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34 장 교활한 도옥(陶玉) <金丸銅鉢>

오늘의 쉼터 2014. 6. 22. 14:27

제 34 장 교활한 도옥(陶玉) <金丸銅鉢>
 

 

  그곳에는 검은 도포에 정은 수염을 날리며 천천히 다가오는 중년도인(道人)이 있었다.

등에는 굉장히 긴 장검을 메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선뜻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에 승일청이 먼저 한 걸음 나서며 아는 척을 했다.

 

「마도장 폐관 점창산(馬道長閉關點蒼山)의 마형(馬兄)께서는 이십여 년이나

소식을 듣지 못하였는데 오늘 여기서 만나게 되는 구려!」

 

「하‥‥‥ 하‥‥‥ 오랜만이오, 무슨 일로 이렇게 다 모였소?

더구나 무공이 쟁쟁하신 이 방주께서도‥‥‥ 참으로 영광이오.」

 

  마가홍(馬家宏)이 맞받아 반가운 척 하면서 이창란에게로 다가갔다.

 

「마형! 별 말씀을‥‥‥

저는 평소 점창파의 무공을 한 번 배우고자 하던 중인데 오늘 좀 배워 주시오.」

 

「과분한 말씀이오. 변변치 못한 무공을 배워드릴 것까지야 없소 마는 원한다면 사양치 않겠소.

그러나 만일 제가 패하면 두말 않고 점창산으로 돌아가겠소.」

 

「마형이 그러시다면 나도 할 말이 소. 만일 내가 패한다면 천용방을 해산하고

심산유곡으로 은퇴할 뿐 아니라 다시는 무예계에 나오지 않겠소.」

 

  「그럼 시작합시다. 먼저 덤비시오.」

 

  수인사가 금방 싸움의 도전장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마가홍의 말대로 선수를 가하려고 이창란은 용두장(龍頭杖)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제원동이 큰소리로 싸움을 중지시켰다.

 

「방주님! 잠깐 기다리시오.」

 

  이창란은 용두장을 든 채 제 원동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오?」

 

「방주께서 어찌 저따위 놈들과 싸우시겠습니까? 제가 대신 상대하겠습니다.」

 

  순간, 이창란은 머리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다. 지금 우리들의 목적은 귀원비급이다.

어찌 부질없는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할 것인가?‥‥‥)

 

  손수 나서서 싸우려던 이창란은 마음을 돌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막윤이 제원동의 제의에 동조하고 나셨다.

 

「방주님! 옳은 말씀이오. 방주께서는 뒤에서 구경이나 하십시오.

제단주와 이 막윤이 상대하겠소이다.」

 

하고 정중히 만류하는 것이었다.

 

「알겠소, 그럼 한 번 맡겨 보겠소.」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만류함을 듣고 마지못해 양보한다는 뜻으로

용두장을 거두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제원동은 이창란을 대신하여 앞으로 썩 나셨다.

그리고는 등에 메고 있던 청동일월 쌍발(靑銅日月雙?)을 뽑아 꼬나 잡고

마가홍의 가슴을 겨누는 것이었다.

 

「마형! 이 제원동이 무공은 없지마는 본방 방주를 대신하여 상대 해 드리겠소.

부디 마형의 절학을 가르쳐 주시오.」

 

  깍듯이 인사를 하며 한 수 겨루어 볼 것을 제안하는 것이었다.

 

「흥! 얼마든지 상대해 드리고말고.

우리 점창파의 절학을 배우고 싶다는데 어찌 사양하겠소.

그러나 당신 같은 주제에 이 마가홍의 장검이나 제대로 감당하려는지 걱정이구려.」

 

하는 마가홍의 응수도 보통은 아니었다.

 

  사실 지금 이창란을 대신하여 마가홍과 일전을 겨루고자 하는

제원동으로 말하면 무술계에서 쟁쟁한 고수급의 한 사람임은 물론이다.

더구나 그의 쌍수 연환비발(雙手連環飛?)은 제원동의 명성보다

더 유명할 정도로 날카롭고 무서운 무기였다.

 

   그러한 제원동으로서는 마가홍이라는 이름만 들었을 뿐

그의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마가홍으로부터 모욕적인 말을 듣자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손이 부르르 떨렸다.

 

  (이놈이 도대체 어디서 굴러온 놈인데 안하무인도 분수가 있지!

당장 머리를 두 쪽으로 갈라 버려야지!)

 

  속으로 분통을 터뜨린 제원동은 당장 달려 나갈 기세로 몸을 움츠렸다가

슬그머니 몸을 펴고 공격하려던 자세를 풀어 버렸다.

 

  한편, 마가홍은 제원동이 몸을 움츠릴 때 같이 방비하여 역습할 태세를 갖추었다가

제원동이 태세를 고치자 마가홍도 따라서 역습의 태세를 풀었다.

그러자 제원동은 또다시 달려들 기세를 취하는 것이었다.

마가홍 역시 몸을 사렸다.

그러면 제원동은 다시 태세를 바꾸고 따라서 마가홍도 바꾸고

연거푸 대여섯 번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었다.

  이 수법으로 말하면 제원동의 실력이 상대방에게 억압되기 때문이 아니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해서 달려들지 못하고 망설이는 제원동 같지만

그 이면에는 이렇게 여러 번을 되풀이하여 상대가 이번에도 위협이겠지 하며

긴장이 해이해 지기를 기다려 순식간에 달려드는 술수를 노리고 있는 제원동이었다.

  다시 한번 공격 태세를 갖추었던 제원동은 다시 태세를 바꾸었다.

  그러자 번번이 속아 넘어가는 데에 분통이 터진 마가홍은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분했다.

 

  (흥! 저놈이 누구를 놀릴 셈인가,

꼭 고양이가 쥐 놀리듯 하는군, 저놈은 내가 쥐로 보이는 모양이지,

그렇다면 저놈은 고양이고? 어림없다!)

 

라고 생각하는데 제원동의 공격 아닌 목소리가 터지는 것이었다.

 

「마형! 나는 천용방의 일개 제자에 지나지 않아서 상관없지마는

당신은 그래도 일파의 도장(道長) 어른인데 만일 나에게 패한다면

창피는 물론이지만 무슨 낯으로 무술계에 나타나겠소?」

 

  긴장하고 있던 마가홍은 제원동의 갑작스러운 말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나 곧 유유히 웃는 낯으로 일소에 붙이는 것이었다.

 

「하‥‥‥ 하‥‥‥그런 걱정은 마시고 방주께 유언이라도 해두는 것이 좋겠는데!」

 

「그럼 시작합시다. 마형의 유언은 내가 전해 드리겠소.

 빨리 유언이나 하고 먼저 덤비시오.」

 

「나보고 먼저 덤비라고? 예의도 모르는 놈이군.

그래도 나는 도사(道士)의 신분인데 어찌 먼저 덤비겠느냐? 네놈부터 덤벼라!」

 

「여보쇼! 그래도 도사라는 분이 입은 왜 그렇게 못된 소리만 하오!」

 

「이놈 봐라! 누구에게 하는 버릇이냐!」

 

「아이고 스님 놈아 잘못했소.」

 

  도대체 싸움도 싸움이지만 입 싸움만 하는 것이었다.

제원동으로서는 무슨 계략이 있어서 시간을 끌며 허를 노리는 반면,

마가홍은 제원동의 계략에 걸려 분통만 터뜨릴 뿐 쉽사리 달려들지 못하고

빙빙 돌며 노려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한편, 제원동과 막윤에게 마가홍과 문공태 그리고 등뢰를 인계해 버린

이창란은 금방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때, 막윤도 여전히 문공태와 등뢰를 노리고 제원동의 수법과 같이 공격은 하지 않고

문공태를 막아선 채 시간만 끄는 것이었다.

그것은서로 밀약이 되어 있었는지 이창란이 완전히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모양 같기도 했다.

  지금 제원동과 막윤이 공격하지 않고 노려만 보는 것은 문공태와 등뢰

그리고 마가홍이 멀리 사라지는 이창란과 승일청을 추격하지 못 하도록

감시하는 행동 같기도 했다.

  이때, 가만히 주위를 살피던 문공태는 앞에 버티고 있는 외다리 병신

막윤의 뒤로 깔려있는 수많은 무리들에게서 천용방의 위세를 짐작 할 수 있었다.

언제 밀려 왔는지 상당수의 무리가 계곡에 깔려 있었다.

문공태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막윤에게 삿대질을 했다.

 

「흥! 당신이 길을 비켜 주지 않는다면 이 청죽장이 용서치 않을 것이오.」

 

  큰소리친 문공태와 등뢰도 다른 속셈이 있는지 막윤에게 달려 들 지도 않고

눈을 부라리며 호통만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다리 막윤은 어깨를 흔들며

웃어 제치는 것이었다.

 

「하‥‥‥ 하‥‥‥ 문공태야! 겁나는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도망 갈 구멍은 없느니라.」

 

「흥! 이 병신 늙은이야. 천용방이다 몰려나온 대도 겁낼 것 없다.

어느 놈이라도 나를 다치게는 못하지.」

 

하다 아무래도 분통이 터져 참을 수 없었던지 청죽장을 높이 든

문공태는 막윤의 외다리를 노리고 비스듬히 내려치는 것이었다.

  그러자 막윤은 외다리로 껑충 뛰어 문공태의 공격을 피하면서

한손을 휘둘러 문공태의 가슴을 향하여 무슨 더러운 물건이나

치워 버리는들 훅! 쳐버렸다.

미리 막윤의 역습을 예상한 문공태는 한 번 공격한 다음

곧 몸을 날려 등뢰의 옆으로 비켜섰다.

그리고는 잠시의 여유를 가진 다음 청죽장을 들어 허공에 원을 그리며

휘둘러진 청죽장을 그대로 막윤의 머리를 향하여 내려치고 말았다.

  이 일장(一杖)이야 말로 수년간 수련한 문공태의 절학이었다.

그만큼 청죽장의 위세는 바위도 깨뜨릴 만큼 당당했다.

  그러나 그토록 강한 문공태의 청죽장이지만 막윤은 눈썹도 까딱 않고

더러운 것을 쫓아 버리듯 손을 들어 가볍게 탁 쳐버렸다.

  그러자 문공태의 장풍이 막윤의 장풍과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순간,

 

  틀렸구나, 했다.

아무리 힘을 다하여 휘둘러 내려친 청죽장도 막윤이 손 한번 흔들어서 막아버리는 데는

저절로 틀렸구나, 소리가 새어나오는 문공태였다.

지금까지 수십 년간 별의 별 싸움을 다 해본 문공태도 한번 틀렸구나 생각하면 그것으로 그쳤다.

더 싸워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도저히 적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문공태는 공격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막윤을 어이없이 바라보는 것이 있다.

  그러자 막윤도 편한 자세로 문공태 앞에 우뚝 섰다.

 

「문공태야! 왜 그러고 섰어! 마지막으로 이 늙은이의 오독신장(五毒神掌) 맛이나 봐라!」

 

하면서 외팔이 하늘에서 잠깐 춤을 추었다.

그리고는 그만이었다.

그 순간 문공태는 눈앞에 불이 확 일며 아찔했다.

무엇이 턱을 몹시 갈겼다고 느껴질 뿐 정신이 몽롱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옆에서 눈만 크게 뜨고 있던 등뢰가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며

문공태를 감싸는 듯 막윤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 귀방은 또 누구시오.

나는 팔다리가 없는 병신이지만 귀방은 키 작은 병신이구려.」

 

「늙은 병신이 말도 많소 그려, 우선 이 주먹맛이나 보시오.」

 

  등뢰의 주먹이 막윤의 콧잔등을 노리고 번개같이 날았다.

그 순간 등뢰의 키만 바라보던 막윤은 엉겁결에 날아오는 한 수를 피하느라고

껑충 외다리로 뛰어 한 옆으로 비켜섰다.

  그러자 등뢰는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고 기세 있게 몰아붙이는 것이었다.

이래서 막윤을 등뢰에게로 인계해 버린 문공태는 잠시 생각할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다 틀렸구나, 애초에 우리 계획대로 천용방의 고수들을 동굴로 유인하여

석문을 닫고 불을 지르든가,

아니면 하나하나 해치우려던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구나.‥‥‥

아니 도리어 천용방에게 우리가 포위되지 않았는가,

더구나 저 병신 놈만 하더라도 무슨 비결을 쓰는지 바위도 깨뜨리는

이 청죽장을 우습게 알고 또 소용도 없게 만드는구나.

이러다가는 내가 먼저 죽을지도 모르겠다.‥‥)

 

  등골이 오싹하는 문공태였다.

 

  그러는 한편, 막윤을 내리친 등뢰는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허참! 이상한 영감이군.‥‥‥

내 장풍을 잡아 도리어 역습하는 재간이 다 있고‥‥‥)

 

하면서도 연방 막윤을 경계하며 그가 또 괴상한 수나 쓰지 않을까 하면서,

그의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듯 했다.

  그러자 막윤은 앞에 있는 등뢰를 무시하는 듯

태연히 눈을 감고 운기를 조식하는 모양이었다.

  그때까지 머리를 갸웃거리며 막윤을 경계하던 등뢰는

아무래도 혼자의 힘으로는 힘에 겨웠던지 문공태에게로

다가가 응원을 청하는 것이었다.

 

「문형! 우리가 차례로 한 사람씩 나서지 말고 힘을 합해서 일시에 공격합시다.

그러면 병신 주제에 도리 없이 당하고 말 것이오.」

 

  그러나 문공태는 이미 틀렸구나.

한 이상 더 달려들 마음이라고는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등뢰가 합동작전을 쓰자는 것이다. 난처하게 된 문공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렇다고 등뢰 앞에서 막윤을 두려워 할 수야 없지‥‥‥)

 

  체면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문공태는 일부러 큰 소리를 질렀다.

 

「암, 옳은 말씀이오. 어쩌면 내 마음과 꼭 같소!」

 

  속마음과는 딴판으로 큰 소리를 쳤다.

자기의 속마음을 감추기나 하듯이 그렇게 큰 소리를 친 문공태는 다음 순간,

정말 등뢰와 합동으로 공격한다면 승산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자신이 생기는 것이었다.

자기의 마음을 자기도 알 수 없는 노릇인지

 

  (이상한 일이군, 틀렸구나. 했는데‥‥‥ 어쨌든 한 번 해 보기나 하자‥‥‥)

 

  마음을 다부지게 먹었다.

그러자 생각이 그래서 그런지 제법 힘도 생기는 것이었다.

 

  그 여세를 몰아 문공태는 기세 있게 대갈일성!

 

「이 늙은이야! 얌전히 목을 가져오너라! 내 잘라 주마!」

 

  소리치며 협산초해(挾山超海)의 한 수로 청죽장을 휘둘렀다.

  그러나 문공태의 공격은 칼로 물 베기 정도도 못되었다.

어느 사이에 피했는지 외다리로 껑충 뛴 막윤은 문공태의 뒤로 돌아

등덜미를 움켜잡고 앞뒤로 세게 흔들다가 집어 던지듯 던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 바람에 엎어지듯 앞으로 몇 걸음을 휘청거리며 나가던 문공태는

그대로 땅바닥에 코를 박고 엎어지고 말았다.

보기 좋게 코가 깨진 문공태의 얼굴은 금방 코피로 코와 입을 분간할 수 없이

엉망으로 되어 버리고 말았다.

  번번이 골탕만 먹는 문공태는 땅을 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땅을 친다고 해서 가라앉을 분통이 아니었다.

  그때 일격을 겨누고 있던 등뢰는 문공태가 무참히 나가떨어지자 잠시 주춤했다.

코가 터지고 피 범벅이 된 채 엉금거리며 일어나는 문공태를 보자 등뢰는

정말 싸울 마음이 싹 가시고 말았다.

다음은 틀림없이 자기 차례라고 생각한 등뢰로서는 가슴이 써늘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굴하지 않고 엉금거리며 일어난 문공태가 필사의 힘을 다해

청죽장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서야 약간 용기가 났다.

  주먹을 단단히 쥐고 틀림없이 막윤의 얼굴에 명중시킬 것이라 달려들면

그것도 잠시, 펑 소리가 나면서 두 개의 장풍이 부딪치며 나가 뒹굴어지는 등뢰였다.

청죽장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펑하면 문공태가 쓰러지고 펑하면 등뢰가 쓰러졌다.

그러니까 한 수 단단히 벼르고 달려들기가 무섭게 펑하면 문공태,

펑하면 등뢰가 쓰러지는 것이 꼭 차례가 정하여져 있는 듯 했다.

  이와 같이 문공태와 등뢰의 합동 공격은 모닥불에 날아드는 하루살이의 꼴이었다.

그때까지 외다리 막윤은 자기의 절학인 오독신장법(五毒神掌法)은 발휘하지도 않고

그들의 공격만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정 견디지 못하면 공격해 오는 상대방의 장풍을

잡아 간단히 되돌려 보내는 정도로서 그치고 있었다.

  그러니 문공태와 등뢰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분통이 터지다 못해 가슴을 쾅쾅 두드리는 것이 흡사 눈에서 불이 떨어질 지경이었다.

자기들의 공격이 달걀로 바위치기에 지나지 못함을 깨달은 문공태와 등뢰는

그만 물러날 법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된다면 자기들의 일신은 물론 자기들의 문파에 까지

그 누가 끼쳐 존망(存亡)을 좌우하는 것이 무술계의 규율이었다.

간단히 물러날 일이 아니었다. 물러나도 조건은 있어야 했다.

다음 기회에 다시 계속하자든가 하는 원수지간을 새로 맺고 으르렁거리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윤의 오독신장은 그 독함이 보통 독과는 달라 일단 맞으면 그 즉시로 온 몸에 퍼져

잘 살아야 열 시간 아니면 서너 시간 후에는 말도 못하고 죽어 버리는 무서운 독이었다.

그래서 막윤도 오독신장만큼은 신중을 기해서 쓰기로 작정하고 그들의 공격하는

동정만 살피고 있었던 것이었다.

  얼마 동안 공격을 가해 오던 문공태와 등뢰는 자기들의 신중하고도 무서운 공격이

모두 무위로 끝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역습을 당하는 데에는 도리 없이 주춤 물러서고

새로 전략을 짤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아무리 필사적인 공격에도 끄떡없는 막윤을 노려보던 등뢰가 옆에 있는 문공태에게

고개를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의 얼굴은 정말 비장한 결심이라도 한 듯 엄숙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사생결단하고 이미 목숨을 버릴 각오로 적진을 뚫는 용사 같은 비분강개한 얼굴이었다.

순간 문공태는 그의 표정에서 어떠한 일을 하려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윽고 문공태에게서 얼굴을 돌린 등뢰는 최후의 일격!

그 기세로 허리를 구부려 고개를 숙이고는 그 길로 땅을 박차며 막윤의

가슴을 향하고 돌진해 들어갔다.

무서운 속도였다.

 

그러자 문공태는 재빨리 그 자리를 피해 이장(二丈)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평하는 소리와 함께

 

「으윽!」

 

「크윽!」

 

  비명 소리가 났는가. 했을 때는 모래와 돌이 뿌옇게 허공을 날고 있었다.

 

  그리고 등뢰는 등뢰대로 막윤은 막윤대로 서로 일장(一丈)의 간격을 두고

똑같이 허공으로 높이 솟았다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

 

  눈이 둥그레진 문공태는 비장한 각오로 달려 간 등뢰가 지금까지의 수법인

손이나 발이 아닌 몸 전체로 막윤과 정면충돌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땅에 떨어지며 쓰러졌던 등뢰는 배를 주무르며 가슴을 치는 것이었고

막윤은 막윤대로 역시 배를 주무르며 입을 크게 벌리는 것이 있다.

  그것은 너무나 갑자기 충돌하였기 때문에 숨통이 막혀 버렸던 것이었다.

그래서 막윤과 등뢰는 가슴과 배를 ?주무르며 호흡을 조절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급히 등뢰에게로 달려온 문공태는 호흡을 조절하고 있는 등뢰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황급히 물었다.

 

「등형! 많이 다쳤소?」

 

  그러자 등뢰는 얼굴을 온통 찌푸리며 고통을 참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가로젓는 것이었다.

  문공태는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비장한 각오로 달려 나간 결과가

이 모양으로 된 데에는 한마디의 위로가 없을 수 없었다.

 

「등형! 미안하오. 내가 저 놈을 단숨에 처치하겠소. 안심하고 숨이 나 쉬시오.」

 

하고는 청죽장을 휘두르며 아직 호흡을 조절하고 있는 막윤에게 지쳐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허공에서 휘둘러지는 청죽장은 직고천문(直叩天門)의 술로 변하여

막윤의 천영혈(天靈穴)을 노리고 미친 듯이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러자 막윤은 호흡의 조절을 중지하고 슬쩍 옆으로 피하여 청죽장을 헛치게 한 다음

되돌아서 달려드는 문공태의 청죽장을 순식간에 움켜쥐고 힘껏 밀었다.

그 바람에 문공태는 청죽장을 안은 채 뒤로 벌렁 넘어지고 말았다.

또 한번 무참히 참패를 당한 문공태는 품속에 감추어 두었던 금환(金丸)을 한 움큼 꺼내

힘껏 던지는 것이었다.

 

그 순간,

 

막윤도 급히 갈미침(揭尾針)을 꺼내 날아오는 금환을 향해 던졌다.

그러자 날아오던 금환은 갈미침과 맞부딪쳐 우수수 낙엽처럼 사방으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때였다.

 

좌! 하늘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한편에서 던진 계원동의 동발(銅鉢)이

문공태를 향하여 번개같이 날아오는 것이었다.

 

「앗!」

 

날카로운 소리를 지른 문공태는 그야말로 위기일발! 땅바닥에 몸을 차악 대는 순간

문공태의 머리 위를 날은 동발이 맞은편의 아름드리 소나무를 댕강 자르고 말았다.

 

한편,

 

제원동과 마가홍은 서로 막상 막하의 세력으로 일진(一進) 일퇴(-退)의 형세로 맞붙고 있었다.

그때 제원동의 머리 위로 나는 문공태의 금환이 막윤을 향하며 날자 막윤의 위기를 직감한

제원동은 문공태를 향하여 동발을 날렸다.

그러는 사이에 마가홍에게 허를 짚인 제원동은 갑자기 달려드는 마가홍의 장검을 피하느라고

재빨리 땅에 엎디고 옆으로 굴렀다.

그러나 한걸음 늦었다.

마가홍의 장검은 제원동의 가슴을 한 치 정도 가르고 말았다.

  그와 함께 제원동의 가슴에서는 금방 선혈이 뿜어 나왔다.

  재원동이 피를 흘리자 더욱 기세가 등등해진 마가홍은 냉소를 터뜨리며

좌우로 장검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아차, 하는 순간에 상처를 받은 제원동은 동발을 양 손에 하나씩 들고 보복이나 하려는 듯이

질풍처럼 달려들었다.

그러자 마가홍은 가소롭다는 듯이 냉소를 터뜨리며 동발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이놈 제원동아! 이번에는 어디를 찔러줄까! 소원대로 찔러주마!」

 

「오냐, 마가홍아! 네 놈 머리가 두 쪽이 나거든 말해주마!」

 

  제원동의 무술도 쟁쟁하지만 마가홍 역시 이 십 여 년간 숨어 지내면서

자기의 절학인 칠십 이식(七十二式)의 검법(劍法)도 무서운 무공이 있다

  서로 밀고 밀리고 하는 것이 언제 승부가 날지,

용과 호랑이의 버금가는 싸움은 그칠 줄을 몰랐다.

  한편, 마가홍과 싸우면서도 막윤의 위기를 염려하고 문공태에게로 향해 던진

제원동의 동발을 위기일발에서 피한 문공태도 이 동발이 어디서 날아 왔는가를

살피려고 주위를 돌아보다 머리끝이 주뼛하도록 놀랐다.

  한편에서 제원동과 마가홍이 먼지를 날리며 싸우고 있는 그 주위일대와

자기가 서 있는 사방을 빙 둘러싼 천용방의 제자들이 각기 장검을 꼬나들고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명령을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문공태는 최후의 발악이나 하는 듯 눈썹을 치켜 올리며 고함을 질렀다.

 

「천용방에는 사람이 너무 많구나, 내가 좀 죽여주마!」

 

하면서 금환을 몇 줌 계속해서 던졌다.

 

  그러자 곧이어 금환에 맞아 쓰러지는 비명소리와 이리 저리 황급히 피하는

어지러운 발자국 소리가 계곡이 떠나갈듯 소란스러워 졌다.

 

 한편,

이때까지 소나무 위에서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도옥은 천용방의 제자들이

문공태의 금환에 쓰러지고 쫓기고 하는 것에 더 참지 못하고 옆에 있는

양몽환에게 고개를 돌렸다.

 

「양형! 만일 우리 천용방이 화산, 설산, 점창의 연합파에 패하면 저들은 다시

당신들의 곤륜파에 도전해 올지도 모르오.」

 

하고 염려스럽다는 듯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양몽환보다 먼저 주약란이 날카롭게 쏘아 붙였다.

 

「흥! 대단한 생각이시군. 그러나 천용방이 패하든 말든 우리는 상관이 없소」

 

「물론 상관이야 없겠지만 곤륜파에게 달려들어 귀원비급을 내 놓으라면 어떻게 하겠소.」

 

「가지고 있지도 않은 비급을 어떻게 내놓죠?」

 

「하‥‥‥ 하 그래도 내가 당신들 곤륜파가 귀원비급을 가지고 있다고

소문을 퍼뜨리면 싸우지 않을 수도 없을 겁니다.」

 

「그럼, 거짓말을 퍼뜨리겠다는 말이오?」

 

「그렇소. 우리 천용방이 망하는데 곤륜파는 흥할 수 있소?

나는 어떻게 하든지 여러 문파가 곤륜파를 멸망시키길 원하고 있는 사람이오.」

 

  순간, 주약란은 어떻게 하든지 도옥을 처치해 버리든가 아니면

다시는 무술계에 나오지 못하도록 불구자를 만들어 놓을 결심을 했다

  그러나 귀원비급이 도옥의 손에 있다는 것을 생각한 주약란은 우선 도옥에게서

귀원비급부터 찾아낸 다음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사실 도옥이 지금 주약란과 양몽환 앞에서 큰 소리를 치는 것도 일리 있는 말이었다.

문제의 귀원비급이 곤륜파의 손에 있으리라고 짐작하는 각파의 고수들은

도옥의 말 한마디면 얼마든지 곤륜파에게 공격해 올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그런 반면, 곤륜파를 원수지간처럼 여기지는 않지만 은연중 불만을 품고 있는

도옥으로서는 자기가 갖고 있는 귀원비급을 사수하기위해 설산, 화산, 점창의

세 파를 충동시켜 곤륜파를 쓰러뜨리게 한 다음 고수들이 싸움에 지쳤을 때

천용방은 연합한 세 파를 단숨에 무찔러 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그만큼 도옥의 위치는 앞뒤로 여유가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도옥을 앞에 보면서도 손을 쓰지 못하는 주약란은

가슴만 내려 쓸고 올려 쓸고 할 뿐이었다.

얼마 동안을 그렇게 속을 썩이던 주약란은 도옥을 노려보며 참고 참았던 분통을 터뜨렸다.

 

「좋아요. 세 파가 아니라 삼백 파의 고수들이 온대도 두려울 것 없어요.

그러나 귀원비급은 바로 당신이 가지고 있으면서 무슨 말을 뻔뻔하게 하죠?

두말하지 말고 그 귀원비급부터 내 놓으세요.」

  주약란의 눈빛이 반짝 거렸다.

그러자 도옥은 너무나 어이없는 말에 말문이 막힌다는 듯이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참 주약란을 바라보다가는 말을 하려다 주춤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가슴이 뜨끔 하는 모양이었다.

이때, 주약란과 도옥을 번갈아 보던 양몽환이 도옥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도형! 도형이 그때 병문안을 왔을 때 석실에서 가져가지 않았소.」

 

「뭐라고? 양형도 그때 보았겠지만 옥함(玉函) 하나를 주운 일이 있소.」

 

  더 변명하거나 숨길 수 없었던지 귀원비급이 아닌 옥함을 주웠다는 것이다.

 

「당신은 도적이군요.

옥함을 주웠다고 능청을 떨지 마세요.

바로 그 옥함이 귀원비급이라는 것을 모르셨을까요?

어서 얌전히 내놓으시죠?」

 

  그 말에 도옥은 펄쩍 놀라는 시늉을 하며 황망히 나서는 것이었다.

 

「그럼 그 옥함 속에 귀원비급이 들어 있다는 말이오?

아!, 분하다. 그런 줄 알았으면 부하에게 주지 않을 걸‥‥‥」

 

「하는 말마다 꼭 같이 거짓말을 하는군요.

능청떨지 말고 목숨이 아까우면 속히 내놓으세요.」

 

「참. 정말 내 말을 믿지 못한다면 내 몸을 뒤져 보시오. 그러면 알 것 아니오?」

 

  딱 잡아떼는 것이었다.

 

「간사하고 교활한 여우군요. 아무래도 좋아요.

그 대신 당신의 목숨을 받겠어요.」

 

「아! 글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습니까?

나는 그 옥함이 아름답고 예쁘기에 가져간 것뿐이오.

사실 그 속에 귀원비급이 들어있는 줄 알았다면 왜 남에게 주겠소.

양형은 내 말을 믿어줄 것이오.

그래도 믿지 못한다면 내가 그 옥함을 가지고 있는 자를 데려오겠소.」

 

「도형! 거짓말 하지 마시오. 그래도 대장분가!」

 

「암요. 그래도 대장부인데 내가 양형이나 아가씨 앞에서 일구이언(一口二言) 하겠소?」

 

하고는 번개같이 소나무에서 뛰어 내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공태와 마가홍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백보비발 제원동에게로 달려갔다.

 

「제단주님! 잠깐 쉬십시오.

이 버릇없는 마가(馬家)놈과 문가(文家)놈은 제가 맡겠습니다.」

 

하고는 돌아서서 금환검을 미친 듯이 휘두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금방 하늘에는 검광이 번쩍이고 문공태와 마가홍은 열대여섯 걸음이나

황망히 비켜서고 말았다.

  지금 도옥이 금환검을 휘두르는 수법은 모두 삼음신니(三音神尼)의 권보(拳譜)에

기록되어 있는 무술이었다.

 

  허공에서 검광이 번쩍이며 마치 춤을 추는 듯 도옥의 금환검이 어지럽게

난무(亂舞)하자 마가홍은 속수무책인 듯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도옥만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이때, 마가홍은 상처 난 제원동을 궁지로 몰아넣고 한 칼에 내려치려는 찰나 난데없이

달려든 도옥의 금환검에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이리 치고 저리 치고 한참 부산하게 칼춤을 춘 도옥은 정신없이 피해 달아나는

마가홍과 문공태를 보며 용기가 백배했다.

더구나 삼음신니의 권보에 기록되어 있는 무술에 스스로 감탄하여 문공태와 마가홍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야, 이놈들아! 그래도 명색이 일파의 장문인들이 요만할 검술에 도망을 가는 거냐?

도망가지 말고 한 수 맛이나 봐라!」

 

  그러자 문공태는 급히 마가홍에게로 달려가 속삭이듯 말했다.

 

「마형! 저놈의 무술이 약간 비상한 것 같소. 방심하지 마시오!」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운 기회를 놓쳐 분통이 터지는 판인데

저도 도망치는 주제에 비상이니, 방심이니 어쩌고 주의나 주는 것처럼

너덜거리는 문공태의 말에 마가홍은 칵! 비위가 상했다.

 

「여보 문형! 문형이나 조심하시오.

저따위 비린내 나는 놈이 비상하면 얼마나 비상하겠소.」

 

하고는 먼저 달려 나가며 칼을 휘둘렀다.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며 장검을 휘두르자 하늘에는 순식간에 검원(劍圖)이

수없이 그려지는 것이었고 검광이 번쩍이는 마가홍의 천간풍뢰(天干風雷)는

싸늘한 바람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유유히 마가홍의 검원(劍圓)에서 벗어나온 도옥은 제비같이

몸을 날려 마가홍의 뒷등을 보기 좋게 후려갈기는 것이었다.

  이때,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문공태는 비상한 몸놀림과 무술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하던 이상하고도 날카로운 무공이었다.

사뭇 경탄하며 놀라워하던 문공태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다 틀렸구나.

소리가 터져 나오고 말았다.

 

  (다 틀렸구나! 오늘 기필코 제원동과 병신 막윤을 없애 버리려고 했는데

어디서 저따위가 나와 가지고‥‥‥ 허 참! 다 틀렸구나.)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니었다.

주위 사방을 에워싸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부하들은 모두 천용방의 이창란 방주의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에 더욱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는 한편, 등뢰와 막윤은 아직도 엉거주춤 허리를 굽힌 채 각기호흡을 조절하는 것이 보였다. 호되게 얻어터진 모양이었다.

 

  주위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문공태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혼자 음흉스럽게 씨익 웃고는

금환을 한줌 꺼내 쥐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자기를 노리고 있는 것은 천용방 부하들의 날카로운 장검뿐

어느 한곳이라도 허술한 곳 없이 창림도산(槍林刀山)인 데는 비록 고수급의 장문인인

문공태도 최후 수단으로 금환을 움켜쥐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단단히 벼르고 도옥에게 공격해 들어갔던 마가홍은 도옥의 신속한 역습에

어안이 벙벙한 듯 멍청히 섰다가는 성난 황소처럼 씩씩거리며 재차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쏜살같이 달려간 마가홍은 도옥의 가슴을 노리고 새파란 장검을 휘두르고는 도옥의 역습이

두려웠던지 급히 몸을 돌려 훌쩍 재주를 넘으며 뒤로 도망쳐 나오는 것이었다.

참으로 무섭게 빠른 속도였다. 그만큼 도옥의 역습이 두려웠던 모양인지도 몰랐다.

공격도 빠르지만 후퇴는 더 빠른 행동이었다.

  그러자 마가홍의 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문공태는 감탄을 연발하는 것이었다.

 

「마형! 정말 마형의 깊은 내공에 이 문공태는 다시 한번 놀랐소. 훌륭한 솜씨요.」

 

  남의 속을 알지도 못하고 감탄을 연발하는 문공태의 말에 마가홍은 속으로

창피한 일이었지만 사실이 그렇지 않으냐 내 무공을 네가 아직 몰랐냐는 듯이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별 말씀을‥‥‥ 이런 건 보통입니다!」

 

  입으로는 겸손의 말을 하는 것이었지만 속으로는 분통이 터져 통곡이라도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문공태가 놀랄 정도라면 어느 정도 체면은 세운 셈이라고 생각하는 마가홍이기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제원동이 쌍륜(雙輸)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마가홍과 문공태를 노려보며

달려드는 것이었다.

  계원동의 쌍륜이 얼마나 무섭고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문공태는 여차하면

자기도 금환을 던지고 사생결단을 내려 일전을 불사할 태세로 제원동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는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휘파람 소리가 들리며 번개같이 달려오는 두 명의 거한이었다.

  그때까지 제원동의 쌍륜만을 노리고 있던 문공태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순간,

저윽이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것은 지금 이 쪽을 달려오는 두 명의 거한은 바로 천용방의 황기단주(黃旗壇主)인

왕한상(王寒湘)과 흑기단주(黑旗壇主) 최문기(崔文奇)였기 때문이 있다.

  갑자기 혹기단주와 황기단주가 나타나므로 세 천용방의 오기단주(五旗壇主)가

모두 출동한 셈이었다.

  다만 방주(幇主) 이창란과 백기단주(白旗壇主) 승일청은 무슨 계획이 있는지

잠깐 얼굴을 보였다가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달려온 왕한상은 싸늘한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보고는 문공태에게로

날카로운 시선을 멈추는 것이었다.

 

「문형! 오래간만이오! 나를 알아보겠소?」

 

  순간 문공태는 부지중에 또 다 틀렸구나! 하면서도 유유히 수염을 쓰다듬었다.

 

「별고 없으셨소? 한 십여 년 만나지 못했소 그려.」

 

「하‥‥‥ 하‥‥ 그래도 알아보는구려.

그런데 문형의 금환이 절기라는 말은 풍문으로 들었어도

이렇게 우리 방 사람들을 상하게 할 줄은 미처 몰랐소. 풍문이 헛소문은 아니었구려!」

 

하는 것은 조금 전에 문공태가 던진 금환에 천용방의 제자들이

무수히 살상(殺傷)된 소식을 전해 듣고 급히 응원차 달려온 왕한상으로서는

칭찬이나 감탄의 말이 아니라 증오와 복수심에서 우러나오는 분노였던 것이다.

  그러한 반면에 왕한상의 무공을 잘 알고 있는 문공태로서도 비록 자기의 금환이

우세하기는 했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을 자인하고는 약간 뒤가 저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영광이오. 그러나 수가 많다고 너무 괄시하지는 마오!」

 

「하‥‥‥하‥‥ 수가 많은 것이 무슨 상관이오?

이 왕한상과 단독으로 겨룬다면 되지 않소? 그 금환 구경이나 시켜주시오!」

 

「너무 과분한 말씀이오. 이 문공태의 금환은 별로 가르쳐 드릴 것도 못되오.

그러나 모처럼 왕형이 원하는 것을 어찌 사양하겠소?」

 

「과연 듣고 싶었던 말이요, 그러면 슬슬 시작하실까?」

 

하며 왕한상이 장검을 뽑아 들자 문공태는 급히 손을 번쩍 들며

 

「잠깐!」

 

하는 것이 있다.

 

「? ‥‥‥‥」

 

「다른 것이 아니고 우선 승패가 판가름 난 다음의 일을 의논하는 것이 어떠시오.」

 

  왕한상은 무슨 말인지 문공태의 말뜻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만일 왕형이 이 문공태에게 패한다면 어떻게 하겠소?」

 

「하‥‥‥하‥‥ 나는 또 무슨 말씀인가 했소.

만일 내가 패하면 문형의 부하와 저기 있는 난장이 등뢰형에게까지

충성을 맹세하겠소? 됐소?」

 

  자못 패기가 넘치는 말이었다.

 

  이때, 왕한상의 거만한 행동에 비위가 상한 마가홍은 천용방에서

왕한상의 위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버릇없는 고약한 놈이군!

하면서 눈을 부라렸다.

 

「흥, 어느 쓸개 빠진 놈인지는 모르지만 당신 같은 오합지졸들이

누구를 어떻게 하겠다고 큰 소리냐!」

 

  벽력같은 고함을 지르며 왕한상을 향하여 장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눈앞이 아찔하는가 했는데

천근 만근되는 무거운 쇳덩어리가 가슴을 내려치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비틀거리다 눈을 크게 뜨고는 그 자리에 서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가슴이 아픈 정도로 끝난 것이 천만번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했는지

눈을 크게 뜬 마가홍은 가슴을 내려 쓸었다.

  사실 마가홍이 장검을 휘두르며 달려 나올 때 재빨리 가로 막은

최문기가 마가홍의 검풍(劍風)을 역이용(逆利用)하여 맞받아 밀어냈던 것이었다.

  그러자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을 내려 쓰는 마가홍을 바라보고 있던

왕한상은 우스워 죽겠다는 듯이 한참 동안 혼자 낄낄거리다가 웃음을 거두며

마가홍을 손가락질 하는 것이었다.

「저 중놈은 대체 어느 파의 누구신가요? 상당히 경망스럽군요.

공연히 날뛰다가 모가지 떨어지면 어쩌려고!」

 

  마가홍은 창자가 꼬일 지경이었다.

 

  (음, 어디 두고 보자. 누구 목이 떨어지나!)

 

  분통을 꾹꾹 참으며 재기(再起)를 노리고 암암리에 기력을 운행 조절했다.

그러자 문공태가 앙천대소하며 한걸음 나셨다.

「왕형! 큰 소리를 치는 당신도 별 것 아니오.

왕형의 그 방정스러운 말은 무예계에 견식(見識)이 없다는 증거요.

여기 이 마형이 점창파(點蒼派)의 장문인이라는 것도 모르는

주제에 함부로 떠드는 것이 아니요?」

  문공태의 말은 구구 절절 옳은 말이다.

비록 파가 다른 원수지간이라도 경솔한 말은 무술계에서 서로 삼가는 것이었다.

순간, 왕한상은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으나 문공태의 말은 부끄러움 보다

울화가 치밀게 하는 데에 꼭 맞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마치 제 자식 타이르듯 하는 데에는 눈꼴이 사나왔다.

「미안 하오 마는 별로 대수로운 이름도 아니군.

더구나 점창파라면 문형의 부하들이나 되시오?」

 

  갈수록 야금야금 비위만 건드리는 말에 꾹 참고 있던 마가홍은 절로 입이 일그러졌다.

 

「문형! 이 철딱서니 없는 놈이 천용방의 이방주(李幇主)요?」

 

  구역질이나 토하듯이 침을 뱉는 마가홍이지만 그렇다고 후련할 리는 없었다.

 

「하‥‥‥하‥‥ 마형! 마형은 아직 저 왕형과는

초면인가 보구려. 그렇다면 내가 소개해 드리겠소.」

 

「문형! 좋을 대로 하시오 마는 원래 나는 이방주 이외에 시시한 고수들과는 상대하기도 싫소.」

 

  마가홍을 앞에 놓고 노골적으로 멸시하는 왕한상의 말에 마가홍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내 비록 이십 여 년 간 무술계에 나타나지 않았다 해도

저런 괴물들이 날 뛰는 줄은 몰랐구려. 그렇지 않소, 문형?」

 

하고는 장검을 비껴 잡고 뛰어 나갈 태세였다. 마가홍 혼자의 몸으로

천용방의 무리들을 상대로 싸울 듯한 기세를 눈치 챈 문공태는 급히 마가홍을 제지했다.

 

「잠깐! 마형이 먼저 나설 것도 없소.

이 문공태에게 맡기고 마형은 내 뒤를 감당하시오.」

 

  무슨 속셈이 있는지 문공태가 먼저 싸우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마가홍은 주춤 물러서며 문공태에게 양보했다.

 

  그것은 조금 전에 당한 역습도 역습이지만 수적(數的)으로도

도저히 승산이 없음을 자각하고,

생각한 것 보다는 적세(敵勢)가 강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문형의 복마장법을 이 마가홍에게 보여 주시오.」

 

하고 추켜올리자 문공태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청죽장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감사하오. 그럼 서전(序戰)은 이 문공태가 장식하겠소.」

 

하고는 몸을 날려 왕한상에게로 말문을 열었다.

 

「그럼 시작합시다. 왕형!」

 

  문공태의 말에 왕한상은 두 손을 들고 흔들었다.

 

「그럽시다. 그런데 나는 이 빈 두 손으로 문형을 상대할까 하는데 어떻소?」

 

「소원이라면 그까짓 거 어렵지 않소!」

 

하면서 청죽장을 높이 들어 왕한상의 머리가 빠개지도록 힘껏 내려쳤다.

이리하여 설전(舌戰)은 금방 혈전(血戰)으로 변하고 말았다.

  선수를 가한 문공태는 왕한상이 옆으로 살짝 피하는 바람에

팔의 힘만 쪽 빼고는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내 차례라는 듯인 길게 휘파람을 불어제친

왕한상은 옆으로 두어 자나 비켜섰다가 몸을 날려 문공태가 휘둘렀던

청죽장을 거두기 전에 두 팔을 번개같이 휘둘러 단번에 세 수를 공격하고 물러섰다.

청죽장과 맨손의 대결이었다.

 

  그러나 문공태 역시 싸움에는 능숙한 고수로 청죽장을 이리 저리 휘둘러

왕한상의 공격을 피하고는 허리를 폈다.

그리고는 고수의 여 유 있는 자태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이었다.

 

「왕형! 훌륭한 솜씨요.」

 

  왕한상 역시 질 수는 없었다.

 

「하!, 하!, 문형도 제법이오!」

 

  가만히 듣고 있던 문공태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뭐, 제법이라고! 네가 나를 놀리는구나!」

 

하고는 팔십일수(八十一手) 복마장법(伏魔杖法)을 발휘하여

청죽장에서 바람소리가 나도록 후려쳤다.

그러자 장영(丈影)이 사방팔방으로 새파랗게 뻗어져 나갔다.

  청죽장과 맨 손의 싸움도 어느덧 칠십 여수,

그동안 문공태는 팔십일수의 복마장법 중 칠십 여수를 발휘하고도

승부는 언제 날지 까마득하기만 했다.

  문공태는 한층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복마장법 수는 불과 아홉 수!

그러나 이 아홉수야 말로 팔십일 수 중 최고의 절기였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본다면 왕한상은 문공태의 팔십일수 장법 중에서

이십 여수를 넘기기 전에 쓰러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팔십일수 중에서 겨우 아홉수 만에 왕한상이 쓰러진 것이 아니라

쓰러지지도 않고 이제 남은 수가 아홉수라는 데는 문공태도 환장할 지경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무기도 갖지 않은 맨 손의 왕한상이 아닌가?

  이윽고 청죽장에 힘을 모은 문공태는 나머지 아홉 수 중에서

비황폐일(飛蝗蔽日)의 절묘한 수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최후의 공격처럼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정확히 힘 있게 내려쳤다.

  그러면 왕한상의 머리가 두 쪽으로 빠개져야 하는 것이다.

응당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왕한상의 머리는 두 쪽으로 빠개지지도 않았고 아무렇지도 않았다.

다만 펑! 하는 소리가 문공태의 고막을 울렸다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문공태와 왕한상은 서로 수장씩 뒤로 굴러 쓰러지고 말았다.

  왕한상은 왼 쪽 어깨가 뜨끔했고 문공태는 가슴이 어떻게 되었는지

한참 동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그것은 문공태의 최후를 장식하는 일장(一杖)이 떨어지는 순간,

왕한상은 청죽장을 노리고 두 손을 높이 들어 일장(一掌)을 갈긴 것이었다.

  그리하여 장풍(杖風)과 장풍(掌風)이 마주치는 바람에 각기 뒤로 굴러 쓰러진 것이었다.

  한참 동안 숨을 쉬지 못하고 쩔쩔 매던 문공태는 태연히 일어나며 하나도 고통이 없는 척했다.

그리고는 연신 왼 쪽 어깨를 주무르는 왕한상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왕형! 어떠시오. 이 문공태의 청죽장이 당신의 어깨를 찍었구려. 이제는 졌다고 손을 드시오.」

「하! 하! 문형 그러지 마시오. 이 왕한상의 맨 손에 얻어맞은 가슴은 어떠시오,

숨이나 제대로 쉴 수 있소? 졌으면 졌다고 솔직히 말하시오.」

  사실 어깨가 아픈 것은 숨을 쉬지 못하는 것에 비할 바가 못 되다.

문공태가 가슴을 주무르며 숨을 쉬지 못하고 괴로워할 때 어깨를 다친 왕한상은

빙긋이 웃으며 문공태를 바라보고 쾌재를 불렀던 것이다.

  그때였다. 한쪽 구석에서 호흡을 조절하고 있던 백의신군 등뢰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문공태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문공태의 귀를 잡아당겨 자기 입 가까이 대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문형! 지금이 어느 때라고 이러고 있습니까?

주위를 들러보시오. 모두 천용방 판입니다. 조호리산지계(調虎離山之計)에 빠졌소.

속히 빠져나가지 않으면 후회가 막심할 것 같소.」

 

하는 말에 문공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에는 마가홍이 뛰어와서

문공태의 왼 쪽 귀를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문형! 아무래도 귀원비급은 뺏지 못할 것 같소.

우물쭈물 하다가는 큰일 나겠소. 속히 도망갑시다.」

 

  그러자 이번에도 역시 문공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다.

 

「다 틀렸구나. 등형과 마형의 말대로 이곳을 빠져 나갑시다.」

 

하고는 금환을 한줌 꺼내어 된 손에 쥐고 바른 손에는 청죽장을 단단히 잡는 것이었다.

 

  그러자 등뢰와 마가홍도 일시에 장검을 꼬나 잡는 것이었다.

 

  이때, 문공태는 길게 휘파람을 불고

 

「달리자!」

 

하고 고함을 지름과 동시에 앞으로 뛰어나가며 청죽장과 금환을 휘두르고 뿌렸다.

그러는 문공태의 뒤를 이어 마가홍이 춤을 추듯 장검을 휘두르며 달려 나가고

그 뒤를 등뢰가 역시 장검을 꼬나 잡고 질풍같이 내달렸다.

그 바람에 와! 하고 앞뒤로 달려들던 천용방의 제자들이 썩은 풀 쓰러지듯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러나 워낙 수가 많은 천용방 무리들은 개미떼 같이 앞을 가로막고

옆과 뒤로 추격해 오는 것이었다.

위기에 직면한 마가홍은 급히 난퇴채운(亂堆彩雲)의 수법으로

검을 휘두르며 앞과 뒤로 달려드는 무리들을 찌르고 베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앞서 달리는 문공태를 지나치면서

 

「문형! 이 마가홍이 길을 터놓겠소. 문형은 내 뒤를 따르시오,」

 

하면서 순식간에 대여섯 번 검을 휘두르자 길을 막던 천용방의 무리들이

무서운 경풍을 피해 양 쪽으로 갈라지며 길을 열어 놓았다.

이때, 멀찍이 서서 사태를 주시하던 금환이랑 도옥은 천용방의 제자들이

마가홍의 검풍을 피해 이리 저리 흩어지고 쓰러지며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다 못해 금환검을 뽑아 들고 땅을 박찼다.

그리고는 마가홍의 앞을 딱 버티고 서는 것이었다.

그러자 난퇴채운(亂堆彩雲)의 수법이 소지천남(笑指天南)으로 바뀌고

또다시 어옹산망(漁翁散綱)으로 무궁무진하게 바뀌며 천용방의 제자를

씩은 풀 베듯 하던 마가홍은 갑자기 나타난 도옥을 보고냉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하‥‥‥하‥‥‥ 어서 오너라. 이놈 네 머리는 천용방에 가서 찾아라!」

 

  그러자 도옥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무덤 속에서는 말하고 싶어도 못하오. 빨리 빨리 많이 하시오.」

 

하고는 잠시의 여유를 주는 것이었다. 흡사 말을 하라는 듯이.

 

그러다가 마가홍이 입을 꾹 다물고 노려보자 도옥은 금환검을 높이 들어 힘껏 내려쳤다.

그러나 마가홍도 보통은 아니었다. 천간풍뢰(天于風雷)의 검법으로 도옥을 향하여 내려쳤다.

순간 번쩍하고 검광과 함께 검풍(劍風)이 성난 파도처럼 밀어 닥치는 것이었다.

드디어 칼과 칼이 부딪치고 검풍과 검풍이 부딪쳐 주위는 날카로운 첫소리와 번쩍이는

검광으로 하늘을 흐리게 했다.  이윽고 마가홍과 도옥의 일진일퇴도 삼십 여수,

도옥의 일격이 마가홍의 오른 쪽 어깨를 겨누고 내려치자

마가홍 역시 도옥의 왼쪽 어깨를 겨누고 힘 있게 내려쳤다.

 

그리하여 마가홍이

 

「으윽!」

 

하며 몇 걸음 비틀거리는 것과 같은 시각에 도옥도

 

「으윽!」

 

가늘게 비명을 지르며 왼쪽 어깨를 감싸 쥐었다.

서로의 검풍이 스치고 지나간 것이었다.

그때 팔보등공(八步登空)의 절학으로 왕한상이 달려오고 최문기가 달려들었다.

한쪽 어깨를 다친 도옥과 마가홍은 서로 눈에 쌍심지를 달고 다시 달려들었다.

그러자 왕한상은 문공태를, 최문기는 등뢰를 상대로 일대 격투가 벌어지고 말았다.

문공태의 복마장법(伏魔杖法)과 마가홍의 백홍관일(白虹貫日) 그리고 등뢰의

비연찬운(飛燕燦雲)은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 하는 것이었고

그때마다 도옥과 왕한상 그리고 최문기는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 허를 찌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죽기를 결심하고 도망가려는 성난 이리들을 잡기는 어려웠다.

그런데다가 마가홍과 상대했던 도옥은 어깨의 상처가 중상인지 기진맥진한 채

기력을 운행하기에 진땀을 빼고 있었다.

  비록 수가 많다고는 하지만 막윤은 아직 호흡하기가 힘이 드는지 호흡 조절에 여념이 없고

왕한상은 도옥을 부축하고 기력의 운행을 도와주는 중이어서 뒤에서 달려온 제원동과

최문기가 문공태와 마가홍 그리고 등뢰를 상대로 싸우고 있을 뿐

그 외의 천용방 무리들은 앞뒤로 길을 막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문공태의 휘파람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그러자 미리 밀약이라도 되어 있었는지 등뢰와 마가홍이 문공태에게 다가왔다가

일시에 흩어지며 등뢰는 장검과 주먹을 문공태는 청죽장을 그리고 마가홍은

은광(銀光)이 번쩍이는 창검을 어지럽게 휘두르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바람에 장풍을 맞고 피를 토하고 죽은 졸도가 있는가 하면 팔이 머리 위로

횡휭 날아가 떨어지는 천용방 졸도의 수가 부지기수였다.

거의 삼사십 명의 살상자를 내고 포위망을 뚫으며 달아나는 문공태와 마가홍

그리고 등뢰를 따라가던 최문기와 제원동은 눈물과 피를 뿌리며 돌아서지 않을 수 없었다.

성난 이리에게 뛰어든다는 것이 무리였다.

  싸움은 끝났다.

  결과는 천용방의 완패였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재기(再起)를 다짐한 최문기와 제원동은

일단 전사자와 부상자를 처리한 후 부하들에게 매복을 명했다.

  그때까지 왕한상은 도옥의 명문혈을 쥐고 그의 운공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러나 도옥을 보는 순간의 제원동과 최문기는 조금 전에 도옥의 날렵한 무공을 생각하고

각기 생각에 잠겼다. 사실 오늘의 도옥은 예전의 도옥이 아니었다.

날린 도옥, 기묘한 무술‥‥‥ 몰라볼 만큼 절학을 지니고 있는 도옥이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근년에 방주께서 도옥에게 무술을 가르쳤다는 말을 못 들었는데‥‥‥)

 

  이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제원동과 최문기였다.

  그때 왕한상의 침통한 음성이 들려오지만 않았던들 그들은 더욱 고개만 갸웃거렸을 것이었다.

 

「도옥 향주의 상처가 심히 중한 것 같소. 방주께서 도우셔야 할 것 같구려.」

 

  계원동의 눈이 둥그레졌다.

 

「뭐라고요? 그렇게 위중하오?」

 

「그런 것 같소.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모양이오.」

 

「이거 큰일 났군!」

 

「아무리 요혈을 유통시켜도 효과가 없구려.」

 

  그러자 도옥이 번쩍 눈을 뜨면서 왕한상을 부르는 것이었다.

 

「왕 단주님! 상심하지 마십시오. 저 혼자 능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하고는 조용히 눈을 감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의 얼굴은 고통이 없는 편안한 표정이었다.

사실 도옥은 삼음신니(三音神尼)의 권보(拳譜)에서 내상(內傷)의 특수한 치료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금도 염려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도옥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흐르면서 눈을 번쩍 뜨는 것이었다.

 완전히 치료된 것이었다.

  그러자 도옥을 지켜보고 있던 세 명의 단주들은 또 한 번 그의 무공에 놀랐다.

놀라면 놀랄수록 그의 무공에 의아심이 생기는 것은 같은 고수급들의 시기심만은 아니었다.

  한편, 자기를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는 세 단주들의 시선을 의식한 도옥은

빙긋이 웃으며 일어났다.

「왜 이렇게 서 계십니까? 속히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지금 도망간 점창, 화산, 설산의 세 파가 반드시 역습해 오거나 아니면

방주님을 해치려 할 것입니다. 방주님께로 가십시다.」

 

  그제야 세 단주들은 각기 산란한 정신을 수습했다.

그리고 왕한상이 도옥의 말에 동조하는 것이었다.

 

「옮은 말이오. 우리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여러 파가 합세해 오면 곤란한 일이오.

또 방주께서도 천중사추와 승노단(勝老壇)이 시중하지만 여러 파를 상대하기에는

어려울 것이오. 도향주도 완쾌된 모양인데 속히 가십시다.」

 

  그러자 막윤이 껑충 껑충 외발로 달려오며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등뢰가 내 오독신장을 맞았소.

생명에야 관계없지만 칠일이 지나야 움직일 수 있을 걸‥‥‥」

 

  막윤의 즐거워하는 말에 왕한상이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우리 막 단주님의 오독신장을 등뢰가 맛보는 구려!」

 

「그런데 내가 힘이 감소되었을 때여서 등뢰는 재수가 좋았소.

그러나 그놈들을 또 만나면 오독신장의 맛이 정말 어떤가를 보여줘야겠소.」

 

하고 말을 마치는데 갑자기 소나무 위에서 백의(白衣)의 소녀가 뛰어 내려오며

낭랑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도향주! 약속대로 훔쳐간 물건을 돌려주세요!」

 

  순간, 왕한상과 최문기 그리고 제원동은 약속이나 한 듯이

소리가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그들이 일찍이 보지 못한 아름답고도 날씬한 소녀

주약란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이었다.

 

「? ‥‥‥‥‥‥」

 

  거의 사십대를 바라보는 단주들이었지만 그녀의 아름다움에는 넋을 잃은 듯

눈만 껌벅거리는 것이었다.

  그러한 중에서도 아미산에서 한 번 만나본 듯한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는

최문기는 더욱 놀라운 모양이었다.

그만큼 주약란의 얼굴은 뭇 남자의 정신을 흐리게 만들 만큼 아름답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도 두려움이 없는 그녀의 얼굴이었다.

  이윽고 가까이 다가온 주약란은 도옥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대장부가 일구이언한다면 부끄러운 일이에요. 속히 돌려주세요.」

 

「언제 내가 일구이언을 했소?」

 

  그러자 단주들은 무슨 영문인가 하고 더욱 눈을 크게 뜨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눈썹도 까딱하지 않고 아름다운 얼굴에 차가운 냉기가도는

눈을 도옥에게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당신은 세 파를 물리친 다음에 옥함을 가져오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거짓말은 하지 마세요.」

 

하면서 한걸음 더 다가섰다.

 

  이때,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있던 제원동은 비록 상대가 여자이지만

이렇게 당돌하고 날카롭게 나오는 여자라면 무공도 보통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제원동은 조금 전까지도 내상(內傷)으로 고생하던 몸으로 싸움을 한다면

위험할 것을 생각하고는 도옥을 막으며 나섰다.

이때주약란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가고 말았다.

「당신은 뭐예요? 비켜 주세요!」

  서릿발같이 차가운 소리에 제원동은 가슴이 벌컥 하며 자기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주약란의 아름다운 얼굴과는 반대로 그녀의 불타는 듯한 눈은 사람을 위압하는 날카로움이었다.

  그러자 역시 주약란의 날카로운 눈에 위압을 느낀 왕한상이 얼굴에 가득히 웃음을

띠며 제원동을 대신하여 앞으로 나섰다.

 

「아가씨께서는 어느 파의 누구이신지요?」

 

「왜 그러시죠?」

 

「아니 별일은 아닙니다마는 폐방(弊幇)의 도향주와 무슨 약속을 하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실 수는 없을까요? 그러시면 도향주의 의견을 알아보겠습니다.」

 

  주약란으로서는 왕한상이 어떠한 사람이며

또 어느 파의 누구인지도 모르는 처지에 설사 또 안다고 해도

그의 말대로 사실을 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그것이 보통 귀중한 것이라면 몰라도 무술계에 수백 년 동안 신비 속에 싸인 채

전해 내려오는 귀원비급인 데는 더욱 그랬다.

얼마 동안 생각해도 주약란은 선뜻 대답할 바를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