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5)
살부(殺夫) 21회
“무대에게 감쪽같이 비상을 먹이는 일은 자신 있어?”
“그런 염려는 놓으시라니까요.
나도 목숨을 걸고 덤비는 일이란 말이에요.
팔자를 고치느냐, 아니면 볼일 다 보느냐 그거잖아요.
간밤에 잠을 설치면서까지 궁리를 했다구요”
“아, 그래 어떤 방법이지”
“뭐 그런 것까지 설명을 해야 되나요.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잖아요.
인제 그 얘기 그만 해요”
“그래그래 색시 말이 옳아”
“어서 비상이나 주세요”
“응 잠깐...”
왕파는 장롱을 열어 맨 밑바닥에서 조그마한 약봉지 하나를 꺼내어 금련에게 건넨다.
간밤에 서문경으로부터 받아가지고 와서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깊숙이 간직해 두었던 것이다.
그것을 받은 금련은 펼쳐보려다가 그만두고 얼른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어 버린다.
“할머니, 맞아서 골병이 든 데에 무슨 약이 좋은지 아세요?”
“왜 묻는지 알겠다구. 그 약에 비상을 타서 먹인다 그거지?”
“맞아요 무슨 약이 좋죠?”
“맞아서 골병든 데는 똥물이 제일이라잖아”
“똥물요”
금련의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똥물에 비상을 타서 먹이면 약 냄새도 안 날테니까 제일 좋겠지만,
무대가 그걸 먹을라 그럴까?”
“가뜩이나 복수를 한다고 이를 가는 터인데,
똥물을 갖다주면 좋아하겠어요? 나한테 뒤집어씌워 버릴지도 모른다구요”
왕파는 잠시 생각을 해보는 듯하더니 두 눈을 반질거리며 불쑥 입을 연다.
“뭐 반드시 골병이 낫는 약이라야 되겠어?
무대를 정말 낫게 할 것도 아닌데..... 안 그래?
아무거나 달여서 비상을 타가지고 골병에 좋은 약이라고 먹이면 되는 거지.
목구멍으로 넘어가게만 하면 끝나는 거잖아”
역시 늙은 너구리같은 할망구가 자기보다 머리가 잘 돌아간다 싶어서
금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만 웃음까지 흘린다.
금련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방을 나서자 왕파가 문뜩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붙든다.
“저... 집에 생강 있어?”
“없는데요...왜요?”
“지금 생각이 났는데, 맞아서 멍든 데는 똥물이 제일이지만,
생강을 즙을 내서 고량주를 타가지고 발라도 좋다는 거야.
우리 집에 생강이 많으니까 가지고 가서 먼저 멍든 데 발라 주라구.
그래서 마음을 놓게 한 다음 거기다 비상을 타가지고 먹이면 될 거 아냐.
생강즙과 고량주는 맛이 독하니까 비상을 타도 모르고 잘 마실 거야. 안 그래?”
“그거 좋겠는데요”
왕파는 차 끊일 때 쓰는 생강을 한 됫박 가량이나 보자기에 싸서 준다.
살부(殺夫) 22회
생강 보자기를 들고 뒷문 쪽으로 나가려는 금련에게 왕파는 다시 당부를 하듯 말한다.
“색시, 아무쪼록 조심해서 잘하라구. 비상을 먹이는 일은 한밤중에 하는 게 좋을 거야.
모두 잠든 뒤에 말이야”
“예, 알겠어요. 그러면 말이에요, 오늘밤에 할머니도 주무시지 말고 기다리세요.
일이 끝나면 데리러 올께요.
한밤중에 나 혼자서는 무서워서 시체를 어떻게 할 수가 없을 것 같애요”
“그래, 좋아. 안 자고 기다릴 테니까,
무대의 숨이 끊어지거든 와서 뒷문을 똑똑똑 세 번씩 두 차례 두들기라구. 알겠지?”
“예, 그럴께요”
종종걸음으로 집에 돌아간 금련은 영아를 불러서 우선 고량주를 큰 병으로
한 병 사오도록 심부름을 시켰다.
그리고 자기는 생강 보자기를 든 채 무대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무대는 누운 채 퀭한 두 눈으로 금련을 멀뚱히 바라보다가 보기도 싫다는 듯이
스르르 눈을 감아 버린다.
“여보, 어제는 정말 내가 잘못했다구요.
이렇게 아파서 누워있는 당신을 두고 내가 보따리를 싸가지고 어딜 가겠어요.
당신이 나를 용서해 주지 않기 때문에 화가 나서 그랬어요.
화가 나면 무슨 말을 못해요. 안 그래요?”
무대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아무 말이 없다.
“여보, 눈을 떠봐요. 이게 뭔지 아세요?”
그러자, 무대는 힘없이 두 눈을 떠본다.
그 눈앞에 금련은 생강 보자기를 들어 보이며 한결 상냥한 어조로 지껄인다.
“생강이란 말이에요.
멍이 든 데는 생강을 즙을 내가지고 고량주를 타서 바르면 좋다는 거예요.
그리고 밤에 잘 때 그것을 한 그릇 마시고 자면 이튿날 아침 한결 몸이 부드러워 지고
괜찮다지 뭐예요.
마시고는 이불을 두껍게 뒤집어쓰고서 땀을 푹 내야 훨씬 효과가 있다 그래요.
내가 지금 이웃에 다니면서 여러 사람한테 물어보고 왔다니까요.
당신이 이렇게 된 게 다 내 잘못이어서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내 심정을 이해해서 날 용서해 달라구요.
영아가 고량주를 사러 갔으니까,
곧 생강즙을 내가지고 약을 만들어 멍든 데 발라 드릴께요. 예? 여보”
무대는 아무 말을 하지 않았으나, 그 표정이 한결 누그러지고 있었다.
속으로 이년이 병 주고 약 주는구나 싶었으나, 치료를 해 준다니 싫지는 않은 것이다.
금련은 이제 됐다는 듯이,
“잠깐 기다려요. 얼른 약을 만들어가지고 올께요”
상그레 웃어 보이기까지 하고는 방을 나간다.
주방으로 가서 먼저 생강을 대강대강 물에 씻은 다음 금련은
그것을 약수건으로 짜서 즙을 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영아가 고량주 한 병을 사들고 돌아왔다.
살부(殺夫) 23회
생강즙에다가 고량주를 타가지고 금련은 그것을 들고 다시 무대가 누워있는 방으로 갔다.
영아도 호기심이 가득한 눈을 반질거리며 뒤를 따랐다.
“자, 약을 만들어 왔어요. 옷을 벗어야지요”
금련이 다가서자,
무대는 일어나 앉으려는 듯 몸을 움직인다.
그러나 상체를 조금 일으켰다가는 허리가 몹시 아픈듯,
“야야야-”
온통 이맛살을 찌푸리며 도로 털썩 누워 버린다.
도리 없이 금련은 누워있는 채로 웃옷부터 벗겨댄다.
영아가 함께 거든다.
온몸에 구렁이가 감긴 듯한 시퍼런 상처에다가 약을 발라 나가자,
“으이크 으이크-”
무대는 화끈화끈하고 시원하면서도 통증도 함께 오는 듯한 그런 소리를 내뱉는다.
다 바르고 나자,
무대는 한참동안 온몸이 근질근질한 사람처럼 자꾸 꿈적거리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금련은 오후에 한 번 더 그 약을 발라 주었다.
귀찮아서 그만둘까 하다가 밤의 일이 무사히 잘되게 하기 위해서 한 번 더 수고를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남편에 대한 그녀의 마지막 선심인 셈이었다.
밤이 다가왔다.
금련은 저녁을 먹고 나자 영아에게 말했다.
“영아야, 오늘밤은 니가 이층에 올라가서 자도록 해라.
엄마가 니 방에서 잘테니까”
“왜요, 엄마”
“밤에도 자다가 일어나서 아버지 상처에다가 약을 발라 드려야 되거든”
“예, 알았어요”
영아는 새엄마가 시키는 대로 곧 이층으로 올라갔다.
영아가 혼자서 자는 방은 무대가 누워있는 방 옆에 있었다.
그래서 금련은 혹시 독살하는 장면이 영아의 눈에 띌까 두려워서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이층으로 올라가 자도록 했던 것이다.
무대에게 서문경과의 간통 장면이 발각된 그날 이후로 금련은 자기가 혼자서 이층에서 잤는데,
오늘밤은 영아와 침실을 바꾼 셈이었다.
“여보, 아직도 잠들면 안 된다구요. 약을 마시고 자야지요”
“그럼 어서 약을 달라구”
무대가 퉁명스럽게 말한다.
“그런데 말이에요.
그 약은 삼경(三更)에 먹어야 아주 효과가 있다는 거예요.
같은 값에 좋은 게 좋잖아요.
그러니까 삼경까지 잠이 와도 참고 자지 말라구요.
삼경이 되면 현청에서 북을 치잖아요.
북소리가 날 때까지 기다려요.
나도 당신을 위해서 이렇게 졸음이 와도 기다리고 있잖아요“
“응, 알았어”
무대는 퀭한 두 눈을 꿈벅거리며 졸음을 참으려고 애를 쓴다.
살부(殺夫) 24회
둥둥둥- 둥둥둥
삼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려온다.
“삼경이 됐군요. 잠깐 기다려요. 약을 가지고 올께요”
금련은 얼른 일어나 방을 나가 주방으로 갔다.
생강즙에 고량주를 탄 그 약그릇에다가 찬장 깊숙이 숨겨둔 비상 봉지를 꺼내어 주루룩 붓는다.
손이 가늘게 떨리면서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금니를 악물며 아랫배에 지그시 힘을 준다.
금련은 독약 그릇을 들고 주방을 나와 바로 무대가 누워있는 방으로 가려다가 멈추어서서
이층을 가만히 살핀다.
불이 꺼지고, 아무 기척도 들려오질 않는다.
금련은 안심을 하며 시치미를 뚝 떼고 방으로 들어가 무대에게로 다가간다.
무대의 퀭한 두 눈에 반가워하는 기색이 떠오른다.
이제야 약을 마시고 잠을 자게 되어 기분이 매우 좋은 듯한 그런 표정이다.
“나봐, 깜빡 잊었네. 이 약을 마시고는 땀을 푹 내야되니까,
이불을 하나 더 가지고 와야지. 잠깐만 기다려요”
금련은 독약 그릇을 방 한쪽에 있는 탁자위에 갖다 놓고는 옆방으로 가서
이불을 하나 더 가지고 온다.
그것을 펼쳐서 미리 무대 위에 덮어놓는다.
그러니까 침상에 누워있는 무대의 몸 위에 이불이 두겹 덮여있다.
독약 그릇을 한손에 들고 무대에게 다가간 금련은,
“자, 억지로라도 일어나야 약을 마시죠”
조심스레 한 팔로 무대를 안아 일으킨다.
무대는 약을 얼른 마시고 푹 자려고 허리가 아픈 것을 억지로 견디며 상체를 일으킨다.
“입을 벌려요”
무대가 입을 벌린다.
“더 크게요. 악-하고”
무대는 입을 있는대로 힘껏 악-벌린다.
금련은 그만 그릇을 그 입에 딱 갖다대기가 무섭게 독약을 줄줄줄 쏟아붓는다.
꿀컥 꿀컥 꿀컥.....무대는 잘도 마신다.
그릇의 독약이 바닥이 나자,
금련은 얼른 무대를 안았던 팔을 풀고, 뒤로 물러서 버린다.
무대는 그르륵 트림을 하며 절로 비실 뒤로 넘어지듯 누워버린다.
그러나 곧,
“아이구 아야. 아이구 배야. 나 죽네-”
비명을 내지르며 냅다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다.
금련은 이때다 하고 잽싸게 달려들어 이불 두 겹으로 무대를 온통 푹 뒤집어씌운다.
그리고 그 위에 훌떡 올라가 타고 앉아서 마구 사정없이 짓이기듯 눌러댄다.
살부(殺夫) 25회
이불 속에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며 단말마의 몸부림을 쳐대던 무대가
마침내 조용해졌다.
숨이 끊어진 것 같아 금련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 위에서 내려왔다.
이마에 내밴 식은땀을 정신없이 쓱쓱 손등으로 문질러 닦고서 떨리는 손으로
이불자락을 가만히 들추어 본다.
“으악-”
그만 자기도 모르게 금련은 냅다 입에서 비명이 튀어 나오고 만다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그런 참혹한 피투성이가 된 무대의 얼굴이 불쑥 이불 속에서
나타났던 것이다.
코와 입에서는 물론이고 눈에서도 검붉은 피가 지르르 흐르고 있었다.
두 눈알까지 툭 불거져 나와서 마치 ‘너 이년’하고 노려보는 것만 같아 진저리가 쳐졌다.
사람이 시체를 보는 것도 처음인데,
가뜩이나 남도 아닌 남편을 자기 손으로 독약을 먹여 위에서 짓누르기까지 했기 때문에
그 목불인견의 사안(死顔)은 금련에게 견딜 수 없는 충격과 공포를 뒤집어 씌웠다.
이불을 그대로 들추어 놓은 채 금련은 정신없이 방에서 뛰어나가 왕파네 집을 찾아갔다.
그때 이층에서 혼자 잠을 자던 영아가 잠자리에서 발딱 일어났다.
아래층에서 비명소리가 나는 바람에 잠을 깬 영아는 무슨 일인가 하고 가만히 귀를
곤두세우고 있다가 새 엄마가 급히 집을 뛰어나가는 기척을 느끼자 얼른 일어난 것이다.
영아는 쪼르르 계단을 내려가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는 아버지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아이고 엄마-”
영아도 그만 질겁을 한다.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있는 아버지의 얼굴을 본 영아는 너무나 무섭고 겁이 나서
새파랗게 질릴 뿐 얼른 울음도 나오질 않는다.
조그만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얼른 돌아서서 그 자리에 팍 쪼그리고 앉아 버린다.
바깥에서 새엄마가 누군가를 데리고 돌아오는 기척이 나자
영아는 정신이 번쩍 들어 후다닥 일어나서 숨듯이 잽싸게 옆방으로 들어간다.
금련의 뒤를 따라 방으로 들어선 왕파 역시 너무나 참혹하게 죽은
무대의 얼굴 모습을 보고 몸서리를 쳤다.
그러나 나이 값을 한답시고 떨리는 목소리로 금련에게 칭찬을 한다.
“아이고 색시 정말 잘 해냈네. 인제 됐다구”
옆방에서 영아가 귀를 곤두세우고 듣고 있는 줄을 모르고,
“감쪽같이 피를 닦아내야지. 딸애는 자지?“
“예, 이층에서 자고 있어요. 이 옆방이 그 애 방인데,
혹시 자다가 깰까 싶어서 오늘밤은 이층에서 자라고 올려 보냈지 뭐예요”
“잘했다구. 자, 어서 물하고 수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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