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장 一對 白道天下
종소리와 북소리가 요란하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이 소림사의 사문(寺門)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소림의 나한대진(羅漢大陣)이 놈을 잡기 이전 본파의 태청검진(太淸劍陣)으로 놈을 잡자!"
무당파의 검수들이 호탕한 기세로 질타해 나갔다.
"개방의 용호풍운진(龍虎風雲陣)이 구마령주를 꼼짝 못하게 하는 장면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자!"
타구봉(打狗棒)을 든 걸인(乞人)들도 그에 뒤질세라 득달같이 달려 나갔다.
어디 그뿐이랴? 강호에서 이름 있는 문파라면 모두 그들의 문하제자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 순간 '우----!' 하는
장소성이 갑자기 커지며 중천(中天)위로 혈선(血線) 하나가 그어지는 것이 아닌가?
혈선은 핏빛 구름으로 화하며 찰라지간에 소림사의 담을 넘어 사라져버렸다.
"어엇?"
"저렇게 빠를 수가!"
"구, 구마령주다!"
구마령주를 잡기 위해 산문을 빠져나가던 사람들은 모두 닭 좇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들이 발걸음을 돌려 다시 오던 길로 되돌아 가려 할 때였다.
"으핫핫핫 나와라, 정각!"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마의 목소리가 소림사의 경내를 울리며 핏빛 구름 한덩이가 지면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금색면구로 가려진 얼굴과 금빛장포, 그리고 면구 가운데서 흘러나오는 핏빛 안광이 무시무시했다.
그는 만리표행으로부터 곧장 이곳으로 달려온 능설비였다.
능설비는 대웅전 앞에 도도한 모습으로 버티어 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노성을 터뜨리며 능설비가 버티고 있는 대웅전 앞으로 몰려 나오기
시작했다.
"포위하라!"
"놈은 단신으로 왔다. 자신의 무예만 믿고 천방지축 날뛰는 놈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자!"
그들 중 최근 들어 강호에 영명(英名)을 날리고 있는 강호오공자(江湖五公子)가 저희끼리
눈빛을 교환해 보다가 함께 날아올랐다.
"상산(商山)의 철선공자(鐵扇公子) 하후량(何候亮)이다!"
"구마령주, 회남(淮南)의 풍화공자(風化公子)를 아느냐?"
"네놈이 감히 날뛰다니 개방의 철지개공자께서 여기에 있음을 아느냐?"
"만천편(滿天鞭)의 만천공자(滿天]公子) 사마진룡(司馬眞龍)도 있다!"
"으핫핫 남해(南海)의 신도공자(神刀公子) 마력(馬力)도 왔다!"
젊다는 것은 겁이 없는 나이이기도 했다. 강호오공자는 구마령주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긴 했으나,
그가 나타나는 순간 한 번 겨루어 보고 싶다는 호승심이 솟구쳤던 것이다.
"멈춰! 너희들은 막지 못하는 자다!"
대웅전 앞으로모여들던 사람들은 오공자가 능설비를 향해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는 대경실색하여 외쳤다.
그러나 오공자는 외침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듯 막 능설비를 향해 출수를 하려 했다.
"느, 늦었다."
사람들은 오공자가 피떡이 되어 날아가는 처참한 광경을 떠올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대들의 패기(覇氣)가 강렬하도다.
원한다면 마도의 당주(堂主)로 삼아줄 테니 백도무림에는 남지 마라.
너희들은 나의 적이 아니다.
오십 년 더 폐관수련한 다음에 다시 덤비도록 해라."
악랄한 수법을전개할 줄 알았던 능설비가 웃으며 가볍게 소매를 내젓는 것이 아닌가?
직후, 무풍회선강이라는 신묘한 술법이 시전되며
오공자의 몸을 휘감아 뒤로 날려 보내는 것이었다.
"어어엇?"
"수십 장을 격해 강기를 발휘하다니."
모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할 때,
오공자는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겋게 되어 정파고수들 틈 사이로 사뿐히 떨어져 내렸다.
그들의 몸은 다친 데가 하나도 없었다.
"으으, 이런 치욕이!"
"우리가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밀려 나다니."
오공자는 참담히 일그러진 표정으로 전신을 경련했다.
그들이 품고 있던 원대한 청운(靑雲)의 꿈이 능설비에 의해 완전히 부서져 버린 것이었다.
차라리 접전을 벌이다가 다쳤으면 이름이나 날렸을 텐데,
솜털하나 다치지 않고 떨어져 내렸다는 것은 치욕 중의 치욕이었다.
능설비의 모습은 더욱 더 높고 커보이기만 했다.
'마도 사람 중 저런 거효(巨梟)가 있다니
아아, 어이해 오공자를 죽이지 않는단 말인가!'
중인은 침묵 속에 빠져 들었다.
침묵을 깬 사람은 능설비였다.
"나는 구마령주라 한다."
그 목소리는 평범한 듯했으나 막강한 음공이 실린 탓으로 인해 근처의 땅이 뒤흔들렸다.
내공이 약한 자들은 벌써부터 현기증을 느꼈다.
능설비의 음성이 이어졌다.
"나는 두 가지 목적이 있어 여기에 왔다.
하나는 구마령(九魔令)으로 명할 것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속죄해야 할 자의 목을 갖고 가기 위함이다."
능설비는 십 리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크게 말한 다음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에서 태양섬전지(太陽閃電指)의 힘이 발휘되었다.
지력은 칠 장 아래에 있는 석판(石板)을 파괴하며 파공성을 냈다.
파팍! 석판이 파괴되며 검은 글씨가 남았다.
"대체 뭘하는 게냐?"
"땅 속에도 매복이 있었던가?"
사람들은 능설비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어엇, 글이 쓰여지고 있다."
그들은 석판을바라보고 난 후에야 능설비가 무엇을 했는지 알게 되었다.
석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지력에 의해 새겨져 있었다.
'오 일 이전에 자파의 대문 앞에 거대한 항복비(降伏婢)를 세우고
거기에 구마령주를 섬긴다는 맹세를 하라.
따르지 않는 문파가 있다면 오 일 후 멸하리라!
- 구마령주'
실로 놀라운 글귀였다.
자신을 따르지 않는 문파가 있다면 멸문시키겠다니.
능설비는 글씨를 다 새긴 다음 팔짱을 꼈다.
"이제 정각의 수급을 베어가는 일만 남았군."
그가 중얼거릴때, 휘휙휙!
가벼운 바람 소리를 내며 면벽굴 쪽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몸을 날려 다가왔다.
제일 앞에 있는 사람은 뇌전신개였다.
그는 강호에서 가장 빠른 경신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한데 바로 그 곁에 있는 신품소요객은 뇌전신개보다도 내공을 훨씬 적게 쓰고도 거의 비슷한
속도로 몸을 날리는 것이 아닌가?
그 외에 상취도장(常醉道長), 건곤금령자(乾坤金玲子), 만리비홍(萬里飛虹) 등
정파의 대명숙(名宿)들은 이미 능설비의 앞에 모인 중인들의 머리 위를 타넘어 능설비 쪽으로 다가섰다.
'계획대로 되어 가지 않는 것인가?
정각이 나의 도전을 받으리라 여겼는데 그와 싸우기 이전에 많은 사람과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인가?'
능설비는 백도의 명숙들이 대거 모여들자 은연중 내공을 끌어올렸다.
'모두 덤빈다면 적어도 십주야(十晝夜)는 싸워야 한다.
그러나 내 몸 안에는 그동안 혼신공력을 계속 발휘할 만한 마공이 있으니 두려울 것은 없다.'
능설비는 허리에 손을 댔다.
마종마검(魔宗魔劍)이라 불리는, 허리띠로도 찰 수 있는 연검(軟劍)이 그의 허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의 손이 검자루를 힘있게 움켜 쥐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백도의 노명숙들도 싸울 채비를 갖췄다.
"구마령주, 어이해 무림을 혼란시키는가?"
노명숙들이 막능설비를 향해 공격하려 할 때였다.
돌연, 데에엥! 너무나도 큰 종성(鐘聲)이 장내에 울려 퍼지며 먼 곳으로부터 창노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미타불 이 일은 빈승과 구마령주 사이의 일일 뿐이오. 모두 멀리 물러나기 바라오."
소림사에서 가장 큰 종이 매달려 있는 달마종각(達魔鐘閣)의 위,
노승 하나가 허공 중에 둥실 떠서 합장(合掌)한 채 장엄한 모습을 천천히 나타내고 있었다.
노승은 바로 정각대선사였다.
그는 강기로 종을 울린 다음 어기비행술(馭氣飛行術)로 몸을 둥둥 띄우고 있었다.
역시 내 짐작대로다.
능설비는 정각대선사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내심 쾌재를 불렀다.
백도의 사기(士氣)를 철저히 부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능설비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젖히며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핫핫, 모두 정각의 말대로 하거라. 그것이 현명한 길이다."
그것은 십이성진기를 실은 음공이었다.
꽈르르릉! 벼락치는 소리가 나며 사방 백 장 안이 뒤흔들였다.
내공이 약한 사람은 목소리를 듣고 털썩 나뒹굴어야 했다.
"으윽!"
"지, 지독한 음공 전설 속의 군림마후(君臨魔吼)가 아니면 이런 위력일 수 없다."
모두 사색이 될 때 능설비는 허공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그는 계단을 밟고 걷듯 걸어갔다.
바로 천상제(天上梯)의 신법이고 소림 칠십이종절기(七十二種絶技) 중의 하나로 꼽히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정파의 신법을 능숙히 쓰다니."
"천상제에 이어 본파의 암향표(暗香飄)까지!"
능설비의 무공수위를 알지 못하는 정파고수들은 놀란 눈을 더 크게 했다.
과거 능설비는이천관철갑(二千貫鐵甲)을 입고 혈수은지(血水銀池)를 건너갔던 사람이 아닌가?
그는 허공을 밟으며 정각대선사를 마중나갔다.
두 사람의 사이는 점점 좁혀졌다.
정각대선사는 눈꼬리를 파르르 떨었다.
"구마종의 모든 것을 얻었는가?"
그가 침중한 기색으로 묻자,
"그렇다."
능설비는 한 마디로 잘라 대답했다.
정각대선사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 비슷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으음, 왜 혼자 왔지?"
"후훗, 잘알 텐데? 늙은 중 하나 정도 처단하는 데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노납을 혼자 죽여 정파에는 시주의 상대자가 없음을 만천하에 알리겠다는 속셈이란 말인가?"
"그런 셈이지."
능설비는 칼자루를 바싹 쥐었다.
두 사람 사이는 불과 십오 장 정도를 격하고 있을 뿐이다.
두 사람의 주위로 칼끝 같은 기류가 팽배해 있었다.
"후훗, 나는 늙은 중이 스스로 자결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을 보면 그런 마음이 절로 생길 것이다."
능설비는 갑자기 검을 빼들었다.
검신(劍身)에서 시뻘건 빛이 충천(衝天)하더니, 피이이잉!
마종마검이 뽑혀 혈검강을 이십 장 길이로 만들어 내었다.
'으음 검강을 만들어낼 정도였다니!'
정각대선사는 능설비가 뽑아든 검에서 뿜어지는 핏빛의 기류를 보며 낮게 침음했다.
백도의 고수들도 검강을 만들어낼 수는 있으나 능설비의 능력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다.
순간 능설비의입에서 한 마디 폭갈이 터져 나왔다.
"등천일정도(騰天一頂刀)!"
시뻘건 검강이허공을 가르더니 꽈꽝!
능설비의 좌측 십 장 거리에 있던 약왕전(藥王殿)이 검강에 휘말려 반 넘게 허물어져 버렸다.
"저, 저럴 수가!"
"가, 가히 도신(刀神)이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며 혀를 내둘렀다.
뒤이어 능설비가 검을 쥐고 있던 손을 풀자 마종마검이 어검술(馭劍術)로 날아올랐다.
"구만리장천일검(九萬里長天一劍)!"
능설비가 크게소리치자 마종마검은 마치 말귀를 알아듣는 듯 무수한 검화(劍花)를 날리며
단번에 백 장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마종마검은 시뻘건 검강에 가려진 채 소림달마원(少林達磨院) 건물을 관통했다.
경천동지(驚天動地)의 폭음이 터지고 달마전이 산산이 허물어져 내렸다.
건물을 일거에박살낸 마종마검은 믿을 수 없게도 허공에서 방향을 꺾어
능설비의 손아귀 안으로 되돌아왔다.
능설비는 마종마검을 거두며 정각대선사 쪽으로 신형을 틀었다.
" !"
그는 할말을 잊은 듯했다.
능설비는 두 눈에서 더욱 잔혹한 혈광을 뿌려냈다.
"내가 터득한 구마절기 중 가장 약한 세 가지를 소림사에서 발휘했다.
나머지 여섯 가지를 쓰느냐 쓰지 않느냐는 늙은 중에게 달려 있다."
"그, 그것도 전부가 아니라고?"
정각대선사의 눈빛이 심하게 흐트러지며 몸을 한 차례 떨었다.
"이것 한 가지를 더 알려주지."
능설비는 왼쪽주먹을 쥐더니 옆쪽으로 쳐냈다.
주먹을 쳐내는 자세는 소림사 백보신권(百步神拳)과 비슷했다.
바람 소리도 일지 않았다.
돌연, 퍼펑!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나며,
이십 장 정도 떨어져 있던 벽돌담이 와그르르 힘없이 허물어져 버렸다.
그것은 '허공뇌정마권(虛空雷霆魔拳)'이라 불리는 권법이었다.
그 위력은 능설비가 강호에 나온 이후 더욱 강해졌다.
정각대선사의 미간이 깊은 주름을 만들었다.
"아미타불 최상의 권법이라 일컬어지는 무음신권(無音神拳)보다도 더 위력적이로다."
그는 허공에서멈춰섰다.
그리고는눈을 반개했다.
"그가 은둔하기 전에 한 말이 생각나는군."
그는 쌍뇌천기자가 자신에게 들려주던 말을 생각해냈다.
쌍뇌천기자는 정각대선사에게서 항마광음선(降魔光陰扇)을 선물로 받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언제고 천마성(天魔星)이 뜰 것이오.
그로 인해 구마루(九魔樓)의 전설(傳說)은 언제고 실현(實現)될 것이며
세상은 구마루의 전인을 볼 수밖에 없소.
나는 여러 가지를 준비할 것이나 자신이 없소.
대사는 대사대로 준비를 하시기 바라오.
나로서는 언제고 나의 화신(化身)의 손에 항마광음선을 들리게 하고,
그의 뒤에 일천탕마금강대(一千湯魔金剛隊)를 따르게 해 구마루에서 온 자를
막으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오.'
그렇게 말했던쌍뇌천기자는 천기석부의 붕괴와 더불어 이 세상에서 영원히 모습을 감춘 것이었다.
'그가 가까이에 있다.
아아 나 역시 곧 그의 곁으로 가게될지 모른다.
그러나 절대 혼자 가지는 않을 것이다.'
정각대선사는 두 손을 한데 모았다.
그리고는 진중한 음성으로 능설비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구마령주, 소림사를 어찌 생각하는가?"
"후훗, 내 손에 의해 무너져야 할 곳이지."
능설비는 안하무인격으로 잘라 말했다.
"흠 소림칠십이종절기와 벌근세수경(伐筋洗躊經), 달마역근경(達磨易筋經)에서
소림무예의 모든 것이 나왔다는 것은 아는가?"
"무림인이라면 그 정도야 세 살 때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 아닌가?
그래서 늙은 중을 죽이려 하는 것이다. 자아,
이제 항복하고 자결하겠는가 아니면 박살이 나겠는가?"
능설비가 조소를 지으며 대꾸하자,
"빈승은 어리석은 사람이나 소림무학(少林武學)은 끝이 없다.
그리고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늘은 백도를 지켜줄 것이다."
정각대선사는 말을 마치고 일신의 공력을 끌어올렸다.
그의 손바닥이 점차 금광(金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금강수미무적공(金剛須彌無敵功)!
개세무학이라 일컬어지는 소림의 절예가 드디어 정각대선사에 의해 시전되려는 찰라였다.
정각대선사는 쌍뇌천기자의 충고에 따라 폐관하여 금강수미무적공을 극성으로 터득해냈다.
그는 지난 십년 간 물도 거의 마시지 않고 정종신공(正宗神功)을 단련시켰다.
그 결과 그는 쌍장에서 강기를 발해 오십 장 밖의 천근거석(千斤巨石)을 모래로 만들 정도의
절정고수로 발돋음할 수 있었다.
우르르르릉 꽈꽝! 불문신공은 파공성을 유독히 크게 냈다.
그 소리만 해도 하나의 항마절기였다.
항마뇌음(降魔雷音)은 만마가 복종해야 하는 우레소리였건만
능설비에게는 단지 소음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훗훗, 결국 시체조차 남기지 못할 길을 찾는 것이군.'
능설비도 손을한데 합했다.
'초수를 길게 끌면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죽인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보기에 간단히 승리했다고 여기게끔 재빨리 처치하는 것이다.'
그는 도박하는심정이었다.
구마령주로 수십 년 간 백도와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백도와의 싸움을 단기일에 끝장낼 것인가.
그것이 바로 이번 싸움의 주목적이었다.
그일은 마도의 변절자(變節者) 귀영마수라를 쳐죽인 일과 이어지는 일이었다.
능설비는 이성이 없는 자가 절대 아니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지략가였다.
가히 마도의 쌍뇌천기자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꽈르르릉!
능설비의 손이합쳐지며 금광(金光)이 일어났다.
금광이 더욱 짙어지며 우레와도 같은 소리를 내는 가운데 빛이 달라졌다.
오른손은 천마무적(天魔無敵)의 내공으로 흑색(黑色)이 되었고, 왼손은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것은 인마검수(人魔劍手) 때문이었다.
능설비는 체내의 모든 마공을 모조리 발휘했다.
한 순간 모든 소리는 사라지고, 그의 몸은 조금 엷은 혈무(血霧)에 가려지게 되었다.
반면 정각대선사가 내는 항마뢰음(降魔雷音) 역시 더더욱 강해졌고,
그는 하나의 금불(金佛)의 형상이 되어 금빛을 발했다.
그는 눈을 감고 있으나 청각과 영감으로 모든 것을 살피는 중이었다.
'소리가 없다. 분명 앞에 있는데도'
그의 등줄기를타고 땀이 쭈욱 흘러내렸다.
'상상 이상이다. 이미 천마성의 경지를 넘어섰으며 아무도 알지 못할 정도로 신비하게 된 자다.'
그가 내심 능설비의 뛰어난 자질에 침음하고 있을 때였다.
"대사, 신품소요객이오. 대사가 바란다면 연수(連手)하겠소이다."
신품소요객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러나 정각대선사는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본래의 예정대로 혼자 싸우기를 단행했다.
정각대선사가 결전의 태세로 능설비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능설비는 기다렸다는 듯 몸을 허공으로 뽑아올렸다.
그는 섬전같이 흐르며 정각대선사가 뿜어내는 금빛 광채 속으로 사라져갔다.
모든 것이 금빛으로 물들었다.
누구의 승리일까? 사람들은 두 손에 땀을 쥐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 잠깐의 침묵이 억년비정의 세월만큼 길게 느껴졌다.
잠시 후 금무 속에서 적(赤)과 혈(血)의 두 가지 기류(氣流)가 무지개같이 뻗어나왔다.
그리고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있다면 허무(虛無)뿐이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대단한 암경을 이기지 못하며 수십 걸음씩 주르르 밀려나며 허공을 바라봤다.
뿌연 피안개 가운데 금색면구를 쓴 자가 홀로 둥실 떠 있었다.
정각대선사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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