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4) 살부(殺夫) <16~20회>

오늘의 쉼터 2014. 6. 23. 18:00

 

금병매 (14)

 

 

살부(殺夫) 16회 

 

 

 

 남편을 죽여 없애 버리다니,

 

금련은 생각만 해도 두렵고 아찔한 일이었다.

 

 아무리 난쟁이고 마음에 안 차는 남편이지만,

 

열여덟에 혼례식까지 올리고서 시집을 와  그동안 여러 해를 한 잠자리에서

 

몸을 섞으며 살아온 터인데, 죽여 없애다니 될 말이 아니었다.

비록 무송이 돌아와 복수를 당할까 두렵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미리 무대를 죽여 없애는 그런 끔찍한 방법을 쓰려고 들다니...

 

너무나 뜻밖의 일이어서 금련은 겁에 질려 입이 얼어붙은 듯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왕파 스스로의 제의인줄만 알고, 금련은 이 늙은이가 정말 무서운 여자로구나

 

싶으며 속으로 진저리를 쳤다.

 

 

“대답을 해보라구. 당신 생각은 어떤가 알고 싶어”

서문경이 재차 묻자 금련은 가만히 얼굴을 들어 두려운 눈길로

서문경과 왕파를 바라보고는 들릴 듯 말 듯 말한다.

“죽일 수는 없어요”

“그래? 음- 그럼 다른 어떤 좋은 방법이 있는지 어디 말해봐”

서문경의 목소리가 약간 퉁명스러워진 듯해서 금련은 속으로

이양반도 죽이기를 원하는 모양이구나 싶으며 조심스레 큰숨을 들이쉬었다가

떨리듯이 내뱉는다.

그리고 살짝 다시 시선을 내리깔며 아무 말이 없다.

“왜 대답이 없지?”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고개를 숙인채 금련은 대답한다.

그러자 서문경은 한결 목소리에 힘을 넣어 위압적인 어조로 두 사람 다 똑똑히

들으라는 듯이 말한다.

“내 말을 잘들 들어보라구.

자칫 잘못하면 우리 세 사람이 다 큰 망신을 당하게 된다구.

알겠어? 그날 무대가 옆구리에 밧줄을 차고 있었다구.

두 사람 다 봤지? 그 밧줄을 왜 차고 있었는지 알어?

우리를 묶어서 관가에 끌고 가 고발하려고 했던 거란 말이야.

무대 제깐놈이 어림이나 있나. 가소롭지.

그러나 만약 그날 무송이 들이닥쳤다고 생각해봐.

 꼼짝없이 묶이고 말았을거 아냐.

호랑이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은 놈인데, 당할 재주가 있겠느냐 말이야.

 벌거벗은 채 묶여서 현청으로 끌려갔다면 그보다 더한 망신이 어디 있겠어. 안 그래?”

금련과 왕파는 말없이 고개를 가만가만 끄덕인다.

“앞으로 무송이 돌아와서 그런 망신으로 끝난다면 또 다행이지만,

 재수 없으면 어떤 변을 당할지 모른다구. 그놈의 주먹에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그거야.

알겠어? 그러니까 우리가 먼저 손을 쓰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구”

서문경은 숨을 크게 한 번 쉬고서 아랫배에 힘을 뿌듯이 넣으며 말을 잇는다.

“왕파가 참 좋은 제안을 했어. 무대를 감쪽같이 죽여 없애버리는 거야.

그러면 만사가 해결이라구”

 

 

 

살부(殺夫) 17회 

 

 

 

 ‘만사가 해결’이라는 서문경의 말에 금련은 다시 고개를 들어 그의 표정을 살피듯 바라본다.

 

무대를 죽여 없앰으로써 만사가 해결된다는 말에는 무송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뜻 외에

 

다른 어떤 의미도 내포되어 있는듯 했던 것이다.

서문경은 말을 이어 나간다.

 

“감쪽같이 죽여 장사를 지낸 다음 아파서 죽었다면 그만 아니냐 말이야.

무송이 돌아와도 형이 병사를 했다는데 뭘 어쩌겠어. 안 그래?”

왕파는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그러나 금련은 여전히 마음의 결정을 못 내리고 속으로 망설이고 있는 듯

표정이 굳어져 보인다.

“그리고 말이지 무대가 없어지고 나면 그때는 당신이 혼잣몸이 되잖아.

과부가 아니냐 말이야”

그 말에 금련의 표정이 눈에 띄게 달라진다.

“그러면 내가 당신을... 그 다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겠지?”

그러면서 서문경은 은근하면서도 야릇한 시선으로 금련을 바라본다.

금련이 그 말의 의미를 모를 턱이 없다. 그녀의 표정에 현저한 변화가 인다.

눈매에 절로 기쁨의 빛이 살짝 번지기까지 한다.

이제 됐다는 듯이 서문경은 한시름 놓으며 이번에는 왕파를 보고 말한다.

“일이 무사히 잘 끝나면 할멈에게는 내가 또 두둑하게... 알겠지?”

“아이 고마워라”

늙어가면서도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왕파의 함죽한 입이 헤벌레 벌어진다.

“목이 마르군. 자 할멈. 술을 한잔 마실까”

서문경은 안호주머니에서 은화 한 개를 꺼내어 왕파에게 건넨다.

반드시 술 생각이 나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지껄이느라 약간 목이 칼칼해지기도 했지만,

속으로 다음 계산을 하고서의 수작인 것이다.

술을 몇 잔 마시고 나자 서문경은 왕파에게 싱글 웃으면서 말을 던진다.

“인제 할멈은 특급주를 사러 가야겠어”

“예, 헤헤헤”

왕파는 얼른 방을 나간다.

그 말은 자리를 비켜 달라는 그들만의 은어(隱語)가 된 셈이다.

왕파가 사라지자, 서문경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금련도 온 얼굴에 절로 요염한 기색이 화사하게 번지며 따라 일어선다.

서문경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그녀를 번쩍 안아다가 침상에 눕힐 생각을 않고,

방 한가운데로 가서 우뚝 선 채 자기 옷부터 훌렁훌렁 벗어 던진다.

벌건 나체가 된 다음,

“자, 당신도 빨리!” 명령조다.

좀 수줍은 표정을 지으면서 금련은 오늘은 색다르구나 싶으며 기꺼이 벗기 시작한다.

 

 

 

살부(殺夫) 18회 

 

 

 

 서문경이 여느 때와 달리 정사의 장소를 침상 위가 아닌 방바닥을 택한 까닭은 아마도

 

금련이 경험하지 못했을 것 같은 몇 가지 새로운 솜씨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색한인 서문경은 여자의 몸뚱어리를 다루는 재주에 있어서 이십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이미 도통(道通)의 경지에 가까이 가 있었다.

 

온갖 기법을 다 알고 있을 뿐 아니라, 능숙하게 그 기법들을 구사할 수 있었다.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그런 새로운 솜씨를 보여주기로 마음먹은 것은 금련을

며칠만에 만난 간절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속으로 은근히 계산을 하고서의 수작이었다.

자기의 남성다움을 한껏 과시한 다음,

그녀의 입에서 남편을 죽이겠다는 확실한 대답이 절로 흘러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금련은 서문경의 새로운 솜씨에 경탄과 환희를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장대인 영감에게서도, 남편인 무대에게서도,

그리고 며칠전까지의 서문경과의 정사에서도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그런 새로운 기법에 절로 교성(嬌聲)이 흘러나왔다.

눈을 사르르 감기도 했고, 하얀 앞니를 지그시 물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서문경이 시키는대로 순순히 따랐다.

마치 희고 미끈한 한 마리의 암컷과 연갈색 근육질(筋肉質)의 한 마리 수컷이

뒤엉키어 희희낙락 성희(性戱)를 즐기는 것 같았다.

꽤 넓은 방바닥이 좁을 지경이었다.

색다른 애무가 끝나고, 마침내 수컷이 암컷을 뜨겁게 공격하기 시작했다.

공격이 절정에 가까이 가 암컷의 눈동자가 몽롱하게 초점을 잃어갈 때

수컷은 가만히 공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여보”

“응?”

“나 어때?”

“당신 정말 너무너무 멋있어. 나 인제 당신 없으면 못 산다구. 정말이야”

“나도 마찬가지야. 당신이 너무 좋다구. 당신을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정말이지?”

금련의 몽롱하던 두 눈이 반짝 맑아지며 기쁜 빛이 떠오른다.

“정말이고 말고. 그 대신 당신이 과부가 돼야 된다구. 알겠어?”

“응”

“이번이 좋은 기회야. 이 기회를 놓치면 안돼.

만약 이번에 과부가 못되면 당신과 나는 이것으로 끝이야.

다시는 안 만날거야. 단단히 결심을 하라구”

“알았어. 내 손으로 무대를 없애버리고 말거야. 두고 보라구”


“암, 그래야지 그래야 만사가 해결이라니까”

바로 그 말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도록 하기 위해 지금까지 숨을 헐떡거리며

온갖 솜씨를 다 부렸다는 듯이 서문경은 빙그레 흡족한 웃음을 떠올린다.

그리고 마무리를 하듯 서서히 다시 공격을 개시한다.

 

 

살부(殺夫) 19회 

 

 

 

 금련의 입에서 무대를 자기 손으로 죽여 없애버리겠다는 말이 나왔으니,

 

일은 이미 절반은 끝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서문경은 금련과의 정사를 마치자, 왕파를 도로 방으로 불러들였다.

탁자 위에 남아있는 술을 쭉 한 잔 들이켜고 나서 서문경은 입을 연다.

 

“무대를 어떤 식으로 죽여 없애는 것이 좋을까?”

이제 구체적인 방법의 의논인 셈이다.

서문경은 벌써 혼자서 속으로 그 방법까지 다 결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활한 그는 그 방법을 자기 입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왕파와 금련의 입에서 나오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자기의 명령에 의해서 살인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세 사람의 공모에 의해서 자행된 것으로 하기 위해서였다.

만약에 탄로가 났을 경우에도 그게 좋을 것 같고,

또 조금은 자기의 심리적 가책도 덜할 것 같았던 것이다.

왕파와 금련은 선뜻 먼저 입을 열려고 하질 않고, 눈치만 본다.

서문경은 먼저 왕파에게 묻는다.

“할멈은 어떤 방법이 좋을 것 같은가?”

“글쎄요...좀 생각해 봐야지요.

하루쯤 궁리해 보고 내일 다시 모여서 의논하는 것이 어떨는지....”

그러자 서문경이 발칵 화를 내고 내뱉는다.

“내일까지 궁리할 게 뭐 있어. 그렇게 까다로운 일인가?”

그 말에 금련은 결심을 하듯 어금니를 한 번 꽉 물고 나서 불쑥 입을 연다.

“독약을 먹이는 것이 좋을 것 같애요”

서문경은 무뚝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속으로는 바로 그거라구,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도 말이다.

자기의 생각도 바로 그거였던 것이다.

금련의 말에 왕파도

“그 방법이 제일 쉽겠지요” 동의를 표한다.

그제야 서문경도 의사를 밝힌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구. 독살을 하는 게 가장 손쉬운 방법이지.

그럼 세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으니 그렇게 하도록 하자구.

독약은 우리 집이 약방이니까 내가 마련해 주지. 할멈이 이따가 가지러 오라구.

밤에 오는게 좋을거야.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무대에게 감쪽같이 먹여야 된다구. 알겠지?”

“예, 그건 염려 말아요”

금련은 이제 눈을 똑바로 뜨고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왕파가 약간 걱정이 되는 듯 서문경에게 묻는다.

“장사를 지내려면 관가의 허락을 받아야 되는데,

그 때 시체를 검사하러 나오잖아요. 혹시 독살인줄 알면.....”

“그런 걱정은 말라구. 내가 있잖아. 내가. 이것이면 만사형통이라는 거 몰라?”

서문경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다.

 

 

살부(殺夫) 20회

 

 

그날 밤 왕파는 서문경의 약방을 찾아가서 그로부터 한 봉지의 독약을 받았다.

 

비상(砒霜)이었다.

그것을 건네준 서문경은 아무도 모르게 왕파의 귀에다 대고 그 비상을 사용해서 무대를

 

독살하는 방법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금련이 낮에 무대에게 독약을 먹여 죽이는 일은 자기가 책임질 테니 염려 말라고는 했으나,

 

비상이 어떤 성질의 독약인 줄도 모를 것이고, 한번도 그런 극약을 사용해본 적이 없을 터이니

 

혹시 실수라도 저지르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그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비상을 받아가지고 집에 돌아온 왕파는 곧바로 금련을 찾아가

그날 밤 안으로 무대를 독살하도록 할까 생각했으나,

일을 너무 서두르는 것 같아 다음날로 미루기로 했다.

밤중에 찾아가서 금련을 불러냈다가 그날 밤에 무대가 죽었다면

혹시 남들의 의심을 사지나 않을까 두렵기도 했던 것이다.

왕파는 육십이 넘도록 온갖 풍상을 다 겪으며 살아왔지만

남을 죽이는 일에 한몫 끼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슬그머니 양심의 가책도 되고, 은근히 겁이 나기도 했다.

이튿날 아침 왕파가 금련을 부르러 갈까 하고 있는데, 금련이 제발로 찾아왔다.

금련은 이제 단단히 결심을 해서 그런지 오히려 그 일에 발 벗고 나선 듯한 그런 태도였다.

“할머니, 어젯밤에 독약을 받아 왔어요?”

“응. 받아 왔다구. 비상이야. 색시, 비상이 어떤 약인지 알아?”

“먹으면 죽는 독약이죠 뭐”

“그야 물론이지. 약의 성질을 아느냐 그 말이야”

“비상이란 말만 들었지. 본 일도 없는데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하는 소리야. 실은 나도 비상이 어떤 약인지 본 일도 없고,

그 성질도 모른다고. 그런데 서문 어른이 자세히 가르쳐 주잖아.

독살을 해도 감쪽같이 하려면 약의 성질을 잘 알아야 될 거 아니겠어.

그래야 실수가 없지. 안그래?”

“맞아요”

왕파는 금련과 단둘이 안방에서 은밀히 얘기를 나누고 있으면서도

혹시나 싶어서 살짝 방문을 열어 바깥을 한 번 살펴보고는 다시 말을 잇는다.

“비상이 입으로 들어가면 잠시 후에 배창자가 아파서 냅다 고함을 지르게 된다는 거야.

그리고 곧 눈, 코, 귀, 입 일곱 개의 구멍에서 피가 쏟아진다지 뭐야.

그러니까 말이야, 미리 물과 여러 개의 수건을 준비해 놓고,

무대가 고함을 지르면 그 소리가 절대로 바깥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이불을 덮어씌우고서

꼼짝을 못하게 누르고 있으라는 거야.

숨이 끊어진 다음에 일곱 개의 구멍에서 쏟아진 피를 닦아내는 거지.

그러고 나서 시체의 염을 해버리면 일단 일은 끝나는 거 아니겠어”

“예, 잘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