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장 천하제일은 누구? <分光劍法>
철담(鐵膽)이 휘몰아쳐 오는 기세는 매우 맹렬하였다.
위험을 느낀 주약란은 천근추신법(千斤墜身法)으로 앞으로 나는 몸을 재빨리 떨어뜨렸다.
그러자 주약란을 박살내려던 자모담(子母膽)은 그만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몸을 스치고 말았다.
또 한편에서는 오독수 막윤과 자모신담 승일청 그리고 백보비발 제원동이
재빨리 이창란의 앞을 가로 막았다. 뒤이어 천중사추도 달려 왔다.
왕한상은 쇠부채를 펼쳐들고 눈을 부릅떴고 최문기는 허리에서
연색삼재추(軟索三才鎚)를 꺼내 손에 쥐면서 핏발이 벌겋게 선 눈망울을 굴리며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주약란으로서는 지난날 아미산 와호령에서 잠시 동안이나마 이창란과 서로
특이한 무공으로서 맞싸워본 경험이 있었다.
주약란은 그 당시의 경험으로 이창란의 비범한 무공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었다.
어제 저녁만 해도 주약란은 천용방의 몇 단주와 싸웠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들의 무공은 무척 강하였다.
개개인마다 몇 가지씩의 독특한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천용방 일파의 무공은 실로 얕잡아 볼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지금 그녀는 어검술로 적을 습격하다 보니 진력이 매우 소모되어 있었다.
그 몸으로는 도저히 필승의 자신이 서지 않았다.
문공태, 마가홍, 등뢰들은 주약란과는 달리 공력을 충분히 운행하여
완전한 준비를 하고 있는 처지였었다.
그러나 그들은 음침하고 또 약삭빠른 계략이 있는 자들이라 선뜻 나서지는 않았다.
다섯 깃발의 단주들의 무공이 모두가 쟁쟁함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꿍꿍이속으로는 조소접이나 주약란이 천용방과 결사적인 결투를 벌여서
두 쪽이 기진맥진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싸움을 안 하고 어부지리를 얻어 한숨에 귀원비급을 뺏을
궁리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사태는 매우 긴장됐으나 그 누구도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먼저 손을 쓰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때,
느닷없이 우렁찬 호령 소리가 고요함을 깨뜨리고 쩌렁쩌렁 울려왔다.
군협들은 제각기 놀란 얼굴로 쳐다봤다.
그곳에는 팽수위가 이요홍을 업고 곤륜 삼자와 아미파의 세 장로와
부지런히 달려오고 있었다.
아미파 세 장로는 왕한상, 제원동, 승일청을 보자
그만 치솟아 오르는 분통을 참을 수 없어 대갈 일성하면서 대뜸 달려들었다.
초원은 오른손의 장검을 휘두르며 무작정 왕한상을 향해 후려쳤고
초진은 동화분을 빙빙 휘돌려 매서운 바람은 삽시간에 천지를 휩쓸었다.
그리고는 자모신담 승일청에게 성난 호랑이같이 덮쳐들었다.
그의 분노는 한층 심했다. 지난 번 아미산에서 승일청의 자모신담의 강탄(강탄)
다섯 알에 허벅다리를 얻어맞고 중상을 입은 일이 있었다.
그 상처는 고심참담 며칠을 치료하고서야 비로소 회복되었었다.
그는 그때의 분함을 잊을 길이 없었다.
그때의 복수를 하기 위한 원한에 사무친 공격은 무척 맹렬했고
인정사정 볼 나위가 없었다.
초진의 공세는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해서 미처 맞싸워 볼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동화분은 사방팔방을 휩쓸었고 그 일격은 바위더미도 산산이 부술 것만 같았다.
승일청은 그만 그 기세에 눌려 몸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급한 김에 장검을 휘둘러 초진의 허리를 내려쳤다.
「쨍그랑!」
불꽃이 튀고 찢는 듯한 쇳소리가 귓속을 때렸다.
장검과 동화분은 서로 튕기면서 공중으로 날아갔다.
실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서로 우열을 다툴 수 없는 싸움이라 두 사람은 똑같이 뒤로 물러났다.
한편, 제원동을 공격하고 있는 초혜의 활약도 눈부셨다.
광풍백뢰의 기묘한 수법으로 숨 돌릴 사이도 주지 않고 연달아 몰아치고 있었다.
상처 입은 팔이 완전치 못한 제원동은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선수를 빼앗겨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반격이란 생각지도 못해보고 줄곧 몸을 보호하기에만 진땀을 빼고 있었다.
초진과 왕한상의 싸움도 한참 백중지세에 있었다.
서로가 지니고 있는 기묘하고 독특한 수법들은 서로 엇갈렸고
그 당장 승부를 가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창란은 주약란과 조소접이 가장 두려운 존재라 감히 도울 수 없었다.
세 쌍 여섯 사람의 무공은 여러모로 비슷했다.
계속 싸운다면 이백 수를 겨루어도 승부가 나지 않을성싶었다.
이창란은 날카롭게 일갈했다.
「손들을 멈추시오!」
그 호령 소리는 깊은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
모든 사람이 깜짝 놀랄 만큼 우렁차고 억센 것이었다.
그 즉시 천용방의 세 단주 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뒤로 물러나면서도 날카로운
최후의 일격을 가하였다.
반면에 아미파의 세 장로들도 가슴 속에 사무친 원한이 맹렬했던
일장 결투로 많이 누그러졌다.
더 이상 싸워 보아야 별 성과가 없을 것으로 여겼다.
그러니 그들도 군말 없이 이창란의 고함소리에 물러났다.
고함을 지른 이창란은 주위의 군협들을 도도하게 훑어보았다.
「하하하‥‥‥ 하하하‥‥」
손을 멎게 한 이창란은 거침없이 한바탕 웃어 제쳤다.
그 웃음소리는 호령소리와 마찬가지로 마치 용이 우는 듯 온 산에 메아리 쳤다.
그러자 문공태는 그만 노기를 품고 진기를 집중하며 외쳤다.
「이 방주! 뭐가 우스워서 그토록 방약무인하게 웃는단 말이오.
오늘 군협이 운집한 이 자리에서 귀원비급을 가진 채 무사히 떠날 것 같소?」
그는 군협들이 귀원비급을 잊을까봐 고의로 귀원비급이란 말에 힘주어 말했다.
마가홍은 처음 점창산을 떠날 때만해도 어떻게 하든 이창란을 찾아서 사제인
추풍안 엽혜의 원수를 갚을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조금 전 이창란이 싸움을 말리느라고 용두지팡이를 휘돌리자
한줄기의 장풍이 휩쓰는 것을 보고는 내심 겁을 집어먹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이십년 동안 두문불출 하면서까지 연마한 무공으로서도 감히
이창란과 맞서볼 여지는 없었다.
섣불리 복수하려다가는 오히려 자기의 목숨이 달아날 형편이었다.
그는 약은 생각을 했다. 금시에 복수할 마음이 귀원비급을
자기 손에 넣고 싶은 욕심으로 변하고 말았다.
「과연 문형 말씀이 옳소. 오늘 우리 화산, 아미, 곤륜, 설산, 점창 다섯 파의 고수들이
이곳에 모였는데도 불구하고 만일 천용방이 귀원비급을 독차지한다면 그것은
우리 무술계의 수치이며 통분할일이지요.」
지금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서는 천용방의 실력이 월등 강하였다.
그는 즉각적으로 각 문파의 고수들이 전적으로 협력하지 않고는 도저히
천용방의 고수를 때려눕힐 수 없다고 단정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오대문파의 고수들에게 슬쩍 적개심을 돋우어 줄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무술계를 들먹거리고 통분할 일이라고 역설하였던 것이었다.
설사 귀원비급이 자기 수중에 들어오지 않고 다른 문파의 손에 넘어간다 해도
형세는 지금보다 유리해질 것이고 자신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에 다시 뒤따라가 기회를 엿보고 공격한다면 십중팔구는 가망이 있는 노릇이었다.
그는 자기가 한 말의 반향을 살피기 위해서 조심스럽게 문공태와 등뢰의 표정과 안색을 살폈다.
그중에서 아미파의 세 장로들은 천용방과는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 있는 터라
무조건 마가홍의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다.
아니나 다를까! 세 장로가 서로 의논하듯 쳐다보더니 서슴없이 의견을 내세웠다.
「마도형의 말씀은 절대로 지당하오이다.
늦게 무술계의 구석에서 머리를 쳐든 천용방이 감히 우리 구대문파를 업신여기고
방약무인하게 놀아나니 한심한 일이오.」
군협들은 모두 아미파 초원 대사의 악의에 찬 말을 듣고는 의아한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로서는 아미파가 천용방에게 그토록 뼈에 사무친 원한이 있는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들이 그 말을 전적으로 못미더워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자 그 기미를 알아챈 초원 대사가 나서면서 나지막하게 염불을 외우고는 말했다.
「출가한 사람들이라 공연한 탐욕은 추호도 없소이다.
즉, 우리 아미파는 귀원비급을 뺏을 생각은 추호도 없단 말이외다.
단지 그 진귀한 책자가 도적 떼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절대로 반대합니다.
그따위 비열한 욕심은 결국 무술계의 질서를 해칠 테니 말이오.
따라서 이곳에 계신 여러분들도 장래의 무술계를 위해서라도
그런 도적질은 막아야 할 줄로 압니다.
만약 여러분들도 이 의견에 찬성 하신다면 우리 아미파는 힘을 다해 협조 하겠소이다.」
문공태는 그래도 못미더운지 다그쳐 물었다.
「대사께서는 신분과 지위가 있는 분이라 말씀한 후 후회는 않겠소?」
그는 아미파가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 하나 과연 천용방을 격파한 후
귀원비금에 욕심을 내지 않을까 염려되어 미리 못을 박아 두느라고 한 말이었다.
그러자 초원은 미소를 띠우고 말했다.
「노도는 이미 환갑이 넘은 고령자이외다. 이 평생에 말한 바를 이행 않은 일이 없소.」
등뢰도 그 큰 입을 벌리면서 헛웃음을 껄껄대며 앞으로 나섰다.
「대사의 일언은 부처님을 두고 하는 말이라 범인의 맹세와 달라서 깊이 믿겠소이다.
더욱이 이렇게 많은 영웅들을 앞에 두고 하는 말이니 거짓이야 없겠죠.
문형께서는 너무 지나친 의심은 하지 마시오.」
알고 보면 그도 역시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한술 더 떠서 일침을 주는 말이었다.
초혜는 그만 화를 벌컥 내고 말았다.
「저의 큰 사형은 죽어도 헛된 말씀은 안하시는 분입니다.
당신들 이 재삼 추궁함은 소인의 생각으로는 군자의 아량이 없다고 생각되오.」
워낙에 초혜가 화를 내자 등뢰는 사뭇 미안해했다.
「천만의 말씀. 단지 그렇다는 말이지 추궁이란 당치않은 말이지요.」
등뢰의 구차한 변명에 그들은 다시 그 일에 관하여 왈가왈부하지는 않았다.
이창란은 돌부처모양 노려보면서 그들의 주고받고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한편으로는 저들을 어떻게 물리칠까 하는 대책을 분주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저들 오대 문파의 고수들이 합세하여 공격을 해온다 할지라도 겁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저들보다 더 두려운 존재는 주약란과 조소접이었다.
만약 이 두 소녀가 오대 문과와 합세한다면 도저히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 만큼 두 소녀는 두려운 존재였다.
제 아무리 담대하고 당대의 무술계를 마음대로 주름잡는 그라도
두 소녀의 공격을 받으며 첩첩이 둘러싼 오대 문과의 포위망을 뚫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귀원비급을 왼손에 움켜잡은 채 그 방책을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지만
별로 신통한 계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귀원비급을 품 안에 넣기만 하면 즉시 군협들의 공격을
모면할 수 없을 것을 알고 있었다.
완전히 빠져나갈 대책을 세우기 전에는 시종 손에 진귀한 책자를 들고 있어야만 했다.
공연한 짓을 해서 사방의 강적의 격한 분노를 사지 않을 생각에서였다.
이틈에 왕한상이 몸을 돌려 극히 자연스럽게 이창란 옆으로 다가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서 쪽 산봉우리 뒤에는 넓은 소나무 숲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선 그쪽까지 포위망을 뚫고 뛰어가 암기로서 적을 대항해야겠습니다.
그 사이 날이 어두워지면 그때 가서 빠져 나갈 방법을 강구합시다.」
그의 말소리는 매우 작아서 군협들은 듣지 못했다.
이창란은 고개를 돌려 팽수위의 품안에 안겨 있는 딸을 보았다.
이요홍은 눈을 꼭 감은 채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하였고
왼손은 나무토막처럼 축 처져 있었다.
한 눈에도 매우 처참한 상처를 입은 것이 여실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만 마음이 섬뜩해 지며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 했다.
이 눈치를 알아차린 왕한상은 일부러 큰 소리를 질렀다.
「초원대사! 만일 당신이 우리 방의 제자 한 사람이라도 상처를 입혀 보시요
나 왕가가 얼마나 무서운지 맛을 보여 주겠소!」
그의 말은 앞뒤가 없었으나 이창란이 정신을 차리기에는 충분했다.
반면, 아미파의 세 장로들도 이창란의 그 쓰린 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창란은 비통한 심정에서 퍼뜩 깨어났다.
(오늘 이 사태는 순순하게 해결되지 않겠구나!
비록 우리가 귀원비급을 포기하더라도 딸의 목숨은 구해야‥‥‥)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하기야 울화가 터질 노릇이었다.
그의 속마음 깊이 파묻혀 있는 부녀간의 정으로서는 상처 입은 딸이
남의 손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참지 못할 일이었다.
그렇다고 일시에 어떻게 해야 좋을지도 몰라 망설이기만 했다.
(딸을 먼저 구한다? 아니면 비급을 이대로)
이럴까? 저럴까? 망설일 무렵 느닷없이 문공태가 팽수위에게 덮쳐들었다.
교활한 그는 이창란이 딸에 대한 애처로운 감정을 참지 못하고 밖에 드러내자
눈치 빠르게 흉악한 계략을 생각했던 것이었다.
(내가 그의 딸을 잡아 인질로 삼는다면 귀원비급을 꼼짝없이 내놓고 말 것이 아닌가? )
그는 번개같이 오른손에 들고 있던 청죽장을 휘돌려서 팽수위의 현기요혈을 찌르며
왼손으로는 이요홍을 잡아챘다.
팽수위는 마음 놓고 있던 차라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결국 속수무책이라 하마터면 문공태의 청죽장에 박살이 날 뻔 하였다.
그녀는 황급한 순간에도 재빨리 몸을 돌려 뒤로 뛰어 물러설 수 있었다.
문공태의 목적은 사람을 뺏는 것이어서 찌르는 일장이 헛수고라도 상관없었다.
팽수위가 죽장 공세를 피해 뒤로 물러서는 틈에 재빨리 왼손으로 이요홍의 왼팔을
잡아채어 빼앗고 말았다. 팽수위는 급히 몸을 피하다 엉겁결에 그 손을 놓고 말았다.
문공태는 이요홍을 빼앗고 은연중에 성공함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그 순간,
음산한 한줄기의 한기가 이요홍을 쥐고 있는 팔목을 찌르는 것이었다.
섬뜩해진 그는 팔목을 바라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느새 어떻게 된 영문인지 서릿발 같은 한 자루의 장검이 그의 팔목을
금방 토막이라도 내려는 듯이 겨누어져 있었다.
바로 일양자의 장검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멸시에 가득 찬 노기가 번쩍이고 있었다.
여차하면 그 당장 자기의 팔목을 동강내고야 말 험악한 기세였다.
문공태는 그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도형! 이것이 무슨 짓이오?」
그러나 일양자는 태연히 문공태를 쏘아보며 비웃었다.
「문형은 적어도 일파의 존귀한 장문인이 아니오?
자기의 체신을 생각해서라도 감히 그따위 비겁한 수단으로
상처 입은 소녀를 납치할 수 있단 말이오?
그 손을 당장 놓지 않으면 미안하지만 문형의 손목을 자를 수밖에 없소이다.」
일양자는 서슴없이 오른손에 힘을 약간 주었다.
예리한 장검은 옷소매를 뚫고 피부까지 육박했다.
문공태는 성난 눈초리로 일양자를 쏘아 보기는 했으나
별 수 없이 이요홍을 놓고 말았다.
「도형은 구대 문파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배반하고 외인을 도와주는군!
좋소! 이제 우리 화산파와는 서로 원수지간이 되었소이다.」
일양자는 담담하게 웃어버리면서 장검을 거두었다.
「만일 천용방이 고의로 우리 구대 문파를 괴롭혔다면 빈도도 응 당 한 몫 끼었을 것이오.
그러나 문형같이 비겁한 수단을 쓰신다면 미안하지만 사정은 극히 달라질 것이오.」
문공태는 그만 창피하기도 하고 화가 나서 청죽장을 휘둘러 대었다.
삽시간에 마귀같이 변한 그는 연달아 세 수를 공격하며 일양자의 삼대 요혈을 찔렀다.
일양자가 장검으로 세 수를 막은 후 연달아 두 수를 더 공격하고 나서 둘이다
동시에 물러서고 말았다.
비록 몇 수에 불과한 공방이었지만 목숨을 건 날카로운 싸움이었다.
서로가 지닌 독특한 묘기들은 신랄하게 상대방을 제압하고
미처 숨 돌릴 틈도 주지 않는 지경이었다.
그들은 오직 장검과 지팡이에 온 몸의 내력을 집중하고 싸운 것이었다.
만일 어느 한 쪽이든지 무공이 조금이라도 차이가 있었거나 내공이 약했다면
승부는 그것으로 충분하였을 것이고 어느 한사람은 벌써 중상을 입었을 것이었다.
그들은 싸움을 멈춘 후에도 내공을 지나치게 소모한 탓인지 얼굴색마저 약간 변해 있었다.
팽수위는 문공태가 이요홍을 놓자마자 곧장 뛰어가 그녀를 안고는 뒤로 팔구척이나 물러섰다.
그때까지도 이요홍은 중상을 입은 몸이라 여전히 혼미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창란은 일양자가 자기 딸을 구해주자 마음속으로 무척 감격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즉시 감사한 티를 추호도 나타내 보이지는 않았다.
원래가 그는 거만한 사람이었다. 또한 자존심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기도 했다.
한편, 도옥은 기력을 운행하여 원기를 회복하고 있었다.
다만 그때까지도 얼굴에는 손가락 자국이 역력하게 눈에 띄었다.
그가 사방을 돌아보니 각파 고수들이 천용방을 사방에서 에워싸고 있었다.
그는 여전히 기력을 운행하는 듯 가장하면서 사방의 형세를 살피며
빠져 나갈 궁리를 하고 있었다.
문공태의 일격이 성공하지 못하자 군협들은 사방을 에워싸고 사태의 변화를
주의 깊게 살피고 있을 따름이었다.
마가홍은 수중의 보검을 휘두르며 그들을 충동질했다.
「오늘 이 기회에 천용방의 주요 인물들을 없애지 않으면
우리 구대문파는 영원히 편안한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오.」
말을 마치기가 바쁘게 쏜살같이 이창란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자 아미파의 세 장로들도 마음속으로 사무치는 원한이 있는 터라
두말없이 마가홍의 뒤를 따라 일제히 공세를 취했다.
왕한상은 즉시 부채를 펴고 마가홍의 미친 듯한 공세를 막았다.
천중사추도 재빨리 방위를 취해 사상전법을 치고 아미파 세 장로의 앞을 가로 막았다.
제원동은 등 뒤에서 동발을 두개씩 꺼내서 한 손에 하나씩 쥐고 내려칠 준비를 하였다.
승일청도 오른손의 장검을 겨누고 왼손에는 자모신담을 굳게 쥐었다.
오독수 막윤도 핏기 없는 노한 얼굴색이 서리같이 차디차게 변하면서
왼손에 공력을 집중하여 오독신장을 내려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는 한편, 문공태와 다벽금강 도일강 그리고 백의신군 등뢰와 두 사제들도
몸을 가다듬으며 서서히 물샐틈없는 태세를 갖추어 조여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싸움 속에 뛰어들 생각은 없었다.
오직 그들의 관심은 귀원비급에만 있는지 이창란의 손에만 신경을 쏟고 있었다.
검광이 번쩍이며 하늘을 뒤덮고 싸움은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승부는 결정 나지 않았다. 이때 주약란이 조소접에게 속삭였다.
「지금 형편으로서는 누구에 게든지 우리가 애써서 손을 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그냥 버려뒀다가 그들 모두가 기진맥진했을 때 우리가 귀원비급을 뺏으면 그만이거든‥‥」
조소접은 아무 대답도 없이 그들이 싸우는 것만 보고 있었다.
도시 주약란이 한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싸움에 몰두하고 있었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각종 무술비결을 그들의 한 수 한 수에 비교하여
어떻게 어떤 수로서 그들을 물리칠 수 있는가에 만 골몰하였던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소접은 주약란의 말을 전혀 듣지 못 했던 것이었다.
원래 귀원비급에 기록되어 있는 무술의 가지가지 오묘한 비법은
체계 있는 같은 줄기의 비법은 아니었다. 전법(戰法)에 있어서나 검법(劍法)에 있어서
그것은 서로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이 독특한 비법들은 천기진인과 삼음신니가 천하 각 문파의 우수한 무술들을
광범위하게 종합하여 이룬 것이기 때문에 그 방법이나 성질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조소접은 점차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몸까지 들먹이며 눈을 번쩍이는 것이 그녀마저 싸움에 뛰어들 기세였다.
주약란도 그 모양을 보고는 그녀의 생각한 바가 무엇인지 알 수가 있었다.
주약란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눈길을 들리다 우연히 양몽환을 바라보게 된 주약란의 얼굴은
삽시간에 변하고 말았다.
그의 눈은 설움에 가득 차서 이요홍만을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약란은 그만 자신도 억제할 수 없는 질투심이 치솟아 올라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주약란은 극도로 흥분하여서인지 앞뒤를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품 안에서
무니주를 끄집어내어 미립타혈(米粒打穴) 절기로 이요홍의 두 요혈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바로 그때, 하림이 다가오며 속삭였다.
「대 언니! 오빠의 상처는 이제 완전히 나았나요?」
주약란이 양몽환의 혈도를 뚫은 후 하림은 줄 곳 양몽환의 옆에 지켜 서서
그가 기력을 운행 조절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것 이 싸움에는 하등 관심이 없는 양몽환이 홀연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자
매우 걱정이 되어 주약란에게 물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말소리는 부드러울 뿐더러 정이 넘치는 목소리라서 음악소리처럼 듣기 좋은 것이었다.
바로 그 순간 하림의 목소리는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충격을 주면서 그녀의 정신을 일깨워 주었다.
(아니, 이럴 수가! 내가 질투심에 불타다니!
만일 하림이 말을 걸어오지 않았던들 큰일을 저지를 뻔 했구나!
이요홍은 이미 그와 부부의 관계를 맺은 사이가 아닌가?
하림만 해도 벌써부터 그를 죽도록 사랑하고 있는 처지이고!
그것을 뻔하게 아는 내가 다시 새삼스러운 질투에 눈이 어두워 날뛴대서야 몹쓸 일이지.
내가 진정으로 그를 사랑한다면 오히려 그들을 위해 나의 온 힘을 기울여서라도
그들 세 사람이 행복한 가정을 이룩하도록 해야 옳은 일이지‥‥)
그녀 스스로 자기 마음을 달래고 나자
마음속의 질투심은 어느덧 사라지고 마음속이 편안해졌다.
수개월 동안 자신의 마음을 괴롭히는 안타깝던 사랑은
봄눈이 녹아 버리듯이 자취 없이 사라지고 한층 더 후련해지며 마음이 개운하여졌다.
「그의 혈도는 내가 충분히 뚫어 놓았으니 더 이상 별 지장이 없을 거야.」
말이 끝나자 두서너 번 몸을 공중에 띄워 삼수나찰에게로 다가섰다.
그녀는 이요홍의 잠든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팽수위에게 물었다.
「상처가 대단하지? 당분간 그대로 지탱할 수 있을까?」
「상처는 가볍지 않아요. 줄 곳 혼미 상태에 빠져 있는 걸요.」
주약란은 가볍게 한숨을 쉬면서 이요홍을 한참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팽수위에게 주의를 주었다.
「지금 귀원비급은 이미 그녀의 부친 손에 들어가 있어요.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진귀한 귀원비급을 제각기 손에 넣으려고
저렇게 으르렁거리는 거예요.
저 사람들은 지금 한참 허욕에 들떠서 염치고 체면이고 가리지 않을 것도 뻔해요.
아까 일만 하더라도 엉큼한 속셈이 있어서 그런 거지.
어떻게든 이 아가씨를 납치해서 인질로 삼아 부녀간의 정을 협박하고
귀원비급과 맞바꾸려고 하는 눈치거든.
어떻게 하든지 이 아가씨만은 잘 보호해야 해요.
절대로 다른 일에 관여하거나 싸움에 휩쓸려서도 안 돼요.
언제 또 아까처럼 불의에 습격해 올지 모르니까 말이에요.
또 이 아가씨는 아주 심한 중상을 입은 몸이라 하루 이틀에는 치료를 해서 완쾌할 몸이 못돼.
설사 지금 자기 정신으로 돌아오게 한대도 오히려 고통만 더 주게 되겠지.
차라리 이대로 기절하는 것이 나을 거야. 그러니 절대로 한눈팔지 말고 조심해서 지켜요.」
팽수위는 명심해서 주의를 듣는 한편,
주약란이 이요홍을 은근히 감싸주는 것을 느끼고는 다소 의아심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주약란에게 따져 묻지는 많았다.
팽수위는 무조건 주인의 분부에 따름으로서 충성을 다하려는 여자였었다.
무조건 주약란의 말이라면 실행하였다.
「소저께서는 걱정 마십시오.
시녀는 힘을 다해 보호하여 머리끝 하나 손상 없게 하겠습니다.」
그제야 주약란은 마음속이 무척 평온해지고 개운해진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이 몇 달 동안 자기의 말 못할 사랑에 은근히 속을 썩이고 있었다.
이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오히려 미워해야 할 여자에게 도움마저 베풀고 보니
오히려 속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만 생긋 웃기까지 하였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웃음이었다.
그녀의 웃음은 정말 아름다웠다.
지난날의 웃음은 사람의 번뇌가 담긴 수심에 찬웃음이었으나
지금의 웃음은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즐거운 웃음이었다.
활짝 핀 꽃송이 같이 향기롭고 아름다웠다.
같은 여자끼리인 팽수위마저도 황홀한 그 웃음에 마음이 울렁거릴 정도였다.
팽수위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 주인은 기뻐서 웃으면 춘삼월 꽃송이 같이 아름답고,
화가 나서 노하면 엄동의 서리와 얼음같이 차갑단 말이야‥‥‥)
이때, 생각지도 못한 굵다란 한숨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왔다.
주약란이 머리를 쳐들자 도옥의 눈길과 마주쳤다.
한숨을 쉰 사람은 바로 도옥이었다.
그는 그 큰 눈을 더욱 크게 뜨고는 주약란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도 주약란의 어여쁘게 웃음 짓는 얼굴에 넋을 빼앗긴 모양이었다.
하기야 평소에 엄숙하고 강직한 주약란만 보았지
이같이 아름답게 웃는 얼굴을 처음 본 도옥이 그럴 수도 있었다.
도옥은 주약란이 처음 여장을 한 것을 볼 때부터 절세의 미녀임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약란에게는 언제나 사람을 누르고 함부로 대할 수 없게 하는
기품과 위엄이 있어서 그다지 여자로서의 매력은 느끼고 있지 않던 것이었다.
그러던 중 천만 뜻밖에도 바로 지금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정신없이 매혹되고 만 것이었다.
주약란은 몹시 역겨운지 그만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죽을 때가 이미 닥쳐왔는데도 건방지게 못된 생각을 하는군!)
그럴 즈음 갑작스럽게 이창란의 우렁찬 고함이 터졌다.
뒤이어 문공태의 걸걸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과연 해천일수의 이름은 헛된 것이 아니군!」
그새 저들의 싸움은 막바지를 이른 듯 하였다.
그때, 이창란은 성난 호랑이처럼 오른손의 지팡이를 요란스럽게 휘둘렀고
왼손으로 장풍을 쏘아붙이며 혈도를 뚫고 있었다.
그 뒤 로 제원동, 승일청, 최문기 등 단주들이 각각 따르고 그들도 그들대로
날뛰며 전진하고 있었다.
약간 뒤떨어진 왕한상과 천중사추는 온 몸에 땀을 흘리면서 혈도를 뚫고 있었다.
한편 화산파의 다벽금강 도일강은 눈을 지그시 감고 한쪽에 꼼짝 않고 서서
기력을 운행 조절하고 있었다. 아마도 가벼운 상처를 입은 모양이었다.
이때, 이창란은 자기의 딸 이요홍에 대해서 마는 마음을 놓고 있었다.
뜻밖에도 일양자가 이요홍을 구하는 것을 본 이창란은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곧 일양자가 대의명분을 쳐들고 슬기로 운 사리를 가려서 설명하자
그는 마음속으로 매우 탄복하여 은근 히 속으로 다짐까지 하였다.
(현도관주는 과연 군자이구나! 내가 본거지에 돌아가면 곤륜파를 적대시 하지 말라는
분부를 막하 부하들에게 널리 알려야겠구나. 무슨 일이 있던 양보하게 함으로써
그가 오늘 내 딸을 구해준 은혜를 갚아야겠다.」
이같이 자기 결심을 굳힐 무렵 또 다시 뜻밖에도 주약란이 자기 딸 옆으로 달려가자
깜짝 놀라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의 무공은 감히 대항할 자가 없을 정도인데 내 딸을 잡아 인질로 삼는다면
구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다. )
그러나 곧 그의 생각은 상상과는 판이하였음이 드러났다.
주약란의 하는 행동은 이요홍에게 대하여 추호도 적의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표정은 이요홍의 상처에 관심이 이만 저만하지 않은 듯 했다.
이창란은 자기의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감격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이제 주약란이 그녀에 대하여 추호도 악의가 없으며 힘을 다해 보호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다.
이제는 거리끼는 미련이 없었다.
「서쪽으로 뚫고 나가자!」
힘차게 외친 후 수중의 용두 지팡이를 휘두르며 용감무쌍하게 자신이 앞장서서
길을 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천용방의 다섯 깃발 단주들도 역시 무술계의 쟁쟁한 인물이고 영리한 사람들이라
적의 태세를 재빨리 판단하였다.
그들은 이요홍의 생사보다 귀원비급을 더 중하게 여기고 관심을 쏟고 있었다.
그들은 귀원비급을 손에 넣은 이상 한시 바삐 포위망을 뚫고 나가야 만이
마땅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들로서는 일점혈육인 딸을 사랑하는 나머지 미련을 두고 주저하는 이창란에게
차마 그 소리를 못했을 따름이었다.
오직 왕한상이 돌연 의견을 제시하여 그로 하여금 결단을 내리도록 했다.
마침내 이창란은 포위를 뚫고 나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들은 그제야 새삼스럽게 이창란을 마음속으로 존경했다.
(방주께서는 과연 사내대장부다운 결단력이 있는 분이구나.
비록 부녀의 정이라 할지라도 추호도 마음을 어지럽게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야.)
왕한상은 껑충 뛰면서 쇠부채를 휘둘러 연달아 공격을 퍼분 후 삽시간에
물러서는 척 하면서 느닷없이 서쪽 포위망을 뚫기 시작했다.
천중사추도 그 즉시 사상 진법을 전개하면서 후퇴하며 한편으로는 아미파 세 장로의
거센 공세를 막았다.
사추는 앞서 조소접의 장법에 상처를 입은 몸이었다.
비록 중상은 아니었지만 얻어맞은 곳이 은근히 아파왔다.
그 때문에 적을 대하는데 상당한 방해가 되어 온전한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의 사상진법은 잠시 후에는 결함을 나타내었다.
만일 초진과 초혜가 주약란과 싸울 때 내력을 많이 소모하지 않았더라면
천중사추는 더 이상 항거하지 못하고 벌써 아미파 세 장로 손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었다.
한편, 화산파의 도일강은 이창란이 지팡이를 휘두르며 포위망을 뚫자
옆에서 불쑥 뛰어 나오면서 앞을 가로 막았다.
불시에 앞이 막힌 이창란은 번개같이 재빠르게 용두 지팡이로 찔렀다.
막상 지팡이는 허공을 뚫고 앞을 빗나갔지만 지팡이 끝에서는 서릿발 같은 바람이 일었다.
도일강은 몸서리치면서 깜짝 놀랐다.
(이 사람의 공력은 과연 대단하구나. 일찍이 보지 못한 억센 힘이야! )
깊이 감탄하면서도 어느새 몸을 비틀어 그 억센 일장을 교묘하게 옆으로 피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그의 오른 팔은 번개같이 이창란의 앞가슴을 노리면서 강타하고 있었다.
이창란은 단지 이곳을 무사히 빠져 나가기만 바랄 뿐이어서 굳이 싸움을 오래 끌고 싶지 않았다. 이창란은 공력을 집중하여 도일강이 내 쓴 장풍이 가슴에 닿을 듯 말 듯 할 때 대갈일성을
터뜨리면서 느닷없이 왼손으로 후려쳤다.
그 수법은 전광석화 같이 빠르고 위력도 금시에 나타났다.
도일강은 미처 몸을 피할 사이도 막아볼 겨를도 없었다.
몸의 혈맥은 이창란의 일장에 울려 단박에 피가 거꾸로 치솟았고 숨이 막히면서
반신이 마취되었다.
그나마 비틀거리면서 네댓 걸음 기우뚱거리고서야 쓰러지지 않고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
실로 목숨을 잃지 않기가 천만 다행한 일이었다.
만일 이창란이 그 틈을 타서 일장만 더 내려쳤다면 도일강은 내공진력을 운용하느라
항거할 수 없는 처지여서. 당장에 피를 쏟고 죽었을 것이었다.
하기야 이창란은 그 순간 숨통을 끊으려고 다시 손을 치켜들기까지는 하였다.
그러나 막상 자기들을 둘러싸고 있는 강적들을 보아 차마죽일 수는 없었다.
섣불리 죽였다가 그들의 큰 노여움을 사서 오히려 더 큰 화를 입을 것만 같아서였다.
이창관이 이같이 망설이는 틈을 노린 문공태가 호령하면서 청죽장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이창란은 용두 지팡이를 내려치면서 가볍게 물리친 후 오히려 문공태의 품을 파고들면서
아껴 두었던 비법인 수취비파(手揮琵琶)로 그의 앞가슴을 때려 부수려고 하였다.
이러한 타법(打法)은 아직 무술계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아주 낮설은 기묘한 수법이었다.
이러한 수법을 쓰자면 내공력이 상대방보다 훨씬 강해야 할 뿐 아니라 무공에 있어서도
상대방의 실력보다 우세하여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문공태도 어지간히 빨랐다. 삽시간에 몸을 뒤틀면서 가볍게 일장을 피하고 난 후
오른팔로는 재빨리 아래로 내리면서 지팡이의 일격을 용하게 피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오른손의 청죽장을 마구 휘돌려 청죽장의 그림자가 셋이 되어
이창란의 삼대 요혈을 찌르고는 물러났다.
그런 후, 잠시 씩씩거리며 숨을 가다듬고는 은근히 이창란을 보고 비웃기까지 하였다.
「정말 미련한 수법이로군!」
그러나 사실 이창란의 무공은 문공태보다 확실히 월등한 점이 있었다.
문공태가 기를 쓰고 청죽장을 휘돌려 그림자 셋을 만들기 까지 하였어도 이창란은
예사롭게 막고 말았다. 그러니 용두지팡이로 후려치다가 마는 정도였었다.
이창란은 그 사이에 벌써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문공태의 청죽장 공세를 물리쳐 버렸고 그 외로 강한 반격까지 가해서
허리를 후려쳤으니 말이었다.
문공태는 아미산 와호령에서 거북을 뺏기 위해 이창란과 싸워본 일이 있었다.
그 당시 이미 그의 일격을 받은 바 있어서 그의 공력이 매우 웅후하고 자신은
적수가 못되는 것도 잘 알고 있는 처지였다.
따라서 억지로 일격을 받았다가는 화를 면하지 못하리라 싶어 재빨리 후퇴하여
억센 일격을 피하고 말았다.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백의신군 등뢰는 이창란의 용맹을 문공태 혼자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하리라 예견했다.
등뢰 자신도 이 싸움판에 뛰어 들어 문공태를 거들어 주고 싶었으나
그렇게 되면 곤륜 삼자가 또 이창란을 도와주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자기들의 형세가 더 불리해질 뿐만 아니라
적의 사기마저 북돋우는 격이 될 것이라 싶어 주저하고만 있었다.
이창란은 문공태를 물리친 후 즉시 제원동에게 외쳤다.
「빨리 가! 늦으면 변화가 생긴다.」
그는 워낙 견식이 넓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한 눈으로 사태를 판단하고 말았다. 지금 자기들을 에워싸고 있는 군협들의
마음은 제각기 딴 속이라고 단정한 것이었다.
하기야 그들의 연합 공세는 말 뿐이지 실제로는 불가능 하였다.
이창란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다고 결정한 후 단주들에게 명령했던 것이었다.
그는 솔선해서 지팡이를 휘두르며 포위를 뚫고 훌쩍 일약하니
사람은 이미 이삼 장 밖에 가 있었다.
제원동, 막윤, 승일청, 최문기들도 곧 뒤를 따라 포위를 뚫고 나 왔다.
그들도 한결같이 굉장한 무예계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힘을 합 처서 포위망을 뚫고 나가면서도 여전히 위엄 있고 기세당당하였다.
포위하고 있던 사람들도 그 위세에 눌려서 오히려 길을 내 주었으며 문공태도
과연 그들을 막지 못했다.
왕한상도 느닷없이 쇠부채와 주먹을 휘둘러 좌충우돌 하면서
연달아 공세를 퍼붓자 포위망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 순간 성난 짐승 이 울부짖는 듯한 고함 소리와 함께 왕한상의 몸은
허공으로 치솟았고 허공에서 또다시 몸을 한바퀴 돌리자
어느새 이창란 옆에 내려서는 것이었다.
이때, 천중사추도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공력을 집중하자 곧 폭풍 같은 억센 장풍을 마구 쏘아 대었다.
공세를 취하던 아미파의 세 장로들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막상 물러서기는 했지만 세 사람은 함께 오랫동안 사상진법을 연마한 처지라
그들의 마음과 행동은 일치했었고 손발도 약속이나 한 듯이 꼭꼭 들어맞았다.
그러나 아미파는 동문 사형제들이라 힘을 합쳐 적을 대하는 수법에 있어서는
천중사추 보다도 자유자재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네 사람의 공격에
그들이 뒤로 물러서자 천중사추는 세 사람이 모여서는 틈을 타서 몸을 재빨리 돌이켜
두 번 비약하여 이창란에게로 달려가고 말았다.
한편, 마가홍은 자기 힘껏 왕한상과 막상막하로 이십 여수나 맞붙어 싸워 보고 나서는
마음속으로 상대방의 무공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히 제원동보다 그 솜씨나 공력이 한층 위엄이 있음을 시인했다.
정말 전력으로 목숨을 걸고 싸운다면 승부는 어떻게 될지 추측할 수 없을 정도였다.
또 한편, 곤륜 삼자와 등뢰가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데는 김 나간 감이 없지 않았다.
자기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강적을 떠맡고 대항해 볼 도리가 없었다.
자칫 잘못 서둘렀다가는 자기만 손해 볼 것이 분명했다.
때문에 왕한상이 포위를 뚫고 나가자 그는 손을 멈추고 더 이상 싸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만일 다섯 파의 고수들이 진실로 협력하여 천용방과 싸운다면 비록 격파하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무승부로는 끝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사심에 사로잡혀 그 누구도 있는 힘을 다하지 않고 다만
다른 사람이 싸워 기진맥진 했을 때 가만히 앉아 어부의 이를 꾀하고 있었으니
천용방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모든 것을 단념하고 포기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무술계에 둘도 없는 진귀한 귀원비급에는 허욕을 돋우었다.
그러니 그 책이 이창란 손에 쥐여있는 이상 뒤를 곧 따르지 않을 수도 없었다.
주약란은 오랫동안 천기석부에 기거하고 있던 터라 부근 지리에는 매우 익숙하였다.
이창란이 달아나는 방향만을 보고도 어디로 가는가를 곧장 짐작하고도 남았다.
(잘 되었구나, 오랫동안 말로만 듣던 무술계에서 이름 높은 구대문파의 무공과
천용방 단주들이 간직한 비법들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오늘 이 기회에 각 파 고수들의 절학을 견학하자면 그들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싸우도록
싸움을 충동질 해야지. 그래야만 첫째는 나 자신의 견식이 늘 것이요,
둘째는 조소접 아우가 싸움을 구경하여 귀원비급의 무공들을
실제로 응용할 수 있도록 깨우칠 수 있겠지.
차후 나는 은퇴하여 무술계에 관계하지 않겠고 싸울 기회도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주약란은 팽수위에게 분부했다.
「당신은 이소저를 보호하고 있어요. 나는 그들 뒤를 따라가 보겠으니」
몸을 날려 조소접에게로 달려가 하림과 조소접의 손을 잡고 멀리 문공태의 뒤를 따랐다.
이 때의 형세는 천용방이 앞장서서 달리고 그 뒤를 바싹 오대 문파의 고수들이 따랐으며
주약란, 하림, 조소접, 양몽환이 맨 뒤를 쫓고 있었다.
문공태는 앞서 이창란과 두 수를 교환해 본 후 오대문파 고수들과 합심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싸울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며 등뢰에게 말을 먼저 걸었다.
「등형! 오늘 이 사태를 보고 누구의 천하같이 생각되오?
그리고 귀원비급은 결국 누구 손에 들어갈 것 같소?」
등뢰는 퉁명스럽게 응답했다.
「그거야 제가 어떻게 추측할 수 있겠소?
그러나 오늘 이 사태를 눈여겨보니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성공할 가망이 전혀 없겠소이다.)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고 하는 사이에 그들은 일장 너머 뒤떨어지고 말았다.
등뢰는 두 팔을 획! 펼치면서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문공태도 황급히 뒤쫓았다. 어언 간에 그들은 두 산봉우리를 넘고
울창한 솔숲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이창란은 산의 형세를 보고 저윽이 놀랬다.
지형은 몹시 험악하였다.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들어서 있었고 그나마 양 쪽은 깎아지른 듯한 수백 길
절벽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 앞은 숲에 가리어 내다 볼 수조차 없는 곳이었다.
이창란이 어느 정도 주저할 사이에 뒤 따라 오던 오대문과 고수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왕한상은 나지막하게 이창란에게 말했다.
「방주께서는 잠시 숲 속으로 들어가 숨으셨다가 날이 저물어 저녁이 되면
이곳을 빠져 나가는 대책을 세우도록 하시오.」
이창란은 그 말을 듣고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오대 문파만이 아니라 주약란과 조소접도 추적해 오고 있었다.
그는 마지못해 숲 속으로 급히 들어갔다.
군협들은 숲까지 쫓아오기는 했으나 발을 멎고 말았다.
그리고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감히 모험을 각오하고 선뜻 숲 속으로 뛰어들 생각을 안했다.
문공태는 군협들을 둘러보면서 은연중 싸움을 독촉하는 말을 했다.
「천용방이 생긴 후 짧은 이심년 동안에 그 세력은 온 강남 일대에 퍼졌습니다.
근래 와서는 매우 빠른 속도로 강남과 강북까지 뻗쳐나가고 있으니
우리로서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이대로 방관하다간 얼마 안가서
구대 문파나 그 외에 어느 파도 천용방과는 실력으로 다툴 수 없을 것은 물론이오.
더구나 귀원비급까지 손에 넣었으니 십년이 못가 무술계는 천용방의 천하가 되고 말 것이오.」
그의 말은 과연 군협들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그 중 먼저 마가홍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섰다.
「문형 말씀이 틀림없소이다. 우리가 오늘 귀원비급을 빼앗지 못한다면
이곳에 계시는 여러분은 무술계에 그대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없을 것이오.
더욱이 우리 구대 문파의 다음 제자들은 여지없이 멸망하고 말 것이고.
이창란은 일대 도둑놈의 괴수지만 무공은 매우 비범하여 쉽게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바 있습니다. 그 위에 귀원비급까지 손에 넣게 되었으니
바로 범이 날개를 얻은 격이 되었소이다.
이런 중대사를 방관만 할 수 있겠소?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힘을 합해 천용방으로부터 진귀한 책자를 뺏어야 할 것이오.」
그러자 등뢰는 헛웃음을 웃고 은근히 비꼬았다.
「마형 말씀도 이치가 있는데 비급을 뺏을 어떤 고견이라도 있소?」
마가홍은 마음속으로 괘씸하게 여겼다.
(정말 교활하기 이를 데 없는 악당이구나.
두고 보자! 언제고 한번은 쓰러질 때가 있을 것이다. )
그는 슬며시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렸지, 표면으로는 웃었다.
「물론 제일 좋은 방법이라면 모두가 귀원비급을 손에 넣을 생각은 아예 하지 않는 것이지요.
만약에 귀원비급을 빼앗았다 해도 주인에게 돌려주는 거요.
그러나 역시 이 방법에 여러분은 절대로 동의 하시지 않겠죠.
첫째 등형이 찬성하지 않을 것이오. ‥‥」
하고는 주약란과 조소접을 뜻있게 쳐다본 후
백의신군 등뢰의 얼굴을 주시하고 재삼 따져 물었다.
「등형, 그렇잖소?」
등뢰는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헛기침을 했다.
「언중유골이군요. 하하‥‥‥
감탄할 말씀이오. 화를 남에게 슬쩍 밀어 붙이는 계략은 매우 능통하군요!
그렇다면 마도형은 유독 욕심이 없으시고 결백하신 몸이라 귀원비급을
차지할 생각은 없나보군요!」
그러나 마가홍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야무지게 말을 이었다.
「그러므로 저로서는 여러분에게 가장 공평하고도 합리적인 방법을 하나 강구했습니다.
그 방법이라는 것은 여러분 스스로가 힘을 합쳐 천용방을 물리친 후 스스로 각자의
무공 실력으로 귀원비급을 차지할 수 있는 방법이요」
그러자 문공태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한걸음 나섰다.
「그것참 고명한 의견이오. 그럼 어디 도형의 고견을 들어봅시다.
단, 아미파 초원 대사께서 먼저 말씀 하신대로 귀원비급에는 흥미가 없다니,
아미파로서는 더 이상 이 일에 관여마시고 그대로 물러간다 해도 우리로서는 불만이 없습니다.
본래 우리 무술계에서는 신의를 생명같이 여기니 아미파로서는 두말이 없으리라 믿습니다.」
초원은 쓴 입맛만 다셨지, 그 말에는 일언반구도 대꾸하지 않았다.
반대로 마가홍은 아주 통쾌한 듯이 소리 내어 웃었다.
「저는 애초에 생각하길 귀원비급을 만약 우리가 차지한다면 우리오대 문과의
명의로 다른 네 문과를 초청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검술대회를 열어 첫째 귀원비급을 우승한 사람이 차지하도록 정하고
둘째는 수백 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서열을 결정할 생각이었던 것입니다마는
지금 한 문파가 스스로 포기함을 원한다니 더욱 일은 잘 되어 가는 것 같소이다.」
문공태는 등뢰의 속셈을 슬쩍 떠 보았다.
「그럼 도형께서는 귀원비급을 꼭 손에 및을 생각이신가요?
결국 한발자국도 양보하지 않겠다는 거죠?」
등뢰는 시치미를 뗐다.
「겸손한 말씀 마시오.
하기야 문형이 양보하신다면 저도 혹시 포 기 할런지 모르죠.」
문공태는 이번에 마가홍을 향해 빈정거렸다.
「마형께서도 물론 머리를 짜고 있는 만큼 역시 귀원비급에서
깨끗이 손 뗄 의사는 없으시겠죠?」
마가홍은 그 말에 단지 알쏭달쏭한 웃음만 풍기다가 점잖게 변명하였다.
「저로서는 그것이 진귀한 책자인 만큼 과연 어떠한 무공이 기록되어
있는지가 궁금하여 한 번 훑어보면 그만이지 욕심을 내어서 영원히 차지할 생각은 없소이다.」
문공태는 또 곤륜 삼자를 돌아보며 그 의중을 떠 보았다.
「세 도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양보하시겠소?」
그러자 옥영자가 대뜸 쏘아 붙였다.
「흥! 여러분들은 그 귀원비급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르면서 제 것인 양 떠드는군요.
여러분이 좋은 방법을 생각하는 동안 천용방은 그 책자를 가지고 본거지로
도망가 버리고 말겠소이다.」
군협들은 그 말을 듣자 멍청해지면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주약란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표정으로부터 어떤 해결 방법을 암시 받을 수 있을까 하고.
그러나 주약란은 아무 표정도 없이 하늘에 뜬 구름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와 같이 시치밀 뚝 떼고 무표정한 주약란에게 그들은 아무 암시도 받을 수 없었다.
문공태는 별 수 없는지 도일강의 상처로 화제를 옮겼다.
「사제! 좀 어떤가?」
「한참 기력을 조절 운행하고 나니 이제야 혈맥이 순통하고 정상적으로 회복 됐습니다.
이제 염려할 것 없습니다.」
문공태는 뒤로 고개를 돌리면서 곤륜 삼자를 다시 돌아보았다.
「세 도형의 곤륜파도 따져 보면 구대 문파중 이름 있는 하나의 문파가 아니겠습니까?
만일 천용방이 그 귀중한 귀원비급을 가지게 된다면 십년이내 틀림없이
무술계를 독차지하고 말 것은 뻔한 일입니다.
그때 가서는 귀파도 오늘같이 한 독점된 문파를‥‥‥」
하는데 옥영자가 문공태의 말을 제지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문형 생각은 뭐 뾰족한 수라도 있습니까?」
「저의 의견으로는 먼저 귀원비급을 뺏고 봐야 할 것 같소이다.
어떤 파든지 구대 문파의 손에만 들어온다면 사정은 달라질 것입니다.
도형의 의견은 어떻소?」
옥영자는 일양자의 의견을 다시 물었다.
「사형의 고견은 어떻습니까?」
일양자는 담담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모든 것은 장문인께서 결정을 하시오.
나로서는 장문인의 분부를 받아 행동할 뿐입니다.」
옥영자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더니 문공태에게 말했다.
「문형께서 우리 곤륜파를 아껴주시니 빈도들도 박절하게 거절할 수가 없군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우리 곤륜파는 귀원비급을 뺏는 책임을 질 것이니
문형들은 천용방 오기단의 단주와 천중사추를 막으시오.」
문공태는 그 말에 그만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말았다.
(아주 건방진 놈 같으니라구! 우리들은 싸우고 너희는 책을 갖겠단 말이지?)
마음속으로는 욕을 하였지만 얼굴에는 손톱 끝만큼도 그런 기색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도형 의사대로 합시다. 그러나 뱀도 머리가 있는 법이오.
우리도 마형을 추대하여 지도자로 하면 어떻소?」
마가홍은 사뭇 겸손하게 사양했다.
「덕이 박한 제가 어떻게 그런 중대한 임무를 맡겠소.
나의 생각으로는 등형이 이 일을 맡아 주셨으면 좋을까 하오.」
등뢰의 입은 활짝 열려 좋아하는 눈치였지만 결국 그도 슬며시 양보하고 말았다.
「저의 의견은 문형과 같으니 마형께서는 사양 마시오.」
마가홍은 아미파의 세 장로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아미파의 세 형께서는 의견이 없으시오?」
초원은 겸손하게 대답했다.
「천만에요. 우리 아미파는 추호도 사리사욕이 없습니다.
다만 구대 문파를 위하여 천용방과 싸운다면 누구의 분부라도 달갑게 받겠소.」
옥영자는 마가홍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려 미리 다짐을 해 놓았다.
「우리 곤륜파는 이미 맡은 임무가 있소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하시고 도형께서 임무를 부여하실 때에 적절하게 처리하셔야지
만약에 그렇지 못하다면 헛된 일을 하기 쉬울 것이오.」
마가홍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여러 대사께서 저를 이렇게 애호해 주시니 빈도는 하는 수 없이 직책을 맡겠소이다.
여러분은 모두가 일파의 귀한 장문인이라 직책을 분배할 때 정리(情理)를 돌보지 않는다고
불평은 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만일 무슨 착오가 있더라도 여러 사형과 도형께서 용서하기를 바라오.」
문공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전적으로 동의하고 나섰다.
「그런 문제를 갖고 마형께서는 너무 신경을 쓰지 마시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명령 내리신 대로 절대 복종할 것입니다.
마형은 여러분들이 추대한 분이니 만일 명령을 거절 한다면
자신이 응낙한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 아니겠소?
우리가 이렇게 쓸데없는 의논에 시간을 소비한다면
천용방은 멀리 도망가고 말지도 모르니‥‥」
마가홍은 자신 만만해서 그 말을 가로 막았다.
「문형 걱정 마시오! 내가 큰 소리 치는 것이 아니라
천용방은 이 솔 숲을 떠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대할 방법을 의논한 후 불을 지르면 안나오지 못할 걸요!」
등뢰는 코를 벌름대면서 따지고 들었다.
「그것을 마형이 어떻게 장담하시오?」
「등형이 저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 내기를 한 번 합시다.」
문공태는 얼굴을 찡그리며 쏘아 붙였다.
「두 분께서는 쓸데없는 다툼은 그만 하시오. 마형은 빨리 부서나 정하시고!」
「곤륜파의 세 도형께서는 이미 문형으로부터 귀원비급을 뺏는
직책을 받은바 있으니 제가 새삼스럽게 말할 것 없이 수고해 주시오.」
문공태는 그 말을 듣고는 헛기침을 서너 번 했다.
마가홍은 일동을 둘러보고 다시 직책을 맡겼다.
「아미파의 세 분 대사께서는 방금 천중사추와 싸웠으니
그들과 상대하는 것이 어떻소?」
초원은 합장하여 염불을 외우고는 명령을 받았다.
마가홍은 계속 직책을 분배했다.
「등형과 두 사제는 천용방의 홍과 남 두 단주와 싸우시고
문형과 사제는 흑 백 두 단주를 맡으시오. 저는 황기단주를 상대하겠습니다.
또 저 이상한 노란 옷차림을 한 소년은 수고스럽지만 곤륜파‥‥‥」
옥영자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즉시 그 말을 받아 이었다.
「우리는 이미 받은바 직책이 있으니
미안하지만 다른 일을 더 할 수 없소이다.」
마가홍은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빈도의 의사로서는 귀파 문하제자 한 분이 나와 주셨으면 하오.」
그러자 옥영자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은 그가 상대방의 적수가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
그와 싸우게 하려는 의도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마가홍은 뱃심 좋게 웃으면서 재차 말문을 열었다.
「세 분 도형께서는 지나친 걱정을 합니다.
곤륜파의 천강장법과 분광검법은 무술계 사람으로서는 그 위력을 모르는 사람이 없소이다.
도형 문과의 제자가 비록 연령의 차이로 공력이 약간 처지지만
그 검법과 장법은 틀림없이 배웠을 것이 아닙니까?
만일 불행히 그가 상처라도 입는다면 저의 목숨을 바치겠소.」
옥영자는 양몽환을 뒤돌아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오늘 양몽환을 싸우지 못하게 하면 우리 곤륜파의 체면이 서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응낙해서 만약 상처라도 상대방에게 입는다면 큰일이구나.)
양단간에 선뜻 결정할 수가 없었다.
양몽환은 장문 사숙의 난처한 얼굴을 보자 한걸음 나서면서 읍했다.
「제자의 상처는 이미 치유되었으니 분부대로 출전하겠습니다.」
옥영자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문공태가 먼저 한술 더 떠서 추켜세웠다.
「어린 아우의 용기는 정말 감탄하겠소! 과연 곤륜파의 제자로군!」
조소접은 미간을 찌푸리고 나지막하게 주약란에게 속삭였다.
「그의 상처가 낫기도 전에 출전할 수 있어요? 언니가 불러 오세요!」
그러자 주약란은 머리를 저었다.
「괜찮아! 그냥 싸우도록 내버려 둬요.」
조소접은 품 안에서 알약을 한 알 꺼내어 양몽환에게 주려다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내가 직접 약을 준다면 그들의 주목을 끌게 되겠지‥‥‥
그의 사매인 하림을 통해 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
그녀는 하림에게 가까이 가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 알약을 사형에게 먹여요.」
하림은 생긋 웃으면서 약을 받아 천천히 양몽환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주약란의 입술이 약간 떨리면서 가만히 한숨을 쉬는 것이었다.
그러는 한편, 조소접은 삽시간에 얼굴이 화끈해져 급히 고개를 수그리며 눈을 내리 깔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물었다.
「란 언니! 제가 무슨 잘못한 것이라도 있어요?」
주약란은 그녀의 구슬같이 희고 부드러운 손을 잡아 주면서 가볍게 웃었다.
「너는 잘못이 없어‥‥‥ 언니가 잘못이지.」
조소접은 고개를 들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언니는 또 무엇을 잘못 했죠?」
주약란은 조소접이 설마하니 그런 질문까지 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니, 별 것 아냐. 신경 쓸 것 없어.
우리 나중에 귀원비급을 뺏은 후 돌아가서 자세히 얘기 해.」
조소접은 알쏭달쏭한 대답에 고개만 끄덕이면서 그 일에 관하여는
더 이상 물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곧 맑고 푸른 하늘의 구름만을 시름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한 그녀의 얼굴에는 웬일인지 수심이 가득 차 있었다.
아마도 양몽환이 서슴지 않고 싸움판에 뛰어드는 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 뚜렷했다.
일양자는 그동안 냉정한 마음으로 꽃같이 아름다운 처녀들의 일거일동을
세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의 기색을 빠짐없이 알아차리고 말았다.
그는 내심으로 약간 걱정이 되는지 가벼운 한숨마저 내쉬었다.
(큰일이야‥‥‥‥ 그들은 모두 몽환에게 정이든 모양이지‥‥‥‥
만일 이 일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 그들의 정이 더 얽힌다면
종국에는 비극을 면하지 못 하겠구나.‥‥‥‥
아니,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이번 괄창산의 일이 끝나면 그를 데리고 금정봉으로 돌아가는 즉시
오년 동안 두문불출의 벌을 내려야겠어.
그렇게 하여서라도 끝장을 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몽환의 장래를 그르치겠구나.‥‥‥)
하며 고개를 들자 하림이 양몽환 옆으로 가서 백옥 같은 손을 내밀며
알약을 한 알 양몽환에게 주고 있었다.
「오빠! 지금 조소접 언니가 이것을 드시라고 꺼내어 주더군요.」
양몽환은 그 알약을 보자 흠칫 놀랐다.
그 약은 조소접이 민강(泯江) 배에서 자기에게 준바있는 영단이었다.
양몽환은 그 약을 받으면서도 가슴 속이 선뜩했다.
(이 영단은 효력이 무방한 영단이다.
그녀의 수중에도 불과 다섯 알이 있을 뿐이었었지?
그러니 민강 배에서 두 알을 나에게 준 바 있으니
남은 것은 단 세알뿐이었을 거야 이제 또 한 알을 주 다니 ‥‥‥‥
그녀는 원래 나를 싫어하는데 무엇 때문에 이 귀한 약을 나에게 선사할까?)
여러 모로 생각해 봐도 그 알약을 주는 뜻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알약은 필요했다.
(나의 내상은 아직 완전히 나았다고는 할 수 없지.
이대로는 싸움에서 끝까지 지탱할 수 없을 것은 분명하지 하물며
내가 맞싸울 적은 모두가 무술계에서도 쟁쟁한 고수가 아닌가?
보나마나 오늘의 싸움은 흉악하고 처참한 싸움이 되겠지.
비록 주약란이 가르쳐 준 오행미종보법으로 충분히 호신할 수는 있다 해도
싸움이 막바지에 접어들어서 불행하게도 상처가 도진다면
꼼작 없이 패퇴하고 말 것이 아닌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스승과 문파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키고 말 것이다.
차라리 이 약을 먹자!
이 약의 효과는 절대적이라서 나의 내상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
그는 알약을 받아 입에 넣었다.
하림은 양몽환이 한참 무엇을 생각한 후 비로소 약을 먹자
고개를 돌려 조소접을 바라보았다.
때마침 조소접도 주의 깊게 하림과 양몽환을 보고 있던 중이라
두 소녀의 눈길은 마주쳤다. 그 순간 그들은 서로 방긋 웃었다.
한편 이들을 눈여겨보고 있던 많은 군협들은 만발한 꽃처럼 아름답고
귀여운 이들의 웃음을 보자 그만 넋을 잃고 황홀함에 취하고 말았다.
사실 두 소녀의 용모는 절세미인이었다. 평소에 듣지는 못했어도
그 아름다움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하물며 양몽환이 알약을 받아먹자 마음속으로 매우 즐거워 웃는 얼굴은
더욱 아름다웠으니 군협들이 그 매력에 푹 빠져 취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은근히 심술이 난 문공태는 마가홍에게 입을 삐죽했다.
「마도형은 과연 사람을 볼 줄 아시는군.
소년에게 제대로 직책을 주었군. 저는 매우 감탄했소이다.」
마가홍도 넌지시 그 말을 받아 넘겼다.
「문형! 과장은 아직 이르오.
곤륜파의 세 분 도형께서 문하제자의 출전을 허락하실는지 아직은 모르지 않습니까?」
문공태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것은 마형께서 마음 놓으시오! 곤륜삼자는 원래가 군자 같으신 분들이라
허락 않을 리 만무하오.」
그 말은 당장 승낙하라는 말보다 더 날카로운 압력이었다.
옥영자는 얼굴을 굳히면서 양몽환을 쏘아보았다.
「이 싸움은 우리 곤륜파의 명예를 건 싸움이다.
추호도 비겁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중대한 임무를 완수할 자신이 있느냐?」
「만일 제자의 무예가 적보다 못하다면 싸움터에서 죽어 사문에 사죄하겠습니다.」
옥영자는 양몽환이 도옥의 적수가 못됨으로 스스로 물러설 줄 알았다.
그러나 의외에도 싸움터에서 목숨을 걸고 사문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원하니 딱한 노릇이었다.
미간을 찌푸리고 일양자를 힐끔 본 후 마지못해 승낙하고 말았다.
「그럼 좋다. 네가 그토록 출전할 것을 원한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마가홍은 옥영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득의만만해서 부산스럽게 떠들어 했다.
「도형께서 쾌히 응낙을 하셨으니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을 것 같소이다.
제가 여러분의 추천으로 지도자 위치에 올랐으니 응당 내가 먼저 선봉에 서야 옳겠지요.」
그는 즉시 의기양양해서 수중의 장검을 휘두르며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자 문공태도 청죽장을 여봐란 듯이 휘두르고는 제법 큰 소리쳤다.
「이것은 우리들의 일인데 마형만 모험하게 내버려 둘 수야 없지 않습니까?
저도 같이 가리다.」
그도 한바탕 위세를 부리면서 왼손으로 품안에서 금환을 한주먹 끄집어내 쥐고
오른손의 죽장으로는 가슴을 막으면서 곧 뒤따라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등뢰가 아미파의 세 장로와 곤륜 삼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마도형과 문형이 위험을 무릅쓰고 숲 속으로 뛰어 들어 갔으니
우리도 그냥 보고만 있을 수야 있습니까? 다 같이 숲으로 쳐들어갑시다.」
그러나 아미파의 세 장로는 딴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
물론 같이 뛰어 들어가 싸우겠지 만 그들은 그들대로의 딴 목적이 있었다.
그들은 천용방의 몇 단주를 생포하여 자기들의 장문인인 초범 대사와
교환하려고 하였던 것이었다.
그래야 만이 자기들의 체면을 만회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도 결국은 무기를 휘두르며 숲 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입장이 거북하게 된 옥영자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답답해진 옥영자는 일양자와 혜진자에게 의논을 해왔다.
「우리로서는 귀원비급을 뺏을 자신은 물론 없을 것 같소.
그렇다고 눈을 뜨고 천용방 손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교
이것은 구대 문과의 흥망성쇠에 관한 일이라 우리에게도 영향은 많을 거예요.
여하간 우리도 뛰어듭시다.」
그는 장문인이였기에 독단으로 일을 처리해 나갈 수 있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곤륜 삼자는 서로가 존경하고 있으니만큼 그렇게 일을 처리한 적이 없었다.
옥영자가 사형과 사매에게 대하는 태도는 언제나 겸손했고 마지못해 명령을 내리게 되더라도
그 어조는 매우 부드러웠다.
일양자는 허리를 굽히고 그 뜻을 받들었다.
「장문인의 현명한 말씀에는 이 늙은 사람도 기꺼이 따르겠소.」
혜진자는 귀원비급을 천용방의 손에서 빼앗은들 자신이 차지하지 못할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귀원비급의 쟁탈전에 참여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주약란이 평상시와는 달리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를 변해 시종일관해서 멍청하게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크게 걱정되기 까지 했다.
그녀는 주약란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주약란이 냉정하면 할수록 불안함을 더 느꼈다.
혜진자는 애초부터 큰 사형과 둘째 사형에게 좋은 말로 설득하여
귀원비급 쟁탈전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하였었다.
그러나 여러 파의 고수들이 있는 앞에서 차마 옥영자의 얼굴을 깎을 수가 없어
시종 말을 못하고 만 것이었다. 결국 일양자가 장문사형의 의사에 찬동을 표하자
더욱 자기로서는 반대 의사를 표할 수 없었다.
옥영자는 혜진자마저 이의가 없자 등 뒤에서 장검을 뽑아 들었다.
「사형! 사매께서 이의가 없다면 우리도 숲 속으로 들어갑시다.」
옥영자가 선두에 서서 곧장 앞에 있는 숲 속으로 뛰어들자 일양자와 혜진자도
동시에 칼을 뽑아 들고 뒤를 따랐다.
양몽환은 하림에게 속삭였다.
「너는 대 언니와 같이 와요.」
하고는 재빨리 스승의 뒤를 따랐다.
하림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때 양몽환은 이미 숲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았다.
등뢰는 이 모든 광경을 보고 난 후에야 아미파의 세 장로를 보고 손 모아 합장하며 말했다.
「세 분께서도 따르시지요?」
하고는 흰 옷을 펄렁거리며 숲 속으로 뛰어들자
그의 제자도 동시에 일약하여 뒤를 따랐다.
그 뒤를 이어 아미파의 세 장로와 다벽금강 도일강이 서로 쳐다보고는
그들도 같이 숲 속으로 뛰어 들었다.
모든 군협들이 순식간에 숲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하림은
스승과 양몽환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양몽환의 말대로 대 언니와 같이 갈 때까지 그는 어쩌면 좋을까 하고 멍청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은 무척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다.
주약란은 군협들이 모조리 숲 속에 들어간 후 서서히 하림에게로 와서
그녀의 한 손을 꼭 쥐어 주었다.
「가자! 우리도 가봐야지.」
주약란도 하림과 조소접을 데리고 숲으로 들어갔다.
그러한 그녀의 표정은 더 없이 즐거워 보였다.
얼굴에는 시종 미소를 풍기면서 서두는 폼이 귀원비급에 관해서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고 잊어버린 것만 같이 보였다.
그 숲은 별로 깊지 않았다 얼마 후에는 곧 한쪽 끝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양 쪽은 하늘을 찌르는 절벽이 우뚝 솟아 있었고 계곡은 깊었지만
폭은 사오 장 넓이 밖에는 되지 않았다.
주약란은 조소접을 돌아보고 비로소 입을 열었다.
「이 계곡은 얼마나 깊은지 위에서는 그 바닥을 내려다 볼 수 없어.
이 깊은 계곡 저 쪽은 만 장이 넘는 절벽이야.
그러니 천용방이 그 책자를 가지고 숲으로 들어 왔다 해도 틀림없이
이 계곡에서 출로를 찾을 도리 밖에는 없을 거야
결국 그들은 스스로 막다른 골목에 뛰어든 꼴이지.
우리는 이곳만 수비하고 있으면 귀원비급을 도로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오대 문파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 책자를 탈취할 생각이므로
정세의 변화에 대해서는 쉽사리 예측하거나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그들이 지금은 힘을 합쳐 천용방에 대한 공격을 가하고 있지만
만일 우리가 그 책자를 도로 빼앗으려고 한다면
아마 그들은 천용방과 합세하여 우리를 칠거야.」
「그들은 모두가 무술계에 가장 명성이 쟁쟁한 무공을 지닌 사람들이에요.
자기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가 아니면 그들은 절기를 과시할 생각을 않겠죠?」
「방금 그들이 맹렬하게 싸우긴 했어도 자신들의 진정한 절기를 전개한 바 없어.
때문에 우리도 그 책자를 뺏기 위해 싸울 때는 주의해야 돼. 천천히 시기가 왔을 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해. 만일 실수를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큰 일이 벌어진단 말이야.
너는 이제 귀원비급에 기록되어 있는 무예를 모두 배워서 잘 알겠지만
무술계 일류인 십여 고수와 싸운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냐.
그러니 각별한 조심을 해야 책도 찾을 수 있고 문제를 간단히 처리할 수 있을 거야.」
조소접은 주약란의 말에 사실 느끼는 바가 많았다.
「저도 방금 그들이 맹렬히 싸우는 것을 보았지만 사실 겁이 좀 나더군요.
귀원비급의 일은 언니의 힘에 달렸어요!」
주약란도 조소접이 자기의 말을 다소곳이 들어주는 것이 여간 기쁘지 않았다.
「너는 귀원비급의 유래에 대해서 들어 본 일이 없을 거야.
천기진인이란 분이 삼백년 전에 오대 문파의 고수가 합세한 엄청난 공격을 격파하여
천하제일이라는 존칭을 받은 일이 있었어.
그런데 삼음신니라는 여자가 나타나 그의 천하제일이라는 존칭을 뺏으려고 했어.
그래서 밤낮 삼일을 싸우다 결국에 가서는 승부 없이 각자 중상을 입고 난 후에 비로소
적이 친구로 변하여 둘이 함께 귀원비급이라는 무술 책을 기록하게 됐어.」
「그러면 그들의 무공을 적어놓은 것이군요?」
「그럼! 천기진인이나 삼음신니가 부활한다 하더라도 너의 적수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야.
다만 평소에 연습을 자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법이나 신법을 각 절기에 맞추어
응용하지 못할 뿐이지.
직접 적을 대해 본 경험이 너무 적어 자신이 서지 않는 것이야.
사실 오늘날 무술계에 있어서 너와 상대할 사람은 없을 거야.
나의 온 재간을 다 해도 너하고는 몇 배의 차이가 있어.」
주약란은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요즈음 너를 유심히 관찰했지만 너는 이념과 무공 요결과는 완전히 관통하였어.
다만 너의 신심(信心)만 세진다면 일격에 적을 무찌를 수 있을 거야.」
조소접은 오히려 계면쩍은 듯 머리를 숙이고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편모슬하에서 대반약현공을 연마하였지만 수법과 장법은 배운 일이 없었다.
그러나 신화(神化)한 내공은 마음과 사상이 일치되어 잡념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법이었다.
오직 권, 장,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무공연마와는 달리 그 위세는 대단했다.
그녀는 자신이 그토록 신화한 무공을 지니고 있는 줄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녀가 천하에서 제일가는 무공을 지녔다고 하는 말에 믿기 어려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주약란은 그녀의 반응을 보느라고 한참 눈여겨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실력에 자신을 갖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약간 실망한 주약란은 다시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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