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26 장 만년 묵은 거북(龜) <寶物成虛>

오늘의 쉼터 2014. 6. 22. 14:00

제 26 장 만년 묵은 거북(龜) <寶物成虛>
 

 

이때 주약란, 팽수위, 해천일수 이창란, 팔비신옹 문공태, 다벽금강 도일강, 천중사추,

그리고 난장이는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 곳을 에워싸며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결투는 갈수록 치열해졌다.

최문기의 철석같은 두 주먹은 연방 상대방을 공격했고 키가 큰 백의인은

추호도 물러서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맹렬히 반격을 가했다.

 

최문기는 온 힘을 다하여 공격을 퍼붓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의 무술은 아무래도 백의인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리고 두 사람을 에워싼 구경꾼들도 최문기의 약세와 더 버티지 못할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였다.

 

이때까지 싸움 구경만 하고 있던 문공태가 갑자기 요란한 소리로 웃어 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연방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는 그의 웃음은 주위 사람들의 눈을 둥글게 했다.

 

「핫‥‥‥ 핫‥‥‥ 등형! 당신 사제의 무공은 정말 진전하셨군! 축하하오!」

 

하며 난장이 백의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난장이 백의인은 약간 웃음을 띠며 겸손을 뺐다.

 

「천만의 말씀이오! 문형이 너무 과찬하는 말씀이오.」

 

「그러나 등형의 두 사제의 연합 결투 수법이 유명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오늘 이 기회에 한 번 구경이나 시켜 주시오!」

 

「문형! 생각이 너무 간사하군요.

우리 설산파와 천용방이 먼저 싸워 지친 후에 문형이 쉽게 어부의 이를 얻어

보시겠다는 말씀이군!」

 

하는 백의인의 가슴을 찌르는 듯한 말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가을 비수와 같이 찔렀다.

그러나 비록 자기의 계략이 폭로되긴 하였지만 눈 한 번 깜짝이지 않는 문공태는

태연하게 백의인을 응시하고는 알 수 없는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등형은 너무 지나치게 예민하시군.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제가 부끄럽소?」

 

하면서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러는 한편, 주위 사람들의 심중은 제각기 달랐다.

 

(날도 저물어 가는데 이렇게 시간만 끈다면 큰 일이 나겠는데‥‥‥)

 

하는 철검서생 사천경의 초조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더욱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것은 지금 문공태의 말이나 사천경 등이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결투를 하게 된다면 실력이 서로 비슷한 각 파의 고수들은

쉽게 물러서서 승리하거나 패배하는 승부의 속도가 빠르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 을 계산했다.

 

 (그렇다면 공연히 시간만 지체되고 만년 묵은 거북은 언제 찾는다는 말인가?

지금 양몽환은 한 시각이 급하지 않은가? ‥‥‥)

 

  여기까지 생각한 주약란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는 어금니를 힘껏 물었다.

 

  (할 수 없군! 내가 먼저 손을 쓰는 수밖에‥‥

생각한 주약란은 품안의 무니주(牟尼珠)를 세알 꺼내 쥐었다.

그리고는 암암리에 공력을 집중하고 내려치려는 찰나‥‥‥

벽력같은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

 

「손을 멈추시오!」

 

  난장이 백의인의 날카로운 소리였다.

그것은 최문기와 백의인의 싸움을 말리는 소리였다.

주약란은 주춤하며 백의인을 주시했다.

그러자 백의인은 두 손을 휘둘러 최문기와 백의인을 떼놓은 후

문공태를 노려보다가 급히 이창란을 바라보며 냉랭하게 말했다.

 

「오늘 이런 기회에 싸운다는 것도 매우 통쾌한 일이오.

그러나 제 생각으로는 싸우더라도 거북을 잡은 후에 싸우면,

늦지는 않을 듯한데 이형의 생각은 어떻소?」

자신 만만한 선전포고였다.

이때 문공태가 나섰다.

 

「등형의 말이 옳소!

거북을 잡은 후에 싸움의 승부로서 거북을 차지하도록 결정함이 좋을 것 같소!」

  문공태도지지 않고 일전을 불사할 결심인들 했다.

이창란은 씽긋이 웃으며

 

「두 분께서 찬성한다면 노부도 반대할 수는 없소.

그러나 거북은 영(靈)이 통하는 동물이라 하오,

문형과 등형은 일대문파의 주지로서 거북을 잡는 방법을 이미 고안했을 것이오니

먼저 두 분의 고견을 말씀하시고 사람을 배치하심이 어떻소?」

 

  문공태와 설산파 장문인 백의신군 등뢰(白衣神君 澄雷)는 그 말을 듣고는 아연해지고 말았다.

 

  그들은 다만 한구석에 숨어 있다가 철검서생이 거북을 잡는 것을 확인한 후

돌연한 습격으로 빼앗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천용방이 먼저 나타나 철검서생을 설복하여 포섭해 버린 지금의 사태는

완전히 변하고 만 것이었다.

 

  이창란은 두 사람이 말을 못하자 냉소한 후

 

「당대 고수로서 거북이 다니는 길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우리 방의 사향주(史香主) 한 사람 뿐이오.

여러분이 만일 거북을 손에 넣고자 한다면 주지 신분을 버리고 사향주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어떨까 하오.」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문공태가 나서며

 

「이형 말도 옳은 말이나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새로 귀파에 가입한

사향주의 말을 듣는 것은 거북을 잡기까지의 일이오.

만일 거북을 잡은 후에는 어떻게 하겠소?

그 점에 대해서도 의논이 있어야 할 것 같소.」

 

하고 제법 조리 있는 말을 했다.

이창란은 과연 그의 의견도 옳은 것 같았다.

 

「그럼 문형이 말씀해 보시오. 노부가 따르겠소.」

 

  문공태는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한 참 생각하고는

 

「저의 의견으로서는 거북을 잡은 후 적당한 곳에 두고 각 개인이 절기를 발휘하여

이기는 사람이 가지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하고는 곧 백의신군 등뢰를 주시하고 물었다

 

「등형! 당신은 저의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백의신군 등뢰는 입을 벌리고 헛웃음을 웃었다.

 

「문형의 매우 고명한 의견에 찬성하오.」

 

  문공태의 말대로 하겠다는 백의인의 말이 떨어지자

이창란도 할 수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두 분의 의사대로‥‥‥」

 

하였을 때였다.

 

  주약란이 앞으로 뛰어 나오며 혼잣소리처럼 크게 외쳤다.

 

「그렇다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거북을 뺏는 싸움에 참가할 수 있군!」

 

하는 그녀의 눈빛은 유난히 반짝거렸다.

그 반짝거리는 눈빛은 금시 변하여 철검서생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사천경은 주약란이 노려보는 것을 무시하는 듯 담담한 어조로 주약란에게 말했다.

 

「오일 안에는 분쟁에 참가할 권리가 없을 것이오.

때가 오면 당신의 큰 힘을 빌려 양 파의 고수에게 대항해야 할 것이요‥‥‥」

 

「흥! 그럼 닷새 후 어떤 방법으로 생명을 보존할 것인지 두고 보겠소.」

 

  철검서생은 주약란의 가시 돋친 말에 대소하고는 문공태와 백의신군을 노려보며

입을 씰룩거렸다.

 

「두 분은 모두 한 문파의 주지 신분이신데 만일 오늘 저녁 나의지배를 받는다는 말이

무술계에 퍼지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오.」

 

「흥! 대장부가 하는 일이 어찌 그만한 것에 구애 받겠소!」

 

  대수로울 것 없다는 문공태의 말에 철검서생은 박장대소했다.

 

「그럼 문형께서는 저의 명령을 달갑게 받겠소?」

 

「물론이요. 그러나 ‥‥‥」

 

「조건이 있다는 말이오?」

 

「당신의 명령을 받는 것은 미안하지만 만년 묵은 거북을 잡을 때까지 만이요.」

 

「좋소, 나도 더 이상 당신에게 명령할 필요도 없소!」

 

  사천경은 고개를 서서히 돌려 백의신군 등뢰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등형도 역시 저의 지배를 받겠소?」

 

「여부가 있겠소? 그러나 너무 좋아하지는 마오.

거북을 잡은 뒤에는 꼴좋은 일이 있을 것이오.」 

 

  철검서생은 빙긋이 웃으며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는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지금부터 미안하지만 내 명령을 들으시오.

이미 때는 이경이 지났소. 지금이 바로 만년 묵은 거북이 나올 시간이요

우선문형은 당신의 사제를 거느리고 왼 쪽 산 벽 아래로 내려가시오 .」

 

  문공태는 굵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아니꼽다는 듯이 철검서생을 노려본 후

다벽금강 도일강을 거느리고 그의 말대로 왼쪽 산 벽 아래로 내려갔다.

 

  사천경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등뢰에게도 명령했다.

 

「등형은 두 사제를 거느리고 오른 쪽 산 벽으로 내려가시오 .」

 

  등뢰 역시 무술계에서 일대 종파의 주지로서 언제 남의 명령을 들은 바 없으므로 밸이 뒤틀려

 

「말이 있다면 하시지, 형! 형! 하시오? 내가 당신의 형이오?」

 

투덜거리면서도 어쩔 수 없는 듯 철검서생의 말대로 두 사제를 거느리고

오른 쪽 산맥으로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철검서생은 등뢰들이 산 벽 밑에 도달했음을 확인한 후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이제부터 산 벽에 몸을 붙이고 서서히 계곡 안으로 들어가시오 .

만일 명령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멋대로 행동한다면 용서치 않을 것이오!」

 

하고는 이창란을 돌아보며 빙긋이 웃었다.

그러한 그의 태도는 어떠냐? 하는 자기의 과시 같아 이창란도 빙긋이 따라 웃었다.

그러나 철검서생은 정중하게 이창란을 돌아보며 명령을 내렸다.

 

「방주께서도 계곡 안으로 들어가시죠.

저의 의형 남천일봉 주공량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창란은 미소를 지으며

 

「오늘 저녁은 일체 당신의 의사대로 하시고 그들이 필요하다면 분부만 하시오.」

 

하고는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사천경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을 섰다.

그러자 그 뒤로 이창란과 최문기, 소천의, 천중사추 등이 뒤를 따르고

주약란과 삼수나찰 팽수위는 맨 뒤에 따랐다.

  이때 화산파의 장문인 팔비신옹 문공태와 설산파 장문인 백의신군 등뢰는

이미 사천경이 고의로 그들로 하여금 산 벽에 의지하여 계곡 안으로 들어가라는 것을 알고

심중으로는 분개했지만 그렇다고 거역한다면 거북을 구경조차 못할 처지라 하는 수 없이

계곡은로 깊이 들어갔다.

 

  이때 이창란은 철검서생의 뜻을 눈치 채고 뒤에 따라오는 철검서생을 돌아보며

 

「당신의 행동은 참으로 훌륭했소.

문공태와 등뢰는 주지의 신분으로 오늘 당신에게 지배를 받게 되어 가관이요.

이 소문이 무술계에 전해진다면 큰 웃음거리가 될 뿐 아니라 우리 천용방의 영광이요!」

 

「그들이 만년 묵은 거북을 손에 넣으려고 모욕을 받기로 하였지만 속으로는

당장 죽이고 싶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하며 마주 보고 웃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화를 문공태와 등뢰는 극히 교묘한 내공으로 한마디도 빠짐없이 듣고는

분통이 터져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다.

거북의 욕심만 아니라면 단박에 쫓아가 요절을 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형편이라

눈알만 굴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삼십 리 길을 걸어 산모퉁이에 도달했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상당히 넓었던 계곡이 돌연 좁아지고 북 쪽 산 벽은

심한 경사로 곧 무너질 것 같았다.

그리고 계곡의 넓이는 팔 척 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앞서 가던 사천경은 재빨리 산모퉁이를 돌아섰다.

 

돌연!

 

산 벽 아래로 내려갔던 문공태와 등뢰가 어느 사이에 따라와서 옆으로 달려 왔다.

다벽금강 도일강이 그의 앞을 가로 막아 서자 두 명의 백의인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뒤에 붙어 섰다.

그들의 거리는 불과 두 척으로 아무 때나 사천경의 전신 요철을 수시로 찌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주위의 돌변한 사태로 위험을 느낀 사천경은 본능적으로 돌아 서면서 한 걸음 물러서는 찰나

등뢰의 억센 손이 사천경의 뒷등 명문혈을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음흉스럽게 웃으며

 

「사천경! 목숨이 아까운가?」

 

하고 싸늘하게 물었다.

 

  명문혈을 움켜잡힌 철검서생은 미처 말도 못하고 쩔쩔매는 순간

 

  돌연

 

  팔비신옹 문공태가 오른 손을 번쩍 들었다. 그와 함께

 

  (획!)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허공을 가르면서 두 개의 금환(金丸)이 등뢰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앗‥‥‥」

 

하고 놀란 등뢰는 급히 머리를 숙이며 번개같이 돌아섰다.

그러자 문공태의 거만한 태도가 눈앞에 버티고 서서는 히죽 웃는 것이었다.

 

「등형! 사태를 잘 보시오!

귀파 형제들이 천용방의 공격을 막을 수 있소?

장부 일언은 중천금이오.

만년 묵은 거북을 잡기 전에는 명령을 따라야 하오.

속히 사천경에게서 손을 때시오.」

 

  등뢰는 문공태를 노려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문형도 화산파의 문호를 장악하고 있는 사람으로 어찌 오늘과 같은 모욕을 받고

무슨 면목으로 무술계에 나서겠소? 저는 실로 이런 굴욕을 당하고 살 수 없소.」

 

「등형의 말씀도 지당한 말씀이오.

그러나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 란을 초래할 것이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떻게 된 영문인지 백의신군 등뢰의 몸이

비틀 비틀하며 곧 쓰러질 것 같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것이었다.

 

  그 순간-,

 

 사천경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등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포위망을 뚫고 나왔다.

그러나 몇 걸음 뛰기도 전에 두 명의 백의인이 일시에 달려들었다.

 

  문공태는 달려드는 두 백의인을 겨누고 몸을 날렸다.

그가 날카로운 청죽장을 들어 백운출수(白雲出岫)로 오른 쪽의 백의인을 내려치자

재빨리 다벽금강 도일강이 나서며 란강절두(?江截斗)로 다른 한명의 백의인을 후려쳤다.

생각지도 못했던 도일강의 일격에 몇 걸음 뒤로 휘청거리며 물러서는 백의인에 비하여

도일강의 몸은 여유 만만하게 버티고 서있는 것이었다.

 

순식간의 일이었으나 위기를 느낀 철검서생이 나는 듯이 후퇴하여 이창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불의의 습격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달려 나오는 철검서생을 지켜보고 있던

개비수 최문기와 묘수어은 소천의 천중사추 등은 분을 참지 못하고 해천일수 이창란의

얼굴만 주시하고 있었다.

 

이창란의 말 한 마디만 떨어지면 번개같이 달려들어 등뢰의 일당을 격파시키려는 순간이었다.

험악한 분위기가 감도는 협곡! 큰 싸움이 벌어지려는 일보 직전의 아슬아슬한 순간을 깨뜨리며

이창란이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이창란의 외침은 싸움을 알리는 호령 소리가 아닌 신랄한 문초였다.

 

「등형! 일파의 문호를 장악하고 있는 신분으로 약속을 어기고

신의를 배반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이창란의 외침은 조리에 맞는 말이었고 매우 위엄이 있는 물음이었다.

  등뢰는 문공태가 던진 금환(金丸)이 머리 위를 스치고 날을 때 급히 머리를 숙임으로서

비록 위기는 면했으나 그 순간에 어디서부터 날아 왔는지 무시무시한 장풍이 등뢰의 가슴을

후려치고 말았던 것이었다.

 

  급작한 일격을 받은 순간,

등뢰는 저윽이 놀라며 그 고수의 무공에 두려움을 느끼던 것이었고

더구나 이미 자기의 잘못을 후회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데다 이창란의 힐책이 떨어져 입장이 난처하게 된 등뢰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차! 장문의 신분으로 그만한 일을 참지 못하고‥‥‥)

 

후회의 빛을 감출 길이 없는 등뢰는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이창란의 일행을 바라보고

사과도 변명도 아닌 궤변을 늘어놓았다.

 

「이형! 오해하지 마시오. 내 장난이 좀 지나했던가 보오.

정말 내가 마음먹고 손을 썼다면 벌써 죽어 자빠졌을 거요 .」

 

하고는 이창란 일행을 번갈아 바라본 다음 다시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말이오. 지금 어느 고수께서 암암리에 기척도 없는 일격을 퍼부어 저를 놀라게 하였소.

참으로 훌륭한 솜씨에 감탄하는 바 없지 않소이다.」

 

이창란 일행은 잠시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문공태가 던진 금환의 위력만으로는 등뢰가 감탄을 연발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문공태도 사실 자기가 던진 금환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해천일수 이창란의

눈치가 아무래도 범상치가 않았다.

 

  (어떻게 된 노릇일까? 그럼 나 아닌 어떤 고수가 손을 들어 장풍을 썼다는 말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창란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창란도 눈을 껌벅거리며 알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드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위의 시선은 모두 이창란에게로 집중되고 말았다.

 

이창란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름을 느끼고 주약란을 곁눈질하며 등뢰에게 말했다.

 

「등형에게 어떤 무공이 가해졌는지 는 모르겠소.

또 알 필요도 없는 일이오. 다만 이 노부가 하지는 않았소!」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며 완강히 부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아무 것도 아닌 것에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깝다는 듯

문공태가 나서며 이창란을 불렀다.

 

「내가 금환을 던진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금환은 장풍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 아니오?

다만 위협하기 위해서 던졌을 뿐이오.

그러나 누가 암암리에 장풍을 가했던지

그까짓 일은 덮어두고 우선 거북부터 잡고 봅시다.」

 

  그 말에 등뢰는 이창란을 바라보며 문공태의 말에 따를 것을 찬성했다.

 

「그것이 좋겠소, 거북을 잡은 후에 다시 겨누어 봅시다.」

 

「그렇게 합시다.」

 

  이창란도 쾌히 응낙했다.

 

  위기일발 직전에서 문공태의 제의로 일단 험악한 분위기가 수습된 일행은

애초의 약속대로 철검서생의 말에 절대 복종키로 맹세하고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부터 이십 여리 길을 앞장서서 걸어가던 철검서생 사천경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섰다.

 

  그리고는 입에다 손바닥을 둥글게 말아대고

 

「우!」

 

하고 이상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사천경의 뒤를 따라가던 일행은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사천경의 이상한 외침 소리가 계곡을 울리고 퍼져 나가자

오른쪽 산모퉁이에서 남천일붕 주공량이 서서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눈이 둥그레진 일행은 사천경과 주공량을 번갈아 보며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마음을 조이며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 사천경의 외침 소리에 나타난 주공량은 사천경의 뒤에 따라 서 있는 여러 사람들을

하나하나 자세히 바라보면서 사천경 앞에 까지 걸어왔다.

 

 이때 사천경은 주공량 앞에 나가 읍을 하며

 

「주형‥‥‥ 저는 천용방에 가입할 것을 이 방주에게 응낙 하였습니다.」

 

하고 말했다.

 

  주공량은 화다닥 놀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무엇이?」

 

「놀라지 마시고 제 말을 들어 보시오.

만년 묵은 거북의 소식이 어떻게 누설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그 거북을 잡으려고 무술계의 고수들이 모여들어 일대 결투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거북을 잡겠다고?」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도 형님과 둘이서는 도저히 고수들을 당해 낼 길이 없을 것 같아

천용방에 가입해서 힘을 도모하려고 하는 중입니다.」

 

「고수들이 몰려들었다'! 어느 파의 어느 고수들이 왔단 말이냐?」

 

「지금 여기에 나타난 고수들만 해도 설산파의 등뢰,

화산과의 문공태이며 앞으로 얼마나 더 올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음‥‥‥‥」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만일 천용방에 가입하지 않는다면 그들과 대항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십오 년이란 긴 세월이 헛되게 되지 않는가?」

 

  주공량은 침통한 낯빛으로 길게 한숨을 쉬었다.

  사천경은 얼굴을 붉히며 주공량의 낯빛을 살폈다.

 

「형님! 그 대신 거북의 분배권은 저희가 갖기로 이방주와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까짓 분배권이 무슨 소용이냐?

 사람의 마음처럼 간사스러운 것이 없고 더구나 속은 알 길이 없는데 거북을 잡은 후에는

반드시 달라질 것이다.」

 

하며 믿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이때 주공량과 사천경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창란이 앞으로 나서며 부드럽게 말했다.

 

「이미 이 노부의 나이도 늙었소이다.

평생을 신의로 살아 온 이 몸이 어찌 마음에 없는 말을 하겠소,

염려하지 마시오.」

 

하며 장담하고 나서자 사천경이 의기앙양하게 나섰다.

 

「보십시오, 지금 이방주님의 말도 틀림없다고 하지 않습니까?

더구나 저를 친 형제처럼 믿는 처지입니다. 거짓말은 안합니다.」

 

하고는 음성을 낮추어 주공량을 불렀다.

 

「형님! 이미 동생인 제가 천용방에 가입했습니다.

형님도 그 동안의 정을 생각하셔서 천용방에 가입하시기 바랍니다.」

 

  이때 이창란이 다시 나서며 엄숙하게 주공량을 향하여 읍했다.

 

「이 노부는 벌써부터 주형의 대명(大名)을 흠모하고 있었소이다.

주형께서 천용방에 가입해 주신다면 이 늙은이는 더 없는 영광으로 알겠소이다.」

 

  그러나 주공량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이창란을 저윽이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었다.

  가입한다든지 안 하겠다든지 가부간 의사표시를 해야 하겠지만

주공량의 가슴 속은 여러 가지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입해야 좋은가? 아직 나는 아무 문과도 없는 일개 무명의 무술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천용방에 가입해서 이로울 것이 있을까? ‥‥‥)

 

  망설이고 있을 때 최문기가 가운데로 나서며 주공량의 어깨를 가만히 짚었다.

 

「주형! 무엇을 그렇게 생각하오?

주형이나 나나 문파 없이 얼마나 굴욕을 당했소?

다행히 오늘 천용방의 이 방주께서 모처럼 권하는 말씀인데 문파 없는 설움에서

굴욕을 벗어 버리고 천용방에 가입하는 것이 어떻겠소?」

 

천용방에 가입할 것을 권유하고 나서자 이창란이 뒷받침하듯 다시 다가섰다.

 

「주형! 이 노부를 믿으시오.

천용방에 가입만 하신다면 책임지고 대우해 드리겠소!」

 

  그제야 주공량은 이창란을 바라보며 애원하듯 말하는 것이었다.

 

「잘 알겠소이다. 그러나 문제가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저에게 더 생각할 여유를 주십시오. 그러면 대담을 하겠습니다.」

 

「아! 그것도 좋은 생각이오. 무술인 으로서는 생명과 명성을 좌우하는 일인데‥‥‥

천천히 생각해서 차후에 우리 이야기 합시다.」

 

일단 여기서 천용방의 가입 문제는 보류하기로 하고 곧 거북을 잡기로 했다.

이창란은 얼굴에 희색을 감추지 못하며 주공량에게 거북을 잡는 방법을 물었다.

 

「자, 그럼 이 노부는 마음 놓고 주형을 맞이할 계획이나 세우겠소.

그러면 우선 거북에 관해서 고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라오.」

 

  주공량은 이창란의 권유대로 거북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예, 거북은 지금부터 동굴에서 나올 시간입니다.

원래 거북은 영(靈)이 통하는 동물이어서 기회를 놓치면

동굴 속으로 다시 들어가서 나오지 않습니다.」

 

  이창란 이하 여러 사람들은 주공량의 말에 긴장하여 눈 하나 장학이지 않고

주공량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한 태도를 둘러본 주공량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므로 절대로 말하지 말고 서로 협력해서 길목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하고는 사천경을 바라보았다.

주공량의 말이 끝나자 사천경은 헛기침을 하며 주위를 둘러본 다음

이창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지금 저의 의형의 말씀대로 절대 조심하지 않으면 허사가 됩니다.

그런데 이방주님! 처음 약속대로 제 명령에 복종하여 인원을 배치하기로 합의한 이상

제가 계속해서 이 일을 맡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순간!

 

  이창란의 마음속에는 주공량의 태도가 염려되었다.

사천경보다 주공량이 더 거북에 대해서는 철두철미 잘 알고 있는 눈치를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주공량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겠으나 사천경이 가로막고 나선다면

주공량이 불쾌해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주공량의 얼굴에는 아무 이상도 발견할 수없었다.

이창란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옳은 말이오, 주형도 여기 계시기는 하지만 애초의 약속대로 문공태, 등뢰 두 형께서도

약속을 저버리지는 않을 것이라 믿소.」

 

하며 꼼짝 못하게 못을 박았다.

 

  그러자 문공태는 입맛이 쓴 듯 얼굴을 찌푸리며 수염을 쓰다듬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와 함께 등뢰 역시 이창란을 외면한 채 서있는 것이었다.

  이때 철검서생 사천경은 등에 메고 있던 청검(靑劍)을 뽑아 들고 문공태와 등뢰에게 호령하듯

 

「두 분께서는 진심으로 저의 명령에 복종하겠소?

안 하겠다면 저도 생각이 있소!」

 

하며 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러한 사천경의 표정은 한 칼에 요절을 내려는 듯 무시무시했다.

서슬이 시퍼런 사천경의 날카로운 청검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던 문공태는

가슴을 쫙 펴 보이며 명령대로 따를 것을 약속했다.

 

「남아가 한 번 한다면 하는 성질이오.

명령대로 하겠소. 그러나 그따위 칼은 무섭지 않소!」

 

  어디까지나 여유 있는 태도의 문공태였다.

그러나 등뢰는 밸이 꼬이는 듯 비웃으며

 

「흥! 비록 설산파의 장문이지만 오늘만은 천용방의 지시를 받아보실까?‥‥‥」

 

하며 빈정거렸다.

그러한 그의 태도를 노려보고 있던 사천경은 칼을 다시 칼집에 꽂으며,

 

「그러면 제 말에 절대 복종하리라고 믿겠소.

그런데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이 있소 그것은 우리가 거북을 잡아놓고

서로 싸움을 한다면 여기에 모인 사람들 이외에 다른 파의 고수들이 달려와서

우리가 싸워 지치기를 기다렸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거북을 뺏어 가지 않는다고는

단정할 수 없는 일이오.」

 

「사실 그것이 걱정거리요.

지금 이 와호령에 우리 말고 어느 파의고수들이 숨어서

우리를 노려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오!」

 

  문공태가 사천경의 말에 맞장구를 치자 등뢰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사천경에게 삿대질을 했다.

 

「여보시오! 그럼 어쩌겠다는 말이오?

애초에 그렇게 하기로 약속해 놓고 그럼 싸움을 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오!」

 

「등형! 왜 그렇게 성급하시오.

내 비록 무술계의 졸장부이지만신의는 지키는 사람이오!」

 

  사천경도 지지 않고 마주 삿대질을 하며 나셨다.

그러자 등뢰는 약간 수그러지며 "

 

「그럼 무슨 묘책이라도 있다는 거요?」

 

「예, 있소. 그것은 이렇게 하면 될 것이오.

오늘은 우선 우리들이 힘을 합하여 거북을 뺏으려고 노리는 자를 막아내는 것이 상책인가하오.

그 다음에 거북의 주인을 우리끼리 무술대회에서 결정짓기로 하지요!」

 

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공태와 등뢰는 사천경의 말대로 한다면 천용방이 유리하게 될 것임을 알아 차렸다.

그러나 사천경의 말대로 하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술대회를 연기한다면 그만큼 문공태나 등뢰가 우선 수의 부족으로 불리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기껏 고생해서 잡은 거북을 마음속으로는 다른 모의를 하고 있을 다른 파의 고수들에게

빼앗긴다면 그 또한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사천경의 말대로 주위에 있는 적부터 처치한 다음 천용방과 대결할 도리밖에 없음을 안

문공태와 등뢰가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 미처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때 사천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두 분 형님께서 동의해 주시는 걸로 알고 일을 진행하겠소.」

 

하고는 주공량을 돌아보며 물었다.

 

「준비는 다 되어 있습니까?」

 

「음! 모두 네 계획대로 준비했다.」

 

「그럼 이제부터 명령하겠소.

문형은 사제를 거느리고 남쪽을 수비하시오.

계곡을 빠져 나가는 길은 하나 밖에 없지만 절벽 위나 괴암,

암굴 속에 적들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오!」

 

  사천경이 가리키는 대로 계곡의 남쪽으로 시선을 옮긴 문공태도절벽과 무수한 바위

그리고 소나무 숲을 바라보며,

 

  (환한 대낮에도 어두운 곳을 이 깜깜한 저녁에 어떻게 지킨담?‥‥‥‥)

 

하고 생각한 문공태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 넓은 풀숲과 암굴을 어떻게 수비할 수 있다는 말이오?

먼저 우리가 함께 수색해 보는 것이 어떻겠소?」

 

하는 말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사방을 살피던 백의신군 등뢰는

당치도 않다는 듯이 손을 흔들며 나셨다.

 

「안 될 말이오. 이 넓은 계곡 안을 무슨 수로 일일이 수색한단 말이오?」

 

  문공태는 은근히 화가 나는 모양으로 등뢰를 노려보며,

 

「그렇게 하기 싫으시다면 일찍 대설산으로 돌아가 쉬시지?」

 

하고 비꼬았다.

 

  그러나 등뢰는 추호도 노여워하지 않고 이창란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형! 수색한다는 것은 어렵지는 않소만 이곳에서 거북이 나타날지

어떤지도 모르는데 수색한다면 헛수고가 아니겠소?」

 

하고 엉뚱한 소리를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문공태는 사실 등뢰의 말도 일리 있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옳아! 사천경이 고의로 우리를 떼버리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자 제풀에 화가 났다.

 

  그때 사천경이 먼저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문공태의 말 한마디로 분위기는 달라질지도 몰랐다.

그러나 사천경이 손을 흔들며 나셨다.

 

「등형이 하는 말은 도대체 틀렸소.

나는 적어도 십오 년 동안이나 세월을 보내면서 거북을 지켜보고 지냈는데

아무렴 거짓말을 하겠소?

거북은 일 년에 일곱 번 내지 여덟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소.

공연히 딴 소리들 하지 말고 가만히 제가 하라는 대로만 하시오.」

 

  문공태는 사천경의 말도 또 그럴듯했다.

 

  (그렇지, 저 놈은 십오 년 동안이나 거북을 지켜본 놈이니까

거짓말은 안할지도 몰라. 하여튼 거북을 잡아놓고 볼 일이다.)

 

  이렇게 누그러진 문공태는 조금 전의 화를 잊어버린 듯이 사천경을 돌아보며

 

「과연 사형의 말이 옳은 것 같소. 우리 화산파는 분부대로 하겠소.」

 

  말이 끝나자 다벽금강 도일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남(正南)쪽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사천경이 문공태를 불러 세웠다.

 

「문형! 잠시 멈추시오. 제 말이 끝나질 않았소!」

 

  헐떡이며 달려가던 문공태는

 

  (빌어먹을 놈, 가라 오라 제 마음대로 명령이구나!

이놈! 거북만 잡으면 단단히 맛을 보여주마!)

 

  투덜거리며 되돌아 사천경 앞에 섰다.

 

「거북이 나타난 후에도 여러분은 마음대로 움직이면 안 됩니다.

거북을 잡을 때에는 별로 여러분의 협조가 필요 없으니

양 쪽에서 달려드는 적만을 막으면 됩니다. 거북을 잡으면 통지하겠습니다.」

 

하고 등뢰에게 명령했다.

 

「등형은 사형제를 거느리고 이 모퉁이를 수비하시오.

한 사람의적도 이 계곡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시오.」

 

  백의신군 등뢰는 할 수 없이

 

「그래 ‥‥‥‥」

 

  한마디를 내뱉고는 분부한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사천경은 또다시 그들을 불러 세웠다.

 

「만년 묵은 거북은 떠들썩한 것을 가장 두려워 하요

만일 적이 나타나도 기합이나 큰 소리를 치지 마시오.

거북이 도망가면 허사요!」

 

  문공태와 등뢰가 각기 자기들의 제자들을 데리고 철검서생 사천경이

지시한 곳으로 곤두박질하듯 달려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이창란은

길게 탄식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한 파의 종사(宗師)라는 사람들이 더구나 무술로나 명성으로도

사천경을 능가하는 고수들이 거북을 얻으려고 저렇게 뛰는구나.

욕심이 너무 많은 탓인가. 사람은 제 분수대로 살아야 할 것을‥‥)

 

  사천경은 뒤를 돌아보고 이창란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거북이 나을 시간이 가까웠습니다.

속히 적당한 곳을 찾아서 몸을 숨기고 기다려야겠습니다.

나를 따라 오십시오.」

 

  그리고 사천경은 즉시 몸을 날려 앞으로 내달았다.

이창란, 주약란, 팽수위, 최문기 등도 곧장 그 뒤를 따라서 몸을 날렸다.

약 십 리나 뛰었을까?

 

  실히 천 년은 묵은 듯싶은 거송(巨松)이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아 있었다.

  그곳에 이르자 사천경은 발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봤다.

 

「여기가 적당하겠소. 그럼 방주께서는 여기 우거진 소나무 위나 아니면

이 근방 으슥한 숲 속에 깊이 숨으십시오.

특히 거북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해야겠습니다.」

 

  이창란은 주위를 살피고 나서 선뜻 큰 바위 위에 뛰어 올라가 숨었다.

  주약란, 최문기들도 근방 지형을 살핀 후에 제각기 적당한 곳을 찾아 감쪽같이 몸을 숨기었다.

모두가 숨은 것을 본 사천경과 주공량도 그제야 그 큰 소나무 아래에 우거져 있는

숲 속에 몸을 숨겼다.

그러고 보니 도시 어디에 사람이 숨은 것 같지도 않게 보였다.

이 모든 일을 끝내고 보니 밤은 깊어서 어느 및 자정이 넘은 모양이었다.

  날씨는 흐리고 하늘에 어둑한 구름이 함빡 덮여 별빛마저 가렸다.

  산곡의 밤은 칠흑 같은 어둠에 싸여 있었다.

거기에다 으시시한 바람마저 불었다. 그럴 때마다 거송은 우수수 하고 가지가 흔들렸다.

  때때로 야수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밤공기를 음산하게 찢어놓았다.

무서운 밤이었다.

얼마나 또 시간이 흘렀을까?

먼 곳에서 날카롭고 짤막한 원숭이의 다급한 울음소리가 찢어지게 들려 왔다.

사천경은 정신이 번쩍 드는 모양이었다.

잠시 두 눈에 불을 켤 듯이 크게 뜨고 주위를 살핀 후 주공량을 쳐다봤다.

 

「그 만 년 묵은 거북은 입에서 아주 독한 독을 내뿜으니 특히 조심해야 됩니다.

 어쩌다 잘못하여 물린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되죠.

나중에 거북을 잡을 때는 그 점을 각별히 주의해서 몸을 놀려야하겠죠.」

 

  주공량이 미처 대답하기 전에 홀연 늑대 우는 소리가 산간에 울려왔다.

 

  그러자 곧이어 수많은 늑대의 무리들이 온 사방에서 요란하게 울어 대었다.

그 울음소리는 온 산을 뒤덮을 듯이 메아리쳤다.

사천경, 주공량, 이창란들은 모두가 오랫동안 무술계에 쏘다닌 경험이 많은 무술가들이었다.

 

말하자면 산전수전(山戰水戰)을 허다하게 겪은 노련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니만큼 심상치 않은 늑대들의 울음소리만 듣고 사나운 늑대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으리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들은 오싹하고 몸을 떨면서 서로 불안하게 쳐다봤다.

늑대들의 울음소리는 차츰 가까워졌다.

곧이어 우박이라도 쏟아지는 것 같이 수많은 늑대들이 달려드는 소리가 들리면서

조용하던 산곡이 벌컥 뒤집혔다.

그 수는 얼핏 한눈으로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수 십 마리가 시커멓게 한 떼가 되어 달려 왔다.

그대로 뿔뿔이 흩어져 숨어 있다가 이 늑대 무리에게 짓밟히게 되면

그 당장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은 분명했다.

급히 몸을 피해야만 했다. 사천경과 주공량은 먼저 무기부터 빼들고 단단히 몸을 감쌌다.

그런 후 삽시간에 몸을 날려 소나무 뒤에 바싹 기대어 몸을 숨겼다.

그 날랜 동작은 비호같았다.

그 뒤를 이어 이창란, 최문기, 소천의, 주약란, 팽수위들도 여기저기 흩어져 숨었던 바위 들

혹은 으슥한 숲 속에서 비호처럼 몸을 날려 소나무 뒤로 달려와 몸을 숨겼다.

모두가 그 거대한 노송을 의지하고 모여 숨으니 그제야 어느 정도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만일 늑대들이 달려들까 몹시 긴장한 채로 제각기 공력을 운행하며

모든 대비를 차리고 있었다. 허기진 늑대들이 무리를 지어 휩쓸고 다니는 것이란

여간 사나운 것이 아니었다.

 

사람이나 다른 맹수나 일단 그 무리들과 맞부딪치면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무작정 살이나 내장은 말할 것 없고 뼈마저 깨어 먹어버리고 마는 참혹한 동물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떻게 된 영문이란 말인가?

늑대의 무리들은 이들의 옆으로 밀려 와서는

서로 먼저 도망가려고만 하였지 대들려고는 하지 않았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다.

이창란은 수염을 쓰다듬더니 비로소 길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살았구나.‥‥‥‥ 천만 다행이었어.

이놈들이 그대로 지나쳤기 망정이지 잘못되어 우리를 습격했다면

필경 참담한 살상은 면할 길이 없었겠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칠 일이지.」

 

하고 몸을 부르르 떠는 모양이 생각만 해도 몸서리 쳐지는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다 해도 그놈들이 분명히 우리를 보고도 도망치니 이상한일이지?

원래 그놈들은 배가 고파야 떼를 지어 휘몰아 설치는 법이거든.

그런데도 그놈들은 우리를 거들떠보기는커녕 꽁무니가 빠져라 도망쳤으니

이건 심상치 않은 징조야. 여하들 어떤 일에 크게 놀랐던지,

아니면 무엇을 보고 무서워 도망치는 것이 틀림없어!」

  그러자 사천경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 죽여 말했다.」

 

  그렇지! 이건 바로 거북이가 나타나는 징조임에 틀림없을 거요.

이러고 있을 것이 아니라 어서 몸을 숨깁시다.」

 

  그는 그길로 몸을 날려서는 재빠르게 숲 속에 몸을 감추고 말았다.

  이창란, 팽수위, 주약란, 소천의 등도 급히 뒤따라 숲 속에 몸을 숨겼다.

소란하던 산 속은 또 다시 죽은 듯 고요해지고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정말 숨 막힐 것 같은 몇 시간이 흘렀다.

주약란은 꼼짝도 않고 숨어서는 공력을 눈으로 집중하여 앞 쪽만 노려보았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이 훤해지는가했다.

주약란은 후딱 정신을 차리고 더욱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것은 한 줄기의 붉은 빛이었다.

그 빛은 더욱 커지면서 숲 속을 물들이며 그들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요사스러운 붉은 빛은 눈부시게 번쩍거렸다.

그 한 줄기의 불빛은 무척 신비하였지만 매우 느릿느릿 하게 앞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거의 반 시각이나 흘러서야 일행이 숨을 죽이고 숨어있는 소나무 앞 십장 밖에 간신히 다가왔다.

그 순간!

사천경이 숨어 있는 숲 속에서 무엇이 번쩍했다.

얼핏 주약란이 쏘아보자 두 줄기의 화염이 바위와 나무 사이를 스치며 날아갔다.

팽수위가 주약란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사천경이 조명탄을 터뜨리는 겁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바쁘게 바로 평! 하고 요란하게 터졌다.

밝은 불꽃이 강렬하게 번쩍이자 어둡던 산 속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천경은 몇 알의 조명탄을 연달아 터뜨렸다.

여기저기서 연달아 펑! 펑! 하고 밝은 불꽃을 내뿜었다.

그러다 보니 숲 속의 어둠은 삽시간에 밝은 대낮처럼 밝아졌다.

그때서야 불그스름한 빛을 내며 다가오는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바로 그것이 거북이었다.

대낮같은 밝은 조명탄 불빛 아래 그 거북의 모습을 역력히 볼 수 있었다.

사천경은 그 즉시 철검을 빼어 들고 숲 속에서 뛰쳐나가더니

곧장 거북 앞으로 내달렸다. 

그러자 이창란, 최문기, 주약란, 팽수위들도 제각기 뛰쳐나와 거북 앞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대낮같이 밝은 불빛 아래서 그 거북 앞뒤는 물론 좌우로 물샐 틈 없이 둘러쌌다.

그런 후에야 조심스럽게 그 거북을 차근히 살펴봤다.

그 모습은 애초에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최소한도 만 년을 묵은 거북이라고 하면 그 몸뚱이는 적어도 집채만 한 거물일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 지금 그들에게 에워싸인 거북은 상상외로 적어서 한 자 정도에 불과했다.

아무리 보아도 보통 거북 같았지만 단지 한 가지 다른 점은 그 놈의 몸뚱어리 전체에서

붉은 빛이 도는 점이었다.

이렇게 잠시 동안 살피고 있을 때 거북은 길게 내밀었던 머리를 서서히 몸 안으로 오므리고는

눈만 빠끔히 내어 놓고 두리번거리는 것이었다.

사천경이 얼핏 주위를 살피더니 주먹만한 돌을 주워들고는 힘껏 거북의 등을 처 갈겼다.

 

  <짜르락!>

 

  거북의 등을 후려친 돌은 산산 조각이 나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두들 어처구니가 없는 듯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사천경이 공력을 들여 던진 돌이라 무척 강한 일격이었다.

그런데도 돌은 부서져나갔으나 거북은 끄떡도 하지 않고 눈만 돌리더니

철검서생 앞으로 기어 나왔다.

사천경은 매우 긴장한 눈으로 그 놈을 쏘아보며 조심해서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모양을 보고 있던 이창란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투덜거렸다.

 

「아니? 저토록 작은 거북에게 무슨 신통한 힘이 있다고 뒤로 물러날까?

겁도 많긴‥‥‥」

 

  바로 그때였다!

 

  거북이 움츠렸던 목을 삽시간에 쪽 내밀었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땅을 박차고

불덩어리 같은 몸을 허공에 날리며 사천경의 정면으로 덮쳐들었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모두들 그 놀라움은 대단했다.

  다행히도 사천경은 무척 조심하며 물러나든 터라 행여나 불시의 습격을 염려해서

완전한 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천경도 급히 몸을 비켜서 피할 수 있었고 철검으로 교타금종법(巧打金鍾法)을

써서 비스듬히 후려쳤다.

사천경의 철검이 불덩어리 같은 거북의 목을 잘랐는가? 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철검을 버리고 급히 뒤로 몸을 빼돌려 약 일장이나 물러나고 말았다.

주약란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단칼에 토막 나는가 싶었던 거북의 목은 두 척이나 길게 빼들고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천경의 철검을 아지작 아지작 하면서 아주 맛있게 씹어 먹고 있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그 광경이 믿어지지 않는지 다시 유심히 바라보았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칼은 아주 단단한 강철로 만든 철검이었다.

그것을 나뭇조각처럼 힘들이지 않고 먹어버리니 비단 주약란뿐만 아니라

그들 모두가 아연실색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이창란은 하도 어처구니없는지 슬며시 철검서생 옆으로 다가 가더니

말소리를 죽이면서 물었다.

 

「무슨 놈의 거북이가 그래 칼까지 먹어버리오?

몸은 철갑처럼 굳고 이발은 강철보다 날카로우니 도대체 무슨 수로 저놈을 잡는단 말이오?」

 

「그런 것은 또 둘째 문제요.」

 

「둘째라니? 그것 말고 또 달리 위험한 점이라도 있소?」

 

「있다 마다요 사람으로서 쉽게 방비할 수 없는 것이 있소

그건 바로 저 거북이가 노하고 야성을 발휘하게 되면

그때 입으로 아주 독한독기(毒氣)를 내뽑는단 말이요

그 독기를 쏘이면 당장에 죽고 말지요.」

 

  이창란은 그 말을 듣자 눈이 둥그렇게 되었다.」

 

  그렇다면 저 거북을 잡기는 틀린 일이 아니오?」

 

  사천경도 머리를 끄덕이는 것이 무척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십오 년이란 긴 세월을 이곳 와호령에 숨어서 살았소.

그러다보니 여러 번 저 불 거북을 본적이 있고 저놈의 움직임을 알 수 있었소

한번은 표범하고 어울려 싸우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소.

그 사나운 표범도 저 거북의 입에서 내뿜는 붉은 독기를 쏘이더니 그만 죽고 말았소.

그러니 사람은 그 독기에 직사할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을 것이오.

그러나 막상 저놈의 등가죽이 철갑처럼 단단하고 철점마저도

오독오독 씹어 먹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소.」

 

그는 말을 잠시 끊더니 무슨 생각을 하는 듯하고는 다시 말했다.

 

「방주님, 이번 기회에 이 거북을 달리 이용해 볼 마음은 없으십니까가?」

 

「달리 이용하다니? 그건 무슨 말이오?」

 

「내 말을 들어 보십시오.

지금 우리의 입장으로서는 다행히 저 거북을 잡았다 해도 화산, 설산 두 파와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니 나의 의견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음침한 문공태와 등뢰를 거북과

싸움을 시켜 없애 버리자는 거죠. 어떻습니까? 좋은 계략이 아닙니까?」

 

  이창란은 그 말을 듣고 나자 그 즉시 얼굴을 찡그리며 외면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게는 못하겠소. 물론 좋은 계략이오만 그 방법은 무술계의도의에 아주 어긋나는 짓이니

나의 양심이나 체면으로는 차마 못하겠소.

만일 이 같은 방법으로 그 놈들을 처치하였다는 소문이 무예계에 퍼진다면

우리 천용방의 명예는 땅에 떨어지고 그들은 우리를 손가락질 할 것 아니오?」

 

「방주님께서는 지나치게 너그럽고 아량이 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만이 무술계의 도의나 양심, 체면을 지킬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워낙에 문공태와 등뢰는 비열하고 악랄한 자들입니다.

언제 어떠한 수단으로 우리를 불의에 습격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후환을 없애는 것도 좋은 일인가 합니다.」

 

「옮은 말씀이오. 하기야 그들은 구대문파 중에서도 가장 음침하고 야비한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소. 그러나 우리가 그 점을 각별히 주의해서 감시만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그들의 간계(奸計)에 넘어갈 리는 없을 것이오.

더욱이 실력으로 봐도 감히 우리에게 대항하지는 못할 것이오.」

 

  이창란은 여전히 사천경의 제의를 조리 있게 타이르며

무예계의 도의와 방주로서의 신의를 표시하였다.

 

  또 그 말에 사천경은 더 이상 자기의 의견을 고집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마음속으로부터 이창란의 꿋꿋한 신의와 공명정대한 방주의 마음가짐에

깊이 감탄하는 것이었다.

 

(과연 방주님은 훌륭한 방주이구나!

언행과 아량이 저토록 깊고 신의와 인격이 두터운 고매한 분이니

자연히 그 밑에 천하의 영웅이 모여드는 것은 무리가 아니야.

진실로 무예인다운 호걸이구나.)

 

  그는 이와 같이 속으로 생각한 후 그제야 스스로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방주님의 깊은 덕망을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미련한 사천경은 스스로 부끄러워 뭐라‥‥‥」

 

  이창란은 황급히 사천경의 말을 막았다.

 

「아아, 이거 무슨 말씀이시오. 너무 겸손하십니다.」

 

  그런 후 수염을 점잖게 쓰다듬으면서 웃으며 말했다.

 

「사실 싸움에는 도의와 신의는 있을 수 없지요.

싸움에는 반드시 간계나 교활함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실력이 월등한 바에야 굳이 그런 방법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기에

그런 말을 하였을 뿐이오.

그보다도 오늘 당신이 우리 천용방에 가입하겠다는 응답을 받고 보니

그것이 무한히 기쁘오.

이제 당신과 같은 문무 무방한 실력 있는 분이 우리 천용방에 있는 한,

감히 어느 파도 쉽게 달려들지는 못할 것이오,」

 

  사천경은 이창란의 말을 듣고는 더욱 감복할 뿐이었다.

애초에 사천경이 결심하기는 천용방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화산과 설산 두 파와싸움을 시키는데 있었다.

 

그러는 한편 주약란과 쟁수위의 힘으로 싸워서

이긴 파와 최후의 결전을 시키려고 하였던 것이었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 음침한 모략을 집어 치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말머리를 돌렸다.

 

「저는 이 거북을 사로잡을 방법을 생각해 보았지만

그 방법이 과연 생각대로 효과가 있을지가 문제입니다.」

 

  그러자 묘수어은 소천의가 말을 받았다.

 

「이 만년 묵은 거북의 체내에는 틀림없이 화단(火丹)이 있을 것이고

그 화단에는 분명히 영(靈)이 통할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든 기진맥진하게끔 만들면 잡기가 쉬울 것이 아니겠소?」

 

  사천경이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옳은 의견이십니다.

저도 십여 년 동안을 저놈을 어떻게 잡았으면 좋을까? 하고

무척 연구도 해 보았습니다만 결국은 기진맥진하게 만든 연후에야

잡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방법을 몇 가지 생각했습니다.

그럼 그 방법을 시험해보기로 하죠.」

 

  그들이 이같이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거북에게서는 한시도 눈을 떼지는 않았다.

  그때 거북은 철검을 반이나 먹고 나서 목을 도로 몸 안 깊숙이 넣고는

두 눈만 굴리며 주위 사람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철검서생은 그 모양을 보자 급히 말했다.

 

「방주님! 조심하시오! 저놈이 또 습격해 올 겁니다.」

 

  철검서생은 주의를 주고나자 그 자신부터 급히 물러났다.

 

  이창란과, 소천의도 재빨리 뒤따라서 바위 뒤에 숨었다.

 

  그러자 만년 묵은 거북은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찌이익! 찍!>

 

  그 소리는 어찌나 음산하던지 소름마저 끼쳤다.

그런 직후에 목을 쑥 뽑아내는가 싶더니 칼날 같은 이가 뻗쳐있는 입을 크게 적 벌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과연!

 

목구멍에서 안개 같기도 하고 붉은 연기 같기도 한 검붉은 것이 천천히 풍겨 나오지 않는가!

바로 독기를 내뿜는 순간이었다.

그 불그스름한 안개 같은 독기에 쏘이기만 하면 죽음을 면할 도리가 없었다.

사천경은 황급하게. 소리쳤다.

 

「속히 바람 부는 위쪽으로 몸을 피하시오.

저 붉은 안개가 무서운 독기란 것이오. 어서 급히 피하시오」

 

  소리 지른 사천경은 먼저 몸을 날려 바람이 불어오는 거송(巨松)쪽으로 달려갔다.

  남천일붕 주공량은 이미 사용할 도구를 모두 준비해 놓고 있었다.

  사천경은 그 속에서 고무로 만든 옷을 한 벌 꺼냈다.

그 고무 옷은 보기에도 매우 탄탄해 보였다.

철검서생이 입고 보니 어디로든지 바람한점 들어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위에 또 머리 전체를 가릴 수 있는 고무 탈을 홀랑 뒤집어쓰고 보니

더할 나위 없이 완전무결했다.

그는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본 후에 나무상자에서 묵은 식초 한 병을 꺼내들고는 그 마개를 뽑았다. 그러자 시고 독한 식초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는 모든 준비를 갖추고는 조심스럽게 거북 앞으로 다가갔다.

그때까지도 거북은 여전히 불그스름한 독기를 일장방원(一丈方圖)에 내뿜고 있었다.

사천경은 특제 고무 옷을 입고 붉은 독 연기가 가득 퍼진 거북 앞으로 서슴없이 들어갔다.

  이것은 극히 모험적인 일이었다.

또 그 고무 옷은 사천경이 직접 구상하여 만든 옷이기는 하나 과연 거북이 뿜어낸

독을 막을 수 있는지 그 자신도 확실히 믿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한편, 남천일붕 주공량은 구슬로 만든 함을 들고 긴장한 채 사천경의 일거일동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에 모인 무술계 고수들도 역시 긴장한 채 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사천경의 일거일동은 무척 대담했다.

겁이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상 싶었다.

지켜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그제야 사천경의 위치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젠 만일 불행하게도 사천경이 쓰러진다면 두 번 다시는 아무도 감히 거북을 잡을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철검서생은 여전히 긴장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거북을 향하고 있었다.

물론 은연중에도 단전(丹田)에 진기를 운행 집중하고 호흡을 조절하고 있었다.

 

돌연!

 

만년 묵은 거북은 땅을 차고 허공으로 높이 치솟았다가는 갑자기 한덩어리의 바위처럼 날면서

사천경의 앞가슴을 노리고 덮쳐왔다.

그 즉시 사천경은 몸을 피하였다.

그러나 고무 옷을 입은 몸은 너무 둔하여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고 말았다.

고무 옷을 입은 앞가슴이 쇠뭉치나 바위로 얻어맞은 것처럼 뻐근하고 움칠했다.

더욱이 몸이 휘청거리면서 그만 땅 위에 주저앉고 말았다.

의동생인 사천경의 위급함을 지켜보고 있던 주공량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소천의가 그 앞을 황급히 막았다.

「안되오. 함부로 경거망동하면 못쓰오.

당신이 비록 모험한다손 치더라도 다만 그것은 개죽음을 하게 될 뿐이오.

쓸데없는 짓을 해서 사형의 심중을 어지럽히게 하지 마시오.」

 

  이때 주약란은 수중에 무니주(牟니珠) 세 알을 꼭 쥐고 팔에 힘을 주어 언제든지

사천경에 호응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창란도 손에 주먹만한 크기의 돌을 쥐고 위급한 순간을 주시하고 있었다.

사천경은 거북의 일격을 받고 넘어지긴 하였으나 두 손을 번쩍 들고 있음으로

수중의 묵은 식초병은 다행히 무사했다.

그 만년 묵은 거북은 사천경을 들이받아 쓰러뜨리고는 찍! 찍! 소리를 내면서

도로 제자리로 되돌아 달렸다.

사천경은 그 틈에 대담하게 일어서더니 수중의 초병을 거북을 향해 힘껏 던졌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묵은 식초가 든 유리병은 거북에 부딪쳐서는 산산조각이 나고

사방으로 부서져 흩어졌다.

 

그 즉시 아주 역하고 독한 초 냄새가 사방에서 풍기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 냄새는 모든 사람의 비위를 뒤집고 코를 찔렀다.

그러자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목을 빼들고 휘젓던 거북은 초벼락을 맞자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목을 철갑 같은 몸 안으로 깊숙이 쳐 넣은 채 죽은 것처럼 꼼짝 않았다.

어찌 보면 한 덩어리의 바위 같았다.

사천경은 상상 밖으로 초 한 병의 위력이 상당한 효과를 얻자 어찌나 기쁜지

뒤를 돌아보고 주공량에게 손짓을 했다.

주공량은 구슬함을 끼고 재빨리 철검서생 옆으로 뛰어갔다.

사천경은 구슬함을 받아 들고 다시 뒤로 돌아 가라고 손짓하고 나서 혼자

거북이 있는 앞으로 걸어갔다.

비록 그는 특제 고무 옷을 입고 있긴 하였으나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언제 어느 때 또다시 습격해 올지도 모를 거북의 의외의 반격이 두려웠다.

그렇다고 뒤로 물러설 처지도 못되어 온 몸에 기력을 운행 조절하고 조심조심해서 다가갔다.

그러나 거북은 여전히 죽은 척 하고 목을 틀어박은 채 꼼짝달싹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거북의 몸에 손을 대었다.

그래도 거북은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그는 재빨리 거북을 잡아 함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급히 뚜껑을 단단히 잠가 놓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사천경은 쓰고 있던 고무 탈을 무거운 듯 벗기 시작했다.

 

「핫하하‥‥‥」

 

  사천경은 하늘을 우러러보며 통쾌하게 웃었다.

그는 어찌나 기쁜지 고무 옷을 벗는 것도 잊은 듯 하였다.

해천일수 이창란이 제일 먼저 숨어있던 바위 뒤에서 뛰쳐나왔다.

주약란도 한달음에 철검서생 옆으로 뛰어왔다.

그러한 주약란의 얼굴빛은 매우 엄숙하였고 눈에는 이채로운 광채가 번쩍이었다.

주약란은 잠시 사천경을 쳐다본 후 앵두 같은 입을 열었다.

 

「사천경? 이젠 거북을 잡았으니 애초의 약속대로 우선 나의 사형의 중병을 치료하여 주세요.

나의 사형의 목숨은 이 시간에도 시시각각으로 위급하니 목숨이 사라질 우려도 깊습니다.

속히 약속을 지켜주세요.」

 

  사천경은 눈웃음을 친 후 고무 옷을 벗으며 말했다.

「그야 물론 서로 간에 약속한 대로 나는 당신의 사형의 병을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처지가 아직은 안전하다고는 할 수없습니다.

음침하고 교활한 화산, 설산 두 파가 우리를 노리고 계곡출구에서 막고 있으니까요.」

그러자 엉뚱한 곳에서 요란한 너털웃음소리가 울려오고 두 사람의 검은 그림자가

불쑥 나타나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얼핏 긴장해서 노려보았다.

 

그들은 팔비신옹 문공태와 백의신군 등뢰였다.

그들의 입가에는 여전히 가벼운 비웃음을 풍기고 있었다.

사천경은 주약란을 바라본 후 그들 앞으로 나섰다.

「두 분은 일대 장문인들 이라 나는 당신들의 신의를 믿고 있었소이다.

그러나 서로의 말한바 약속을 어기고 여기에 나타나니 실로 의외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 같은 사실이 만약 세상에 알려진다면 어떻게 무슨 낯으로 얼굴을 들고

세상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겠소?」

 

  그 꾸짖는 목소리는 카랑카랑한 것이 마치 바늘로 그들의 심장을 찌르는 것 같았다.

  문공태는 그래도 마이등풍(馬耳東風)인양 여전히 비웃는 웃음을 넉살좋게 풍기고 있었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좋소.

만일 우리가 그 약속을 고지식하게 지켜서 병신처럼 그곳에 멍청히 서 있었더라면

어떻게 이 거북 잡는 구경을 할 수 있겠소?」

 

  이창란은 노했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쏘아 보더니 크게 소리 했다.

 

「무엇이? 그렇다면 당신들은 약속을 어기고 바로 이 자리에서 이 거북을 빼앗겠다는 말이오?」

 

그러고 보니 문공태의 눈은 거북이 든 구슬함만을 노리고 탐나는 듯

까딱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어차피 그것을 빼앗는 싸움은 조만간에 벌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 아니오?

그렇다면 뭐 뒤로 미를 것 없이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승부를 가리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듣고만 있던 등뢰도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며 음침하게 눈을 굴렸다.

 

「문형 얘기가 옳소. 나도 그 말과 동감이외다.」

 

그들의 말은 교만하고 안하무인격이었다.

주약란은 그들의 태도를 더 지켜보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주약란은 서슴없이 그들을 떠맡고 나섰다.

 

「과연 옳은 말씀이에요.

나도 촌각이 아까운 몸이라 일찌감치 승부를 가리고 바삐 가야 하겠소.

그렇다면 우선 내가 상대하여 드릴 터이니

두 분 중에서 어느 분이 먼저 상대하려는지 나오세요.」

 

그러자 문공태와 등뢰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주약란을 바라볼 뿐이었다.

주약란은 여전히 태연하였다.

그들은 은근히 마음이 조여 왔다.

 이때 등뢰가 앞으로 나서더니 무서운 얼굴로 노려봤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나이 어린 것이 방자하게 입을 함부로 놀리다니!」

 

  그런데도 주약란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비웃음을 풍기며 맞바로 쏘아 보았다.

 

「당신하고 쓸데없는 잡담이나 하면서 보낼 시간이 없어요.

 더욱이 당신 같은 사람에게 내 이름마저 밝힐 수 없지요.」

 

  등뢰도 따지면 일파의 장문이었다.

그것이 주약란이 한마디말로 여지없이 그 체면을 뭉개어 놓았으니

등뢰의 속인들 편할 리가 없었다.

암암리에 기력을 운행하여 단 일격에 처치하리라 마음먹었다.

 

주약란도 양몽환의 상처가 걱정이 되어 마음속은 무척 초조하였다.

어떻게 하던지 화산, 설산 두 파를 일찍이 격파한 후 사천경으로 하여금

양몽환을 치료하도록 하여야 했다.

 

이토록 한 시가 급한 무렵이라 공력을 운행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속전속결(速戰速決)할 마음이었다.

한편, 주공량과 천중사추는 거북이 든 함을 안고 있는 사천경을 호위하고

든든하게 방비하고 있었다.

서로가 빈틈없이 대적할 차비를 차리고 있었다.

문공태는 왼 손에 죽장을, 오른 손에는 금환을 쥐고 기력을 운행하여

사천경의 일거일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삼수나찰 팽수위도 숨어있던 숲 속에서 서서히 걸어 나오면서

왼손에 음린뇌화전을 들고 오른 손에는 칠보추혼사를 쥔 채 주시하고 있었다.

또한 이창란과 최문기 그리고 소천의도 기력을 운행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계곡 안에는 살기가 충만하였다.

그때 등뢰가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소리는 계속 커지면서 우렁차게 계곡 안을 울렸다.

그러고 보니 그 웃음소리는 보통 웃음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그와 때를 같이해서 계곡 입구 쪽에서 긴 외침 소리가 들려 왔다.

날카로운 등뢰의 웃음소리에 호응하는 것 같았다.

그 외침 소리는 먼 곳에서부터 점점 가까워지더니

순식간에 그들이 서있는 곳으로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주약란은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등뢰의 사제 백의인(白衣人)들이었다.

두 백의인이 그들이 서있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서서히 주약란에게 다가갔다.

그제야 무슨 신호 같기도 하고 요술 같기도 한 등뢰의 웃음소리가 일시에 끊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팽수위가 참다못해 앞으로 나서면서 크게 꾸짖었다.

 

「비겁한 것들‥‥‥‥

당신들은 일대 일로 싸우기가 겁나서 사람들을 모아다가

그걸 의지해서 이기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시다면 나의 칠보추혼사가 얌전히 있지 않을 거요?」

 

  그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이었다.

 

두 백의인이 허리를 굽혔는가 했는데 곧 땅을 박차면서 제비처럼 허공을 뛰더니

주약란의 좌우에서 동시에 협공을 해왔다.

주약란은 두 사람이 함께 덮쳐오자 곱다란 눈썹을 치켰다.

그와 동시에 주약란의 몸도 공중에 뛰어 올랐다.

서로 잠시 동안 얽혔구나 하였을 때에는 어느새 주약란의 몸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주약란은 오행미종보법으로 가볍게 몸을 피하였던 것이다.

그와 함께 두 손을 번쩍 들어 일진장풍을 쏘아 보냈다.

두 백의인은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원래가 서로 연합하여 일시에 공격하는 방법에 익숙했다.

그 공격은 교묘하고 날카로워서 웬만한 사람은 후퇴하거나 굴복하거나하게 마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약란은 오행미증보법으로 그들의 협공을 감쪽같이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상상 밖으로 날카로운 일장을 쏘아대면서 공격까지 하여 왔던 것이다.

주약란의 마음이 조급한 때라 그 공격은 날카롭고 매서웠다.

주약란은 한시 바삐 눈앞의 강적들을 처치하고 사천경의 거북으로 양몽환의 생명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맞싸우고 있었으니 그 공격은 매우 거칠었던 것이었다.

비록 그녀의 손바람은 아무 기척 없이 허공을 뚫고 치밀어 왔으나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내공진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단지 부드러운 힘으로 내려친 것이라 눈치도 채기 어려운 수법이었다.

그러나 일단 적에게 적중하면 손바닥의 내경 (內經)을 풀어 버리므로 그 장풍을 맞기만 하면

반드시 상하고 마는 무서운 장풍인 것이었다.

두 백의인은 일장을 얻어맞자 바로 계속해서 내경의 공력이 한줄기 뒤따르는 것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들은 황망하게 손을 들어서 한편으로는 공력을 운행하여 항거하고 한편으로는 힘을 합해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러자 주약란은 다시 한 번 일장을 후려쳐 보냈다.

그들은 죽을힘을 다하여 내력을 뿜어내면서 다시 항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때 주약란의 몸은 기수를 돌려 등뢰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한편에서 관전하던 무술계의 고수들은 모두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백의인의 억센 공격을 무슨 수법으로 가볍게 피하고

어느새 장풍을 후려쳤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중에서 더욱 당황하고 놀란 사람은 물론 등뢰 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의 몸은 삽시간에 굳어지고 거만하던 태도는 일시에 긴장과 두려움으로 변하고 말았다.

자기의 두 사제가 너무도 어이없게 주약란의 일격을 얻어맞자 모험할 생각은 없었다.

주약란이 덮쳐들자 재빨리 몸을 피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은근히 오른 손에 모아 두었던 공력을 집중하여 주약란의 발이

미처 땅에 닿기도 전에 손을 휘둘러서 강력하게 내려쳤다.  

따라서 한줄기 벽공잠력(壁空潛力)은 주약란에게 노도와 같이 몰려왔다.

주약란은 가볍게 몸을 돌려 피하는 그 순간에 오히려 등뢰의 장력을 자기 앞으로 끌어들이는

듯싶더니 느닷없이 그 장풍을 되받아 옆에 서있던 팔비신옹 문공태에게 날려 보내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그녀의 도음접양(導陰接陽)의 수법은 수많은 무학 중에서도 가장 깊은 절기였다.

즉 상대방의 내공진력을 거꾸로 이용하여 딴사람을 치는 방법이었던 것 이다.

그렇지만 이 법을 운용하는 사람도 역시 소홀하게 그 기력을 다루다가는 크게 다치는 수가

있는 위험한 수법이기도 하였다.

느닷없이 장풍의 날벼락을 맞은 문공태도 깜짝 놀랐다.

주약란의 날카로운 수법에 허공을 가르며 뒤덮어 오는 한 줄기의 장풍은 삽시간에

문공태의 내장을 뒤흔들 것만 같았다.

문공태도 무예계의 고수로서 무예계에는 경험이 많았다.

따라서 여러 고수들과 수차 어울린 바도 있어서 대개는 각 문파의무공의 비결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렇건만 주약란의 이와 같은 기묘한 수법만은 자기로서도 생전에 보지 못한 것이었다.

도시 적의 장력(掌力)을 맞받아 다른 적을 친다는 것부터 상상 밖의 일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눈 깜짝할 사이에 부닥친 일이라 미처 어떻게 대항해 볼 도리도 없었다.

우선 급한 대로 두 팔을 펼치면서 땅을 차며 몸을 공중으로 뛰었다.

간신히 몸을 피하자 억센 장풍은 발밑을 쏜살같이 지나갖다.

그러자 그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최문기가 빈정거렸다.

 

「문형! 그 날쌘 경신법이 아니었던들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핫하‥‥‥」

 

  팔비신옹 문공태는 허공에 몸을 띄운 채 자기를 놀리는 말을 듣고는 무척 분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는 화를 내지는 않았다.

공중에서 가볍게 한바퀴 몸을 돌리고는 약 일장밖에 사뿐히 내려섰다.

그제야 최문기를 노려보면서 차디찬 웃음이 담긴 말로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최형! 쓸데없는 소리 함부로 지껄이지 마시오.

언젠가 한번 우리가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울 때에

진심으로 후회하도록 만들어 줄 테니까 말입니다.」

 

「핫하‥‥‥ 그 말 한마디 내 마음에 듭니다.」

 

하는 그때, 바로 옆에서 난데없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서로 빈정대던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뒤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뜻밖에도 두 백의인이 얼빠진 사람들처럼 휘청대더니

무릎을 끊고 쓰러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마에는 굵은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져 몸을 뒤틀고 있었다.

그는 문공태와 입씨름을 하다보니 주약란이 어떻게 무슨 수로서 그 두 사람을 쓰러뜨렸는지

보지 못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다시 주약란을 찾았을 때는 등뢰와 생사의 갈림길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때 그곳에 있는 무예제의 고수들도 한결같이 숨을 죽이고 그들이 싸우는

절기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만큼 주약란의 무술은 신출귀몰 하였고 싸움은 처절하였다.

싸우는 사람들이나 보고 있는 사람들이나 한 곳에만 정신을 팔고 있을 때였다.

 

「우왁!」

 

느닷없이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은 괴성이 계곡을 울렸다.

그 소리는 어찌나 우람하고 엄청난지 모든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고

주약란도 급히 손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주약란이 미처 고개도 돌리기 전에 처참한 비명 소리가 들리면서

사람들이 쓰러져 가는 것이었다.

주약란이 급히 돌아봤을 때는 천중사추, 주공량, 사천경들이 차례로 쓰러져 가고 있었다.

주약란은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분별할 수조차 없었다.

 

마침 그 찰나였다!

 

희끄무레한 그림자가 사천경의 앞을 훌쩍 스치더니 허공을 날지 않는가!

얼핏 바라보니 그 사람은 어느새 만년 묵은 거북이 들어있는 함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이창란, 문공태, 등뢰들의 적의는 삽시간에 그 희끄무레한

그림자에게로 향하고 서로 약속이나 한 듯이 한 덩어리가 되어 추격했다.

주약란은 그 짧은 순간 한 눈으로 이상한 그림자의 무공의 깊이를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멍청하게 바라볼 수만도 없었다.

지금 빼앗긴 거북이 없으면 양몽환을 구할 도리는 없는 것이었다.

급기야 주약란도 한마디기합소리를 터뜨리면서 유성간월(流星干月)의 수법을 써서

몸을 공중으로 치솟아 괴인의 앞을 가로 막았다.

동시에 숨쉴 틈도 없이 두 팔을 휘둘러 연달아 날카로운 장풍을 몰아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인은 꼼짝 달싹도 하지 않고 여유만만해서 가볍게 피할 뿐이었다.

주약란은 새삼스럽게 괴인의 무공이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심오하고

지고(至高)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주약란은 재차 내달으며 두 손을 휘둘러 공격을 가했다.

그러자 그 괴인은 여전히 꼼짝하지 않고 단지 넓은 소매를 두어 번 펄럭이니

오히려 주약란의 내친 장력이 반대로 자기를 향해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어떻게 갑자기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자기가 내던진 장력은 그 기세가 배나 되어서 노도와 같이 몰아쳐 오고 있었다.

주약란은 별 수 없이 단전의 진기를 발산하고는 두 팔을 펼쳐 앞으로 내달리는

몸을 가까스로 멈추면서 그 장풍을 막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또 어찌된 영문인지 그토록 기세가 사납게 자기 앞으로 몰아쳐 오던

장풍이 뜻밖에도 되돌아가고 말지 않는가.

주약란은 마치 귀신에 흘린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 괴인은 내공의 수양을 연마했던지 하여튼 장력을 자기 뜻대로 들 수 있는 모양이 있다.

이와 같이 주약란이 괴인의 앞을 가로막고 싸우다 보니

괴인의 발걸음도 늦어지고 하여 이창란과 문공태가 금시에 뒤쫓아 올 수 있었다.

문공태는 번개 같이 손을 빼 들더니 십 수개의 금환을 연달아 괴인의 등 뒤를 노리고 처 갈겼다.

그와 때를 같이하여 이창란의 지팡이가 복지추풍(伏地追風)의 수법으로 괴인의 아랫도리를

후려 갈겼다.

그들 두 사람들도 무예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고수들이었다.

그 두 사람이 함께 암기(暗器)와 절기로 세찬 공격을 가했건만 괴인은

그다지 놀라는 기색이라고는 없었다.

그 괴인은 단지 몇 발자국 훌쩍 날아 뒤돌아서더니

이창란의 일격을 대수롭지 않게 피한 후에 그 넓은 소매를 또 펄럭일 따름이었다.

그러자 또다시 그 넓은 소매에서 억센 바람이 쏟아져 나와서는 화살같이 날아오는

열 서너 개의 금환을 모조리 떨어뜨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창란이나 문공태는 자기들의 일격이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실패로 돌아가자

얼굴이 핼쑥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괴인의 몸은 무척 커 보였다.

얼굴에는 여러 가지의 요란한 색깔이 칠해져 있고 긴 머리카락은 바람에 펄럭거리며

두 눈은 호랑이 눈처럼 번쩍거려 사람을 위압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 괴인은 거북이 들어 있는 구슬함을 한 옆에 낀 채 담담하게 웃더니

서서히 오른 팔을 쳐들었다.

이창란은 대갈 일성하면서 상대방의 오른 손이 미처 내리기 전에 왼손을 휘둘러

괴인의 앞가슴을 후려치면서 오른 팔로는 지팡이를 휘둘렀다.

괴인은 쳐들었던 오른 손을 전광석화처럼 번쩍 휘두르더니

이창란이 앞가슴을 내려치던 왼 쪽 손목을 어느 새 휘어잡고 있었다.

해천일수 이창란은 왼 쪽 손목이 갑작스럽게 저려 옴을 느끼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놈의 수법인데 이렇게도 빠르단 말인가? 정말 희한한 일이군!)

 

  그 순간에도 팔은 떨어질듯이 아프고 저려왔다.

앞뒤를 가릴 여유도 없이 온 공력을 집중하여 몸부림치면서 힘껏 팔을 뽑았다.

  그러자 거구의 괴인은 그가 팔을 빼려는 자세를 이용하였다.

눈 깜짝할 틈도 주지 않고 몸을 허공으로 날리면서 이창란의 팔목을 잡아 휘두르자

그 몸은 공중에서 한바퀴 버둥거리면서 문공태의 어깨위로 덮치며 떨어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 괴인은 교묘하게도 이창란의 내공을 헛되지 않게 역이용 하였던 것이었다.

 마침, 그때 문공태도 기력을 운행 집중하여 괴인에게 공격하려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에 이창란이 부딪쳐오니 얼핏 생각되는 바가 있어 몸을 피하면서 오히려

이창란의 명문혈(命門穴)을 후려치고 말았다.

이창란은 뜻밖에 공격을 받게 되자 단전에 진력을 다해 재빨리 집중해서 몸을 돌렸다.

여하튼 문공태의 일격을 피할 수 없을 바에야 명문혈 같은 요혈은피하고

그 대신 어깨를 내밀어 받아 막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비록 괴인에게 손목을 잡혀 내던져지는 순간이었을망정 정신은 말짱했다.

문공태가 자기의 명문혈을 노리고 일장을 후려친 속셈도 능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가까스로 명문혈을 피하고 어깨로 받아내자 몸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문공태는 재차 공격하려던 손을 갑자기 멈추면서 사뭇 미안한척 웃음을 띠우더니

능청스럽게 말을 던졌다.

 

「기분 나쁘게 생각 마시오. 부득이 해서 한 노릇이니‥‥‥‥

이형! 그보다 빨리 저 거북을 뺏은 사람부터 추격하시오!」

 

하더니 문공태는 허공을 날아 공중에서 한 바퀴 돌고는 번개같이 괴인에게 덮쳐들었다.

 

그것은 문공태의 약은 수였다.

그가 이창란의 명문혈을 노려서 일장을 후려쳤지만 그것이 실패하자

다시 또 일장을 가한들 그 즉시 죽일 수 없음을 알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기의 속셈을 숨기고 그대로 거북을 및은 괴인과 싸우는 것이

유리할 것만 같았다.

 

이창란이 몸을 돌려 쳐다보니 주약란과 괴인은 맹렬히 싸우고 있었다.

괴인은 원 손으로 구슬함을 안고 단 한 손으로 주약란의 공세를 막고 있었다.

두 사람이 십 수나 겨루었을 때부터는 주약란의 수법은 더욱 매서워져 갔다.

어느새 열 가지의 판이한 수법으로 그 눈부신 절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변화무쌍한 것이었다.

주약란은 어떻게 하든지 양몽환을 살려야겠다는 일념으로 온갖 절기를 다하여 기기묘묘하게

운신하고 공격하였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괴인을 한 번도 압도할 수가 없었다.

괴인은 단지 한 손으로만 대응하였는데 주약란이 제아무리 천변만화(千變萬化)한 수법을

쓸지라도 꼭 거기에 알맞게끔 막아내는 것이 여간 신기롭지가 않았다.

문공태도 그만 울화를 터뜨리며 청죽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청죽장은 바람을 일으키고 벼락같이 번쩍거리면서 단 한 수에 요절낼 것 같이 괴인에게 덮쳐왔다. 괴인도 그 청죽장에는 당황한 모양이었다.

여태껏 주약란과 싸울 때에는 시종 공격을 가하지 않고 막고만 있다가 청죽장을 휘두르며

문공태가 달려들자 느닷없이 주약란에게 연달아 세 수를 퍼부으면서 공격하고 말았다.

그 세 수는 마치 한 번에 내리친 듯 했다.

그나마 삼면에서 쳐들어왔으니 주약란도 하는 수 없이 재빨리 뛰어 물러났다.

눈 깜짝 할 그 틈을 노려서 문공태의 청죽장은 괴인의 머리 위에까지 다다랐다.

그렇건만 괴인은 싸늘하게 웃을 뿐 눈 하나 깜짝거리지 않았다.

청죽장은 바람을 가르면서 괴인의 머리통을 부술 것만 같았다.

그래도 괴인은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면서 단지 손을 번쩍 쳐들 뿐이었다.

그때 불이 번쩍 튕기는가 싶었다.

그러자 어느새 문공태의 몸은 땅바닥에 곤두서고 청죽장은 괴인의 손 안에 들려 있는 것이었다.

모두들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그래,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문공태도 역시 무예제의 일인자라고 자부하는 일파의 장문이었다.

 

그런 무예가의 공력을 다한 청죽장 공격을 한 손으로 막아낼 뿐더러 문공태의 몸을

여지없이 떨쳐 버렸으니 모두들 보고 있던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것도 당연한 이치였다.

 

그 순간,

주약란의 머리 속에는 어떤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갔다.

분명히 그토록 놀라운 수법을 쓸 수 있는 무예가라고는 자기 스승밖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주약란은 놀래서 황급하게 소리쳤다.

 

「스승님! 스승님이죠? 그렇죠?」

 

  주약란은 스승님을 부르면서 무작정 앞으로 달려 나갔다.

괴인도 그제야 껄껄 웃으며 주약란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알아보는구나, 핫하! 너의 무술을 은연중 시험하여 보았더니 과연 크게 늘었더군.

방금 나에게 공격한 몇 수는 정말 멋있었어. 핫하‥‥‥

막상 이렇게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야 어찌 말하랴.

지금 긴요한 일이 있으니 그럼 후일 다시 만나자. 잘 있어라.」

 

  미처 어떻게 주약란이 말해 볼 틈도 주지 않고 몸을 날려 질풍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넋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마음은 허전하였고 눈물은 두 뺨을 적시었다.

주약란은 넋두리처럼 중얼거렸다.

 

「스승님‥‥‥ 스승님‥‥‥」

 

  그러나 이미 스승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공허한 웃음소리만이 주약란의

그 허전한 마음을 달래 주려는 듯이 허무하게 메아리치고 있을 뿐이었다.

 

  주약란은 만사를 제치고라도 스승의 뒤를 따르고 싶었다.

그러나 스승의 경신술은 자기의 재주로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처지라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상심한 주약란의 두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만 흐를 뿐이었다.

주약란은 결국 거북을 잃고 스승마저 잃고 말았다.

온갖 모욕을 참아 가면서 사천경의 명령을 들어야 했던 것도

오직 양몽환을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론 거북을 잡는 일에 참가한 것인데

그 거북을 뺏어가는 사람이 또 바로 자기를 길러준 사부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생각할수록 야릇한 운명이라고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나간 날의 일들이 그림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스승님은 주약란을 마치 친딸 이상으로 귀여워하였다.

그녀가 요구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거절하지 않고 응해 주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부녀간의 참사랑 같기도 하면서 때로는 엄한 스승과 제자이기도 하였고

또 한편은 주인과 종의 사이처럼 스승은 주약란에게 충실하였던 것이었다.

과거에는 그렇듯 자기만을 위해 주고 자기의 말에 순종만 하던 스승이었지만

양몽환을 구해야 할 이 안타깝고 중요한 일은 돌봐주지 않으니

답답하고 원망스러운 마음은 야속하게 까지 생각되었다.

생각할수록 앞이 캄캄하고 무거워지는 마음은 달랠 길이 없었다.

스승이 사라진 쪽을 보면서 망연히 눈물만 흘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때 상심하고 있는 주약란의 어깨에 부드러운 손이 감싸면서

조용한말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아가씨, 이제 그만 마음을 진정하시오.

만년 묵은 거북도 이미 없어지고 소저의 스승도 가고 말았으니

이제 이곳에 더 머물러 있은들 무엇 하겠습니까?

밤도 깊었습니다.

이제 찬 밤이슬을 맞으면 오히려 몸만 해칠 뿐이니 돌아갑시다.」

 

  그때서야 주약란도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조용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이창란도 문공태도 모든 사람들은 온데간데없었고 다만 팽수위만 주약란을

지키고 서 있을 뿐이었다.

  계곡은 무척 쓸쓸하고 음산하였다.

 

  주약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비로소 눈물을 닦고 팽수위를 사뭇 고맙게 쳐다보았다.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가면 뭘 하오? 그이는 이미 살릴 수없지 않아요?」

 

「그 만년 묵은 거북이 아니고는 달리 사형의 병을 고칠 방법과 약이 없단 말이에요?」

 

「그래요. 그 약이 아니면 달리 구해볼 수가 없어요.

설사 다시 구할 수 있다.한들 이젠 늦었어요.

오늘 저녁을 이대로 넘긴다면 그는 살아야 앞으로 이틀 이상 더 살지 못할 거예요.」

 

「그렇지만 그 약은 벌써 당신 사부님이 가져 가셨으니 별도리가 없잖아요.

그나마 화산, 설산 두 파가 가버린 후 사천경도 천용방 사람들을 급히 이끌고 되돌아갔으니

그나마 다른 음모를 꾸미고 있을까 그것이 걱정이오.」

 

「설마 그들이 음모를 꾸민대야 다 죽어가는 사형을 해치기야 하겠어요?

더욱이 병을 고쳐주기는 만무 할 거구요.」

 

  두 사람은 서서히 계곡을 떠나 산령을 넘어 양몽환과 하림이 있는 동굴로 돌아왔다.

 

  주약란은 깜깜한 굴 앞에 도달하자 팽수위를 뒤돌아보고 말했다.

 

「오늘 저녁 당신의 참다운 협조를 많이 받았어요.

정말 가슴 깊이 감격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도 거북을 잡은 후에는 소저의 옛날아름다운 얼굴로 꼭 회복시켜 드릴 생각이었으나

뜻밖에도 거북은 스승님이 가져 가셨으니 면목이 없습니다.

스승님의 경신술은 워낙 절기에 달했으니 비록 내가 추적한다손 치더라도

도저히 뒤 따를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이 오늘 저녁에 저를 도와주신 은혜는 영원히 잊지 않고

차후 스승님을 뵈옵게 되면 소저의 얼굴을 되찾게 하겠어요.」

  패수위도 담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산중에 이십 년이나 이 꼴로 살다보니

이제 습관이 되어 아무렇지도 않아요.‥‥‥」

 

  한숨을 땅이 꺼질듯 쉰 후에 말을 이었다.

 

「이십년 전만해도 저 자신은 무공의 비법함을 자랑했었죠.

싸울 때마다 악랄한 수법으로 상대자를 쳤으니 삼수나찰이란 별호까지 얻게 되었지 뭡니까?

그러다 사천경에게 얼굴이 이 모양으로 된 후에는 심중에 생각한 바가 있어서

그 깊은 산중에 박혀 이십년 동안이나 무공을 연구하고 있었답니다.

복수를 하기 위해 암기를 만들고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해 은거죠.

그러던 중 오늘 뜻밖에도 저녁에 소저의 무공 절학을 보고 깨달은 바 있습니다.

이 십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두고 연마한 것은 다만 암기에만 성취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음린뇌화전과 칠보추혼사는 무술계 암기로서는 정말 최고로 독한위력을 내는

암기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소저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화산파의 문공태 같은 사람만 만나더라도

아주 쓸 곳 없는 것이 될 것이니 말이죠.

그러므로 저는 제 자신의무공이 망망한 대양에 떨어진 바늘 같은 것에 불과함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소저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주약란은 눈이 둥그레져서 황급히 그 말을 가로 막으며 물었다.

 

「당신이 나에게 무공을 배우고저 하는 것인가요?」

 

  팽수위는 힘없이 머리를 가로 저었다.

 

「아닙니다. 그런 사치스런 욕망은 이제 없습니다.

다만 소저의 옆에서 시중이라도 들었으면 만족하겠습니다.」

 

「지금 나 혼자도 어쩔 줄 모르는 처지에 어떻게 당신까지 거들겠어요?」

 

「저는 소저의 무학을 숭배할 뿐더러 소저의 아량이 깊은 인격을 더욱 존경하고 있어요.

당신은 비록 무공이 절세적이지만 무술계의 경험은 저보다 못해요.

제가 모실 수만 있다면 소저께서는 마음 놓을 수 있을 거예요.

저의 말은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한 말입니다.

거절 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