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25)
무송의 복수 31회
연회장은 온통 발칵 뒤집어지고 말았다.
마치 한 마리의 맹수가 뛰어드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서 하객들은
모두 놀라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중을 들던 기녀들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하느라고 정신들이 없었다.
칠척 거구의 무송은 코로 훅훅 독한 술기운을 내뿜으며 남들의 두 배가 넘는
큼직한 주먹을 번쩍 쳐들고 서문경과 금련에게 달려들었다.
“아이고 머니! 저놈 잡아라! 아이고 아이고.....”
금련은 질겁을 하고 냅다 정신없이 도망을 친다.
그러나 서문경은 명색이 사내인지라 여러 하객들 앞에서 모양같잖게
바로 뺑소니를 칠 수는 없다는 듯이 두 주먹을 발끈 쥐고 제법 겨루어볼 듯이 맞선다.
권법(拳法)과 봉술(棒術)을 좀 익힌 터이라 자세가 그런대로 볼만하다.
“야, 이것 봐라! 에라 이새끼야!”
무송은 훌떡 뛰어 올랐다가 내려오며 우선 한쪽 발로 그의 가슴패기를 냅다 걷어찬다.
재빨리 서문경은 그 발길질을 피한다. 제법이다.
이번에는 서문경이 주먹으로 무송을 반격한다.
가볍게 그 권격(拳擊)을 받아 넘긴 무송은 순식간에 그만
그의 팔통 하나를 덥석 거머쥐고 왈칵 잡아당기면서 면상에다가 정통으로 주먹 한 개를
화끈하게 선사한다.
“으악!”
비명 소리와 함께 서문경은 그만 뒤로 벌렁 보기 좋게 나가떨어지고 만다.
코에서 피가 주르르 쏟아진다. 너무 싱겁다. 무송은 넘어진 서문경의 몸뚱이를
사정없이 마구 짓밟아 끝마무리를 해버릴 작정으로 후다닥 다가간다.
그 순간, 누군가가 술병을 집어 들고 후려친 것이 무송의 뒤통수를 냅다 강타했다.
술병이 박살나면서 무송의 뒤통수가 찢어져 피가 튕긴다.
눈에 불이 번적 튀는 것을 느끼며 무송은 얼른 뒤를 돌아본다.
뜻밖에도 검시관 하구였다.
술이 꽤 된 하구는 무송의 주먹에 서문경이 벌렁 나가떨어지자
자기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그만 술병을 집어 들었던 것이다.
“아니 이새끼, 검시관 아니야! 오냐, 잘 만났다. 너도 맛 좀 봐라!”
무송의 주먹이 하구를 향해 날았다.
하구는 피할 겨를도 없이 정통으로 한대 얻어맞고 턱이 삐딱하게 돌아간 채
비실비실 저만큼 나가 뒹굴어 버린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무송을 향해 술병과 요리접시를 집어던진다.
심지어 조그마한 술잔까지 던진다. 그릇이란 그릇은 모조리 던진다.
무송은 날아오는 기물들을 피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닥치는 대로
아무나 마구 주먹으로 때려눕힌다.
탁자가 무너지고, 가구가 부서지고,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고함소리가 빗발치고, 온통 연회장은 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무송의 복수 32회
서문경의 생신 축하의 밤을 온통 뒤흔들어 난장판을 만들어 버리기는 했으나,
정작 제대로 복수를 못한 채 무송은 사로잡히는 몸이 되고 말았다.
맹수와 다를바 없는 역사(力士) 무송도 단신(單身)으로는 끝내 많은 사람들을
당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하인들이 모조리 몽둥이를 들고 몰려들었고, 하객들 가운데 무관도 여러 사람 있었는데,
마침내 그들까지 벗어부치고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는 심지어 집안에 있는 번견(番犬) 다섯 마리가 떼를 지어 덤벼들기도 했다.
세불리(勢不利) 역부족(力不足)을 느낀 무송이 연회장을 빠져나가 도망치려고 높다란 담을
뛰어넘으려 하는 판에 짖어대며 뒤쫓아온 번견들에게 물려 그만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던 무송도 개들에게는 굴복을 하고만 셈이었다.
몰려온 하인들의 몽둥이질에 하마터면 무송은 그 자리에서 뻗어버리고 말뻔 했다.
그런데 무관 한 사람이 죽이는 것은 삼가라고 제지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래서 무송은 목숨을 부지하여 밧줄에 꽁꽁 묶이는 몸이 되고 말았다.
그날밤으로 무송은 관가에 넘겨져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무송이 서문경의 생신 축하연에 뛰어들어 난동을 부리고 사람까지 하나 죽였다는
보고를 들은 현지사는 크게 진노했다.
무송의 주먹에 맞고 발길질에 얻어챈 하인 하나가 이튿날 목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얻어맞아서 몸져 눕게 된 사람은 수없이 많았다.
비록 서문경네 집에서 심부름을 하는 미천한 신분인 노복(奴僕)이기는 했지만,
사람의 목숨을 앗았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죄과가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남의 집 잔치에 무단 침입하여 난장판을 만들었고,
수많은 하객들을 두들겨서 몸져 눕게 했다니 가증스러운 일이었다.
“내 말을 듣지 않고, 기어이 이놈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군. 괘씸한 놈 같으니라구”
현지사는 노여움을 참지 못하여 보고를 하러 온 부하 관원이 앞에 서있는데도 아랑곳없이
냅다 내뱉으며 시커만 눈썹 한쪽을 꿈틀거리기까지 했다.
그처럼 지사의 진노를 샀으니 결과는 뻔했다. 살인자는 곧 죽음이었다.
참작의 여지가 없었다.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무송은 마지막으로 지사를 향해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읍소(泣訴)를 했다. 그러나 지사는 냉담한 얼굴로 자르듯이 말했다.
“네놈이 남의 잔치에 뛰어들어 난동을 부리고 사람을 죽인 그 죄과보다
내 말을 거역한 죄가 더 크고 괘씸하느니라. 알겠느냐?”
그리고 지사는 자리를 박차듯 성큼 일어나 퇴정(退廷)해 버렸다.
무송의 복수 33회
옥에 갇혀 사형이 집행될 날을 기다리는 무송은 너무나 분하고 허망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이 이렇게도 헤아릴수 없는 것인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지난해 가을에는 뜻하지 않게 경양강 고개를 넘다가 맨주먹으로
식인 호랑이를 때려잡아 일약 순포도두가 되고,
형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더니,
불과 일년도 채 안되어 사형수의 모습이 되고 말다니,
더구나 남도 아닌 형수였던 여자 때문에 이런 신세가 되다니,
생각하면 너무 어이가 없어서 도리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무슨 나쁜 인연으로 그런 여자를 형이 아내로 맞았으며,
또한 자기가 형수로 만나게 되었는지, 생각할수록 한탄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무송은 그날 밤 서문경네 집에 쳐들어간 일을 결코 후회하지는 않았다.
비록 사형수가 되어 미구에 목숨이 날아갈 신세가 되고 말기는 했지만,
좌우간 사내대장부로서 당당히 할 일을 했다는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고 형의 억울한 죽음을 외면한 채 일신의 출세를 위하여
지사의 분부를 좇아 얌전히 기다렸다가 다시 감투를 쓰고 거들먹거리게 되었다면
그 얼마나 사람답지 못할까 싶었다.
다만 후회스러운 것은 그날 밤 서문경을 깨끗이 끝마무리를 지어버리지 못한 일이었다.
설령 하구가 술병으로 뒤통수를 강타했다 하더라도 그따위는 모른체하고서
나가떨어진 서문경이란 놈을 보기 좋게 짓밟아 버리는 것인데.....
그랬더라면 죽어도 크게 여한은 없을 터인데 싶었다.
그리고 무송은 금련이라는 백여우를 눈앞에 보고서도 갈기갈기 찢어놓지 못하고
놓쳐버렸던 일도 못내 한스러웠다.
가슴에 맺히는 회한(悔恨)도 떨쳐버리고 모든 것을 체념하려 노력하며
사형이 집행될 날을 기다리고 있는 무송에게 어느 날 천만뜻밖에도 감형이 내려졌다.
죽음에서는 벗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 대신 유형수(流刑囚)가 되어 맹주(孟州)라는 곳의 유배지(流配地)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생사여탈권(生死與奪權)을 쥔 지사가 자기의 사사로운 심부름으로 동경까지 먼길을
무사히 다녀온 무송의 그 공로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결국 사형만은 면하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멀고 험한 맹주 땅으로 유배되어 가면 그것으로 그 사람의 생애는 끝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강제 노역에 시달려 살아서 돌아올 가망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송은 목숨을 부지하게 된 것을 우선 천만다행으로 생각했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살아서 다시 돌아와 그 연놈들을 기어이 처치하고야 말겠다고
새삼 이를 악물었다.
무송이 오랏줄에 묶여 수레에 실려서 청하현을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구경을 했다.
그중에는 가향도 섞여 있었다.
가향은 떠나가는 무송을 바라보며 남몰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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