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27장 열번째 美女

오늘의 쉼터 2014. 6. 22. 18:43

제27장 열번째 美女

 

 

 

매양있는 날(日)의 시작이다. 

 

아침녘 물 위를 흐르는 안개가 유심(幽深)하다면 화원(花園) 아래에 고즈넉이 피어나고 있는

 

안개는 바로 꽃밭을 맴도는 화향(花香)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좋은 날이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며 흰 손 하나가 안개 속으로 들어왔다.

 

 

풀빛을 건드리는 희고 긴 손가락은 미인의 옥지(玉指)같이 섬세한데,

 

바로 그 손가락 사이에 꽃봉오리 하나가 잡혔다.

 

 

팍!

 

꽃봉오리는 떨어지고 꽃잎 몇 장이 뿌려졌다. 

 

"흠!" 

 

꽃의 향기를 음미하듯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흰 손의 주인공은 며칠 사이 태풍(颱風)이 몰아치는 듯한 기세로 백도천하를 격파해 버린

 

태상마종이 아닌가! 

 

그는 표비장 화원에 있었다.

 

그는 눈(雪)보다 흰 백삼을 걸치고 있었다. 

 

그의 뒷쪽에는비녀(婢女) 두 명이 그림자같이 따르고 있었다.

 

 

오른쪽에 있는 아이는 옥접(玉蝶)이라 불렸고, 왼쪽에 있는 아이는 설랑이라고 불렸다.

 

 

물론 그것은 여인들의 진짜 이름은 아니었다.

 

 

능설비가 일천호(一千號)로 발탁되었듯이, 두 여인도 만화지의 색노로 발탁이 된 것이다. 

 

'향기가 없는 아이들이다.' 

 

능설비는 갑자기 곁을 따르는 두 여인에게서 혐오감을 일으켰다.

 

 

꽃송이가 그의 손바닥 안에서 짓이겨졌다. 

 

'내가 호감을 느낀 사람은 내 손에 죽은 몇 사람뿐이다.' 

 

그는 아이들을바라보았다. 

 

옥접과 설랑은그와 눈길이 닿자 수줍은 듯 얼른 눈을 내려뜨렸다. 

 

능설비는 갑자기 그네들을 조롱하고 싶어졌다.

 

 

마성(魔性)이 일어나기 때문일까?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비웃고 싶었다. 

 

"훗훗, 너희들은 내가 죽으라면 죽을 수 있느냐?" 

 

능설비가 느닷없이 흰 이를 드러내며 묻자, 

 

"하, 하명만 하십시오." 

 

"저희들은 복종하도록 자라났습니다.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 것입니다." 

 

옥접과 설랑은무릎을 꿇었다.

 

 

옷을 벗으라면 벗고, 몸을 바치라면 바치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그네들이 따르는 것은 능설비가 아니었다.

 

 

인간 능설비는 그런 존경을 받지 못한다. 존경을 받는 것은 구마루주(九魔樓主)였다.

 

 

능설비는 그것을 알기에 모든 것을 비웃는 것이다. 

 

그때 사르륵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가 나더니 만화총관이 헐레벌떡 뛰어들었다. 

 

"여기 나와 계시는군요, 영주?" 

 

만화총관은 능설비 앞에 다가와 얼른 허리를 숙였다. 

 

'이 여인도 내가 구마령주이기에 따르는 것일까?

 

내가 구마령주가 아니라도 내게 이렇게 충성할 것인가?' 

 

능설비가 속으로 생각하는데, 

 

"아아 속하와 함께 가시지요?" 

 

만화총관은 뺨에 홍조를 떠올리며 간청하듯 말했다. 

 

"무슨 일이오?" 

 

능설비가 약간눈살을 찌푸리자 만화총관이 재빨리 대답한다. 

 

"하여간 가 보십시오." 

 

" ." 

 

능설비는 지그시 바라보다가 말없이 만화총관이 인도하는 대로 따랐다.

 

 

만화총관은 신이 나서 일어나 걸었다. 

 

만화지 안. 

 

지하계단을 따라 스무 계단을 내려가면 복잡한 통로가 나타난다.

 

 

능설비는 처음으로 본전(本殿)이 아닌 비전(秘殿)으로 들어갔다.

 

 

코끝을 간지르는 육향(肉香)이 돌에 배어 있었다.

 

 

길게 이어진 통로 양쪽으로는 석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호홋, 영주님 눈에 잘 들려고 궁둥이를 우유로 닦느냐?" 

 

"피이이 그러는 너는?" 

 

청각 밝은 능설비는 석실에서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여인네들의 농을 들을 수 있었다. 

 

만화총관은 능설비를 한 석문 안으로 인도했다.

 

 

문을 들어서며 능설비는 방 안의 풍경을 일목요연하게 볼 수 있었다.

 

 

의자 앞에 작은 탁자가 있고,

 

그 위에는 안주 세 접시와 여아홍(女兒紅) 한 병이 잔과 함께 놓여 있었다.

 

 

탁자 앞에는 휘장이 벽같이 쳐져 있었는데 휘장은 아주 얇았다.

 

 

그러나 특이한 구조로 짜여져 안에서는 밖을 세밀하게 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쪽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휘장 너머에는 꽤 너른 석실이 있었다. 

 

"대체 뭘 하자는 게요?" 

 

능설비는 석실이 텅 비었음을 보고 만화총관을 바라보았다. 

 

"호호, 곧 미물(美物)이 들 것입니다.

 

그 중에서 영주님의 마음에 드시는 아이가 있으면 신호하십시오." 

 

"미물?" 

 

"계집들이지요." 

 

"이 안에도 수백 명이 있는데 그래도 모자라오?" 

 

능설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만화총관이 간드러진 웃음소리를 내며 대답한다. 

 

"호호홋, 숫자가 많기는 하나 영주님의 마음에 드는 아이가 없질 않습니까?" 

 

"그것은 이 안에 있는 여인들이 밉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남다른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겠소?" 

 

"아니올시다. 사실 여자는 향기가 있어야 합니다." 

 

만화총관이 심각해진 얼굴로 전음으로 말했다. 

 

"향기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길러진 미녀가 아닌 진짜 은어처럼 살아 팔팔뛰는 미녀를 구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내 마음에 차는 여인은 없을 것이오." 

 

"걱정마십시오.

 

이래뵈도 속하는 과거 천하제일색(天下第一色)이라 불렸던 여인입니다.

 

일각만 시간을 내어주시기만 하십시오.

 

속하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마음대로 하시오." 

 

능설비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푹신한 의자에 등을 깊이 파묻었다.

 

 

그는 낙화생 한 알을 집어들었다.

 

 

껍질째 소금물에 푹 삶은 낙화생이었다.

 

 

그는 그것을 입 안에 털어넣고 어금니로 가볍게 씹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뇌리에서 여자 생각은 벌써 지워졌다.

 

 

그는 앞으로의 대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화총관이 부는 휘파람 소리가 났지만 능설비는 눈도 뜨지않았다. 

 

그는 생각에 골몰해 있었다. 

 

'백도는 당분간 지리멸렬되리라.

 

이틈을 이용해 목줄을 쥐어야 한다.

 

그래야 적어도 반 세기 안에는 일어나지 못한다.' 

 

그는 십구비위와 이십팔수를 믿었다. 

 

'십구비위는 지극히 강하다.

 

어떠한 역경에서도 살 수 있다.

 

특히 일호는 이십팔수도 마찬가지다.

 

후훗, 그러고 보면 구마루를 세운 사람들은 무림사상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스승들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생각이 거기에 이를 때였다. 

 

끼익! 휘장너머에서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정면에 있던 문 하나가 열리며 사람들이 걸어들어왔다.

 

 

그 수는 이십 정도인데 반은 만화지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아주 큰 포대를 뒤집어 쓰고 있어서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를 가리고 있었다.

 

 

그들은 열 명의 만화지 여인들에 의해 조심조심 방 안으로 인도되었다.

 

 

그들은 방 가운데 즈음에 이르러 모두 걸음을 멈췄다. 

 

만화총관이 짤막한 명령을 내렸다. 

 

"시작하라!" 

 

그녀의 명령이떨어지자 취록색 옷을 걸친 여인 하나가 허리숙여 인사한 다음,

 

지체없이 포대를 뒤집어 쓴 사람 하나를 데리고 휘장 앞으로 다가섰다. 

 

' .' 

 

능설비는 무정한 눈빛으로 그들이 하는 양을 주시했다. 

 

취록색 옷의 여인은 휘장 바로 앞에서 멈춰섰다. 

 

"몸을 보여라!" 

 

취록색 옷을 입은 여인이 포대를 뒤집어 쓴 사람에게 속삭이듯 말하자, 

 

"흐흑 부, 부끄럽습니다." 

 

포대 안에서 흐느끼는 여인의 소리가 났다. 

 

"쯧쯧, 너는 황금 천 냥에 팔렸다. 그것이 없었다면 네 부모는 죽었다. 그것을 벌써 잊었느냐?" 

 

녹의여인이 전음으로 꾸짖듯 말하자, 

 

"알, 알겠습니다." 

 

포대 안의 여인은 그 말에 더 이상 거역하지 못하는 듯 뒤집어 쓰고 있던 포대를 벗기 시작했다.

 

 

포대가 벗겨지며 긴 머리카락이 나타났다.

 

 

그리고 나이 십육 세 정도의 앳된 얼굴이 나타났다.

 

 

 정말이지 꼭 깨물어 주고 싶은 귀여운 얼굴이었다.

 

 

용모만으로 따진다면 만화지 안에 있는 여인들만 못했다.

 

 

그러나 싱싱한 생기(生氣)가 살아 있는 느낌을 갖고 있다는 데에서 만화지 여인들과 달랐다. 

 

포대가 더 벗겨지며 동그스름한 어깨가 나타났다.

 

 

이어 발육이 다 되지 않아 조금 작아 보이는 젖가슴이 수줍게 자태를 드러냈다.

 

 

소녀는 수치스러운 듯 손을 들어 젖가슴을 가렸다.

 

 

만화지 안의 여인들이라면 절대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소녀가 젖을 가리자, 

 

"흥!" 

 

곁의 여인이 냉소로 은연중 위협을 했다. 

 

"흑흑!" 

 

미소녀는 그녀의 서슬에 얼른 손을 내리며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뜨거운 눈물이 딸기 입술까지 흘러내려 이슬방울처럼 떨어져 내렸다. 

 

헐렁하던 포대가 벗어지며 미소녀의 나신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탄력있는 살결에 배꼽이 움푹했다.

 

 

숲이 그리 울창하지 않는 아이, 여인이라 하기에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미소녀였다. 

 

만화총관이 능설비에게 슬쩍 귀뜸했다. 

 

"백설(白雪)이라는 아이입니다. 가무(歌舞)에 특히 능하지요.

 

백문옥(白文玉)이라는 가난한 문사(文士)의 딸이온데 자칫했으면

 

패가망신하는 것을 제가 부총관을 보내 저 아이를 사는 것으로 백문옥이 살고

 

저 아이는 만화지의 종이 되었습니다." 

 

만화총관이 장황한 설명을 늘어 놓자, 

 

"너무 어리군." 

 

능설비가 무관심한 어조로 한 마디 툭 내뱉었다. 

 

"마음이 차지 않으십니까?" 

 

만화총관이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당장 황금 만 냥을 주어 무사들의 호위 아래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시오." 

 

"예에?" 

 

만화총관은 능설비의 입에서 예기치 못한 말이 튀어 나오자 기겁하고 말았다.

 

 

황금 만 냥이나 들여 구해온 아이를 다시 황금 만 냥을 주어 돌려 보내라니,

 

그것도 무사들의 호위아래 .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로군." 

 

능설비의 따가운 시선이 자신에게 쏟아지자 만화총관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알, 알겠습니다." 

 

만화총관은 그만 벌레씹은 얼굴이 되고 말았다. 

 

'태상마종답지 않으시다. 그러나 이러한 마종이시기에 더욱 존경한다.' 

 

만화총관은 미소녀의 곁에 있는 여인에게 전음으로 능설비의 뜻대로 할 것을 전했다. 

 

녹의여인은 혀를 내둘렀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반박하는 마음이 들 만한 머리조차 없었다.

 

 

그녀는 무엇이든 명 받은 대로 행하는 것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상기하고 백설이라는 미소녀를 데리고 나갔다. 

 

얼마 후, 두 번째 녹의여인이 다가섰다.

 

 

사르르! 큰 포대가 벗겨지며 그 안에서 아주 호리호리한 여인 하나가 나타났다.

 

 

피부가 까무잡잡한데 눈이 몹시 고왔다.

 

 

반월(半月) 같은 눈망울, 그리고 길고 고운 속눈썹이 매우 고혹적이었다.

 

 

안으면 가슴 속에 감춰질 정도로 작고 귀여운 여인이다. 

 

흑주(黑珠).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흑주는 처녀가 아니었다.

 

 

장안성에서 가장 유명한 기녀였다.

 

 

그녀는 어젯밤 만화지 사람들에게 몸을 팔고 여기 온 것이다.

 

 

방중술을 스스로 터득한 여인으로 어떠한 사내라도 홀릴 줄 아는 눈빛과 말재간을 지닌 여인이었다. 

 

흑주는 아무런부끄러움도 없이 휘장 앞에서 교태롭게 몸을 흔들었다. 

 

"흐으음!" 

 

흑주는 휘장 안에 누군가가 있음을 알고 나긋한 비음을 발했다.

 

 

그녀는 운명을 바꿔줄지도 모르는 어떤 사람이 있음을 알기에 갖은 재간을 다 발휘하는 것이었다. 

 

얼마 후, 휘장 안에서 만화총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아이는 주방으로 보내라." 

 

'이럴 수가 흑주를 주방으로 보내라니!' 

 

흑주야말로 천하의 진짜 여인이라 여기고 거금을 들여 모셔온 녹의 여인은 얼굴을 무참히 일그러뜨렸다. 

 

"내가 왜 주방으로 가야 하죠?" 

 

흑주도 기가 막히다는 듯 항변을 했다. 

 

"가라면 가는 것이란다." 

 

녹의여인이 창백하게 질린 채 그녀의 연마혈을 점혈해 팔과 허리 사이에 끼고 밖으로 나갔다. 

 

세 번째 여인은 화옥(火玉)이라 불리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앞의 두 여인과 두 가지 다른 점이 있는 여인이었다.

 

 

첫째는 색목인(色目人)이라는 데에서 달랐다, 둘째는 체격이 남달리 크다는 데에서 달랐다. 

 

화옥은 몸이 가장 완벽한 여인이었다.

 

 

풍성한 젖가슴과 풍성한 둔부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가는 허리에 의해 지탱이 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화옥은 정열의화신인 듯 벌써 끈적한 눈빛을 발했다.

 

 

터질듯이 출렁이는 앞가슴과 만추 때의 황금들녘처럼 화려한 금빛 머리카락,

 

깊이를 모를 푸른 눈빛이 또다른 욕정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중원어도 할 줄 몰랐다.

 

 

그러나 그녀가 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 아닌가?

 

 

그녀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행복하게 해 줄 만한 미색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능설비는 화옥의 몸을 보다가 중얼대듯 말했다. 

 

"저 아이는 냉막하기만 한 십구비위 중 사내녀석들의 노리개감으로 쓰이게 배려하시오." 

 

"아, 아깝지 않으십니까?" 

 

정작 만화총관이야말로 아쉬운 표정이었다. 

 

"후훗, 저 정도 미색은 여기도 얼마든지 있다오." 

 

"호홋, 그런 말을 들으니 천만다행입니다." 

 

만화총관은 오랜만에 웃었다. 

 

화옥은 녹의여인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네 번째 여인인 무무(舞舞)가 휘장 앞으로 이끌려 나왔다.

 

 

그녀는 언제나 맨발인데 가무 솜씨가 일품이었다.

 

 

날아갈 듯 다시는 땅으로 떨어지지 않을 듯 환상적인 춤을 추는 여인이었다. 

 

능설비는 그녀의 춤에 맞춰 발장단을 했다. 무무는 신들린 사람같이 춤을 췄다.

 

 

올해 나이 스물다섯이었으나 아직도 미소녀로 보이는 금릉제일기(金陵第一妓)가 바로 무무였다. 

 

그녀는 황금 오만 냥에 팔려 만화지로 오게 됐다.

 

 

금릉의 재자가인들은 그녀가 실종했다고 몹시 섭섭해 할 것이다. 

 

무무는 능설비에게 선택이 되었다.

 

 

몸이 선택된 것이 아니라 그녀의 탁월한 가무 솜씨가 선택이 되었다. 

 

"저 아이는 옥접을 비롯한 만화지의 아이들에게 가무를 가르치는 부교두(剖敎頭)를 하라 하시오." 

 

"명대로 하겠습니다." 

 

만화총관은 능설비가 지시하는 대로 행했다. 

 

다섯 번째 여인은 이름을 이금방(李琴芳)이라 했다.

 

 

그녀는 기녀도 아니고 가난한 집의 딸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돈에 팔려 온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녀는 납치당해 온 것이었다.

 

 

미색을 따지자면 가히 천하절색이었다. 

 

이금방은 혼절한 상태에서 포대 속에서 끄집어 내졌다. 

 

능설비는 만화총관에게서 그녀에 대한 사연을 듣고는 불호령을 내렸다. 

 

"여인을 납치한 자는 마종의 명예를 더럽힌 자이니 즉시 사형시키시오.

 

그리고 저 여인은 금조(金鳥)에 태워서라도 하루 안에 제집으로 돌려보내 주시오." 

 

"모, 모두 영주를 위함이옵니다." 

 

만화총관은 자신의 성의가 일언지하에 묵살되자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능설비는 자신의 뜻을 바꾸지 않았다. 

 

"쯧쯧, 나를 위하는 일이기는 했으나 나의 평판을 나쁘게 하는 일이오." 

 

"감쪽같이 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은 모를지 모르나 바로 저 여인이 알고 있지 않소?" 

 

"하지만 저 아이는 절대 도망가지 못합니다." 

 

"마음이 머물지 않는 사람을 잡아 둘 수는 없는 것이라오." 

 

만화총관이 간청했으나 능설비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만화총관을 외면이라도 하듯 눈을 꾹 감았다. 

 

만화총관은 한숨을 쉬며 그렇게 부하들에게 전음으로 명했다.

 

 

분위기가 조금 침울해졌다. 

 

여섯 번째의 미인은 장미(薔微)라는 여인이었다. 

 

얼굴이 희고 가슴이 큰 여인이었는데 젖꼭지의 빛이 유독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탄탄하고 기름진 허벅지와 깊은 숲을 가진 경국지미색(傾國之美色)이었다. 

 

그녀도 화옥(花玉)과 마찬가지로 비위전(臂衛殿)의 색노(色奴)로 발탁이 되었다. 

 

일곱 번째 미인인 능능(陵陵), 그녀 역시 비위전 색노가 되었다. 

 

여덟 번째 미인 소소(少少),

 

아홉 번째 미인 교교(嬌嬌)도 모두 비위전 무사들의 노리개가 되었다. 

 

휘장 뒤에서 능설비는 무료함을 참지 못하고 낙화생을 바닥냈다.

 

 

여아홍도 어느 사이 다 마셔버린 상태였다. 

 

'일어나야겠군.' 

 

그는 마지막 술 한 잔을 입 안에 털어넣은 다음 몸을 일으키려 했다.

 

 

사실 그는 색에 대해서는 흥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머리 속에 있는 여인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여인말고도 너무도 많은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사르르! 열 번째 여인이 포대를 벗었다. 

 

"엇?" 

 

능설비가 갑자기 몸을 경직시켰다.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무심하던 그의 눈에 이채로움이 떠오른 것인가. 

 

'이럴 수가!' 

 

능설비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휘장너머 쪽을 다시 보았다. 

 

거기에 능설비의 눈을 시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

 

 

목석 같은 사내의 차가운 가슴을 여지없이 베어 버리는 냉염(冷艶)한 얼굴 하나

 

아주 차가운 얼굴을 한 여인이 열 번째로 능설비의 눈에 들어왔다. 

 

키가 훌쩍하게큰 여인인데 몸이 너무도 균형이 잘잡혀 있어 커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다소곳이 늘어뜨리고 있었다.

 

 

백옥같이 흰 살결과 부풀 대로 부푼 가슴, 그 끝에 걸려 있는 두 개의 앵두빛 유두!

 

미끄러지고 싶을 정도로 반드레한 배의 선(線)과 부드러운 굴곡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나신은 그대로 조물주의 걸작이었다.

 

 

그러나 모든 느낌이 너무도 차가워 정감이 가지 않는 여인이 열 번째의 여인이 되어

 

능설비의 눈에 띄인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이제 됐다!' 

 

만화총관은 능설비가 냉염한 여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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