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6) 살부(殺夫) <26~30회>

오늘의 쉼터 2014. 6. 23. 19:20

 

금병매 (16) 

 

 

살부(殺夫) 26회 

 

 

 

 죽이는 일은 금련이 해냈으니,

 

시체의 뒷수습은 자기가 맡아서 하겠다는 듯이 왕파는 팔을 걷어 붙이고 무대의

 

얼굴에 온통 범벅이 되다시피한 피를 물에 적신 수건으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금련은 곁에서 왕파가 건네주는 피에 젖은 수건을 받아 대야의 물에 빨아서 다시 건네주곤 했다.

피를 말끔히 닦아냈으나, 무대의 얼굴은 아무래도 그냥 병사를 한 사람 같지가 않았다.

 

독 기운이 돌아서 그런지 얼굴 색깔이 푸르뎅뎅하게 얼룩져 보였다.

 

두 눈알도 튀어나와 흐늘흐늘해져 있었다.

 

 

 

“안되겠어. 그냥 이대로 뒀다가 혹시 누가 보기라도 하면 대번에 독살이 아닌가

의심을 하겠다니까”

“그럼 어쩌죠?”

금련은 왕파의 얼굴을 걱정스러운 듯이 빤히 바라본다.

“날이 새기전에 염을 해버리면 되는 거지 뭐.

집에 혹시 삼베있어? 염은 삼베를 가지고 하거든”

“없는데요”

“그럼 도리가 없지. 우선 우리 집에 있는 걸 갖다 쓰지 뭐”

왕파는 자기 집으로 삼베를 가지러 가려고 방을 나간다.

“할머니, 나도 같이 갈거예요. 무서워서 여기 혼자 못 있겠어요”

그러면서 금련도 뒤를 따라 나선다.

두 사람이 바깥으로 사라지자,

 옆방에서 영아가 얼른 뛰어나와 잽싸게 이층으로 올라가서 잠자리 속으로 푹 파묻힌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몸을 온통 새우처럼 오그라 붙이고서 그제야 영아는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새엄마가 아버지를 죽이다니,

무섭고 치가 떨리면서도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복받쳐오른 것이다.

그러나 영리하고 깜찍한 영아는 이불속에서 였지만 울음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며 눈물을 주르륵 주르륵 흘렸다.

 삼베를 가지러 간 왕파와 새엄마가 돌아와 혹시 그들에게 들키는 날이면

저도 어쩌면 가만히 놓아 두질않고 죽여 없애버릴지 모른다 싶었던 것이다.

새엄마가 아버지를 독살했고, 왕파와 둘이서 염을 했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그래서 영아는 소리죽여 울면서도 앞으로 삼촌 무송이 돌아올 때까지 절대로

그런 비밀을 모르는 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왕파는 혼자 늙어가는 몸이기 때문에 자기가 죽은 뒤에 입을 수의(壽依)와

염습(殮襲)을 할 삼베를 미리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 삼베 한 필을 가지고 돌아온 왕파는 금련에게 수의는 없을테니

새옷을 아무거나 한 벌 가져오게 해서 먼저 무대의 피묻은 옷을 벗겨내고

그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

그리고 시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삼베 한 필을 거의 다 써서 온통 둘둘 몇 겹이나 싼 다음

삼베를 잘라서 만든 끈으로 군데군데 질끈 묶었다.

왕파는 염습을 어떻게 한다는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살부(殺夫) 27회 

 

 

 

 이튿날 아침, 왕파로부터 무사히 일을 끝마쳤다는 보고를 들은 서문경은 장례까지

 

왕파가 맡아서 잘 치르도록 일렀다.

 

관과의 허락을 맡는 일은 자기가 알아서 조치를 해놓을테니 아무 걱정 말고,

 

혹시 검시관(檢屍官)이 현장에 나오거든 간밤에 아파서 급사(急死)를 했다고만 말하라고 시켰다.

 

시체는 화장을 해버리는 게 뒤탈이 없지 않겠느냐고, 매장을 하지 말고 화장을 하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서문경은 우선 장례비용으로 쓰라면서 왕파에게 은화 열 냥을 건네주었다.

 

왕파가 상갓집에 돌아오니 안에서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금련의 울음 소리였다.

 

울음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눈물을 흘리면서 소리를 내어 우는 것을 곡(哭)이라고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소리는 내지 않는 울음을 읍(泣)이라고 하며,

눈물은 흘리지 않으면서 소리만 내지르는 울음을 호(號)라고 한다.

금련의 울음은 그 세 번째 것이었다.

눈물은커녕 콧물도 흘리지 않으면서 슬픈 듯이 소리만 질러대는 그런 가짜 울음이었다.

“아이고 저년, 여우라도 보통 여우가 아닐세 그려”

어찌나 청승스럽게 슬피도 우는지 왕파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혀를 내둘렀다.

빈소(殯所)에는 금련과 영아 둘이 앉아 있었다.

금련은 머리를 풀고서 울고 있었으나,

어찌 된 영문인지 영아는 울지를 않고 계모의 우는 모습을 힐끗 힐끗 옆 눈질로 바라보고 있었다.

왕파는 좀 이상하다 싶어서 물어본다.

“영아야, 너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슬프지도 않니? 왜 울질 않지?”

그러자 영아는 아무 대답도 없이 입을 유난히 꼭 다문 채 힐끗 매섭게 왕파를 흘겨본다.

“아니, 얘가...”

그 눈길이 어찌나 싸늘한지 왕파는 가슴이 뜨끔했다.

혹시 이 계집애가 무슨 낌새를 챈 게 아닌가 싶었다.

“영아, 너 이 할머니한테 무슨 감정이 있니? 왜 그런 눈으로 흘겨보지?”

그러자 금련이 울음을 뚝 그치고 옆에 앉은 영아를 힐끗 바라 본다.

영아는 아차 싶은 듯 얼른 고개를 깊이 떨어뜨리고서 어깨를 바르르 떨며 아응-아응-

소리를 내어 울기 시작한다.

왕파와 금련은 절로 서로 눈길이 마주친다.

왕파가 눈짓으로 금련에게 잠시 이층으로 올라가자고 신호를 하고서 빈소에서 나간다.

금련이 뒤따른다.

이층으로 올라가자 왕파는 금련에게 바싹 다가서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한다.

“영아가 혹시 눈치를 챈 게 아닐까? 나를 흘겨 보는 눈이 아무래도...”

“눈치를 채긴요. 간밤에 이층에서 잤는데요 뭐.

아마 저의 아버지가 할머니네 집에서 누구한테 맞았다는 것은 알고 있을 거예요.

그래서 할머니한테...”

“아, 그런가”

왕파는 고개를 끄덕인다.


 

살부(殺夫) 28회 

 

 

 

 영아에 대해서, 마음을 놓은 왕파는 금련에게 서문경의 분부를 꺼냈다.

“서문 어른이 말이야 관가의 일은 자기가 알아서 조치를 할테니 걱정 말고,

 

혹시 검시관이 찾아오거든 어젯밤에 급사를 했다고 말하라는거야”

“그러죠 뭐”

“그러나 내 생각에는 급사를 했다고 하지 말고,

평소에 늘 가슴이 아파서 약을 먹어 왔는데 어젯밤에 별안간에 악화되어 죽었다고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애”

“그게 좋겠어요”

“그리고 말이지 시체를 매장하지 말고, 화장을 해버리는거야. 그래야 뒤탈이 없다는거지”

“그렇군요. 화장을 해서 재를 강물에 뿌려버리면 깨끗이 끝나는거죠”

금련은 무슨 묘책(妙策)이라도 생겼다는 듯이 얼굴에 살짝 화색이 떠오른다.

그러고 있는데 이웃 사람들이 문상을 오는 듯 바깥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금련과 왕파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금련은 빈소로 들어가 앉기가 바쁘게 다시 아이고-아이고-냅다

청승맞은 목청을 능청스럽게 뽑아 올리고,

왕파는 주방으로 가서 문상객들에게 내놓을 음식을 이것저것 준비하기 시작한다.

이웃 남정네 두 사람이 문상을 왔다.

평소에 무대와 가까이 지내던 두 남정네는 그의 집에서 아침부터 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

무슨 일인가 하고 미심쩍어 하다가 아마도 초상이 난 것 같아 찾아온 것이다.

빈소에 두 남정네가 들어서자 금련의 울음소리는 한결 구슬프게 높아진다.

영아도 그제야 정말 슬픔이 복받쳐 오르는 듯 눈물을 줄줄 흘려가며 목 놓아 운다.

영전(靈前)에 배례를 하고서 두 남정네는 금련에게 위로의 말을 한마디씩 한다.

그리고 그중 한 사람이 불쑥 묻는다.

“무대가 왜 갑자기 죽었지요? 어디가 아팠나요?”

“예, 평소에 가슴이 아파서 약을 먹어 왔는데, 어젯밤에 별안간 악화되어 돌아가셨어요”

“그래요? 평소에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못들었는데.....”

남정네는 미심쩍은 듯 고개를 기울인다.

금련은 속으로 꽤나 당황하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말한다.

“그이는 미련해서 아파도 좀처럼 남한테 아프다는 말을 안한다구요”

“그런가요?”

미망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듯이 두 남정네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영아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곧 입에서 무슨 말이 튀어나올 것같이 보여, 얼른 금련이 꾸짖듯이 내뱉는다.

“넌 뭘 하고 있는거야? 얼른 주방에 가서 손님들 대접할 음식을 날라와야지”

 

 

살부(殺夫) 29회 

 

 

 

 서문경은 하인을 관가로 보내어 무대의 사망 신고를 하도록 하고,

 

검시관 하구(何九)를 잠시 자기 집에 왔다가도록 했다.

잠시 후 하구가 찾아왔다. 서문경은 그를 데리고 단골 요릿집으로 갔다.

 

 

“아직 점심 때가 멀었는데요”

요릿집을 들어서며 하구가 말한다.

“간단히 한잔만 하자구”

하구는 마흔이 넘은 노회(老獪)한 관원이었다.

그러나 이십대 중반의 서문경이 예사로 말을 놓는다.

안쪽에 있는 호젓한 작은 방으로 서문경은 하구를 데리고 들어갔다.

관원을 은밀히 구워 삶을때는 으레 그 방이었다.

서문경은 몇가지 고급요리와 특급주를 시켰다.

술과 안주가 오자, 서문경은 술병을 들어 먼저 하구의 잔에 따라준다.

하구는 황송한 듯 두손으로 공손히 받는다.

아침부터 술을 마시니 취기가 빠르다.

하구는 오래간만에 특급주에 고급 요리를 대하니 기분이 매우 흡족하면서도

서문경으로부터 술 대접을 받는게 처음이어서 무슨 일로 자기에게 아침부터

이렇게 극진히 대접을 하는지 그 까닭이 궁금했다.

몇 잔 마신 뒤, 주기가 거나해지자 서문경은 말없이 안호주머니에서

금화(金貨) 한 개를 꺼내어 하구 앞에 놓았다.

관원을 구워삶을때는 으레 금화였다.

반짝거리는 금화를 보자 하구는 눈이 약간 휘둥그래진다.

“검시관, 어서 받아 넣어두라구”

서문경은 일부러 「검시관」이라는 호칭을 쓴다.

이미 그 말에 검시에 관한 뇌물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셈이다.

“아니, 금화를 주시다니.....

제가 서문대관인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해드린 일이 없는데 어찌된 일이지요?”

“앞으로 해주면 되는거지 뭐”

“무슨 일인데요? 말씀해 보세요.

제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서문대관인의 부탁인데 해드리고 말고요”

“되고는 남는 일이지. 그러니까 부탁하는거 아닌가”

“어서 말씀하세요. 무슨 일입니까?”

“무대라는 난쟁이 행상 알지?”

“예”

“아, 그 사람이 어젯밤에 죽었다는거야”

“아, 그래요?”

“어디가 아파서 급사한 모양인데, 검시할 때 잘 봐주라는거지”

“예, 알겠습니다”

그런 일 같으면 식은죽 먹기라는 듯이 하구는 고개까지 한번 꾸뻑 숙여 감사의 표시를 하고는

앞에 놓여 반짝거리고 있는 금화를 슬그머니 집어서 안호주머니에 챙겨 넣어버린다.

“자, 한잔 쭉 들게”

“예, 예”

두 사람은 은밀한 거래가 성립되어 축배라도 들듯 잔을 동시에 입으로 가져가 쭉 들이켰다

 

 

살부(殺夫) 30회 

 

 

 

 요리집에서 나와 서문경과 작별을 한 검시관 하구는 불그레 주기가 오른 얼굴로

 

건들건들 상갓집을 향해 갔다.

하구는 걸어가면서 고개를 이리 기울이고 저리 기울였다.

 

보잘 것 없는 난쟁이 행상인 무대가 죽었는데,

 

왜 서문경이 나서서 뇌물을 주면서까지 검시때 잘 봐달라고 그러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무대가 간밤에 어디가 아퍼서 급사를 했다는데,

 

아무래도 병사는 아닌 것 같았다.

 

 병사라면 굳이 뇌물까지 쓸 까닭이 없질 않는가.

 

검시를 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니 말이다.

무슨 변고사(變故死)에 틀림없는데,

그렇다면 혹시 서문경이 어젯밤에 취해서 과실치사로도 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쩌면 고의의 살해일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그의 사람 됨됨이로 보아서 능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기에 금화까지 주면서 잘 봐달라고 부탁을 한 게 아니겠는가 말이다.

“음 고이얀 놈”

하구는 혼자서 제법 위엄있게 내뱉으며 그르륵 술트림을 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확실한 것은 알 수가 없지만,

좌우간 흥미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상갓집에 당도한 하구는

불그레한 얼굴로 냅다 큰 소리를 질렀다.

“여기가 죽은 무대네 집인가-”

거짓 울음을 울고있던 금련은 울음을 뚝 그치고,

누군데 저렇게 큰소리를 지르는가 싶어서 바깥을 내다본다.

“나 관가에서 나온 검시관이오. 이집이 죽은 무대네 집 맞소?”

“예, 그렇습니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금련은 얼른 뛰어나가 굽실거리며 검시관을 맞이한다.

하구는 머리를 풀어 늘어뜨린 금련의 모습을 보자 자기도 모르게 살짝 입이 벌어진다.

풀어헤친 치렁치렁한 칠흑 같은 머리 속에서 내다보이는 하얀 살결의 얼굴이

섬뜩하도록 고왔던 것이다.

얼굴뿐 아니라 몸매에서도 야릇한 매력이 훅 풍겼다.

그제야 하구는 속으로 하하, 그렇구나, 싶었다.

이 여자와 서문경 사이에 틀림없이 은밀한 관계가 있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예감이 머리에 와 닿았다.

과실치사든 고의의 살인이든 말이다.

그런데 보잘 것 없는 난쟁이 행상인 무대에게 이런 곱고 매력 있는 젊은 아내가 있었다니,

도무지 잘 믿어지지가 않았다.

“무대가 당신 남편이오?”

“예”

금련은 대답을 하고 살짝 고개를 떨군다.

“남편이 왜 죽었나요?”

“어젯밤에 갑자기 병이 악화되어 죽었지요”

“무슨 병인데요”

“평소에 늘 가슴이 아프다고 약을 먹어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