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20 장 선상(船上)의 네 소녀 <銅鉢飛雄>

오늘의 쉼터 2014. 6. 22. 13:19

 

제 20 장 선상(船上)의 네 소녀 <銅鉢飛雄> 
 

 

양몽환이 떠나가 버리자 이요홍은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더없는 모욕감에 수치를 느끼는 순간! 정신이 아찔하며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분하고 억울했다.

그 노여움은 분노로 변하고 끝내 땅을 구르며 통곡하고 말았다.

그러던 이요홍은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어나 앉았다.

 

  (두고 보자! 지금은 나를 싫어 하지만! 언젠가는 나를 따르게 만들겠다!)

 

  이렇게 생각한 이요홍의 마음은 양몽환에 대한 정열이 유유(幽幽)한 마음으로 변했다.

  한편, 뿌연 먼지를 날리며 양몽환의 모습이 점점 작은 점으로 변하면서 어느덧

그 까만 점은 먼지 속에 묻히고 말이 달리며 일으키는 먼지만 연기처럼 가늘게 날리다가는

그것마저 보이지 않게 되고 말았다.

 이요홍은 정신을 수습한 후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자기가 타고 온 말을 바라보다

 

「앗!」

 

하고 놀랐다.

 

지금까지 양몽환과 이야기 하느라고 말에게는 정신을 두지 않았었다.

그러나 말은 입과 코에서 피를 쏟은 채 죽어있는 것이었다.

  이요홍은 사지를 부들부들 떨며 공포 속에 빠져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웬일인가? 웬일인가?……)

 

  수없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이 죽은 원인을 알아내려던 이요홍은 번쩍 느끼는 것이 있었다.

 

  (양몽환의 일격 신용요미(神龍搖尾) 탓이다!)

 

  그것은 과연 사실이었다.

 

  이요홍이 양몽환의 가슴을 향하고 달려들어 안길 때 양몽환이 내려친 신용요미의 한 수는

이요홍을 스치고 뒤에 있던 말에 명중하여 쓰러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런 것을 양몽환에게 울며 사랑을 고백하느라고 이요홍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요홍은 얼마 동안 묵묵히 서서 쓰러져 있는 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죽은 말이 가엾고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이요홍의 마음속에는 양몽환을

미워하는 느낌은 조금도 없는 것이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미워지지 않는 양몽환이었다.

그만큼 이요홍의 가슴 속에는 양몽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지도 몰랐다.

 양몽환은 약 십리 길을 달리다 앞을 가로막는 강가에서 말을 멈추었다.

그 강은 바로 민강(泯江)이었다.

 

  (아미산까지는 오륙백 리가 넘는 길이다.

아무리 말을 타고 달린다 해도 하룻길,

그러나 배를 타고 한나절만 가면 가정(嘉定)에 닿을 것이고

아미산은 그곳에서 불과 백리 밖에 안 된다.

쉬지 않고 달린다면 이경(二更)쯤 도착할 것이다.)

 

  이렇게 계산한 양몽환은 말을 버리고 배를 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는 배를 찾아 하류로 내려가다 몇 척의 범선을 발견하고 말을 멈추었다.

이곳은 민강의 중요한 도선장(渡船場)으로서 여인숙과 집도 있는 비교적 조용한 곳이었다.

  양몽환은 배를 구하기 위하여 길가의 술집으로 들어가 심부름꾼을 불렀다.

 

「술 한 병만 주시고 혹시 가정(嘉定)까지 가는 배가 있는지 알아봐주시오!」

 

  심부름꾼은 술병을 양몽환 앞에 놓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곳 황가점촌(黃家店村)에는 없소.

가정까지 가려면 숭령(崇寧)으로 가야합니다.」

 

  양몽환은 술을 한 잔 따라 마신 후 미간을 찌푸렸다.

 

「저 쪽에 있는 배는 무슨 배들이요?」

 

  많은 범선들을 가리켰다.

 

「그건 고기 잡는 배가 아니오?」

 

「고기 잡는 배는 못타오?」

 

「글쎄 손님은 안태우지만!」

 

「삯을 후하게 주겠소, 가서 알아보시오.」

 

「알아보긴 하겠소마는 갈지 모르겠소.」

 

하고 심부름꾼은 밖으로 뛰어 나갔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들어오는 그의 얼굴에는 희색이 가득했다.

 

「손님은 참 운이 좋소이다. 마침 가정까지 가는 배가 있소.」

 

「아! 잘 됐소.」

 

「그런데 그 배에는 무녀들이 타고 있는데 마침 뱃사공도 아는 분이라 쉽게 응낙이 되었소.

빨리 가시오!」

 

양몽환은 술값에 더 후한 값을 치르고 선창가로 달려 나왔다.

선창에는 심부름꾼의 말대로 방 돛을 단 배가 마침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양몽환은 급히 배에 올랐다.

 

배에 오른 양몽환을 아래위로 훑어보던 사공은 양몽환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손님! 나와도 좋다고 하기 전에는 절대로 배 위에 나오면 안 되오.

가정에 도착하면 알려 드리겠소!」

 

하고는 문을 받고 나가 버렸다.

 

  문이 잠기자 어두운 방 안은 꼭 감금당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차차 어둠에 눈이 익숙해진 양몽환은 한 쪽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았다.

이윽고 배가 미끄러지며 물을 가르는 소리와 무녀들의 이야기 소리가

간간이 들려오는 것을 느끼며 양몽환은 어느덧 깊은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어렴풋이 잠이 깬 양몽환은 여자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다

흠칫 놀라고 말았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이상한 옷을 입은 소녀가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것도 그냥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웃으며 지켜보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의아한 눈으로 소녀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옷은 불과 무릎을 덮었을 뿐 아랫도리가 거의 보일 듯 하였고 맨발이었다.

그러나 소녀의 얼굴은 백합처럼 희고 아름다워 양몽환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무슨 여자가 이 모양이람? 남자 앞에서……)

 

하는 순간_

 

문이 열리며 세 명의 소녀가 막 나타났다.

 

양몽환은 자기의 눈을 의심하며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나 세 명의 소녀는 먼저 들어와 있던 소녀와 쪽 같은 옷차림이었고

얼굴도 거의 같은 것 같았다.

양몽환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으리만치 착각하며 어리둥절해 있었다.

 

그때-,

 

먼저 들어와 있던 소녀가 양몽환에게 다가서며

 

「당신은 무엇 하는 사람인데 남의 배에 타고 있소?」

 

하고 묻는 소녀의 음성은 옥을 굴리는 듯 낭랑하고 청아했다.

 

양몽환은 어떻게 된 일인지 분간할 수가 없어 망연히 섰다가

사공이 주의 주던 말을 퍼뜩 되새겼다.

 

  (꼼짝 말고 나오지 말라!)

 

  양몽환은 사공의 말을 상기하고 대강을 짐작할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급히 가정까지 갈 일이 있어서 사공의 양해를 받고 배에 탔습니다.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손히 읍을 했다.

 

  네 소녀는 그 말을 듣자 얼굴색이 돌연 변하면서

서리 같은 얼굴로 노기까지 띄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앞서 말한 그 소녀가 냉소하며

 

「이 뱃사공은 담도 큰 놈이군!

우리가 기력을 운행하고 있을 제멋대로 사람을 태우고……」

 

하고는 양몽환을 바라보며 힐책하는 것이었다.

 

「이 배에 누가 타고 계시는지 당신은 알고나 있어요?」

 

「그것은 모릅니다만, 남의 배를 좀 빌려 탔다고 해서

무슨 무술계의 법칙이라도 범했다는 것인가요?」

 

하고 말했다.

그것은 무술계에서는 항상 적이라도 배에 태워 주는 경우가 있고

 더구나 네 명의 소녀가 똑 같이 옷차림을 한 것을 보고 이들도

무술인들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쑥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네 명의 소녀는 양몽환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모르는 듯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맨 끝에 서 있던 소녀가 옆의 소녀를 불렀다.

 

「언니! 무술계가 뭐죠? 규칙은?」

 

  그 소녀도 얼른 무슨 뜻인가 생각이 안 나는지 고해를 갸웃거리다가

 

「글쎄…… 무술계 규칙이라면 무술계 사람들이 쓰는 법이겠지

뭐하고 대답하는 소녀의 태도가 천진한 것을 본 양몽환은 싱긋이 웃으며

 

「바로 맞았습니다.」

 

하고 참견했다.

그러자 소녀는 입을 삐죽 내밀며

 

「누가 당신에게 물었어요? 왜 허락도 없이 남의 배에 탔느냐 말이 에요?」

 

  양몽환은 소녀들의 아랫도리가 거의 보일 듯 하여 외면하고

 

「미안합니다. 사공이 타라기에 탔소마는 가정 까지만 태워다 주십시오.

지금 물 속으로 빠져 죽으라는 말씀인가요?」

 

하고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네 소녀는 서로 소곤소곤 의논을 한 후,

한 소녀가 양몽환 앞으로 다가서며

 

「우리 아가씨는 성질이 매우 사나운 사람이에요.

만일 당신이 이배에 탄 것을 알면 강에 밀어 넣을지도 몰라요.

될 수 있으면 아가씨가 잠들고 있는 사이에 배에서 떠나세요!」

 

하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실소하며

 

「지금 배가 달리고 있는데 어떻게?」

 

하는데

 

  홀연! 

 

  비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네 소녀는 재빨리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눈 깜짝 하는 사이에 사라진 그들의 매우 빠른 동작을 본 양몽환은 크게 놀랐다.

 

(저렇게 천진난만한 맨발의 소녀들이지만 분명히 쟁쟁한 무공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술계를 자주 돌아다닌 것 같지도 않고……

그들의 무공 정도를 알 수가 있어야지……)

 

하고 있을 때 문이 다시 열렸다.

그리고는 앞서 나간 소녀가 백옥쟁반에 추옥으로 만든 차를 가져왔다.

양몽환은 벌떡 일어나면서

 

「죄송합니다. 저는 아직 목이 마르지 않습니다.」

 

하고 사절했다.

 

  그러나 백의 소녀는 매우 차디 찬 얼굴로 쟁반을 양몽환에게 내밀면서 냉랭하게 말했다.

 

「우리 아가씨가 이 차를 들고 조용히 누워서 약효가 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분부입니다.

이 차 안에 든 약은 비록 독성이 강하지만 고통은 추호도 없습니다.」

 

  양몽환은 그 말을 듣자 갑자기 한기가 들며 오싹했다.

양몽환은 급히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제가 여러분에게 잘못이 있다면 독약을 먹고 죽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 죄도 없는 저에게 독약을 마시고 죽으라고 한다면……

저는 마실 수 없습니다.」

 

  공포에 질린 듯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백의 소녀는 여전히 냉랭한 표정이었다.

 

「원래 우리 아가씨가 당신을 물에 빠뜨려 죽이려는 것을 우리들이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애원해서 약 사발로 관대히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양몽환은 갑자기 얼굴빛이 변하여 미친 듯이 크게 웃었다.

 

「하…… 하……」

 

  양몽환이 미친 듯이 웃는 것을 보던 백의 소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웃기는 왜 웃으시죠? 웃지 말고 속히 결정하세요. 안받으시겠어요?」

 

  양몽환은 웃음을 멈추고

 

「당신 집 아가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군!」

 

하고 빈정거렸다.

 

  그러자 소녀는 양몽환이 진심으로 하는 말인 줄 알고

 

「맞았어요, 우리 아가씨는 정말 아름답고 좋은 분이에요.」

 

「흥! 미안하지만 아가씨에게 음독을 거절한다고 전하시요.」

 

「뭐예요? 감히 우리 아가씨의 분부를 거절하겠다고요?

아가씨도 한번 한다면 꼭 하는 성질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한번 안 먹는다면 안 먹는 성질입니다」

 

「그럼 강물에 투신하시겠어요?」

 

「강물에 빠져 죽으라고? 저는 그런 마음도 없습니다.

미안하지만 아가씨께서 몸소 저를 강물에 쳐 넣으라고 전해 주십시오.」

 

「알았어요! 원래 당신도 좋은 사람이 아니군요?」

 

「그럼 나쁜 사람인가요?」

 

「아름다운 우리 아가씨 보고 당신 같은 사람을 몸소 강에 쳐 넣으라는 말을 함부로……

그럼 아가씨를 한 번 보시죠.」

 

  그러나 양몽환은 대답 대신 백의 소녀의 얼굴을 차근차근히 바라볼 뿐이었다.

 

  (둥근 얼굴에 눈이 빛나고 퍽 아름다운 소녀군……)

 

  이렇게 생각하며 서 있는 양몽환을 백의 소녀는 이상한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양몽환이 자기를 유심히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생긋 웃으며

 

「왜 보고만 있어요? 저도 예뻐요?」

 

  양몽환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쁘기는 합니다. 그러나 옷을 다 입었으면 더 예쁠 것을……」

 

하며 아랫도리가 다 보이는 옷을 턱으로 가리켰다.

 

「왜요? 집에서는 더 짧게 입는데요.」

 

「그래요? 집은 어디 있는데요?)

 

하는데 별안간 문 밖에서 밝고 청아한 가야금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백의 소녀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며 양몽환에게 애원하는 것이었다.

 

「빨리 이 약을 드세요! 제가 아가씨에게 야단맞지 않게요!」

 

  그 말을 듣고 양몽환은 빙긋이 웃었다.

 

  (정말 천진하군! 독약을 먹고 죽으라고 애원하는 이 소녀야 말로 가엾군! )

 

  백의 소녀의 애처로운 애원을 들으며 양몽환은 난처하지 않을 수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소녀의 말을 듣는다면 자기는 죽어야 하겠고 안 듣는다면

이 소녀가 야단을 맞는다는 것에 망설이고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때였다.

백의 소녀는 양몽환이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하자 돌연!

와락 달려들어 양몽환을 휘어잡았다.

그 동작은 번개 같이 민첩했다.

양몽환은 깜짝 놀라 재빨리 몸을 피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주약란이 가르쳐 준

오행미종보법을 발휘하고 말았다.

 

그러나 백의 소녀도 물러나지 않고 다음 공격을 가해왔다. 

 백의 소녀의 공격은 갈수록 빠르고 날카로웠다.

뿐만 아니라 백의 소녀가 쓰는 수법도 양몽환이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이상한 무술이었다.

양몽환은 소녀의 날카로운 공격에 내심 저윽이 놀랐다.

그러나 시종 침착하게 오행미종보법을 발휘하며 소녀의 공격을 막았다.

그들이 약 사 십 수나 싸웠을 때 돌연 밝고 청아한 비파 소리가 들려왔다.

백의 소녀가 손을 멈추자 양몽환도 공격을 멎었다.

 

그 순간!

 

백의 소녀는 갑자기 허리를 굽히면서 양몽환의 다리를 후려치며 달려들었다.

 

그때였다.

 

양몽환은 재빨리 그녀의 급습을 피하는 찰나,

양몽환을 공격하기에만 여념이 없던 백의 소녀가 몸을 날려 들어오자

백의소녀의 아랫도리가 환하게 들여다보여 어떻게 몸을 처신해야 할지

분간을 할 수 없도록 마음이 설레었다.

그러나 백의 소녀는 양몽환이 바보처럼 얼굴을 붉히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재차 공격을 가해왔다.

그 바람에 뒤로 넘어질 뻔한 양몽환은 화를 내며 오른 손에 힘을 주어 내려치고 말았다.

양몽환의 공격이 날카로워짐을 느낀 백의 소녀는 아무리 공격해도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던지 몸을 날려 창밖으로 뛰어 나가고 말았다.

양몽환은 잠시의 여유도 주지 않고 보검을 뽑아 들며 백의 소녀가 나간 창밖으로 따라 나갔다.

  그러나 이 어찌된 일인가?

지금까지 자기와 싸우던 소녀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눈을 둥글게 뜬 채

백옥 쟁반을 들고 양몽환을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었다.

 

「? ……」

 

  눈이 휘둥그레진 양몽환은 자기의 눈을 의심한 듯 깜짝 놀라서 다시 바라보는 순간!

또 한번 기절할 듯 놀랐다.

백옥 쟁반을 들고 있는 소녀 옆에는 호위하듯 처음의 네 명의 백의 소녀가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귀신에 흘렸는가? ……)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양몽환은 주춤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그때

 

「얏!」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네 명의 소녀는 양몽환의 요혈을 노리고 일시에 달려들었다.

양몽환은 황급히 몸을 날려 반격 태세를 갖추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도대체 나를 어떻게 할 셈이오?

만일 당신들이 계속 이렇게 대한다면 목숨을 걸고라도 싸우겠소!」

 

하고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네 소녀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잠잠히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다.

 

양몽환은 더 참을 수가 없어 대갈일성하며 왼 손을 번쩍 들어 나한서벽(羅漢舒劈)을,

오른 손으로는 비발동종(飛발동鍾)으로 네 소녀를 후려치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네 소녀는

 

  돌연!

 

  양 쪽으로 갈라지면서 재빨리 공격을 가해 양몽환을 선창 안으로 물러서게 했다.

  양몽환은 잇따른 후퇴에 분통이 터져 암암리에 단전(丹田)의 진기를 집중하여

일약 선창을 벗어날 생각으로 운용분무(雲龍噴霧)를 휘두르고 말았다.

  과연!

  천강장 삼식육식(天?掌三十六式) 가운데 대절삼기(大切三氣)의 위세는

어마어마하여 선창을 벗어 날 수가 있었다.

  네 소녀는 양몽환이 번개같이 자기들의 협공을 피하자 무공을 전개하여 뒤쫓았다.

그것은 마치 나비가 꽃을 둘러싸고 달려드는 것과 같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네 소녀들의 괴이한 공격은 추호도 양보하거나 피하는 기색이 없이 갈수록

기세가 대단하고 날카로웠다.

일단 소녀들의 공격권에서 벗어난 양몽환은 자기의 무공으로도 격퇴시킬 수 없는

소녀들의 공격을 오행미종보법으로 막기만 했다.

  네 백의 소녀들은 한 소녀가 사 오 십 수나 공격을 해도

그 맹렬한 공격을 교묘히 피할 뿐 반격을 하지 않는 양몽환을 보고

제일 나이 어린 소녀가 야무지게 외쳤다.

 

「언니들 손을 멈추세요!」

 

  세 소녀들이 손을 멈추자 그 어린 소녀는

 

「우리가 공격을 해도 그는 한 수도 반격을 하지 않는 것은 무슨 딴 생각이 있는지 몰라요.

저러다가 반격을 하면 우리는 틀림없이 질것에요.」

 

  세 소녀는 똑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정말 그렇군, 저 사람의 무공은 매우 강해요.」

 

  우리가 이기지 못한다면 아가씨에게 말씀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은 데요.」

 

하고 의논하는데

 

  돌연 맑고 아름다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분이 오행미종보법을 쓰는데 너희들이 어찌 당하겠니?」

 

  양몽환은 깜짝 놀랐다.

사실 양몽환은 반년 동안 위험한 일에 부딪쳤을 때마다 오직 오행미종보법으로

강적을 격퇴했지만 아무도 자신의 수법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자기가 쓰는 수법의 이름을 알고 말하는 소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소리의 주인공은 전신에 흰 옷을 입고 바람에 옷자락을 휘날리며 서 있는 여자였다.

마치 선녀처럼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그 여자는 양몽환의 아래 위를 찬찬히 살핀 후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나는 당신을 죽이지는 않겠소마는 그대로 둘 수도 없어요.」

 

  냉정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그럼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그러나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지금까지 차가운 표정으로 양몽환을 노려보며 그냥 두지 않겠다던 여자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하듯이 양몽환을 바라보며 입을 여는 것이었다.

 

「나는 당신과는 어떠한 원한도 없는 몸이에요.

그러나 불쌍하게 정말 불쌍하게 돌아가신 어머님의 말씀을 듣지 않을 수 없어요.

당신은 몰라요.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비참하게 돌아가셨는지……」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눈물을 닦아낸 여자는 태도를 바꾸어 웃으면서

다음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를 거예요.

그러나 만일 당신이 내가 부는 일곡비파(一曲琵琶)를 알아  듣는다면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않겠어요.」

 

하고는 합장을 하는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리고 또 무슨 말인지 갈피를 잡을 수없는 양몽환은

혼란한 정신을 수습하며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여자의 몸매는 가늘고 균형이 잡혀 있기는 하였지만 무술을 연마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크고 둥근 눈의 광채가 부드러웠으나 주약란의 눈처럼 사람을 위압하지는 못했다.

양몽환은 비파라는 소리에 주약란의 가야금을 생각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앞에 있는

여자를 향하여 입을 열었다.

「저는 음률을 모르는 사람이라 들려주시겠다는 비파도 공연한 헛수고에 지나지 않을 것이요.

대단히 미안한 마음이오!」

 

  그러나 여자는 담담히 웃으며

 

「미리 겁낼 것은 없어요. 알아듣기 쉬운 곡으로 하겠어요!」

 

하고는 네 명의 소녀에 에워싸여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참 이상한 일이군…… 도대체 어찌된 셈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양몽환의 생각도 잠시 북을 두드리는 듯

요란한소리가 양몽환의 고막을 울렸다.

그와 함께 배가 기우뚱거리며 요동을 치면서 금방 뒤집혀질 것 같이 흔들렸다.

 

「앗!」

 

  양몽환은 고함을 지르며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자 노를 젓던?사람들이 노를 젓지 못하고 정신없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이 어찌된 일인가?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양몽환은 요란한 소리가 나는 곳으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 …………」

 

  양몽환은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양 쪽으로 주렴(珠簾)을 드리운 방 가운데에 좀 전의 여자가 앉아 비파를 뜯고 있으며

그 옆에는 네 명의 소녀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요란하게 고막을 째는 듯한 소리는 바로 여자가 타는 비파 소리였다

그 비파 소리에 놀라 뱃사공들이 정신을 잃고 우왕좌왕 하는 바람에

노도 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양몽환은 한 참 비파를 타는 여자를 주시하다가 정중히 음하며 입을 열었다.

 

「소저께서는 비파를 타지 마시오!」

 

「왜 두려워요?」

 

「아니 두려울 것은 없소.

그러나 비파 소리에 놀라 뱃사공이 노를 젓지 못하고 있소.」

 

「호…… 호…… 그래서 배가 뒤집히면 죽는 것이 겁나세요!」

 

「그렇소. 배가 뒤집히면 소저께서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오.」

 

「알겠어요. 그러나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하고는 옆에 있는 소녀에게 귓속말을 하자 소녀는 금방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들어왔다

 

「이제는 안심하시고 내 비파를 들으세요.

뱃사공들의 혈도를 마비시키고 다른 소녀들이 노를 젓고 있어요.」

 

하고는, 생글생글 웃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어이없는 듯 입을 다물고 여자가 들고 있는 비파를 보고 있었다.

그 여자가 들고 있는 비파는 양몽환이 일찍 보지 못한 진귀한 비파였다.

보통 오동(梧桐)이나 단목(檀木)으로 만든 비파가 아니면 무술계에서 쓰는

 철강재(鐵剛製) 비파만 보던 양몽환으로서는 백옥으로 우아하게 만들고

용이 날아가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 비파는 정말 진기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백옥으로 만든 비파에 그려져 있는 용의 그림은 살아있는 용처럼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넋을 잃고 비파만 바라보는 양몽환을 지켜보던 여자는 은방울을 굴리듯 맑은 목소리로

 

「무얼 그렇게 보세요?

어머님이 쓰시던 것을 제가 물려받았어요.

별로 대단치도 않은 거예요.」

 

하고는 비파에 하얀 손을 대는 순간 오장육부를 녹이는 듯 가냘프고

청아한 비파 소리가 온 방안을 가득 채우는 것이었다.

이때 양몽환은 파양호에서 주약란이 타던 옥금(玉琴)을 생각하며 비파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끌려들고 말았다.

그 소리는 어떤 신비한 마취약처럼 차차 양몽환의 내공을 풀어 놓으며

온 몸이 나른해 져서 지나간 몇 년 전의 일도 생각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가 하면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게 되고

또 그런가 하면 무아지경에 도취되어 스르르 눈을 감고 잠을 자게도 하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점점 정신이 혼미하여지며 기억이 몽롱해 짐을 느끼는 순간!

이마에 구슬땀을 쭉쭉 흘리며 안절부절못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무엇인가 뇌리를 때리고 지나가는 찰나!

양몽환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몸을 일으켜 밖으로 뛰어 나가고 말았다.

 

  그러는 한편 - ,

 

  양몽환의 내공이 굉장히 세고 깊음을 안 비파를 타고 있던 여자는

양몽환이 더 견디지 못하고 뛰어 나가자 손을 멈추고 급히 일어났다.

그러나 양몽환은 몇 걸음 앞을 뛰고 있었다.

이때 배는 빠르게 달리고 있었으며 양용환은 음률에 도취되어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워낙 천성적으로 영리하여 작은 영감으로서도 자신이

그 음률에 항거하지 못함을 깨닫고 자결할 마음이 생기자 선창을 뛰쳐나온 것이다.

소녀가 재빨리 선창을 쫓아 나와 보니 양몽환이 벌써 갑판에서 투신할 자세를 취하고 있어

소녀는 재빨리 손가락을 놀려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자애로운 어머니의 부르심과도 같아 양몽환은 갑자기 죽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니 선창 문에 기대어 있는 소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수심에 가득 찬

눈에는 눈물을 머금고 있었고 숨소리도 험한 것이 몹시 흥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 양몽환은 제 정신을 되찾아 가슴이 아픈 것을 보니

오장이 상처를 입은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기력이 없어 걸음을 옮길 수도 없음을 알았다.

소녀는 양몽환의 얼굴 기색을 보자 매우 미안한 듯 길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마음으로는 저를 미워하시죠?

저도 이 곡이 그렇게 큰 위력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당신께서는 중상을 입었으니 선창으로 들어가십시오.

제가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양몽환은 고개를 흔들며 쓴 웃음을 짓고 말했다.

 

「감사한 말씀이오나 양몽환은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

치료까지는 받을 필요가 없으니 소저께서는 발을 돌려 선창으로 들어가서 쉬시고

가정까지만 데려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녀는 비파를 내리더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손을 합장하고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 어머니! 작은 나비는 어머님의 유언을 잊지 않고 이 평생에 어느 남자를 막론하고

좋아하질 않을 것이오나 제가 미진이혼(迷眞離魂) 곡으로 사람의 오장에 중상을 입혔으니

꼭 치료를 해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그를 치료하질 않으면 그는 살지 못할 것입니다.

어머님, 제게 그를 치료할 기회를 주십시오.」

 

  기도가 끝난 후 소녀는 양몽환에게 말했다.

 

「제가 이미 어머님에게 기도를 했으니

당신은 마음 놓고 치료를 받아 주십시오.」

  양몽환이 남몰래 기력을 운행해 보니

상상외로 가슴과 배 사이에 격동을 느끼고 진기가

단전(丹田=아랫배)에 미쳐 내상(內傷)임을 알았다.

만일 속히 치료하지 않으면 영원히 무공을 배우기는 힘들다고 생각되었다.

그는 소녀의 말을 듣고 혼자

 

  (내가 만일 치료를 받질 않으면 아마 가정까지도 못갈 것이다.」

 

하고 생각했다.

 

그는 생각이 이에 미치자 소녀를 따라 선창으로 들어갔다.

소녀는 먼저 양몽환을 앉히고는 비결을 가르친 후 그로 하여금 몇 번이고 반복하도록 했다.

소녀가 가르쳐 준 대로 한 시간 정도 반복을 하고나니

가슴이 후련해지며 상처의 고통이 많이 가라앉았다.

이때 네 소녀가 선창 안으로 들어오더니 소녀의 양쪽에 줄지어 서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자칭 나비라는 소녀가 가르쳐 준 대로 공력을 운행한 후 눈을 천천히 뜨자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멍하니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에는 수심마저 맴돌고 있었다.

양몽환이 눈을 뜨자 소녀는 방긋이 웃더니 물었다.

 

「상처가 나은 것 같아요?」

 

  양몽환은 말했다.

 

「많이 나은 것 같소.」

 

  나비 소녀는

 

「제가 말씀드린 대로 두 번만 공력을 운행하시면 완전히 나을 거예요.」

 

  양몽환은 어떤 대답을 해야 좋을지 생각이 나지 않아 담담하게 웃기만 했다.

 

  소녀는 길게 한숨을 몰아쉬더니 말하기를

 

「정말 그 한 곡이 당신의 내장을 그렇게 상하게 할 줄은 몰랐어요,

그런 줄 알았더라면 제가 그 곡을 타지 않았을 걸 그랬어요,」

 

그녀의 진지한 표정과 거동을 보아 거짓이 없는 듯 했으나

양몽환은 정말 그녀가 그 곡조가 무서운 것인 줄을 몰랐을까 하고 의심까지 했다.

그러자 그 소녀는 길게 탄식을 하더니 옆에 서 있는 시녀에게 명하여

작은 옥함을 가져오게 하더니 뚜껑을 열고는 붉은 알 약을 두알 꺼내어

양몽환에게 주는 것이었다.

「이 알약은 저의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깊은 산중에서 약초를 캐어 만든 약이에요.

그때 어머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약을 먹으면 공력을 저항할 수 있다 하셨으니

이 약으로 제가 당신에게 입힌 상처의 보상을 하겠어요.」

말이 끝나자 소녀는 알약을 양몽환에게 내밀었다.

양몽환은 사양했으나 그녀의 정성이 지 극하기에 마지못해 약을 받아 들고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려는 찰나, 옥함 안을 보고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옥함 안에는 세 게의 알약과

 

「귀원비급」

이라 책이 있는 들어있었다.

만 천하를 흔들던 진귀한 책이 돌연 눈앞에 나타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나비 소녀는 양몽환이 옥함을 들여다보고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서 있는 것을 보자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이 돌아가실 때 다섯 알 밖에 남겨 놓지 않았어요.

이제 당신에게 두 알을 드리고 세 알이 남았습니다.」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감사한 후 선창을 나왔으나 그는

 소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그의 머리에는 줄곧 옥함 안에 들어 있는 귀원비급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묵묵히 뒤 선창으로 들어가 앉아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를 썼으나 마음은

귀원비급에 들떠 쉽사리 안정할 수가 없어 몇 번이고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그때 돌연 눈앞이 번쩍하더니 제일 작은 백의 소녀가 웃으며 들어왔다.

그녀의 밝은 웃음은 아주 자연스러웠다.

부끄러워하는 빛도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작고 흰 손으로 양몽환의 오른 손목을 잡아끌며 말했다.

 

「가세요, 우리 아가씨가 함께 이야기나 나누잡니다.」

 

「무슨 이야기를?」

 

「저는 다만 모셔 오라는 분부로 왔는데 어떻게 알 수 있어요?」

 

「그럼, 가 봅시다.」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도 남자들을 싫어 하셨고

아가씨도 역시 남자는 좋아하질 않아요.」

 

  양몽환은 마음이 섬뜩해지며

 

  (혹시 나를 배에서 내쫓을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나?)

 

하고 마음속으로 궁금히 여겼다.

 

  그러나 그는 소녀의 뒤를 따라 선창을 나왔다.

 

  두어 걸음 앞서던 소녀는 갑자기 뒤돌아보며 말했다.

 

「저의 이름을 아세요?」

 

「모릅니다!」

 

「우리 세 사람과 아가씨가 다 흰 옷을 입고 있죠?」

 

  그녀의 천진함에 양몽환은 싱긋이 웃으며 말했다.

 

「그것도 몰랐소.」

 

  백의 소녀는 픽 하고 웃더니 말했다.

 

「당신은 정말 둔하군요. 그것도 아직 모르셨다니……」

 

  양몽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의 소녀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 제가 말을 잘못했군요.

제가 이름을 밝히질 않았으니 이름을 아실리가 없죠.」 ,

 

  그제야 양몽환은

 

「당신들은 어디서 왔으며 가정까지 무슨 일로 가시죠?」

 

「우리는 백화곡(百花谷)에서 오는 길이에요.

어디로 가는지는 저도 몰라요.

아가씨에게 물어 보세요.」

 

  양몽환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

 

「백화곡이 어디 있죠?」

 

  백의 소녀는 픽 웃더니 말했다

 

「당신은 백화곡을 몰라요?

그 곳은 꽃이 있고 풀도 있고요.

또 놀기도 좋은 곳이에요.

또 토끼, 노루, 나비, 밝고 큰 연못이 있으니

목욕도 하고 나비도 잡고 참 좋은 곳이에요.」

 

  둘이 말을 주고받고 하는 동안에 선창 문 앞까지 다다라

그들은 선창 안으로 들어섰다.

소녀가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 그분을 모셔왔습니다.」

 

  소녀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본시 폐를 끼치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한 가지 일이 생각나서 물어보고자 오시라 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은 괄창산이 어디 있는지 아세요?」

 

「괄창산은 이곳에서 수 천리 떨어진 절강성(淅江省)동부에 있습니다.

배를 타고 진강(鎭江)에서 내리시면 됩니다.」

 

「당신은 가본 일이 있으세요?」

 

「두어 번 가 봤지요.」

 

「그럼 틀림없이 백운협(白雲峽)을 알고 계시겠군요!」

 

  양몽환은 마음이 뜨끔했다.

 

  (반년 전에 주약란의 상처 요양을 위해 절강성 동부에 갔을 때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이 백운협이라는 말을 들은 듯한데 이 소녀는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하려고 할까)

 

  그는 혼자 이렇게 생각한 후 반문했다.

 

「제 생각에는 여러분은 밖에 잘 나오지 않는 분 같은데

괄창산 백운협에는 무슨 일로 가시죠?」

 

「당신의 추측이 옳습니다.

저는 백화곡에서 성장하여 금년에 십칠 세가 되지만

오늘날까지 그곳을 한 번도 떠난 일이 없어요.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 십년 후에 괄창산에 가서

한 사람을 찾아보라는 유언이 있어 할 수 없이 가는 길입니다.」

 

「괄창산에 가서 누구를 찾으시려는 거죠?」

 

「조(趙)씨라는 분인데 이름을 몰라요.

그래 어머님이 그 사람의 얼굴을 그려 주셨으니 용모는 알고 있지요.)

 

「그를 찾아서는?」

 

  소녀는 눈에 눈물을 머금고 말했다.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실 때 그 사람을 찾아 비파 곡을 타 주라고 하셨어요.」

 

「그 끔찍한 곡을 사람에게 들려준다고요?」

 

「어떤 의미로 그러셨는지는 몰라요.

그저 어머님이 말씀하셨으니 저는 그 말씀을 좇을 뿐입니다.

그 곡이 어떤 곡이라는 것은 당신이 듣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죠.」

 

「?…………」

 

「저의 어머님은 틀림없이 그 사람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모양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일 거예요.」

 

「고통뿐일까요? 상처, 나중에는 죽게까지 되겠죠?」

 

「그러기 때문에 저는 지금 주저하고 있어요.

어려서 어머님이 비파 타는 법을 가르쳐 주실 때

그 곡을 들으면 고통을 느낀다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배웠죠.

그 후 제가 자란 뒤 귀원비급을 보고서야

그 곡조가 많은 곳에 쓸 수 있음을 알았으나 믿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당신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서야 귀원비급의 기록이 정말인 것을 알았어요.」

 

  양몽환은 겹겹이 쌓인 의심을 풀 수가 없었으나

그녀의 진지한 표정은 거짓말이 아닌 듯했다.

  생각할수록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럼 당신은 왜 그 곡을 타도 아무 일이 없죠?」

 

  소녀는 웃으며 말했다.

 

「귀원비급에 대반약현공(大般若玄功)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연마하면 아무 것도 겁나지 않아요.

또 어릴 때 어머님이 대반약현공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 뒤 귀원비급에 기록된 것을 보고 정말 신기함을 알았어요.」

 

  양몽환은 혼자 생각했다.

 

  (대반약현공은 아마 극히 높고 무서운 내공인가 보군.

그런데 연약하게 생긴 여자가 무공을 연마한 사람 같지는 않는데 정말 이상하다)

 

  소녀는 양몽환이 멍하니 자기를 바라보고 아무 말이 없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저만 보고 계시죠?」

 

  그러나 양몽환은 아무 말도 못했다.

  소녀는 돌연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 주시겠어요?」

 

  양몽환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아가씨는 귀원비급의 절학을 다 배워 천하제일의 무공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몸인데

저 같은 사람이라도 필요하신지요?」

 

  소녀는 맑은 눈동자로 양몽환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귀원비급에 기록되어 있는 비결은 제가 다 알고 있지만

대반약현공의 비파 타는 것을 모르고 있어요.」

 

  양몽환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으며 담담하게 웃었다.

 

「여러분이 조씨 이외에 또 다른 사람은 찾는 분이 없습니까?」

 

「어머님이 한 사람만 말씀하셨으니 나는 다른 사람을 찾을 필요는 없죠.」

 

「주씨란 소녀를 아시오?」

 

「저는 다섯 사람밖에 아는 사람이 없어요.

어머님과 네 명의 시녀뿐,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이제는 네 사람밖에 모르죠.」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싱긋이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제 당신을 알았으니 모두 다섯 사람이군요.」

 

하고는 다시 이었다.

 

「당신은 양몽환이세요?」

 

  순간, 양몽환은 가슴이 섬뜩했다.

 

  (배 위에 오른 후 내가 성명을 밝히지 않았는데 어떻게 내 이름을 알까?)

 

하고 생각했다.

 

  소녀는 아름답고 천진난만할 뿐 아니라 생김새도 영리한 것 같이 보였다.

 

「자기가 한 말을 잊으셨어요?」

 

  양몽환은 자기가 언제 이름을 말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정말 제가 언제 이름을 밝혔는지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방금 당신이 상처를 입었을 때 저의 치료를 안받겠다면서

이 양몽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그제야 양몽환은 얼굴을 붉혔다.

 

  (이 소녀의 머리는 아주 영리하구나,

깊은 산에 파묻혀 있으면서 다른 사람과 접촉이 없었으니

무서운 것도 모르는 모양이군.……

만일 무술계에서 경험을 쌓는다면 틀림없이 기민한 인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술계에는 교활한 사람이 많아 자칫 잘못하면 실수하여

평생을 두고 가슴에 사무치는 원한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고 혼자 생각하는 그의 뇌리에 동숙정과 도옥의 그림자가 스치자 온 몸이 떨렸다.

양몽환이 멍하니 혼자 생각만 하고 있자 소녀는 참을 수 없는 듯이 말을 계속했다.

 

「지리를 잘 몰라 그럽니다만 괄창산 백운협에 같이 가 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순간, 양몽환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정이 담뿍 담긴 맑은 눈으로 그를 보고 있다가 그의 시선이 닿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양몽환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하기를

 

「저는 긴요한 일이 있는 몸입니다.

아가씨의 말대로 동행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소녀는 담담하게 웃고는 실망의 빛을 띄웠다.

 

「중요한 일이 있다면 할 수 없습니다만……」

 

  말끝을 맺지 못하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밖의 파도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소녀는 다른 여자와는 다른 특이한 점이 있었으나 귀하고 위엄 있는 주약란이나

연약하게 보이면서도 상냥한 심하림과도 판이했다.

주약란은 아름다우나 냉정하나 한 떨기 백합 가운데 핀 매화 같으며,

하림은 천진하고 악이 없으니 마치 우중에 핀 한 송이 해당화 같다고 한다면

이 소녀는 넓은 못 안에 핀 한 송이의 흰 연꽃 같았다.

 

소녀는 고개를 돌린 채 약 일각이 지나도록 돌아보지 않았다.

그러자 양몽환은 그길로 뒤 선창으로 돌아와 버렸다.

그는 선창으로 돌아와 혼자 생각했다.

그녀의 요구를 받아들일 것을 공연히 거절을 했구나 하는 후회가 간절했으며

그 소녀가 무술제의 나쁜 놈의 손에 귀원비급을 강탈당할까 걱정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스승의 안위가 걱정되어 마음이 어지러웠다.

배는 쏜살같이 달려 신미(申未)경에 가정에 도착했다.

양몽환은 육지로 뛰어 올라 고개를 돌려 두 손 모아 감사의 뜻을 표하니

배는 미끄러지듯이 떠났다.

그는 멍하니 부둣가에 서서 달리는 배를 바라보면서 소녀의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기를 바랐으나 소녀는 고사하고 네 시녀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뒤에서 나무아미타불 하는 염불 소리가 들려 정신을 차린 양몽환은

이미 저녁이 다가옴을 깨닫고 스스로를 꾸짖었다.

 

 (몽환아! 몽환아! 사매가 너에게 깊은 정을 두고 있는데 너는 또 다른 생각을 하느냐……)

 

  그는 정신을 차렸다. 문득 스승의 생각이 나서 몸을 돌려 보니

수장 밖에 몸이 건장한 화상이 가사를 입고 손에는 동화분을 들고 서서히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화상의 발걸음은 매우 무거우나 걸음은 빨랐다.

첫 눈에도 무공을 쌓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양몽환의 옆에 가까이 오더니 갑자기 그 육중한 몸이 앞으로 쓰러지듯이

양몽환에게로 부딪쳐 왔다.

  양몽환은 재빨리 오른 쪽으로 피하자 상상 밖으로 그 중은 대소하더니

안고 있던 동화분을 양몽환에게로 던지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그 중이 시비를 걸어온다는 것을 알았으나 피하지 않고

오른 손으로 공력을 가해 날아오는 동화분을 받고 말았다,

  그러나 중이 던진 그 화분을 받은 양몽환은 비틀거리지 않을 수없었다.

중은 양몽환이 뜻밖에도 힘차게 던진 백근이나 되는 동화분을 받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놀랐다.

 

「스님, 당신의 화분을 도로 가져가시오!」

 

하고는 두 팔을 번쩍 들어 화분을 중에게로 던졌다.

 

그는 온갖 힘을 다해 화분을 던지고 나니 가슴이 몹시 아프면서 눈앞에 불이 번쩍했다.

그리고는 피를 토하고 말았다.

원래 그가 배에서 입은 상처가 완전히 낫지 않았는데다가

다시 과도한 힘을 썼기 때문에 상처가 도진 것이다.

중은 두 손으로 동화분을 받은 후 양몽환이 피를 토하는 것을 보자

그가 내상을 입은 줄을 알고는 껄껄 웃는 것이었다.

 

「시주께서는 너무 성급하시오.

이 백근이나 되는 동화분을 멋대로 받을 작정이오?」

 

  양몽환은 화가 나서 내상을 무릅쓰고 기력을 집중하며 말했다.

 

「스님과 저는 알지도 못하는 사이니

 아무런 원한이 있을 수 없는데 어찌 공연히 시비를 거시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중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작은 벌을 내리는 것에 불과하오. 앞으로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되돌아가지 않으면 목숨마저 잃을 걸……」

 

하고는 그 중은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중의 머리도 없고 꼬리도 없는 그 말에 어리둥절하였다.

  중의 걸음 거리를 자세히 보니 보기에는 술 취한 사람모양 비틀거리지만 발걸음은 일정했다.

분명히 깊은 무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때 다시 가슴이 쓰리고 아파 견 수 없어 쭈그리고 앉아 품안에서 백의 소녀가

준 알약을 꺼내어 먹었다.

알약이 입에 들어가자 고통은 사라지고 상상 밖으로 효과가 빨라 남은 한 알을 마저 먹으려다

문득 생각했다.

 

  (이 약이 이렇게도 신효가 있으니 아껴 먹기로 하자. )

 

  그는 조용한 곳을 찾아 않아서 소녀가 가르쳐 준 비결대로 기력을 운행 조절한 후

아미산으로 향했다.

 

  그는 스승의 안위가 걱정되어 경공을 발휘하여 급히 달렸다.

그리하여 초경이 되었을 때 산 입구에 있는 보국사에 도달했다.

 

  그는 계속 길을 재촉했다.

 

  그는 이곳에 이요홍을 구출하기 위하여 왔던 일이 있었으며 아미파 고수들과

싸운 일도 있어서 길은 환했다. 힘을 다해 쏜살 같이 뛰었다.

  약 삼경쯤 되었을 때 그는 백리나 달려 어느 산봉우리 밑에 도달하여

사방을 돌아보고 그 산봉우리가 만불정(萬佛頂)임을 알아냈다.

  그 봉우리 뒤에는 규모가 웅장한 사원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아미파 주원방 불사였다.

  양몽환은 수일 전에 이곳을 빠져 나왔다가 이제 다시 또 왔다.

그렇기 때문에 아미파 중들의 무공이 강함도 잘 알고 있으며 무술계에서

아미파의 명성이 곤륜파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큰 문파임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가 앞서 이요홍을 구출할 때는 오행미종보법으로 겹겹의 포위망을 뚫고

이요홍을 구출했으나 자신은 만불사 주지 초범대사(超凡大師)에게 붙들려 감옥에 갇혔었다.

이번에 다시 그들에게 잡힌다면 목숨을 잃지는 않는다손 치더라도 병신이 될 것이나,

스승의 안위를 생각할 때 마음은 초조하기만 했다.

  그는 삼백 장이나 넘을 듯한 산봉우리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만불사는 고요하고 별빛 아래 희미하게 겹겹이 싸인 지붕이 보였다.

  그는 거의 봉우리에 닿으려는 순간,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스승이 오셨는지, 안 오셨는지,

아직 모르는 이때 몰래 숨어들어 절 안의 동정을 살피면 무림 규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오히려 정정당당하게 대문으로 들어가 스승이 오셨는지 물어 보면 아미파의 무술계

명성으로 보아 절대 속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생각한 후 숨어들어 갈 것을 포기하고 정정 당당하게 들어가려는 순간이었다.

 

돌연

 

「담도 큰 놈! 목숨이 아깝지 않느냐?」

 

하는 말이 끝나자 바람 소리와 함께 거구의 중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는 다른 사람 아닌 부둣가에서 동화분을 안고 있던 중이었다.

양몽환은 비로소 그 중이 아미파의 인물임을 알고 강변에서 시비를 걸어 온 것은

경고였음을 알아차리고 읍(揖)하여 말했다.

 

「후배는 곤륜파 문하로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흥……」

 

하는 웃음소리를 내며 중은 말했다.

 

「이미 알고 있네.」

 

  양몽환은 담담하게 웃으며 또 말했다.

 

「노선배님은 아미파십니까?」

 

  중은 양몽환이 자신의 적수가 아님을 알면서도 매우 침착하고 겁이라고는

추호도 없는 것을 보자 마음속으로 매우 감탄하고 동화분을 돌연 공중으로 던졌다.

동화분은 하늘 높이 약 삼사 장을 날아갔다가 다시 내려 왔다.

  백근이나 넘는 그 동화분의 내림세는 매우 빨랐으나 중은 힘도 주질 않고

슬쩍 손으로 받아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중은 냉랭하게

 

「옳아! 강가에서 징계를 좀 했지.」

 

하고는 말을 끊었다가 다시 말했다.

 

「너에게 깨달았으면 돌아가라고 했는데 왜 여기까지 왔느냐?」

 

  양몽환은 그의 팔 힘에 놀라 마지않았으나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스님께서 아비파의 분이라면 더욱 좋소이다. 제가 또다시 만불사를 찾아온 것은……」

 

  그러자 중은 말을 가로 챘다.

 

「먼저 번에는 나의 주지 사제가 무술계의 같은 입장에서

너의 도망가는 것을 알고도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다시 왔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찾는 것과 같네.」

 

  양몽환은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그렇다…… 이 사람은 초범대사의 사형되는 분이니

공력이 그렇게 강한 것도 무리가 아니군.……)

 

  이렇게 생각은 했으나 겉으로는 웃으면서 말했다.

 

「후배가 또다시 이곳에 찾아온 것은 한 가지 알고자 하는 일이 있어 왔습니다.」

 

  중은 성을 내며 말했다.

 

「무슨 일로 우리 만불사를 찾아 왔단 말인가?」

 

  양몽환은 여전히 조용하게

 

「곤륜파의 일양자 노선배님께서 이곳에 오시지 않았는지요?」

 

  그러자 노승은 돌연 부드러운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일양자와 어떤 관계가 되나?」

 

「후배의 사부님이올시다.」

 

「내가 너의 스승과 안면이 있는데 일양자는 아직도 현도관에 있느냐?」

 

「사부님은 이미 곤륜산 금정봉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서 스승을 뵈옵거든 옛날 동발화상(銅발和尙)이 안부를 묻더라고 전해라.

그리고 어서 산을 내려가거라.」

 

「스승이 제가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만불정으로 오셨다는 말에 후배도

가다 말고 되돌아 온 것입니다.」

 

「네가 오면 무엇 하지? 아미파와 곤륜파와는 별로 내왕도 없고 너의 스승과 나는

다만 사사로이 알 뿐인데 만일 네가 옥영자의 제자라면 오늘 저녁 나의 동화분의

맛을 보아야 될 것이다.」

 

「무술계에서 가장 중시하는 분이 사부님이오니 저의 몸이 비록 이곳에서

가루가 되어 죽는다 해도 사부님의 행방을 모르고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화상은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 동안 생각한 후 말했다.

 

「앞서 자네가 만불사에 왔을 때는 내가 돌아오지 않고 없을 때였다.

후에 장문 사제에게서 이야기는 들었다.

하여튼 남의 문과에 마음대로 쳐들어온다는 것은 무술계에서도 가장 무서운 일이다.」

 

「저는 정당하게 들어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홀연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말소리가 들렸다.

 

「만불사란 곳은 그리 대단한 곳도 아닌데 들어가려면 그저 들어가

마음대로 한번 떠들어 볼 것이지 저 같은 중놈들에게 무슨 겸손이 필요 있소.

정정 당당하게 배알하여도 그들은 자칭 고아한 고승이라

자처하고 쉽게 당신을 만나지는 않을 텐데?」

 

  말소리는 아주 부드러웠다.

이 말에 동 발화상이 일갈했다.

 

「옥소선자! 이곳에 무슨 일로 왔소!」

 

  옥소선자는 다시 크게 웃고는

 

「스님! 우리는 약 사오 년 동안 못 만났었죠?

그간 안녕하셨어요?

제가 이곳에 온 것은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요.」

 

  말을 하며 그녀는 양몽환의 옆으로 가까이 왔다.

그리고 오른 손에는 퉁소를 들고 왼 손으로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긋 양몽환을 쳐다보며 웃었다.

  동발화상은 냉소하며 말했다.

 

「아마 이곳에서 떠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을 따는 셈일걸?」

 

  옥소선자는 또 웃었다.

 

「스님께서 너무 겸손하게 말씀하시는군요.

저는 한 가지 부탁만하고 돌아가겠어요.」

 

  그러자 동발 대사는 눈썹을 치켜 올리고 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겁을 안 낸다는 것을 알아야 해……」

 

  말이 끝나자 동화분을 내리쳤다.

  옥소선자는 가볍게 살짝 피하고는 재빠르게 세 수나 공격을 가한 후 웃으며 말했다.

 

「왜 이러세요, 정말 저와 싸우겠다는 말씀이에요?」

 

  이때 양몽환도 등 뒤에서 칼을 뽑아 들고는 옥소선자에게 공격을 가했다.

  옥소선자는 몸을 날려 양몽환의 공세를 피하고 얼굴을 찌푸리며

 

「왜 이러시죠? 미쳤소?」

 

「내가 노선사임과 말하는데 당신이 왜 가로막고 나서시오?」

 

  동발화상은 놀랐다.

 

  (정말 이상한 일이군!

이 여마귀는 행동이 악랄하기로 유명한데

그녀가 만일 공격을 한다면 그는 크게 다치고……)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고는

 

「너는 그를 당하지 못할 것이니 빨리 물러나라!」

 

하면서 재빨리 양몽환의 앞을 가로 막고 섰다.

 

  옥소선자는 웃으며 말했다.

 

「무엇이 그렇게 급하시죠? 말이 끝난 후 싸워도 늦진 않을 텐데요?」

 

  할 수 없이 양몽환은 칼을 칼집에 넣으며 동발스님에게 읍하면서 말했다.

 

「선사님께 묻겠습니다.

저의 사부님께서 근래 이곳에 오시지 않았습니까?」

 

「그건 금시초문인데?」

 

  순간, 양몽환은 홀연 옥소선자와 스승이 곤륜산을 떠난 것이 생각나 그녀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의 사부님을 보셨소?」

 

  옥소선자는 방금 양몽환의 공격을 받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몰라요!」

 

  양몽환은 방금 무례한 짓을 후회했다.

 

「저의 사부님과 곤륜산을 떠나지 않았습니까?」

 

「그분도 세 살 먹은 어린 애가 아닌데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가겠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어요!」

 

  양몽환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자기로서는 그녀와 적수도 안 되고

또한 스승의 행방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급해 어떻게 할 바를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