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30 장 석실(石室)속의 세 남녀 <八方可通>

오늘의 쉼터 2014. 6. 22. 14:10

제 30 장 석실(石室)속의 세 남녀 <八方可通>
 

 

주약란은 귀원비급의 요상편(療傷編)을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요상 법들이었다.

주약란은 행여나 양몽환을 구할 방법이 있을까 싶어 세세히 읽어보았다.

사실 그 책에 기술된 요상법은 전부가 금과옥조(金科玉條)같은 절묘한 비법이긴 했으나

막상 양몽환의 내상을 구하기에 합당한 비법은 아무리 보아도 없었다.

주약란은 그만 깊은 한숨을 몰아쉬면서 귀원비급을 도로 내 주었다.

 

「과연 이 귀원비급은 무예계의 보물이군.

무예계 인사들이 목숨을 내걸고 탐내는 것도 무리가 아냐.

이 요상편만 하더라도 천하에 둘도 없는 기서(奇書)야.

그런데도 막상 내가 찾는 비법은 없구나.」

 

그나마 요상편의 창경순기(暢經順氣)의 비법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듯싶었다.

주약란은 답답한 심정을 이기지 못하여 그나마 그 요상법을 써 보려고 마음먹지 않을 수 없었다.

단정히 무릎을 끊고 앉은 후에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온 몸의 진기를 돋우어 두 손을 모아 양몽환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진기는 한 곳으로 모여 두 손으로 흘러들었다.

문지르는 속도가 점점 빨라져 갔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면서 온 몸에 열이 났다.

옆에서 보고 있던 조소접이 감탄해서 한마디 했다.

 

「언니가 그토록 공력을 들인 진기로서도 그의 오장육부의 기능을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다시 구하기 힘들 거야!」

잠시 후, 주약란이 눈을 뜨고 양몽환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오른손으로 양몽환의 등 뒤 명문혈(命門穴)을 조심스럽게 짚었다.

명문혈을 통해서 주약란의 진기가 양몽환의 내장 속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긴장된 시간이 약 일각이 흘렀을까?

그래도 이렇다할 반응은 없었다.

주약란의 이마에서는 구슬 같은 땀이 흘렀고 양몽환은 여전히 죽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양몽환의 명문혈을 짚고 있는 주약란의 손끝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주약란의 온 공력인 진기가 양몽환의 내장으로 흡수되자

그 얼굴은 보기에도 처참하도록 핏기를 잃어갖다

그런데도 막상 양몽환의 얼굴표정은 이렇다할 변화도 없으니 무척 안타까운 노릇이었다.

주약란은 극도에 달한 피곤으로 지금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갑자기 주약란은 양몽환의 코끝에 손을 갖다 대었다.

 

순간!

 

「어머나!」

 

주약란은 자지러지는 신음 소리를 내는가 싶더니

그 얼굴이 단박에 핼쑥해 지고는 입은 열린 채 숨을 죽이고 말았다.

숨 막히는 순간이 흘러갔다.

주약란은 힘없이 손을 내리며 하림을 불렀다.

 

「 림매 ‥‥‥」

 

「너7? ‥‥‥」

 

  하림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주약란의 입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 놀라지 말아‥‥‥」

 

「?‥‥‥」

 

주약란은 무슨 말을 할 듯하다가 그만 눈물부터 앞세웠다.

하림도 덩달아 안타까운 듯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언니 왜 그래요?」

 

「림매! ‥‥‥ 이럴 수가‥‥‥ 너의 오빠 숨이 끊어졌어!」

 

「 워라고요?」

 

주약란의 말이 너무도 어처구니없어 믿어지지 않는지 하림은 멍하니

주약란과 양몽환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주약란도 그제야 설움이 터지는지 그 자리에 쓰러지며 울고 마는 것이었다.

하림은 그래도 설마 싶었던지 양몽환의 왼손을 잡아 보았다.

그러나 차가운 촉감에 부지중 몸을 떨었다.

하림은 다시 양몽환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분명히 양몽환은 죽어 있었다.

양몽환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하림은 의외로 침착하였다.

아니 오히려 온 몸의 기운이 일시에 풀려 허탈에 빠진지도 몰랐다.

주약란을 돌아보며 나직이 말하였다.

 

「언니 울지 마세요. 언니가 그토록 공력을 다해서도 살리지 못하였으니 할 수 없잖아요. )

 

하림은 쓸쓸한 웃음마저 띄우면서 오히려 주약란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조금도 충격을 받은 표정이 아니었다.

모든 시름을 잊고 부처처럼 양몽환을 지키고 앉아 있는 모습은

오히려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였다.

이따금 바람이 그녀의 옷자락을 스치고 비스듬히 걸린 달은

그녀를 감싸듯이 비치고 있을 뿐이었다.

하림은 한참 동안 그러고 있더니 다시 양몽환의 또 한 손을 쥐고는

양몽환의 가슴에 덥히듯이 살포시 끌어안으며 엎드렸다.

그리고 그대로 돌부처처럼 굳어 버린 듯 꼼짝도 안했다.

하림도 양몽환이 오랫동안 생사지간을 헤매자

며칠을 두고 간호하느라 무척 지쳐있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숨처럼 노곤해졌지만

그나마 여태껏 견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양몽환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것이 급기야 양몽환이 숨이 끊어진 것을 알자 일시에 온 정신을

지탱하고 있던 긴장이 풀리면서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바람마저 흐느끼는 양 그들의 몸 위를 살랑대며 어루만져 주고 있었다.

달빛은 차마 애절한 모습을 볼 수 없는지 젊은 子름 속으로 그 얼굴을 가리고 말았다.

소리를 죽여 울던 주약란도 어느새 눈물을 거두고 허망한 눈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다.

잠시 후에 주약란은 몸을 가다듬고 바로 앉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운기를 조식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녀 역시 조금 전에 양몽환을 치료하느라고 많은 진기를 소비하여 무척 피로하였다.

한편, 조소접은 무심한 얼굴로 고들을 바라보고만 있는 듯싶었지만

사실 그녀의 머릿속은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조소접도 어떻게 하든지 양몽환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귀원비금에 기재되어 있는 온갖 요상법을 하나하나 머리 속에서 훑어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귀원비급을 자자구구 완전히 외우고 있던 참이라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도 팔혈접골법이나

패혈봉맥법 등을 세심히 생각하여 보았다.

막상 신기한 많은 요상법들이 번갈아 떠오르기는 하여도 하도 많은 요상법들이라

도무지 어느 법을 써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또한 그 많은 요상법 중에도 양몽환의 증세에 뚜렷이 합당한 요상법은 쉽사리 생각나지도 않았다.

조소접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고 지혜로운 소녀였다.

단지 오늘까지 줄곧 심산유곡에서만 살았기에 딴 사람과의 접촉이 전혀 없었다.

또 그러다 보니 자연히 색다른 사물을 대할 기회도 없었거니와 특별 한 사건에

부딪쳐 본 일도 없었다.

따라서 자기의 생각이 얼마나 깊고 얕은 줄도 모르거니와 자기의 재질이 어느 정도인지도

전혀 모르다시피 하였다.

단지 자연을 벗 삼아 지낸 천진무구한 소녀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녀는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대반약현공을 밖은 몸이었다.

자기 스스로가 만약 자기의 놀라운 실력을 깨닫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은 있었다.

그럼에도 스스로가 자기의 능력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었다.

지금 당장에도 그녀 스스로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 요상법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뿐더러

또 그 효과를 즉시 볼 수 있음에도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하기야 그녀는 무공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순진한 소녀였다.

따라서 그녀는 남들이 말하는 무공이라는 것은 자기로서는 전혀 모르는 것으로 단정하고

또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는 처지였단 심지어 자기가 수련한 대반약현공도 무술이 아닌

줄만 알고 있었으니 귀원비급에 기술된 모든 무공요결 마저 알려고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외면해 버릴 지경이었다.

따지면 그녀가 수련한 대반약현공은 내공 중에서도 가장 득달하기 어려운 기공법이었다.

그녀는 그 기공법을 완전히 익힌 몸이었다.

따라서 비록자기 스스로는 깨닫지도 못하고 또 무공을 모른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 기공법을 익히는 중에 자기도 모르게 각종 절묘한 무학요결은 절로 몸에 배어 버렸고

그녀의 본능으로 되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결국 그녀 자신은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녀는 벌써 훌륭한 무예인으로 성장한 몸이었다.

그러기에 그녀의 몸은 스스로도 놀랄 만큼 민첩하였고 부지불식간에도 절묘한 수법을

발휘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 요상편을 머리 속에서 더듬는 일만 해도 그랬다.

처음부터 요상편에 적혀있는 치료법이 놀라운 술법이고

그 효과가 대단하리라고 알고 하는 노릇은 아니었다.

단지 양몽환이 애절하게도 숨을 끊자 주약란과 하림의 비통해 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게 되어 무의식중에 더듬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머리 속은 놀랍게 움직이고 있었다.

요상편에 각가지 치료법이 머리 속을 스쳐갔던 것이다.

일단 생각에 골똘히 파묻히자 그녀는 온 정신력을 거기에 집중하였다.

단박에 모든 무공요결은 뚝이 터진 물과 같이 걷잡을 사이 없이 떠올라 왔으며

머리 속은 환하게 그 당장 할연관통(割然貫通)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먼저 주약란이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하림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림매! 이제 그만 일어나요.

우선 이 사람을 나의 석실에 옮겨야 해요.

그러고 나서 다시 구할 방법이 있는가 생각해 봅시다.」

 

그러나 하림은 죽은 듯이 쓰러져 엎드린 채 손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주약란도 가볍게 탄식하고 그 이상 더 말하지 않았다.

서글프고 허망한 마음을 누를 길 없어 어스름히 밤하늘을 바라볼 뿐 이었다.

어느새 달도 서산에 기울어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 대신 동 쪽 하늘은 불그스레이 물들며 동이 트고 있었다.

밤이슬은 촉촉이 내렸고 살결을 스치는 바람은 오싹한 한기를 품었다

백의를 걸친 네 사람의 시녀들은 나란히 앉아 있었고

그 뒤에 팽수위가 우뚝하게 서 있었다.

조소접은 한 곳을 노려 본채 꼼짝하지 않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너무도 고요하고 암담한 모습들이 오히려 음산하였다.

곡성이나 눈물 은 없었지만 그것은 마치 초상을 치르고 난 무덤 앞과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산골 전체에도 비창한 기운이 온통 덮여 있는 것만 같이 보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현옥이 길게 울었다.

현옥도 죽은 듯이 고요하고 음산하도록 암담한 분위기가 싫었던 모양이었다.

곧장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힘 있게 하늘로 치솟아 오르기 시작하였다

날개에서 일어난 세찬 바람은 그들의 옷자락을 요란하게 나부꼈다.

마음을 놓고 앉았던 주약란도 현옥이 갑작스럽게 하늘로 날아가자 가볍게 놀라며 쳐다봤다.

그러자 이 어찌된 일인가?

조소접이 앉은 모양 그대로 뛰어 오르더니 현옥의 오른쪽 다리를 휘어잡지 않는가!

더구나 그 높이는 착실히 여덟, 아홉 자는 넘었다.

천만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조소접은 그대로 현옥에게 매달려 이장이나 높이 떠 올라갔다.

주약란은 너무도 어처구니없어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주약란만이 아니라 네 명의 시녀들과 팽수위도 넋을 잃고 보고만 있었다.

그때 조소접은 현옥의 다리를 잡으려고 해서 잡은 것이 아니었다.

무의식중에 뛰어 올라 잡은 것뿐이었다. 바로 본능이었다.

자기 자신도 앉은 모양대로 어떻게 뛰어 올라 잡은 것인지 몰랐다.

그러자 자기가 너무나 뜻밖에 현옥의 다리를 잡고 공중 높이 뜨자

자기 스스로가 먼저 깜짝 놀랐던 것이다.

그러다 무심결에 현옥의 다리를 잡은 손을 놓고 말았다.

  순간. 네 명의 시녀가 똑같이 소리를 질렀다.

 

「어머나!」

 

「저런!」

 

그러면서 조소접을 받으려고 팔을 내밀었다.

이들은 조소접이 무공을 배우지 못한 것을 알기 때문에 그녀가 떨어지면

큰 상처를 입을 것으로 여기고 아연실색한 것이었다.

 

그 순간!

 

일진의 광풍이 네 시녀의 머리 위로 빠르게 지나갔다.

 

네 시녀가 급히 돌아보니 주약란이었다.

 

어느새 몸을 솟구쳐서는 번개같이 날아가 조소접을 받으려고 두 팔을 내밀었다.

그와 함께 허공에서 떨어지던 조소접은 다행히도 주약란이 내민 두 팔 안으로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그 팔을 피해서 반자 밖으로 후딱 몸을 빼돌리지 않는가!

그 재주가 어찌나 날렵한지 오직 놀랍고 신기할 뿐이었다.

너무나 의외의 행동에 어리둥절한 주약란은 자기 몸이 허공에 떠 있는 것도 잊고 소리 쳤다.

 

「접매! 위험해요.」

 

도대체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주약란은 조소접의 놀라운 행동에 정신이 빠져 그만 단전에 모은 진기가 흩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번께는 조소접 대신 주약란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네 시녀들도 조소접 대신 이번에는 주약란을 받으려고 팔을 벌리고 달려 나갔다.

그러나 주약란 역시 무공에는 절묘한 재간을 지닌 몸이었다.

삽시간에 두 다리를 움츠리고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몸을 돌려 일장 밖으로

가볍게 내려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후에 조소접을 바라보는 주약란은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소접의 몸은 마치 한 떨기의 꽃송이와 같이 나풀나풀 춤추듯이 가볍게 내려와 서지 않는가!

조소접 자신도 그와 같이 자기가 조금도 다치지 않고 이장 높이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이

무척 신기한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주약란을 보며 천천히 다가왔다.

 

「언니, 저 양상공을 살릴 방법을 지금 막 하나 생각했는데 효과가 있을는지 모르겠어요.」

 

그 순간 주약란은 곧 그녀가 지고의 내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녀 자신은 미처 자기의 내공이

어떻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어떤 방법인데?」

 

「방금 대반약현공 가운데 한 구절을 생각해냈어요.

그 구절은 <차(滿)면 넘치고 부족은 남는 것보다 낫도다.

만일 임, 독 두 맥을 통하여 남음이 있으면 부족을 보충하고 넘치지도 않으면 무궁무진 하노라!>.....」

 

하고는 돌연 두 뺨에 홍조를 띄우면서 입을 다물었다.

 

주약란은 아직 대반약현공의 수련비결을 모르는 처지였다.

그러나 그녀가 암송하는 요결(要訣)이 상승내공(上乘內功)을 수련할 때

그것이 상당히 어려운 요결이란 것쯤 곧 짐작할 수 있었다.

무릇 상승내공을 수련하려면 대개 인체의 생리적 순리를 이용해야만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수련 기단에 자칫 잘못해서 마(魔)가 들면 반신불수나 죽는 위험이 뒤따르는 것이었다.

일단 이 어려운 고비를 극복하고 상승내공의 수련에 성공한다면 다른 무공은

엄청나게 놀라운 진보를 보이게 되고 그 자신의 공력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승내공을 수련하게 되면 경맥운행(經脈運行)의 균형을 지킬 수가 없게 되니

그것이 큰 결점이었다.

즉 크게 성공하면 할수록 어느 한 곳에 위약(脆弱)함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칼과 창으로 상처를 입힐 수 없다는 철포삼(鐵布衫)류의 외공(外功)만 해도 그렇다.

이 외공의 수련에 성공하여 극치에 이른 사람도 어느 한 곳만은 위약(脆弱)되기가 쉬웠다.

그 곳은 보통 사람의 손가락만으로 찔러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중상을 입게 하거나

즉사시킬 수 있는 곳이다.

그 사람의 외공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곳은 더욱 약하기 마련이다.

이와 같이 내공을 수련하였다고 해도 그 이치는 마찬가지였다.

철포삼이란 외공을 수련한 그에게는 그 약점이 신체 밖의 부분에 있는데 반하여

내공을 수련한 자에게는 그 약점이 대부분 사람의 손이 닿지 못하는 체내의

기경팔맥 가운데에 있는 것이었다.

  상승의 내공이 이와 같이 인체 생리의 순환을 크게 역행시키는 까닭에 내공의 수련이

고도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생리 변화의 유발을 쉽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넘쳐흐르고 여분이 생기는 것을 사용치 않으면 도리어 해(害)가 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내공이 오묘한 경지에 도달된 사람이면 반드시 일정한 시간이 경과하면

휴식함으로서 그 여분의 것을 배출하여야 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상보상약(相補相弱) 시키므로 서 더욱더 발전을 도모할 수 있기 마련이다.

이런 반면 무공이 높은 경지에 도달한 사람일수록 또 마가 들 기회도 많은 것이다

주약란은 잠시 동안 생각하다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접매가 말한 것은 대반약현공을 수련하는 요결이지 내상의 치료와는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

 

주약란은 조소접이 말한 수법이 단지 상승내공을 수련할 때 마가 드는 것을 극복할 수 있는

수법인 것으로 짐작만 할뿐이지 그 수법이 지니고 있는 심오한 묘리를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더욱이 그녀는 양몽환에 대한 생각으로 정신을 집중하여 그 말을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그 말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거절하기가 미안하여 다시 물었다.

 

「접매의 그 요결(要訣)은 뜻이 너무 심오해서 잘 모르겠지만

그를 구할 수 있을는지는 단정할 수 없어.」

 

  조소접은 더욱 뺨을 붉히고 대답했다.

 

「양상공이 중상을 입고도 그토록 오랫동안 숨이 넘어가지 않았잖아요?

그러니 오장육부는 별달리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고 봐요.

다만 진원지기(眞元之氣)를 완전히 소모시키므로 서 내부의 기능을 상실시키고

맥을 경화시킨 것으로 생각되어요.

만일 그의 진원지기를 도와 내장의 기능을 회복시키게만 된다면 그때는

다시 우리들의 진기로 그의 맥혈을 유통시킬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만 된다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겠어요.」

 

「내가 벌써 내 자신의 진기로 그의 기경팔맥을 유통시키려고 해보았어.

그런데도 깨어나지 않았어.」

 

「언니가 사용한 수법은 단지 그의 맥혈을 유통시키고자 하였을 뿐이에요.

그 후에 언니의 진기로 그의 전신 기혈을 움직이려고 하였죠?

그렇게 하면 그의 중상을 입은 내장의 기능이 회복될 줄 알고요.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만일 그의 상처가 아주 가벼웠거나 그가 다친 곳이

외혈내맥(外血內脈)이었다면 언니는 그 수법으로 회복시킬 수는 있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강한 내력으로 내장이 크게 진동되어 상처를 입은 몸이에요.

오히려 언니의 그러한 수법은 그나마 쓰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가 되어 버렸어요.

왜냐하면 그나마 그 상처를 보호하고 있는 그이의 마지막 원기마저 몰아낸 꼴이 되었을 테니까요. 결국 야속하게도 언니의 수법은 그의 마지막 원기마저 소모시키고 깨어나지 못하도록

만들어버린 결과가 되고만 거예요.」 

 

  주약란은 어리벙벙하면서도 무척 화가 난 얼굴이었다.

 

「솔직히 말하지만 나는 수차 나 자신의 원기로

그의 내장의 기능을 회복시키려고 하였지 달리‥‥‥」

「네! 그건 분명히 알 수 있었어요.

언니는 틀림없이 자신의 진원지기를 직접 입으로 그에게 전달한거죠?」

 

주약란은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졌다.

차마 똑바로 조소접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몸을 돌렸다.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남녀간의 도리를 구별할 수 없었어!」

 

  조소접이 갑자기 둥그런 두 눈을 크게 뜨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

 

「언니는 그를 좋아하죠?」

 

  주약란의 얼굴은 단번에 새빨개졌다.

조소접은 더욱 빛나는 눈에 웃음마저 풍기며 쳐다보았다.

주약란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뜨겁고 기쁜 것이 용솟음쳤다.

가까스로 부끄러움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는 아주 좋은 사람이야‥‥‥」

 

얼결에 대답하고 나니 더욱 조소접을 보기가 부끄러웠다.

그녀는 자신을 위하여 변명하려고 하였으나 갑자기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아

좋은 사람이라고만 말하고는 더 어떻게 말할 수가 없었다.

주약란이 그토록 수줍어하며 솔직히 시인하자 조소접은 매우 기쁜 모양이었다.

조소접이 갑자기 두 눈을 감고 천천히 무릎을 끊었다.

그리고는 두 손을 모으고 한동안 중얼거리며 기도를 드리는 모양이었다.

한참 그 리고 나더니 함박 웃으며 주약란의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좋아요, 제가 힘써 보겠어요.

더구나 이 일은 오직 그 사람을 좋아하는 언니를 위한 것이에요.

그래서 지금 금방 내가 그를 좋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돌아가신 어머님에게 말씀드렸어요!」

 

이토록 조소접이 남자를 멀리하는 것은 자기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었다.

주약란도 취 이모가 사부님으로 해서 일생동안 많은 고통 속에서 지내다가 돌아가신 것을

아는 처지였다.

그렇기 때문에 임종시 유언까지 남겨서 조소접으로 하여금 남자를 가까이하지 말도록

말한 것도 알고 있었다.

 

「접매가 정말 치료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귀원비급에 좋은 치료법이라도 기록되어 있어?」

 

「치료법은 대반약현공에 포함된 요결이에요.

비록 그 치료법을 안다 해도 대반약현공의 기묘가 없으면 치료할 수 없어요.」

 

주약란은 갑작스럽게 귀원비급을 쳐드는 조소접의 말을 듣고 은근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아직까지 알고 있는 척도 하지 않던 모든 무공요결을 외우며 자신만만히 말하니

더욱 이상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조소접이 이미 자자구구 외우고 있는 귀원비급의각 무공요결을

새삼스럽게 생전 처음 의식해가며 연구하고 있는 것을 몰랐을 뿐이었다.

하기야 주약란의 무공도 역시 귀원비급에 기재된 것이었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 무공은 사부에게서 전수받은 것이었다.

즉 조해평이 전수한 상, 중 두 권에 기재된 무공에 국한되었던 것이다.

하권에 기재 된 불가와 도가(道家)가 합쳐 이루어진 대반약현공의 심오하고

오묘한 글귀를 친히 보고 음미해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두 소녀는 서로 마주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자 조소접이 걸치고 있는 남사(藍紗)로 반쯤 얼굴을 가리고 웃었다.

 

「언니, 무얼 생각하고 있죠?」

 

  주약란도 그 말에 얼핏 제정신으로 돌아와 조소접을 보았다.

조소접은 얼굴을 살짝 가리고 웃고 있었다.

그녀의 희고 고운 얼굴은 발그스레하였고 눈동자는 수줍은 웃음이 싱글거렸다.

그러면서도 얼굴 가득히 아주 난처한 듯한 표정이 넘실거렸다.

주약란은 멈칫해서 물었다.

 

「왜 그러지?」

 

  조소접은 두어 번 숨을 몰아쉬고는 억지로 웃음을 띠우며 대답했다.

 

「좀‥‥‥ 어쩐지 두려워요.」

 

「무슨 일인데?」

 

「저 양씨란 남자를 구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웬일인지 두려워요.」

 

「사람을 구한다는 것은 크게 선을 베푸는 것인데 뭐가 두렵다고 그러지?」

 

「언니는 치료법을 잘 몰라서 그래요.

그의 오장을 보호하는 원기가 이미 완전히 소모 되었잖아요?

그래서 저 사람을 구하려면 대반약현공으로 나 자신의 진기를

그의 체내 맥혈에 불어 넣어야 된단 말예요.

그리고 그렇게 하길 꼬박 삼일은 계속해야 해요.」

 

주약란은 그 말에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양몽환을 한번 내려보고는 조소접에게 허리를 꾸부리며 말했다.

 

「접매, 나를 구하여 주는 거라고 여기고 모든 것을 참고 이 사람을 구해줘요.」

 

그러자 조소접은 남사를 놓으며 깜짝 놀란 듯 황망히 주약란에게 다가갔다.

 

「언니, 그러지 마세요.

나는 언니를 위한다면 무엇이든지 하겠어요.

돌아가신 어머님도 언니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해 드리라고 말씀하셨어요.」

 

주약란에게 그 말은 뼈에 사무치도록 고마웠다.

그 즉시 양몽환과 하림의 옆으로 다가가 하림의 명문혈을 가볍게 두드렸다.

 

이때 하림은 꿈틀하면서 눈을 뜨고는 정신을 차리는 듯 주위를 돌아봤다.

 

「대언니, 이제 가겠어요? 빨리 그를 안치하고 언니도 그를 위해 복수해 주세요.」

 

  주약란은 싱긋 웃으며 머리를 가로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어쩌면 그는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겠어.」

 

  하림의 눈이 환하게 밝아지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주약란의 품에 파고들며 순진스럽게 외쳤다.

 

「아, 역시 언니의 재간은 심오해요. 숨이 넘어 갔는데도 구할 수 있으니.」

 

  그러자 주약란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는 조소접을 가리키며

 

「내가 그런 재간이 어찌 있겠어. 저기 접매가 가진 재간이지.」

 

  하림은 일시 어리둥절한 표정이더니 조소접 옆으로 다가갔다.

  그 얼굴에는 놀라움과 고마움이 서로 엇갈리는 표정이었다.

 

「언니는 정말 좋은 분이에요‥‥‥」

 

  다시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적당한 감사의 말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주약란은 양몽환을 안고 앞장을 서고 조소접과 하림은 서로 손을 마주 잡고 뒤를 따라갔다.

그리고 조소접의 뒤를 이어 네 명의 백의시녀와 팽수위가 몇 걸음 떨어져서 따라갔다.

  팽수위는 지난날 강호에서 명성이 자자하던 여도(女盜)로서 그녀의 경험은 극히 넓었다.

방금 현옥이 허공으로 날아간 것에 이상스러움을 느끼고 경계하는 것이었다.

주약란이 거주하는 석실은 바로 종운암(聳雲,巖) 아래에 있었으며 아담한 돌문이 보였다.

조소접은 그 돌문이 절벽 중간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조금 망설였다.

그러나 경공을 발휘하여 사뿐히 올라갈 수 있었다

주약란은 양몽환을 자기가 기거하는 석실에 눕히며

 

「접매, 숨이 끊어진지도 상당한 시간이 흘렀는데 더 이상 지체하였다가는 구하기 힘들겠어.

내가 할 일이 있으면 무슨 일이나 얼마든지 분부해 줘요 나도 돕겠어.」

 

  조소접은 얼굴을 붉혔다.

 

「별로 도움은 필요 없어요.

한 가지 조건만 들어 주시면 돼요.」

 

「말해 봐요, 어떠한 일이라도 하겠어.」

 

  조소접은 잠시 주약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무슨 어려운 부탁이나 하는 것처럼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나는 이 석실에서 밤낮 사흘 동안을 그와 함께 지내야 해요.

모두 언니를 위해서 남녀간의 도리를 불구하고 하는 일이지만 한 가지 부탁할 것은 다름이 아니라 저와 같이 언니도 사흘 동안을 같이 있어 달라는 거예요.」

 

「얼마든지 어렵지 않은 일인걸, 난 또‥‥‥ 무슨 대단한 일이라고 ‥‥‥」

 

「언니는 대단한 일이 아닐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대단한 일이에요?」

 

「어째서?」

 

「만일 그이가 회복한 다음에 일어날 어떠한 사태에 대해서 언니가 증인이 돼 주셔야 해요.

행동이 불순해서 서로 다투게 되는 일이 있다면 저는 정말 참을 수 없이 칼을 뽑을지도 몰라요.

그때에는 언니도 말리지 말아야 한다는 조건이에요.」

 

  주약란은 잠깐 생각한 다음 접매를 불렀다.

 

「잘 알겠어, 그러나 그 불순한 행동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는 모르겠어.

더구나 회복되자마자 무슨 이성(理性)을 잃은 행동이나 언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믿어.

만일 그이가 불순한 행동을 한다면 접매의 조건대로 들어 주겠어.

나는 그이를 믿기 때문에 하는 말이야.」

 

  주약란은 사실 양몽환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조소접이 걱정하는 불순한 행동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회복되자마자 무슨 정신으로 딴 마음을 가질 것이며 어찌 또 그런 생각인들 할 수 있겠는가?

주약란은 양몽환의 인간됨과 양심을 믿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달랐다. 양몽환이 의식을 회복하여 정신이 들어서 조소접이 혼자 있는 것을

알고 불순한 마음이라도 품고 덤벼든다면 여자의 몸으로서 이겨낼 재간이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주약란을 입회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언니의 말도 이해하겠어요.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모르지 않아요?

만일 그가 나를 침범하는 거동을 한다면 어쩌시겠어요?」

 

「그렇다면 접매 마음대로 해요.」

 

  주약란은 일언지하에 조소접의 마음대로 할 것을 약속했다.

  조소접은 시퍼런 칼날이 번쩍거리는 비수를 뽑아 들고 주약란을 바라보았다.

 

「좋아요 만일 내가 그를 죽이려고 할 때 언니는 절대 나서지 마세요.

나도 극히 자제력을 갖고 행동하겠어요.」

 

  주약란은 그녀의 굳은 결의에 놀랐다.

비록 함께 있기는 겨우 하루저녁 밖에 안 되지만 주약란은

그녀가 부드럽고 온화한 성격이며 천진 순결한 것이 하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돌변하는 성격에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약란은 가만히 네 명의 시녀에게로 눈을 돌려 그들의 눈치로 조소접이

어떠한 성격의 소유자인가를 확인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녀들도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듯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주약란은 조소접이 갑자기 돌변한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조소접과 하림은 외양은 비슷했지만 성격이 판이했다.

하림이 천진난만하고 순결하여 가슴 속에 아무  의심 없이 대하는데 비하여

조소접은 지혜가 출중하고 사고력이 빠른 여인이었다.

다만 오랜 세월을 산골에 묻혀 사는 동안 성격은 단순해지고 야성적으로

거칠어진 것 같은 감을 풍기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만일 그가 정말 접매를 침범할 거동이 엿보인다면 접매의 마음대로 해도 좋아요.」

 

  조소접은 의기양양하여 주약란에게서 발길을 돌려 천천히 석실 입구에 이르렀다.

그리고는 네 명의 시녀를 불렸다.

 

「나는 언니와 이 방에서 저분의 병을 치료해야 하겠다.

너희들은 물러가서 나를 방해하지 말아라.

내 정신을 산란하게 하지 말고 조용히 물러가 있어라.」

 

  네 명의 시비를 내 보내고 문을 닫으려 하자 주약란이 다가오며

 

「잠깐!」

 

  문을 닫지 말라고 제지한 후 계속해서

 

「문 닫지 말아요. 음식을 좀 가지고 와야겠어.」

 

  문의 손잡이를 잡은 채 조소접은 문 밖으로 나가는 주약란에게

미소를 띠며 길을 비켜주었다.

  석실을 나온 주약란은 그 옆에 있는 동굴 속으로 자태를 감추었다.

 

  이 동굴은 예전 천기진인(天機眞人)이 도를 닦던 곳으로 오장 정도의 깊이에

다섯 개의 방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그 맨 끝 방을 부엌으로 쓰고 있었다.

네 개의 방을 지나 다섯 번째 방인 부엌으로 달려가 문을 열던 주약란은

 

「앗!」

 

하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곳에는 신응(神鷹) 진보(陳?)와 시중을 들어주던 궁녀 송예(松藝)가

혼혈(昏穴)을 찔린 채 부엌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잠시 공포에 떨던 주약란은 정신을 수습하고 무공을 운행한 다음 쓰러져 있는

세 명의 몸을 차례로 주물러 막혀버린 혈도를 풀어 놓고 깨어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얼마나 심하게 찔렸는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숨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초조해진 주약란은 재차 진기를 모아 강하게 요혈을 내려쳤다.

그제야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길게 숨을 몰아쉬며 눈을 뜨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돌아보았다.

그렇게 주위를 돌아보며 헐떡헐떡 숨을 쉬던 그들은 한편에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고 있는

주약란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듯 일어나다 무릎을 끊고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너무도 오랫동안 혈도가 막혀 있었던 그들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도 피가

제대로 돌지 않아 앞으로 혹은 뒤로 쓰러질듯 하다가 간신히 몸의 중심을 잡으며

주약란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진보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숙였다.

 

「어찌된 일이죠?」

 

「금환(金丸)을 든 미모의 소년이‥‥‥」

 

  순간 주약란은 도옥을 생각했다.

 

「알겠어요. 왜 그랬는지 알아보겠어요.

우선 음식을 좀 준비해 주세요.

먼 곳에서 오신 손님들을 대접해야겠어요.」

 

분부한 주약란은 그 길로 삼수나찰과 하림을 불러 주위를 경계시키고 곧 거실로 돌아왔다.

 

한편 -,

 

주약란의 도움으로 잃었던 정신을 되찾은 진보와 송예는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해지며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

리고는 급히 일어나 분부대로 음식을 준비하여 석실로 옮겨갔다.

진보와 송예는 석실에 있는 조소접과 양몽환을 의아한 듯이 바라보며 들고 온 음식을 내려놓았다.

이때 주약란은 조소접에게 음식을 권하며 유병(油餠)을 하나 먼저 집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고개를 가로 흔들며 사양하는 것이었다.

 

「먹고 싶지 않아요.」

 

  혼자 잡수세요.」

 

「아니‥‥‥ 나도 먹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러나 접매도 좀 먹은 다음에 치료를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

 

「불안해요. 치료가 어떻게 될지‥‥‥」

 

  과연 그녀의 얼굴에는 음식보다 치료가 더 염려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이라고 양몽환을 생각하는 것이 조소점보다 못 한가

아니 그 반대로 백배 천배 더한 것이 주약란의 심정이었다.

주약란은 속으로는 바짝 바짝 가슴이 타는 듯 양몽환의 생사 문제가 가슴을 조였지만

조소접 앞에서 너무 속마음을 보이는 것이 좋지 못할까 하여 일부러 태연하려고 애썼다.

조소접에게 권하던 유병을 한입 베어 물고 조소접의 눈치를 살폈다.

 

조소접은 주약란의 시선이 자기의 얼굴을 더듬고 있는 것도 모르는 채 눈을 감고

별로 생각하는 것도 없는 표정으로 앉아있기만 하는 것이었다.

유병 하나를 다 베어 먹도록 조소접의 자세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앉아 있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속삭이듯이 조소접을 부르고 말았다.

 

「접매! 무슨 일이지? 불안해서 그래?」

 

주약란의 걱정 어린 말소리를 듣고는 얼마동안 그대로 앉아 있던 조소접은 앉은 채

눈도 뜨지 않고 가만히 고개만 가로 흔드는 것이었다.

 

「그럼 왜 그러지? 숨이 끊어 진지도 퍽 오래 되었는데 속히 손을 써야 하지 않을까?」

 

  마침내 속에 있는 초조한 마음을 털어 놓았다.

 

  그제야 눈을 감고 잠잠히 앉았던 조소접은 소리 없이 일어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이왕 숨이 끊어진걸, 늦어도 마찬가지겠지.....」

 

  아무 일도 아니라는 태도로 태연했다.

그 말에 주약란은 화다닥 놀라며 조소접의 얼굴을 급히 살폈다.

 

「아니! 그럼‥‥‥」

 

  당황해 하는 주약란을 본척만척하고 앞으로 걸어가는 조소접은 누워 있는

양몽환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주약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혼자 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치료하겠다는 응낙은 안하는 것인데 이미 언니에게 응낙한 것을 돌이킬 수도 없고‥‥‥」

 

  잠시 주저하는 듯 양미간을 찌푸렸다.

 

 주약란은 조소접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어떻게 몸을 사려야 할지

정말 몸 둘 곳이 없고 조소접을 바로 쳐다볼 용기조차 없었다.

그런가하면 한편으로는 더 없는 모욕을 당한 것 같아 입 안이 쓰고 기분까지 나빠져

속으로는 부글부글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조소접의 기분을 건드려 양몽환의 치료조차 거부하면

큰 낭패라는 것을 생각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입술만 깨문 채 조소접의 하는 행동만

주시하고 있을 수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조소접은 양미간을 찌푸린 채 누워있는 양몽환을 얼마동안 내려다보다가 결심한 듯이

얼굴에 우수를 띄우며 양몽환을 일으켜 여기저기를 두루 주무르기 시작했다.

얼마동안 양몽환의 몸을 주무르던 조소접은 다시 그 자리에 양몽환을 눕혀놓고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조소접은 양몽환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조심스럽고도 익숙한 솜씨로 양몽환의 윗옷을 벗긴 조소접은 계속 해서 바지를 벗겨 내렸다.

양몽환과 오랫동안 사귀어온 주약란이지만 이렇게까지 나체에 가까운 양몽환을

아직 본 일이 없었다.

더구나 하 얀 살이 드러나는 하체를 보는 순간 말할 수 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까지 확확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을 완전히 나체로 옷을 벗긴 조소접은 얼굴의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드디어 양몽환은 누운 채 조소접의 익숙한 솜씨로 완전히 나체가 되어 반듯하게 누웠다.

양몽환을 전라(全裸)로 만든 조소접은 옆에서 얼굴을 붉히고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주약란을 바라보며 쓸쓸히 웃었다.

그리고는 눈을 감은 조소접은 자기의 입은 옷을 하나하나 벗기 시 작했다.

 

「?‥‥‥」

 

  눈이 둥그레진 주약란의 표정을 눈을 감은 조소접이 보았을 리도 없었다.

 

위에서부터 걸쳤던 옷을 하나하나 벗어나가던 조소접은 젖가슴과 치부(恥部)만

겨우 가릴 수 있는 얇은 헝겊으로 가린 다음 눈을 떴다

 

  양몽환보다 두 곳만 가리고 나체가 된 조소접의 백옥 같은 육체는

주약란의 눈에도 싱싱하고 무르익은 과실 그것이었다.

둥그스름한 어깨와 가늘게 다듬어진 허리 그리고 쭉 곧게 뻗은 두 다리는

정말 같은 여자의 몸이지만 주약란의 마음을 산란하게 하리만치 아름다웠다.

그러나 주약란이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거의 나체가 된 조소접의 몸과 마음이

동시에 떨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부끄러움을 참는 표정은 주약란의 눈에도 애처롭고 한편 측은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조소접의 표정은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다음 어떤 용기를 얻어 결심한 듯

차갑고도 굳은 표정이었다.

주약란은 그러한 표정에서 미안함과 같은 여자로서의 부끄러움을 어떻게 표현하고

감사해야할지 형용할 수 없었다.

얼마동안 나체의 몸으로 잠잠히 섰던 조소접은 주약란을 잠시 바라본 다음

반듯하게 누워있는 양몽환의 위에 엎어져 양몽환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순간 -,

 

주약란은 조소접에게로 달려가 어깨를 짚으며 흐느끼듯 조소접을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접매, 나를 용서해 줘. 나 때문에 정말 나 때문에‥‥‥」

 

더 말을 계속하지 못하고 조소접의 행동에 눈시울을 적셨다 양몽환을 살리기 위해서

조소접이 이렇게까지 부끄러움을 잊고 노력하는 것에 주약란은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얼마 후 이슬이 맺히는 눈을 닦으며 조소접을 바라보자

조소접 역시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주약란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니, 미안해요. 하지만 할 수 없어요.」

 

「도리어 내가 더 미안해!」

 

  조소접은 양몽환을 힘껏 끌어안으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조금 후에 운공(運功)할 때는 온 몸의 진기가 모두 한 곳에 모여요.

그때 제 몸을 닿치지 말아요.」

 

주약란은 미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

 

 

양몽환의 몸에서 일어난 조소접은 자리를 바꾸어 오른손으로 양몽환의 허리를 끌어 잡으며

왼손으로 천영혈(天靈穴)을 쥐었다. 그리고는 두 눈을 부릅뜨고 운기(運氣)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소접의 두 맥을 통하여 운공된 진기가 조소접의 손끝으로 모이면서 양몽환의

천영혈을 타고 사지(四肢)에 퍼져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의 오장육부는 조소접의 진기로 기능을 회복하며 응결되었던 기혈이

점차 각처의 혈맥으로 퍼져 들어갔다.

그리하여 경화되다시피 했던 양몽환의 사지가 돌연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금방 온 몸에 땀이 솟으며 끊어졌던 숨소리가 다시 약하게나마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때 조소접은 재빠른 동작으로 왼손을 천영혈에서 명문혈로 옮겼다.

그 후 조소접은 자세를 바꾸어 양몽환을 품에 안고 누우며 다시 바른편 쪽으로 돌았다.

그와 함께 양몽환과 조소접은 서로 가슴을 마주 대고 양몽환을 있는 힘 다해 끌어안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양몽환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조소접은 가늘게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치료가 거의 끝난 모양이었다.

그제야 주약란은 나체가 된 채 끼고 누워 있는 양몽환과 조소접을 더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조소접이 애초에 양몽환을 치료하는데 주저하던 일과 자기와 함께 붙어 있기를

조건으로 하고 약속하던 일을 생각했다.

 

(‥‥‥그래서 나와 함께 있기를 원했구나,

나체가 되어 남자와 여자가 부둥켜안은 채 누워 있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본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나의 간청에 못 이겨 처녀의 몸으로‥‥‥)

 

  주약란은 조소접의 헌신적인 행동에 다만 머리를 숙일 뿐이었다.

아직 남녀간의 한계를 모르는 주약란으로서도 눈앞에 전개되는 행동이 해괴스러웠지만

조소접의 심정을 이해하고 도리어 미안함을 금할 길이 없는 주약란으로서는 더 이상

외면하고 얼굴을 붉힐 일이 아니었다.

 

주약란이 이렇게 여러 가지로 생각하다 고개를 돌렸을 때는 아직 조소접은

그대로 가늘게 흐느끼며 울고 있었다.

눈물이 부끄러움과 수치감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지만

어떻게 무슨 말로 위로해 주고 달래 주어야 할지 난감했다.

 

조소접의 하얗고 매끈한 육체가 가늘게 흐느껴 울면서도 양몽환을 꼭 껴안은 모습은

흡사 한 폭의 그림과 같이 아름답고 신비스러웠다.

그러한 모양을 바라보며 주약란은 다시 혼란된 생각에 잠겼다.

 

 (이왕 나체로서 살을 마주 대고 있는 이 두 명의 남녀를 한 쌍으로 묶어 부부가 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조소접도 부끄러울 것이 없고 양몽환 역시 무술계에 쟁쟁한 여걸(女傑)을

아내로 맞는다.‥‥‥그렇게 되면 ‥‥‥)

 

  여기까지 생각한 주약란은 잠시 후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다면 저 순진한 하림은 어떻게 될까?‥‥‥

죽어도 같이 죽겠다고 입버릇처럼 외우는 지순지미(至順至美)의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하림은? ‥‥‥ )

 

  여기까지 생각한 주약란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버리고 말았다.

 

  어느덧 하루의 해도 저물어 석실에 한 가닥 석양빛이 새어 들다가 그나마 없어지고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양몽환과 가슴을 마주 대고 조소접은 잠이든 듯 흐느껴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한 시간이 점점 어둠과 함께 묻혀 가고 있었다.

 

주약란은 조소접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등잔에 불을 켰다.

어두웠던 석실이 희미하게 밝아오자 주약란의 눈에 비치는 한 쌍의 남녀는

더없이 행복한 순간처럼 생각되어 혼자 얼굴을 붉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피곤하게 잠을 자던 조소접은 가볍게 하품을 하며

양몽환의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을 풀고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주약란을 바라보며 쓸쓸히 웃었다.

그러는 조소접의 태도에서는 부끄러움을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고 쓸쓸하게 웃는 모습을

한편으로 보면 도리어 주약란에게 대한 미안함을 표하는 웃음 같기도 했다.

 

「언니, 내부의 기능이 도는 모양이에요. 오늘밤에 의식이 회복되면 내일 아침에

혈맥을 유통시키겠어요.」

 

주약란은 조소접의 손을 잡고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은혜를 무엇으로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

접매가 아니었다면 영영 살아나지 못할 것을‥‥‥」

 

  주약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러나 조소접은 고개를 가로 살랑살랑 흔들며 주약란의 말을 막았다.

 

「언니만 기쁘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요. 은혜가 무슨 은혜예요.」

 

「접매의 마음 알겠어. 나도 기쁘지만 하림은 더 기뻐하고 접매에게 감사할 거야.」

 

  조소접은 더 대답하지 않고 쓸쓸히 웃기만 했다.

그리고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 운기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조소접의 운기는 양몽환의 혈맥 속으로 다 넣어 버렸기 때문에

다시 더 원기를 조절해 야만 했다.

 

  잠시 후 ,

 

  운기를 조절하고 있는 조소접의 이마와 온몸에는 뜨거운 기운이 뿜어져 나와

금방 새로운 진기를 가득히 운집시키고 말았다.

그러한 조소접을 바라보고 있는 주약란으로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조소접의 내공에

저윽이 감탄하며 그 다음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조소접의 이마와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온 진기는 차차 안개처럼 뽀얀 김이 서리면서

조소접의 매끈하고 탐스러운 육체를 감싸고 말았다.

자기의 몸이 완전히 진기로 감겨져 있음을 확인한 조소접은 눈을 감은 채 두 손을 합장하고

잠시 동안 숙연히 맞았다가 갑자기 몸을 날려 양몽환의 가슴 위로 달려가 힘 있게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어느 사이에 조소접의 두 손은 양몽환의 요혈을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내려치는

것이었다.

 

한번 요혈을 내려친 조소접의 두 손은 익숙한 솜씨로 양몽환의 온몸을 샅샅이 주물러 내려가기

시작했다.

발끝까지 내려갔던 조소접의 하얀 손은 다시 양몽환의 머리끝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와 같이 세 번을 똑같은 수법으로 주무른 후에야 조소접은 손을 멈추고 자세를 바로 하고

앉는 것이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조소접을 감싸고 있던 안개 같은 진기는 양몽환의 몸으로 옮겨지고

조소접은 본래 대로의 나체가 되었다.

 

양몽환의 몸에서 손을 떼고 일어나 앉은 조소접은 두 손을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었다가

암암리에 기력을 운행 조절하여 양몽환의 열두 군데에 퍼져있는 사혈(死穴)을 가만히 꼭꼭 눌렀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똑같은 힘으로 여섯 번씩 차례로 열두 곳을 누른 다음 물러나 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종전과 같이 운기를 조절하여 온 몸에 안개가 서리게 진기를 운행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하여 온 몸에 진기의 안개가 끼면 다시 양몽환의 몸을 껴안고 처음서부터 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조소접이 여섯 번을 반복하여 진기를 양몽환의 몸에 넣어주는 행동이 끝났을 때에는

거의 새벽녘이 되어 먼동이 트고 있었다.

잠시 동안도 쉬지 않고 양몽환을 치료하는 조소접은 피로의 기색이 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다만 진기를 운행 조절하는 시간이 약간씩 늦어질 뿐 정성을 다하여 양몽환의 몸을 주무르는

조소접의 엄숙하고도 태연한 행동에는 눈곱만큼의 불만이나 피로가 보이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주약란은 조소접의 강인한 체력과 대담한 행동에 감사와 감탄해 마지

많을 뿐 지치고 피로한 것은 주약란 자기인 듯싶었다.

조소접은 물론 주약란도 긴 밤을 꼬박 새우고 동트는 새벽을 맞이했다

주약란 옆에까지 다가온 조소접은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주약란의 얼굴?을 살피며

가만히 속삭였다.

 

「고단해요. 언니?」

 

「아니, 도리어 접매가 밤새껏 고생해서‥‥‥」

 

「전 걱정 없어요, 아직 이틀이 더 남아 있는데요.」

 

「이틀 동안을 어떻게 잠도 안 자고 있겠어? 잠시 쉬어요. 내가 지 켜 보고 있겠어.」

 

「제 걱정은 말아요. 언니보고 좀 쉬라고 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요. 꼭 지켜보고 있어야 해요.」

 

  주약란은 조소접의 말뜻을 음미하며 얼굴을 붉혔다

 

  (서로 지켜보고 있기를 바라는구나,

혹시 잠깐 자는 동안에 불미한 행동이라도‥‥)

 

  이렇게 생각하는 주약란은 자기 자신을 저주했다.

 

  (왜 접매는 내가 지켜보고 있기를 원할까?

자기의 순결을 보증 해 달라는 뜻이겠지 아니면 나를 믿지 못해서?‥‥‥)

 

  사실 양몽환의 나체를 보는 순간은 주약란의 가슴이 설레고 숨도 가빴던 것은 사실이다.

어찌 처녀의 몸으로 남자의 그도 마음속으로 잊지 못하는 남자의 벗은 육체를 보았을 때

목석(木石)이 아닌 이상 고통을 느끼지 않으랴만 처녀의 몸으로 나체가 되어

남자의 몸을 껴안은 조소접의 가슴속은 주약란에게 비길 수 있겠는가.

조소접이 주약란을 감시인으로. 붙잡아 두는 것은 양몽환의 불순한 행동을 막는 다는 데도

뜻이 있겠지만 조소접 자기 자신의 충격적인 행동을 억제시키기 위하여 주약란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혼란한 여러 가지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조소접은 주약란을 부르며 턱으로

양몽환을 가리켰다.

 

「조금만 지나면 몸도 따뜻하게 피가 통하고 숨도 잘 쉬게 될 거예요.」

 

「고마워, 정말 고마워」

 

「고맙다고만 그러시지 말고 좀 가보세요.」

 

「가봐도 돼? 만져 봐도?」

 

「네, 이제는 돼요. 그러나 너무 심하게 흔들지는 말아요.」

 

  주약란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반듯하게 누워 있는

양몽환의 나체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의 가슴 위로 손을 얼었다.

그 순간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쾌감이 온 몸을 스멀스멀 간질이는 것 같았다.

 

주약란은 머리를 흔들어 망측한 생각을 떨쳐 버리고 가슴에 얹은 손에 지그시 힘을 주었다.

그러자 과연 양몽환의 가슴에서는 규칙적인 심장의 뛰는 소리가 손바닥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주약란은 감격하여 뒤돌아보며 외쳤다

 

「접매, 감사해요. 심장이 뛰고 있어, 정말 고마워.」

 

「언니를 위해서 에요. 언니가 기쁘다면 저는 좋아요.」

 

  냉담한 표정으로 차갑게 말하던 조소접은 갑자기 슬픈 얼굴로 변하며 주르륵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왜 그래?」

 

  당황하며 조소접에게로 달려온 주약란은 그녀의 손을 쥐고 흔들었다.

 

  조소접은 주약란의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흐느껴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우는 조소접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망설이는 주약란은 양몽환을 살려 준데

대한 고마움을 무슨 말로 표현할 길이 없어 망설이고 있던 차에 조소접이 울자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나빠, 접매에게 너무 무리한 일을 시켜서, 울지 말고 나를 용서해 줘 ‥‥‥」

 

  조소접의 치렁치렁 늘어진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주약란은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러자 조소접은 머리를 흔들며 눈물어린 눈으로 주약란을 바라보았다.

 

「언니! 내가 고맙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나도 알고 있어, 접매의 마음을‥‥‥」

 

「아니 모를 거예요. 언니는」

 

「 ‥‥‥‥‥」

 

  주약란은 조소접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언니! 사실은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 어떠한 남자라도

가까이 하지 말라는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고 돌아가셨어요.」

 

「?‥‥‥‥‥」

 

「그런데 나는 언니를 기쁘게 해 드릴 마음으로 유언을 어겼어요.」

 

「‥‥‥‥‥」

 

「더구나 알몸으로 남자를 껴안고‥‥‥

그렇지만 언니가 기뻐하는 것을 보면 저도 기뻐요.

회복되는 대로 저는 곧 돌아가겠어요.

무덤에 가서 어머님께 용서를 빌고‥‥‥」

 

  주약란은 조소접의 괴로운 사연을 듣는 순간

마음은 천길 만길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양몽환을 살리기 위하여 유언까지 저 버리고 나체가 되어 남자를 품에 껴안아야 했던

조소접의 헌신적인행동에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괴로움과 미안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무슨 말로 정성을 표해야 할지  다만 탄식만 나올 뿐이었다.

 

  주약란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접매!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행동은 지하에 계신 어머니께서도 이해 해 주실 거야.

총명한 접매는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어머님께 그리고 접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받고 싶어!」

 

  그러나 조소접은 아무 말도 없이 누워 있는 양몽환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석실의 문 사이를 뚫고 왁자지껄 싸우며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극히 알아들을 수 없는 목소리였지만 들려오는 소리로서

그것이 팽수위의 고함 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순간!

 

  주약란은 벌떡 몸을 일으켜 문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조소접이 주약란의 뒤를 급히 따르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안돼요! 문 열면 안돼요.」

 

  정신없이 달려 나가던 주약란은 조소접의 외마디 소리에 멈칫했다.

 

「왜?」

 

「내장의 기능을 회복하고 지금 기혈이 각처로 흩어지고 있을 때

찬바람이 불거나 떠들썩하면 허사가 돼 버려요.」

 

「그럼 어떻게 하지? 밖이 걱정되는데?」

 

「할 수 없어요. 지금이 중요한 때에요.

만일 언니가 나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하림이라도 들어와서 나를 본다면‥‥‥」

 

  주약란은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밖에서 누구든지 들어와 석실안의 광경을 본다면 상상 밖으로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다.

찬 바람이 불거나 떠들썩해서 양몽환의 치료가 허사가 된다는 것보다

조소접과 양몽환의 관계가 이상하게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주약란은 알아 차렸다.

주약란은 잡았던 문고리를 놓고 돌아 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마침 밖에서 하림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큰일 났어요. 좀 도와주세요?」

 

  애처롭게 부르는 하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방금 조소접의 강경한 반대로 차마 문을 열지 못하는 주약란은 조소접의 눈치만 살폈다

그러나 조소접은 몸을 돌려 양몽환이 누워 있는 곳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석실의 출입문을 뚜드리며 응원을 청하는 하림의 다급한 목소리가

바로 문 밖에서 났다.

 

「언니!' 빨리 좀 나와 보세요!」

 

  주약란은 더 머뭇거릴 수 없어 문 밖에 있을 하림에게 들리도록 소리쳤다

 

「알았어, 그러나 지금 너의 오빠를 치료하고 있어서 나갈 수가 없어,

너희들끼리 힘껏 싸워서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요!」

 

  하림은 석실에서 들려오는 주약란의 말소리를 듣고

 

「알겠어요. 염려 마세요.」

 

  경쾌하게 대답하고는 어디로인지 뛰어 가는 소리가 나고 밖은 다시 조용해졌다.

  하림을 돌려보내고 몸을 돌린 주약란은 조소접의 손이 양몽환의 기경혈맥을

유통시키고 있음을 발견했다.

  조소접의 기경혈맥을 유통시키는 수법은 주약란의 수법과는 달랐다.

그것은 주약란 자기수법에 비해 조소접의 수법은 양몽환의 몸을 어루만지듯

오랫동안 주무르는 것이었다.

  얼마 동안 양몽환을 어루만지던 조소접은 자리를 바꾸어 양몽환을 뒤에서부터 안고

그의 가슴을 끌어  안았다.

주약란은 무심코 조소접이 하는 대로 바라보다가 조소접의 이상스러운

눈빛과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조소접의 활활 타오르는 듯한 눈길에

그만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주

약란은 무슨 일일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다행히 조소접이 양몽환을 전처럼 눕히고 자기가 벗어 놓았던 옷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야 주약란은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언니, 잠시 후 진기를 운집하도록 돕기만 하면 깨어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수고 했어. 이제는 조금 쉬어도 좋지 않을까?‥‥‥」

 

「별로 피곤하지도 않아요.」

 

「그래도, 진기를 운집하는 것은 내가 맡겠어, 그동안 여기 좀 앉아서 쉬어요.」

 

  주약란은 사실 조소접의 특이한 진기의 운집방법 보다는 비록 빠르지 못하다 하더라도

양몽환의 몸에 진기를 운집해 주는 것은 능히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조소접의 이상한 눈빛에 잠깐 놀랐다.

그것은 양몽환이 차차 의식을 회복하여 눈을 뜨고 조소접을 본다면

그리고 자기의 벗은 모습을 본다면 혹시 이상한 행동이라도 하지 않을까

염려한 나머지 몸을 조심하는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조소접의 긴장하는 모습은 양몽환의 의식이 거의 회복되어 간다는 뜻도 되었다.

그래서 주약란은 애초에 조소접이 비수를 꺼내들고 이상한 행동이 있다면 찌르겠다던 말을

상기하고 가능한 한 조소접의 벗은 나체의 몸을 양몽환이 보지 못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을

미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소접의 대답은 주약란의 생각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그렇지만 비록 절세의 무공을 지였다 하더라도 혈맥이 유통되지 않는다면 안돼요.」

 

  주약란은 내심 섭섭히 여기며 더 한번 청했다.

 

「그러나 경맥도 유통되었고 내장의 기능도 회복되었는데 진기를 운집시키는 일까지

접매의 수고를 끼친다면 내가 너무 미안해서 어찌?‥‥‥」

 

주약란의 말을 듣던 조소접은 벗어 놓은 옷 속에서 날이 새파란 비수를 뽑아 들고

주약란을 바라보았다.

 

「알겠어요. 내가 그를 해칠까 두려우시죠.」

 

하는 그녀의 태도는 차디찼다.

정말 비수를 뽑아들고 양몽환에게 진기를 운집해 줄 모양이었다.

 

주약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소접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접매! 오해하진 말아, 나는 접매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

 

「어째서요? 처음에 약속했지 않아요?」

 

「음, 약속했지, 그러나 만일 그가 회복되어 정신이 들어서 접매의 벗은 몸을 본다면

그리고 접매의 말대로 불순한 행동을 해서 비극을 빚어낸다면 차라리 치료해준 보람도 없잖아!」

 

「그건 그렇지만 불순한 행동으로 나를 희롱해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인가요?」

 

「그가 어떤 행동을 할지는 모르는 일이 아냐?

만일을 위해서 나는 그런 것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뿐이야.」

 

  조소접은 생긋 웃으며 주약란을 바라보았다.

 

「저는 언니가 기쁘다면 그만 이예요. 언니에게 맡기겠어요.」

 

  이윽고 허락하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가볍게 미소하며 양몽환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양몽환 옆에 단정히 앉아 진기를 운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소접이 다가오며 주약란을 나직이 불렀다.

 

「언니! 그렇게 하면 안돼요. 언니도 옷을 다 벗고 해야 돼요.

그랬다가 진기가 운집되면 곧 그를 꼭 껴안아야 해요.」

 

  주약란은 얼굴을 붉히며

 

「옷을 입어도 마찬가지겠지 뭐.」

 

「마찬가지가 뭐예요? 그것이 중요한데.」

 

「어떻게 옷을 벗지?」

 

「그럼 저는 어떻게 벗었죠? 진기가 모였을 때

즉시 그를 껴안고 살과 살을 비벼야만 언니의 진기가 그의 몸으로 들어가요.

그래서 꼭 껴안고 단전(丹田)에 모여 흩어지지 않게 하면 일어날 수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저는 왜 벗었겠어요?」

 

  주약란은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양몽환을 살려야겠다는 욕망은 주약란으로 하여금 옷을 벗게 하고 말았다

옷이 하나씩 벗겨져 내릴 때마다 주약란은 양몽환을 살리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져 갔다.

속옷이 벗겨지고 젖가슴과 치부만을 가린 주약란은 이미 벗고 있는 조소접과 나란히 섰다.

백옥같이 흰 살결, 미끈하고 싱싱한 두 여자의 나체에서는 향긋한 살 냄새가 온 방안을 진동시켰다.

 

서로 부끄러움을 억제하며 서로 얼굴을 붉히는 나체의 두 여인-,

 

그녀들의 따뜻한 입김과 또 숨결은 점점 뜨거운 정열로 달아올라 무쇠도 녹일 것 같았다.

두 개의 율동하는 듯 불룩하게 솟은 젖무덤과 그리고 쭉 곧은 두 다리는

조소접도 부러울 지경이었다. 

조소접의 육체 역시 주약란이 부러워하는 바라 서로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띠웠다.

조소접의 몸에서 천천히 시선을 옮긴 주약란은 조소접이 지시하는 대로 단정히 앉아서

진기를 운집하기 시작했다.

비록 조소접처럼 뽀얀 안개가 서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대신 땀구멍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주약란의 운공이었다.

거의 운집 되었다고 생각한 주약란은 급히 양몽환의 가슴을 껴안으며 현기혈(玄氣穴)을

짚으려고 손을 돌리는 찰나-.

 

지금까지 숨만 쉴 뿐 죽은 듯이 누워 있던 양몽환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아!」

 

소스라치듯 놀라며 양몽환의 가슴을 떼어 놓던 주약란은 당황하는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 다음 순간-,

 

번쩍 떠졌던 양몽환의 두 눈은 다시 스르르 감기고 말았다.

 

단 몇 초에 지나지 않는 극히 짧은 순간이지만 양몽환이 눈을 띠 주약란의 나체를

바라보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주약란으로서는 더없는 부끄러움이 아닐 수 없었다.

순간적인 일에 너무나 당황했던 주약란은 더 손을 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조소접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조소접은 냉정하게 주약란을 바라보며 재촉하는 것이었다.

 

「속히 계속해야 돼요. 늦으면 안돼요.」

 

  주약란은 가슴과 손이 떨려 더 만질 수 없었다.

 

  그때 조소접이 나무라듯 속삭였다.

 

「그러고 있을 때가 아녜요. 자 어서! 내가 돕겠어요!」

 

  조소접은 말을 마치자 주약란의 등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주약란의 명문혈을 가볍게 짚고 진기를 운집했다.

그러자 조소접의 몸에서 운집된 진기가 명문혈을 통하여 주약란의 진기와 합해지는 것이었다.

조소접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진기를 느낀 주약란은 다시 용기를 내어 양몽환의

 현기혈을 짚었다.

그리고 잠시 후 조소접과 자기의 진기가 양몽환의 몸속으로 퍼져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조소접의 진기와 주약란의 뜨거운 진기가 얼마큼 흘러 들어가자

양몽환의 창백한 얼굴에는 점차 혈색을 되찾으며 그와 함께 온몸이 따뜻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잔잔하던 숨소리가 갑자기 커지고 빨라지는 가 했을 때 드디어 양몽환은

몸을 움직이며 눈을 크게 뜨고 자기와 가슴을 마주 댄 주약란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때 주약란은 자기도 모르게 양몽환의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을 본능적으로 움츠려

자기의 앞가슴을 급히 가렸다.

그러자 조소접의 다급한 목소리가 주약란의 고막을 찢었다.

 

「언니, 빨리 꼭 껴안아요. 경맥이 유통됐어요.

지금 기혈의 운행을 정지하면 어떻게 해요?」

 

주약란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려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이 없었다.

그러는 한편, 양몽환은 손을 허우적거리며 무엇인가를 잡으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눈은 점점 초롱초롱 밝아져 주약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을 열고 무슨 말을 하려고

애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의식도 회복하지 못하고 눈을 감은 양몽환을 살리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힘껏 껴안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문제가 달랐다.

의식도 거의 회복하고 눈까지 떠서 주약란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것만이라도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껴안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또 양몽환과 단 둘이라면 몰라도 옆에 조소접이 지키고 재촉하는 데에는 더 용기가 없었다.

 

그때였다.

 

선뜻 양몽환을 껴안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주약란의 가슴 앞으로 조소접이 번개같이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급히 양몽환의 몸을 힘껏 끌어안으며 자기의 혀를 양몽환의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정말 눈 깜 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순간 -,

 

정신이 쑥 빠진 주약란은 더 이상 그 자리에 서있지 못하고 몇 걸 음 물러섰다.

주약란을 앞지르고 양몽환을 껴안은 조소접은 양몽환의 몸 위에 및 가락처럼 착 달라붙어

온 몸을 흔들며 자기의 혀로 양몽환의 입속에 침질을 하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더 보기가 민망스러워 벗어 놓았던 옷을 입으려고 하는데

조소접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소접은 양몽환의 입에서 입술만 떼었을 뿐 그대로 양몽환을 안고 누운 채

 

「가지 말아요. 지키고 있어 주세요. 옷도 입지 말고요.」

 

하고는 다시 자기의 혀를 양몽환의 입속으로 밀어 넣었다.

 

주약란은 돌아선 채 누워 있는 남녀를 바라보며 마음이 설레고 자기도 모르게

온 몸의 진기가 빠져 나가는 것을 느끼고는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주약란의 머리 속은 복잡하기만 하였다.

 

처녀의 몸으로 남자 앞에서 옷을 벗고 있는 것도 그렇거니와 만일 양몽환이 완전히 깨어나서

자기를 껴안고 있는 조소접이나 주약란의 모습을 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고 뱅뱅 돌기만 했다.

그런가 하면 한편, 조소접의 말대로 양몽환이 일시적인 흥분으로 나체의 조소접이나

주약란을 희롱하고자 불순한 행동을 한다면 조소접은 약속대로 새파란 비수로 양몽환을

찌를 것인가? 하는 염려에서주약란의 마음은 냉정을 되찾을 수 없는 번민 속에 빠져 들었다.

 

(차라리 의식을 회복하지 말았으면‥‥‥‥

아니 내가 조소접을 대신해서 양몽환을 껴안고 있을까? ‥‥‥)

 

여기까지 생각한 주약란은 만일 양몽환이 깨어나서 나체인 자기를 보는 순간

불순한 행동으로 나온다면 과연 자기도 조소접처럼 양몽환의 가슴에 비수를 꽃을 수 있을까?‥‥‥

 

(나는 못해, 정말 못해, 어떻게 비수를 들 수 있단 말인가?‥‥‥)

 

고개를 흔들었다.

 

  이때-,

 

「음‥‥‥」

 

조소접의 가는 비명 소리가 들렸다.

주약란은 급히 몸을 돌려 조소접을 응시했다.

그것은 양몽환이 점차 의식을 회복하며 손을 허우적거리다가

그 손이 조소접의 젖가슴을 건드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후에는 다시 눈을 스르르 감으며

기운 없이 손을 내려뜨리고 마는 것이었다.

조소접은 엉겁결에 자기의 젖가슴을 가리며 양몽환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아직 아무 정신도 차릴 수 없는 양몽환의 허우적거리는 손길이라는

 것을 확인한 조소접은 금방 부드러운 태도로 양몽환을 끌어안는 것이었다.

만일 이와 같은 장면을 즉 한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모두 옷을 벗고 한방에서 끼고

누워 있는 것을 본다면 무슨 달콤한 정사(情事)나 아니면

광인(狂人)들의 추태로 알고 기절초풍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달콤한 장면과는 달리 생명 하나를 살리기에 고심참담하는

주약란이나 조소접은 가슴이 메어지는 듯 답답하고 안타까운 순간의 연속뿐이었다.

거기다가 주약란의 신경은 극도로 예민하여 조소접의 기색과 행동에 한시도

소홀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언제 양몽환의 의식이 회복되고 또 언제 조소접의 아름다운 얼굴에

분노가 일어나 비수를 들 것인지 예측을 불허하는 긴박한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조소접의 마음속도 주약란 이상으로 여러 가지의 복잡한 생각이 꽉 들어차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조소접의 외모가 윤기 있고 매끈한 육체의 소유자로서 그것도 전라(全裸)의 몸으로

양몽환의 몸을 끌어안고 아무 생각도 없다면 목석(木石)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어머님의 유언대로 남자와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을 지키기는 고사하고

알몸으로 남자를 끼고 누워 있는 자신!

비록 설레던 가슴이 어느 정도 진정되기도 하고 또 생명을 구해줄 생각은 하면서

이상야릇한 흥분감에 도취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양몽환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자기가 지금과 같은 상태로 누워 있어야 하는

이상한 모순 속에서 앞으로 양몽환을 어떻게 대할까 하는 것과 이 소문이 퍼진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하는 일들이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해주는 것이었다.

 

(아!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말 이 양몽환이 만일 불순한 행동을 한다면 과연 나는 비수로 찔러야 하는가?‥‥‥ )

 

이렇게 생각하는 조소접은 눈을 감은 채 양몽환의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을 주었다.

 

그때,

 

누군가가 석실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누구일까?」

 

  주약란이 긴장하며 조소접을 바라보자 조소접도 눈을 크게 뜨며 마주 바라보았다.

그때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하림의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 가 들려 왔다.

 

「안돼요, 비록 오빠의 친구지만 지금은 치료 중이에요.」

 

하림의 또랑또랑한 말소리에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아마 누군가가 석실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하림이 제지하는 모양이었다.

 

「왜?」

 

「사람이 들어오면 안 된대요. 그래서 저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어요.」

 

  주약란은 가슴이 철렁했다.

 

  (도대체 누가 왔을까? )

 

  머리를 갸웃거리며 문께로 다가갔다

 

  (만일 하림이 자기의 벗은 몸과 조소접 그리고 양몽환의 벗은 몸을 본다면?)

 

  머리를 흔들며 제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차마 문을 열 용기가 없었다. 더구나 하림의 얼굴을 대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때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석실 밖에서 들려왔다.

 

「이 석실은 우리 주인의 규실(閨室)이오,

어찌 남자가 함부로 들어가겠다는 말이오?」 

 

분명히 삼수나찰 팽수위의 음성이었다.

하림을 도와 팽수위도 누군가를 들어가지 못하게 제지하는 모양임에 틀림없었다.

그제야 주약란은 마음을 놓았다 삼수나찰 팽수위라면 믿을 수 있는 주약란이었다.

한편, 밖에서 석실로 들어오려고 승강이를 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도옥이었고

하림과 팽수위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설득하고 있었다.

팽수위의 위엄 있는 말에 하림은 약간 미간을 찌푸리며 팽수위를 바라보았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이분은 오빠의 친구 분이에요.」

 

하고 도옥을 두둔했다.

 

도옥은 멋쩍게 웃으며 하림을 불렀다.

 

「어떻게 된 일이오? 어떻게 다친 상처인데 이 야단들이오?」

 

석실 밖에서 웅성거리는 대화를 듣고 있던 주약란은 도옥의 말 속에

교활함을 느끼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조소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이 또 무슨 해괴한 일인가?

 

조소접의 한쪽 팔은 양몽환을 끌어안고 다른 한 손에는 비수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는 양몽환을 노려보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

 

주약란은 식은땀이 쪽 나며 몸이 오싹했다. 

주약란은 황망히 달려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하고 물었다.

 

그 말 속에는 양몽환의 행동이 불순했는가 하는 물음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조소접은 생글 생글 웃으며 도리질을 했다.

 

「아니, 아무 일도.」

 

「그런데 비수는?」

 

「이제 곧 깨어날 때가 됐어요.

내가 이렇게 칼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불순한 마음이 없어질 거예요.」

 

  주약란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쓸었다.

 

「접매는 정말 죽일 마음이야?」

 

  처량하게 묻는 주약란을 재미있는 듯이 바라보며 생글거리던 조소접은

극히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녀의 얼굴에 우수가 깃드는 것을 주약란은 놓치지 않았다.

그러자 조소접에게서 나오는 말은 차가운 비수의 섬광 그것이었다.

 

「그럼요. 약속했잖아요!」

 

  주약란은 입안의 침이 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혀끝으로 입속에 침을 묻히는 주약란의 얼굴빛은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접매가 정말 그렇게 하겠다면 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러나 만일 그의 가슴에 칼을 찌를 때에는 나에게 알려 줘!」

 

  조소접은 아무 대답 없이 양몽환을 내려다보며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을 주어 끌어안을 뿐이었다.

 

  그때 다시 석실 밖에서 도옥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무리 중태라 해도 친구로서 그냥 갈 수 있소?」

 

하는 소리와 함께 주약란은 머리털이 주삣했다.

그것은 아미산에서 양몽환을 구하려고 할 때 도옥의 잔인한 소행을 생각해서였다.

그때 양몽환을 산채로 묻으려던 도옥의 행동이 두고두고 머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 석실 밖에서 하림의 입을 통하여 양몽환이 중상을 당하던 일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주약란은 아직 도옥의 난폭했던 행동을 하림에게는 눈치도 못 차리게끔

조심했던 것이었다.

석실 밖에서 도옥이 양몽환을 보고 가겠다는 말이 끝나자

얼마의 간격을 두고 타이르듯 조용조용한 하림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오빠의 친구 분으로서 문병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말이에요.

그러나 지금 치료 중이고 또 의식도 회복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밖에서 외부 사람이 들어오면 치료에 방해가 된다고 했어요.」

 

「그럼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이오? 친구가 중상이라면 더 보아야겠소.」

 

「제 말을 들어 보세요. 언니가 말씀하시기를 사흘 밤낮으로 치료해야만

의식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어요.

정보고 싶다면 사흘 밤낮의 기한이 끝나는 내일 이맘때 오세요.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어요.」

 

「흠‥‥‥ 괴상한 소리군. 중상이 대단한 모양인데

그렇게 심한 내상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이오?」

 

「그럼요, 우리 언니는 무공이 절묘하셔서 어떠한 내상이라도 치료할 수 있어요.」

 

「그래? 그렇다면 꼭 들어 가봐야겠는 걸!」

 

  감탄하는 것인지 빈정거리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모호한 말을 했다.

그러자 이때까지 옆에서 하림과 도옥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삼수나찰 팽수위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도옥을 흘겨보는 것이었다.

도옥의 말이 비위에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아니 여보쇼! 도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위인인지는 모르겠지만은

그만큼 알아듣도록 말했는데 왜 염치없이 놀고 있소?

지금 석실 안이 치료중이어서 못 들어가지만 치료가 끝난 후에도 당신은 못 들어가요!」

 

  도옥은 하늘을 향하여

 

「하‥‥‥ 하‥‥‥」

 

  통쾌하게 코웃음을 치며 팽수위에게 돌아섰다.

 

「여보쇼! 생긴 대로 하는 말도 구역질이 나는구려.

당신은 어느 집 강아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공손하지 못하군.

내 이 석실로 들어가겠다면 어쩌겠소?」

 

  여유 만만한 태도였다.

 

「그렇다면 내 칠보추혼사의 맛을 보여 드릴 수밖에 없지!」

 

  만만치 않은 기세로 나오는 팽수위였다.

 

  분위기는 삽시간에 살벌해지고 금방 싸움이 벌어질 위기로 변하고 말았다.

 

  입장이 난처해진 하림은 두 사람 가운데로 뛰어 들며 손을 흔들었다.

 

「왜들 이러세요?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이러시면 어떻게 해요.

저의 오빠를 보겠다면 여기서 하루만 쉬고 내일 보시면 되잖아요!」

 

싸움을 말리는 하림의 음성이 끝나자 밖에서 웅성거리던 소리가 점차 멀어져 갔다.

어디론가 자리를 옮기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말소리가 멀어지며 사라지자 주약란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주약란은 하림이 도옥을 이곳에서 유숙시키려는 의도에 놀랐다.

더구나 교활한 도옥이 무슨 마음으로 이곳 백운협 골짜기까지 찾아 왔는지도 모르고

설사 호의를 가지고 이곳까지 왔다고 해도 언제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 모르는

도옥을 유숙까지 시킨다는 것은 문을 열어놓고 간사한 늑대를 맞이하는 셈이라고

주약란은 한숨만 길게 쉬었다.

그러는 한편, 따뜻한 조소접의 체온과 끊임없는 조소접의 진기 운집의 노력으로 드디어

양몽환은 의식을 회복하고 완전히 깨어났다.

 

「아!」 

 

  조소접의 가냘픈 외침 소리에 급히 고개를 돌린 주약란의 입에서도

 

「아!」

 

하는 감동적인 외침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양몽환이 눈을 번쩍 뜬 것이었다.

그리고는 눈앞에 벌어진 사태에 어리벙벙하여 눈을 점점 크게 뜨는 것이었다.

 

  그 순간 -,

 

  조소접은 그대로 한 팔은 양몽환을 끌어안은 채 다른 손에 들고 있던 비수를

양몽환의 가슴에 댔다.

 

「접매!」

 

기절할 듯 달려가 조소접의 칼 든 손을 잡으려는 주약란을 가볍게 물리치며

어느 사이에 칼끝은 양몽환의 가슴을

 

「찌익!」

 

하고 긋고 말았다.

 

  조소접의 차갑고도 예리한 칼날이 지나간 양몽환의 가슴에서는

금방 붉은 피가 주르르‥‥‥ 하고 흘러 내렸다.

 

주약란은 어금니가 딱딱 마주치고 온 몸이 나른하게 늘어져 거동할 수조차 없이 되어버렸다.

그러자 조소접의 날카로운 음성이 석실을 울렸다.

그것은 양몽환에게 하는 명령이었다.

 

「눈을 감아요! 아무 것도 보지 말고, 운기 조식해요.」

 

  그러나 양몽환은 눈앞에 벌어진 사태에 눈이 휘둥그레지기만 했다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나체,

그리고 자기의 몸을 힘껏 끌어안고 있는 풍만한 가슴을 훑어보는 양몽환은

자기 옆에 주약란의 벗은 모습을 발견하고는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입을 움직였다.

 

그때 다시 조소접의 날카로운 소리가 떨어졌다.

 

「무얼 보고 있어요. 말도 하지 말고 빨리 운기 조식해요!」

 

  서슬이 시퍼런 칼날을 휘두르며 조소접은 날카롭게 소리치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할 수 없이 하라는 대로 눈을 감고 운기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더 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주약란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새파란 칼날을 가슴에 맞고 또 섬광이 번뜩이는 칼날을 보자

절로 눈이 감기고 말았다.

  이와 같은 광경을 보고 경황없이 서 있던 주약란은 양몽환의 시선이

자기의 몸을 더듬는 순간, 잠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으나 조소접의 차갑고

날카로운 고함 소리에 질려 부끄러움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조소접이 말로는 날카롭게 외치고 칼을 휘둘러 양몽환의 가슴에 상처를 내며

표독스럽게 행동하지만 양몽환을 끌어안고 자기 의 따뜻한 몸을 양몽환의 싸늘한 몸에

비비고 있는 것을 볼 때 도대체 조소접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

 

  (지금 정신을 차린 사람에게 너무 가혹하게 상처까지 낼 것은 뭐람,

어디 그것이 치료하는 사람의 태도라고 할 수 있어?

도둑을 심문하는 것이 아니면 저럴 수가 있을까?

그리고 근 이십여 일 동안이나 숨이 끊어졌던 사람이 회복하자마자

무슨 정신으로 아무리 벗은 몸이지만 불순한 행동을 할 수나 있어?

그건 그렇다 해도 날카로운 행동과는 달리 저렇게 꼭 껴안고 치료를

계속하는 심사는 또 뭐람?‥‥‥)

 

  여기까지 생각한 주약란은 겨우 정신을 차리며 조소접을 불렀다 

 

「접매, 너무 심해요. 아직 정신도 차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원망하듯 말했다

 

그러자 조소접은 주약란의 원망어린 말소리와 애처로운 모습을 바라보며

방긋이 웃고는 얼굴을 붉혔다.

 

「언니, 옥과 같은 언니의 몸과 내 몸을 바라보며 눈을 크게 뜨지 않아요!」

 

  순간!

 

  주약란도 자기의 매끈한 몸을 내려다보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조소접의 말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런데 만일 그가 우리들의 육체를 바라보며 잠깐이라도

다른 생각을 한다면 정신이 흐려져서 진기가 경맥에서 정체하게 돼요.

그렇게 되면 피도 통하지 않고 다시 의식도 회복하지 못하게 돼요.」

 

  놀라운 소리였다.

 

「아!」

 

  겨우 외마디 탄식 소리만 낼 수 있는 주약란은 머리가 아찔했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노력도 허사가 되고 비록 산다 해도 반신불수의 불구자가 돼요.」

 

  모두 놀라운 소리였다.

 

「가슴에 상처는?」

 

「고의적으로 냈어요.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하느라고 그랬어요.」

 

  모든 것을 알게 된 주약란은 조소접의 손목을 꼭 쥐고 눈물을 글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