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60장 大丈夫

오늘의 쉼터 2014. 6. 22. 19:43

제60장 大丈夫

 
 
 
 
능설비는 오랫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이겼다. 그는 나의 목젖을 쥐게 된 것이다.'
 
능설비의 얼굴은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천자 때문이라면 나는 자결(自決)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고, 

그놈은 내가 능설비임은 모르나 내가 그 정도로 천자에게 충성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는 것이니 놈이 이기고 만 것이다.'
 
그는 지독한 허탈감을 맛보았다.
 
 
사람들이 다가서는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가 노부의 죄로다!"
 
무상인마가 통탄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능설비의 눈빛만은 아주 강했다.
 
 
바위라도 그 앞에서 녹아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를 몰랐다. 

그래서 나는 지더라도 백도는 마도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될 것이다."
 
능설비의 말, 거기에는 정말 많은 뜻이 담겨 있었다.
 
 
혈수광마웅이 모른 것, 그것은 실명대협이 바로 능설비라는 사실이었다.
 
금조 한 마리가 구중천(九重天)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후훗, 실명대협 그놈은 바로 능공자란 놈이고 천룡십구웅의 두목이다. 

놈은 바로 백도 전체와 같다."
 
새 등에서 중얼거리는 자가 있었다.
 
눈이 시뻘겋고 손이 시뻘건 자, 그는 포대 하나를 등에 지고 있었다.
 
"그놈은 쌍뇌천기자보다도 더욱 거대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거듭 지었다.
 
"결국 놈이 쓰러지면 백도도 쓰러지고 만다. 

푸하핫, 과거 구마령주가 쌍뇌천기자를 처단해 백도를 무너뜨렸듯, 

구마령주를 만든 노부 혈수광마웅은 그놈, 

실명대협을 쓰러뜨려 백도를 영원히 멸망케 할 것이다."
 
새 등의 인물은 혈수광마웅이었다.
 
 
그는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며 금수리를 몰아 하늘 높이 사라져 갔다.
 
동굴 안,
 
능설비는 천룡십군웅을 한 자리에 모았다.
 
"너희들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 방금 전에 내게 전해진 것이다."
 
능설비의 얼굴에 아침 햇살이 와 닿고 있었다.
 
 
그는 편지 한 장을 꺼냈다.
 
 
그것은 조금 전 능설비에게 전해진 것이었다.
 
서찰 겉봉에는실명대협에게 전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능설비는 그것을 후란에게 전했다.
 
"꺼내 읽어라."
 
"예, 공자."
 
후란은 조심스레 건네 받았다.
 
 
손 끝이 닿을 때 그녀는 괜히 몸을 떨었다.
 
후란은 서찰을꺼내 읽었다.
 
"실명대협에게 전한다."
 
그녀는 몹시 착잡한 얼굴을 하며 서찰을 읽어내려갔다.
 
"천자를 구하려거든 해천절도(海天絶島)로 와라. 

그 위치는 아래에 적혀 있다. 

오지 않으면 천자의 목을 받게 될 것이다. 

혈수광마웅이 적는다."
 
후란은 서찰 내용을 모두 읽고 난 다음 굳은 표정으로 능설비를 바라보았다.
 
능설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자가 나를 부르고 있다. 그자는 내가 누구인지 모를 것이다. 

하여간 내가 어떠한 고수이건 그는 나를 죽일 만한 함정을 마련할 것이다."
 
"진정 가시렵니까?"
 
후란이 절박하게 묻자,
 
"나는 갈 수밖에 없다."
 
능설비는 밤새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그의 어조는 단호했다.
 
"가시면 아니 됩니다."
 
"절대 아니 됩니다."
 
"우리들에게는 천자보다 공자가 귀합니다."
 
"공자께서 그곳에 가셔서 함정에 빠진다면 전 백도가 죽습니다."
 
천룡십구웅은 이구동성으로 능설비를 만류했다.
 
 
그러나 능설비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다, 나는 간다."
 
어조는 강경했지만 능설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웃음 속에는 정말 오랜만에 신비(神秘)가 다시 드리워지고 있었다.
 
"그분이 천자이기 때문에 구하러 가는 것은 아니다."
 
"그, 그럼?"
 
"후훗, 그분이 나의 자식의 외할아버지인 동시에 사실, 

나의 먼 백부(伯父)이시기 때문이다."
 
능설비는 처음으로 자신이 난유향(蘭幽香) 옹주(翁主)의 아들임을 밝혔다.
 
 
그것은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다.
 
 
능설비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을 줄이야!
 
모두 마른침만거듭 삼키는데,
 
"그리고 죽더라도 나만 죽을 것이다. 

백도가 나와 더불어 사라지지는 않는다. 

아니 백도는 더 강해지고 마도는 사기를 잃을 것이다."
 
" !"
 
천룡십구웅은 능설비의 단호한 결심을 더 이상 만류하지 못했다.
 
능설비가 말을이었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는 감동을 이길 수 없는 듯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는 근처를 서성이며 말했다.
 
"첫째는 너희들이 있기 때문이다."
 
" !"
 
그 말에 후란 이하 모두가 고개를 떨구었다.
 
"너희 열아홉은 혈수광마웅을 막을 수 있는 백도의 기둥이다. 

혈수광마웅은 나만 생각했지 너희들을 잊었던 것이다. 

즉, 내가 죽어도 너희들이 있기에 그는 제압된다는 말이다."
 
"아아, 어이해 죽는다는 말씀을!"
 
"그 말만은 말아 주십시오, 공자! "
 
천룡십구웅은 모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능설비는 조금비정하게 말을 이었다.
 
"둘째는 일천탕마금강이 있다. 

놈은 그것도 전혀 모르고 있다. 

내가 천자를 위해 해천절도로 갈 때, 

너희들은 일천 탕마금강대와 더불어 천외신궁을 치도록 하라.
 
능설비는 정말오랜만에 신위(神威)를 되찾았다.
 
 
그는 몹시 홀가분한 듯 간간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두 명의 마도 명숙이 있다. 

만화총관과 만리총관, 

그들이 있는 한 승산(勝算)은 더욱 많아지는 것이다."
 
" !"
 
"셋째, 백도는 아무 것도 잃지 않을 것이다. 

잃기는 커녕 복수가 달성되었다 여기고 사기가 충천할 것이다."
 
능설비의 입가에 다소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무슨 뜻이지요?"
 
후란이 되묻자,
 
"훗훗, 구마령주가 드디어 처단되는 것이다."
 
"설마 정체를 밝히시렵니까?"
 
"아니 되오, 공자!"
 
모두 질겁을 하는데 능설비는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했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백도계는 실명대협이라는 영웅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원수 구마령주를 처단하게 되는 것이다."
 
능설비는 다시의자에 앉았다.
 
 
그의 표정은 아침햇살을 받아 도도해 보였다.
 
그는 무언 중에도 죽음 따위를 좌시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하지만 감히 그에게 반문하는 사람은 없었다.
 
"너희에게 부탁할 것은 소로공주가 낳을 나의 아이에게 

내게 행한 것 같은 충절을 보여달라는 것뿐이다."
 
능설비는 손을품에 넣어 두툼한 봉서 하나를 꺼냈다.
 
 
그 안에는 섭선 하나가 끼워져 있었고,
 
 
두루마리가 남아 있었다.
 
"여기 있는 것은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자, 이것을 갖거라. 그리고 내가 생각날 때마다 보거라."
 
능설비는 봉투를 후란에게 전했다.
 
후란은 받기를거절했다.
 
"이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상공은 꼭 돌아오실 것인데 어이해 이별의 예물이 필요하단 말씀이십니까?"
 
"고집부리지 마라, 후란."
 
"고집이 아닙니다. 상공은 불사신입니다. 

상공은 꼭 돌아오십니다. 

저희들은 영원히 그날을 기다릴 것이고 그러기에 예물을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후란은 아주 밝게 웃어 보였다. 

한데 그녀의 속눈썹 끝에서 맑고 둥그런 이슬방울이 뚝뚝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너답지 않구나. 눈물을 보이다니."
 
능설비는 봉투를 두 발 사이에 조용히 떨어뜨린 다음 죽립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상공!"
 
눈물이 가득한후란의 시선이 능설비의 뒷모습을 좇았다.
 
"따라올 생각 마라."
 
그는 간단히 말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석실 안,
 
아름다운 여인하나가 돌침상 위에 누워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왜 여기서 기다리라 하실까? 아아, 어젯밤 내가 못된 짓을 했기 때문일까?'
 
여인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몹시 초조해 했다.
 
 
그녀는 바로 눈꽃이라 불리는 설화였다.
 
그녀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을 때, 

끼익! 문이 열리며 검은 그림자 하나가 들어섰다.
 
설화가 침상에서 얼른 몸을 일으켰다.
 
"가가, 왜 이제야 오십니까?"
 
설화는 능설비를 보자마자 눈물을 흘렸다.
 
"하핫, 네가 많이 기다린 모양이구나?"
 
능설비는 우선침상 머리맡을 살폈다.
 
 
세 개의 약병이 놓여 있었다.
 
 
모두 소림사에서 내려진 물건이었다.
 
천년학정홍(千年鶴精紅) 십 량(十兩),
 
만년자패분(萬年紫貝粉) 삼 량(三兩),
 
천재속단선유(千載續斷仙萸) 반 뿌리.
 
능설비는 약병을 확인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소림사 장문인이 고맙게도 내가 부탁한 것을 모두 다 갖다 놓았군."
 
그는 팔소매를천천히 걷었다.
 
 
천하의 마도와 백도를 번갈아 정복한 대풍운아의 손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곱고 부드럽기만 한 팔이 드러났다.
 
"가가, 왜 그러시나요?"
 
설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병을 낫게 해 줄 작정이다."
 
능설비가 환하게 웃어 보이자,
 
"그, 그럴 필요 없다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설화는 고개를저었다.
 
"아니다, 꼭 해야 한다."
 
"싫습니다. 저는 이대로가 좋습니다. 

저는 더 이상 행복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한 상태입니다."
 
" !"
 
능설비는 잠시말없이 설화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가련한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병에서 깨어나 가가를 잃는다면 나는 조롱을 받더라도 

평생을 바보로 지내며 가가의 곁에 있겠습니다. 제발!"
 
설화의 애절한눈망울이 눈물로 그득했다.
 
"그래도 나는 할 수밖에 없단다."
 
능설비는 손을멈추지 않았다.
 
"흐흑, 왜인가요? 나 때문은 아닐 텐데 내가 이렇게 간절히 바라는데 왜 굳이?"
 
"너 때문은 아니다. 사실은 나 때문이다."
 
"가가 때문에요?"
 
"그렇다. 내가 원하고 있다."
 
능설비가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녀가 능설비의 진심을 알았는지 고개를 떨구었다.
 
"아아, 그럼 마음대로 하십시오. 가가께서 바라시는 일이시라면."
 
설화는 눈을 조용히 감았다.
 
'사랑스런 여인 비록 너를 잃더라도 지금 이 모습은 영원히 간직하마.'
 
능설비는 손에서 금무(金霧)를 발휘했다.
 
 
찬란한 빛을 발하는 금무가 설화의 몸을 휘감았다.
 
"아아, 시원합니다."
 
설화는 쾌감을느끼며 스르르 정신을 잃었다.
 
능설비는 잇따라 일천여지를 발휘했다.
 
 
얼마 후 그는 세 개의 약병 안에 든 것을 모조리 설화에게 먹여주었다.
 
 
그리고는 우장을 빳빳이 내밀어 설화의 아랫배에 댔다.
 
 
조금 볼록한 아랫배는 너무 부드러워 능설비는 잠깐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것은 잠시잠깐의 현상이었다.
 
 
그는 냉정을 회복하고 진기를 전수하기 시작했다.
 
 
그의 단해에는 무궁무진한 진력이 머물러 있었다.
 
 
능설비의 장심을 타고 하해(河海)보다도 거창한 진기의 힘이 설화의 몸 안으로 흘러들었다.
 
한 시진이 지났다.
 
능설비는 땀을촉촉히 흘렸다.
 
반면에 설화는아주 편한 표정이 되어 눈꺼풀을 꿈틀거렸다.
 
'곧 정신을 되찾겠지.'
 
능설비는 그녀의 하복부에서 손을 뗐다.
 
"이제는 작별을 할 때다, 설화."
 
그는 부드럽게말하며 입술을 설화의 얼굴에 갖다댔다.
 
 
그의 입술이 설화의 입술에 포개졌다.
 
"으으음."
 
설화는 혼미한상태에서도 낮은 신음소리를 내었다.
 
입맞춤은 꽤 길게 이어졌다.
 
한순간, 능설비는 설화를 안고 위로 날아올랐다.
 
 
휘휙! 그는 아주 빠른 속도로 치달렸다.
 
 
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펄럭이게 했다.
 
 
모질게 스쳐가는 바람에 죽립이 바람에 벗겨져 뒷쪽으로 떨어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달렸다.
 
"우우!"
 
능설비는 장소성을 발하며 몸을 더욱 높이 뽑아올렸다.
 
"우우우, 나를 봐라!"
 
그가 소리치며날아오르자 근처의 이목(耳目)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분지(盆地)의 안에는 천여 명의 젊은이들이 웃통을 벗고 

연무에 열중인 상태였다가 능설비로 인해 연무를 중단하고 눈길을 들었다.
 
단애(斷崖)의 꼭대기에 미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그는 품에 여인 하나를 안고 세상을 조롱하는 눈빛을 던지고 있었다.
 
"핫핫, 나를 아느냐? 나는 태상마종이라는 사람이다. 으핫핫핫!"
 
능설비는 앙천광소하며 설화의 몸을 번쩍 쳐들었다. 설화는 그 순간 정신을 되찾았다.
 
"으음, 여기는?"
 
그녀는 눈을 뜨다가,
 
"으핫핫, 설옥경(雪玉卿)을 집어던지겠다!"
 
능설비의 광폭한 목소리를 듣고 그녀는 자지러지게 놀랐다.
 
"너, 너는 나를 망친자! 으으, 내가 너의 품에 안겨 있다니!"
 
설옥경의 눈알이 시뻘개졌다.
 
 
그녀는 살기를 이기지 못하고 몸을 뒤틀었다.
 
능설비는 그녀를 슬쩍 쳐들고 있는 상태였다.
 
 
설옥경은 간단히 그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아앗!"
 
설옥경은 다짜고짜 쌍권(雙拳)을 흔들어댔다.
 
무산신녀권식(巫山神女拳式)과 대천강권법의 두 가지 수법이 동시에 시전되었다.
 
엄청난 암경이능설비를 향해 엄습해 들었다.
 
 
그러나 그는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직후, 벼락치는 소리가 나며 능설비의 몸이 실 끊어진 연처럼 훌훌 날아올랐다.
 
"크으으, 내가 당하다니!"
 
능설비는 날아가며 신음소리를 토했다.
 
"와아!"
 
"죽었다던 구마령주가 귀신이 되어 나타나 다시 죽은 것이다!"
 
"이것은 정말 길조다!"
 
"와아, 백도는 이길 것이다. 만세!"
 
분지에서는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설옥경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 나는 누구이지? 으으, 그리고 그는?"
 
그녀는 능설비가 떨어진 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단애 아래로 떨어진 능설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구름바다가 보일 뿐이었다.
 
산을 허물어뜨릴 듯한 함성만이 그녀의 고막을 아프게 울렸다.
 
 
태산은 홍엽으로 절경(絶景)을 구가하며 모든 것을 지켜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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