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3) 살부(殺夫) <11~15회>

오늘의 쉼터 2014. 6. 23. 17:46

 

금병매 (13)

 

 

살부(殺夫) 11회 

 

 

 

 “누구세요-”

소리를 지르며 영아가 뛰어나간다.

 

 

 

문밖에 왠 군관이 한사람 서있었다.

“이 집이 무대씨 집 맞느냐?”

“예, 무대씨가 우리 아버지예요”

“응, 그럼 무송씨는 삼촌 되겠군”

“맞아요. 무송씨는 우리 삼촌이에요. 순포도두시고요. 지금 동경에 가시고 안계세요”

군관은 똘똘한 계집애로구나 싶은 듯 빙그레 웃는다.

“아버지 지금 집에 계시느냐?”

“예, 아퍼서 누워 계시니까, 좀 들어 오세요”

군관은 영아의 뒤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뉘신지요? 난 몸을 다쳐서 일어나지를 못하니 양해하시고, 좀 앉으세요”

“무대는 자리에 누운 채 손님을 맞이한다.

“자, 군관아저씨 이리 앉으세요”

영아가, 재빨리 의자를 권한다.

의자에 앉은 군관은 먼저 자기소개를 한다.

“저는 이번에 동경에서 이곳 청하현으로 전속명령을 맏고 부임해온

장양립(張良立)이라는 군관입니다”

그리고 용건을 꺼낸다.

“다름이 아니라 무송씨의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무송씨와는 동경에서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제가 이곳 청하현으로 전속되어 오게 되자 형님에게 전해 달라고 편지를 주더군요"

“아, 그래요. 이거 정말 고맙고 반갑습니다”

무대의 초췌한 얼굴에 오래 간만에 웃음이 떠오른다.

“아이 좋아라. 삼촌한테서 편지가 왔다”

영아도 기뻐서 손뼉을 짝짝 치기까지 한다.

군관은 상의 안 호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어 무대에게 건넨다.

무대는 그것을 받으려다가 말고 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나는 까막눈이라서..... 미안하지만 편지를 읽어 봐줄 수 없는지요?”

“예. 그러지요”

장양립은 겹겹으로 접은 편지지를 펼친다.

그때 이층에서 내려온 금련이 살그머니 방안으로 들어섰다.

금련은 당장 보따리를 싸가지고 나가겠다고 말로는 떵떵거렸으나,

이층으로 올라가자 우선 뒤숭숭하고 심란한 심정을 가라앉히려고 창밖을 내다보며 서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정말 집을 나가야 할 것인지 나간다면 당장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서문경을 찾아가면 그가 어떻게 대할는지,

남편이 있는 몸이라고 퇴짜를 놓지나 않을는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왠 군관이 집안으로 들어오자 무슨 일인가 싶어 살금살금 이층에서 내려온 것이다.

 

 

살부(殺夫) 12회 

 

 

 

 장양립은 방안에 누가 들어온 기척을 느끼자 힐끗 한번 돌아본다.

 

한쪽에 가만히 서있는 금련을 보자 그 미모와 내풍기는 요염한 기색에 약간 놀란 듯 하더니,

 

얼른 고개를 돌려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형님 받아보세요”

 

 

 

형님 그동안 별고 없이 잘 지내시는지요? 영아와 형수씨도 안녕하고요“

저는 동경에 도착하여 전전태위 주면 대감 댁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곧 돌아가려 했으나 대감께서 붙드시는 바람에 그분 밑에서 일을 돌보며 머물러 왔습니다.

진작 편지를 드리려고 했으나 마땅한 인편이 없어서 이제야 소식 전합니다.

이렇게 안부를 전한 다음 동경까지 가는 동안에 겪은 고초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던

위기를 간단하게 적었고, 동경의 이곳저곳을 구경한 소감을 늘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형님에게도 언젠가 한번 동경 구경을 시켜 드리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었다.

“대감께서 저를 잘 보셨는지 자기 밑에 두고 돌려보내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만,

제가 간청해서 마침내 허락을 받았습니다.

삼월 하순에는 이곳을 출발합니다.

그러니까 오월 초순이면 그곳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형님을 만날 날도 멀지 않습니다.

부디 몸조심 하시고, 집안 단속 잘하시며 무사히 지내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붓을 놓겠습니다.

장양립이 편지를 다 읽고 나자 영아가 좋아서 손뼉을 짝짝 치면서 큰소리를 내지른다.

“야! 우리 삼촌 돌아오신다!”

무대도 빙그레 웃음을 떠올리며 중얼거린다.

“오월 초순에 도착하면 보자... 앞으로 한달 보름가량 남았구나”

그러자 장양립이 입을 연다.

“이미 동경을 떠나서 오고있을 겁니다”

이미 무송이 오고 있다는 말에 무대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뿌드득 간다.

그리고 내뱉는다.

“오냐 됐다. 무송이 돌아오기만 해봐라. 이것을 어디 두고 보자구”

가만히 서있던 금련은 정신이 번쩍 드는 듯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시며

얼른 돌아서서 방을 나가버린다.

장양립은 무엇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아이고 이거 이렇게 가셔서 어떻게 하지요?

내가 몸을 다쳐 누워 있어서 아무 대접도 못하고....

무송이 돌아오면 한번 초대를 할게요”

“예, 고맙습니다”

장양립이 방을 나서자 영아가 배웅을 하러 뒤따라 나간다.

그때 이미 금련은 재빨리 빠져나가 왕파를 찾아 가고 있었다.

 

 

살부(殺夫) 13회 

 

 

 

 “야단났어요. 할머니”

왕파를 만나자 금련은 대뜸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왕파는 눈이 약간 휘둥그래지며 묻는다.

 

“왜? 무대가 뭐 어떻게 됐나?”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무송이 돌아온다는 거예요”

“무송이 돌아온다고?”

그런데 그게 뭐 그리 야단난 일이냐는 듯이 왕파가 멀뚱히 바라본다.

“아, 글쎄, 방금 군관 하나가 동경에서 무송의 편지를 가지고 집을 찾아왔지 뭐예여.

오월 초에는 여기 도착한다는 겁니다.

벌써 동경을 출발해서 오고 있다는 거예요. 이 일을 어쩌면 좋죠?”

“무송이 온다는데 뭘 그리 야단이야? 오면 왔지”

“어머, 할머니도 그게 아니라구요.

무송이 돌아오면 무대가 단단히 복수를 하겠다고 이를 갈고 있단 말이에요.

 뭐라고 말하는지 아세요? 이것들 어디 두고보자는 거예요.

이것들이 누구겠어요? 할머니도 거기 포함된단 말이에요. 아시겠어요?”

“나도 포함된다고?”

“물론이죠. 할머니가 뚜쟁이 노릇을 했고, 장소까지 제공을 했으니까요”

“뚜쟁이라니, 실컷 재미보고 나서 하는 소리 좀 봐”

왕파는 몹시 불쾌하고 괘씸한 표정을 짓는다.

“아이 미안해요. 말이 방정맞게 나왔어요.

 좌우간 무송은 자기 형을 무척 위하는 사람이란 말이에요.

무대한테 얘기를 들으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맨 주먹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은 사람이잖아요.

재수 없으면 우리 세 사람 다 골로 갈지도 모른다구요.

무슨 대책을 세워야 돼요.

그제야 왕파는 정신이 차려지며 슬그머니 겁이 나는 듯 안색이 약간 변한다.

“어쩌면 좋지?”

“그 양반을 만나서 상의를 해보자구요”

“그러는 수밖에 없지. 그럼 내가 지금 서문 어른 댁에 갔다올 테니까,

색시가 가겔 좀 보고 있으라구”

“심부름하는 아이가 요즘 안보이던데, 어디 갔나요?”

“내가 일부러 내보냈지 뭐야. 색시와 서문 어른을 감쪽같이 맺어 줄라고 말이야.

 아이가 있어서는 비밀이 지켜지지 않거든”

“알았어요. 어서 다녀오시라구요. 가게는 염려마시고.....”

왕파가 서문경을 데리러 나가자 금련은 창가에 가 앉아서 바깥을 내다보며 생각에 잠긴다.

말을 타고 터벅터벅 산을 넘고 내를 건너 끝없는 들길을 돌아오고 있는 무송의

모습이 문득 머리에 떠오르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으며 머리를 내흔든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부디 오다가 산적 떼라도 만나서 아무쪼록 콱 뒈져다오. 뒈져다오”

 

 

살부(殺夫) 14회

 

 

 

 왕파가 서문경을 만나러 그의 집을 향해 가고 있는데,

 

마침 저만큼 서문경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게 아닌가.

 

잘됐다 하고 왕파는 그 자리에 걸음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다가

 

 서문경이 가까워지자 반기면서 물었다.

“어디 가시는 길이에요?”

 

 

“왕파네 집에 가는 길이지. 그 후 일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색한인 서문경도 조금은 쑥스러운 듯 살짝 어색한 웃음을 짓는다.

“잘됐네요. 그러잖아도 서문 어른을 만나 뵈러 가던 참이에요”

“왜? 무슨 일로? 금련이 만나고 싶다 그러던가?”

“그게 아니라.... 야단 났어요”

두 사람은 왕파네 집 쪽으로 나란히 걸어가면서 얘기를 주고받는다.

“무송이 돌아온대요, 오월 초에. 조금 전에 누가 편지를 가지고 왔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게 뭐 어쨌다구?”

서문경은 전혀 대수롭지 않은 듯 오히려 반문을 한다.

왕파는 서문경의 그런 반응이 믿음직해서 적이 마음이 놓이면서도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지껄여 댄다.

“저는 서문 어른이 어떤 분인지 잘 알기 때문에 걱정을 안했는데,

금련의 얘기는 다르지 뭐예요.

무송은 자기 형을 끔찍이 위하는 사람이라나요.

자기 형이 그 지경으로 맞은 줄을 알고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거예요.

더구나 잘못해서 맞은 것도 아니고, 형수가 놀아나는 바람에

그런 변을 당했다는 얘기를 형한테 들으면 반드시 복수를 할 거라는 겁니다.

그리고 무대도 편지를 받고는 돌아오기만 하면 이것들 어디 두고 보자면서

이를 뿌드득 뿌드득 갈더라지 뭐예요”

“이것들이라고? 그럼 할멈까지 우리 셋 다란 말인가?”

“그런가봐요”

“허허허... 병신이 육갑한다더니, 그놈이 아직 맛을 덜 봤나보군.

더 좀 혼이 나봐야 찍소리 안할 모양이지”

서문경은 가소롭다는 큰소리를 친다.

그러나 속으로는 몹시 불쾌하고 슬그머니 켕기기도 하는 듯

절로 미간에 굵은 주름이 접힌다.

잠시 묵묵히 걸음을 옮기던 서문경은 혼자 중얼거리듯이 불쑥 뇌까린다.

“그놈을 아주 찍소리 못하도록 만들어 버릴까...”

왕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얼른 알 수가 없어서 힐끗 서문경의 표정을 살피듯 바라본다.

가뜩이나 독수리 코인데 그 콧날이 유난히도 날카로워 보이고,

두 눈에서는 섬뜩한 것이 내비친다.

절로 등골에 소름이 돋아 싸늘하게 흘러내려서 왕파는 온몸을 바르르 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찍소리 못하도록 만들다니 어떻게 한다는 건가요?”

 

 


살부(殺夫) 15회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가?”

서문경이 왕파를 힐끗 바라보며 되묻는다.

“예,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자, 서문경은

“이렇게 해버리는 거지”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세워서 그것으로 콱 찍어누르는 시늉을 해보인다.

“어머나, 그럼.....”

왕파는 눈이 휘둥그래지면서 입이 딱 벌어진다.

서문경은 행길이라 혹시 누가 보지나 않았는가 싶은 듯

 이리저리 휘둘러보고는 묵묵히 걷는다“

왕파네 안방 탁자에 세 사람은 둘러앉았다.

금련은 며칠 만에 만난 서문경이 몹시 반가웠으나

그런 기색을 애써 감추며 꽤나 걱정이 되는 투로 얘기를 늘어 놓았다.

이미 왕파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터이지만 서문경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금련의 얘기가 끝나자 서문경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는지 어디 왕파가 의견을 말해 보라구”

왕파는 약간 두려움이 깃든 그런 눈으로 서문경의 표정을 살피듯이 바라본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아주 깨끗하게 해결을 해서 푹 마음을 놓을 수 있는 그런 좋은 방법이.....”

그러면서 서문경은 날카로운 눈으로 왕파를 위압하듯 쏘아본다.

그 눈빛에는 은밀한 강요의 신호가 깃들여 있다.

조금 전에 걸어오면서 내 의중을 알리지 않았느냐,

그 말을 어서 할멈 입으로 꺼내라는 그런 신호 말이다.

왕파는 두려움에 몸을 또 떤다.

그러나 이미 서문경의 그 위압적인 시선 앞에 옴잘달싹을 못하고

마치 최면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멀뚱한 표정으로 바뀌면서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빳빳하게 세운다.

그리고 그것을 거꾸로해서 콱 밑으로 찍어누르는 시늉을 해보인다.

 마치 서문경이 하던 그대로 흉내를 내는 것 같다.

서문경은 히죽이 웃는다. 그리고 묻는다.

“그게 무슨 뜻이지?”

분명히 말로 하라는 강요인 것이다.

금련도 그 손가락의 시늉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짐작이 가서 그만 안색이 변해 버린다.

“죽여 없애버리자는 거지요”

왕파는 아무 두려움이 깃들여있지 않은 그런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다.

“음, 그래?”

서문경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금련의 표정을 힐끗 살핀다.

서문경과 시선이 마주치자 금련은 얼른 그 시선을 피하듯 고개를 살짝 떨구어 버린다.

서문경이 나직하면서도 무게가 깃든 그런 음성으로 묻는다.

“여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왕파의 말을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