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 (12)
살부(殺夫) 6회
간통현장 기습작전은 다음날로 연기되었다.
정력 절륜(絶倫)의 서문경도 하루쯤은 쉬어야 되었던지
그날은 왕파네 찻집으로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종일 장사도 안하고 지키고 있었던 무대와 운가는 해질 무렵이 되자 맥이 풀렸다.
무대가 운가에게 말했다.
“니가 잘못 본 거 아냐? 안 나타나잖어”
“잘못 보다니요. 서문 대관인도 아무리 오입쟁이지만 하루쯤 쉬어야 되는 모양이죠”
“대관인은 무슨 놈의 대관인. 대관인 소리 말라구. 듣기 싫다구.
그런 망나니가 대관인이라니....”
“좌우간 내일은 틀림없이 나타날 거예요. 두고 보세요.
하루라도 쉬어야 또 힘이 나지 않겠어요?”
무대는 기분이 착잡하면서도 그 말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야, 이 녀석아, 새파란 녀석이 뭘 안다고.....”
“나도 다 안단 말이에요. 새파랗지 않다구요. 보시라구요”
그러면서 운가는 자기의 이마에 돋아난 여드름을 무대의 얼굴 앞으로 바싹 내밀어 보인다.
“에끼 이 녀석!”
무대는 살짝 운가의 이마빼기를 한번 쥐어박아 준다.
이튿날도 무대는 행상을 하러 가는 체 집을 나서서 아침부터 그 자리에 가서 감시를 했다.
그것들을 잡아 옥에 집어넣기 전에는 장사고 뭐고 도무지 염두에 없었다.
그러나 운가에게는 과일을 팔러 다니도록 했다.
너무 멀리는 가지 말고 근처에서 장사를 하면서 수시로 연락을 취하도록 했다.
오후 미시(未時)쯤이었다.
마침내 서문경이 나타났다.
머리에 두건을 쓴 서문경은 멀쩡한 얼굴을 하고 왕파네 찻집 안으로 사라졌다.
곧 왕파가 밖으로 나오더니 종종 걸음으로 무대 자신의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무대는 숨을 죽이고 매섭게 왕파의 모습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운가가 연락을 취하러 왔다.
“아주머니를 데리러 가는 모양이죠?”
“그런 것 같애. 서문경이 그놈이 조금 전에 왕파네 집으로 들어갔거든.
음- 이 연놈들 어디 두고 보자”
무대는 뿌드득 이를 간다.
잠시 후 왕파의 뒤를 따라 금련이 집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그러나 금련은 왕파와 함께 찻집으로 가는 게 아니라,
남의 눈을 피해서 그 집 뒷문으로 들어가려는 듯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년을 그냥 그만.....”
무대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버르르 떤다.
살부(殺夫) 7회
서문경과 금련의 밀회가 무르익어갈 때쯤 해서 무대와 운가는 숨어서 감시를 하던
골목에서 뛰어나가 왕파네 찻집을 향해 달려갔다.
무대는 한손에 몽둥이를 들고 허리에는 오랏줄 셈인 밧줄을 두 개 차고 있었고,
운가는 밧줄과 수건을 옆구리에 덜렁 매달고 있었다.
운가는 가게로 뛰어들었고, 무대는 집 뒷문으로 해서 안방으로 돌진했다.
그야말로 이인(二人) 기습작전이었다.
난데없이 운가가 가게에 뛰어들자 왕파는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며 뜨개질하던 것을
떨어뜨리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침 가게에는 차 마시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대낮에는 언제나 파리를 날리는 판이었다.
운가는 다짜고짜 왕파에게 달려들어 옆구리에 찬 수건을 빼서 입을 틀어막아
불끈 뒤로 묶어 버렸다.
그리고 버둥거리며 휘저어대는 두 팔을 밧줄로 꽁꽁 묶었다.
아직 열다섯 살밖에 안된 소년이지만 늙은 왕파 따위 문제가 아니었다.
주방으로 끌고 가 기둥에 꼼짝을 못하도록 칭칭 묶어 놓았다.
뒷문으로 뛰어든 무대는 안방으로 달려가 불문곡직하고 방문을 왈칵 열어젖혔다.
“어머나!”
“누구야!”
여자의 비명과 남자의 고함소리가 거의 동시에 터졌다.
벌거숭이가 되어 휘감겨 꿈틀거리고 있던 두 남녀는 몽둥이를 들고 뛰어든 무대를 보자
기겁을 하고 침상에서 굴러 내렸다.
서문경은 놀라 정신없이 침상 밑으로 기어들어가 납작 엎드린다.
그러나 금련은 그 경황 중에도 손에 닿는 대로 옷을 집어 우선 사타구니부터 가리면서
방 한쪽 구석으로 피한다.
“너 이년! 맛 좀 봐라! 이 쌍년!”
무대는 몽둥이를 사정없이 내리친다.
그러나 너무 흥분을 한 탓인지 금련이 재빨리 몸을 움츠리며 피하는 바람에
몽둥이는 빗나가 옆에 있는 경대를 냅다 두들겨서 와장창 거울이 부서져 흩어진다.
두 번째 내리친 몽둥이가 비로소 금련의 한쪽 어깨를 강타했다.
“으악- 나 죽네! 사람 살려-”
침상 밑에서 금련의 그 비명소리를 들은 서문경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침상 밑이긴 하지만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는 자기도 당하고 말 것 같아 서문경은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뜬다.
부릅뜬 눈에 침상 밑으로 무대의 짤막한 두 다리가 내다보인다.
저따위 난쟁이, 싶으며 서문경은 냅다 튕겨나가듯 침상 밑에서 순식간에 기어나가
무대의 두 다리를 불끈 잡아 왈칵 당겨 버린다.
“으이크-”
다시 금련을 내리치려던 무대는 비명을 내지르며 발랑 가볍게 방바닥에 나가떨어진다.
살부(殺夫) 8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건 알몸인 서문경은 벌떡 일어나기가 무섭게
방바닥에 나가 떨어진 무대의 손에서 재빨리 몽둥이를 빼앗았다.
그리고 그 몽둥이로 냅다 사정없이 무대를 내리갈기기 시작했다.
무대는 비명을 내지르며 이리 데굴 저리 데굴 방바닥을 마구 구르다간 발딱 일어나
결사적으로 방문 쪽을 향해 도망친다.
그러나 허사였다.
몽둥이가 뒤통수를 후려치는 바람에,
“으악-”
까무러치는 듯한 비명과 함께 픽 앞으로 꼬꾸라지고 만다.
꼬꾸라진 놈을 서문경은 죽으라 하고 타작을 하듯 내리친다.
마침내 무대는 두 눈을 허옇게 뒤집어 까고서 축 늘어지고 만다.
입에서 피거품이 지르르 흘러내린다.
가게에서 왕파를 잡아 기둥에 묶고 난 운가는 안방 쪽에서 들려오는 무대의
비명에 놀라 후다닥 그쪽으로 달려갔다.
방안을 들여다본 운가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만다.
벌건 알몸인 서문경이 몽둥이로 냅다 무대를 내리조지고 있고,
옷으로 사타구니께만 가린 금련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한쪽 구석에 서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습기도 하고 겁나기도 한 광경이었다.
살기등등한 서문경의 시선과 마주치자 운가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돌아서 냅다 뺑소니를 친다.
어물어물하다가는 서문경의 몽둥이에 자기도 요절이 나고 말 것 같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인 기습작전은 가게 쪽에서는 성공했으나,
안방에서 잘못되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서문경은 몽둥이를 방바닥에 떨어뜨리고 시근덕거리며 옷을 주워 입는다.
그리고 몽둥이를 다시 한손에 들고서,
“이놈의 할망구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왕파까지 후려칠 기세로 가게 쪽으로 뛰어나간다.
가게 안에 왕파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어딜 갔어. 이놈의 할망구”
행길까지 내다본다.
주방 쪽에서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서문경은 얼른 그곳으로 가본다.
입을 수건으로 재갈을 물린 채 기둥에 묶여있는 왕파를 보자
그제야 일이 어떻게 된 것인 줄을 짐작하고서 고개를 끄덕인다.
옷을 입고서 뒤따라 나온 금련이 놀라면서 왕파의 입을 틀어 묶은 수건을 풀어준다.
서문경은 몸을 칭칭 결박한 밧줄을 풀어준다.
왕파로부터 자초지종의 얘기를 듣고 난 서문경은,
“운가란 놈 괘심한 놈인데..... 요놈 어디 두고 보자”
투덜거리고 나서 왕파와 금련에게 명령조로 내뱉는다.
“무대를 얼른 자기 집으로 운반해 다가 보살피라구. 목숨이 끊어지면 곤란하니까”
그리고 서문경은 오늘 재수 옴올랐다는 듯이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으며 성큼성큼 나가버린다.
살부(殺夫) 9회
왕파와 둘이서 무대를 집으로 옮겨간 금련은 혹시나 남편이 숨을 거둘까 두려워서
극진히 간호를 했다.
기절을 했던 무대는 얼마 뒤에 정신을 돌이키는듯 했으나 헛소리를 하며 끙끙 앓아 댔고,
몸을 조금도 움직이질 못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모르는 영아는 눈물을 찔끔거리며 아버지의 침상 곁에 붙어 앉아서
떠날 줄을 몰랐다.
“엄마, 아버지 왜 이랬어요?”
영아의 묻는 말에 금련은 쏘아붙이듯이 대답했다.
“몰라. 어디서 누구하고 싸웠나봐. 물건을 팔다가 시비가 붙었는지 어쨌는지...”
무대는 이틀 후에야 겨우 누운 채 입에 떠 넣어 주는 미음을 받아 삼켰다.
미음을 떠 넣어 주는 금련을 보고도 얼굴에 아무런 표정이 떠오르질 않았다.
아직도 눈의 초점이 제대로 안 맞는 듯한 그런 멍한 상태였다.
사흘이 지나서야 무대는 금련이 입에 미음을 떠 넣어 주려하자 고개를 돌렸다.
거절하는 의사였다.
“여보, 내가 죽을죄를 지었다구요. 한번만 용서해줘요.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예요. 정말이에요.
내가 당신 앞에 맹세를 할께요. 이렇게.....”
얼굴 앞에 두 손을 모아 비는 시늉까지 해 보인다.
그러나 무대는 눈을 부릅뜨고 금련을 노려볼 뿐 아무 말이 없다.
“용서해 주는 거죠? 예? 여보, 왜 대답이 없어요. 대답을 해봐요”
“싫다구”
그제야 무대는 목이 잠긴 듯한 목소리를 들릴 듯 말 듯 힘없이 내뱉는다.
“용서해 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사람은 누구에게나 한번 잘못은 있는 법이에요.
자기 아내의 한번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는다니 너무해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게 분명하다구요.
사랑한다면 이렇게까지 잘못을 뉘우치며 비는데 용서를 안 해 줄 수 있어요?”
“용서도 해줄 것이 있고, 못해줄 것이 있는 거여.
남의 남자와 놀아난 자기 여편네를 용서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여”
“그러면 어쩔 거예요?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복수를 하고야 만다구.
내가 이렇게 죽도록 두들겨 맞았는데 그냥 가만히 있을 것 같애?
어림도 없어. 두고 보라구”
무대는 뿌드득 이를 간다.
“좋아요. 그럼 나는 보따리를 싸가지고 나갈거예요”
당신하고는 이제 그만 산다구요. 알겠죠?
“.....”
“왜 말이 없어요. 용서해 주지 않고 복수를 한다는데, 어떤 여자가 붙어있겠어요.
당장 보따리를 싸가지고 나갈거니까 그쯤 알아요.
난 오히려 잘됐지 뭐예요. 헤헤헤.....”
금련은 남의 허파를 뒤집듯 요망스럽게 웃기까지 하며 얼른 돌아서서 밖을 나가버린다.
살부(殺夫) 10회
무대는 당장 뛰어 일어나 금련을 뒤쫓아가서 머리끄덩이를 휘어잡고 냅다
요절을 내주고 싶었다.
그래서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생각과는 달리 온몸이 부서지는 듯 아파서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고개와 손발만 간신히 조금씩 움직일 수가 있었다.
새엄마와 아버지가 말다툼을 하는 것을 밖에서 엿듣고 있던 영아는 금련이
헤헤헤 웃으며 방문을 나오자 얼른 숨었다.
그리고 금련이 이층 계단을 쿵쾅거리며 올라가자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침상 곁으로 가서 앉는다.
“아버지, 내가 미음 떠 넣어 드릴께요”
그러면서 영아는 미음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떠서 무대의 입으로 가져간다.
무대의 열 세살짜리 어린 딸이 떠 넣어 주는 미음을 받아넘기며 두 눈에 눈물이 어린다.
그러자 영아도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버지 울지 마세요. 새엄마 나빠요. 아버지가 새엄마 때문에 이렇게 다친 모양이죠. 맞죠?”
무대는 가만가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새엄마는 아버지가 물건을 팔다가 누구하고 싸운 모양이라고 말하잖아요.
새엄마 거짓말쟁이야”
“............”
“아버지”
“응?”
“새엄마가 뭘 어쨌는데 아버지가 이렇게 다쳤어요?”
무대는 대답하기가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아버지 말해 봐요. 새엄마가 아버지한테 용서해 달라고 비는걸 보니까
틀림없이 새엄마가 뭘 아주 잘못한 거예요. 맞죠?
지금까지 새엄마가 아버지한테 비는 걸 한번도 본 일이 없거든요”
“그런 건 넌 몰라도 돼”
“왜 몰라도 돼요? 난 아버지 딸이란 말이에요. 열 세살이나 먹었고요.
아버지 딸이란 말이에요. 아버지가 이렇게 많이 다쳤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다니 말이 돼요. 안 그래요? 아버지”
맹랑하다면 맹랑한 영아의 그 말에 무대는 다시 두 눈에 뜨거운 것이 핑 돈다.
“새엄마는 맨날 아빠가 장사하러 나가면 왕파네 집엘 갔었단 말이에요.
화장을 짙게 하고서... 나중에는 안가니까 왕파가 데리러 오고요”
“음- 그랬구나”
“왕파네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죠. 그죠?”
“그래, 무슨 일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영아야, 넌 그런 것까진 몰라도 돼. 아직 어리니까 얘기해 줘도 모른다구”
“헤헤헤... 나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을 한다구요. 안 어리단 말이에요. 알겠어요?”
부녀간에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바깥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이집이 무대씨 집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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