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장 더욱 두터워진 자매의 정 <雙媒情重>
한편,
조소접의 얼굴이 갑자기 끓어지며 방망이로 ?두드리는 것처럼 가슴의 고동이 빨라졌다.
그와 함께 숨도 가빠지는 것이었다.
이윽고 조소접은 지금까지의 조용한 침묵을 깨뜨리며 양몽환의 허리에 감았던
팔을 풀면서 혼자 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안되겠어, 내가 더 기력을 운행해 줘야지!」
하는 조소접의 말은 혼자 중얼거리는 것 같이 들리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주약란에게 들으라는 말 같은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양몽환의 회생하는 얼굴의 변화만 지켜보고 있던 주약란은
조소접의 하는 말을 무심코 들었을 뿐 그 말 속에 들어있는 뜻은 알아채지 못하였다.
아니 어느 한가한 시간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귀담아 들을 마음의 여유가 있었겠는가.
마음으로 몸으로 정말 살리고 싶었던 양몽환이 지금 의식을 회복하고 있는 순간이 아니었던가.
생각을 못했다는 것보다 생각할 여유조차 주약란에게는 없었다는 것이 숨김없는 사실이었다.
이때 조소접은 자기가 한말에 어떠한 반응이 나오는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주약란이 아무런 반응도 나타내지 않으며 양몽환만 지켜보고 있는 것에 약간 실망한
조소접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천천히 자기의 오른손을 양몽환의 현기혈(玄氣穴)에 얹고
기력을 운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양몽환의 숨소리가 평온해지며 정상적인 호흡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얼마동안 평안한 숨결을 유지하던 양몽환은 자신의 기력과 조소접이 보조해준 기력에
힘입어 잃었던 기력을 되찾으며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자기를 껴안고 있는 조소접의 탐스러운 나체를 정신없이 바라보던 양몽환은 강렬한
정욕에 활활 타는 가슴을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조소접의 손을 덥석 잡고 말았다.
그러자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날카로운 비수를 휘두르며 만일을 대비하여 양몽환의 가슴에
상처까지 내던 조소접은 어떻게 된 셈인지 다소곳이 눈을 내리깔고 양몽환이 하는 대로
몸을 맡기는 것이었다.
이때 옆에서 양몽환의 회복만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주약란은 너무 나 뜻밖의 일에 당황하여
양몽환을 제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직 완전치 못한 몸으로 행동하는 것이 별로 위험한 행동을 할 것 같지도 않고
이럴 때 돌연한 간섭이나 제지로 양몽환의 신상에 어떤 해로움이나 충격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뿐만 아 니라 지금까지 서슬이 시퍼렇던 조소접이 돌변한
행동에 비수를 휘두르지 않는 것도 다행으로 여기고 마음을 놓고 있었다.
주약란이 이처럼 마음을 놓고 있을 때,
일은 주약란의 생각한 바와 같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조소접의 손을 잡고 있던 양몽환의 행동이 이상스럽게 되였기 때문이었다.
거의 상체를. 양몽환에게 맡기다시피 하고 있는 조소접의 몸을 양몽환이 가볍게 안는 듯하자
거기에 빨려 들어가는 듯이 조소접의 몸이 양몽환의 가슴으로 파고들며 어느덧 그녀의 손은
양몽환의 허리를 감고 발갛게 상기된 얼굴을 양몽환의 가슴에 비비는 것이었다.
그러는 그녀의 앵두 같은 입술은 반쯤 열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일이 이 정도로 사태가 벌어질 때까지도 주약란은 조소접을 믿고 있었다.
혼미한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게 황홀한 여체(女體)에 흘려 행동하는 양몽환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조소접의 행동만은 이해하기보다 그의 인격을 믿고 있었다는 것이
더 명확한 주약란의 숨김없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옆에서 보기에도 민망하리만큼 두 남녀의 나체는 거의 한 덩어리가 되어 그만
그 자리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눕는 것이었다.
그뿐이면 또 몰랐다.
양몽환의 접근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조소접은 거의 신음소리까지 내며 양몽환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가 하면 양몽환은 두 손으로 조소접의 매끈한 몸을 이리저리 애무하며
더듬는 것이었다.
더 이상 그들의 해괴한 행동을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주약란은 그만 자리를 박차고 뒤로
돌아서서 몇 걸음 미친 사람처럼 휘청거리며 뛰었다
몇 걸음을 뛰다시피 달려가던 주약란은 자기도 아직 나체의 몸이라는 것을 깨닫고
되돌아와 벗어 놓았던 옷을 입었다.
그동안 양몽환과 조소접은 흥분 속에 휘말려 주약란이 옷을 입는지 어쩐지 조차 알지도 못했고
보지도 못했다.
아니 주약란의 존재 같은 것은 완전히 무시해 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그들이 흥분 속에서 미친 듯이 애무하는 것을 바라보다 급히 외면한 주약란은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고 누가 머리며 어깨를 무수히 때리는 것 같은 아픔과 괴로움을
참을 수 없었다.
급기야 주약란의 눈에서는 알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흐르는 것이었다.
믿었던 사람과 사랑하고 싶은 사람에게서 배반을 당한 주약란은 그 자리에 더 서 있을 수 없어
천근만근 같은 무거운 마음을 돌려 휘청 휘청 석실의 문을 향하여 엎어지듯 달려갔다.
그리고는 잠겨 있는 문고리를 벗기고 막 나가려는 순간-,
주약란의 머리 속에는 번개같이 빠른 한가지의 생각이 지나갔다.
(조소접이나 양몽환은 모두 내가 믿는 사람들이다.
더구나 그들은 이전부터 친한 사이도 아닌 얼굴도 모르는 사이들이 아닌가,
비록 순간적으로 이성(理性)을 잃고 흥분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깨달으면 후회 할 것이다 )
이렇게 생각한 주약란은 흥분을 참지 못하고 발광하듯 하는 그들의 행동을 더 지속시킨다는 것은 피차간 불행을 초래할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 순간 주약란은 번개 같이 달려들어 비비 몸을 틀며 흥분하는 조소접의 명문혈을 내려치고
말았다.
주약란의 일격은 과연 적시 적소(適時適所)의 일격이었다.
「으응‥‥‥」
소리를 지르며 일어난 조소접은 두 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기어이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너무나 분별없이 흥분했던 탓일까.
유방을 가렸던 않은 헝겊은 물론 국부를 가렸던 속옷마저 발끝으로 흘러져 내리고 완전히
나체의 몸 그대로였다.
양몽환은 벌써부터 나체의 몸으로 치료를 받던 중이라 주약란의 일격이 조금만 늦었어도
사태는 이상한 곳으로 흘렀을 것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은 조소접이 일어나 버리자 허황된 마음을 진정치 못 하고 두 손을 허우적거리다
갑자기 부각해 오는 주약란의 매서운 얼굴에 그만 몸 둘 곳을 모르는 듯 급히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러는 그의 시선은 완전히 나체가 된 채 어깨를 들먹거리며 울고 있는 조소접의 육체를
힐끔 쳐다보고 그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야릇한 웃음이 감도는 것이었다.
그 다음 순간 주약란의 매서운 시선을 의식하며 야릇한 웃음이 싸악 가신 양몽환은 그제야
자기가 어떠한 행동을 하려고 했던가를 알고는 금방 얼굴이 끓어지며 몸 둘 곳을 몰라
허둥거리는 것이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조소접도 너무나 흥분이 지나쳐 이성을 잃다시피 양몽환에게 몸부림치다
주약란의 가벼운 일격에 퍼뜩 정신을 차린 조소접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이왕 벌어진 일이지만 될 수 있는 대로 자기가 흥분하였던 것만이라도 감추고 싶은 생각이
지나갔다.
그 순간 옆에 놓아두었던 비수를 들어 양몽환의 가슴으로 달려드는 것이었다.
어색하고 부끄러운 순간을 도호(塗湖)하기 위한 조소접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주약란은
비수를 든 조소접의 손을 덮치며 달려들었다.
조소접의 예리한 칼이 양몽환의 앞가슴에 거의 닿았을 때 주약란이 급히 덮치는 바람에
조소접의 칼을 쥔 오른손은 주약란의 억센 손아귀에 잡히고 말았다.
그러자 화가 가득 찬 조소접은 눈물을 흘리며 주약란에게 원망하듯 말했다.
「언니가 이미 응낙 했잖아요?
그가 불순한 행동을 할 때에는 죽여도 좋다고요.
그런데 이렇게 감싸는 것은 어떤 까닭이죠?」
주약란은 탄식하며 말했다.
「비록 그가 침범을 했지만 완전히 그의 과실이라고는 볼 수 없어!
우선 옷을 입고 천천히 말해요, 나는 지금까지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어.
그러나 그의 잘못은 아냐, 그가 잘못 했다면 왜 내가 말리겠어?」
조소접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사실 주약란의 말이 옳았다.
그러나 자기의 행동만은 변명해야 할 것 같은 조소접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의 말대로 일이 어찌 되었던 옷부터 입어야 할 일이었다.
조소접은 내심 부끄러움과 창피함에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벗어 놓았던 옷을 입었다.
그러나 무슨 말이건 간에 변명이 없을 수는 없었다 말은 변명이지만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것을
내세우고 행동을 은폐하기보다 도리어 눈썹을 치켜 올리며 주약란에게 대드는 것이었다.
「제가 그를 치료하는 것은 언니를 위해서 이었어요.
그러나 어머님이 하신 말씀이 틀림없군요.
세상의 남자는 한 사람도 좋은 사람이 없다고요.」
조소접이 옷을 입는 동안, 주약란은 양몽환의 천영(天靈) ,현기(玄氣) 두 대요혈을 가볍게 치고
그로 하여금 안정하도록 했으나 사실 양몽환의 전신 경맥은 이미 뚫려 몸은 완전히 치유된
셈이었다.
그런 데다 주약란이 두 기혈을 치자 끓고 있던 정욕(情慾)에서 점점 깨어나 조소접이 문책하는
말에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끼고는 허둥지둥 옷을 입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의 의외의 행동에 놀란 주약란은 급히 양몽환의 머리 위를 날아 가로 막았다.
「어딜 가시려고 그러세요?」
양몽환은 비록 정신은 깨어났으나 아직 회복이 완전하지 못했고 더구나 조소접과 황홀했던
순간의 일이 희미하게 떠오르는 그로서는 주약란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주약란을 모르는 체 할 수는 더욱 없어 외면한 채 꺼져가는
음성으로 말했다.
「아무 곳이나 조용한 곳에 가서 제가 무슨 일을 했는지 생각해 보렵니다.」
주약란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양몽환을 바라보았다.
「안돼요, 당신은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도 못한 몸이에요.」
잠시 말을 끊었던 주약란은 음성을 더 한층 낮추며 다시 계속했다.
「더구나 함께 있던 소녀가 당신을 치료해준 은인인데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어디로 가시려고 하세요. 속히 가서 감사하다고 인사하세요.」
「‥‥‥‥」
그래도 양몽환은 외면한 채 고개만 숙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저하고 같이 가세요.」
할 수 없이 양몽환의 손을 잡는 주약란은 그를 이끌고 조소접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왔다.
그러나 조소접은 양몽환을 노려 본채 손에는 그대로 비수를 들고 있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반나체의 조소접에게 익숙한 솜씨로 옷을 입히며 화제를 바꾸었다.
「동생, 취(翠)이모가 살았을 때 나를 친 딸같이 귀여워 해주고 십여 년 동안이나
길러주신 은혜는 잊을 수 없어. 며칠 후에 백화곡(百花谷)에 있는 취이모의 묘(墓)에
성묘(省墓)나 갈까 하는데 우리 같이 가요!」
싸늘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꾸는 주약란의 재치 있는 화제는 조소접의 마음을 돌려놓고
들고 있는 비수까지 버리도록 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그러던 조소접은 급히 옷매무새를 고쳤다.
그리고는 주약란의 앞으로 엎어지듯 끓어 앉으며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었다.
시녀(侍女)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공주(公主)께서는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주약란은 급히 조소접의 두 손을 잡아 일으켰다.
「동생, 이 무슨 짓이야. 동생의 아버지가 바로 나의 스승인데 어찌 내가 절을 받고
또 누구를 용서한다는 말이야.
우리는 서로 자매지간(姉妹之間)인데‥‥‥ 도리어 내 마음이 아파요.」
하는 주약란의 눈에는 귀여운 동생을 바라?보듯 무한한 다정함이 어려 있었다.
조소접을 일으켜 세운 주약란은 그녀의 등을 어루만지며 양몽환을 재촉했다.
「왜 그렇게 서 계세요? 속히 동생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세요!」
그제야 양몽환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깊이 읍(揖)하는 것이었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하고는 조용히 그 자리를 물러나 한편 구석으로 돌아섰다.
주약란은 조소접의 손을 다시 잡고 가만히 흔들었다.
「감사하다는 인사까지 했는데 지나간 일은 다 잊어 버려야지, 이 언니를 봐서라도.」
하는 말에 조소접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그럼 언니, 저는 백화곡(百花谷)으로 돌아가겠어요.」
눈을 반짝이며 명랑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며칠 여기서 쉬었다가 나하고 같이 가요. 치료도 마저 해주고.」
주약란의 간곡한 만류에도 조소접은 굽히지 않고 돌아갈 것을 원했다.
「언니, 고마워요. 그러나 저도 어머님 무덤에 가봐야겠어요.」
「그렇다면 더욱 잘됐어, 나도 묘에 가려고 하는 중인데 이틀만이 라도 더 있다가 같이 가요.」
조소접은 더 말하지 못하고 얼굴을 숙이자 주약란이 말을 이었다.
「동생이 굳이 가겠다면 할 수 없어.
그러나 귀원비급을 가진 동생을 혼자 보내기가 불안해서‥‥‥
물론 동생의 무공을 모르는 내가 아니지만.」
「언니의 말씀 고마워요.
그러나 저는 어머님의 유언도 저버리고까지 남자를 치료해 주었어요.
어머님께 용서를 빌어야겠어요.」
하고는 북쪽을 향하여 꿇어 앉는 것이었다.
조용히 꿇어 앉아 눈을 감고 무엇인가 입 속으로 중얼거려 기도를 올리고는
주약란을 향하여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주약란은 조용히 한옆에 서서 기도가 끝나자 그녀를 부축했다.
그러자 조소접은 마음이 가벼워진 듯 희색이 감돌았다.
「지금 어머님께 용서를 빌었어요. 언니 때문에 부득이한 일이었다고 말씀드렸어요.」
「오호, 잘했어. 그래 어머님은 무어라 그러셔?」
조소접은 꿇어 앉았던 자세에서 일어나 주약란에게 다가오며 생긋이 웃었다.
그리고는 입을 여는 것이었다.
「어머님은 란(蘭) 언니가 가엾다고 하였어요. 매일 밤마다 란대(蘭黛)공주님을 부르면서
기도를 올린대요.
이번 일도 란언니를 위한 일이라면 기꺼이 용서해 주시마고 말씀하셨어요.」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기도 중에 어머니와 영적(靈的)인 대화를 차근차근히 말하는 그녀의 태도는
더 없이 명랑하고 기쁨이 충만해 있는 것이었다.
갑자기 기쁨과 명랑한 태도로 변한 조소접을 바라보던 주약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취의 영(靈)이 있을까?
그리고 우울해 하던 조소접이 무슨 일로 저토록 유쾌해 졌을까?‥‥‥ )
고개를 갸웃거리며 생각에 잠긴 주약란은 친 딸처럼 길러주신 취이모의 은혜가
더욱 새삼스럽게 고마움을 느끼게 하고 존경심이 우러러 올라 추모하는 것이었다.
조소접은 주약란이 추연해지자 그 뜻을 짐작하고 생긋이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언니도 저의 어머님 생각이 나실 거예요.
저도 항상 어머님이 옆에 계신 것만 같이 느껴져요.
더구나 어렵고 곤란한 일을 당할 때 기도만 하면 어머님은 저의 갈 길을 인도해 주셔요.」
「참 훌륭하신 어머님이셔. 나도 늘 생각하고 있어.
동생! 그럼 나하고 같이 며칠 후에 가기로 하고 오늘은 백운협에 가볼까?」
「백운협에요?」
「응! 강적들이 모인 모양이야.」
「그럼 , 좋아요‥‥‥」
말을 중단한 조소접은 한쪽 구석에 고개를 숙인 채 서있는 양몽환을 보며 말을 계속했다.
「당신은 이제부터 기력을 운행하여 스스로 회복되게 하세요.
먼저 배에 운행시키고 진력을 당신의 몸에서 빠지지 않도록 하세요.」
양몽환 스스로 기력을 운행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약란이 곧 그녀의 말을 받아 양몽환에게로 다가갔다.
「그렇게 하세요. 그러면 제가 곧 가서 하림을 보내겠어요.」
주약란의 자상한 음성에 양몽환은 붙잡혀온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기력을 운행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양몽환이 기력을 운행하자 주약란은 조소접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양몽환은 조소접이 시킨 대로 기력을 운행했다.
더구나 이미 조소접의 기력으로서 모든 상처가 거의 완쾌된 양몽환의 몸은
곧 기력이 운행되어 맥박과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조소접의 비결대로 세 번 째 기력을 운행하던 양몽환은 갑자기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리는 석문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금환이랑 도옥이 들어오며
큰 소리로 양몽환을 부르는 것이었다.
「양형!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는데 아직 인연이 남은 모양이군, 하‥‥‥ 하‥‥‥」
양몽환은 말뜻을 채 새기지도 않고 도옥을 향하여 웃음을 띠우며 손을 흔들었다.
「말도 마시오. 일년 동안이 백년 같으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꿈같은 일이었소.」
「하‥‥‥ 하‥‥‥ 그래도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이오!」
「그런데 도형! 그때 아미산에서 어떻게 되었었는지 모르겠구려,
나는 너무 상처가 켰던 모양인지 기억이 없구려!」
순간, 도옥은 마음이 뜨끔했다.
그러나 태연함을 가장하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옳소! 옳소! 그때 양형이 굴속에서 검은 옷을 입은 여자에게 감금되었을 때
나는 그 여자와 몇 수 겨눈 일이 있소.」
「바로 그 여자가 옥소선자(玉簫仙子)라는 무술계의 쟁쟁한 사람이었소.
도형은 적수가 못될 걸요.」
그러나 도옥으로서는 양몽환의 처음 물음에 당황했으나
그의 태도가 자기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음을 알자 마음을 놓았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비웃으며 허세 있게 양몽환과 대화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이 생긴 도옥이었다.
「적수가 안 된다고? 하‥‥‥ 하‥‥‥ 양형!
그래도 그 여자가 중상을 입었기에 격파하지 못했었소.
그런데 어떻게 해서 폭포 속으로 빠졌는지 알 길이 없단 말이오.」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었소. 그 여자의 무술은 그야말로 쟁쟁하오!」
「승부는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는 않았소,
다만 양형을 구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소이다.」
「천만에 말씀! 저 때문에 폭포에까지 빠졌는데 도리어 미안하기만 하오.」
「하‥‥‥하‥‥‥ 그런데 말이오.
양형을 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들어가지 못하게 해서 오늘에야 들어왔소.」
「고맙소. 그러면 내가 한번만 더 기력을 운행한 다음 우리 천천히 이야기나 하십시다.」
하는데 문밖에서 주약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흥! 옷차림부터 괴상하고 건방진 녀석이야.
차후는 상대하지 말아야 해!」
그러자 곧이어 하림의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오빠의 친구 분인데 어떻게 상대하지 않겠어요?」
하는 그들의 말소리는 더욱 또렷하게 들렸다.
그리고는 석문을 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이때 밖에서 들리는 대화를 듣고 있던 도옥은 급히 양몽환의 명문혈에 손을 올려놓으며
「양형! 내가 도와주겠소. 기력을 운행해 보시오!」
하는 것과 주약란이 놀란 눈으로 도옥을 노려보는 것과는 거의 같은 시각이었다.
주약란의 날카롭게 노려보는 시선에 도옥은 일부러 크게 웃으며
「양형의 상처는 거의 완쾌되었으나 한번만 더 내가 기력을 운행시키면 완전히 회복될 것이오.」
하고 양몽환의 명문혈에 손을 대던 처음 마음과는 달리 자기가 치료 해 주겠다는 말을
태연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도옥의 속마음을 그의 인상에서 알아챈 주약란은
「흥! 고양이가 쥐를 위해 방울을 단 셈이군, 자비한 듯 가장하지 말아요!」
날카롭게 쏘아 붙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말에 호락호락 주저앉을 도옥이 아니었다.
그보다 날씬한 몸매에 이목이 수려한 주약란의 아름다움에 음흉한 눈길로 바라보는 도옥이었다.
도옥의 음흉한 시선이 자기의 온 몸을 샅샅이 훑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주약란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여차하면 한 수 내려치려다 맥없이 그 자리에 쓰러지는 양몽환을 발견하고는
급히 달려갔다.
그러자 도옥의 음성이 들려왔다.
「양형! 속히 기력을 운행하시오. 마음을 진정하고!」
그러면서 양몽환의 명문혈에 대고 있던 손을 떼는 것이었다.
이때 양몽환은 도옥의 손이 명문혈에서 떨어지자
갑자기 기력이 약해짐을 느끼고 즉시 운행하여 조절시켰다.
그리하여 잠시 후 양몽환의 몸에는 침체(沈滯)되었던 진기가 다시 채워지는 것이었다.
양몽환이 차차 정신이 들고 기력이 조절되자
도옥은 다시 양몽환의 명문혈을 잡고 주약란을 음흉하게 노려보는 것이 마치 송충이가
지나가는 것처럼 징그러움을 느낀 주약란은 잠시 골몰한 생각에 빠지고 말았다.
(이미 두 번이나 나는 도옥과 겨누었다.
그의 무공은 양몽환을 능가한다. 그런데 또 지금은 그의 손이 양몽환의 명문혈에 놓여 있다면
사태가 심상치 않는데‥‥‥)
여기까지 생각한 주약란은 아무래도 자기의 선수(先手)보다 도옥이 양몽환의
명문혈을 치는 것이 속도가 빠르리라고 계산을 했다.
그렇다면 양몽환의 목숨이 위태하고 자기가 서 있는 위치도 불리하다는 것을 아울러 계산한
주약란은 하는 수 없이 공격을 포기했다.
그러는 중에도 도옥의 시선은 주약란에게서 한시도 떼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표정이 무슨 말인지를 하려는 것 같았다.
주약란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도옥을 향하여 눈을 떴다.
「무슨 일로 오셨죠? 그 손을 떼세요.」
「흥! 조건을 듣는다면」
「무슨 조건이죠.」
그러자 도옥은 음흉스럽게 씨익 웃으며
「첫째. 나의 과거사를 비밀에 부칠 것.」
「언제까지?」
「삼개월간!」
「좋아요.」
「둘째, 삼개월 동안 피차 침해하지 않을 것.」
「그럼 여기서 떠나지 않겠다는 것인가요?」
「물론! 여기서 여러분과 좀 놀아야겠소.」
주약란은 비위가 상했으나 양몽환을 살리자면 별 도리가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할 수 없었다.
「좋아요! 그럼 손을 떼시오.」
그러자 도옥은 승자(勝者)의 거만한 태도로 호탕하게 웃으며
양몽환의 명문혈에서 손을 떼는 것이었다.
「하‥‥‥ 하‥‥‥물론 떼고 말구‥‥‥
그러나 양형의 상처는 걱정할 필요가 없소.
며칠만 휴양하면 완쾌될 것이오!」
하고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주약란의 옆으로 다가서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약란은 그를 피해 몇 걸음 물러서면서 차가운 시선으로
도옥을 노려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건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너무 아는 척 마세요.
때가 오면 당신의 죄악을 모두 폭로시키겠어요,」
아니꼬운 듯 쏘아 붙이는 주약란의 가시 돋친 말에 도옥은 태연히 웃으며
「천만에! 천만에!」
연발하며 어색한 분위기와 자신의 난처한 표정을 얼버무리는 것이었다.
이때 뒤미처 달려온 하림이 양몽환의 품에 안기며
「오빠! 좀 어떠세요?」
하는 하림의 다정스러운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색한 분위기는
주약란과 금환이랑 도옥의 냉전장(冷戰場)으로 변했을 것이었다.
다행히 하림의 출현으로 분위기는 부드럽게 무마되고 말았다.
사실 하림으로 말하면 오랫동안 않고 있던 양몽환으로 말미암아
침식(寢食)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으로 극히 수척해 있었다.
그러한 하림의 눈에 병이 완쾌되어 앉아 있는 양몽환을 볼 때 그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기쁨이 눈물로 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정(常情)이 아닐 수 없었다.
품에 안긴 하림의 머리를 쓰다듬던 양몽환은 오랜만에 만나보는 하림을
다시 한번 꼭 안아 주며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았지?」
진정 오빠처럼 다정하게 위로해 주었다.
「제가 무슨 고생을 했어요.
뭐, 나보다 란(蘭)언니가 고생했어요.
정말 란 언니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주약란의 피나는 고생이 아니었다면 하림의 말대로 양몽환은
이미 딴 세상으로 가버렸을 것이었다.
하림은 그 고마움을 주약란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란언니! 정말 감사해요!」
주약란은 아무 말 없이 생긋이 웃을 뿐이었다.
그러나 하림과 양몽환의 대화를 들으며 주약란의 눈치만 살피던 도옥으로서는
하림을 껴안은 양몽환의 모습이 구역질이 나도록 보기 싫고 금방 달려들어 한수 명문혈을
내리쳐 죽여 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모든 계약이 되어 있는 이상 그로서는 태연한척 침만
꿀꺽 삼켰다.
그러자 은연중에 도옥의 얼굴에서 검은 그림자를 찾아낸 듯한 주약란이 도옥을 가리키며
싸늘하게 말했다.
「모두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이 아니면 그이가 중상을 당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러나 도옥은 펄쩍 뛰며 손을 흔들었다.
「천만에! 제가 그런 정기나 무공이 있다면 좋겠소.」
「흥! 그렇겠죠, 우릴 속이진 못해요.
여기서도 백운협에서처럼 잔꾀를 부린다면 살아서 괄창산으로는 돌아가지 못할 걸요.」
「감사합니다. 한번 해 보시죠!」
주약란과 도옥의 분위기가 점차 험악해지자
양몽환이 중간에 나서며 주약란에게 애원하듯 그러나 정중하게 만류하는 것이었다.
「도형은 먼 곳에서 오신 손님입니다 주소저께서는 저를 봐서라도 참으시죠.」
그러나 주약란은 냉랭했다.
「참는 것도 한도가 있어요. 자신이 조심하기에 달렸어요.」
차갑고도 싸늘한 소리였다
순간, 양몽환은 주약란과 도옥의 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는가를 의심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중대한 사건이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이와는 반대로 도옥은 도옥대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여전히 태연한 태도로
주약란의 말을 받아 넘기는 것이었다.
「저와 양형은 친한 친구의 사이로서 천리 길을 멀다 않고 문병차(問病次) 찾아왔는데
대접이 어찌 이러 하시오?」
도리어 주약란을 힐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도옥의 말은 들은 체도 안하고 하림의 손을 잡고 석문을 나서다
양몽환을 돌아보며
「조심하세요. 될 수 있으면 석실에서 나오지 마세요.」
하고는 하림을 앞세우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양몽환은 순간적으로 주약란의 말에서 도옥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암시를 받을 수 있었다.
주약란의 말하는 뜻은 도옥이 밉거나 싫어서라기보다 어떤 원한 관계가 스며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하여 양몽환은 즉시 암암리에 기력을 운행 조절하여 진기를 모으는 데에 집중시켰다.
그러나 양몽환의 눈치를 모를 리 없는 도옥은 박장대소하며
「양형! 왜 그러시오, 내가 두렵소?」
노골적인 질문에 당황한 양몽환은
「천만에 무슨 그런 말씀을‥‥‥」
하고는 급히 기력의 운행을 중지해 버렸다.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양몽환이 당황하며 기력의 운행을 중지하자
도옥은 석실을 두루 살피며 능청스럽게 딴청을 피웠다.
「설비가 아주 굉장하군! 도대체 누구의 석실(石室)이오?」
「아마 주소저의 거실 같소!」
「하. 그래요? 그런데 양형을 여기에 모셨다면 주소저와는 보통사이가 아니군요?」
빈정거리며 거실을 둘러보던 도옥의 시선은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아름다운
구슬 함(函)에서 멎었다.
그러는 그의 눈에는 광채가 번쩍였다.
(옳다. 분명히 저 속에는 진귀한 보배, 아니면 황금이 들어 있을 것이다.
혹시 내가 찾고 있는 물건이 바로 저것이라면? 하여튼 손에 넣고 보자!‥‥‥)
눈독을 들인 도옥은 양몽환이 눈치 채지 못하게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양몽환은 도옥이 빈정거리며 묻는 말에 대답할 궁리를 찾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한참 만에 양몽환은 얼굴을 붉히며
「사이가 무슨‥‥‥ 그분은 나의 구명은인(救命恩人)이오.」
「하‥‥‥ 하‥‥‥ 은인이라고?
그러나 은인을 사랑하지 말라는 법 이야 있겠소.
더구나 미인의 은혜는 갚을 길이 없는데‥‥‥‥ 하‥‥‥하‥‥‥‥
하림과 은인 주소저, 그 중에 누가 더 좋소?」
양몽환은 난처한 얼굴로 거의 울상이 된 채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 그러지 마시오. 생각해 본 일도 없는데‥‥‥」
말끝을 흐린 양몽환은 더 이상 도옥의 말을 듣다가는 정말 싸움이 벌어질 것을
염려하여 급히 자세를 바꾸었다.
「그런데 도형! 저의 동사제(童師弟, 童淑貞)는 어디 계시오?」
도옥은 이미 양몽환에게서 동숙정의 행방을 묻는 물음이 있으리라고
미리부터 예기하고 있었던 터라 태연히 대답했다.
「바로 백운협에 있소,그렇지 않아도 그녀는 양형을 한 번만 만나보기를 원하오.」
하고는 곧이어
「그러나 만난다는 것은 어려울 거요,」
「어려울 것이 없지요. 도형만 좋다면 곧 가서 만날 수 있지 않소?」
그러자 도옥은 지금까지의 교활한 태도를 버리고 심각한 얼굴로 양몽환을 부르는 것이었다.
「사실 이번에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은 양형의 문병차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최후로 양형을 만나고 싶다기에 온 것이오.」
양몽환은 화닥닥 놀라며 급히 되물었다.
「최후로 만나겠다고요?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는 말이오?」
도옥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렇소, 내가 아니었다면 벌써 죽었을 것이오.」
놀라운 소식이었다.
양몽환으로서는 같은 파의 제자로서 파(派)와 스승을 버리고 울면서 도옥을 따라가던
지난날의 동숙정의 모습이 새삼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러한 그녀가 무슨 일로 죽기를 결심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무슨 원인인지는 모르지만 도형이 잘 위로하고 돌봐 주면‥‥‥」
그러나 도옥은 완강히 고개를 흔들었다.
「온 힘을 다 해도 이미 죽을 결심을 한 사람이오.」
「도대체 죽을 결심이라는 것은 무슨 이유요?」
「그것은 파와 스승을 배반하고 무술계의 금기(禁忌)를 범한 때문이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사실이오. 응당 파의 규율대로 처단돼야하오.」
「그래서 양형을 두려워하고 있소.
혹시 양형에게 그녀를 잡아오라는 명이라도 내렸는지 해서 말이오.」
「아니, 저는 아직 그런 명도 받은 일이 없소.」
「 그러면?」
「나는 모르는 체 하겠소, 도형이 잘 타일러서 데리고 오시오,」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오?」
「글쎄 좀 생각해 보겠소.」
이때 음식상을 든 하림이 들어와 그들의 대화는 중단되고 말았다.
「오빠! 란언니가 손수 지은 음식이에요. 조금씩 드세요.」
그러자 너무나도 오랫동안 굶은 양몽환은 눈을 번쩍 뜨며
「배가 몹시 고픈데!」
「그래도 안 돼요. 조금씩 잡수라는 란언니의 분부에요,」
하는 하림을 뒤이어 도옥이도 한 마디 거들었다.
「사실이오. 병후에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되오.」
그러자 하림은 생긋 웃으며
「우리 란 언니가 당신은 나쁜 사람이라면서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러나 오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것이 고마워서 말하지 않을 수 없어요!」
「하‥‥‥ 하‥‥‥ 나쁜 사람이라, 나는 그렇지 않은데‥‥‥」
싱긋이 웃으며 조금씩 음식을 먹는 양몽환에게로 고개를 돌린 도옥이
「양형! 우리는 친구 사이가 아니오? 그런데 이상하게 되었군요.
아무래도 절교(絶交)해야겠는데!」
하자, 양몽환은 약간 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옳은 말이다. 동사제가 배반한 것도 도옥이 때문이다.
그러나 도옥이만을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동사제가 자원해서 배반한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건 그렇다 해도 어찌 절교까지 하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양몽환은
「별 말씀을‥‥‥‥ 아직 도형의 진정한 마음을 모르기 때문이오.
사매의 실언을 용서하시오.」
「옳은 말씀이오. 어찌 절교하겠소!」
입으로는 이렇게 말하는 도옥이지만 속은 딴판이었다.
(오냐, 두고 보자. 머지않아 너희들을 산산조각으로 내버릴 테다.)
이렇게 결심하는 도옥이었다.
그러나 내색하지는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심소저께서도 혹시 제가 나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형과의 교정(交情)을 봐서 좋게 보아 주시오, 하‥‥‥ 하‥‥‥」
「용서 하세요. 오빠의 말씀대로 따르겠어요.」
하고는 양몽환이 먹고 난 비인 그릇을 들고 밖으로 사라졌다.
하림이 밖으로 나가자 도옥은 다시 동숙정의 문제로 화제를 돌렸다.
「양형은 그녀의 소원을 듣지 못하겠다는 말이오?」
「음‥‥‥ 글쎄, 도형도 동행하겠다면 가도록 하겠소,」
「그렇다면 내가 먼저 가서 알리겠소.
사실 그녀는 요새 침식은 물론 말도 안하고 있는 중이오.」
도옥의 말대로 고지식하게 믿는 양몽환은 동숙정이 불쌍해져 더 주저할 수 없었다.
「큰일이군요. 그럼 속히 가봅시다.」
도옥은 일부러 급한 척 하고 또 동숙정이 불쌍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맙소, 양형! 자 가십시다.」
하고는 성큼 앞장서서 나가는 것이었다.
그 뒤를 황급하게 양몽환이 따르는 것은 물론이다.
거의 문 앞에까지 다다른 도옥은 뒤따라오는 양몽환을 바라보며
자기의 주머니를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황급하게 양몽환을 낮은 소리로 불렀다.
「양형! 잠깐만 기다리시오.
손수건을 석실에 빠뜨리고 나왔는데 곧 가지고 오겠소.」
하고는 급히 몸을 돌렸다.
순간, 이상한 예감에 가슴이 뜨끔한 양몽환은 급히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려다
흰 손수건을 들고 나오는 도옥과 마주쳤다.
「아! 미안하오. 여기 찾았소. 그럼 속히 갑시다.
눈이 빠지도록 양형을 기다릴 그녀를 생각하면 한시가 급하오.」 ,
등을 미는 도옥에 밀려 석실을 나서는 양몽환은 자기의 이상한 예감이
아무 것도 아닌 착각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얼마 동안을 달렸다.
이때,
「오빠! 어디 가세요?」
하고 외치며 뛰어오는 하림을 발견한 양몽환은 오지 말라는 표시로 손을 흔들었다.
「곧 다녀오겠어!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러나 하림은 어느 사이에 양몽환의 앞을 가로 막으며
「어디를 가시는지 저도 같이 가겠어요,
아직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오빠가 병이 재발한다면 제가 부축해야죠!」
그러자 도옥은 웃으며 하림을 안심시키는 것이었다.
「염려 말아요. 저와 같이 가면 걱정 없소!」
하고는 양몽환을 재촉하여 가던 길을 재촉하고 말았다.
그들이 계곡 입구에 다다랐을 무렵, 맞은편 계곡에서 갑자기 삼수나찰 팽수위가
느닷없이 달려와 길을 막는 것이었다.
그러자 도옥은
「어느 놈인데 감히 길을 막느냐!」
벽력같은 소리를 외치면서 손을 들어 내려쳤다
도옥의 무공은 예전과는 달리 쟁쟁하고 한수라도 날쌔지 않음이 없었다.
도옥의 날카로운 공격을 받은 팽수위는 할 수 없이 그 자리를 피했다.
그러자 도옥이 뒤따라 달려드는 것이었다.
이때, 양몽환은 황급히 도옥을 부르며 고함을 질렀다.
「도형! 우리 편이오. 손을 멈추시오!」
그 소리에 도옥이 주춤 물러서자 팽수위는 노루 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끼고
어느 사이에 독사(毒砂)를 한주먹 쥐었다.
그리고는 도옥을 노려본 다음 양몽환에게 공손히 말하는 것이었다.
「양상공은 아직 회복되지도 않은 몸이오. 속히 석실로 돌아가서 휴양을 취하시오.」
양몽환은 미간을 찌푸릴 뿐 아무 말이 없자 팽수위는 양몽환의 마음을 알고 있는 듯
웃는 것이었다.
「양상공께서는 조금도 의심하지 마십시오. 시녀는 주소저의 분부를 받고 오랫동안
이곳에서 기다렸습니다.」
그러자 도옥은 자기와 양몽환의 사이를 떼어 놓으려는 속셈임을 알아차리고
은근히 심사가 터졌다.
「비록 당신이 중간에서 아무리 방해하려 해도 우리 두 사람의 우정을 떼어 놓지는 못할 것이오.」
팽수위는 이에 주약란에게서 도옥의 악랄한 성품과 소행을 들은 바라
어느 때 일격을 가해올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독사를 편 손을 번쩍 들면서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의 공격을 미리 방지하는 한편 경계하자는 것이다.
「잠깐! 만일 저에게로 한걸음이라도 가까이 오면 칠보추혼(七步追魂)의
독사(毒砂) 맛을 보여 주겠소.」
팽수위의 경계는 대단했다.
감히 다가갈 마음도 나지 않는 도옥은 그녀의 무술도 무술이지만 쥐고 있는
독사에 은근히 위협 당하자 양몽환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양형! 속히 가십시다. 당신을 기다리다 지쳤을지도 모르겠는데 ‥‥‥」
하며 양몽환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팽수위가
「양상공! 미안하지만 왼쪽으로 조금 비켜주세요.」
어떻게 하든지 도옥과 붙어 있지 못하도록 양몽환에게 주의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도옥이 양몽환과 가까이 붙어 있으면 팽수위의 독사가 날지 못하리라는
도옥의 속셈을 눈치 챘기 때문이었다.
순간, 도옥은 마음이 섬뜩하며 팽수위의 세심한 주의력에 당황했다.
(아! 이거 강적을 만났는걸!‥‥‥)
입맛이 쓸 뿐 어떻게도 할 수 없는 도옥이었다.
이와 같이 팽수위와 도옥의 사이가 심상치 않게 되면 될수록 난처한 것은 양몽환이었다.
팽수위의 말대로 도옥을 피하여 왼쪽으로 비켜선다면 도옥을 배반하는 셈이고
도옥과 붙어 있으면 팽수위의 말인즉 주약란의 뜻을 거부하는 셈이었다.
중간에 끼어 입장이 곤란해진 양몽환은 우선 도옥과의 관계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 이 분은 저의 둘도 없는 친한 친구입니다.
오해하지 마시고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나 팽수위는
「그것은 시녀의 뜻이 아니라 주소저의 뜻입니다.
물론 양상공의 입장이 곤란하시겠지만 주소저의 허락 없이는 저도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요지부동이었다.
양몽환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무슨 이유로 주약란은 팽수위까지 보내어 감시하는 것일까?‥‥‥
필시 무슨 곡절이라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데 양몽환을 부르는 도옥의 음성에 고개를 들었다.
「양형! 걱정할 것 없소. 우선 이곳을 빠져 나간 다음 주소저에게 말해도 좋을 것이오!」
태도가 돌변한 도옥은 두말없이 양몽환의 손을 잡아끌며 팽수위를 밀어 제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 서슬에 몇 걸음 뒤로 물러섰던 팽수위는 도옥의 간계에 빠져 길을 비키게 된 것에
분통이 터졌다.
급히 독사(毒砂)를 날리려고 손을 들었다.
그러나 옆에 바싹 붙어 끌려가다시피 하는 양몽환이 상할까 싶어 독사를 뿌리지 못하고 말았다.
그 대신 달려가는 도옥의 뒷덜미를 노리고 달려들었다.
그때 위기를 짐작한 도옥은 뛰던 걸음을 멈추고 일전을 불사할 비장한 각오로
휘진청담(揮塵淸淡)의 수로 단단히 별렀다.
드디어 팽수위의 선공(先功)을 교묘하게 피한 도옥은 들었던 손을 휘두르며 마주 쫓아 나갔다.
생각지도 못했던 도옥의 강경한 역습에 놀란 팽수위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서며
자신의 경솔을 뉘우쳤다.
마음이 급한 것처럼 행동도 민첩해야 할 팽수위였으나 독사를 움켜쥔 손을 쓸 수 없어
몇 걸음 물러서며 도옥의 역습을 피할 도리 밖에 없었다.
그 기회를 이용한 도옥은 재빨리 몸을 돌려 양몽환의 손을 쥔 채 달아나 버렸다.
어이없이 도옥을 놓쳐버린 팽수위는 이를 갈며 분함을 참지 못하고 독사를 날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양상공! 급히 옆으로 피하시오!」
소리치며 손을 휘두르는 바로 그때였다.
「잠깐!」
주약란의 다급한 외침이었다.
「?‥‥‥‥」
휘두르던 손을 멈춘 팽수위를 제지하며 달려온 주약란은 멀리 달아나는
양몽환과 도옥을 바라보며
「따라가도 소용이 없어요. 더구나 양상공이 상하면 안돼요.」
「그러면 어떻게 하죠? 양상공을 데리고 가는데‥‥‥」
「할 수 없지, 지금 백운협에는 많은 강적들이 숨어 있는데
만일 따라 갔다가 화를 당하면 따라가지 않은 것만 못해요.
더구나 백학도 상처를 입어 적을 감시도 못하는 이때에.」
「그럼 조소저와 심소저를 데리고 가겠어요.」
「그들은 더욱 무술계에 경험도 없고‥‥‥
그 대신 진보(陳?)와 송예(松藝), 두 사람이 석실에서 기다릴 것이오.
속히 석실로 돌아가시오.」
「저 혼자 돌아갈까요?」
「응, 나는 양상공의 뒤를 따라가서 동정을 살피고 오겠어요.」
하고는 허리를 굽혔다 펴면서 어느덧 몸은 허공을 나는 것이었다.
주약란이 떠나버리자 팽수위는 할일 없이 서 있다가 석실로 돌아왔다.
이때 단숨에 십여 리를 달려온 도옥과 양몽환은 걸음을 늦추며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양형! 도망오길 잘했소. 공연히 붙잡혀서 입씨름만 하고‥‥‥」
입맛이 쓴 모양이었다.
「미안하오. 나 때문에 도형이 곤란을 당하고‥‥‥」
「천만에, 말이야 바른대로 이 도옥 때문이죠.」
「아니 그렇지도 않소,
나도 동사매가 보고 싶었기에 도형과 함께 뛰어온 것이 아니요?」
「하‥‥‥ 하‥‥‥ 그만 합시다. 이러다가는 끝이 없겠소.‥‥‥」
팽수위 앞을 빠져나와 처음으로 유쾌하게 웃는 도옥을 바라보는
양몽환의 마음속에는 동숙정을 만난다는 것 보다 주약란이
무슨 오해라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더 신경이 써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다시 경공을 발휘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도옥의 뒤를 따라 쉬지 않고 달려가는 양몽환은 사실
그의 건강으로서는 무리였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몸으로 일시에 먼 길을 뛰어 달린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다.
도옥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양몽환은 조금만 빨리 뛰어도
숨이 턱에 닿고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것이었다.
「양형! 힘드오? 내가 좀 부축해 드릴까?」
비 오듯 철철 땀을 흘리는 양몽환을 보다 못한 도옥은
양몽환의 팔을 잡으며 묻는 것이었다.
「아니, 혼자 갈 수 있을 것 같소.」
하는 양몽환은 피로의 기색이 완연했으나 강경히 머리를 흔들며 달리는 것이다
서로 앞서고 뒤서며 달려가던 그들은 길 한 옆에 장검을 멘 채 쓰러져 있는
거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쓰러져 있는 거한의 복장으로 천용방의 제자임을 확인한 도옥은
거한의 가슴을 헤치고 귀를 댔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귀를 떼며 일어나는 도옥은 고개를 가로 흔드는 것이었다.
이미 숨이 끊어져 회생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거한의 몸 어느 곳에도 상처나 피 흘린 자국이 없는 시체였다.
양몽환과 도옥은 동시에 거한이 죽은 원인을 생각하는 듯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러자 도옥은 더 생각할 것 없다는 듯이 시체를 발길로 툭! 차서
숲 속으로 밀어 넣으며 어깨를 들썩했다
「이놈은 팔자가 좋은 놈이오.」
「왜?」
「피 한방을, 상처 하나 없이 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오.
아무래도 면장류(勉掌類)의 내공으로 얻어맞은 모양이오.」
「면장?」
「놀랄 것은 못되오.
면장은 극히 매서운 고수급이 아니면 쓰지 못하는 무공이라는 말이 있소.」
「나도 우리 스승에게서 들은 일이 있소 이 면장법은 무당(武當)파 고수들의
절기 가운데 가장 무서운 수법이오.」
「그렇다면 무당파도 이곳에 온 모양이죠?」
양몽환의 진지한 물음에 도옥은 여유 있는 태도로 양몽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꼭 무당파가 왔다고는 단정할 수 없는 일이오.
면장법과 비슷한 음유(陰柔)도 있고 더구나 공동파(??派)의 음풍장(陰風掌),
화산파(華山派)의 죽엽수(竹葉手) 같은 상처 하나 내지 않고 내공으로만
사람을 죽이는 수법도 있는데‥‥‥」
「아주 음독(陰毒)한 수법들이군!」
이와 같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걸음을 재촉하여 어느 울창한 솔숲에 다다랐을 때
또 한번 기절할 듯 놀라며 멈칫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그곳에는 두 명의 시체가 소나무 가지에 매달린 채 대롱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도옥은 땅을 박차며 가볍게 몸을 날려 시체가 매달려 있는 소나무 가지 위에
사뿐히 걸터앉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익숙한 숨 씨로 시체에 묶여 있는 새끼줄을 끊고는 양몽환을 부르는 것이었다.
「양형! 시체가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잘 받으시오!」
하고는 왼손을 번쩍 들어 시체를 내려치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시체는 양몽환의 가슴을 향하여 날았다.
양몽환은 두 팔을 벌려 날아오는 시체를 받아 안았다.
두 눈 알은 툭 튀어 나오고 혀가 빠져 나온 채 죽어 있는 시체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무서운 형상이었다.
시체를 던지고 곧 나무에서 내려온 도옥은 발길로 시체를 툭툭 차며 흥!
냉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아주 악랄한 수법으로 죽었군, 양형! 이건 말이오. 어떻게 죽은 놈인지 알겠소?」
「요혈을 찌른 모양이군.」
「바로 맞혔소, 요혈을 찔러 죽이고는 스스로 목을 매고 죽은 것처럼
나무에 매달아 놓은 것이오, 천하에 이런 죽일 놈들이 있나!」
자못 분개하는 도옥이었다.
사실 도옥의 성품도 잔인하기는 남 못지않지만 막상 시체를 보면
울분이 치미는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던 양몽환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도옥을 바라보았다.
「죽은지가 얼마 안 되는 무술인 같군!」
「그런 것 같소, 아마 이 백운협이 장차 시체로 산을 이를 모양이오.」
더 볼 흥미조차 없다는 듯 시체를 굴려 숲 속으로 밀어 던진 도옥은
양몽환을 재촉하여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길이 점점 험해지고 더구나 오는 길에 세 명의 시체까지 보게 된 양몽환은
이 백운협 어느 골짜기에 자기를 노리는 고수들이 숨어 있는지 두려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양몽환은 도옥의 뒤를 묵묵히 따라가며 암암리에 기력을 운행 조절하는
한편 주위의 경계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빽빽이 들어찬 울창한 소나무로 하여 하늘을 가리는 어둠 속을 지나
한그루의 나무도 없는 산봉우리 위에 한걸음 먼저 올라온 도옥은 흙을 한줌 쥐어
냄새를 맡아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집었던 흙을 던지고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산봉우리를 넘어서면서부터는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다다르자
뒤에 따라오는 양몽환을 향해 돌아선 도옥은 냇물을 가리키며
「이 계곡만 넘으면 목적지가 되오, 부축하지 않아도 건널 수 있겠소?」
묻는 것이었다.
계곡은 별로 넓지도 않았지만 깊이가 상당한 듯
시퍼런 물이 유유히 흘러 내려가고 그 뒤편으로는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양몽환은 계곡의 폭을 눈어림으로 계산하고 뛰어 넘을 수 있다는 자신을 얻었다.
「건널 것 같소, 도형이 먼저 건너시오.」
「그럼 잘 해 보시오. 그러나‥‥‥」
「그러나?」
그러자 도옥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유쾌하게 웃는 것이었다.
「하‥‥‥ 하‥‥‥ 이 물 속이 상당히 깊은데 빠지면 곤란하오.
더구나 내가 양형과 함께 왔다는 것을 당신의 심사매도 알고 있는데
혹시 물에라도 빠진다면 내가 누명을 쓸 것 같구료.」
사실 농담의 말이라도 앞뒤를 계산한 뼈 있는 말임을 직감한
양몽환은 순간 저윽이 놀랐다.
그러나 태연히 따라 웃을 수 있는 여유도 있었다.
「하‥‥‥ 하‥‥‥ 별 말씀을 ‥‥‥ 내 걱정은 마시오.」
「그럼 부탁하오!」
도옥은 웃음을 멈추며 몸을 날렸다.
다음 순간, 그는 가볍게 건너편 풀밭에 내려앉았다.
이미 암암리에 기력을 운행 조절하고 있던 양몽환은 도옥이 건너뛰자
곧 두 팔을 힘차게 벌리며 비연약파(飛燕掠波)의 경공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나 도옥을 향하여 몸을 날린 양몽환의 몸이 계곡의 바로 위인
허공에 높이 솟았을 바로 그때 이상한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어디선가 괴상한 소리가 들리는가 했는데 눈앞이 아찔하며
무섭고도 강한 장풍이 양몽환의 가슴을 향하여 들이 닥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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