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7) 살부(殺夫)< 31~3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3. 19:26

금병매 (17)

 

 

살부(殺夫) 31회 

 

 

 

 검시관이 찾아와서 무대의 죽음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것을 알자,

 

 왕파는 슬그머니 긴장이 되어 주방에서 하던 일손을 멈추고, 살금살금 빈소로 가보았다.

 

그때 영아는 왕파의 심부름으로 시장에 음식거리를 사러가고 없었다.

“어젯밤 몇 시에 죽었나요?”

 

“삼경에요. 북소리가 울리고 조금 있다가요”

“무대가 숨을 거둘때 그 자리에 누가 있었나요?”

“제가요”

“색시 혼자 있었어요?”

“예”

검시관과 금련의 대화였다.

왕파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듯,

“검시관 나리께서 오신 모양이죠?”

주름진 상판에 필요이상 웃음을 떠올리며 빈소로 들어섰다.

그리고 묻지도 않는데 스스로 나서서 지껄인다.

“간밤에 삼경이 넘어서 색시가 우리 집을 찾아오지 않았겠어요.

갑자기 무대의 병이 악화되어 방금 숨을 거뒀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으냐고 말이에요.

그래서 나도 깜짝 놀라 와보니까 글쎄, 죽었지 뭡니까”

“정말인가요?”

검시관 하구는 왕파를 노려보듯이 바라본다.

“정말이지요. 이 늙은 것이 뭣 때문에 남의 일에 거짓말을 하겠어요”

“좋소. 어디 그럼 시체를 좀 볼까요?”

왕파는 당황했다. 왕파뿐 아니라,

금련도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는 느낌이 온다.

왕파는 재빨리 검시관 앞으로 한걸음 다가서서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말한다.

“검시관 나리, 아직 점심때도 안됐는데 벌써 한잔 하셨네요.

얼굴을 보니까. 혹시 서문경 대관인과 만나신거 아닌가요?”

왕파의 그 말에 하구는 별안간 허점을 쿡 찔린 사람처럼 주기 때문에

불그레하던 얼굴이 한결 벌겋게 달아오른다.

“맞지요?”

“......”

“왜 대답이 없으시죠?

서문 대관인과 한잔 하셨다면 무슨 말이 있었을텐데요. 그리고...”

“어험!”

하구는 헛기침을 한번 크게 한다.

이것들이 보니까 모두 한패거리구나 싶었다.

비록 서문경한테 받은 금화 한개가 지금 안호주머니에 들어있기는 하지만,

 이따위 아낙네들 앞에서 그런 기색을 드러낸다는 것은 관원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하구는 두 아낙네에게 겁을 주기라도 하려는 듯이 거침없이 내뱉는다.

“서문경씨를 만났거나 말거나 나는 내 할 일을 하면 되는거요.

나는 검시관이니까 검시를 하면 된다 그거요. 알겠소?

자, 어디 시체를 좀 볼까요?”

 

 

 

살부(殺夫) 32회 

 

 

 

 시체가 안치되어 있는 병풍 뒤로 검시관이 다가가려 하자,

 

왕파가 얼른 그의 한쪽 소맷자락을 덥석 붙잡는다.

“나리, 잠깐만 ... 술이나 한잔 드시고 천천히 시체를 보아도 되지 않아요.

 

자, 잠깐 이리 앉으세요”

그러자 금련도 가세하여 검시관의 다른 쪽 소매를 붙들며 상냥한 목소리로 말한다.

“제가 술을 따라 드릴께요. 자, 앉으시라구요”

마치 유혹을 하듯 살짝 곱게 흘겼다가는 생글 웃는 그녀의 요염한 눈길과 마주치자

하구는 절로 헤벌레 입이 벌어진다.

“술을 많이 마셨는데.....”

그러면서 마지 못하는 듯 금련이 권하는 의자에 궁둥이를 내린다.

왕파가 됐다는 듯이 얼른 주방으로 가서 술과 안주를 차려들고 왔다.

금련이 하얗고 야들야들한 두 손으로 공손히 따라주는 술을 하구는 기분 좋게 쭉 한잔 비운다.

그리고 그 잔을 금련에게 권한다.

“자, 색시도 한잔 하구려...”

“아이, 검시관 나리도 참... 상을 당한 몸인데 어떻게 여자가 영전에서 술을 마시나요.

장례를 치르고 나서 한번 제가 나리를 모실께요.

그때 취하도록 마시죠. 뭐”

“아, 그래요? 허허허..... 그거 좋죠”

“낮보다 밤이 좋겠죠? 밤에 오실 수 있어요?”

금련은 야릇한 의미가 담긴 듯한 그런 눈웃음을 살짝 웃어 보인다.

하구는 속으로 야, 이것 봐라, 웬 떡이냐 싶었다.

“있고 말고요. 열 번이라도 올수 있죠. 허허허...”

“그럼 됐어요. 그때 만나기로 하고, 오늘은 그냥 돌아가 주세요.

시체를 뭐 꼭 눈으로 봐야 되나요.

말로 설명을 들었으면 됐지. 안그래요?

이미 염을 해버렸다구요”

“염을 해버리다니, 허허-”

“서문 대관인이 염을 하라고 그러시데요”

“그래요? 음-”

하구는 고개를 무겁게 끄덕이고는 내뱉듯이 말한다.

“좋아요. 그럼 어디 염한 거라도 한번 보고 갈까요”

“예, 그러세요”

검시관이 의자에서 일어나자,

저만큼 떨어져 서있던 왕파가 재빨리 가서 병풍 한쪽을 걷어 젖혔다.

무대의 시신은 침상에 그대로 안치되어 흰 홑이불로 덮어 씌워져 있었다.

다가간 하구는 그 홑이불을 훌렁 겉어 붙였다.

삼베로 꽁꽁 염습을 해버린, 남달리 작달만한 무대의 시신이 드러났다.

하구는 그 시신을 한참 취기어린 눈으로 멀뚱히 내려다보고 있더니

별안간 한바탕 껄걸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됐소. 임관을 하도록 해요.

서문경이가 나대신 검시를 한 모양이니까, 병사에 틀림없겠지”

 

 

살부(殺夫) 33회 

 

 

 

 그날 밤 서문경은 삼경이 가까워질 무렵에 상갓집을 찾아갔다.

 

낮에 검시의 건(件)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궁금하고 이번 일을 잘 해내어

 

이제 과부가 된 금련도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다.

문상객들은 다 돌아가고 금련과 왕파가 둘이서 빈소를 지키고 있었고

승려 한 사람이 졸음이 가득한 그런 얼굴로 목탁을 두들기며 독경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늦게 문상을 와도 상관 없습니까?”

농담조로 말하며 서문경이 들어서자 금련과 왕파는

무척 반가운 듯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맞는다.

그러나 승려가 있는 터이라 일체 입은 열지를 않는다.

그런 분위기를 서문경이 모를 턱이 없다.

서문경은 무대의 영전에 분향을 하고 제법 눈까지 지그시 감으면서 합장 배례를 한다.

승려의 눈앞이라 문상객 시늉을 정중히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서문경은 승려에게 말했다.

“밤이 깊었으니 이제 스님은 돌아가도록 하시오”

은화 두 닢을 꺼내어 수고료로 지불한다.

마치 상주같은 행세다.

승려는 졸음이 오는 눈으로 힐끗 서문경을 바라보며 말없이

그 은화를 받아넣고는 자리에서 부스스 일어난다.

승려가 돌아가자 세 사람은 탁자에 둘러앉았다. 왕파가 묻는다.

“술을 한잔 가져올까요?”

“물론이지. 문상을 했으니 한잔 대접 받아야잖아. 허허허...”

서문경은 나직이 웃는다. 금련도 따라 웃고는 얼른 고개를 떨구어 버린다.

양심의 한 귀퉁이가 찔리는 모양이다.

왕파가 술과 안주를 가지러 간 동안에 서문경은 금련에게 묻는다.

“오늘 일이 어떻게 됐지? 검시관이 찾아 왔었어?”

“예, 찾아와서 기어이 시체를 보려고 들지 뭐예요”

“그래? 그놈의 자식, 내가 금화를... 한 개 집어줬는데도... 간뎅이가 부었나... 그래서?”

“술을 한잔 권한 다음 슬쩍 유혹을 했지 뭐예요.

장례를 마치고서 한 번 초대를 하겠다고요. 밤에...”

“뭐라구, 밤에?”

“호호호... 왜 그렇게 놀라세요? 정말로 밤에 초대를 할까봐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위기를 넘길 수가 없더라니까요”

“그랬더니?”

“밤에 초대를 하면 열 번이라도 오겠다지 뭐예요”

“그놈의 자식 고이얀 놈인데... 그러고는 순순히 돌아가던가?”

“순순히 돌아가긴요. 이미 염을 해버렸다니까

염한거라도 한 번 본다면서 기어이 홀이불을 들추어 보지 않겠어요.

그리고 뭐라 그러는지 아세요?

서문경이가 나 대신 검시를 한 모양이니까 병사에 틀림 없겠지, 이러지 뭐예요”

“그 때려죽일 놈이... 허허허...”

서문경은 그만 웃움이 나와 버린다.

 

 

살부(殺夫) 34회 

 

 

 

 왕파가 술병과 안주와 잔 한개를 차려들고 오자,

 

 서문경은 잔을 두개 더 가져오도록 했다.

 

그리고 손수 자기가 세 개의 잔에 술을 찰찰 넘치도록 따랐다.

“자, 건배를 하자구”

 

서문경이 잔을 들어올리자,

금련과 왕파는 약간 곤혹스러운 그런 표정으로 힐끗 서로 마주본다.

사람을 죽여 놓고서 그 영전에서 축배를 들만큼 심장에 털이 돋아나지는 않은 것이다.

금련이 서문경에게 말한다.

“나는 상주니까 술은 삼가겠어요”

그러자 서문경이 웃긴다는 듯이 내뱉는다.

“상주 좋아하네. 허허허. 죽인 건 누군데?

그따위 뻔뻔스러운 소리 걷어치우고 자 어서 잔을 들라구”

야코가 팍 죽은 금련은 한 가닥 가냘프게 남은 양심마저도 싹 뭉개버리지 않을 수 없어

앞니를 자그시 물며 도리 없이 얼른 잔을 든다.

서문경은 「독살의 성공을 축하하며」라는 말은 차마 입에서 나오지 않는 듯 그대신,

“오늘 일을 무사히 마쳤으니 축하하는 의미에서 자 마시자구”

이렇게 말하고는 잔을 입으로 가져가 꿀컥꿀컥 단숨에 비워 버린다.

금련도 까짓것 양심의 가책이고 지랄이고 싶은 듯 꼴칵꼴칵 마셔댄다.

왕파만 한 모금 입에 대고는 잔을 내려놓는다.

말하자면 삼인살인조(三人殺人組)의 독살성공 축하건배인 셈이었다.

몇 잔 술을 마신 다음,

거나해진 서문경은 커다랗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고는 왕파에게 말했다.

“할멈은 인제 특급주를 사러 가야겠어”

“예, 그러죠. 헤헤헤..... 이 한밤중에 특급주를 팔는지 모르겠는데요. 히히히.....”

왕파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난다.

집으로 돌아가며 왕파는 힐끗힐끗 상갓집을 돌아보기까지 하면서 중얼중얼 마구

욕지거리를 해댄다.

“저 서문경인가 동문경인가 하는 놈 저놈, 벼락을 맞아 뒈질거라구.

두고 봐, 내 말이 틀리는가. 색골인 줄만 알았더니 이제 보니까

악질 중에서도 최고 악질이지 뭐야. 남의 여편네를 제멋대로 데리고 놀다가

그 남편까지 죽였으면 사람이라면 양심에 가책이 조금은 있어야 될 거 아니야.

건배가 뭐야, 건배가.....

다른 장소도 아닌 시체가 시퍼렇게 누워있는 바로 그 앞에서.....

나 참 세상에 저렇게 지독한 놈은 정말 첨이라니까.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시체를 눕혀놓고 그 앞에서 보라는 듯이

그 짓까지 해댈 모양이지. 특급주를 사오라고? 나 참 더러워서.....

그저 저런 놈은 잡아다가 백주에 네거리 한복판에서 발가벗겨 가지고

물건을 쑥 뽑아버려야 된다구.

물건을 달고 있는 동안에는 그 못된 버릇 못버릴테니까.

어이구 더러운 놈. 어이구 지독한 놈”

 

 

살부(殺夫) 35회 

 

 

 

 왕파가 돌아간 뒤 곧 둥둥둥 둥둥둥... 북소리가 들려왔다.

 

삼경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북소리를 듣자 금련은 불현듯 간밤의 꼭 이맘때의 일이 악몽처럼 머리에 떠오르는 듯

 

이맛살을 찌푸리고 두 눈을 찔끔 감으며 고개를 움츠렸다.

 

“여보, 왜 그러지?”

서문경이 이상하다는 듯이 묻는다.

“간밤의 일이 생각나서 그래요. 저 북소리가 나자 곧 독살을 했거든요”

“그래? 음- 알겠다구”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잔에 남은 술을 훌쩍 마셔버린다.

그리고 의자를 뒤로 밀며 벌떡 일어선다.

“자, 당신도 일어나라구. 그런 생각은 인제 싹 씻어버려야 돼.

깨끗하게 잘 끝냈는데, 뭐 자꾸 구질구질하게 그런 생각을....

자, 밤도 깊었고, 이 집안에 우리 둘뿐이니 마음껏 한번 기분을 내보자구”

“이층에 영아가 자고 있다구요”

“영아가 누군데?”

“무대의 딸이지 뭐예요”

“몇 살이나 먹었지?”

“나이는 왜요?”

“그저.....어린애가 처년가 싶어서”

“이제 겨우 열 세살이란 말이에요. 어린애라니까요”

계집애의 나이를 묻는 바람에 금련은 대뜸 표정이 살짝 굳어들며 눈길이 약간 묘해진다.

“어린애가 이층에서 자는데 무슨 상관이 있어. 자, 어서 일어나라구”

그러면서 서문경은 한쪽 손을 금련에게 내민다.

“예, 좋아요”

그 손을 덥석 잡으며 금련은 의자에서 성큼 몸을 일으킨다.

일어선 그녀를 서문경은 대뜸 가슴 안에 불근 끌어안는다. 그러자 금련은,

“어머나, 여기서 어떻게.....”

교성(嬌聲)인지 비명인지 모를 그런 소리를 내뱉는다.

영전에 커져있는 촛불의 불꽃이 별안간 바람에라도 흔들리듯 활활 나부끼며 타오른다.

병풍 뒤에 뻣뻣하게 누워있는 무대의 시신이 냅다 「이 년놈들아-」하고 소리 없는

소리를 내지르기라도 한 모양이다.

“여기서는 뭐 안 된다는 법이 있나”

서문경이 일부러 짓궂게 말하자, 금련은 살짝 곱게 눈을 흘긴다.

“꼭 여기라야 된다는 법도 없잖아요.

빈소에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해요. 저 옆방으로 가요”

“그럼 그럴까.....”

서문경은 마지 못하는 듯 코언저리에 능글능글한 웃음을 떠올리며

그만 금련을 불끈 들어 안아 가지고 뚜벅뚜벅 옆방으로 다가가

문을 한쪽 발로 툭 차서 열고 들어간다.

금련이 안긴 채 말한다.

“빈소의 촛불을 꺼야죠”

“이따가 끄지 뭐. 그게 뭐 그리 급한가”

촛불을 끄는 일보다 서문경은 지금 다른 일이 월등히 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