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실명대협

제23장 피(血), 그리고 꽃(花)!

오늘의 쉼터 2014. 6. 22. 18:37

제23장 피(血), 그리고 꽃(花)!

 

 

정각대선사의 금강불괴지체(金剛不塊之體)는 허공에서 산산히 분쇄(分碎)되어 버린 것이었다. 

 

"대선사께서 패하셨다!" 

 

"으으, 놈이 이기다니!" 

 

사람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일부는 피눈물을 떨구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에서 능설비는 몸을 핑그르르 돌리며 서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으핫핫, 나를 따르지 마라. 너희들을 죽이고 싶지 않다." 

 

"서라!" 

 

"뼈를 묻고 혼백만 떠나리라!" 

 

백도고수들이 우르르 능설비를 뒤쫓기 시작했다.

 

 

능설비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기충소로 떠올랐다. 

 

"너희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줄 것이 있다." 

 

능설비는 수직으로 허공 높이 날아오른 다음 일순 정지했다. 

 

"똑똑히 보아 두어라. 내가 어떤 자인지를." 

 

능설비는 품을뒤져 작은 철주(鐵主) 하나를 꺼냈다.

 

 

순간 능설비를 쫓던 백도고수들 틈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피, 피해라. 축융화뢰다!" 

 

"비겁하게 화기(火器)를!" 

 

식견 많은 사람들이 그 물건을 알아보고 자지러질 때, 능설비의 손이 떨쳐지며 축융화뢰가 날아올랐다.

 

 

모두 기겁하여 분분히 몸을 숨기는데 그것은 그들 쪽으로 가지 않았다.

 

 

축융화뢰는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날아갔다.

 

 

콰콰쾅! 땅이 뒤집힐 듯한 우레소리와 함께 축융화뢰는 거대한 불기둥으로 자신의 자태를 바꿨다.

 

 

뜨거운 불바람이 몰아쳤다.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일어났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적어도 천 명 이상이 화상을 입었을

 

것이다.

 

 

모두 화마(火魔)의 숨결에 넋을 잃고 있는 사이 능설비는 귀신보다도 빨리 자신의 모습을 감춰 버렸다. 

 

"흐흑 놈이 이겼다. 놈은 화기를 갖고도 사람에게 쓰지 않았다.

 

그것은 백도는 무섭지도 않고 자신은 무공만으로도 백도를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천하에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다." 

 

천기선자 주설루는 통한의 눈물을 주루룩 떨궜다. 

 

그녀의 뒤에는태양천군(太陽天君)이 있었다. 

 

"소저, 놈을 죽여야 하는데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어이해야 할런지." 

 

태양천군이 탄식할 때, 

 

"현재로서는 그자를 잡을 방도가 없어요. 더 강한 무엇이 있어야 해요.

 

며칠 전 석부(石府)를 찾은 운리신군(雲裏神君)이란 광노인(狂老人)이 있었지요?" 

 

주설루가 무엇인가 생각이 난 듯 태양신군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태양신군이 영문을 모르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혹 그가 방법을 알지 모르니 어서 그를 불러요." 

 

"운리신군은 근처에 있습니다. 그는 사실 얼마 전부터 태음천군과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아아, 그는 내가 자신을 다시 찾을 줄 알고 있었군요." 

 

주설루는 갑자기 감탄해 마지 않았다. 

 

'운리신군(雲裏神君)'! 

 

그런 이름을 아는 사람은 주설루와 천기수호대뿐이었다.

 

 

그는 며칠 전 허름한 옷을 걸친 채 주설루를 찾았었다.

 

 

그리고 한 가지 광오한 말을 그녀에게 한 터였다. 

 

그는 그 자리에서 '노부에게 터전만 준다면 보름 안에 구마령주를 잡아드리겠소.' 라는

 

말을 해 중인들의 비웃음을 샀었다. 

 

주설루는 그의방문을 깜빡 잊었다가 갑자기 그를 다시 떠올린 것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이 부를 줄 알고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니 . 

 

동의지회(同義之會)는 구마령주 한 사람으로 인해 쑥밭이 되었다.

 

 

무림고수들은 기가 죽어 하나 둘 소림사를 떠났다.

 

 

정각대선사를 잃은 소림사는 허탈한 나머지 아무 것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구마령주가 무림에 천명한 것을 생각하며 고향으로 돌아갔다. 

 

구마령주가 명한 것은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오 일 안에 항복을 결정한다는 것은 무리였다.

 

 

돌아가는 데에도 삼사 일은 걸릴 것이고, 결정하는 데 또 며칠이 걸릴 것이니까. 

 

만화지(萬花池). 

 

뜨거운 물이 펄펄 끓고 있는 곳, 미끈한 젊은이 하나가 물에 몸을 담고 신비스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등뒤에는 미녀 하나가 서 있었다.

 

 

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아 눈부신 나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녀는 미청년의 등을 잘 주물러 주는 중이었다. 

 

"훗훗, 오늘 제일 운수 좋은 사람은 관(棺)을 짜는 사람일 것이다." 

 

미청년은 부드러운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잔혹한 웃음소리를 냈다. 

 

바로 능설비였다. 

 

그는 소림사에서 돌아와 만화총관의 강력한 권유를 이기지 못한 나머지 만화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어디일까? 

 

아주 비밀스러운 곳, 허름한 옷을 걸친 노도사 하나가 말하고 있었다. 

 

"노부 짐작대로라면 며칠 사이 백도계 명숙 중 반이 죽을 것이오.

 

구마령주란 자는 모든 일을 철저하게 해낼 것이오." 

 

" ." 

 

"그리고 놈을 제거할 기회는 바로 지금이오.

 

더 미룬다면 놈을 제거할 기회는 영원히 없어질 것이오." 

 

노도사는 며칠전 동의지회에 참석한 운리신군이었다.

 

 

운리신군의 앞에는 주설루가 단정히 앉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가 진중한어조로 질문을 했다. 

 

"운리신군의 복안(腹案)은 무엇인가요?" 

 

"제일 먼저 며칠 간 꼼짝 못 하게 해야 하오." 

 

" !" 

 

"두 번째는 놈의 손발(手足)을 끊는 것이오." 

 

"수하(手下)들을 없앤단 말인가요?" 

 

"그렇소." 

 

운리신군은 이미 계산이 되어 있다는 듯 아주 쉽게 대답을 했다. 

 

주설루가 재차질문을 했다. 

 

"세 번째는요?" 

 

"놈을 잡는 것이오." 

 

"구마령주를?" 

 

"후훗, 세 가지를 서둘지 말고 차근차근 할 수밖에 없소.

 

노부는 여기서 며칠 기다리겠소.

 

결코 다른 방법으로는 놈을 막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노부를 부르시오.

 

그때 첫 번째 방법부터 자세히 이야기하리다." 

 

운리신군은 그렇게 말을 맺었다. 

 

잔월이 흐릿한빛을 뿌리는 삼경(三更)즈음, 

 

아미파의 뒷쪽숲에서 서른여덟 줄기 독광(毒光)이 뿌려지고 있었다.

 

 

열아홉 명이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눈빛을 번득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각 후에 항복비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일거에 도륙을 내야 한다." 

 

어둠 속의 인물들은 능설비의 명을 받고 달려온 십구비위(十九臂衛)였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도록 훈련받은 야수들이었다. 

 

얼음장보다도 싸늘한 말을 뱉은 사람은 다름아닌 십구비위를 이끄는 혈견 일호였다. 

 

그들은 피에 굶주린 모습으로 기다렸다. 

 

아미파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두머리들은 중원의 동의지회에 참석하러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자파를 걱정한 나머지 허겁지겁 돌아오는 길일 것이고,

 

가까워야 천 오백 리 밖에 있을 것이다.

 

 

일각 안에 그들이 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각은 곧 지나갔다. 

 

"쳐라!" 

 

일호의 입에서싸늘한 냉갈이 터져 나왔다.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십구비위가 일제히 숲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피로 씻어라!" 

 

"우우!" 

 

열아홉 개의 마영(魔影)은 두 눈에서 독광을 뿜어내며 아미파의 본거지를 향해 날아올랐다. 

 

"누구냐?" 

 

"어엇? 거기 사람이 숨어 있었다니?" 

 

아미산의 승려들이 마영 열아홉 개를 발견하고는 야단을 떨었다. 

 

"태상마종이 명한 대로 십구로(十九路)로 갈라져 모두 능력껏 파괴하라!" 

 

꽈르르르-릉! 

 

혈견 일호의 명령이 떨어지자 마영들은 순식간에 열아홉 갈래로 갈라져 쏘아갔다.

 

 

그들의 몸놀림이 어찌나 신속한지 승려들은 그들의 형체도 제대로 구분할 수가 없었다. 

 

십구비위가 잠입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미파의 여기저기에서 시뻘건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사, 사람이 아니라 마귀들이다." 

 

그제서야 아미파의 승려들은 그들이 침입자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화광(火光)이 충천하며 대낮처럼 어둠을 밝힐 때 피를 뒤집어쓰고 죽어 넘어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으아악!" 

 

"침입자를 막아라!" 

 

고즈넉한 적막에 쌓여 있던 아미파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그들에게는 살인 훈련을 받은 십구비위의 공격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불어치는 피바람 누구도 그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같은 시각, 

 

전진파(全眞派)에서도 아비규환의 도륙극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우성(魔牛星)이 이끄는 고수들이 전진파를 기습해 무자비하게 도륙내는 것이었다. 

 

아미파와 전진파뿐만이 아니었다.

 

참담하기는 개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지들이 동냥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곤한 잠을 청하려 할 무렵 개방은 갑자기

 

개봉부(開封府)를 밝히는 거대한 불덩어리가 되고 말았다.

 

 

만리대표행에 숨어 있던 마도고수들이 개방으로 쳐들어가 개방총타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 불길은 능설비가 머물러 있는 군방기루(群芳妓樓) 근처 표비장(飄飛莊)까지 붉게 밝힐 정도로 컸다. 

 

능설비는 성찬을 앞에 두고 있었다.

 

 

주위에는 그가 손만 까딱이면 그에게 몸을 바칠 미녀들이 여럿 있었다.

 

 

식탁 앞에는 한 여인이 엎드린 채 울고 있었다. 

 

"흑흑 속하의 충성이 이 정도에 불과하다니 아아, 지금 당장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습니다." 

 

우는 여인은 만묘선랑이었다. 

 

"나는 총관을 고맙게 여기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능설비가 젓가락을 내려 놓으며 가볍게 미간을 찌푸리자 만묘선랑은 더욱 서럽게 흐느꼈다. 

 

"흐윽 만화지의 묘(妙)는 색(色)에 있사옵니다.

 

한데 여기 오신 이후로 아직 계집을 하나도 잠자리로 부르지 않으셨으니

 

이곳에 있는 아이들 모두 추녀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당장 절세가색(絶世佳色)을 구할 재간도 없고 정말 죽고만 싶습니다." 

 

능설비는 그제서야 만묘선랑의 의중을 헤아리고는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않을 것을 걱정하는구려?" 

 

"예?" 

 

만묘선랑이 의아한 듯 눈물이 그득한 시선을 들어 능설비를 바라보았다. 

 

"여기 있는 아이들이 미워 잠자리로 부르지 않은 것은 아니오.

 

나는 다만 색이 싫어 그러는 것뿐이오." 

 

"그럴 리가요." 

 

만묘선랑의 눈빛이 점차 놀람으로 물들어 갔다. 

 

능설비가 정색한 얼굴로 대답했다. 

 

"정말이오." 

 

"아아, 인간인 이상 색이 싫을 리가 있겠습니까?

 

자고로 영웅호색(英雄好色)이라는데." 

 

만묘선랑이 더욱 못 미더워하자 능설비는 흐릿한 미소를 입가에 지어 보였다. 

 

만묘선랑은 탄식하듯 말을 이었다. 

 

"아아, 무슨 말씀을 하셔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제가 영주의 마음에 차는 아이를 기르지 못했기에 영주께서

 

항상 홀로 잠자리에 드시는 것입니다." 

 

능설비는 대꾸하지 않고 다시 식사를 계속했다.

 

 

그의 변명이 맞는 것일까?

 

아니면 만화총관 만묘선랑의 말이 맞는 것일까? 

 

하여간 만화총관은 능설비가 혼자 밤을 지샌다는 것이 몹시 괴로운 모양이었다. 

 

얼마 후 능설비가 식사를 마쳤을 때, 

 

"오늘밤만은 혼자 지내실 수 없습니다, 영주." 

 

만화총관은 다짐이라도 받을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능설비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걱정은 말라 하지 않았소?" 

 

"영주께는 별 문제가 아니나 속하에게는 평생을 바쳐 준비한 것이

 

물거품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 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제자 아이들이 밉더라도 한번 품어 보십시오.

 

제가 방중술(房中術)을 잘 가르쳤는지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 직접 시험해 보십시오." 

 

"핫핫, 영주라는 지위가 그리 힘든 지위인지는 몰랐소." 

 

능설비가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만묘선랑의 제의를 수락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실 만화지에 기거하는 여인들은 향기가 없는 꽃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마음에 내키지 않아도 그녀들을 취해야 하는 지위가 바로 영주된 지위였다. 

 

반시진 후, 능설비는 만화지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과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었다.

 

 

그는 누워 방 천정을 보고 있었다. 

 

"으으음!" 

 

이름이 옥접(玉蝶)이라 불리는 여인은 능설비를 위해 그녀의 모든 것을 불살랐다. 

 

하지만 능설비는 쉽게 달아오르지 않았다.

 

 

오히려 무심해 보였다.

 

 

그는 여색마저도 짜증스러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머리 속에 여인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동경으로 힐끗 본 소로공주(昭路公主), 그에게 빠져들어 자신을 망쳤던 설옥경(雪玉卿),

 

그리고 가장 진한 인상을 남긴 여인 주설루(朱雪淚) . 

 

능설비는 그런여인들을 머리 속에 그리며 내키지 않는 육체의 향연에 빠져들었다. 

 

"아아악!" 

 

어느 한 순간, 옥접은 자지러지는 비명소리를 냈다.

 

 

뜨거운 불기둥이 그녀의 하체를 관통했기 때문이었다. 

 

"만화총관이 흡족해 하겠군." 

 

능설비는 짓궂게도 방 밖에서 엿듣고 있는 늙은 여인 만묘선랑을 위해 옥접을 아주 지독하게 괴롭혔다. 

 

'됐다, 됐어!' 

 

만화총관은 방안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에 박수라도 칠 듯이 기뻐했다. 

 

뿌연 미명이 움터오는 새벽이 오고 있었다. 

 

능설비는 연한금빛 옷을 걸치고 뜨락으로 나섰다. 

 

"벌써 완연한 봄인가?" 

 

능설비는 화원에서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꽃가지들을 바라보며 무심코 지내온 세월이 아쉬운 듯

 

나지막하게 뇌까렸다. 

 

그때, 휙! 하는 바람 소리가 나더니 만화총관이 분분히 들이닥쳤다.

 

 

그녀는 능설비의 앞으로 다가와 허리를 넙죽 숙였다. 

 

"밤새 소식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영주." 

 

"말해 보시오." 

 

능설비는 이날따라 화향(花香)에 듬뿍 취해들고 있었다. 

 

만화총관은 품안에서 쪽지를 꺼내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먼저 아미복호사에서 성공했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 ." 

 

능설비는 놀라워하지 않았다. 그에게 오히려 당연한 일일 뿐이었다. 

 

만화총관 만묘선랑의 보고가 이어졌다. 

 

"사천당가에서 성공, 전진에서는 구자(九子) 중 운학(雲鶴), 운송(雲松)을 제외한

 

일곱을 죽였고 막 돌아온 건곤금령자(乾坤金玲子)의 팔 하나를 자르는데 성공했다 합니다." 

 

"쯧쯧 건곤금령자를 척살해야 했는데." 

 

능설비가 혀를차며 오랜만에 운을 떼었다. 

 

만화총관은 쉬지 않고 말을 했다.

 

 

밤 사이 천하백도의 반이 무너져버렸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은 그리 먼 일이 아니었다.

 

 

표비장 밖으로 나가면 바로 그 일을 알게 될 것이다. 

 

개봉부에는 개방총타에서 시산혈해가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면 개방뿐만 아니라 천하의 정대문파(正大門派) 모두가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라는 소문도 암암리에 떠돌았다. 

 

"후훗, 이제 마무리만 남았다.

 

단신으로 나를 잡을 사람은 없음이 밝혀졌을 것이고 그래도 일말의 복수심은 있을 것이니

 

칠 일 안쪽으로 대항마복룡진(大降魔伏龍陣)이나 태청풍뢰진(太淸風雷陣)이 쳐지고

 

내게 도전장이 오리라." 

 

능설비는 마치앞날을 훤히 내다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만만해 했다.

 

 

그는 만화총관 곁을 지나쳐 만화지로 발길을 옮기며 한 가지 당부를 잊지 않았다. 

 

"사람들이 돌아오면 잘대해 주라고 만리총관에게 말하시오." 

 

"예." 

 

"그리고 나는 아침을 먹은 직후 낙양으로 떠나겠으니 그리 아시오." 

 

"만리대표행인가요?" 

 

"그렇소!" 

 

만화총관이 조심스럽게 묻자 능설비는 흔쾌하게 대답했다. 

 

만화총관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는 여기로 올 예정이 아닙니까?" 

 

"곧 올 것이오. 그런 다음 나를 찾아올 것이오.

 

그는 미리 알고 있으니 만화총관이 말하지 않아도

 

내가 거기 있는 줄 알고 제 집으로 갈 것이오." 

 

능설비는 밤새계집을 희롱한 것이 아니라 천하를 장악하고 다스릴 계획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머리가 대체 몇이란 말인가? 그 많은 계략을 짜내고도 저리 멀쩡하시다니.' 

 

만화총관은 능설비의 치밀함에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아수라 지옥으로 변해버린 개방총타 앞에서 뇌전신개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전신을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는 손에 순찰령(巡察令)을 들고 있었다. 

 

"무림동의맹이 내게 준 이것 으으, 지난 수십 년간 이 물건의 주인 노릇을 잘했다고

 

자부했었는데 이제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가 손아귀에힘을 가하자 쥐고 있던 동패가 산산이 박살이 났다.

 

 

뇌전신개가 명숙들과 더불어 숭산에서 일을 처리하는 사이

 

개방총타가 완전히 와해되고 만 것이다. 

 

뇌전신개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으으, 이제는 대항마복룡진(大降魔伏龍陣)을 치는 수밖에 없다." 

 

그가 한서린 음성을 뱉어낼 때, 

 

"방주, 제가 추천한 운리신군을 만나보지 않으시렵니까?" 

 

소림사에서 그를 뒤따라 왔던 주설루가 간곡히 말했다. 

 

"그럴 시간이 없소. 미안하오.

 

이럴 때일수록 소저의 선사(先師) 쌍뇌천기자 그분이 그리워지는구려." 

 

뇌전신개는 한탄하듯 말했다.

 

그러나 주설루는 실망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운리신군의 짐작대로다.

 

정파는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고 사부가 아니계신 천기석부는 종이호랑이라 여긴다.

 

모두 그분 말대로다.

 

그분은 어쩌면 사부의 화신일지도 모른다.' 

 

주설루는 그런일들을 생각하면 언짢았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사조(師祖)!" 

 

이십여 장 밖에서 뇌전신개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이내 취영보(醉影步)를 써서 급박하게 달려오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운중유개라는 사람으로 개방의 젊은 고수 중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었다.

 

 

그는 손에 쪽지 하나를 들고 있었다. 

 

"이, 이것이 사조께 전해졌습니다." 

 

운중유개의 얼굴은 아주 붉으락 푸르락 수시로 변했다. 

 

"무엇이기에 이리 호들갑스러우냐?" 

 

뇌전신개는 눈을 부릅뜨며 운중유개의 침착하지 못한 태도를 나무랐다.

 

 

그는 천천히 운중유개가 내미는 쪽지를 펼쳐 들었다. 

 

'구마령주가 무림동의맹 순찰에게' 

 

운중유개가 건네는 쪽지의 첫머리에 그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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