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34장 魔王을 부르는 자여

오늘의 쉼터 2014. 6. 22. 18:53

제34장 魔王을 부르는 자여

 

 

 

어느 사이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봄이 가고 산야의 신록(新綠)은 녹음(綠陰)으로 울창해졌고 강물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상류 쪽에서 폭우가 있었기 때문일까?

 

 

불어난 물로 도도히 흘러가는 대하(大河)는 우레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끼우욱!

 

새 울음소리가 나며 금조가 허공에서 훌훌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거대한 금빛 수리였다.

 

 

그 수리의 등에는 흑삼서생(黑衫書生) 하나가 타고 있었다. 

 

'직접 찾아가면 그와 싸울 수 없다. 전 백도와 싸우기 이전에 그와의 싸움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흑삼인은 결단의 의지가 역력한 표정을 지으며 수리의 등에서 훌쩍 떨어져 내렸다. 

 

'금조를 타고 가면 불리하다. 금조를 나보다도 더욱 잘 부리는 사람이 바로 그자니까!' 

 

흑삼서생의 눈빛은 별빛을 닮았다.

 

 

밤하늘에는 무수한 성광(星光)이 흩어져 있다.

 

 

그믐이기 때문인지 별빛은 유독히도 가슴을 저미는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흑삼서생은 타고 온 수리를 날려 되돌려 보냈다.

 

 

수리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는 허리에 매달려 있는 패검을 쓰다듬었다. 

 

'훗훗, 광혈패검을 굳이 취한 이유는 하나 바로 그자의 칼로 그자를 쳐죽이기 위함이다!' 

 

그는 능설비였다.

 

 

놀랍게도 그는 단신으로 온 것이었다.

 

 

그는 전에 갖고 있지 않았던 제왕의 기운을 갖고 있었다.

 

 

그가 나타나자 산하가 숨을 죽였다.

 

 

천하만물이 그의 잔혹스러운 기운에 겁을 집어먹는 듯했다. 

 

'감히 나를 암살하려 하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능설비는 갑자기 살기를 짙게 피워올리며 칼을 빼들었다.

 

 

차아앙! 날카로운 금속성이 울리며 광혈패검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등천일정도(謄天一頂刀)!" 

 

산천을 떨쳐 울리는 일갈이 터지며 파파팍! 검기가 벼락치는 기세로 뿌려졌다.

 

 

섬전과도 같은 검기가 뻗어나가며 이십 장 앞에 있던 거목(巨木)의 허리가 싹뚝 잘렸다. 

 

"으으음 괴롭다." 

 

능설비는 검기를 발출하고 난 후 몸을 휘청였다.

 

 

그가 자신하고 있는 구마절기는 하나하나 막강한 내공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내상을 입은 상태에서는 시전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능설비는 아직도 고금제일마도고수(古今第一魔道高手)임에 틀림없었다. 

 

"만나기만 하면 일 초에 쳐죽이리라! 내게 그 정도 힘은 남아있다." 

 

능설비는 이를갈며 시선을 위로 쳐들었다.

 

 

그의 시선이 닿는 검은 구름 위, 검푸른 빛으로 도도한 자태를 과시하는 산봉우리가 있었다. 

 

태화산으로 불리는 곳이다. 

 

능설비는 산세를 보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날카롭고 장엄해 당장 허물어질 듯 위험한 산세, 그것이 그의 가슴에 동질감을 심어 주었다. 

 

'나란 놈을 닮았군.' 

 

능설비는 이를드러내 보이며 하얗게 웃었다. 

 

그가 자연을 보고 친하게 여긴다면 백도인들은 몹시 의아해할 것이다.

 

 

그러나 능설비는 누구보다도 자연의 느낌을 잘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성취하고있는 대마성(大魔性)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결국 인심(人心)의 한 중요부분이 아니겠는가? 

 

능설비는 산세를 바라보다가 어풍비행술(馭風飛行術)로 날아올랐다.

 

 

눈 깜짝할 사이 그의 모습은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산자락 속으로 사라져 갔다. 

 

이경(二更). 

 

혈적곡에서는 제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곡 내에는 스물여덟 개의 장대가 준비되었고, 장대마다에는 수급 하나씩이 걸려 있었다. 

 

'보라. 마(魔)의 최후(最後)를!' 

 

그런 글귀가 적힌 깃발이 도처에 걸렸다.

 

 

마도이십팔수의 수급이 소금에 절여서 부패되지 않게 처리되어 장대에 걸린 채 하늘 아래 속죄하고 있는 것이다. 

 

제주(祭主)는 천기미인 주설루였다.

 

 

그녀는 운리신군의 후광(後光)과 그리고 선사인 쌍뇌천기자의 후광 덕분에 동의대호법(同義大護法)이

 

된 상태였다.

 

 

그녀는 몹시 분주했다. 

 

"구마령주란 놈이 꼭 나타날 것이니 진세(陣勢)를 보다 철저히 해 주세요." 

 

그녀는 이곳저곳 다니며 호법(護法)들과 의견을 나눴다. 

 

그녀가 주관하는 대복수제(大復讐祭)는 구마령주에게 죽은 사람들의 망령(亡靈)을 위로하는 제전이었다.

 

 

대복수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열 가지 검진(劍陣)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고 있었다. 

 

"구마령주는 수만 명의 기라성 같은 수하를 거느리고 있어요. 그가 수하들을 모조리 끌고 올 것에

 

대비하여 필사의 대전을 치룰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주설루는 낭랑한 목소리로 노명숙들을 독려했다. 

 

제단(祭壇)은 길이가 이십 장에 달했고 제단은 텅비어 있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면 그 위에 수많은 마도의 수급으로 제수(祭需)가 놓여질 것이다.

 

 

사람들은 거기에 절을 하고 백도의 복수가 달성되기를 빌어마지 않을 것이다. 

 

밤은 점점 더 이슥해져 갔다.

 

 

삼경(三更) 무렵, 혈적곡 어귀로 괴영(怪影) 하나가 모습을 나타냈다. 

 

언제 다가섰는지 모르게 다가선 괴영, 얼굴이 흰 흑삼청년이 낙락장송 아래에 선다.

 

 

그는 번득이는 안광으로 혈적곡 어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매복(埋伏)이 겹겹으로 둘러쳐져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진(大陣)은

 

바로 흑살윤회겁진(黑煞輪廻劫陣)이라는 것이지.' 

 

능설비, 그가 소리없이 혈적곡 앞에 와 있는 것이었다.

 

 

그는 제사에 가서 이십팔수의 복수를 하기 이전 한 가지 일을 해야 했다.

 

 

구마령주로서가 아닌 능설비로서 해야 할 일, 그것은 한 사람을 처단하는 일이었다. 

 

'나를 마왕으로 기른 자 그는 내 손에 죽어야 한다.

 

나는 그자가 저 안의 어딘가에서 우두머리로 행세하고 있음을 안다.' 

 

능설비는 차갑기 그지없는 미소를 피워올렸다. 

 

"어쩌면 놈은 자신이 있음을 나에게 과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능설비는 마도대진이 조금 변화된 상태에서 백도고수들에 의해 시전되어졌다는 것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천하를 속이는 자 그자는 뛰어난 모사가(謀事家)임에 틀림없으나 죽음만은 피하지 못한다.' 

 

능설비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발에 힘을 가했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자갈 하나가 그의 발에 밟혀 박살이 났다.

 

 

그 순간에 능설비의 모습은 어둠 속으로 물이 스며들듯 사라져버렸다. 

 

그가 모습을 감추자마자 휘익, 휙! 밤공기를 가르는 가벼운 파공성이 일며 네 군데에서

 

각기 네 명씩이 나타났다.

 

 

열여섯명은 찰나지간에 십여 장을 가로질러 소나무 아래 이르렀다.

 

 

그들은 혈적곡 주위를 경계하고 있던 무사들이었다. 

 

"돌이 깨져 있군." 

 

"흠, 아무도 보지 못했으니 잠입자(潛入者)라고는 여길 수 없지만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열여섯 명은 능설비의 발 아래 부서진 돌을 보며 중얼대다가 근처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흩어져 찾아봅시다." 

 

"나는 저쪽으로 가겠소." 

 

"위급한 일이 있으면 신호하시오." 

 

그들은 서로 약속을 나누며 사방으로 흩어져 갔다. 

 

열여섯 명의 무사들 중에서 철대협(鐵大俠) 감우(甘羽)란 자가 있었다.

 

 

그는 키가 후리후리하고 체격이 당당한 사람으로 흑삼을 걸치고 있었다. 

 

그가 어둠 속을 면밀히 살피고 있을 때, 누군가의 손이 소리없이 뻗어 나오며 그의 마혈을 찍어 버렸다.

 

 

그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의식을 잃고 쓰러져야 했다. 

 

이각 후, 주위를 살피기 위해 사방으로 흩어졌던 열여섯 명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다. 

 

"잠입자는 없는 것 같소." 

 

"나도 못 발견했소." 

 

"일단 곡으로 돌아갑시다. 조금 후면 진세가 더욱 강해질 것이니 미리 안으로 들어가야 하오." 

 

열여섯 명은 그러한 말을 주고받은 다음 혈적곡 쪽으로 돌아갔다.

 

그들 중에는 방금 전 누구에겐가에 의해 점혈당했던 철대협 감우도 버젓이 끼어 있었다.

 

 

그는 분명 의식을 잃고 쓰러지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금 철대협 감우의 행세를 하고 있는 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사경초(四更初)가 되자 진세를 강화하기 위해 무사들의 숫자가 몇 배로 불어났다.

 

 

요소요소에 매복한 사람들의 수를 다 헤아리기 위해서는 백 사람의 손가락 발가락이 모두 필요할 것이다. 

 

철대협 감우는자신의 거처로 가지 않았다.

 

 

그는 슬쩍 위사(衛士)들의 무리에서 빠진 상태였다.

 

 

그의 지위는 부호법(副護法)이었다.

 

 

그는 느릿느릿 제전이 거행되는 곳으로 다가갔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며 진한 피안개가 흩어졌다. 

 

혈적곡은 본시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얼마 전 해독제가 뿌려져 독이 다 제거되기는 했으나 땅바닥의 황량함을 본다면

 

누구라도 질겁을 하고 얼른 나가버릴 것이다. 

 

곡의 내부는 습기를 잃어 푸석푸석한 마른 땅으로 대부분이 울퉁불퉁한 돌바닥이었다. 

 

오목한 분지(盆地) 모습의 혈적곡은 굉장히 거대한 면적이었다.

 

 

동서로 칠 리, 남북으로 오 리에 달하는데 초목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땅이 뜨거운데? 흠, 어디엔가 분화구(噴火口)가 있다. 그래서 땅이 항상 뜨겁고 메마른 것이다.' 

 

철대협 감우는바닥을 살피며 천천히 걷다가 결국 무시 무시한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그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전신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스물여덟 개의 기둥에 수급 하나씩을 매달고 있는 참수대(斬首臺)! 

 

" !" 

 

그의 눈빛이 갑자기 섬뜩한 독광을 폭사했다.

 

턱이 덜덜 떨리며 딱딱 소리를 냈다. 

 

'철저히 그대들의 복수를 해 주겠다!' 

 

잔혹한 혈광을흘리는 철대협 감우, 그는 바로 능설비가 아닌가?

 

 

능설비는 감쪽같이 신분을 바꿔 혈적곡 안에 잠입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충절을 바친 마도이십팔수의 수급이 효시된 것을 목격하고 더욱 비장해졌다. 

 

마도이십팔수는 마도천하의 건설을 위해 젊음과 영혼을 불사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그들은 거미줄 같은 마도의 조직에 있어 맥(脈)을 잇는 역할을 했던 것이었다. 

 

'마도는 이들의 희생으로 인해 절대로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능설비는 주먹을 으스러지게 거머쥐었다. 

 

'비록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들의 복수는 단념하지 않으리라!' 

 

그는 터지려는울분을 애써 눌러 참았다. 

 

'마도를 배반한 혈루대호법 그자를 찾아가 쳐죽이고 나서 백도인들과 결전을 벌이겠다.' 

 

그는 이십팔수의 수급에서 눈길을 돌렸다.

 

 

그는 미리 보아둔 금지(禁地) 쪽이라 여겨지는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혈적곡의 내부에는 혈동(血洞)이 있었다.

 

 

말이 동굴이지 사실은 협도(狹道)를 말한다. 

 

곡 전체를 자욱하게 뒤덮고 있는 혈무(血霧)는 거기서 흘러나왔다.

 

 

혈무는 십이 시진 내내 위력적으로 뿜어졌다.

 

 

혈무가 뿜어지는 협도의 앞에는 입가에 약사건을 대고 있는 고수 백팔 명이 지키고 있었다. 

 

이름하여 소림백팔나한(少林百八羅漢) 그들은 피독단(避毒丹)을 세 알씩 먹고도 혈무의

 

음기(陰氣)를 이길 수 없어 해독약이 뿌려진 사건으로 입을 막으며 협도 앞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협도 속에는 대체 무엇이 있는 것일까? 

 

영부(令符)가를 소지하지 않은 자에게는 아예 출입을 금하고 있어 소림백팔나한의 이목을 속이고

 

협도의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능설비는 일각전부터 협도를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귀식대법(龜息大法)보다 절묘한 단호잠종술(斷呼潛踪術) 덕분에 그는 정체를 숨길 수 있었다.

 

 

그의 얼굴도 철대협 감우에서 자신의 얼굴로 회복된 상태였다. 

 

'모조리 쳐죽여 버릴까?' 

 

그는 지독한 살의를 느끼며 검자루에 손을 댔다. 

 

'아무리 소림백팔나한이라 할지라도 나를 막지는 못한다.' 

 

능설비가 칼을빼내려 할 때 삐익! 가벼운 호각소리가 나더니 백팔나한진이 뒷쪽으로 물러났다. 

 

대체 무슨 일일까?

 

 

능설비가 조금 의아해할 때, 절벽 윗쪽으로부터 많은 수의 그림자들이 일제히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바로 무당의 삼십육천강검대와 칠십이지살검대의 무사들이었다.

 

 

무당고수(武當高手) 백팔 명이 소림백팔나한진이 물러난 자리로 훌훌 떨어져 내리는 동시에

 

거대한 검진 하나가 펼쳐졌다. 

 

협도의 입구를지키는 검진은 세 시진을 주기로 교대가 되고 있었다.

 

 

그 이유는 협도에서 이는 암경이 매우 지독하기 때문이었다.

 

하여간 협도 앞은 여전히 천라지망에 휘감긴 상태였다. 

 

'저 안에는 그놈이 있기 쉽다. 놈은 내가 미리 올까 두려워 백도고수들로 하여금

 

자신을 지키게 하고 있는 것이다.' 

 

능설비는 그렇게 단정지으며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발아래를 살폈다. 굳은 돌바닥이었다. 협도의 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그곳밖에 없는 듯했다. 

 

'지둔행(地遁行)을 쓰자. 내공의 소모가 클 것이나 그길밖에 없다.' 

 

그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가 무공의 구결을 암송하며 기력을 집중시키자

 

아주 경미한 소리가 나며 그의 몸이 땅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공이 힘을 발휘해 땅 속으로 파고드는 것이었다.

 

 

역시 구마루에서 배운 솜씨는 훌륭했다.

 

 

눈을 부라리며 천라지망을 펼치고 있는 무당의 백팔고수들조차 능설비가

 

자신들의 발밑을 통과해 협도 안으로 잠입해 드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일각이 채 지나지 않아서 능설비는 검진의 뒤 협도의 안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코에서는 핏물이 줄줄 나왔다.

 

부상을 당한 터에 내공을 과도하게 소모한 탓이었다. 

 

'아프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배에는 아직도 보상비탄에 당했던 상처가 남아 있었다. 

 

'그놈은 나의 헛점을 너무나도 잘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당했던 것이나, 이제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오히려 그 일로 인해 좀더 많은 것을 깨달은 것이다.' 

 

능설비는 소리없이 걷기 시작했다.

 

 

그는 걸으면서도 운기행공할 수 있었다.

 

 

지둔행을 쓰느라 소모되었던 내공이 점차 회복되었다. 

 

얼마를 갔을까?

 

 

돌연 능설비의 눈앞으로 거대한 석벽이 나타났다.

 

 

분지의 한 벽이 되는 석벽인데 높이는 실로 엄청났다. 

 

능설비와 절벽사이에는 이상한 곳이 있었다.

 

 

다른 곳에 비해 지대가 한결 낮은 그런 곳이 있었다.

 

 

절벽 아래의 단애(斷崖), 그곳이 바로 혈적곡의 심장부였다.

 

 

피안개는 낭떠러지 아래서 스물스물 기어오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혈마잔혼애(血魔殘魂崖)라 불렀다. 

 

'오래 전에 세상을 피로 씻던 혈마가 있었다.

 

혈마는 정의를 신봉하는 천신(天神)에게 죽었다.

 

천신은 혈마를 혈적곡의 깊고 깊은 웅덩이에 내던졌다.

 

바로 그곳에 피웅덩이가 생겼으니 아아,

 

그곳을 바로 혈마잔혼애라 한다.

 

혈마의 저주(詛呪)가 피안개로 피어오르는 곳 누가 감히 그곳을 건너겠는가!' 

 

혈마잔혼애는 그러한 전설이 있었다. 

 

움푹 파인 부분의 폭은 십 장 정도였다.

 

 

절벽 아래까지 가려면 그 피안개의 수렁을 넘어야만 했다. 

 

절벽 바로 아래, 한 사람이 절벽을 보는 자세로 서 있었다.

 

 

능설비는 그 뒷모습을 보는 순간 이를 갈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군.' 

 

그는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지체없이 시형을 뽑아 날아올랐다.

 

그는 혼신 공력을 다해 떠올랐다. 

 

우르르르릉 웅덩이 밑에서부터 불어오는 혈풍이 그를 휘감았다.

 

 

능설비는 내공의 힘으로 그것을 뚫고 날아가다가 손을 쳐들었다.

 

 

스르르릉!

 

가슴을 에일 듯한 쇳소리가 나는가 싶자, 파팍!

 

절벽아래 우두커니 서 있던 자의 허리께가 끊어져 나갔다. 

 

능설비는 검을거두며 절벽 아래쪽으로 내려 서다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이럴 수가 밀랍인형이라니?" 

 

능설비는 아차하는 심정이 되었다.

 

 

그의 칼날아래 허리가 끊어진 것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이었던 것이었다. 

 

'혈수광마웅인 줄 알았는데 허수아비라니!' 

 

그가 인형을 보고 허탈해 할 때, 느닷없이 둥둥둥!

 

어둠을 진동시키는 북소리와 함께 외침이 터져 나왔다. 

 

"환영한다, 구마령주!" 

 

"역시 운리신군이시군. 너를 여기서 보게 된다는 예언이 적중되었으니!" 

 

도처에서 함성이 일어나며 고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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