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63장 魔宮의 至尊

오늘의 쉼터 2014. 6. 22. 19:50

제63장 魔宮의 至尊
 
 
 
 
화혈마존은 능설비를 향해 장읍(長揖)을 했다.
 
 
그의 배례는 마도의 한 사람으로 마도를 위해 청춘을 불살랐던 일대마웅을 위한

감사의 뜻이고 존경의 뜻이었다.
 
"그대를 존경했소. 그리고 지금 그 존경심은 극을 넘었소."
 
" !"
 
"왜냐하면 그대가 마도를 버렸기 때문이오. 

구마령주라는 지위마저 간단히 버릴 수 있는 용기가 노부는 부럽고 존경스럽기만 한 것이오."
 
능설비는 처연한 모습으로 응시할 뿐 말을 하지 못했다.
 
화혈마존은 옆으로 물러나며 말을 이었다.
 
"사실 여기 오신 것은 실수였소. 이곳에는 백만 관(百萬貫)에 달하는 화약이 묻혀 있소."
 
" !"
 
"노부는 그것을 터뜨려 실명대협을 죽이라는 명을 받았소. 

그런데 귀하께서 금조를 좇았기 때문에 터뜨릴 시간을 잃어버렸던 것이오. 

그것도 알고 한 것이리라 믿소. 대답해 주시오."
 
화혈마존이 진중한 표정이 되어 묻자,
 
"그렇소."
 
능설비는 간단히 대답했다.
 
화혈마존이 새삼 감탄을 금하지 못하자 능설비는 근처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나는 초연을 맡았소. 그래서 화약이 묻혔음을 알았소. 

어찌할까 하다가 하늘 위에 금조가 떠 있음을 알게 되었소. 

즉, 노인은 금조를 타고 도망가며 화약을 터뜨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오."
 
"그래서 우선 금조를 좇은 것이구려?"
 
"그렇소."
 
"대단하오. 혈수광마웅도 대단하나 나이를 생각한다면 아아, 

그대는 타인이 백 년 동안 이룩할 것을 거의 찰나지간에 이룩한 초인(超人)인 것이오."
 
화혈마존은 능설비의 깊은 지혜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과찬일 뿐이오. 나도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능설비의 대답소리는 아주 부드러웠다.
 
그러자 화혈마존이 정색을 하고 자못 심각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구마령주라 부르고 싶소!"
 
" !"
 
능설비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화혈마존은 그가 대답했다고 여기며 말했다.
 
"영주, 노부는 명 받은 대로 화약을 터뜨릴 수밖에 없소. 

그러면 이곳은 잇따라 화산(火山) 폭발을 일으키며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오."
 
" !"
 
"나는 혈수광마웅을 위해 그리고 무사(武士)로서의 나의 신용을 지키기 위해 

도화선에 불을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오. 

그러나 노부가 마음 속으로 저으기 공경했던 영주를 위해 그 시기를 한 시진 뒤로 늦추겠소."
 
"한 시진을 늦춘다고?"
 
"새를 다시 부르시오. 그리고 날아오르시오. 

영주라면 금조를 노부보다도 더욱 능숙히 부릴 수 있을 것이오."
 
그는 아주 잔잔한 어조로 말했다.
 
능설비는 그에게서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혈수광마웅이 모든 것을 안심하고 맡길 만한 사람이다. 

죽음보다는 명예와 의무를 더 높이 생각하고 있는 진짜 무사다.'
 
능설비는 애써한숨을 참았다.
 
"어서 가시오, 영주."
 
화혈마존은 웃으며 느릿느릿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은 아주 쓸쓸해 보였다.
 
버림받은 마(魔) 그가 남긴 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능설비는 그가 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입술을 오무렸다.
 
휘이익! 아주 예리한 휘파람 소리가 시작되었다.
 
능설비는 휘파람을 잇따라 분 다음,
 
"이각 안에 오리다."
 
하며 천자를 바라보았다.
 
천자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온몸이 만신창이이고, 얼마되지 않는 사이 몰라볼 정도로 수척해졌다.
 
 
가히 피골(皮骨)이 상접했다 할 수 있었다.
 
능설비는 천자를 위해 추궁과혈을 해 주었다.
 
 
그의 손에서 금무가 일어나 천자의 몸을 휘감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천자가 낮은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었다.
 
"으으음, 누구인가? 누구의 손이기에 이리도 부드러운가?"
 
그가 눈을 감은 채 말했다.
 
"저는."
 
능설비는 말끝을 흐렸다.
 
 
그는 웬지 어머니되는 여인의 이름을 밝히고 싶었다.
 
"난유향(蘭幽香)의 아들 설비입니다."
 
천자는 그 말에 퍽이나 놀라는 듯 얼굴을 딱딱히 굳혔다.
 
"난, 난유향의 아들이라고? 으으음, 꿈치고는 좋은 꿈이다. 

난유향의 아들과 만나는 꿈을 꾸다니."
 
"푹 주무십시오, 백부."
 
능설비는 작게말하며 천자의 혼혈을 찍었다.
 
"으으음."
 
천자는 스르르잠에 빠져 들었다.
 
그때, 꾸우우! 하늘 위에서 새의 울음이 들리더니 금빛 구름 하나가 쏜살같이 날아내렸다.
 
 
능설비의 어검술에 놀라 도망갔던 금조가 되돌아온 것이다.
 
 
금조는 휘파람 소리를 듣고 왔는데, 

능설비가 누구인지를 아는 듯 능설비의 등에다가 부리를 부벼댔다.
 
파도치는 소리만이 요란하다.
 
 
그리고 꽤 먼 곳에 석상같이 서서 한 시진이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마도 최후의 충신 화혈마존.
 
시간과 공간이라는 것의 조화로움에 새삼 경배해야 하지 않겠는가?
 
태산(泰山).
 
그 중 일관봉 위에 실로 거대한 건물이 하나 있었다.
 
'천외신궁'
 
고금 최대의 건물이며 살아 숨쉬고 있는 마의 성역(聖域)이다.
 
그 깊은 곳의 태사의(太獅椅).
 
"흐으응!"
 
끈적한 교성을흘리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노인 하나가 태사의에 앉아 있고 그의 무릎 위에는 

아주 아름답게 생긴 여인 하나가 몸을 뒤틀고 있었다.
 
 
열락에 들떠 땀을 비오듯 흘리는 여인, 

그녀의 사타구니 사이는 주름진 손에 의해 희롱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인을 희롱하는 노인은 혈수광마웅이었다.
 
 
그는 몹시 느긋한 표정이었다.
 
'백만 마도고수가 정파를 모조리 휩쓸고 돌아오는 데에는 보름이면 족하다.'
 
그는 몹시 만족한 상태였다.
 
 
그는 실명대협이 죽었다 여기고 있었다.
 
 
그도 인간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으니까.
 
"으으흑!"
 
미녀의 교성이점점 급박해지는데, 갑자기 따당! 요란한 종소리가 들렸다.
 
" ?"
 
혈수광마웅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급박한 종소리는 바로 그를 부르는 신호이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일로 본좌를 부른단 말인가. 멍청한 녀석들!"
 
그는 절정의 순간에 대한 아쉬움을 떨치지 못하다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바람에 그에게 애무받던 미녀는 궁둥방아를 찧으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잠시후, 혈수광마웅은 대전(大殿) 안으로 들어섰다.
 
 
그 안에는 이미 아주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데 분위기가 아주 이상했다.
 
"태상마종!"
 
"큰일입니다!"
 
그들은 혈수광마웅이 들어오자 진저리를 치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천여 명이 쳐들어 오고 있습니다!"
 
"관문이 깨어졌답니다!"
 
혈수광마웅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는 어처구니없어 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희들은 모조리 백일몽(百日夢)을 꾸느냐?"
 
"태상마종, 놈들이 백 리 가까이 왔다 합니다!"
 
누군가 아주 크게 말했다.
 
그는 바로 형당주(刑堂主)가 되는 광혈대제(狂血大帝)란 자였다.
 
"누가 왔단 말이냐, 형당주?"
 
혈수광마웅이 눈을 부라리자,
 
"이, 이것을!"
 
광혈대제는 쪽지 한 장을 건넸다.
 
 
피묻은 쪽지였다.
 
 
바로 그것이 혈수광마웅을 이 자리에 부른 쪽지였다.
 
 
피가 묻은 쪽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관문 멸망! 탕마금강대 신궁을 향해 감'
 
누가 썼을까?
 
너무도 급한지 글을 제대로 맺지도 못했다.
 
혈수광마웅은 그것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속임수다."
 
쪽지는 그의 손 안에서 재가 되었다.
 
"흐흣, 우리들을 흐트리자는 백도 누군가의 솜씨다. 

실명대협이 죽은 복수를 하자는 것이겠지. 

어리석은 놈들 지금쯤 하나하나 죽어갈 것이다."
 
혈수광마웅이 오만해 하는데, 

끼익! 대전 문이 급히 열리며 한 사람이 급히 뛰어들었다.
 
그는 순찰당주가 되는 마천거패(魔天巨覇)라는 자였다.
 
"이, 이것을!"
 
그는 급히 혈수광마웅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손에는 쪽지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뭐냐?"
 
"지, 지존께 전해지는 것입니다."
 
마천거패는 비지땀을 줄줄 흘리며 쪽지를 내밀었다.
 
혈수광마웅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쪽지를 건네 받았다.
 
 
직후, 무엇을 본 것일까?
 
 
그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쪽지 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천룡십구웅(天龍十九雄)이 백여 명을 죽이고 종적을 감춤. 필히 신궁으로 잠입해 간 듯.'
 
그것은 방금 전에 쓰인 듯했다.
 
혈수광마웅은 더 이상 거만해 하지 못했다.
 
"설마, 정말로?"
 
그는 땀을 주르르 흘렸다.
 
태산의 동쪽,
 
휘휙휙!
 
 
오백 명의 백의인이 줄을 지어 달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늠름한 모습들이었다.
 
 
그들의 옷자락에는 '탕마금강대(蕩魔金剛隊)'라는 다섯 글자가 선명하게 수실로 적혀 있었다.
 
 
오백 명의 신법은 하나같이 정교했다.
 
 
백도의 지고무쌍한 신법들, 그것이 그들에 의해 제 세력을 발휘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들이지나쳐 온 뒷쪽으로는 목불인견의 참상이 벌어져 있었다.
 
 
수천 구의 시신이 즐비하게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눈을 뜨고 죽은 자, 목이 잘려 죽은 자, 가슴이 박살난 자들.
 
그들은 탕마금강대에 유린된 천외신궁의 무리들이었다.
 
까아악, 까악!
 
까마귀 떼가 즐비한 시신 위로 날아내리고 있었다.
 
 
온 천지를 덮는 까마귀 떼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장면은 또 한 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태산의 서쪽,
 
백의인들 대 적포인들의 혼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천외신궁 놈들을 모두 쳐 죽여라!"
 
"그분의 복수를 하는 것이다."
 
사방에서 함성이 일며 적포인들이 속속 무너져갔다.
 
 
백의인들의 기세는 파죽지세(破竹之勢)였다.
 
"크으으, 백도에 이런 고수들이!"
 
"으으, 신궁이 이렇게 허물어지다니. 이 이럴 수는 없는데"
 
피를 낭자하게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 

그들의 옷자락에는 '천외신궁(天外神宮)'이란 글자가 적혀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몸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인해 형체를 잃어갔다.
 
대혈풍(大血風)에 의해 삽시간에 모든 것이 핏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마(魔)와 정(正)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산하(山河)가 연일 피에 젖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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