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53장 천 년을 잠잔 저주의 검

오늘의 쉼터 2014. 6. 22. 19:30

 

 

제53장 천 년을 잠잔 저주의 검
 

 

 

 

 

법련(法連). 

 

노사태는 스스로를 그렇게 칭했다. 

 

"이곳은 아주 경이로운 곳이라오. 

 

지금 산사태가 일어난 곳은 춘추전국(春秋戰國) 시대 때, 

 

기인(奇人)들이 난을 피해 숨어살던 기인별곡(奇人別谷)이고, 

 

해마다 한 번씩 산사태를 일으키고 칠채보색을 토해 하늘을 밝힌다오." 

 

"매년 같은 일이?" 

 

능설비가 경이로운 표정을 짓자 법련이 자세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오. 사실 이곳 결진암의 시조(始祖)는 기인별곡에서 죽은 상고기인의 후예라오. 

 

그분은 자불(慈佛)이라는 분이시오. 

 

그분은 기인별곡 안에서 죽은 사람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여기에 암자를 지었고, 

 

그후 이곳은 결진암이라 불리게 되었다오. 

 

과거에는 꽤 번성해 암자만 해도 수십 개였는데, 

 

워낙 험난한 곳인지라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 이렇게 고적한 곳이 되었다오." 

 

법련은 조금 말이 많았다.

 

사람과 말을 한 지 꽤나 오래되어 호기심이 나는 듯, 

 

아니면 능설비가 남에게 호감을 일으키는 어떠한 것이 있기 때문인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법화사조(法華師祖)가 계시었는데 그분은 입적하고 말았다오. 

 

나무관세음보살." 

 

"그럼 저곳은 바로 그분의 다비식이 거행된 곳이군요?" 

 

능설비가 암자앞의 잿더미를 바라보며 질문을 하자 법련은 서글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오." 

 

"안됐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공즉시색(空卽是色), 색즉시공(色卽是空)이 아니겠소? 

 

산 것은 멸(滅)하나 멸한 것은 곧 영생하는 것이라오." 

 

어찌 생각하면 알 것도 같고, 어찌 생각하면 전혀 알쏭달쏭한 말이었다. 

 

능설비가 말없이 바라보자 법련이 말을 이었다. 

 

"그분은 수계(守戒)받지 못한 비구니 하나를 전인으로 두었소. 

 

결명(結命)이라는 비구니인데 바로 저 안에 있는 비구니가 결명이라오." 

 

능설비는 법련이 가리키는 암자를 바라보았다.

 

 

한데 암자 안에서 두 개의 독광(毒光)이 빛나고 있지 않은가? 

 

능설비를 노려보는 두 개의 눈동자, 

 

그것은 결명이라는 비구니가 처절하게 쏘아내는 눈빛이었다. 

 

'으음!' 

 

능설비는 암자안의 여인을 보고 흠칫 놀랐다.

 

 

도저히 상상조차 못 했던 얼굴이 거기 있질 않은가? 

 

냉월(冷月). 

 

능설비를 죽이기 위해 제 얼굴마저 버린 기구한 여인 화빙염(華氷艶).

 

 

그녀가 비구니가 되어 눈을 부릅뜨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까까머리여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벙어리였다. 

 

" !" 

 

그녀는 말도 못 하고 다만 분한 눈물만 흘렸다.

 

 

그녀는 능설비를 너무나 잘 알아봤다.

 

 

여인만이 느끼는 어떠한 감홍이 있기 때문이고, 

 

능설비의 목소리가 그녀의 고막을 때렸기 때문이었다.

 

 

두 젖이 잘린 여인, 만화지의 여인들에 의해 난도질을 당했고 

 

능설비의 오만한 배포 아래 자유를 되찾은 그녀였다.

 

 

그녀는 다만 괴로운 숨소리만 내며 능설비를 노려볼 뿐이었다. 

 

'여기서 보게 되다니.' 

 

능설비는 숨이막혀옴을 느꼈다. 

 

그때 법련의 노한 음성이 터졌다. 

 

"결명! 너는 비구니가 될 수 없겠다. 

 

어이해 불제자가 가질 수 없는 살성(煞性)을 가지느냐? 

 

당장 여기를 떠나라!" 

 

법련이 노발대발해 외쳤다. 

 

냉월은 꼼짝도못했다.

 

 

그녀의 귀에는 법련의 말이 아예 들리지도 않는 것이다. 

 

"어서 여길 떠나래두!" 

 

법련이 노사태답지 않게 역정을 내자, 

 

"스, 스님. 떠날 사람은 바로 접니다." 

 

능설비가 법련의 소매를 잡았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오? 결명과 시주는 서로 아는 사이라도 되오?" 

 

법련은 능설비를 빤히 바라봤다. 

 

능설비는 대답대신 죽립을 제 손으로 벗었다.

 

 

그의 수려한 용모가 일목요연하게 드러나자, 

 

'정말 놀라운 용모인데!' 

 

법련은 우선 능설비의 미끈함에 놀라워했다.

 

 

그리고 그녀는 능설비의 눈을 보고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능설비의 우수에 찬 눈빛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일까? 

 

더더욱 놀라운일은 그 다음이었다. 

 

"스님, 저는 살인자입니다. 

 

저를 꾸짖은 다음 내쫓아 주십시오. 제발!" 

 

능설비가 무릎을 땅에 대고 간청을 하는 것이었다.

 

 

정말 믿어지지 않는 일이 아닌가? 

 

화빙염은 그제서야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지 스르르 정신을 잃어버렸다. 

 

"나무관세음보살!" 

 

법련은 불호를외운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불호를 외우다가 하늘을 봤다. 

 

어디에선가 금무지개 하나가 떠오르고 있었다.

 

 

장엄한 빛을 뿌리며 하늘을 가르는 금빛 무지개, 그것은 마후마검이 뿜어내는 검기였다. 

 

순간 찬란한 금빛이 노사태의 눈빛에도 새겨졌다. 

 

'아아, 신기(神氣)다!' 

 

법련은 얼른 손을 합장했다. 

 

'신기가 나타나면 기인별곡의 일천 년 원한이 풀리리라는 법화사저의 유시가 계셨지 않은가!' 

 

그녀는 밖으로나갔다.

 

 

금빛은 순간적으로 자취를 감췄다.

 

 

오늘 따라 하늘이 많이 흐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아, 내일은 날씨가 맑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매우 쾌청한 날이 시작될 것이다!" 

 

법련은 흡족해하며 중얼거렸다. 

 

결진암의 천 년을 내려온 저주는 이제야 풀린 것이었다. 

 

능설비는 벌써이십 리 밖에 있었다.

 

 

그는 검을 등에 지고 바람같이 날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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