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33장 魔의 하늘

오늘의 쉼터 2014. 6. 22. 18:51

제33장 魔의 하늘

 

 

 

주설루는 호기심을 느끼는 듯 눈빛을 반짝이며 운리신군에게 물었다. 

 

"어떤 신묘한 것인지요?" 

 

"일컬어 이독제독(以毒制毒)이라는 것이다. 독은 독으로써 제거한다는 뜻이지." 

 

"이독제독이라고요?" 

 

주설루는 운리신군이 제시한 방법이 의외라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후훗, 마물(魔物)로 마물(魔物)을 치는 것이지. 구마령주란 놈이 한 짓을 생각해 봐라.

 

이제와서 그놈을 제거하는 데 대체 무엇을 가리겠느냐?" 

 

"하, 하긴 그렇습니다만." 

 

주설루는 구마령주가 무림에 일으킨 피바람을 생각하며 한차례 치를 떨며 말끝을 흐렸다.

 

 

그녀에게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 

 

잠시 사이를 둔 다음 그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대체 어떤 것으로 놈을 제압하시려는지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지금 놈은 내상을 입은 상태다.

 

후훗, 놈이 온다면 뼈를 묻고 갈 수밖에 없는 비방(秘方)이 내 머리 속에는 아주 많단다." 

 

운리신군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며 속을 알 수 없는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도대체가 드러내 보이지 않는 속을 알 길이 없는 노인이었다.

 

 

계피학발의 늙은이 운리신군 그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군방기루(群芳妓樓)의 위층. 

 

능설비는 오랜만에 면구로 얼굴을 가리고 무림마도의 기라성 같은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모두 그가 살아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뜨거운 감루를 흘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능설비는 곧 하늘이었다.

 

 

그가 죽었다면 그 결과는 무서웠을 것이다.

 

 

마도인들은 죽을 각오를 하고 철저하게 보복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황하(黃河)가 피로 물들고, 구름이 피비린내에 젖고 말았을 것이다. 

 

능설비는 사람들을 쭈욱 둘러봤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그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감히 금색면구를 향해 얼굴을 들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것은 모두 능설비에게서 전에 없는 기도가 풍겨나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대기도(大氣度)! 

 

능설비의 몸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힘은 어떠한 사람도 흉내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다오." 

 

능설비가 문득손을 내밀었다. 

 

"예엣!" 

 

옆에서 준비하고 있던 만리총관이 힘차게 대답하며 능설비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는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쟁반 위에는 크기가 비둘기알만한 옥주(玉珠) 하나가 놓여 있었다.

 

 

빛이 희고 광채가 아주 훌륭한 것으로 보아 아주 귀중한 물건임에 틀림없었다. 

 

백룡태극신주(白龍太極神珠)! 

 

그 구슬은 일성(一城)을 사고도 남을 만한 값어치를 지니고 있었다.

 

 

구슬에서 뿜어지는 빛은 장내에 모여있는 모든 사람을 유혹할 만했다.

 

 

모든이들의 시선이 능설비에게로 집중되었다. 

 

무가지보(無價之寶)의 신주! 능설비는 왜 그것을 대령시킨 것일까? 

 

"듣거라!" 

 

능설비는 예의냉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멀리 있는 사람이나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그의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하는 말처럼 아주 또렷이 들렸다. 

 

"무슨 명이십니까?" 

 

모두 긴장한 눈빛으로 능설비를 쳐다보았다. 

 

"이것은 백룡태극신주라는 것이다.

 

값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이것을 지니면 내게서 절세비학(絶世秘學) 백 초(百招)를 전수받는 특권을 누릴 것이다." 

 

백 초의 절세비학 전수라는 말에 사람들은 군침을 삼켰다.

 

 

능설비에게서 단 일 초의 무공을 전수받는 것도 무상의 영광으로 생각하는 그들이었다.

 

 

그런데 한 두 초도 아닌 백 초라니 .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만약 능설비 말대로 백 초의 절세비학을 전수받는다면

 

현재의 지위보다 현격히 높아질 것은 뻔한 노릇이었다.

 

 

그런 것들을 따지고 보면 능설비를 제외한 그 누구도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능설비는어떤 것에 그토록 엄청난 현상을 거는 것일까?

 

 

그를 암살하고자 했던 화빙염의 배후에 있는 자의 수급에 상금을 거는 것일까?

 

 

아뭏든 그것은 능설비만이 알고 있는 일이다. 

 

사람들은 능설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가 어떤 말을 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장내에는 일순긴장감이 감돌았다.

 

 

사람들은 모두 질식할 것만 같은 침묵 속에 빠져 들었다. 

 

모든 것이 능설비의 입에 달렸다.

 

 

그러나 능설비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괴기스러운 금색면구뿐이었다. 

 

어느 순간, 

 

"어느 누구든 좋다." 

 

드디어 능설비가 무뚝뚝히 말을 시작했다. 

 

" !" 

 

사람들은 능설비의 말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기울였다. 

 

"일장 거리를 격해 장력을 쳐내서 나를 조금이라도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보물의 주인이 되어 백초비학을 전수받을 수 있을 것이다." 

 

능설비는 말과함께 손을 들어 보였다.

 

 

미리 준비한 고서(古書) 한 권이 그의 손에 쥐어져 만인에게 보여졌다. 

 

그것은 귀퉁이가 너덜너덜한 것으로 보아 상당히 오래된 비급이 틀림없었다. 

 

'천축(天竺) 마마대불비경(魔魔大佛秘經)' 

 

그것은 이미 절전되었다고 알려진 비급이었다.

 

 

그 안의 것을 익히면 시시한 초부(樵夫)라 할지라도 일 년 안에 무림계의

 

절정고수가 될 수 있다는 엄청난 무공비급이었다.

 

 

그런데 그 어마어마한 것을 주는 조건이 구마령주를 휘청이게 하는 것이라니. 

 

"일, 일 장 거리라구요?" 

 

"영주께서는 내상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신 줄로 아는데요?" 

 

"속, 속하들이 어떻게 감히 영주께 손을." 

 

모든 사람들이능설비의 말을 듣고 나서는 난감한 표정들을 지었다.

 

 

어떻게 감히 자신들의 하늘인 능설비에게 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들 중 누구 하나 몸을 일으키는 사람이 없었다. 

 

"후훗, 시험할 용사가 없는가?" 

 

능설비가 목소리를 높혔다. 

 

" !" 

 

"그리 심각하게 생각지들 말게." 

 

능설비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하자 그때서야 줄 뒷쪽에서 한 사람이 일어났다. 

 

"속하 섬서성(陝西省) 분타주(分舵主) 능천비룡(凌天飛龍)이 무엄하게도 그것을 시험하겠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능천비룡이라는 사람.

 

 

그는 최근 들어 마종지하(魔宗之下)에 든 사람이었다.

 

 

무공은 강하나 마도에 쌓은 공이 적고 나이가 어려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키가 아주 큰 사람이었다. 

 

"하핫, 호기가 좋다. 자, 어서 오라!" 

 

능설비는 웃음으로 그를 마중했다. 

 

능천비룡은 젊은이답게 패기만만한 모습으로 능설비에게 다가섰다.

 

 

그의 손은 솥뚜껑만했고 검은 빛을 띠고 있었다. 

 

능천비룡의 우장에는 묵철신장(墨鐵神掌)이라는 실로 악독한 마공이 수련되어 있었다.

 

 

도검(刀劍)으로 쳐도 피가 나오지 않을 정도의 외공(外功)이고,

 

손을 흔들면 내공을 쓰지 않아도 썩어버릴 정도로 지독한 삭철마공(削鐵魔功)이 발출된다. 

 

그때였다. 

 

"능천비룡, 무엄하다!" 

 

"감히 영주께 나서다니!" 

 

여기저기서 창노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나이가 많은 마도인들이 능천비룡을 꾸짖는 것이었다. 

 

'내가 괜히 일어난 것일까?' 

 

능천비룡이 찔끔해 하자, 

 

"두려워하지 말고 와서 시험하라!" 

 

능설비의 일갈(一喝)이 모든 소리를 제압시켰다. 

 

잠시 주저하던능천비룡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태사의 앞으로 다가섰다. 

 

"죄, 죄송합니다, 영주!" 

 

"죄송할 것이 있는가?

 

자아, 어서 시험해 보게.

 

자네의 손을 보니 오른손에다가 뼈를 깍는 고련(苦鍊)이 있어야만

 

익힐 수 있는 묵철신장(墨鐵神掌)을 익힌 듯하군." 

 

능설비가 말과함께 슬쩍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팍! 하는 소리가 나며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비급은 만리총관이 들고 있는

 

쟁반 위에 가서 사뿐히 떨어졌다.

 

 

만리총관이 뒷쪽으로 물러나자, 

 

"흐으웁!" 

 

기다렸다는 듯능천비룡은 심호흡을 시작했다.

 

 

우두둑! 하는 뼈마디 부러지는 소리가 나며 놀랍게도 그의 오른손이 두 배 길이로 늘어났다.

 

 

그 손에서 검은 기류가 물씬물씬 일어나더니 한순간 꽈르릉! 우레소리를 내며 시커먼

 

기류가 파도치듯 능설비의 가슴으로 짓쳐들어갔다. 

 

위맹하기 짝이없는 묵철신장이 자신을 노리고 쏘아져 오는데도 능설비는 손을 쓸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직후 펑! 하는 소리가 진동하며, 

 

"어이쿠!" 

 

답답한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신음소리의 주인공은 능설비임이 마땅하나 놀랍게도 능천비룡이 비명과 함께

 

뒤로 오 장이나 튕겨나가는 것이 아닌가! 

 

능설비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은 처음의 그 자세 그대로였다. 

 

'손이 부러졌다. 무, 무슨 호신강기이기에?' 

 

능천비룡은 아득해지는 정신 속에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각은 거기에서 끝이 났다.

 

 

그는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허공을 날아가다 이름 모를 노고수의 팔 위로 떨어져내렸다.

 

 

솥뚜껑만하던 그의 손바닥, 도검으로 쳐도 베어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던

 

그의 손바닥에는 거북이 등가죽 같은 균열이 나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검붉은 핏물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능설비에 대한 공포와 존경을 일으키는 것이 되었다. 

 

능설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능천비룡은 그를 휘청이게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당한 꼴이 된 것이다. 

 

능천비룡은 마도에서 백 번째 정도에 끼이는 고수였다.

 

 

그런 그가 능설비의 호신강기를 이기지 못하고 팔병신이 되었다는 것은 능설비가

 

아직 건재함을 가장 확실히 밝히는 일이 되었다. 

 

"아아!" 

 

"영주께서는 역시 마도의 하늘이시다!" 

 

능설비가 건재한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모두 탄성을 자아냈다. 

 

"흠, 신주(神珠)를 얻을 정도의 실력은 안 되어도 마경을 얻게는 되는군." 

 

능설비는 만리총관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만리총관은 그의 눈빛을 받고 허리를 숙였다. 

 

능설비가 허리를 숙이고 있는 만리총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비급을 능천비룡에게 주고, 신주는 그의 아낙이나 연인에게 전하도록." 

 

"옛!" 

 

만리총관이 다시 한 번 황망히 허리를 숙이자, 

 

"핫핫핫!" 

 

능설비는 갑자기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그것은 군림(君臨)의 사자후와도 같았다. 

 

"으으, 고막이 터질 듯합니다." 

 

"웃, 웃음을 거두어 주십시오." 

 

능설비의 웃음소리에 실린 공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앞줄에 있던

 

사람들의 입술 사이에서 핏물이 흘러나왔다.

 

 

아아, 이를 두고 하늘(天)이라 하지 않을 마도인이 어디 있겠는가! 

 

능설비는 웃음소리 하나로 모든 사람에게 기쁨과 경악을 안겨준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금색면구 뒤에 있는 얼굴은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능설비는 몹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호기에 찬 군림마후는 부하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그는 정말 지독하게 다쳐 요양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인 것이다. 

 

만화지(萬花池). 

 

능설비는 세 명의 총관과 함께 있었다.

 

 

능설비의 손에는 막 전해진 배첩이 한 장 들려 있었다. 

 

'동의배첩(同義拜帖)' 

 

배첩은 구마령주에게 보내진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발행한 사람은 주설루였다. 

 

배첩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구마령주에게 전하노라.

 

너를 척살함은 곧 천의(天義)를 따름이라!

 

암살극에서 운좋게 벗어났음을 몹시 애통하게 여긴다.

 

아마도 마신(魔神)이 아직 너를 돕고 있기 때문이리라. 천하장악을 바란다면

 

꼭 우리 백도고수들을 베어 죽여야 할 것이다.

 

혈적곡(血積谷)에서 제전(祭典)을 거행할 것이다.

 

자신이 있다면 와서 너의 수하들의 수급이 제물(祭物)로 바쳐지고

 

백도명숙(白道名宿)들이 동심결의(同心決義)하는 것을 막아봐라!' 

 

능설비는 글자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폈다.

 

 

그의 표정은 몹시 무정했다.

 

 

그는 웃지도 않았고 노여워하지도 않았다. 

 

'주설루 나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본래의 빼어남을 잃어버렸다.

 

만에 하나 나를 죽이더라도 너는 무엇하나 얻지 못할 것이다.' 

 

능설비가 배첩을 들여다 볼 때, 

 

"영주, 꼭 가시렵니까?" 

 

만리총관이 능설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능설비는 아주간단히 잘라 대답했다. 

 

"물론이오." 

 

"조심하셔야 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두 다리를 붙잡아서라도 만류하고 싶습니다만

 

영주님께서는 속하가 간곡히 권한다고 들으실 분도 아니고." 

 

만리총관의 노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것은 진정으로 구마령주 능설비에게 보내는 충정의 표시이리라. 

 

능설비는 말없이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후훗, 내 신상에 변화가 생긴다면 이것을 노총관에게 주는 것으로 하리다." 

 

능설비는 말과함께 불쑥 한 가지 물건을 내밀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그가 착용하던 금색면구가 아닌가! 

 

"이, 이것을 왜 속하에게?" 

 

만리대총관이 깜짝 놀라 바라보자, 

 

"무슨 일이 있어도 천외신궁(天外神宮)의 축성은 완성시키시오. 아시겠소?" 

 

능설비가 신비스런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말꼬리를 돌렸다. 

 

"그, 그것은 속하의 명예를 걸고서라도 꼭 이행할 것입니다." 

 

"물론이오. 천외신궁의 완성은 고금마도계(古今魔道界)의 숙원이오.

 

누가 영주이건 태산에 마궁을 세워 천하 모든 사람이 높이 우러러보도록 해야 하는 것이오." 

 

능설비는 눈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만화총관에게로 향했다. 

 

만화총관은 능설비가 전수한 새로운 주안공을 익혀 이제는 중년 나이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능설비가 그녀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화빙염은 어찌 되었소?" 

 

"외상이 거의 다 나았습니다." 

 

만화총관이 공손히 대답하자 능설비는 저으기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흠 그녀는 내가 떠난 다음에 떠나보내도록 하시오." 

 

"미리 보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면 백도인들이 영주의 대범하심을 알고

 

사기를 잃을 텐데요?" 

 

만화총관이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밝히자 능설비는 나직한 웃음소리를 냈다. 

 

"후훗, 그렇게 한다면 그녀는 개봉부를 떠나자마자 암살당하오." 

 

"예에?" 

 

만화총관의 두눈이 동그래졌다. 

 

"지금 도처에는 적의 첩자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소.

 

그들은 백도를 위해 몸을 불사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자들이오.

 

만약 화빙염이 살아나갈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그대들이 더욱 잘알고 있을 것이오." 

 

" !" 

 

만화총관이 할말을 잃고 바라만 보자 능설비가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화빙염은 무공을 잃었소.

 

이용당할 대로 이용당하고 이제는 쓸모 없는 여인이 되었으니

 

돌려보내자마자 운리신군이 그 여인을 죽일 것이오.

 

나는 그것을 알기에 그녀를 내가 떠난 후에 보내고자 하는 것이라오." 

 

"아아!" 

 

만화총관은 능설비에 대해 또 한 번의 의혹을 느꼈다.

 

 

약관의 젊은이, 이제껏 백도의 고수들을 무참히 처단했던 젊은 마왕(魔王) 능설비 그런

 

그의 마음 속에 인간(人間)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일이었다. 

 

능설비는 총관들에게 세세한 것까지 자세히 지시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 그것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사자(死者)가 살아나 나의 자리를 대신할 것이오.

 

나는 죽을지 모르나 마도가 백도(白道)를 이긴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오." 

 

"죽은 자가 살아나다니요?" 

 

"무슨 말씀이신지?" 

 

노총관들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능설비는 대답을 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가겠소." 

 

그는 무뚝뚝히말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그의 뒷모습,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구마령주의 뒷모습이 오늘은 이상하게도

 

조금은 왜소하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한바탕 일이 벌어질 듯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태화산(太和山). 

 

중원의 명산으로 불리는 태화산으로 천하의 이목(耳目)이 집중되었다.

 

 

백도는 죽지 않는다는 기치를 내어걸고 구마령주와의 필사의 대결을 준비하고 있는

 

천하백도고수들의 모임이 거기에 있는 것이었다.

 

곧 피바람이 불리라.

 

 

그리고 살아남는 자는 승자(勝者)이고, 죽는 자는 영원한 패자로 낙인 찍힐 것이다. 

 

승산은 구마령주쪽으로 기울어졌다.

 

 

그는 백도가 보낸 자객(刺客)의 암습을 받고도 불사신(不死神)같이 살아나 백도를 전율케 한 것이었다. 

 

혈적곡(血積谷)에 쓸쓸한 바람이 불어 가고, 핏빛 안개가 스물스물 일어났다.

 

 

그 깊은 곳, 두 사람이 바위 위에 앉아 한가롭게 장기를 두고 있었다. 

 

한 사람은 술호로를 든 노도사였고, 한 사람은 온화하게 생긴 문사(文士)였다. 

 

"어젯밤 하늘을 봤는가, 현제(賢弟)?" 

 

술호로를 든 노도사가 맞은편의 문사에게 질문을 던졌다. 

 

문사가 대답을했다. 

 

"천마성(天魔星)이 혈마성(血魔星)에 가리워지더군요." 

 

"허허, 자네의 신복학(神卜學)이 노부를 능가하는 정도가 되는구먼.

 

이러다가는 무공을 포함한 모든 것을 자네에게 놀림 당하겠는데?" 

 

노도사는 말꼬리를 흐렸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딱! 

 

한가롭게 두어지는 장기소리만이 공허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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