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66장 아! 雪飛 <종결>

오늘의 쉼터 2014. 6. 22. 19:56

 

제66장 아! 雪飛
 
 
 
 
소림사에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이 날은 아주 의미있는 날이었다.
 
세 가지 일이 오늘 벌어질 예정이었다.
 
첫째는 천룡십구웅에 대한 처단이었다.
 
 
그것은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다.
 
 
사실 사람들은 그일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중이었다.
 
 
그들이 과연 마도십구위냐, 천룡십구웅이냐 하는 문제로 논란이 있는 것이다.
 
 
그들에 대해서 확실히 아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
 
 
하여간 운리신군만은 장로의 자격으로 그들의 참수를 강력히 주장하는 상태였다.
 
둘째는 설옥경의 참형(斬刑)이었다.
 
 
그것은 소로공주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다.
 
 
왜인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공주는 본시 설옥경을 보는 즉시 죽이려 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만류하였기 때문에 참형이 늦어진 것이다.
 
셋째는 동의맹(同義盟)의 복파(復派)였다.
 
 
동의맹이 예전의 모습을 회복한다면 평화를 위한 회의가 개최되고 이제 혈풍은 다시 없을 것이다.
 
뇌옥(牢獄) 깊숙한 곳.
 
여인 하나가 멍한 눈으로 앉아 있었다.
 
 
그녀는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바보 나는 바보다. 그분을 내 손으로 치다니!"
 
그녀는 간간이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손을 들여다봤다.
 
 
섬섬옥수인데도 그녀는 자신의 손이 아름답다 여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흐흑, 내 손으로 내 목을 조이고 싶다!"
 
여인이 회한에차 중얼거릴 때, 끼익! 뇌옥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걸어들어왔다.
 
 
그는 금색가사를 걸치고 있는 노승이었다.
 
 
바로 소림사의 방장이 되는 사람이었다.
 
"아미타불!"
 
그는 합장한 다음 여인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하셨소, 설시주?"
 
"아아, 저는 도망가지 않습니다."
 
고개젓는 여인은 설옥경이었다.
 
"아미타불, 소로공주가 어이해 설소저를 꼭 죽이려 하는지 정말 모를 일이오. 

설시주는 구마령주의 귀신을 죽인 분이시거늘."
 
"흐흑!"
 
설옥경은 눈물을 뚝뚝 떨궜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오. 참형식은 한 시진 후에 있소. 

하나 그 이전이라도 도망칠 수는 있소."
 
방장의 노안에애잔함이 어렸다.
 
그는 진실로 설옥경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소저가 죽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소. 

다만 소로공주의 명인지라 어쩔 수 없이 따르고 있을 뿐이오."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모두 다 저 스스로 저지른 업보이거늘."
 
" !"
 
"아아, 저는 이대로 죽겠습니다."
 
설옥경은 고개를 떨궜다.
 
"아미타불 제행무상(諸行無常)이거늘."
 
방장은 설옥경의 결심을 되돌릴 수 없음을 알고 깊이 탄식했다.
 
"하여간 면회가 있소. 만나보시겠소?"
 
"누가 왔습니까?"
 
설옥경이 고개를 들며 묻자,
 
"실명대협을 따르는 쌍노(雙老)요. 

천외신궁에서 슬쩍 사라졌다가 어젯밤 남몰래 담을 넘어 소승을 찾아와 

이제껏 숨어 있다가 지금 밖에 와 있소."
 
"쌍노?"
 
설옥경은 기억을 더듬었으나 그런 명호는 처음 듣는 것이었다.
 
"헛헛, 십구웅이나 마찬가지로 말수가 없는 사람들이오. 

상당히 놀라운 신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 듯한데 그것이 뭔지는 잘 모르겠소."
 
"들어오게 하십시오."
 
"알겠소."
 
방장은 합장배례한 다음 나갔다.
 
얼마 후, 두 사람이 뇌옥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만리총관과 만화총관이었다.
 
 
그들은 뇌옥 안으로 들어와서도 오랫동안 이야기하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만리총관이었다.
 
 
그는 운리신군이 나타나는 순간 사태를 알고 숨었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거꾸로 된 천하를 바로잡을 분은 낭자뿐이오."
 
"제가 어찌?"
 
만리총관이 불쑥 던진 말에 설옥경은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낭자는 사실 백도인 중 가장 강하오."
 
"예?"
 
"훗훗, 실명대협께서 낭자에게 막강한 내공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오. 

그것은 낭자도 알고 있는 일일 것이오."
 
"아아, 그것을 아시는군요?"
 
만리총관은 야릇한 웃음 소리를 내며 뒷쪽으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만화총관이 나섰다.
 
 
그녀는 전음으로 물었다.
 
"낭자의 심정에 대해 추측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말하겠으니 맞는다면 고개를 끄덕여 주시오."
 
"무엇인지요?"
 
"능설비,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너무도 충격적인 질문이었다.
 
" !"
 
설옥경은 말을하지 못했다.
 
 
그녀는 땀만 주르르 흘렸다.
 
 
얼마 후, 마음을 추스린 설옥경이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소 굳어 있던 만화총관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아, 그럼 됐습니다. 이제 낭자는 그분을 위해 복수하는 것입니다."
 
"복수요?"
 
"그분을 기르고 그분을 망친 놈이 여기 있습니다. 

그놈은 바로 운리신군입니다. 

그가 바로 혈수광마웅입니다!"
 
"예엣?"
 
설옥경이 자지러지게 놀라자 만화총관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놀라지 마십시오. 사실 마도인은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 그럴 수가!"
 
"천룡십구웅도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 그런데 왜 말하지 않습니까?"
 
설옥경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만화총관의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운리신군은 약은 놈입니다. 

그놈은 천룡십구웅이 마도비위 자격으로 말하면 백도인들이 믿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아!"
 
설옥경이 점차사태의 추이를 알아차리고 탄식하자 만화총관이 격렬한 눈빛을 발하며 덧붙였다.
 
"그리고 놈은 지금 소로공주님의 천룡십구웅을 협박하고 있습니다."
 
"예?"
 
설옥경의 눈이동그래질 때였다.
 
파팍! 두 줄기 암경이 뻗어오며 두 총관의 마혈을 찍는 것이었다.
 
"으으음!"
 
두 사람은 창졸지간에 당한 일이라 손쓸 틈도 없이 점혈당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설옥경이 소스라치게 놀라 바라보자 누군가 이미 뇌옥의 안에 들어서 있었다.
 
 
그는 죽립을 깊숙이 눌러 쓰고 있어서 자세한 용모는 알아볼 수 없었지만 

죽립 사이로 흘러나오는 눈빛은 몹시 부드러웠다.
 
"낭자는 하지 못할 일이오. 그는 몹시 강하오. 

그리고 뛰어난 지략가요. 

낭자가 그자를 암살한다는 것은 백발백중 실패할 수밖에 없소."
 
" !"
 
설옥경은 죽립인의 눈빛을 대하는 순간 뇌리에서 

모든 기억이 빠져나가는 듯한 허탈감에 빠졌다.
 
고아하게 꾸며진 방이다.
 
거기엔 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었다.
 
 
아주 청수하게 생긴 노인과 배가 불룩한 만삭의 궁장미인.
 
두 사람은 바둑을 즐기는 중이었다.
 
"수가 강하시군요."
 
노인은 미소를지었다.
 
 
그는 아주 늙었는데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눈빛을 발하고 있었다.
 
"신군 신군은 어떤 분입니까?"
 
여인이 문득 입술을 열었다.
 
 
그녀는 소로공주였다.
 
"저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만 

허헛, 저는 말할 것이 없는 사람이지요. 

보이는 이것이 바로 저의 모습입니다."
 
인자한 노인의풍모를 하고 있는 노인은 운리신군으로 역용한 혈수광마웅이었다.
 
"신군은 그분과 비슷한 데가 많습니다."
 
소로공주의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가 매우 고혹적이었다.
 
 
그녀의 뱃속에는 능설비의 자식이 자라고 있었다.
 
 
그녀는 아기의 아버지 되는 사람 때문에 소림사에 온 것이다.
 
"신군은 뛰어난 분인 줄 압니다. 

그리고 신군이라면 제 부탁을 들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어떤 부탁이신지요?"
 
운리신군이 능청스레 말하자,
 
"천룡십구웅을 풀어 주십시오. 이유는 묻지 말고."
 
"으으음."
 
"신군만 반대하지 않으면 십구웅은 죄값을 치뤘다는 것을 인정받고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신군이 장로 회의에서 강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간절한 소망입니다."
 
소로공주가 애절한 모습으로 청하자,
 
"힘든 일이군요?"
 
운리신군은 난색을 지어 보였다.
 
"아아, 들어 주시면 신군을 왕사(王師)로 모시겠습니다."
 
"허허, 그런 것은 필요 없습니다. 

대신 다른 한 가지 조건을 들어 주십시오."
 
"무엇인지요?"
 
소로공주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것은"
 
운리신군은 말끝을 흐리며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바로 소로공주의 배를.
 
"실명대협의 아이를 주십시오."
 
"예?"
 
정말 어처구니없는 제안에 소로공주는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운리신군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허헛, 그 아기씨는 고금제일인이 될 훌륭한 재목입니다. 

저의 문하생(門下生)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신다면 

동의맹 내의 고루한 사람들을 잘 설득해 천룡십구웅이 자유롭게 되도록 하겠습니다."
 
"으음, 힘든 주문이군요."
 
"하핫, 제게도 그렇습니다."
 
" !"
 
소로공주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결심이 선 듯,
 
"아아, 십구웅만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요."
 
소로공주는 탄식하듯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운리신군의 눈가에 일순 사악한 빛이 스쳤다.
 
'흐흐, 이제 십오 년만 기다리면 된다. 

나의 천수는 이백 세이고 아직 백 년은 더 살 수 있다. 

십오 년만 숨어 살며 진짜 마룡(魔龍) 한 마리를 기르면 되는 것이다!'
 
그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아야 했다.
 
소림사에서 오십 리 남쪽에 위치한 형장(刑場).
 
사람들이 모여있고 두런두런 말하는 소리가 솔바람 소리와 물 소리에 섞여 묘한 조화를 만들었다.
 
 
형장에는 한 여인이 있었다.
 
 
흰 옷을 입은 여인인데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녀는 생과 사를 망각한 듯 보였다.
 
 
젊은 나이답지 않게 아주 완숙한 모습이었다.
 
 
바로 설옥경이었다.
 
오시(午時).
 
해가 머리 위에 떴다.
 
그때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서설(瑞雪)인지 몰랐으나 설옥경에게는 저주의 눈발이었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며 눈송이가 흩어졌다.
 
 
한순간, 데에에엥! 범종(梵鍾) 소리가 나며 사람들이 물살이 갈라지듯 양쪽으로 갈라졌다.
 
 
그 사이로 한 떼의 노인들이 걸어왔다.
 
 
그들은 백도의 명숙들이었다.
 
 
그들 모두 오랜 싸움에서 지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수는 백이십 정도 .
 
데엥!
 
종소리가 또 한 번 날 때, 장로(長老)들은 참형장 주위에 참석했다.
 
 
종소리가 또 한 번 났다.
 
 
그리고 두 사람이 나타났다.
 
 
소로공주와 운리신군. 두 사람은 과거 주설루와 운리신군이 양부양녀로 

아주 친근했듯이 다정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가섰다.
 
소로공주는 만감이 교차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저 여인을 꼭 죽여야 하는가? 아아, 

그분의 복수를 위한 것이니 죽여야 하는데 한 여인의 입장에서 보면 죽이고 싶지 않다.'
 
소로공주는 문득 멈춰섰고 운리신군도 따라 멈춰섰다.
 
" !"
 
소로공주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말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았다.
 
 
바람결에 날리는 눈발이 어지러이 흩어졌다.
 
소로공주는 말하고 싶지 않았으나 결국 입을 열었다.
 
"설옥경, 고개를 들라!"
 
" !"
 
설옥경은 소로공주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너는 죽어야 한다. 이유는 묻지 마라!"
 
소로공주는 꽤나 냉정히 말한다고 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
 
"저는 죽을 수 없습니다."
 
그때까지 모든것을 체념한 듯 무심한 모습으로 앉아 있던 설옥경이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거부의 뜻을 표했다.
 
"아, 아니?"
 
"어엇?"
 
모든 사람들이그녀의 돌연한 태도에 당혹스러워했다.
 
설옥경은 개의치 않고 소로공주를 직시했다.
 
"공주, 제가 죽으면 공주는 그분을 잃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공주의 명에 따라 죽을 수 없는 것이지요."
 
"뭐, 뭐라고?"
 
소로공주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그녀가 막 설옥경을 향해 호통을 치려 할 때였다.
 
"아미타불!"
 
소림사 방장이묵직한 불호성을 발하며 다가섰다.
 
"공주, 황제가 오시었다는 것을 아시오? 바로 저기에 계신다오."
 
그는 한 곳을 가리켰다.
 
 
모여 있던 중인들이 일제히 놀란 시선으로 방장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언제 나타났을까? 노송 아래 곤룡포(袞龍袍)를 걸친 사람이 하나 서 있었고, 

그의 오른쪽에는 무상인마가, 

그리고 그의 왼쪽에는 미장부 하나가 베옷을 입고 있었다.
 
황제는 미장부의 손을 쥐고 있었다.
 
"설비야, 네가 불러야 올 것 같구나."
 
황제가 만면에가득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미장부는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구마령주의 얼굴, 바로 실명대협 능설비의 얼굴이었다.
 
"으으, 이럴 수가!"
 
소로공주는 다리에 힘이 풀려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녀가 몸을 휘청이는데, 팍! 운리신군이 갑자기 그녀의 맥문을 낚아챘다.
 
"능가 애송이, 지옥까지 따라다니며 골치를 썩이는구나!"
 
그의 목소리가갑자기 달라졌다.
 
 
그는 능설비를 노려보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네놈이 해천절도에서도 살아나다니 이제야 네놈이 실명대협이라는 것을 정말 알겠다!"
 
그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혈수광마웅으로 환원됐다.
 
" !"
 
능설비는 말을하지 않았다.
 
 
그는 꽉 움켜쥔 오른 주먹을 꿈틀꿈틀거렸다.
 
 
그는 착잡해 하지도 괴로워하지도 않았다.
 
황제가 능설비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조카, 아니 부마라 해야 하겠지. 

그래 나의 딸을 구할 재간이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자아, 해 보게."
 
그는 능설비를태산같이 믿고 있었다.
 
능설비는 사람들을 쓰윽 둘러봤다.
 
 
모두 그를 보고 얼굴을 떨어뜨렸다.
 
'실명대협이 구마령주라니!'
 
'운리신군이 바로 혈수광마웅이었단 말인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 중에는 삼원신검(三元神劍)도 있고 구면신개도 있었다.
 
하여간 능설비는 사람들을 둘러보다가 혈수광마웅에게 말했다.
 
"공주를 놓아다오."
 
나지막하나 힘있는 음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미친 소리 마라!"
 
혈수광마웅은 발악하듯 소리쳤다.
 
"너는 포위당했다. 도망치려면 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
 
능설비는 말과함께 눈짓을 가볍게 했다.
 
 
순간, 휘익!
 
설옥경이 날아올랐고, 

거의 동시에 열아홉 명이 송림에서 뛰쳐나와 혈수광마웅을 완전히 에워쌌다.
 
 
바로 천룡십구웅이었다.
 
 
그들은 뇌옥에 있어야 하는데 버젓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으으!"
 
혈수광마웅은 볼을 씰룩거리며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의 소로공주를 힐끗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혈수광마웅은 삶의 집착이 강한 자였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나도 잘아는 능설비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바로 그것이 너를 버린 것이다. 

삶은 그냥 벗하며 누리는 것인데 당치도 않은 욕심을 부렸다.'
 
능설비는 한 가지 구결을 외웠다.
 
천뢰참(天雷斬)!
 
그는 그것을 외우다가 다시 말했다.
 
"무공을 버린다면 살려 준다."
 
그가 잔잔히 말하자,
 
"미친 소리 마라. 이 년이 내 손에 있다!"
 
혈수광마웅은 소로공주를 번쩍 쳐들었다.
 
 
소로공주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를 때, 핑!
 
미세한 파공성과 함께 능설비의 오른손이 펴지며 천뢰잠이 허공으로 쏘아졌다.
 
 
그 동작이 너무도 빨라 운리신군조차도 알아채지 못했다.
 
"케에엑!"
 
혈수광마웅은 딱 벌어진 입 속으로 파고들어 그의 뒷골 속으로 파고드는 

천뢰잠에 돌연 붉은 피를 왈칵 토하며 앞으로 나뒹굴었다.
 
 
돌연한 죽음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그는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의 시체가 바닥으로 나뒹굴 때,
 
"공주!"
 
설옥경과 후란이 거의 동시에 몸을 날려 소로공주를 안전히 받아들었다.
 
모든 것은 찰나지간에 벌어졌다.
 
 
이제 사람들은 능설비만을 바라보았다.
 
능설비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는 무엇이든 달게 여기겠다는 자세였다.
 
 
눈이 그의 어깨와 머리 위에 수북히 내렸다.
 
천자는 천천히돌아섰다.
 
"나의 조카는 바로 구마령주, 

그리고 실명대협이오. 

나는 나의 조카를 구하라고 명하고 싶으나 하지 않겠소!"
 
그의 목소리에는 주상의 권위가 실려 있었다.
 
"이 아이를 심판할 사람은 바로 당신들 무림인들이기 때문이오."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능설비의 목숨은 그 누구의 손에도 있지 않았다.
 
 
그는 백도인들이 결정하는 대로 되어질 것이다.
 
 
죽으라면 죽고, 벌받으라면 받고!
 
일대 침묵이 장내를 휘감았다.
 
 
바람에 날리는 눈발만이 그침묵을 대신했다.
 
오래도록 깨지지 않을 듯한 정적 속에서 절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우리들의 맹주가 되어 주시오"
 
한 사람이 절하자 담이 허물어지듯 중인들이 일제히 바닥에 꿇어앉아 절을 했다.
 
"실명대협, 저희들을 이끌어 주시오. 

다시는 무림이 마풍에 휘감기지 않게 잘 이끌어 주시오!"
 
"대협!"
 
지금 이곳에는구마령주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능설비는 바람이 차갑다 여겼다.
 
 
그러나 그를 따뜻하게 하는 것은 아주 많았다.
 
 
그는 이제 얼굴을 들 때임을 알았다.
 
'청해로 가는 길이 다시 늦어지겠군. 

무림세계를 정리하려면 적어도 삼 년은 걸릴 테니까.'
 
그는 아주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눈이 녹은 것일까?
 
그의 아름다운 검미(劍眉) 아래 무엇인가가 희게 반짝이고 있었다.

 

 

<종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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