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40 장 이창란의 손에 귀원비급이 <突風一指>

오늘의 쉼터 2014. 6. 22. 14:50

제 40 장 이창란의 손에 귀원비급이 <突風一指> 

 

  이윽고 얼마가지 않아서 요란하게 외치는 소리와 기합소리가 들려왔다.

주약란은 갑자기 발걸음을 늦추었다.

 

「저 모퉁이만 돌면 계곡 끝이야. 천용방은 이곳 절벽을 등지고  틀림없이

필사적인 대항을 할 것이니 피차간에 맹렬한 싸움이 벌어질게 분명해!

우리는 이곳에 숨어서 쌍방이 싸움에 지쳐서 기진 맥진한 틈을 노려 비급을 빼앗으면 문제없겠지. 그때 가서 그들이 합세하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대항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조소접은 귀원비급을 뺏는 일에 별관심이 없는지 눈썹을 약간 찌푸렸다.

 

「만일 우리가 싸움터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위급해진 사람을 구출해 주려고 해도

미처 손쓸 틈이 없지 않겠어요?」

 

  그 말에 주약란은 가슴이 선뜩한 무엇을 느꼈다.

그녀가 말한 사람이 누구이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걱정 없어! 그 사람은 이미 오행미종보법에 익숙해 있으니까 ‥‥‥‥

반드시 도옥에게 이긴다고는 장담할 수 없지만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에는 문제없을 거야.」

 

  그래도 조소접은 무척 걱정되는 듯한 표정이었다.

 

「만일 그가 일찍이 회용삼식(廻龍三式)법을 배웠더라면 도옥에게 문제없이 이길 수 있을 텐데!」

 

  주약란은 조소접이 줄 곳 양몽환을 잊지 못하고 마음 쓰는 것을 보자 

적지 않은 걱정이 검은 구름처럼 솟아올랐다.

 

  (그녀는 처음에는 양몽환을 싫어했는데 어떻게 되어 이렇게 갑자기 그에게 관심을

두게 되었을까? 어쩌면 깊은 산중에서 외롭게 살아서 정에 굶주려 그러는 것일까?

하기야 그녀로서는 남성을 알고 대한 것이 양몽환이 처음이어서

그럴 수 있을 런지는 모르지만‥‥

더욱 편모슬하에서 편파적인 교육만 받았으니

세상 물정에 어둡고 보면 이해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저런 여자일수록 한번 정이 들었다 하면 감히 누구도

 말릴 수 없을 텐데 예사롭게 내버려 둘 수만 없지.

하루 속히 그녀와 양몽환을 갈라  놓도록 해야겠구나.

아니면 그대로 둘 다 이성을 잃고 앞길마저 그르칠는 지 알 수 없는 노릇이야.)

 

그녀는 마음속으로만 걱정을 하였지 굳이 입 밖에 내서 말하지 않았다.

사실 주약란 자신도 양몽환을 사랑하고 있었다.

양몽환을 사랑하는 주약란의 깊은 정은 하림 못지않았다.

다만 하림은 천진난만해서 아무 거리낌 없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기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하림은 언제든지 양몽환과는 떨어져 살 수 없다는 것을 말로나 행동으로

솔직하게 드러내었고 그렇다고 수줍어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약란은 천성이 거만한데다가 풍채는 고귀하고 영리하면서도 쌀쌀한 기운이

풍겼고 침착성이 있는지라 함부로 자기 속셈을 밖으로 들어내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그녀는 양몽환이 마약을 먹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 빠진 채 동굴 안에서

이요홍과 부부의 결실을 맺는 것을 본 일이 있었다.

그때 그녀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 듯 쓰리고 아팠다.

분한 생각에 질투심이 치솟아 그만 스스로 목숨까지 끊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워낙 차분한 성격인 데다가 밝은 이성(理性)의 소유자라 얼마 후에는

자기 자신을 달래어 모든 질투와  분노를 사그라뜨릴 수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천기석부로 곧장 돌아와 그의 의복까지 가져다주었던 것이었다.

  얼마 전만 하여도 상처 입은 이요홍을 바라보는 양몽환의 눈이 더없이

안타까움에 젖어 있는 것을 보자 즉시 질투에 못 이겨 이요홍을 죽이려고까지 한 때도

 있었기는 했지만 그녀는 곧 후회하기도 하였다.

오히려 자기 일신의 생명마저 돌보지 않은 위대한 사랑에 감격하고

자기는 깨끗이 물러서리라 결심까지 하였다.

 

차라리 자기는 이루지 못할 사랑에 숨어 울망정 하림과 이요홍 두 여자를

양몽환에게 시중들도록 하여 주어야겠다고 까지 작정하였다.

이럴 즈음에 천만 뜻밖에도 조소접마저 불나비 같이 뛰어들어 양몽환을 사랑하게 되니

주약란에게는 더 할 수 없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막상 조소접에게 양몽환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림은 여전히 스승과 양몽환의 안위(安危)를 걱정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언제나 순진한 웃음을 싱글거리던 그녀의 입가에는 무거운 그림자가 덮쳤을 뿐이었다.

 

조소접도 그녀 나름대로 어떤 수심에 잠겨 있는지 아무 말도 없이 오직 멀리에서

들려오는 싸움 소리에 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세 소녀들은 한결 같이 제각기의 생각에 골똘히 파묻혀 움직일 줄 몰랐다.

그러나 그들 옆에서 시종 세 소녀의 표정을 살펴본 팽수위로서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 꿰뚫어 보듯 알고 있었다.

 

그녀는 이들과 달라 이미 사랑이 무엇인지도 남자가 어떤 것인지도

경험한 바가 있어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인(下人)의 입장에 있는 자기로서는 무어라고 충고할 수도 없었거니와

더욱 간섭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직 속으로만 이들의 모든 것이 좋도록 해결될 것을 빌 따름이었다.

  그들 일행이 모퉁이 가까이 왔을 때 기합소리와 무기가 부딪치는 쇳소리는

더욱 요란하게 들려왔다.

  조소접이 그만 참지 못하고 그중 제일 먼저 몸을 날려 앞으로 날자 하림도 곧 뒤따라 달려갔다.

  주약란은 미리부터 모퉁이에 숨어서 조심스럽게 오대 문파와 천용방의 싸움을 자세히 살핀 후

적당한 시기를 틈타 귀원비급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조소접과 하림이 두려움도 없이 나는 듯이 뛰어 나가자 주약란도 별 수 없이

그 뒤를 따라 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소란하던 싸움판이 쥐죽은 듯 조용했다.

넓은 풀밭에 두 쪽으로 늘어선 군협들은 지금 한참 가쁜 숨들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창란과 막하의 오기 단주와 천중사추는 반월형의 진을 형성하고 있었고 오대문파 고수들은

제각기 손에 번뜩이는 무기들을 들고 있었다.

정세는 일촉즉발의 긴장한 살기가 감도는 숨 막히는 순간이 있다.

이창란은 그때 마침 달려와서 계곡을 막고 서 있는 주약란 일행을 쳐다보자

용두지팡이를 겨누고 호령하였다

 

「노부는 오래 전부터 구대 문파의 무공을 높이 찬양하고 있던 터이오.

그래서 언제고 한번 구대 문파의 고수들을 우리 본방에 초청하여 무술대회를 열 생각이었소이다. 그런데 이 같은 노부의 뜻을 하늘에서도 보살펴 주어 뜻밖에 오늘 이렇게 여러분을 대하니

내 소원을 이룬 것 같기만 하오.

비록 오늘 구대 문파 고수들이 모두 모이지는 못했을망정 그 중에서도 고명하신 다섯과의

고수들을 모시게 되고 보니 원래의 나의 의사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고 생각되오.」

 

  그러고 나서 이창란은 아주 통쾌한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문공태는 이창란이 우렁차게 너털웃음을 터뜨리자 그만 노발대발하고 말았다.

 

「오래전부터 무술계에 떠도는 해천일수의 명성은 들어 왔으나 직접 눈으로 당신의 진정한

무공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는 보질 못했소이다.

어디 오늘이야 말로 이 계곡을 막고 생사의 싸움을 벌려 해천일수의 무공을 내 눈으로

보고야 말겠소이다.

더욱이 곤륜 삼자까지 이 자리에 함께 하여 주었으니

이 싸움은 치열하고 처참할 것은 말할 것 없으니 더욱 좋아졌소이다.

하기야 이 싸움에 말려 든 곤륜 삼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문공태는 곤륜 삼자까지 이 싸움에 말려들자 은근히 의기양양해졌다.

 

마가홍은 천용방의 거동을 날카롭게 살피고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사방의 지형도 유심히 눈여겨보았다.

숲 양 쪽은 깎은 듯한 절벽이 하늘에 치솟아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뒤 쪽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깊은 계곡이 입을 벌리고 도사리며 있었고.

계곡 출구는 불과 삼사 척밖에 더 되지 않았지만 거기에는 또 주약란과 조소접일행이

가로 막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사방을 다시 휘둘러보아야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 나갈 구멍이라고는 없었다.

하다못해 나뭇잎에 의지하여 강을 건널 수 있는 경공비약술이 있다고는 하더라도

양 쪽 절벽을 뛰어 넘을 수는 없는 것이었다.

결국 서로 간에 피를 보지 않고서는 승부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천용방 고수들도 그 점을 깨달았는지 한결 같이 비장한 각오에 얼굴빛이 굳어 있었고

살기마저 시퍼렇게 서려 있었다.

아마도 목숨을 다해 싸울 결심인 것이 역력히 드러나 보였다

  해천일수 이창란의 너털웃음은 이때까지도 끊이지 않고 오히려 더 한층 요란해 지면서

온 계곡을 쩌렁 쩌렁 울리고 있었다.

 

  그러자 마가홍이 드디어 참다못해 기력을 운행하여 호령하고 말았다.

 

「이방주의 내공은 정말 웅후하군!

흥! 그러나 이곳에 모인 고수들은 대부분이 일파의 장문인이라

그 정도의 내공에는 꿈적도 안 한단 말이오.

이 방주께서는 공연히 쓸데없이 효과 없는 내공을 과시하여 위협할 필요는 없다고 보오.」

 

  이창란은 그제야 너털웃음을 멈추면서 맞대꾸했다.

 

「여러분이 모두 일파 장문인이라면 무술계에서 싸우는 규칙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소. 그러나 우리 천용방은 굳이 그 규칙을 고집하지 않겠소.

그러니 여러분은 멋대로 마음대로 우리를 공격해 보시오.

비록 우리는 도적의 무리라고 비방을 받지만 우리 도 당신네 구대 문파를 낡아빠진

짚신짝 정도로 여기니 말이오.

하하하‥‥‥‥ 여하튼 당신네들 오대 문과가 합세하여 동시에 공격해 오 든지

아니면 일대 일 대결로 하든지 여러분 마음대로 선택하시오.

우리 천용방은 당신들의 요구대로 받아 주겠소이다. 하하하‥‥‥」

 

  한편,

 

  마가홍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수중의 보검을 함부로 휘둘러 대었다.

 

「건방진 수작! 그렇다면 우리도 겸손하게 체면만 차리고 예의를 갖출 필요야 없지!

이번 싸움은 다른 싸움과는 달리 귀원비급을 뺏는 것이 목적이다!」

 

  급기야 마가홍은 분노를 참지 못해 돌진하고야 말았다.

그 즉시 문공태는 도일강을 거느리고 뛰어들고 등뢰는 장락과 장화 두 사제를 거느리고

몸을 날렸다.

그와 함께 아미파의 세 장로와 곤륜삼자도 일제히 손에 든 무기를 휘두르며 삽시간에

공세를 펴서 쳐들어갔다.

  오대 문파의 고수들은 애당초부터 자기들과 싸울 상대를 정해 놓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재빠르게 자기가 맡은 상대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창란도 용의주도한 인물이었다.

그가 용두 지팡이로 무슨 신호나 하듯이 공중을 후려치자 일대 변동이 일어났다.

이창란을 중심으로 하고 짜여졌던 대열이 순식간에 변하고 말았다.

즉 천용방 오기 단주들과 천중사추가 서로 엇갈러 자리를 바꾸면서 방어진을 켰고

도옥을 중간에 끼고 둘러 싸버리고 만 것이다.

  무작정하고 자기가 맡은 상대를 노리고 뛰어든 오대 문파의 고수들은 삽시간에

혼란에 빠졌고 자기들끼리 좌충우돌 하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일대 혼전(一大混戰)이 빚어진 것이었다.

 

앞장섰던 마가홍의 기세는 그래도 당당했다.

그는 성난 호랑이처럼 천용방을 뚫고 들어가면서 장검으로 왕한상의 면상을 후려갈기고 있었다.

그러나 왕한상은 그보다 빨리 몸을 뒤틀어 마가홍의 장검을 피했다.

허탕을 치자 느닷없이 쇠부채가 마가홍의 장검을 내려 쳤다.

하마터면 장검을 놓칠 뻔한 마가홍은 식은땀을 흘렸다.

마가홍이 숨을 돌리느라고 잠깐 머뭇거리자 재차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면서

쇠부채가 그의 허리 옆으로 달려들었다.

마가홍은 깜짝 놀라면서 다급한 나머지 오 척이나 후퇴하여 간신히 쇠부채의 사나운

공세를 피했다.

 

  (과연! 천용방의 무공이 강하다고 무술계에 소문이 자자하더니 빈 말은 아니었구나.)

 

하고 새삼스럽게 감탄했다. 그렇다고 도망칠 마가홍도 아니었다.

마가홍은 또 다시 장검을 치켜들면서 천간풍뢰검법(天干風雷劍法)중에서 몇 가지의

비법으로 왕한상을 눌러 보려고 했다.

바로 그 순간 난데없는 그림자가 얼씬거리면서 천용방의 진법(陳法)이 삽시간에

엇바뀌고 호령 소리가 귀청을 찢었다.

 

  바로 막윤이었다.

 

「노부의 한 수 오독신장(五毒神掌)이나 맛보시겠나?」

 

  그 호령 소리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어디서인지 한 줄기의 음산 하면서도 이상하고도

부드러운 소슬 바람이 역한 비린내를 풍기면서 마가홍의 가슴을 향해 찔러 왔다.

  마가홍은 즉시 호흡을 막고 온몸을 강기로 보호한 후 억센 장풍을 내쏘아 막윤의 일장을 받았다.

 

그 순간,

 

마가홍이 내뿜은 장풍과 막윤의 음산한 장풍이 맞부딪치자

펑! 우뢰와 같은 소리와 동시에 마가홍의 몸은 뒤로 튕겨나 뒤뚱거리고 말았다.

또한 마가홍이 내 쏜 장풍에 막윤의 한쪽 팔도 마비되고 말았다.

그들은 곧 피차에 상대방의 무서운 공력에 놀라고 말았다.

 오독수 막윤은 혀를 내둘렀다.

 

  (나의 오독신장은 그 장력이나 독기가 천하무쌍이 아니었던가?

상대방을 튕기는 힘만 하더라도 마가홍 따위는 가랑잎처럼 굴러 떨어뜨릴 정도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것은 어찌된 일인가? 마가홍은 나의 오독장을 맞받았건만 상처 하나 입은 것 없이

까딱도 않으니! 결국 이십 년간 갖은 고생하며 연마한 것이 헛되었단 말인가?

보자 하니 비린내 나는 역한 독에도 중독 되지 않는 모양이지?

과연 무술계 구대문파 중에서도 장문인 고수들은 소문대로 무시할 수 없구나.)

 

하기야 그로서는 마가홍이 호신 강기로 독을 막은 것은 모르고 있었다.

그는 그만 거만했던 자만심과 우월감이 여지없이 깎이고 말았다.

 

한편, 마가홍도 역시 막윤의 일장에 속으로는 크게 놀라고 있었다.

 

 (내가 이십여 년 간을 두문불출하고 고생에 고생을 거듭해 가면서 연마한 무공도 헛것이었구나.

비록 어검술(馭劍術)을 이룩하진 못했다 해도 내공만큼은 매우 정진했으리라고 자부하지

않았던가?

이제 이 같은 고수를 상대해 보니 어림없었구나.

그러고 보니 구대문파와 천용방 고수들은 과연 소문 듣던 대로 무공이 대성한 분들이구나.

우리 점창파가 무술계에서 큰 소리 칠 수는 더욱 어렵겠는데‥‥‥)

 

  마가홍도 그만 기가 죽어서 처음 산을 떠날 때에 그렇게 켰던 웅심이 봄눈이 녹아내리듯이

사그라지고 말았다.

  이런 즈음에 오대문파와 천용방간의 싸움은 불을 뿜으면서 처참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눈앞을 번개같이 스쳐가는 지팡이에서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오싹하게 울렸고 쇠부채의

검은 그림자는 허공에서 어지럽게 춤추었다. 검광은 번갯불처럼 두 눈을 찔렀고 고함소리는

우뢰와같이 계곡을 울렸다.

 

무예제의 쟁쟁한 고수들의 혼전이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간장도 얼어붙는 듯이 싸늘하였다.

오대 문파의 눈부신 공세에도 불구하고 천용방의 방어는 좀 체로 부서지지 않았다.

오히려 천용방의 기묘한 전술로 서로의 위치가 엇바뀌며 달려들 때마다 오대 문과의 공세는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문공태는 쉴 새 없이 우악스러운 공격을 퍼부으면서도 적과 아군의 형세를 세심하게 살피고

있었다.

천용방의 수법은 특이한 점이 있었다.

수시로 위치를 바꾸고 그럴 때마다 상대방도 바뀌었다.

또한 때로는 억세게 공격을 하는가 하면 혹은 진기를 아끼느라고 굳게 방어만 하였다.

 

이것은 틀림없이 구궁기수(九宮奇數)의 변화법임이 틀림없었다.

거기에 비하면 아군은 한 사람이 한 곳만 죽자하고 무작정 공격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기력 소모가 이만 저만 하지 않을 뿐더러 끝내는 지치고 말 것이 분명하였다.

 

만약에 그런 눈치를 천용방이 알아버린다면 그들은 즉시 오대 문파에게 큰 손상을 입히던가

아니면 전광석화 같이 이곳에서 도망치고 말 것이었다.

 

마가홍의 마음은 몹시 조급해졌다. 그렇다고 갑작스럽게 좋은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가홍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안타까움에 혼자 속을 썩일 뿐 누구에게 하소연 할 수도 없었다.

 

사실을 알고 보면 마가홍의 추측도 반은 들어맞는 것이었다.

이창란 자신도 처음 싸울 때는 아무 준비도 없이 오대 문과의 고수들과 싸울 수 없었다.

결국 구궁기수의 변화무쌍한 술수로 천용방의 실력 부족을 보충하고 오대 문파의 고수들을

혼란에 빠뜨렸던 것이었다.

그렇게 싸움을 한참 하다 보니 이창란은 오히려 자신까지 얻게 되었다.

하기야 오대 문파 고수들은 제각기 독특한 무공을 지니고는 있었다.

그러나 자기 막하의 오기단의 단주도 충분히 그들과 겨룰 수 있었다.

더욱 왕한상과 막윤 두 사람의 실력만 해도 상대 방 어느 고수에게도 손색이 없었다.

또한 자기 자신의 적이 될만한 사람도 없어 보였다.

 

이쯤 되고 보니 이창란이 자신을 갖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가 아끼는 유일한 비법인 건원지신공(乾元指神功)을 발휘하면 오대 문파의

목숨을 힘들이지 않고 뺏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창란은 이제 더 이상 오대 문과의 합세한 공격을 무서워하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또 달리 생각하는 바가 있어서 쉽사리 오대 문파 고수들을 상하게 하기는 싫었다.

만일 오대 문파고수에게 상처를 준다면 주약란과 조소접이 그대로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었다.

 

자칫 잘못해서 주약란과 조소접이 오대 문파와 합세한다면 자기들 천용방으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따라서 조소접과 주약란을 무찌를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기 전에는 오대 문파 고수가 합세한

공격을 애써서 격파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양파의 싸움은 더욱 처참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한 격전 중에 느닷없이 이창란은 우렁차게 고함을 지르면서 지팡이로 머리 위에 원을 그렸다. 그와 동시에 구궁기수의 진법은 삽시간에 크게 변동하고 말았다.

 

이창란과 왕한상이 별안간에 앞에 서고 천중사추 중에 대추와 이추 그리고 개비수 최문기가

좌익을 수호하게 되었다.

또한 삼추, 사추와 백보비발 제원동은 우익을 맡아 나서고 막윤과 자모신담 승일청은 뒤로

서는 가 했는데 일제히 적을 휘몰아치면서 질풍처럼 앞으로 뚫고 내달았다.

 

왕한상은 여태껏 구궁기수의 진범에 따르느라고 그의 온갖 재간을 다하지 않고 적당히

막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이창란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 길을 뚫게 되자 폭풍과 같은 위력을 크게 발휘하며

부채를 사납게 휘둘러 대기 시작했다.

온통 하늘에는 부채 그림자로 뒤덮여지고 마는 것 같았다.

찌르고 치고 후려갈기고 내려치면서 그의 몸은 성난 사자와 같이 사방을 휩쓸었다.

 

그 바람에 오대 문파의 고수들도 그 당당한 기세 앞에는 고양이 앞에 놓인 쥐와 같았다.

이창란 역시 용두 지팡이로 하늘을 쳤는가 하면 땅을 내려쳤고 좌측을 후려쳤는가 하면

우측을 찔러 대면서 맹렬한 지팡이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기세는 어찌나 사나운지 금시라도 천지를 집어 삼킬 듯이 사방을 휩쓸고 있었다.

등뢰와 장락, 장화 들은 이러한 이창란의 미쳐 날뛰는 용두 지팡이의 사나운 공세를 막지

못해 애쓰는데 왕한상의 쇠부채까지 곁들이니 꼼짝 없이 뒤로 한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형세를 바라다보던 마가홍의 속은 더 안타깝게 타올랐다.

그 순간에도 등뢰 일행은 시시각각으로 뒤로 밀리기만 하고 있었다.

참다못한 마가홍은 급히 등뢰를 도우려고 하였으나 자기와 싸우고 있는 최문기가

그 눈치를 채고 더욱 악착같이 달라붙는 것이었다.

 

「등형! 잠시만 더 버티시오. 내가 곧 도우겠소.」

 

  급해진 마가홍은 장검을 높이 쳐들면서 연달아 세 수의 절학을 발휘하였다.

삽시간에 칼끝에서 시퍼런 검광이 번쩍 이였다.

최문기도 하는 수 없이 뒤로 한발 물러나고 말았다. 그 틈에 마가홍은 땅을 박차며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동시에 허공에서 다시 한 번 몸을 굴리자 그는 마치 제비 모양으로 공중을 날아갔다.

바로 고연횡비(孤燕橫飛)의 비행술이었다. 그것만도 놀라운데 다시 몸이 땅위에 내려서기도

전에 장검을 번개같이 휘둘러서 이창란의 천영요혈을 찔렀다.

 

이창란은 그때까지도 등뢰를 공박하느라고 마가홍이 달려온 것도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날카로운 검풍이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것을 깨닫고 등뢰 일행을 공격하던

용두지팡이를 휘둘러 마가홍의 머리를 후려 쳤다.

 

그러자 지팡이에서는 바람 가르는 소리가 처절하게 울렸다.

 

번천안 마가홍은 이 싸움 이전에도 이창란의 지팡이 맛을 본적이 있었다.

따라서 그는 그 억센 일장을 정면으로 받지 않고 몸을 뒤돌려 피하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밑으로 처진 장검을 다시 쳐들면서 땅 위에 내려서자마자

뒤로 물러나 뜻밖에 왕한상을 정면에서 공격 하였다.

 

몰리기만 하던 등뢰 일행은 그 틈에나마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다시 기세를 가다듬은 등뢰는 용기백배해서 우렁찬 고함을 지르며 이창란의 공세를 막았다.

한편, 왕한상은 마가홍과 맞붙고 나서야 느끼는 것이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오대 문파가 추대한 지도 인물인 듯하구나.

그렇다면 이놈만 격파해 버리면 오대 문파의 날카로운 공세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왕한상은 그 당장 마가홍만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앞에서 귀찮도록 얼씬거리는 장화, 장학부터 털어 버려야 했다.

 

왕한상은 슬며시 오른손에 공력을 집중한 후 느닷없이 장화에게 낙일채하(落日彩霞)법으로

후려쳤고 오른 다리로 장락을 걷어차면서 두 사람을 한꺼번에 밀어 붙이고 말았다.

 

왕한상은 그제야 정면으로 마가홍에게 내달았다. 그는 왼손에든 쇠부채로 앞가슴을 가리고

또 한 손에 쥔 쇠부채로 마가홍이 후려친 장검을 낚아채면서 연달아 공격을 퍼부었다.

그 바람에 마가홍의 살벌하던 검세는 몰리고 몰려 그만 왕한상의 쇠부채의 공격을 막기에

여념이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왕한상은 이 때를 틈타 왼손의 식, 중(食, 中) 두 손가락을 쏜살같이 내밀며 마가홍의

오른쪽 어깨 운문혈(雲門穴)을 찔렀다.

또한, 오른 다리로는 힘껏 땅을 차며 쳐들어 마가홍의 왼쪽 무릎에 속비혈(속鼻穴)을 걷어찼다.

  그 바람에 마가홍은 그만 질겁했다.

 

 (이 사람의 무공은 과연 군협들의 무공보다 한층 강하구나!)

 

마가홍은 위급한 중에도 역시 냉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도 재빨리 왼손으로 무릎을 노린 쇠부채를 막으며 오른손으로는 왕한상의 지기혈(地機穴)을

찔렀다.

그런 후에야 곧 몸을 돌리면서 왕 한상의 식, 중(食, 中)두 손가락의 공세를 피하면서 거꾸로

왕한상의 결분혈(缺盆穴)을 오른쪽 어깨로 내밀어 부딪쳐 갔다.

 

이 두 사람의 치열한 공방전은 과연 당대 무술계의 쟁쟁한 일류 고수다웠다.

그 동작들은 매우 민첩했고 공격과 반격은 고수들답게 각자의 요혈만을 노리고 있었다.

하기야 왕한상도 마가홍의 반격이 이토록 신속 정확하고 악랄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는 오히려 자기가 위험해지자 다급하게 오른 다리를 비스듬히 쳐들어 상대방 왼손의 일격을

피하였다.

동시에 다시금 다리를 돌려 마가홍의 오른다리를 힘껏 후려 찼다.

그러나 바로 그때 왕한상도 역시 마가홍의 오른쪽 어깨에 왼쪽 어깨를 부딪쳐 각자는 동시에

뒤로 급히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그들은 서로 간에 그만 식은땀을 흘리고 말았다.

 

(큰일 날 뻔 했구나? 정말 자칫 잘못 했다가는 큰일 날 뻔 했어!)

 

마가홍이나 왕한상은 속으로 똑같이 탄복하고 말았다.

이 같은 두 사람의 처절한 싸움이 어찌나 아슬아슬하였던지 이창란이나 등뢰들도

자기들의 싸움은 그만 잊어버리고 넋 빠진 사람들처럼 쳐다보고만 있었다.

왕한상이나 마가홍이 비로소 물러서자 그때서야 그들도 정신을 차리고 이창란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등뢰를 찌르는 것이었다.

 

백의신군 등뢰는 이창란의 갑작스러운 습격에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땅에 엎드려

몸을 굴리면서 위급을 모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창란이 재차 공격을 가하려고 하자 장락과 장화가 쌍방이 달려들어서 간신히

등뢰는 위험을 모면했다.

 

만일 장화와 장락이 뛰어 들지 않고 이창란이 마음먹은 대로 다시 한 번 지팡이로

후려쳤더라면 제 아무리 무공이 깊다고 큰소리치는 등뢰라 해도 박살이 나고야

말았을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등뢰로서는 잃었던 목숨을 다시 얻은 셈이었다.

  

마가홍과 왕한상의 치열한 싸움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장검과 쇠부채의 눈부신 대결이었다. 장검으로 찌르고 들어가면 쇠부채를 올리며

후려쳐 장검에서 불꽃이 튕겼다.

서로 치고 막으며 추호도 양보함이 없었다.

과연 천하에 이름을 떨칠 만큼 그 재간들은 신기했고 놀라왔다.

옆에서 그 싸움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오히려 식은땀을 흘릴 정도였고 두 주먹을 굳게

틀어쥐고 떨 정도였다.

  

한편, 도옥은 내공을 운행하여 얼굴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과연 얼굴의 부은 기가 반이나 사그라져 있었다.

정신도 좀 깨어났는지 사방을 열심히 휘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던 도옥은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 없는지 금환검을 뽑아 들고

뛰어 나가려고 하다가 웬일인지 우뚝 멈추어 서고 말았다.

뜻밖에도 자기극 행동을 지켜보는 조소정과 주약란의 눈과 마주쳤기 때문이었다.

 

  (아차! 내가 만일 싸움터에 나서면 저 여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겠구나!

만약 저 고약하고 무서운 두 여자를 싸움판에 끌어들이면 오히려 큰 화를 입을는지도 모르지.)

 

  이렇게 생각이 미친 도옥은 더 이상 꼼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는 시치밀 쪽 떼고 눈을 감고 기력을 운행 조절 하는 듯 가장하기 까 지 했다.

그러면서도 온 신경은 싸움터의 온갖 상황을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자 양몽환이 지금이라도 당장 싸움터에 뛰어 들어갈 기세였다.

그의 눈에서는 광채가 번쩍거리며 온 몸에서는 뜨거운 정기가 넘쳐나는 것 같이 보였다.

도옥은 그만 속이 뜨끔해 졌다.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내가 억지로 먹게 한 화골소원산은 독 약 중에서도 가장 지독한

효력이 분명한 독약이 아닌가! 비록 사매가 어떤 해독약을 먹였다 할지라도 하루 동안에

저렇게 건강을 회복하고 정신이 뚜렷해질 수가 없을 텐데?‥‥‥)

 

  도옥으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사실 조소접이 준 그 약이 모든 독을 풀어 주었던 것이다.

그 신기한 약은 그녀의 어머니가 반평생 동안 온갖 연구를 거듭하여 만든 비방 약이었다.

그 약재료는 워낙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라 비방을 알고 있더라도 약을 만들기는

매우 어려운 노릇이었다.

취(翠)도 딸 조소접이 장래 대성하기를 원한 나머지 만사를 제치고 수년간이나 공력을

소모해가며 피눈물이 나도록 고심했지만 뜻대로 그 약 재료들을 구할 수는 없었다.

중국에선 필요한 약재 열세 가지의 주요 재료들 중에서 두 가지를 구하지 못하고 열한 가지만을

그나마 고심참담 끝에 구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천기진인이 전해준 약재 중에서 마지막 한 가지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영물(靈物)이었다.

결국은 다른 약으로서 그것을 대용할 도리 밖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약재료는 서른두 가지로 늘어났지만 만들어진 약은 애초의 효력에서 간신히

그 절반 정도의 약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 약의 효과는 기사회생의 효과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비방 약이었다.

 

  마침내 이토록 소중한 약을 복용한 후 얼마 안 있어 양몽환으로서는 기력을 회복하고

운기 조식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쉽사리 싸움판에 뛰어 들지 않을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완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싸움판에 뛰어 들었다가 기력이 미처 발동하지 못하여

상처라도 입게 되면 자기 자신의 체면이 깎이는 것은 둘째 치고 사문의 위엄을 크게

손상시킬 것이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 때문에 여태껏 영단의 선효(仙效)가 완전히 발휘되어 몸과 마음이 경쾌하고 명석해질 때까지

참고 구경만 했던 것이었다.

  양몽환으로서는 이젠 더 두고 볼 수 없었다.

오대 문파의 고수들은 천용방의 날카로운 육박과 돌격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양몽환은 치솟아 오르는 기력을 참지 못하고 우렁차게 고함을 치르며 뛰쳐나가고 말았다.

어느 새 뽑아 들었는지 그의 손에 쥐어진 보검에서는 시퍼런 불꽃이 튀는 듯 했다.

 

이때,

 

천용방은 오대 문파를 밀치고 계곡 입구에서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곳까지 육박해 들어가고 있었다. 이창란은 더 앞으로 밀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주약란과 조소접이 앞을 막고 있으니 그녀들이 두려운지 더 이상 무리해서까지 뚫고

나갈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거짓으로 운기 조식하는 척 하던 도옥이 살며시 눈을 떠 살피자

그때 막 보검을 번쩍이며 뛰어드는 양몽환이 눈에 띄었다.

 

도옥은 얼핏 무엇을 생각했는지 이창란에게 귀띔을 주었다.

 

「스승님, 어떻게 해서든지 저 놈을 생포하십시오.

그 놈만 생포하게 되면 문제없이 저 여자들도 감히 우리에게 손을 쓰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말을 하고 나자 도옥은 아차! 하고 황급히 입을 손으로 막고 말았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다. 곤륜 삼자가 그 말을 들을 줄이야 약삭빠른 도옥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일양자는 그 즉시 맹렬한 공격을 퍼부어 승일청을 격퇴한 후 양몽환에게 크게 소리쳤다.

 

「환이야! 빨리 물러서라!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무술계에서 신분과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야.  너의 실력으로는 감히 맞설 여지가 없어!」

 

그러나 양몽환은 싸움터에 뛰어들어 마음껏 보검을 휘두르며 눈부신 공세를 퍼붓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스승이 물러나라고 소리를 지르니 양몽환으로서는 잠시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싸움에 익숙한 이창란이 그 눈 깜짝할 틈을 놓칠 리 없었다.

삽시간에 이창란의 지팡이는 바람을 휘몰아치면서 등뢰를 한옆으로 몰아세우고

호령 소리와 함께 몸을 공중으로 날렸다.

그 순간 이창란의 몸은 양몽환을 노리고 덮치면서 양몽환의 어깨를 움켜잡으려고

손을 뻗치고 있었다.

크게 놀란 일양자는 급히 서둘러 양몽환을 구하려고 황망히 몸을 날렸다.

그러나 이창란의 동작은 그보다 빨랐다.

이창란의 무지막지한 손은 완전히 양몽환의 어깨를 움켜잡은 듯이 보였다.

일양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도 꼭 잡히는 줄로만 여겼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천만 뜻밖에도 양몽환의 몸은 이창란의 손끝에서 공중으로 뛰어 가볍게 빠져 나가지 않는가?

정말 믿어지지 않는 절기였다.

더욱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어느새 이창란의 등 뒤로 빠져 나간 양몽환은 최문기의 뒷등

봉안혈(風眼穴)을 보검으로 찌르고 들어가기까지 하였다.

 

문공태는 손뼉을 치며 탄복했다.

 

「곤륜문하는 과연 비법한 재간둥이요! 세 도형께서는 저런 절기를 지니고 계시면서

아직 쓰지 않으시니 사심이 너무 많은가 보오.」

 

  문공태는 양몽환이 몸을 슬쩍 돌리는 신법을 매우 오묘 무쌍하게 여겼다.

이창란의 번개 같은 수법을 피했을 뿐더러 천용방 구궁진내까지 쳐들어갔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만한 신법이기도 했다.

 

  (이번 싸움에 나만이 내가 지닌 비법을 다하지 않는 줄 알았더니 웬걸‥‥

나보다 더 엉큼스럽게 모두들 그렇군! 곤륜파도 저런 오묘한 신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쓰지 않으니! 역시 늙은 것들은 능구렁이 같단 말이야!

그러고 보니 이 문하생이 멋모르고 급한 김에 자기 사문의 비밀인 비법을 누설하고 말았군

그래 ‥‥ )

 

  급기야 문공태는 한 가지 계략을 생각했다.

즉 어떻게 하여서든지 곤륜 삼자가 자기들이 지니고 있는 비법을 모조리 털어놓아

천용방과 대결시키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자기는 곤륜파의 비법을 모조리 엿볼 수도

있거니와 자기 실력을 곱게 간직하고 싸움에 힘들이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곤륜 삼자가 어수룩하게 문공태의 계략에 빠질 리 만무했다.

문공태가 여러모로 손을 썼으나 천만의 말씀이었다. 이창란은 자신 만만하게 자기의 절학을

다하여 틀림없이 덮쳤으면서도 그를 잡지 못하자 크게 놀라고 말았다.

급히 뒤돌아보니 양몽환은 그때 벌써 구궁진 깊이 들어가 장검으로 최문기의 뒷등을 겨누고

찌르려는 중이었다.

 

그때까지도 최문기는 깜깜 소식이었다.

수중의 연색삼재추를 휘두르며 문공태와 한참 싸우느라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다 양몽환이 아무 기척 없이 뒷등을 노리고 있을 줄이야 꿈엔들 생각할 여지가

있을 리 만무했다.

반면에 최문기와 마주서서 싸우고 있는 문공태로서는 정면으로 양몽환의 거동을

뚜렷하게 역력히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조금도 그런 눈치를 보이지 않았다.

그는 원래 음침한 사람이었다. 곤륜 삼자에게 여러 번 자기 계략을 위해 꼬여 보았으나

곤륜 삼자가 묵살해 버리고 나자 다시 더 이야기를 못 했었다.

부화가 터진 그는 수중의 청죽장으로 화풀이를 하는지 버썩 힘을 주면서 맹렬히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이 청죽장은 그의 팔십 일 수의 복마장법의 절기이기도 했다.

최문기는 생각지도 못한 억센 공격에 휘말려들어 미처 방비하기에 바빴다.

그때 마침 아미파의 세 장로와 싸우고 있던 막윤이 달려들어 거들어 주었기 망정이지

잠시만 늦었던들 문공태의 손에 죽고 말았을 뻔 하였다.

 

문공태는 워낙 막윤의 오독신장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실수하여 그의 일장을 잘못 받았다가는 큰일이다 싶어 일찌감치 물러서고 말았다.

 

그러자 최문기로서는 문공태에게 혼 줄이 난 뒤라 정신마저 혼란에 빠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의 뒷등을 노리고 있는 양몽환에게는 매우 좋은 기회를 만들어 준 셈이었다.

 

그렇다고 문공태가 처음부터 양몽환을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알고 보면 역시 자기의 음침한 계략을 위해서였다.

만약 최문기가 양몽환에게 상처를 입게 되면 천용방의 분노는 양몽환에게 쓸리지 않겠는가?

그렇게만 되면 자기 뜻대로 곤륜 삼자는 별수 없이 자기들이 숨기는 비법을 다하여

양몽환을 구하려고 천용방과 싸울 것이었다.

결국 문공태는 자기 계략대로 곤륜 삼자의 비법도 엿볼 수 있고 자기의 실력도

보존할 수 있어 일석이조의 이득이 되는 셈이었다.

 

문공태의 그와 같은 음침한 계략도 아랑곳없이 양몽환이 번쩍이는 보검을 쳐들어

최문기의 뒷등 봉안혈을 막 찌르려고 하였다.

 바로 그 순간, 칼끝에서 불꽃이 일고 찢어지는 듯한 쇳소리가 나면서 양몽환의

장검은 튕기고 말았다.

 

최문기의 위급을 구해 준 사람은 바로 도옥이었다.

막상 최문기의 죽음을 목전에서 보고 있던 도옥으로서는 더 참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자 도옥은 금환검을 빼들면서 양몽환의 장검을 후려쳐 그 위급을 막았던 것이었다.

 

곤륜 삼자는 양몽환이 눈 깜작할 사이에 이창란의 덮친 손아귀에서 교묘하게

몸을 피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막혔던 숨통이 뚫린 듯이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옥영자는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환이가 깊이 진중에 쳐들어갔으니 구궁진연쇄전법은 이젠 파괴된 거나 다름없지,

그렇다면 우리가 이 틈에 맹렬한 공격을 가하면 혹시 그들의 전진을 혼란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옥영자는 곧 결딴을 내려 장검을 휘두르며 추혼십이검법을 전개하였다.

순식간에 서릿발 같은 검광은 하늘을 뒤덮었고 위세도 당당하게 진안으로 쳐들어갔다.

 

일양자와 혜진자도 장문인이 혼자 깊이 진안으로 쳐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의 검세도 그 즉시 일변하였고 약속이나 한 것처럼 양측에서 옥영자를 보호하니

세 장검의 위세는 폭풍처럼 휩쓸기 시작했다.

 

급해진 천용방은 구궁기수의 진법을 부랴부랴 변동시키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승일청과 제원동이 서로 위치를 바꾸었고 승일청과 천중 사추의

큰 형과 둘째 형이 한 쪽을 지키고 나섰다.

그래도 그들의 힘으로서는 위세 당당한 곤륜 삼자의 맹공을 막아낼 수가 없어

뒤로 밀리기만 하였다.

밀리면서도 결사적인 반항은 억척스러웠다.

 

그러나 옥영자의 호령이 터졌다.

 

「정말 빈도들의 보검은 사람을 죽일 수 없는 줄 아시오!」

 

동시에 장검이 번쩍 하였다.

그와 함께 피가 온통 사방으로 흩어졌다.

바로 진응(陳應)의 왼 팔이 길게 찢어지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는 비등한 신음 소리를 터뜨리면서 비틀대며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원래 장흠(張欽), 진응(陳應)과 승일청은 곤륜 삼자의 검세에 에워싸여 전법이 흩어져 위험한

고비를 몇 번이나 겪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시종 한 발자국도 후퇴하려고는 안했다.

옥영자도 공연히 사람까지 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막상 그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도 억척스럽게 후퇴를 않자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고는 도저히 진을 돌파할 수 없으므로 부득이 진응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진응이 상처를 입고 후퇴하자 장흠과 승일청은 그 이상 더 지탱할 수 없었다.

 

그럴 즈음에 다시 혜진자의 날카로운 삭풍광소(朔風狂嘯)로 장흠을 후려쳤다.

장흠은 간신히 그 공격을 막기는 했다. 그러나 혜진자는 틈을 주지 않고 재차 공격하였다.

장흠은 어찌나 급하던지 그 만 몸을 돌릴 사이도 없는지라 엉겁결에 땅 위에 몸을 뒹굴랬다.

 

승일청은 왼손에 공력(功力)을 잔뜩 집중 운행한 후 옥영자를 치면서 동시에 오른손에 들었던

구환도(九環刀)로 혜진자를 갈겼다. 그러나 일양자가 어느새 뛰쳐나와 보기 좋게 가로 막고 말았다.

 

승일청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토록 눈 깜작할 사이에 자기의 공격이 이같이 어이없게

허탕 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으니 말이었다.

 

한편, 이창란의 무공도 과연 어마어마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면서 결사적으로 달려 붙는 세 사람의 공세를

여지없이 무찌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양몽환을 눈여겨보고 있기도 하였다.

그로서는 양몽환이 어떤 수로 그토록 힘들이지 않고 경쾌하게 빠른 공격을 피했는지

몹시 궁금해서였다.

 

또 한편, 최문기의 위급을 구해준 도옥은 그 즉시 양몽환과 대적해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양몽환의 실력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있었던 도옥으로서는 그 충격은 더욱 켰다.

 

양몽환의 신법은 상상 밖으로 더욱 기묘하고 날렵했다.

도옥이 한번 마음먹고 후려친 괴이한 검세를 그때마다 힘들이지 않고 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어이없게도 날카롭고 매서운 수로 연달아 반격해 오기가 일쑤였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곤륜 삼자의 활약도 눈부셨다.

 

곤륜 삼자는 그때 벌써 구궁진을 종횡으로 무찌르고 있었다.

문공태와 아미파 세 장로 그리고 다벽금강 도일강은 곤륜 삼자가 온힘을 다해

구궁연쇄 변화를 격파하는 것을 보자 기운이 부적 솟아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력을

기울여 기세 있게 공격을 가해왔다.

그렇게 되자 순식간에 검광은 하늘을 뒤덮었고 그 위세는 노도처럼 휩쓸었다.

결국 막윤과 제원동 그리고 최문기 또한 천중 사추 가운데의 삼추 유혼마기(三醜游魂馬起)와

사추 주방(四醜周邦)들은 전력을 기울여 대항하였지만 미처 걷잡지 못하고 밀리기만 하는

것이 참 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대로 있다가는 얼마 못가 처참하게 패하고 말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 위급한 순간에 이창란이 성난 사자처럼 고함을 지르면서 용두 지팡이를 후려갈기며 달려왔다. 그 장풍 소리는 어찌나 요란스럽던지 귓속까지 울렸다.

 

그 바람에 등뢰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슨 놈의 지팡이가 그래 이같이도 그 위력이 대단하단 말이냐!

과연 애지중지 할만한 용두 지팡이구나! )

 

등뢰는 그만 기가 질려 몸을 반듯하게 눕히고는 일약 팔 척이나 후퇴하고 말았다.

또한 장락, 장화도 꼼짝 못하고 급히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이창란은 일장의 공세로 세 사람을 물리친 후 재차 허공을 뚫고 곤륜 삼자를 향해 덮쳐들었다.

그는 미처 자기 몸이 땅 위에 내리기도 전에 공중에서부터 또 다시 지팡이를 휘두르며

전광석화 같이 곤륜 삼자의 머리에서부터 내려쳤다.

 

이때, 곤륜 삼자는 잠시 후에는 완전히 구궁진을 돌파할 수가 없으리라 여기고

최후의 공세를 취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이창란의 매서운 지팡이의 장풍이 머리 위에서 쏟아지자 당황해서

뒤로 물러나는 도리 밖에는 피할 길이 없었다.

 

세 사람의 무공이 제 아무리 심오하다 할지라도 경쾌한 보검으로는 위세 당당한

이창란의 장풍을 막아 낼 수는 없었다.

 

옥영자는 그 즉시 소리쳤다.

 

「빨리 물러나시오!」

 

그 바람에 세 사람은 똑 같이 몇 장이나 뒤로 뛰어서 물러나고 말았다.

 

이창란은 땅 위에 내리자 그제야 눈을 부릅뜨고 노기가 등등해서 말문을 열었다.

 

「우리 천용방과 곤륜파와는 원수를 맺은 바 없지 않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분은 우리 파의 사람에게 상처까지 입히니 도대체 그 이유가 뭐요?」

 

옥영자가 나서면서 오히려 아니꼽게 대답하였다.

 

「피차가 싸우고 있는 이 판에 간혹 상하기도 할 수 있는 거지 그걸 갖고 될 따지시오.

그런걸 잘 아시고 있을 이방주가 우리에게 따진다면 그래 어쩌겠다는 거요?」

 

그 말에는 은근히 비웃음과 반박이 읽혀 있었다.

 

이창란은 그만 모욕적인 반박과 조소어린 말에 자기의 자존심이 짓밟히자

노발대발 하면서 쏘아 보는 것이었다.

 

「당신의 사형 현도관주는 사리를 분명히 가릴 줄 알고 협간의담(狹肝義膽)은

그야말로 군자를 따를 만 합니다. 그래서 나도 매우 존경하고 있던 처지였었지요.

그런데 상상 밖으로 당신은 그와 정반대로 이렇게 무식할 줄이야 미처 몰랐소.

여보시오! 우리 천용방이 당신 하나쯤 겁내고 그러는 줄 아오?‥‥‥」

 

말을 끝내기가 바쁘게 그는 즉시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손을 번쩍 들어 죽어라하고

억세게 내려쳤다.

 

그 순간!

 

처참한 비명 소리가 들려 왔다.

 

놀랍게도 여위고 긴 장락의 체구가 그의 일장에 여지없이 얻어맞고 비명이 끝나기도 전에

칠팔 척 밖으로 나가동그라지고 말았다. 하기야 장락은 이창란과 곤륜 삼자가 이야기하는

틈을 노려서 살그머니 내색도 없이 이창란의 옆에 까지 다가가 일장을 내려 치려고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런다고 이창란이 곱게 당하고 있을 위인이 아니었다.

비록 곤륜삼자와 말을 하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사방의 형세를 빈틈없이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장락이 가까이 오는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의 간담은 워낙 크고 또한 무예가 쟁쟁한 즉,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었다.

그것도 모르고 장락은 섣불리 다가갔으니 그는 줄 곳 모른 체 하고 있다가 장락이 일장을

내려쳤을 때 비로소 행동했다.

그러나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다만 손만 돌리면서 일격을 가한 것이었다. 그것이 꼭 알맞게 장락이 내려친 장풍과 부딪치자 장락의 몸은 제 힘에 튕겨 칠팔 척 밖으로

떨어지고만 것이었다.

 

곤륜 삼자는 그가 이렇게 웅후한 공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자 얼굴마저 약간 변했다.

 

그러자 해천일수 이창란의 통쾌한 웃음소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들려오는 것이었다.

 

「노부는 종래부터 현도관주를 존경하고 있었소.

그런데 귀파께서 노부의 딸까지 구해 주고‥‥‥」

 

하는 말도 끝나기 전에 날쌔게 달려든 등뢰는 두 주먹을 휘둘러 이창란의 대혈을 강타했다.

 

원래 그는 일장으로 사제 장화가 상하자 화가 치밀어 올라 기력을 운행하고 백보신권을

전개하여 전력을 다해 추격해 온 것이다  이 두 수는 요혈을 찔렀음은 말할 것도 없고

등뢰가 평생의 공력을 집중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이창란의 무공이 강하다 해도 맞받아치거나 피하는 도리 밖에 없었다.

 

순간,

 

이창란은 등뢰의 공격을 맞받아 벽곡장풍으로 후려치며 등뢰에게 지쳐들어 갔다.

그러자 두 개의 맹렬한 장풍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딪치고 말았다.

그와 함께 이창란은 발을 제대로 딛지 못하고 비틀 비틀 뒤로 물러섰고 등뢰는

그와 반대로 처절한 신음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두 바퀴를 거꾸로 돌고는

일장정도 먼 곳에 떨어지며 뒹굴었다.

 

등뢰는 온 몸에 있는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고 입에서는 꾸역꾸역 선지피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오장 육부가 뒤집혀 지는 듯한 괴로움을 간신히 참고 일어나 앉아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기력을 운행 조절했다.

 

한편, 비틀거리는 몸을 바로 잡은 이창란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고 앞으로의 계획을 짰다.

 

 (오늘 오대 문파와는 이미 원수가 되었구나.

이왕 원수가 된 바에는 이 기회에 몇 놈을 깨끗이 죽여 그들의 사기를 없애버릴 수밖에 없자‥‥‥)

 

이렇게 생각한 이창란은 갑자기 살기가 솟는 듯

그 길로 두 지팡이를 휘두르며 조식을 취하고 있는 등뢰에게로 지쳐 들어갔다

 

그때였다.

 

검광이 번쩍이는 장검을 휘두르며 곤륜 삼자가 이창란의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돌변한 사태에 눈썹을 치켜 올린 이창란은 멈칫하며 용두 지팡이를 높이 들었다.

그러자 옥영자가 장검으로 막을 태세를 취하며 한걸음 나섰다.

 

「잠깐! 내 말을 들어 보고 싸우시오.

지금 여러 파의 싸움은 바로 귀원비급 때문에 싸우는 것이오.

이 방주께서 귀원비급만 내놓는다면 우리 곤륜파도 더 이상 귀파와 싸우지 않겠소.」

 

그러자 이창란은 펄쩍 뛰었다.

 

「당신들 곤륜 삼자가 대관절 무슨 권한으로 귀원비급을 내놔라, 말라 하시오?

어림도 없는 말씀!」

 

하고는 들었던 용두 지팡이를 옥영자의 머리 위로 내려쳤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공격이라 미처 막지 못한 옥영자는

후딱 몸을 날려 일장 밖으로 물러났다.

 

「이방주! 손버릇이 고약하군!」

 

  장검을 높이 들어 기봉등교(起鳳騰蛟)의 한 수로 내려치며 옥영자가 달려들자

혜진자도 역시 날쌘 동작으로 한 수 팔방풍우(八方風兩)로 검막을 치며

왼쪽에서부터 달려 들어갔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이방주! 우리가 합세하는 것을 용서하시오.」

 

  크게 소리친 일양자가 도살금전(倒撒金錢)의 한 수를 전개하면서 혜진자의

뒤를 따라 번개 같이 내닫는 것이었다.

 

  지금 곤륜 삼자가 각기 절묘한 수를 전개하는 수법은 모두 추혼십이검법 중에 있는 절기였다.

검법의 날카로움은 물론 주위 일대를 검풍(劍風)으로 채우며 노도같이 밀려 나가는

세 명의 검광은 이창란의 용두 지팡이를 후려치며 달려 나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물샐틈없는 공격에 당황한 이창란은 곤륜파의 분광 검법이 정말 무섭구나,

하고 저윽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아차 실수하면 용두 지팡이는 고사하고 자기의 목까지 달아날 판이었다.

  분통이 터지는 노릇이지만 우선 날아오는 검풍부터 막고 볼 일이었다.

  슬슬 뒷걸음치던 이창란도 필사의 기력으로 용두 지팡이를 휘두르며 호신법을 전개했다.

  그러자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지축을 흔들고 사방으로 불꽃이 튀어 나갔다

그리하여 곤륜 삼자의 공격을 격퇴시킨 이창란은 그들이 잠시 주춤하자

이번에는 도리어 역습으로 지쳐나갔다.

  먼저 왼손을 번쩍 들어 일양자의 가슴을 노려 내려치고 오른손의 용두 지팡이는

허공을 가르며 옥영자의 아랫배를 후려 갈겼다.

그리고 물러서면서 혜진자의 아랫도리를 힘껏 걷어찼다. 그러니까한 번 지쳐 나갔다

물러서는 잠깐 사이에 곤륜 삼자를 이리 치고 저리 갈기고 정신없이 무공을 발휘한 셈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이창란의 역습에 물러난 곤륜 삼자는 기민한 동작으로 좌충우돌 하는 것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창란의 지팡이를 피해 위기를 면한 옥영자는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실 옥영자는 이창란의 지팡이를 피하는 순간,

암암리에 내공을 운행하여 한 칼에 승부를 내려고 벼르던 순간이었다.

그러나 먼저 선수로 공격해 오는 이창란의 지팡이에 속절없이 제압당한 옥영자는

내공을 집중하다 말고 엉겁결에 장검을 휘두르고 말았다.

  그러나 그때 이창란은 뒤로 돌아 서면서 혜진자의 아랫도리를 걷어차고 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러는 한편, 일양자와 혜진자는 이창란의 공격을 받아낸 다음에야 황망히 반격을 가하기는

했지만 선공을 당한 그들의 장풍은 실로 미미하기가 그지없는 장풍이었다.

아무리 고수급의 반격이라 하더라도 선공을 피하면서 반격한 그들의 장풍은 이창란의

번개 같은 공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곤륜 삼자를 일시에 보기 좋게 후려치고 물러나던 이창란은

그들의 반격을 가볍게 막아 내고는 재차 공격해 들어갔다.

잠시의 숨 돌릴 여유도 주지 않고 지팡이를 휘두르는 이창란은 혜진자의 아랫도리를

걷어찼던 발을 빙 돌려 이번에는 옥영자의 허리를 걷어차는 것과 동시에 일양자를

공격했던 왼손이 그대로 옥영자의 신봉혈(神封穴)을 노리고 바람을 일으켰다.

 

단숨에 두 수를 공격해 오는 바람에 궁지에 몰린 옥영자는 이창란의 공격이

주춤하기를 기다려 장검을 휘둘러 한걸음 뒤로 물러서게 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옥영자의 장검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가슴을 펴고 떡 버티고

서는 것이었다.

얼마든지 공격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눈썹을 치켜 올린 이창란은 팔을 뻗쳐 허공을 휘둘렀다.

그러자 한줄기의 장풍이 옥영자의 장검을 후려치고

그 여세로 옥영자의 허리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옥영자의 몸이 폭풍을 만난 일엽편주처럼 어지럽게 비틀거리며

대여섯 걸음이나 뒤로 물러가 간신히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때, 옥영자와 같이 이창란의 발길에 채이고 뒤로 물러섰던 혜진자가

요란한 기합 소리를 내며 장검을 휘둘렀다.

그와 함께 날카로운 검풍과 수천 개의 차가운 검광이 이창란의 머리 위로

소나기 쏟아지듯 했다.

 

옥영자에게 공격을 가하느라고 혜진자에게는 미처 주시하지 못했던

이창란은 몸을 획 돌려 검풍과 검광을 피해 옆으로 비켜서면서 용두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용두 지팡이에서는 혜진자의 검광보다 더 날카로운 장광(杖光)이 하늘을 가리며

사방팔방으로 흩어지는 것이었다.

 

미리 이창란의 반격이 있을 것을 예상하기는 했지만 이토록 놀라운 지팡이의 위력에

혀를 내 두른 혜진자는 즉시 행화춘우(杏花春兩)의 한 수로 이창란의 장풍을 막아냈다.

 

이러는 사이에 주춤했던 옥영자가 다시 장검을 꼬나들고 뒤에서부터 달려들었다.

급히 옥영자를 향하여 돌아서서 지팡이를 휘둘러 옥영자를 격퇴시키면 이번에는

혜진자가 지쳐 들어오는 것이었다.

 

옥영자를 물리치면 혜진자가 달려들고 혜진자를 물리치면 옥영자가 달려들고

이와 같이 번갈아 달려드는 혜진자와 옥영자를 상대로 이창란은 부지런히 몸을 돌려야 했다.

 

사태가 이상하게 벌어져 이창란의 고전이었지만 그의 직위가 한문파의 방주인만큼 무공도

역시 절학이었다.

연이어 교대로 공격해오는 곤륜 삼자를 상대로 이리 치고 저리 치고 좌충우돌하는

이창란이었지만 추호도 패퇴할 기미나 약세(弱勢)에 눌림이 없는 투지만만한 태도였고

날카로운 반격이었다.

 

한편, 계곡 입구를 막고 있는 주약란과 조소접은 강 건너 불구경이 나 하는 것처럼

각 파 고수들의 용쟁호투(龍爭虎鬪)를 태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중에서도 조소접은 금환이랑 도옥의 무공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것은 도옥의 놀라운 무공이 다른 사람에게는 경탄할만한 수법이 되겠지만

귀원비급의 무공을 환하게 알고 있는 조소접으로서는 별로 대수로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조소접이 도옥의 무공을 눈여겨보는 것은 다만 도옥의 괴상하고도 신랄한 수법이

어느 누구의 가르침이고 어디서 배웠을 까 하는 점이었다.

그리고 한가치 이유가 더 있다면 도옥의 괴상한 수법에 양몽환의 신변이 걱정이었다.

그러나 도옥의 공격을 유유히 피하면 그림자 같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양몽환의

신법(神法)을 보자 마음이 놓였다.

 

그러는 한편, 천용방의 왕한상은 곤륜 삼자를 상대로 분전하고 있는 방주 이창란의 싸움이

곧 승부가 나지 않을 것을 직감하고 강철로 만든 부채를 좌우로 흔들면서 끼어들었다.

왕한상의 부채는 혜진자와 일양자를 일시에 몰아붙이는 무서운 바람이었다.

그런데다 이창란의 용두 지팡이가 허공에서 춤을 추며 몰아쳐 오는 것이었다.

왕한상의 부채와 이창란의 지팡이가 합세하여 물밀 듯 덮쳐오자 위기를 당한 혜진자는

일양자의 앞을 가로 막으면서 장검을 바람개비처럼 돌려 그들의 장풍을 사방으로 흩어놓았다.

만일 그들의 공격을 실수라도 하여 맞는 날이면 생명에는 별로 관계가 없지만

팔 하나 떨어져 나가는 것은 예사였다.

그만큼 신랄한 공격을 막아 내는 혜진자도 장검을 휘둘러 막아내기는 하였지만

그 여세로 팔이 뻐근해 지고 잘 움직여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창란은 독용출동(毒龍出洞)의 수를 전개하면서 그림자처럼 따라 붙으며

재차 공격해 오는 것이었다.

 

이때, 일양자는 자기의 위기를 대신 막고 반격을 가하는 혜진자의 희생정신에 저윽이

감복하며 청접점수(?蝶點水)로 왕한상의 부채를 막고 곧이어 이창란의 공격을

격퇴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숨을 한 번 몰아 쉰 다음 장검을 비껴들고 왕한상이 흔드는 부채 아래로 몸을 붙였다.

 

상대인 일양자가 자기 턱 밑으로 바싹 기어들자 당황한 왕한상은 뒤로 급히 물러섰다.

그것도 상대가 몇 걸음 떨어져 없을 경우에 마음을 놓고 공격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턱밑에 바싹 다가서면 별 도리 없이 물러서서 적당한 간격을 만들어야만 하는 것은

비단 왕한상의 경우 뿐 아니라 무술인들이라면 누구나 그런 것쯤은 알고 있는 것이었다.

다급해진 왕한상이 뒤로 물러서자 일양자는 늦추지 않고 바싹 따라가며 왕한상의 공격을

저지시킨 다음 한 걸음 물러서면서 청강장검(靑鋼長劍)과 횡강절두(橫江截斗)의 수를

계속적으로 변화시켜 후려친 다음 뛰어 나오면서 똑 같은 수법으로 이창란을 후려쳤다.

  삽시간에 왕한상과 이창란을 휩쓸고 성큼 물러서 나오자

뒤이어 혜진자와 옥영자가 추혼십이검법을 전개하면서 성난 파도 같이 내달렸다.

금방 전세가 역전되고 몇 걸음씩 물러난 이창란과 왕한상은 슬그머니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분통이 있는 대로 터진 이창란은 도타금종(倒打金鍾)의 수를 전개하면서 용두 지팡이를

휘둘러 지쳐 나오다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리고는 눈썹을 치켜 올리고 일양자를 노려보았다.

 

「현도관주! 정말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우겠다면 사생결단 결정을 맺읍시다.」

 

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지금까지는 장난으로 싸웠단 말인가.

의아하게 생각되는 일양자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싸우다 말고 말을 거는 것은 무슨 속셈일까! 혹시 더 싸우지 말자는 뜻이 아니라면

지금 이때에 무슨 말이 필요한가‥‥‥)

 

  이렇게 생각하던 일양자는 번개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음 ‥‥‥ 자기 딸인 이요홍을 구해준 보답으로 싸움을 사양하는지도 몰라‥‥‥)

 

하는데 뒤에서 난데없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현도관주! 나도 좀 싸워 볼까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던 일양자는 갑자기 고함치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며 획 돌아섰다.

그러자 그곳에는 점창파의 장문인인 마가홍이 질풍 같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마가홍은 밀리서 일양자와 이창란이 싸우는 것을 보고 이 기회에 일양자와 합세하여

이창란을 해치우려는 심산이었다. 그래서 천용방이 죽인 자기 동생의 원수를 갚으려는

마음이 있다.

 

이때, 마가홍의 내심을 짐작한 일양자는 손을 들어 환영한다는 것을 표했다.

 

「마형의 마음이 그러시다면 좋습니다. 더구나 마형은 괄창산에서의 피맺힌 일을

아직 잊지 않았겠죠.」

 

「하‥‥‥ 하‥‥‥ 어찌 잊을 수 있겠소. 오늘 이번 기회에 복수를 해야겠소.」

 

하고는 일양자를 앞서며 이창란에게로 곧장 내달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전세가 아주 불리함을 느낀 이창란은 주위를 급히 둘러보았다.

앞에는 일양자, 그 옆에는 혜진자와 옥영자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고 거기다 마가홍이

질풍같이 달려오고 있는 데는 비록무공이 높은 이창란도 마음이 뜨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되겠구나. 기회를 봐서 도망이라도‥‥)

 

  이렇게 결심한 이창란은 달려드는 마가홍을 피하는 척 하면서 몸을 비스듬히 눕혀

옆에 있는 옥영자의 견정혈(肩幷穴)을 발길로 걷어차며 그들의 포위망을 벗어났다.

그리고는 얼굴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며 크게 대소하는 것이었다.

 

「하‥‥‥ 하‥‥‥ 현도관주! 천용방의 이창란이 무서워서 졸장부들을 모으셨소?

얼마든지 상대해 드리리다. 그럼 약소하지만 한수 헌납하겠소.」

 

하고는 암암리에 건원지신공(乾元指神功)을 운행 조절하며 다시 옥영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여시주께서는 조금도 후회나 원망하지 마시오! 나의 건원지신공을 선사하겠소이다.」

 

  허세를 부리며 위협하자 일양자가 선뜻 나섰다.

 

「노도는 오랫동안 귀형의 건원지신공을 보고자 했소이다.

지금 그 위세를 보게 됨을 영광으로 생각하오. 한 수 부탁드립니다. 사양치 마시요」

 

하고 지지 않고 응수했다.

 

  이 건원지신공은 무술계의 절묘한 절학으로서 손가락의 바람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바람은 아무리 굳고 단단한 금강석이라도 구멍을 뚫을 수 있는 지독한 바람이었다.

이러한 바람을 이창란은 유독 옥영자에게만 선사하겠다는 것이었다.

 

이창란의 자못 위협적인 말에 일양자의 자신 만만한 말은 어느 정도 이창란의 허세를

꺾어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뿐 아니라 일양자는 급히 또 한 자루의 장검을 뽑아 두 자루의 장검으로 가슴

앞에 교차시켜 방비 태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두 자루에서 발산하는 검광은 눈이 부실만큼 싸늘하고도 차가운 빛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었다.

 

이때,

 

이창란은 자기의 딸인 이요홍을 구해준 은혜를 생각하며 현도관주 만큼은 상처를 입히지

않으려고 운행 조절했던 공력을 억제하고 엄숙히 고개를 들었다.

 

「현도관주! 미안하지만 조금 비켜서시오.

당신의 은혜를 생각하면 이 노부가 현도관주를 상하게 하고 싶지 않소이다.」

 

 정중히 피해 주기를 원하는 것이었다.

 

 사실 일양자는 이창란의 건원지신공의 위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더구나 그 당대 무술계의 고수들도 그의 공격을 막아낼 자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다 그 일격을 옥영자에게 가한다면 옥영자의 목숨은 추풍낙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일파의 사제간인 일양자가 같은 파의 장문인인 옥영자를 공격하라고

이창란의 말대로 비켜설 수는 없었다.

비록 죽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파와 명예를 위해 일전을 불사할 각오로 한 걸음 앞에 나섰다.

 

「사양하지 마시고 속히 공격하십시오. 이 빈도가 대항하겠소!」

 

하고 비장한 투지로 우렁차게 소리친 다음이었다.

이때까지 일양자의 뒤에서 이창란을 노리고 있던 옥영자가 일양자를 밀며 앞으로 나섰다.

 

「황공하오. 그 쟁쟁하다는 건원지신공을 내 몸소 체험해 보겠소.

어디 얼마나 훌륭한가 한 번 구경이나 할까요?」

 

「좋소! 내 바라던 바요. 만일 이 노부의 일격을 막아낸다면 두말없이 귀원비급을 주겠소.」

 

하고는 주위를 휘둘러 본 다음 서서히 품속에서 귀원비급을 꺼내는 것 이었다.

 

「여러분! 여러분 중에서 누구든지 이 노부의 손에서 이 귀원비급을 가져갈 수 있다면

우리 천용방은 더 이상 귀원비급 쟁탈전에서 깨끗이 손을 떼겠소.」

 

  말이 떨어지자 각 파의 고수들은 이창란의 손에 들려진 귀원비급을 구경이라도 하려고

우 하고 몰려들었다.

 

그때 고수들을 헤치고 옥영자의 목소리가 터졌다.

 

「모두 비켜요!」

 

소리치며 장검을 높이 들고 이창란에게로 한걸음한걸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창란은 왼손에 들었던 용두 지팡이를 힘껏 땅에 꽂았다.

그 바람에 지팡이는 땅 속으로 반이 푹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지팡이를 땅에 꽃은 이창란은 왼손을 천천히 어깨위로 올렸다.

이제 건원지신공의 무서운 한 수로 자기의 가슴을 뚫기 위한 준비 태세임을 알아챈

옥영자도 자기 일생의 무공을 총출동시켜 온갖 진기를 운행 조절하여 공격을

막을 준비가 이미 다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위기일발의 순간이 무섭게 조용한 침묵을 뚫고 착착 다가오고 있을 바로 그때였다.

 

홀연, 어디선가 이상한 장풍이 살랑 살랑 불어 가는 가 했는데 조용한 침묵을 들고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맞은편 계곡에서 풀썩 먼지가 일어나며 어떤 장정이 허공을 날아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무공이 절묘한 고수들의 경신법이라면 똑바로 선채 팔을 벌리고 날아올 것인데

지금 날아오는 사람은 누운 형태로 빙글 빙글 돌며 날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디 그 뿐인가, 눈이 둥그레져 있는 각 파의 고수들 앞에 철썩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뻣뻣하게 시체로 변하고 말았다.

모두 이 괴이한 사건에 서로 눈만 멀뚱거리는 고수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해천일수

이창란의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터졌다.

 

「자, 이번엔 어느 분이 건원지신공에 흥미가 있소?」

 

「?‥‥‥‥‥‥」

 

 이창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어리둥절하다가 얼마 후에야

시체로 변한 사람을 번갈아 보며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 일양자도 자기 눈앞에서 시체로 변한 사람이 화산파의 다벽금강 도일강이라는

것만 알았지 어느 고수에게 어떻게 맞고 죽었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창란의 무서운 웃음소리를 듣고서야 가슴이 철렁했다.

 

사실,

 

맞은 편 계곡에 몸을 숨기고 귀원비급을 뺏을 목적으로 기회를 노리고 있던 화산파의

다벽금강 도일강은 귀원비급을 들고 있는 이창란을 보자 암암리에 공력을 운행하여 허공을

날아 이창란의 손에서 귀원비급을 채갈 계획으로 몸을 날렸다.

그때 이것을 눈치 챈 이창란이 들고 있던 용두 지팡이를 땅에 꽂고 왼쪽 손을 어깨 위로

올렸던 것이었다.

 

이때만 해도 옥영자 이하 모든 고수들은 이창란의 행동이 옥영자를 겨누는 준비태세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창란의 건원지신공의 날카로운 한 수는 허공을 나는 다벽금강 도일강을 향하여

암암리에 공격을 가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내장이 터지고 몸뚱이가 갈기갈기 찢어진 채 떨어져 죽은 것이었다.

 

이 처참한 광경을 본 고수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대경실색하고 천용방의 오기단주(五旗壇主)들도

아직 보지 못했던 방주 이창란의 절학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들은 원래 방주의 무공이 절학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도대체 어느 정도의 절학인가 하고

의심을 품고 있던 때였다.

그러한 그들에게 도일강을 죽인 건원지신공이야말로 모골이 송연할 따름이었다.

 그와 함께 많은 고수들도 옷이 젖도록 식은땀이 흐른 것은 물론이다.

 

이때,

 

고수들 중에 섞여 있던 문공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정말 사제(師弟)인 도일강이

죽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슬슬 다가오다가 이창란의 부릅뜬 눈과 마주치고는

더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칫 서며 놀라는 시늉을 했다.

참으로 음흉스럽고 대담한 문공태였다

 

문공태가 멈칫 서고 군협들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로 눈치들만 살피자

이창란은 큰 소리로 웃어 제치는 것이었다.

 

「하‥‥‥ 하‥‥‥ 놀란 모양이군.

누구도 더 이 노부의 건원지신공을 맛보고 싶은 사람이 없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할 수 없지. 귀원비급은 내가 가질 수밖에!」

 

하고는 돌아섰다.

그러자 옥영자의 쇳소리가 멍청한 군협들의 정신을 깨우며 날았다.

 

「잠깐! 이 빈도가 벌써부터 건원지신공을 구경하고자 했는데 못 들었소?」

 

「그래? 깜박 잊었었군!」

 

「잊었다구요? 그런 말씀은 지하(地下)에서나 하시고 속히 구경이나 시켜 주시요」

 

「하‥‥‥ 하‥‥‥ 성미가 급하시군. 한 번 죽으면 그만인데!」

 

「흥! 죽음은 한 번이죠. 그러나 먼저 가시도록 해 드릴께요.」

 

「뭐라구? 내가 먼저 보내 주겠소!」 

 

  눈썹이 치켜 올라간 이창란은 슬쩍 왼손을 가슴 앞으로 올렸다.

 

  그때였다.

 

「아빠!」

 

  갑자기 비명을 지르듯 외치며 달려온 사람은 바로 이창란의 딸인 무영녀 이요홍이었다.

이요홍은 머리를 산발하고 비틀거리며 엎어질 듯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러한 이요홍을 바라보는 이창란은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얼굴은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무슨 일이냐!」

 

  그러나 이요홍은 고통을 참는 듯 이창란의 발 앞에 엎어지며 신음 소리를 낼 뿐이었다.

 

「아‥‥‥빠」

 

「속히 말해라! 누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느냐. 내 오늘 살계를 깨고 말았다.

이제 몇 사람 더 죽여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의 짓이냐!」

 

그러는 한편, 군협들 속에서 이창란의 노기어리고 다급해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장화는 돌연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무서운 생각이 한 가지 떠올랐다.

그는 씨익 웃음을 흘렸다.

 

  (옳지, 부녀지간(父女之間)의 정이 저렇다면 저 계집을 사로잡아 인질로 삼아야겠다.

그러면 이창란도 할 수 없이 귀원비급을 내놓겠지, 딸이 더 중하다면!)

 

  여기까지 생각한 장화는 앞뒤도 돌아보지 않고 쓰러져 있는 이요홍에게로 덮쳐들어 갔다.

순간, 이창란의 건원지신공은 한 줄기의 지풍을 일으키며 장화의 가슴으로 칼날처럼 꽂혀

들어갔다.

 

그 바람에 뒤로 벌렁 넘어진 장화는 덮쳤던 이요홍을 안은채 함께 뒹굴고 말았다.

그때 어디선가 차가운 검광이 번쩍하며 이요홍을 잡고 있는 장화의 팔을 댕강 자르고는

이요홍을 안아 냈다.

 

순간,

 

군협들 뿐 아니라 이창란도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얼마 만에야 정신을 차린 군협들은 얼이 빠진 듯 눈만 껌벅거렸다.

순간적으로 이요홍을 장화의 손아귀에서 구해낸 사람은 천용방의 고수가 아닌

곤륜파의 양몽환이었다.

그런데 사태는 이상하게 번져갔다.

양몽환이 헌신적으로 이요홍을 구해내자 문공태가 양몽환에게로 덮쳐드는 것이었다.

이요홍을 품에 안고 있던 양몽환은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안고 있던 이요홍을

이창란에게로 던져 줌과 동시에 급히 몸을 피하는 순간과 양몽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주약란의 손에서 문공태를 향하여 무니주가 허공을 가른 것은 거의 똑 같은 순간이었다.

 그러자 금환(金丸)의 명수(名手)인 문공태는 허공을 가르는 무니주의 날카로운 소리를 듣고는

양몽환을 치려던 청죽장을 급히 회수하여 무니주를 막아 떨어뜨리고 옆으로 물러섰다.

 정말 위기일발,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한편, 양몽환이 던져주는 이요홍을 가볍게 받아 안은 이창란의 등 뒤를 돌아 다시 양몽환을

노리고 달려드는 등뢰를 수취오현(手揮五鉉)으로 쳐버리며 질풍 같이 달려온 주약란은 제비 같이 몸을 날려 엉거주춤 몸을 굽히고 기력을 운행 조절하고 있는 마가홍을 천강지(天墨指)로 찔렀다.

이 번개 같이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에 발이 저린 군협들은 일제히 일장이나 뒤로 쫓기다시피

물러서고 말았다.

 

 그 순간 다시 몸을 돌린 주약란은 양몽환의 옆을 지나면서

 

「당신은 죽으면 안 돼요!」

 

  들릴 듯 말듯 작은 소리로 속삭이고는 이창란을 향하여 날쌔게 움직이던 몸을 세웠다.

 

「이 방주께서는 딸을 부하에게 맡기시오.

  제가 건원지신공을 구경하겠소!」

 

하는 것이었다.

뜻밖에 주약란에게서 도전을 받은 이창란은 한심하다는 듯이 빙긋이 웃으며

이요홍을 내려놓았다.

 

「소저는 아직 죽을 나이가 아닌데‥‥‥ 소원이라면‥‥‥」

 

「그렇다면 이 방주께서는 죽을 때가 되었군요!

훌륭한 건원지신공이나 구경시켜 주신다면 저도 이방주를 더 살게 하지는 않겠어요.」

 

  대담하고도 날카로운 주약란의 대답이었다.

그러자 어린 주약란에게서 모욕적인 말을 들은 이창란은 얼굴을 씰룩거리며 분함을

참지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한 때에 왕한상이 성큼 나섰다.

 

「방주님! 어찌 방주님이 저런 어린 것과 상대하겠습니까?

제가 대신해서 소원을 풀어 주겠습니다.」

 

  그러나 이창란은 고개를 가로 흔들었다.

 

「아니! 주소저의 무공은 가히 적수가 되오.

왕 단주는 내 뒤를 이어 천용방을 이끌어야 할 신분이오. 주소저는 내가 맡겠소.」

 

하고는 주위를 둘러보며 금환이랑 도옥을 부르는 것이었다.

 

「도향주! 도옥은 어디 있느냐?」

 

  그러자 군협 속에서 뛰어 나온 도옥은 이창란 앞에 허리를 굽혔다.

 

「제자는 여기 있습니다.」

 

「음‥‥‥ 그러면.」

 

하고는 이요홍을 가리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너의 사매를 잘 보호해라. 목숨을 다해서 지켜야 한다.」

 

하고 명령을 내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아버지 이창란의 명령이 떨어지자

지금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줄만 알았던 이요홍이 느닷없이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 길로 바람같이 몸을 날려 이창란이 들고 있는 귀원비급을 가로 채는 것이었다.

  이 당돌하고도 돌연한 변화에 이창란은 물론 군협들도 눈이 둥그레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에 멈칫했던 이창란은 팔을 허우적거리며 이요홍에게서

귀원비급을 뺏으려고 허둥거렸다.

 

「미쳤느냐! 속히 내 놓지 못해!」

 

  그러나 이요홍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아빠! 이 귀원비급은 주인에게 돌려줘야 해요.」

 

「뭐라고? 주인이 있다고?」

 

「네, 주인이 있어요. 그런데 사형이 몰래 훔쳤어요!」

 

「도옥이 훔쳤다구? 듣기 싫다. 빨리 내 놓지 않으면 이 지팡이로 죽여 버리겠다!」

 

  이창란은 용두 지팡이를 어깨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자 이요홍은 모든 결심을 한 듯 태연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아빠! 저는 죽어도 좋아요. 어차피 사형 손에 죽을 바에야 아빠 손에 죽겠어요!」

 

하는 말을 마치자마자 이창란이 들고 있는 용두 지팡이를 향해 몸을 던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