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38 장 얻은 자와 잃은 자 <群雄亂舞>

오늘의 쉼터 2014. 6. 22. 14:33

제 38 장 얻은 자와 잃은 자 <群雄亂舞>
 

 

  이때,

 

미리부터 이요홍과 아미파 대사들과의 관계를 알고 있던 양몽환은 이요홍을 노리고

초혜가 달려들자 잠시의 간격도 두지 않고 번개같이 몸을 날려 초혜의 뒷덜미를 향하여

덤벼들었다.

 

비록 양몽환의 무술이 초혜보다는 못하지만 이요홍만 노리고 달려들던 초혜로서는

뒤에서 달려드는 양몽환의 공격을 피할 재주는 없었다.

사실 호혜로서는 이 기회에 이요홍의 급소를 찔러 원수를 갚은 후 괄창산을 떠나려던 계획이었다. 그러나 난데없는 양몽환의 공격을 받고는 만사가 나무아미타불이었다.

 위기에 직면한 초혜는 재차 일격을 가하려는 양몽환의 장풍을 막으며 몸을 돌려 팔을 휘둘러

선수를 바꾸었다.

 

그 바람에 이요홍은 깨끗이 놓치고 우선 달려드는 장풍부터 막고 봐야 할 일이 더 급했다.

이때까지 자기를 공격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대항하던 초혜는 상대가 다름 아닌

양몽환임을 알자 그야말로 노기가 충천했다

 

  (요놈, 너 잘 걸렸다. 네놈 때문에 우리 일파가 엉망진창이 됐다. 이놈!)

 

  노리고 달려드는 초혜의 눈에서는 살기(殺氣)가 뚝뚝 흘렀다.

삽시간에 싸움터로 변한 계곡은 서로 내려치고 몰아치는 장풍이 부딪쳐 요란한 소리가 진동했다. 모래가 날리고 나무가 부러져 나갔다.

그러나 승부는 곧 나고 말았다. 초혜의 강한 장풍을 맞받아 내던 양몽환의 몸이 공중으로

높이 솟았다가 떨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주약란은 누구도 아닌 양몽환이 허공에서 원을 그리며 떨어지자

부축하고 있던 이요홍에게서 손을 놓으며 몸을 날렸다.

주약란이 초혜를 향하여 달려들자 초진과 초혜가 양쪽에서 협공하며 주약란을

가운데로 몰아세우고 맹렬히 장풍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이 돌변한 사태에 눈이 둥그레졌던 하림은 양몽환의 몸이 공중에서 무참히 떨어지는 순간

자기도 알 수 없는 괴상한 소리를 외치며달려 갔다.

그러나 너무나 높이 떴다 떨어지는 바람에 정신을 잃었는지

 

「앗!」

 

외치며 부둥켜안은 하림의 얼굴도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또 어찌된 일인가.

틀림없이 물러갔다고 생각했던 문공태가 어느 사이에 나타났는지

지금 한참 기력을 운행 조절하고 있는 이요홍에게로 번개같이 덮쳐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청죽장을 높이 들었다가 내려치는 순간,

지팡이에서는 파란 장광이 하늘을 뒤덮고 말았다.

문공태의 뒤를 이어 번천안과 등뢰가 쏜살같이 지쳐들어 왔다.

그들은 워낙 쟁쟁한 고수들인지라 그림자가 지나갔는가 하면 벌써 일격을 가하고

몸을 빼는 날쌘 재주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뒤미처 달려온 번천안이 대갈일성하며 한발 앞선 문공태의

어깨를 내려치는 것이었다.

번천안의 내공 역시 문공태에 지지 않는 강한 내공이며 무공이었다.

문공태의 어깨를 내려치는 강한 장풍과 함께 발길로 내지르는

그의 빠른 동작에는 문공태도 비틀거리며 한걸음 앞으로 쓰러지듯이 옮기다 우뚝 서며 돌아섰다.

일단 앞서가던 문공태를 물리친 번천안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요홍의 어깨를 힘 있게 움켜잡았다. 그러나 번천안의 급습을 받고 멈칫했던 문공태는 청죽장을 높이 들었다가 이요홍의 어깨를

덮치는 번천안의 팔을 힘껏 내려쳤다.

전세가 역전된 번천안은 왼팔이 떨어져 나가는 듯 심한 고통을 느끼면서도 오른 손에 들리어진

장검으로 신용탁두(神龍卓斗)의 한수를 써서 문공태의 가슴을 겨누고 휘둘렀다.

  괴상하게 돌변해 버린 문공태와 번천안의 일대 격전장은 뒤미처 달려온 등뢰와 일양자가

한편에서 어울려 검광을 날리고 이 북새통을 이용한 혜진자는 이요홍을 둘러업고 경공법으로

날아버렸다.

상대를 놓쳐 버린 문공태와 번천안의 싸움은 아무리 미욱한 놈이라도

 상상만 하면 웃음이 절로 터질 지경이었다.

  여기까지 올 때는 뜻이 합해 졌다가 각기 제 본심을 버리지 못해 맞붙은 꼴이

그나마 이요홍이 없어진 다음에도 가쁜 숨을 씩씩거리며 사생(死生)을 겨루는 것이었다.

얼마를 용호상박(龍虎相搏)으로 싸우던 번천안은 이요홍이 없어진 것을 알고는

재빨리 주위를 돌이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혜진자의 등에 업혀 도망가는 이요홍을 발견하고는 이번에는 기수를 바꾸어

질풍 같이 쫓아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이건 또 무슨 일이냐는 듯이 청죽장을 꼬나 잡고 번천안을 노리던 문공태는 아차!

무릎을 치며 번천안의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이러는 동안 정신이 나간 사람은 조소접과 그녀의 시녀들이었다.

가만히 전세를 살펴보면 싸우기는 싸우는데 누가 누구하고 싸우는지 분간할 재주가 없었다.

주약란은 아미파의 세 대사와 그리고 일양자는 등뢰와 싸우는 것은 알겠는데 번천안과 문공태,

그러고 혜진자와 이요홍 또 지금은 일양자에게 붙잡혀 싸우는 등뢰도 번천안의 뒤를 들아

달려 나오는 것이 아닌가?

빙빙 눈알이 돌아가는 일이 아닐 수 없었고 또 누구를 도와주기는 주어야 했는데

누구를 도와야 하는지 조차 분간할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면서 달려들기도 쑥스러운 노릇이었다.

한편, 아미파의 세 대사와 일격을 겨루던 주약란은 여유 있게 그들의 일격을 피하며

저절로 지치도록 작전을 쓸 뿐 맹렬한 공세를 취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또 괴상한 일이 벌어졌다.

번천안이 혜진자를 노리고 달려들자 문공태의 사제인 도일강이 번개같이 뛰어 들며

혜진자를 옹위하고 번천안과 맞붙는 것이었다.

그러자 번천안을 쫓아가던 문공태는 기수를 돌려 등뢰와 싸우고 있는

일양자에게로 지쳐 들어갔다.

그러자 등뢰는 일양자를 문공태에게 인계하고 이번에는 도일강과 번천안이 싸우는

곳으로 달려가 이놈 치고 저놈 치고 좌충우돌로 활약이 대단했다.

  일이 이렇게 벌어지자 조소접은 혀를 내 두르고 말았다.

 

  (잘 들 하시는군. ‥‥‥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길이 있나‥‥‥‥

적인가 하면 우리 편이고, 우리 편인가 하면 또 적이고 ‥‥‥ 이상야릇하군! )

 

  그러는 한편, 삼수나찰 팽수위는 양몽환과 하림을 옹위하느라고 독사(毒砂)를

한 주먹 쥔 채 역시 괴상한 싸움터를 바라보다가는 무엇이 우스운지 혼자 피식 웃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멍청히 서서 두리번거리던 조소접은 될 대로 되라는 듯이 먼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는 한편, 좌충우돌로 번천안을 치고 도일강을 치던 등뢰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이번에는 그들과 합세하여 기수를 돌려 혜진자에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제일위험한 사람은 이요홍과 혜진자가 되어 버렸다.

  한 손에 이요홍을 부축한 혜진자는 위기를 면할 길 없어 할 수없이 추혼십이검법을 발휘했다.

그러나 상대는 세 명, 자기는 한손에 이요홍을 부축한 몸, 상대가 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문공태와 등뢰 그리고 번천안 등이 이요홍을 노리고 납치해 갈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제히 혜진자에게 달려들 이유가 없었다.

이러한 위급한 시기에 조소접의 시선이 혜진자에게로 향했다.

 

  순간,

 

그렇지 않아도 누구를 도와야 할지 분간하지 못하고 망설 이던 조소접의 눈에 광채가 번쩍 했다.

가는 허리를 굽혔다가 살짝 땅을 찬 조소접은 물 찬 제비같이 허 공을 날아 혜진자를 가로막고

번천안과 마주섰다.

마침 칼끝에 독기를 집중하고 혜진자를 노리던 번천안은 눈앞에 반짝 하면서 나타나는

조소접의 미모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조소접의 일격에 일장이나 뒤로 날아 떨어져 눈을 꾹 감고 말았다.

희한한 노릇이었다.

분명히 미모의 여자가 나타난 것은 기억하겠는데 여기 일장이나 떨어진 곳으로

날아온 자기 몸이 아 무래도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몸뚱이 같기만 했다.

몇 번 눈을 떴다 감았다 해서 분명히 자기의 몸이라고 생각한 번천안은 땅을 치며 분통해 했다.

 

  (내가 미쳤지 지금이 어느 때라고 여자에 홀려서‥‥‥)

 

  통탄하며 기다시피 간신히 일어난 번천안은 조소접의 무공보다 그 미모에 또 한번 놀랐다.

  같이 싸우던 도일강과 등뢰는 한 쪽에서 저희들끼리 다시 일격을 겨루는 중이고

조소접은 무슨 기쁜 일이라도 있는지 하늘을 손가락질 하며 혜진자와 웃으며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그러는 조소접의 모습은 그녀가 입은 하얀 옷과 어울려 더욱 아름답고 청아하게 보이는 것이었다.

 

  (아하! 이게 어찌된 일인고? 가만있자,

나는 누구하구 싸운다? 그렇지, 그렇지. 이요홍을 붙잡아야지.

내 정신 좀 봐라‥‥‥그런데 저 여자가 버티고 있다면 곤란한데? )

 

  번천안은 엉거주춤 일어선 채 잠시 전세를 관망했다.

  조소접의 시녀들과 팽수위는 처음서부터 끝까지

그 자리에 선채 움직이지 않고 주약란은 주약란대로 여전히 아미파의 세 대사와 겨루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문공태를 상대로 일양자와 옥영자가 맞붙어 있었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돌아갔다.

  갑자기 싸움의 상대를 잃은 번천안은 등뢰와 도일강이 싸우는 곳으로 뛰어들까 생각하다가

바로 그 옆에 있는 조소접에게로 시선이 또 멎는다.

 

  (아무래도 내가 이상하지‥‥‥ 빨리 가서 싸우지 않고 이거 뭐하는 짓이 야! )

 

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눈만 껌뻑거리고 있었다.

  얼마동안 그렇게 엉거주춤하고 서 있던 번천안은 쇠퇴하여진 진기를 운행시키는 한편,

한쪽으로 굴러 떨어진 장검을 주워들고 어슬렁어슬렁 걸음을 옮겼다.

그러는 바로 그때, 초원과 초혜가 동시에 비명 소리를 내며 똑같이 거꾸러지고 말았다.

 

「? ‥‥‥‥‥‥」

 

  눈이 휘둥그레진 번천안은 걸음을 멈추고 장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제풀에 쓰러지지 않는 대사들을 상대하던 주약란은

 더 기다리지 못하고 연거푸 세 개의 강한 장풍을 일으켜 세 명의 대사에게

하나씩 안겨 주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하 루 종일 싸움으로 지친 그들은 조금 강한 주약란의 공격을 받자

엉덩방아를 찧고 곤두박질하듯 재주를 넘고는 다리를 쪽 뻗었다.

그러나 초원만은 즉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앉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그들이 몇 걸음씩 뒤로 물러가서 지친 듯이 쓰러지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요홍에게로 몸을 날렸다.

 조소접의 도움으로 위기를 면한 이요홍과 혜진자는 주약란이 달려오자

지금까지의 위기도 잊은 양 활짝 웃었다.

 

「어때요? 상처가」

 

   이요홍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주약란에게로 한걸음 다가갔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지금은 몹시 아프군요.」

 

「아프다고? 상처를 좀 보여 줘.」

 

   주약란이 이요홍을 눕게 한 다음 상처 난 곳을 보려는 순간이었다.  

돌연, 괴상한 기합소리와 함께 강한 장풍이 조소접의 등 뒤로 불어 닥쳤다.

그때까지 기력을 운행하고 단단히 벼르고 있던 번천안의 필살의 일격이었다.

무의식중에 강한 일격을 받은 조소접의 몸은 순간, 이상한 일이었다.

응당 쓰러져야 할 조소접의 몸은 연처럼 허공으로 둥실둥실 떠서 올라가는 것이었다.

얼마를 그렇게 올라가던 조소접의 몸이 허공에서 한바퀴 비잉 돌고는 독수리같이

속도가 돌변하며 번천안의 머리를 향하여 내려 꽂히는 것이었다.

 즉시 머리 위로 내려 꽂히는 조소접을 발견한 번천안은 고개를 하늘로 치켜 올린 채

뒷걸음질치며 물러서다가 돌에 걸려 발랑 자빠지고 말았다.

그러자 바로 뒤에서 네 명의 시녀가 일제히 달려드는 것이었다.

위기일발! 쓰러진 채로 몸을 굴려 위기를 면한 번천안은 사방팔방에서 달려드는

네 명의 시녀를 피해 도리 없이 일장이나 도망갔다가 정신을 가다듬고 내달아 나왔다.

  지독한 놈이었다.

그만하면 놀랐거나 지치기도 했으련만 그냥 씩 씩 거리며 달려드는 번천안은

여전히 머리 위로 장검을 바람개비처럼 돌리며 달려오는 것이었다.

  이때, 여전히 굴하지 않고 달려드는 번천안을 보다 못한 주약란은 맞받아 나가며

두 손바닥을 높이 들었다가 키질하듯 두 번 흔들었다.

  그러자 기세 있게 달려오던 번천안은 그 자리에 픽! 쓰러지는 가 했는데 쓰러진 채

그대로 일장(一丈) 밖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다 바위에 부딪치며 간신히 멈추어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옷은 물론 모래를 뿌옇게 뒤집어쓰고 가쁜 숨만 몰아 쉴 뿐 꿈쩍 하지 못하고 말았다.

  번천안이 굴러가자 주약란은 혜진자에게로 다가가 머리를 숙이며 혜진자를 불렀다.

 

「노선배님! 이소저를 부탁합니다.

후배는 오늘 살계(殺戒)를 대개(大開)할까 하옵니다.」

 

하고는 보검을 쥐고 돌아섰다.

 

  한편, 허공에서 번천안을 향하여 내려 닥치던 조소접은 쓰러진 번천안에게

네 명의 시녀가 달려드는 것을 보자 시녀들에게 번천안을 맡기고

그 길로 기수를 돌려 일양자와 싸우고 있는 문공태에게로 달려 들어갔다.

 

처음에는 선뜻 달려 나오기를 주저하던 조소접이었지만 한 번 나선 다음에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눈에 띄는 대로 쫓아가 요절을 내기로 결심했다.

 그때, 문공태는 허공에서 조소접이 날아오는 줄도 모르고 화산과의 절학(絶學)인

팔십일초 복마장법(八十一招伏魔杖法)의 한 수로 일양자의 추혼십이검법과 대결하여

먼지를 날리고 있는 중 이었다.

이 사이를 뚫고 내려 닥친 조소접은 문공태의 어깨를 발길로 걷어차고

일장 밖으로 몸을 날려 내렸다.

온 정신이 일양자에게만 있던 문공태는 생각지도 못했던 조소접의 일격에

허리가 꺾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무릎을 끊고 주저앉았다.

그러나 그도 역시 고수, 이만한 정도에 쓰러질 문공태가 아니었다.

 펄쩍! 일어난 문공태는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에 살기를 띄우면서

청죽장을 휘두르며 일양자에게로 성난 호랑이처럼 달려들었다.

순간, 하늘을 뒤덮는 새파란 기운이 일양자의 몸을 에워싸고 말았다.

일장 밖에서 그들의 싸움을 보며 재차 공격을 가하려고 벼르던 조소접은

일양자의 몸에 푸른 기운이 감돌자

 

「앗!」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리고는 귀원비급에 기록되어 있는 무술의 한가지인 도음접양(導陰接陽)의

한 수로 문공태의 머리를 후려치고 어깨를 잡아 낚아챘다.

문공태의 어깨를 움켜쥔 조소접은 손에 힘을 주어 몇 번 정신 차리지 못하게 앞뒤로

흔들다가 앞으로 잡아채며 손을 놓았다.

그러자 조소접의 손을 떠난 문공태는 정신없이 거의 백여 걸음을 빠르게 뛰다가

하늘로 부웅! 떠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청죽장을 쥔 채 네 활개를 펴고 허공을 나는 것이 흡사 독수리가 나는 모양 같았다.

조소접의 무공에 문공태는 발을 멈추지 못하고 엎어지듯 달려가다

허공으로 떠버린 몸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훨훨 허공으로 날으는 문공태를 향하여 조소접의 하얀 손이 무슨 물건을 잡아 올리듯

손짓을 하니 이건 또 웬일인가?

허공을 날던 문공태의 몸이 즉시 방향을 바꾸어 옥영자와 마주 싸우는 등뢰의 어깨 위로

소리도 요란하게 부딪치며 떨어져 머리를 받았다.

  그 서슬에 등뢰는 그 자리에서 엉덩이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주저앉고 말았다.

  사실, 조소접의 절학에 할 수 없이 허공으로 날게 된 문공태는 되돌아오며 등뢰에게 부딪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급히 몸이 떨어졌지만 등뢰를 피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할 수 없이 부딪치고 말았다.

  아무리 발버둥질을 치고 몸을 비틀어도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문공태는

등뢰에게 부딪치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등뢰의 몸에서 굴러 떨어진 문공태의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하고 핏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고수급들의 싸움이라 문공태의 덕분으로 호되게 얻어맞고 등뢰가 쓰러지자

일양자와 옥영자 그리고 조소접은 손을 털고 그 자리를 물러서서 하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악한 무리들이라면 그 길로 달려가 숨을 끊었겠지만 그들은 그렇지는 않았다.

그러자 도일강이 급히 달려와 신약(神藥)으로 불리는 설연자(雪蓮子)를 문공태와 등뢰의

입에 한 알씩 넣어 주었다.

  입으로 들어간 설연자가 조금 쓴 맛이 돌며 한줄기의 액체로 목신이 밝아지는 것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허어! 과연 신기한 약이군!」

 

  일어나는 길로 도일강의 어깨를 두들기며 좋아했다.

 

  그와 함께 등뢰 역시 엉덩이에 묻은 흙을 툭툭 털며 일어나 앉아 서는

크게 하품을 하는 것이었다.

  등뢰가 일어나 앉아서는 크게 하품을 하는 것이었다. 

등뢰가 일어나 앉음을 본 문공태는 급히 등뢰에게 다가갔다.

 

「등형! 아프지는 않소?」 

 

  사실 자기가 등뢰를 받아넘긴 것은 자기도 어떻게 할 수 있었던

조소접의 무공 때문이었다고 해명하려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길 없는 등뢰는 주먹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뭐라고? 아프지 않느냐고? 어디 맛쯤 봐라. 아픈가 안 아픈가?」

 

  펄쩍 일어나는 것을 문공태가 황급히 껴안으며

 

「사실은! 사실은!」

 

  겨우 진정시킨 다음 사실대로 말했다.

그제야 등뢰도 어이없다는 듯이 눈을 껌벅거리는 것이었다.

 

  견식과 이목이 날카로운 주약란은 벌써 조소접이 도음접양 수법의 한 수로

두 명을 쓰러뜨리는 무술에 아연히 경탄하며 언제나 그랬듯이 속으로 고마워하고 있었다.

  다만 주약란 뒤에 숨어서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는 그녀의 도움에 절로 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는 주약란을 불러 세우는 이요홍의 가냘픈

음성이 들렸다.

 

「언니! 이것‥‥‥」

 

  돌아보는 주약란 앞으로 이요홍은 비단 보자기에 싼 물건을 흔들어 보였다.

 

「그게 뭔데? ‥‥‥」

 

「귀원비급이에요. 제가 찾아 왔어요.」

 

「귀원비급?」

 

  돌아서서 뛰어가는 주약란의 두 손에 안겨주듯 조심히 내어 주는 것은

분명 그렇게 찾고 찾던 귀원비급임이 틀림없었다.

  그러자 주위의 많은 시선들이 일제히 이요홍의 손에서 주약란의 손으로

옮겨지는 비급에 집중되었다.

 

「어떻게 찾았어?」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큰 소리로 외치듯 묻던 주약란은 속으로 아차 했다.

너무 큰 소리에 주위의 시선이 어떨까 급히 돌아보는 그녀의 주위에는

광채가 번뜩이는 수많은 눈들이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서서히 몰려오는 것이었다.

문공태를 위시하여 다리를 절룩거리는 번천안,

비틀거리는 등뢰가 몰려오고 도일강이 일양자의 앞을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옆에서는 녹초가 된 초원과 초진

그리고 초혜가 입을 헤벌리고 몰려오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급히 품속으로 비급을 넣으며 눈을 흘겼다.

 

「오지 말고 거기들 서요!」

 

  꽃같이 아름답고 귀여운 미모의 주약란이지만 노려보는

그녀의 눈에서는 아무리 강철 같은 사나이라도 위압하고 남는 날카로운 광채가 있었다.

무술제의 고수급들이라고 자칭하는 군웅(群雄)들이지만 지금까지의 결투로

상대방의 실력을 알고도 남는 터라 자신들도 모르게 주약란의 한마디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면서도 눈들은 깜짝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분통이 터지는 사람은 바로 문공태였다.

 

「흥! 이거 우리들은 헛수고만 했군. 그렇지 않소. 등형!」

 

하는 것은 사실 지금까지 엉덩이며 어깨가 빠개지도록 결투한 일이 후회된 다기 보다

일찍 이요홍을 잡았더라면 영락없이 차지했을 귀원비급이 주약란의 품속으로 어이없이

들어갔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주약란과는 적수가 못되는 자신으로서는 어쨌든 등뢰나 번천안과 합세하여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다는 속셈에서 등뢰의 눈치와 속마음을 떠보려는 것이었다.

 

문공태의 말을 들은 등뢰 역시 울화가 치밀 노릇이다.

 

「젠장! 고생고생 해가며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추적해 온 보람이 도대체 뭐야.

재주는 곰이 부리고, 흥!」

 

  넉장이 되도록 얻어터진 것을 설마 곰 아닌 자기의 재주라고야 못하겠지만

불철주야 고생 고생하다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비급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

등뢰의 심정 역시 문공태에 지지 않았다.

 

「안 그렇소! 번형!」

 

「누가 아니래, 기껏 죽 쑤어 남 줬으니‥‥‥‥

갖지는 못해도 보기라도 해야지‥‥‥나‥‥‥ 이거 원‥‥‥‥」

 

  어이가 없는지 연방 입맛만 다시는 번천안은 생각할수록 아까운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문공태의 속셈대로 등뢰와 번천안의 뜻을 알게 된 문공태는

 

「그럼 우리 뜻이 다 같은 모양인데 일제히 달려듭시다!」

 

  연합 전선을 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 하나도 먼저 달려들려는 기색은 없이 서로 눈치만 살피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라도 먼저 달려 나가면 뒤를 따르겠다는 뜻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날카롭게 노리고 있는 주약란의 눈을 보고서는 주춤하며

도리어 한 걸음이라도 뒤로 물러서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때, 여러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던 주약란은 품속에 넣었던

비단 보자기에서 세 권의 책을 꺼내들고 맞은 편 바위로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위 위에 귀원비급을 올려놓고 돌아섰다.

그러자 장내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고 주약란의 행동에만

온신경과 시선을 쏟고 있는 가운데로 주약란의 날카로운 음성이 퍼졌다.

 

「누구든지 이 귀원비급을 갖고 싶은 사람은 마음대로 가져가시오.」

 

  일동을 돌아보며 야무지게 터뜨리는 주약란의 말은 얼음처럼 찼다

 

  주약란의 말이 떨어지자 문공태와 등뢰가 서로 밀치며 달려 나오고

그 뒤를 번천안이 허둥지둥 달려 나왔다.

얼마나 원하고 원하던 귀원비급인가,

그것을 마음대로 가져가라니!

그러나 다음 순간, 주약란이 천천히 보검을 뽑아 하늘 높이 쳐드는 바람에

달려가던 군웅들은 제풀에 뒷걸음질을 치며 뒤로 자빠질 듯 서 버렸다.

그 서슬에 뒤에 달려오던 아미파의 세 대사가 문공태의 발에 걸려 쓰러졌다.

어느 누구든지 귀원비급에 손을 대는 순간, 댕강! 떨어질 목,

생각만 해도 목이 시큰거려 절로 손이 목으로 올라가는 것이었고

자기의 목이 붙어 있는지 확인하게 되는 것이었다.

조금 전까지 서로 밀치며 달려들던 것과는 반대로 돌변한 분위기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언니! 제가 가지면 안돼요?」

 

하는 것은 조소접이었다.

그러자 문공태의 눈썹이 치켜 오르며 청죽장을 휘둘렀다.

 

「뭐라고? 네가 가질 수 있다면 나도 가져 보자!」

 

  고함을 지르며 달려오던 문공태는 휘두르던 청죽장으로

귀원비급을 힘껏 쳐 날려 버렸다.

  문공태의 청죽장에 놀란 조소접은 귀원비급 보다 문공태의 처치가 급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조소접의 일격으로 문공태가 나가떨어진 것과 거의 같은 시각에

문공태의 청죽장으로 허공으로 높이 날았던 귀원비급이 등뢰의 머리 위로 떨어진 것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자기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귀원비급을 피해 도망갈 등뢰인가?

  우선 목이 달아나는 한이 있더라도 받아 쥐고 볼 일이었다.

누워서 굴러오는 호박을 차지하게 된 등뢰는 귀원비급을 받자마자

품속으로 쑤셔 넣고 몸을 도사렸다

 

「누구든지 덤벼라!」

 

  이때, 몸을 도사리고 방어태세를 취한 등뢰에게 달려오는 네 명의시녀가 있었다.

조소접의 시녀들이었다.

  일제히 달려드는 시녀들을 향해 먼저 선수를 가한 등뢰는 어렵지 않게

시녀들의 포위망을 뚫고 멀리 팔구척이나 뒤로 몸을 피하고 어디로든지

달아날 궁리에 눈알을 굴렸다.

그러나 비록 귀원비급을 가진 등뢰가 시녀들의 공격권을 벗어났다

하지만 주약란의 공격권은 사방 십여 장의 거리,

서두름 없이 어검술을 발휘하여 등뢰를 향하여 달려 나갔다

  한편, 번천안으로 말하면 이름은 무술계의 고수급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어검술을 터득하지 못한 주제였다.

그러기 때문에 몇 달 동안을 허비하여 연구하고 연습했으나

끝내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자기가 배우려던 무술을 바로 눈앞에서 주약란이

빠른 동작으로 발휘하자 항상 선망의 대상이었던 어검술에 그만 도취되고 말았다.

 

「와아! 멋진 무공! 빈도는 오늘에야 눈요기 했소이다!」

 

  넋을 잃고 소리를 외치는 것이었다.

 

  한 번 땅을 가볍게 차며 허공을 날은 주약란은 오행미종보법으로 수를 변화시켜

벼락 같이 달려들어 등뢰의 등덜미를 후려치고 다시 허공으로 날았다.

  한줄기의 광채가 번뜩했다고 생각하면 등덜미에 불덩이 같은 공격이

떨어져 잔뜩 도사리고 주위를 살피는 등뢰였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허공 뿐,

잠시 마음을 놓으면 어디선가 흰빛이 번뜩하고 떨리며 바른 어깨가,

그리고 또 왼쪽 어깨가 떨어져나가듯 아픈 것이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번뜩 하면 쾅! 하고 등덜미, 번뜩하면 쾅! 하고

 바른 어깨, 쾅! 왼쪽 어깨, 번뜩 등덜미 이런 식으로 오도 가도 못하고

꼼짝없이 서서 공격을 당해야 하는 등뢰로서는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도대체 사람이든 괴물이든 보여야 싸우지,

 계속적으로 내려치는 발길질에 견디다 못한 등뢰는 너무나도 놀라고 당황한 나머지

품속에 넣었던 귀원비급을 눈물을 머금고 허공으로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귀신같은 장난에 목숨이 붙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귀원비급을 허공으로 던지는 순간, 자기 몸에 있는 진기라는 진기는

몽땅 다 모아 허공으로 던진 귀원비급을 힘 있게 후려쳐 보냈다.

  순간, 오행미종보법의 수로 몸을 감추고 등뢰를 공격하던 주약란은 허공으로 던져지는

귀원비급을 받기 위하여 오행미종보법을 거두고 몸을 나타내며 손을 내뻗었다.

그러나 등뢰가 내려친 장풍이 바로 귀원비급을 쫓아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주약란은 등뢰의 일장을 보기 좋게 얻어맞고 그녀의 맵시 있는 가냘픈 몸은

다시 허공으로 치솟아 자그마치 삼장 밖으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음!」

 

  떨어지는 주약란의 비명소리에 놀란 조소접이 지체 없이 곧장 몸을 날리자

그 뒤를 팽수위의 날쌘 몸이 날아 달렸다.

  그러자 네 명의 시녀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려 나왔다.

 

  그들이 주약란에게로 달려 왔을 때는 주약란의 입에서 빨간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을 때였다.

  재빨리 홍단환(紅丹丸) 한 알을 주약란의 입에 넣어준 조소접은

 

「언니! 삼켜요. 홍단환이에요.」

 

  머리를 들어주며 권했다.

주약란의 입으로 들어간 홍단환은 금방 액체로 변하며 목구멍을 넘어 들어갔다.

그러자 온 정신이 상쾌하게 밝아지며 절로 기운이 샘솟는 것이었다.

  잠시 후,정신과 건강을 회복한 주약란은 들고 있던 비급을 조소접에게 내주었다.

 

「동생이 잘 간수해요!」

 

하는 순간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알고 나타났는지 양몽환의 명문요혈(命門要穴)을 움켜쥔

금환이랑 도옥이 질풍같이 달려드는 것이었다.

 

「잠깐! 이 양상공의 목숨이 아깝다면 귀원비급을 얌전히 내놓으시지?」

 

「앗! 손을 놓지 못해요!」

 

  비명을 지르듯 외치며 달려드는 주약란을 가볍게 막은 도옥은

 

「만일 한걸음이라도 더 나오면 이 양상공의 내장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겠소!」

 

  살기가 등등한 도옥의 위협이었다.

주약란으로서야 그까짓 도옥의 무공쯤 아무것도 아니지만

도옥의 손에 움켜잡힌 양몽환의 목숨이 위태로워 더 나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하고 눈썹만 올릴 뿐이었다.

  그때 먼지를 날리며 달려온 혜진자가 번개같이 도옥의 가슴을 겨누고 달려들어다

그 바람에 양몽환의 명문 요혈에서 손을 뗀 도옥은 한 옆에 서 있는

하림을 번쩍 안아 혜진자를 향하여 던져 버렸다.

  질겁하며 놀란 혜진자는 허공을 나는 하림을 급히 받아 안았다.

그러나 이미 혈도가 마비된 채 기절한 하림이었다.

  혜진자가 하림을 받느라고 당황하는 그 틈을 탄 도옥은

아직 꼼짝 못하고 쓰러져 있는 양몽환을 독수리가 병아리를 낚아 채가듯 벼락 같이 잡아챘다.

그리고는 혜진자를 뒤이어 달려드는 일양자 앞으로 양몽환을 끌어 담겨 앞을 가로막았다.

 

「이 구렁이 같은 늙은이야! 꼼짝 마라, 한 칼에 목을 끊어주마.」

 

  아무리 도옥의 존재가 그의 위인으로나 무공으로서도 하찮고 미웠지만

양몽환의 목숨을 맡고 있는 이상 도리 없이 그의 위협에 굴할 수밖에 없는 일양자였고

주약란이었다.

무니주를 움켜쥐고 도옥의 면상으로 날리려던 주약란이나 장검을 뽑아 들고

한 칼에 요절을 내려던 일양자의 마음은 증오가 활활 타오를 것이었지만

도옥의 성품이 어떠하다는 그의 인간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섣불리 행동하여

목숨을 없애기는 머뭇거려지는 일이었다.

  이 위급하고 살벌한 시각을 떠맡고 나서는 사람은 역시 이요홍이었다.

원래 도옥과 이요홍의 사이는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그들 이었고

양몽환의 출현 전 까지는 서로 사랑하던 사이었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차츰 이요홍의 마음이 양몽환에게로 기울어져

서로의 관계가 미묘하게 되었지만 역시 인연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속히 그 분을 놓으세요.

귀원비급은 내가 훔쳤는데 그 분과 무슨 원한으로 그러세요.」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비틀거리며 도옥에게 매달렸다.

 

  도옥은 돌연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러가! 물러가지 않으면 당장 피를 흘리게 하겠어!」

 

  그러나 그만한 호통에 물러가거나 달려들거나 할 수 있는

건강한 몸의 이요홍이 아니었다.

지치고 피로한 몸이 도옥의 가슴에 엎어지듯 기대며 흐느끼는 것이었다.

 

「마음대로, 마음대로 하세요. 두렵지 않아요.」

 

   도옥은 머리를 비비며 미친 듯이 쓰러져 오는

이요홍의 허벅지를 발길로 걷어차며 두어 걸음 비키자

자기 몸을 더 지탱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도옥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여전히 양몽환의 명문혈을 쥔 채

기세 있게 버티고 서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도옥의 손아귀에 명문혈이 잡힌 양몽환은

거의 실신 상태에서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바라보지 못하고 축 늘어진 채

도옥이 움직이는 대로 끌려 다니고 있었다.

  이것을 보다 못한 조소접은 자기의 무공으로도 도옥의 손아귀에 들어있는

양몽환을 다치지 않고 도옥만을 쓰러뜨리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서자

주약란에게로 가까이 다가가 조용히 불렀다.

 

「언니! 양상공을 구하는 길은 이 귀원비급을 도로 내주는 방법밖에 없어요.

주어 버려요!」

 

  순간, 주약란은 양몽환과 조소접 그리고 자기 주약란과의 미묘한 관계를 생각하고

조소접을 돌아보자 조소접 역시 자기가 한 말이 주약란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는 것을

알아채곤 얼굴을 붉혔다.

  사실 조소접이 양몽환을 살려낸 후부터 자기도 알 수 없는 어떤 이상한 감정에

사로 잡혀 양몽환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 같은 것을 강렬하게 느끼고 있기는 했다.

그렇다면 그 양몽환을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가 존경하고 또 흠모하는

언니 주약란과 직접 대결한다는 이상야릇한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조소접이기도 했다.

  무심코 한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양몽환을 살리고 싶은 마음에서 주약란에게

말할 때 주약란의 의아해 하는 눈빛을 보는 순간

 

  (아차! 잘못 했구나‥‥‥)

 

했지만 일단 떨어진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만한 말에 낯빛이 달라질 주약란도 아니긴 했지만

주약란 역시 조소접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조소접이 먼저 말했다는 것은

자기가 양몽환을 생각하듯 조소접도 생각하고 있음을 알아챈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소접의 말이 아니어도 귀원비급을 도옥에게 주어 버리고 양몽환을

살리고 싶은 마음은 태산 같았지만 선뜻 결단을 못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주약란은 입술을 깨물며 도옥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그러자 주위는 삽시간에 긴장해지며 각기 무기를 편 손에 힘을 주는 것이었다.

도옥과 양몽환을 가운데로 하고 앞에는 주약란과 조소접이,

뒤에는 조소접의 시녀 네 명과 팽수위가 그리고 그 옆으로 일양자와 옥영자가

도옥의 행동을 주시하며 여차 하면 달려들 기세로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는 한편, 이때까지 귀원비급을 뺏으려고 그들의 말대로 고생에 고생만 하며

따라 왔던 문공태와 번천안 그리고 등뢰와 도일강이 역시 각기의 무기를 들고

주약란의 손에 들려진 비급을 노리며 접근해 오고 그 뒤를 아미파의 세 대사가

바싹 따라오고 있었다.

이렇게 한 때의 군협들이 다가옴을 발견한 주약란은 급히 조소접에게 고개를 돌렸다.

「동생! 저 악당들이 가까이 접근하면 모두 상처를 내 줘!」

 

「알겠어요. 염려 말아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몸을 돌려 밀려오는 군협들을 향하여 돌아섰다.

그러자 맨 앞에 선 도일강이 주약란의 손에 들려진 비급만을 노리고

번개같이 달려 나오는 것이었다.

 

  이때,

 

조소접은 별로 힘을 주지도 않고 손을 슬쩍 들었다가 가라는 시늉을 하듯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번천안의 찢어지는 듯한 외침소리가 도일강을 뒤로 물러서게 했다.

 

「도형! 빨리 엎드려!」

 

  소리가 나자 도일강은 달려오던 그 속도로 땅바닥에 배를 깔며 쭉 엎디었다.

그와 함께 조소접의 장풍은 도일강의 머리 위를 지나 멀리 몰려가고 도일강은 겨우 위기를 면했다.

지금 조소접의 장풍은 장풍 중에도 제일 절학인 반선장력(盤禪掌力)이었다.

장풍을 일으키는 사람이나 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보기 에는 그저 손으로 한번 흔드는 동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손에서 떠나가기 만 하면 바위를 부수는 무시무시한 위력이 숨어있 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안다.

그런데 마침 반선장력의 위력을 번천안이 알고 있었다.

  무심결에 얼핏 보던 번천안은 조소접의 장풍 수법이 경쾌함에 섬뜩하며

그것이 저 무서운 반선장력이라는 것을 깨닫자 도일강의 뒤에서 소리소리 외쳤던 것이다.

  다행히 번천안의 외침으로 아슬아슬한 위기를 면하기는 했지만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대가(代價)로 도일강의 몸은 일장(一丈)이나 데굴데굴 굴러갔다.

  조소접의 반선장력에 도일강이 굴러 떨어지고 번천안의 외마디 고함소리에 혼비백산한

문공태 이하 세 명의 대사까지 접근해 오기를 단념하고 저마다 뒤질세라

뒤뚱 뒤뚱 오던 길을 팔 척이나 물러가 멈칫거리며 서고 말았다.

  조소접의 손짓으로 군협들을 간단히 퇴각시킨 조소접은 주약란을 향하여 생긋이 웃었다.

그것은

 

  (안심해도 돼요!)

 

라는 무언의 암시였다.

 

  조소접의 표정에서 여유 있는 무언의 암시를 받은 주약란은 도옥에게 한걸음 더 다가섰다.

 

「소원대로 귀원비급을 주겠소.

그러나 섣불리 기교를 부려서 또 양상공을 해치면 용서치 않겠소. 자 가져가시오!」

 

  수백 년 동안 무술계의 중보(重寶)로 전설처럼 전해져 신비 속에 싸인 귀원비급을

하나도 아까울 것 없이 양몽환의 목숨과 바꾸는 주약란의 태도는 냉정하고

또 태연함이 이를 데 없었다.

무슨 장난감이나 던져주듯 도옥의 발 앞으로 던져 버렸다.

  도옥은 둘러 서 있는 군협들과 일양자 일행을 돌아본 후,

급히 비급을 집어 들고는 내 물건을 내가 도로 갖는다는 표정으로 거만하게 어깨를 들썩하고는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나 군협들이 여전히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것에 약간 당황하는 듯 했다.

 

「주소저! 약속대로 나도 양상공을 돌려줘야겠소.

그러나 미안하지만 내가 안전한 곳까지 가도록 전송해 준 후에라야 되겠소.」

 

  사자와 호랑이의 눈을 하고 있는 군협들이 아무래도 안심치 않은 모양이었다.

 

  주약란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으나 양몽환의 목숨이 그의 손아귀에 들어 있는 이상

그의 요구대로 들어 주어야 했다.

 

「그런 것은 어렵지 않고. 우선 양상공의 혈도를 풀어요!」

 

  승자(勝者)의 도도한 자세로 도옥은 양몽환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그러자 서서히 몸을 움직이며 눈을 뜨던 양몽환이 갑자기 성난 사자처럼

돌변하며 획! 몸을 돌리는 순간,

그의 손은 도옥의 명문요혈을 향하여 힘차게 내려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어찌된 일인가.

응당 양몽환의 강한 일격에 박살이 나야 할 도옥 대신 다시 양몽환의 상반신이

한풀 꺾이며 주저앉고 마는 것이었다.

그것은 미리 예상하고 있던 도옥의 빠른 불혈착골법의 한 수가 양몽환의 일격보다

먼저 내려쳐진 때문이었다.

 

이때,

조소접의 날카로운 부르짖음이 도옥을 긴장시켰다.

 

「앗! 비겁하게 불혈착골법을!」

 

  순간, 도옥은 자기가 쓰는 수법이 불혈착골법이라고 정확하게 알아 맞추며

외치는 조소접의 예민한 식견에 놀랐다.

그것은 이 불혈착골법을 괴인 스승 각우에게서 배운 후 그 스승을 죽여 버림으로써 

이 수법을 알고 있는 고수가 거의 없으리라 던 생각을 뒤엎게 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수법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절학을 알고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더 오래 여기에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자신의 생명도 위태하다는 것을 즉시 깨달은 도옥은

 

「주소저! 내가 나갈 길을 열어 주시오.

만일 듣지 않는다면 양형을 죽여 버리겠소!」

 

  어떻게 하든지 급히 이 자리를 떠나고 싶은 도옥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양몽환의 생명만을 구하고자 초조해하며 안절부절못한 주약란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아! 현도관주!」

 

  일양자였다.

 

「주소저! 인명은 재천이오(人命在天). 환이의 생사를 걱정하지말고 비급을 회수하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명이 재천이라 해도 당장 자기의 눈앞에서도옥의 손아귀에 붙잡혀 죽었다

살아났다 하는 양몽환을 바라보고서야 어찌 그 말을 믿을 수 있다는 말인가,

더구나 이 엄연한 사실을 어떻게 부인하는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조소접이 달려 나오며 날카롭게 외치는 것이었다.

 

「안돼요! 언니, 바래다 줘요.」

 

  주약란은 더 망설이지 않고 조소접의 말대로 고개를 끄덕이고

 

「가시죠!」

 

하고는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귀원비급과 양몽환의 목숨을 교환하기로 합의한 주약란은

도옥을 안전한 지점까지 호송해 주는 조건을 이행하기 위하여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그러한 그녀의 어깨는 더 없이 아래로 내려쳐진 것같이 보였다.

  주약란의 뒤를 도옥이 따르고 도옥의 뒤를 조소접이 그리고 양옆으로

네 명의 시녀와 팽수위의 그리고 맨 끝으로 하림이 천천히 따랐다

  그리고 거의 일장(一丈)의 간격을 두고 문공태 일행이 어슬렁거리며 따라오는 것이었다.

  얼마나 왔을까,

거의 십여 장(丈) 정도의 산길을 돌았을 때 도옥은 앞서가는 주약란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가

걸음을 멈추었다.

 

「주소저! 약속대로 여기서 헤어지는 것이 좋겠소.

이만하면 나도 안심하고 갈 수 있을 것 같소.」

 

「그럼 양상공을 놓으시죠.」

 

「물론, 그러나 내가 이제부터 혼자 십장 정도 앞서 간 다음에 놓겠소.

따라오지 마시오.」

 

「그 간사한 수단은 쓰지 마시요 그따위 말은 믿을 수 없어요.」

 

「진정이오. 양상공은 틀림없이 인계하겠소.」

 

「그에게 독수만 쓰지 않는다면!」

 

「좋소!)

 

  도옥은 양몽환을 번쩍 들어 주약란에게 던지며

 

「받아라!」

 

했을 때는 이미 이장(二丈) 밖으로 도옥의 몸이 날고 있었다.

 

  도옥이 뛰어 달아나면서 던진 양몽환을 받는 주약란의 뒤에 서 있던

조소접의 흰 옷이 바람에 슬쩍 날렸다.

순간, 허공을 높이 날은 조소접은 허공을 가르며 전광석화처럼 흰 광채를 날리며

달려가는 도옥의 앞길을 가로막고 사뿐히 내렸다.

 

「어디로 도망을 가려고? 어디 더 가 보시지?」

 

  조롱하듯 하는 말과 함께 그녀의 가늘고 횐 다섯 개의 손가락은 날카로운

지풍(指風)을 일으키며 도옥의 맥문(脈門)을 습격했다.

추격해 온 것이나 지풍의 습격이나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의 절반도 안 되는

극히 찰나적인 일이어서 도옥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옥이 알고 있는 지식으로서의 지풍인 탄지타혈신공(彈指打穴神功)은

적어도 삼십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을 연마하지 않으면 발휘할 수 없는 무공이었다.

그런데 이제 겨우 십칠팔 세에 불과한 조소접이 이 매서운 무공을 지니고 있다는

것에 도옥은 대경실색하여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그러나 상대방의 무공이 절학을 넘는 무공이라고 해서 무릎을 끊고 목을 사릴 만큼

졸장부가 아닌 도옥이다.

그래도 각우에게서 연마한 자기대로의 절학이 있지 않는가.

이형환위(移形換位)의 신법으로 조소접의 공격을 막은 도옥은 거의 이십여 합이나

막으며 공격했다.

  조소접이 지니고 있는 공력과 오묘한 수법을 발휘한다면 단 세 수만으로도

충분히 생포하거나 목숨을 앗을 수 있다.

그러나 별로 무술계에 경험이 없는 그녀로서는 자신이 알고 있는 많은 신법(神法)중에서

 어느 수법으로 대적해야 한다는 것을 적시적기(適時適期)에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의외로 고전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때, 문공태와 번천안 그리고 등뢰는 약 삼장 밖에서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만 갸웃거렸다.

  이상하고도 놀라운 일이었다.

  두 사람의 싸움은 조소접이 지니고 있는 무공이 워낙 신비하므로 일방적인 싸움이었으나

다만 방어에만 치중하고 있는 조소접의 행동이 이상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도옥은 싸울수록 그녀의 놀라운 무공에 두려움이 앞서 만일 도망가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는 당장 공격하여 뛰어 들려는 태세를 취하고 조소접이 주춤하기를 기다려 획! 돌아서서

뛰어 달아나기 시작했다.

  도옥이 도망갈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주춤했던 조소접은

즉시 몸을 날려 그림자처럼 뒤에 붙어 도옥의 뒷덜미를 잡으려고 하자

도옥은 급히 돌아서며 금환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나 금환검을 뽑아 들고 휘둘러 볼 여유도 없이 허공으로 날아간 조소접의 몸이

수직으로 곧장 내려 닥치는 가 했는데 철썩! 철썩! 자기의 뺨을 이리치고 저리치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이리저리 치는 것이었다.

그러자 도옥의 입과 코에서는 붉은 피가 펑펑 쏟아져 흐르는 것이었다.

  그런데 옆에서 구경하는 문공태 일당은 물론 뺨을 얻어맞고 있는 도옥 자신도

어디서 어떻게 어떤 솜씨로 때리는지 알 길이 없었다.

  이리 치고 저리 치는가 하면 한쪽 뺨만 계속해서 십여 대를 치는 동안

다른 한쪽 뺨은 이따금 한대씩 치고 또 그런가 하면 이번에는 그와 반대로

이따금 한대씩 치던 뺨을 계속 내려치고 다시 그 뺨은 이따금 한대씩 치는 것이었다.

  눈에서 불덩어리가 뚝뚝 떨어지고 뺨은 확확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삽시간에 도옥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 그리고 피로 얼룩이 지고 금방 퉁퉁 부어올랐다.

  도대체 몇 대를 맞았는지 몽롱한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살피는 도옥의 눈에는

양몽환의 혈도를 풀어주고 있는 주약란의 모습이 보였다.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아니 상실했다기보다 적수가 되지 않는 조소접과의 일전에서

무참히 패해 버린 도옥은 두 뺨을 내려 쓸면 놀란 소리로 주약란에게 항의하는 것이었다.

 

「주소저! 왜 약속을 지키지 않소?

길을 막거나 추격해 오지도 않겠다고 하고서 ‥‥」

 

「물론 약속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나하고만 약속한 일이에요.

다른 사람이 추격하지 않겠다는 것까지는 안 했어요.」

 

  냉정하게 쏘아 붙이는 주약란에게서 멀쑥해진 도옥은

그 분풀이라도 하는 듯 품속에서 귀원비급을 뽑아들고 높이 치켜들었다.

 

「만일 더 이상 나에게 접근하면 당장 이 비급을 불태워 버리겠소!」

 

  외치는 것이었다.

 

  이때, 사방을 에워싸고 있던 문공태 일당의 군협들은 얼굴이 백지 장처럼 하얗게 질려 버렸다.

「잠깐! 그러면 안 돼! 무슨 말이든지 할 말이 있으면 말로 해결해야지,

불태우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야.」

 

하는 문공태의 뒤를 이어 번천안의 기어들어가는 소리가 났다.

 

「천만에 절대로 불태우면 안 되오. 그래도 귀원비급인데‥‥‥‥」

 

  어물어물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떠벌리는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한 쪽 산모퉁이가 왁자지껄하면서 좁은 산길이 메어지도록 건강한 장정들이

우글우글 몰려오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눈이 휘둥그레진 문공태는

 

  (다 틀렸구나!)

 

 

  혀를 내둘렀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의 맨 앞에 선 사람은 천용방의 방주 이창란이고

그 뒤로 흑, 황, 백, 흥, 남의 오기 단주(五旗壇主) 들이었다.

맨 앞에 선 이창란은 씽씽! 용두 지팡이를 휘두르며 자욱이 모래를 날리는 것이었다.

 

「하‥‥‥ 하‥‥‥ 모두 저보다 먼저들 오셨군!」

 

하던 이창란은 얼굴이 퉁퉁 붓고 피투성이가 된 도옥을 발견하고는 눈이 둥그레졌다.

 

「네가 웬 일이냐? 그건 또 뭐고?」

 

  도옥의 얼굴과 들고 있는 귀원비급을 번갈아 보며 황급히 물었다.

 

「스승님! 이건 귀원비급입니다.」

 

「뭐? 귀원비급이라고?」

 

  도옥은 귀원비급을 힘 있게 끌어안으며

 

「예,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자를 포위하고는 빠져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이창란은 입이 한 쪽으로 씰그러졌다.

 

「그래? 어느 놈이 감히 길을 막느냐?」

 

  호통을 치며 용두 지팡이를 번쩍 들어 허공에서 한 바퀴 비잉 원을 그리며 돌린다.

그러자 다섯 명의 단주들은 그것을 신호로 하여 재빠른 동작으로 곽 흩어져

사방을 에워싸는 것이었다.

  다섯 명의 부하 단주가 제각기 날카로운 무기를 들고 사방으로 흩어지며

공격 태세를 갖추자 이창란은 고개를 씩 들어 주위에 늘어서 있는

여러 사람들을 교만한 태도로 훑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 주약란의 희고 보드라운 손이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내리는 순간,

세 알의 무니주가 화살처럼 날아 이창란의 견정혈(扁井穴)을 노리고 허공을 가로 질렀다.

  그러자 이창란은 용두 지팡이를 휘둘러 주약란의 무니주를 떨어뜨리고는

몇 걸음 비틀거리다 멈칫 섰다.

그러자 이번에는 윙!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제원동의 동발이 주약란의 가슴을 향하여

허공을 나는 것이었다.

 

「소저여! 제원동의 동발 맛이 어떤가 보시오!」

 

  제원동의 동발을 막느라고 주약란의 정신이 도옥에게서 떠나 동발을 향하자

그 틈을 노린 이창란이 도옥에게로 질풍같이 달려가 귀원비급을 받으려는 찰나,

문공태와 번천안 그리고 등뢰가 앞을 다투어 이창란에게로 덮쳐들었다.

  문공태 일당이 이창란을 향하여 덤벼들자 이번에는 우리가 빠질 수 있겠느냐는 듯이

아미파의 세 대사가 지쳐 들어왔다.

그제야 정신이 화다닥 난 천용방의 황기만주 왕한상(王寒湘)과 혹기단주 최문기가

이창란을 보호하고자 지체 없이 달려드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해서 순식간에 수라장이 된 일대는 청죽장과 장검이

그리고 동발과 무니주가 허공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황기단주 왕한상은 번천안을 상대로 검광을 튕기고 흑기단주 최문기는

팔비신옹 문공태와 맞붙었다.

  그리고 그 이하 홍, 백, 남의 삼기단주(三旗壇主)는 만일을 위해 서인지

도망 갈만한 길목을 지키고 도일강은 도일강대로 천용방의 삼기단주를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제원동의 동발을 피한 주약란은 급히 몸을 돌려 조소접에게  달려왔다.

 

  돌변한 사태를 가만히 관망하던 주약란은

 

「동생! 저 이창란의 거동이 아무래도 비급을 갖고 도망갈 모양이야!」

 

「언니! 염려 없어요. 잠깐만 기다리면 돼요.」

 

  말을 남기고는 길목을 지키고 있는 천용방의 삼기 단주들을 향하여 몸을 날렸다.

우선 길목을 지키는 삼기 단주부터 차례로 해치울 모양이 있다.

 

  어디서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아리따운 여자가 대담하게도 삼기 단주를 향하여

달려드는데 는 절로 웃음이 터지는 모양인지 백기 단주 오독수(五毒聳) 막윤은

 

「하‥‥‥ 하‥‥ 별꼴이다!」

 

  대소하며 겨냥도 하지 않고 두 손을 높이 들었다. 그러던 그는

 

  (두 손까지 쓸 것이 있나‥‥‥ 한 손이면 족하렷다!‥‥‥)

 

하고는 한 손은 도로 내리고 한 손만으로 넌지시 장풍을 일으켜

조소접의 가슴에 안겨 주었다.

 

  (흥! 이만하면 팔 하나쯤은 부러지겠지‥‥)

 

했는데 어럽쇼!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데는 또 한번 대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요, 맹랑한 것이 제법인데! )

 

  어이없이 바라보던 막윤은 어디선가 미풍이 산들 산들 불어온다고 느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자기가 날려 보낸 장풍이 조소접의 손아귀에 잡혔다가

가만히 되돌려 보낸 것을 어찌 알았으랴!

산들 산들 불어오던 바람은 코끝을 간질이는가했는데 바로 코앞에서 쾅!

요란한 소리를 내며 터져버리고 말았다.

맥없이 산들 바람에 매혹되었던 오독수의 몸이 뒤로 열 걸음이나 물러가며

뒹구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그 서슬에 뒤에 붙어 섰던 남기단주와 홍기단주도 막윤이 구르는 바람에

납작 깔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먼지만 흠뻑 뒤집어쓰고 말았다.

  바로 그 다음 순간, 다시 한 번 장풍을 몰아붙이려던 조소접은

도옥에게서 귀원비급을 받아 들고 뒤편으로 번개같이 달아나는

이창란을 발견했다.

즉시 몸을 돌린 조소접은 땅을 가볍게 차며 사뿐히 날아 이창란의 뒷등을 노리고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이창란을 추격하여 몇 장 앞에 내렸다.

얼마를 정신없이 뛰던 이창란은 자기보다 먼저 달려온 조소접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그러자 주약란은 펄렁 옷을 날리며 조소접이 서 있는 바로 옆에 가볍게 내려앉는 것이었다.

이창란은 기가 막혀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