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39장 女人아, 이름은 묻지 마오!

오늘의 쉼터 2014. 6. 22. 19:00

제39장 女人아, 이름은 묻지 마오!

 

 

 

 

 

가을의 향기에 젖어 한껏 시린 계류는 넓은 계곡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계곡의 경사면에는 능선에서 늘어진 칡덩쿨이 거미줄처럼 얽혀져 있었다.

 

 

덩쿨 사이로 제법 커다란 입구를 가진 동굴이 보였다. 

 

"으으, 음." 

 

여인의 가녀린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동굴 바닥에는알몸의 여인이 뉘여져 있었다.

 

 

여인이 걸치고 있던 누더기는 아무렇게나 한쪽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다소 여윈 몸이었지만 봉긋한 육봉과 가녀린 세류는 예전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 줬다. 

 

그녀는 다름아닌 설옥경이었다.

 

 

능설비는 그녀 앞에 좌정한 채 손 끝으로 진맥을 짚어갔다. 

 

"음, 정말 심한 상태다.

 

그러나 추궁과혈(推宮過穴)로 혈맥을 바로잡고 진기로 마화를 태울 수만 있다면 회복의 가능성은 있다." 

 

능설비는 손을한데 합했다.

 

그의 두 손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설옥경(雪玉卿). 그녀는 진정 기구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신녀곡주(神女谷主)를 죽인 죄로 곤륜분원(崑崙分院)에 연금을 당했었다.

 

 

그녀는 갇혀 살다가 갑자기 광기에 사로잡혀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자살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그녀의 상심과 최책감,

 

그리고 원한과 회의는 그녀의 심지를 파탄으로 이끌어갔다.

 

 

결국 풍진의 부유 속에 그녀는 나병에 걸려 이토록 참혹한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그녀는 멍하니눈을 뜨고 있었다. 

 

" ." 

 

그녀의 눈에는생기가 없었다.

 

 

언뜻언뜻 피어오르는 광기마저 없었다면 이미 죽음이 깃든 눈이었다.

 

 

능설비는 두 손에 회생지기(回生之氣)를 일으킨 다음 손바닥을 펼쳤다.

 

 

설옥경의 몸은 아주 더러웠다.

 

 

오래 전부터 달라붙은 오물과 흙먼지가 파충류의 비늘처럼 보였다.

 

 

하지만 능설비의 눈에는 그녀의 이런 모습조차 곱게만 느껴졌다. 

 

"이제 편해질 테니 염려 마라." 

 

그는 친누이에게 하듯 다정하게 말하며 손바닥을 설옥경의 유근혈에 댔다.

 

 

그녀의 가슴은 아주 부드러웠다.

 

 

질좋은 비단을 어루만지는 기분이었다.

 

 

따뜻함도 있었다. 

 

여인의 가슴 거기에는 사내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

 

 

아득함이랄까? 동경(憧憬)을 자아내는 모성(母性)이 거기에 있다.

 

 

능설비는 이상한 동요를 느꼈다.

 

 

만화지의 요화(妖花)들을 초개같이 보았던 그가 아닌가?

 

 

그리고, 냉월로 위장한 화빙염에게도 여색 이상의 무엇은 느끼지 못했던 능설비. 

 

"아름답다." 

 

그는 이상하게도 포근한 기분을 느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하게 변한 설옥경.

 

 

하나, 능설비는 그녀의 더러운 가슴에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마저 들었다. 

 

그는 추궁과혈에 앞서 그녀의 가슴에 입술을 댔다. 

 

"나를 용서하기 바라오. 용서한다는 말은 아아, 나의 평생을 통해 이번이 처음이오." 

 

그는 회색빛 눈의 설옥경을 응시하며 추궁과혈을 시작했다.

 

 

봉긋한 앞가슴에 손이 닿았다.

 

 

능설비의 손은 낚싯줄에 걸린 물고기같이 파르르 떨곤 했다.

 

 

설옥경의 몸에 온기가 일어났다.

 

 

오랜 유랑과 병고 속에서 쇠퇴할 대로 쇠퇴했던 생명지기가 서서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능설비는 설옥경의 회음부(會陰部)에 손을 댔다.

 

 

그는 지극히 막대한 진원지기를 쏟아부었다.

 

 

무인으로서 진원지기의 소실은 내공의 감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능설비는 공력의 퇴보 따위는 생각지 않았다.

 

 

그녀의 역병과 마화를 치유해 회생시킬 수 있다면 자신의 내공이 탈진한다 해도 두렵지 않았다.

 

 

검은 숲이 비(雨)에 젖는다. 땀의 비에. 

 

'마공을 쓰면 안 된다.' 

 

능설비는 현문강기를 발휘했다.

 

그의 손에서는 무당진전수법이 시전되었다. 

 

파사쇄마의 태청신공(太淸神功)! 

 

능설비는 그것을 강호의 어떤 백도명숙보다도 능숙히 시전할 수 있었다. 

 

"으으, 음." 

 

설옥경은 다소고통스런 신음성을 토해냈다.

 

 

그녀는 더운 듯 몸을 자꾸 보챘다.

 

 

능설비의 입가에는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녀의 피부는 우윳빛으로 변색되며 희뿌연 김을 모락모락 피워냈다. 

 

쓰라진 과거는재로 태워지고 그녀는 새롭게 탄생되는 중이었다. 

 

마른 장작이 피워내는 향은 독특했다.

 

 

타닥, 탁. 모닥불은 낮은 비명을 지르며 동굴 안을 훈훈하게 덮혔다.

 

 

가을 산녁의 싸늘한 밤공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모닥불 위로는진흙에 싸인 꿩 세 마리가 구워지고 있었다.

 

 

특별한 조리 기구가 없는 사냥꾼이나 유랑인들이 흔히 쓰는 구이법이었다.

 

 

장작불에 벌겋게 구워진 진흙을 벗겨내면 꿩의 털이 고스란히 빠지고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살덩이가 먹음직스럽게 나타난다. 

 

능설비는 죽립을 쓴 채로 나뭇가지로 꿩을 싼 진흙덩이를 뒤적였다.

 

 

한쪽만 구워지면 진흙이 터진다.

 

 

그는 길게 숨을 토해내는 설옥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어느새 고운 비단옷을 걸치고 있었다.

 

 

능설비는 몇 마리 사냥감을 저잣거리에 내팔아 비단옷을 사온 것이다.

 

 

작은 발에는 곱게 수놓아진 꽃신까지 신겨져 있었다. 

 

"여 여기가 어딜까?" 

 

설옥경은 몸을일으켜 앉으며 몽롱한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시선이 불가에 앉아 있던 능설비 쪽에 멈춰졌다.

 

 

그녀는 두통을 느낀 듯 손 끝으로 정수리를 짚었다.

 

 

아미가 곱게 찌푸려졌다. 

 

"아아, 머리가 아파." 

 

능설비는 조심스런 눈빛으로 그녀를 살폈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느껴졌다. 

 

광기가 사라진설옥경의 눈은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천진무구한 소녀의 눈이었다.

 

 

하지만 지혜로운 이성과 굳건한 의지의 빛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누구지? 흐음, 그리고 씩씩하게 생긴 무부(武夫)께서는 어떠한 이름을 갖고 계신지요?" 

 

능설비는 몹시착찹했다.

 

 

설옥경의놀라운 변화가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알 수 있었다. 

 

'내 백도무공은 오래도록 수련해왔던 마공의 수위에 훨씬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설옥경의 몸은 살릴 수 있었지만 정신은 회복시키지 못했다.' 

 

백치여인 설옥경. 

 

달리 생각한다면 그녀에게 있어 과거를 상실한 것은 다행일 수도 있었다.

 

 

다시금 그녀의 기억이 되살아난다면 그녀는 평생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것도 하늘의 뜻이라면 흔쾌히 받아들이자. 

 

능설비는 기분을 환기시키며 꿩다리 한 쪽을 떼어내 그녀에게 건넸다. 

 

"넌 내 사촌 누이다. 이름은 설화(雪花)라고 하지." 

 

"호호, 눈꽃이오? 좋은 이름인데요?" 

 

설옥경은 자신의 본명을 잊은 채 이제부터는 설화라는 이름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녀는 다시 두통을 느낀 듯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으음, 한데 당신을 보고 있으면 왜 이렇게 가슴이 울렁거리는지 모르겠어요." 

 

" ?" 

 

능설비는 뒤적이던 나뭇가지를 불 속에 던져 넣었다.

 

 

그녀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은 그의 존재는 여전히 악령의 앙금으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나는 구마령주인가?' 

 

그는 자신에게물었다.

 

 

하지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명확한 결론은 낼 수가 없었다. 

 

"호호, 자기 이름도 모르나요? 바보 같으니라고." 

 

설화는 도톰한딸기 입술을 벌리고 웃었다.

 

 

그녀는 십 세 소녀같이 명랑했다.

 

 

의식 수준이 십 세 소녀 정도로 퇴조된 탓이었다.

 

 

뇌호혈에 상처를 준 마독이 해소되지 않는 한 치유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본래의 정신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서는 능설비의 구마절기를 능가하는 백도신공을

 

알고 있는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호호, 자기 이름도 모르다니." 

 

설화는 고기 조각을 입에 넣으며 오물거렸다.

 

 

능설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설화, 나는 바보같이 이름을 잃었다.

 

잊은 것은 아니나 본래의 이름을 버린 사람이니까." 

 

"호호, 그럼 실명(失名)이군요?" 

 

"핫핫." 

 

능설비는 따라웃었다.

 

 

그녀의 순진하면서도 단순한 답변에 동화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실명이라 그것을 이름삼아 갖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곡은 먹물처럼 짙은 밤으로 뒤덮혔다.

 

 

하지만 자신을 잃은 두 남녀의 도란거리는 속삭임은 끊임이 없었다.

 

 

능설비는 한적한 산동(山洞) 속에서 이전에 맛보지 못했던 행복감을 만끽했다.

 

 

그 어떤 화려함도 그에게 주지 못했던 따뜻한 무엇이

 

그를 일대마종에서 탈바꿈시켜가고 있었다. 

 

인간의 정(情)이란 실로 위대했다.

 

 

혹독한 지옥수련을 통해 인간 병기로 키워진 그가 서서히 다정함을 지닌

 

정의로운 사람의 아들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은 물리적인 힘이 아닌 정신적 순화였다.

 

 

허무와 회의에서 깨어난 능설비가 원하는 것도 인간 사이의 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사로운 아침햇살이 내리쪼이는 관도 위를 걷는 두 청춘남녀가 있었다. 

 

"네게 쉴 곳을 찾아 주겠다. 그 다음 나는 떠나야 해." 

 

능설비는 설화의 손을 잡고 달렸다. 

 

"쉴 곳은 없어도 되요,

 

실명가가(失名歌歌). 나를 떼어놓지만 않으면 됩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무서워요." 

 

설화는 자꾸 능설비의 가슴에 매달렸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듯 눈시울을 붉혔다. 

 

"으음, 악마가 나타나요. 자꾸 무서운 것이 나타나요." 

 

설화는 능설비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떨어지기 싫어하는 강짜가 아니었다.

 

 

지독한 두통 때문인지 이마에는 식은땀까지 송글송글 맺혔다.

 

 

능설비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를 가볍게 안아들었다.

 

 

마독의 침해는 무던히도 그녀를 괴롭혔다. 

 

얼마나 갔을까?

 

능설비는 길모퉁이를 돌다가 거대한 장원(莊院)을 보게 되었다.

 

 

드넓은 죽림(竹林) 한가운데 있는 장원.

 

그 장원은 오행방위(五行方位)에 따라 세워졌다. 

 

"보기만 해도 아름답다. 저런 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필시 마음이 좋은 사람일 것이다." 

 

능설비는 설화를 바라봤다. 

 

"으으, 음" 

 

설화는 잠에 취한 상태였다. 

 

"너의 아름다운 눈빛을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다." 

 

능설비는 중얼거리다가 위로 날아올랐다.

 

 

그는 어풍비행술로 죽림을 넘었다.

 

 

그는 탄지지간 움직여 장원 문 앞에 이를 수 있었다.

 

 

장원 문은 꽉 닫혀 있었다.

 

 

지나치도록 고요한 분위기가 불길하게만 느껴졌다.

 

 

거대한 철문(鐵門) 위에는 커다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 

 

'대의검방(大義劍幇)' 

 

용사비등(龍蛇飛騰)한 글이 편액(偏額)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 편액 아래로 작은 글씨가 첨부됐다. 

 

'의숙(義叔) 신품(神品)이 장천(長天)을 위해 붓(筆)을 들어 적도다' 

 

"신품이라면?" 

 

능설비는 흠칫놀라워했다. 한동안잊고 있었던 신품소요객의 음성이 그의 고막을 두드렸다. 

 

의검방을 찾아가라! 

 

비로소 그는 차분히 생각을 풀어갔다. 

 

'그러고 보니 나인촌에 은자를 실어다 주던 사람도 의검방이라 했었지.

 

흠, 그럼 이곳의 주인되는 사람은 신품소요객의 조카일까?' 

 

능설비는 혈마잔혼애 아래에서 죽은 신품소요객을 기억했다. 

 

'너는 나의 아들.' 

 

그는 오만하게도 그렇게 말했었다.

 

 

능설비는 그것을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여기는 상태였다.

 

 

이때 냉담한 음성이 그를 회상에서 이끌어냈다. 

 

"돌아가게, 젊은이!" 

 

문 뒤에서 창노한 목소리가 들렸다. 문 틈으로 능설비를 보고 있었던 듯했다. 

 

대의신타자(大義神駝子) 추량(芻亮). 

 

그는 의검방의총관(總官)이었다. 

 

의검방은 상권(商權)을 장악한 문파였다.

 

 

대강이남(大江以南)의 범선(帆船), 기마(騎馬) 중 반 정도가 의검방의 허락하에 움직이는 상태였다.

 

 

하나, 의검방은 분명 무림계가 아니었다.

 

 

방주되는 의검신협(義劍神俠) 사마청천(司馬靑天)은 무림계의 일에 끼어들지 않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었다.

 

 

한데 대문 가운데에는 붉은 쪽지가 붙어 있지 않은가? 

 

'봉(封)' 

 

그것은 방파의봉문을 의미했다.

 

 

그 어마어마한 상권이 몰락이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남의 힘에 의해 굴복한 것인가.

 

 

이것은 실로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돌아가게, 의검방은 문을 닫았으니까!" 

 

"흠." 

 

능설비는 잠시망설였다. 

 

'곤란하군. 설화를 맡겨야 홀가분해지는데.'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려 해도 마땅한 의탁처를 발견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비록 봉문을 했다지만 내방객까지 막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다행히 그의 능력으로 봉문의 어려움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다면 설화의 의탁 문제는

 

보다 쉽게 해결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름대로 계산이 선 그는 문으로 다가섰다.

 

 

순간 오천 근의 힘이 담긴 암경이 문을 사이에 두고 뻗어나왔다.

 

 

하나, 능설비는 봄바람을 맞고 가는 황소처럼 태연히 문 앞으로 다가섰다. 

 

"내, 내가고수(內家高手)군?" 

 

대의신타자가 흠칫 놀랐다. 

 

"집이 넓은 듯하여 한 가지 부탁을 하려 하오." 

 

"무, 무슨 부탁? 설마 천외신궁사자(天外神宮使者)는 아니겠지? 이미 거절한다는 뜻을

 

적은 편지를 전했다." 

 

"천외신궁?" 

 

"훗훗, 그 일을 모르는가? 사흘 안에 이곳을 바치지 않으면 근처 백 리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인다고 그들이 협박했다는 것을?" 

 

대의신타자의 음성은 분노에 차 있었다.

 

 

능설비는 슬쩍 죽립을 치켜올렸다. 

 

"천외신궁의 사자가 대체 뭐기에 대의검방을 협박한다는 겁니까?" 

 

"철면사자(鐵面使者)!" 

 

"철면사자? 그자의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려 있단 말이오?"능설비는 농담조로 한 마디 던졌다. 

 

"쯧쯧, 보아 하니 무림인인 것 같은데 강호 정세를 이토록 모른단 말인가?" 

 

대의신타자는 탄식어린 어조로 대략의 상황을 일러 주었다. 

 

철면사자. 

 

그 이름은 은면사자(銀面使者) 아래이다.

 

 

은면사자는 금면마종(金面魔宗) 휘하의 사자단주(使者團主)이고, 그 수는 백에 달한다.

 

 

은면사자 하나는 철면사자 백 명을 거느린다.

 

 

그리고, 한 명의 철면사자는 수십 명씩의 동면(銅面), 다른 말로 불릴 때에는

 

귀면사자(鬼面使者)라 하는 자들을 부린다. 

 

대의신타자는 몹시 불쾌한 투로 말했다. 

 

"철면사자 하나가 오늘 중 여기 올 것이네.

 

우리 방주님은 그들과 싸울 작정을 하고 사람을 보낸 것이네." 

 

" ." 

 

"훗훗, 그들 더러운 무리들을 패배시키기는 힘드나 이곳을 지키기는 쉽지.

 

이곳은 신품소요객이라는 기인의 조카되시는 분이 지은 곳이라네.

 

보기와는 달리 철옹성이지." 

 

"신품소요객이 이곳을 지었오?" 

 

대의신타자는 꼬치꼬치 캐묻는 상대의 질문에 대답하기도 지겨웠다.

 

 

강적의 침입에 대비해야 하는 그로서는 더 이상 능설비의 말상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네. 자, 알았으면 돌아가게!" 

 

"그럴 수 없소." 

 

능설비는 여전히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신품소요객을 잘아는 사람이오." 

 

대의신타자는 입이 딱 벌어졌다.

 

 

천하의 기인 신품소요객이 누구던가?

 

 

그와의 절친함을 감히 내세울 수 있는 상대의 존재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진, 진정 그분을 잘안단 말인가?" 

 

대의신타자는 문 틈새로 바싹 눈을 들이대며 능설비를 훑어보았다. 

 

"내가 업고 있는 이 여인은 그분과 절친한 분의 후예요." 

 

"그, 그게 정말인가?" 

 

"그렇소." 

 

능설비는 손을쳐들었다. 

 

'속이자는 것은 아니다.' 

 

그의 손이 허공에서 어지럽게 흔들리며 무수한 손그림자를 그려냈다. 

 

소요선무장력(逍遙仙舞掌力). 

 

그는 강호에 소문이 자자한 신품소요객의 절기를 당사자보다 더욱 능숙한 솜씨로 시전했다. 

 

"아아, 설마 그대가 바로 본인이 기다리던 사람이란 말인가?" 

 

전혀 새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나타났다.

 

 

늙은 꼽추, 그리고 그 뒤에 청포노인이 서 있었다.

 

 

청포노인은 바로 의검신협 사마청천이었다. 

 

"신품소요객 숙부께서 보내신 사람이란 말인가?" 

 

"그런 셈이오." 

 

능설비는 다소캥기는 감이 있었지만 시치미를 뗐다. 

 

"아아, 그럼 그분이 과거 내게 부탁한 것을 찾으러 왔단 말인가?" 

 

"뭘 말이오?" 

 

"그분은 내게 큰 것을 맡기셨네.

 

나는 의검방을 세워 그것을 이뤘고 언제고 그분이나 그분의 부탁을 받은 사람이

 

그것을 찾으러 올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네. 한데,

 

그분이 혈적곡에서 구마령주와 함께 죽었다는 이상한 소문이 나돌아 울적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네.

 

하지만 난 믿지 않았지." 

 

의검신협은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는 듯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능설비로서는 생각지도 않게 깊이 연관되는 기분이었다.

 

 

신품소요객은 대체 무엇을 맡겼단 말인가. 

 

"아아, 들어가세, 어서!" 

 

의검신협은 능설비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 순간 예리한 파공성과 함께 죽림을 뚫고 들이닥치는 한 떼의 적의복면인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철면(鐵面)을 쓴 외팔이이고, 나머지는 귀면(鬼面)을 쓴 검수들이었다.

 

 

번쩍이는 가면들은 햇살에 번들거리며 흉험한 기운을 발했다. 

 

"헷헷, 잘 나왔다!" 

 

철면구를 쓴 자는 웃으며 손을 쳐들었다. 

 

"와아아!" 

 

"우우, 어서 장원을 바쳐라!" 

 

구리로 만든 귀면을 쓴 자들은 아귀처럼 함성을 질렀다.

 

 

가면을 통해 드러난 눈빛은 탐욕과 파괴본능으로 번뜩였다.

 

 

펄럭이는 옷자락마다 핏빛 수실로 선명한 글씨가 수놓아져 있었다. 

 

'천외신궁(天外神宮)' 

 

오호, 무림사 이래 가장 강력한 마도천하를 이룩한 집마전 천외신궁!

 

그곳의 마졸들이 마침내 능설비 앞에 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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