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장 끝없이 보이지 않는 암투
철검서생은 주약란이 어수룩하게도 한 걸음 한 걸음 자기 꼬임에 빠져 들어오자
속으로는 매우 기뻤다.
그러나 표면으로는 시치밀 뚝 떼고 여전히 냉랭하게 말했다.
「기묘하기를 도저히 추측할 수가 없는 무공을 당신이 지니고 있으니
일단 약속을 이행하질 않으면 우리의 계획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갈 것이요.」
주약란은 심사가 사나워 견딜 수 없었다.
얼굴마저 핏기가 가시면서 파랗게 피가 가셨다.
순간의 마음 같아서는 금방이라도 신속한 수법으로 후려치고
그 당장 양몽환을 구하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은 안타까웠지만 참아야 했다.
단 일격에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였다.
아마도 평생을 두고 후회할 노릇이 생길 것은 분명하였다.
할 수 없이 참아야 했다.
사실은 철검서생의 마음도 그녀 못지않게 불안하였다.
온 몸이 굳어버린 듯 하고 긴장해서 주약란을 살펴보고 있었다.
만일 주약란이 화를 내서 자기를 친다면 그 당장에 자기 목숨쯤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리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또한 주약란을 이용해서 천용방을 막아야 할 계획은 헛되어질 것이었다.
서로 말없이 노려보며 눈치만 살폈다.
상당히 긴 시간이 주약란 철검서생 사이로 흘렀지만
그들은 제각기 생각에 골몰하면서 눈치만 살필 따름이었다.
이윽고 주약란이 마음을 풀었는지 가볍게 한숨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서로 의심이 많아서야 어떻게 하겠어요?」
철검서생도 주약란을 힐끔 쳐다보고 말했다.
「당신은 맹세를 해야 믿겠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요구하는 대로 앞으로 열흘 동안 철검서생의 명령대로 움직일 것을 서약했다
사천경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비록 소저께서는 마지못해 우리를 도와 보물을 찾는 다지만 따지고 보면
당신 사형의 생사와도 지대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 만년 묵은 거북을 잡기만 한다면 당신 사형을 구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비단 그뿐 아니라 일이 성공만 한다면 또 다른 한 가지 귀한 보물을 선사 할 것도 맹세 합니다.」
그 말을 듣던 주약란은 어처구니없?웃었다.
비록 어쩔 수 없는 환경에 놓여 그의 위협에 못 이겨 결국은 응낙한 처지지만
그 같은 수작이 우습기만 하였다.
주약란은 조용히 쏘아 붙였다.
「그까짓 보물쯤은 하나도 반갑지 않아요!
비록 내가 열흘간을 당신이 하라는 대로 움직이긴 하겠으나 다만 강적을 물리치는 것에만
한하는 것이지 보물찾기에는 흥미가 전혀 없다는 걸 기억하세요.」
말을 마치고 그녀는 나무 침대에 가까이 갔다
그러자 비로소 철검서생은 양몽환을 놓고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야 물론이지요. 보물 찾는 일마저 소저에게 부탁하지 않겠습니다.
어떻든 여러분께서는 이곳에 계십시오. 즉각 밥을 보내드리리다.」
그는 손을 모아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굴 입구로 물러 가다가 삼수나찰을 흘깃 보며
교활하게 한번 눈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그 만년 묵은 거북은 기사회생의 공능이 있을 뿐더러 평소저의얼굴도 회복할 수 있으니,
핫하……」
팽수위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갑게 쏘아 붙였다.
「그 쓸데없는 아양은 떨지 않아도 좋으니 잠시 동안은 안심하십시오.
어했든 십일 안에는 약속대로 복수 하지 않을 테니……
그러나 십일이 지나면 그땐 모를 일이오! 알아 두시오.」
그래도 사천경은 여전히 히죽거렸다.
「흐흐…… 어쨌든 만년 묵은 거북은 십일도 걸리지 않아 잡힐 겁니다.
암 넉넉히 잡고 말지요.
그렇게 되면 틀림없이 당신의 얼굴은 제대로 예전처럼 회복할 수가 있다고요. 흐흐……」
삼수나찰도 빈정거리며 코웃음 쳤다.
「흥! 아양 떨지 마시오. 당신이 아무리 달콤한 말로 나를 꼬인 다해도 내가 믿을 것 같소!
흥! 그 보담 당신 말대로 만일 만년 묵은 거북을 잡는 그날이 바로 내가 당신에게
복수하는 날이라는 것을 명심해 두시오.」
철검서생은 그 말에 더 이상 대답하지도 않고 노려보다가 말없이 주공량과 함께 나란히 나갔다.
두 사람이 떠난 후 삼수나찰은 여전히 굴 앞 입구에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주약란은 그녀가 가지 않자 화가 나서 냉랭하게 물었다.
「당신은 왜 안가고 그곳에 서 있기만 하죠?」
팽수위가 말했다.
「철검서생은 음침한 사람이니 그의 계략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주약란은 본래 발작이라도 할 생각이었으나 그녀의 말을 듣자
생각한 바 있어 물었다.
「그럼 그가 어떠한 음모를 꾸며 우리를 해치자는 거요?」
팽수위는 그 말에 즉시 대답을 안했다.
오히려 엉뚱하게도 몸을 숨겨서는 동굴 밖 정세를 유심히 살핀 후에야
나무 침대 옆으로 슬쩍 다가왔다.
그리고 소리를 죽여 소곤 거렸다.
「그들이 인심 좋게 밥을 보내준다 하더라도 넙죽 받아먹지 마시오. 알겠소?」
하림이 그 말을 받아 이었다.
「그럼 먹지 말고 굶어 죽으란 말이오?」
삼수나찰은 대수롭지 않은 듯
「이 깊은 산중 각처에 짐승들이 많은데 그걸 잡아먹으면 되잖아요?」
하림은 침대 위에 반듯하게 죽은 듯이 누워있는 양몽환을 보고서는
고재를 흔들고 웃으며 말했다.
「환이 오빠의 상처가 저렇게도 대단히 위중한데 어찌 음식을 먹을 수 있나요?」
주약란은 원래 그녀를 쫓아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자기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양몽환은 아주 위독한 상태에서 다 죽어가는 몸이었다.
자기도 무척 지친 몸이었다 하지만 남은 공력전부를 소모하여서라도
즉시 양몽환의 기경팔맥(奇經八脈)을 뚫어야만 그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또 그러자면 기경팔맥을 뚫고 난 후가 큰 걱정이었다.
왜냐하면 기경팔맥을 뚫은 후에는 상당한 시간에 걸쳐 기력을 운행 조식하여야 하고
또 절대로 세 시간 안에 남들과 기력을 소모하며 싸워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림 혼자서 철검서생을 당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삼수나찰만 해도 여러모로 살펴본 결과로는 결코 좋은 사람 같지 않았다.
그나마 마음 놓이는 점은 그가 여자라는 점이다.
또한 그녀가 처한 입장으로 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점이 있기도 했다.
그렇다면 차라리 임시변통으로 그녀와 연합전선을 벌려 철검서생과 주공량을
상대해야 옳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당신이 고목나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천경은 확실히
외면은 얌전하지만 속은 음침한 사람이군!」
하고 주약란이 얼렁뚱땅 비위를 맞추어 주며 말했다.
삼수나찰도 신이 나서 다시 말했다.
「그는 천성을 타고 날 때부터 음침하게 타고 났을 뿐더러 교활하기도 대단한 놈이랍니다.
솔직한 말로 한다면 그가 요구하는 대로 보물을 찾는데 당신사매가 거부했거나
또 필요치 않았다면 당신들은 벌써 그의 음침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악랄하게 처치되고
말았을 거예요. 그 사람은 그런 일 따위는 식은 죽 먹듯 하니까.」
주약란은 마음속으로 은근히 놀랐으나 표정에는 내색하지 않고 태연하게 말했다.
「만일 저의 사형이 저 지경이 아니었다면
방금 그는 내손으로 벌써 싸늘한 시체로 만들었을 거요!」
삼수나찰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최후에는 사천경이 승리하고 말 것이에요.
어쨌든 당신은 비록 절세의 무공과 기묘한 술법을 지니고 있다 해도 결국
그의 위협을 받은 끝에 십일 동안은 꼼짝 없이 그의 명령대로 움직인다고 굴복하지 않았소.
그러고 보면 약속을 어기고 십일 안에는 그와 싸울 수도 없는 처지란 말예요.
그렇다고 십일 동안 안전 무사하리라고 마음 놓을 수도 없는 일이고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혹시 알아요? 비록 소저께서 지니고 있는 무공과 재질은
내가 따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술계의 경험만큼은 당신보담 나은 점이 있을까 해요.
또한 철검서생의 수법도 나는 잘 알고 있어요.
그러니 만일 당신이 나를 믿는다면 당장 서로 적의를 버리고 서로 손을 잡고 힘을 모아서
그 자에게 대항하는 것도 좋을 겁니다. 어때요?」
주약란도 그 말에 맞장구를 치며 미소를 짓고 말했다.
「과연 좋은 의견입니다.
그렇다면 서로가 솔직히 의논해서 좋도록 해봅시다.
사실 우리는 서로가 여자의 몸으로 그들 남자들처럼 교활하지 못하니
서로 힘을 합해 대항하는 것도 좋을 거예요.」
삼수나찰도 만족한 모양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결정합시다.
지금부터 만년 묵은 거북이 잡히기 전까지는 피차가 성실하게
행동과 언어를 같이하여 양심을 위배하지 않음을 하늘에 맹세하고……」
잠시 말을 약간 멎었다가 곧 이어 말했다.
「아마 당신들은 벌써 배가 고플 것이니 내가 나가서 먹을 음식을 찾아오죠.」
한 후 훌쩍 굴 밖으로 뛰어 나갔다.
주약란은 팽수위가 뛰어 나가자 마음이 약간 가라앉음을 느꼈다.
곧이어 양몽환의 혈도를 풀려는 순간 홀연 영학 현옥이 오래 나타나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그는 하림을 돌아보고
「림 동생! 그이를 잘 보고 있어요. 내가 현옥을 찾아보겠어.」
하고 서서히 굴을 나갔다. 잠시 동안 바위 위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고 우렁차게 외치니
고함 소리는 밤하늘을 메아리쳤다.
약 일각이 지났으나 현옥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주약란은 마음이 조급해지자 능공허도(凌空處渡)의 경신술수를 발휘하여
단숨에 수백 자 높이에 절벽을 날아가듯 올라갔다.
산봉우리는 매우 추웠다. 몸에 있는 기력을 운행 조절하여 고함을 크게 외치자
함성은 수십 리 밖까지도 울려 퍼졌다.
그러나 외침 소리가 사라진 후 다시 고요해지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데도
현옥은 돌아오지 않았다.
원래 현옥은 천년 묵은 거학이라 사람의 영(靈)과 통하여 항상 주약란 옆에서 멀리 가지 않았다.
언제나 부르면 곧 돌아오곤 했으나 이번에는 두 번이나 불렀는데도 돌아오지 않았으니
그녀도 초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약란이 제 아무리 의지가 강하다 할지언정 필경은 이십 세 소녀에 지나지 않았다
연달아 발생한 일을 새삼스럽게 생각하니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때 갑자기 들리는 발자국 소리에 급히 눈물을 닦고 뒤돌아보았다.
삼수나찰이 손에 작은 노루를 들고 서서히 오고 있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언뜻 가능한 한, 각별히 즐거운 태도로 가장했다.
그러나 삼수나찰도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즉시 그녀가 어떤 수심에 잠겨 있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당신 사형의 상처 입은 병세가 비록 매우 무거우나 아직도 구할 가망성이 있으니
너무 상심 말아요.
사천경이 제 아무리 음흉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제법 학문은 있으니 한번 약속을 했다면
그 약속은잘 지킵니다.
그러니 만약 그가 만년 묵은 거북을 잡는다면 당신 사형의 상처는 틀림없이 고쳐 줄 거예요.
아씨께서는 너무 걱정 말고 공력을 아꼈다가 앞날의 일들을 위해 몸을 보증해야 돼요.
또 앞으로도 얼마나 험한 사태가 벌어질지 장담할 수는 없거든요.」
주약란도 수심이 가득한 그때 팽수위의 말을 듣자
과연 느끼는 바가 있어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사실 이 추한 여자의 말이 옳아. 지금은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지.
아니고 말구…… 양몽환은 중상으로 누워 있고 하림 동생은 아무것도 모르니
그들의 생명은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진데 만일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그들을 누가 구해 준단 말인가?)
그녀는 비록 현옥이 사고가 난 줄은 짐작이 갔으나 모든 잡념을 버리고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만일 만년 묵은 거북이 철검서생의 말대로 공능이 있다면
저의 힘을 다해 당신의 얼굴이 회복되도록 노력하죠.」
삼수나찰은 웃으며 말했다.
「이십여 년 동안 이 추한 얼굴로 지내다보니 나 자신은 면역이 되었어요.
이젠 새삼스럽게 과거의 얼굴을 되찾는 것은 별로 긴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나 차후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 복수만은 해야겠습니다.
그때는 당신이 도와주세요.
나 혼자 사천경을 상대 하더라도 자신이 있으나 그의 의형인 주공량이
그를 돕는다면 힘들 것 같아요.
그러니 그가 사천경을 돕지 못하도록 또 일대 일로 정당하게 싸울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주약란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리고 난처한 듯이 입을 열었다.
「그거야 우리 무술계의 규칙이니 준수하도록 지켜드리죠.
하지만 십일 내에는 싸우지 않는다는 약속이 있으므로 제가 도울 수가 있겠어요?」
「그건 그때 사정을 보고 결정하죠.
제가 지금껏 이십 년이나 기다렸는데 불과 십일을 더 못 참겠어요?
하여튼 당신과 당신 사매도 배가 고플 것이니 굴 안으로 돌아가서 이 노루나 구워 먹읍시다.」
둘은 경신술을 발휘하여 산봉우리에서 내려온 후 팽수위가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와
굴 안에 모닥불을 피워 노루 고기를 구워먹었다.
이 때 철검서생이 술과 밥을 들고 왔으나 그녀들이 노루를 구워먹는 것을 보자
마음속으로 그녀들의 속셈을 짐작하고 밥과 술을 둔 후 그냥 아무 말 없이 가고 말았다.
그 후 때가 되면 철검서생은 밥을 들고 왔으나 삼일이 지나도록 그녀들은
그 밥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렇건만 네 사람이 비록 먹질 않아도 사천경은 꼬박 꼬박 밥을 굴 안으로 들고 온 후
아무 말 없이 놓고 가곤 했다.
삼일 동안에 주약란은 온 공력을 들여 양몽환의 기경팔맥을 뚫고 병세가 악화됨을
방지는 했으나 그는 깨어나지는 못했다.
주약란은 진기를 너무도 많이 소모했기 때문인지 삼일 동안에 얼굴이 핼쑥해 졌다.
다음날 점심 때 주약란이 양몽환의 기경팔맥을 또다시 들어 보려는 때에 사천경이
동굴에 슬쩍 나타났다.
그는 핼쑥해진 주약란의 얼굴을 보고 놀랐으나 원인을 묻지는 않았다.
삼수나찰은 며칠 동안 주약란과 하림과 같이 있는 동안에 정이 들었다.
철검서생이 굴 안으로 들어서자 선뜻 일어서더니 차갑게 말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어제 저녁에 만년 묵은 거북의 종적을 발견했소.
여러분에게 알리려 왔소이다.」
주약란은 눈을 감고 기력을 운행조절 하다가 그의 말을 듣고 일어서면서 말했다.
「이미 거북을 발견했으면 왜 손을 쓰질 않았죠?」
「사정이 그렇게 간단하다면 여러분에게 폐를 끼치질 않을 겁니다.」
「그럼 천용방 사람들이라도 몰려 왔나요?」
「천용방뿐입니까? 제가 이 며칠을 두고 관찰한 결과 무술계의 구대 문파의
고수들이 많이 왔던 걸요.」
「저는 이미 십일 간은 당신을 도우겠다고 약속했으니 무슨 일이 있는지 말씀 하세요.」
사천경은 침대 위에 누워있는 양몽환을 흘깃 보고서는
엉큼스런 웃음을 빙긋이 웃더니 말했다.
「만년 묵은 거북은 우리에게 큰 관계가 있을 뿐더러 당신 사형의 생사에도……」
주약란은 코웃음 치며 말이 끝나기도 전에 쏘아 붙였다.
「무슨 일이 있는지 그것만 솔직하게 말하시오.
쓸데없는 소리를 들을 흥미는 없어요.」
「당신 사형의 중상은 우리가 만년 묵은 거북을 못 잡으면 완치하질 못할 것이라……」
주약란은 성을 버럭 내며 소리 질렀다.
「우리…… 우리하며 친한 척 하지 말아요!
말씀 좀 삼가 해요. 듣기 거북하니.」
철검서생은 그래도 여전히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알기는 무술계 고수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는 것 같소.
또 천용방은 내가 그림으로 그려놓은 거북이 출몰하는 지점의 지도를 훔쳐가서
아마 그 지점을 알지도 모르지만 그건 염려 없을 것 같소.
왜냐하면 행여나 그런 일이 있을 듯싶어 그림에 알듯 모를 듯한 여러 가지 암호로
기록해 두었으니 아마 단시일에는 찾아오지는 못 할 것이 분명하니 말이오.
그러나 우리가 먼저 손을 써서 그것을 구해야만 당신의 사형의 병을 고칠 수 있을 것 아니겠소?
또 팽소저의 얼굴도 물론 회복할 수 있는 거구……
그러나 지금 와호령(臥虎嶺)에 모인 무술계 고수들은 호시 탐탐 노리고 있으니
반드시 상세한 계획 아래 일을 진행해야 하겠기에 여러분과 상의하러 온 것이고
여러분의 이해관계에도 절실한 일이니 잘 생각하여 성공하도록 해 주시오.」
삼수나찰 팽수위가 그때 돌연 말을 받아 이었다.
「당신은 우리들과 도대체 무슨 일을 상의하고자 하시오?」
철검서생 사천경은 삼수나찰을 힐끔 보고는 주약란을 주시하고 말했다.
「내가 이 며칠을 두고 세세히 관활하여 간신히 거북의 행방을 알아내었소.
또 나의 십칠 년 간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거북은 일년에 꼭 한번씩 나타나되
칠일 동안을 연달아 나타나죠.
그래서 나는 연기를 피워 그 거북으로 하여금 쫓아 나오도록 할 생각이란 말이오.
모든 도구까지 준비가 되어있지요.
오늘 저녁에 손을 쓸까 하는데 딴 사람들에게 우리 행동이 발각될 우려가 많소.
바로 그 점을 여러분과 의논하고 싶소.
만약 그놈들이 눈치 채고 달려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안전하게 성공하느냐는 점이지요.」
주약란은 한참 듣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 만년 묵은 거북이 정말 저의 사형의 중상을 고칠 수 있어요?」
사천경은 웃으며 말했다.
「그것은 걱정 마세요.
그 보다 몇 배의 상처도 나을 수 있으니까요.」
주약란은 침대 위에 반듯이 죽은 듯 누워 있는 양몽환을 보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 사형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 모든 힘을 다하겠어요.
비록 강적이 많다 하지만 두려워할 것은 없어요.
단지 어떤 파의 무예가들이 몇 패가 어느 방향으로 오는지 알면
충분히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한 가지 걱정이 있어요.
저렇게 누워있는 사형이 안전할 런지 ……」
철검서생은 웃으며 말했다.
「소저께서 생각하시는 것을 나도 벌써 생각했습니다.
이 굴은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형이 이곳에 꼼짝 않고 숨어 있으면 문제없이 절대 안전하니 그 점은 걱정 마시오.
또 강적이 습격해 온다는 점에서는 저도 역시 고려한 바 있습니다.
거북이 출몰하는 노선에서 가장 험한 곳을 선정했습니다.
그곳은 양쪽이 절벽이고 한쪽은 폭포이니
소저께서 그 계곡을 엄수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좋소! 그렇다면 사형 혼자 굴속에 두면 안 되겠으니
최소한 사매를 남겨 둘 것을 동의해 주시오.」
「좋소, 그럼 오늘 저녁 초경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만족해서 정중한 읍(揖)을 하고 그는 굴속을 떠났다.
삼수나찰은 그를 따라 동굴 입구까지 가서 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돌아와서 주약란을 보고 말했다.
「사천경은 교활한 놈이니
우리는 그가 거북을 손에 넣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사전에 미리 예방해야 할 거에요.」
「정말 그놈이 배반만 한다면 이 황산에서 내 손에 죽고 살아남지 못 할 거예요.」
말을 하며 침대까지 가까이 가서는 작은 소리로 하림에게 물었다.
「너의 몽환 오빠는 한 번도 깨어나질 않았지?」
하림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이 며칠 동안 눈도 깜짝하질 않았어요.
이 굴은 매우 좋군요.
만일 오빠가 정말 죽는다면 저도 이곳에서 영원히 나가지 않을 거예요.」
주약란은 처량하게 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생각은 말아요.
오늘 저녁에 사천경이 만년 묵은 거북을 잡는다니 그의 목숨을 구할 수 있어!」
말이 끝난 후 기력을 운행하여 양몽환의 기경팔맥을 뚫으려 할 때 삼수나찰이 외쳤다.
「주소저! 손을 멈추세요.」
말이 끝나자 얼른 침대 앞을 막았다.
주약란은 마음이 뜨끔함을 느끼면서 삼수나찰을 바라보았다.
「? ……」
「당신이 그의 맥혈을 뚫을 때마다 몹시 힘들어 고단해 죽을 듯해요.
제가 보기에 기진맥진하여 공력을 매우 소모하는 것이 안타깝군요.」
「내 자신의 공력이 소모 되는데 당신과 무슨 상관이에요.」
「만일 그분의 맥혈을 뚫지 않더라도 내일까지는 부지할 수 있지 않아요?」
주약란은 그제야 그녀의 의사를 알아차리고 부드러운 태도로 말했다.
「이틀 동안은 부지할 수 있을 거예요.
다만 그의 체내 맥혈이 악화됨을 막을 수 없으니
그의 목숨을 단축시키는 듯해서 불안해요.」
「사천경이 아까 말한 바와 같이 많은 고수급 무예가들이 이곳에 몰려 왔다는 말은
절대 거짓이 아닐 겁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녁에 일어날 보물 뺏기 싸움은 공전의 처참한 싸움이 될 것은 틀림없을 겁니다.
지금 이미 오시가 되었어요. 초경까지는 불과 두세 시간이요.
그런데 지금 전신의 기력을 거기에 소모한다면 이 짧은 시간 안에 당신이 기력을 운행 조절하여
공력을 다시 회복할 수 있어요?
만일당신의 공력이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면 어떻게 그들과 싸우겠어요.
만일 당신이 어떤 일이라도 생기면 그때는 당신의 사형 사매는 어떡하죠?」
「옮은 말씀이요.
두세 시간 안으로 기력을 회복 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녀는 삼수나찰의 권고를 받아 들여 한구석에 앉아 눈을 감고 기력을 운행 조절했다.
반나절이란 시간은 빨랐다.
언간에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질 무렵 사천경이 밥을 날라 왔다.
그는 스스로 그릇 뚜껑을 열고 풍부한 반찬을 늘어놓은 후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은 틀림없이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이 식사를 하시고 저의 감사의 뜻을 받아 주시요.」
삼수나찰은 자세히 밥과 찬을 보더니 말했다.
「성대한 식찬에 감사하옵니다. 이제 돌아 가시요.」
철검서생은 확실히 아량이 큰 사람이었다.
미소를 짓고는 두 손 모아 인사를 하고 두말없이 돌아갔다.
팽수위는 늘어놓은 술과 밥을 한 가지 한 가지 자세히 검사를 하고는 말했다.
「지금 그는 우리가 절대로 필요할 때이니
밥 속에 독을 넣을 리는 만무할 거예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믿을 수 없는 일이죠.
사천경은 워낙 음흉스러운 사람이라 내가 마음 놓을 수가 없어요.
그러나 방금 자세히 조사한 결과로는 아무런 의심할만한 것이 없을 것 같아요」
주약란도 수저를 들고 찬을 한 가지 한 가지 맛본 후 말했다.
「과연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는군요.
우리는 이 며칠 동안 짐승만 구워 먹고 그가 보내온 밥과 찬은 손을 델 일이 없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엔 그가 설사 독을 넣을 마음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만한 참을성이 있을 듯싶습니다.」
삼수나찰은 한참 생각하더니
이윽고 주약란과 같이 사천경이 보내온 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사천경이 검은색 경장을 입고 장검을 등에 메고 조용히 들어 왔다.
곧 엄숙한 얼굴로 두 손을 모아 인사를 하더니 나지막하게 주약란에게 말했다.
「밤이 어두워지자 와호령에는 예상대로 강적의 종적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도 여러 무리니……」
주약란은 냉랭하게 사천경의 말을 제지하고 말했다.
「그럼 당신은 준비가 다 되었소?」
「준비는 완전히 다 되었습니다. 다만 두 분께서의 왕림만 바랄 뿐입니다.」
주약란은 하림을 보고 말했다.
「림매, 그럼 오빠를 잘 보살피고 있어요.
나는 가서 만년 묵은 거북 잡기에 협조할 것이니.」
하림은 최근에 줄곧 양몽환의 옆에 말없이 앉아 있었을 뿐이었다.
주약란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었다.
그때도 단지 고개를 끄덕이고 얼굴에는 처량한 미소만을 풍길 뿐이었다.
주약란도 가만히 한숨을 내 쉬고 서서히 굴속에서 나오니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었다.
그녀는 정신이 맑아지자
(오늘 저녁에 만년 묵은 거북을 잡는 것은 양몽환의 생사에 중대한 관건이다.
나는 전 실력을 다해서 성공하도록 일을 도와야 하겠구나.)
그녀는 마음으로 생각한 후 느끼는 바가 있어 철검서생에게 물었다.
「남은 무기가 또 있으세요?」
「소저께서는 어떤 무기를 쓰시죠?」
「될 수 있으면 검, 보검이 없으면 칼이라도 좋아요.」
「검은 있지만 마음에 들 런지요.」
「검만 있으면 아무거나.」
「그럼 따라 오시오.」
말이 끝나자 훌쩍 뛰어 두 장이나 앞서 가기 시작했다.
주약란과 팽수위도 그를 따라 약 일각을 지나니 산봉우리를 여섯 개나 지나
극히 험한 곳에 도착했다.
바로 앞은 두장이나 될까 싶은 넓이의 계곡이었다.
양편은 깎은 듯한 절벽이 하늘을 찌르고 초목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제 아무리 경신술이 강한 사람이라도 올라갈 수가 없었다.
사천경은 발을 멈추고 말했다.
「이 계곡은 약 삼백 장 길이나 됩니다. 양편 절벽은 모두 오백장이나 될 것이며
아래 깊은 계곡이 바로 만년 묵은 거북이 숨어 있는 곳입니다.
저 우람한 폭포를 건너가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니 이 곳만 고수 해주시면……」
그때였다.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어디선가 박장대소하는 웃음소리가 하늘로 메아리 쳤다.
주약란이 고개를 돌려 보니 이창란이 천중사추를 거느리고 지팡이를 쥐고 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또 다른 여섯 사람이 따랐다.
해천일수 이창란은 태연한 표정으로 밤바람에 흰 수염을 휘날리며 걸어 왔다.
철검서생은 멍해지더니 주약란을 보고 속삭였다.
「소저, 이들이 바로 이번 일에 최강적이니
이들만 처치하면 우리일은 반이나 성공한 것과 다름없소이다.」
그의 말소리는 무척 나직했으나 내공이 강한 이창란은 수장 밖에 있어도 잘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우람스럽게 한 번 크게 웃더니 느닷없이 지팡이로 땅을 쳤다.
몸이 훌쩍 공중에 솟았는가 싶었는데 벌써 땅에 내려섰다.
철검서생의 약 삼척 앞에 도착하자 또 한바탕 웃고는 심통 사납게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사천경! 자네가 이 노부의 지팡이 공세를 세 수만 받을 수 있다면 나는 천용방을 이끌고
그 즉시 철수 할 것이거니와 또 네가 그린 만년 묵은 거북이 출몰한다는 지적도를
두 손으로 되돌려 주마! 어때!」.
사천경은 그날 저녁 이창란의 일격에 하마터면 죽을 뻔 했던 터라
자신의 공력으로는 세수가 아니라 단 한 수라도 받을 자신이 없었다.
그는 검을 뽑아 들고 주약란을 돌아보며 그래도 호통을 쳤다.
「미안하지만 나로서는 당신과 싸울 흥미가 없소이다.
그 대신 이 소저가 당신하고 맞설 것이오.」
그는 주약란을 보고 명령을 내리듯 말했다.
「당신이 나가서 저 지팡이 공세를 받으시오.」
주약란은 명령하는 말투가 아니꼬워 얼굴이 샐쭉 했으나
하는 수없다는 듯이 서서히 이창란 앞으로 나섰다.
이 때 천중사추도 재빨리 이창란 뒤에 한 줄로 서서 뒤따르던
여섯 명과 함께 발을 멈추고 서 있었다.
주약란은 이창란의 뒤에 서 있는 무리들을 훑어보고 난 후
이창란에게 차갑게 말했다.
「내가 당신의 지팡이 세 수를 받을까요?」
이창란은 뜨끔해 진 듯이 허세를 부리고는 다시 한 번 크게 웃는 것이었다.
「소저께서는 사천경과 어떤 사이인지는 모르나 왜 대신 나오시오?」
주약란은 얼굴이 화끈함을 느꼈다.
그녀는 평소에 누구의 명령에 움직인 일은 없었다.
철검서생 정도는 말할 것 없이 당대에서 자기 눈에 드는 무예가는 별로 없었다.
그러던 것이 이렇게 이창란의 면전에서 자존심을 꺾이니
그녀의 마음은 매우 좋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십일 간은 명령대로 움직인다는 약속이 있으므로 어쩔 수 없었다.
또한 양몽환의 중상을 고치기 위해서도 만년 묵은 거북을 속히 잡을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그녀는 가슴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하고 태연한 것처럼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과 입씨름 할만한 참을성이 없으니
즉시 무공으로 승부를 결정합시다.」
이창란도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좋소!」
말하면서도 시종 움직일 기세는 보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주약란의 눈부신 활약을 본 일이 있는
그로서는 내심 무척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소녀의 몸이라고 하나 그 무공은 오묘한 기법에 통달한
절기를 지니고 있어서 대수롭게 여기고 대뜸 달려 들 수는 없었다.
그는 언제나 이길 자신이 없는 일에는 모험을 원치 않았다.
주약란은 그의 큰 소리가 용이 우는 듯 우렁차고 귀가 웅웅거리자
암암리에 생각 했다.
(이 사람의 내공이 이렇게 깊으니
그와 싸울 때는 각별히 조심을 해야겠다.)
이창란의 웃음소리는 멎지 않고 갈수록 커지기만 했고
그 소리는 온 산 계곡을 메아리쳤다.
주약란은 문득 경각심을 높이고 생각했다.
(큰일 났군! 분명히 이 놈의 큰 웃음은 웃음소리를 이용하여 암암리에
나의 내공을 누를 심산이구나.)
얼굴을 돌려보니 철검서생은 과연 이마에서 땀을 줄 줄 흘리면서
분노를 억지로 참고 있는 듯 했다.
그녀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기합소리와 더불어 왼 손으로 휘진청담(揮塵淸淡)의 수로 치면서
왼 손가락으로 기문(氣門)의 요혈을 찔렀다.
그러자 이창란은 급히 웃음을 거두고 어깨를 으쓱했다.
순간 벌써 사람은 칠팔 척이나 뒤로 물러간 후였고 오른 팔을 휘돌리며
용두지팡이로 갈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약란은 지팡이의 공세를 피하지 않고 오히려 몸을 한바퀴 빙그르 돌리면서
이창란의 옆으로 바싹 다가섰다.
그 순간 용두지팡이가 그녀의 바로 눈앞의 바람을 가르며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그녀의 대담한 공격과 동시에 재빨리 그 일격을 피하는 서로의 솜씨는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이창란은 비록 여러 번 색다른 무예가들과 싸워온 않은 경험이 있다 하여도
주약란과 같은 괴이한 수법은 처음 보는 것이어서 내심 저윽이 놀랐다.
이렇게 이창란이 놀래어 주춤하는 틈을 이용한 주약란은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다시 눈앞으로 바싹 달려들었다.
그러면서 오른 손은 재빠르게 병봉장하(兵封長河)로 내려치자
한 줄기의 장력은 용두 지팡이의 공세를 억제하고 된 손으로는 연달아 세 수나 내리쳤다.
이 세 수는 실상인즉 전후가 있었으나 손을 쓰는 것이 어찌나 빠르고 날카로운지
보기에는 세 수를 한꺼번에 내친 듯 하여 눈앞이 깜깜하고 피할 길이 없었다.
이창란은 너무 급한 김에 몸을 뒤로 굽혔다.
그러자 등이 땅에서 세 치 가량 공중에 뜬 이창란은 몸을 활처럼 휘었다.
그리고는 뒤꿈치에 힘을 주어 땅을 차면서 가까스로 팔구척이나 물러 나갔다.
두 사람은 있는 재간 것 치고 막으니 서로의 무술은 기발하고 신기할 뿐 아니라
그 절기도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주약란이 삽시간에 적의 코앞까지 돌진하는 수법이나 이창란의 단장을 교묘히 피하는 법이나
눈 깜짝할 사이에 연달은 공격을 퍼붓는 수법은 모두가 귀원비급에 ?기록되어 있는 절학이었다.
주약란이 무술계에 몸을 던진 후 오늘 처음 쓰는 수법이었다.
그런 만큼 틀림없이 상대방을 격파할 줄 믿었으나 상상 밖으론 이창란이 속공을 피하는 데는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이창란은 주약란의 놀라운 일격에 절로 탄식이 나왔다.
「소저의 무학(武學)은 과연 놀랍소.
내 평생에 처음 보는 무예가요.
더욱이 예쁜 여자로서 놀라운 바 있소.
내 이토록 늙은 나이에 소저 같은_무예가를 만나다니 이것도 복이겠지, 핫하하!」
하고는 다시 계속했다.
「그러나 소저께서는 무슨 파의 누구신지 모르는 처지라 그것을 말해주면 고맙겠군 그래……
노부가 견학할 겸 배우고자 하니 말이야.」
무술계의 여러 곳을 다니지 않은 곳이 없는 이창란은 견식이 넓어 무술계 문파의 내력을
상대방의 솜씨로서 대개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약란의 무공 술법을 보고는 기묘하여 알 수가 없었다.
주약란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벌써 무공으로 겨루기까지 했는데 새삼스럽게 이름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창란은 무공으로서는 당대의 무술계에서는 자기가 제일이라고 자부하는 터에
이런 모욕을 받은 일은 일찍이 없었다.
그런데다 소녀에게서 모욕을 당하고는 분통이 터져 얼굴은 일그러지고 치를 떨면서
한바탕 고함을 질렀다.
「건방진 계집 같으니! 노부를 이렇게 무시하다니!」
하며 지팡이를 휘두르려는 바로 그때, 휙! 휙! 하는 바람 소리가나면서
한 사람이 이창란의 앞을 막아서는 것이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면서 말했다.
「방주께서는 화를 참으시오.
제가 먼저 한판 겨루어 보겠습니다.」
하는 사람은 개비수 최문기였다
그러자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 계집의 무공은 매우 괴이하다. 조심해서 처치하라.」
개비수 최문기는 주약란을 노려보고는 천천히 다가왔다.
그는 다가오면서 은근히 기력을 운행 조절하여 불의의 선수를 ?칠 생각을 했다.
그러자 주약란도 얼핏 그 눈치를 알아채고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러한 그녀의 미간에는 살기가 감돌았다.
「번갈아 귀찮게 대들지 말고 될 수 있으면 함께 달려드시지?」
그러나 최문기는 그 말을 못들은 척하고 철검서생 사천경을 쳐다보고 비웃으며 말했다.
「사형! 계집 복도 많군요. 하! 하! 알고 보니 이런 재미를 보시느라
와호령에서 무술계의 일은 집어 던졌군!」
그 말의 한마디 한마디가 칼날처럼 주약란의 방심(芳心)을 찔렀다
주약란의 발그스름 던 얼굴이 삽시간에 새파래지며 이를 갈았다.
「감히 더러운 말을 입에 담다니……」
이때 삼수나찰 팽수위는 격분하는 주약란을 보자
개비수의 속임수에 넘어 감을 눈치 채고 큰 소리로 외쳤다.
「주소저! 그는 고의로 성을 내게 하는 것이니 조심 하시요.」
주약란은 원래 매우 영리한지라 그 말을 듣고 치밀어 오르는 화를 가라앉히고,
냉정함을 되찾았다.
최문기는 그녀가 화가 나서 어쩔 줄 모를 때 불의의 선수를 쳐서 일격에
성공을 거둘 생각이었으나 삼수나찰이 간파하여 외치는 바람에 김이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최문기도 역시 여러 번 싸움을 해본 노장이니 경험이 풍부하였다.
비록 팽수위가 자기의 음모를 간파하였으나 여전히 웃고 비꼬는 투로 말했다.
「저기 저 사람 같지도 않고 귀신같지도 않은 여영웅이 과거 사형에게
얼굴을 파괴당한 팽소저죠? 하! 하! 벌써부터 명성은 들었으나 오늘 만나보니
과연 소문대로 사람의 눈을 놀랍게 하는군.
당대 무술계에서 팽소저처럼 추한 사람은 없을 거요.」
불쾌하기 그지없는 그 말은 삼수나찰의 가슴을 오리는 듯 했다.
철검서생 사천경 역시 그 말에 격분하여 팽수위가 그만 싸우지나 않을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가 최문기의 모욕에 못 이겨 생사를 불구하고 덤벼들면 정말 큰일이라 생각했다.
그는 생각을 한 나머지 냉랭하게 말했다.
「최형의 뼈있는 말은 사모인과 팽소저가 먼저 싸우라는 말씀이요?」
최문기는 말했다.
「겸손한 말씀! 그런 뜻이 아니오.
사형이 십오 년 동안이나 이 와호령에서 무공을 연마 했으니
팽소저께서 설사 복수할 마음이 있어도 안 될걸?」
철검서생 사천경은 우렁차게 한바탕 웃고는 말했다.
「그러나 만일 내가 오늘 팽소저의 칠보추혼사(七步追魂砂) 암기에 걸려 목숨을 잃으면
귀 방께서는 앉아서 만년 묵은 거북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니 그 방법도 매우 좋군요.」
삼수나찰은 사천경이 비록 최문기의 계략을 간파하지 않더라도
그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었다.
뿐더러 그 말에 그녀의 마음은 찢어지도록 아팠지만 꾹 참고 시종 말없이 서 있기만 했다.
최문기는 그같이 상대방의 화를 돋우면서도 암암리에 온 몸의 공력을 운행 조절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렁찬 기합소리를 터뜨리며 두 손을 치켜들면서 전 후 두 수나
연달아 후려치는 것이었다.
예상했던 공격이지만 그러나 몹시 날카로웠다.
벼르고 벼른 터라온 몸의 공력은 충분히 집중되어 있었다.
억센 장풍은 주약란을 향해 화살처럼 달려들었다.
주약란은 그때까지도 좀 전에 받은 모욕에 성이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었다.
표면으로는 냉정한 척 했으나 속으로는 은근히 호시탐탐노리고 있던 참이었다.
그러던 차에 그가 선수를 써서 공격해 오자
그 즉시 왼손을 쳐들고 최문기의 쏜살같은 장풍을 후려치자
맥없이 옆으로 흘러 나가고 말았다.
주약란은 그와 동시에 공격의 자세를 굳혔다.
어느 틈에 오른 손으로 필사의 일격을 후려치는 그때
또 다른 억센 장력이 갑작스럽게 육박해 왔다.
애초에 최문기는 온 몸에 공력을 둘로 나누어 두 손에 운행하여
전후 두 줄기로 내리쳤던 것이었다.
주약란은 최문기의 의외의 수법을 그제야 깨달았다.
가볍게 두 발로 땅을 슬쩍 차는가 싶더니 오히려 최문기의 장풍을 이용해서
편승하고는 제비처럼 날아 약 삼장 밖에 사뿐히 내려섰다.
최문기는 그녀의 어처구니없는 수법에 깜짝 놀라 어리둥절했다.
(정말 귀신이 곡할 신법이군! 눈으로 보아서는 분명히 나중에 쏘아부친
나의 장풍에 얻어맞은 것 같은데도 무사하니……
무사하다뿐인가, 저토록 가볍게 날아다닐 수도 있고 그것참!)
하기야 최문기는 주약란의 비법을 알 리 없었다.
주약란이 이창란과 싸울 때에 벌써 암암리에 불문 선천기공(佛門先天氣功)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그 내공은 매우 부드러운 것이라 강한 외력의 충격을 받으면 기묘하게도
습격해온 힘에 편승하여 하늘로 날아 버리고 내장은 진동하지 않는 것이었다.
최문기는 하도 어처구닌 없는지 여우에 흘린 사람 모양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자니 몸은 무방비 상태였다.
주약란은 그 틈을 재빨리 노렸다.
몸이 공중에 치솟았다가 괴이하게 손을 쳐들며 최문기에게 달려들었다.
최문기는 대항할 여유가 없었다. 허겁지겁 허둥거리며 구척이나 뒤로 물러나
간신히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자 주약란의 몸은 또 다시 제비처럼 공중에서 한바퀴 뱅그르르 돌면서
숨 돌릴 사이 없이 쫓아 들어가지 않는가?
그와 함께 주약란의 손끝에서 지풍(指風)이 칼날처럼 최문기의 뒤 어깨를 후려쳤다.
최문기는 미처 몸을 바로 잡지도 못하고 당한 일격이었다.
다급한 김에 급히 몸을 돌리면서 회두망월(回頭望月)의 한 수로 반격을 가했다.
그는 주약란의 전광석화와 같은 추격을 피할 수가 없다고 느끼자
평생의 힘을 다해 같이 죽기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내려 쳤으니
그 힘은 어마어마했다.
주약란도 비록 절세의 무공을 한 몸에 지니고 있었으나 아직은 대적 경험이 부족하였다.
또한 최문기는 자폭(自爆)할 결심으로 자신의 위험을 내던지고 온 힘을 다해 반격을
가했던 것이다.
과연 주약란도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추격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최문기의 장풍에 편승하여 육칠 척이나 뒤로 날아가 내렸다.
한편 놀란 최문기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 중에도 철검서생은 초조한 빛을 감추지 못하고 안절부절 했다.
그것은 지금 이 시간이 바로 만년 묵은 거북이 기어 나을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거북은 영(靈)이 통하는 동물이어서 단 일격에 잡지 못하면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철검서생은 몹시 속이 탔다.
그렇다고 지금 불을 뿜는 싸움에 열중한 주약란을 말릴 수도 없었다.
이창란도 최문기가 위험한 고비를 넘기는 것을 보고 깊이 놀랐다.
만일 그로 하여금 계속 싸우게 한다면 틀림없이 주약란의 술수를 당하지 못하고
상처를 입을 것은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그를 저지한다면 자신이 스스로 그녀와 싸워야 할 것이라
일시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삭! 삭! 하는 옷 스치는 소리와 함께 한사람이 최문기 옆에 날아와 내리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새로 나타난 사람을 유심히 보니
약 오순가량 되는 나이에 여윈 얼굴이고 팔자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 노인이 파양호의 묘수어은 소천의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말을 하기 전에 묘수어은 소천의가 먼저 손을 모아 웃으며 말했다.
「소저께서는 이 고기 잡는 어부를 아시겠소?」
주약란도 반갑게 웃으며 손을 모았다.
「노선배님, 그간 안녕하셨어요.
천만 뜻밖에도 이런 황산에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소천의는 껄 껄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소저께서는 너무 겸손 하십니다.
노선배라는 칭호를 어이 제가 받아들일 수 있겠소?
파양호에서 처음 만날 때 저는 벌써 소저께서는 절세 무학을 지닌 분임을 간파 했소이다.
과연 방금 소저의 몇 수 솜씨를 보니 오묘한 수법이라 속으로 놀라 마지않는 바올시다.」
주약란은 그의 공손한 말에 얼굴이 붉어지며 눈썹을 가볍게 찌푸렸다.
「노선배님의 과장된 말씀이옵니다.」
소천의는 돌연 철검서생을 보고 물었다.
「노부가 한 말씀 묻고자 하오.
도대체 소저와 사천경과는 어떤 관계시오?」
철검서생은 두 사람의 태도와 주고받고 하는 말을 들으며 속으로 언짢게 여겼다.
듣고 보니 서로가 잘 아는 사이임을 알고는 더 초조하여 주약란 옆으로 뛰어가서
협박이나 하듯이 말했다.
「당신은 우리들의 십일 약속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오.
더욱이 지금은 옛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가 못 되오.
빠른 시간 내에 무슨 수로든 적을 완전히 이 계곡에서 몰아내시오.
이건 약속대로 내 명령이오.」
주약란은 이를 갈며 말했다.
「흥! 이젠 나머지 닷새란 기간은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가요.
그때 가서 봅시다.」
사천경도 허세를 부리며 차갑게 말했다.
「닷새 후에는 죽어도 한이 없소.
그러니 닷새 내에 약속은 지켜야할 것이오.」
주약란은 마음속으로는 분개했으나 그렇다고 한 번 약속한 이상 신의를 저 버릴 수는 없었다.
소천의를 보고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노선배님, 잠시 동안 뒤로 물러가십시오.
그래야 오늘 저녁에 일이 순순히 해결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소천의는 주약란이 사천경에게서 협박을 당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으나
그렇게 된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잠시 동안 눈치만 살펴봤다.
그러자 이창란이 껄 껄 웃으며 용두 지팡이로 땅을 툭! 치고는 느닷없이
몸을 하늘로 날려 주약란의 머리 위를 지나 두 팔을 펼치면서
손과 지팡이로 철검서생을 내리쳤다.
이 신속한 동작은 웃음소리가 끝나기 전에 이미 사천경을 곤경에 빠뜨렸다.
불시에 습격당한 사천경은 깜짝 놀라 당황하며 철검을 휘둘러 한수 백운출수(白雲出岫)로
머리를 보호하고 그 몸은 허둥지둥 세 발자국이 나 물러섰다.
그러자 이창란은 몸이 땅에 내리기 전에 또 다시 용두 지팡이의수를 돌변하여 오른 팔을 휘둘렀다. 그 순간 하늘에는 지팡이 그림자로 가득 차 눈을 부시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갑자기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사천경 수중의 철검은 튕겨 날아가고
이창란은 재빨리 사천경의 오른 손목을 휘어잡는 것이었다.
그 동작은 불과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니 주약란도 미처 그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주약란의 동작은 매우 빨랐다.
이창란이 철검서생의 오른 손을 잡았을 바로 그때 주약란의 지풍은 이창란의 뒤 어깨를 쳤다.
해천일수 이창란은 주약란이 달려들 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므로 사천경의 오른 손목을 잡자마자
몸을 돌리며 네 걸음이나 뒤로 번개처럼 피했다.
그러나 그의 동작이 제아무리 빠르다 하더라도 역시 뒷등은 주약란의 지풍이 스쳤다.
<짝!>
소리가 나며 수치 가량의 옷이 찢어지고 말았다.
주약란의 일격이 빗나가자 그 틈에 이창란은 급히 한숨을 돌리고 왼 손에 힘을 주어
끄집어 당기는 것이었고 사천경의 몸은 절로 이창란의 앞을 가로 막았다.
일격이 실패한 것을 본 주약란은 두 번째의 공격을 내리쳤다.
이창란도 왼 손에 내력을 운행하여 철검서생을 갑자기 밀치자
그의 몸은 주약란의 공격을 가로막는 형세가 되고 말았다.
주약란이 이를 발견 했을 때는 이미 지풍이 사천경의 앞가슴에 다다랐을 때였다.
절대 절명!
막다른 골목에 부딪친 사천경은 그만 눈을 감고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주약란도 급했다.
지풍이 철검서생의 의복을 스치려는 아슬아슬한 찰나
그녀는 급히 오른 손의 공세를 멈췄다.
그리고 사천경이 눈을 뜨기 전에 귓가에 이창란의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사형! 이래도 만년 묵은 거북이 필요하오? 아니면 목숨이 필요하오?」
철검서생은 붙잡힌 손목이 떨어져 나갈듯 아팠다.
암암리에 공력을 집중 운행하여 느닷없이 눈을 번쩍 뜨는 동시에 대갈일성하고
그 틈에 손을 빼려고 했다. 허사였다.
갑자기 오른 손의 압력이 가중하면서 삽시간에 반신이 마비되고 힘이 빠졌다.
그 순간 주약란의 눈이 번쩍 하고는 한 옆으로 날쌔게 몸을 돌리면서 철검서생을 피하고
두 손을 동시에 휘둘러 연달아 공격을 가했다.
이창란은 그 세 수의 속공으로 서너 발 뒤뚱거렸다.
그러나 철검서생을 쥐고 있는 손은 여전히 놓지 않고
오론 수중의 지팡이로 세수를 간신히 막았다.
이 때 철검서생은 심한 고통을 참을 수 없었다.
이마에서는 땀이 줄 줄 흐르고 숨소리도 거칠게 씩 씩 거리다가는
급기야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말했다.
「주소저, 잠시…… 손, 손을 멈추시오.」
이창란은 통쾌하게 웃으며 큰 소리쳤다.
「저년이 만일 더 이상 나를 공격 한다면 너의 손목뼈를 부숴버리겠다!」
주약란은 철검서생의 고통스러운 기색과 떨리는 말소리를 듣자할 수없이
손을 멈추고 이창란을 향해 말했다.
「흥! 사람을 인질로 삼는다는 것은 그다지 큰 재간이 아니에요.
저와 당당히 겨룰 자신이 있어요?」
그러자 이창란은 껄껄 웃었다.
「노부와 소저는 별다른 원한도 없는데 목숨을 걸고 싸울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때 철검서생은 돌연 악에 받쳐 소리 질렀다.
「대장부의 목숨이 날아갈지언정 이런 모욕을 도저히 참을 수 없소.
당신이 나에게 이렇게 대한다면 당신도 이런 모욕을 받을 때가 있을 거요.」
이때 최문기와 소천의 그리고 천중사추가 에워싸고 몰려오자
삼수나찰은 재빨리 주약란의 옆으로 물러섰다.
그리고 노루 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끼면서 어느 틈에 꺼냈는지
한주먹의 독사(毒砂)와 음린뇌화전(陰燐雷火箭)을 양손에 든
삼수나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가오는 적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때 주약란 역시 일촉즉발의 위기 앞에서 공력을 운행 집중하여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의 태도는 만반의 준비가 이미 끝난 자세였다.
그러나 이창란은 태연하게 주약란을 바라본 후 고개를 돌려 사천경에게로 눈길을 옮겼다.
「사형! 내가 천용방을 세운 것은 내 명성을 떨치려고 한 것이 아니라
구대문파 이외의 무술인들을 위해서 했소.
수십 년 동안 파가 없는 무술인들은 구대문파의 고수들에게 얼마나 많이 살해 당한지 아시오?」
말을 멈춘 이창란은 주위를 번갈아 보며 사실이 그렇지 않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계속했다.
「만일 우리같이 파가 없는 졸장부들이 단결하지 않으면 완전히 학살당하고 말 것이오.」
이때 철검서생이 나서며 이창란에게 대들었다.
「당신이 혀가 닳도록 말하는 목적은 천용방에 가입하라는 말이 아니오?」
「그렇소! 천용방은 언제든지 문호를 게방하고 무술계의 문파 없는 영웅들의 참가를 환영하오.」
「흥! 당신 같은 사람의 협박을 받고 행동할 사천경이 아니오!
대장부는 원한과 은혜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은 죽음 앞에서도 변함없소!」
해천일수 이창란은 홀연 잡고 있던 사천경의 손목을 놓고 두어 발 물러섰다.
「사형이 천용방에 가입한다면 노부는 있는 힘을 다해서 만년 묵은 거북을 찾는데 노력하겠소.
그것은 무술계에서 큰 비밀이 아니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오.
만일 사형이 그 거북을 가지고 도망간다면 구대문파에서는 누구 할 것 없이 추격할 것이요.
그러나'노부는 무엇보다도 인재를 얻고자 하는 것일 뿐 거북이 탐나는 것은 아니요.
이 노부를 믿고 잘 생각해 보시오.」
철검서생은 갑자기 무어라 대답할 수가 없어 주약란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주약란 역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한참동안 생각할 때 -
돌연!
계곡 밖에서 우렁찬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외침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계곡 입구에 두 사람의 괴한이 나타나
쏜살같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들의 비범할 신법은 멀리에서도 놀랄 만큼 기묘했다.
두 명의 괴한은 삽시간에 일장 가까이 까지 달려오자 일동은 깜짝 놀랐다.
긴 두루마기를 입고 죽장을 든 노인은 백발을 날리는 화산파 장문인 팔비신옹 문공태였고
다른 한 사람은 거구에 허리가 약간 구부정하고 유달리 긴 두 팔과 툭 튀어나온
눈을 번득이는 사람은 팔비신옹 문공태의 사제 다벽금강 도일강(多碧金剛 屠一江)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을 놀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창란을 비웃는 듯 사천경은
거만하게 이창란을 불렀다.
「내가 귀방에 가입하는 것은 별로 어려울 것 없소.
그러나 오늘 저녁은 귀방 고수들이 내 말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거북을 지킬 수 없을 거요!」
이창란은 그제야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그야 문제없소.
지금부터 노부는 거북을 잡을 때까지 당신의 지배를 받겠소.」
하고 쾌히 승낙했다.
「그런데 거북을 잡으면 그 분배권은 내가 장악 하겠소.」
「좋소! 다만 당신이 성의만 표시한다면!」
철검서생은 몸을 돌려 주약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와 소저간의 약속대로 무술계의 진귀한 보물도 선사하고
또 만년 묵은 거북으로 당신 사형의 병을 고쳐 드리겠소이다.
비록 제가 이방주에게 천용방에 가입할 것을 약속했으나
당신과 나의 약속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약란은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하지만 보물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약속을 이행하고 않고는 긴요한 일이 아니요.
그러나 사형의 상처는 더 이상 끌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음 놓으시오.
만일 만년 묵은 거북을 잡으면 먼저 당신의 사형의 상처를 치료해 드리죠.」
하고는 자신 있는 듯 어깨를 펴 보이는 것이었다.
한편-,
천중사추와 개비수 최문기는 갑자기 나타난 문공태 형제의 행동을 주시하며
만일 공격해 온다면 격퇴시킬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문공태 형제는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극도로 긴장되었던 이창란과 사천경의 사이는 사천경이 이창란에게
합류됨으로서 급격히 완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해천일수 이창란은 사천경이 천용방에 가입할 것을 약속받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지팡이를 끌며 서서히 팔비신옹 문공태 앞으로 다가갔다.
「문형! 오랜만이오. 우리가 괄창산에서 이별한 후 아마 일년 동안은 상면치 못했죠?」
그러나 팔비신옹은 무슨 말을 하려다 약간 웃는 듯 했다.
그의 웃는 표정은 상대방을 조롱하는 비웃음과 같았다.
팔비신옹의 거만한 태도에 은근히 화가 난 최문기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다가가서는 턱을 내밀었다.
「문형의 태도는 너무 거만하군!
당신은 귀가 먹었소? 왜 인사에 대답도 없으시오?」
그러자 팔비신옹 문공태가 입을 열기 전에 다벽금강 도일강이 가로 막고 나셨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많은 고수들이 모인 가운데 아직 당신이 떠버릴 순서가 아닌 모양인데?」
하고는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무술계에서도 그 이름이 쟁쟁한 최문기는 모욕적인 언사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더구나 누구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모욕이었다.
최문기는 태연한 척 하면서 암암리에 공력을 운행하고 갑자기 기합소리와 함께
일장을 휘두르고 말았다.
그러나 다벽금강은 눈썹도 까딱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선채 손바닥을 펴 가볍게 막으며
밀쳐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와 함께 강한 최문기의 장풍은 다벽금강의 손바닥에 마주치는 순간!
<평!>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산산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주위에 있던 돌과 모래가 하늘을 뒤덮어 버렸다.
그뿐 아니라 그 강한 장풍이 마주치는 여세에 최문기의 몸이 흔들흔들 움직이는 것이었다.
이때 이창란이 나서며 최문기와 다벽금강의 사이로 끼어들었다.
「잠깐! 문형과 동생 되는 분은 무슨 일로 이곳에 오셨는지 그것부터 알고 싶소!」
문공태는 냉소했다.
「왜 못을 곳에 왔소? 이형이 오는 곳에 온 것이 잘못이요?」
하고 자못 시비조로 눈을 부라리며 나섰다.
이창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소했다.
「하…… 하…… 겸손한 말씀! 이상한 자리에서 또 만나게 돼서하는 말이오!」
「이형의 말씀이 겸손하오! 하…… 하……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고 하시지?」
순간!
이창란의 수염이 빳빳하게 일어섰다.
그러나 문공태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이형! 사천경이 귀방에 가입한다고 좋아하진 마시오!
오늘 저녁의 사태는 십 개월 전의 괄창산과는 달리 무술계의 고수들이 많이 왔소.
하! 하! 당신들이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당해내진 못할 것이오!」
이창란도 하늘을 우러러 보고 대소했다.
「잘 알겠소! 그러나 천용방이 구대문파를 초청하여 검술 대회를 벌일 생각이었는데
만일 오늘 밤에 실행한다면 더욱 좋지요.」
하고 말했다.
이창란의 태도는 문공태에게 들으라고 하는 말이지만 주약란의 얼굴 변화를 살폈다.
그러나 서리같이 찬 주약란의 얼굴 표정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다만 그녀의 얼굴에는 고귀한 기질과 위엄이 내포되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지 모르게 위압과 존경의 마음이 절로 우러났다.
이때, 팔비신옹 문공태는 돌연 부드러운 태도로 이창란을 불렀다.
「이 방주께서 구대문파를 초청하여 무술대회를 연다는 것은 매우 치하하여 마지않소이다.
더구나 우리 화산파는 힘을 다해 귀방을 도와 드리겠소이다.
그러나 저는 오늘 저녁에 무술 대회를 열겠다는 것이 아니라
급히 의논할 일이 있어서 온 것이오.」
하고는 이창란의 눈치를 살핀 후 이창란이 말하기 전에
옆에 있는 철검서생을 돌아보며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이 분 사형과도 의논할까 하는데 어떠신지?」
이창란은 담담히
「무슨 일이오? 먼저 말씀을 하시면 고려 해 보겠소!」
하며 여유 있게 대답했다.
문공태는 내심으로
(정말 도둑놈의 영감쟁이가 간사스럽구나! )
하면서도 입가에는 웃음을 띠웠다.
「다름이 아니라 이형이 와호령에 오신 것은 만년 묵은 거북 때문이오?」
「그렇소마는 문형과 문형의 사제가 천리 길을 밀다 않고 이곳에 오신 것은 무엇 때문이오?」
「물어보지 않아도 알 것이오. 피차 한가지요.
그런데 우리가 거북 때문에 생사를 걸고 싸운다면 서로 희생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어부지리(漁父之利)를 줄 것이오!」
「문형의 말씀도 그렇긴 하오만은 어떤 고견이라도 있으신지?」
「저의 의견으로서는 서로가 적의를 버리고 협력하여 거북을 잡는다면 좋을 것 같소.」
「그럼 거북을 잡은 후에는? 우리 두 사람이 싸워서 이긴 사람이 거북을 갖도록 하자는 거죠?」
「우리 둘이만 싸운다는 것은 너무 단조로울 것 같소.
우리가 세 번 싸움으로 결판을 내는 것이 어떻겠소?」
하는데 갑자기 계곡 밖에서 대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웃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순식간에 세 사람의 괴한이 나타났다.
그들 가운데서 유난히 키가 작은 사람은 흰 삼베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에는 붉은 띠를 둘렀는데 입은 쭉 찌어진 듯 하고
큰 눈은 방금 잠에서 깬 사람처럼 반쯤 감고 납작 코에 염소수염이 달린 것 같았다.
좌우에 서 있는 두 사람의 키는 팔 척이 넘는 듯 옷차림은 난장이모양으로 흰 삼베옷에
붉은 허리띠를 하고 있었다.
그 두 사람의 키가 특별히 크기 때문에 난쟁이 키는 더욱 작게 보였고 세 사람이
똑같이 여위고 뼈만 남은 것이 특징이었다.
주약란은 그들을 보고 생각했다.
(이 세 사람의 생긴 모양이 똑 같이 추하고 옷차림마저 왜 저 모양일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때 ,
문공태는 세 사람을 보는 순간,
얼굴에는 희색마저 감돌며 유쾌하게 한바탕 웃는 것이었다.
「오늘 저녁에 이곳 와호령에 모인 사람은 모두가 무술계의 고수들이군!
이형은 구대문파 장문인을 만날 줄은 몰랐을 걸!」
하면서 주약란의 얼굴을 살폈다.
이창란은 설산파 장문인이 두 제자를 거느리고 올 줄은 몰랐다.
(천용방이 구대문파를 초청하여 검술대회를 연다는 소문은 이미 천하가 다 아는 일,
그렇다면 천용방을 원수처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모두 모인다면 우리의 실력으로서는 도저히 당할 수 없다.
더 모이기 전에 결판을 내야겠다.……)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것은 생각할수록 고수들이 더 모이기 전에 강적을 물리쳐야 함을 느꼈으나
한편으로는 주약란의 동태가 의문이었다.
주약란의 표정 만으로서는 언제 일격을 가해 올 것인지 짐작할 수조차 없는 일이었다.
그러자 백의의 난장이가 턱밑의 염소수염을 쓰다듬으며 이창란에게로 다가 왔다.
「실례가 많소! 저와 저의 두 사제는 오랫동안 서역에 머물러 있으면서
중원에 오질 않아 무술계의 변화에는 아는 바가 없소이다.
그런데 천용방이 구대문파를 초청하여 검술 대회를 연다는 소문을 듣고 왔소이다.」
하고는 주위를 둘러본 다음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에 검술대회야 말로 삼백년 전에 고산 소실봉에서의 검술대회보다 더 성대할까 하오!」
하는 그의 태도는 기세가 대단했다. 이때 개비수 최문기가 나섰다.
「등형! 될 수 있으면 삼백 년 전 소실봉의 무술대회의 이야기는 마시오.
비록 저는 그 당시 무술대회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그때 서열도 결정되지 못했고
더구나 애석하게도 귀파와 화산, 점창, 공동파는 패배하고 말았소.
지금 천용방이 무술계의 인사들을 초청하여 무술 대회를 연다 하지만 귀파도
초청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오.
등형이 소실봉의 무술대회와 구대문파를 말한다면 부끄러운 이야기요.」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데 우리들을 모욕하오?」
「나는 최모인(崔某人)이라는 사람이오. 그런 것은 알 필요 없소.
다만 소실봉에서 무참히 패배한 당신들은 문호를 청산하고 일찍 무술계에서
물러서는 것이 좋을 것 같소!」
날카로운 어조로 설산파뿐 아니라 화산파까지 모욕했다.
그러자 문공태는 화가 치솟았으나 일대 문파의 주지로서의 체면을 생각하고 꾹 참았다.
최문기의 노골적인 야유에 두 여윈 백의인은 동시에 음산한 웃음을 지으며
좌우로 개비수 최문기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섰다.
최문기는 두 음침한 백의인이 태연하게 다가오자
그들이 매서운 공력을 지닌 고수임을 깨닫고 즉시 기력을 운행하여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그러나 묘수어은 소천의는 최문기가 혼자 힘으로 그들을 당할 수 있을까 염려하여
최문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섰다.
최문기의 앞 거의 삼사 척 밖에까지 다가온 두 사람은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그렇다고 말도 하지 않는데도 움직이는 행동은 한 사람이 하는 것처럼
조금도 다름이 없어 오히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무술계의 고참이자 경험이 풍부한 소천의는 두 사람의 거동을 보고는
은연중에 저윽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무학에 비록 연합하여 싸우는 절기가 있지만 그것은 다만 적을 대할 때 쓰는
수법에 지나지 못한다. 천중사추의 사상(四象) 진법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것도 아닌 융합일체(融合一體)의 절기라도 배웠단 말인가)
이렇게 소천의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왼 쪽의 백의인이 손을 번쩍! 들면서 한 수 천외래운(天外來雲)으로
개비수 최문기를 후려쳤다.
그러나 암암리에 기력을 운행하고 만반의 준비로 그들의 거동을 주시하고 있던 최문기는
상대방이 공격을 가해 오자 재빨리 왼손을 휘둘러 일격을 막았다.
그러는 한편 소천의는 전신의 공력을 집중하여 오른편 백의인을 주시하고 있었다.
만일 그가 손만 쓴다면 뛰어나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소천의의 상상과는 달리 오른 편 백의인은 시종 조용히 서있을 뿐
최문기와 자기의 동료가 절기를 발휘하며 싸우는 것도 본척만척하고 서 있기만 하는 것이었다.
(제 3 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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