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49 장 함정에 빠진 구대 문파 <殺手凶謨>

오늘의 쉼터 2014. 6. 22. 15:13

제 49 장 함정에 빠진 구대 문파 <殺手凶謨>
 

 

  한편,

 

양몽환의 일격에 나가 떨어졌던 세 명의 단주들은 인식이 달라졌다.

우물쭈물 하다가는 세 명의 목숨이 언제 날아갈지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냉소를 터뜨리던 자기들이 그의 일격에 약속이나 한 듯이

나가  떨어진 것도 분통이 터질 노릇인데 각파의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당한 추태는 더욱 씻을 수 없는 모욕이 되고 말았다.

 

  (고놈 맹랑한 놈이군! 아직 이 왕한상의 쇠부채 맛을 모르는 모양인가!)

 

  귀통이 꼭 막힌 왕한상은 쇠부채를 졌다 접었다 하며 양몽환의 보낭혈(步廊穴)을

노리고, 제원동은 제원동대로 청강쌍륜을 들고 왼쪽에서 그리고 최문기는

교타금영(巧打金鈴)의 한 수를 노리고 오른 쪽에서 기합 소리를 내며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세 명의 단주가 앞과 좌우에서 일시에 협공해 들어오자

약간 당황한 양몽환은 오행미종보법을 전개하여 연기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는 그들의 포위망을 벗어나 뒤에 우뚝 섰다.

 

그러자 일시에 달려들던 단주들은 갑자기 상대가 없어지는 바람에 일단 휘둘러 쳤던

장풍들을 회수하지 못하고 자기들 끼리 부딪쳐 박살이 났다.

엎어지고 쓰러지고 끙끙거리던 단주들은 제풀에 지치고 쓰러져 한동안 눈을 감고

조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태가 이와 같이 일대 삼의 격전으로 몰리자 각파의 고수들은

지금까지 우습게보았던 양몽환의 실력에 탄복하는 한편,

한 사람에게 세 명의 고수가 합동으로 달려드는 것에 분통이 터지는 적개심이 우러났다.

웅성거리며 양몽환을 응원하던 청성파(靑城派)의 송목도장(松木道長)은

장검을 뽑아들고 양몽환에게 달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천용방의 단주들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단주들이 하나 둘 일어나자 송목도장은 양몽환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젊은이! 내가 도우려다. 비겁하게 세 명씩 달려든다면 참을 수 없는 일이오!」

 

  그러자 하림이 미소를 띠우며 그에게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아직 걱정할 것 없어요. 조금 더 두고 보세요!」

 

하며 은근히 만류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송목도장은 할 수 없다는 듯이 못 이기는 척하며 하림이 끄는 대로 뒤로 물러섰다.

사실 송목도장은 싸울 마음이 없었다.

다만 적개심이 우러나 자기도 모르게 달려 나왔던 것이었다.

그런데 하림이 만류하자 장검을 든 채 자기 마음은 안 그렇다는 듯이

가슴을 펴 허세를 부리며 숨을 씩씩거렸다.

그러나 속으로는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하림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섣불리 나섰다가 엉덩방아라도 찧는다면 그것 또한 장문인의 체면 문제였다.

이때 먼지를 털며 일어나 잠시 조식을 취한 삼기단주들은 완전히 표정이 굳어졌다.

몇 십 년 동안을 무술계에 나타나 종횡으로 명성을 떨치던 그들의 빛나는 무공이나

쟁쟁한 명성도 별 수 없이 양몽환의 신법과 일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우왕좌왕하게 되었다면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뿐이라면 그래도 자기들의 명성쯤은 지킬 수 있겠는데 양몽환의 공격이

틀림없이 왕한상을 노리고 들어가는가 하면 제원동이 쓰러지고,

제원동을 노리는가 하면 어느 틈에 최문기의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듯 그 자리에서

겅둥 겅둥 뛰도록 만드는 데는 별 재간 없이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양몽환의 재빠른 공격은 오행미종보법으로 온 몸을 감춘 공격이기 때문에 그림자만

어른거릴 뿐 어떻게 공격하고 또 어떻게 막아내는지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들도

판단할 수 없을 만큼 기기묘묘했다.

동쪽에서 번쩍했는가 하면 서쪽에서 검풍이 일어나고 남쪽에서 번쩍 했는가 하면

어느 사이에 북 쪽에서 차가운 검광이 몰아치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왕한상과 제원동 그리고 최문기는 아픔을 참느라고 우거지상을 하는 것이었다.

 양몽환이 전개하고 있는 공격법은 모두 귀원비급에 기록되어 있는

일수철화(一樹鐵火)의 수법으로서 그 신속하고 날카로움은 다만

수 없이 발산하는 은빛의 차가운 광채 밖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순식간에 왕한상과 최문기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자

입이 찌그러진 제원동은 힘 있게 쥔 동발(銅?)에 역병천남(力屛天南)과

추파조란(淮波助蘭)의 수를 변화시켜 양몽환 가슴을 향하여 노도와 같이 달려들었다.

그러자 왕한상과 최문기가 다시 합세하여 독방토신(毒防吐神)의 수로

부채를 펄렁거리며 협공해들어 오는 것이었다.

 

적어도 일파의 단주들인 그들이 한 사람에게 일시에 협공해 들어온다는 것이

무술계의 금기(禁忌)로 되어 있음을 모를 리도 없었다.

그러나 땅에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자기들의 위신이 여기서 더 떨어지면 얼마나 더 떨어지겠는가.

 어떻게 해서 무슨 수를 쓰든지 양몽환을 쓰러뜨리기만 하면 추락된 명성은 못 찾는다 해도

싸운 보람은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노한 것은 한낱 무명 무술인인 양몽환에게 각파 고수들 앞에서

당하는 모욕이 더욱 분하고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의 합동 공격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아차하면 그들의 추풍(淮風)으로 양몽환의 몸이 가루가 될 지경이었다.

 사실 계원동의 장풍이나 왕한상의 쇠부채는 바위를 부수어 버릴 만큼

그 위세가 강렬하고 살인적인 무공이었다.

그런데다 제원동의 동발이며 최문기의 망치 그리고 왕한상의 쇠부채 등

모두 그 무기부터가 무시무시한 암기를 들고 일시에 달려드는 공격인 양몽환도

정신을 바짝 차리지 많을 수 없었다.

위기를 당한 양몽환은 오행미종보법을 다시 전개하여 연기처럼

그들의 공격권에서 쉽게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그들의 뒤에서 도음접양(導陰接陽)의 수법으로 지쳐 들어갔다.

이때 다시 한번 양몽환의 오행미종보법에 속은 세 명의 단주들은

즉시 몸을 돌려 방향을 바꾸었다.

그러자 동발을 휘두르던 제원동과 부채를 펄렁거리던 왕한상이 주춤하고

서있는 양몽환에게 죽을힘을 다하여 달려들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틀림없이 양몽환의 몸은 그들의 공격을 당하게 되는가 했다.

그 순간 구대 문파의 군협들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펑!」

 

  드디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마주 부딪치는 둔탁한 무기 소리와 장풍 소리가 천지를 흔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왕한상과 제원동 사이에서 납작해졌어야 할 양몽환은 일장 뒤에 태연히 서서 조용히

사태를 관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양몽환과 마주친 자리에는 제원동과 왕한상이 먼지를 부옇게 뒤집어 쓴 채

일어나지도 못하고 꿈틀거리는 것이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오행미종보법으로 피하는 양몽환의 귀신같은 재간에 자기들끼리

또 한번 부딪치고 말았던 것이었다.

  이 바람에 호되게 다친 왕한상과 제원동은 땅을 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 반면에 공세를 늦추었던 최문기는 딱 벌어졌던 입을 움직이며 혼자 중얼거렸다.

 

  (하! 이거 낭패로군, 초개같이 쓰러지는 구나! 초개같이)

 

  탄식하면 할수록 양몽환의 존재가 만만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얼마 동안 정신도 못 차리고 뒹굴고 있던 왕한상과 제원동은 어슬렁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는 가슴과 어깨가 뻐근하고 숨이 찬 것이 상당한 중상은 아니어도

재차 공격을 하기에는 충분한 조식이 있어야 할 것 같았다.

서로 눈짓으로 중상의 경중(輕重)을 위로한 왕한상과 제원동은 최문기에게

손짓하여 재차 협공할 의논을 하려고 했다.

  그때,

천용방의 좌석에서 수염을 날리며 달려온 방주 이창란이 큰소리로 싸움을 제지시켰다.

 

「여러분들은 잠시 무기를 거두시오.」

 

하고는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서서히 양몽환에게로 다가갔다.

 

「곤륜파에 당신 같은 사람이 있는 줄은 몰랐소.

이 노부가 한 번 상대하겠소.」

 

  점잖게 도전해 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불현듯 바로 이창란의 딸인 이요홍의 모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요홍을 생각한다면 이창란의 도전을 정중히 사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고생한 보람이 무로 돌아가게 되고 뜻한바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었다.

 

얼마 동알 망설이고 생각해도 별로 신통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자 재차 이창란의 우렁찬 소리가 터졌다.

 

「흥! 두려운 모양이군! 이 노부의 건원지도 눈요기는 될 걸!」

 

하며 당장 달려들 기세였다.

그제야 당황한 양몽환은 할 수 없다는 듯이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잠깐! 그래도 방주님이신데 어찌 후배와 상대하려 하십니까?」

 

「뭐라고? 그래서 이 노부의 제자들을 상하게 했단 말인가?

건방진 소리 말고 이 노부의 한 수를 받아 보게!」

 

하고는 몸을 굽혀 용두 지팡이를 번쩍 들어 복지추풍(伏地推風)의 수로 몰아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지팡이를 회수하여 수를 변화시켜 몸까지 비스듬히 눕히면서

관성측두(觀星測斗)의 수법으로 계속 공격해 들어와 삽시간에 장풍(杖風)을

하늘 가득히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이때까지 망설이기만 하던 양몽환은 사태가 이렇게 된다면 가만히 피할 수만은 없다고 결심했다. 그리고는 간단히 이창란의 지팡이를 막아낸 다음 귀원비급에 기록되어 있는

만천비화(滿天飛花)의 수로 역습해 들어갔다.

그 바람에 하늘에 가득했던 이창란의 장풍과 양몽환의 검풍이 한데

어우러져 돌과 모래를 수없이 날렸다.

  그러나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양몽환의 장검이 절대로 이창란을

직접 후려치지 않는 것이었다.

이창란의 용두 지팡이가 바람을 일으키며 허공에서 춤을 출 때마다 양몽환은

교묘히 피하기만 하는 것 이었고 사태가 심히 위급할 때라야만 장검을 휘둘러 먼지를 날렸다.

그것도 이창란에게 미치지 않도록 후려쳐 위기를 피하기만 하는 것이었다.

거의 삼십 여수나 이창란의 지팡이가 허공을 갈랐지만 승부는 언제 날지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초조해진 이창란은 요리 조리 피하기만 하는 양몽환을 미친 듯이 따라 다니며

정신없이 후려쳤다.

그러나 그때마다 교묘히 피하는 양몽환에게 번번이 헛손질만 하게 된 이창란은

제풀에 힘이 겨워 비틀거리며 가쁜 숨만 몰아쉬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때까지 이창란의 지팡이를 막기만 하던 양몽환은 조소접과 주약란이

심혈을 기울여 가르쳐 준 귀원비급의 갖가지 무공 중에서 몇 가지만을 발휘하여

이창란이 절로 지치게 만든 다음이면 그가 더 손을 쓰지 못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는

장검으로 땅을 짚고 잠시 조식을 취했다.

  천용방의 삼기단주를 물리치고 다시 방주 이창란까지 근 삼십여 수의 공격을

여유 있게 막아내고 제풀에 비틀거리는 이창란을 보고 있던 각파의 고수들은

손뼉을 치며 양몽환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성원을 보냈다.

  천용방에게 눌려 기를 펴지 못하고 있던 각파의 군협들은 자기대신 시원하게

천용방을 물리쳐 설욕해 주는 양몽환이 얼마나 고맙고 또 자랑스러운지

저마다 희색이 만면하고 기고만장했다.

  그러는 한편,

천용방의 고수들은 일찍이 당해보지 못한 참패와 굴욕적인 모욕에 앞길이 캄캄했다.

그런데다 양몽환의 기기묘묘한 술수와 아직 한번도 듣도 보도 못한 괴이한 수법에

말려들어 제대로 공격조차 못해보고 무릎을 끊을 지경이 되었고 자기들이

존경하고 흠모하던 방주 이창란마저 패색이 완연하여 비틀거리는 데는

더 어쩔 수 없이 땅을 치며 통탄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완전히 싸움의 승부가 나는 듯하자

크게 모욕과 수치를 당한 천용방의 좌석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웅성거리며

싸움이 벌어지는 중앙으로 떼를 지어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제 남은 제자들이라도 힘을 다해 양몽환을 쓰러뜨려야겠다는 일념으로

너나없이 무기를 쥐고 달려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에 격분한 아미파의 장로 초진 대사와 초혜 대사가

각기 동화분과 장검을 꼬나들고 역시 중앙으로 달려와 양몽환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원래 이 아미파의 장로들은 싸울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천용방의 제자들이 우르르 몰려 나가자

양몽환의 신변을 염려하고 성원차 달려 나온 것이었다.

초진과 초혜가 양몽환을 지원하러 달려 나가 어깨를 나란히 하자

각파의 군협들도 역시 양몽환을 응원하고자 우르르 밀려 나갔다.

  사태가 이와 같이 험악해지자 책임자의 위치에 있는 원홍대사는 급히 수습책을 생각했다.

  그러나 별로 좋은 수습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흥분된 군협들에게 무슨 말이라도 했다가 오해라도 산다면

오히려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홍대사도 이창란과 양몽환의 승부가 완전히 결판나기를 기다려

험악한 분위기를 수습하기로 일단마음을 늦추고 역시 군협들이 달려 나가는

뒤를 따라 중앙으로 나갔다.

이때였다.

제풀에 힘이 겨워 비틀거리던 이창란은 군협들이 밀려오고 제자들이 몰려오자

사태가 자기의 지지 부진한 공격에 연유하여 천용방이 완전히 패퇴할 징조가

보이기 때문이라고 직감하고는 암암리에 기력을 집중 운행했다.

그리고는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몸을 돌리면서 손을 높이 들어 양몽환의 가슴으로

바람을 몰아 붙였다.

 

  순간,

 

별 생각 없이 밀려오는 고수들을 바라보고 있던 양몽환은

뜻밖의 공격에 전혀 어떻게 방비태세를 갖추지 못하고 그대로 이창란의 공격을 받고 말았다.

피하지도 못했고 피할 사이도 없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습격에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앗!」

 

  비명을 지른 사람은 양몽환이 아닌 하림의 가냘픈 외마디 소리였다.

그러나 그때는 양몽환이 허공으로 이장(二丈)이나 높이 떠 있을 때였다.

  이창란의 건원지신공은 이만큼 위력이 놀라왔다.

이제 허공에 뜬 양몽환의 몸이 떨어지기만 하면 끝이 나는 것이었다.

구대 문파의 군협들은 물론 곤륜 삼자도 마음을 은근히 졸였고 원홍대사는 염불까지 외웠다.

  허공으로 높이 올라간 양몽환의 몸은 두 바퀴나 빙글 빙글 돌고는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와 함께 양몽환이 떨어진 곳에는 뿌연 먼지가 양몽환의 몸을 가리고 말았다.

눈이 둥그레진 군협들은 이제 눈앞을 가련 먼지가 걷혀 없어지고 숨이 끊어진 채

쓰러져 있는 양몽환을 보기 위해 가슴을 졸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먼지가 걷히면서 나타난 것은 쓰러진 양몽환이 아니라

장검을 비껴들고 질풍같이 달려오는 양몽환이었다.

그러자 다시 한번 눈이 휘둥그레진 군협들은 가슴이 섬뜩하고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없었다.

죽지 않고 살아난 것도 기적인데 장검을 비껴들고 이창란에게로 달려드는 데는

그냥 아연해 질 수 밖에 없는 일이었고 질풍같이 달려오는 양몽환을 위하여

길까지 터 주어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그들보다 더 놀란 사람은 자신의 건원지 한 수로 천용방의 비참한 명성을

회복시키려던 이창란 바로 그 사람이었다.

죽지도 상하지도 않고 오히려 질풍같이 달려드는 양몽환을 보는 순간,

누구에게서 머리를 호되게 얻어맞은 듯

띵 - 하는가 하면 자신도 모르게 몇 걸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죽지 않으면 적어도 최소한 코피쯤은 흘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양몽환은 하나도 그 정해진 사실에 들어맞지 않는 것이었다.

  이창란은 비록 양몽환의 적이지만 그의 기묘한 수법과 건원지에 끄떡없는

무공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음‥‥‥ 과연 놀라운 일이군. 몇 년 만 무공을 닦는다면 굉장한 무술인이 되겠군.‥‥)

 

  수 없이 속으로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쳐 들어오는 양몽환의 공격부터 피하지 않으면 이번에는

이창란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뜰 차례였다.

그러한 것을 경험으로 쌓은 이창란은 양몽환이 접근해 오기를 기다려

피할 수 있는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한편, 질풍같이 달려 들어오던 양몽환은 추혼십이검법 중에서 행화춘우(杏花春雨)의

한 수와 조소접에게서 배운 은한비성(銀漢飛星)을 동시에 전개하며

검과 몸이 흔연 일체가 되어 이창란의 가슴을 겨누고 달려들었다.

이창란의 진원지에 약간 위기를 당했던 양몽환은 지금까지의 수세에서 전술을 공격으로

바꾸어 이창란에게 조금 위협을 주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조소접이 가르쳐 준 무공과 자신의 절기를 합해 질풍같이 달려들며 은광(銀光)을 뿌렸다.

  그 순간, 눈앞이 아찔해진 이창란은 휘두르던 지팡이가 요란하게 흔들리며

 

「찍!」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창란은 자기의 옷이 가슴 부분에서부터 배에 이르기 까지 찢어져 나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일장 밖에 태연히 서 있는 양몽환의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분간할 길이 없는 이창란이었다.

애초에 양몽환이 공격해 들어 올 때 용두 지팡이를 들어 배운취월(排雲取月)의 수로

막으려던 이창란은 양몽환의 장검에서 발산하는 은광(銀光)에 눈앞이 가려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손이 흔들리고 옷이 찢어진 다음에야 다시 눈앞이 훤해지며

사물이 보이는 것이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비 오듯 쏟아지는 검광과 양몽환의 몸이 삼 장 높이의 허공에서 이리 저리 날며

바람을 일으켰다는 것도 다시 사물이 보이면서부터 기억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은 끝이 났다.

무술계를 휩쓸 야심을 가졌던 이창란도 양몽환 앞에 무릎을 꿇을 때가 되고 말았다.

양몽환의 장검이 다른 곳도 아닌 바로 가슴 부위의 옷을 찢었다면

그 순간에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옷을 찢는 정도로 목숨을 붙여 주었다는 것은 양몽환이

자기의 목숨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쯤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창란은 하늘을 우러러 비통하게 얼굴을 씰룩거리다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며 들었던 지팡이로 땅을 후려쳤다.

그리고는 양몽환에게로 돌아서며 손을 들었다.

 

「이모인(李某人)은 오늘 당신의 무공 절기에 손을 들겠소.

이제 무슨 면목으로 무술계에 돌아다니겠소!

감탄하오. 진심으로 감탄하는 바요!」

 

  과연 남아다운 말이었고 방주다운 말이었다.

그리고 이 말이 천용방의 종막을 고하는 방주의 선언이기도 했다.

비통한 순간이었다.

 

이때였다.

 

최후의 패배선언을 하는 방주 이창란을 제지시키며 달려온

왕한상은 헛기침을 한 번 더 하고는 이창란에게 바짝 다가가 귀에 입을 댔다.

그리고 잠시 후 비통했던 이창란의 얼굴에 음침한 웃음이 떠오르는 것과 함께

왕한상의 왼 손이 무슨 신호처럼 번쩍 올랐다.

  그러자 천용방의 단주들은 둘러 서 있는 자기들의 제자들을 호령 하여

일제히 쇠다리(鐵橋)를 건너 철수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홍의동자(紅衣童子)가 안고 있던 두 마리의 비둘기가 하늘 높이 날고

그와 때를 같이 하여 두 명의 홍의동자는 길게 호각을 부는 것이었다.

제자들이 거의 다 쇠다리를 건너는 것을 보고 있던 다섯 명의 단주와

천중사추는 방주 이창란을 호위하며 천천히 제자들의 뒤를 따라 후퇴하는 것이었다.

 이 돌변한 천용방의 후퇴에 눈이 둥그레진 원홍대사는 필시 무슨 음모와 흉계가 꾸며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후퇴하는 이창란의 앞을 가로 막았다.

 

「방주께서는 아직 무술 대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찌하여 제자들을 퇴각시키시오?」

 

「대사가 관여할 바 아니오.

우리 천용방은 더 있어야 할 필요가 없어서 먼저 가는 길이오.」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여러분들이 이 늙은이를 책임자로 추대한 이상,

이 늙은이의 허락도 없이 간다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오.

무슨 음모를 꾸미려고 하는 모양인데‥‥‥」

 

「흥! 좋도록 생각하시오. 우리는 음모 같은 것은 모르는 일이오.」

 

  그러는 사이에 천용방의 제자들은 다 쇠다리를 건너가고 다섯 명의 단주와 천중사추가

쇠다리의 길목을 지키고 원홍대사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그러자 원홍대사의 머리 속에는 천용방의 고수들이 쇠다리를 지키고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

 

「그러면 무슨 일로 쇠다리를 막고 있소?」

 

「하‥‥‥하‥‥‥막고 있는 것이 아니요.

보시다시피 길이라고는 이 쇠다리 하나 밖에 없지 않소?」

 

그러자 이마를 찌푸리며 헛기침을 크게 하는 소리가 들렀다.

 

「그래서 이 쇠다리를 막아 버리겠다는 말씀이요?」

 

「막는다면 어찌 하겠소?

여러분들이 이 쇠다리에 접근해 온다면 어느 파의 고수들이라도 용서치 않을 것이오.」

 

「이방주! 이 늙은이는 오래 전부터 당신의 무공과 영웅기개를 존경하고 있었소.

그런데 오늘 이와 같이 비겁하게 행동할 줄은 몰랐소!」

 

  원홍대사와 이창란이 말하고 있는 동안 원홍대사의 제자들은

물론 각파의 군협들도 원홍대사의 뒤에 각자 무기를 들고 늘어섰다.

그러자 천용방의 고수들도 쇠다리를 가로 막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었다.

  이때, 이창란의 흉계를 알아챈 원홍대사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이창란을 노려보았다.

 

사태는 위기일발 직전에서 험악해지고 있었다.

 

사실 천용방의 계획대로 쇠다리를 막아버리고 흉계를 꾸민다면

그 흉계가 어떠한 흉계인지는 모르지만 피해 달아날 길은 이 쇠다리 하나 밖에 없는데

그 길이 천용방에서 지키고 있는 한, 참화를 모면할 길이 없게 되어 있었다.

 더구나 그들이 흉계를 쓴다면 매우 난폭하고 악독한 수법을 쓸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이러한 사태에서 같은 운명에 놓이게 된 구대 문파 군협들은 사태의 위중함을 즉시 간파했다.

그리고는 과거에 서로 적대 감정이 있었다 하더라도 은연중에 과거지사를 버리고 일치단결하여

천용방을 무찌르자는 결의가 암암리에 형성되어 행동을 같이 하게끔 되어버렸다.

 

그러자 곤륜 삼자인 옥영자와 나란히 서 있던 아미파의 초혜 대사가 옥영자의 소매를 끌어 당겼다.

 

「지금 이창란 일행마저 쇠다리를 건너간다면 사태가 위험해 질것이오.

무슨 흉계를 꾸미는지는 모르지만 여기 남아 있는 사람들의 생명이 위험할 것 같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들의 흉계를 막는 방법은 뒷길을 차단하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그럼 뒷길을 막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세 분께서 선수를 쓰신다면 우리 빈도들도 협력하여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어찌 보고만 있겠습니까? 대사께서 호응하시겠다면 기꺼이 받겠습니다.」

 

하고는 장검을 뽑아 들고 앞장을 서는 것이었다.

그러자 옥영자의 뒤를 일양자와 혜진자가 따라 가고

그 뒤를 아미파의 대사들이 역시 장검을 뽑아 들고 따라 갔다.

 

이때, 천용방의 고수들은 쇠다리의 중간 지점에서 사상진을 펴고 기러기의

날개처럼 고수들을 배치한 다음 이창란의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때에 옥영자가 곤륜파와 아미파의 고수들을 이끌고 오른쪽에서부터

달려 들어오고 왼쪽에서도 원홍대사가 제자들을 이끌고 지쳐 들어오자

용두지팡이를 번쩍 들어 원홍대사를 후려치며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한 놈도 살리지 마라!」

 

하고는 원홍대사가 역습한 나한비간(羅漢飛干)의 한 수를 용두 지팡이로

다시 후려치는 것이었다.

노도와 같은 장풍이 이창란의 용두 지팡이와 맞부딪치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창란의 용두 지팡이를 누르고,

질풍 같이 이창란의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창란은 흠칫 놀라기는 하면서도 냉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흥! 대사님의 장력(掌力)도 제법이오!」

 

하는데 갑자기 눈앞에 은광이 펼쳐지며 검과 몸이 혼연일체가 된 양몽환이 닥쳐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하림이 역시 은광을 뿌리며 사뿐히 허공에서 내려오는 것이었다.

 

순간,

 

양몽환에게 참패를 당한 이창란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용두 지팡이를 거꾸로 쥐고

정신없이 흔드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새파란 장막(杖幕)을 무수히 날려 자기의 몸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더 싸워볼 의욕이 없어진 이창란이었다.

이와 같이 방주가 허겁지겁 자기 몸부터 보호하는 것을 본

왕한상이 쇠부채를 펄렁거리며 양몽환에게로 달려들 때와 하림의 장검이

왕한상의 부채를 노리고 날은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자 왕한상의 부채가 뎅그렁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가고

왕한상은 대여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하림의 절기로 말하면 동숙정과 근 육개월간 같이 있으면서

삼음신니 검법을 그녀에게서 열심히 배워 남 못지않은 무술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술을 오랜만에 왕한상에게 처음으로 시험해 본 것이었다.

  한편, 양몽환은 오행미종보법으로 몸을 숨기고 쇠다리의 맨 앞에서 조용히 적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한 양몽환에게 미소를 띠워 보낸 하림은 왕한상을 물리치고 돌아서면서

청강일월륜(靑鋼日月輪)을 휘두르는 제원동에게 야화소천(野火燒天)의 수로

내려치고 다시허공으로 올라가면서 같은 수로 가슴을 공격했다.

더구나 하림의 공격은 보기에는 여자의 하얀 손이 나비처럼 춤을 추는 듯

부드럽고도 율동적이었으나 그러한 공격이 한번 맞기만 하면 무기가 날고

몸이 휘청거리는 데는 아무리 청강일월륜의 명수인 제원동도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맹랑한 계집이군! 어디서 그런 수법을 배웠을까? 건방진데‥‥‥‥‥)

 

하고 상대가 여자라는 것에 냉소를 터뜨리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러는 한편, 천중사추와 대결한 옥영자는 그들이 펴놓은 사상진안으로 들어가

거미줄처럼 처진 사상진의 부하들을 이리 저리 팽이 돌리듯 마구 후려 갈겼다.

무공으로 봐서 천중사추들은 옥영자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다만 그들이 벌려 놓은 사상진의 위력이 강하고 무서운 진법이었다.

그 위력이 소림(少林)파의 나한진(羅漢陣)이나 무당(武當)파의 오행진(五行陣)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천중사추의 괴이한 무공과 합쳐진 사상진은 가볍게 볼 진법이 아니었다.

이러한 사상진 안에서 네 명의 천중사추와 맞붙은 옥영자는 소매를 펄렁거리며 부지런히

검을 휘둘렀다.

 

그때,

 

뒤에서 달려온 일양자와 혜진자가 장검을 휘두르며 옥영자를 가로 막고 있는

사추의 둘째인 진응을 후려치며 달려들자 그 뒤로 초진과 초혜가 다시 달려들며

사추의 넷째인 주방을 가로막고 나서는 것이었다.

 

보통 때 같으면 이렇게 세 사람의 곤륜 삼자가 힘을 합세하여 사추의 한 사람인

진응을 후려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흉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수많은 고수들이 참혹한 죽음을

면치 못하기 때문에 속전속결(速戰速決)로 물리치고 포위망을 뚫어야 한다는

일념에서 취해진 행동이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주방을 물리친 초혜와 초진은 다시 곤륜 삼자와 합세하여

사상진을 뚫고 천중사추와 다시 맞붙었다.

  그러나 천중사추들도 만만치 않았다. 악명 높은 그들의 명성대로 필살의 일격을

노리고 사상진 속에서 추호의 두려움도 없이 대결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들을 쓰러뜨리기에는 약간 힘이든 일양자 일행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랑하는 사상진 속에서 대결한다는 것은 그만큼

전세가 불리한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쇠다리의 맨 앞에서 몰래 적수를 기다리고 있던 양몽환은

하림의 일격을 받고 떨어진 부채를 다시 집어 드는 왕한상을 상대로

가볍게 몸을 놀리고 있었다.

이리하여 쇠다리 위와 밑에서는 일대의 격투가 벌어지고 말았다.

  우선 하림은 제원동과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곤륜 삼자와 아미파의 대사는

천중사추와 사상진 안에서 검광을 뿌리고 양몽환은 왕한상과 적수도 안 되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승일청과 최문기도 각파 고수들의 동태를 지켜보고 있고

이창란은 원홍대사와 이십여 합 째 공방전을 벌리고 있었다.

이창란의 용두 지팡이는 오악압정(五嶽壓頂)으로 원홍대사의 선장(禪杖)을

두 동강이나 낼 듯이 요란하게 춤을 추고 원홍대사의 선장은

횡가금양(橫加金樣)으로 이창란의 긴 수염을 이리 저리 날리는 것이었다.

  고수와 고수끼리의 싸움은 한 번 휘두르는 수마다 신비한 절기가 내포되어 있어

보는 사람에게 감탄을 금치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 중에서도 이창란은 양몽환에게서 받은 모욕을 원홍대사에게 갚으려는

심산인지 자유자재로 발휘하는 그의 한 수와 또 상대방의 술수를 한 눈에 간파하고

 날쌔게 막으며 역습을 취하는 원홍대사의 무술은 과연 고수다운 노련한 수법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처음으로 고수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하는 비명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그것은 하림의 일격을 미처 피하지 못한 제원동이 그 자리에 뒹굴며 소리치는 비명이었다.

 

「으윽!」

 

비참한 신음 소리를 내며 쓰러진 제원동의 왼 쪽 손에서는 시뻘건 피가 철철 흘러

금방 땅을 피로 물들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림은 하얀 옷을 팔랑거리며 쇠다리를 건너뛰고 있었다.

이때, 때 아닌 제원동의 비명 소리에 놀란 승일청은 쥐고 있던 자모담을 하림의

뒷등을 향하여 날려 보냈다.

 

  순간,

 

「소저! 암기를 조심하시오!」

 

  큰 소리를 외치며 승일청을 향하여 달려 나가는 송목도장은 재빨리 승일청의 면상을 향해

장검을 던졌다.

  그 순간,

낯선 고함 소리에 앞으로 달려가던 하림은 약간 허리를 굽히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무슨 암기인지도 확인할 수 없는 괴상야릇한 암기가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원래 승일청이 던진 자모담은 하림이 뛰어 가는 속도를 계산하고 던진 것이었다.

그것이 송목도장의 외치는 소리에 허리를 굽히며 주춤하고 돌아서는 순간에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었다.

일단 승일청의 자모담을 스쳐 보낸 하림은 다시 양몽환에게로 달려갔다.

  이때, 왕한상과 대적하고 있던 양몽환은 왕한상의 제자 십여 명이 합세하는 바람에

약간 고전을 겪고 있던 때였다.

이것을 멀리서 본 하림은 제원동의 왼쪽 손을 장검으로 후려쳐 쓰러뜨리고는

그 길로 양몽환에게 달려오던 길이었다.

  양몽환을 응원하고자 달려오는 하림을 본 왕한상은 하림이 직접 자기에게로

달려드는 줄 알고 몇 걸음 뒤로 피했다.

그러자 그 틈을 이용한 하림은 백옥 같은 손을 내밀어 부드러운 장풍을

왕한상에게로 넌지시 밀어 붙였다.

그 바람에 왕한상은 다시 서너 걸음이나 비틀거리며 후회했다.

이렇게 해서 양몽환과 나란히 선 하림은

 

「오빠! 저에요.」

 

  다정한 목소리로 양몽환을 부른 다음 얼굴 가득히 웃음을 띠웠다.

그러자 양몽환도 빙긋이 웃으면서 사선을 器고 달려와 준 하림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음! 고단하지?」

 

「아뇨! 오빠는?」

 

「나도!」

 

  다정하게 대화를 나눈 양몽환과 하림은 다시 검을 힘 있게 쥐었다.

 

  이때까지 양몽환을 다리 입구에서 격퇴시키려고 십여 명의 날렵한 제자까지

동원한 왕한상은 십오륙 회에 걸쳐 일제히 달려들었으나 번번이 실패에 그치고

그나마 그때 마다 제자들이 다리 밑으로 떨어져 손해가 막심했다.

  수를 많이 동원시켜 파죽지세로 몰아붙이면 양몽환이 후퇴하여 다리 입구를 열어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기편에서 손실만 날뿐 그리고 한 걸음이라도 더 들어오면 들어왔지 밀려 나가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데 슬그머니 울화통이 터졌다.

  그리고 자기의 계산이 오산이라는 것을 알고는 전략을 다시 바꾸었다.

그것은 쇠다리의 폭이 너무나도 협소하기 때문에 십여 명의제자가 일시에 밀려드는 것은

결국 양몽환의 공세에 저마다 먼저 도망치려다 서로 밀려 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결과 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번에 두 명씩 패를 나누어 윤번제로 돌아가며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고 공격한다면

나중에는 양몽환이 지쳐버리고 말 것이라는 새로운 계산이었다.

  그런데 뜻 밖에 하림이 나타남으로서 그 계획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무리 윤번제로 치며 후퇴하고 후퇴하며 치고 한다 해도 상대가 양몽환 하나가

아닌 하림까지 둘이라면 계산은 맞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 반면, 하림은 가만히 사태를 관망하고 그 중에서 왕한상만 쓰러뜨린다면

나머지 오합지졸들은 제풀에 물러갈 것이라고 내다 봤다.

그래서 왕한상만을 노리고 일격을 가하려는데

일양자와 혜진자가 장검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천중사추와 공방전을 겨루던 일양자 일행은 그들의 사상진법을 무너뜨리고

천중사추를 삼장 밖으로 격퇴시키게 되었다.

비록 그 위력이 강하다는 사상진법도 일양자 일행이 일치단결하여 뚫고 나가며

썩은 풀치듯 장검을 휘두르는 데는 천중사추도 도리 없이 삼장 밖으로 격퇴 당하고 말았다.

이에 격퇴당한 천중사추는 옥영자와 아미파의 초혜와 초진 대사에게 맡기고

양몽환과 하림을 도우려고 일양자와 혜진자가 달려온 것이었다.

  사상진이 흩어지고 옥영자와 초혜 그리고 초진이 가로 막고 버티는 바람에

오도 가도 못하고 발을 구르는 천중사추와는 대조적으로 원홍대사와 치열한

공방전을 벌리고 있는 이창란은 틈틈이 자기제자들의 분투하는 광경을 눈여겨보았다.

그리고 도처에서 패색이 완연한 제자들의 참상을 보고는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이었다.

  갈수록 사태는 천용방에게 불리해지고 패색이 완연한 이때에 더 싸움을 계속한다면

인명의 피해가 막심할 것 같았다. 잠시 동안 망설이던 이창란은 달려드는

원홍대사에게 손을 들어 그의 공격을 막은 다음 급한 소리로 외쳤다.

 

「대사! 이 노부는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실례하겠소!」

 

하고는 몸을 돌려 제원동과 최문기 그리고 승일청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용두 지팡이를 번개같이 휘둘러 장풍을 일으켜 상대방의 고수들을 물리친 다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빨리 쇠다리를 건너라. 뒤는 내가 맡겠다!」

 

하는 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승일청과 제원동은 각기 무기를 휘두르며 다리 쪽으로 달려가고

이창란은 용두 지팡이에 장광(杖光)을 날리며 고수들의 추격을 막고 있었다.

  이때, 팔을 다쳐 피를 쏟고 있던 제원동은 팔의 고통을 참느라고 이를 악물며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그러던 그는 그의 팔이 아픈 것을 복수할 셈으로 동발을 휘둘러 각파의 고수들이 모여 있는

무리 속으로 던졌다.

엉뚱한 곳에다 화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제원동의 손을 떠난 동발은 날카로운 소리로 허공을 날았고 급강하 하는 곳에서는

처참한 비명 소리가 터졌다.

그리고 사방으로 피가 튀며 살점이 떨어져 나가 공동파의 애꿎은 두 명의 제자가

비명에 가고 말았다.

동발 하나로 두 명의 목숨을 앗은 제원동은 의기양양하여 다시 하나의 동발을

머리 위까지 올리고는 다리를 향하여 눈을 부릅뜨고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러는 한편, 이창란의 용두 지팡이에 눌린 고수들은 한 발도 꼼 짝 못하고

이창란에게 달려들지 못한 채 노리고만 있었다.

이때, 암암리에 기력을 운행한 이창란은 건원지신공의 수법으로 악랄한 지풍을 밀어 붙였다.

그와 함께 두 명의 군협의 입과 코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져 버렸다.

  이에 분격한 원홍대사는 큰 소리를 외치며 이창란에게 달려들었다.

 

「이방주! 이놈!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버럭 소리를 지르며 뛰어 나가자 이창란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쇠다리가 있는 곳으로

몸을 날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꼼짝 못하고 있던 각파의 군협들은 앞장 선 원홍대사와 청성파의 송목도장의

뒤를 따라 후퇴해 가는 이창란의 뒤를 성난 파도같이 쫓아 달려 나갔다.

  한편, 쇠다리를 목표로 몸을 날린 이창란은 달리면서 사태를 훑어보았다.

그리고 양몽환과 하림이 길목을 지키고 있는 곳이 가장 중요한 요새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쏜살같이 달려가며 용두 지팡이를 휘둘렀다.

이때 일양자 일행과 합세하여 왕한상을 대적하고 있던 양몽환은 이창란이 돌진해 오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왕한상의 쇠부채부터 밀어 붙였다.

그 순간, 방주 이창란이 돌진해 오는 의도를 알아차린 왕한상은 슬쩍 방향을 바꾸어

방주에게 양몽환을 맡기고는 그 길로 몸을 피해 혜진자를 겨누고 지쳐들어 갔다.

 

이때,

 

공동파의 제자를 쓰러뜨리고 다시 동발을 휘두르며 달려오던 제원동은 왕한상이 혜진자에게

기수를 돌리자 즉시 왕한상에게 합세하여 혜진자의 뒤에서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은 어느 쪽도 승부의 징조 없이 각기 적당한 상대자를 골라잡고 필살의

일격만을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더구나 방주 이창란이 양몽환에게 덮쳐들면서부터 침체하고 패색이 완연했던 천용방의

단주들은 기세가 등등하여 고함까지 외치며 마지막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이창란은 양몽환과 하림을 상대로 용두 지팡이를 휘두르고 왕한상과 제원동은

일양자와 혜진자를 그리고 개비수 최문기는 이창란과 왕한상의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좌충우돌 하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각파의 고수들을 막아서고 있는 승일청에게도

달려가 쇠망치를 휘두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로 비등한 고수들의 실력은 좀처럼 그 자웅을 결할 수없도록 막상 막하의 대결이었다. 승부는 쉽게 나지 않고 일시 이창란 자신의 출현으로 저하되었던 단주들의 사기가 조금 만회되었다고는 하지만 각파의 고수들까지 합세하여 몰아친다면 천용방의 전세가 다시 궁지에 몰려

자기들의 계획도 이루어 보지 못하고 참패할 것은 너무나 환한 이치였다.

  이와 같이 불리한 싸움을 하고 있으면 있을수록 초조해지는 것은 이창란 방주였다.

그로서는 속히 이들을 격퇴시키고 쇠다리를 건너가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어주지 않는 싸움이었다.

  극도로 초조해진 이창란은 양몽환을 공격하던 용두 지팡이를 거두고 태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는 건원지신공의 수법으로 양몽환부터 격퇴시키기로 결심했다.

  이때, 양몽환은 이창란의 용두 지팡이가 갑자기 멈추자

그의 수법이 틀림없이 건원지신공으로 바뀌리라고 예감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손가락을 쫙 편 이창란은 양몽환의 예감대로 건원지신공을

발휘하여 한 줄기의 새파란 지풍을 날려 보내는 것이었다.

  순간, 위기를 직감한 양몽환은 오행미종보법으로 전술을 바꾸어 그의 지풍을 피하려고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양몽환은 진퇴양난에서 주저하게 되고 말았다.

그것은 만일 이창란의 지풍을 피하기 위하여 오행미종보법으로 자신의 몸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뒤에서 싸우고 있는 하림이 자기 대신 이창란의 지풍을 받아야 한다는

위급한 사태가 초래되는 것이었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게 된 양몽환은 매우 난처한 입장에서 우물 주물 하다가 급기야는

피하기를 단념하고 이창란의 건원지신공을 받기로 결심했다.

 일단 그렇게 결심하자 두려운 것이 없었다.

눈 딱 감고 이창란의 건원지를 온 몸으로 받고 말았다.

  사실, 양몽환은 주약란이 만들어 준 묵인철갑사피의 조끼로 어느 정도의 심후한 공격은

거의 맞받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하림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눈 딱 감고 이창란의 건원지신공을 받은

양몽환은 그것이 비록 대단한 상처를 주지는 않았지만 충격만큼은 컸다.

  순간, 한줄기의 날카로운 지풍이 가슴을 때렸다고 느꼈을 때는

이미 양몽환의 몸이 허공을 날고 있을 때였다.

  건원지의 신공으로 양몽환의 몸을 공중으로 날린 이창란은

기수를 돌려 하림에게로 달려들며 용두 지팡이를 휘둘렀다.

이때 하림은 이창란의 건원지신공에 양몽환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자

불시에 분노가 치밀어 후딱 돌아서며 이창란의 용두 지팡이를 맞받아치고 말았다.

그러자 이것은 또 어떻게 된 일인지 이번에는 하림의 몸마저 허공으로 떠오르고 마는 것이었다.

일시에 양몽환과 하림을 허공으로 띄워 올린 이창란은 기고만장하여 조금 전에 당한 수치라도

 씻은 듯 허공을 날으는 양몽환과 하림을 쫓아가며 용두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허공으로 떠오른 하림은 사실 이창란의 공격에 몸이 허공으로 뜬 것이 아니었다.

  하림은 양몽환이 허공으로 날으는 것을 보고는 양몽환의 신변이 염려되어

이창란을 공격한 다음 자기도 몸을 날려 양몽환의 몸을 보살펴 주려고 하던 때였다.

그러한 때에 이창란의 일격을 받은 하림은 용두 지팡이의 장풍과 자신의 내공을 이용하여

양몽환의 뒤를 쫓아갔던 것이다.

그런 것을 알길 없는 이창란은 절호의 기회라고 쾌재를 부르면서 가루가 되었으리라

여기며 허공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혀를 내두르고 멈칫 서고 말았다.

  어디서 한번도 보지 못한 괴이한 수법으로 허공에서 몸을 빙빙 돌리는 하림은

흡사 허공에서 땅에 떨어진 물건이나 찾는 것처럼 손을 저으며 이리 저리 날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도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솔개미가 빙빙 돌듯 크게 원을 그리며

도는 데는 더욱 아연해 질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얼마동안 하림의 기기묘묘한 무술에 눈이 휘둥그레졌던 이창란은 그제야 자기가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쓰러지라고 후려갈긴 자기의 일장을 역 이용하여 하림이 허공을

날을 줄은 정말 상상 밖이었다.

  가벼운 몸으로 허공을 훨훨 날아 양몽환이 날고 있는 뒤를 바싹 따라가는 하림은

양몽환과 거의 함께 쇠다리를 건너 곧 아래로 급강하했다.

그러자 천용방의 제자들은 양몽환과 하림을 향하여 십여 명이 일시에 달려드는 것이었다.

  이때, 하림은 그래도 양몽환이 혹시 상처나 입지 않았나 염려한 나머지 양몽환이

손쓰기 전에 먼저 동숙정에게서 배운 괴이한 검법으로 맨 먼저 앞장서서 달려오는

네 명의 장정을 차례로 쓰러뜨린 다음,

오른 손에 쥐고 있던 보검으로 한 번 높이 쳐들어 날쌔게 허공을 갈겼다.

그와 함께 다시 두 명의 장정이 각기 팔이 하나씩 떨어지며 나가 떨어졌다.

  원래 천진난만하고 착한 성품의 하림은 비록 자기가 귀원비급에 있는 검법을 익히 배웠다 해도

절대로 사람을 살상하지는 않았다.

그러한 기회가 없었다기보다 의식적으로 피해오던 그녀였다.

그러나 지금은 사태가 너무 위급하고 그들이 살상되지 않으면 그 반대로 비참한 결과가

자기와 또 양몽환에게 닥쳐 올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 몇 수에 여섯 명의 장정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나머지의 장정들은 더 달려들지 못하고

겁먹은 표정으로 제각기 뒤로 물러서기에 여념이 없었다.

  한편, 하림이 적을 물리치는 동안 양몽환이 발을 붙이고 선 곳은 하림과 거의 일장 간격이나

사이를 둔 절벽 위였다.

아차, 실수하여 떨어지는 날이면 제대로 뼈도 추릴 수 없을 만큼 깊고 험한 절벽 위였다.

하림에게 달려들다 일시에 여섯 명의 장정이 쓰러지는 바람에 주춤했던 장정들은

뒤에서 몰려오는 제자 동료들의 힘을 얻어 이번에는 우르르 양몽환에게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이창란의 악랄한 수법이 이렇게까지 자기를 공중으로 띄워 날릴 줄을 모른 것은 아니지만

그의 딸 이요홍을 생각해서 마음대로 공격 할 수 없는 그로서는 어딘지 모르게 분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일단 이창란의 일격으로 절벽 위까지 오게 된 그로서는 인식이 조금 달라졌다.

양몽환이 절벽에 내려서자마자 우르르 달려드는 천용방의 고수들은 양몽환을 절벽 밑으로

떨어뜨리려는 계획인지 일제히 들이닥치는 것이었다.

이때, 양몽환의 위기를 알아챈 하림은 즉시 몸을 날려 경공법을 발휘하여 질풍같이 달러들었다.

그리고는 원 손을 높이 들어 장풍을 일으키고 아울러 오론 손의 보검을 휘둘러 검풍을 일으켜

두 개의 강한 바람이 양 쪽에서 가운데로 몰려가도록 했다.

그와 함께 급히 몸을 돌리면서 양몽환의 앞을 가로 박았다.

그러자 세 명의 고수가 발을 버둥거리며 절벽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서로가 안간힘을 쓰다

와르르 떨어지며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것이었다.

이 기회를 이용한 양몽환은 급히 기력을 운행하고 조식을 취했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너무나 충격이 켰던지 아니면 무슨 상처라도 당했는지 핏기 없는

창백한 얼굴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양몽환을 염려하고 따라온 하림은 순간 당황하며 속히 조식이 끝나기만을

초조히 기다렸다.

그러면서도 고수들의 역습을 경계하는 그녀의 시선은 정말 날카롭고 예민했다.

  그때였다.

하림의 괴이한 경공법과 무술에 혀를 내두르던 이창란은 이름도 없는 소녀에게서

조롱을 받은 듯한 생각이 들자 눈썹을 곤두세우며 용두 지팡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양몽환은 운기 조식에 창백한 얼굴이었고 더구나 자기는 어리고 가냘픈 여자의 몸이라

눈썹을 곤두세운 이창란의 험악한 표정을 보자 일순 긴장했다.

  그러나 이미 십여 명의 고수들을 살상한 그녀로서는 더 두려움이 없었다.

즉시 보검을 힘 있게 쥐고 달려오는 이창란의 용두 지팡이 속으로 뛰어 들었다.

  설마 나이 어린 소녀의 몸으로 대담무쌍하게 맞바로 대항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던

이창란은 그녀의 괴이하고도 민첩한 행동에 경각심을 높이고 지팡이 한 수에

소지천남(笑指天南)과 역소오악(力掃五嶽)의 수를 합작하여 장품과 장장을 일시에 날렸다.

그러나 하림은 그보다 더 재빨리 도음접양(導陰接陽)의 절학으로 이창란의 장풍과

장광을 역이용하여 그가 일으킨 무서운 힘을 되받아 자기의 힘까지 더 얹어 밀어 보내고 말았다.

그러자 이창란은 일장 여나 휘청거리며 물러나고 말았다.

일개 소녀의 대항으로 일장 여나 어쩔 수 없이 밀리다시피 후퇴한 이창란은 슬그머니

분통이 터졌다.

 

  (요 맹랑한 계집이 어디서 잔재주를 배워 가지고 호랑이 무서운 줄도 모른다는 말인가.

내가 한번 후려치기만 하면 가루가 돼버릴 것이. 내 참 더러워서‥‥‥)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한껏 벼르고 용두 지팡이를 흔들면 어느 틈에 바짝 다가서서는 도리어

용두 지팡이를 쥔 손의 어깨를 사정없이 후려쳐 번번이 필살의 일격이 무위로 끝나는 데는

통탄할 일이었다.

그보다 하림의 일격에 몇 걸음씩 비틀거리며 물러선대서야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고 일격으로 하림을 쓰러뜨리려는 이창란은 음침하게 웃으며

왼 손을 천천히 가슴 위에 했다.

다음 건원지신공으로 요절을 낼 결심이었다.

  이때, 그의 심중을 꿰뚫어 보고 그가 행동하는 것이 건원지신공임을 간파한 하림은

그가 손을 가슴에서 떼기 전에 보검을 휘둘러 바싹 다가셨다.

그리고는 날씬한 몸을 휘청 굽히며 보검을 앞으로 확 내밀었다.

그와 동시에 다시 눈앞이 아찔하도록 바람을 일으키면서 보검을 가볍게 돌려 비틀듯이

끌어 당겼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였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비 같이 춤을 추는 듯한 하림의 하얀 옷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물러났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이창란의 앞섶에서는

 빨간 피가 한 방울 두 방울 내비치고 옷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조금만 더 힘을 주었더라면 이창란의 앞섶은 피가 뿜어져 나올 것이었다.

그러나 손톱으로 긁은 만큼의 미세한 상처를 내어 그의 기세만 꺾으려는 하림은

그 즉시 몸을 돌려 몇 걸음 후회하며 그의 동정을 살폈다.

  그때, 이창란은 어리둥절한 채 무엇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고 있다가 앞섶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피까지 배어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 그만 흙빛으로 얼굴이 변하며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방주다웠다.

더 싸울 의욕을 버린 듯 지팡이를 옆구리에 끼고 잠시 동안 희한한 일이라는 듯이

하림을 바라보고 있던 이창란은 그의 처절했던 얼굴에 미소가 떠돌면서부터

전의를 완전히 상실한 것이었다.

벌써 두 번째 당하는 수치요 모욕이었다.

처음에는 양몽환에게 옷이 찢어지고 지금은 하림에게 피까지 흘리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창란은 천천히 손을 들어 싸움을 그만 두자는 듯 흔들었다.

그리고는 침통하게 웃으며 하림의 고운 얼굴을 주시하는 것이었다.

 

「소저! 오늘 이 노부는 소저의 검술에 탄복하오. 싸움을 중지하겠소!」

 

  패배했다는 이창란의 말에 하림도 긴장을 풀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다시 고개를 든 하림은 입술에 침을 묻혔다.

 

「저 역시 더 싸우지 않겠습니다.

홍 언니가 상심할까 걱정이에요.」

 

「흠! 양자강의 물결은 뒷 파도가 앞 파도를 친다는데 과연 그 말이 옳은 말이오!

이 노부는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모든 파의 고수들을 무사히 쇠다리를 건너게 하겠소!」

하고는 즉시 몸을 돌려 뭇 고수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들은 손을 멈추시오!」

 

  벽력같이 외치는 소리에 지금까지 무기를 휘두르던 각과의 고수들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일제히 손을 멈추었다.

그러자 이창란은 왕한상과 제원동 그리고 승일청을 손짓으로 불러 세웠다.

 

「즉시 각파의 모든 고수들이 다리를 건너게 하오!」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단주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지금까지 목숨을 내 놓고 또 수십 명의 제자들까지 희생시켜 가면서 고수해오던

쇠다리를 이제 열어 놓고 고수들을 건너게 하라는 말은 도대체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니면

못할 소리였다.

그런데 지금 자기들의 계책도 무시하고 돌연한 명령에 정신이 쑥 나간 단주들은

 저마다 서로의 얼굴들만 바라볼 뿐 말이 없었다.

맥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의 명령이라고 거역하랴.

방주 이창란을 거역할 방법이 없는 단주들은 우거지상이 되어 한쪽으로 비켜서서

얼굴을 찡그리고 고수들이 다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구대 문파의 고수들이 다 통과했다.

그 뒤로 맥없이 따르는 천용방의 단주들과 천중사추는 눈을 내려 깔고

자기들을 보고 오는 듯한 이창란의 철그렁거리는 지팡이 소리에 귀만 바싹 세운 채 다리를 건넜다. 모든 고수와 단주들이 다리를 건너자 맨 뒤로 건너온 이창란은 쇠다리 한 끝에 매어 있는

팔뚝만큼 굵은 쇠줄을 향하여 지팡이를 내려쳤다.

  그러자 다리를 지명하고 있던 쇠줄은 지팡이에 맞아 맥없이 끓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쇠다리는 깊은 계곡으로 한쪽이 기울어져 길을 차단시키고 말았다.

  굵은 쇠줄을 끊은 이창란은 천천히 섰다.

그리고는 얼마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던 이창란은 주위에서 자기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

각파의 고수들에게 고개를 들었다.

 

「여러분! 이 노부는 쇠다리를 끓어 여러분들을 모두 계곡으로 떨어뜨릴 계획이었소.」

 

  그러자 각파의 고수들은 입을 벌리고 웅성거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조용하시오! 할 말이 더 있소.

여기 모인 고수들을 모두 이 계곡 밑으로 몰아넣고

우리 천용방의 고수들도 역시 죽으려고 하였소. 자, 이제 보시오.

이 노부의 계획이 어떠했는가를 여러분은 보시오!」

 

하면서 건너온 다리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러자 곧이어 요란한 폭음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불꽃이 튀며

삽시간에 단혼애(斷魂涯)는 불바다로 변하고 펑 펑 폭음 터지는 소리가

수 없이 계속되면서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참으로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었다.

순간, 각파의 고수들은 경악의 빛을 금치 못하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가 하면

괴상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원홍대사는 수 없이 합장하며 염불을 외웠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끔찍하고 몸서리치는 일을 이방주는 계획하고

일시에 우리들을 죽이려 했단 말이오?」

  그러자 이창란 역시 원홍대사의 흉내를 내며 염불을 외우는 것이었다.

 

「아미타불 십년 공이 아미타불이오.

당신들을 위해서 십년 동안이나 계획한 일인데 아미타불!」

 

하고는 웅성거리는 고수들을 제지시키며 다시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조용들 하시오.

나는 원래 여러분과 같이 저 불더미 속에서 생을 마치려고 결심했소이다.

그러나 오늘 뜻 밖에 한 소녀의 칼을 맞아 느끼는 바가 있어 특별히 자비심을 베풀었소이다.」

 

하며 하림을 가리켰다.

 

  그러자 모든 군협들은 하림을 돌아보고 다시 이창란의 가슴에 내비친 선혈을 보았다.

그 당시 군협들은 서로 생사를 겨루는 격투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하림의 보검이

이창란의 가슴을 찌른 것을 본 사람이 없었다.

 

「만일, 그때 저 소녀가 조금만 더 보검에 힘을 추었더라면

이 노부는 벌써 죽었을 것이었소.

그래서 이 노부는 개심하고 여러분을 죽이려던 계획을 버리고

다리도 무사히 건너게 한 것이오.」

 

  그 순간, 모든 군협들은 아름다운 자태의 하림을 바라보며

선망의 눈초리로 어느 파의 소속인가를 귓속말로 속삭이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흐뭇해하는 사람은 양몽환과 혜진자였고 일양자와 옥영자도

서로 만족한 듯이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동안도 이창란의 말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분이 단혼애에서 떼죽음을 면했다고 기뻐하지 마시오.

이제부터 여러분들이 돌아가는 이 계곡에는 우리 천용방의 무수한 고수들이 매복되어 있소.

인명은 재천이라 하지만 각기의 무공으로 겨루어 생명을 보존하시오!」

 

하고는 용두 지팡이를 머리 위로 올렸다.

그러자 그것이 무슨 신호였던지 천용방의 고수들은 제각기

미리 정해진 자기들의 은신처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뿔뿔이 헤어져 매복하고 남은 사람은 단지 방주 이창란뿐이었다.

갑자기 돌변한 사태에 눈이 휘둥그레진 각파의 군협들은 저마다 의아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다가 그들의 속셈을 알아차리고는 사태가 위중함을 깨달았다.

그리고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웅성거리며 중앙으로 몰려나온 군협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이창란을 겹겹이 에워싸고 말았다.

만일 어떠한 사태가 돌발한다면 대항할 결의로 각자 무기를 번쩍이며

한 겹 두 겹 에워싸고 있었다.

  그래도 이창란은 눈썹도 하나 깜짝이지 않고 용두 지팡이를 서서히 휘두르는 것이었다.

다시 무슨 계략이 있는지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을 찾아 볼 수도 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군협들의 날카로운 무기도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우리 천용방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는

이 노부도 대강 짐작은 하고 있소이다.

그러한즉, 여러분들이 합동 작전으로 천용방을 섬멸해도 좋고 각기 행동을 취해도 좋소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만은 알려 드리겠소.

이 단혼애에는 빠져 나갈 길이 오직 한 길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여러분들이 죽지 않고 살면 이 노부가 우리 천용방의 총단에서 기쁘게 영접하겠소! 실례 하오!」

 

  말을 마친 이창란은 획 돌아서며 용두 지팡이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에워쌌던 군협들은 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 틈에 몸을 날리려던 이창란은 왼 손을 번쩍 들고 건원지신공의 한 수를 금방 발휘하려는

태세로 가슴을 쳤다.

그리고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누구든지 이 노부의 건원지신공을 맛보고자 한다면 길을 막고 나서시오!」

 

  위협조의 대갈일성이었다.

그러는 그는 눈까지 부릅뜨고 주위를 노려보는 것이었다.

 

  이곳에 모인 군협들은 이창란의 건원지신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날카롭고 살기가 넘치는 그의 건원지신공에 기가 질린 군협들은 어느 누구도

그의 앞을 가로 막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서로 눈치만 볼뿐 누구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자

이창란은 벼락같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겹겹이 싸인 군협들에게로 달려들었다.

그 바람에 저마다 혼비백산하여 양 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터 주자

이창란은 기세 있게 앞길을 트며 내달리고 말았다.

그러나 군협들이라고 용기 없는 사람만 있지는 않았다.

질풍같이 달려 나가는 이창란의 앞길을 가로 막고 장검을 휘두르는 군협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곤륜파의 장문인인 곤륜 삼자의 옥영자였다.

거칠 것 없이 지쳐 나가던 이창란은 뜻밖에도 엉뚱한 장애물이 생겨 섬뜩했다.

그러나 곧 귀찮다는 듯이 꼬나 잡았던 지팡이를 훌쩍 휘둘러 팔보등보(八步登寶)의

수로 옥영자의 천운적월(穿雲適月)의 장검을 여유 있게 밀어 버렸다.

그러자 지팡이와 장검이 부딪쳐 둔탁한 쇠붙이소리와 장풍이 서로 부딪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뿌연 먼지를 일으키는 계곡은 하늘마저 흐리는 것 같았다.

  일단 옥영자의 장검을 맞받아 후려친 이창란은 더 이상 군협들 사이에서

지체하다가는 자신의 진로가 막히는 것은 고사하고 하림이나 양몽환의 괴상한 공격과 군협들의 합동작전도 두렵지 않은 바가 아니었다.

아무쪼록 속히 이 자리를 피하는 것만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다시 장검을 꼬나 잡는 옥영자를 지팡이를 휘둘러 위협하여 주춤하게 한 다음

둘째 계곡 사이로 몸을 날리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맥 빠지게 이창란이 도망감으로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어버린

옥영자는 땅을 구르며 분통을 터뜨렸으나 계곡사이로 사라진 이창란은

그새 어디로 숨었는지 먼지도 일지 않고 천용방의 조무래기 제자들도

코빼기 하나 볼 수 없이 뿔뿔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완전히 천용방의 손바닥 안에서 놀게 된 군협들은 번쩍거리는 무기들만 붙잡고

씨근벌떡 분통만 터뜨릴 뿐이었다.

이때, 정말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땅을 구른 송목도장이 장검을 뽑아들며

이창란이 사라진 계곡으로 뛰어 들려고 하자 원홍대사가 급히 불러 세웠다.

 

「도형! 서두르지 마시오. 천용방 놈들이 얼마나 악독하다는 것은

지금 저 단혼애가 무너지는 것을 봐서라도 가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오.

그렇지 않아도 구대 문파를 장악하려고 호시탐탐노리고 있는데

계곡 속에는 또 어떠한 음모가 꾸며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때

무작정 들어가면 어찌 하겠소!」

 

「대사님 말씀도 지당하오.

그러나 어찌 보고만 있겠소이까?

우리가 힘을 합해서라도 저 계곡을 섬멸하지 않으면 큰 위험이 닥칠 것이오!」

 

「그렇지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죽기를 맹세하고 우리가 다 같이 천용방과 싸우는 길 밖에 없소이다.」

 

「사실 그 길 밖에 없긴 하오.

그렇다면 우리가 천용방의 함정에 빠지기 전에 서로 협의하여

안전한 대책을 세움이 좋을 듯 하오.」

 

하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둘러 서 있는 군협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무거운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은 들으시오! 지금 안전의 사태는 극히 위중한 때가되었소.

우리 각파 고수들은 과거의 적대 감정을 없애고 힘을 합해 천용방을 무찌르는데

서로 협조해야할 것 같소. 이의 없으시오?」

 

  그러자 각파의 군협들은 이구동성으로 찬동의 뜻을 표했다.

 

「옳으신 말씀이오.

덕망이 높으신 대사님의 분부만을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하오. 여러분의 뜻이 그러하다면 이 노부가 분부하겠소.」

 

「어떠한 분부라도 받들겠습니다.」

 

  역시 군협들의 우렁찬 대답이었다.

 

「그러면 먼저 곤륜 삼자께서 들으시오.

삼자께서는 제자를 거느리고 먼저 길을 여시오.

어떠한 징조가 있으면 모험하지 마시고 협력 하도록 하시오.」

 

  군협 중에서 곤륜파의 장문인인 옥영자가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비도인들 네 명의 사제는 삼가 대사님의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그 순간, 원홍대사는 눈을 크게 뜨며 알 수 없다는 듯이 눈을 껌벅거렸다.

 

  (음‥‥‥ 이상한 일이군.

곤륜파의 사제가 어찌 네 명 뿐인가.

여섯 명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저기 젊은이는 어느 파의 누구인가? ‥‥‥)

 

하림과 나란히 서 있는 양몽환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 원홍대사는

표정을 고치고 다음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아미파의 두 분 대사께서는 구대 문파 가운데서

이십 명의 고수를 차출하여 부상자를 보살피시오.

그리고‥‥‥」

 

잠시 말을 끊은 원홍대사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생각난 듯이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부상중인 문형과 마형은 상처가 어떠한지,

큰 힘이 돼야할 분들의 병세가 지금은 어떠하시오?」

 

문공태와 마가홍의 병세를 묻는 것이었다.

이때, 누구도 선뜻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원홍대사는

걸음을 옮겨 문공태와 마가홍이 누워있는 곳으로 왔다.

그때까지 문공태와 마가홍은 정신이 혼미한 채,

핏기가 없는 창백한 얼굴은 고통의 빛이 가득했다.

이와 같은 문공태와 마가홍을 돌아본 원홍대사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혼자 탄식하는 것이었다.

 

「참으로 이창란의 건원지는 무서운 수법이군!

무공이 웅후한 두 분도 내장을 상하고 말았으니‥‥‥」

 

침통한 표정으로 문공태와 마가홍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던 원홍대사는

그전부터 의술에 능통한 정현도장을 불렀다.

 

「도장께서는 의술도 정통하신데 무슨 도리가 없겠소이까?」

 

「글쎄올습니다. 더 이상 병세를 악화시키지 않게는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도장께서 수고해 주시오.」

 

  원홍대사의 간절한 말에 정현도장은 품속에서 푸른색의 구슬로 만든 병을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하얀 정제의 약 두 알을 손바닥에 쏟았다.

 

「여기 이 약은 우리 무당파의 처방인 조기고신단(調氣固神丹)입니다.

우선 이 약을 한 알씩 먹인 다음 상처를 치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고마운 일이요.

이 노부는 벌써부터 귀파의 조기고신단이라는 약을 익히 듣고

또 영약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소이다.

그런데 그 귀한 영약을 아낌없이 희사하는 도장께 새삼 감사드리오.」

 

「대사님께서는 너무 과분한 말씀이오.

비록 기사회생(起死回生)의 신효(神劾)는 없으나 가벼운 내상쯤은 치료할 수 있는 약입니다.

그러하오나 지금 문형과 마형의 내상은 워낙 심중하여

이 조기고신단으로는 구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른 방도가 없겠소이까?」

 

「예. 다른 방도라는 것은 우선 이 약으로 의식을 회복시킨 다음

상처 입은 혈맥을 풀어야 하는 것이오.

그래서 기혈을 유통시키고 심장을 순환시키면 될 것이라 믿소이다.」

 

「그럼 모든 것을 도장께 맡기고 또 믿겠소이다. 아미타불!」

 

  합장한 후 돌아선 원홍대사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천용방을 무찌르는 작전 명령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원홍대사 자신의 제자들을 불렀다.

 

「너희들은 세 사람씩 한 조(一助)가 되어 계곡을 계속해서 순찰하여라.

천용방 무리들을 나오지 못하게 막고 죽음을 바쳐 힘껏 싸워라.

그리고 무슨 일이 있으면 곧 연락을 취해라!」

 

  원홍대사의 명령을 받은 고수들은 각기 소임대로 계곡을 향해 떠났다.

자기의 명령대로 그들이 각각 사라져 가자 원홍대사는 남아있는

각파 고수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들은 연락이 오는 대로 생사를 초월해서 싸워야 할 것이오.

그동안 기력을 운행 집중시키고 조식하시오.

다시 분부 하겠소이다!」

  각파의 모든 군협들은 원홍대사의 말대로 각기 기력을 운행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각파의 장문인들은 자기 제자 중에서 별도로 인원을 차출하여

자체 경비를 시키기도 했다.

그러자 자연히 각 문파마다 장벽을 없애고 서로 친숙한 사이가 되어 도와가며

앞으로 취해야 할 일들을 의논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일은 수백 년 내에 일찍이 없었던 화목한 분위기였다.

 지금까지 적대시해 오던 각 문파마다 모든 감정을 일소에 붙이고

철치 단결하여 서로의 우의를 다지는 결과가 되었다.

 

이와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보고 있던 송목도장은 미소를 띠우며 원홍대사에게로 다가갔다.

 

「대사님! 천용방이 무술 대회를 열고 처참한 화를 입히려고 한 덕분에 우리 각 문파들은

서로의 원한을 없애고 형제처럼 지내게 되였습니다. 하하‥‥‥」

 

「그 얼마나 반가운 일이요? 근 삼백년 동안 적대시하고 원수치부하지 않았소.

천용방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해 주었소이다 그려, 하‥‥‥ 하‥‥‥」

 

「만일 여기서 우리가 죽지 않고 살아난다면 앞으로는 서로 분쟁도 없이

태평세월을 만날 것 같소이다.」

 

「그야 이를 말씀이오. 그러나 그 태평세월이 또 얼마나 가려는 지‥‥‥」

 

  앞으로 몇 년 후에 일어날 일까지 내다보는 원홍대사는 우울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주석이나 다는 것처럼 한마디 던지는 것이었다.

 

「원래 큰 변란이 지나가면 으레 그렇게 되는 법이지요!」

 

  한편, 문공태와 마가홍에게 약을 먹인 정현도장이 그들의 회복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일양자와 옥영자는 서로 앞으로 할 일에 대해서 의논했다.

 

「금정봉으로 돌아가면 제자들에게 추혼십이검법을 전수시키도록 해야겠소.」

 

  침통한 일양자의 말에 옥영자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렇게 하세요. 역대 사조(歷代師祖)에게 사죄한 후 제자에게 전수하도록 하십시다.

제자들의 무공이 너무 미약한 것 같군요‥‥」

 

하는 때였다.

 

  돌연, 허공에서부터 날개 치는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백설 같은 큰 학이

공중에서부터 쏜살같이 내려와 군협들의 머리 위에서 날개를 퍼덕이며 빙빙 도는 것이었다.

아직 이렇게 큰 학을 보지 못했던 군협들은 저마다 머리를 제치고 신기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감탄과 놀라움을 금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 중에서도 하림은 더욱 놀라고 기뻤다.

하림은 큰 학이 주약란의 현옥이라는 것을 알자 자기도 모르게 양몽환을 부르며 소리쳤다.

 

「오빠! 대 언니의 현옥이 왔어요!」

 

하는 큰 소리에 목이 빠져라 하고 하늘을 바라보던 군협들은 일제히 하림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자기의 말이 너무 켰다는 것을 깨달은 하림은 금방 얼굴이 붉어졌다.

 

「웬일일까? 현옥이!」

 

「글쎄, 웬일일까요? 제가 불러 볼게요!」

 

  하림은 백옥 같은 손을 들어 몇 번 흔들었다.

그러자 현옥은 하림의 자태를 알아보았는지 길게 소리쳐 울고는

하림이 있는 바로 앞에 사뿐히 내려 맞는 것이었다.

신비스런 큰 학이 하림의 손짓 하나에 사뿐히 내려앉자

더욱 눈이 휘둥그레진 군협들은 일제히 일어나며 요술 소녀와 같은

하림과 큰 학을 신기하고도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너나없이 자못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큰 학을 주시하고 있었다.

 

하림 앞에 내려앉은 학은 하림을 알겠다는 듯이 두어 번 긴 부리로 하림을

가볍게 건드리고는 의젓한 걸음으로 군협들의 사이를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이었다.

 

조금도 사람을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군협들을 헤치고 나온 학은

두 날개를 퍼덕거려 억센 바람과 모래를 날리면서 천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산을 넘어 허공 속으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학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자 하림은 서운한 듯이 얼마동안 그렇게

허공만 바라보다가 양몽환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오빠! 대 언니도 이곳에 온 모양이죠? 그렇지 않으면 현옥이 올 리 없는데!」

 

「글쎄 ‥‥‥」

 

  눈을 반짝거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하림을 바라보며 싱긋이 웃는 양몽환은

더 말하지 않고 기력을 운행하는 데에 몰두했다.

지금 주약란을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듯이 눈까지 감은 양몽환의표정은

조금 괴로운 것 같기도 했다.

그러자 하림도 양몽환을 따라 눈을 감으며 조식을 취했다.

 

한편,

 

문공태와 마가홍을 치료하고 있는 정현도장은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그들의 기혈을 유통시키느라고 여념이 없었고 기침 소리 하나 없이

제각기 기력을 운행 조절하고 있는 군협들은 앞으로 일어날 사태에

만반의 준비와 비장한 각오로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계곡을 사이에 둔 넓은 벌판은 적막에 가까운 고요함이

소리 없이 최후의 시각을 향해 흘러가고 있었다.

  이윽고 그 고요함을 깨뜨리는 긴 숨소리가 있었다.

적막을 뚫고 길게 들리는 그 숨소리는 정현도장의 손으로 기혈이 유통된 마가홍의 숨소리였다.

공력과 강기(?氣) 강한 마가홍은 정현도장의 치료로 곧 깨어날 수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듯 두리번거리던 마가홍은 문공태의 기혈을 쥐고 있는 정현도장의 몸이

땀으로 축축이 젖어 있음을 보고 자기도 그에 의해서 회생하게 되었음을 직감한 모양이었다.

그는 곧 일어나 정현도장에게 머리를 숙였다.

 

「도형께서 이 빈도의 생명을 구해 주신데 대하여 무엇으로 보답하오리까?」

 

  진심으로 감사와 치하를 드리는 것이었다.

 

「부끄럽소이다. 변변치 못한 재간을 마형께서 그렇게 까지 치하해 주시니 ‥‥‥」

 

「도리어 빈도가 드릴 말씀이오이다. 은혜를 깊이 새기겠소이다.」

 

  마가홍은 백배 사례하고 소모된 진기를 새로 운행 조절했다.

이창란의 악랄할 수법인 건원지의 공격을 받아 일시 혼절했었지만 워낙

그의 내공이 강한 때문인지 별로 상처도 없이 곧 회복될 수 있었다.

 

마가홍이 회복되자 정현도장은 다른 한편에 누워 있는 백의신군 등뢰에게로 옮겨가

추궁과혈수법(淮宮過穴手法)으로 등과 가슴을 주무르고 다시 문공태에게로 돌아와

기혈을 유통시키는 등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마가홍에 비해 강기(?氣)를 발휘하지 못한 문공태와 등뢰는 상처가 심한 모양인지

쉽게 회복되지 못했다.

이때, 정현도장의 수고를 민망히 여긴 원홍대사는 문공태와 등뢰 사이를 번갈아 가며

왔다 갔다 하는 정현도장에게로 다가가 백의신군 등뢰의 치료를 덜어 주었다.

등뢰의 내상을 가로 맡은 원홍대사는 다시 추궁과혈수법으로 그의 요혈을 뚫고

유실된 진기를 강렬한 속도로 투입시켜 주었다.

이와 같이 반복하기를 일곱 번 만에 등뢰도 긴 숨을 몰아쉬며 깨어났다.

등뢰 역시 이창란의 건원지의 공격을 받고 쓰러졌던 것이 지금 원홍대사의

강한 내공과 정성어린 치료로 회생하게 되었다.

등뢰는 일어나는 길로 원홍대사에게 허리를 굽혔다.

 

「생명을 구해주신 은혜는 천용방을 섬멸하여 보답하겠습니다.」

 

「은혜랄 것도 없소이다.

성급히 기력을 쓰시면 해롭습니다.

천천히 진기를 집중하십시오.」

 

  대범하고 노인다운 말에 등뢰는 더욱 감복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때까지 제일 내상이 중한 문공태는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정현도장은 기력이 쇠진하여 일양자에게 치료의 손을 넘겨주었다.

일양자는 헌신적인 노력으로 비지땀을 흘리며 거의 한식경이나

문공태에게 매달려 기혈을 유통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완전한 혼절 상태에서 눈을 뜬 문공태는 아직도 자기의 가슴 요혈을 누르고 있는

일양자를 알아보았다.

때까지 일양자는 흘러내리는 땀도 씻지 못하고 흐르는 대로 땀을 철철 흘리면서

최선의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러한 때에 눈을 뜬 문공태는 자기의 생명을 구해주는 일양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깊이 뉘우치는 바가 있었다.

 

  (나는 이때까지 곤륜 삼자를 조소하고 격투도 했는데 그런 것도 개의치 않고 나의 생명을

구해주는 일양자는 정말 나 팔비신옹 문공태보다 몇 갑절이나 훌륭하고 대범하구나.‥‥‥

도저히 내가 따라갈 수 없는 큰 사람이다.)

 

  부끄럽고 미안한 문공태는 차마 눈을 뜨고 일양자를 쳐다볼 수 없었다.

  그러자 그 기미를 알아챈 일양자는 싱긋이 웃으며 넓은 아량을 베풀었다.

 

「문형! 눈을 뜨지 마시고 그대로 누워서 기력을 운행하시오.

잠시 후면 완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그제야 문공태도 부끄러움과 미안함을 억제하며 중얼거렸다.

 

「관주(觀主)님의 넓으신 아량에 소인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문공태가 싱긋이 웃자 일양자도 따라 웃었다.

  이렇게 해서 세 명의 중상자가 모두 회복되자 지휘자의 입장에서 있는 원홍대사는

앞으로 일대 혼전이 벌어질 텐데 중상을 생각지 않고 결투에 가담하여 회복된 몸을

다시 상하게 될까 염려하여 그들을 바위 밑에서 꼼짝 못하고 쉬도록 몇 명의 고수를 불러

감시 하라고 분부했다.

어디까지나 지휘자다운 아량이었다.

 

세 명의 중상자도 치유되고 또 순찰 중연 제자들에게서 별 다른 소식도 없자

원홍대사와 마주 앉아 기력을 운행하고 있던 일양자는 조용히 눈을 뜨며 대사를 불렀다.

 

「대사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곧 계곡으로 진격하실 작정 이신 가요?」

 

  그러자 원홍대사도 천천히 눈을 뜨며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많은 군협들과 계곡을 돌아본 다음

일양자의 얼굴에서 시선이 멎었다.

 

「그렇게 할 작정입니다. 날이 어둡기 전에 이곳을 뚫어야 하겠소이다.」

 

「빈도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럼 분부대로 선봉에 서겠습니다.」

 

「부디 보중하시기 바라오!」

 

  앞길을 빌어주는 원홍대사에게 두 손을 모아 읍을 한 일양자는 혜진자와 옥영자

그리고 단 하나 뿐인 제자 황지영을 뒤따르게 한 다음 장검을 뽑아 들며

계곡을 향해 달려 나갔다.

  일양자가 달려 나가자 맨 뒤를 따라 달리던 황지영은 달리던 방향을

급히 돌려 양몽환을 스치면서 속삭이듯 그러나 빠른 목소리로 귀띔을 해 주는 것이었다.

 

「양사제! 자세한 이야기는 천천히 하고 속히 스승님의 뒤를 따르시오!」

 

하고는 앞으로 달려갔다.

그 즉시 황지영의 마음과 심중을 알아챈 양몽환은 옆에 있는 하림에게 다급히 지시했다.

 

「사매는 세 분 스승님의 왼 쪽을 지켜요. 나는 오른 쪽을 지키겠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하림과 나란히 보검을 비껴들고 질풍처럼 달려 나갔다.

이와 같이 해서 최후의 승부와 천용방의 포위망을 뚫느냐,

뚫지 못하느냐 하는 중대한 판가름의 서전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휘자인 원홍대사는 잇따라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송목도장님과 신원통 형님께서는 각파의 고수들을 이끌고

좌우 양측과 전후를 살피시오!」

 

  원홍대사의 명령은 그대로 각파를 초월한 모든 고수에게 내린 명령과 같았다.

원홍대사의 명령을 받은 송목도장은 소리 높여 죽기를 맹세하고

여러 고수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러 도형들과 시주께서는 제 말을 들으시오.

지금까지 각 파마다 원수지간으로 여기고 있는 모든 원한 관계를 깨끗이 일소하고

합심 협력해서 죽기를 맹세하고 천용방을 무찌르는데 앞장을 섭시다!」

 

「옳은 말이오! 백번 천 번 지당한 말씀이오. 우리는 목숨을 걸고 싸우겠소!」

 

굳은 결의로 뭉친 여러 고수들의 우렁찬 대답이었다.

 

「감사한 말씀이오! 이와 같은 협력이라면 물불도 겁날 것 없소.

그런데 한 가지 이를 말씀이 있소. 지금 저 계곡 속에서 천용방은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는지 모르오.

그런 즉, 분산하지 말고 한데 뭉쳐 싸웁시다.」

 

「분부대로 따르겠소! 분부만 하시오!」

 

  이구동성으로 하는 군협들의 기운찬 부르짖음이었다.

  이 우렁찬 소리는 계곡을 쩌렁 쩌렁 울리고 지축을 흔들어 놓았다.

 

「그럼 이 빈도를 따르시오!」

 

  일제히 무기를 하늘 높이 들고 송목도장의 뒤를 따라 들어가는

그들은 보무도 당당히 두려울 것이 없었다.

번쩍이는 무기는 하늘을 뒤덮었고 그들의 분노와 열기는 대지를 뜨겁게 달구어 놓았다.

 

그들이 걸어가는 앞에는 선장(禪杖)을 비껴든 원홍대사가 십팔 명의 제자들을

좌우로 거느렸고 또 원홍대사의 앞에는 곤륜 삼자가 왼쪽에는 하림이 고운 눈을 치켜 올렸고

오른 쪽에는 양몽환의 장검이 차가운 빛을 발산하는가 하면 뒤에는 황지영의 부리부리한

눈이 연방 주위를 살피며 곤륜 삼자를 호위한 채 달리고 있었다.

 

선두에 선 곤륜 삼자와 양몽환과 하림 그리고 황지영이 거의 계곡 속으로 십여 장쯤 들어갔을 때

아무 기척도 없이 조용하기만 하던 계곡의 소나무 뒤에서 돌연 다섯 명의 어여쁜 소녀가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색깔의 옷을 입은 다섯 명의 소녀의 손에는 이상한 악기가 들리어져 있고

등에는 보검이 한 자루씩 메어져 있었다.

 

그러자 옥영자는 다섯 명의 소녀가 입은 옷의 색깔이 각기 천용방의 오기단주(五旗壇主)를

뜻하는 흥(紅), 황(黃), 남(藍),백(白),혹(黑)의 색깔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곧 자기들이 들고 있는 악기들을 정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람을 매혹시키는 듯 이상하고 감미로운 음을(音律)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은쟁(銀箏), 철파(鐵琶), 호가(胡茄), 옥생(玉笙)의 악기와 퉁소였다.

 다섯 가지의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들을수록 정신을 매혹시키는 것이었다.

이때 정신을 차린 옥영자는 앞으로 뛰어 나가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

 

「요망스럽게 무슨 짓이냐! 비켜라!」

 

  날카로운 소리에 악기를 튕기던 소녀들은 아무 말도 없이 더구나

옥영자를 바라보지도 않고 그대로 똑 같이 몸을 돌려 오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말없이 돌아서서 가는 소녀들의 뒤를 따라 여차하면 내려칠 기세로 옥영자는 장검을

어깨 위로 올린 채 사방을 주시하며 따랐다.

꼭 무슨 귀신에 홀린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길을 안내해 주는 선녀 같기도 한

나이 어린 소녀들을 차마 칠 수 없는 옥영자는 그들이 선수를 가해

오기만을 기다리며 뒤를 따랐다.

그 뒤로 일양자 이하 모든 군협들이 따른 것은 물론이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곳을 빠져 나가는 길은 오직 이 계곡 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가는 것이 유리했다.

  소녀들의 뒤를 따라 산모퉁이를 돌자 대번에 전망은 탁 트여 넓은 벌판에

 기화요초가 향기를 뿜으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앞서 가던 소녀들은 각기 자기들이 입은 옷과 색이 똑같은 꽃나무 뒤로

자태를 감추고 마는 것이었다.

 

순간,

 

눈을 똑바로 뜬 일양자는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가짜 귀원비급을 찾으려고 들어  갔던 동굴 속의 꽃나무 밭이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 전개된 것이 첫눈에 오행생극(五行生剋)임을 알 수 있었다.

대경실색한 일양자는 소녀들의 뒤를 따라 꽃밭 속으로 들어가려는

옥영자를 급히 불러 세웠다.

 

「잠깐! 이 차가운 날씨에 아름다운 꽃이 피었다는 것이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오.

 더구나 꽃나무도 하나 같이 크기가 똑 같고 한곳에 이렇게 많은 기화요초가

 있다는 것도 이상하오.」

 

  그제야 옥영자도 꽃나무를 유심히 보고는 놀라워했다.

 

「그렇군요. 인공적으로 심은 듯 하고!」

 

「그렇소. 내 생각 같아서는 바로 오행생극이 아닌가 하오.」

 

  그러자 뒤미처 달려온 원홍대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틀림없는 오행생극이라고 했다.

이것은 극히 교묘한 절학으로서 한 번 꽃밭에 발이 당기만 하면 그 순간부터

꽃진에 마취되어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꽃밭에서 헤어 나오지도 못한 채

굶어 죽거나 아니면 지쳐 죽게 되는 것이었다.

일양자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것이 오행생극 중에서도 반오행(反五行)임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일양자와 마찬가지로 오행생극에 조예가 깊은 정현도장은 즉시 그것이 반오행임을

간파하고 일양자와 함께 들어가 진법을 파괴하기로 했다.

 

「그럼 도장께서 잘 인도해 주시오.」

 

「관주께서는 너무 겸손하신 말씀이오. 조예가 저보다 깊으리라 여기는데 ‥‥‥」

 

  둘이서 대화를 나누며 오행진(五行陣) 속으로 발을 들여 놓을 때 역시 일양자와

반오행법에 고생을 한 양몽환은 자기의 신분도 잊어버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사부님!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꽃나무 뒤로 몸이 사라진 후였고 큰 소리로 외치며

일양자를 불렀을 때 옥영자의 날카로운 눈이 자기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양몽환은 눈을 내려 깔고 급히 외면하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양몽환은 하림과 황지영을 불러 잠시 낮은 소리로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었다.

양몽환의 손짓 발짓에 하림과 황지영은 간간이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는 표시를 했다.

 

이러한 양몽환의 동작을 본 사람은 원홍대사 한 사람 뿐이었다.

그러나 그도 무슨 뜻인지는 알 길이 없고 그보다 오행진 속으로 들어간

정현도장과 일양자의 신변이 염려되어 곧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한편,

 

오행진 속으로 들어온 정현도장과 일양자는 그 많은 기화요초의 꽃나무가

쇠로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다섯 명의 소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자취조차 볼 수 없는데 정신을 매혹시키는

악기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에 분통이 터진 정현도장은 들었던 장검으로 앞에 있는 꽃나무를 내려 쳤다.

  그 순간,

쇠로 만들어진 꽃나무는 빙빙 자리를 어지럽게 바꾸며 돌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다섯 가지의 색으로 칠해진 꽃은 백 가지, 천 가지의 색으로 변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꽃밭은 눈이 어질어질 하도록 돌아가고 수천가지의 색깔이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악기 소리까지 합해져 정신은 더욱 몽롱해지고 말았다.

아무리 오행신산(五行神算)에 자신이 있는 정현도장과 일양자였지만

속수무책으로 정신을 잃고 그 나마 출구(出口)가 어디인지 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더욱이 정신을 매혹하는 듯한 악기 소리에 맞추어 덩실 덩실 춤까지 추며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걸음은 어느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빙빙 돌아가는 꽃나무사이에서

그들 역시 빙빙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정신이 멀쩡하던 사람들이 돌변하여 춤을 추며 돌아가자 대경실색한 군협들은

처음에는 재미있는 듯이 웃다가 정현도장이나 일양자의 표정이 기쁨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휘청거리며 춤을 추고 있다는 것에 조금씩 의심이 생겨 눈을 크게 뜨던 군협들은

그만 입까지 딱 벌리고 말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자 초조해지고 당황해지는 사람은 옥영자와 혜진자였다.

  더 참고 볼 수 없는 옥영자는 일양자를 구하려고 장검을 비껴들고 꽃밭 속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깜짝 놀란 원홍대사가 급히 달려 나가 붙잡았다.

 

「안 되오! 들어가면 안 됩니다.」

 

「그럼 두 분이 친 속에 빠졌는데 그냥 보고만 있겠습니까?」

 

하며 다시 달려. 나가려는 옥영자를 붙잡은 원홍대사는 들고 있던 선장으로

빙빙 돌아가고 있는 꽃나무를 겨냥하고 힘껏 내려쳤다.

그러나 원홍대사의 선장이 도로 튕겨 나왔을 뿐 꽃나무는 끄떡도 안 했다.

그러자 원홍대사는 천천히 군협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보시오. 이 노부의 선장은 적어도 천근이 넘는 쇳덩어리요.

그런데 꽃나무가 끄떡도 안 한다는 것은 이 선장보다 더욱 단단한

쇳덩어리로 만들어 졌음을 말하는 것이오.

그렇다면 이 오행생극도 보통의 반오행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소!」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옥영자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는 모양으로

선장과 꽃나무를 번갈아 보는 것이었다.

그러자 원홍대사의 말이 다시 계속되었다.

「이런 교묘하고도 무쇠 같은 반오행에 들어가

사람을 구하겠다고 하는 것은 무엄한 모험이오.

오행생극에 정통하지 못하면 안 되오.」

 

  순간, 옥영자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하고 실망의 기색이 완연했다.

그리고 그는 누구든지 두 분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없겠느냐는 듯 군협들을 둘러보았다.

  그때, 군협 속에서 뛰어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두 사람이 튀어나와 앞선 사람과 함께 꽃밭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경악은 극도에 달했다.

그런 중에서도 지금까지와는 달리 옥영자는 냉소를 터뜨리며 외면하는 것이었다.

 

「흥! 어림없지!」

 

  꽃밭 속으로 뛰어든 사람은 양몽환과 하림 그리고 황지영이었다.

반오행진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각기 세 방향으로 갈라셨다.

그리고는 제각기 무슨 공식을 따르는 것처럼 부지런히 몇 걸음씩

동서남북으로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그 중에도 양몽환의 속도가 조금 빨라 정해진 방향을 돌고는

이윽고 덩실 덩실 춤을 추며 돌아가는 일양자를 가로 막고 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일양자의 손을 가만히 붙잡고 한편에서 춤을 추며 돌아가는

정현도장을 다른 한 손으로 잡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을 잡은 양몽환은 다시 동서남북으로 이리 저리

그들을 이끌고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뒤미처 달려온 하림과 황지영이

앞뒤에서 호위하며 오행진을 벗어 나오는 것이었다.

 

  일양자와 정헌 도장을 무사히 오행진 속에서 구출해낸 양몽환은 다시 돌아서서

이번에는 혼자 꽃밭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지금까지 꽃밭 속에서 들려오던 다섯 가지의 악기가 뚝 그치는 것과 함께 양몽환은

곧 그 오행진 속에서 벗어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 길로 일양자에게 다가가 공손히 머리를 숙이는 것이었다.

「꽃나무 숲 속에 숨어 있는 다섯 명의 소녀는 혈도를 찔러 마취시켜 놓았습니다.

그 악기 소리만 나지 않으면 쉽게 오행진 속을 빠져 나갈 수 있겠는데

한 가지 걱정은 강철로 만들어진 꽃나무들입니다.」

 

  시종 머리를 숙이고 말하는 양몽환을 내려다보고 있던 일양자는 등에 메고 있던

한 자루의 고검(古劍)을 뽑아 허공으로 높이 쳐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고검이 내려친 꽃나무는 둔탁한 금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나는 것이었다.

  그제야 일양자는 양몽환을 돌아보며 미소를 띠웠다.

「네가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 했다.

자 여기 이 칼로 진로(進路)를 뚫어라.

그리고 고수들을 안내 하라!」

 

하는 말에 양몽환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일양자에게서 고검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하림과 황지영에게 고개를 돌렸다.

 

「만일 적이 몰려오더라도 당황치 말고 내가 말한 대로 방위(方位)를 이용하시오.

그러면 걱정 없소.」

 

하고는 몸을 돌려 오행진을 이루고 있는 쇠 꽃나무를 후려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의 칼이 가는 곳마다 꽃나무는 두 동강이 나고 순식간에 오묘 무방한

오행진은 흩어지고 말았다.

 

이때,

 

양몽환이 자른 쇠 꽃나무는 모두 열세 그루의 꽃나무로서 오행진의 중추를 이루는 꽃나무였다.

 

꽃나무를 잘라 오행진을 무너뜨린 양몽환은 진 밖으로 나와 큰소리로 외쳤다.

 

「여러 선배님들은 저를 따르십시오!」

 

하는 소리에 우르르 밀려가는 군협들 중에서 원홍대사는 염불을 외우며 감탄했다.

 

「아미타불! 소년 영웅이 나타났군! 아미타불‥‥‥」

 

  원홍대사가 먼저 들어가고 그 뒤를 각파의 군협들이 따랐다.

그리고 옆에 붙어 따라오는 곤륜 삼자들과 송목도장을 돌아보며

소년영웅이라고 감탄한 양몽환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대단한 영웅이 곤륜파에 있는 줄은 이 노부가 몰랐구려.

천용방에 십수 년을 두고 이룩한 흉계에 그가 아니었다면 여지없이

천용방의 간계에 넘어 갔을 것이오.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흉계도 조심해서 파괴하도록 해야겠소!」

  그러나 곤륜 삼자들은 묵묵부답인 채 양몽환이 안내하는 대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뿐이었다.

첫 번째의 흉계를 무난히 파괴하고 오행진을 벗어나온 군협들은

다시 또 한번 사지(死地)에 봉착하게 되었다.

 

넓던 계곡은 갑자기 협소하여지고 앞에는 깎아지른 듯한 험준한 산맥이 그들을 가로 막았다.

오른 쪽은 시퍼런 물이 출렁거리는 호수가 전개되고 다만 왼쪽으로 좁은 산길이

그것도 외길이 있을 뿐이었다.

 

여러 모로 지형을 자세히 살피던 원홍대사는 깊은 한숨을 몰아쉬었다.

 

「이처럼 험악한 지형에 길은 단 하나 뿐이오.

천용방이 또 어떠한 흉계를 꾸미고 있는지 한심한 일이오.」

 

  근심하며 양몽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곤륜 삼자에게 고개를 돌려 그들의 동정을 살피고는

원홍대사에게로 한걸음 다가갔다.

 

「그러시다면 이 후배가 앞장을 서겠습니다.」

 

「어린 시주께서 수고가 많소이다. 기개와 담략에 감복하는 봐요.」

 

  그러는데 멀리서 맹수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퍼뜩 느끼는 바가 있는 원홍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저 맹수의 부르짖음이 수상하오.

오래전부터 천용방에서는 맹수를 잘 구사한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맹수들을 풀어 놓을 셈인가 보오. 천벌을 받아도 마땅할 것이오!」

 

  혼자 소리처럼 중얼거린 원홍대사는 양몽환의 어깨를 두드리며 무운을 빌어 주었다.

 

「어린 시주께서는 몸을 보중하오. 만사를 서둘지 말고 아미타불‥‥‥」

 

「대선배님의 말씀 폐부에 새기겠습니다.」

 

  정중히 예를 마친 양몽환은 험한 산길을 따라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때 원홍대사는 그래도 양몽환이 못미더운 듯이 걱정의 빛을 띄우다가

일양자와 초진대사 그리고 신원통과 자기의 제자 네 명에게 분부하여

양몽환을 따르도록 했다.

그리고 그 뒤를 친히 원홍대사가 따랐다.

  그들이 얼마가지 않아 길은 더욱 좁아지고 멀리 몇 채의 돌집(石家)이 보였다.

그리고 그 돌집을 근거지로 하고 몇 명의 복병이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복병들은 조금도 움직이는 기색이 없었다.

  이때, 신원통이 나서며 원홍대사에게로 다가갔다.

 

「대사님, 제가 동정을 살피고 오겠습니다.」

 

「잠깐!」

 

  뛰어 가려는 신원통을 제지한 원홍대사는 뒤에 따르는 소림파 제자를 한 사람 불렀다.

 

「너는 신시주와 같이 가라. 그리고 시주의 분부를 따르라!」

 

  공동파의 고수인 음수일판 신원통은 소림파의 제자와 함께 돌집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나 웬일인지 천용방의 복병은 신원통과 제자가 달려온 것도 모르는지

앞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복병들의 동공은 광채도 없고 흡사 혈도를 찔려 마취된 듯 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는 동철로 만든 이상야릇한 무기가 들리어져 있었다.

 

신원통은 그래도 일파의 고수로서 천용방의 말단 제자들을 두려워 할 신분이 아니었다.

그런데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청히 서있는 그들을 피할 신원통도 아니었다.

어느덧 자신이 생긴 신원통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원홍대사 일행에게 손을 흔들어

오라는 표시를 하고는 복병이 쥐고 있는 이상한 무기를 덮치려고 달려들었다.

그러자 무술계의 경험이 남달리 풍부한 원홍대사는 복병이 쥐고 있는 괴이한 무기가

혹시 무슨 신호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면 어떤 함정의 문을 여는 열쇠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느껴졌다.

그 순간, 복병의 무기를 덮치려고 달려드는 신원통의 날쌘 동작이 눈앞을 스쳐갔다.

원홍대사는 힘을 다해 외쳤다.

 

「앗! 신시주! 건드리지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