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48 장 구대 문파와 천용방(天龍幇) <英雄大會>

오늘의 쉼터 2014. 6. 22. 15:11

제 48 장 구대 문파와 천용방(天龍幇) <英雄大會>
 

 

  크게 북소리가 울리자

홍(紅) 황(黃) 남(藍) 백(白) 흑(黑) 다섯 가지의 색으로 경장을 한 장정이

각각 일당의 장정들을 이끌고 나서는 것이었다.

그중 홍의의 젊은이가 구대 문파의 좌석 앞으로 나아가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여러분들께서 잠깐 비켜 주시면 좌석을 옮기겠습니다.」

 

  이어 뭇 장정들은 장내의 모든 좌석을 동작도 민첩하게 옮기고는 공손히 물러갔다. '

  그 다음 청의 동자가 다시 붉은 기를 높이 들었다가 아래로 획 내렸다.

그러자 울려오던 북소리가 그치고 삽시간에 장내는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순간,

 

이창란이 천천히 가운데까지 나서면서 주먹을 쥐고 예를 올렸다.

 

「이와 같은 성회는 좀처럼 얻기 힘든 기회라고 여깁니다.

대사님께서 곧 명령을 내리십시오.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홍대사도 합장했다.

 

「잘 알았습니다.」

 

하는데 아미파의 좌석에서 초원대사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천용방이 안하무인격으로 본파의 장문인을 사로잡아 간지

일년이 지나도 생사를 모르는 중입니다.

이는 실로 본파가 창립된 이래 처음 당하는 치욕으로 문파 제자들은

항시 불안한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바입니다.

소승은 비록 삼보(三寶)의 제자이기는 하지만 치욕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우선 제가 적의 무공을 알아볼까 합니다.」

 

하고 몸을 날려 의자를 옮김으로서 생긴 빈터로 나갔다.

 

원홍대사는 초원대사가 나서며 싸우겠다는 것을 보고 가볍게 탄식하면서 눈을 감았다.

 

「아미타불 부처님의 자비를 빕니다.」

 

초원대사는 중앙으로 나아가 이창란을 힐책 하려고 하는데

문득 천용방의 좌석에서 큰 함성이 터지는 것이었다.

 

「방주님은 돌아오십시오.

제가 아미파의 금강권(金剛卷)법과 한번 싸워 보겠습니다.」

 

말을 채 마치지도 않고 특이한 담가(擔架)에서 일어나 중앙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외팔 외다리의 오독신장(五毒神掌)으로 강호에

이름도 드높은 오독수(五毒手) 막윤(莫倫)이었다.

 

막윤은 전 장내를 쓰윽 돌아보고는 외팔을 쳐들고 냉담한 어조로 소리쳤다.

 

「주먹과 다리에는 눈이 없는 것으로 싸우게 되면 피차 다치고 죽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오.

본단(本壇)은 금강권법이 무술계에서 가장 맹렬한 권법인 것으로 들어왔는데

오늘 이와 같이 가르침을 받게 되니 다행이오. 자, 화상님은 전력으로 공격해 보시오.」

 

  초원대사는 막윤의 일신이 사악한 독수로 이루어진 재간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수법이 극히 악랄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즉각 포원수일(抱元守一)의 수로

암암리에 진기를 돋우고 몸을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다.

 

「막단주가 먼저 공격 하시오.」

 

「화상님은 번잡한 예의를 좋아하지 않으시는군! 그럼, 실례하겠소.」

 

하고 획! 일장을 후려쳤다.

 

  그러자 초원은 번개같이 비켜서며 두 손으로 번갈아 강렬한 장풍을 후려쳐 보냈다.

 

막윤이 비록 외팔에 외다리이긴 하나 싸우기 시작하자 행동이 민첩하기 이를 데 없었다.

외다리로 껑충 뛰어 여덟 자나 비켜서면서 획! 하며 일장을 후려쳤다.

 

그와 함께 대뜸 손바닥에서 음유(陰柔)한 바람이 일어나 비린내를 확 품기며 부딪쳐 가는 것이었다.

 

초원대사는 즉각 진기를 다시 운집시켜 달려오는 일격을 맞받아 쳤다.

 

순간, 일강(一剛) 일유(一柔) 극히 강한 두 장풍이 허공에서 부딪치는 듯

미미한 파동을 일으켰으나 막윤이 뿌리친 음유의 힘은 이미 거두어들인 듯 흔적도 없었다.

 

초원은 기회를 놓칠세라 왼 손의 주먹을 내밀어 맹렬한 일격을 막윤에게 가했다.

 

그러나 막윤은 조소를 띄우고 옆으로 비켜서고는 초원대사를 가리키며 일갈하는 것이었다.

 

「넌 이미 나의 오독신장에 맞았어.

만일 더 싸운다면 독성이 즉시 퍼질걸!」

 

이 말이 나오자 전 장내의 군협 대부분은 믿을 수 없는 듯 수군거리고 초원대사만 하더라도

믿지 못하는 듯 반격하려고 하는데 돌연 소림파의 장문인 황의 노승이 가볍게 아미타불을 외쳤다.

 

「대사는 확실히 암수(暗手)에 맞았습니다.

빨리 물러나 휴식하도록 하십시오.」

 

초원대사가 가만히 운기하여 보니 과연, 진기가 막혀 순환되지 않았다.

깜짝 놀라며 더 싸울 수 없음을 알고 좌석으로 돌아왔다.

 

이때,

 

구대 문파 속에서 한 사람이 일어나 수염을 쓰다듬으며 걸어 나왔다.

 

「막단주님이 이십여 년 전 전신의 극독으로 강호에 이름을 드높이더니

이십 년의 은거 생활에서의 고된 연구로 각종의 무공이 예전보다

더 한층 고명하여 진 것 같구려.

빈도가 익히 이름을 듣던바 오늘 이렇게 가르침을 받고자 합니다.」

 

하는 사람은 바로 점창파(點蒼派)의 번천안 마가홍이었다.

마가홍은 호신강기(護身?氣)를 연마하였기 때문에 독기가 침입할 수 없는 몸인 것이다.

 

그는 막윤이 초원대사가 미처 진기로 몸을 감싸 보호하기도 전에 재빨리

그러나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하게 오독장력으로 초원대사에게 상처를 입힌 것을 보고

격노한 동시 호신강기를 운집하여 몸을 보호하고 급히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마가홍은 검을 뽑아 들었다.

 

「막단주도 무기를 드시오.」

 

  막윤은 반년 전 괄창산에서 이미 마가홍의 검술 솜씨가 무리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 나던 것을 본 바가 있는지라 그가 나서자 즉시 마음을 한층 도사렸다.

 

「이 늙은이는 항상 맨 손으로 대적하오.」

 

  마가홍은 연방 냉소를 터뜨렸다.

 

「검에는 눈이 없는데 다를 것이 없지 않소. 맨 손이라도?」

 

「비록 맨 손으로 싸우지만 싸움 도중에 항시 암기(暗器)를 사용하는바

일반 무기 보다는 더욱 막기 어려운 것이오.

그러니 이 점에 먼저 유의하시길 바라오.」

 

「싸우게 되면 피차 물불과 같은 형세에 놓이게 되는데 막형은

아무 염려 마시고 어떠한 독물이나 암기를 사용하시오.」

 

「마도형의 통쾌한 말씀에 탄복하는 바이오. 그럼 먼저 손을 쓰시오.」

 

「그렇게 사양하신다면 빈도가 쫓지요.」

 

하고 마가홍은 장검을 내밀어 비스듬히 막윤을 후려 갈겼다.

 

대가의 검술 솜씨는 과연 비범한 것으로 마가홍이 장검을 비스듬히 베일 듯 휘두르자

마치 베일 것 같기도 하고 찌를 것 같기도 해서 다음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었다.

 

막윤은 어쩔 수 없이 오른 쪽으로 세 걸음을 물러나지 않을 수없었다.

원래 그의 생각으로는 마가홍이 가해오는 일검을 물리치고 반격을 시도하여

오독신장으로 상대방을 해치려고 한 것이었다.

그런 것이 뜻밖에도 마가홍이 한 번 검을 휘두르자 평범한 것 같아도

 막을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평범하게 보이는 한 수의 검법은 바로 마가홍의 특기인 천간풍뢰(天千風雷) 검법

가운데서도 가장 심오한 수법의 하나인 승풍파랑(乘風破浪)인 것이다.

이 일검식(一劍式)의 오묘한 점은 바로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상대방을

유적(誘敵)의 수법으로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그 변화에 대하여 예측을 불허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수들이 흔히 진기를 제압당하고 평범한 일검식에 물러나고 마는 것이었다.

  마가홍은 막윤이 비키자 단번에 한 걸음 내디디면서 검을 풍차와 같이 휘둘러

속공을 전개하여 순식간에 온 누리를 검광으로 상대방을 겹겹이 싸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검이 일으킨 소리는 마치 우뢰가 울듯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검법은 그가 이십 년간 고심한 끝에 완성시킨 것으로서 한 번 전개되자

그 위세는 과연 놀라왔다. 막윤은 잇따른 실수로 만반개착(滿盤皆錯)의 수로

진기를 제하고 속공으로 달려드는 마가홍의 검법에 반격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외팔을 휘두르고 외다리로 이리 뛰고 저리 뛰기만 할 뿐 시종 마가홍의 검광에

싸여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자 천용방의 홍기단주 제원동이 이 모양을 보고 가만히 왕한상에게로 다가갔다.

 

「저 도사 우비자(牛鼻子)의 검법은 매섭고 재발라 막단주가 선기를 잃은 이 마당에

열세를 극복하기 힘든 것 같은데 내가 대신 나가면 어떻겠소?」

 

「막단주의 공력이 심후하기 때문에 제형은 염려하실 것 없소.

일단 검의 광막만 벗어나면 좋은 구경이 있을 거요.」

 

  두 사람이 이와 같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 중앙의 형세는 급격히 변하고 있었다.

 

  마가홍의 장검이 또 다른 기묘한 정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본래 엄밀하던 광막이 삽시간에 바람이 일고 파도가 치는 듯 흉흉히 팽창되어

마치 산이라도 무너뜨릴 듯한 기세로 막윤에게 덮쳐갔다.

 

마가홍은 각파의 고수들 앞에서 과연 솜씨를 뽐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검법을 자기 재간 것 발휘하여 검술로 이름 높은 무당파와 청성파

그리고 곤륜파 앞에서 정묘한 검법으로 그들을 놀라게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과연 당시 세 파에서는 대단한 주의와 관심을 일으켜 세심히 장중(場中)의 변화를

주시하는 것이었다.

 

막윤은 마가홍의 검법에 압도당하여 풍차같이 빙빙 돌아가는 몸을 각파의 고수들과

천용방의 오기단주 고수들 앞에 보이게 되었으니 벌써부터 끓어오르는

분노와 굴욕에 뒤엉켜 시큰거리다가 목숨을 버리기로 각오하고 또 결심하게 되었다.

가만히 공력을 운집하고 몸을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다가 돌연 한소리 크게 외치며

왼쪽 어깨를 으쓱 움직였다.

그리고는 이어 왼 손의 옷자락이 위로 올라갔다가 마침 후려쳐 오는 장검을 똘똘 말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막윤은 오른 손으로 앞가슴을 노리고 힘껏 내려쳤다.

 

이 한 수의 변화는 실로 무공의 법칙에 없었던 것으로 마가홍은 막윤이 빈 소맷자락으로

자기의 장검을 똘똘 말아서 꼼짝 못 하게한 뒤 반격을 해 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순간적이지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당황하는 순간,

막윤의 주먹은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것 같은 기세로 뻗쳐 왔다.

 

마가홍은 상당한 강기(雲氣)가 있어 몸을 보호하고 있기 매문에 막윤의 손에서

내뿜는 독기가 몸 안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또 막윤의 장력쯤은

겁내지 않는 터라 비록 위험의 순간이었지만 몸을 피하지 않고 반동적으로

오른 팔에 힘을 주며 흔들어 장검을 말고 있는 막윤의 소맷자락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는 막윤의 왼쪽으로 검을 내려쳤다.

 

그러나 마가홍의 검이 채 막윤의 몸에 닿기도 전에 막윤의 오독신장으로 단련된 장력이

마가홍의 앞가슴을 내질렀다.

 

순간,

 

쌍방이 동시에 윽! 소리를 내며 뒤로 몇 걸음씩 물러섰다.

 

막윤이 내지른 장력은 그의 필생의 공력을 집중한 것으로 마가홍이

비록 호신(護身)의 강기(?氣)가 있었지만 태산이라도 무너뜨릴 것 같은

장력에 마가홍은 견디지 못하고 마치 철추에 얻어맞은 듯

정신이 아찔하는 동시 피가 끓어오르는 듯 다리에 맥이 빠져 불현듯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그 한 대에 마가홍의 호신강기가 완전히 흩어질 것은 뻔한 것이었다.

 

그러나 막윤 역시 마가홍의 호신강기의 탄력에 외팔이 저리고 뼈가 빠개지는 듯한

아픔에 신음 소리를 내고 뒤로 물러서야 했던 것이었다.

 

이 한 수의 결과로 쌍방은 서로 상대방의 공력에 새로운 인식을 하는 동시에

속으로는 상대방의 심후한 공력에 감탄했다.

 

그러나 천하의 고수들이 보는 앞에서 서로 약함을 나타낼 수는 없는 처지라

잠깐 조식을 취하고는 다시 맞붙었다.

 

막윤은 다시 상대방에게 선기를 제압당하고 속공해 오는 검세에

압도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단번에 이십여 년 간 고심하여 연구한

 십오수 양화장법(十五手揚花掌法)을 전개하여 대적하기 시작했다.

 

이 괴이한 장법은 그의 평생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보통 때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때고 해천일수 이창란도 그가 그러한 장법을 지니고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순식간에 장검의 그림자가 휘날리는 것이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 양화(場花)와 같이

상하 좌우로 번쩍이는 것이었다.

 

마가홍은 여전히 천간풍뢰의 검법으로 대적하여 싸웠고 이 위세가 맹렬한 검법은

갈수록 사람들에게 기묘한 감을 주었다.

그리하여 삼십여 합이 지나가 검의 광막이 확장되면서 막윤은

다시 검광 속으로 에워싸이고 말았다.

 

그러나 오독수 막윤은 검광에 에워싸여서도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이

외팔을 마구 휘두르며 마가홍의 요혈 급소만 노리고 후려 쳤다.

 

막윤의 이 십오수의 양화장법은 비단 변화가 오묘할 뿐 아니라

일단 장법을 전개하게 되면 손가락의 그림자가 꼭 양화와 같이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하여 어디서 어디로 공격하는 것인지 조차 모르게 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모두 필생의 심혈을 기울여 창안한 독특한 수법으로 싸우자

장내의 고수들은 온통 정신이 팔려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주시하여

장내는 쥐 죽은 듯이 고요하고 장풍과 검풍만이 어지럽게 날을 뿐이었다.

 

이와 같이 격전지간에 갑자기 오독수 막윤이 흥! 하며 외팔을 획 뿌리쳤다.

그러자 삽시간에 소리도 없는 십여 개의 가늘은 흰 빛이 마가홍에게 날아들었다.

 

과거에 막윤은 이 가늘기 짝이 없는 극독의 암기 갈미침(蝎尾針)으로

강호에 이름을 날리고 많은 무예계의 고수들을 쓰러뜨렸던 것이다.

이 갈미침은 다섯 가지의 극독한 독을 묻힌 것으로서 크기는 머리카락 같이

가는 것이었고 발사할 때는 소리도 없는 무서운 암기인 것이다.

싸움 초기에 이 독침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자기가 단련하여 이룬 오독신장과

양화장법으로 각파의 고수들이 보는 가운데 정정 당당히 싸워 이기려고 한 것이지만

마가홍의 검법이 너무나 기묘하고 절륜하며 또 마가홍에 호신강기가 있어

독기가 스며들지 않기 때문에 독한 마음을 먹고 이 갈미침을 뿌리기에 이르렀다.

  마가홍은 이때 호신강기로 몸을 보호하고 있으나 이 가늘고 작은 독침은 약간 두려워했다.

호신강기만으로는 암기를 막을 수 없을지 모른다고 염려한 그는 즉각 대갈 일성하면서

재빨리 세 걸음을 물러나서는 전신의 진기를 검에 뻗치고 맹렬히 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수많은 원을 그리면서 강렬한 검풍을 일으켜 십여 개의 갈미침을 모두 떨어뜨렸다.

  그러자 막윤은 냉소하며 다시 외팔을 세 번 흔들어 세 묶음의 독침을 연속적으로 던졌다.

그러자 광채를 수 없이 번쩍이며 손살같이 날아왔다.

이와 같은 암기의 수법은 이미 지고의 완숙한 경지에 도달한 것으로 연이어

세 번을 던지는 독침은 마치 소나기와 같이 쏟아져 내리는 것이었다.

  마가홍은 상대방이 연속적으로 새 번이나 독침을 뿌리는 것을 보고

내심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독침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일까?

더 몇 번을 뿌려 온다면 독침에 상하지 않더라도 크게 진기를 손상하여

다시 그와 싸울 때 불리할 것은 분명한 일이다.

차라리 진기를 소모하면서 까지 수세를 취하는 것 보다 전적으로 그와 맞부딪쳐 보자.

검과 나의 몸이 일치되어서 몸을 날려 공격하는 수법은 연마한 뒤 사용하지 못했는데

오늘 이 많은 고수들 앞에서 솜씨를 보여야겠다.)

 

  속으로 생각하며 한 번 또 한 번 날아오는 독침들을 전적으로 검을 휘둘러 떨어뜨리고는

막윤이 채 손을 쓰기 전에 크게 휘파람을 불며 몸을 허공으로 날아 올렸다.

그리고는 장검으로 한 편의 광막을 이루어 몸을 보호하고 검과 일체가 되었다.

그러자 한낱 하얀 빛이 되어 곧장 막윤에게 덮쳐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몸과 검이 일체가 되어 가하는 검인지술(劍人之術)은 바로 검술 가운데

가장 깊은 무공으로 전부 자신의 심후한 공세에만 의지하여 허공을 가로지르며

수장 밖의 적을 찌르는 것이었다.

  이 경지에서 다시 가일층의 경지에 도달하면 검술 가운데 최고로 일컫는

어검술(御劍術)이 되는 것이었다.

  마가홍은 출중한 지재로 검술에 몰두한지 수십 년, 비록 어검술을 연마하지는 못하였지만

몸과 검이 한 덩어리가 되어 허공을 가로지르며 적을 격파하는 지고의 성취를 이룩하게

된 것이며 구대 문파의 고수들 가운데서 첫째 인물로 손꼽힐 수 있는 인물이 된 것이다.

 

과연,

 

그의 신검합일(身劍合一)로 가하는 일격에 모든 사람을 놀라게 했다.

그 가운데 검술을 좌우하는 무당파의 장문인 정현도장까지 내심 감탄하여 마지않았고

자기보다 뛰어난 솜씨라고 탄식하는 것이었다.

  한편, 오독수 막윤은 상대방의 날카롭고 매서운 공격에 속으로

경악하며 은근히 공포를 느끼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끝장을 보지 않을 수 없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그 역시 진기를 돋우고 수십 년 동안 쌓아 올린 공력으로

상대방과 일격에 생사를 판가름 하려고 몸을 솟구쳐 올랐다.

 

  그때였다.

 

「막단주, 마주 나서지 말고 빨리 물러나시오!」

 

  이창란이 크게 외치며 손에 든 용두 지팡이를 치켜들고 몸을 솟구쳐

질풍같이 두 사람에게 달려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군협 속에 끼어있던 팔비신옹 문공태가 뛰어 나갔다.

 

「좋아! 이제 떼(群) 싸움을 하려고!」

 

  외치고 손을 번쩍 휘저으며 한 주먹의 금한(金丸)을 뿌렸다.

그러자 금환은 일직선을 그리며 이창란에게 부딪쳐 갔다.

 

문공태는 이창란이 자기 사제(師弟)인 도일강(屠一江)을 죽인데 원한을 품고

벌써부터 떼싸움을 일으켜 구대 문파의 고수들의 힘을 빌려 원수를 갚으려고 하던 중

이창란이 나서는 것을 보자 즉각 한 주먹의 금환을 던지는 동시 이 기회에 이간시켜

떼싸움을 일으키려고 한 것이었다.

 

문공태가 금환을 던지는 순간 천용방의 백기단주 자모신담(子母神膽) 승일청(勝一淸)이

두 손을 일제히 휘두르는 가운데 두 개의 자모담(子母膽)을 날렸다.

 

무쇠로 만들어진 이 자모담(子母膽)은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문공태가 던진

금환을 향하여 날아갔다.

 

그 순간,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문공태가 던진 금환을 모두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때,

 

 이창란은 거치는 것 없이 맹렬한 기세로 두 사람에게 달려갔다.

그리고는 허공에 뜬 몸으로 용두 지팡이를 휘익 휘두르며 마가홍을 옆으로 후려쳤다.

 

허공에서 지팡이로 후려갈기는 솜씨에 보고 있던 뭇 군협들은 모두 놀라며 내심 감탄을 연발했다.

 

그렇게 이창란의 지팡이가 비록 빨랐으나 마가홍보다 조금 늦었다.

더구나 막윤이 고집을 부리고 달려 나가는 바람에 그들은 마치 번개와 같이 마주쳐

이창란이 지팡이를 후려 쳤지만 그 순간에 두 신음 소리와 함께 흰 빛을 뻗치며 날아오던

검광이 갑자기 사라지고 마가홍과 막윤이 동시에 간격을 넓히며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그러자 이창란은 들었던 지팡이로 허공을 치고는 땅에 내려섰다.

 

그와 함께 막윤은 온 몸이 피투성이였고 팔이 없는 왼쪽 어깨는

다시 마가홍의 검에 구멍이 뚫려 선혈이 낭자했다.

 

그리고 마가홍 역시 막윤이 반격한 일장에 다시 앞가슴을 얻어맞고 역시 조금 전과 같이

기혈이 치밀어 오르는 바람에 정신이 아찔하여 허공에서 떨어졌던 것이다.

다행히 호신강기는 흩어지지 않아 막윤의 독기가 몸 안에 스며들지는 않았다.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정신을 아찔하게 하는 생사의 승부는 모든 고수들의 얼굴을 굳혔다.

 

땅에 내려선 이창란은 잠시 정신을 차리는 듯 하고는 갑자기 한걸음 나서며 식?중

이지(二指)로 번개같이 막윤의 체내 혈맥을 짚어 피가 흘러나오지 못하게 막은 다음

고개를 돌려 뒤따라 나오는 천중사추에게 외쳤다.

 

「빨리 단주를 단혼애 밖의 소(蕭) 향주에게 보내어 치료케 하여라.」

 

  그리고는 오른손의 지팡이를 땅에 푹 꽂았다.

그러자 지팡이는 단번에 반자나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호탕하게 웃는 것이었다.

 

「마도형의 검술은 과연 비범하시오.

이 늙은이가 외람스럽지만 맨손으로 마도형의 기묘한 검법을 배우고자 하오.」

 

마가홍은 막윤의 일장에 피가 끓어오르고 기운이 빠져 운기조식하고 있던 때였다.

그런 때에 이창란의 도전은 참으로 곤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못들은 척 하자니 각파의 고수들 앞에서 얼굴이 깎이는 일이고 도전에 응하여 싸우자니

 아직 진기가 순환되지 않아 몸이 회복되지 않았으니

상대방의 적수가 안 되겠고 이래저래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창란은 마가홍의 정묘한 검술을 보고 이미 살의를 품고 있는 터이지만

일방 방주의 신분으로 차마 기습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마가홍이 물러설까 염려되어 즉각 큰 소리로 뒤를 막았다.

 

「마도형! 이 늙은이의 말에 대답치 않는 것은 무슨 심사요?

이 늙은이에게 모욕을 주겠다는 말이오?」

 

하고는 갑자기 선뜻 나서며 마가홍의 어깨를 낚아채려고 했다.

 

그러자 마가홍은 몸을 빼어 달아날 수도 없고 더욱 싸우지 않을 수도 없었다.

즉각 장검을 앞으로 끈 내밀며 영풍단초(迎風斷草)의 한 수로 이창란의 팔을 베려고 하였다.

 

이때의 이창란은 그 의도가 마가홍으로 하여금 싸우게 하자는 것으로 마가홍이

그의 팔을 베려고 하자 즉각 움츠러드는 동시에 뒤로 재빨리 물러서서는 대갈일성하며

손가락을 펴 세웠다.

 

순간,

 

한 줄기의 지풍(指風)이 곧장 마가홍에게로 날아갔다.

이것은 바로 이창란의 특기이며 강호에서.

독보적인 재간인 건원지(乾元指) 신공(神功)인 것이었다.

 

그는 살의를 품은 채 아무 소리도 없이 건원지 신공으로 단번에 마가홍을

 거꾸러뜨리려고 한 것이다.

 

순간,

 

마가홍은 날아오는 지풍이 마치 한 자루의 비수같이 날카롭고 매서워

호신강기가 당하지 못하는 것을 느끼고는 즉각 상대방이 건원지 신공을

사용했다는 것을 짐작하고 대경실색 했다.

 

  (이창란의 건원지 신공은 능히 금석이라도 뚫고 철포삼(鐵布衫)과 호신강기

등의 재간을 파괴한다고 했는데 과연 거짓이 아니군!)

 

하고 번개같이 생각하며 즉시 전신의 공력을 왼쪽 어깨에 집중하여 왼 쪽으로 맞받았다.

 

피할 수 없는 형편에 놓인 그는 중상을 각오하고 왼 쪽 어깨로 이창란의 건원지 일격을

맞받음으로서 그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순간,

 

마가홍은 왼쪽 어깨가 천근의 철추에 얻어맞은 듯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느끼는 동시에

뜨거운 피가 아래서부터 머리 위까지 치솟아 머리가 빙글 빙글 도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호신강기도 대뜸 흩어져 조금도 맥을 못 추고 연거푸 다섯 걸음을 물러서다가

앞으로 푹 엎어지고 말았다.

 

이와 같이 이창란의 일격에 번천안 마가홍을 쓰러뜨리는 것을 본 구대 문파의 고수들은

모두 얼굴빛이 변해졌다.

 

원홍대사는 나직이 아미타불을 외치고는 승포자락을 휘저으며 몸을 날려 중앙으로 뛰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팔비신옹 문공태와 백의신군 등뢰 그리고 공동(??)파의 장문인 음수일판 신원통,

청성파의 장문인 송목도장들에 일시에 중앙으로 내달았다.

 

그러자 천용방 쪽에서도 부채를 휘두르며 나오는 왕한상을 선두로 하여 제원동,

승일청, 최문기 등의 단주(壇主)들 말고도 이십여 명이 우르르 몰려나오며 단번에

주위가 혼란해지고 살벌해졌다.

 

그러자 이창란은 고개를 돌리고 손을 흔들었다.

 

「모두들 서시오!」

 

하는 호령에 천용방의 단주들 이하 고수들은 일제히 발을 멈추었다.

 

한편, 원홍대사는 땅에 쓰러진 마가홍을 안았다.

비록,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하고 두 눈을 꾹 감고 있으나 가늘은 숨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마가홍과 같이 심후한 공력 소유자가 건원지 일격에 이 모양이 되는 것을 보고

건원지의 위력에 새삼 놀라는 듯 눈살을 찌푸리고 좌석으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청죽장(靑付杖)을 휘두르던 문공태가 냉소를 터뜨렸다.

 

「이형은 일방지주(一幇之主)의 신분으로 격전 끝에 원기를 회복치 못한 틈을 타서

공격하니 비록 이겨도 영예로운 일은 아니오.」

 

이창란은 수염을 쓰다 들으면서 안광이 번쩍이는 눈초리로 장내의모든 사람을 휘둘러보았다

 

「그럼 문형은 원기 왕성한 몸으로 나타나셨으니 이 늙은이의 한수를 받아 보시겠소?」

 

꼼짝 못하게 하는 말에 문공태는 물러서지도 못하게 되었다.

즉각 용기를 내어 청죽장을 쳐들고는

 

「이형은 너무 사람을 무시하는군. 언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기나 하오?」

 

하고 싸울 태세를 갖추었다.

 

「문형은 비록 일파의 장문인 신분으로서 항상 기회를 틈타

이간질만 일삼고 비겁한 일만 하시오?

오늘 문형이 친히 이 이모(李某)와 싸우겠다면 이 이모는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하오.」

 

  문공태는 이창란의 모욕적인 언사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대갈일성하며

청죽장을 휘둘러 직고천문(直叩天門)의 한 수로 이창란의 머리를 노리고 내려쳤다.

 

이창란은 이번에 구대 문파를 초청할 때 이미 무술계를 제패할 마음이었다.

그러므로 이번에 비단 전 천용방의 고수들을 총단에 집합시켜 구대 문파의 고수들과의

일전을 준비하는 한편 갖가지의 계략을 준비하여 공수(攻守)에 만반을 기하였던 것이며

속전속결로 상대방의 고수들을 거꾸러뜨리려고 했다.

그런데 문공태가 나서서 청죽장을 휘두르며 달려 나오자 대뜸 옆으로 비켜서는 동시에

손을 쳐들어 다시 지풍을 날려 보냈다.

  

이창란의 이 건원지의 기묘한 재간은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지 않으면 결코 발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이 이제 구대 문과와의 대전에 있어 연속적으로 사용하니

비단 문공태를 대경실색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천용방의 단주들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문공태는 마가홍이 이창란의 건원지에 쓰러진 것을 보고는

그 날카로움을 생각하고 즉각 청죽장을 거두어들이는 동시에 몸을 솟구치면서

한 움큼의 금환(金丸)을 던지려고 하였다.

그러자 홀연 이창란이 다시 손을 쳐들고 문공태가 몸을 솟구치는 대로 따라

겨룬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아찔하며 정신을 잃고 말았다.

  원래 이창란의 건원지는 이미 마음대로 뻗쳤다가 마음대로 거두어들일 수 있을 정도로

숙련되어 문공태가 제 아무리 빠르다 해도 손가락 하나 움직임에는 당하는 재주가 없었다.

팔비신옹 문공태는 신음 소리를 내며 줄이 끓긴 연처럼 털썩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구대 문파의 고수들은 이창란의 일격에 강호 일류의 고수인 마가홍과 문공태를

쓰러뜨리는 것을 보자 모두 등골이 오싹 했다.

 

그러자 청성파의 송목도장이 오른손으로 장검을 휘둘러 자기 몸을 보호하면서

내달아 쓰러진 문공태를 일으켜 안았다.

 

눈을 꼭 감은 문공태의 코와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숨결은 거미줄 같이 가늘게 쉬고 있었다.

이를 본 송목도장은 속으로 놀라마지 않았다.

 

이때, 백의신군 등뢰가 커다란 입을 벌리고 헛기침을 크게 하며 나섰다.

 

「악랄한 수법이군!)

 

하고는 번개같이 획! 일장을 이창란에게 후려쳤다.

그러나 그는 일장을 갈겨 놓고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기가 바빴다.

 

그는 벌써부터 계산하기를 전력을 다하여 일격을 가해 이창란을 상처만 나게 하면 좋은 것이고

그렇지 못할 때에는 싸움터를 벗어나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싸우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살의를 일으킨 이창란이 어찌 그가 물러나게 가만 들것인가?

등뢰의 장풍이 밀어닥칠 때 이창란은 왼손으로 장풍을 일으켜 순간적으로 막아버리고는

오른손에 이미 운집하고 있던 건원지신공으로 한번 번쩍 손을 치켜드는 찰나,

 한 줄기의 예리한 지풍이 곧장 등뢰의 뒷등을 습격하고 말았다.

그러자 앞으로 달려가던 등뢰는 앞으로 푹 엎어지며 신음 소리도 없이

쓰러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창란이 연이어 건원지 신공으로 무예계의 쟁쟁한 그것도 장문종사인 세 사람을 쓰러뜨리자

구대 문파의 군협들은 놀라서 분노에 이를 갈았다.

특히 화산파와 설산파에서 이번 대회에 장문인을 수행했던 제자들은 장문인이

중상을 입고 쓰러지자 일제히 몸을 일으켜 무기를 뽑아 들고 죽기를 결심하고 싸우려고 했다.

 

한편, 원홍대사는 마가홍을 안고 소림파의 좌석으로 돌아가 공력을 집중하여 마가홍의

세 곳 혈도를 주물렀다.

 

마가홍은 호신강기가 있어 몸을 보호하였기 때문에 비록 제일 먼저 건원지에 상처를 입었지만

내상은 가벼웠다.

공력이 심후한 원홍대사가 몇 번 그의 혈도를 주무르자 마가홍은 의식을 차리고

한 번 장내를 휘둘러보고는 다시 스르르 눈을 감았다.

상처의 아픔으로 눈을 감고 조식하는 모양이었다.

 

이때,

 

문공태는 청성파의 송목도장에 의해, 등뢰는 공동파의 음수일관(陰手一判) 신원통(申元通)에

의해 각기 좌석으로 구출되고 화산과 설산 양 파의 제자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이창란을

포위하고 있었다.

 

원홍대사는 급히 아미타불을 외우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여러분들은 일시의 감정으로 무술 대회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마시오.」

 

  그 소리는 마치 종소리와 같이 우렁차 화산과 설산의 두 파 제자들은

포위망을 좁히다가 걸음을 멈추고는 일제히 원홍대사를 돌아다보는 것이었다.

 

그러자 무당파의 장문인인 정현도장이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언성을 높였다.

 

「원홍대사님은 우리 구대 문파가 스스로 추대한 대표자로 무릇 구대 문파의

사람이면 반드시 그의 분부를 들어야 될 것이오.

여러분들은 비록 분노를 참을 길 없겠으나 질서와 규칙을 위하여 좌석으로 돌아오시오.」

 

소림파와 무당파의 제자들은 교양이 비교적 많을 뿐 아니라

평소의 명망이 기타의 문파보다 능가하던 차라 원홍대사와 정현도장이 나서서 제지하자

더 고집을 피울 수 없었던지 천천히 제자리로 물러났다.

 

그들이 다시 물러가자 이창란은 호탕하게 웃으며 모든 좌석을 쓱 휘둘러보았다.

 

「저는 싸움에 있어서 위험한 것은 피하지 않는 사람이오.

또 어느 분이 이 늙은이에게 가르침을 베푸시겠소?」

 

그는 계속해서 각 문파의 장문 종사를 쓰러뜨리게 되자

갑자기 의기양양하며 말이 건방져 지는 것이었다.

 

이때, 원홍대사가 합장하며 나셨다.

 

「아미타불. 이 늙은이는 본래 무학을 상호 연구하는 제자로서 상대방에

손이 닿는 것으로 승부를 가려 이번 무술대회의 분쟁을 끝마치려고 하였으나

이방주의 수법이 너무 악랄하여 구대 문파의 인사들을 연이어 중상을 입혀

이 늙은이로서는 더 각파의 종사들에게 권고하지 못하게 되었소.」

 

「노 대사님의 뜻은 비록 자비로서 해결 지으려고 하나 애석하게도 구대 문파에는

깨우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도 많으니 노 대사님의 일편단심은 헛될 것 같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장내가 소란하여지고 구대 문파 인사들은 모두 얼굴에 노기를 띠웠다.

  그러자 무당파의 정현도장이 벌적 몸을 일으키고는 노한 어조로 외쳤다.

 

「이방주는 신분이 있는 몸으로 사람들에게 모욕을 주는 언사를 함부로 하시오?」

 

「이 늙은이는 오래전부터 무당파의 검술이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는 것을 들어왔소.

도장께서 몇 수 가르침을 베푸시겠소.」

 

정면에서 도전해 오는 모욕을 정현도장인들 어찌 참을 수 있으랴?

즉각 검을 뽑아 들고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서자 무당파의 좌석에서 즉각 나이가 듬직한 네 도사가

제각기 검을 빼어 들고 따라나섰다.

 

이창란은 땅에 꽂아 두었던 용두 지팡이를 쓱 빼서는 한 번 휘두르며 냉소를 터뜨렸다.

그리고는 마주 걸어 나왔다.

 

이창란이 움직이자 천용방 쪽의 오기단주 가운데 왕한상과 최문기, 승일청

그리고 제원동 네 단주들이 역시 무기를 들고 따라 나섰다.

 

이창란은 건원지로서 연이어 강적을 세 사람이나 쓰러뜨리게 되자

약간 자만심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무예계의 일대 기사(奇士)인 무당파의 장문인 정현도장을 상대하여서는

약간 교만지심을 거두고 두 손을 마주잡고 예를 하는 것이었다.

 

「도장이 이모(李某)에게 무당의 절기를 전개하여 이 이모로 하여금

안식을 넓히게 하여 주시겠다니 영광입니다.」

 

「이방주는 우리 구대 문파의 인사를 연이어 패배시켜 그 얼마나 장하십니까?

겸손하실 것 없습니다. 그러나 이방주는 빈도와 일대일로 상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귀방의 단주들과 같이 하시겠습니까?」

하고 말을 마치고는 검을 안은 듯이 쥐고 뒤를 따라 온 네 사람의 도장 가운데로

돌아가 자리를 잡고 섰다.

 

그러자 왕한상이 달려 나와 이창란에게 허리를 굽혔다.

 

「방주님의 위세는 세 적을 연이어 패배 시켰으니

이제 조금 쉬도록 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 무당파의 오행검진(五行劍陣)은 본인들이 무너뜨리겠습니다.」

하는 말을 듣고 이창란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과연 무당파의 다섯 도장들은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오행방위(五行方位)에 의거하여 서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섯 도장들이 한결같이 오른 손으로 검을 안은 듯이 치켜세우고

왼 손으로는 평행을 잡는 듯이 손바닥을 세우고 발을 쭉 뻗치고 서 있는 것이

마치 태산과 같이 근엄하고 무거워 보였다.

 

 이창란은 속으로 감탄했다.

 

(왕한상은 과연 문무(文武) 겸비의 재사로군 관찰도 세밀하니,

나에게 일러주지 않았던들 큰일 날 뻔 했구나.)

 

그러자 그도 역시 자부심이 강한 자이라 조금도 굴하지 않고 호기 있게 맞섰다.

 

「오래 전부터 무당파의 오행검진이 소림파의 나한진(羅漢陣)과 더불어 두 강호의

유명한 진으로 들어 왔으나 수십 년간 인연이 없어 구경을 못했던 차에

오늘 뜻밖에도 단혼애에서 오행검진과 마주서게 되었으니

이 절호의 기회를 어찌 놓칠 수 있겠소.」

 

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왕단주는 들어가시오.

오늘 이 늙은이가 오행검진을 상대로 천고의 절학이라는 것을 알아  보겠소.」

하고 호탕하게 웃으면서 용두 지팡이로 땅을 굴리며 천천히 오행검진 속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이 오행검진은 비록 무당파의 절기중의 하나이나 수십 년간 무당파가

이 검진을 사용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구대 문파 고수들은

무당파가 진을 치고 있는 것이 바로 무당파의 진산(鎭山) 절기인

오행검진이라는 소리를 듣자 모두 흥분하며 소란을 일으켰다.

 

그러다가 이창란이 단 혼자의 힘으로 오행검진을 뚫겠다는 말에 모두

그 승부를 논하는 듯 수군수군 야단이었다.

 

이창란은 지팡이를 비껴 잡고 정동방(正東方)에 서있는

무당파의 한 도사 앞으로 걸어가 싱긋 웃었다.

그리고는 번개같이 용두 지팡이를 휘둘러 직고천남의 한 수로 도장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러자 검을 안은 듯이 쥐고 태산과 같이 무거운 자세로 서있던 무당파의 고수인

도장은 약간 몸을 비키면서 검을 들어 우주혼돈(宇宙混沌)의 수로 지팡이를 막았다.

 

두 사람이 이와 같이 서로 교접하자 오행검진은 즉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정동방의 도장이 이창란의 직고천남의 한 수를 막아내고는 홀연 옆으로 피하여 버리자

이창란의 앞에는 다만 정현도장 뿐이었다.

 

이에 이창란이 정현도장을 치려고 하자 갑자기 그림자가 어른거리면서

정남 방위의 도장이 앞을 막고 손에 든 장검으로 양의초계(兩儀初計)의 수로

검끝에 꽃망울을 그리면서 위와 아래를 함께 찌를 듯이 공격해 왔다.

 

그러나 이창란은 냉소하며 지팡이를'상하로 흔들면서 간단히 그 도장의 공격을

막아버리고 반격하려는 차 다시 그 도장은 재빨리 사라지고 정서 방위에 서 있던

도장이 훌쩍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이 일진의 오행변화는 눈 깜짝하는 순간에 일어나 이창란이 비록 오행검진의

신속한 진퇴(進退)와 면밀한 공수에 몰리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약간 놀랐다.

 

  (이 오행검진은 과연 괴상한 진법이군. 아무래도 조심해야지!)

 

  그러나 그는 자부심이 강한 사람으로 비록 두 수를 교환한 끝에 오행검진이

무서운 것임을 짐작은 하였지만 여전히 남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다만 좀 더 정신을 가다듬고 수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이는 그가 오행진 속의 다섯 사람이 엄밀히 배합하여 조금도 빈틈을 주지 않는

동시에 공수와 진퇴에는 오행생극(五行生剋)의 변화를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잘못하면 그 오행변화에 정신을 빼앗겨 진속에 묻힐 위험이 있다는 것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오행검진은 일반적인 오행생극의 변화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공수와 진퇴에 있어서도 전진의 돌연한 변화를 가져올 때가 있다.

그 돌연한 변화는 오행변화의 상도를 벗어난 것으로 비록 오행의 변화에 통달된 사람도

정반접위(正反接位)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쩔 줄 모르게 되고 물러서게 되는 것이다.

 

이창란은 일대 영웅으로 기지나 재질은 가히 초인적이어서 연이어 세 강적을 물리침으로서

일어났던 교만한 마음을 즉시 일소하고 가만히 적의 변화를 기다리게 된 것이었다.

 

정현도장은 이창란이 갑자기 태도를 동(勳)에서 정(靜)으로 바꾸는 것을 보고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보통 사람과는 다르군. 일시에 판단할 수 있는 기지를 갖추었고

또 교만한 태도를 일소하다니 인물은 인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수중의 장검으로 평사낙안(平沙落雁)의 수로 이창란의

앞가슴을 찌르고 동시에 왼팔을 비스듬히 앞으로 옮겨 검진의 변화를 일으키게 했다.

 

그러자 삽시간에 다섯 도장은 자리를 바꾸어 검광을 휘몰고 사방팔방에서 이창란에게 공격해 왔다.

 

이에 이창란은 대갈일성하며 운무미천(雲霧迷天)의 수를 전개하여 지팡이로 장막을 이루듯

몸을 보호하니 쇠와 쇠가 요란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일어나며 그를 공격하던 검들이

일제히 튕기어 뒤로 밀려 났다.

 

정현도장이 제일 먼저 이창란의 지팡이와 부딪쳤지만 당장에 검이 지팡이에 튕길 뿐 아니라

오른손이 시큰거리는 것이 거의 검을 놓칠 뻔 하자 깜짝 놀라 속으로 감탄했다.

 

  (이 자의 공력이 이토록 심오하니 결코 그의 지팡이와 맞부딪치게 하여서는 안 되겠다.)

 

힘으로 싸우지 않을 것을 결심하고 검으로 허공에 원을 그렸다.

 

이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은 오행검진의 변화를 지휘하는 암호인 것으로

각자 방위를 지키고 있던 네 도장은 갑자기 몸을 이창란에게 돌리면서

비스듬히 이창란을 찌르며 네 자루의 장검이 일시에 이창란의

각각 다른 요혈을 노리고 들어왔다.

 

무공이 조금이라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면 한 쪽을 돌보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지만

이창란은 점점 기묘해지는 공세의 변화에 섬뜩함을 느끼면서도 즉각 왼쪽 무릎에

중심을 잡고 갑자기 주저앉을 듯이 자세를 잡더니

곧 오른 발에 힘을 주어 빙 돌렸다. 그리고는 지팡이와 몸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한바탕 질풍같이 돌아가면서 네 개의 장검을 일제히 밀어냈다.

그리고 상대편에서 어떠한 공격을 다시하기도 전에 오른 발로 땅을 차며

허공으로 뛰어 올라 지팡이를 질풍같이 휘두르며 정현도장을 내려쳤다.

 

이창란은 진세의 교묘한 변화에 수세만 취하고 있다가는 단시간에 벗어나지는 못하겠고

시간을 길게 끌면 불리할 것을 염려하고 속히 공격으로 나갈 것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질풍같이 정현도장을 일격에 쓰러뜨리려고

내달았던 것이다.

 

정현도장은 이창란의 하격(下擊)의 기세가 너무도 맹렬하여 감히 이창란의

지팡이를 맞받을 용기가 나지 않아 재빨리 옆으로 다섯 걸음을 비키고

장검을 비스듬히 돌려 흔들었다.

그리고는 오행검진의 변화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온 하늘이 시퍼런 검광으로 가득해 지더니 이창란을 겹겹이 에워쌌다.

 

일격을 헛친 이창란은 검의 광막에 싸이자 지팡이를 맹렬히 휘두르며 좌충우돌,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다섯 도장의 검이 춤추는 가운데

이리 막고 저리 치며 분전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정현도장이 돌연 이창란의 일격을 막아내고 질풍같이

오른 쪽으로 두어 걸음 내디디고는 장검을 두 번 휘둘렀다가

두 번 내려뜨리고 획 몸을 한바퀴 돌리면서 이창란에게 맹렬히 달려들었다.

 

정현도장의 이 행동은 바로 오행검진의 변화를 이끄는 신호로서 즉각 주위의 네 도장이

일제히 휘파람을 불며 도포 자락을 휘날리는 가운데 장검으로 맹렬히 공격을 가하면서

상호의 방위를 바꾸었다. 그러자 전세는 단번에 그 양상을 달리하는 것이었다.

 

다섯 자루의 장검이 획! 획! 하는 바람소리를 일으키며 장막을 이루는데

그 기세는 번개와 뇌성이 이는 것 같고 모양은 짙은 안개와 같기도 하고

억센 파도가 밀려오는 것 같기도 했다.

이러하여 삽시간에 다섯 도장의 모습은 찾을 길 없고 풍차가 돌아가는 듯한 소리만 들렸다.

 

이창란은 천하의 이인으로 공력이 또한 심후하여 비록 만경창파와 같은

검의 장막에 파묻혔지만 태연히 태산과 같이 당황하지 않고 한 자루의 지팡이로

절묘한 수를 변화시켜 가며 장막 속에서 몸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돌아가는 것이었다.

 

해천일수 이창란은 비록 일대의 영웅이며 강호의 괴걸이었지만 반생의 세월을

무예에만 몰두하고 천용방을 이끄는데 이십 년이란 세월을 바쳤기 때문에

절세(絶世)의 무공을 지녔으나 구궁 오행지학에는 통달할 수 없었다.

이제 이창란이 비록 일시에 끓어오르는 호탕한 기개에 단독으로

무당파의 절기인 오행검진을 뚫으려고 한 것이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무당파의 오행검진은 소림파의 나한진과 더불어 무예계의 쌍절(雙絶)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었다.

 비록 나한진만큼 위력이 강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무시무시했다.

이러한 무당파의 오행검진을 격파한 사람이 세 사람밖에 없다면

그 위력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 모인 고수들은 비록 일파를 대표하는 고수들이었지만

나한진과 오행검진을 구경이라도 하고자 온 정신을 중앙의 변화에만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이 오행검진에 참가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당파의 고수들이며

정현도장 이하 네 명의 제자들이 오행검진에 삼십여 년 이상의 긴 세월을 바친 사람들로서

오행검진의 정반상극변화(正反相剋變化)에 통달할 뿐 아니라

공력도 무궁무진한 사람들이었다.

 

점점 오행검진이 엄밀하여지는 동시에 더욱 복잡 미묘해서 오행상극의 변화에

정통하지 못한 사람은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더구나 검을 맹렬히 휘두르며 정오행(正五行)에서 반오행(反五行)으로 변화시키는가 하면

그 반대로 반오행에서 정오행으로 무쌍하게 변화시켜 오행의 변화를 알고 있는 고수들도

눈에 불을 켜고 보지 않으면 어떻게 변하는 것인지 미리 알아낼 재간이 없을 만큼

신출귀몰한 절학이었다.

  이와 같이 변화무쌍한 절학을 보고 있던 일양자는 가만히 한숨을 쉬며 탄식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옥영자를 돌아보았다.

 

「말로만 듣던 무당파의 검술이 거짓말은 아니군.

이 오행검진은 참으로 심오한 검술이군!」

 

「사형 말씀이 옳은 것 같아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에요.」

 

  그러는 한편에서 온 정신을 차리고 오행검진을 세밀히 관찰하고 있던 양몽환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때로는 고개를 흔들기도 하는 것이

상당한 관심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러한 양몽환의 태도를 보고 있던 옥영자는 얼굴에 미소를 띠운 채

일양자의 심각한 표정을 은근히 살폈다.

 

「사형께서는 오행기술을 이미 터득하고 계시는데 놀라울 것은 없을 거예요.

오행기술도 환아에게 전수시켰습니까?」

 

그러자 일양자는 완강히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알고 있는 오행기술이?라는 것은 형편없는 것이오.

그것을 어떻게 제자에게 전수시키겠소?」

하는데 오행검진에 몰두하고 있던 양몽환은 갑자기 느끼는 바가 있는지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아까운 일이군. 유금(酉金)과 계수(癸水) 이행(二行)에서

한수씩만 공격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에 옥영자는 코웃음 치며 차갑게 노려보았고 일양자는

옥영자의 그러한 태도에 양 미간이 약간 찌푸려지는 것이었다.

 

한편,

 

점점 오행검진의 절학은 그 극을 발휘하고 싸움도 점차 치열해졌다.

그러자 모든 고수들은 숨을 죽인 채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중앙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긴장하고 있었다.

 

이때,

 

오행검진에 고전을 면치 못하는 방주 이창란을 바라보고 있던 예하의 단주(壇主)들은

여차하면 오행검진 속으로 뛰어들 태세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자세를 굳혔다.

 

이렇게 단주들의 동요함을 본 왕한상은 손을 흔들어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왕한상으로 말하면 그의 무공도 무공이려니와 지위도 방주 이창란의 다음이었고

더구나 그의 깊은 학문은 단주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처지였다.

그러한 왕한상의 손짓에 단주들은 주춤 긴장을 풀며 태세를 늦추는 것이었다.

 

당장 뛰어 나가려는 동료 단주들을 제지시킨 왕한상은 그들이 진정하고

태세를 늦추자 싸우고 있는 방주 이창란에게 들리도록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방주님!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북쪽을 공격하십시오.

그리고 남쪽으로 옮기면서 물(水)로 불(火)을 잡으시오!」

 

하는 왕한상의 외침 소리를 들은 이창란은 그의 말대로 지팡이를 휘둘러

풍뢰병발(風雷倂發)의 수를 전개하면서 정북방향(正北方向)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자 무당파의 고수들은 경신(庚辛)과 임계(壬癸)로 방향을 바꾸려던

오행검진을 바꾸지 못하여 그 바람에 잠시 혼란해졌다.

이때를 이용한 이창란은 즉시 몸을 돌려 남쪽의 병정(丙T) 방향에서부터

분운취월(分雲取月)의 수를 전개하면서 질풍처럼 달려들어 을목(乙木)과

신금(辛金) 방향에서 공격해 올 무당파 고수들의 검을 내려치고 말았다.

 

이와 같이 이창란의 재빠르고도 신랄한 공격에 위력이 대단했던

오행검진의 위세가 갑자기 혼란 상태에 빠진 듯 헝클어지고 혼란해졌다.

 

이에 위기를 예감한 정현도장이 검을 높이 들어 허공에 원을 그리는 것과

맞추어 고수들은 위치와 방위를 신속하게 바꾸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시 혼란해졌던 오행검진의 고수들은 다시 대오를 바로 잡고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기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이창란을 주시하고 있던 왕한상은

다시 큰 소리로 방주에게 계략을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방주님! 이제는 동쪽의 을목(乙木) 방위를 공격하고

그 다음에 서쪽의 신금(辛金) 방위를 공격하십시오.

오행검진이 정오행(正五行)에서 반오행(反五行)으로 바뀌었습니다.」

 

  자세하게 방향을 지시하는 왕한상의 말을 들은 이창란은

즉시 지팡이에 바람을 일으키며 신금(辛金) 방위로 지쳐 나갔다.

그 바람에 반오행검진은 형성되다 말고 이창란의 지팡이에 다시 헝클어지고 말았다.

 

이에 분통이 터진 정현도장이 벽력같은 고함을 지르며 이창란의 지팡이를 겨누고

장검을 휘둘러 세 수를 정신없이 후려쳐 이창란의 접근을 막자

그제야 무당파의 고수들은 다시 반오행의 검진을 갖추어 이창란을 감쌌다.

 

그리하여 다섯 자루의 장검이 번쩍이는 오행 속에 이창란은 다시 묻히고 말았다.

그러자 눈썹이 치켜 올라간 이창란은 지팡이를 신용출수(神龍出水)로 변화시켜

계수(癸水) 방위의 동남(東南)쪽을 뚫고 손가락을 들어 건원지(乾元指)의 흉내를 내며

병화(丙火)의 위치에서 공격하는 도장에게 지풍을 날렸던 것이었다.

 

이와 같이 이창란의 재빠른 동작과 예리한 공격에 병화(丙火)의 방위를 지키고 있던

도장은 미처 막아내지 못하고 허공으로 몸이 날려 이장 밖으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도장이 나가 떨어지고 반오행의 진이 다시 흩어지자 우왕좌왕하는 틈을 이용한

이창란은 재빨리 건원지의 지풍을 날려 재차 을목(乙木) 방위의 도장을 후려쳐 버렸다.

그 바람에 도장의 몸뚱이는 병화의 도장과 같은 신세가 되어 허공으로 높이 날았다가

떨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눈 깜짝하는 사이에 두 명의 도장이 엉덩이가 떨어져 나가도록 건원지의

위력에 맥을 못 추자 오행검진은 유야무야로 되어 버리고 말았다.

오행검진이 부서지고 방위를 지키던 두 명의 도장이 나가 떨어지자

분통이 있는 대로 터진 정현도장은 검을 휘두르는 것도 시원치 않은지

발길질까지 하며 이창란에게 돌진해 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창란은 여유 있는 몸짓으로 가볍게 피하며 냉소를 터뜨렸다.

 

「암, 그래야지. 그래야 실력을 알 수 있지!」

 

  비꼬는 듯도 하고 조롱하는 듯도 한 이창란의 말을 들은 정현도장은

발을 구르며 분통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무당파는 소림파와 더불어 무예계의 정상을 달린다는 정평을 들을 만치

그 무공이 절학에 달하는 위치에서 지금 이창란의 지팡이 한 자루에 여지없이 무너지는

오행검진을 생각하면 많은 고수들 앞에서 이보다 더한 추태가 어디 있는가 하는 것인

정현도장의 생각이었다.

그런데다 이창란의 조롱 섞인 말을 듣고서는 땅을 치고 통곡해도 시원치 않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목숨 떼어 놓고 뛰어들 도리 밖에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든지 이창란을 쓰러뜨려서 땅에 떨어진 무당파의 명예를 다시 올려놓아야 하는

중대한 입장의 정현도장이었다.

  그러나 정현도장과는 반대로 무술계에서도 이름 높은 오행검진을 한 자루의 지팡이로

여지없이 무너뜨린 이창란은 기고만장해서 기세 있게 도장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정현도장의 무서운 공격에 대항하는 이창란 역시 자기도

생각 못했던 오행검진을 물리쳐 기세가 당당해진 여세를 몰아 지팡이를 이리 저리 흔들며

썩은 풀 베듯 정현도장을 치고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서로 절학을 총동원하여 싸우는 이창란과 정현도장은

그들이 원래 고수급에 속하는 인물들이어서 쉽게 승부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치면 막고 막으면 다시 치고 밀리고 하여 일진일퇴의 공격과 후퇴가 수없이 반복되는 동안

끈질기고 쓰러지지 않는 내력 (內力)에 서로 놀라워하기도 했다.

  얼마 동안 장검과 지팡이를 교환하며 땅과 먼지를 날리던 정현도장은 다시금

차원을 달리해서 지금까지 지지부진한 공격에 승산이 없음을 계산하고 장검의 수법을

무당파의 절기인 태극검(太極劍)으로 변화시켰다.

  이 태극검으로 말하면 무당파를 세운 장삼풍(張三風)이 창안한 것으로

한 번 허공을 가르기만 하면 성난 파도와 같은 무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 태극검의 수법은 너무 조용히 눈에 띄지 않도록 바람이 일어나

상대방을 후려치기 때문에 정현도장이 태극검을 전개한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한

이창란은 금방 전세가 역전되어 지금까지의 공세에서 수세로 삽시간에 몰리고 말았다.

  단 한 번의 태극검 수법으로 전세를 역전시키고 기세를 잡은 정현도장은

지금까지 한쪽으로 물러섰던 부하들에게 손짓을 했다.

 

「달려들어라!」

 

  그러자 용기백배한 도장들은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정현도장과 합세하여

네 자루의 검을 번쩍이며 이창란에게로 질풍같이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위기를 당한 이창란은 냉소를 터뜨리며 건원지의 지풍을 날려 앞장선

도장의 몸뚱이를 일장 밖으로 날리고 뒤미처 달려드는 정현도장의 면상을 향하여

신용입운(神龍入雲)의 한 수를 정통으로 후려쳐 보내는 것과 동시에 그 뒤에 있는

도장의 등을 발길로 후려 찼다.

  재빠른 일격으로 세 명의 도장을 물리친 이창란은 그래도 정현도장의 내력이

안심되지 않는지 돌아서면서 지팡이를 휘둘렀다.

삽시간에 전세는 다시 역전되어 두 명의 도장까지 잃은 정현도장은 장문인이라는

위치도 생각하지 못하고 분함과 억울함에 울분에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키다 말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러자 이때까지 이창란과 무당파의 도장들이 맞싸우던 처절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각파의 고수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일제히 일어나 싸움판으로 몰려가는 것이었다.

 

순간,

 

이창란과 정현도장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그러자 고수들 중에서 가만히 나무아미타불을 외치며 원홍대사가 고수들을 헤치며

앞으로 썩 나섰다.

 

「여러분! 다 제자리로 돌아가시오.

이 늙은이가 이방주의 건원지를 상대하겠소!」

 

  몸은 늙었지만 외치는 소리는 천지를 뒤흔들 만큼 우렁찼다.

그러자 웅성거리던 각파의 고수들은 제각기 재미있다는 눈빛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때 소림파의 장문인인 원홍대사가 정현도장의 원수를 갚으려고

이창란을 상대로 선뜻 나서자 소림파의 제자들은 우르르 밀려 싸움이 벌어질 중앙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때, 한편에 섰던 곤륜파의 옥영자는 옆에 있는 일양자에게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대사형! 지금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각파의 고수들이 천용방과 곤륜파가

무슨 묵계라도 있는 가 의심하지 않을까요?」

 

하고는 일양자의 말도 들을 필요 없다는 듯이 장검을 비껴들고

중앙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었다.

 

주위의 분위기가 원홍대사의 출현으로 순간,

살벌해지고 차가운 기운이 서리는 것을 직감한 원홍대사는

몸에 있는 진기를 단전(丹田)에 집중시켜 싸울 태세를 취하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정현도장을 큰 소리로 불렀다.

 

「도형은 잠시 손을 멈추시오.

이 늙은이가 도형을 대신해서 이방주의 건원지를 시험해 보겠소!」

 

  그러나 정현도장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창란에게서 받은 참패를

자기 손으로 만회하지 못하면 무당파의 존망이 심한 위기에 직면하리라는 것을

잠시도 잊을 수가 없었다.

비통과 울분에 싸인 정현도장은 원홍대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주먹을 쥐고 이창란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적수가 아니었다.

네 명의 부하 도장을 잃고 무당파의 명예마저 여지없이 추락하게 된 정현도장은

불붙는 울분과 복수심만으로는 이창란의 지팡이를 꺾어 버릴 수가 없었다.

 

점점 기운이 쇠퇴하여지고 이창란의 지팡이가 허공에서 춤을 출 때마다

정현도장은 위험한 순간을 수없이 넘기는 것이었다.

 

앞으로 십여 합만 더 교환한다면 이창란의 지팡이 아래에 쓰러지고 말

정현도장의 지치고 지친 약세였다.

그러나 원홍대사의 말대로 정현도장은 물러날 기색이 없었다.

이에 원홍대사는 정현도장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크게 외치며

싸우고 있는 정현도장과 이창란의 사이를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눈을 굴렸다.

 

「잠깐! 나는 무술 시합의 책임자요. 이 늙은이의 말이 안 들리오?」

 

하면서 진기를 돋우어 원산초해(遠山超海)의 한 수로 이창란을 뒤로 물리치는 것이었다.

  뜻밖의 일격으로 뒤로 물러난 이창란은 지팡이를 바로 잡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 틈을 이용한 원홍대사는 정현도장 앞으로 재빨리 다가갔다.

 

「도형은 내 말을 들으시오. 이 늙은이가 대신 싸우겠소.

그동안 도형께서는 좌석으로 돌아가 잠시 쉬시오!」

 

하는 말에야 정현도장은 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힘없는 걸음으로

무당파의 좌석을 향해 휘청 휘청 걸어가는 것이었다.

 

제자를 잃고 만신창이가 된 정현도장이 휘청거리며 좌석으로 돌아가자

원홍대사는 이창란을 꼬나보며 턱을 치켜 올렸다.

 

「이방주! 당신의 수법이 얼마나 악랄한지 이 늙은이가 상대하겠소. 어떠시오!」

 

  거드름을 피우는 원홍대사를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던 이창란은

코웃음을 치며 냉소를 터뜨렸다.

 

「얼마든지 상대해 드리죠. 늙은이가 곱게 죽지 못하고 가엾은 일이지만 할 수 없소.」

 

「뭐라고? 젊은 놈이 늙은이에게 하는 말버릇이 어서 죽여 달라는 말이군!」

 

「하‥‥‥ 하‥‥‥ 그렇게 들리시오?

그래도 나는 노인 대접을 하는 뜻으로 선수를 쓰라고 하려던 말인데‥‥‥」

 

「나보고 선수를 쓰라고? 노인 대접이 겨우 그것인가?」

 

「그렇소!」

 

「그렇다면 어려울 것 없지!」

 

하며 장검을 높이 드는데 갑자기 뒤에서 큰 소리로 외치며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대사님! 잠깐 기다리시오!」

 

하는 소리에 장검을 든 채 뒤를 돌아보던 원홍대사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미소를 띠우는 것이었다.

원홍대사에게로 달려온 사람들은 곤륜파의 삼자(三者)들이었다.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각기 장검을 든 곤륜 삼자는 굳은 결심을 띄운 얼굴로

원홍대사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옥영자가 허리를 굽혔다.

 

「대사님은 여러 제자들이 의지하고 있는 몸이십니다.

어찌 가볍게 싸움에 임하시겠습니까?

저희 곤륜파에게 맡기시고 돌아가시면 어떻겠습니까?」

 

하는 옥영자의 얼굴이나 일양자와 혜진자의

얼굴 표정은 좀처럼 물러설 기색이 없었다.

 

원홍대사는 굳게 결심한 듯한 그들을 제지할 수 없음을 직감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순순히 물러섰다.

 

「도형들의 생각이 그러시다면 이 늙은이는 물러가겠소.

아무쪼록 보중하시오.」

  당장 원홍대사와 이창란의 결투가 벌어질 줄 알았던

구대 문파고수들은 갑자기 싸움을 가로 막고 나서는

곤륜 삼자의 출현으로 눈이 둥그레 졌다.

  사실 구대 문파 고수들은 곤륜 삼자와 천용방간에

어떠한 묵계(?契)가 있지 않을까 하고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이창란에게 대결하자

그제야 각파의 고수들은 의심을 풀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이었다.

 

원홍대사의 말에 정현도장이 물러가고 곤륜 삼자의 말에 원홍대사가 돌아가자

싸움이 벌어지던 중앙에는 곤륜 삼자와 이창란이 서로 노려보며 대치하게 되었다.

 

이때, 이창란은 차가볼 바람이 획 획 지나가는 듯한

눈초리로 옥영자의 아래 위를 날카롭게 훑었다.

 

「세 분은 이 노부와 정말 싸우겠소?」

 

「정말 싸우지 않으면 거짓으로 싸우겠소.」

 

「죽어도 좋다는 말이오? 목숨이 아까우면 돌아가시오!」

 

「그런 염려는 안 해도 되오. 이방주께서나 죽지 않도록 힘껏 싸우시오.」

 

「좋소. 누가 죽든지 결판을 냅시다. 그러면 세 분이 함께 달려드시오.」

 

  패기만만하고 자신 있는 이창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천용방의 좌석에서 왕한상이 쏜살같이 달려와 머리를 숙이는 것이었다.

 

「방주님! 저 따위 곤륜파는 이 왕단주에게 맡기시고 구경이나 하십시오!」

 

하고 대신 싸움을 자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창란은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 흔들 뿐 응하려 하지 않고

싸울 태세를 갖추는 것이었다.

그러자 다급해진 왕한상은한걸음 다가서며 다시 한번 청원했다.

 

「방주님! 이 왕단주의 말을 들으십시오.

곤륜파의 절학은 나한진이나 오행검진에 떨어지지 않는 무공입니다.

어찌 방주님께서 연이어 상대하시겠습니까?

이 왕단주에게 맡겨 두시고 쉬십시오.」

 

그제야 이창란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단주의 의견이 그렇다면 나도 할 수 없소.

사실 곤륜파의 분광검법도 절학이오.

그러나 단주가 조심만 하면 문제없을 것이오.」

 

「방주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홍기단주와 혹기단주가 호응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분광검법쯤 두려워할 저희들이 아닙니다.」

 

하고는 손에 든 부채를 높이 들었다.

그러자 그 신호에 맞추어 최문기와 제원동의 단주들이

천용방의 좌석에서부터 질풍같이 달려 나오는 것이었다.

천용방의 백기(白旗)와 홍기(紅旗) 그리고 흑기(黑旗)의 단주들이 달러오자

그들을 노려보고 있던 옥영자는 일양자와 혜진자를 돌아보며 여유 있게 미소를 띠웠다.

 

「세 단주가 합세할 모양이죠?

보나마나 건원지의 신공(神功)으로 수법을 쓸 거예요.

그렇지만 힘껏 싸우면 돼요.

더구나 사해가 이렇게 커진다면 곤륜파의 명예도 이 일전에 달렸다고 할 수 있어요.」

 

하는 옥영자의 말을 일양자나 혜진자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도 옥영자와 마찬가지로 곤륜파의 명예를 걸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각심이고 또 꼭 이겨야 한다는 굳은 결의가 되어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의미심장하고 각파의 존망 성쇠를 좌우하는 싸움은

옥영자의 장검이 왕한상에게로 달려오면서부터 벌어지고 말았다.

 

한편,

 

사태의 결말에 추측을 불허하는 최강파 고수들의 치열한 격전을 보고 있는

각파의 고수들은 숨소리 하나 없이 정신을 가다듬은 채 주시하기 시작했다.

 

전세는 막상 막하,

 

곤륜파가 밀리면 천용방이 달려 들어오고 그 반대로 천용방이 주춤 물러서면

곤륜파의 삼자가 검광을 번쩍이며 기세 있게 몰아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순간순간의 아슬아슬함에 좌석에 앉아 있는 각파의 고수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주위 일대는 삽시간에 검광과 장풍이 어지럽게 날고 돌과 모래 가 하늘을 뒤덮었다.

 

그때였다.

 

옥영자의 장검이 허공에서 춤을 추며 왕한상의 가슴으로 지쳐 날려는 순간!

 

곤륜파의 좌석에서 매서운 장풍이 일어나며 독수리처럼 날아오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곤륜 삼자 앞에 달려와 엎디는 것이었다.

 

양몽환이었다.

 

「잠시 손들을 멈추시고 제자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크게 외치며 허리를 굽히는 바람에 검풍을 일으키던 양 파의 고수들은

손을 멈추고 양몽환의 일거일동에 시선을 모았다.

 

그 순간,

 

검을 높이 들어 왕한상을 겨누었던 옥영자는

그래도 양몽환을 노려보며 얼굴에 경련을 일으켰다.

 

「너는 이미 곤륜파의 제자도 아닌데 왜 소란을 떠느냐?」

 

하고 차갑게 소리쳤다.

 

그러나 양몽환은 응당 그러한 말이 나을 줄 짐작했는지

그대로 허리를 굽힌 채 머리를 숙이는 것이었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하오나 제가 곤륜파의 제자가 아닐지라도

그동안 장문 사숙께서 베풀어 주신 태산 같은 은혜와 가르치심은

보답할 길이 없어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제자가 아니라고 어찌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 기회에 은혜를 보답하는 뜻으로 천용방과의 싸움을 저에게 맡겨 주시면

죽음으로 은혜를 갚고 눈을 감겠습니다.」

 

「일단 제자라는 관계가 끊어진 이상 은혜도 필요 없다.

더구나 너는 곤륜파의 제자가 아닌데 우리에게 물어볼 것이 어디 있느냐?」

 

여전히 차갑고 가시 돋친 옥영자의 말에 양몽환은 굽혔던 허리를 펴고는

장검을 뽑아 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장검의 파란 칼날을 자기 목에 대고 표정을 바꾸는 것이었다.

 

「말씀, 천만번 지당한 말씀입니다.

마디마디 이 몸의 배를 깎아내는 듯한 말씀에 지나간 일들을 뉘우칠 뿐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이 몸의 뜻을 저버리신다면

세분 앞에서 목숨을 끊어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다시 곤륜파의 좌석에서 편 빛을 반짝이며 쏜살같이 달려 나온 하림이

양몽환의 장검을 낚아채며 옥영자 앞에 엎드렸다.

 

「사숙님! 오빠가 죽으면 저도 죽겠어요!」

 

  입술을 파르르 떨며 옥영자의 얼굴을 맞바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얼굴에는 조금도 두려운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이와 같이 생각지도 못했던 하림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양몽환과 나란히 서자

놀란 사람은 혜진자였다.

혜진자는 당황한 눈빛으로 옥영자에게 다가갔다.

 

「둘째 사형! 노여움을 푸시고 곤륜파에 충성할 기회를 환아에게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저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보다는 그의 뜻대로 천용방과 싸워

죽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일양자의 마음도 편안치 않은 듯

침통한 표정으로 양몽환과 하림을 바라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혜진자의 중개적인 말을 듣고 잠시 동안 생각하며

일양자의 침통한 표정을 본 옥영자는 길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 모르겠다. 너희들이 죽겠다고 한다면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라!」

 

  드디어 양몽환에게 싸워도 좋다는 허락을 내리고 말았다.

 

  그러자 옥영자를 주시하고 있던 양몽환의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 찼다.

 

「감사합니다. 죽음으로 은혜를 보답하겠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예를 올렸다.

그러자 옥영자는 양몽환의 인사도 받지 않고

그대로 곤륜파의 좌석으로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일양자와 혜진자가 묵묵히 따라갔다.

  곤륜파의 장문인인 옥영자가 말없이 돌아가자

일양자와 혜진자도 더 말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좌석으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양몽환은 옆에 서있는

하림에게로 돌아갈 것을 권했다.

그러나 하림은 완강히 고개를 흔들었다.

 

「싫어요. 오빠가 지치면 돕겠어요.」

 

  아무리 권해도 자기의 말대로 하림이 돌아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양몽환은

하림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려 고마움을 표하고는 몸을 돌려 왕한상에게로 장검을 겨누었다.

 

「자, 그럼! 함께 덤비시오!」

 

  순간, 왕한상 이하 제원동과 최문기는 절로 냉소가 터졌다.

그들이 알고 있는 양몽환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다.

 

또한,

 

그들이 양몽환의 실력이 어떠하다는 것을 모른다면 냉소를 터뜨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미산에서나 만불사에서 중들과 싸우던 양몽환의 무공이라는 것은

정말 그들이 보기에는 코웃음거리 밖에 안 되었다.

 

그러는 중에서도 조금 양몽환의 무공을 알고 있다면 최문기가 알고 있는

양몽환의 오행미종보법(五行迷從步法) 정도였다.

그때, 최문기는 양몽환의 오행미종보법에 단단히 창피를 당했다.

그러한 관계에서 오늘 다시 만나게 된 것은 그때의 창피를 갚아주는

절호의 기회라고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단주들이었다.

 

제원동은 앞에 버티고 서 있는 양몽환이 한심한 모양이었다.

또 웃음이 나왔다.

 

「후‥‥‥ 후‥‥ 대단하시군 그래, 무덤이나 파 놓고 나왔나?」

 

  그러나 양몽환은 입을 꾹 다물고 천천히 장검을 돌리며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썹을 치켜 올려 소지천남(笑指天南)의 한 수로

제원동을 향하여 달려드는 것이었다.

 

한편,

 

구대 문과의 고수들은 원홍대사가 가로 막고 나섰던 이창란을

곤륜파에게 양보하자 모든 의혹도 사라지고 치열한 결투로

당장 천용방이 쓰러지는 줄 알았다.

 

그러던 것을 이름도 없는 양몽환에게 천용방의 단주들을 양보하고

곤륜 삼자가 물러나자 조용하던 좌석에서는 다시금 동요되고 불안해하는 것이었다.

 

보나마나 곤륜파의 패배는 정한 이치고 양몽환에게 천용방을 양보한

곤륜 삼자는 구대 문과를 배반한 배반자라고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웅성거렸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다.

어떤 고수들은 나이어린 양몽환의 목이 천용방 단주들의 장검에 떨어져 나가는 것은

정말 불쌍해서 못 보겠다고 고개까지 외면하는 것이었다.

 

사실,

 

천용방의 왕한상이나 제원동 그리고 최문기는 무술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명성이 자자한 고수들 인데 비하여 아직 이름도 없는 양몽환은 너무나 대조적으로

승부가 이미 정해져 있음과 같은 것이었다.

달걀을 던져 바위를 치는 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만큼 고수들은 양몽환의 위치나 무공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보다

천용방 단주들의 명성이 너무나 악랄하고 쟁쟁한 것이었다.

도저히 적수가 아님을 알고 있는 고수들은 웅성거리면서도 양몽환과 제원동의 대결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양몽환의 일격을 피한 제원동은 그 악명 높은 청강쌍륜(靑鋼雙輪)을 비스듬히 잡은 채

한 수에 요절을 내고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러나 여전히 냉소를 터뜨리며

빙글빙글 들리다 번개같이 후려쳤다.

그러면 계원동의 청강쌍륜에 양몽환의 장검이 하늘 높이 날아 몇 장 밖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과 동시에 양몽환은 쓰러져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태는 그렇지 못했다.

장검도 그대로 쥐어져 있고 양몽환도 그대로 눈앞에 버터고 서 있는 것이었다.

 

순간,

 

놀란 사람은 옆에 서 있는 단주들이었다.

 

으레 공식처럼 쓰러져야 할 양몽환이 까딱없이 서 있는 것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단주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때 제원동은 또 어떠했을까?'

 

  (야! 요놈 봐라, 제법인데. 내가 잘못 썼나? 그렇지 않을 텐데‥‥)

 

하고 고개를 갸웃거린 제원동은 재차 청강쌍륜을 비껴들고 양몽환과의 거리를 쟀다.

이제 던지면 공식처럼 양몽환의 장검이 날고 양몽환은 양몽환대로 쓰러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는 한편, 제원동의 청강쌍륜을 가볍게 막아낸 양몽환은 이상한 생각이 번쩍 지나갔다.

 

  (‥‥‥ 음, 이 기회에 천용방 단주들을 깨끗이 처치하고 곤륜파의 은혜를 갚아야겠다.

그렇다면 한 사람씩 상대하다가는 끝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초조한 생각이 지나간 양몽환은

그 길로 한 편에 서 있는 천용방의 최문기에게로 달려갔다.

 

「여보! 당신은 왜 안 나오시오? 구경만 하지 말고 빨리 나오시오!」

 

  벽력같이 지르는 고함 소리에 최문기는 후다닥 놀랐다.

다른 사람과 싸우다 말고 자기에게 다가오며 소리를 칠 줄은 몰랐다.

그렇지 않아도 양몽환의 오행미종보법을 조금 알고 있는 최문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한심한 노릇이었다.

 

  (맹랑한 놈! 그 동안 무공이 늘지 않았다면

이 놈이 이렇게 안하무인일 수는 없겠는데‥‥‥ 이상한 일이군‥‥‥)

 

  생각하면서 선뜻 뒤로 물러서며 달려들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다시 몸을 돌려 뒤에서 노리고 있는 제원동을 향하여

도음접양(導陰接陽)의 한 수로 슬쩍 밀어 붙이고는 왕한상에게로 방향을 바꾸었다.

왕한상에게도 한마디 안 할 수 없었다.

 

「왕단주도 나오시오! 놀러온 것도 아닌데 왜 그러고 섰소!」

 

하고는 급히 몸을 돌려 몇 걸음 피해 섰다.

 

  세 명의 반주들을 다 들썩거려 가운데로 몰아 놓은 양몽환은

진기를 집중 운행시키고 세 명의 단주 중 어느 누구든지

먼저 공격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자기에게로 달려오는 장풍을 맞받아 역습할 계산이었다.

 

드디어 제원동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청강쌍륜을 휘두르고 지쳐들어 왔다.

 

그러자 선수만을 기다리고 있던 양몽환은 오행미종보법을 전개하여

몸을 감추는 것과 동시에 제원동이 날려 보낸 장풍을 막아 일단세운 다음에

귀원비급에 기록되어 있는 도음접양의 수로 잡아 놓은 계원동의 장풍을 후려쳤다.

 

계원동의 장풍만 해도 무시무시한데 양몽환의 장풍까지 합류된

그 위력은 역습을 노리고 있던 제원동과 왕한상 그리고 최문기의 몸을

일장 밖으로 날려 보내기에 적당했다.

 

순간,

 

각파의 좌석에서 양몽환을 애처롭게 바라보면서 양몽환이 쓰러질 때가

이젠가 저젠가 초조히 기다리던 구대 문파의 고수들은 일제히 눈이 둥그레졌다.

기막히고 놀라운 일이었다. 오행미종보법을 전개하며 신출귀몰하는

그의 신법(神法)도 신법이지만 명성이 자자한 세 명의 단주가 모두 일격에

나가떨어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벌린 입이 다물어지기는커녕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일어나 구경하는 각파의 고수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기쁜 사람은 혜진자였다.

얼굴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혜진자는 옆에 앉아 있는 일양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환아의 무공이 놀랍군요!

그냥 두었다면 곤륜파를 빛내게 할 수 있었을‥‥‥」

 

하다가 급히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것은 양몽환이 사문에 돌아올 것을 완강히 반대하는 옥영자를 인식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