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8) 살부(殺夫) 36회
창문으로 달빛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정사를 벌이기에 안성맞춤인 그런 분위기였다.
서문경은 금련을 방에 내려놓자 또 발로 툭 차서 문을 닫아 버렸다.
빈소 쪽의 촛불이 차단되고, 달빛만이 방안에 쏟아져 들어온다.
“좋은데.....”
“달이 아주 밝은가 봐요. 보름인가”
금련은 창문으로 다가가서 밤하늘을 내다본다.
서문경이 뒤따라가서 뒤에서 지그시 그녀를 끌어안는다.
그녀의 풀어헤친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가 살짝 코끝에 와 닿는다.
야릇한 향기가 코에 물씬 스며든다.
서문경은 여자의 머리카락 냄새를 무척 좋아한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약간 누린내가 나면서도 구수하고 상큼한 그 야릇한 냄새가
곧 여자의 냄새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그 냄새를 맡으면 그는 절로 온몸이 뜨거워진다.
그는 그녀의 머리카락에다가 코를 비벼대기 시작한다.
야릇한 여자의 냄새가 독한 향기처럼 콧구멍 속을 푹푹 찌른다.
향기에 취한 듯 그는 지그시 두 눈을 감으며 머리카락 속으로 온통 얼굴을 묻어 버린다.
그리고 이번에는 입술에 와 닿는 그녀의 야들야들한 뒷덜미의 살을 자근자근 문다.
그녀를 안은 손은 앞가슴의 부드러우면서도 탄력 있는 두 개의 봉우리를 애무한다.
“아으으-”
달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감미로운 탄성이 흘러나온다.
달빛이 그녀의 두 눈동자에서 요염한 빛으로 부서진다.
어디선지 밤고양이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봄밤에 수컷을 부르는 암컷의 안타까운 울음소리다.
그는 그녀의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곧 그녀는 달빛 속에 하얀 나체로 드러나 버린다.
그녀를 벗기고 나자,
그도 스스로 훌렁훌렁 벗어 던진다.
벌거숭이가 된 그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혼자서 침상으로 걸어가
그녀가 바라보이는 쪽에 머리를 두고 벌렁 눕는다.
누워서 가만히 그녀를 바라본다.
“아이 부끄러워요”
그녀는 두 손으로 부끄러운 곳을 살짝 가리며 그에게로 다가가려 한다.
“안돼. 그대로 가만히 서있으라구”
“아이 싫어”
“서있으라니까. 손떼고”
“왜 그래요?”
“너무너무 멋있어서 그래. 정말 당신 일등 미녀라구.
몸매도 미끈하게 빠졌지뭐야. 기가 막힌다구”
미끈하고 늘씬하게 흘러내리고 있는 그녀의 육체의 선이 달빛을 받아 한결 선연(鮮姸)해 보이고,
풀어헤친 치렁치렁한 검은 머리도 달빛에 젖어 섬뜩하도록 아름답다.
곧 그는 누운 채 두 손을 내밀어 그녀에게 이리 오라는 시늉을 한다.
살부(殺夫) 37회
그녀는 마치 달빛 속을 가볍게 헤엄치듯 후다닥 그가 누워있는 침상으로 다가간다.
훌떡 침상 위로 뛰어올라 그의 벌거숭이 몸 위에 엎어진다.
그리고 그를 그녀가 애무한다. 그는 그녀에게 가만히 내맡겨두고 있어 본다.
그녀의 애무가 발가락에 가서 끝나자, 그는 벌떡 몸을 일으킨다.
이번에는 그가 그녀를 애무하기 시작한다.
잠시 후, 달짝지근한 신음소리를 흘리고 있던 그녀가 별안간 발딱 몸을 일으킨다.
얼른 침상에서 방바닥으로 내려서며 그의 손을 잡아끈다.
“이리 내려와요. 침상보다 여기가...”
“그럴까. 사람보다 짐승 쪽이 더 마음에 든다 이거지”
“히히히”
침상에서 내려선 그가 말한다.
“자, 그럼 어서 짐승이 되라구”
“응, 자...”
그녀는 달빛 속에 한 마리의 하얀 짐승으로 변한다. 그도 짐승이 되어 다가든다.
암컷 수컷 두 마리의 짐승이 달밤에 숲 속에서 서로 물어뜯고 으르렁거리며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굴기 시작한다.
숲 속이라 두 짐승은 마음껏 소리를 내지른다.
이때 이층에서 자던 영아가 눈을 떴다. 오줌이 마려웠던 것이다.
영아는 일어나 어둠 속을 가만가만 걸어서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중간쯤 내려가던 영아는 주춤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어디선지 무슨 이상한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지?”
영아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래층 작은방에서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아니, 새엄마가.....”
틀림없는 새엄마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어디가 많이 아픈 듯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실컷 아파라, 아파서 뒈져라 뒈져,
아버지를 죽였으니 천벌을 받았지 뭐야,
하고 속으로 내뱉으며 영아는 다시 계단을 가만가만 내려갔다.
계단을 다 내려선 영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새엄마가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한테 목이라도 졸리고 있는 것 같았다.
곧 숨이 넘어갈 듯한 그런 가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바짝 긴장이 된 영아는 가만히 서서 귀를 그쪽으로 곤두세웠다.
그런데 새엄마의 목을 조르고 있는 사람이 남자였다.
숨이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듯 이따금 남자도 끙, 끙... 하고 힘겨운 소리를 토하고 있었다.
누굴까? 우리 아버지의 복수를 해주는 고마운 남자가... 싶으며 영아는
두 눈에 반질반질 기쁜 빛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두 손을 발끈 주먹 쥐고서 속으로 뇌까린다.
“꽉꽉 누르세요. 힘껏 누르세요. 더 힘껏요. 더 힘껏.....”
얼른 새엄마의 숨이 끊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영아는 저도 응, 응... 하고 누르는 시늉을 하며 발끈발끈 온몸에 힘을 준다.
살부(殺夫) 38회
“지독한 년, 숨도 되게 질기기도 하다”
영아는 곧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면서도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 새엄마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그리고 저도 그만 그 방으로 뛰어 들어가 남자를 거들어서 함께 목을 조를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왈칵 무서운 생각이 들어 가느다란 목을 찔끔 움츠린다.
새엄마의 신음소리가 이제 막바지에 이른 것 같다.
곧 넘어갈 듯이 아슬아슬하게 헐떡이다가 그만 야릇한 비명을 내지르며 푹-꺼지는 듯한
이상한 숨을 내뱉는다.
뒤이어 남자도 목을 조르느라 힘이 든 듯 무거운 신음소리를 토해낸다.
그리고 조용해진다.
“저년, 이제야 죽었구나”
영아는 후유-저도 이제 긴장이 풀리는 듯 큰 숨을 내쉰다.
그런데 영아는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숨이 넘어갈 때 새엄마가 내지른 소리가 몹시 기분이 좋은 그런 소리 같았던 것이다.
사람이 죽을 때는 그렇게 기분이 좋은 것인가 하고 영아는 고개를 기울인다.
새엄마가 숨을 거둔 방 쪽으로 영아는 살금살금 다가간다.
다가가던 영아는 깜짝 놀라며 멈추어 선다.
새엄마의 말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틀림없이 숨이 넘어갔는데, 새엄마가 남자와 말을 받다니...
영아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귀를 다시 곤두세운다.
“여보”
“응?”
“기분이 어때?”
“좋다구”
“난 오늘밤이 최고지 뭐야. 지금까진 남의 집에서 대낮에 그랬기 때문에 별로였는데,
밤에 우리 집에서 그러니까 마음 놓고 소리도 지를 수 있고, 최고라니까”
“남편이 없어졌기 때문에 최곤거야. 알겠어?”
“응, 맞아”
“다 내덕택인 줄 알라구”
“호호호... 여보, 오늘밤 우리 자지말고 실컷...응?”
“좋아”
영아는 그만 찔끔 눈을 감으며 두 손으로 귀를 딱 막아버린다.
도저히 더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남자가 새엄마를 목 졸라 죽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이제 보니까 둘이서 바로 그 짓을 하고 있질 않았는가.
영아는 어처구니가 없고 치가 떨린다.
둘이서 주고받는 말을 들으니까 남자가 틀림없이 아버지를 죽이도록 일을 꾸민 것 같다.
어떤 놈인가 싶으며 영아는 이를 뽀도독 한다.
그리고 영아는 새엄마라는 여자가 바로 악마가 아닌가 싶어 몸서리를 친다.
남편을 죽여 놓고서 그 시체가 안치되어 있는 빈소 바로 옆에서 다른 남자와
그 짓을 해대고는 오늘밤이 최고로 기분 좋다는 말을 예사로 지껄이니 말이다.
살부(殺夫) 39회
“여보, 빈소의 촛불을 끄고 올게”
새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영아는 깜짝 놀라 얼른 계단 모퉁이로 가서 몸을 숨기고 엿본다.
방문이 열리고, 촛불이 타고 있는 빈소로 새엄마가 모습을 나타낸다.
영아는 그만 입이 딱 벌어지고 만다.
“어머나, 저럴 수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촛불을 끄러 나타나지 않는가.
더구나 자기 남편의 시체가 누워있는 그앞으로 말이다.
놀라 자빠질 광경이다.
저년이 틀림없는 악마라고 영아는 생각한다.
풀어 늘어뜨린 칠흑같은 치렁치렁한 머리와 유난히 하얀 몸뚱어리가 영락없는 여자 귀신같다.
영아는 몸서리를 치며 눈을 찔끔 감아 버린다.
훅-불어 촛불을 끄고서 금련은 후다닥 옆방으로 뛰어 들어간다.
병풍 뒤에 삼베로 염습이 되어 빳빳하게 누워 있는 남편이 '너 이년'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 모양이다.
빈소의 촛불이 꺼지자,
집안이 깜깜한 어둠에 잠겨 버린다.
영아는 어둠 속으로 조심조심 변소를 찾아가서 소변을 보고 돌아와 계단을
한개한개 더듬어 밟으며 이층으로 올라간다.
계단 중간쯤에서 영아는 가만히 멈추어 서며 작은 쪽방을 돌아본다.
또 새엄마의 앓는 소리가 어둠속으로 들려왔던 것이다.
“흥, 마귀같은 년, 또 지랄이군”
영아는 더럽고 구역질이 나서 인제 듣기도 싫다는 듯이 얼른 계단을 뛰어올라가 버린다.
이불 속으로 푹 파묻혀 들어가며 영아는 뽀도독 뽀도독 이를 갈아댄다.
“어디 두고보자. 삼촌이 돌아오면 다 일러바쳐서 복수를 하도록 하고야 말테니,
사람을 죽이고도 저희가 살아남을 줄 알아.
흥! 어림도 없지. 만약 삼촌이 복수를 안 하거나 못하면 내가 나중에 커서
기어이 연놈을 없애고 말 것이니까 두고보라구”
마치 영아는 맹세라도 하듯 중얼거린다.
그리고 영아는 새삼스럽게 연놈들에게 죽음을 당한 아버지가 불쌍해서
추적추적 눈물을 흘리며 흐느껴 운다.
한참 울고 난 영아는 한숨을 쉬고서 다시 잠을 자려고 했으나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아래층에서 연놈이 아직 그짓을 하고 있으려니 생각하니 공연히 화가 나면서도
기분이 좀 이상해지기도 했다.
열세살짜리 영아는 남자와 여자가 그짓을 하면 어디가 몹시 아픈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새엄마가 앓는 소리를 할뿐 아니라,
나중에는 마치 목을 졸려 숨이 넘어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신음소리까지 내뱉으니 말이다.
그런데 애 잠도 자질 않고 그짓을 자꾸 해대는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디선지 멀리 첫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서야 영아는 하품이 나왔다.
무대의 시체는 이틀 뒤에 성 밖에서 화장되어 강물에 재로 뿌려졌다.
마침내 무대는 이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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