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37장 방황과 奇綠

오늘의 쉼터 2014. 6. 22. 18:57

제37장 방황과 奇綠

 

 

 

 

오랜 정적이 시작되었다. 

 

능설비는 바보가 된 듯했다.

 

그는 간간이 히죽히죽 웃곤 했다. 

 

"후후, 내게도 어린시절이 있었더란 말인가?

 

금조 하나가 나를 태우고 가다가 떨어졌고, 그때 나의 이마에 상처가 났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모두 지어낸 이야기이다. 나는 믿을수가 없어."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단호하게 부정해 버린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 그는 언제부턴가 모든 것을 꿈이라 여기고 있었다. 

 

태상마종(太上魔宗)이 가야 할 길. 구마루가 능설비에게 가르쳐 준 것은 너무도 강렬했다.

 

 

능설비는 그것들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반면에 신품소요객과 상취도장은 지난 이야기를 하며 간혹 눈물을 뿌리곤 했다.

 

 

예전의 이야기들, 특히 이십 년 전의 일들을. 

 

"혈수광마웅의 짓이야. 그놈이 저 아이를 못되게 기른 것이야." 

 

"아아, 비조평에서 아이들이 새 등에 태워져 구마루로 날아가 저렇게 무서운 자가 되어 나타난 것이야." 

 

두 사람은 회한의 눈물을 끊이지 않았다. 

 

세 사람이 혈마잔혼애 아래로 떨어진 지 닷새 되는 날, 

 

능설비는 의식이 흐릿해짐을 느꼈다. 

 

'이제는 이 세상에서 초라한 내 육신이 없어지는 일만 남았다.' 

 

그는 자신에게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다. 

 

상취도장과 신품소요객은 그의 곁에 있었다.

 

 

두 사람은 힘없이 늘어진 능설비를 바라보며 눈물을 뿌렸다. 

 

"불쌍한 놈, 너를 살리는 것이 아니었는데 과거 비조평에서 네놈을 죽게 버려두었어야 했는데." 

 

"아아, 모두 우리 늙은이들의 잘못이다!" 

 

두 사람은 능설비를 위해 울었다.

 

 

구마령주 능설비를 위해 진정으로 뜨거운 눈물을 흘려 준 사람은 아마도 그들이 첫번째일 것이다. 

 

능설비가 갈라진 입술을 벌려 힘없는 어조로 말했다. 

 

"진짜를 알고 싶소." 

 

"뭘 말이냐?" 

 

신품소요객은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능설비를 바라보았다. 

 

"내가 정말로 당신 덕에 인형설삼 반 뿌리를 먹었는지를?" 

 

능설비가 힘없이 묻자, 

 

"그것은 사실이다. 아아, 이런 처지가 되었는데 어이해 내가 거짓말을 하겠느냐." 

 

"으음!" 

 

능설비는 눈을스르르 감았다.

 

신품소요객의 표정으로 보아 그의 말은 사실인 듯했다. 

 

그는 마른침을삼키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백도인들은 참 약하오." 

 

"왜 그런 말을 하지?" 

 

신품소요객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능설비는 힘없이 미소 지었다. 

 

"후훗, 강호에 나가보면 재미있을 것이오." 

 

"강호는 네가 없는 이상 이제 태평할 것이다." 

 

"천만에." 

 

"무슨 뜻이지?" 

 

신품소요객이 흠칫 놀라며 물었다. 

 

"강호에는 아직 나를 구마령주로 키운 자가 버젓이 살아 있소." 

 

"혈수광마웅 말이냐?" 

 

"그렇소." 

 

"그렇다 해도 겁은 안 난다. 백도에는 삼뇌선생 운리신군이 있다.

 

그라면 충분히 혈수광마웅의 발호를 막아낼 것이다." 

 

신품소요객이 자신있게 말하자, 

 

"후훗, 당신들 모두가 존경해 마지 않는 삼뇌선생 운리신군이란 자가 어찌해서

 

나를 이토록 쉽게 이길 수 있었는지 아시오?" 

 

능설비는 여전히 눈을 감은 상태였다.

 

 

그가 조소를 띠운 채 말하자, 

 

"왜, 죽어서라도 그를 비웃고 싶으냐? 이 건방진 애송이놈아?" 

 

상취도장이 가소롭다는 듯 소리쳤다. 

 

"천만에." 

 

능설비는 다시웃으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운리신군은 나를 키운 자요.

 

그러기에 나를 제거(除去)할 수 있었던 것이라오. 아시겠소?" 

 

"뭐, 뭐라고?" 

 

"당치도 않은 말!" 

 

신품소요객과 상취도장이 동시에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후훗, 그가 바로 혈수광마웅이라오. 나를 길러내고 나를 제거한 자." 

 

능설비는 웃으며 의식을 잃었다.

 

 

이제는 다시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그와 양패공사(兩敗共死)할 작정을 한

 

신품소요객과 상취도장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두 사람은 망연자실한 모습이었다. 

 

"그럴 수가?" 

 

"이녀석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형님, 놀라지 마십시오." 

 

두 사람은 얼굴을 마주했다.

 

 

둘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심각하게 염두를 굴리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 이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으으, 사실은 바로 그랬던가?' 

 

두 사람은 진땀을 주르르 흘렸다.

 

 

만약 능설비의 말대로 운리신군이 혈수광마웅의 진정한 실체라면 문제는 심각해지는 것이다.

 

 

아니, 무림 전체가 위험해지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상취도장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차도살인계(借刀殺人計)에 이용당한 것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 

 

침중하기는 신품소요객도 마찬가지였다. 

 

"운리신군, 그가 바로 혈루회주(血淚會主) 혈수광마웅이란 말입니까?" 

 

두 사람은 극심한 혼동을 일으켰다. 능설비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곰곰 되씹어 보면 사실인 듯도 했다. 

 

능설비는 죽음의 잠에 빠져들기 직전이었다.

 

 

그의 표정은 아주 순수해 보였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잠이 든 갓난아이의 얼굴이 그의 얼굴에 고스란이 남아 있었다.

 

 

상취도장과 신품소요객은 한참동안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혹은 능설비를 바라보며 . 

 

한 시진이 지난 후에야 상취도장이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며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그길뿐이네." 

 

"그렇게밖에 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탄식하며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 가득 깊은 수심의 골이 패여 있었다. 

 

"아아, 인간세상이 너무도 추악하네 그려." 

 

상취도장이 탄식하며 말하자, 

 

"노형, 결국 우리가 저지른 일입니다.

 

그리고 풀어야 할 사람 또한 우리들입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란 말이 있질 않습니까?" 

 

신품소요객은 말과 함께 두 손을 내밀었다.

 

그는 능설비의 양쪽 발바닥을 거머쥐었다.

 

그의 쌍장심이 능설비의 용천혈에 닿는 순간, 

 

"대천강공!" 

 

상취도장도 지체하지 않고 두 손을 능설비의 백회혈에 댔다. 

 

"쌍기합벽(雙氣合劈)!" 

 

두 사람은 동시에 외침을 터뜨리며 체내의 진기를 십이성 끌어올렸다.

 

 

두 사람의 얼굴이 터질 듯 붉게 상기될 즈음 우르르릉!

 

우레소리가 나며 두 줄기의 기류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기류가 점차 짙어지며 세 사람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푸른 기류와 흰 기류의 덩어리가 점점 커지며 세 사람의 모습을 삼켜버리고 말았다. 

 

스물스물 피어오르던 피안개도 두 종류의 기류와는 섞이지 못하는 듯 비껴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흘렀을까? 

 

" !" 

 

능설비는 죽음직전에서 깨어나 있었다.

 

 

그는 이상한 상태를 경험했다.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온화하고 시원한 바람이 몸을 휘감는 기분,

 

그 기분은 아주 상쾌한 것이었다. 

 

'마성이 사라진 듯하다.' 

 

능설비는 오랜만에 정신을 차렸다.

 

그가 눈을 뜨는 순간,

 

 

"의검방(義劍幇)에 갈 정도의 힘만 주겠다." 

 

신품소요객의 말이 그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우리가 너를 살리는 이유는 과거 너를 살린 죄인(罪人)들이기 때문이다." 

 

상취도장도 간절한 시선으로 능설비를 내려다보며 당부했다. 

 

"다시 한 번 너를 믿어보는 것이다. 다시는 다시는 인간을 배반하지 마라." 

 

두 사람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능설비의 몸 안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우르릉 꽝!

 

벼락치는 듯한 소리가 나며 능설비의 단해(丹海)에서 움직임이 시작된 것이었다.

 

 

격한 기류의 흐름이 능설비의 사지백해를 누비며 흐트러졌던 진원지기(眞元之氣)가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으으음!" 

 

능설비는 신음소리를 내며 정신을 잃었다. 

 

이주야(二晝夜) 후. 

 

능설비는 잠들었다 깨어나는 사람처럼 정신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아, 아니? 이들이 나를 구하고 죽다니?" 

 

능설비는 두 구의 시신을 볼 수 있었다.

 

 

상취도장(常醉道長)과 신품소요객(神品逍遙客),

 

그 두 사람이 능설비의 곁에 앉아 죽어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잠을 자는 듯 아주 편안했다. 

 

신품소요객은 땅에 글을 새겨놓고 있었다. 

 

'너를 양자(養子)로 삼는다' 

 

그의 글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 !" 

 

능설비는 격한마음을 힘겹게 누르며 신품소요객이 남겨 놓은 글을 읽어 내려갔다. 

 

 

<'다시 한 번 하늘(天)을 시험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 두 사람은 무슨 짓을 해서도 이곳을 나갈 수 없다.

 

혈수광마웅을 막지 못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를 막을 사람은 너 한 사람뿐이다.

 

너는 지극히 강하다.

 

너의 마성을 없애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너도 인간이라고 믿기에 너를 통해 하늘의 뜻을 시험하려는 것이다.

 

물론 너라고 해서 이곳을 쉽게 빠져 나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하나, 우리들이 사는 것보다 네가 사는 것이 낫다 여겼기에 네 몸에다가

 

모든 진원지기(眞元之氣)를 불어 넣은 것이다.

 

너를 믿는다.

 

부디 네가 사람들을 따라주기를, 백도에 들어주기를 빌 뿐이다

 

의검방(義劍幇)이란 곳에 가서 길을 찾기 바란다.

 

죽어 혼령(魂靈)이 되어서나마 너를 지켜 보겠다.

 

우리들이 살린 네가 다시는 악마가 되지 않도록 너를 살피겠다.

 

나의 아들아'> 

 

 

신품소요객의 글귀는 비장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능설비의 눈빛은 조롱에 가득찬 것이었다. 

 

"어리석은 자들 나를 믿다니, 게다가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고 믿다니 어리석은 일이다.

 

이곳은 뼈를 묻어야만 겨우 혼백이 빠져 나갈 수 있는 곳이다." 

 

그는 손을 내저었다. 꽈르르릉! 계곡을 허물어뜨릴 것 같은 진동음을 내며 강살이 쏟아져

 

나가 유서와 두 구의 시신(屍身)을 산산이 허물어뜨렸다.

 

 

상취도장의 시신과 신품소요객의 시신은 한 줌의 가루로 화해 안개 속으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내가 살아 나간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혈수광마웅은 며칠 사이에 모든 것을 장악했을 것이고 내게 충성을 보이던 삼총관(三總官)은

 

그를 영주로 섬길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잃은 다음에야 이곳을 나가지 않음만 못하다.

 

나는 떠돌다가 이곳에서 숨을 다할 것이다.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저주했다.

 

 

과거 설산의 구마루에서 일천호로 살면서 자신이 일천호인 것을 증오했듯 . 

 

시간이 지나자그의 증오심도 점차 가라앉았다.

 

 

어느 사이엔가 그의 심성은 몰라보게 순화되어 있었다.

 

 

아마 상취도장과 신품소요객의 진기를 받아 마성이 둔화된 때문인 듯했다. 

 

문득 두 사람의 시신이 남긴 흔적이 그를 움찔하게 했다. 

 

"으으 나도 모르게 이들의 시신을 파괴하다니!" 

 

그는 자신의 두 손을 들어올려 떨리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혈수(血手). 그의 두 손은 피에 물들어 있었다. 

 

"그렇다. 이 손은 진짜 나의 손이 아니다.

 

이 손은 내가 증오하는 극악한 마도 혈수광마웅이 만들어 준 혈수에 지나지 않는다!" 

 

능설비는 자신의 손을 잘라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갑자기 스스로를 벌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으핫핫핫!" 

 

그는 느닷없이광기에 차 웃으며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나가지 않는다. 으핫핫!" 

 

그는 미친 듯 달리며 닥치는 대로 쌍장을 휘둘러 댔다.

 

 

바닥이 패여지고 바위덩이들이 장풍에 맞아 가루로 변했다.

 

 

그래도 그의 손은 멈추어지지 않았다.

 

 

그 기세로 피안개가 진저리를 치며 흩어지고 능설비는 방향도 생각하지 않고 제멋대로 달렸다. 

 

'너를 믿는다!' 

 

'너를 통해 하늘을 시험하겠다!' 

 

죽은 상취도장과 신품소요객이 가까이서 떠들어대는 것 같았다. 

 

"물러가라!" 

 

능설비는 악을쓰며 쌍장을 흔들어댔다.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라, 저주스러운 자들이여!" 

 

그는 처절하게외쳤다.

 

 

그것은 차라리 절규였다.

 

 

그의 눈 아래로 뜨거운 눈물이 묻어 있었다.

 

 

설마 태상마종이었던 그가 눈물을 갖고 있단 말인가? 

 

능설비는 미친듯 달렸다. 

 

얼마를 갔을까?

 

갑자기 발 밑이 허전해짐을 느꼈다. 

 

"엇?" 

 

그는 깊은 동혈(洞穴) 위의 허공에 있는 셈이었다.

 

 

몸이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번뜩 냉정을 되찾은 능설비는 구결을 외우며 날아오르려 했다.

 

 

한데 이상하게도 혈수광마웅이 준 구결은 외우고 싶지가 않았다.

 

 

그는 아래를 힐끗 봤다.

 

 

쏴아아! 하는 물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모두 검었는데 밑바닥에는 물이 흐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오냐, 차라리 죽어버리리라!" 

 

능설비는 마성의 발작을 일으키고 아예 천근추를 발휘했다.

 

 

천근추가 발휘되자 떨어져 내리는 속도에 가속이 붙었다.

 

 

휘이이익! 그의 몸은 유성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얼마를 떨어져내렸을까?

 

 

풍덩! 하는 소리가 나며 능설비는 몹시 차가운 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쓰자 능설비는 맑은 정신을 되찾았다. 

 

'살아야 한다!' 

 

그는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다.

 

 

그는 모공(毛孔)으로 숨쉬기를 시작하며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물줄기는 생각보다 아주 급했다.

 

 

게다가 수로벽도 아주 거칠었다.

 

 

삐죽삐죽 튀어나온 돌덩어리들은 스치기만 해도 뼈가 으스러질 정도였다. 

 

그러나 능설비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살아 남도록 훈련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발을 교묘히 놀리며 물살의 흐름을 이용해 몸을 움직였다. 

 

한 번도 사람이 발을 들이지 않은 장소. 

 

능설비는 물에축축이 젖은 상태에서 거친 모래땅으로 기어나왔다. 

 

"이곳은 또 어떤 세상일까? 악마들이 사는 곳 같지 않은가?" 

 

능설비는 휘청이며 걸었다.

 

내상을 입은 자리가 다시 쑤시고 아팠왔다. 

 

얼마를 걸었을까? 

 

그는 이상한 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핏빛의 돌인데 그 모습이 한 마리 혈룡(血龍)과 같았다.

 

 

그는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때 갑자기 어디에선가 코끝을 자극하는 향기가 흘러왔다. 

 

'이게 무슨 향기일까?' 

 

능설비는 혈룡암을 올려다 보았다.

 

 

그 주둥이 부분, 바위를 용으로 볼 때 입이 되는 그곳에는 여의주(如意珠)가 물려 있어야 했다.

 

 

바로 그곳에 샘이 하나 있었다.

 

향기는 거기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영약이 있단 말인가?' 

 

능설비는 의아해 하며 위로 떠올랐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곤륜파의 운룡팔식(雲龍八式)을 써서 떠올랐다.

 

 

그는 샘가에 사뿐이 내려설 수 있었다. 

 

"오오, 이것은!" 

 

능설비는 우뚝선 채 탄성을 자아냈다.

 

 

그의 발 아래에 금혈채(金血彩)를 뿌리는 샘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혈, 혈룡연혼보액(血龍煉魂寶液)!" 

 

능설비의 두 눈이 놀람으로 더욱 크게 떠졌다. 

 

혈룡연혼보액은 지령(地靈)을 받은 액체로 땅의 정화가 담긴 기사회생의 영약이었다.

 

 

백골에 살을 붙인다는 영약이 능설비의 망막에 보이는 것이었다. 

 

"하늘이 하늘이 나를 살리려 하다니, 이럴 수가!" 

 

능설비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지체없이 영약으로 떨어져 내렸다. 

 

"지금은 다른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

 

어서 빨리 내상을 치유한 다음 이 칙칙한 곳을 빠져나가 그 추악한 자의 목뼈를 분질러 버려야 한다!" 

 

그는 이를 갈다가 혈룡연혼보액을 마시기 시작했다.

 

 

보액이 목줄기를 타고 흘러들어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는 한 말(斗) 정도 되는 액체를 모조리 다 마셔버렸다. 

 

얼마 후, 그는 극심한 졸음을 느껴야 했다. 

 

"약, 약기운이 너무 강하다." 

 

능설비는 땀을흘리기 시작했다.

 

 

그는 손으로 이마를 닦으려다가 흠칫 놀랐다.

 

그의 손은 금빛이었다.

 

 

자세히 보니 손뿐만이 아니었다.

 

 

온통 전신이 금빛이었다.

 

 

약물이 몸을 금빛으로 물들인 것이었다. 

 

"나의 마공보다도 강한 힘이었던가?" 

 

그는 중얼거리다가 스르르 정신을 잃었다. 

 

약효는 아주 강했다.

 

능설비는 운기행공도 하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능설비는 무엇인가가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천지현관(天地玄關)의 무너짐, 청량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사지백해를 돌며

 

그를 다시 한 번 탈태환골(脫胎換骨)시키고 있었다.

 

피부도 한 겹 벗겨졌다.

 

 

허물어지는 것은 끝이 아니었다.

 

 

그것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능설비는 앉아운기행공을 했다.

 

 

그는 뜻밖에도 마공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는 금강보리신공으로 운기행공을 했다.

 

 

혈룡연혼액은 모든 내외상(內外傷)을 씻어낸다.

 

 

 그의 피에 섞인 혼탁한 마성마저도 모조리 녹아 버렸다.

 

 

그는 체내의 잠재력을 모조리 일으킨 상태였다.

 

 

그의 전신에서 일어나는 금빛의 광휘가 사위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칠주야 후. 

 

능설비는 두 손을 앞으로 천천히 내미는 자세를 취했다.

 

 

우르르르릉! 하는 우레소리가 나더니 수십 장 밖에 있던 호수에서

 

격한 물보라가 일어나며 물기둥이 하늘로 치솟았다. 

 

"하핫, 나의 내공이 전보다도 더 강해졌다." 

 

능설비는 기쁨에 넘쳐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큰 기쁨과 더불어 이상한 마음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제 살인하는 것이 싫다. 나를 망친 혈수광마웅이거늘

 

아아, 그를 잡아 처단하는 일조차 웬지 내키지 않는다.' 

 

그는 이제껏 자신의 뜻과는 달리 살아온 것이었다.

 

 

과거가 없는 사람인 양, 그는 광활한 우주에 혼자 내팽개쳐진 기분이 되는 것이었다. 

 

'일단 이곳을 나가자.' 

 

그는 중얼거리며 움직였다.

 

 

내공을 그리 쓰지 않아도 몸은 섬전(閃電)같이 움직였다.

 

 

스슥! 그는 헐렁한 옷자락을 바람에 날리며 빠른 속도로 사라져 갔다.

'무협지 > 실명대협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9장 女人아, 이름은 묻지 마오!  (0) 2014.06.22
제38장 魔王再出道  (0) 2014.06.22
제36장 一千番 銅牌  (0) 2014.06.22
제35장 惡魔는 地獄으로  (0) 2014.06.22
제34장 魔王을 부르는 자여  (0) 2014.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