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24 장 위기! 속에 닥쳐온 위기 <威震天龍>

오늘의 쉼터 2014. 6. 22. 13:37

제 24 장 위기! 속에 닥쳐온 위기 <威震天龍>
 
 


  사실은, 두 사람의 장력이 보통 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주약란은

만일 자기의 공력으로 그것을 상대한다면 상처를 입게 되거나 진기를 많이

소모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이길 자신이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은사로부터 전수 받은

도음접양법(導陰接陽法)으로 손을 들어 두 사람의 장력을 자기의 내공력으로

흡입(吸入)하여 서로 부딪치게 하고는 곧 뒤로 물러섰던 것이다.

철검서생은 노인보다 공력이 한 수 뒤지는데다가 얼결에 전력을사용하지 못하고

수세에만 몰려 일장이나 뒤로 날려갔던 것이다.

한편 맞은편의 세 장정은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주약란이 철검서생과 한패인 줄 알았는데 주약란이 철검선생에게

맹공을 가할 뿐 아니라 또한 장삼의 노인이 주약란을 공격하는 것을 보고는

곧 한패가아님을 짐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철검서생과 노인의 무공이강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주약란의 무공이 강하다 하더라도 두 사람을 당해내 지는 못할 것이라고 믿고

그들은 언제든지 주약란이 당해내지 못할 때에는 달려 나가 도와주자고

신호까지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주약란이 두 사람을 상대로 쉽게 일장을 끝내자

그만 철검서생과 노인이 밀려나는 것을 보고는 눈이 둥그레지고 말았다.

사실 그들은 주약란이 어떤 수법으로 상대방을 격퇴시켰는지 알 수가 없었다.

 

철검서생은 주약란의 도음접양(導陰接陽)법으로 이끈 노인의 일격을 맞고는

일장 밖으로 나가 떨어져 기력이 쇠퇴하여 정신도 못 차린 채 비틀거리고 있었다.

 

그때 지네 갈고리를 든 장정은 철검서생의 상처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자

곧 소리 없이 독을 바른 지네 갈고리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 갈고리는 파란 빛을 발하며 공격해 들어갔지만 철검서생은

아직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장삼의 노인이 놀라고 큰 소리로

 

「이 쥐새끼 같은 놈!」

 

하고 외치면서 곧장 그 장정에게 덮쳐들었다.

 

그때 주약란은 세 장정 앞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다가 노인의 고함 소리를 듣고

그 쪽을 바라보았을 때는 이미 그 장정은 철검서생의 바로 앞에 까지 다가가 있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재빨리 이형환위(移形換位)의 수법을 써서 달려갔다.

장삼의 노인은 비록 일보 먼저 내디디긴 하였으나 주약란의 그 기묘한 신법에 의해

뒤쳐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갈고리를 쥔 장정은 그 보다도 더욱 빨랐다.

쇠갈고리는 파란 빛을 발하며 바로 철검서생의 허리를 노리고 내리쳐 졌다.

 

그때였다.

 

갑자기 한 줄기의 녹색 불꽃이 번개같이 날아들었다.

쇠갈고리를 쓰던 장정은 모든 정신을 철검서생 한 사람에게만 쏟고 있었기 때문에

녹색 불꽃이 자기 몸에 부딪치려는 순간에야 겨우 알아차리고 쇠갈고리로

그것을 쳐부수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 불꽃은 바로 그의 오른쪽 어깨에 적중하고 말았다.

그러자 가벼운 폭음과 함께 불꽃은 곧 화염으로 변하여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그때 내려쳐오던 쇠갈고리가 멈칫해졌다.

 

달려온 주약란이 탄지신통(彈指神通)의 수법을 발휘하여 지풍으로 쇠갈고리를 떨어뜨리자

곧이어 노인이 달려가서 철검서생을 안고 여덟 자 가량이나 물러나는 것이었다.

이때 쇠갈고리의 장정은 상반신이 녹색 화염에 싸여 의복이며 두건 할 것 없이

불이 붙기 시작하자 그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뒹굴었다.

 

그는 땅에 뒹굴면서 몸에 붙은 불을 끄고자 했으나 이 녹색 염은 보통 불꽃과는 달라

땅 위에 구를 때엔 꺼졌다가도 바람이 불면 다시 불이 붙어 번져가는 것이었다.

잠시 후 처절한 비명 소리가조용한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주약란과 노인도 그 불꽃의 기세에 크게 놀랐다.

같이 온 두 장정은 멍하니 서 있다가 동료의 비명 소리를 듣고서야

물통을 들고 달려가 물을 끼얹었다.

그때, 갑자기 한쪽 어둠 속에서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으흐흐흐, 나의 이 음린뇌화전은 맞기만 하면 불에 타죽거나 아니면

모래 속에 생매장을 당하고 말지, 흥! 물 속에 담가도 그 불꽃은 꺼지지 않을 걸!」

 

  이때 음린뇌화전에 맞은 장정은 이미 불에 그슬려서 그 모습이 말이 아니었다.

울부짖으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그 단말마의 외침은모든 사람들의 소름을 끼치게 했다.

 

어느 덧 그는 그가 떨어뜨린 쇠갈고리가 있는 곳으로 굴러갔다.

그리고 줄곧 얼굴을 가리고 있던 두 손을 내밀어 한 자루의 지네 쇠갈고리를 잡더니

와락 그의 몸에 대고 끓는 것이었다.

이윽고 선혈이 낭자한 채 간간이 몸을 꿈틀거리고는 그대로 죽어 버렸다.

그러나 녹색의 불꽃은 여전히 그의 몸에서 타고 있었단?

이때 두 동료는 이 처절한 광경을 보자 그만 혼이 빠져 초가집 밖으로 달아나고 말았다.

 

이때 철검서생은 차츰 정신을 차린 듯 뒤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멈칫했다.

그리고 그에게로 다가오는 사람이 너무나 흉측하게생긴 여인임을 보고 깜짝 놀란다.

 

「당신은……」

 

그때 노인은 도망가는 두 장정을 쫓으려 하다가 철검서생이 놀라 부르짖는 바람에

그 자리에 멈추더니 몸을 돌려 철검서생을 보호하듯 옆에 섰다.

 

쇠갈고리에 의한 자살, 두 동료가 달아나 버린 사실, 흉측하게 생긴 여인의 출현,

이 모든 사건은 삽시간에 발생한 일이었다.

그때 추악하게 생긴 그 여인이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리고 나서 말했다.

 

「흥!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있을 줄은 생각 못했을걸!

방금 내가 음린뇌화전으로 당신을 구한 것은 단지 남의 손으로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지.」

 

철검서생이 정신을 차리고 가만히 진기를 운행해 보니

그다지 지장이 없는지라 마음을 놓으며 대답했다.

 

「남의 손에 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럼 손수 나를 죽이겠단 말인가?」

 

주약란은 옆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면서 도대체 이 추물 여인을 도와야할 것인지

아니면 철검서생을 도와야할 것인지 좀 체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양몽환과 하림을 찾기 위해서는

철검서생을 죽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장삼의 노인도 중력을 집중하고 태세를 갖추는 폼이 일촉즉발의 긴장된 순간이었다.

삼수나찰이란 이름의 그 괴여인은 철검서생과 약 석자 가량의 거리를 남겨두고

우뚝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주약란에게 돌리고 냉소를 터뜨렸다.

 

「아니, 너도 이들을 도와 나를 공격하려는 거냐?」

 

  주약란은 쌀쌀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들의 관계에 대하여 나는 조금도 흥미가 없소.

그러나 나도 당신이 그를 해치려고 하는 것을 보고 있을 순 없어요.」

 

  그러나 삼수나찰은 노기를 띠웠다.

 

「흥! 아주 건방진 말씀이신데 ……

그렇다면 나는 꼭 그를 처치해 버려야겠어.」

 

하며 재빨리 오른 손으로 가죽 장갑을 쥐고 왼 손으로는

음린뇌화전을 꺼내 드는데 그 솜씨가 매우 익숙했다.

주약란은 조금 전에 그녀의 음린뇌화전의 위력을 구경하였으므로

아직도 그 암기를 무서워하고 있던 중이었다.

 

「흥! 요망한 계집?」

 

하고 외치면서 와락 달려들어 왼 손으로 장풍을 일으켜 후려치는 동시에

한 걸음 물러서는 삼수나찰을 따라 한 발자국 나서며 오른 손을 전광석화와 같이 날려

상대방의 오른 손목을 움켜쥐고 말았다.

그리고 한 번 살짝 흔들자 삼수나찰은 단번에 전신이 찌르르 하면서

기혈이 역전되어 좀 체로 몸을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주약란의 두 수는 보기에는 그다지 대단할 것 없는 것 같았지만

그 손쓰는 폼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피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 그 특색 이었다.

삼수나찰은 혈맥을 잡히자 기고만장하던 태도가 싹 사라졌다.

그러나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아픔을 지그시 참으며 신음소리 조차 내지 않았다.

주약란이 냉소하며 말했다.

 

「어디 얼마나 참는지, 한 번 봐야지」

 

하며 오른 손을 몇 번 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삼수나찰은 갑자기 땀을 주르르 흘리는 것이었고

그 흉측하게 생긴 얼굴이 더욱 일그러지는 것이었다.

장삼의 노인과 철검서생은 모두 혈맥을 짚는 수법에 있어 정통한자들이었지만

주약란과 같이 괴이한 수법은 처음 보았는지 그만 눈이 둥그레지고 말았다.

 

이와 같은 혈기를 역전시키는 타혈(打穴)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체내 혈맥의 위치를

정확히 판별하는데 있는 것으로서 일단 이와 같은 수법에 걸리고 나면

어떠한 공력의 소지자라도 꼼짝을 할 수 없게 된다.

주약란의 이 수법은 기혈을 역전시켜 심장으로 돌입케 하는데 있어서는

도옥의 세 곳 요혈을 짚는 수법과 같은 것이지만 이것은 금나(擒拏)수법의 하나로서

적의 맥혈을 움켜쥐어 자신의 공력으로 상대방의 기혈을 역전시키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도옥의 수법은상대방의 세 곳 요혈을 일시에 짚어서

세 요혈을 폐쇄하고 기혈을 역전시키는 것으로서 이것은 시간적으로 주약란의 수법보다 늦다.

주약란의 수법은 도옥의 수법보다 우월한 것으로서 자기의 진기로 상대방의 기혈의 맥혈을

촉진시키기 때문에 즉시로 반응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것은 그 자신의 공력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야 되는 것이었다.

  이 기혈의 순환을 역전시키는 수법이야 말로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것으로

삼수나찰이 아니라 무쇠 같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자 삼수나찰은 너무나 심한 아픔 때문에 땀을 뻘뻘 흘리며 ?

애걸하는 눈초리로 주약란을 쳐다보는 것이었다.

 

철검서생과 노인은 서로 한 번 쳐다보고는 두 사람 가까이로 다가 왔다.

이것을 본 주약란은 갑자기 왼 손으로 삼수나찰의 음린뇌화전을 빼앗는 동시에

삼수나찰을 끌어서 자기 앞에다 세우고 손을 놓더니 재빨리 대여섯 자를 물러섰다.

그때 장삼의 노인과 철검서생은 그들의 간지(奸智)가 간파 당하자 걸음을 멈추고 낯을 붉혔다.

그러자 주약란은 냉소를 터뜨렸다.

 

「당신들 세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겁나지 않소.」

 

하고는 철검서생을 똑바로 쳐다보며

 

「나의 사형과 사매는 도대체 어떻게 되었소?

감추어둔 장소를 변경하거나 거짓말을 하면 용서치 않겠어요!」

 

하며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삼수나찰이 가만히 운기하고 몸에 큰 이상이 없음을 알자 몸을 홱 돌이켜

왼쪽으로 날리고는 재빨리 왼손으로 음린뇌화전을 꺼내 들었다.

 

순간,

 

주약란은 문득 자기의 형세가 고립되어 있음을 깨달았다.

삼수나찰과 철검서생 그리고 장삼의 노인이 포위하는 태세를 취한 셈이 되었다.

주약란의 신출귀몰한 재간에 그들 세 사람은 한결같이 두려움을 느끼고

연합하여 그녀를 제거할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먼저 손을 쓰려고 하지는 않았다.

삼수나찰과 철검서생 간의 의심이 해소되지 않았던 때문이었다.

지금의 형세로는 세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 주약란과 싸운다면

이길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녀의 공격을 막을 수는 있다.

그러나 만일 싸우다가 어느 한사람의 마음이 변하게 되면

형세가 역전 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주약란 역시 세 고수를 상대로 하는 만큼 약간 주저치 않을 수 없었다.

한 사람씩 대적한다면 문제가 없겠으나 세 사람이 합세하여 덤벼들면

사실 이길 자신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자기가 실패하는 날엔 양몽환과 하림의 거처를 알 수 없게 되니

경계망동할 수는 더욱 없는 일이었다.

네 사람은 서로 공력을 융합하고 마주볼 뿐 말도 안하고 싸우려고도 안했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흘렀을까.

돌연 초가집 밖에서 웃음소리가 일어나더니 점점 가까워지는 것이었다.

 

철검서생과 장삼 노인은 그 웃음소리를 듣자

그만 얼굴빛이 변하면서 몇 차례나 도망가려는 듯 했다.

그러나 주약란이 그 기회에 공격하여 올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난처한 얼굴로 서 있는 것이었다.

주약란 역시 그 우렁찬 웃음소리를 듣자 공력이 상당한 자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철검서생이 갑자기 자세를 고치고 두 손을 모아 흔들며 주약란에게 고개를 돌렸다.

 

「만일 당신이 지금 저기 오는 사람을 물리쳐 주신다면

당신의 사형과 사매를 내놓을 뿐 아니라 십오 년 동안 지키고 있던 두 보물가운데서

한 가지를 선사하겠습니다.」

 

하고는 주약란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몸을 휙 돌려 소리 나는 곳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자 장삼의 노인도 역시 몸을 돌렸다.

 

이윽고 어둠 속에 자태를 나타낸 사람은 장삼을 입고 흰 수염을 가슴까지 늘어뜨린

청수한 노인이었다.

주약란은 단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강남땅을 유력할 때 몇 번이나 얼굴을 익혀온 바 있는 해천일수(海天一?)

이창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녀는 속으로 철검서생 등이 그토록 무서워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창란의 뒤에는 누런 삼베 저고리를 입고 집신을 신은 네 사나이,

즉 천중사추(川中四醜) 네 형제였다.

이윽고 이창란은 웃음을 멈추고 한 손으로 기다란 수염을 쓰다듬으며

삼수나찰과 철검서생을 둘러보더니

 

「역시 두 분을 먼저 만나게 되었군. 이건 참 어려운 일이요.」

 

하고 웃는 것이었다.

 

  철검서생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이방주께선 일대의 영웅으로 강호의 넓은 땅을 쥐고 있으니

우리형제는 발붙일 곳이 없어 이 와호령에 초가를 짓고

여생을 보낼 수밖에 더 있겠습니까?」

 

했다.

그러자 이창란은 냉소를 터뜨렸다.

 

「원 별 말씀, 사형(史兄)은 너무 겸손만 하시는군.

이곳에 만년 묵은 거북(萬年龜)이 출몰하지 않는다면

아마 대궐을 지어 준대도 이곳에 살지 않을 거요.」

 

하더니 삼수나찰을 보고 하하하 웃으며

 

「혹시 소저는 삼시 년 전에 강호를 종횡하던 삼수나찰 팽수위(彭秀葦) 그대가 아니오?」

 

하고 묻는 것이었다.

 

  삼수나찰이? 냉랭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면 어떻고 그렇다면 어떻다는 거요?」

 

「하……하! 오랫동안 이름만 들어 왔는데

오늘 뜻밖에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을 몰랐구려.」

 

하고는 다시 한바탕 웃고 나서

 

「그 만년 묵은 거북이 아무리 희세의 보물이라 하더라도

그대의 꽃같이 아름답던 옛 모습은 되찾을 수 없을 거요.」

 

  이 말을 들은 삼수나찰 팽수위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녀는 억지로 그것을 참으며 차가운 냉소를 보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이때의 형세는 지극히 복잡하였다.

즉 그들 중의 어떤 한 사람이 손을 쓰면 단 한 수로서 생사를 판가름할 수도 있지만

모두가 상대방이 싸워 지쳐버리기를 기다릴 뿐 먼저 싸우려고 덤벼드는 사람은 없었다.

 

이창란은 삼수나찰의 얼굴이 철검서생에 의해 추물로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고의로 그들을 이간(離間)시켜 두 사람으로 하여금 먼저 싸우게 하려던 것인데

삼수나찰이 그 수에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철검서생이 차가운 웃음을 띠며 삼수나찰 팽수위를 바라본다.

비록 그녀는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지만 결코 자기와 싸울 뜻은

없는 것이라고 단정하자 그는 곧 마음을 놓으며 이창란을 향하여 고개를 들었다.

 

「당당한 천용방의 방주께서 간교한 계략만 쓰려고 하니 정말 볼만하군요.

하지만 그건 모두 헛수고로 그칠 테니 미안하구려.」

 

하며 노려보았다.

 

  그러자 이창란의 뒤에 서 있던 네 장정이 자기들의 방주를 모욕하는 말에 대노하여

일제히 달려 나왔다.

 

철검서생 역시 그들이 중원 녹림도(綠林道)에서 유명한 천중사추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지난 날 이 네 사람은 사천성(四川省)을 기반으로 하여 부근 일대에서 크게 악명을 떨치던

자들로서 한 때 무당, 아미, 청성(靑城)세파에서 그들을 없애버리려고 하였으나

신출귀몰한 그들의 무공에 그만 손을 써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들은 싸우다가 불리하면 언제든지 도망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의 무공 수법 역시 일가견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도리어 세 파의 고수들이

해를 입기까지 하였던 것이다.

한 번은 세 파에서 회합을 갖고 이들을 없애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각 파의 몇 장로까지 정하여 토벌에 나섰으나 두 달 동안을 허탕만 친 끝에

겨우 석 달 만에야 그들을 찾아내어 반나절이나 싸웠지만 역시 천중사추는

상처를 입은 채 포위망을 뚫고 도망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많은 고수들이 상처를 입음으로서 비록 한 때 천중사추의 기를

약간 꺾어 놓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이다.

그 일전이 있은 뒤 천중사추의 행방은 더욱 묘연해져서 종적을 포착할 수가 없을 뿐 아니라

더욱 흉악해져서 악명만을 높였던 것이다.

 

  철검서생은 옛날에 이들과 만나본 일이 있으므로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싸울 태세를 감추고 크게 소리쳤다.

 

「자, 당신들은 모두가 한꺼번에 나서겠소? 아니면 일대 일로 싸우겠소?」

 

  이창란의 뒤에서 달려 나온 그들은 곧 포위태세를 갖추고 있다가

철검서생이 그와 같이 소리치자 제일 왼 쪽의 한 사람이 대꾸했다.

 

「당신 편에서 한 사람이 나오던 열 사람이 나오던 간에,

우리 편은 여기 있는 네 사람 뿐이지.」

 

  철검서생은 남남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소! 그럼 한꺼번에 덤비시오!」

 

  이들 천중사추 네 사람이 한꺼번에 연합하여 싸울 때에는

언제나 사상진(四象陣)이란 진법(陣法)을 썼다.

  한편 이창란은 천중사추의 거동을 주의하지 않고 도리어 주약란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나타날 때부터 줄곧 주약란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비단 절세의 아름다움을 지녔을 뿐 아니라

그 여유 있는 태도는 실로 그 깊이를 알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녀가 철검서생을 돕고자 온 사람 같지도 않고

철검서생에게 복수하러 온 사람 같지도 않을 뿐더러 곧 치열한 싸움이

전개될 판국인데도 여유 만만한 태도로 관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철검서생이 사추(四醜)가 그의 앞에 육박했을 때 갑자기 노인에게

 

「형님! 소제의 무기를 좀 가져다주십시오.

오늘 이런 형세 아래선 도저히 싸움을 피할 수가 없겠습니다.」

 

하며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잠깐 어리둥절하던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초가집 안으로 급히 걸음을 옮겼다.

 

  그 때 갑자기 이창란이

 

「잠깐만……」

 

하고 외쳤다.

그러나 그 노인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대로 몸을 안으로 휙 날렸다.

 

그때 돌연,

 

「돌아오란 말이요!」

 

하며 한 가닥의 맹렬한 장풍이 노인에게 부딪쳐왔다.

그러자 아직 땅에 내려서지도 못한 노인은 허공에서 갑자기

몸을 돌리지 못하고 두 손으로 그 장풍을 맞받았다.

 

순간 그의 몸은 대여섯 걸음이나 물러나 간신히 땅 위에 내려설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쪽 어둠 속에서 오십 세 가량이나 되어 보이는 사람이

흑색 경장에 허리에다 연색 삼재추(軟索三才鎚)를 차고 걸어 나오는데

그것은 바로 천용방의 흑기단주(黑旗壇主)인 개비수 최문기였다.

이윽고 최문기는 입가에 웃음을 띠며

 

「주형을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헤어진 지 벌써 이십 년이 넘는구려.」

 

했다.

 

장삼의 노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난 또 누군가 했더니 당신이었군.

그래, 이십 년 동안 공력이 많이 진전되었소?

그러나 최형 같이 이름 있는 인물이 이렇듯 암수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 그 명예가 크게 손상 될 것이오.」

 

  최문기는 다시 냉소를 터뜨렸다.

 

「주형은 너무 과분한 말씀을 하시는군.

 만일 이 일장이 전력을 다한 것이었더라면

주형의 공력이 아무리 심후하다 하더라도

결코 그것을 감당치 못했을 거요.」

 

  주노인이 노기를 띄우고

 

「흥! 천만의 말씀……」

 

하더니 갑자기 얼굴빛을 부드럽게 고치면서 웃음을 지었다.

 

「오늘 밤엔 아마 치열한 싸움을 피하진 못할 것 같소.

귀 방주께서 이 초려(草廬)에 왕림 하셨으니

우리 형제들도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게 됐군요.

그럼 내가 방안에 들어가서 내 아우의 무기를 들고 나온 뒤

다시 최형의 절기를 구경하겠소이다.」

 

  그러자 최문기가 고개를 쳐들고 웃었다.

 

「음, 말씀은 그럴 듯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건 이 사람이 응낙할 수 없는 일이오.

주형이 꼭 무기가 필요하다면 나의 삼재추(三才鎚)를 빌려 드리리다.」

 

  그러자 주노인은 얼굴에 초조한 빛을 띄우며

 

「흥! 내 평생에 남의 무기를 빌려 싸운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소.

고맙긴 하지만 그런 성의는 받아들일 수 없소.」

 

하고는 최문기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얼굴을 쳐다보았다.

 

  최문기는 껄껄 웃었다.

 

「그렇게 고집만 부리지 말고 내 말이나 들어 보시오.」

 

「노형의 그 보물 같은 지도는 이미 남의 손에 들어갔을 거요.」

 

  그러자 주노인은 갑자기 얼굴빛이 변했다.

 

「뭐라고?」

 

  그러자 최문기는 냉랭한 미소를 띠웠다.

 

「솔직히 말씀드리리다.

주형과 우리 방주님이 얘기하고 계실 때 이미 두 분의 거실을 수색케 했지요.」

 

주노인은 더 이상 말을 듣지도 않고

 

「비겁한 수단을 쓰는군.」

 

하며 휙! 하니 장풍을 일으켜 최문기를 후려치고 말았다.

그러자 최문기는 재빨리 비켜서며 좌우 두 손으로 맞받아 후려 갈겼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곧 저마다의 온갖 공력을 기울여 겨루기 시작했다.

약 십여 합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자

주노인은 지도가 마음에 걸려 더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잠시 후 갑자기 대갈일성과 함께 맹렬한 공격을 가했다.

산이라도 무너뜨릴 것 같은 그 광풍의 위력 앞에 최문기는 감히

맞받을 생각을 버린 듯 왼 쪽으로 다섯 자나 비켰다.

그러자 주노인은 급히 몸을 훌쩍 날려 쏜살 같이 가운데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최문기는 싱긋 웃고는 주노인이 방문에 다다랐을 때에야 비로소 그 뒤를 쫓아갔다.

문이 닫혀 있지 않은 듯 주노인은 곧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아직도 등불이 켜져 있었다.

주노인은 서 쪽으로 달려가 벽에 걸려 있는 한 폭의 송학도 (松鶴圖)를 떼려다가

다시 손을 멈추었다.

그때 뒤를 돌아보니 거기에는 최문기가 이미 방 안에 들어서 있지 않는가?

주노인은 송학도는 건드리지도 않고 곧장 침대 쪽으로 달려가더니

그 위에 걸려 있는 장검과 그 옆에 세워둔 철장(鐵杖)을 들고는

몸을 날려 최문기에게 달려들었다.

최문기는 주노인의 철장이 맹렬한 기세로 다가오는 것을 보자

그의 삼재추로는 방 안에서 싸울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곧 몸을 빼어 방을 나서는 것이었다.

그때 주노인은 바짝 따라 붙어서 손에 든 철장으로 최문기의 허리를 후려쳤다.

그러나 최문기는 재빨리 그것을 피하고는

 

「주형! 오늘 나와 목숨을 걸고 싸워 볼 작정이오?」

 

하고 말을 건네었다.

그러나 주노인은 여전히 철장을 휘둘러 그의 치명요혈만 노리고 공격했다.

그러자 최문기는 허리에 찬 삼재추를 빼어 들지도 않고 맨 손으로 대항하여

순식간에 이 장이나 물러갔다.

 

이때 천중사추는 이미 철검서생을 포위하고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다섯 사람은 한결같이 맨 손으로 맞서고 있었다.

 한편 삼수나찰은 오른 손에 칠보추혼사를 움켜쥐고

왼 손에는 음린뇌화전을 든 채 철검서생과 천중사추의 싸움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은 복잡했다.

주약란 역시 노기를 띄우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나 때때로 주위의 어둠 속을

살펴보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 이창란은 태연히 서있는 것 같았지만 눈초리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으로 보아 매우 초조한 모양이었다.

주노인의 철장은 점점 맹렬해졌다.

그러나 그 반면에 최문기는 계속 수세(守勢)에만 몰리고 있다가 마당 한 가운데에 이르자

더 물러나지 않고 수법을 일변하여 그의 몸을 엄습하는 철장 속을 뚫고 속공을 전개하여

후려치기 시작했다.

 

한번 손이 휘둘러질 때 마다 강렬한 장풍이 일어나는 데는 주노인의 철장도

그 빛을 잃은 듯 했다.

 

마침 천중사추서 사상(四象)법이 크게 위력을 발휘하여 네 사람의 그림자가 맴도는 가운데

여덟 개의 손이 여기 번쩍 저기 번쩍 물샐 틈 없는 공격을 개시하고 있었다.

이들과 맞선 철검서생은 공력으로 따지면 그들 각 사람의 공력보다 한 수가 높지만

사추가 합세한 그 사상진법 앞에서는 맥을 못 추고 십여 합이 지나자

그만 허둥지둥 하기 시작했다.

주노인은 비록 그의 의제(義弟)가 곤경에 빠진 것을 보았지만 최문기의 장풍에 갇힌 듯 하여

몸을 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차츰 초조해지기 시작하자 자연히 철장도 늦추어 졌다.

이 틈을 탄 최문기는 휙! 휙! 하고 맹렬한 장풍을 일으켜 후려치기 시작했다.

고수끼리의 대결에 있어서 정신이 혼미해져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기선(機先)을 빼앗겼다가

그것을 다시 만회하려면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최문기는 비록 적수공권이긴 하지만 손바람으로 이름을 날린 사람인만큼

그 위력은 능히 돌을 깨뜨릴 수 있을 정도였다.

주노인은 비록 무기를 들고 싸웠지만 일단 기선을 제압당하자

뒤로 물러나기에 바쁠 지경이었다.

점점 천중사추의 사상진범이 크게 위력을 발휘하자

철검서생은 세 번이나 위기에 봉착했다가 간신히 그것을 모면했다.

이를 본 주약란과 삼수나찰은 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목전의 형세가 워낙 험악하여 섣불리 달려들었다가는 독수를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

아무도 먼저 손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다시 서로 간에 이십 여함의 공방전이 지나자

철검서생은 천중사추의 맹렬한 공세에 몰려 완전히 궁지에 빠졌다.

그때 삼수나찰이 주약란을 바라보며

 

「저 철검서생이 만일 상하게 되면 우리도 불리해질 걸!」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타이르는 것 같기도 하였다.

 

주약란이 냉소하며 대꾸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가만히 섰죠?」

 

  삼수나찰은 주약란과 함께 움직여 보려던 것이었는데 도리어 냉대만 받고 말았다.

 

그 순간,

 

철검서생이 천중사추의 일장을 얻어맞았다.

그러나 공력이 심후한 그는 어깨를 약간 흔들거릴 뿐 곧 원개의 자세를 되찾는 것이었다.

그때 돌연 삼수나찰이 오른 손을 치켜들었다.

 

「손을 멈추시오!」

 

하고 외쳤다.

 

그러나 천중사추는 들은 척도 않고 여전히 철검서생의 요혈을 노리고 손을 휘둘렀다.

삼수나찰 정수위의 얼굴에는 살기가 가득 떠올라 있었다.

그러나 오른 손의 칠보추혼사를 내던질 수 없는 것은 철검서생이 천중사추와 혼전을

벌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이 독 모래는 백 가지 독물에서 추출(抽出)한 액체에다 담가서 만든 것으로서

사람의 피부에 그것이 닿으면 곧 살이 썩어 들어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고 마는 것이다.

그녀는 철검서생이 자기의 얼굴을 추물로 만든 원한을 갖고자

심산에 이 십년 동안이나 파묻혀있으면서 무공을 연마하는 한편 독모래를 만들고

또 음린뇌화전이라는 암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십년이란 긴 세월의 온갖 고통을 참아가며 만들어낸 그 두 가지 암기를 가지고

다시 강호에 나온 그녀는 곧 철검서생의 종적을 탐색하였으나

그는 이미 십 오년 전에 자취를 감추어 그의 행방을 알아낼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방방곡곡을 헤매어 삼년 만에 혹시 천용방에 가입해 있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천용방 총당(總堂)에 숨어들었다가 문득 이창란이 하는 말을 엿듣고 그가

 이 아미산 와호령에 은거하며 두 가지의 보물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두 가지 보물은 만년 묵은 거북(龜)과 쇠와 옥을 자를 수 있는 한 자루의 보검이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곧 와호령으로 달려온 삼수나찰은 과연 철검서생 사천경과 그의 의형인

남천일붕(南天一鵬) 주공량(周孔亮) 두 사람이 초가를 짓고 살고 있음을 발견하기엔 이른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매우 조심스럽게 약 보름동안 그들을 살펴 본 결과 그들의 재간이 놀라울 정도로

진전돼 있음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자기 종적이 발각되지 않도록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너무 조심한 나머지 그녀는 종적을 발각 당하지 않은 대신 아무 것도

탐지해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년전 팽수위는 색마(色魔) 사천경의 독수(毒手)와 암기(暗器)에 맞아 정신을 잃고 강간까지

당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입은 암기로 얼굴이 추하게 되고 무공마저 잃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복수의 기회만 노리고 지금까지 피나는 고생과 한 많은 세월을 보내는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비 오는 날 팽수위는 사천경이 기거하는 방 창문까지 다가가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다.

 

「우리들이 이곳을 지킨 지도 벌써 십 오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려!」

 

  그러자 주공량이 탄식하며 그에 대꾸했다.

 

「이십 년을 지켜서라도 그 거북만 잡는다면 이 형은 만족하겠네.」

 

  그 말에 다시 철검서생이 말했다.

 

「이 아우가?지금까지 조사 연구한 바에 의하면 지도에 그려진 노선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걱정은 만일 이 소식이 강호에 퍼지게 되면 큰 소동이 일어날까

그것이 두렵군요.」

 

  주공량이 음성을 낮추어

 

「동생 과연 그 거북이 자네가 말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을까?」

 

하고 근심스럽게 묻자 철검서생은 웃음을 터뜨리며

 

「형님은 마음을 푹 놓으십시오.

그 거북만 잡으면 십년 안에 우리들은 무예계를 손아귀에 쥘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는 갑자기 음성이 낮아졌다

 

  창 밖에 서 있던 삼수나찰은 비록 예민한 귀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천둥이 이따금 치는 바람에 그 다음 말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귀를 바짝 창가에 대고 단속적(斷續的)인 철검서생의 몇 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날, 일시의 울분으로 팽수위의 얼굴을 못 쓰게 했는데 ……

아직도 잊을 수가 없군요. 거북만 잡게 되면 그녀의 용모도 회복시킬 수 있을 텐데,

지금도 살아있는지 어떤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그 말을 들은 삼수나찰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그가 아직도 나를 생각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곧 그녀는 눈물을 닦았다.

이십 년에 걸친 심산에서의 그 고통스럽던 생활이 뇌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금 원한이 복받쳐 올라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 소리는 아무리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밤이었지만 방 안의 두 사간의 귀에 들리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몸을 벌떡 일으켜 창문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삼수나찰은 급히 몸을 뒤로 날려 일장 가량 밖으로 떨어져서는 뒷산 바위틈에 몸을 숨겼다.

그녀가 막 몸을 숨기자마자 그들 두 사람은 지붕 위에 자태를 나타냈다.

그리고 비를 무릅쓰고 부근을 수색하고는 다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삼수나찰은 두 사람이 그것으로 수색을 끝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곧 비를 맞으며 십여 리 밖으로 물러났던 것이다.

 

그녀는 이번의 정탐으로 비록 그들의 비밀의 전부를 탐지할 수는 없었지만

철검서생과 남천일붕이 두 가지의 보물을 지키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히 알아내게 된 셈이다.

그리고 만 년 묵은 거북으로 자기의 용모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데 크게 마음이 움직였다.

 

삼수나찰은 자신이 그러한 별명을 들을 만큼 그 수단이 악랄한 한편 또한 마음씨도

 여간 음흉하지 않았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해 본 끝에 그들 두 사람의 힘을 빌려 그 보물을 얻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녀는 사흘 동안 그 초가집 부근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나흘 째 되는 날 밤 삼경에야 다시 그 초가집을 찾아와 큰 소나무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 동안 먹을 건량과 물은 미리 준비하여 지니고 있었다. 그녀는 남천일붕과 철검서생의 거동을 샅샅이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매일 저녁 이경쯤엔 그들 둘이 번갈아 부근 일대를 오랫동안 수색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마 그 전날 폭우가 쏟아지던 밤의 인기척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듯 이러한 거동을 바라보며 삼수나찰은 무성한 잎사귀 사이에 몸을 숨기고 비웃기만 하였다.

 

그녀가 숨은 지 삼일 째 되는 날 정오, 갑자기 남천일붕이 외출하더니 사흘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 대신 그가 떠난 나흘 째 되는 날 주약란이 하림과 양몽환을 데리고 나타났으며 이어 남천일붕 주공량도 돌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날 저녁에 천용방의 방주 이창란이 부하를 이끌고 나타나자 고요하던 와호령에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삼수나찰은 비록 철검서생을 증오하긴 했지만 지금의 형세로는 그를 도와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만일 철검서생이 천중사추의 손에 죽게 된다면 거북을 찾아 예전 용모를 회복하려던

그녀의 꿈도 수포로 돌아가게 되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방은 수가 많은 만큼 철검서생이

상하던가, 사로잡힌다면 자기 역시 불리할 것은 뻔한 일이다.

따라서 그녀는 나서기로 결심하고 크게 소리를 질렀으나 천중사추는 조금도

그 공세를 늦추지 않는 것이었다.

 

철검서생을 상하게 할까 염려하여 독모래를 던지지 못한 삼수나찰은 이창란에게

 

「만일 당신의 부하들로 하여금 손을 멈추게 하지 않는다면

나의 이 음린뇌화전과 칠보추혼사의 맛을 보여 줄 작정이오.」

 

하고 위협하였다.

 

  그러나 이창란은 이미 그녀의 손에 악독한 암기가 들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신출귀몰하는 자기의 재간을 믿고 냉소만 할 뿐 삼수나찰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삼수나찰 평수위는 크게 노하여 손을 번쩍 들어 녹색 불꽃과 함께 음린뇌화전을 던졌다.

그때 이창란은 용두 지팡이(龍頭杖)를 들어 후려치려고 하다가 갑자기 녹색 불꽃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는 짐작되는 바가 있어 재빨리 그것을 피했다.

그러자 음린뇌화전은 이창란을 스치고 지나가 초가집 관 쪽 지붕위에 퍽 하고

폭음을 일으키며 꽂혔다.

그러자 녹색 불꽃은 단번에 화염으로 변하여 불이 붙었다.

초가지붕은 삽시간에 화염이 충천하여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것이었다.

이것을 본 이창란은 그 놀라운 위력에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만일 지팡이로 후려쳤더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칠보추혼사는 그 보다도 더욱 무서운 위력을 가졌을 테니

차라리 이런 악독한 암기로 사람을 해칠 팽수위를 없애버리자고 결심했다.

그는 곧 암암리에 공력을 집중시켜 일격으로 치명타(致命打)를 가하려고 태세를 갖추면서도

겉으로는 아무 내색도 않고 있었다.

 

삼수나찰 팽수위는 오른 손에 칠보추혼사를 움켜쥔 것을 들어 보이며 냉랭하게 외쳤다.

 

「다시 한 번 나의 칠보추혼사의 맛을 보고 싶소?」

 

  그녀의 이와 같은 기세를 보고 경솔하게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한 이창란은

잠깐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기의 강력(?力)으로 후려쳤다가 팽수위가

독모래를 뿌리게 된다면 그의 강력에 의해 일어난 바람이 필경 독모래를 사방으로

흩어지게 할 것이며 따라서 부근에서 싸우는 천중사추와 최문기에게도 날아갈 것을 염려한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방임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며 주저하고 있을 때 철검서생이 다시 천중사추에게

일장을 맞는 것이었다.

그 일장은 상당히 타격이 켰던 모양으로 잠시 동안 다리를 절룩거렸다.

 

주약란은 철검서생이 천중사추의 속공에 기진맥진하여 다시 일격만 맞으면 당장에 상처를 입고

쓰러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만일 철검서생이 쓰러지고 나면 목전의 균형지세가 깨어져 일변도(一邊倒)의 형세가

되리라는 것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몇 번이고 생각해 본 뒤에 갑자기

 

「흥! 설령 네 사람이 한 사람을 이긴다 하더라도 그것은 명예롭지 못한 짓이야……」

 

하고 외치며 몸을 날려 천중사추의 사상진 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그녀는 이미 천중사추의 진을 격파할 계산이 서 있었던 듯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두 손을 일시에 내밀면서 왼 손으로 내공력을 이용하여 한 사람을 재빨리 이끌어

오는 동시에 오른 손으론 다른 한 사람이 공격해 오는 장풍을 막았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몸을 껑충 솟구쳐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그러자 양쪽에서 공격해 오던 두 사람은 그만 공격의 손을 걷잡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맞부딪쳤다.

한 사람의 공력은 도리어 주약란이 이끄는 힘에 가세를 입어 그 힘이 강해지는 대신

다른 한 사람은 주약란이 내공력으로 막는 바람에 힘이 약화되어 곧 승부는 판가름이 났다.

 

으음! 하는 신음 소리와 함께 천중사추의 둘째 백무상(白無常) 진응(陳應)이 주약란이 이끄는

 인력에 힘입은 셋째 유혼(游魂) 마기(馬起)의 일격을 맞고는 비틀거리며 여섯 걸음이나 물러났다. 사태가 이쯤 되자 그 공수(攻守)에 일정한 법칙이 있는 사상진법은

그만 그 기능을 잃고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철검서생이 대갈일성 하더니 천중사추의 첫째인 흑령관(黑靈官) 장흠(張欽)의 가슴을

무찔렀다. 그러자 장흠은 단번에 일곱 걸음이나 물러서더니 그만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 철검서생은 다시 다리와 팔을 한꺼번에 구사하여 이번엔 넷째 악백(惡魄) 주방(周邦)을 쳐서 넉자 밖으로 나가떨어지게 했다.

  그때 주약란은 천중사추의 사상진을 혼란에 빠뜨리게 하고는 더 이상 손을 쓰지 않고 몸을 훌쩍 날려 삼수나찰의 뒤에 서 있었다.

  해천일수 이창란은 암암리에 공력을 집중하고 있다가 주약란이 사상진법에 혼란을 일으키는

솜씨를 보았다.

그리고 철검서생에게 맞은 천중사추가 주춤한 후 다시 공격 태세를 취하는 것을 보자

나직하게 말했다.

 

「그만 돌아와!」

 

  그러자 천중사추는 마치 천자(天子)의 칙유(勅諭)나 받은 듯 곧 후퇴하여 나란히

이창란의 뒤로 가 서는 것이었다.

 

  주공량과 싸우던 최문기도 그 소리를 듣자 곧 손을 멈추고 이창란의 옆으로 달려왔다.

 

「방주님, 무슨 분부이신지……」

 

하고 얼굴을 살핀다.

 

  이창란은 약간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아가씨는 비록 단 두 수를 썼지만 이 늙은이로 하여금 크게 감탄케 하였소.

실례지만 아가씨의 스승은 뉘시오?」

 

  그 말을 듣자 주약란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몇 년 동안 남장을 하고 돌아다녀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는데

오늘 저녁에는 연거푸 탄로만 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자신의 복장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이창란이 껄껄 웃었다.

 

「이 늙은이는 아직 두 눈이 밝다는 것만은 자신할 수 있소.

아가씨의 행동에는 실로 장부 같은 기개가 있어 세심히 살피지 않으면 모를 것이오.」

 

  이쯤 된 바엔 더 부인할 수도 없는 주약란이었다.

그녀는 곧 코웃음을 치며 노기 띤 음성으로

 

「흥! 남복을 했으니 어쨌다는 거예요?」

 

하며 결국 소녀의 습성을 탈피치 못한 그녀는 창피한 듯 화를 냈다.

 

이창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여자가 남복을 하는 것은 무예계에선 흔히 있는 일이지. 하하하!

내 딸년도 얼마 전까진 남복을 하고 나다니길 좋아했지.」

 

  주약란은 속으로 저 늙은이가 말로서 한몫 보려 한다고 욕하며

곧 달려들고 싶었지만 문득 양몽환과 하림의 안전을 위해서는

자기의 진기를 소모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억지로 꾹 참았다.

그리고는 하늘을 쳐다보며 이창란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때 마당에 서 있던 여러 사람들은 모두 손을 멈추고 있었다.

다만 소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 초가집이 불타는 소리와 연기만이 자욱할 뿐이었다.

주약란의 태도가 적(敵)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없어 철검서생과 천용방 등은 한결같이

먼저 손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쌍방이 서로 대치(對峙)한 채 마주 쳐다보고만 있는 그때,

 

갑자기 철검서생이

 

「앗!」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불 속에 싸인 자기 거실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순간 최문기가 몸을 날려 그를 막으려 하자

남천일붕이 휙! 하니 철장을 휘둘러 막아 다시 싸움은 벌어지고 말았다.

 

맹렬한 불길은 이미 북쪽 안채에 까지 번져 방문까지 타고 있었다.

달려간 철검서생이 일장으로 문을 부수고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벽에 걸린 송학도를 찾았다.

그러나 송학도는 이미 그곳에 걸려 있지 않았다.

그는 깜짝 놀랐다.

십 오년이나 걸려서 만든 그 지도가 종적을 감추자 그는 곧 분노가 치밀었다.

죽을 결의를 하고 몸을 날려 나온 그는 큰 기합소리와 함께

곧장 이창란에게로 달려들며 두 손으로 장풍을 일으켜 밀어 붙였다.

 

그러자 이창란은 긴 눈썹을 치켜 올리면서

 

「죽고 싶으냐!」

 

하며 왼 손으로 장풍을 일으켜 마주쳤다.

 

마주쳐 간 그의 일장은 보기에는 대단치 않은 것 같았지만

실은 암암리에 혼신의 강력(?力)을 운집한 것이었다.

철검서생의 장풍이 막 이창란이 후려친 장풍과 부딪치려고 하는 순간

철검서생은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때 이창란은 이미 결심한 듯 약간 앞으로 나서며 왼 손을 홀연 앞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 철검서생이 손을 거두고 물러서려고 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산을 무너뜨리고 남음이 있을 듯한 세찬 바람이 부딪쳐 왔기 때문이었다.

 

이창란의 공력은 보통 심후하지 않았다.

이창란의 일격을 철검서생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철검서생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을 무렵 돌연 한 가닥의 잠력(潛力)이 옆에서 부딪쳐 왔다.

 

이창란은 자기가 후려친 강력(?力)이 옆에서 부딪쳐 오는 잠력(潛力)에 의해 옆으로 비틀어지자

깜짝 놀랐다.

그리고 후려친 그 강력(?力)을 다시 거두어들이려고 할 때 그의 강력은 문득

남천일붕 주공량과 싸우고 있는 최문기에게 부딪쳐가는 것이었다.

 

철검서생은 갑자기 자기에게 부딪쳐 오는 압력이 약화되자

재빨리 뒤로 물러나 바라보니 주약란이 일곱 자 밖에서 손을 움직이고 있지 않는가?

철검서생은 속으로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창란은 자기가 후려친 강력히 기묘한 재간에 의해 미끄러져 최문기에게로 부딪쳐가자

그것을 일시에 거두어들일 수도 없고 하여 크게 소리 쳤다.

 

「최단주, 빨리 비키시오!」

 

최문기는 주공량과 전력을 다하여 싸우고 있었지만 역시 무예의 조예가 깊은 자라

기민하게 물러났다.

 

주공량은 그 기회를 놓칠세라 기합소리와 함께 두 손을 바로 치켜들어 장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가 막 강렬한 장풍으로 후려치려 할 때 비스듬히 한줄기의 세찬 기운이

부딪쳐오지 않는가?

두 기운이 부딪치자 장풍을 일으킨 주공량은 이창란의 강력한 일격에 몸을 빙그르르

한바퀴 맴돌더니 옆으로 다섯 걸음 물러나야 했다.

눈이 휘둥그레진 주공량은

 

(과연 이창란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로군.

만일 이 일장이 똑바로 나에게 부딪쳐 왔다면 즉사하고 말았을 것이 아닌가?)

 

하고 놀라마지 않았다.

 

  이창란의 일장이 주약란의 도음접양(導陰接陽)이란 교묘한 수법에 이끌려 밀려나자

비록 최문기를 적중시키지는 못하였지만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놀랐다.

이창란 역시 놀라며 주약란을 바라보니 주약란은 엄숙한 얼굴로 안광을 빛내면서

태연히 서 있지 않는가?

일시에 모든 사람들은 완전히 그녀의 기세에 눌려 꼼짝도 못했다.

이때 홀연 초가집 밖에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자 이창란은 주약란에게 몸을 돌리고 두 손을 흔들며

 

「아가씨의 솜씨가 비범하군요.

이 늙은이가 몇 수 그 절기를 구경코자 했지만 바쁜 일이 있어 물러가야겠소.

자, 그럼 다음 기회로 미룹시다.」

 

하고는 몸을 훌쩍 날려 삼장(三丈) 밖에 떨어졌다.

그러자 천중사추와 최문기도 그 뒤를 따라 사라지는 것이었다.

철검서생은 그들이 싹 물러가는 것을 보고 속으로 괴로웠다.

그러나 자기의 무공이 해천일수 이창란과는 너무 거리가 있음을 알고 있는 이상

쫓아가 보았자 목숨만 헛되이 버리게 될 판이라 생각한 끝에 꾹 참고 말았다.

그때 슬쩍 주약란을 바라보니

그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 인양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철검서생은 주약란이 나서지 않으면 그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이창란을

당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주약란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때는 이미 초가집의 불길은 화염에 싸여 하늘을 덮을 듯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상하리만큼 그 초가집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갑자기 주약란은 철검서생을 주시하며 냉랭한 어조로 물었다.

 

「나의 사형과 사매는 어디다 숨겼어요?」

 

철검서생은 마음이 흠칫 했지만 곧 웃으며 대답했다.

 

「네, 그 분의 상처는 너무 심해서 아마 살려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주약란이 노기를 띄우고 쏘아 붙였다.

 

「그런 일을 누가 걱정을 해 달라고 했나요?

묻는 말에나 대답해요!」

 

「아가씨는 조금도 염려 마시오.

그분들이 지금 있는 곳은 매우 안전한 곳이요.」

 

「흥! 그들의 털끝하나라도 다치면 당신을 그냥 두진 않겠어요.」

 

  철검서생은 여전히 웃음을 띠며

 

「그게 염려되시거든 나와 같이 그곳으로 갑시다.」

 

하고는 앞장서서 걷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냉소하고 나서, 철검서생의 뒤를 따르자

주공량과 삼수나찰도 그녀의 뒤를 바짝 따라오는 것이었다.

이들은 불타는 초가집을 거쳐 대나무 담장을 지나 어느 산등성이를 넘었다.

그러자 그 곳에는 좁고 긴 계곡이 나타났다.

  앞서 가던 철검서생은 걸음을 멈추었다.

 

「이 계곡으로 들어가면 오장(五丈)쯤 되는 곳에 천연적인 석굴이하나 있는데

바로 그 안에 아가씨의 사형과 사매가 있습니다.」

 

  주약란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이 숨겼어요?」

 

「네! 나의 의형이 돌아와서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시기에 중상을 입은 분이 염려가 되어 내가 그들을 이곳으로 옮긴 겁니다.」

 

  주약란이 다섯 자 밖에 걸음을 멈춘 주공량을 한 번 바라보고는 쏘아 붙였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 두고 빨리 가기나 하세요!」

 

  철검서생이 가만히 주약란의 얼굴을 살피니

살기를 띄우고 있는지라 그만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리고 속으로

 

  (아무래도 매우 성이 난 모양인데 이 아가씨의 재간이 기묘 절륜하니

어떻게 대처해야 한담? 혹시 그녀가 사형매를 만나고 나서

나에게 갑자기 독수라도 펼치면 난처하겠는걸.

어떻든 그녀가 손을 쓰지 못할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일부러 태연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는 주약란이 양몽환과 하림을 만나기 전에는 결코 선수를 쓰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되도록 걸음을 천천히 옮기면서 주약란을 꼼짝 못하게 할 방법을 요모조모로 생각하고 있었다.

뒤에 따르는 주공량과 삼수나찰 역시 암암리에 공력을 집중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표면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 그들이었으나 속으로는 모두 긴장하여

만일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어느덧 철검서생이 말하던 굴 앞에 당도했다.

철검서생이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여기 우뚝 서 있는 암석 뒤가 바로 아가씨의 사형과 사매가 있는 굴이오.」

 

 주약란이 바라보니 높이가 이장(二丈)이나 되는 검은 암석이 절벽과 나란히 서 있는데

그 널찍한 암석과 절벽 사이의 거리는 겨우 한 자가 좀 넘을 정도였다.

희미한 별빛 아래 아무것도 들여다보이지 않았다.

철검서생이 먼저 몸을 수그려 그 안으로 들어가자 주약란도 따라들어 가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치솟는 어떤 의구심으로 해서 다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이제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기 만 하면 곧 양몽환의 생사를 알게 될 것이다…….

주약란이 걸음을 멈추자 주공량과 삼수나찰도 모두 걸음을 멈추고는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그러자 돌연 암석 뒤에서 철검서생의 웃음소리와 함께 그의 말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여기 아가씨의 언니가 왔소!」

 

  주약란은 입술을 깨물고는 재빨리 몸을 비스듬히 하여 암석 뒤로 들어갔다

과연 몇 걸음 안 가서 병풍처럼 막아 서 있는 암석 뒤의 절벽에 높이 넉자 넓이

두자 가량의 굴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옆에는 굴 문을 막은 듯한 석판(石坂)이 한쪽으로 넘어져 있었다.

그녀는 더 주저하지 않고 허리를 굽혀 안으로 들어갔다.

굴 안은 두 칸 정도의 천연적인 석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 굴은 인공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왼 쪽의 나무 침대 위에는 다죽어가는 양몽환이 누워 있었고

오른 쪽에는 둥근 돌 탁자가 있는데 그 위에 소나무 기름으로 만든 촛불이 켜져 있어

희미하게나마 석실 안을 밝혀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 촛불의 위치가 너무 한 구석으로 치우쳐 놓여 있기 때문인지

불빛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고 있었다.

하림은 침대 옆에 있는 반석 위에 조심스러운 듯 앉아 있었다.

하림이 무사한 것을 보자 주약란은 곧 그녀의 옆으로 다가 갔다.

 

「하림아, 그 동안 고생했지?」

 

하고 소리 쳤다.

 

그러는 주약란의 눈동자는 여전히 철검서생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 철검서생 사천경은 하림이 만일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언사를 비친다면

주약란이 곧 자기에게 손을 쓸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슬쩍 몇 걸음 물러나서 침대 옆에 가 섰다.

그는 이미 주약란을 꼼짝 못하게 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그러자 하림은 고개를 흔들며 고개를 돌려 철검서생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언니가 나가고 얼마 후에 이 사람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더니

말을 건네는 척 하면서 갑자기 나의 혈도를 짚었어요.」

 

했다.

그 말에 주약란은 냉소하며 오른 손을 재빨리 뻗치면서 철검서생의

오른 손을 움켜쥐려고 했다.

그러나 철검서생은 이미 각오하고 있던 터라 주약란의 얼굴빛이 변하자

곧 허리를 굽혀 침대 위에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양몽환에게 덮쳐들었다.

두 사람은 거의 같은 시각에 움직였지만 역시 주약란이 약간 빨랐다.

그의 왼 손이 막 양몽환을 움켜쥐려는 찰나 주약란의 오른 손은

곧 철검서생의 맥문 요혈을 휘어잡고 있었다.

그러나 철검서생 역시 자기가 제 때에 양몽환의 요혈을 움켜쥐지 않으면

주약란에게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른 손목이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왼 손을 뻗어

양몽환의 가슴 쪽 웃을 움켜쥐고는 잡아 당겼다.

그러나 양몽환은 이미 의식을 잃은 몸이라

철검서생 이끄는 대로 앉아있는 자세로 되어 버렸다.

그것은 정말 순간적인 일이었다.

주약란이 미처 철검서생의 손목을 움켜쥐고 힘을 쓰기도 전에

철검서생은 양몽환을 잡아 일으킨 것이다.

철검서생은 냉랭한 어조로 외쳤다.

「흥! 만일 내 손목 맥혈에 조금이라도 기운을 쓰면 당장에 일장으로

이 사람의 오장육부를 부취 버리겠소.」

 

  주약란이 노기를 띄우고 말했다.

 

「빨리 손을 놓아요.

그는 이미 거의 죽어가는 사람이 아니에요?

흥! 항거할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을 잡고 위협하다니……

그녀의 어조에는 노기가 가득 차 있었지만 할 수 없이 먼저 철검서생의 손목을 놓았다.」

철검서생은 그의 수단이 주효하자 의기양양한 어조로

 

「흥! 무공만으로 강약을 판가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핫하하하!」

 

하고 크게 웃었다.

 

그리고 갑자기 웃음을 그친 그는 오른 손마저 뻗쳐 양몽환의 천영혈(天靈穴) 위에 놓았다.

그것을 본 주약란은 크게 놀라 한걸음 다가서며 외쳤다.

 

「그게 무슨 짓이에요!」

 

  그러나 철검서생은 냉소를 터뜨리며

 

「다시 나에게 손을 대면 당장에 이 사람의 두개골을 부숴버릴 작정이요.」

 

  주약란은 어쩔 수 없이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그때 하림은 근심스러운 눈초리를 주약란에게 던지고는 천천히 철검서생에게 다가갔다.

 

「정말 우리 오빠의 두개골을 상하게 하면 언니는 당신을 용서치 않을 거예요!」

 

  그 말에 철검서생의 얼굴은 약간 부드러워졌다.

 

「오냐, 네 오빠를 놓아주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거기에는 조건이 있다.」

 

  그러자 하림은 주약란을 바라보며

 

「언니 먼저 이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게 어때요?」

 

하고 애원하듯 말했다.

 

  주약란은 탄식 하며

 

「어떤 조건인지 말해 봐요.

우리가 들어 보고 나서 결정할 테니……」

 

  철검서생은 주약란의 그 두 눈초리를 보고 위엄을 느낀 듯 문득 고개를 돌렸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대답을 하지 않자

하림이 입을 열려는데 갑자기 입구 쪽에서 쌀쌀한 음성이 들려왔다.

 

「동생,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는데 속지나 말게.」

 

  주약란이 눈을 돌려 바라보니

주공량과 삼수나찰이 앞뒤로 입구에서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철검서생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해천일수 이창란 그 사람은 우리가 십 오년이나 심혈을 기울인 지도를 훔쳐다가

만 년 묵은 거북을 빼앗으려고 하지만 그는 나를 죽여 내 입을 막을 생각은 못했어요.

그 만년 묵은 거북이 출입하는 길과 거처는 이미 내 뇌리에 박혀 있다는 것을

그는 깜박 잊었거든요.

그러나 그는 이것을 깨닫고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 올 것이오.

그리고 우리가 거북을 잡을 때에 올지도 알 수 없으니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겁니다.

그렇지만 우리 형제의 힘만으로는 천용방의 수많은 적을 당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주약란이 아미를 좁히며 말했다.

 

「그러니까 날더러 그 천용방을 막아 달라는 말인가요?」

 

  철검서생이 대답했다.

 

「글쎄요, 아가씨의 사형은 이미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소.

그래서 만년 묵은 거북밖에는 그를 구해낼 약이 없단 말이오.」

 

「하지만 우리 사형의 목숨이 오늘 내일 하는데 어찌 그토록 오래 기다릴 수 있어요?」

 

  주약란은 거북이 양몽환을 구할 수 있다는 말에 약간 마음이 움직였던 것이다.

 

철검서생은 싱긋이 웃었다.

 

「지금 봄철이요 동면(冬眠)의 겨울에서 벗어났단 말이요

아마 수일 내에 동혈(洞穴)에서 빠져나올 것이지만 그 시기를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일이오.

아가씨의 사형이 보름만 넘길 수 있다면 그때에는 아마……」

 

주약란이 가만히 양몽환의 수명을 가늠해 보니 아무래도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았다.

아무리 자기가 진기의 소모를 무릅쓰고 매일같이 양몽환의 기경 혈맥을 주물러 준다고

하더라도 기껏해야 열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약란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안돼요. 우리 사형은 기껏해야 열흘을 넘기지 못 할 테니

그전에 거북을 잡지 못한다면 그를 살릴 수는 없는 거예요.」

 

그 말을 듣자 철검서생은 한동안 생각하는 듯 하더니

 

「어쩌면 열흘 안에 될지도 모르겠군.」

 

하다가 갑자기 음성을 높여

 

「하지만 그 열흘 동안 당신들은 내 명령에 따라 행동해야 하오.」

 

하고 소리 쳤다.

 

  주약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뭐라고요?」

 

  철검서생이 낭랑한 어조로 말했다.

 

「십일 동안 당신들은 내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말이오.」

 

  주약란은 그가 양몽환의 천영혈(天靈穴)을 짚은 오른 손에다 이미공력을 운집하고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선뜩하여 눈을 감았다.

 

「좋아요. 빨리 당신의 그 손이나 떼세요.」

 

  철검서생 사천경은 웃으며 다시 말했다.

 

「만일 내가 손을 델 다음에 아가씨가 약속을 어긴다면?」

 

  그 말을 듣자 주약란은 비웃는 듯한 어조로 똑똑히 말했다.

 

「이미 응낙한 것을 어길 리가 있나요?

당신의 그 고약한 심사를 가지고 감히 군자의 뜻을 의심하진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