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24) 제4장 무송의 복수 <26~30회>

오늘의 쉼터 2014. 6. 24. 22:06

 

금병매 (24) 무송의 복수 26회 

 

 

 

 무송은 주먹 한 개를 불끈 쥐고 가향이 앞에 쳐들어 보이며,

“법으로 안 되면 도리가 없지. 이것으로 하는 수밖에.....”



 

 

거침없이 내뱉는다.

보통 사람의 주먹 두 배는 넉넉히 되어 보이는 큼직한 무송의 주먹이

눈앞에 불쑥 나타나자 가향은 놀라움과 두려움에 눈이 휘둥그래진다.

과연 호랑이를 때려잡은 주먹답구나 싶으며 절로 후유- 조심스레 숨이 내쉬어진다.

“오늘밤에 서문경이란 놈을 이것으로 박살을 낼 작정이라구.

서문경이뿐 아니지.

연놈들이 모두 셋인데,

둘은 여자라구.

그중에 하나는 명색이 내 형수였다구”

“어머, 형수가.....”

“그렇다구. 어쩌면 그년이 주동인지도 모른다구.

가장 나쁜 년이라구.

그년이 제 손으로 우리 형을 독살했지 뭐야”

“어머나, 그럼 아내가 남편을 죽였네요?”

“그렇다니까.

그년이 서문경이하고 붙어가지고 그놈의 첩이 되려고 제 남편을 죽였다니까.

물론 여자사냥꾼인 서문경이한테 걸려들어서 결국 그런 짓을 저질렀겠지.

얼굴이 반반하게 생겼거든.

그래서 서문경의 첩이 되어 지금 그놈의 집에 들어가 살고 있는 게 틀림없다구.

오늘밤 내가 쳐들어가서 두 연놈을 이 주먹으로 박살을 내고 만다니까”

“여자가 둘이라면서 또 하나는 누군데요?”

“또 하나는 찻집을 하는 왕파라는 할망군데,

그 늙은 것은 내가 동경에서 돌아온 이튿날 벌써 어디론지 도망쳐 버렸다구.

 가게 문을 닫고서...”

“그 할망구는 뚜쟁이 노릇을 한 것 같애.

서문경이의 부탁을 받고 내 형수란 년을 자기 집으로 불러내어

안방에서 둘이 붙어서 놀도록 주선을 해 준거지.

 그리고 우리 형이 독살을 당하자

시체를 할망구가 맡아서 처리를 한 모양이라니까.

누가 보면 독살인 줄 안다고 하면서 얼른 염을 해버렸다지 뭐야”

가향은 얘기만 들어도 끔찍한 듯 목을 움츠리며 찔끔 두 눈을 감는다.

무송은 다시 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가향이 무송의 얼굴을 두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그런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며 묻는다.

“그래서 오늘밤에 서문경과 형수였던 여자를 죽일 작정이에요?”

“살인자즉살(殺人者卽殺)이니까, 죽여야 마땅하겠지.

그러나 죽인다 안 죽인다 그런 생각은 없다구.

그저 내 분이 풀릴 만큼만 이 주먹으로 두들겨 패줄 뿐이라구.

그 다음에 죽고 안 죽고는 두 연놈이 알아서 하겠지”

“하하하.....”

그만 가향은 웃음이 나와 버린다.

죽고 안 죽고는 맞은 사람이 알아서 하다니,

참 재미있는 말이어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무송의 복수 27회 

 

 

 

 무송이 술집을 나선 것은 밤이 꽤 이슥해서였다.

 

고량주 중에서도 가장 독한 놈으로 배를 채운 터라

 

두주불사(斗酒不辭)의 무송도 정신이 어리어리할 정도로 취해 있었다.

 

걸음이 약간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술집 바깥 한길까지 따라 나온 가향은 안타깝게 무송의 한쪽 소맷자락을 잡으며

 

곧 울먹일 듯이 말했다.

 

 

“정말 서문경네 집으로 가시는 거예요?”

“그렇다구. 남아일언(男兒一言)이 중천금(重千金) 아닌가.

술을 마셨다고 허튼 소리를 하겠나.

오늘밤에 두 연놈을 해치우고,

정처 없이 줄행랑을 놓는다구.”

“나도 같이 갈 거예요. 데리고 가 주세요”

가향은 그만 울음 섞인 목소리로 뇌까리며 무송의 한쪽 팔을 잡고 매달린다.

“무슨 소리야. 다 부질없는 짓이라구.

사람을 해치우고 도망을 가는 사람을 따라와서 뭘 어떻게 하겠다는거야?”

“아니에요. 어디라도 가서 당신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어요.”

주기가 꽤나 있어서 가향은 스스럼없이 격정을 쏟아놓는다.

“안 된다구. 이거 놓으라구. 그 마음은 고마우나 될 말을 해야지”

“왜 안된다는 거예요? 당신이 먼저 같이 도망가자고 말을 꺼냈었지 않아요”

“농담으로 그래본 건데, 그걸 진담인 줄 알았나? 이 어리석은 것아”

“몰라요. 난 모른다구요. 같이 따라갈 거예요”

“이거 놓으라니까! 귀찮게시리.....”

무송은 그만 조금 화를 내며 가향을 살짝 뿌리쳐 버린다.

팔로 약간 뿌리쳤는데도 가향은 비실 넘어지듯 땅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리고 훌쩍훌쩍 서럽게 흐느껴 운다.

가향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무송은 어둠 속으로 한길을 조금 비틀거리기도 하면서 성큼성큼 서문경의 집을 향해 갔다.

가게인 약방도 닫혀 있었고, 대문도 굳게 잠겨 있었다.

대문 앞에 선 무송은 다짜고짜 쾅! 쾅! 문짝을 두들기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문 열어! 문 열어! 문 열라니까!”

곧 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일어났고, 하인 하나가 달려왔다.

“누구요?”

“나 순포도두다! 어서 대문을 열어라!”

냅다 호령을 한다.

“순포도두 나리라구요”

“그렇다! 어서 열어!”

“예, 예”

하인은 연회(宴會)가 다 끝나 가는데

이제야 순포도두가 오는가 싶어서 얼른 대문의 빗장을 딴다.

빗장이 벗겨지는 소리가 나자 무송은 왈칵 문짝을 밀고 성큼 안으로 들어선다.

 

 

무송의 복수 28회 

 

 

 “왜 이렇게 늦게 오셨습니까? 연회가 다 끝나 가는데요”

하인은 순포도두가 연회에 늦게 도착한 것으로 알고 허리를 굽히며 말한다.

 

“연회라니 무슨 연회? 지금 연회가 벌어지고 있나?”

무송은 무뚝뚝하게 내뱉는다.

“예, 오늘이 서문 대관인의 생신 아닙니까.

그래서 저녁에 축하 연회가 벌어졌는데, 거의 다 끝나갑니다.

순포도두께서는 연회에 초대되어 오신 게 아닙니까?”

“이녀석아, 잘 봐라. 나는 무송이다.

전에는 순포도두였지만,

지금은 아무 감투도 쓰고 있지 않은 그저 무송일 뿐이다”

무송이라는 말에 그제야 하인은 우뚝 선 칠척 거구의 사내를 놀란 얼굴로 쳐다본다.

“생일이라니 마침 잘됐구나. 생일 축하를 해줘야지.

자, 어느 방이냐?

연회가 벌어진 방으로 안내해라”

“저.....무송 나리,

무슨 볼일로 오셨는지...

제가 가서 서문 대관인한테 먼저 여쭈어 봐야 됩니다”

“뭐라구? 허락을 받아야된다 그건가?”

“예, 그렇습니다.

 아무나 함부로 연회장에 모시고 갈 수는 없는 일이지요.

제가 벼락을 맞습니다요.

무슨 볼일로 오셨는지 말씀해 주세요”

무송은 불끈 쥔 주먹 한 개를 하인 녀석 얼굴 앞으로 불쑥 내밀며 빈정거리듯 말한다.

“이걸 서문경이란 놈 생일 축하로 선물하려고 찾아왔다.

알겠느냐? 헛헛허.....”

“아이구머니”

그 커다란 무송의 주먹을 바짝 눈앞에 보자 하인은 그만 두 눈이 휘둥그래지고 만다.

그리고 그 사실을 주인에게 알리려는 듯 후다닥 안으로 달려 들어가려고 홱 돌아선다.

“너 이놈!”

순간 무송은 재빨리 녀석의 팔 하나를 움켜쥐고 냅다 뒤로 꺾으며 호령한다.

“자, 어서 가자!

서문경이란 놈이 있는 방으로 어서 안내해라!”

“아이구 아이구.....”

하인은 비명을 지르며 꼼짝 못하고 무송을 연회가 벌어지고 있는

깊숙한 안채 쪽으로 순순히 안내한다.

한길 쪽의 굵은 기둥이 여섯 개나 서있는 큰 점포 외에도 일곱 채나 되는

큼직큼직한 건물이 높은 담장 안에 들어서있는 대저택인 터이라

대문간에서 벌어진 일을 안쪽에서는 전혀 알지를 못했다.

개들이 짖고 있었으나,

그 소리도 깊숙한 안채의 내실에서는 들리지가 않았다.

무송에게 팔 하나를 뒤로 비틀린 하인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잇고 있는

회랑(回廊)을 이리 꺾고 저리 돌며, 서문경의 거처이며 연회가 벌어지고 있는,

일곱 채의 건물 중에서 가장 큰 본채 쪽으로 무송을 안내해 갔다.

 

 

무송의 복수 29회 

 

 

 

 연회는 막판에 이르러 있었다.

서문경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서 초대되어 온 빈객(賓客)은 모두 스물일곱사람이었고,

 

불려온 기녀(妓女)가 다섯명, 그리고 서문경의 처첩(妻妾)네 사람이 자리를 같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널따란 방에 오늘의 주인공인 서문경까지 합해서 모두 서른일곱 사람이

 

줄줄이 늘어앉아 생신 축하연을 벌이고 있었다.

부어라 마셔라 흥청거리다가 노래판이 벌어졌고, 기녀들이 춤을 추었으며,

이제 마지막으로 주인공 서문경의 독창 차례였다.

말하자면 생신 축하에 대한 당사자의 감사의 인사인 셈이었다.

술이 꽤 거나한 서문경은 불그레하면서도 훤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넓은 실내에 박수 소리가 가득 넘쳤다.

반금련이 재빨리 한 기녀가 가지고 있는 비파를 가서 받아들고 자기도 서문경 곁으로 가서 섰다.

비파로 반주를 넣으려는 것이었다.

얼마 전에 새로 맞아들인 어여쁘고 날씬한 젊은 소실이 낭군의 곁에 다가 서서

상그레 미소를 지으며 비파를 탈 자세를 취하자

여기저기서 수군덕거렸고 또 한 차례 실내에 박수가 터졌다.

서문경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금련은 딩동댕 댕댕 딩딩. 경쾌하고 멋들어지게 비파로 반주를 넣었다.

실내에 서문경의 노래와 비파의 반주 소리가 어울려 흥겹게 넘실거리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방문이 와장창! 부서지는 듯 요란하게 열렸다.

무송이었다.

칠척 거구의 무송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성큼 방안으로 들어서며 냅다 고래고래 외친다.

“서문경이가 어떤 놈이냐? 내가 좀 봐야겠다. 이리 나오라!”

난데없는 침입자 때문에 서문경의 노래도 금련의 반주도 뚝 그쳤다.

놀란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무송에게로 쏠린다“

“어떤 놈이냐? 못 나오겠나?

오라, 바로 네놈이로구나. 연놈이 잘 어울려있군 그래”

무송은 손가락으로 서문경과 금련을 가리키며 내뱉는다.

“어머나! 저놈이...”

무송을 알아본 금련은 화들짝 놀라며 그만 들고 있던 비파를 자기도 모르게

방바닥에 뚝 떨어뜨리고 만다.

“너 이놈! 어떤 놈인데 함부로 이곳에 뛰어들어 소란을 피우느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서문경이 발끈해지며 호통을 친다.

무송이라는 것을 그도 이미 짐작하고서 속으로는 적지 않이 당황하면서도 겉으로는 큰소리다.

“헛허허.....”

무송은 껄껄 웃고 나서 맞받아 호통이다.

“너 이녀석 서문경이!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누구한테 큰소리냐?

내가 누군 줄 아느냐?

네 놈이 죽인 무대의 동생 무송이다.

알겠느냐?”


 

 

무송의 복수 30회 

 

 

 

 “무대는 어떤 놈이며 무송은 또 뭐 말라비틀어진 것이냐?

가소롭다! 내가 살인자라니, 배꼽이 다 웃는다. 헛헛허.....”

서문경도 배짱 좋게 한바탕 웃어제낀다.

 

무송이라는 말에 하객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손님중에는 높은 벼슬아치들도 여러 사람 섞여 있었는데,

그들은 처음부터 무송을 알아보고 뭐 어떻게 된 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서문경을 살인자라고 매도하는 소리가 거침없이 내뱉어지자

눈이 휘둥그래지고, 입들이 딱 벌어지기도 했다.

하객들 속에 검시관 하구도 섞여 앉아 있었다.

그는 무송을 보자 덜컥 겁을 집어먹고,

혹시나 그의 눈에 띌까 두려워서 어깨를 움츠리며 고개를 푹 떨어뜨리고 있었다.

서문경의 처와 소실 두 사람은 난데없는 소동에 놀라

핏기가 싹 가신 얼굴로 침입자 무송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너 이놈! 이제 보니 정말 뻔뻔스러운 녀석이로구나.

우리 형 무대를 저 계집년을 시켜 독살한 다음,

저년을 첩으로 들어앉혀 놓고서,

뭐 배꼽이 웃는다구?

하늘이 두렵지 않으냐? 이놈아!

저 계집년이 누구냐?

바로 죽은 우리 형의 여편네가 아니었느냐.

 남의 여편네를 빼앗기 위해서 계집에게 제 남편을 죽이게 하다니,

천하에 몹쓸 놈! 벼락을 맞고도 남을 놈!”

무송이 서문경을 향해 삿대질을 해가며 거침없이 퍼부어대자,

금련이 새파랗게 질리며 내다 악을 쓰듯 쏘아붙인다.

“뭣이 어쩌고 어째? 내가 독살을 했다구? 핫핫하.....

이놈아! 네가 봤느냐?

네 눈깔로 봤느냐 그말이야.

그런 엉뚱한 누명을 멀쩡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고도 네 놈이 성할 줄 아느냐?”

“아가리 닥치지 못할까!

이 마귀 같은 년!

그래도 곧 잘했다고 주둥아리를 놀리는거야?

이 백여우 같은 계집아!

오늘밤이 무슨 밤인지 알기나 하고 까부느냐”

“이놈아! 무슨 밤이란 말이냐?”

“물론 네년의 새서방 생일을 축하하는 밤이겠지.

나도 잘 알지.

그래서 이렇게 찾아온 거라구.

축하 선물을 가지고 알겠나. 헛헛허.....”

껄걸 웃고 나서 무송은,

“선물이 뭔 줄 아느냐? 바로 이거라구”

딴딴하고 큼직한 주먹 한 개를 번쩍 쳐들어 보인다.

그러자 서문경이 냅다 호령이다.

“저놈을 끌어내지 못할까! 밖에 누구 없느냐?”

하인 서너 명이 들이닥친다.

무송은 그들을 무섭게 노려보고는 후다닥 서문경과 금련을 향해,

“자, 선물 받아라!

두 연놈! 살인마! 선물 맛이 꽤 괜찮을 것이다! 자-”

주먹을 휘드르며 마구 돌진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