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37 장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禪掌劍功>

오늘의 쉼터 2014. 6. 22. 14:31

제 37 장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禪掌劍功>
 

 

  조소접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상처를 치료하는 기재(機材) 중에는 계(戒), 독(毒), 장(掌)등으로 인해

입은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으나

다만 화골소원산(化骨消元散)에 대해서는 간단히 기록된 것을 보면

귀원비급을 같이 쓴 두 노선배님께서도 아마 서장(西藏)의 승려 밀종일파(密宗一派)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던 모양이죠?」

 

「그럼, 치료방법이 없다는 말인가?」

 

「치료하는 방법은 있지만 진귀한 보물을 찾을 길이 없어요.」 

 

「도대체 어떤 진귀한 보물인지 말이나 해보렴.」

 

「그것은 만년 묵은 거북이에요.

그러나 이 세상 어디에서 두 번 다시 만년 묵은 거북을 찾겠어요?」

 

「그럼 만년 묵은 거북 이외는 다른 약으로 대체할 수 없을까?

가령 백운암(白雲巖) 대각사(大覺寺)에 있는 설삼과(雲參菓) 같은 것으로?」

 

「글쎄‥‥‥ 전편(全篇)중 화골소원산에 관해서는 만년 묵은 거북으로만

독을 풀 수 있을 뿐 기타 약은 어떻다는 기록도 없어요.」 

 

이때 양몽환은 미소를 띠며 주약란을 보았다.

 

「너무 걱정할 것 없어요.

도옥이가 나에게 먹인 이 독약은 천용방 근처에 단 세알의 해독약이 있을 뿐입니다.」

 

주약란은 낙심하여 한숨도 크게 쉬지 못했다.

다만 자기보다 더 낙심하였을 양몽환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주약란의 표정은

인자하고 다정한 여인의 표정 그것이었다.

얼마 동안 절망한 듯 하던 주약란은 양몽환에게서

눈을 돌려 스르르 감았다가 다시 뜨는 것이었다.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 화골소원산의 독은 전신의 골격까지 녹인다는 무서운 독이에요.

속히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해요.」

 

「그러나 속수무책인 것을 어쩌죠?」

 

「기왕 괴로움으로 고생하신 몸, 칠일 간만 참으세요,

제가 운남 성의 천용방 근거지로 곧 떠나 약을 구해 오겠어요.

다행히 하늘이 도와주신다면‥‥‥」

 

  그러자 조소접도 따라 나섰다.

 

「언니! 저도 가겠어요.

천용방에 해독약이 있기만 하다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구해 오겠어요.」

 

「동생이 같이 간다면 만무일실(萬無一失)이지.」

 

「언니 저를 너무 추켜세우지 마세요.

비록 귀원비급을 얻었으나 배우진 않았어요.

그래서 도대체 저 자신이 얼마나 운용하여 적을 무찌를 수 있는지는 몰라요.

다만 언니의 힘을 의지하고 힘이 있다 면 보조할 뿐인 걸요.」

 

「아니, 그건 공연한 말이야.

귀원비급에 기록된 무공을 연마 수련한 동생이 비록 권장법(拳掌法)을

배우지 않았다 해도 그것은 사소한 절지(節枝)에 불과해,

동생이 외우고 있는 비급의 전문(全文)을 그대로 운용만 하면 문제없고

그런 점으로 본다면 동생을 따를 무술인이 없을 거야.」

 

「언니의 과분한 칭찬이에요. 실로 저는 두려운 것뿐인데요.」 

 

이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양몽환은 쓰러질 듯한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떨리는 음성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두 분의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지, 저는!」

 

하고는 기어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만큼 허약한 양몽환이었다.

그러자 당황한 주약란은 재빨리 양몽환의 몸을 부축하려고 허겁지겁 손을 뻗었다.

그러나 주약란보다 앞서 손을 뻗은 조소접이 양몽환의 몸을 부축하는 것이었다.

의식적이었던 무의식적 이었던 간에 주약란보다 먼저 부축한 조소접은

무안을 당한 듯 얼굴을 붉히는 주약란에게 양몽환을 안겨 주며 쓸쓸히 웃었다.

 

「곧 쓰러질 것 같아서 제가 부축했어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약란은 더 한번 무안을 당하여 몸 둘 바를 몰라

조소접의 시선을 피해 떠밀듯 안겨주는 양몽환을 그대로 품에 안고 말았다.

주약란의 따뜻하고 포근한 품에 안긴 양몽환은 겨우 들릴 만큼

작은 음성으로 주약란을 불렀다

 

「저는 이요홍이 준 독약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소저의 은혜를 갚지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고는 조소접에게 시선을 옮겼다.

 

「조소저! 무슨 말로 고마움을 표해야 할 지 평생토록 베풀어주신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죽음 앞에서 마지막으로 말하는 유언(遺言) 같이 들려

주약란과 조소접은 가슴이 섬뜩하고 서글퍼지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양몽환의 슬픈 음성을 듣고 있던 조소접은

눈물이 글썽거리는 눈을 들어 양몽환을 바라보았다.

 

「모두 제 잘못이에요.

그래도 원망하지 않으시는군요.

더구나 어찌 보답을 바라겠습니까?」

 

  어느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자기의 본성으로 돌아오듯

조소접의 태도는 너무나 애처롭고 또 부드러웠다.

 

「겸손의 말씀입니다.

어제 일만 해도 제가 친구를 잘못 사귄 불찰인데 어찌 원망하겠습니까?」

 

양몽환은 다시 통증(痛症)이 재발하여 이마에서는 땀이 비 오듯 했다.

아픔을 참는 양몽환의 얼굴은 처절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양몽환의 이마와 목에서 땀이 비 오듯 줄줄 흘러 주약란의 옷까지 땀으로 흥건히 젖게 했다.

이때, 어디서부터 오는 길인지 옷이 함빡 물에 젖고 입술 사이로 피를 흘리며

하림이 엎어지듯 달려왔다.

 

「오빠!」

 

하는 하림의 다급한 외마디 소리에 몽롱한 정신에서 깨어난 양몽환은

급히 주약란의 품에서 빠져 나왔다.

그리고는 달려오는 하림을 향하여 마주 뛰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는 양몽환이 비록 순간적으로

 몸은 지탱했다 하지만 뛸 수는 도저히 없었다.

급한 마음에 뛰려고 하였으나 그 자리에 썩은 기둥이 쓰러지듯 쓰러져 버리는 순간!

물에 젖은 옷자락에서 바람이 일도록 날아 달려온 하림은

그야말로 전광석화같이 무섭고도 날쌘 동작으로 쓰러지려는 양몽환을 끌어안았다.

정말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하림의 전광석화 같은 빠른 발걸음이 갑자기 멈추어질 수는 없었다.

달려오던 힘을 억제하지 못하고 양몽환을 끌어안은 채 하림은

그대로 부웅! 하늘로 떠올라가는 것이었다.

 

「앗!」

 

「아이구!」

 

  주약란과 조소접은 기절초풍하듯 놀라

거의 동시에 비명소리를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로 둥둥 떠가는 양몽환과 하림을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주약란 옆에서 급히 진기를 운행한 조소접은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쏜살같이 쫓아 올라간 조소접은 양몽환과 하림의 몸이 손에 닿는 순간,

두 손을 번쩍 들어 그들의 몸을 한 손에 한사람씩 잡았다.

그리고는 조심조심히 내려왔다.

  땅을 밟는 하림은 얼마나 놀랐는지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보기에도 가엾었다.

얼마동안 마음을 진정시킨 하림은 조소접의 두 손을 꼭 잡고 고개를 숙였다.

 

「언니가 아니었다면 영락없이 절벽에 부딪쳐 죽었을 거예요.

아이구 무서워!」

 

  가슴을 내려 쓸며 눈을 감았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 표정으로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바로 앞에 있는 절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두 목숨이 일시에 끊어질 뻔 하였다.

그러나 조소접의 민첩한 구원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때까지 아슬아슬한 고비에 마음을 조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주약란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하림을 불렀다.

 

「사매! 차후로는 그런 경솔한 행동을 삼가해요. 위험천만이었어!」

 

「언니! 정말 조심하겠어요.」

 

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주약란은 하림을 다시 부르는 것이었다.

 

「사매! 오빠의 목숨이 귀하다고 생각한다면 오빠의 원수를 갚아야지?」

 

  순간, 하림은 양몽환의 몸에서 훅훅 내뿜는

비린내 비슷한 역한 냄새를 맡으며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 속에 빠져있던 중이었다.

  그런데다 주약란의 말이 무슨 깊은 의미라도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귀를 바짝 세웠다.

 

「원수라고요?」

 

「그래, 화골소원산이라는 독약을 먹인 도옥 말이야.」

 

  그러자 의외로 하림은 밝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알겠어요. 저를 오빠에게서 떼어 놓으려고 그러시죠?

그렇지만 저는 안 속아요. 오빠가 죽으면 저도 같이 죽겠어요.」

 

「사매! 무슨 말이야?」

 

하는데 난데없이 이요홍이 나타나며 은방울 굴리듯

낭랑한 음성으로 외치는 것이었다.

 

「여러분? 걱정 말아요. 그분은 절대로 죽지 않아요!」

 

  소리 나는 곳으로 급히 고개를 돌렸던 주약란은 저윽이 놀라며

달려오는 이요홍에게 되물었다.

 

「무어라고요?」

 

  그러나 이요홍은 대답도 없이 양몽환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양몽환을 얼마 동안 바라본 후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죽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하고는 하림을 불렀다.

 

「잠시 후에 생강탕을 먹이고 푹 자게 해요.

그러면 사흘 후에 회복돼 요!」

 

  빠른 소리로 말한 이요홍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로 몸을 돌려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재빨리 이요홍을 막아선 주약란은

그녀가 천용방주의 딸 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부드럽게 말했다.

 

「삼일이라면 잠깐입니다.

그분이 회복하는 것을 보고 가시죠?」

 

  이요홍은 쓸쓸하게 웃고는

주약란의 옷차림을 찬찬히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아름답군요. 옷이‥‥‥

그런데 저에게 옷을 주신 것 감사해요.」

 

  화제를 바꾸는 이요홍은 그야말로 입은 옷이 화려했다.

주약란은 그런 말에는 흥미 없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렸다가 곧 폈다.

 

「감사하다는 말을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냉정하군요. 제가 천한 여자라고 그러시는지는 모르지만‥‥‥」

 

「무슨 말씀이시죠?

오해하고 계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를 천하게 생각한 일은 없어요.

그보다 먼저 양상공을 살려야겠어요.」

 

「그것을 왜 저에게 말씀하시죠?」

 

  돌변한 물음에 일시 당황했던 주약란은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 그것은 다행히 당신의 부친이 천용방주이시기에!

화골소원산 해독약은 천용방에만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는 들은 일 없어요!」

 

  고개를 살랑 살랑 흔드는 이요홍은 정말 요염하기 이를 데 없었다.

더구나 몰라서 머리를 흔드는 것은 더욱 아닌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러자 주약란은 초조한 마음을 억할 수 없었다.

 

「당신이 모른다면 그 누가 알겠어요?

부디 해독약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몰라요!」

 

「정말 모른다면 할 수 없어요.

미안하지만 당신과 해독약을 교환하겠어요!」

 

「뭐라고요?」

 

  순간. 이요홍은 눈썹을 치키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실은 이요홍을 감금해 놓고 천용방주와 담판하여 해독약과

교환하려는 것이 주약란의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그 위협에 수그러질 이요홍은 물론 아니다.

더구나 천용방주의 딸인 이요홍은 무술계에서도

그 이름이 쟁쟁한 천용방주의 체면을 보아 이요홍에게

섣불리 손을 대는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이요홍 역시 무술로서도 남에게 지지 않는 무공을 지니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요홍에게 도전한 주약란은 무공으로서는 겁낼 상대가 아니었다.

그러나 주약란의 머리 속에서는 한가지의 근심이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요홍을 노하게 해서는 시간만 낭비할 뿐

아무소득이 없다는 계산이었다.

 

  (해독약은 구하기 어려운 명약(名藥)이다.

이러한 약을 천용방에서 소홀히 간수할리도 만무한 일이다.

뿐만 아니라 이요홍이 모를 리도 없다. 이요홍이 입을 다물면‥‥‥)

 

  정말 이요홍이 입을 다물고 사태가 교환조건까지 번진다면

사흘이 한달이 될지 그 기간을 예측할 수조차 없었다.

그렇게 된다면 양몽환은 그 동안 죽어서 썩어버릴 기한이었다.

  한편, 해독약과 교환하겠다는 주약란의 말에 이요홍은

분을 참지 못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흥! 교환이라고요? 해보시죠! 얼마든지.」

 

  주약란은 급히 자기의 과격한 말을 사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를 살살 달래서 약을 구해내는 것이 목적인 주약란은 고개를 숙였다.

 

「용서하세요. 제가 너무 경솔했어요.」

 

  웃는 얼굴에 어찌 침을 뱉으랴,

주약란이 머리를 숙이고 사과하자 이요홍은 그제야 노기가 풀리며

평온한 얼굴로 되돌아 왔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쌀쌀하던 태도와는

달리 온순해지는 것이었다.

 

「알겠어요. 그렇지만 이미 해독약을 먹였어요.

사흘 후면 회복될 것인데 구태여 먼 곳까지 가서 약을 구해올 필요는 없어요.」

 

「그렇지만‥‥‥ 사흘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죠?」

 

「믿지 않는군요!」

 

  주약란은 더 이상 이요홍을 붙잡고 있을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이요홍의 도움 없이도 천용방으로 달려갈 결심이 굳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한 이요홍을 마주 대하고 서자 어제 저녁의 해괴한 장면을 생각 하고는

붉어지는 얼굴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잘 알겠어요. 그러면 가세요.」

 

하고는 다시 덧붙였다.

 

「그러나 차후는 그이를 괴롭히지 마세요!」

 

  그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이요홍은 고개를 홱! 돌려 주약란을 노려보았다.

당장 한 수를 내려칠 그런 태세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제하며 스르르 눈을 감고 말았다.

머리 속이 천 갈래 만 갈래로 복잡하고 어지러웠다.

 

  (지금 양몽환이 해독약을 먹은 줄은 모르겠지.

그건 그렇고 나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까.

어느 깊은 산골, 인가(人家)도 인적(人跡)도 없는 곳에서

양몽환과 단 둘이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러면 나는 나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사랑하리라.

그런 방법은 없을까?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하림은 얼마나 애통해 하고 실망할까?

아니 자결할 지도 몰라‥‥‥)

 

  끓어오르는 사랑으로 하여 질투와 개인의 욕심

그리고 양심이 서로 엇갈리는 교차로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에 빠진 이요홍은

수천마리의 독사(毒蛇)가 가슴을 무는 듯 쓰리고 아파 견딜 수 없었다.

이요홍은 옆에 주약란이 서 있다는 것도 잊은 듯 답답한 가슴을 억제하지 못하고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아! 하늘도 무심하군!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까‥‥‥」

 

  방파제가 무너진 바닷물과 같이 쏟아져 흐르는 눈물은 두 볼을 타고 줄줄 흘러내렸다.

 

 이때, 주약란은 미친 사람처럼 외치는 이요홍을 어이없이 바라보다가 어젯밤 일을 생각하고 은연중 동정이 가는 것이었다. 사실처녀의 몸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몰랐다.

「여보세요! 당신의 괴로워하는 마음에 깊이 동정해요. 그러나 하림을 생각한다면 사랑을 포기해야 해요.」

  이요홍은 눈물을 닦으며 쓸쓸한 눈빛으로 주약란을 바라보았다. 그러한 그녀의 표정은 어느 정도 괴로움이 사라지고 마음도 진정된 듯 했다.

「그러나 걱정 마세요. 당신과 하림의 선량한 마음을 상하게 할 마음은 없어요.」

  주약란은 이요홍이 자기와 하림을 함께 포함시켜 말하는 것에 섬뜩해 하며 얼굴을 붉혔다.

「아니, 나는 그렇지 않아요」

  재빨리 부인하는 것이었지만 이요홍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알고 있어요. 당신도 그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주약란은 할 말을 잊었다. 자기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듯한 이요홍의 말에 절로 고개가 수그러졌다. 그러자 이요홍은 계속했다.

「그러나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

「어제 저녁의 일말이에요. 하림에게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러시면 평생토록 감사하겠어요.」

  주약란은 마음이 괴로웠다. 이요홍의 부탁이야 말로 정말 중대한일이라면 같은 여자로서 그보다 더 중대한 일이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무 대답 없이 고개만 숙인 주약란에게서 시선을 돌린 이요홍은 음성을 낮추고 화제를 바꾸어 차근차근히 말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저의 사형인 도옥은 성질이 음흉하고 계략도 많은 사람이라 훔쳐간 귀원비급을 쉽게 내놓지는 않을 거예요. 비록 당신의무공이 강하다 해도 무공으로는 뺏기 힘들어요.」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가 귀원비급을 내놓지 않는다면 그의 생명으로 보상하도록 하겠어요.」

「그러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가 죽는다 해도 귀원비급은 찾을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된다면 그 귀원비급이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어가게 돼요.」

「그렇다면?」

「그것은 결국 이 무술계에 살기(殺氣)의 씨(種予)를 뿌린 결과가 되어 살상(殺傷)의 사태가 벌어지겠죠.」

「그럼 비급을 찾는 방법은?」

「저에게 맡겨 주세요. 삼일 안으로 찾아내겠어요.」

「아! 고마워요!」

  그러나 이요홍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다. 즉, 귀원비급을 찾아주는 대신 어제 저녁의 일을 하림에게 말하지 않는 것으로 교환하려는 뜻이 있다는 것을 주약란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다만 귀원비급을 찾아 주겠다는 것에만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것이었다.

「기다리겠어요. 꼭!」

  그러나 이요홍은 무슨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고 망설이는 것이었다. 그것을 눈치 챈 주약란은

「무슨 말인지 하세요.」

하고 상냥하게 물었다.

「‥‥‥‥」

「힘이 닿는 데까지 돕겠어요. 무슨 말씀인지?」

  그제야 이요홍은 조금 당황하는 빛을 감추며

「아, 아니‥‥‥ 아무 것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다가 생긋이 웃으며

「삼일 후 귀원비급을 돌려 드릴 때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어요.」

하고는 총총히 그 자리를 물러가는 것이었다.

 

  이요홍의 뒷모습이 산모퉁이로 사라지자

비로소 주약란은 몸을 돌려 서서히 양몽환과 하림이 있는 곳으로 갔다.

 

조소접과 네 명의 시녀는 양몽환과 하림을 에워싸고 처량하게 서있고

하림은 하림대로 양몽환의 옆에 앉아서 연방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씻어 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주약란이 양몽환 가까이 다가가자 양몽환은 눈을 가늘게 뜨고

꺼져가는 음성으로 주약란을 부르는 것이었다.

 

「주소저! 그녀는 갔어요?」

 

  주약란은 다정하게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그러나 사흘 후에 돌아오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며칠만 조용히 쉬면 당신은 회복된대요.」

 

  그러자 양몽환은 눈을 크게 뜨며 일어나려다 다시 누웠다.

 

「예? 그럼 죽지 않는다는 말이오?」

 

하고 놀라워하는 물음에 하림이 곧 대답했다.

 

「그럼요. 꼭 회복돼요.」

 

  양몽환은 급히 손을 흔들며 주약란을 불렀다.

 

「주소저! 그러시면 빨리 이소저를 불러 주시오! 빨리!」

 

「안돼요. 벌써 멀리 갔어요.」

 

「아! 그럼 내가 가야지.」

 

  양몽환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주약란은 급히 그의 손을 꼭 잡고 다그쳐 물었다.

 

「왜 그러시죠? 당신의 허약한 몸으로는 안돼요.」

 

「꼭 할 말이 있습니다.」

 

「할 말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사흘 후에 귀원비급을 찾아 가지고 다시 오겠다고 했어요.

그때 말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주약란이 만류하자 하림도 양몽환의 손을 잡으며 애원했다.

 

「제발 가지 말아요.

정말 가시겠다면 상처가 회복된 다음 저하고 같이 가요, 네?」

 

  양몽환은 더 고집을 세우지 못하고 흥분되었던 마음이

차차 안정을 되찾아 그 자리에 앉았다.

  양몽환이 마음을 돌리고 앉자 주약란은 하림에게 속삭였다.

 

「비록 해독약을 먹었다 해도 하루 이틀에 회복되는 것이 아니야.

여기에 이러고 있지 말고 천기석부로 되돌아가는 것이 좋겠어.」 

 

하림은 고개를 끄덕거리고 양몽환을 불렀다.

 

「오빠! 언니가 집으로 가는 것이 좋겠대요. 제가 부축해 드릴게요.」

 

  하림이 부축하여 일으키자 양몽환은 그녀의 손을 가만히 밀치며

 

「혼자 갈 수 있어!」

 

하고는 먼저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순간, 하림은 당황했으나 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자 그 뒤로 주약란과 조소접이 따르고 네 명의 시녀와 삼수나찰 팽수위는

그 다음을 따라갔다.

 

그들이 종운암(聳雲巖)에 도착하기는 그로부터 한 시간 후였다.

 

종운암에서는 싸움이 한창이었다.

처참한 신음소리와 날카로운 고함소리,

그리고 번쩍이는 검광이 온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날카로운 눈초리로 검광이 번쩍이는 싸움판을 면밀히 살핀 주약란은

하림을 돌아보며 나직이 말했다.

 

「너의 사백과 사숙이 모두 모였구나.」

 

  그러나 너무나도 먼지투성이고 많은 사람들이어서

하림으로서는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주약란은 다시 속삭이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무공이 매우 강하군!

내가 가서 교체하여 쉬시도록 해야 되겠는걸!」

 

하고는 몸을 날려 검광(劍光)속으로 사라졌다.

 

주약란이 적진으로 뛰어 들어가자 삼수나찰 팽수위는

어느 사이에 노루 껍질로 만든 장갑을 끼고 독사(毒砂)를 한주먹 쥔 채 주약란의 뒤를 따랐다.

 

왕년에 무술계를 휘몰았던 팽수위는 주약란을 따르게 된 후부터 주인에게 충실했다.

더구나 무공이 쟁쟁할 뿐 아니라 독이 배인 암기를 잘 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녀의 풍부한 경험은 사사건건의 처리에도 그 예민한 두뇌로 척척 처리하여

주약란의 훌륭한 후원자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삼수나찰 팽수위가 뒤따라 달려가자 먼저 적진 속으로 들어간 주약란의

날카로운 외침 소리가 쨍쨍 울렸다.

 

「손들을 멈추시오!」

 

  순간,

 

번쩍이던 검광과 고함 소리는 일시에 사라지고 싸우던 두 파는 각기 한 쪽으로 갈라졌다.

 

이때,

 

곤륜 삼자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쪽으로 비켜서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장검을 들었고 일양자도 장검을 들고 녹색 손잡이의 고검(古劍)을 등에 메고 있었다.

 

그리고 곤륜 삼자가 서있는 곳에서 약 팔 척 가량 되는 곳에는

아미파의 네 장로(四長老) 가운데 초원(超元), 초진(超塵), 초혜(超慧)의 세 장로가

각기 무기를 꼬나 잡고 서 있었다.

 

초원이 쓰는 무기는 은광이 찬란한 계도(戒刀)이고 초진은 두 손으로 동화분을 안고 있었다.

그리고 호혜는 장검을 쥐고 있는 것이었다.

 

두 파가 어울려 싸울 때 주약란은 두 파의 중간에 서서 현문일원강기(玄門一元?氣)를

운행하여 순식간에 육장(六掌)을 잇따라 내려치며 고함을 쳤던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주약란의 무공인 억센 장력(掌力)은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무기를

꼼짝 못하게 막았던 것이었다.

 

아미파의 세 장로는 비록 주약란을 알리 없었지만 불과 이십 여세의 소녀가

내려치는 장력에 저윽이 놀라며 물러서서는 주약란의 거동만 멍청히 살피고 있었다.

 

두 파가 갈라서자 주약란은 먼저 곤륜 삼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여 절하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노 선배님께서는 잠시 쉬십시오. 이 후배가 대신 물리치겠습니다.」

 

하고는 곧 뒤로 돌아 아미파의 세 장로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세 분께서는 어느 사원의 승려이신지는 모르나

저의 종운암에 오신 목적은 무엇인지요?」

 

  주약란의 말이 사람을 무시하는 듯 하여 화가 치민 초원은 냉소를 터뜨렸다.

 

「흥! 못 올 데를 왔다는 말이오.

아무라도 올 수 있는 곳인데 무슨 말을 그 따위로 하오?」

 

  주약란은 미소를 띠며 공손하게 말했다.

 

「옳은 말씀이오.

이 종운암이 장진도로 무술계에 유명해 졌는데 어찌 못을 곳이겠어요.

그러나 공교롭게도 때가 이상한 때이기에 묻는 말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초진이 냉소를 터뜨렸다.

 

「흥! 여보시오! 곤륜 삼자에게는 아무 말도 없고

우리에게만 따지고 달려드는 것은 무슨 이유요?

우리들에게 시비를 걸겠다는 말이오?」

 

  사실 그가 이치를 따지고 대들자 주약란은 얼떨떨해지고 당황했다.

  그러자 일양자가 재빨리 나섰다.

 

「주소저는 아마 세 분의 도인을 모르시는 모양인데 제가 소개하겠소이다.」

 

하며 한걸음 나서는 그의 표정은 담담할 뿐이었다.

 

  어리둥절했던 초원대사는 일양자가 선뜻 나서며 친히 소개까지 해 준다는

 행동에 저윽이 감탄했다.

 

  (과연 현도관주는 비범하군. 비록 대적하여 싸우다가도

우리들을 위해 중재하고 나서다니‥‥‥

지금 나타난 소녀와 퍽 친밀한 사이인가 보군‥‥‥)

 

  일양자는 주소저에게 세 명의 도사를 차례로 소개해 나갔다.

 

「이분은 아미파 네 분 장로님 중의 한 분인 초원대사요,

그리고 바로 그 옆에 계시는 분이 역시 아미파의 초진 대사,

그 옆에 분이 초혜 대사이오.」

 

  세 명의 도사를 일일이 주소저에게 소개시키자 아미파의 세 도사는

함께 합장을 하며 정중히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는 초진이 성큼 나서서 더 한번 합장을 하며 주소저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아무 영문도 모르고 곤륜 삼자가 길을 막으며

장검을 휘두르기에 잠시 승부를 겨루었을 뿐이오.」

 

  자기들은 곤륜 삼자가 달려들기 때문에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변명 이었다.

  그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혜진자는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뭐, 우리들이 달려들었다고?‥‥‥ 적반하장이군!‥‥‥)

 

「여보시오, 대사! 서로 오해해서 싸웠는데 어찌 우리에게만 나쁘다 하시오.」

 

  눈썹을 치켜 올리며 쏘아 붙였다.

 

「흥! 오해라구? 먼저 시비를 걸어온 것이 누군데 오해라 하시오?」

 

  초원 역시 만만치 않다. 당장이라도 한 수 겨룰 태세다.

 

  싸움을 말리려던 주약란은 초원의 눈치가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것을 보자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거만하게 어깨를 흔들며 장검을 옮겨 쥐는 초원을 노려보던 주약란은

아무 소리도 없이 초원의 손목을 덥석 쥐었다.

그리고 몇 번 흔들다 밀어 버리듯 놓았다.

  그 순간, 초원이 갑자기 팔이 떨어지는 듯

심한 통증과 경련을 일으키며 비틀비틀 쓰러지려다 간신히 선 자리는,

 바로 자기가 원래서 있던 자리로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이때, 초혜와 초진은 주약란의 손에서 풀린 초원이 비틀거리며

신음하는 것을 보자 일제히 장검을 꼬나 쥐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슬쩍 올렸다 가만히 내리는 주약란의 손길에 대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찌며 줄줄 땀을 흘리는 것이었고

눈을 치뜨고 부르르 몸을 떠는 것이었다. 참으로 희한한 일에 아닐 수 없었다.

  잠깐 동안에 주약란의 가벼운 손짓으로 무참하게 쓰러져 버린 아미파의

세 도사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래도 명색이 아미파의 장문인들 인데 나이 어린 소녀의 가벼운 손짓으로

엉덩방아를 찧는 대서야 말이나 되는가.

그것도 외딸은 곳에서 당한 봉변이라면 모른다.

곤륜파의 삼자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말똥 구르듯 하고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자

창피함도 창피지만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통곡이라도 해야 후련할 듯싶었다.

얼마 만에 흙을 털고 일어난 세 명의도사는 서로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는

 

「에잇!」

 

  기합을 쓰며 일제히 주약란에게로 덤벼들었다.

 

  갑자기 세 명이 함께 달려들자 주약란은 그 자리에 납작 엎드리고 말았다.

 

순간,

 

질풍같이 빠른 속도로 주약란의 가슴을 겨누고 달려오던 도사들은 갑자기

주약란이 납작 엎드리자 응당 주약란의 몸에 부딪쳐야 했을 몸들이

그만 헛다리를 짚고 삼장이나 쪽 앞으로 내달리고 말았다.

앞으로 엎어질듯 달려가던 대사들은 아차!

무릎을 치며 되돌아서는 순간,

주약란의 별로 강하지도 않은 장풍이 회오리바람처럼 둥글둥글 몰려 밀려갔다.

  급히 되돌아선 대사들은 주약란의 장풍이 밀려오자

일제히 여섯 개의 손바닥을 펴서 가볍게 막기는 했다.

그러나 막았다고 생각했을 때는 뒤로 몇 걸음 비틀거리며 물러가는

몸뚱이를 억제하지 못 하고 입만 딱 벌어지고 말았다.

  원래 그들과 일격을 겨루고 싶지 않았던 주약란은 웬만큼 정신을 빼놓으면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 줄 알았다.

그러나 비틀거리다가도 몸만 바로 서면 또 달려들고 주춤했다가는

또 달려드는 악착같은 그들의 독기(毒氣)에 조금씩 화가 나는 것이었다.

  그런데다 초원으로 말하면 아미파의 장문인 중에서도 무공이

제일 출중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고수였다.

 

그런데 지금 곤륜 삼자가 보는 앞에서 무참히도 조롱을 당한대서야

자다가도 일어나 앉아 이를 갈 판이 아닐 수 없었다.

 

단단히 벼른 초원은 암암리에 기력을 운행하여 조절한 다음

장검을 휘두르며 돌풍처럼 지쳐들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내공이었다.

허공에 원을 그리며 장검이 휘둘러짐과 동시에 왼쪽 손바닥을 확 했다

주먹으로 내려치는 초원의 일격이야 말로 바위도 부수고 남을 힘이었다.

 

순간,

 

미리 예감했던 대로 초원이 기세 있게 달려드는 것을 본 주약란은

허공을 가르는 초원의 장검을 피하는 한편, 억세고 강한 초원의 장풍을 맞받아 쳐서

잠시 허공에 혀 있게 한 다음 두 손바닥을 합해서 힘껏 밀어붙였다.

그러자 원래 억센 초원의 장풍과 주약란의 장풍에 합쳐진 두 개의 장풍은

오던 길을 되돌아 초원을 향하고 질풍같이 내달리는 것이었다.

 

  이때,

 

  (이만하면 내 장풍의 맛을 알겠지‥‥‥)

 

  주약란이 쓰러지는 광경만 기다리고 마음을 놓고 있던 초원은

돌변한 역습에 네 활개를 펴고 나가 뒹굴고 말았다 

자기가 내려친 일장(一掌)에 쓰러질 줄은 정말 몰랐다.

  지금까지 무수한 결투의 경험에서도 이따위 수에 넘어져 본 일은 꿈에도 없던 초원이었다.

한편, 초원과 주약란의 결투를 보고 있던 초혜와 초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맹랑한 노릇이었다.

그래도 네 명의 대사 중에. 제일 고수급인 초원대사가 맥없이 나가떨어지자

초진과 초혜는 눈에 쌍심지가 돋았다.

  화통이 있는 대로 터진 초진은 그 육중한 체구에 꼭 어울리는 거대한 동화분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얼마나 기세 있게 맹렬하게 휘두르는지 그 동화분에 한방 맞기만 하면

어디 가서 매도 제대로 추리지 못할 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그러나 아무리 무술이 강하고 팔 힘이 세다 하지만 한두 번 아니고

계속해서 이삼십 번 흔들어 대고서야 무슨 힘이 더 남았겠는가.

결국 힘이 달려 제풀에 비틀거리며 우왕좌왕 하는 초진을 유유히 바라보며

요리 조리 몸을 피하던 주약란은 맥없이 동화분을 흔들고 있는 초진을

날카롭게 쏘아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더 휘두를 힘이 없는 초진은 자기가 동화분을 휘두르며

끌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동화분의 힘에 자기의 몸이 끌려 다니는 꼴이 되었다.

  바로 이때였다. 힘이 기진하여 비틀거리는 초진의 가슴을 향하고

주약란의 손바닥이 한번 뒤집혔다.

그러자 초진의 쇠퇴한 기력을 염려하며 초조하게 바라보던

초혜의 어깨를 내려치며 초진이 묵중한 동화분과 함께 나가떨어지기는

잠시 후의 일이었다.

물이 말라붙은 논바닥에 개구리가 엎디면 저런 모양일까 싶도록

초진이 쓰러지고 그 밑에 깔린 초원이 다리를 버둥거리는 것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터질 노릇이다.

  순식간에 세 명의 대사가 쓰러지자 곤륜 삼자들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주약란의 놀라운 재주와 무공에 침이 흐를 지경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쓰러졌던 대사들은 차례차례로 머리를 흔들며 일어났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두리번거리던 초원은

아직까지 그대로 버티고 서 있는 주약란을 보고서야 지난 일을 알아채는 듯

경계태세를 갖추며 두어 걸음 물러섰다.

 

  그 순간, 쨍! 하는 주약란의 음성이 고막을 찢었다.

 

「어때요? 아직도 이곳에 온 이유를 사실대로 말하지 않겠어요?」

 

  초원은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자기들에게 승산이 없음을 알아챘다.

 

  더구나 지금까지 겪은 상황이 너무나 분명하게 증명해 주는 것이었다.

할 수 없이 비굴한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초원이었다.

 

「이 노승(老憎)들은 우리들의 원수인 사람을 추격하느라고 이곳까지 들어 왔을 뿐이오.」

하고는 주위에 늘어 서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는 것이었다.

그러던 초원은 그 중에 끼어 있는 양몽환의 얼굴 앞에서 고개가 멈추어 졌다.

그리고는 갑자기 긴장하며 얼굴빛이 변하는 것이었다.

 

  이때,

 

초진과 초혜 역시 똑같은 표정이었다.

그것은 약 두 달 전의 일이었다.

  깊은 밤중에 이요홍을 구해내기 위하여 양몽환은 만불사에 숨어들었다.

천신만고 끝에 이요홍을 구해낸 양몽환은 중들의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불행히도

그들에게 사로잡히는 몸이 되었다.

근 반달동안 그들의 감옥인 석실(石室)에서 죽는 날만 기다리던 어느 날 호위하는

중을 때려눕히고 도망해 오는 데에 성공했다.

  도망해 오던 도중에서 이요홍을 만나 스승 일양자가 만불사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들은 양몽환은 다시 걸음을 되돌려 만불사로 달려갔다.

 

  그러나 양몽환의 앞길이 순탄하고 넓은 대로(大路)일 수만은 없다.

깊은 만불사의 산중에서 홀로 중들을 만난 양몽환은 죽기를 결심하고

혈투를 벌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무술계의 여마귀로 통하는 옥소선자의 도움으로

중들을 깨끗이 처치했지만 옥소선자와 양몽환이 상처 하나 없이 중들을 처치하지는 못했다.

심뢰화상(心雷和尙)에게 얻어맞은 양몽환은 일시 기력마저 쇠퇴하는 중상을 당했고

초범(超凡)대사에게 일격을 당한 옥소선자역시 중상을 면하지는 못했다.

  그때의 결투로 아미파의 손상은 막심했다. 아미파의 쟁쟁한 고수급의 제자 두 명이

목숨을 잃었고 장문인(掌門人) 초범대사도 천용방의 오기단주(五旗壇主)를 이끌고 온

이요홍의 기민한 동작에 걸려 사로 잡혀 천용방으로 끌려갔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아미파의 만불사에서 맹활약한 양몽환을 지금 세 명의대사가 잊을 리는 만무했다.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일시에 몰려옴을 느낀 양몽환은 아직 스승 일양자에게 인사드리지

못 하였음을 깨닫고 즉시 일양자 앞으로 나가 꿇어 엎드리고 머리를 숙였다.

 

「사부님!」

 

  일양자는 갑자기 나타난 양몽환을 놀랜 듯이 굽어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 네가 살아 있었구나!」

 

  감격해 하는 뒤를 이어 하림도 꿇어앉았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못하고 다만 눈물만 흘리는 것이었다.

  그러는 하림의 횐 옷에는 흙과 피가 묻었고 얼굴은 몹시 창백하였다.

  그러자 놀라는 사람은 혜진자였다.

  꿇어앉은 하림을 덥석 껴안은 혜진자는

 

「웬 일이냐! 네 옷에 피가!」

 

  다급히 묻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림은 그대로 꿇어 앉은 채 고개를 흔들며

 

「아무 일도‥‥‥ 혼자 넘어졌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과 하림을 번갈아 보던 혜진자는 가만 히 한숨을 쉴 뿐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혜진자의 머리 속은 이상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양몽환의 뺨에 손자국이 있는 것과 그 뺨이 상당히 부 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하림의 옷에 흙과 피가 묻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둘이서 다툰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서 자세히 물어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때, 일양자는 앞에 꿇어앉은 양몽환을 내려보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할말이 많지만 다음에 하겠다. 가서 두 사숙님을 뵈워라!」

 

  양몽환은 공손히 일양자 사부님 앞을 물러나 혜진자와 옥영자에 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머리를 숙였다.

  여러 가지 생각으로 의아심을 품고 있는 혜진자와 반대로 옥영자는

양몽환을 보자 흥! 냉소하며 외면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 것은 어딘가 모르게 차가운 눈빛이었다.

 

  한편,

 

세 명의 대사를 감시하며 한편으로는 곤륜 삼자의 행동과 양몽환의 거동을

틈틈이 바라보던 주약란과 조소접은 곤륜 삼자에게서 냉대를 받는 듯한

양몽환에게 한없는 연민의 정과 동정을 보내 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군. 왜 스승들까지 냉대할까?)

 

  생각하는 주약란의 귀를 스치는 일양자의 굵은 음성이 있었다.

 

「내 분부 없이 한 걸음도 다른 데로 가지 말라!」

 

  분명히 양몽환에게 하는 소리였고 곧이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는 것은 일양자에게 하는 양몽환의 대답이었다. 

양몽환을 외면한 채로 주약란은 혼자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무슨 일일까? 양몽환이 무슨 잘못이라도 있는 모양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일 때문에 스승들의 냉대와 감시를 받는지

알길 없는 주약란은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주위의 동정을 살필 뿐이었다.

 

  잠시 후,

 

이상하게 변해버린 주위의 분위기를 깨뜨리는 일양자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곧 초원대사를 부르는 것이었다.

 

「대사! 용서 하시오.

우리가 길을 막은 것은 나의 제자가 귀 파에 감금 되었다는 말을 듣고

무슨 일인가를 물으려던 것이었소. 그러나 다행히 지금 돌아왔기에 먼저 용서를 비오.」

 

  정중히 사과하는 일양자의 말을 듣고야 주약란은

스승이 양몽환을 냉대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곤륜파의 제자가 아미파에 감금되었기 때문인가?

혹시 무슨 잘 못을 저지르고 감금되거나 아니면 파의 비밀을 누설할 목적으로‥‥)

 

  이와 같이 주약란은 곤륜파의 스승들이 양몽환을 의심할만한 이유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초혜의 냉소가 터졌다.

 

「하‥‥‥하‥‥‥ 귀파의 제자는 요행히 살아서 돌아 왔지만

우리 아미파의 제자가 두 명씩이나 죽은 것은 어찌하겠소?」

 

  일양자는 눈을 크게 뜨며 놀라운 초혜의 말에 펄쩍 뛴다.

 

「뭐라고요? 제자가 죽었다구.」

 

「그렇소! 모르는 체 하지 마시오.」

 

  양몽환의 행동을 일양자의 지시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일양자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였다.

더구나 자기의 제자가 함부로 살생을 하였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오. 잘못 본 것이 아니요?」

 

「하‥‥‥ 하‥‥ 잘못 보았다면 당신 제자에게 직접 물어 보시오.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일양자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옆에 있는 양몽환에게 물어 볼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사실이냐? 아미파의 제자를 죽였다는 말이?」

 

  양몽환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두 손을 맞잡은 채 일양자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사실 입니다.」

 

「뭐라구?」

 

  일양자는 갑자기 눈을 감았다 뜨는 것이었다.

상상 밖의 대답에 놀랐던 것이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네 명의 승려가 일시에 달려들기에 그만 정신없이 뚫고 나가려다가‥‥‥」

 

  말끝을 흐리자 초혜가 달려 나왔다.

 

「그래도 아니라고 하겠소?

죽은 제자를 내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

한 제자는 앞가슴에서부터 등까지 구멍이 났으며

또한 제자는 옥소선자의 일격으로 천영혈을 맞아 죽었소.

이 원수를 당신은 어떻게 갚으면 되겠소?」

 

  서슬이 시퍼렇게 윽박지르는 초혜의 큰 소리에 비위가 뒤집힌

옥영자가 기어이 눈썹을 치켜 올리고 말았다.

 

「서로 싸우다 죽은 것을 어쩌란 말이요.

원수 갚는다면 우리 곤륜파와 싸우겠다는 말이오?」

 

  그러자 초원이 조금 음성을 낮추며 손을 흔들었다.

 

「아니 잠깐만 내말을 들어 보시오.

귀 파의 제자가 도적놈의 수령인 계집과 함께 우리 만불사에 들어와서 큰 소란을 피웠소.

그러니까 싸움은 귀 파에서 먼저 걸어 왔다는 말이오.」

 

「흥! 우리는 아직 그런 소식을 듣지 못했소.」

 

「듣지 못했으면 내 말을 좀 더 들어 보시고 싸움을 하려거든 결판을 내도록 하시요」

 

「좋소!」

 

「우리 아미파에서는 함부로 사람을 해치지 않소.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감금해 두었다가 귀 파로 보내 귀 파에서

처리하도록 하려고 했소.

그러나 야비하게도 도망치고 말았소.

그래도 우리는 추격하지 않고 그냥 두었는데

다시 또 와서 옥소선자와 함께 만불사에 있는 두 명의 제자를 무참하게 죽였소.

그리고 더욱 천용방과 내통하여 우리파의‥‥‥」

 

  여기까지 떠벌리던 초원은 그 다음 말을 맺지 못하고 우물거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천용방과 내통하여 자기파의 장문인인 초범대사를 납치해 갔다는

말이었으나 일파의 장문인은 얼굴을 붉히고 다음 말을 못하고 말았다.

 

사실,

초범 대사가 천용방에 납치된 것은 극히 비밀에 붙여두고 있었다.

 

만일 이 소문이 퍼진다면 무술계에서 아미파의 위치나 명성은 말이 아니고

존망(存亡)에 관한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천용방에서도  비록 초범 대사를

납치하기는 하였지만 그로 인하여 무술계에 소란을 피울까 염려한 나머지

아미파와 암암리에 중재인을 세워 사건을 해결하려고 은밀히 진행하는 중에 있었다.

 

말을 못하고 얼굴만 붉히는 초원의 표정을 지켜보고 있던 옥영자는

날카로운 눈을 양몽환에게로 돌렸다.

 

「어떠냐? 사실이 그런가?」

 

  양몽환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어차피 해야 할 말인 바에야 주저할 것이 없었다.

 

「어찌 사숙님을 속이겠습니까.」

 

「그럼 사실대로 말 해보라. 속이지 말고!」

 

  양몽환은 입술을 축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일이 발생하게 된 원인은 천용방주의 영애인 이요홍을 구하려다 일어난 일입니다.」

 

  옥영자의 표정은 점점 날카로워졌다.

 

「여자 구하기 위해서 들어갔다는 말인가? 더구나 다른 파의 여자를?」

 

  이때,

 

주약란은 양몽환과 옥영자의 대화를 들으며 마음을 졸였다.

 

  (만일 실언(失言)이라도 해서 양몽환이 벌을 받는다면 어쩌나?‥‥‥

무술계에서 더구나 곤륜파의 계율은 무섭다는데‥‥‥)

 

  양몽환이 무사하기를 비는 주약란은 더 생각하지 않고 옥영자 앞으로 나섰다.

 

「미안합니다만 이 백운협은 저의 거처입니다.

되도록이면 다른 곳으로 옮겨 주십시오.」

 

  어떻게 해서든지 양몽환에게 생각할 여유를 주자는 의미였다.

그러자 삼수나찰 평수위가 주약란을 거들며 나왔다.

 

「한번 말씀드리면 그만입니다. 주소저의 말씀대로 옮겨주십시오.」

 

  그러나 옥영자는 손을 들어 잠깐만 참아 달라는 표시를 하고는

양몽환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서 계속하라는 뜻이다.

 

  순간,

 

양몽환은 주소저가 옥영자의 태도로 노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주약란은 걱정이 가득 찬 눈으로 양몽환을 주시할 뿐 노한 기색은 없었다.

그러한 그녀의 표정은 되도록 무사하기만을 비는 표정이었다.

양몽환은 마음을 놓으며 옥영자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러나 사숙님! 제자가 괄창산에서 돌아오는 도중 네 명의 승려가 연약한 여자를

둘러싸고 희롱하며 싸우고 있기에 의분에 못 이겨 뛰어 들었습니다.」

 

하고는 계속해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는 네 분 승려가 아미파의 장문들인지 모르고 더구나 이요홍과는 친분이 있는

사이기에 서로 화해하기를 권고했습니다.

그런데 승려들은 쓸데없는 간섭을 한다고 반발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파의 누구냐고 물었을 뿐입니다.」

 

「이요홍이 악랄한 수법인 암기(暗氣)로. 우리 제자들을 상하게 하였소.

그래서 추격하는 중인데 무엇이 못마땅하오?」

 

  양몽환은 초혜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제자의 말도 들어 보시오. 그때 제자는 모욕을 당하면서도

이요홍을 놓아 달라고 간청을 했으나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제자를 만불사까지 데리고 가서 장문인을 만나야 한다고 위협했습니다.」

 

「그래서 만불사까지 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만불사에서는 아무 소리 없이 제자와 이요홍을 돌방에 가두기에

제자는 비록 무술은 없었지만 의분을 참지 못해 먼저 이요홍을 내보내고 장검을 휘두르며

나오다 초혜 대사에게 생포되었습니다.」

 

「뭐 생포됐다고? 그러면 어떻게 나왔느냐?」

 

「승려들이 없는 틈을 타서 빠져 나왔습니다.

도망해 나오는 길에 다행히 이요홍을 만나 제자의 사부님이 저를 구하시려고

만불사로 가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음‥‥‥」

 

「그래서 그 길로 다시 만불사로 갔지만 사부님은 만나지 못하고 의외로

옥소선자를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미리 밀약이 되어 있지 않고?」

 

「밀약이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옥소선자와 제자의 사이는 초진 대사께서 친히 보셨습니다.

믿지 못하시겠다면 직접 물어 보셔도 됩니다.」

 

「그럼 그때 천용방 단주들도 만났느냐?」

 

「제자는 본 일도 없습니다.

더구나 옥소선자와 제자는 모두 중상을 입었을 때여서 알 길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옥영자는 여전히 냉랭한 어조로 묻는 것이었다.

 

「거짓말은 아니겠지? 지금 말한 것이 사실인가?」

 

「어찌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옥영자는 양몽환에게서 초원대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대사께서는 어떻게 생각 하시오? 제자의 말이 사실인 것 같으오?」

 

  그러자 초혜가 간사한 표정을 지으며 나섰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오.

어찌 공교롭게 한곳에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

천용방과 옥소선자와 미리 내통하여 복수할 음모를 꾸민 것이 틀림없소.」

 

  이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일양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대사의 말씀은 너무 부당한 것 같소.

우리 제자가 천용방과 내통했는지의 여부는 속단할 수 없는 일이오.

사실 옥소선자가 싸울 때 이 노부도 아미산에 있었소이다.」

 

「나무아미타불! 그럼 왜 만불사에 오시지 않았소?

당신이 오셨더라면 우리 아미파와 곤륜파는 아무 원한도 없었을 것을. 나무아미타불!」

 

「그렇다면 대사의 말씀대로 이 노부가 만불사에 가지 않았다고 아미파와

우리 곤륜파와는 영원히 원한관계를 없앨 수 없소?」

 

「어찌 해소할 길이 없겠소?」

 

「어떻게?」

 

「그것은 간단하오. 곤륜파 제자의 목을 자르면‥‥‥‥」

 

하자 일양자는 실성한 사람처럼 하늘을 향하여 대소하는 것이었다.

 

「허‥‥‥허‥‥ 여보쇼,

대사! 너무 지나치시군. 당신네 아미파 제자의 생명은 아깝지 않소? 그렇게는 못하겠소.」

 

  일양자의 얼굴에는 순간 분노가 이글거리다가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때까지 기침소리도 없던 주약란이 눈썹을 치켜 올렸다.

 

「당신들은 이곳 백운협이 무슨 원수나 찾는 곳인 줄 아는 모양이군요.

곤륜 삼자는 저를 찾아오신 손님이에요.

더 말하지 말고 대사님들은 돌아가 주세요.」

 

  날카롭게 호령했다.

그러자 삼수나찰 팽수위가 주약란의 뒤에서 나오며

독사(毒砂)를 움켜쥔 채 날카롭게 외쳤다.

 

「세 분 대사께서는 일찌감치 돌아가는 것이 편할 것이오.

우리주인께서는 한 번 약속하시면 그만이오!」

 

  과연 무섭고도 의미 깊은 위협이었다.

 

  삼수나찰 쟁수위의 표정이 날카롭지 초원은 초진과 초혜를 돌아보며

 

「흥? 갑시다.」

 

  아니꼬운 듯이 냉소하며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사실 ,

 

삼수나찰의 말이 아니어도 초원은 싸움의 경험이 풍부하였기에 일전(一戰)을 벌려도

승산(勝算)이 없다는 것을 벌써부터 직감하고 있던 터였다.

다만 초진과 초혜가 달려들어 벌통을 쑤실까 염려했던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암암리에 기합 쓰는 소리와 노성어린 고함소리가 산을 타고 들려왔다.

순간, 주약란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요홍 같다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었다.

 

  (웬 일일까? 이요홍의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불길한 예감이 들어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옮기던 주약란은 금방 긴장하는 것이었다.

 

  과연,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 여러 사람이 일시에 나타났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앞서 뛰어가는 사람을 뒤쫓아 가고 있다는 것을 곧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워낙 거리가 멀어 누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이때, 남달리 안광(眼光)이 예민한 조소접의 음성이 바로 주약란의 뒤에서 났다.

 

「언니! 이상해요.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그래! 앞에서 달리는 사람은 이소저지?」

 

  주약란의 물음에 조소접은 고개를 끄덕이며

 

「예, 그래요. 모두 무기를 들었어요.」

 

「무슨 일일까?‥‥‥ 내가 가서 도와주겠어!」

 

하고는 몸을 날려 산봉우리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아미파의 세 대사는 서로 이상한 눈짓을 교환하고는 주약란의 뒤를 쫓는 것이었다.

 

  이때,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던 일양자는 주약란의 신변에 위험을 느끼고 쫓아가는

대사들의 뒤를 바싹 따르자 조소접도 네 명의 시녀를 이끌고 뒤따라 달리는 것이었다.

 

  주약란의 뒤를 급히 쫓아 달렸지만 깊고 험한 산중에서 자취를 감춘 주약란을 찾아

눈을 두리번거리던 대사들은 서쪽을 향하여 달려 나갔다.

이때 조소접의 매서운 고함소리가 대사들의 뒷덜미를 잡았다.

 

「그 자리에 멈춰요!」

 

외치며 왼쪽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뒤따르던 네 명의 시녀가 쏜살같이 뛰어나가 대사들의 앞길을 가로 막는 것이었다. 

갑자기 나는 고함소리와 앞을 가로 막는 시녀들의 놀라운 무공에 흠칫 놀란 초원은

그렇지 않아도 은근히 주약란의 무공을 두려워하던 때라 꼼짝없이 서서는 조소접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조소접이 달려왔다.

 

그러나 초원은 비굴한 웃음을 웃으며,

 

「여 시주께서 무슨 일이라도 있으시오?」

 

하는 것이었다. 조소접은 냉랭한 목소리로

 

「우리 언니께서 가라고 할 때 안 가고 왜 지금 가시오?

잠깐 기다렸다가 언니가 오시면 가시죠!」

 

  차갑기가 이를 데 없는 말이었다.

그러자 어느 틈에 쫓아 왔는지 삼수나찰의 차가운 음성이 조소접의 뒤를 이었다.

 

「백운협까지 왔다가 그냥 가면 섭섭하지 않아요?

우리 주인 언니와 말씀이라도 하시고 가시죠?」

 

  더 분통이 터지게 하는 차가운 말이었다.

완전히 놀림감이 된 셈이었다.

두 여자의 차가운 말에 울화가 치민 초혜는 점점 노기가 충천했다.

 

「필요 없소. 우리는 가야 하겠소!」

 

하고는 장검을 휘둘러 길을 트며 달려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네 명의 시녀들은 그들의 장검을 피해 몸을 피했다가 절묘한 신법인

경공(輕功)으로 허공을 날며 벌 떼같이 대사들의 요혈을 찌르려고 달려들었다.

  비록 장검을 휘둘러 몇 걸음 앞으로 달려 나오기는 했지만

사방팔방에서 협공해 오는 시녀들의 빠른 공격을 막을 재주는 없었다.

더구나 시녀들의 협공을 피하는 방법은 잠시도 쉬지 않고 장검을 휘둘러야만

막을 수 있지만 어찌 쉬지 않고 장검을 돌릴 수 있는가.미치고 또 환장할 노릇이다.

  거의 기운이 쇠진하여 휘두르던 장검을 든 채 멀뚱거리고 서 있는 초혜는

다시 삼수나찰의 독사(毒砂) 앞에서 눈을 감고 말았다.

그러자 팽수위의 부드러운 음성이 들렸다

 

「세 분 대사께서는 경거망동을 삼가시오.

공연히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기 보다는 순순히 말을 듣는 것이 좋을 것이오,」

 

  그제야 초혜는 어깨를 내려뜨리며 칼을 거두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초원과 초진도 눈을 껌벅거리며 조소접을 바라보고 있을 뿐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조소접 일행과 대사 일행이 묵묵히 대치하고 있는 동안에 일양자 일행이 다가오고

곧이어 혜진자와 하림도 모여 들었다.

이때 주위를 살피던 조소접은

 

「앗! 언니가!」

 

  가늘게 외치는 것이었다.

 

  과연 상당히 먼 거리에서 이 쪽으로 달려오는 사람은 분명히 주약란이었다.

그리고 주약란은 가벼운 옷차림을 한 소녀의 손을 잡은 채 달려오는 것이었고

그 뒤로 얼마의 간격을 두고 오륙 명의 거한들이 뒤쫓아 오는 것이 보였다.

일양자는 급히 보검을 뽑아 들며 힘 있게 외쳤다.

 

「우리 곤륜파는 주소저의 은혜를 수없이 받았다.

이 기회에 은혜를 보답하여 만분의 일이라도 갚는다면!」

 

하고 굳게 입을 다물자 혜진자가 장검을 뽑아 들며 앞으로 나섰다.

 

「옳습니다. 더구나 저는 주소저의 치료로 목숨을 건진 몸, 이 기회에 은혜를 갚겠어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주약란에 대한 혜진자의 속셈은 달랐다.

그것은 주약란의 출현으로 양몽환을 사랑하는 하림의 가슴에 실의(失意)의 상처를 남길까

걱정한 나머지 주약란을 증오하던 혜진자였다.

그만큼하림을 아끼고 사랑해 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남녀의 정(情)에 관한 것일 뿐 생명을 구해준 은혜는 은혜대로

혜진자의 가슴 깊이 새겨져 있는 고마움이었다.

서로 은혜를 보답코자 장검을 비껴 잡은 일양자와 혜진자는 달려오는 주약란을

마주 바라보며 힘 있게 달려 나갔다.

한편, 비록 주약란의 경공이 비범하다 해도 지칠 대로 지친 이요홍을 부축하며

달리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더구나 뒤에서 쫓아오는 사람들은 명색이 당당한 사나이,

그러나 그 뿐인가. 끌리다시피 뛰어오던 이요홍이 발을 외로 꼬며 넘어지고 말았다.

순간, 허공을 가르는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며 수십 개의 금환(金丸)이 주약란의 등을 향하여

사정없이 날아오는 것이었다.

  이때, 재빨리 몸을 피한 주약란은 왼손을 번쩍 올리며 손바닥을 쫙 폈다.

그러자 수십 개의 무니주(牟尼珠)가 하늘을 가르며 날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곧이어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진동하며 우수수 낙엽 지듯 날아오던

금환이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나 괴한들은 추적을 계속하여 어느덧 주약란을 에워싸는 것이었다.

그러자 일양자의 벽력같은 소리가 괴한들의 무리 속으로 떨어 졌다.

 

「이 무뢰한들아! 무술계의 규칙을 어기고 많은 사람이 한 사람을 해치려 하는가?」

 

외치며 장검을 휘둘렀다. 그때 삼수나찰 팽수위가 일양자를 앞질러 뛰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한 움큼의 독사(毒砂)를 뿌렸다. 한번 팽수위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간 독사는

허공을 가르며 괴한들의 머리 위에 빛발처럼 떨어지는 것이었다.

그러자 수백 개의 쇠붙이가 밝은 하늘을 가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하늘을 가리며 사방으로 떨어지던 팽수위의 독사는 아래로부터 괴한들의

강한 장풍에 하늘로 다시 날아 이번에는 팽수위를 향하여 날아오는 것이었다.

  기절초풍하듯 놀란 팽수위는 재빨리 뒤로 몸을 날리며 일양자 일행에게 외쳤다.

 

「앗! 빨리 뒤로 물러나시오!」

 

뒤로 물러서던 팽수위는 암암리에 기력을 조정하고 두 손을 높이 들었다.

그 순간,

 

  <펑!>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오던 독사도 그대로 허공에서 장풍을 맞아

또 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때,

 

일양자는 장검을 두 손으로 단단히 쥐고 앞서 내달리는 조소접의 뒤를 바싹 따랐다.

이윽고 조소접의 눈썹이 치켜 오르며 대반약현공(大般若玄功)이 괴한들의 가슴을 향하여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팽수위의 강력한 장풍에 부딪쳐 우수수 떨어지던 독사의 쇠붙이가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땅 위를 살 살 날아오던 길을 되돌아섰다.

놀라운 일이었다.

원래 조소접의 대반약현공은 조소접 특유의 수법이었다.

강한 장풍을 낼 때와 같이 두 손을 하늘 높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만 젖혔다 잦혔다 하면 그만인 것이다.

 

조소접의 절묘한 무공에 일양자뿐 아니라 아미파의 세 대사도 눈을 크게 뜬 채 경탄할 뿐이었다.

실로 입이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 서슬에 뒤들아 달려오던 괴한들은 한마장이나 뒤로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다.

독사에 쫓겨 뒤로 물러난 괴한들은 잠시 사태를 관망한 다음 일제히 고함을 지르며

두 손을 번쩍 들어 일양자 일행을 향하고 휘둘렀다.

 

그 순간,

 

요란한 소리가 터지며 몇 개의 강한 장풍이 한데 합쳐 날아오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도 같고 폭포물이 쏟아지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러나 조소접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선채 가볍게 손을 들어

장풍을 막아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불어오던 장풍은 조소접의 저지에 방향이 바뀌어져 이번에는

옆으로 빠져 울창한 소나무 숲을 공격하게 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몇 백 년 묵은 노송(老松)들이 허깨비처럼 쓰러져 버리는 것이었다.

  더구나 조소접의 절묘한 내공은 아무리 가벼운 동작의 움직임이라도

그 위력은 굉장하여 임(任), 독(督)의 두 맥을 뚫고도 감응(感應)이 대단하였다. 

무공이 강한 고수들은 사생결단(死生決斷)의 위기가 아니면 절대로 내공의 진력을

쓰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것은 꼭 결과가 죽음으로 끝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서로 상대방이 내공의 진력으로 대항한다면 아무리 한 쪽이 양보한다 해도

상대방이 내공의 진력을 멈추지 않는 이상 먼저 멈추는 사람이 희생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금기(禁忌)의 무술이었다.

이와 같은 내공을 꺼려하는 조소접은 원래 상대방을 상하지 않으려던 결심대로

집중시켰던 진력을 그냥 흩어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닥쳐오는 독사(毒砂)는 힘없이 흩어져 버리고 상대방은 훌훌히 도망쳐 가고 말았다.

 

후퇴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양몽환은 그들이 누구라는 것을 알아내고 있었다.

맨 가운데 있는 사람이 화산파의 장문인인 문공태 그리고 그 옆에는 문공태의 사제인

도일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설산파의 장문인인 등뢰 옆에 유달리 큰 거한이 키가 얼마나 큰지 등뢰의 작은

키가 더 작게 보였다.

 

한편, 일양자는 도포 차림에 장검을 메고 있는 노인을 보고 저윽이 놀라워했다.

 

  (무술계에서 은퇴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 괄창산에 나타났는가?)

 

  괴한들이 물러가자 주약란은 이요홍을 부축하며 일양자 일행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바로 그때였다.

무심코 부축되어 오는 이요홍을 향하여 뛰어 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초혜였다

 

그것은 이요홍 때문에 아미파의 초범 대사가 천용방으로 납치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속으로 복수를 노리던 그들로서는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