 뜨겁기도 했으나, 단조롭기 그지없고 또한 너무 짧았다.
금동이가 혼자서 꺽꺽 숨 넘어 가는 소리를 내뱉고는 비실 나가떨어지자,
금련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숫총각이니까 그럴 수밖에, 처음부터 멋들어지게 해낼 재간이 있겠어,
싶으니 오히려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잠시 말없이 축 늘어져 있던 금동이가 일어나 어둠 속에서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으려 하자
금련이 불쑥 입을 연다.
“아직 옷을 입으면 안된다구. 연애를 그렇게 간단히 한번으로 끝내는 건 줄 알아?”
“그래요?”
“자, 이리 와봐”
금련은 활짝 두 팔을 벌려 보인다.
그 팔 안에 금동이는 슬그머니 무너진다.
금동이의 입에 뭉클한 것이 와 닿는다.
그 봉긋하고 따스한 살을 금동이는 입술로 냅다 애무한다.
그리고 자세가 바뀐다.
이번에는 금동이의 가슴패기를 금련의 혓바닥이 긴다.
그 혓바닥이 차츰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금동이의 입에서 야릇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잠시후, 어둠 속에서 금동이의 몸뚱어리가 다시 물결을 일으킨다.
그 물결이 제법 오래간다.
금련의 입에서도 감미로운 신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신음소리도 절정에 이르질 못하고 시들어지고 만다.
여전히 금련은 안타깝다.
세 번째 욕망을 금동이의 몸에 다시 금련은 불러일으킨다.
세 번째는 두 번째 보다 또 좀 길다.
네 번째는 더 좀 길고.
다섯 번째에 가서야 마침내 금련은 숨 끊어지는 듯한 소리를 내지르며 몸을 떨었다.
어느덧 새벽녘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그제야 커다랗게 하품을 하며 금련은 옷을 주워 입었다.
그러나 금동이는 축 늘어져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금동아, 피곤해?”
“으응-”
말할 기운도 없다는 듯이 금동이는 돌아눕는다.
“정말 수고했어. 연애란 그렇게 해야 되는 거라구. 이제 알았지?”
“예”
“좋지?”
“예, 너무 좋아서 죽겠다구요”
“호호호... 자, 내가 옷 입혀줄게, 일어나라구”
“괜찮아요. 조금 있다가 내가 입을게요”
“그럼 나는 갈까? 가서 자야겠어, 잠이 온다구.
여기서 금동이하고 같이 잤으면 좋겠는데, 곧 새벽이란 말이야”
“어서 가서 주무세요”
금련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마님과 노복 32회
그렇게 연하의 노복인 금동이를 제 것으로 만든 금련은 이튿날 밤도,
그 다음날 밤도 그와의 밀회를 즐겼다.
이튿날 밤은 자기가 찾아가서 금동이를 자기의 침실로 데리고 왔고,
그 다음날 밤은 금동이가 제 발로 찾아왔다.
처음으로 여자의 살맛을 안 금동이는
그 황홀감에 이제 밤이면 도저히 그냥 혼자서 잠들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여자가 다름 아닌 주인어른의 아내인 반금련 마님이기 때문에
혹시나 집안사람의 눈에 띄어 그 말이 서문경의 귀에 들어갈까 두려워서
처음에는 몹시 조심스러웠다.
밤이 깊어 제 발로 마님의 침실을 찾아갈 때면 마치 도둑질을 하러
스며들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며 절로 사방이 두리번거려졌으며,
살금살금 발자국 소리를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밤이 거듭됨에 따라 나중에는 두려움이 오히려 쾌감으로 바뀌어
밤이 되기를 초조히 기다리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여자의 몸을 다루는 솜씨도 익숙해지고 조금씩 늘어가서 열일곱살로서는
의젓할 정도로 제법 남자답게 구실을 해대는 것이었다.
처음 한동안은 행위 중에도 걸핏하면 입에서 ‘마님’ 소리가 나오곤 했으나,
나중에는 서슴없이 ‘여보’ ‘당신’ 이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그럴 때면 금련은 금동이가 못견디게 사랑스러운 듯 온통 으스러지게 힘을 주어
안으면서 앞니로 닥치는대로 자근자근 물기까지 했다.
예닐곱살이나 아래인 금동이에게 정말 야릇한 정을 느끼게 된 금련은
그에게 번번이 용돈을 넉넉히 쥐어주었을 뿐아니라,
사랑의 증표로서 자기가 소중히 간직해온 순금 장식이 달린 은비녀를 꺼내서 주기도 했다.
금동이는 그 번쩍거리는 비녀를 처음에는 한사코 안받으려고 했다.
남자에게 소용되는 물건도 아닌데, 그것을 왜 주는지 얼른 이해가 되질 않았던 것이다.
“내가 금동이를 사랑하는 마음의 표시니까 받아서 오래 오래 간직하도록 해. 응?
나중에 혹시 우리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이것을 볼 때마다 나를 생각해 달라고 주는 거야”
마님의 진정이 담긴 그 말에 금동이는 코허리가 약간 시큰해지는 것을 느끼며,
“예, 그럴게요”
수긋하게 대답하고서 그것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금련은 또 자기의 장신구(裝身具)의 하나인 비단으로 만든 향낭(香囊)을
금동이의 옷 속에 채워주기도 했다.
향낭이란 몸에서 향기가 나도록 귀부인들이 주로 바깥나들이를 할 때 옷 위에 차는
일종의 장식이었다.
금동이의 몸에서는 늘 땀내 같은 것이 풍겼기 때문에 문득 아무 생각 없이 금련은
자기의 향낭을 그의 옷 안쪽에 보이지 않도록 채워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은 미처 짐작을 못했다.
마님과 노복 33회
비록 열일곱살이긴 했지만 금동이는 아직 철이 없다고 할 수 있었다.
집안 사람들이 혹시나 자기와 반금련 마님과의 사이를 눈치챌까 두려워서
늘 조심한다고 했고 또 그런 당부를 마님으로부터 여러 차례 듣기도 했으나,
처음으로 여자와 관계를 맺게 된 그는 살짝 들뜬 상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혼자서 정원의 소제나 화초의 손질을 하면서도 공연히 즐거운 듯
곧잘 휘파람을 불어내기도 했고, 감미로운 사랑의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그런 금동이를 보고 무엇이 그렇게 좋으냐고, 기분 좋은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지 하고,
집안 사람이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던지기라도 하면,
“있긴 무슨 일이 있어요? 아무 일도 없다구요”
변명을 하듯 말하고는 싱글벙글 웃어보이기 일쑤였다.
게다가 호주머니에 마님이 번번이 집어주는 용돈이 넉넉하고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같은 또래의 동료 노복에게 곧잘 먹을 것을 사주고,
때로는 술을 사다가 함께 마시기도 했다.
한번은 자기 방에서 두 친구가 함께 술을 마시다가 옷 속의 향낭이 밖으로 드러나 버렸다.
그것을 본 두 친구는 눈이 휘둥그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너 그거 어디서 났지?”
묻는 말에 금동이는 약간 당황하며 얼른 그것을 감추듯 도로 옷 속에 밀어넣었다.
그리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주운 거라구. 정원을 소제하다가...”
“그래? 어느 마님 것인가...”
두 친구는 좀 미심쩍기는 했으나 더 추궁을 하러 들지는 않았다.
술을 얻어 마시고 있는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 중의 한 녀석은 술대접을 받고나서도 그 향낭이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정원을 소제하다가 주웠다면 어느 마님이 떨어뜨린 것인지 임자를 찾아서
돌려주어야 마땅한데, 사내 녀석이 그런 것을 옷 속에 남몰래 차고 있다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 일뿐 아니라 금동이가 요즘 어디서 났는지 호주머니에 늘 돈이 떨어질 날이 없고,
곧잘 까닭 없이 이것저것 먹을 것이니, 술이니 하고 선심을 쓸 뿐 아니라,
노상 싱글벙글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으니,
아마도 무슨 수상한 일이 있는 게 틀림없다 싶었다.
그래서 녀석이 자기와 비교적 사이가 가까운 소옥(小玉)이에게 그 얘기를 했다.
소옥이는 정실인 오월랑의 몸좀이었다.
얘기를 들은 소옥이는 입이 근질근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확실한 내막도 모르면서 금동이를 집안의 안주인인
자기의 마님에게 함부로 고자질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소옥이는 속으로 혼자 짐작하는 바가 있어서 손설아를 찾아가
그 얘기를 꺼냈다.
마님과 노복 34회
“그게 정말이냐?”
얘기를 들은 손설아는 두 눈이 번쩍 뜨이는 모양이었다.
“정말이라구요. 그런 말을 제가 함부로 하겠어요”
“음 그렇다면 반금련 그 년이 금동이를 꼬신 게 틀림없다구”
서슴없이 손설아는 내뱉는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소옥이도 대뜸 맞장구를 친다. 속으로 그렇게 짐작을 했었기 때문에
반금련과 가장 사이가 나쁜 손설아를 찾아가 그 사실을 귀띔해 주었던 것이다.
“그 더러운 년, 그러고도 남을 년이라구.
금동이가 지금 몇 살이라고 그 어린 것을 꼬셔가지고 데리고 노느냐 말이야.
더구나 바로 서문경의 몸종인데... 간뎅이가 부어도 이만저만 부은 게 아니라구.
오냐, 됐다. 이년 어디 두고보자”
손설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이를 악문다.
반금련 때문에 곤장을 맞은 그 모욕과 고통을 겪은 뒤로 이를 갈며
복수의 때를 기다려 왔는데, 마침내 그 기회가 눈 앞에 다가왔구나 싶었던 것이다.
손설아는 곧 맹옥루에게 달려가서 혹시 향낭을 정원에서 잃어버린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런 일 없다는 대답이었다.
손설아는 곧 걸음을 돌려 무슨 신바람 나는 일이라도 생긴 듯 치맛자락을 펄럭거리며
이번에는 이교아를 찾아갔다.
역시 그 말을 물어 보았다.
이교아도 마친가지로 그런 일 없다면서 무심히 되물었다.
“왜, 정원에서 향낭이라도 주웠어?”
“아니요. 향낭을 주운 게 아니라,
글쎄 금동이가 옷 속에 향낭을 차고 있다지 뭐예요. 웬 건지 알겠어요?”
“글쎄... 웬 걸까?”
“그것도 짐작 못해요? 반금련 그 년이 준게 틀림없다구요.
향낭을 채워주었을 뿐 아니라, 용돈을 늘 덤뿍 덤뿍 집어준다지 뭐예요”
이교아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 멀뚱한 표정으로 손설아를 바라본다.
“형님, 무슨 말인지 짐작 못하겠어요?”
“아니, 그럼...”
이교아의 눈이약간 휘둥그래지며 놀라는 빛이 떠오른다.
그 표정으로 보아 내막을 짐작한 것 같아서 손설아는 거침없이 털어놓는다.
“그 년이 글세 보통 화냥년이 아니라구요.
금동이를 꼬셔서 매일밤 데리고 자다니... 그게 사람이에요?
나이도 훨씬 밑인 종을 명색이 마님이 말이에요”
“누가 그래? 그게 정말인가?”
“그년 정말 뒈지고 싶어서 환장을 했는 모양이네.
여기가 어디라고...
아무리 남편이 지금 집에 없다고는 하지만 감히 그런 짓을 하다니...
남편이 없으면 저만 없나”
이교아도 평소에 반금련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겨오던 터이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서슴없이 내뱉는다.
마님과 노복 35회
그런 년을 가만히 두어서는 안된다고 손설아가 오월랑을 찾아가 얘기하겠다고 하자,
그럼 같이 가자고 이교아도 함께 일어섰다.
그 얘기를 들은 오월랑은 뜻밖에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설아에게 말했다.
“반금련이 금동이와 같이 자는 것을 본 사람은 없잖어.
확실치도 않은 일을 가지고 지레 짐작으로 그런 얘기를 함부로 한다는 것은 좋지 않다구.
말이라는 것은 신중하게 해야 되는 거라구.
더구나 사람 둘의 신세를 조질지도 모를 그런 말을 확실한 근거도 없이 함부로 지껄이다니...
만약 그게 사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겠어.
아무 죄 없는 사람을 둘이나 신세 망치는 꼴이 되지 않느냐 말이야.
그 말이 우리 어른의 귀에 들어가면 가만히 있을 것 같애?
그 어른 성질 잘 알잖어”
어쩌면 반금련의 편을 드든 것 같기도 해서 손설아는 슬그머니 불쾌했으나,
틀린 말은 아니어서, 역시 정실 구실을 하려고 매사에 신중을 기하는 오월랑이
다르긴 다르다 싶으며 아무 대꾸를 하지 않는다.
오월랑은 그런 손설아에게 타이르듯 말을 잇는다.
“자네의 심정은 내가 잘 안다구. 반금련에 대해서 앙심을 품고도 남겠지.
그러나 그 때도 화근은 자네 입이었다구.
자네가 반금련에게 남편을 독살한 년이니 어쩌니 그런 엄청난 말을
근거도 없이 함부로 했기 때문에 그 곤욕을 치르게 됐던 거라구.
안 그래? 내 말이 맞지?”
“예, 맞아요”
“그러니까 말이라는 것은 언제나 조심해서 해야 되는 거라구.
특히 남의 잘못을 들먹이는 말은 말이야.
잘못하면 그 화를 자기가 뒤집어 쓴다구. 알겠지?”
“예”
“확실한 근거를 잡기 전에는 그런 말 입밖에 내지 말라구”
“예, 알겠어요. 형님”
손설아는 살짝 고개를 떨구며 어금니를 지그시 문다.
오월랑의 마지막 그 말은 곧 확실한 근거를 잡으라는 귀띔으로 들렸던 것이다.
그날 밤 손설아는 자기 눈으로 직접 확실한 근거를 잡기 위해서 몇 차례나 반금련의
거처 주변을 서성거렸다.
어디 이년 두고보자,
내 눈으로 확실한 근거만 잡으면 네년을 결코 가만히 두지 않을 거다.
내가 곤장을 스무 대 맞았으니 너는 그 수배는 맞아야 한다.
그래야 내 가슴 속에 맺힌 응어리가 풀릴 거다,
하고 독기를 내뿜듯 입속말로 중얼거리면서 마치 무슨 사생결단의 중대한 염탐이라도 하듯
바짝 긴장이 되어 그림자처럼 반금련의 거처 앞 회랑을 지나 다니기도 했고,
살짝 한쪽 건물 모서리에 숨어서 엿보기도 했다.
그래도 별다른 낌새를 맡을 수가 없자,
나중에는 방문을 살그머니 당겨보기까지 했다.
방문은 안으로 걸려 있었다.
그러나 침실이 거실 안쪽에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오늘밤은 둘이 만나질 않는 것인지 아무 기척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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