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52장 以 魔 制 魔

오늘의 쉼터 2014. 6. 22. 19:28

 

 

제52장 以 魔 制 魔
 

 

 

 

언제나처럼 신선한 새벽이다. 

 

합비의 새벽은유독 아름다웠다.

 

 

합비성의 외곽, 데엥 뎅! 새벽을 깨뜨리는 종을 울리는 대찰(大刹)이 있었다. 

 

'보국대법찰(寶國大法刹)' 

 

산사는 아주 크고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안에는 중원의 승려들이 아닌 라마승들이 있었다. 

 

절은 있되 불법(佛法)은 없었다.

 

 

계집을 끼고 희롱하는 라마승들, 그리고 산 사람을 상대로 마공을 익히는 자들. 

 

목불인견의 참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보국대법찰은 라마승들에게 점령당한 지 오래되었다.

 

 

그들은 천 년 전부터 이름을 날리던 소뇌음사에서 왔다. 

 

소뇌음사는 중원 무림계와는 항상 적이었는데 천외신궁이 그들을 벗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탁탁라마라는 자였다.

 

 

그는 지금 배첩을 쥐고 있었다.

 

 

배첩은 금빛이었다. 

 

'탁탁지주전(托卓持主前), 귀사(貴寺)의 뇌음불수(雷音佛手)의 비결(秘訣)과 본궁(本宮)의 

 

대모니법광장(大牟尼法光掌)의 비결을 바꿔봅시다. 내일 새벽에 가겠소. 

 

- 모탁법합장(牟托法合掌)' 

 

탁탁라마는 그것 때문에 지난 밤을 뜬눈으로 지샜다. 

 

뇌음불수는 소뇌음사의 비전절학이다.

 

 

뇌성과 함께 강기를 쏟아내는 수법으로 가공할 만한 절기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모니법광장에 비한다면 명월(明月) 앞의 반딧불이었다. 

 

'그 어리석은 자가 뇌음불수를 너무 높이 평가했다. 

 

후훗, 두 가지를 바꾼다면 몇 배는 남는 장사를 하는 것이다.' 

 

탁탁라마는 고소를 금치 못했다. 

 

그때였다. 

 

"장문사존(掌門師尊)이시어, 

 

사문(寺門) 앞에 포달랍궁의 모탁법 대법사께서 오시었다 합니다." 

 

사마승 하나가그를 불렀다. 

 

"오오, 이제야 오시는군!" 

 

탁탁라마는 맨발로 얼른 밖으로 달려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보국대법찰의 정문 앞에 당도했다. 

 

"아미타불, 어서 오시오." 

 

탁탁라마는 홍색가사를 걸친 노(老)라마 하나를 보고 합장을 했다. 

 

모탁법(牟托法). 그는 모리극(牟利克)의 사형이고 포달랍궁의 최고 고수였다.

 

 

모탁법은 탁탁라마가 합장하며 얼굴을 약간 숙이는 것을 보며 

 

아주 자연스럽게 한 손을 불쑥 앞으로 내밀었다.

 

 

순간, 꽝! 벼락치는 소리가 나며 탁탁라마의 머리통이 

 

잘 익은 수박통이 으스러지듯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이 아닌가? 

 

탁탁라마는 졸지에 인사를 하다가 비명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으핫핫, 이제야 이백 년 전 본궁의 조사 달뢰(達賴)께서 소뇌음사의 악마 중에게 죽은 빚을 갚았다!" 

 

모탁법은 통쾌하게 웃어제끼며 위로 날아올랐다.

 

 

그는 천룡행공(天龍行空)이란 포달랍궁의 절기를 써서 훌쩍 사라져 갔다. 

 

보국대법찰의 라마들은 모두 넋을 잃었다.

 

 

장문사존이 암살 당하다니, 정말 하늘이 무너졌다 할 수 있었다. 

 

"포달랍궁 놈들이!" 

 

"으으, 그놈들을 모조리 죽여야 한다!" 

 

그들은 복수의이를 갈았다.

 

중은 없고 모두 복수에 미친 귀신들뿐이다. 

 

색혈총관(索血總官). 

 

그는 독검(毒劍)을 들고 객잔(客棧)의 담을 넘고 있었다. 

 

'감히 본궁의 무사를 해한 놈이 있다니!' 

 

그의 눈에서 잔혹스런 안광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 그의 뒤를 따르던 무사가 객잔의 후원 쪽을 가리키며 고해 바쳤다. 

 

"그놈은 바로 저기 머물고 있습니다. 

 

그놈은 아까 낮에 저의 아우를 일장에 쳐죽이고 웃으며 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색혈총관을 따르는 무사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색혈총관을 뒤따라갔다. 

 

색혈총관은 천외신궁을 거역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죽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늘의 일도 그가 하던 일과 같은 것이었다. 

 

오늘 낮, 이 근처에서 천외신궁 사람이 죽는 일이 벌어졌다.

 

 

색혈총관은 그 소식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온 것이었다.

 

 

휘휙!

 

그는 점점 빨리 달렸다. 

 

달맞이꽃이 가득한 뜨락.

 

 

한 사람이 서서 향기를 음미하며 꽃을 만지고 있었다. 

 

색혈총관은 눈에서 살광을 흘리며 그에게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보통 놈이 아닌 것 같으니 조심하자. 

 

요사이 삼지주(三支柱)니 뭐니 하는 놈들이 속출하니 항시 경계해야 오래 살 수 있다.' 

 

그는 마른침 삼키는 것마저 참으며 다가갔다. 

 

그때였다. 

 

"으음, 졸리운데?" 

 

꽃을 보고 있던 사람이 허리를 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막 벌어지는 꽃송이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손에 들려있던 꽃이 터지며 꽃잎이 어지러이 뿌려졌다. 

 

놀라운 일은 그 직후에 일어났다. 

 

"크윽, 눈 눈이!" 

 

밤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서던 색혈총관이 갑자기 신음을 터뜨리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핏물이 주루루 흘러나왔다.

 

 

꽃잎이 암기가 되어 그의 눈알을 파괴해 버린 것이다. 

 

"으으, 네 네가 누구이기에?" 

 

색혈총관이 몸을 뒤틀 때, 

 

"천룡이웅(天龍二雄)이라고 하지." 

 

짧고 힘있는 목소리가 나며, 꽝! 색혈총관의 가슴에 구멍 하나가 파였다.

 

 

그는 비명도 없이 죽었다. 

 

새벽이 다 가기 전, 제남부(齊南府)의 부지런한 사람들은 흉측한 것을 봐야 했다.

 

 

높다란 성루 위에 천외신궁의 대살수 색혈총관이 대롱대롱 매달려 죽어있는 꼴을! 

 

산동의 흑마궁 앞.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말 한 마리가 수레를 끌고 가고 있었다.

 

 

마부는 보이지 않았다.

 

 

말은 꽤 먼 거리를 달린 듯 퍽이나 지쳐 보였다.

 

 

한순간 말이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자 수레도 함께 쓰러졌다.

 

 

그 바람에 수레 안에서 상자 두 개가 튀어나왔다.

 

 

진흙탕에 뒹구는 두 개의 검은 상자는 관(棺)이었다. 

 

거기엔 일각 전에 죽은 두 사람의 시체가 담겨 있었다. 

 

천마대총관(天魔大總官). 그는 웃는 얼굴로 죽어 있었다.

 

 

그는 죽기 전

 

'마도의 기인 신마수사(神魔秀士)께서 강호에 나와 신궁에 들려 하시다니 

 

두 손을 들고 환영하오.'라는 말을 끝으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죽어있는 자는 가슴에 구멍이 뚫린 지마대총관(地魔大總官)이었다.

 

 

그는 항상 천마대총관과 자리를 함께 했었다.

 

 

그가 죽기 전 한 말은............

 

'조, 조심하시오. 가, 가짜요!' 라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신마수사라는 사람을 만나 천외신궁으로 끌어들이려 하다가

 

암살당해 죽은 것이었다. 

 

시체 주위로 흑마궁의 무리들이 모여들었다. 

 

"이럴 수가!" 

 

"두 총관이 여기서 죽다니, 자칫하다가는 죄를 뒤집어쓰겠다!" 

 

"삼천고수를 즉각 회궁케 하라. 

 

두 구의 시체를 묻어버리고 모두 못 본 척 함구하라. 

 

당분간 봉궁(封宮)이다!" 

 

흑마궁의 수뇌들이 사색이 되어 수하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노을과 단풍. 

 

노을은 사시사철 붉지만 단풍은 만추(晩秋)에만 붉다.

 

 

그러기에 단풍의 붉음이 더 값진 것인지도 모른다. 

 

노을 아래, 단풍림을 헤치며 가는 흑의인이 하나 있었다.

 

 

스슥슥!

 

그는 가벼운 바람을 일으키며 움직였다.

 

 

대체 어디를 찾아가는 것일까?

 

 

그의 움직임은 바람을 연상케 했다. 

 

"산이 좋다. 언제고 이러한 곳에 초막(草幕)을 짓고 

 

산수월(山水月)을 벗하고 지낼 날이 있을런지." 

 

그는 중얼거리다가 먼 산을 보고 눈쌀을 찌푸렸다. 

 

"웬 빛이?" 

 

그의 눈빛을 시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영롱하기 그지없는 보광(寶光)이었다.

 

 

보광이 먼 산에서 하늘 위로 뻗치고 있었다. 

 

흑의인이 의아해 하며 걸음을 더욱 빨리 하려는 순간 갑자기 산울음 소리가 났다. 

 

우르르릉! 

 

산이 울며 땅이 흔들렸다. 

 

"이, 이런 갑자기 지진(地震)이라니? 아니, 산사태일지도 모른다." 

 

흑의인은 사뿐히 떠올랐다.

 

그는 바로 능설비였다.

 

 

능설비는 답허능공(踏虛凌空)으로 떠올라 몸을 안정시켰다. 

 

지마(地魔)가 요동을 치는 듯 땅울음 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리고 온 산이 영롱한 보광으로 더욱 달아올랐다.

 

 

빛의 중심은 꽤 먼 곳에 있었다. 

 

"대단한데? 무슨 보기(寶氣)가 이리 강할까?" 

 

능설비는 태산을 향해 가는 중이었다.

 

 

그는 본시 호기심이 적은 사람이었다.

 

 

땅에 칠채명주(七彩明珠)가 떨어져 있어도 그는 쳐다보지 않을 것이다.

 

 

화려한 것은 그가 싫어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눈길을 빼앗기고 말았다. 

 

하늘은 역시 위대했다. 

 

꽈르르릉 우르르릉! 천지간을 뒤흔드는 산울음 소리는 

 

능설비에게 자신의 왜소함을 알게 했다.

 

 

그러나 그는 사람(人)이 아닌가?

 

 

그에게는 대우주(大宇宙)의 모든 것을 합한 것보다도 

 

귀중한 생명(生命)이 있고 의식이 있었다. 

 

"가 보자." 

 

그는 지체하지않고 어기비행술을 써서 날아갔다.

 

 

그는 소리없이 허공을 갈랐다.

 

 

진동음이 더욱 가까이 들릴 무렵, 

 

능설비의 시야에 저 먼 곳의 산 벽이 저절로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아, 대단하다!" 

 

능설비는 산사태를 목격하고 찬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흘러내리는 흙더미는 황하수가 범람하듯이 근처의 지형을 휘감았다.

 

 

검은 용이 무리지어 가듯 나무 숲이 파괴되었고, 내(川)가 묻혀 버렸다.

 

 

모든 것은 창출지간에 빚어졌다. 

 

능설비는 여전히 허공을 밟으며 다가갔다.

 

 

얼마를 갔을까?

 

 

그는 목탁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산사태가 스쳐지나가는 암봉(岩峯) 위에 암자 하나가 있었다.

 

 

암자의 문은 언제나 그런 것처럼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그린 듯 선(線)이 고운 자태의 비구니(比丘尼) 하나가 앉아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독경(讀經)을 하는 중이었다. 

 

대체 무슨 불경을 읊조리는 것일까?

 

 

비구니는 산사태가 어찌 벌어지건 상관도 하지 않았다.

 

 

산사태가 발견하게 한 암자, 그리고 작은 비구니. 

 

능설비는 혹 암봉이 무너지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에서 암봉 위로 날아올랐다.

 

 

암봉은 땅 속 깊이 뿌리를 박고 있는 덕분에 산사태가 아무리 심하게 나건 흔들리지 않았다. 

 

비구니의 목탁치는 소리는 여전했다.

 

 

비구니는 아직 능설비를 보지 못한 듯했다. 

 

능설비는 암자쪽으로 다가가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암자 앞에 잿더미가 있었던 것이다. 

 

'아아, 이것은 다비식(茶毘式)의 흔적이다.' 

 

능설비는 식견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잿더미가 바로 승려가 죽은 후 그의 남은 육신을 불살라버리는 

 

다비식의 흔적임을 즉시 알 수 있었다. 

 

언제 거행된 다비식일까?

 

 

어떤 스님 하나가 죽었을까? 

 

능설비가 잿더미를 보고 야릇한 감회를 느낄 때, 

 

"아미타불, 어느 시주시오?" 

 

암자 곁에서 노니(老尼) 하나가 나타났다.

 

 

허리가 구부정한 그녀는 능설비가 몹시 높은 곳을 훌훌 날아올랐다는 것도 모르고 

 

그냥 산사태를 피해 암봉 위로 오른 사람으로 아는 듯했다. 

 

능설비는 자신도 모르게 불교식에 따라 합장을 했다.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아미타불 목소리가 좋은 젊은이오. 

 

그런데 어이해 이런 험한 산에 들었소? 

 

이곳은 결진암(結塵庵)이란 곳으로 속세를 떠난 비구니들만이 있는 곳이라오." 

 

노사태(老師太)의 표정은 아주 부드러웠다.

 

 

'무협지 > 실명대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54장 天外神宮  (0) 2014.06.22
제53장 천 년을 잠잔 저주의 검  (0) 2014.06.22
제51장 雲中의 章  (0) 2014.06.22
제50장 기다리는 妖花  (0) 2014.06.22
제49장 群魔歡樂樓  (0) 2014.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