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금병매(金甁梅)

금병매 (7) 색한서문경<6~10회>

오늘의 쉼터 2014. 6. 23. 11:31

 

제2장 색한서문경 6회 

 

 

 

 집에 돌아가서도 남자는 거리에서 바람 때문에 우연히 만나게 된

 

그 여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근래에 와서 처음 보는 미녀였다.

칠흑같이 윤이 흐르는 검은 머리에 하얀 이마, 초승달처럼 가느다란 눈과 눈썹,

 

오똑한 코와 앵두알같이 무르익은 입술, 그리고 요염한 기색이 확 풍기던 그 몸맵시,

 

시선이 마주쳤을 때 살짝 떠올리던 매혹적인 눈웃음...

 

도무지 그런 것이 눈앞에 삼삼거려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떤 남자의 아내인지 모르지만, 가만히 둘 수 없지”

남자는 침을 한 덩어리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그 남자의 성은 서문(西門)이고, 이름은 경(慶)이었다.

서문경은 현청 앞에 있는 약방의 젊은 주인이었다.

아버지 때부터 그곳에서 약방을 경영했는데,

장사가 잘되어 청하현에서는 누구나 알아주는 갑부 중의 하나였다.

그 집 점포에는 굵은 기둥이 여섯 개나 서 있었고,

안쪽에는 건물이 일곱 채나 되었다.

고용인도 많았고, 물건을 실어 나르는 말과 당나귀도 여러 말이 있었다.

맏이로 태어난 서문경은 어릴 적부터 노는 것만을 일삼고,

학문은 몹시 싫어하는 그런 성품이었다.

그는 권법(拳法)과 봉술(棒術)을 조금 몸에 익히게 되었고,

장기나 골패, 마작 따위 잡기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능했다.

물론 주색(酒色)에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어쩌면 그의 특기는 엽색(獵色)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자라면 사족을 못썼다.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양친이 세상을 떠났는데,

 젊은 나이에 약방을 물려받게 된 그는 아버지 때 못지않게 잘 운영해서

더욱 재산을 늘려 나갔다. 장사에도 남다른 수완이 있었던 것이다.

돈이 많으니 자연히 관청 출입도 잦아지고, 세도도 당당해져 갔다.

이십대 중반에 이미 서문경은 청하현에서는 눈위로 보이는 사람이라곤

현지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서문 대관인(大官人)이라고 부르며 부러워하기도 했고,

두려워하기도 했다.

서문경의 첫 아내는 진씨(陳氏)였는데, 딸 하나를 남기고 일찍 죽었다.

딸애 이름은 대저(大姐)였다.

 아내가 죽자 서문경은 무관의 딸인 오월랑(吳月郞)을 후처로 맞아들였다.

후처 외에 기생방에서 알게 된 이교아(李嬌兒)를 소실로 들여앉혔고,

또 사창가(私娼街)에서 곧잘 데리고 놀던 탁이저(卓二姐)라는 계집도 첩으로 들여놓았다.

뿐만 아니라,

서문경은 수많은 하녀들을 집안에 거느리며 육체적 향락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서슴없이 소개소에 데려다가 팔아버리기 일쑤였다.

그런 일이 한 달에도 여러 차례나 있게 마련이었다.

그처럼 색한(色漢)이면서 무뢰한(無賴漢)이기도 한 서문경의 눈에 이번에는

반금련이 띄게 된 것이다.

 

 

색한서문경 7회 

 

 

 

 서문경은 어떻게 하면 그 여자를 손에 넣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문득 머리에 떠오른 것은 그 여자네 집 바로 옆에서 찻집을 하고 있는 왕파(王婆)였다.

 

그 노파를 구슬러서 앞세우면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았다.

쇠뿔은 단김에 뺀다는 것이 서문경의 엽색 행각에 있어서의 행동 지침이었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면 서슴없이 행동에 옮기기 일쑤였다.

 

 

 

저녁도 먹지 않고 곧 서문경은 집을 나서 왕파네 찻집을 찾아갔다.

서문경이 가게로 들어서자, 왕파는 대뜸 눈치를 알아차리고서 말한다.

“아까는 아주 재미있는 인사를 서로 나누더군요”

“보았었구려”

“그럼요. 눈에 띄는데 안 볼 수가 있나요”

“그렇지 않아도 그 일 때문에 부탁이 있어서 왔는데....”

서문경은 한쪽 구석 호적한 곳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차를 날라와서 왕파도 마주앉는다.

“무슨 부탁이신지...이 늙은 것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발 벗고 안 나설 수가 없지요.

서문 어른의 부탁이신데...안 그래요? 헤헤헤....”

“고맙소. 그런데 아까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이오?”

“어떤 사람이라니, 여자지요. 예쁘게 생긴....

그리고 염라대왕의 누이고, 오도장군(五道將軍)의 딸이기도 하고요”

“농담을 하자는 게 아니라니까”

“그 여자가 누구의 아낸지 정말 모르세요?”

“모르니까 묻지”

“우리 고장 명물의 아내라니까요”

“명물의 아내?”

명물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서문경은 얼른 머리에 와 닿지가 않는 모양이다.

“거리의 명물 모르세요?”

“거리의 명물이라... 누굴까?”

“우리 고장에서 키가 제일 작은 사람. 그래도 모르겠어요?”

“아하, 그 행상하는 난쟁이 말인가?”

“맞아요. 바로 그 난쟁이 무대의 아내란 말이에요”

“그 난쟁이에게 그런 예쁜 아내가 있었나. 헛헛허.....”

너무나 뜻밖이어서 서문경은 약간 어이가 없기도 하고,

재미가 있기도 한 듯 껄껄 웃는다.

그렇다면 문제가 없다는 듯이 가볍게 내뱉는다.

“일이 간단하겠군”

대뜸 그 말의 뜻을 알아차리고 왕파가 대답한다.

“글세요, 간단할 것 같은데, 어떨는지”

“염려 말라구. 아무리 일이 간단해도 줄 것은 내가 알아서 섭섭잖게 줄테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저....한가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일이 있어서...

“그게 뭔데?”

서문경의 표정이 약간 굳어진다.

 

 

색한서문경 8회 

 

 

 

 “무송이라고 아시지요?”

“알지. 순포도두 말이지?”

 

 

 

“예. 그 무송의 형수 아닙니까. 그 여자가”

“순포도두의 형수라....음-”

왕파가 염려하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고 서문경은 잠깐 생각에 잠긴다.

그러나 곧 코 언저리에 히죽이 웃음을 떠올린다.

“순포도두가 겁이 난다 그 말인가?”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은 사람 아닙니까.

혹시 그 사람이 알게 되면 재미없지 않을까 싶어서...

나 같은 늙은이는 그 사람한테 걸리면 한 주먹에 나가 뻗어지고 말 것 아니겠어요”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구려. 그런 일을 뭐 누가 드러 내놓고 한다던가?

그리고 말이야, 지금 무송은 이곳에 없다구. 지사의 심부름으로 동경에 갔단 말이야.

“아 그렇습니까. 그럼 됐네요”

“설령 무송이가 여기 있다 하더라도 염려할 건 없으니까 일을 추진해 보라구.

순포도두 따위를 두려워하는 난 줄 아는가?

이 서문경을 어떻게 보고 하는 소리지?”

“서문 어른이야 물론 그러시겠지만....나 같은 늙은이야 좀 마음이 켕기지 않겠어요.

그래서 해본 소리지요”

“아무 염려 말고, 어떻게 하면 그 여자를 내 손에 넣을 수 있는지 계략을 꾸며 보라구”

“예. 알았습니다. 걱정 마시고 돌아가서 오늘밤은 편안히 주무세요.

그리고 내일 들러 주세요. 그럼 그때 계략을 말슴드릴테니까요.

이 늙은이도 하룻밤쯤 궁리를 해봐야 무슨 좋은 계략이 떠오를 게 아니겠어요”

흡족한 얼굴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는 서문경에게 왕파가 살짝 농담조로 한마디 던진다.

“대가는 섭섭잖아야 돼요”

“물론이지. 그럼 미리 액수를 정할까?

그게 좋겠어. 그래야 왕파도 일을 하는데 기분이 날테니까 얼마면 섭섭잖겠어?”

“그야 많을수록 좋지요...헤헤헤”

“이 늙은 깍쟁이. 좋아, 십 냥 내놓지. 어떤가?”

“어머, 십 냥 정말입니까?”

왕파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예상 밖의 거금이었던 것이다.

"남아일언이 중천금이라는 말 모르는가?

일만 잘 성사 시키면 틀림없이 십 냥 줄테니까. 자, 그럼 믿고 가네“

서문경은 유유히 찻집을 나선다.

왕파는 걸어가는 서문경의 뒷모습을 향해 힐끗 눈을 한 번 흘긴다.

“천벌을 받고도 남을 놈.

남의 여편네고 뭐고 눈에 들기만 하면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려드니....

세상에 색골도 저런 색골은 첨 본다니까”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결코 기분이 나쁘지가 않은 듯,

“십 냥이 어디야. 십 냥이...”

왕파는 히죽히죽 혼자서 웃으며 빈 찻잔을 치운다.

 

 

색한서문경 9회 

 

 

 

 이튿날 조반을 먹기가 바쁘게 서문경은 왕파네 찻집을 찾아갔다.

가게의 문을 열어놓기는 했으나, 아직 장사할 준비도 채 마치지 않은 왕파는

 

들어서는 서문경을 보자 속으로, 저 색골 일찍도 찾아온다 싶었다.

 

그러나,

 

 

“어서 오십쇼. 서문 어른. 자, 이리 앉으세요”

활짝 밝은 표정으로 반긴다.

“차 한잔 가져오게”

“물론이죠. 잠깐만 기다리세요. 아직 물이 끓지 않았으니까요”

왕파가 안에서 차 준비를 하는 동안 서문경은 창변에 앉아 바깥을 내다본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다. 봄빛이 완연한 거리는 한결 신선하고 화사해 보인다.

길 건너편 집 울안에 흐드러지게 핀 복사꽃이 곱기만 하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아침이라 그런지 한결 생기가 넘치고 가벼워 보인다.

“흥, 바로 저 녀석이로군”

서문경이 혼자 중얼거린다.

차를 날라 오며 왕파가 묻는다.

“저 녀석이라니 누군데요?”

“난쟁이 행상 말이야. 저기 저.... 저 녀석 맞지?

“맞아요. 장사하러 나가는군요”

“참 세상일이란 재미있어.

어떻게 해서 저런 보잘 것 없는 난쟁이가 저런 미색(美色)을 아내로 삼았지?

저런 녀석의 뭣을 보고 그 여자가 붙어사느냐 그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된다니까”

“이제 제대로 임자를 만나게 되잖아요”

“그런가? 허허허...”

“처음부터 저 난쟁이의 아내는 아니었어요. 장대인이라고 죽은 노인 혹시 아세요?”

“알지”

“그 노인네 집 종이었잖아요.

그 장영감이 데리고 놀다가 문간채에 사는 난쟁이한테 준 거예요.

난쟁이가 홀애비였거든요.

그리고 장영감은 그 여자 때문에 병이 들기도 했고요.

결국 장영감이 천수를 다 못한 것은 그 여자 때문이었어요.

난쟁이에게 시집보낸 뒤에도 문간채에다 두고 틈만 있으면 가서 살짝살짝 건드렸거든요.

여자 너무 좋아하면 오래 못 산다구요”

“누구한테 하는 소리지?”

“앗차, 이 늙은 것이 혓바닥을 조금 잘못 놀렸네.

서문 어른을 두고 한 소리는 결코 아니니까 노여워 마세요.

그저 그렇다는 얘기지요”

기분이 언짢은 듯 왕파를 노려보던 서문경은 늙은이가 몹시 당혹스러워하자 됐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끄덕이고 나서 말머리를 돌렸다.

“그래, 좋은 계략이 떠올랐는가?”

“떠올랐고 말고요. 그 계략을 짜내느라고 간밤에 잠도 제대로 못잤다구요”

“어디 어떤 계략인지 말해 보라구”

“비단을 한 필 사다 주세요”

왕파는 밑도끝도 없이 불쑥 말한다.

 

색한서문경 10회 

 

 

 

 “비단 한필은 무엇에 쓰려고? 그 여자한테 미끼로 던지려고 그러는건가?”

“맞아요. 미끼로 던지는 셈이지요. 그러나 그 여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서문 어른의 옷을 한 벌 지으려구요”

 

“내 옷을?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군.

내 옷을 짓는데 어떻게 그 여자에게 미끼가 되는 거지?

“그 여자를 우리 집으로 유인하는데 필요한 미끼지요”

그 여자 바느질 솜씨가 좋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바느질 뿐 아니라, 손재주가 남다른 여잔가봐요.

비파도 잘 타고, 수도 잘 놓고, 그림도 잘 그린다는 소문이에요“

“흠 그래? 미인에 다재(多才)로구만. 정말 난쟁이 행상한테는 아까운 여잔데...

그 여자 이름이 뭐야?”

“성은 반가, 이름은 금련이지요”

“반금련이라...”

서문경은 그녀의 성명도 마음에 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왕파도 신이 나서 지껄인다.

“금련이한테 옷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는 거예요.

품삯은 요구하는 대로 준다고 말이에요.

돈을 많이 안주면 일감을 맡지 않는다나봐요.

일하는 것보다는 노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니까요”

“그렇겠지 뭐. 보기에 벌써 그렇게 보이더군. 일하기 좋아하는 미인이 어디 있겠어”

“맞아요. 얼굴 반반한 것들은 다 덜돼먹은 것들이라니까요”

“허허허... 왕파처럼 생겨야 되먹은 여잔가?”

“나야 뭐 다 늙었으니까 못생겼으면 어때요?”

“그래그래. 품삯 따위가 문제야. 얼마든지 내놓을테니까”

“단 자기 집에서 옷을 짓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집에 와서 지어야 된다는 조건을 다는거예요.

그래야 다음 계략이 쉽게 맞아 들어갈 것 아니겠어요.

“알겠어. 알겠어”

서문경의 얼굴에 번드르르 기름기가 감도는 그런 웃음이 떠오른다.

다음 계략은 구태여 왕파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엽색행각에 이골이 난 터이니

훤하게 머리에 와 닿는 것이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 서문경은 하인을 시켜 시장에 가서 상품 비단 한필을 사가지고

왕파에게 갖다 주도록 조치를 했다.

비단 한필을 받은 왕파는 그것을 들고 곧 금련을 찾아 갔다.

“아니 할머니가 가게는 비워두고 어쩐 일이세요?”

좀처럼 걸음이 없는 왕파가 뜻밖에 자기 집을 찾아오자 금련은 반가이 맞이한다.

“뭐 좀 상이할 일이 있어서...”

“무슨 상의인데요? 이층으로 올라갈까요?”

금련은 왕파가 손에 들고 있는 비단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이층으로 안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