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10) 색한서문경 <21~23회>

오늘의 쉼터 2014. 6. 23. 11:58

 

금병매 (10)

 

 

제2장 색한서문경 21회 

 

 

 

 서문경이 안방으로 들어가자,

 

왕파는 곧 준비해 놓은 술과 안주를 가지고 뒤따라 들어가서 탁자 위에 차렸다.

 

 어제는 젓가락이 세 개였지만, 오늘은 두개였다.

“그럼 둘이서 재미있게 드세요”

 

 

“할멈도 한잔하고 나가구려”

서문경이 인사치렌지 진정인지 한마디 던진다.

“아닙니다. 이 늙은이가 있으면 방해가 될테니까 물러가겠으니,

아무쪼록 둘이서 많이 들고 많이 ..... 헤헤헤, 젊을 때가 좋은 거라우.

나같이 늙어 놓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우”

왕파는 방을 나가 방문을 닫으면서 또 익살스럽게 한마디 던진다.

“나는 동가 쪽으로 특급 술을 사러 갈테니까 마음놓고... 헤헤헤...”

방안에서 서문경과 금련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오자,

왕파는 가만히 문밖에 멈추어 서서 잠깐 엿 듣는다.

“재미있는 늙은이라구. 저 늙은이 덕택에 내가 당신을 이렇게 내 사람으로 만들었지 뭐야”

“저도 당신 같은 분을 만나게 해준 저 할머니에게 속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왕파는 콧등을 찡그리며 흥, 가볍게 콧방귀를 뀐다.

인간 덜돼먹은 것들, 남의 여편네를 함부로 손대는 놈이나,

서방 있는 년이 남의 남자하고 놀아나는 년이나 그 놈에 그년이지 뭐야.

 개지, 개.....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 뱉으며 발자국 소리가 나지 않도록

살금살금 가게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제처럼 가게 문을 닫을까 하다가 그러면 오히려 남의 눈에 이상하게 비칠 것 같아서

왕파는 가게와 안쪽으로 통하는 문만을 닫아걸었다.

손님도 없는 시간이어서 창가에 앉아 왕파는 또 뜨개질을 시작했다.

한참 뜨개질을 하고 있던 왕파는 슬그머니 안방 쪽으로 호기심이 갔다.

어쩌면 지금쯤 두 연놈이 한창 재미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싶으니

그냥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뜨개질하던 것을 놓고 슬그머니 일어났다.

안쪽으로 통하는 문을 소리 없이 열고서 숨을 죽이며 살금살금 안방 쪽으로 다가갔다.

방문 밖에 그림자처럼 멈추어선 왕파는, 귀를 살며시 기울여 방안을 엿듣는다.

“여보, 꿈 같아요”

“나도”

“꿈이 아니죠?”

“아니지”

“나 좋아?”

“좋고 말고”

여자와 남자가 속삭이는 소리도 들린다.

왕파는 귀로 엿듣는 것만으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조심스레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방문을 빼꼼히 소리 없이 조금만 열었다.

그 벌어진 틈사이로 바짝 한쪽 눈을 가져갔다.

 

 

색한서문경 22회 

 

 

 

 방안이 약간 어둡다. 날씨가 구름이 끼어서 그런 모양이다.

왕파의 눈에 어렴풋이 네 개의 발이 비친다.

 

차츰 그 발의 형체가 뚜렷해온다.

 

두개는 남자의 발이고, 다른 두개는 여자의 발이다.

 

남자의 발은 약간 거무스름한 피부색이지만, 여자의 발은 희다.

 

 남자와 여자의 발이 묘한 대조를 이루어 마치 그림 같다는 생각이

 

문득 왕파의 머리에 떠오른다.

 

아름답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여자의 흰 두개의 발이 남자의 거무스름한 발위에 놓여 있다.

여자의 두 발바닥이 유난히 하얗게 보인다.

왕파는 약간 눈이 휘둥그래진다.

야릇한 웃음이 그 눈에 어린다.

잠시 후에 발의 위치가 바뀐다.

여자의 발이 아래에 놓이고, 남자의 발이 그 위에 포개진다.

왕파는 숨을 죽인다.

한참 뒤에 남자와 여자의 발이 빳빳해진다.

그러다가 부드럽게 풀린다.

 잠시 후 남자의 발이 여자의 발 위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내린다.

왕파는 공연히 혼자서 숨을 후훅-크게 들이마셨다가 조심스레 길게 내뱉는다.

서문경과 금련이 침상에서 내려오는 듯하자,

왕파는 얼른 방문을 살며시 닫고,

도둑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재빠르게 가게 쪽으로 사라져 버린다.

“아이 못보겠어. 더러워서 못보겠다니까”

무슨 끔찍한 장면이라도 본 것처럼 왕파는 이맛살을 잔뜩 찌푸리고

가게 안을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며 곧장 고개를 내저었다.

옷을 주워 입으며 서문경은 혼자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왜 그래요? 당신”

“금련이 부끄러운 듯한 눈매로 힐끗 바라본다”

“아니야, 아무 일도 아니야”

“왜 자꾸 웃죠?”

“도둑고양이가 한 마리 지나가서 웃었지 뭐야”

“도둑고양이가 지나가다뇨?”

“허허허... 아무 일도 아니라니까 그러네”

서문경은 재미가 썩 괜찮은 모양이다.

그 늙은 고양이 같은 할망구...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결코 싫지는 않은 것이다.

 자기의 남자다운 당당한 행위를 남이 보아준다는 것은 우쭐해질 일이지,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튿날도 그 다음날도 두 사람의 밀회는 거듭되었다.

서문경은 이십대 중반의 왕성한 정력을 온통 금련의 몸에 다가 쏟아 부었고,

그녀 역시 이십대 초반의 탄력 있는 몸으로 서문경의 뜨겁고 진한 사랑을 흡족하도록 받아들였다.

그럴 때마다 왕파는 공연히 이맛살을 찌푸리며 속으로 개 같은 것들이라고 욕을 하면서도

문밖에서 숨을 죽이고 그들의 정사를 몰래 훔쳐보는 야릇한 재미를 맛보곤 했다.


 

 

색한서문경 23회 

 

 

 

 바느질이 끝나 옷이 다 지어지자,

 

금련은 자기 손으로 직접 그것을 서문경에게 입혀 보았다.

 

마치 아내가 남편에게 새 옷을 입히는 듯한 광경이었다.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왕파가 입을 열었다.

“꼭 부부간 같구려. 그것도 썩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서문경은 조금도 멋쩍은 기색이 없이 마냥 기분이 좋은 듯 빙그레 웃음이 떠오른다.

“그런가? 옷은 어떤가? 잘 맞는지 모르겠어”

“잘 맞고 말고요. 아주 몸에 착 달라붙는 것이 그저 그만인데요.

색시 솜씨가 여간 아니라니까. 정말 놀랐어”

자기의 솜씨를 추켜 주는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턱이 없다. 금련은

“어머, 너무 과찬이세요”

조금 수줍은 듯한 기색과 함께 살짝 미소를 짓는다

“오늘 착복식(着服式)을 해야겠어요"

왕파가 서문경에게 말한다.

“착복식? 한턱내라 그거지?”

“물론이죠”

“내고말고. 아주 성대한 착복식을 한번 벌이도록 할까.

좋아 자, 할멈 당장 서둘러 준비를 하라구”

서문경은 호주머니에서 은(銀)두냥을 꺼내어 왕파에게 준다.

“어머나, 이렇게 많이...”

그것을 받은 왕파는 좋아서 늙어 보잘 것 없는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얼른 밖으로 나간다.

왕파가 음식점에 가서 갖가지 안주를 시키고,

특급 술을 사오고 하는 동안 방안에서는 약간 심각하다면 심각한

그런 얘기가 두 사람 사이에 오가고 있었다.

서문경이 자기가 지은 새 옷을 입고 의젓하게 앉아있자,

처음에는 기분이 흐뭇했던 금련은 묘하게 심정이 착잡해져서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불쑥 물었던 것이다.


“여보, 인제 저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저를 앞으로 어쩔 작정이에요?”

예기치 않았던 말에 서문경은 얼른 뭐라고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대답해 보세요. 당신의 확실한 마음을 알고 싶어요”

“내 마음이야 말하나 마나지.

당신 같은 좋은 여자를 만나게 된 게 나는 더없이 기쁘다구. 정말이야”

“그럼 저를 당신의.....”

금련은 말끝을 흐리며 기쁨과 슬픔이 함께 어린 듯한 그런 눈매로 빤히 서문경을 바라본다.

서문경은 약간 곤혹스러운 듯 쩝쩝 입맛을 다신다.

“당신한테 남편만 없다면 당장에라도...”

“그럼 남편이 있는 몸이라 어쩔 수 없다는 건가요?”

“아니야, 그런 건 절대로 아니고... 차차 두고 보자구,

무슨 좋은 수가 생기겠지. 일은 서둘면 안된다구. 안 그래?”

금련은 두어번 고개를 끄덕이고 꼭 입을 다물며 살며시 두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