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45 장 이별 그리고 만남! <燕情無恨>

오늘의 쉼터 2014. 6. 22. 15:07

제 45 장 이별 그리고 만남! <燕情無恨>
 
 


  조소접은 가만히 눈을 감으면서 완전히 양몽환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당신은 신속하게 내공의 상처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였지만 나는 두려워요.」

 

「만일 그 방법이 위험하다면 천천히 수련하는 것이 더 좋겠어요.

내공이란 급격히 이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비록 훌륭한 스승이나 친구가

도운 다 하여도 어쩔 수 없는 것이오.」

 

  조소접의 감은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여자가 아무리 훌륭한 재간이 있어도 소용없는 것 같아요.

제가가지고 있는 모든 재간을 당신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어요.」

 

「왜 들데 없는 생각만 하시오?

정말 당신이 아무 무공도 없는 여자가 된다면 무척 후회할 것이오.

 그리고 예전의 무술을 회복하려고 할 것이오.」

 

  그러자 조소접은 돌연 굳센 결심이나 않듯이 얼굴의 표정을 굳히는 것이었다.

 

「아니에요.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나는 규방을 지키고 보통 여인과 조금도 다름없이 밥 짓고 빨래하며 수놓겠어요.

원래여자가 해야 할 일이지 만요.」

 

하고 말하는 조소접의 표정은 본연의 여자로 돌아간 현모양처(賢母良妻) 그것이었다.

 

「쓸데없는‥‥‥」

 

하는데 조소접이 급히 가로 막으며

 

「쓸데없는 생각이 아니에요.

저는 어떻게 된 것인지 강호에서 패권을 다투며 시비를 가리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어졌어요.

다만 편안히 가정에서 여자가 해야 할 일이나 하고 시녀도 두지 않고 혼자서

모든 일을 보살폈으면 하는 마음뿐이에요.」

 

「생각은 훌륭하지만 아무리 여자가 하는 일이라고 해도

그 모든 일을 혼자 다 하려고 하다가는 약한 몸이 지쳐 쓰러지겠는데‥‥‥」

 

「지치고 쓰러진다 해도 두렵지 않아요.

지치면 지칠수록 기쁠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런 복이 없군요.」

 

  갈수록 진지해지고 무엇인가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은

조소접의 말에 양몽환은 저윽이 당황했다.

지금 조소접이 생각하고 있는 야릇한 환상에 휩쓸려 들어간다면

자기 입장이 난처해질 것을 생각한 양몽환은 화제를 돌리고 말았다.

화제를 돌리는 것만이 양몽환의 따분한 입장과 이상해지는 분위기에서

헤어 나올 수 있는 길이었다.

 

「그런데 아까 나의 내공이 속히 회복되는 방법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어떠한 방법이오?」

 

  그러자 조소접도 양몽환의 화제에 곧 적응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생각은 잊어버린 듯 평범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조금 어려운 일이에요.

만년 묵은 거북을 먹으면 되는데‥‥‥

지금 당신의 임, 독(任, 督) 두 맥을 유통시킨다는 것은 힘들 것 같아요.

그때 우리 아버지가 준 거북을 조금만이라도 남겨둘 것을‥‥

 

「누구 주려고요?」

 

「당신‥‥‥」

 

「나?」

 

「그럼요. 그랬으면 팔월 보름날 무술대회에서

당신은 훌륭한 솜씨로 이창란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을‥‥‥」

 

「‥‥‥‥‥‥‥」

 

「지금 당신을 구할 수 있는 길은 단 한가지 밖에 없어요.」

 

「무슨 방법인데요?」

 

  양몽환에게 기대고 앉아있던 조소접은 한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양몽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얼굴에는 너무나도 벅찬 행복에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무서워요.

그 방법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생겨요.」

 

「굉장한 방법인 모양이군?」

 

「그러나 당신을 위하는 일이라면 저는 기쁘게 하겠어요.」

 

「도대체 무슨 방법인데 생각만 해도 무섭다는 말이오?」

 

「이 방법은 란 언니가 들어도 무서워 할 거예요.」

 

「허참. 답답해 죽겠군! 알았소, 알았소.

자신의 내공으로 나의 기경팔맥을 유통시킨다는 것이군요.」

 

「후‥‥‥ 후‥‥‥ 그렇게 간단하면 무슨 걱정이겠어요.」

 

「그것도 아니라면 무엇일까?」

 

「가르쳐 드릴게요. 그것은 이런 거예요.

 원래 저는 만년 묵은 거북의 알과 피를 먹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과는 달리 무서운 위력을 갖고 있어요.

이 피를 당신 몸에 주입시키고 그 다음에 당신의 운기를

제가 직접 도운다면 당신의 무공은 따를 사람이 없게 돼요,」

 

  양몽환은 펄쩍 뛰었다.

조소접이 자기 몸에 있는 피를 양몽환에게 넣어 준다는 것이다.

안 될 말이었다.

그녀의 사랑을 알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너무나 어이없는 일이었다.

 

「무슨 말을 하시오? 아예 생각도 마시오.

나는 절대로 그렇게 할 마음은 추호도 없소.」

 

「그래도 나는 생각하면 곧 실천하는 버릇이 있는 걸요!」

 

「그렇다면 다시는 만나지 않겠소.

내가 살겠다고 남을 죽일 수는 없는 일이오.」

 

  그러나 조소접은 이미 결심한 듯 굳은 결의의 표정으로

양몽환을 올려다보는 것이었다.

 

「모두 당신만을 위한 것이에요.

이 마음만 알아주신다면 저는 기뻐요.」

 

「필요 없어요.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은 알겠소만 내 마음이 더욱 괴롭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시오.」

 

하고 단호히 거절하는 양몽환의 표정은 무섭도록 냉정했다.

그러자 양몽환에 대한 사랑을 직접 몸으로 표시하려던 조소접은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하고 슬픈 표정으로 변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던 조소접은 잠시 후에 고개를 들었다.

 

「당신, 화내는 군요. 화내지 마세요. 하지 말라고 하시면 안 하겠어요.

당신이 하라는 대로 하겠어요. 네?」

 

  그러는 한편, 양몽환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어떻게 하든지 조소접의 사랑을 멀리 하려는 것이었다.

지금 자기가 처한 여러 가지의 입장으로서는 도저히 사랑을 말 할 때가 아니었다.

더구나 조소접의 사랑이 더 굳어지기 전에 훌훌히 떠나기를 바라는 양몽환이었다.

 

이와 같이 양몽환과 조소접의 속마음이 각기 달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만 지키고 있던 때였다.

멀리서 주약란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근 십여 일 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주약란의 웃음소리가 반가웠다.

그동안 주약란이 어디에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던 양몽환이었다.

 

그와 함께 조소접도 양몽환에게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잡으면서 눈물을 깨끗이 닦았다.

 

「란 언니가 돌아 왔군요.」

 

하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주약란이었다.

 

「동생! 잘 있었어? 양상공과 싸우지 않고?」

 

  웃으며 쾌활하게 묻는 말에 조소접은 쓸쓸하게 웃었다.

 

「아니, 싸우지는 않았어요.」

 

「그럼?」

 

「좀 고집을 부려요.」

 

「후‥‥‥후‥‥‥ 어린애처럼‥‥‥」

 

하고는 양몽환과 조소접을 번갈아 보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들이 조금 어색한 분위기에 있음을 눈치 챈 주약란은

돌연 쾌활한 소리로 양몽환을 불렀다.

 

「당신은 왜 고집을 부리 세요?

지금이 어느 때라고? 동생의 무공을 속히 전수해야 해요.」

 

「왜 무슨 큰일이라도 벌어졌습니까?」

 

「큰일이라면 여기서 더 큰일이 어디 있어요?

무당산(武當山)에서 천용방의 초청으로 무술 대회를 벌리는 날이 얼마 안 남았어요.」

 

「그것은 나도 알고 있는 일이오.

삼백년 전 소실봉에서의 싸움보다 더 치열할 것이라고.」

 

「수화(水火)의 싸움일 거예요.

그런데 곤륜(崑崙), 아미(峨嵋), 설산(雪山), 점창(點蒼), 화산(華山) 이 다섯 파의 고수들은

그때 귀원비급 때문에 천용방과 싸운 후 천용방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모양이에요.」

 

「그렇습니다. 다섯 파가 다 합쳐도 천용방을 깨뜨리지 못했지만 이번에도

혹시 연합작전으로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오.」

 

「그렇다면 동생이 시키는 대로 고집 부리지 말고 열심히 무공을 닦으세요.」

 

「아니, 고집부린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자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는 듯이 조소접은 주약란에게 호소하는 것이었다.

 

「언니! 아무리 수법과 신법(神法)이 우월하다 해도 내공이 약해서 걱정이에요.

그래서 제가 내공을 촉진시키려고 했지만 고집만 부려요. 어떻게 하면 좋죠?」

 

「그것도 좋은 생각이야.

그러나 절학만을 골라서 동생과 내가 열심히 가르치면 절로 내공의 힘도 생길 것 같아.

그렇게 되면 천용방의 오기단주(五旗壇主)와 겨를 수 있을 거야.

시일이 촉박해서 그것이 걱정이지.」

 

「그래도 언니! 내공의 힘이 없으면 소용없어요.

다행히 나에게 있는 내공을 주입시키면 되겠는데 말을 들어야죠?」

 

하고 말하는 조소접의 표정은 애정이 철철 넘치는 얼굴로

양몽환을 바라보며 응석을 부리듯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양몽환의 몸에 지그시 상체(上體)를 기대는 것이었다.

 

조소접의 말씨와 행동에 얼마나 그녀가 양몽환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직감한 주약란은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곧 태연한 자세로 돌아온 주약란은 다정한 소리로 조소접을 불렀다.

 

「동생! 글쎄,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야.

내공을 어떻게 속성으로 주입시켜 활동하게 하지?

무슨 영약이라도 있어?」

 

「약이요? 약은 아니에요.」

 

「그럼?」

 

「언니! 언니는 내가 허공에 떠 있는 것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 적은 없어요?」

 

「글쎄‥‥‥ 동생은 임, 독 두 맥이 유통돼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진기를 오래 끌 수 있잖아?

그렇게만 생각했는데‥‥하는 주약란의 대답에 조소접은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아니에요. 대반약현공(大般若玄功)을 지고(至高)의 경지까지 도달한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동생이 그런 줄 알았는데.」

 

「제가 그런 경지까지 도달했다면 얼마나 좋게요?

순전히 만년 묵은 거북을 먹은 덕이에요.

사실 그때는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요새 와서야 알게 됐어요.」

 

「무슨 말인지 나는 못 알아듣겠는데.」

 

「그럴 거예요.

요새 진기를 조금만 돋우어도 몸은 날아갈 듯이 가벼워져요.

그래서 내 몸에 있는 피는 보통 사람의 피와 다른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것은 동생의 착각이겠지 워. 피가 다를라구?」

 

「믿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돼요.

그래서 내 몸에 있는 피를 그이의 몸에 넣어 준다면 틀림없이 대성할 수 있을 거예요.

언니와 내가 가르쳐 준 무공과 함께 말이에요.」

 

「글쎄 나는 잘 모르겠어. 아직 들어본 일도 없고‥‥‥‥

그러나 자신이 없는 일은 그만두는 것이 좋아.

만일 실수라도 한다면 둘이 다 생명을 잃게 돼.」

 

「실수야 무슨 실수가 있겠어요.

 다만 효과가 있을지 그것이 의문이에요.」

 

「하여간 나는 반대하겠어.

공연한 모험으로 생명을 버린다면 너무 허무한 일이야.

자, 우리 함께 무공이나 가르쳐요.」

 

  조소접은 더 주장하지 못하고 주약란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조소접은 자기의 주장이 결실되지 못한 것에는 조금도 섭섭해 하지 않았다.

  어느덧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양몽환은 두 소녀의 세심한 지도 아래 무공은

날로 눈부시게 진보되었다.

조소접은 자기의 몸에 있는 내공의 소모도 불구하고 전력을 다해

양몽환을 도와 운기 시켜주었고 진기가 이르지 못하는 경맥도 유통시키는 등

헌신적인 봉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양몽환은 몇 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에 얻은 수확이

그 몇 배에 달하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날도 주약란은 양몽환에게 무공을 가르치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었다.

 

「이 몇 개월간 갖가지 신법과 수법에 대단한 성취가 있었어요.

비록 지고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대부분을 싸움에 응용할 수 있을 거예요.

이 귀윈비급에 기재된 무공은 한결같이 구천구백년 동안 각 문파의 절묘한 수법들을

집약한 것이에요.」

 

「모두 당신과 조소저께서 도와준 덕택이오.」

 

「그런 말을 듣고 싶어서 하는 말은 아니에요.

그러나 단 한 가지 알아 두어야 할 것이 있어요.」

 

「저의 무공에 대해서 말씀입니까?」

 

「물론이죠. 그것은 지금까지 배운 것이 일투(一鬪)의 권장법이나 검법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적과 대적할 때에도 자신의 이지(理智)로 공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런 점은 염려 마십시오.

그런데 주소저께서는 앞으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벌써 칠월 하순, 무술 대회는 앞으로 보름밖에 남지 않았어요.」

 

「팔월 보름날이 아닙니까?」

 

「그래요. 그래서 당신은 곧 검북땅에 도착해야 해요.」

 

「언제쯤 떠났으면 좋겠습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요. 오늘 갈 수 있으면 떠나는 것도 좋겠죠.」

 

하고는 약간 양미간을 찌푸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무슨 근심이 있다는 표정 같았다.

 

「그럼. 준비하고 곧 떠나겠습니다.」

 

하고 일어나던 양몽환은 다시 주약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또 만날 수 있겠습니까?」

 

「글쎄 ‥‥‥」

 

하고는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왕한상(王寒湘)이 팔괘구궁(八掛九宮)과 하락신산(河洛神算)무술에

정통하다는 소문으로 보아 천용방의 총단(總壇)에 어떠한 설비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오행 기술과 신산 기술을 당신에게 가르쳐 드리려고 했지만

한 번에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없어서.」

 

하고는 가만히 품속에서 네모반듯한 소책자를 꺼내는 것이었다.

 

「오행상극과 팔괘의 변화 그리고 구궁역위(九宮易位)등은 모두 이 책에 기록되어 있어요.

이 역시 귀원비급에서 대개 선택한 것이지만 나대로 연구 검토하여 많은 부분을 첨가했어요.

시간 있는 대로 열심히 연구하면 비록 이번 영웅대회에서 활용하지 못한다 해도 후일에

상당한 도움이 될 거예요.

이 책자의 마지막 이면(二面)에 진도(陣圖)를 그려 놓았는데

그것은 바로 천기진인과 삼음신니 두 선배님의 불신(佛身)이 계신 곳 앞에서

이룩하여 놓은 반오행기문진식(反五行奇門陣式)이에요.

감히 이 세상에서 이 진의 오묘한 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 진의 오묘한 점을 알고 있는 사람이 결코 많지는 않을 것이에요.

또 이것은 몇 그루의 소나무 가지나 대나무를 땅에 박음으로서 무술계의 고수들도

속수무책으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할 수 있을 거예요.」

하고는 양몽환의 손에 쥐어 주는 것이었다.

 

「두터운 정은 영원히 폐부에 새겨 잊지 않겠습니다만

언제 다시 또 만날 수 있겠습니까?」

 

「다시 만나기를 원하세요?」

 

「진심으로 원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인간이에요.

우리 서로 괴로운 이야기는 하지 말기로 해요.」

 

「그럼, 당신은 아주 가버리시는군요.」

 

  양몽환과 주약란은 서로 마주 보며 더 말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더 어떻게 해야 할지 말문이 막히고 막힌 입에서는

가느다란 한숨만 새어나을 뿐이었다.

 

얼마 동안 그렇게 서 있던 주약란은 손끝으로 흘러나온 눈물을 닦아내며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게 되겠죠.」

 

하고는 마음속에 뒤끓는 여러 가지의 생각과 괴로운 마음을 잊어버리기나

하려는 듯이 고개를 가만히 흔들며 화제를 바꾸는 것이었다.

 

「속히 행장을 수습하세요.

그리고 접매에게서도 미련 없이 떠나도록 하세요.」

 

하는 말 속에는 여러 가지의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이제 무술 대회에 나가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처지로서

자기나 조소접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고 떠나라는 말도 되겠지만

양몽환에게 얽혀있는 수많은 여자들을 생각한다면

주약란의 마음 역시 편안치 않은 것은 숨기지 못하는 사실이기도 했다.

  이러한 주약란의 의미 깊은 말을 망연히 듣고 있던 양몽환 역시

 괴로운 심정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겨우 이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그럼, 빨리 준비하세요.」

 

할 수 없이 양몽환은 휘청거리는 걸음을 옮겨 천기석부로 돌아왔다

 

이때, 조소접은 석돈(石墩)에 앉아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들어오는

양몽환을 보고는 활짝 반가운 웃음을 웃는 것이었다.

 

「마침 잘 왔어요. 어서 앉으세요.

지금 까다로운 일을 어떻게 처리하나 하고 생각 중이었어요.」

 

  양몽환은 아무 말 없이 조소접과 나란히 앉았다.

그러자 조소접은 양몽환에게 기대며 소곤거렸다.

 

「이 몇 개월 동안 같이 지내는 가운데 저는 퍽 행복했어요.」

 

「나도 역시 즐거웠소.」

 

「그러나 우리들이 즐거워하는 동안에 우리와 반대로 괴로워 한사람도 있었겠죠?」

 

「누가 괴로워했을까?」

 

「하림 언니 말이에요.

아마 그녀는 밤낮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자 양몽환도 오랜만에 하림을 생각했다.

절로 가슴이 답답해 옴을 느낀 양몽환은 가볍게 탄식했다.

 

「정말 착한 사람이야.」

 

「그녀는 정말 착해요.

그래서 저는 그녀를 찾아 천기석부로 데려 와야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말에 양몽환은 결심이나 한 듯이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

사실 이곳에 조소접을 만나기 위해 들어온 것은 조소접과 한가하게

하림의 이야기를 하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주약란의 말대로 이곳을 떠나겠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나는 곧 떠나야겠소.

그동안 무술을 가르쳐 주느라고 고생을 많이 시켰습니다.

나는 꼭 무술을 가르쳐 준 은혜에 보답하고자

무술 대회에서 총력을 발휘하여 기대에 헛되지 않도록 노력하겠소.」

 

순간, 조소접은 화다닥 놀라며 양몽환에게 기대고 있던 몸을 떼며 바로 앉고 정색하였다.

 

「떠난다구요? 정말이세요?」

 

  아무래도 때나야 할 사람이기도 했지만 정작 떠난다는 말이 떨어지자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입술만 떨리는 것이었다.

 

「보름밖에 남지 않았는데 빨리 떠나야죠,」

 

  놀라운 충격에 당황했던 조소접은 천천히 냉정을 되찾으며 빨갛게 얼굴이 상기 되었다.

그동안 양몽환에게 쏟은 조소접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었다.

 

헌신과 순종 그리고 정열의 사랑이었다.

그러한 사랑을 쏟던 상대가 이제 무술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떠나가는 것이다.

 

「언제 떠나시겠어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지금 곧 떠나려오.」

 

「왜 그렇게 바삐 서두르세요?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

 

「비록 아는 사람도 없고 곤륜파에서 축출당한 몸이지만 아직 스승에게서

입은 은혜는 잊지 않고 있소.」

 

「그것이 일찍 떠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어요?」

 

「굳이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기회에 먼저 가서 스승님을 만나 뵙고 용서를 빌고자 해서 일찍 가려는 것이오.」

 

「용서요? 해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시죠?」

 

「그건 그 다음 문제고 우선 내 마음이 곤륜파의 제자로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요.」

 

  조소접은 이미 굳게 떠날 것을 결심한 양몽환의 마음을 돌릴 수없다는 것을

그의 표정으로 알았다.

 

아무 때나 헤어져야 하면서도 보내기는 싫었다.

그러나 그것도 자기만의 욕심일 뿐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언니에게도 말씀을 드렸어요?」

 

「? ‥‥‥‥‥‥」

「지금 떠나겠다고 말이에요.」

 

양몽환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벌써 주약란과는 합의가 되었고 또 주약란이 시킨 일을 조소접에게

자세히 들려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잠시 망설이던 양몽환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직 말하지 않았소.」

 

「그럼 저하고 같이 가서 말해요.」

 

  조소접은 양몽환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약란의 방으로 향했다.

 

  조소접과 양몽환이 들어오자 주약란은 웃음으로 그들을 맞아 주었다.

 

「언니, 영웅대회에 참가 차 곧 떠나겠대요.

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언니에게 왔어요.」

 

하는 조소접의 말에 주약란은 잠시 어리둥절 하는 듯 했다.

그 틈을 타서 먼저 양몽환이 입을 열었다.

 

「비록 장문 사숙에게서 축출선고를 받았지만

아직 사문에 대한 은혜도 갚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일찍 떠나 사부와 사숙님께 말씀드려

곤륜파 제자의 신분으로 대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그래서 은혜에 보답코자 합니다.」

 

  그러자 주약란도 시치밀 떼고 양몽환의 말에 호응했다.

 

「무술계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것은 바로 스승을 섬기는 도리예요,

생각이 그러시다면 어찌 저희들이 말리겠어요. 언제 떠나시겠어요?」

 

「날개가 있으면 지금이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럼 현옥을 말씀하시는 모양이지만, 그만 두겠어요.

저도 처음에는 현옥에 태워 보내드리려고 했어요.」

 

「현옥이 어디 갔습니까?」

 

「아니 어디 간 것은 아니지만 곤륜삼자가 저를 미워해서 그래요.

스승님의 은혜에 보답코자 가는 분에게 그들이 미워하는

저의 현옥으로 보내드린다면 도리어 노여워 할 거예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이 하는 말은 어디까지나 양몽환에게서

조소접이 아무 의심 없이 헤어질 수 있도록 하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양몽환이었다.

양몽환 역시 주약란의 말에 호응했다.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현옥 아니라도 갈 수 있습니다.

아무염려 마십시오. 그리고 반년 동안이나 두 분께서 물심양면으로

무술을 가르쳐 주시고 도와주신데 대하여는 심심한 사의를 표하는 것뿐입니다.」

 

「천만에 말씀. 우리들은 다만 무술 대회에서 이기기만을 빌겠어요.」

 

「감사합니다. 기필코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다시 만나기를 빌며 이만 작별을 고하겠습니다.」

 

하고는 몸을 돌려 걸어 나왔다.

 

  그때, 주약란이 갑자기 생각난 듯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

 

「잠깐! 잠깐만 기다리세요. 한 가지 드릴 것이 있어요.」

 

하고는 양몽환이 돌아서자 곧 자기의 거실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나오는 주약란의 손에는 네모반듯한 나무상자가 들리어져 있었다.

 

그리고는 양몽환에게 주었다.

 

「돌려 드리겠어요.」

 

하는 바람에 받아 들기는 하였지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가벼웠다.

 

「무엇인데 돌려준다고 하십니까?」

 

「별것은 아니에요.

전에 언젠가 혜진자가 가지고 있던 묵인철갑사피(?燐鐵甲蛇皮)예요.

그것을 이제는 돌려드리는 거예요.」

 

「그럼 전에 현옥이 채갔던‥‥‥」

 

「예, 바로 그거에요.

그런데 그 가죽으로 조끼를 두 개 만들었어요. 도움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묵인철갑사피로 만든 조끼가 무슨 소용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주는 대로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조소접도 따라 나오는 것이었다.

 

밖에 나온 양몽환은 뒤에 따라 나오는 조소접에게 고개를 돌려

 

「부디 몸성히 잘 있어요.」

 

하고 간단히 하직을 고했다.

 

  그러자 조소접은 쓸쓸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말씀대로 하겠어요.

전에도 말씀드렸지 만 당신이 하라는 대로하겠어요.

안녕히, 안녕히 가세요.」

 

  고개를 숙여 눈은 볼 수 없었지만 수정 같은 눈물이 주르륵

두 볼을 타고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양몽환의 뒷모습이 멀리 보이고 있었다.

 

그때,

 

조소접의 마음은 양몽환이 단 한 번이라도 돌아보아 주었으면 했으나

끝내 돌아보지 않고 기어이 시야 밖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얼마 동안이나 양몽환이 사라져 간 계곡을 내려다보며 입술을 깨무는

조소접의 눈에 흐르던 눈물은 점점 더 굵어지고 그녀의 어깨도

차츰 들먹거리면서 슬픔은 기어이 울음으로 터지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나 흐느끼며 울었을까.

조소접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주약란이었다.

 

「접매! 그만 진정해요!」

 

  누구나 마찬가지로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위로해 주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처럼 조소접도 주약란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다시 흐느끼기 시작했다.

 

「언니! 저는 그이가 그렇게 무정할 줄은 몰랐어요.

한번만이라도 돌아봐 주었으면 했는데‥‥

 

「접매! 무정해서 그런 것은 아냐 만일 그가 돌아보았다면 더 괴롭고 슬플 거야.

그리고 슬픈 표정을 접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그랬을 거야‥‥

 

그제야 조소접도 울음을 그치고 주약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언니! 정말 언니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럼, 그이의 마음은 접매보다 더 괴로울지도 몰라.」

 

「미안해요. 공연히 울어서‥‥

 

「호‥‥ 호‥‥ 미안할 것 없어.

그런데 접매! 나도 그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

 

  잠시 조소접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주약란의 얼굴에 웃음이 함빡 핀 것을 보고는

조소접도 따라 웃으며 즐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만 저는 언니만큼 아량이 없어요.」

 

「설마 그러려고? 아량이 없다는 말은 빈 말이야

사실 오늘 솔직히 말하지만 나도 양상공을 좋아하긴 해.

그렇지만 지금 접매나 내가 그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이의 마음을 더 괴롭게 할 뿐이야.」

 

「언니!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요.」

 

「그럴지도 몰라.

그렇지만 접매도 그이를 사랑하고 나도 사랑하고 있지 않아?」

 

「그래요. 저는 그이의 말에 순종해요.」

 

「그런데다 하림이 있고 더구나 이요홍은

그이와 부부의 관계까지 맺고 있는 처지에 우리까지

또 끼어든다면 그이는 얼마나 괴롭겠어?」

 

「‥‥‥‥‥‥」

 

「접매는 내가 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알 것으로 믿어.

그래서 접매만 좋다면 나는 접매와 같이 살고 싶어.」

 

「언니! 그렇지만 나는 언니처럼 아량이 없어서 걱정이에요.

언니의 말을 알아듣겠어요. 힘껏 노력하면 되겠죠. 뭐.」

 

  쓸쓸한 얼굴에 우는 듯한 웃음이 감도는 조소접에 비해 주약란은

조소접의 말대로 아량이 넓은지 줄곧 웃는 얼굴이었다.

 

「그럼 됐어. 우리 그 이야기는 그만 해.」

 

「언니! 언니 말에 따르도록 노력하겠어요.」

 

  주약란은 다정한 눈빛으로 시종 웃는 얼굴로 그래야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음성을 약간 높여 조소접을 불렀다.

 

「접매! 나는 친 자매처럼 여기고 하는 말인데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무슨 부탁?」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괜찮겠지?」

 

「언니가 어떠한 말을 해도 저는 다 듣겠어요.」

 

「아니, 별다른 이야기는 아니야.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내가 몇 년 동안 무술을 연구하면서도

나와 함께 무술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늘 생각하고 있었지

그것은 무술을 배우다 의문 나는 점이 있으면 묻기도 하고 서로 의논도 하려고 말이야.

그래서나는 접매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하는 생각이야.」

 

「그런 것이라면 어렵지 않아요.

얼마든지 유쾌하게 응해 드리겠어요.

다만 저의 아량은 물론 아는 것이 없어서 능히 언니와 무공을 논할 수 있을까,

그것이 걱정이에요.」

 

「도리어 내가 할 말을 접매가 하는군.

접매는 귀원비급의 무공도 다 알고 있는데 내가 더 부끄럽지.」

 

「자꾸 그러시면 정말 제가 부끄러워요.」

 

「그럼, 접매가 나를 도와주는 것으로 믿겠어.

우리 곧 한 가지 무공을 함께 연구해 봐요.」

 

  양몽환과의 이별로 슬픔에 젖었던 조소접은 그런대로 유쾌한 기분이 되어

천기석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천기석부에 도착한 주약란과 조소접은 삼수나찰 평수위와 신응, 진보, 송예

그리고 네 명의 시녀들의 영접을 받았다.

 

조소접으로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한 자리에 마주 앉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동안 너무나 양몽환에게만 도취되어 거의 만나지 못하고 지냈던 것이었다.

 

즐거운 재회였다.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 기쁜지 미소를 머금고 있는 조소접을 보고 있던

주약란은 같이 기뻐하며 조소접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접매? 우리 무공을 연마하면 현옥을 타고 중원(中原)의 아름다운 경치나 구경하러 가!」

 

「그래요, 언니. 그래서 좋은 곳이 있으면 그 곳에다 우리 여인왕국(女人王國)을 지어요.

언니는 황제(皇帝)가 되고 저는 재상(宰相)이 되고 말이에요. 호‥‥‥ 호‥‥‥」

 

「호호‥‥‥ 여인 왕국? 남자는 없이?」

 

「그럼요. 만일 남자가 우리 왕국에 들어오면 용서 없이 늑대에게 잡아먹히도록 해요.」

 

「그러다 늑대가 없으면 어떻게 하지?」

 

「늑대가 없으면 까마귀에게 뜯어 먹히도록 하죠, 뭐.」

 

  철저히 남자 배척론이었다.

양몽환을 사랑하던 그녀가 양몽환이 떠나가고 주약란의 말이 없었던들

그녀의 말은 조금 달라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남자라는 사람은 오직 증오의 대상 밖에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주약란과 조소접이 즐겁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고 있던 진보는

얼굴이 빨개지며 어쩔 줄 모르다가 이윽고 대화 속에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우선 이 진보부터 까마귀에 먹혀야 되겠는데요.

하‥‥ 하‥‥‥ 큰일 났습니다.」

 

  그러자 조소접은 활짝 웃으며 손을 내 저었다.

 

「아니에요. 이 세상에서 단 두 명의 남자는 예외에요.」

 

「그 두 명이 누구인지 행복하겠습니다.」 -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아버님과 진보 두 사람이에요.」

 

하는 말에 진보는 조금 장난 끼가 섞인 말로 허리까지 구부리며 황송해 했다.

 

「아가씨의 특별한 은총에 다만 황공할 뿐이로소이다.」

 

「후‥‥‥ 후‥‥‥하‥‥‥‥. 하‥‥‥‥.」

 

  유쾌한 시간이었다.

 

  한편, 종운암의 천기석부에서 주약란과 조소접을 작별하고 떠나오는

양몽환의 심정은 괴롭고 착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처음 떠나을 때는 무정한 것처럼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떠나오기는 했지만

천기석부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자 어느덧 주약란의 생각도 생각이지만

조소접의 헌신적인 사랑에도 마음이 괴로웠다.

사실, 양몽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조소접에 대한 사랑이

 그의 마음을 상당히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천기석부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했다.

이렇듯 자기 마음속에 조소접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클 줄은 몰랐다.

이일저일 지나간 일들을 되새기며 걸어가는 양몽환의

앞을 갑자기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다.

 

「? ‥‥‥‥‥‥」

 

  여러 가지 생각에 골몰 했던 양몽환은 멈칫 걸음을 멈추고 장검부터 잡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앞에 나타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옥소선자였다.

 

「아! 옥소선자! 어떻게 여기에!」

 

  놀라는 양몽환에 비해 옥소선자는 늘 그렇듯이 유쾌하게 웃는 것이었다.

 

「왜 놀라세요? 동생이 살아 있는 한,

세상 끝까지라도 찾아갈 수 있어요.」

 

「그것은 옥소선자의 자유입니다.

이 기회에 지난번 만불사에서 도와준데 대한 사의를 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내가 고맙다는 말이나 듣고 싶어서 도운 것은 아니에요.

안심하세요. 그 대신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글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힘껏 하겠습니다.」

 

「별일은 아니지만 그전에 한 가지 알고 싶은 것이 있어요.」

 

「? ‥‥‥‥‥‥」

 

「동생은 꽃 같은 소녀들이 항상 옆에 있어서 나 같은 여자는 생각지도 않겠죠?」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 검북땅으로 떠나는 몸입니다.

도와 드릴 것이 있다면 말씀하시죠.」

 

  일언지하에 딱 자르고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러자 옥소선자는 다시 한번 유쾌하게 웃고는 정색했다.

 

「도와 달라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도와 드릴 것이 없는가 하는 말이에요.」

 

양몽환의 힘을 빌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옥소선자가 양몽환을 도와주겠다는 부탁 아닌 부탁이었다.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별로 청할 것이 없군요.」

 

「그래요? 그럼 검북땅에 간다는 것은 구대 문파와의 ?

무술 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가시는 길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럼 됐어요. 저하고 같이 가요.

여기서 검북땅의 천용방까지는 천리 길이 넘어요.

아무리 빨리 간다 해도 두 달은 걸릴 거예요,」

 

사실 그랬다.

 

옥소선자의 말대로 천리 길이 넘는 길을 아무리 빨리 간다 해도

보름 밖에 남지 않은 시일 내에 도착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검북땅 어디에 천용방의 총단이 있는지조차 모르고 간다는 것은

모험도 이만 저만한 모험이 아니었다.

 

  (그렇군, 그렇다면 옥소선자와 함께 갈까?‥‥)

 

  이렇게 생각하는 양몽환이었지만 옥소선자를 의식적으로 피하려던

자기의 마음과는 영 반대 방향으로 사태가 벌어지는 데는

어쩔 수없이 망연할 수박에 없었다.

 

그러자 양몽환의 심중을 꿰뚫고 있는 듯 옥소선자의 말도

 이상하게 자기의 심중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저하고 같이 가요.

천용방의 총단이 검북땅 어디에 있는지 조차모르지 않아요?」

 

「사실, 그렇습니다. 옥소선자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어요.」

 

「가보셨습니까?」

 

「몇 번, 전에 나보고 천용방에 가입하라고 한 일이 있었지만 가입하지 않았어요.

그 후 그들의 총단에 몰래 들어가 설비와 방비 태세를 조사해 봤죠.

그런데 얼마나 은밀한 곳에 있는지 길도 험하고 산세(山勢)도 험해서 좀처럼 찾기 힘들어요.」

 

「그럼, 기꺼이 청원을 드리겠습니다. 수고스럽지만 천용방까지 동행해 주십시오.」

 

  할 수 없이 양몽환은 옥소선자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나도 원하던 바입니다. 자, 그럼 속히 떠나요.」

 

  이리하여 양몽환과 옥소선자는 검북땅의 천용방 총단을 향하여

각기 경신법을 발휘하여 걸음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원래 , 옥소선자의 쟁쟁한 경신법과 천기석부에서 익힌 양몽환의경신법은

얼마 지나지 않아 괄창산 줄기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내공이 강한 그들이라 해도 잠시도 쉬지 않고

주야로 달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검북땅에 들어섰을 때는 거의 피곤에 지쳐 있었다.

 

앞으로 천용방의 총단을 약 오륙십 리 길 남겨 두고 땀을 씻는

그들의 등 뒤에서부터 요란한 말발굽 소리를 내며 네 필의 준마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들의 앞을 막아서는 네 명의 장정이 두 손을 합장하며

일제히 읍(揖)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 중의 한 장정이 공손히 입을 열었다.

 

「실례이지만 두 분께서는 영웅대회에 참석하는 길이십니까?」

 

  그러자 양몽환이 한 걸음 나서며 역시 공손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러시면 어느 문파의 누구신가요?」

 

「저는 곤륜파의 제자 양몽환이라 하고 이분은 옥소선자 이십니다.

 여러분께서는 천용방의 타주(舵主)이십니까?」

 

「우리들은 순찰하는 천용방의 제자들입니다. 그럼 말에 오르십시오.」

 

하는 말에 옥소선자가 나셨다.

 

「말에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만 어디로 데려 가려고 하십니까?」

 

「총단까지 모시겠습니다.

우리들은 이번 영웅대회에 참가하시는 여러 고수들을 안내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아무 의심 마시고 오르십시오.」

 

하며 말에 올라타기를 권유하는 것이었다.

 

평소 천용방의 규율이나 모든 범절을 잘 알고 있는 옥소선자는 더 의심하지 않고

권하는 대로 말에 올랐다. 곧이어 양몽환도 장정이 타던 말에서 내리며 올라타기를 권하자

훌쩍 올라탔다.

  그러자 말에서 내린 옥소선자와 양몽환에게 말을 내 준 두 장정과 말을 탄 한 사람의 장정은

그 자리에 남고 지금까지 대화를 나누던 장정만이 말을 몰아 앞서 달리며 옥소선자에게

 미소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럼, 제가 인도하겠습니다. 속히 따르십시오!」

 

하고는 질풍같이 달려 나갔다.

 

  그 뒤를 나란히 달리던 옥소선자는 양몽환에게만 들리도록

낮은 목소리로 주의를 주는 것이었다.

 

「동생! 조심해요.」

 

「왜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무래도 좀 수상해요. 무슨 음모가 있는 것 같은 눈친데‥‥‥」

 

「그럼, 함정이라도 있다는 말인가요?」

 

「글쎄 확실한 것은 모르겠지만, 예감이 이상해요.

어떠한 수단을 쓰는지 정신 차려야겠어요.」

 

「그렇다면 이 기회에 견문이나 넓히겠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양몽환은 코웃음 쳤다.

 

  역시 옥소선자도 자기 무공의 경험으로 어떠한 음모라도

간단히 처치할 수 있는 자신으로 말을 급히 몰아 앞서가는 장정의 뒤를 따랐다.

 

리하여 어느덧 세 필의 말은 계곡을 지나 길이 사납고 산세가 험준한 협곡에 다다랐다.

협곡은 얼마나 좁고 또 험한 길인지 절로 경계심이 생기도록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에

양몽환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들이 통과하는 협곡의 폭은 겨우 석자 남짓 밖에 되지 않는 좁은 길이었다.

만일 양쪽 절벽 위에 적이 매복하여 있다가 협공한다거나 뇌석(雷石)

또는 통나무를 굴린다면 제 아무리 무공의 조예가 깊은 자라 할지라도 피하기 어려운 협곡이었다.

 

앞서 가던 옥소선자는 뒤에 따라오는 양몽환을 돌아보며 주의를 주는 것이었다.

 

「동생 , 조심해요.」

 

하고는 중년 장정의 뒤를 바짝 들아 협곡으로 달려 들어갔다.

 

옥소선자가 먼저 협곡으로 들어가자 잠시 망설이던 양몽환은

곧 그녀의 뒤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 중년 장정의 뒤를 따라 질풍같이 달리는 옥소선자는 만일 장정의 돌연한 역습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경각심을 높이고 뒤돌아 달리면서도 만일 여의치 못하면

장정을 사로잡아 인질을 삼으려는 생각까지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는 한편, 앞서 가던 장정은 자기 뒤를 따라오는 옥소선자나 양몽환의 존재가 불안한지

말고삐를 늦추며 옥소선자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옥소선자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는 달리는 것이었다.

앞으로 달릴수록 협곡은 조금 넓어지는 것 같았으나 양 쪽의 절벽은 점점 더 높아지고

산세는 더욱 험악하기만 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좁고 험하면 협곡의 폭이 이삼 장 정도로 넓어지자

지금까지 매복한 적의 협공을 염려하던 양몽환은 이마에 숭숭 맺힌 땀을 주먹으로 닦으며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넓어진 것은 양쪽의 절벽과 절벽 사이에 폭이 넓어졌을 뿐,

세 필의 말이 머리를 나란히 하고 달릴 수는 없었다.

중년 장정이 만일을 염려하여 옥소선자와 나란히 말머리를 세우고 달렸지만

길이 다시 좁아지자 처음과 같이 장정이 앞서고 그 뒤로 옥소선자와 양몽환이

일정한 간격을 사이에 두고 말을 몰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장정의 불안한 표정을 눈여겨보던 옥소선자는 장정의 의심을 풀어 주려는 뜻으로

앞서서 달릴 것을 제안했다.

 

「길이 좁은데 제가 앞서서 달릴까요?」

 

  그러자 장정은 자기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나 한 듯한 옥소선자의 말에 황망히

고개를 흔드는 것이었다.

 

「아니, 제가 앞서죠. 길도 안내할 겸.」

 

하고는 그대로 말 궁둥이를 힘껏 찼다

 

  이리하여 세필의 말은 절벽 밑의 험준한 계곡을 달러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앞서 달리는 장정의 말의 뛰는 속도는

옥소선자나 양몽환이 타고 가는 말의 속도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었다.

  혹시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리려는 뜻에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조금씩 앞서던 장정의 말은 옥소선자와 양몽환을 거의 이삼 장의 간격으로 떨어뜨리며

질풍같이 달려가는 것이었고 그 반면에 옥소선자와 양몽환은 자꾸만 뒤로 처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장정과의 거리는 순식간에 까마득히 멀어져 버리고 말았다.

  순간, 옥소선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예감이 불쑥 생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자기도 모르게 뒤따라오는 양몽환을 돌아보며 다급하게 소리쳤다.

 

「동생! 아무래도 저놈들의 꾀에 빠진 것 같아.

빨리 쫓아가지 않으면 큰일 나겠어요!」

 

「왜, 이상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글에, 내 속단일지는 모르겠지만 저렇게 우리들을 쫓아오지 못하게

달리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아요?」

 

  사실, 옥소선자의 말대로 장정의 모습은 거의 알아볼 수 없으리만큼

먼 거리를 달리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자 마음이 조급해진 옥소선자는 양몽환의 표정도 살피지 않고

그대로 말고삐를 잡아채며 속도를 가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옥소선자와 양몽환이 채찍을 휘두르며 달리기를 재촉하자

 

가뿐 숨길을 씩씩 내뿜으며 말발굽 소리도 요란하게 네 발로 땅을

박차며 앞서 간 장정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네 발로 구르며 땅을 박차고 달린다 해도 오륙 장이나 앞서 달리는

장정을 따를 수는 없었다.

그만큼 장정이 타고 달리는 말도 더 속도를 가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얼마 후였다.

 

 옥소선자와 양몽환이 산모퉁이를 꺾어들자 도저히 따를 수 없을 것 같았던

장정이 달리기를 멈추고 옥소선자와 양몽환이 달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거의 장정과의 거리가 일 이장 정도로 좁혀진다고 생각하면 장정도

두 발로 말의 배를 걷어차며 달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냥 달리는 것이 아니라 뒤를 흘끔 흘끔 바라보며 놀리는 듯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직도 따라 오는가 하는 뜻한 표정으로 앞을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의 태도는 여유 있고 태연한 표정이었다.

 

거의 따라 가면 다시 달리고 또 멈추었다가는 다시 달리고 하는 것에 안보는 척 하면서

뒤를 따라가는 옥소선자의 마음도 차차 불안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수상하군. 저 놈이 무슨 일로 앞서 달리며 놀려댈까? ‥‥‥)

 

하는 생각이 드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주위 사방을 날카롭게 돌아보며

불의의 습격에도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 것이기도 했다.

 

그때였다.

 

앞서 달리는 한 필의 말을 따라 급히 달려가던 두 필의 말은 갑자기 땅이 꺼지며

무릎까지 빠지는 함정 속으로 일시에 들어가고 말았다.

 

순간,

 

옥소선자는 말 잔등을 후려치면서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야비한 놈들! 이따위 계략으로 우리를 골리려고! 동생 조심해요!」

 

하는 소리에 뒤이어 양몽환도 중얼거렸다.

 

「천용방의 총단 지역에서 이따위 짓들을 하는 놈들은 단단히 맛을 보여줘야지!」

 

  양몽환은 말을 발길로 차면서 휭하니 옥소선자를 앞질러 장정을 향하여 내달려 나갔다.

그러나 장정은 양몽환의 추적 같은 것은 염두에도 없다는 듯이 그냥 달려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가끔 뒤돌아보며 냉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이에 더욱 분통이 터진 양몽환은 기력을 집중하고 있던 두 손을 일시에 휘두르면서

말 잔등에서 허공으로 날아가더니 앞서 달리는 장정의 등덜미를 노리고 힘껏 후려갈기고 말았다.

 

천기석부에서 주약란과 조소접을 따라 귀원비급의 무공을 배운 이래 그가 처음으로 발휘해 보는

그의 무술은 허공을 가르며 달려가는 기세가 바로 전광석화 그것이었다.

 

순간,

 

앞에서 달려가던 말은 갑자기 비명소리를 지르며 두 발을 번쩍 들고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뒤미처 달려간 양몽환은 장정의 등덜미를 움켜쥐며 벽력같은 소리를 질렀다.

 

「너 이놈! 어디로 도망치려고!」

 

하면서 손에 힘을 주어 흔들었다.

 

그 바람에 앞뒤로 세차게 흔들리던 장정은 너무나도 돌변한 사태에

당황한 나머지 대항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곤두선 말의 배를 힘껏 걷어차는 것이었다.

 

그 순간,

네 발을 구르며 다시 달려 나가려던 말은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땅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마는 것이었다.

네 다리가 순식간에 함정에 빠지고 거의 배 밑까지 땅에 닿게 되는

괴이한 사태가 돌발하고 말았다.

 

그때,

 

뒤에서 외치는 옥소선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양몽환의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동생! 속히 처리하고 물러 나와요!」

 

  장정의 등덜미를 쥐고 말 잔등에 올라서 있던 양몽환은 옥소선자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장정의 등을 또 한 번 내려쳤다.

그러한 그의 일격에 장정의 코와 입에서 피를 뽑게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피를 쏟으며 비틀거리던 장정은 최후의 발악인지,

몸에 남아 있는 기력을 다하여 양몽환을 끌어안으며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장정의 억센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말 잔등에서

함께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일이 급하게 된 양몽환은 죽기를 결심하고 끌어안은 장정의 손아귀에서

풀려 나오지 못하고 굴러 떨어지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속수무책으로 쓰러져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를 약물은 양몽환은 자기를 끌어안고 버둥거리는 장정의 가슴을 향하여 계속해서

두 수의 공격을 퍼부었다.

그제야 장정은 안고 있던 양몽환을 놓으면서 피를 토하며 숨이 끊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정과 양몽환이 뒹굴고 있는 땅은 그 밑이 어떻게 되어있는지

말은 네 발이 빠진 채 눈만 멀뚱거리고 장정의 몸과 양몽환은

거의 무릎까지 빠져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에 당황한 양몽환은 더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더 빠져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장정은 거의 다 빠져 들어가 머리만이 조금 보일 뿐이었다.

  위급한 순간이었다.

움직이면 더 빠져 들어가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양몽환의 몸은 어느덧 하반신이 완전히 땅 속에 묻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급히 달려온 옥소선자가 하얀 손을 내밀어 양몽환의 손을 힘 있게 잡았다.

 

그리고 끌어 올리는 순간,

양몽환의 몸이 어느 정도 빠져 나온다고 느낄 때 이번에는 반대로 옥소선자의

두 다리가 땅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었다.

 

「앗!」

 

했을 때는 양몽환이나 옥소선자가 거의 똑 같이 무릎 위까지 빠져들어 간 후였다.

  그런데 조금 전에도 별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몸을 움직일수록 더 밑으로 빠져 들어간다는 것 이외에 가만히 있으면 있는 대로 무엇이 밑에서 잡아끌고 있다는 그래서 점점 깊숙이 빠져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먼저 느낀 옥소선자는

 

「동생! 속히 진기를 운행해요. 그렇지 않으면 더 빠져 들어요!」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진기도 운행할 수 없을 만큼 기운이 빠지고 몸도 점점 더 빠져 들어 가기만 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기운을 쓸 힘도 없었다.

  한심한 일이었다.

몸을 움직여도 빠지고 가만히 있어도 빠지고 별도리 없이 양몽환과 옥소선자는

마주 바라보며 탄식할 수박에 없는 일이 없다.

 

「발밑에 흙탕물이 있는 모양이에요.

물렁물렁해 지면서 자꾸 아래로 빠지는 것 같지 않아요?

늪 속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면 큰일인데!」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죽을 수밖에 별 도리가 없군요.」

 

「죽는 것이 두려워요?」

 

「너무 억울하게 죽는 것 같아서‥‥‥」

 

「생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던 동생이 웬일이죠? 죽음을 두려워하고.」

 

당장 땅 속으로 묻혀 들어가면서도 옥소선자는 양몽환을 바라보며

놀리는 듯 생글거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표정은 죽음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이렇게 늪에 빠져서 죽기는 싫어요.

마음 편안히 죽을 수 있어야지.

이 흙탕물 속에서 죽는다는 것은 너무 억울한 것 같습니다.」

 

하는 말에 옥소선자도 웃음을 거두며 추연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얼마 동안 맞은편에 있는 큰 바위를 주시하다가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사실, 그 말이 맞아요.

죽음을 헛되이 생각하고 가볍게 여길 수는 없어요.

한 번 밖에 없는 죽음이니까. 그렇지만 지금 이대로는 별 도리가 없어요.

더 빨려 들어가기 전에 좋은 방법을 강구해야 돼요.

우선 당황하지 말고 진기를 운행해 봐요.」

 

  하고는 무슨 묘안을 생각하는지 눈을 깜박거리며 주위를 돌아보던

옥소선자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진기를 운행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도 주위 사방을 둘러보며 늪에서 빠져나갈 궁리에 정신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