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57장 老總官의 충정

오늘의 쉼터 2014. 6. 22. 19:37

 

 

제57장 老總官의 충정
 

 

 

 

누구에 대한 독공일까? 

 

능설비가 멈칫하는데 파파팟, 

 

츠측측! 섬찍한 소리가 나며 십이강시(十二疆屍)와 십이독인(十二毒人)이 

 

독분과 독침을 맞고 삽시간에 피고름이 되어 나뒹굴었다. 

 

만리대총관의 공격은 능설비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수하(手下)들에 대한 공격이었던 것이다. 

 

능설비가 잠시얼떨떨해 할 때, 

 

"영주!" 

 

만리총관은 능설비 앞에 털썩 무릎을 꺾으며 쓰러졌다. 

 

"돌아가시지 않을 분임을 알았습니다. 

 

오오, 언제고 영주께서 살아오실 것을 짐작하고 그간 비굴히 살아남았던 것입니다." 

 

" !" 

 

"황금총관은 제가 금색면구를 혈수광마웅에게 주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제가 굴복한 이유는 단 하나, 영주께서 돌아가실 분이 아님을 너무 잘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다니, 

 

신마종을 암살(暗殺)할 기회만 노리고 있는 만화총관이 이 일을 알면 기뻐 

 

그 자리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만리총관은 뜨거운 피눈물을 뿌렸다. 

 

능설비는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의 뒷쪽으로 근처를 지키던 사람들이 대거 몰려와 사람의 장벽을 쌓고 있었다.

 

 

그들 모두 넋을 잃고 말았다. 

 

"실명대협이 구마령주라고?" 

 

"그, 그럴 리가!" 

 

"만리총관이 미쳤다. 미치지 않고는 이럴 수 없다!" 

 

"만화총관은 연공관에 상주하고 있는데, 

 

그분이 사실 신마종을 암살할 마음을 가슴에 품고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큰 일이 아닌가?" 

 

만리총관과 능설비를 지켜보는 사람들 중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만리총관은 그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영주, 속하를 벌해도 좋습니다만 속하는 언제고 이런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믿었기에 

 

잠정적으로 변절했던 것이라는 것만은 부디 알아 주십시오. 

 

속하는 죽어도 영주의 충성스러운 부하일 뿐입니다!" 

 

만리총관은 흐느끼며 외치다가 고개를 쳐들었다. 

 

"영주시어!" 

 

그의 부르짖음소리가 커질 때, 

 

"나는 더 이상 그대의 영주가 아니다. 나는 이름조차 갖지 못한 인간일 뿐이다." 

 

능설비는 차갑게 말한 다음 마후마검을 뽑아 들었다.

 

 

천 년동안 주인을 기다리며 저주를 삭혀왔던 마검이 뽑히며, 

 

휘휙휙! 금파(金波)와 검파(劍波)가 어우러져 석도를 뒤덮었다.

 

 

수천수만의 검화(劍花)가 피어나는가 싶자, 

 

그것이 하나로 모였다가 흩어지며 다시 한 번 파란이 일어났다. 

 

"으아악!" 

 

"케에엑!" 

 

자욱한 피보라가 일며 석도가 완전히 피에 젖었다. 

 

능설비는 십삼식(十三式)을 잇따라 시전한 다음 검을 거둬들였다. 

 

만리총관, 그는 입을 딱 벌리고 있었다. 

 

"더 강해질 것이 있었단 말이오, 영주?" 

 

그는 능설비를제외하고는 유일한 생존자(生存者)였다.

 

 

다른 사람은 모두 죽었다.

 

 

능설비의 검초는 만리총관을 향한 것이 아니라, 

 

뒷쪽에 장벽을 치고 있던 자들을 향한 것이었던 것이다. 

 

만리대총관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옥면구를 벗고 절을 거듭했다. 

 

"영주, 어서 혈수광마웅을 죽이십시오. 

 

그놈은 운리신군의 화신이고 마도의 반역자입니다!" 

 

만리총관이 간곡히 말을 하자 능설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영주가 아니오." 

 

"그럴 리가 없습니다. 영주가 아니실 리가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만리대총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아, 그 지위를 버리시다니!' 

 

그는 능설비를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모든 것은 영주께서 명하신 대로 되지요. 

 

영주께서 아니시라면 영주가 아닌 것이지요. 

 

이제부터는 영주가 아니라 실명대협이신 것입니다. 

 

그러나 속하는 여전히 그대의 속하일 것입니다. 

 

속하를 죽이기 전에는 속하를 버리지 못하십니다!" 

 

만리총관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는 능설비가 백도로 변했다는 것을 즉시 알아본 것이었다. 

 

'떨칠 수 없는 것이 이리도 많다니, 특히 정(情)이라는 것은!' 

 

능설비는 본래먹고 있던 마음과는 달리 만리총관을 벨 수 없었다. 

 

만리총관이 그를 알듯, 그도 만리총관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무언(無言)으로 말한다고 이야기한다면 두 사람의 사이가 그러할 것이다. 

 

"분하게도 황금총관은 영주가 진짜 죽었다 여기고 오백 충신과 더불어 저항하려다가 

 

모두 잡혀 지옥수로에 들어갔습니다. 

 

아아, 그에게 영주께서, 

 

아니 그대께서 꼭 살아돌아오시리라 말했거늘 그는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만리총관이 탄식하자, 

 

"그의 시체를 보았소." 

 

능설비는 다소누그러진 어조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함께 죽지 못해서!" 

 

만리총관은 죄인처럼 고개를 푹 떨구었다. 

 

"죽는 것보다는 살아 만나는 것이 나으니 미안해 하지 마시오." 

 

능설비는 그 말을 하고는 무심한 모습으로 계단 쪽을 향해 다가갔다. 

 

만리총관이 얼른 그 앞을 막았다. 

 

"기관이 철저합니다. 여기서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긴 산전수전 다 겪은 노마가 만든 것이니 얼마나 철저하겠소." 

 

"하지만 들어가는 길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무엇이오?" 

 

"저 안에 만화총관이 있습니다. 

 

그녀에게 신호한다면 그녀는 안에서 기관을 작동시켜 문을 열 것입니다." 

 

"저 안에?" 

 

능설비가 문 쪽을 바라보자 만리총관이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그녀는 혈수광마웅이 연공하기 위해 폐관할 때 

 

함께 들어간 백 명의 종(從) 중 하나가 되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놈이 연공중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흠, 그렇다면 곧 보게 되겠군." 

 

능설비는 조용히 뇌까리다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문을 열라 신호하시오." 

 

"영, 영주!" 

 

만리총관이 뜻밖의 말에 놀라워하자, 

 

"영주라 하면 아니 되오." 

 

능설비가 타이르듯 말했다. 

 

"그럼 뭐라 할까요?" 

 

"그냥 능공자라 하시오. 십구위가 부르듯." 

 

"아아, 십구위도 살아 있군요?" 

 

만리총관이 십구위라는 말을 듣고 감격스러워하자 능설비는 다소 침중한 표정이 되었다. 

 

"구마루의 무공 전수는 너무나도 완벽했소. 

 

그래서 거기서 자란 스무 명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불사신(不死神)들이 된 것이오." 

 

"능공자, 그들이 있다면 회천(回天)이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회천?" 

 

"그렇습니다. 과거의 기업(企業)을 되찾는 것이지요." 

 

만리총관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그러나 능설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의 기업은 없소. 있었다면 구마루의 기업이 있었던 것이고 

 

그것은 제 주인인 혈수광마웅 차지가 된 것이니 내가 되찾을 것이 대체 무엇이 있겠소?" 

 

"골치 아프게 이것저것 생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주인의 명에 따라 살면 그만이지요." 

 

만리대총관의 얼굴에 이제까지와는 달리 비장함이 서렸다.

 

 

말을 마치고 그는 뒤돌아섰다. 

 

잠시 후, 그는 능설비를 안내하여 아주 두꺼운 철문 앞에 섰다. 

 

"철문의 두께는 일장오척(一丈五尺)입니다. 

 

게다가 안에 폭약이 가득해 깨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문을 깨려다가는 폭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리총관은 말과 함께 품에서 단소(短簫)를 꺼냈다. 

 

그것은 '천마적(天魔笛)'이라 불리는 몹시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이것을 불면 만화총관이 기관을 돌려 문을 열기로 되어 있습니다." 

 

만리총관은 천마적을 입술에 대었다.

 

 

이어, 삐이이익! 천마적성이 날카롭게 울려퍼졌다.

 

 

삐이이익! 만리총관은 또 한 번의 피리 소리를 내었다.

 

 

내공이 약한 사람이라면 그 소리를 다 듣지 못하고 고막에서 피를 흘리며 혼절해 나뒹굴 것이다.

 

 

천마적은 세 번의 소리를 낸 다음 만리총관의 손에서 부서지며 가루로 변해 버렸다.

 

 

만리총관은 천마적을 부순 다음 능설비 곁에 조심스레 시립해 섰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그는 능설비의 제일충복이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능설비는 잃어버렸다고 여겼던 마의 날개를 또다시 찾은 셈이었다. 

 

"혈수광마웅은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암중에 마도고수들을 대부분 포섭했고, 

 

구마종이신 능공자를 따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상태입니다." 

 

" !" 

 

능설비는 듣는둥 마는 둥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래도 만리총관은 낙심하지 않고 열심히 그간의 일들을 주섬주섬 섬겨댔다. 

 

"저와 만화총관은 일 년을 기다릴 작정이었습니다. 

 

일 년 안에 영주께서 살아오시면 영주 아니, 

 

능공자의 명에 따라 복수하고 일 년이 지나도 무소식이라면, 

 

황금총관이 했듯 직접 싸움을 걸 작정이었습니다." 

 

" !" 

 

"아아, 기다리기를 정말 잘했습니다. 

 

과거 냉월이 암습해도 살아나신 공자께서 어이해 혈적곡에서 돌아가시겠습니까?" 

 

만리대총관은 감흥을 이기지 못하고 지난 얘기를 쉬지 않고 전음으로 말했다. 

 

신호를 보낸 지 시간이 꽤 지나갔다.

 

 

그러나 열려야 하는 문은 열리지 않았다.

 

 

만리총관은 초조한 모습으로 땀을 흘렸다. 

 

"만화총관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은 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완전히 차단된 곳인지라 안에서 기관장치를 돌리지 않는 한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인데 대체 어찌해야 합니까?" 

 

그가 초조한 표정으로 능설비를 바라보았다. 

 

능설비가 강경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내 식(式)대로 할 수밖에 없겠소." 

 

"예?" 

 

"훗훗,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부숴버리는 것이오." 

 

능설비는 말과함께 만리총관의 팔을 덥썩 쥐었다. 

 

만리총관은 거대한 힘이 맥문을 타고 유입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능설비의 몸에서 자욱한 금무(金霧)가 일어나 

 

그의 몸과 만리대총관의 몸을 휘감은 채 계단 위쪽으로 날아올렸다.

 

 

능설비는 뒤로 물러난 다음 마후마검을 뽑았다.

 

 

검은 뽑히는 것이 즐거운 듯 날카롭게 외치며 진기(眞氣)를 타고 

 

철문을 향해 금빛 무지개를 그으며 날아갔다. 

 

금빛에 휩싸인검은 철문 한가운데로 파고들었다.

 

 

순간 꽈르르릉!

 

엄청난 불기둥이 일며 십 장 안의 모든 것이 산산이 박살났다.

 

 

화마(火魔)의 더운 숨결이 토해지자 

 

 

철문 안에 비장되었던 폭약이 터지며 모든 것이 산산이 불탔다. 

 

능설비와 만리총관은 몸이 터지는 듯한 고통을 맛봤다. 

 

"웨에엑!" 

 

특히 만리총관은 대폭발의 충격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오공에서 피를 쏟으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능설비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그는 화염(火焰)을 노려보다가 무슨 생각에선지 그 속으로 몸을 날렸다. 

 

"내가 간다, 금면마종!" 

 

그는 만리대총관을 옆구리에 낀 채 불기둥 속으로 파고들었다.

 

 

악마의 화염처럼 이글거리는 불길이 두 사람의 모습을 삽시간에 삼켜버렸다. 

 

내부가 아주 넓은 지하석부(地下石府). 

 

대폭발에 의해온통 뒤흔들리는 지하석부의 기둥에 박혀 부르르 제 몸을 떨고 있는 금검이 하나 있었다.

 

 

마후마검, 그것은 문을 격파하고도 힘이 남아 이십여 장이나 더 날아가 철주(鐵柱) 속으로 

 

두 자 정도 파고들었던 것이다. 

 

능설비는 불기둥을 뚫고 나오자마자 마후마검을 회수했다. 

 

"훗훗, 너란 놈도 나 만큼이나 강한 놈인 걸 믿었다." 

 

그는 사람을 대하듯 말하며 검을 검집 안에 넣었다. 

 

지하석부는 이상하게도 아주 조용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것 같았다.

 

 

저항이 있으리라 믿었던 능설비는 뜻밖의 정적에 도리어 의아해 했다. 

 

'그놈이 없단 말인가?

 

 

그럴 리가 설마 그놈이 여기 있는 체하며 강호로 들어갔단 말인가?' 

 

그렇게 된다면만사는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그는 식은 땀을 흘렸다. 

 

바로 그때였다. 

 

"흐으윽!" 

 

어디에선가 신음 소리가 났다. 

 

능설비는 얼른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철문 하나가 육중히 서 있는 곳에서 미약한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뒤다. 휴우, 놈이 없는 줄 알고 잠깐 아찔했었다.' 

 

그는 평정을 회복하며 문 쪽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기에 대폭발이 있었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머물러 있단 말인가?' 

 

철문은 연공관(練功關)의 문이었다. 

 

능설비는 일단만리총관을 눕히고 그의 혈도 다섯 군데를 연환해혈수(連還解穴手)로 내리쳤다. 

 

"으으, 어찌된 일이오?" 

 

만리총관은 그제서야 정신을 되찾았다. 

 

"볼 만한 구경거리가 있는데 잠만 자면 되오?" 

 

능설비는 눈을찡긋한 다음 문 쪽으로 돌아섰다. 

 

" ?" 

 

만리총관은 능설비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능설비는 문 앞에 다가서자 숨을 깊이 들이마신 다음 쌍수를 동시에 휘저었다.

 

 

그의 쌍장에서 무형무음(無形無音)의 강기가 흘러나갔다.

 

 

광음공공의 비예가 혼신 공력으로 일어나더니 놀랍게도 육중하던 철문이 

 

철사(鐵砂)로 화해 허물어져 내려버렸다. 

 

문이 허물어져내리자 연공관의 안이 환히 보였다.

 

 

우선 야명주(夜明珠)의 불빛이 황홀하게 보였다.

 

 

그러나 찬란한 야명주의 빛살 아래서는 참혹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흐윽!" 

 

"케에엑!" 

 

수많은 사람들이 몸을 뒹굴고 있었다.

 

 

그들은 입으로 피거품을 내뿜었다. 

 

"으으, 완전히 미쳤다. 이제 너는 사람도 아니다!" 

 

그들 중에 벌거벗은 중년여인 하나가 이가 갈리는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바로 만화총관만묘선랑이었다. 

 

그녀의 몸에는수많은 장인(掌印)이 있었다.

 

 

복부가 찢어져 창자가 흘러나올 정도였지만 그래도 그녀의 경우는 가장 나은 편이었다. 

 

죽은 사람은 칠십 명 정도. 다 죽어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이 스물 정도.

 

 

그 나머지만이 그래도 살아남아 비명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미쳐버렸다, 그는 으으윽!" 

 

만화총관이 복부를 쓸어안고 극심한 고통으로 몸을 뒤틀 때, 

 

"그는 어디에 있소, 선랑?" 

 

낭랑한 음성이들려오며 부드러운 손바닥이 그녀의 배심혈에 닿았다.

 

 

서늘한 진기가 흘러들며 만화총관은 고통을 잊었다. 

 

시선을 들어 바라보는 만묘선랑의 두 눈이 경탄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오오, 영주이십니까? 믿었던 것처럼 살아 돌아오셨습니까?" 

 

"나는 구마령주로 온 것이 아니오. 

 

나는 능설비란 이름마저도 내세우지 못하는 사람으로 온 것이오." 

 

능설비는 만화총관에게 진기를 심어 주었다.

 

 

그녀의 흐릿했던 눈빛이 점차 생기를 찾아갔다.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아, 영주를 다시 보게 되다니!" 

 

만화총관은 감격의 눈물을 줄줄 흘렸다.

 

 

잠시 후, 그녀는 기력을 되찾고 몸을 추스린 다음 절을 했다. 

 

능설비는 차마그녀의 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는 어디에 있소?" 

 

능설비가 묻자, 

 

"그는 갑자기 발광(發狂)했습니다. 마공의 연마가 지나쳤던 모양입니다." 

 

" !" 

 

"그는 백 명의 심복을 모두 연공관에 불러놓고 비무(比武)하자 했습니다." 

 

"비무를?" 

 

능설비가 다소놀라워하자, 

 

"그는 여기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마공을 시험했습니다. 

 

그는 백 초도 쓰지 않고 모든 사람을 쓰러뜨린 다음 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두 시진 전의 일입니다." 

 

만화총관은 한곳을 가리켰다.

 

 

얼핏보면 그냥 석벽으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능설비가 몽매에도 잊지 못하던 금면마종이 있는 것이었다. 

 

능설비는 만묘총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 바로 앞으로 다가가며 손을 내저었다.

 

 

꽝! 하는 폭음이 나며 벽이 무너졌다.

 

 

무너진 벽 너머로 꽤 넓은 공간이 있었다. 

 

먼저 눈에 보이는 것은 여인들의 말라 죽은 시신들이었다.

 

 

밀랍같이 되어 나자빠져 있는 시신들. 

 

살이 과자같이 바짝 메마른 여인들은 놀라운 것을 암시했다. 

 

"소, 소녀유혼(素女誘魂)의 마공(魔功)!" 

 

능설비는 흠칫놀라다가, 등판에 너무나도 큰 충격을 느꼈다.

 

 

막강한 암경이 그의 등판을 후려친 것이었다. 

 

"으으윽!" 

 

그는 피를 한 모금 울컥 토하며 휘청거렸다. 

 

돌아보는 능설비의 시선에 한 사람이 다가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을 금면으로 가리고 있는 자였다.

 

 

그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들이닥치며 다시 일장을 가했다. 

 

능설비의 가슴에서 펑! 하는 격타음이 일며 그는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으윽! 네, 네놈이 숨어 있었다니." 

 

능설비는 얼른손을 쳐들었다.

 

 

그러나 금면마종의 공격은 그의 상상 이상이었다.

 

 

능설비는 잇따라 칠 장에 당해 죽립을 떨구며 열다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금면마종은 가까이에 있었다.

 

 

그는 능설비에게 손을 쓸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가 바람처럼 능설비의 바로 곁에 다가서고, 

 

능설비가 호신강기를 일으켜 일단 피하려 할 때였다. 

 

"너, 너였군!" 

 

갑자기 여인의목소리가 났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내!" 

 

대체 누가 말하는 것일까? 

 

하여간 금면마종은 몸을 멈춘 상태였다. 

 

능설비는 그 틈을 이용해 몸을 바로잡았다. 

 

"상상 이상이었다, 혈수광마웅!" 

 

그는 피로 얼룩진 입가를 손바닥으로 닦아냈다. 

 

금면마종은 그의 얼굴을 보고 눈에서 더 짙은 혈광(血光)을 폭사해냈다. 

 

"와라, 너를 취하겠다!" 

 

"어엇? 그, 그 목소리는?" 

 

능설비는 너무놀라 살기마저 잃어버렸다.

 

 

금면마종이 여인의 음성을 발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 음성은 매우 귀에 익은 것이었다. 

 

'이 목소리는 주설루가 틀림없다!' 

 

능설비는 한 여인의 얼굴을 불현듯 떠올리고 몸을 휘청였다.

 

 

그 순간 금면마종이 재빨리 다가와 그의 오른손 맥문을 자신의 오른손으로 나꿔챘다.

 

 

섬수금나(閃手擒拿)의 수법, 

 

그의 마공은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완벽 이상 가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호호, 너를 다시 볼 줄이야!" 

 

금면마종은 능설비의 맥문을 나꿔챈 채 어깨를 다시 떨며 웃었다.

 

 

놀랍게도 그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바로 주설루라고 불리워졌던 여인이었다.

 

 

아아, 천기미인 주설루가 금면마종이라니! 

 

"호호호, 네 얼굴은 항상 내 가슴 속에 심어져 있었다." 

 

그녀는 통쾌한듯 웃어제꼈다. 

 

"이, 이럴 수가 너는 죽은 줄 알았는데?" 

 

능설비의 얼굴이 무참히 일그러졌다. 

 

"호호, 너는 내가 누구인지 아느냐? 

 

너는 내가 혈수부인(血手夫人)이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 

 

"혈, 혈수부인?" 

 

"그렇다. 나는 바로 혈수광마웅의 부인이다. 

 

호호, 나는 알고 있다. 

 

혈수광마웅이 너의 사부였다는 것을. 

 

그리고 너는 그의 명에 따라 백도의 육지주를 차례차례 죽였다는 것을!" 

 

주설루의 입을통해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능설비는 그만뒷통수를 호되게 얻어 맞은 기분이었다. 

 

"네, 네가 어이해 여기에 있느냐?" 

 

"흥, 모두 네 덕이다. 

 

네놈 덕에 나는 사부를 잃었고 나는 네놈, 

 

구마령주를 죽이리라 맹세했었다. 

 

혈수광마웅은 그 때 운리신군이라는 가명을 쓰며 내게 접근했던 것이다." 

 

능설비는 주설루에게 잡혀 작은 방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방 안은 아주 작았다.

 

 

침상 하나가 덩그라니 놓여 있고 근처에는 시체가 너저분히 널려 있었다. 

 

"저곳은 혈수광마웅이 나의 몸을 더럽힌 장소다. 

 

호홋, 그는 얼마 전 금조를 타고 떠나갔다." 

 

"어, 어디로 갔지?" 

 

능설비의 눈에서 갑자기 강렬한 기운이 쏟아졌다. 

 

"모른다. 아마 또 어떤 흉계를 꾸미고 있겠지. 

 

하지만 그가 어찌하건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주설루의 눈빛은 예전의 아름답던 눈빛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녀는 마녀(魔女)가 되어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예전에 구마령주 능설비가 즐겨 흘리던 그 눈빛을 닮아 있었다.

 

 

아주 잔혹하고 무시무시한 눈빛이었다. 

 

"호호, 그는 나를 철저히 유린한 다음 내게 대마성이라는 것을 심어 주었다. 

 

그리고 나를 혈수부인으로 삼아 주었다." 

 

" !" 

 

능설비는 돌같이 굳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만 흐트러진 진기를 하나로 모으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잘되지 않았다. 

 

"능설비, 나는 네 이름을 잘 기억하고 있다. 

 

네놈을 처음 만났던 순간도 아주 또렷이 기억한다." 

 

" !" 

 

"아느냐? 내가 너를 한때나마 사랑했다는 것을?" 

 

"나, 나를 좋아했다고?" 

 

생각지도 못 한 주설루의 말에 능설비는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주설루가 씹어뱉듯 말했다. 

 

"좋아한 정도가 아니라 너를 사랑했다. 

 

흥!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나는 지금 한 가지를 이루려 한다." 

 

"무, 무엇을 이루겠단 말이냐?" 

 

"육체 사이의 벽을 허무는 것!" 

 

"미, 미쳤군!" 

 

능설비가 눈을부릅뜨자, 

 

"그렇다, 나는 미쳤다. 

 

아니, 대마성의 주인이 된 것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취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 

 

나는 사내들이 미녀를 좋아하고 마음대로 강간하려 하듯 

 

미남자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보이면 무조건 취한다. 

 

호홋, 네놈은 이제 나의 사타구니 아래 귀신이 되는 것이다!" 

 

예전의 주설루가 아니었다.

 

 

그녀는 완전히 마성에 젖어 있었다. 

 

능설비가 침통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가 이리 음탕해지다니 모두 내 죄다." 

 

"호호, 음탕한 것만이 아니다. 

 

나는 네놈의 내공을 모조리 빨아먹을 작정이다. 

 

네놈이 죽은 줄로만 알고 있는 혈수광마웅도 머지 않아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주설루는 여전히 금면을 쓰고 있었다.

 

 

그녀의 왼손이 흔들리자 걸치고 있던 옷자락이 길게 찢어졌다.

 

 

눈부신 나신(裸身)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우유빛 젖가슴의 깊은 골짜기, 그리고 움푹 들어간 배꼽과 그 밑의 무성한 숲! 

 

"호호홋, 나의 몸이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느냐? 

 

자아, 내가 옷을 벗었듯 너도 옷을 벗어야 한다. 

 

내가 벗겨 주겠다." 

 

주설루는 능설비의 옷도 쭉쭉 찢어냈다.

 

 

능설비의 옷자락이 찢겨지며 강철같이 단단한 몸뚱이가 나타났다.

 

 

그의 몸에는 간혹 흑색장인(黑色掌印)이 찍혀 있었다.

 

 

바로 주설루의 손바닥 자국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근골이라더니 역시 그렇군. 

 

나의 마강살을 정통으로 맞고도 이 정도의 상처뿐이라니." 

 

주설루는 능설비의 맥문을 놓아 주지 않았다.

 

 

그녀는 능설비를 간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맥문을 놓으면 능설비가 제압된 공력을 되찾고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것도 잘알고 있는 것이었다. 

 

"몸을 합하자. 최후 최고의 환락을 맛보게 해 주겠다." 

 

그녀는 능설비를 끌고 침상 위로 올라갔다.

 

 

능설비의 가슴이 주설루의 탄력있는 가슴에 닿아 있었다.

 

 

앵두빛 유두 두 개가 능설비의 가슴을 간질렀다. 

 

"너는 여인이 아니다!" 

 

능설비는 차갑게 내뱉었다. 

 

"흥, 나는 여자다. 그리고 너는 사내다. 

 

네 마음이 나를 부정한다 해도 네 몸은 나를 받아들일 것이다. 

 

나는 쾌락을 즐긴 다음 너의 내공을 모조리 섭취할 작정이다." 

 

주설루가 두 눈에서 혈광을 쏟아내며 비웃자, 

 

"너는 여인도 아니고 주설루도 아니다!" 

 

능설비의 목소리도 더욱 차가워졌다. 

 

"나는 주설루다. 그리고 너는 구마령주 능설비이고!" 

 

주설루는 능설비의 몸을 세차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몸은 생각보다 아주 뜨거웠다.

 

 

그리고 그윽하다 할까, 달콤하다고 할까?

 

 

너무도 좋은 체향이 그녀의 몸에서 풍겼다. 

 

"흐으응, 내가 아름답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안다. 

 

 

나는 무엇이든 다 바칠 것이다. 

 

 

어서 나를 취해라!" 

 

주설루는 왼손을 두 사람의 가슴 사이에 넣었다.

 

 

잠시 후, 그녀는 능설비의 남자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능설비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무슨 짓으로도 나의 몸을 달아오르게 하지는 못 한다." 

 

"이 지독한 종자! 

 

그러나 너는 결국 나를 범하게 될 것이다. 

 

미친 개가 고기를 먹듯 나의 몸을 허겁지겁 취할 것이다." 

 

주설루의 손길은 더욱 빨라졌다. 

 

능설비는 눈을지그시 감았다. 

 

'설원(雪原)을 생각하자.' 

 

능설비는 눈오는 벌판을 생각했다.

 

 

그는 지금 눈을 딛고 서서 차가운 바람을 폐부 깊숙이 빨아들이는 중이었다.

 

 

휘이이잉 찬바람이 불어오고 그의 몸은 움츠러든다.

 

 

그의 생각은 현실로 나타났다. 

 

"으으, 너는 남자도 아니다!" 

 

주설루가 이를부드득 갈았다.

 

능설비가 남자로서의 구실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최음제를 쓰자.' 

 

주설루는 왼손을 쳐들었다.

 

 

그녀의 오른손은 여전히 능설비의 오른손 요혈을 쥐고 있었다.

 

 

그곳은 능설비의 유일한 약점이 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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