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17 장 사랑의 미로(迷路) <深情憐女>

오늘의 쉼터 2014. 6. 22. 13:13

제 17 장 사랑의 미로(迷路) <深情憐女>
 

 

등인대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혜진자의 심정은 착잡했다.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두자니 도의적으로 책임을 느껴야 할 결과가 생기겠고 더 만류하자니

필시 싸우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어쨌든 그를 붙들어 놓고 볼 일이라 생각하고는 검을 치켜들고 몸을 날리면서

 

「대사께서 빈도의 대사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않고는 집에서 못 떠나실 걸요!」

 

하고 외치자,

 

등인대사는 몸을 돌려 선장을 치켜들고 노려보며 말했다.

 

「어쩌겠다는 거요?」

 

「하루만 더 기다려서 대사형이 돌아오시면 가시라는 거죠.」

 

  등인대사가 미친 듯이 웃으면서 선장을 휙! 휙! 돌리며 소리쳤다.

 

「이 늙은이의 선장을 막지는 못할 걸!」

 

  혜진자는 말로써 그를 만류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는 손의 장검을 흔들며 외쳤다.

 

「그렇지 않을 걸요?」

 

등인대사는 휘두르던 선장을 멈추고 길게 탄식하더니 몸을 돌려 다시 달려갔다.

그는 비록 온 몸의 정신이 해이하여 졌지만 아직 한 가닥 이성은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혜진자도 급했다. 재빨리 경신법을 전개하여 대사를 앞질러 돌아섰다.

등인대사는 하림의 빈사 상태에 몹시 분노하고 또한 비통한 나머지 일양자와 혜진자 등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다.

방금 수십 년의 수양에 아직껏 조금 남은 기력으로 피했지만 혜진자가 연신 길을 막는데

그만 가득히 참아왔던 분노가 터져 버렸다.

대갈하며 금강개산(金剛開山)의 장법으로 선장을 후려쳤다.

이미 주의는 하고 있었으나 혜진자는 맹렬한 그 기세에 압도 되어 버렸다.

화가 폭발한 등인대사는 이미 이성을 잃은 뒤라 순식간에 다섯 번을 선장으로 후려쳐 왔다.

이 다섯 수의 장법은 그의 특기인 이십사식 항용장법(降龍杖法)가운데의 하나로

맹렬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혜진자는 몸을 날려 간신히 선장의 위력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온 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혜진자는 이 이상 양보를 했다가는 등인대사를 막지 못하고

그의 선장에 상처를 입게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순간 분광검법을 전개,

교묘히 허를 노려 육박해 갔다.

이에 대사는 크게 격노하며 선장을 맹렬히 휘둘러 덮쳐왔다.

검광은 하늘에 번쩍이고 대사의 노성은 산이라도 무너뜨릴 것만 같은 가운데

두 사람은 제각기의 절기로 한데 얽혔다.

십여 합을 싸웠을 때 혜진자가 돌연 추혼십이검중의 일식(一式)인

천운적월(穿雲摘月)의 수법으로 싸늘한 검광을 발산하고 대사의 앞가슴을 찔렀다.

그러자 등인대사의 선장이 신용출운(神龍出雲)의 일식으로 변화하여

혜진자의 검을 막으면서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혜진자는 그래도 등인대사를 정말 상하게 할까봐 공세를 취하였다가도

재빨리 장검을 거두어들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등인대사가 갑자기 변화를 일으키며 후려치는 바람에 아차하고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화가 난 혜진자는 조금 쓴 맛을 보여 주지 않았다가는 도리어

곤륜파의 검술을 얕보게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즉각 추혼십이검중의 절묘한 세수(三式),

기봉등교(起鳳騰蛟)와 삭풍광소(朔風狂蕭) 그리고 무염운수(霧斂雲收)를 연이어 활용하여

한편에 광막을 이루며 선풍과 같이 펼쳤다.

 

이 날렵한 검세(劍勢)에 등인대사는 어절 수 없이 세 걸음을 물러섰다.

그러나 더욱 화가 난 등인대사가 선량을 불끈 잡고 공격하려는데 뒤에서

귀에 익은 맑은 음성이 들려왔다.

 

「사백부님, 왜 사부님과 싸우세요?」

 

  등인이 돌아보니 하림이 일 장여 밖의 눈 위에 백의와 흑발을 휘날리며

망연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주약란도 그녀 등 뒤에 있는데 양미간에는 약간 노기를 띤 채 바라보고 있지 않는가?

더욱 위엄이 도는 자세로 대사는 즉각 본래의 의식을 되찾은 듯 선장을 던지고는

몸을 훌쩍 날려 하림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림아, 림아! 너…… 너 괜찮겠느냐?」

 

하림은 대사의 품에 안기어서는 고개를 들고 웃으며

 

「대 언니가 오면 나의 어떤 병이든지 낫게 해 줄 수 있어요.

그런데 사부님과는 연습하시는 거예요?」

 

낯이 뜨거워진 대사는 웃으며

 

「그래! 그래! 맞았어!」

 

  그러자 주약란도 비웃는 웃음을 띠고

 

「그만한 연세들에 좀 참지 못하시고 누구 간에 다치기나 하면 어떻게 해요?」

 

이 말은 그 누구에게 지적하고 한 말은 아니었지만 저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이때 주약란은 다시 웃으며

 

「내가 너무 소홀한 탓도 있지요.

그녀의 상처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두 사람이 무예시합을 하도록 하였으니.」

 

  혜진자가 붉어진 얼굴로 웃으며

 

「하림이 어릴 때부터 대사가 기른 까닭에 슬픔이 지나쳐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하림의 병세는 어떻습니까?」

 

  주약란이 웃으며

 

「몸의 기경혈맥을 유통시켰지만 경맥에 모였던 한기를 제거치 못하여서

한기가 도리어 오부에 집중하여 흩어지지 않아 병세가 더 악화되었던 모양이에요.

지금 오부에 집중한 한기를 흘어지게 하였지만 아직 제거시키지는 못 했어요.」

 

  대사가 주약란의 말을 다 듣지 않고

 

「그렇다면 주소저도 그의 상처를 치료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주약란의 맑은 눈동자가 천천히 하림에게로 주시하며 가냘픈 웃음을 지으며.

그리고는

 

「림매(琳妹)를 위해서 저의 공력이 소모되는 것은 아깝지 않아요.

그런데 두 분에게 부탁드릴 것이 하나 있습니다.」

 

  등인대사가 웃으며

 

「주소저께서 말씀만 하십시오.

 이 늙은이가 죽는 한이 있어도 불사(不辭) 하겠소.」

  그러자 주약란은

 

「지금 음한 기운이 내부에까지 스며들었기 때문에 비록 영약이었어도 효력을 볼 수 없어요.

유일한 치료방법은 그녀의 체내에 들끓고 있는 음한 기운을 밖으로 제거시키는 것인데

저의 공력을 소모하는 것은 둘째고 하루 이틀 만에 치료되는 것은 아니에요.

그녀의 기력으로 볼 때 적어도 닷새 동안을 치료하여야겠는데

이 중에 제일 긴요한 것은 방해자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상처가 악화될 뿐 아니라 그녀의 몸에 마(魔)가 들어 불구가 될 수 있으며

저 자신도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되는 것으로 필히 두 사람의고수가 있어

그 기회에 침입자가 없게 지켜 주셔야 한다는 겁니다.」

 

  등인대사는 혜진자를 쳐다보며

 

「이 늙은이야 분내(分內)의 일이지요

 

하자 혜진자도 웃으며

 

  하림은 곤륜파의 제자이니

빈도가 문하제자를 이끌고 관기일(關期日) 동안에 하후를 보겠어요.」

 

  쾌히 응낙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많으면 도리어 지장이 있습니다.

두 분만 계시면 충분하니 곧 음식을 준비하여 주십시오.

곧 치료를 하겠습니다.」

 

  하림은 주약란의 곁에 가서는 눈물이 가득 찬 얼굴을 들며

 

「언니가 저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저는 내 평생에 못다 갚을 거예요.」

 

  주약란은 미소하며 하림을 바라보는데 그녀의 표정은 노한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사실 그녀 앞에 있는 중태의 소녀는 그녀의 가장 두려운 정적(情敵)이며

그녀가 아는 바로는 양몽환이 하림에 대한 정이 깊어 하림이 죽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것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그녀가 손을 내밀어 구원치 않으면 하림은 결코 일 개월을 넘기지 못할 것이며

하림이 죽으면 양응환도 정이 그녀에게로 옮겨질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순진 다감한 하림을 죽게 내버려 둘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림은 주약란이 줄곧 자기를 쳐다보며 오랫동안 말이 없자

이상히 생각되어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黛)언니, 무엇을 생각하세요?」

 

  그제야 꿈에서 깬 듯 아! 하고 웃으며

 

「나는 림매(琳妹)의 오빠가 왜 안 올까 생각하고 있었지.

오빠가 하림이 이렇듯 앓고 있는 줄을 알면 굉장히 마음 아파 할 거야.」

 

  하림은 깊이 탄식하며

 

「아직 안 오는 걸 보니 길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가 봐요.

내가 병만 없었더라면 언니와 같이 찾으러 갈 텐데.」

 

  주약란이 웃으며

 

「네가 찾아 가는데 왜 나를 끌어넣지?」

 

  하자 하림은 의아한 듯

 

「언니도 오빠를 좋아하지 않으세요? 왜 내버려 두려고 하세요?」

 

  주약란의 뺨이 붉게 물들었다.

눈을 깜박이며 하림의 손을 잡고는 나직이 웃으며

 

「농담이야, 병이 나으면 나하고 같이 찾으러 가요.」

 

하고는 같이 하림의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이때 혜진자는 동숙정을 시켜 음식을 준비하게 하고는 등인대사와 남은 시간에 조식을 취했다.

이때 이미 바람과 눈은 그치고 햇살이 가만가만 서 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황혼녘이었다.

동숙정은 음식을 준비해 가지고 들어와 주약란과 하림에게 음식을 조금 먹게 하고는

곧 치료에 착수했다.

우선 하림을 정좌(正座)로 앉게 하고 그녀는 하림의 등 뒤에 앉는다.

그리고는 하림에게 현문토납도 인구결(玄門吐納道 引九決)을 구수(口授)하고 오른 손으로

하림의 등 뒤 명문혈(命門穴)을 짚고 주약란 자신의 진기를 가만히 옮겨 한줄기의 무서운 기운이

하림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

 

하림은 주약란이 구술하여 준대로 정신을 모으고는 내공을 행하는데 두 식경 후에는

오부에 쌓였던 음한기운이 점차 정맥으로 흩어져 기경혈맥에 순행하자 몸이 떨려오는지

어두운 방안에 하림이 아프다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이리하여 뜨거운 기운이 하림의 전신을 일주할 때에는 이미 자시(子時)경이었다.

주약란은 땀을 닦았다.

 

「이제 조금 쉬어도 돼. 눈을 감고 조금 쉬도록 해요.

그리고 꼭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어떠한 고통이라도 참아야 되고

이야기를 하지 말 것이며 어떠한 일에도 정신을 잃지 말아요.」

 

  하림은 그 말을 따라 눈을 감고 쉬었다.

그러자 곧 고통은 사라져 갔다.

사흘이란 시일이 흘러가고 하림의 병세는 크게 호전되었으나 반대로

주약란의 몸은 몹시 수척해졌다.

닷새째 되는 날 오전, 하림의 몸에 있는 음한은 거의 배출 되었다.

그녀는 이 닷새 동안의 시일에 상처를 치료받은 것 이외에도 주약란이

가르친 현문토납 지술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현문토납지술은 높은 내공의 경지를 수련하는 비결로서 일반 내공 수련법과는 판이했다.

비단 내공력을 증진시킬 뿐 아니라 수명을 연장시킬 수도 있으며

만일 대성(大成)의 경지에 도달하면 강물 위를 걸을 수 있고 몸과 입으로서 적을 상대하여

일투족에 적을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이다.

하림은 화로 인하여 복을 받은 셈이 되는 격이었다.

오정이 지나자 주약란은 치료를 끝내고 손을 멈추었다.

 

「이제 상처는 거의 나았어.

오후에 다시 한번 손을 써서 남은 음한 기운을 배출시키면 끝나는 거야.」

 

  하림이 웃으며

 

「그러면 우리는 몽환 오빠를 찾으러 갈 수 있겠군요?」

 

하고 고개를 천천히 돌린다. 그녀의 눈이 주약란의 얼굴에 멈추자

아! 하고 놀라며 말을 못했다.

주약란의 탐스럽던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하여진 데다가 지쳐서

곧 쓰러질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림은 눈물을 흘리며

 

「이젠 치료 안 받을래요.」

 

  흐느끼며 외쳤다.

 

「아니 왜? 남은 음한 기운을 배출시키지 않으면 후일에 재발하게 돼.」 

 

  그러나 하림은 여전히 흐느끼며

 

「언니가 나의 병 치료에 지쳐 얼굴까지 창백하여진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많은 원기를 소모시켰는데 나의 상처를 치료하고서 지쳐 쓰러진다면 어떻게 해요?」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주약란은

 

「나는 며칠 휴식하면 곧 회복할 수 있는 거야.

이제 남은 한 번의 치료를 하지 않으면 내가 소모한 원기가 헛되지 않아?」

 

  그 말에 하림은 가만히 주약란의 가습을 파고들며 눈물만 흘렸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로 감사할 일이 아니었다.

 

  주약란은 하림을 바로 앉히며

 

「아직 상처가다 낫지 않은 몸으로 마음을 상하게 하면 못써. 바로 앉아 운공(運功)해요.」

 

  하림이 눈물을 닦고 앉자

공력을 운행시키며 주약란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는 치료에 착수했다.

일각의 시간이 지나자 하림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지기 시작하여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등인대사의 노호하는 소리가 들리고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벌컥 열리면서 도옥이 금환검(金環劍)을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하림이 고개를 돌려 보니 도옥인지라 말을 걸려고 하는데

주약란이 급히 나직한 음성으로 주의를 주는 것이었다.

 

「빨리 눈을 감고 공력을 운행해요. 정신을 흐트러지게 하지 말고.」

 

하고 외친다.

 

하림은 할 수 없이 정신을 모으고는 공력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도옥은 낯모르는 소년이 하림과 한 침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자 질투심이 끓어올랐다.

흥! 하고 코웃음을 치며 침대가로 내달아서는 주약란의 앞가슴을 노리고 번개 같이 찔렀다.

주약란은 하림의 명문혈(命門穴)을 짚고 있던 오른 손을 꼼짝도 않고 왼 손을 약간 구부리고

들어오는 금환검을 잡을 듯하다가 금환검이 잡힐 듯 할 때에 두 손가락으로 가볍게 쳐버렸다.

 

이는 무학 가운데 가장 절묘한 절기인 탄지신통(彈指神通)이란 수법으로 멋도 모르고

달려들던 도옥은 순간적으로 강한 힘이 자기의 칼날을 치며 손이 찌르르 하자 검을 놓고 말았다.

검은 그대로 뒤로 날아가 버렸다.

 

이때 급히 달려온 등인대사는 비반당종(飛飯唐鍾)의 일식으로 도옥의 등을 후려쳤다.

재빨리 피한 도옥은 삼음신니(三音神尼)의 권보(拳寶)에 기록된 대로 발을 움직여서

무릎도 한번 구부리지 않고 발걸음도 떼지 않은 자세로 슬쩍 등인대사에게로 향하면서

오른 손으로 선장 한 끝을 잡고 왼 손으로 휘진청담(揮塵淸淡)의 수로 선장을 쥐고 있는

대사의 오른 손을 쳤다.

 

노승은 방금 문밖에서 몇 수 교합(交合)한 결과 도옥의 검법이기묘하여

단 두 번에 물러서게 됨으로써 도옥으로 하여금 하림의 병실로 들어가게 하였던 점에 비추어

단단히 정신을 차리고 선장으로 후려쳤으나 역시 어떻게 된 것인지 도리어 선장을 잡히고는

멈칫하고 말았다.

 

그가 멈칫하는 순간 도옥의 오른 손이 그의 손목을 쥐자 대사는 선장을 놓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선장을 놓는 동시에 왼손으로 도옥의 앞가슴을 쳤다.

 

도옥은 공격을 피하면서 반격해 올 줄은 몰랐던 터라 재빨리 세 걸음을 물러섰다.

등인대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오른발로 도옥의 배를 차는 동시에 왼손으로

선장을 다시 잡고는 힘껏 당겼다.

순간 도옥은 몸이 앞으로 거꾸러질 들 대사씩 오른 발을 향해 마주보는 자세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도옥의 무예는 실로 과거와 비교할 것이 아니었다.

슬쩍 몸을 돌리면서 발길을 피하고 왼 손으로 대사의 발을 잡아끌자

등인대사는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졌다.

 

등인대사는 속으로 역시 강한 자라 느끼며 왼 손에 힘을 주어 선장을 잡아 당겨

자세를 바로 잡으면서 오른 손으로 조설남해(朝說南海)의 수로 앞으로 후려쳤다.

 

도옥도 역시 놀라며 과연 노승은 다루기 힘든 자라고 생각하며 왼손으로

영풍단초(迎風斷草)를 쓰며 도리어 대사의 오른 손목을 피하자

대사는 재빨리 손을 밑으로 일단 내려 도옥의 공격을 피하고는

십팔나한장(十八羅漢掌)을 전개 휙! 휙! 세 번을 연 거피 갈겼다.

 

  이때 도옥은 노승의 삼장(三掌)을 피하여 즉각 보복으로 주먹을 세 번 휘둘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서로 선장의 한 끝을 잡고는 두 자 거리로 마주보고 한 손으로

싸우는 결투가 벌어졌다.

 

손을 뻗으면 상대방의 요혈, 급소에 닿는 거리이며 아차 하는 순간죽지 않으면

중상을 입는 위험한 싸움은 갈수록 기지(機智)의 무예라 대적경험이 많이 작용되는

결투로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게 하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싸우기 이십여 합, 대사는 공력이 심후(深厚)한 반면에 도옥은 기이한 수법으로

공력을 보충하고 있었다.

 

도옥은 일변 싸우면서 옆 눈으로 침대 위를 훔쳐보니

청의 소년은 여전히 오른 손을 하림의 등 뒤 명문혈을 짚고 있는 것이 옆에서 벌어진

격렬한 결투에 조금도 동요됨이 없는 것 같고 하림만이 약간동요가 보이나 억지로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제야 도옥은 어느 정도 청의 소년이 하림의 상처를 치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자기가 기경된 것을 모두 유통시켰는데 병세가 갑자기 재발이라도

하였는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가 그와 같이 궁금히 여기는 순간 손이 약간 늦추어지는 것을 기회로 등인대사가

휘두르던 손에 공력을 집중, 휙! 하고 일장을 맹렬히 갈겼다.

  너무나 강렬한 일격에 정신을 팔고 있던 도옥이 놀랐을 때에는 이미 그 공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재빨리 선장을 놓고 옆으로 비켜서서 장풍을 막아내어 겨우 등인대사의 공격을 견제하였다.

그리고는 재빨리 떨어진 금환검을 집어 들고 몸을 날려 문 앞에 섰다.

그리고는 여전히 주약란과 하림을 주시했다.

  등인대사는 선장을 빼들고 즉시 선장을 휘둘러 도옥을 밖으로 내 쫓으려고 하였으나

도옥이 재빨리 금환검을 드는 바람에 공격을 멈추었다.

이는 조금 전 밖에서 검을 쥔 도옥과 교합(交合)하여 본 결과 도옥의 검법이 장법보다

더 기이하고 교묘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고 또 실내에서 금방 손으로 싸울 때 일어난

장풍이 주약란과 하림의 옷자락을 휘날렸던 것으로 보아 이대로 싸우다가는

혹시 두 사람에게 피해가 있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등인대사는 생각 끝에 더 추격치 않고 침대를 막고 서서는 도옥과 마주 보고만 있었다.

도옥은 등인대사가 더 공격치 않고 서있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하림을 다치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다.

도옥은 역시 음흉하고 간교한 자라 몇 번 생각한 끝에 생각을 정하고는 웃으며

 

「청의를 입은 서생은 누구입니까? 심소저를 위해 치료하는 중인가요?」

 

등인대사는 눈썹을 치켜 올렸다.

 

「누구이든 관계할 것 없지.

하림을 치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왜 물어!」

 

  도옥은 금환검을 거두며

 

「물어보는 게 어때서 그러시오?

그렇다면 내가 더 편한 셈이지.」

 

하고는 문 밖으로 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등인대사는 급히 나오며

 

「말하는 것은 하림의 상처를 치료해 주겠다는 말인가?」

 

하고 뇌이자 도옥이 고개를 돌리고

 

「내가 그녀를 해치려고 하였으면 목숨이 열개 있어도 모자랐소!」

 

  이때 갑자기 청아한 목소리가 빈정거리듯

 

「흥, 차라리 그녀의 기경팔맥을 유통시키지 않았더라면

음한 기운이 오부로 몰리지도 않았을 걸!」

 

  도옥이 고개를 들어 보자 바로 청의 서생이 피곤한 모습으로 방문 앞에 서서는

그를 조소하는 듯한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던 데다가 다시 빈정거리듯 하는 태도에

도옥은 울화가 치밀어 달려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방안에서 두 손가락으로 검을 튕겼던 일이 생각나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다시 등 뒤에서 긴 웃음소리가 들렸다.

도옥이 몸을 돌리자 그곳에는 혜진자가 검을 들고 태연히 서 있는 것이었다.

포위된 형세에 놓이게 된 도옥은 혜진자와 늙은 화상을 상대하기도 곤란한 터에

다시 얼마나 높은 재간을 지었는지 알 길이 없는 청의 서생까지 나타났으니

오래 있다가는 크게 불리하겠다고 생각하고는 발을 혜진자 쪽으로 옮겼다.

 

  혜진자는 도옥이 자기에게로 향해오며 보검을 든 채 무슨 말을 할 듯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도옥이 허리를 굽히는 듯 하더니

번개같이 달려와 좌우로 연이어 세 수를 공격했다.

기이한 검법은 마치 찌를 듯 또는 후려치는 듯 싸늘한 검광을 번쩍이며

혜진자의 십여 군데를 노리고 들이치는 것이었다.

  순간 주약란은 기운이 빠진 것도 무릅쓰고 도옥에게 달려들었다.

혜진자는 재빠르고도 기이한 검법에 몰려 급히 물러가고 주약란이

옷자락을 펄럭이며 뒤에서 덮쳐들었다.

  도옥이 재빨리 돌아서며 찌르자

주약란은 손으로 검신(劍身)을 후려쳐 빗나가게 하는 동시에

왼손으로 전광석화와 같이 도옥의 오른손을 잡으려고 했다.

  깜짝 놀란 도옥은 질풍같이 물러서며 검법을 변화시켜 휘둘렀다.

그러자 검에 달린 금환이 뎅그렁 소리를 내며 싸늘한 검광은

돌풍이 몰아치는 듯한 기세로 번쩍이며 돌진해왔다.

 

  주약란은 청의를 펄럭이며 도옥의 맹렬한 검의 광막 안에서

왼 손은 검을 막고 오른 손으로 공격하여 삽시간에 다섯 수를 교환했다.

등인대사와 혜진자는 눈이 부셨다 두 사람의 관찰로도 주약란과 도옥의 신법과 검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때 갑자기 신음소리와 함께 도옥이 검을 내려뜨리고 일장반이나 물러서고

주약란은 그림자 같이 따라 붙는 것이었다.

  도옥은 검으로 후려치며 왼손으로 덮치듯 주약란의 오른 팔을 붙들었다.

그러나 주약란이 한 걸음 비키며 왼 손으로 도옥의 왼 쪽 어깨를,

그녀의 어깨를 잡고 있는 손에 도옥이 채 힘을 주기 전에 먼저 후려치자

도옥이 비켰으나 지풍에 어깨를 움칠하며 물러서고는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주약란은 더 추격치 않고 얼굴에 놀라운 빛을 띄우고는 도옥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그녀의 오른 팔은 상처를 입었는지 늘어져 있었다.

  두 사람이 교전한 몇 수는 전광석화와 같아 혜진자와 등인대사는 입을 벌리고 말았다.

도옥이 사라지자 두 사람은 그제야 주약란 옆으로 달려오며

 

「주소저! 다치셨소?」

 

하고 외치자 주약란은 고개를 흔들면서

 

「괜찮아요. 오른 쪽 곡지혈(曲池穴)을 조금 스쳤을 뿐……」

 

하고 가만히 힘을 주어 진기를 운행, 혈도를 유통시키고는 다시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검법과 장법이 아미태산(阿爾泰山) 일파와 흡사한 것 같은데 그 노선배께서 제자를 두었었나」

 

하고 하림의 방으로 향했다.

 

  등인대사와 혜진자는 강호에 유전된 귀원비급(歸元秘?)에 관한 소문을 들었기에

주약란이 아미태산 일파를 들먹이자 즉각 삼음신니(三音神尼)를 상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자세한 것을 알아보려고 하는데 주약란이 수척한 모습으로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으므로 물어 보기를 그만 두었다.

 

  주약란이 방으로 들어가자 막 운공(運功)을 그치고 또 한기를 완전히 몸 밖으로 배출시킨

하림이 침대를 내려오며 웃으면서 맞이했다

 

「대 언니 사백부님과 싸우던 도옥이 갔어요?」

 

하자 주약란은

 

「그 사람 좋지 못한 사람이야. 다음에 만나더라도 조심해야 돼.

반년 전 기련산에서 내가 때마침 가지 않았더라면 너는 벌써 ……」

 

  그러나 하던 말끝을 맺지 못하고 말았다.

욕정에 불붙던 도옥의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먼저 하림이 입을 열었다.

 

「그는 오빠와 참 좋은 친구에요.

내가 그를 나쁘게 대하면 오빠가 화내지 않을까요?」

 

  그녀가 온후무고 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주약란은 일시에 설명해줄 길이 없어

가볍게 탄식만 하고는 침대에 올라가 단정히 앉아운기 조식을 취하였다.

  그녀는 원기를 크게 소모시킨 끝에 도옥과 싸워 비록 이겼지만

그녀 역시 사나운 도옥의 불혈착골(佛穴錯骨)의 수법에 상할 뻔 하였던 것이다.

다행히 그녀가 재빨리 운기하여 물러섰지만 다시 원기를 소모하게 되어

즉각 조식을 취하게 된 것이다.

하림은 그녀가 운공(運功)한다는 것을 알고는 가만히 방을 나갔다.

  하림의 걸음걸이가 가볍게 걸어오는 것을 본 등인대사는 기뻐서 껄껄 웃고는

 

「좀 어떠냐?」

 

  부드럽게 물었다.

 

「예, 저의 병은 나았지만 대 언니가 지쳐 눕게 됐어요.」

 

하고 주위를 둘러보며

 

「그런데 저의 사부님과 숙정언니는 어디 갔어요?」

 

하는 것이었다.

 

「너의 큰 사백부님이 옥소선자와 싸우겠다고 떠난 지 벌써 엿새가 되었어.

그런데 아직 오지 않아 사부가 너희들을 수호하느라고 닷새 동안 지키고 있다가

이제 주약란이 나타나 도옥을 쫓는 것을 보고는 큰 사백부님을 찾으러 가셨어.」

 

  그 말에 하림은 눈에 가득히 눈물을 머금고 길게 탄식하며

 

「백부님 여기서 대 언니를 지켜 주실래요?

전 큰 사백부님과 사부님을 찾으러 가겠어요.」

 

「너의 상처가 이제 겨우 아문 걸 어떻게 움직여?

네가 여기 있어라. 내가 찾아가 도와주겠다.」

 

하고 말이 끝나자 대사는 몸을 훌쩍 날려 달려가고 말았다.

하림이 급히 얼마를 쫓아가 보았으나 등인대사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러나 한편 십 여일 만에 처음 나가보는 바깥 풍경은 아름다웠다.

  하림은 한동안 매화꽃을 바라보고 서 있다가 방으로 들어가서는

주약란의 옆에 앉아 내공에 힘썼다.

병석에 누워 있는 동안 연이어 발생하는 사고에 그녀도 많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무예를 배우는 것은 단지 남과 싸우기 위해서일까?

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한편 금환이랑 도옥은 두 차례에 걸쳐 주약란의 지풍에 스치고는

적수가 아님을 알고 즉각 매화 밭을 지나 절벽을 오르고 하여 십 여리 길을 달아났다.

이때 갑자기 주약란의 지풍이 스쳐간 왼쪽어깨와 오른쪽 옆구리가 조금씩 아파 왔다.

걸음을 멈추고 진기를 운행시켜 보았다.

그러자 아픈 곳이 저리면서 전신이 마비되고 쪽쪽 쑤셔 왔다.

걸음도 못 걸을 정도였다.

그제야 그는 청의 서생이 암암리에 독수를 뻗친 것을 느꼈다.

 

그가 걸음을 멈춘 곳은 어느 절벽 위였다.

앞에는 수 천 장의 계곡이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한 번 떨어졌다가는

몸이 콩가루가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주위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상처를 입은 몸으로는 결코 넘을 수 없었다.

잠시 그는 앉아서 가만히 호흡을 조절하고는 운기하기 시작했다.

  약 일각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급히 쫓아오는 발소리에 눈을 떴다.

그러자 그의 앞에는 삼십세쯤 됨직한 장정이 장검을 들고

곧장 자기에게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도옥으로부터 다섯 자를 남기고 걸음을 멈춘 장정은 장검으로 도옥을 가리키며

 

「당신은 누구요? 이 황량한 곳에서 무엇을 하시요?」

 

  자세히 보던 도옥은 바로 그가 곤륜산으로 갈 때 숲 속에서 도포를 입은 여자와

검술 연습을 하던 그 장정임을 알 수 있었다.

이때 그는 상처의 아픔이 좀 사라질 때라 냉소하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곤륜산이 당신들 곤륜파의 사유재산은 아닌 이상 무슨 관계요?

이 말에 자기가 곤륜파의 제자인 것을 알아보는 도옥을 놀랜 듯

눈을 크게 뜨고 도옥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이 곤륜산은 비록 우리 곤륜파의 사유재산은 아니지만

금정봉수 십리 이내에 일반인의 출입은 금지하고 있소.」

 

  도옥은 벌떡 일어나며

 

「내가 함부로 들어 왔다면 어쩌시겠다는 거요?」

 

하고 어깨를 폈다.

 

「무례한 친구 같으니라고!」

 

  눈썹을 치켜 올린 젊은이는 장검을 뽑아 찌르며 달려들었다.

  코웃음 치며 장검을 피한 도옥은 왼 손으로 가볍게 그 장정을 후려쳤다.

  순간, 깜짝 놀란 장정이 도옥의 손을 피하려고 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빠른 도옥의 왼 팔이 아래로 내려가며 급히 두 걸음을 물러섰다

그 장정도 재빨리 왼쪽으로 열자정도 비키고는 어떻게 친 것인지 몰라

어리벙벙하여 서 있는 것이었다.

 

  원래 도옥이 손을 쳐들자 왼 쪽 어깨가 쑤시고 아파 긴 칼을 움직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장정이 검을 휘두르자 뒤로 물러선 것이었다.

 

그 장정은 한동안 도옥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검을 치켜들고는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육박하여 왔다.

도옥은 이미 자기의 상반신을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다.

그리하여 두 발로만 적을 상대할 수 있을 뿐……

 

그 때,후딱 장정의 장검이 빛을 번쩍이자

도옥이 몸을 껑충 날려 피하고는 재빨리 오른 발로 장정의 오른 쪽 손목을 찼다.

 

이에 장정은 한쪽으로 피하며 분광검법을 전개, 순식간에 이십 여수를 공격했다.

그러자 도옥의 이마에서는 구슬 같은 땀이 솟았다.

왜냐하면 도옥은 상반신에 힘을 주지 못하고 적의 공세를 피하기 때문에

두 손만으로 반격할 수도 없었고 따라서 상반신에 진기를 돋울 수도 없어

싸우기가 벅찼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도옥도 반격을 가할 수 있었으나 점점 심해지는 발의 운동에

점차 뜨거운 피가 상반신으로 올라 반격은커녕 피하기도 어려운 지경에

 빠져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도옥은 오른 쪽 옆구리와 왼?쪽 어깨가 몹시 쑤시고 아파 얼굴이 파랗게 되고

 땀이 비 오듯 쏟아지며 두 발의 동작도 둔해졌던 것이다.

도옥과 싸우고 있는 장정은 바로 곤륜파 장문인 수제자 황지영으로

삼청궁에 있는 곤륜파의 수십 명 제자 가운데 무공이 가장 출중한 자인 것이다.

  그는 도옥이 피하는 신법으로 자기보다 무예가 월등한 자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도옥의 날카로운 무술에 황지영은 결코 상대방을 이길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긴 것은 도옥이 두 팔도 안 쓰고 단지 두 발로만 자기와 싸우는 것이었다.

처음에 황지영은 상대방이 자기를 말보고 그러는 줄 알았으나 점차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동작이 둔해지는 것을 보고는 그런 것 같지 않았다.

  너무도 이상하게 생각한 황지영은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당신이 무기를 들고 싸우면 십 합 이내에 나의 검에 쓰러질 것이오.

생사는 대사요, 결코 장난이 아니오.

이 황지영은 무기 없는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소!」

 

  그러자 도옥은 숨을 헐떡이며 코웃음을 쳤다.

 

「내가 손을 한 번만 쓰면 당신은 가루도 남지 않을 거요.

더구나 무기를 들면 더 말할 것도 없고.」

 

  황지영은 약이 바짝 올랐다.

 

「건방진 수작 말아라, 해보라고! 단 한 수에 내가 쓰러지는가.」

 

하고는 질풍 같이 달려들어 검으로 세 번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이 세 수는 신속하고도 맹렬하여 황지영이다시 한번 검을 휘두르면 필시

구천 땅이 있는 계곡으로 떨어질 절벽 가장자리까지 도옥이 밀리고 말았을 것이다.

  황지영은 검을 거두고 웃었다.

 

「당신이 겨우 그 정도의 재간으로 큰 소리요?

다시 무기를 들지 않으면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길, 나를 잔인하다고 원망 마시오.」

도옥은 등 뒤의 천 길의 계곡을 한 번 돌아보고는 크게 숨을 들이마셔

급격한 피의 순환을 진정시켰다. 조금 상반신이 가벼워진 도옥은 냉랭한 어조로

 

「믿지 못하면 한 번 시험해 보시지?」

 

하고는 날쌔게 달려들었다. 

 

  황지영은 급히 검을 들어 막았으나 어느덧 도옥은 검을 피하여

자기 앞으로 달려드는데 깜짝 놀라 몸을 뒤로 젖혀 세 걸음을 물러서서는

재빨리 검을 휘둘러 막으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도옥은 몸을 한 번 돌리자 어느덧 검세(劍勢)의 빈틈으로 들어와 이를 깨물며

오른 손으로 황지영의 장검을 움켜잡았다.

황지영이 놀라 손을 재빨리 휘둘러서 도옥의 앞가슴을 내려쳤다.

그러나 도옥이 몸을 슬쩍 비키는 바람에 황지영의 손은 도옥의 앞가슴을 스치고

지나가게 되었다.

그 순간다시 왼 손의 관절마저 도옥에게 잡히고 말았다.

  만일 도옥이 보통 때 같았으면 벌써 황지영의 양팔은 관절로부터 뚝 부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도옥이 비록 황지영의 양팔 관절을 움켜잡았으나 한쪽 어깨와 오른쪽 옆구리의

상처로 기운이 없어 꺾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도옥이 억지로 팔에 힘을 주려고 하자 상체가 몹시 아픈 것이

마치 상반신의 뼈가 부서지는 것 같았다.

부득이 황지영의 팔을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순식간에 이루어진 것으로 황지영은 재빨리 뒤로 여섯 자를 물러났다.

그리고 경악의 눈초리로 도옥을 바라보았다.

황지영은 도옥이 자기 팔을 잡는 수법에 탄복하였으나

힘이 없는 데에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한동안 도옥을 바라보던 황지영은 급히

 

「귀하가 사정을 두어 주신데 이 황지영은 감격하는 바요.」

 

하고는 몸을 돌려 달려가 버리고 말았다.

  도옥은 냉랭한 눈초리로 아무 말도 없이 황지영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다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때 그는 상처의 극심한 아픔에 이미 더 버티어 서 있을 힘이 없었던 것이다.

  또다시 일각여의 시간이 흐르자 아픔이 가셔졌다.

그는 천천히 눈을 뜨고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정말 다시 남과 싸울 수 없는 몸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십여 년을 두고 단련하여 온 무공이 일시에 헛수고로 돌아가게 된 것이나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여기에 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분했다.

부드득 이를 갈았다.

상처가 다시 아파졌다.

이때서야 그는 상대방이 정말 독수를 뻗쳤고

또 참혹하게 그의 무공까지 폐하게 하였음을 알았다.

이후로는 남과 싸우지도 못하고 조그만 기운도 못 쓰게 된다면 하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그는 암담한 심정이 되어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연이은 줄기찬 산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처참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이제 폐인이 되어 수십 년을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그의 뇌리에는 무예를 배우던 추억이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랐다.

사매 이요홍과 즐겁게 놀던 일도, 어릴 때의 두 사람은 매우 다정했다.

그러나 성장함에 따라 성격의 차이로 점차 멀어져 가고 또한 그녀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했으나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던 일들,

그리고 고집이 센 그녀는 무슨 일마다 그에게 이기려 함으로써

크게 언쟁을 벌이던 일들이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 보니 도옥은 그녀에게서 조금도 부드러운 눈길을 받아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그러한 태도를 조금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왔으나 하림을 만나자

부지불식간에 온순하고 다정한 하림이 모든 면에 있어서 이요홍보다 정답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도옥의 마음이 그녀에게 사로잡히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 먼 서역(西域) 땅에 하림을 찾고자 왔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했던 청의 서생의 독수를 입고 일신의 무공을 폐하게 되었으니

한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옥은 하림이 원망스러웠다. 발을 구르며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만일 그녀가 아니면 이 도옥이 어찌 이런 꼴을 당하였겠나.」

 

하고 화가 오르는 도옥은 상처가 아프기 시작하자

황급히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상하게도 도옥이 고요한 마음으로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조금도 아프지 않다가도 일단 마음을 쓰기만 하면 그만 아파 오는 것이었다.

 

그는 정신없이 멍하니 한참 동안의 시간을 보내다가 갑자기 자기 품속에 삼음신니의

권보(拳譜)가 들어 있음을 생각했다.

그 책에 기재되어 있는 십삼종의 무공은 한결 같이 절세의 기학이며

내(內), 외(外), 권(拳), 검(劍) 등의 각종 무공의 심정비결(心情秘訣)을 포괄한 것으로

자기의 상처를 치료할 방법이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절망에서다시 한 가닥 희망을 찾게 된 그는 차분히 진정되었다.

사방을 둘러보고 인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한쪽 절벽에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곳을 돌아서 아래로 내려갔다.

이는 그가 조금 전 곤륜파의 제자와 싸웠기 때문에 만일 그가 곤륜 삼자에게 보고라도 한다면

곤륜삼자가 이곳으로 달려오게 될 것이고 따라서 그가 가지고 있는 삼음신니의 권보를 보면

틀림없이 빼앗으려고 할 것이므로 그로서는 싸우지도 못하고 빼앗기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은밀한 곳에 숨어 치료법을 찾아 봐야겠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 절벽을 평소 같으면 도옥이 단숨에 달려 내려갈 수 있는 곳이나

거의 반 식경을 소비하고서야 계곡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계곡은 그다지 넓지 않은 곳으로 양 쪽에 울창한 소나무와 풀이 자라

 근 한자나 되었으며 꾸불꾸불한 계곡은 끝없이 뻗쳐 있었다.

  도옥은 계곡을 더듬어 북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얼마를 더 가서한 구비를 돌아서자 앞의 풍경이 일변해 졌다.

갑자기 눈앞이 확 트여 수십 무(數十畝)의 분지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주위는 모두 절벽으로 막혀 있었다.

그리고 분지(盆地) 중간쯤에 이무(二畝)정도의 연못이 있는데 잔잔한 물결은 퍽 아름다웠다.

  그리고 주위의 높은 절벽과 산이 찬 바람을 막아 주기 때문인지 눈송이 하나 볼 수 없고

따뜻한 것이 별세계에 은 것 같았다.

더욱이 붉고 하얀 야생의 꽃들이 추운 겨울에도 향기를 뿜고 새들이 지저귀는데

도옥은 더없이 만족했다.

도옥은 이러한 풍경에 만족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은신할 수 있는 동굴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주위의 절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과연 얼마 안 가서 한 곳의 은신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은 서북쪽의 절벽 중간에 있으며 넓이는 불과 두 자이고 높이는 여섯 자 정도였다.

그리고 오른 쪽으로 꾸부러져 있어 튀어나온 절벽이 가로 막고 있기 때문에

가까이 가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든 곳이었다.

  도옥은 그 곳으로 들어갖다. 열 자를 못 들어가서 세 번이나 모퉁이를 돌아야 했고

앞은 캄캄해져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없었다.

  이윽고 도옥은 걸음을 멈추고 그 동굴 속에 맹수나 독사들이 있으면

몸에 상처를 입은 그로서는 꼼짝없이 죽게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재의 그로서는 다시 자기 몸이 중상이며 이대로 방치해두었다가는

폐인과 다름없고 또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이를 꽉 깨물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다시 두 모퉁이를 돌자 동굴은 끝나고 앞에 나타난 것은 세 칸 정도 넓이의 석실(石室)이었다.

그 석실 안 쪽 벽에는 유리로 된 커다란 두 자루의 등이 있고 기름은 약 반쯤 들어 있었다.

누군가 살고 있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살았었는지 모르는 석실이었다.

그리고 동북쪽으로 구석진 벽 쪽에 약간 벌어진 틈이 있었다.

  도옥은 기름이 들어있는 두 등을 발견했을 때부터

즉시 이 석실이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과 갈라진 벽의 저쪽에는

어떤 밀실이 있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기의 기운으로는 밀실의 문 같은 벽을 움직일 수 없다고 생각하고

결코 안전한 곳이 못되나 그곳에서 삼음신니의 권보를 볼 수밖에 없다고 결정,

천천히 그 권보를 꺼내서는 한자 한자 자세히 읽어 보았다.

그 권보에 기재된 무공은 대부분이 각우 괴인에게 구술을 받은 것이고

그에게 전수치 않은 것은 가장 단련키 힘든 몇 가지 초고수급 무공밖에 없었다.

그러한 무공은 절기가 심오하여 수년간 연구치 않으면 깨우치기도 힘든 것이었다.

  자세히 그 한 권의 권보를 읽어 본 도옥은 권, 검, 신법의 비결을 좀 더 깊이 터득하여

많은 이득을 얻었으나 그중 두 가지 내공을 수련하는 방법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고

치료법은 더구나 찾아 볼 수 없었다.

  이제 그가 지니고 있던 최후의 희망도 사라지자 도옥은 책을 덮고 밝게 타오르는

등불을 바라보고 탄식하며 괴인 각우 화상을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사실 각우는 천신만고 끝에 이 책을 얻어 기재된 무공을 다배우지도 못하고 제자에게

눈을 빼이고 다리를 잘려 동굴에 구금되었다.

  그 후 도옥을 만나게 되어 그를 제자로 삼아 복수를 하여 달라고 절기를 전부 전수하고

연구하라고 책까지 준 것을 도옥은 그 책자에 기재된 불혈착골법(佛穴錯骨法)의 재간으로

각우를 죽이고 말았다.

그리고 도옥이 그 책자를 입수, 십삼종의 절기를 터득하여 강호에 종횡할 야심으로

부풀어 있었는데 배운 무공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게 될 형편에 빠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죽을 것만 같은 도옥은 자기가 죽으면 이 권보도 남의 손에 들어갈 것을 생각하고

차라리 태워 버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순간 갑자기 밖으로부터 발소리가 들려왔다.

도옥은 책자를 태우지도 못하고 황망히 등불을 껐다.

그리고는 벽에 몸을 붙이고 독침을 꺼내 들었다.

  이윽고 발소리가 석실 문안까지 다가오는 동시에 여인의 외침과 함께 어떤 사람이 뛰어 들어왔다.

  이에 도옥이 막 독침을 던지려고 긴장하여 힘을 주자 상처의 아픔이 되살아나며

오른손은 축 늘어지고 힘이 빠졌다.

  그때 석실로 뛰어 들어온 자는 이미 도옥의 그림자를 발견하고는 검을 빼들어 후려치며

도옥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왼 쪽으로 급히 피한 도옥은 상대가 다름 아닌 바로 동숙정임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동숙정도 도옥을 알아보고는 놀란 음성으로 소리 쳤다.

 

「당신이!」

 

하고 외치며 뒤로 물러선 동숙정은 두 자루의 등잔에 불을 붙였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도옥은 재빨리 독침을 집어넣으며

 

「무슨 인사말이 그렇소? 곤륜파의 땅도 아닌데 못 올 때를 왔소?」 

 

  상대가 적인 줄 알았던 도옥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며 빈정거렸다.

 

「인사라고요? 남의 방에 함부로 들어온 사람에게 무슨 인사에요?」

 

「아니 그럼 곤륜파의 선조라도 모셔 놓았다는 말인가요?」

 

  불쑥 던지는 도옥의 말에 동숙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요. 이 석실은 바로 우리 곤륜파의 역대 사조님들이 좌화(座化)한 곳으로

장문인의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금지 구역 이에요 .」

 

「흥! 곤륜파의 제자도 아닌 내가 그런 속박에 구애될 건 없지.」

 

하고는 갑자기 미친 듯이 웃어대는 것이었다.

 

  그러나 웃음소리가 이상할 뿐 아니라 이마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아니 웃는 거예요? 우는 거예요?」

 

  원래 도옥이 소리를 다하여 웃으면 기혈(氣穴)이 부동(浮動) 함에 팔의 상처가

아파 왔던 것으로 그가 크게 웃을수록 아픔은 더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웃음은 마음속에 쌓였던 분노가 일시에 터진 것처럼 걷잡을 수 없었고

아픔은 더하여 땀을 뻘뻘 흘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는 눈물과 콧물이 함께 쏟아지는 것이었다.

도옥에게 정이 움직였던 동숙정은 순간 가슴이 아팠다.

 

「아니 왜 그래요?」

 

하고 도옥의 몸을 부축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 주춤했다.

바로 그 순간 도옥은 더 지탱할 수 없었던지 그 자리에 픽 쓰러지고 말았다.

  도옥이 기절하여 쓰러지자 동숙정은 남녀수수불관(男女授受不觀)이란

도덕도 더 돌보지 못하고 황망히 도옥의 폐해와 현기 두 요혈을 주물렀다.

  잠시 숨이 막혔던 도옥은 동숙정의 응급치료로 곧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약간 정신을 차리는 듯 했던 도옥은 동숙정의 품에 안긴 채

다시 혼미상태에 빠져 들고 말았다.

  무공의 기초를 밖은 사람은 본능적으로 운기하여 아픔에 항거하고 참을 수 있으나

도옥의 경우는 운기하면 할수록 더 아픈 것이었다.

  그가 몹시 고통스럽게 신음하는 것을 본 동숙정은 더 애처롭게 생각되어

그를 힘껏 안으며

 

「편안히 휴식하면 나을 거예요, 몸이 회복되거든 떠나도록 하세요.」

 

하며 위로했다.

상처가 더해짐을 느낀 도옥은 더 이상 무리를 한다면 정말 생명이 위험하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동숙정의 말을 받아 들였다.

 

  두 등잔에서 비치는 불빛은 석실을 밝게 비쳐 주나 도옥을 바라보는 동숙정의 심정은

결코 평탄하지 못했다.

이 석실은 곤륜파의- 역대 사조의 법체를 모신 곳으로 곤륜파의 제자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그

런데 곤륜파와 적대 관계가 되는 도옥을 그냥 머무르게 하는 동숙정으로서는

크게 계율을 어기게 되는 것이었다.

응당 삼청궁으로 도옥을 잡아가야 하겠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렇게 할 수 없는 동숙정의 심정이었다.

  갑자기 도옥이 눈을 뜨고 냉정한 어조로

 

「외인의 발걸음을 금지한 이곳에 들어온 나는

지금 무공을 조금도 발휘할 수 없는 몸이니 잡아다가 곤륜파에게 바치시오.」

 

  너무나 의외의 말에 동숙정이 어리둥절하다가 고개를 흔들고 가볍게 웃었다.

「이 심산유곡에 우리 곤륜파의 금지 구역이 있으리라고 당신은 생각할 수 있어요?

내가 들어올 때도 파수 보는 사람이 입구에서 있던데 어떻게 들어왔죠?」

  도옥은 동숙정의 얼굴을 주시한 채 그녀의 아름다움에 새삼 감탄하고 있었다.

도포 자락이 비록 널찍한 것이었으나 그녀의 날씬한 몸매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

수려하게 생긴 눈과 눈썹 , 발그레한 볼, 하얀 살결,

그리고 건드리기만 하면 터질 것 같은 붉은 입술, 고개를 수그리고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은 하림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성숙한 여인으로서의 매력이 한층 도옥의 마음을 이끄는 것이었다.

  하림이 곤륜파에 입문하기 전까지는 여제자 가운데 동숙정이 가장 아름다웠다.

준수한 옥영자의 수제자 황지영은 어릴 때부터 그녀를 사랑해 왔고 지금까지

십여 년 동안 동숙정의 뜻을 어겨본 예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옥영자와 혜진자는 모두 사랑에 실패한 까닭에 제자들에게

서로간의 내왕을 혹독하게 다루지 않았다.

  황지영과 동숙정은 누구나가 다 아는 친한 사이였던 것이다.

그러나 동숙정은 혜진자의 은혜를 생각하면은 결코 결혼할 마음이 없었다.

옥영자와 혜진자는 암암리에 그 두 사람이 결혼할 수 있다는

암시와 곤륜파의 제자는 도사가 돼야 한다는 계율이 없다는 것을

알려 주기도 하였으나 동숙정이 열다섯 살 되던 해 혜진자에게 도가에 귀의할 것을 애원했다.

그러자 크게 놀라고 만류하는 혜진자의 뜻을 어기고 도가의 복장을 입을 것을 허락받은 것이다.

  황지영은 처음 그녀가 도사의 복색을 차린 것을 보고는 크게 놀랐으나

그녀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동숙정은 도복을 입은 후 황지영에게 더 쌀쌀하게 대했다.

그렇게 하노라면 황지영도 자기를 단념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러나 아무리 냉정한 빛을 보여도 황지영의 그녀에 대한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동숙정은 도리어 미안한 감을 느끼고 한때 마음이 돌아서는가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 귀의한 이상 그런 일로 도복을 벗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이상했다.

더구나 남녀간의 애정은 더욱 기묘했다.

그것은 지금까지 황지영의 사랑을 억제해 오던 동숙정이 지금 품에 안겨 있는

도옥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이었고 자기도 알 수없는 사랑이 도옥에게로 쏟아지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동숙정은 얼굴 가득히 연민과 애정과 사랑의 눈길로 도옥을 쳐다보았다.

  순간 도옥의 눈과 마주치는 동숙정은 몸 안의 피가 끓어오름을 느꼈다.

  도옥도 역시 뜨거운 기운이 이는 것을 느꼈다.

다시 상처가 아파왔다. 황망히 욕정을 진정시키고 눈을 감았다.

 

「잡아가지 않더라도 얼마 살지 못할 거요.」

 

  동숙정은 부드러운 두 손으로 도옥의 두 손을 감싸듯 잡으며 다정한 어조로

 

「너무 걱정 말고 여기서 몸조리나 잘 하세요. 여기는 나와 큰 사형 만……」

 

  그러자 도옥이 눈을 번쩍 떴다.

 

「그럼?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음…… 그래서 나를 곤륜파로 잡아 가려고? 그러나 잡혀가지는 않을걸!」

 

  그러나 동숙정의 말은 달랐다.

 

「남의 말을 듣고 이야기 하세요. 여기는 큰 사형과 내가 장문인의 유시를 받들어

청소하러 오는 이외에는 아무도 못 와요.

그리고 마침 이 달은 내가 청소를 담당하기 때문에 오늘이 겨우 열이틀,

아직 열여드레가 지난 다음달에 큰 사형이 담당하게 되니

그동안엔 몸조리를 할 수 있잖아요.」

 

  도옥은 그녀가 정을 담뿍이 담은 어조로 말해 주는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이 다시 동요되었다.

매력은 이요홍 못지않고 다정함은 하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부끄러운 듯 상기된 얼굴은 너무나 아름다워 자기도 모르게 두 팔을 내밀어 안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순간,

중상을 입은 상처가 다시 쑤시고 아파 내밀었던 두 팔을 그대로 늘어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너무 상처가 심해 한 달 동안을 조리 해도 살아날 것 같지가 않군요.」

 

  은근히 도옥의 손길을 기다렸던 표정에 동숙정은 멈칫 하였다.

그러나 곧 부드러운 음성으로

 

「우선 며칠 조리나 해요. 차도가 있을지 모르니까.

시장하시죠? 곧 음식을 가져오겠어요.」

 

  그제야 도옥은 몹시 시장기를 느꼈다.

곧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감았다.

이에 동숙정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가냘픈 한숨을 내쉬고는

도옥의 귓가에 나직한 음성으로

 

「마음 놓고 기다려요. 늦어도 이 경까지는 돌아오겠어요.」

 

하고는 장검을 집어 들고 나갔다.

 

  이경에야 온다는 말에 아직도 상당한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하는 도옥은 불안스러웠다.

그러나 심중한 상처로 나갈 수는 없고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석실을 나온 동숙정은 마구 달렸다.

지금 그녀는 도옥에 대한 애정으로 어떻게 하면 도옥의 상처를 낫게 하고

음식을 갖다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더구나 도옥의 성격도 고려해 볼 여유가 없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그때 등 뒤에서

 

「동사매! 동사매!」

 

하는 소리에 그녀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검을 든 황지영이 웃으며 그녀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대사형에 동숙정은 마음이 불안해지며 자기도 모르게 고개가 수그려졌다.

  가벼운 발소리가 그녀 옆에서 뚝 그치며 나직한 황지영의 음성이 울려 왔다.

 

「사매! 왜 그러죠?」

 

  동숙정이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대사형은 가득히 정이 담긴 눈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뛰었더니 좀 지쳤는가 봐요.」

 

하고는 몸을 돌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황지영토 더 묻지 않고 길을 비켜 주었다.

  동숙정이 돌아보니 황지영은 이미 왼 쪽 산비탈 길을 올라가고 있었고

그의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워 보였다.

  동숙정은 이상하게 가슴이 섬뜩하여 몇 번인가

황지영을 불러 그의 품속에 안겨 울고 싶은 충동을 지그시 눌렀다.

순수하고 이지적으로 생긴 도옥의 웃는 얼굴이 황지영의 쓸쓸한 모습을 덮어 버리고 만 것이다.

 

얼마 후,

동숙정은 작은 초가집으로 들어갔다.

등인대사와 혜진자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듯 보이지 않았고 주약란은

내공 운기에 몰입되어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옆에 하림은 주약란의 모습을 커다란 눈망울로 바라보고 있었다.

  가벼운 걸음 소리에 하림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동숙정임을 알아보고는

 

「아, 언니에요. 사부님 보셨어요?」

 

「아니 못 봤는데.」

 

하고는 주약란의 내공 수련의 모습을 보자 돌연 도옥의 상처를 생각했다.

 

  (주약란이라면 도옥의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는 동숙정의 태도가 이상하였는지 하림은 눈을 깜박거렸다.

 

「숙정 언니, 무얼 생각하세요?」

 

하는 것이었다.

 

동숙정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태연히 웃으며

 

「너의 몽환 오빠가 왜 안 돌아오는가 생각하고 있었어.」

 

하는 말에 하림은 다시 생각난 듯 쓸쓸한 얼굴이 되었다.

 

「벌써 근 일년이다 되어 가는데 돌아오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틀림없이 길에서 사고가 났는가 봐요.」

 

하고는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동숙정은 석실에 있는 도옥의 상처를 생각하며 쓸쓸한 표정 이 되었다.

 

  그때 마침 고개를 돌린 하림이

 

「언니도 저의 몽환 오빠를 생각하고 있어요?」

 

  순간 얼굴이 붉어진 동숙정은

 

「밥 안 먹었지?」

 

하고 화제를 바꾸고 말았다.

 

「아니! 먹고 싶지 않아요.

대 언니를 지키느라고 여가가 없었어요.」

 

  동숙정이 웃으며

 

「내가 밥을 지어 줄께.」 

 

  그러나 하림은 양몽환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나는 비록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아버님이 안계셨지만 등인 백부님과 사부님,

몽환 오빠, 대 언니 그리고 언니와 오빠 친구 도옥 등이 친절히 대해 주었어요.」

 

  금방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그때

 

「그 나쁜 놈 도옥이? 이후 그 자는 다시 나쁜 짓을 못하겠지!」

 

하는 말이 들려 왔다.

 

  하림이 고개를 돌리자 어느덧 주약란이 내공의 수련을 끝내고 하는 말이었다.

 

순간 동숙정은 모르는 체 하며

 

「도옥이 죽었어요?」

 

했다.

 

「죽이지는 않았지만 일신의 재간은 다시 써먹지 못하도록 만들었어.」

 

  동숙정은 가슴이 선뜩하여 주약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주약란의 눈과 마주치자

눈을 내려 깔고 말았다.

 

 

  그러자 하림이

 

「도옥은 몽환 오빠와 다정한 친구인데 언니가 도옥을 죽이면 오빠가 슬퍼할 거예요.」

 

「아니 죽진 않아, 단지 나의 천강지(天?指)의 재간에 그의 오른쪽 옆구리와 왼쪽 어깨의

경맥을 짚였기 때문에 다시 무공만 닦지 않고 평안한 생활만 하면 괜찮아.

기운을 내거나 피의 순환을 빠르게 하는 운동만 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지.」

 

하는 것이었다.

 

「그럼, 구할 방법은 없어요?」

 

  주약란은 차가운 어조로

 

「방법은 있지만 그를 구해 주면 또 얼마나 좋은 사람이 그놈 손에 죽을지……」

 

하는데 하림이 애원하듯

 

「치료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하며 다가앉았다.

 

「그 방법을 알아선 무엇 하려고?」

 

「만나면 치료해 주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는 일생 동안 무공을 단련치 못할 거예요.」

 

  주약란의 맑은 눈동자가 물끄러미 하림의 얼굴을 한동안 주시하는 것이었다.

하림은 주약란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잡으며 자기의 말에 기분이라도 상했는가 걱정하여

 

「가르쳐 주고 싶지 않으면 안 배워도 좋아요.」

 

「가르쳐 주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낫기를 바라지 않는 거야.」

 

하며 주약란은 하림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올려 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언니는 하림에게 모든 내 재간을 가르치려고 해.

지금은 네가 아직 어려서 내공의 기초가 잡혀지지 않아 못 가르치지만

기초가 잡히는 대로 가르치려고 해.」

 

  다정한 눈빛이었다.

 

「언니가 나에게 그럴 수 있다는 것은 잘 알아요.

하지만 오빠가 이 일을 알면 나를 나무랄까봐 그래요.

더욱이 그는 기련산에서 나를 한 번 구해 주었거든요.

어떻게 내가 모른 척 할 수 있어요.

언니! 다른 것은 안 배워도 좋으니 도옥을 구하는 방법만 가르쳐 주세요.」

 

  만일 치료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틀림없이 순진한 마음이 상심할까

염려한 주약란은

 

「그래, 가르쳐 주지.」

 

하고 말했다.

 

「언니는 참 좋아……」

 

  하림은 주약란의 품에 안기는 것이었다.

 

주약란은 가늘게 탄식하며

 

「너의 동정심이 많은 선량한 천성은 귀엽기는 하지만

인간 세계의 시비를 가릴 줄 모르는 것이 걱정스럽다.

이후에 절묘한 재간을 배운다 해도 강호의 험난한 길을 헤어나지 못할 것 같구나.」

 

하자 하림은

 

「몽환 오빠가 총명하니까 그의 옆만 떨어지지 않으면 어느 누구라도 나를 해칠 수 없을 거예요.」

 

  주약란이 웃으며

 

「그도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별 못해요.」

 

하고 피식 웃었다.

 

「응, 그러면 제가 떠나지 않고 지켜 주면되지 않아요.」

 

하고는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생각하는 듯 혼자 웃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언니도 우리와 함께 있어요. 네?」

 

  주약란은 웃으며 화제를 바꾸려는 듯

 

「자, 침대에 앉아서 이야기하자. 도옥을 구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게.」

 

  이윽고 그들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동안 동숙정은 부엌으로 가서 많은 음식을 만들어 일부는 감추고 나머지만 내왔다.

세 사람은 배가 고팠던 참이라 곧 먹고는 하림도 동숙정을 도와 부엌에서

그릇을 씻으며 동숙정이

 

「사매, 그 도옥이란 사람은 나쁜 사람인가?」

 

  시치밀 떼고 물었다.

 

「대 언니는 도옥이 나쁜 사람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몽환 오빠가 그와 가까이 사귀지 않았을 것 아녜요?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야 치료 방법을 가르쳐 줄 텐데.」

 

  이 기회라고 생각한 동숙정은

 

「아마 그 방법은 상당히 어려울 거야.

너의 대 언니가 아니면 치료하지 못 할 거야.」

 

하고 슬쩍 건네는 말에 하림은

 

「대 언니가 천강지 신공으로 그의 소양(少陽) 소음(少陰) 두 혈맥을 짚었기 때문에

기혈(氣穴)이 상처로 순행하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상처가 아프대요.

고치려면 거꾸로 서서 음양(陰陽)을 도치(倒置)시켜 운기(運氣)하면 피가 거꾸로 흐르게 되어

두 혈맥을 통과 한대요.

그리고 한 이틀 정양하면 회복할 수 있대요.

그러나 팔일이 지나 기혈이 응결하면 고치기 힘들다는데 그가 있는 곳을 모르니

고치긴 틀렸는가 봐요.」

 

하고 탄식하며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었다.

 

은근히 치료 방법을 알고 난 동숙정은 몹시 기뻤으나

석실에 남겨놓은 도옥을 생각하고는 초조했다.

 

  그릇을 다 씻고 난 하림이 넋을 잃고 있는 동숙정을 발견하고는

 

「언니, 사부님을 생각해요?」

 

  순간 동숙정은 속으로 흠칫했다.

사부님이 십여 년간 가르치고 길러주신 것은 세상의 부모님과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자기는 도옥을 금지 구역에 감추어 두었으니 일단 다른 사람에게 발각되면

생명을 보장할 수도 없으려니와 얼마나 사부님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인가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사부님이 베푸신 은혜는 태산과 같은데 나는 그 은혜를 저버렸으니 실로 부끄러운 일이야.」

 

  그러나 천진난만한 하림은 동숙정의 말 속에 숨어 있는 뜻을 알 길이 없었다.

 

  하림은 생긋 웃으며

 

「사부님은 정말 우리들의 은인이에요.

이렇게 오랫동안 돌아오시지 않으니 불안해 죽겠어요.

대 언니보고 우리를 도와 찾아 달라고 해 볼까요?」

 

  동숙정은 다시금 감동되어 눈물을 가득히 머금고는

도옥이 숨은 사실을 하림에게 이야기 하고 도옥을 잡아 삼청궁에 보내어

장문인의 처단을 바랄까 하는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곧 사라지고도옥의 웃는 모습이 그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사매는 이제 겨우 몸이 회복되었는데 움직이면 안돼.

만일 사백부님과 사부님이 오늘 저녁까지 돌아오시지 않으면

내일 장문 사백부님에게 알려서 찾도록 할께.」

 

하림이 탄식하며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젠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자면

무수한 고비를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요.」

 

하고는 천천히 나갔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 졌지만 혜진자와 등인대사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동숙정은 뒷산봉우리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온 우주는 고요함에 잠겨 적적하기만 했다.

동숙정은 깊어 가는 어둠 속을 응시한 채 사랑과 애정의 길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천갈래 만갈래의 생각은 그녀를 괴롭힐 뿐이지 어떤 결론을 얻을 수 없었다.

찬바람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별은 이미 초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윽고 도옥에게 음식을 갖다 준다는 약속을 생각하고 치료법도 가르쳐서

빨리 석실을 떠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급히 산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감추어 두었던 음식을 들고 석실로 달려갔다.

그녀가 워낙 빨리 달렸기에 석실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겨우 초경이 좀 지났을 때였다.

 

  동숙정은 음식을 놓으며

 

「배고프죠? 이 음식은 제가 손수 만든 것이에요. 맛이 어떤 가 먹어 봐요?」

 

  음식을 보니 도옥은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음식을 들고 입에 넣으려다가 이 근처엔 삼청궁밖엔 인가가 없는데 어디서 만들었을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도옥은 동숙정의 얼굴을 살폈다.

그때 음식은 먹지 않고 자기 얼굴만 쏘아 보는 도옥을 보자

 

「왜 먹지 않고 사람만 그렇게 쳐다보세요?」

 

  그러자 도옥은

 

「이 음식은 삼청궁에서 만든 것이오?」

 

「심사매의 거처에서 만든 것이에요. 왜 그러세요?」

 

  도옥은 혹시나 음식에 독약을 넣지 않았나 의심이 된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천천히 음식을 들어 입에 넣고는 한동안 씹어 보았다.

별 이상이 없었다.

 

그제야 도옥은

 

「그저 물어 본거요.」

 

하고는 바쁘게 먹기 시작했다.

 

  동숙정은 옆에서 도옥이 자기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가 다 먹자 웃으며

 

「어때요, 맛이?」

 

하며 생글생글 웃었다.

 

「배가 고팠던 참에 잘 먹었소. 그러나 음식만 먹으면 상처가 날까?」

 

  그러면서 도옥은 그녀의 얼굴이 슬픔에 젖는 것을 보자 마음속으로 미안하여

위로의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기의 점점 더해 가는 상처를 생각하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동숙정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도옥을 바라보며 처량해진 어조로

 

「비록 상처가 침중해도 치료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만사가다 귀찮은 듯 동숙정의 말을 그대로 흘려버리는 도옥은 눈까지 감는 것이었다.

그러자 동숙정은 크게 실망했다. 몸을 천천히 일으켜 밖으로 향해 걸음을 옮기고 말았다.

  이때 그녀의 심정은 증오와 사랑이 뒤범벅이 되어 가슴이 찢어질 것 같았다.

동굴을 나온 동숙정은 연못가에 앉아 슬픔에 젖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발소리가 들려 바라보니

도옥이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입구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동숙정은 참으려고 애썼으나 끝내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달려가 도옥을 막아섰다.

 

「계곡 입구에 지키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에게 발각되면 사로잡히게 돼요.」

 

  그러나 도옥은 냉정한 어조로

 

「석실에 있어도 마찬 가지오.」

 

하는 것이었다.

 

「돌아가세요. 치료법을 알려 드리겠어요.」

 

  그제야 도옥은 약간 멈칫하더니 크게 웃으며

 

「나도 모르는 치료법을 당신이 어떻게 알아……」

 

하고 크게 웃는 바람에 상처가 아픈 듯 오른 손으로 가슴을 부둥키며 주저앉는 것이었다.

 

  동숙정은 괴로워하는 도옥의 모습에 다시 연민의 정이 솟았다.

 

동숙정은 도옥의 오른 팔을 부축하며

 

「천강지에 당신의 소양, 소음 두 혈맥이 짚여서 빨리 치료하치 않으면

팔일 후에는 응결되고 고질이 된대요.

무공도 단련할 수 없는 영원한 페인이 된대요.」

 

  귀가 뻔쩍 뜨이는 이야기였다.

 

「맞아! 소양과 소음은 인체 내의 중요한 경맥이오.」

 

하고 숨을 두어 번 몰아쉬고는 일어섰다.

 

  동숙정은 계속하여

 

「그 천강지는 일종의 신비한 내가공력(內家功力)으로 이루어진 재간으로

몸을 손상시키고 맥을 상하게 한대요.

그러니까 외면에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대단한 중상을 당해 전신의 기혈이

그 두 경맥에 유통되지 못하고 일신의 무공도 소용없게 된 거래요.」

 

  정연한 이론에 반신반의하게 된 도옥은 매우 궁금한 듯

 

「그럼 어떠한 방법으로 고칠 수 있소?」

 

  그러나 그녀가 도옥을 향하여 이제까지 표현한 성의에 대해

조금의 반응도 없는 도옥의 태도에 동숙정은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대답도 않고 몸을 돌려 동굴 밖으로 나가 버렸다. 

 

  잔인하고 교활한 도옥은 동숙정의 자기에 대한 감정을 모를 리가 없었다.

단지 그의 성격이 음침하고 경계심이 많은 까닭에 그리고 그의 상처가 점점 더해져

마음에 수심만 가득해서 모든 것이 귀찮고 역정만 났던 것이다.

 

  나갔던 동숙정이다시 들어와 그릇을 닦는데 도옥이 석실 문 앞에 와서 웃는 듯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었다. 동숙정은 그제야 원망을 폭발시키는 듯

 

「왜 왔어요? 나가요!」

 

하며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것이었다.

 

  순간 도옥의 얼굴빛이 약간 변하여 졌으나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동숙정은 석실로 들어가며

 

「비켜요!」

 

했다.

 

그러나 꼼짝도 하지 않는 도옥이었다.

화가 난 동숙정은 오른 손으로 도옥을 조금 밀었다.

순간 옆으로 비켜서려던 도옥은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도옥의 몸으로는 조금도 항거할만한 기운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동숙정은 급히 일으키며 어루만지듯 다정한 소리로

 

「잘못했어요. 제가」

 

  도옥이 담담하게 웃으며

 

「화가 안 풀렸다면 몇 번 더 밀어도 좋소.」

 

  동숙정은다시 울먹이며

 

「치료법을 알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도 모르고……」

 

하고는 애처롭게 도옥을 바라보며

 

「빨리 일어나 호흡이나 조절해요. 치료법을 가르쳐 드리겠어요.」

 

  그제야 도옥은 일어나 호흡을 조절하고 동숙정은다시 석실로 도옥을 데리고 들어가서

치료법을 이야기했다.

이어 도옥이 거꾸로 서서 전신의 기력이 역행하자 가만히 운기 시켰다.

과연 상처 난 곳이 아프긴 해도 심하지는 않았다.

 

  거의 한식경이 지났을 때부터 점점 고통은 사라졌다.

속도를 더하여 운기하고 기혈의 역행을 일주시키자 온 몸은 푹 땀에 젖고 말았다.

도옥은 다시 바로 맞아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동숙정은 기쁨을 감추며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하고 웃었다.

 

「많이 좋아진 것 같은데.」

 

  그 말에 동숙정은 안심한 듯 몸을 일으키며

 

「효과가 있으면 안심하고 여기서 치료를 계속하세요.

내일 다시 와서 보겠어요.」

 

하고 나가 버리고 말았다.

 

석실에 같이 있으며 도옥의 치료를 살펴 주고도 싶었지만 한방에서 기거 할 수는 없었다.

동숙정이 나가자 도옥은 몸을 한동안 쉬였다가 계속 그 방법으로 치료했다.

그리고는 다시 쉬었다가 치료하고 수없이 계속했다

그리하여 몇 번 거듭할 때마다 자기의 상처가 호전되는 것을 도옥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