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21) 무송의 복수 <11~1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4. 20:10

 

금병매 (21) 

 

 

무송의 복수 11회 

 

 

무송은 하구를 내보내고, 가향을 다시 불러들였다.

하구는 이제 술을 더 마실 기분이 싹 달아나버린 듯 혼자 입속말로 뭐라고

 

곧장 투덜거리며 술집을 나서 그 걸음으로 곧바로 서문경을 찾아갔다.

 

무송의 심문 아닌 심문을 잘 받아넘기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그 사실을 서문경에게 알려야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뇌물을 먹고서 협조를 해준 자의 말하자면 도리인 셈이었다.


 

서문경은 마침 집에 있었다.

저녁을 먹고 자기 방에서 차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검시관 하구가 찾아왔다는 하녀의 전갈이었다.

응접실에 안내하라고 이르고서 서문경은 차를 마저 마시고 천천히 일어났다.

“검시관이 뭣하러 밤에 찾아왔을까?”

속으로 중얼거리며 응접실로 향했다.

서문경이 응접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하구는 얼른 일어나 깊이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다.

“밤에 이렇게 찾아와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아니야. 어서 앉게”

두 사람은 탁자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는다.

하녀가 차를 가지고 온다.

서문경이 하구에게 묻는다.

“보니까 술이 좀 된 것 같은데, 어때? 한잔 더 하겠어?”

“아닙니다. 술은 그만 할랍니다. 취했습니다”

“그럼 과일을 좀 내오지”

하녀에게 이르고는, 찾아온 용건이 뭐냐는 듯이 서문경은 하구를 바라본다.

“다름이 아니라 저..... 방금 무송을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뭐, 무송을”

“예”

“어디서?”

“술집에서요”

“음- 무송이 언제 돌아왔나?”

“글쎄요, 아마 오늘 돌아온 모양이던데요”

“그런데 어떻게 무송을 만났지? 무송이 자네더러 만나자 그러던가?”

“아니요. 우연히 만난 셈이지요.

제가 그 술집에 이차로 술을 마시러 들어갔는데,

방에 있다가 어떻게 알고서 불러들이지 않겠어요”

“그래서?”

“무대의 죽음에 대해서 꼬치고치 캐묻던데요.

무송이 아마 자기 형의 죽음을 석연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서문경은 표정이 굳어들며 말없이 하구를 노려보듯 바라본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느냐는 무언의 추궁 같은 그런 눈길이다.

그 눈길의 의미를 노회한 관원인 하구가 못 알아차릴 턱이 없다.

“서문 대관인, 그러나 아무 염려 하실거 없습니다.

푹 마음을 놓으십시오.

제가 알아서 척척 다 잘 납득이 가도록 대답을 했으니까요”

 

 

무송의 복수 12회 

 

 

 “아, 그런가. 잘했네. 잘했어”

표정이 학 풀리며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무송과 주고받은 구체적인 얘기가 여전히 궁금한 듯 묻는다.

“무송이 도대체 왜 자기 형의 죽음에 대해서 석연치 않게 생각하고 있던가?

어디 자세히 얘기를 좀 해보게. 자, 이 과일을 먹어 가면서.....”

서문경은 하녀가 깎아서 갖다놓은 과일을 하구에게 권한다.

하구는 그것을 한 조각 집어 먹으면서 말을 꺼낸다.

“자기 형은 본래 아무 병도 없는 건강한 사람인데 병사를 했다니 이상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제가 검시관이기 때문에 캐묻는 거예요.

시체를 보니까 어떻더냐, 병사가 맞더냐고 말입니다.

틀림없는 병사였다고 분명히 말해줬죠.

남한테 맞아 죽었거나 독살을 당했을 경우에는 시체에 반드시 그 흔적이 남는 법인데,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더라고 말이에요”

그러면서 하구는 자기도 모르게 그만 히죽 웃음이 나와 버렸다.

그 묘한 웃음을 보자 서문경은 다시 표정이 살짝 굳어든다.

 「남한테 맞아 죽었거나 독살을 당했을 경우」라는 말이 꼭 무대의 죽음의 비밀을

꿰뚫어 보고서 하는 말 같았던 것이다.

“어험!”

서문경은 헛기침을 한번 한다.

그리고 하구를 똑바로 쏘아보며 시치미를 뚝 떼고 묻는다.

“검시관으로서 그래 실제로 시체를 검시해 보니 어떻던가? 정말 병사 맞던가?”

“모르셔서 묻습니까?”

“내가 어떻게 아나. 내가 뭐 시체를 보기라도 했나”

“그래요? 음-”

하구는 알 수 없는 일이라는 듯이 가만히 고개를 기울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이란 말인가.

서문경이 자기에게 금화 한 닢까지 주며 검시 때 잘 봐주라고 한 까닭이 무엇인지 아리송했다.

하구는 서문경의 표정을 살피듯 바라본다.

그리고 노회한 관원답게 우선 헤헤헤... 웃고 나서 말한다.

“서문 대관인, 왜 이러십니까? 이미 염을 해버린 뒤였으니 말입니다”

“뭐, 이미 염을 해버린 뒤였다고?”

“예, 서문 대관인께서 염을 하라고 하셨다던데요”

“아니, 뭐라구? 내가 염을 하라고 했다구?”

서문경은 정말 두 눈이 휘둥그래진다.

“상주되는 젊은 아주머니가 그러던데요”

“헛헛허.....”

그만 서문경은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이 검시관 녀석이 그때

「서문경이가 나대신 검시를 한 모양이니까 병사에 틀림없겠지」

하고서 돌아가더라는 금련의 말이 생각났던 것이다.

 

 

 무송의 복수 13회 

 

 

 서문경은 너털웃음을 거두고서 정색을 하고 하구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검시관, 잘 듣게. 나는 시체를 본 일도 없고, 염을 하라고 말한 일도 없네.

 

 내가 뭐 할 일이 없어서 한낱 행상에 불과한 무대 따위의 시체를 가서 보며,

 

또 검시관도 아닌데 어떻게 염을 하라니 말라니 할 수 있는가. 안 그런가?”

하구는 도무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멀뚱히 서문경을 바라보고만 있다.

“이미 염을 해버렸다면 검시관으로서 당연히 염한 것을 풀어서라도 시체를 확인해야

되는 것 아닌가? 검시관의 임무가 무엇인가?

시체를 확인해 보지도 않고 병사라고 단정하고서 장례를 치르라고 허가했다면

직무 유기죄에 해당된다구. 알겠는가?”

“직무 유기죄라구요?”

하구는 속으로 이자식이 병 주고 약 준다 싶어서 불쑥 대들 듯이 내뱉는다.

“안 그렇단 말인가? 직무 유기죄가 아니고 그럼 무슨 죈가?”

서문경의 목소리도 약간 격해진다.

“제가 직무 유기죄라면 서문 대관인은 무슨 죄에 해당되나요?

직무를 유기시킨 사람이 누군데요?”

“뭣이 어쩌고 어째? 누가 직무를 유기시켰단 말인가? 분명히 말하라구”

“.......”

“왜 말을 못하지? 응? 검시관 하구, 똑똑히 들으라구.

나는 자네에게 직무를 유기하라고 말한 적이 없어.

검시를 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없다 이거야.

나는 자네에게 분명히 검시할 때 잘 봐주라고 말했다구. 알겠어?”

“그 말이 그 말이지 뭡니까?”

“그 말이 그 말이라니, 허허, 이런 사람이 있나.

자네 이제 보니까 똑똑한 줄 알았더니 그렇지가 못하군그래.

검시를 하지 말라는 말과 검시할 때 잘 봐주라는 말이 어째서 같단 말인가?

 어디 대답을 해보게. 그게 같은 말인가?”

“그럼 잘 봐주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왜 금화까지 주면서 잘 봐주라고 했지요?”

서문경은 그만 벌컥 화를 내어 뇌까린다.

“말 다했나? 금화를 주니까 싫던가? 넝큼 받아 넣은 것은 누구지? 응? 누구냐 말이야?”

하구의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내가 잘 봐주라고 한 것은 유족을 괴롭히지 말라는 뜻이었다구.

흔히 검시를 한답시구 돈이라도 뜯어내려고 생트집을 잡는 게 검시관들 아닌가.

무대의 젊은 미망인이 가엾기도 하고 해서 그러지 말라는 뜻으로 내가 미리 자네한테

선심을 썼던거라구. 알겠는가?”

“예. 알겠습니다”

하구는 코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노회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그러자 서문경은 호주머니에서 은화 몇 닢을 집어내어 하구 앞에 놓는다.

 

 

무송의 복수 14회 

 

 

 “금화는 아닐세. 은활세. 받아넣어 두게”

서문경은 싹 표정을 바꾸어 코 언저리에 싱그레 웃음을 떠올리며 말한다.

하구는 탁자 위에 놓여 반질거리는 은화 세 닢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이 없다.

마치 서문경에게 놀림감이 되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 좋지가 않았으나,

눈앞에서 반질반질 빛을 발하고 있는 돈을 보니 결코 싫지는 않다.

“받아 넣어 두라니까. 내가 자네를 몰아세우고 싶어서 한 말은 아니니 오해 말게.

 내가 자네를 몰아세울 까닭이 있겠는가. 안 그런가

? 무송이 돌아와서 자기 형의 죽음에 대해 의심을 한다기에 공연히

나도 기분이 찜찜했기 때문에 얘기를 주고받다가 잠시 화가 났을 뿐일세”

하구는 흰자위가 현저히 드러나는 그런 눈길로 서문경을 힐끗이 한번 바라본다.

아직 서른도 안된 놈이 단수가 높아도 보통 높은 게 아니로구나 싶으며 속으로 혀를 내두른다.

겁난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마치 서문경의 최면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절로 손이 뻗어나가

세 닢의 은화를 집는다.

그리고 슬그머니 안호주머니에 챙겨 넣어 버린다.

“됐어 됐어. 허허허.....”

재미있다는 듯이 한바탕 웃고 나서 서문경은 결론이라도 내리듯 말한다.

“무송이 혹시 앞으로 어떤 생트집을 잡으려고 들지 모르지만,

검시관인 자네의 말만 변함이 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구.

검시관이 검시를 한 결과 병사였다는데 더 뭐라고 이의를 달겠는가. 안그런가?”

“예, 맞습니다”

“자네가 검시한 결과 병사에 틀림없었지?”

“예, 틀림 없었습니다”

“허허허. 됐어”

서문경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선다.

하구는 밸이 흐늘흐늘해진 사람처럼 공연히 히죽히죽 함께 웃으며 자기도 따라 일어선다.

하구를 보내고 난 서문경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자기방 앞을 지나 회랑(回廊)을 꺾어 돌아서

호젓한 어떤 내실(內室)앞에 멈추어 선다.

그리고 어험! 헛기침을 하면서 방문을 연다.

갖가지 새로운 가구와 기물(器物), 그리고 장식품이 눈부시게 갖추어져 있는 방이다.

침상도 화려하다.

그 침상에 엷은 잠옷을 입은 한 여인이 누워있다.

서문경이 들어서자

그 여인은 힐긋 돌아보며 상그레 미소를 지을 뿐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 머리가 좀 아파서 누워 있어요. 괜찮죠?”

“응, 왜 머리가 아프지?”

서문경은 침상 곁에 놓인 의자에 가서 앉는다.

“간밤에 당신한테 너무 시달려서 잠을 제대로 못 자 그런가 봐요. 호호호.....”

머리가 아프다면서도 여인은 호들갑스럽게 웃는다.

다름아닌 반금련이다.

 

 

 

무송의 복수 15회 

 

  남편을 독살해서 화장하여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데 성공한 반금련은

 

서문경의 다섯 번째 아내가 되어 대저택의 깊숙한 안쪽에 있는 내실 하나를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서문경은 그 새로운 애첩(愛妾)을 다른 처첩(妻妾)들보다 월등히 아끼고 귀여워했다.

 

새것이 헌것보다 으레 맛이 좋은 터이라 그렇기도 했지만,

 

그래서보다 그녀와는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함께 한 무서운 인연에 얽혀있기 때문이었다.

 

사람도 다름 아닌 바로 그녀의 남편을 죽였으니 말이다.

반금련 역시 서문경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 자기남편을 죽여 없애는 일을 서슴지 않았으니

각별히 새 낭군과 밀착될 수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무서운 범죄자끼리의 밀월이 달디달게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여보, 하구가 찾아왔다가 방금 돌아갔지 뭐야”

서문경의 말에 금련은 그저 건성으로 묻는다.

“하구가 누군데요?”

“검시관 말이야”

“아니, 검시관이 왜요? 뭣하러 찾아왔었어요?”

금련의 안색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다름이 아니라 저... 무송을 만나고 오는 길이라는 거야”

“뭐라구요? 무송이 돌아왔나요?”

“오늘 돌아온 모양이래. 그런데 말이야 무송 그놈이 말하기를.....”

서문경은 하구에게서 들은 얘기와 서로 나눈 얘기를 대충 금련에게 들려주었다.

 뭐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일부러 실실 웃어가면서.....

그러나 금련은 덜컥 겁을 집어먹은 사람처럼 표정이 굳어들고 있었다.

“여보, 큰일났다구요. 미리 무슨 써야돼요.

만약 무송이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한단 말이에요. 알겠어요?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은 놈이잖아요”

“사실을 알기는 어떻게 안단 말이야? 화장을 해서 감쪽같이 없애 버렸는데...”

“그래도 혹시... 세상에 절대 비밀이란.....”

“염려 말라구. 이 서문경이가 있잖아.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 미리 내가 다 알아서 손을 써놓을테니까.

당신은 아무 걱정 말고, 집안에 얌전히 들어앉아 있기만 하라구.

외출은 안된다구. 알겠지?”

“집안에 가두어놓은 거예요?”

“당분간 그래야 된다구. 바깥에 나돌아 다니면 혹시 무송의 눈에 띌까도 두렵고,

아무래도 남의 입에 오르내릴 테니까 안 좋다구. 무슨 말인지 알겠지?”

“예, 알겠다구요”

이튿날 오후였다.

서문경은 현지사를 찾아가 만나고 있었다.

무슨 부탁 때문이 아니라,

오래간만에 그저 문안 인사차 찾아간 것이었다.

금화 몇을 예물로 싸가지고서 말이다.

바로 그 시각에 무송은 강가에 앉아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들 몇이 멱을 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