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13 장 괴인(怪人)스승을 만나다 <地穴逢奇>

오늘의 쉼터 2014. 6. 22. 12:28

제 13 장 괴인(怪人)스승을 만나다 <地穴逢奇>
 

 

  이창란은 냉소한 후 지팡이를 휘두르며 다시 공격하려고 했다.

이때, 돌연 백보비발 제원동(白步飛?齋元同)이 한걸음 나서는 것이었다.

 

「방주께서는 잠시 화를 참으시오 제원동이 여줄 말씀이 있습니다.」

 

  이창란은 뒤돌아보며

 

「제단주! 무슨 말인지 하오.」

 

하고 잠시의 여유를 주었다.

 

「이미 곤륜 삼자와 대각사의 중들이 먼저 싸웠습니다.

그러므로 그분들이 마저 싸운 후 우리가 다시 싸워도 늦지 않을까하옵니다.」

 

하고 눈을 가늘게 뜨며 이창란의 기색을 살폈다.

이때 한편에서 제원동의 말을 듣고 있던 일양자가 나섰다.

 

「제단주의 말씀이 옳은 말이오.

저희들이 귀방을 위해 선봉에 서지요.」

 

  그러자 제원동이 가로막고 나서며 호기 있게

 

「하한…… 겸손한 말씀.」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이창란은 제원동의 말이나 일양자의 말이 모두 비위에 맞지 않는 표정으로

냉정하게 그러나 여유를 두며 말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산 인질이오.

어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수 있겠소이까?」

 

  그러자 승일청과 최문기가 서로 앞을 다투며 제 각기 자기들이 나서겠다고 덤벼들었다.

 

「모두 옳은 말씀이오. 귀한 방주의 몸으로 어찌 그들과 싸우겠소이까?

여러분들은 물러서 계시고 저희들이 먼저 저 도적놈들과 겨누어 보고 여차하면

방주께서 싸워 주시지요.」

 

  최문기와 승일청(勝一淸)이 말하는 동안 그들의 말을 듣는 척 하면서

이창란은 영공(靈空)의 거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창란은 갑자기 영공의 오른 손이 부르르 떠는 듯 하더니

돌연 눈썹이 굵어지며 암암리에 기력을 운행하고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홀연!

 

  영공(靈室)의 대성일갈 소리와 함께 오른손이 번쩍 올랐다가 빠른 속력으로 이창란을 내리쳤다.

 

  순간! 날쌘 동작으로 몸을

 

  <획!>

 

  돌린 이창란은 머리털과 수염이 꼿꼿이 일어섰다.

 

「음! 네가?」

 

  신음소리 같은 말을 중얼거리던 이창란은 왼 손의 식지(食指)에 진기를 모았다가

일시에 내뿜으며 영공의 손등을 찔렀다.

그러자 백독장력(百毒掌力)의 일격으로 이창란을 콩가루로 만들어 버리려던 영공은

이창란이 건원지신공(乾元指神功)을 일으켜 영공의 백독장을 허공에서 마주 받게 하여

여지없이 막아버리는데 깜짝 놀랐다.

 

  순간!

 

  영공의 손바닥 안에서는 경련이 일어나며 가죽이 벗겨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의 손바람의 무시무시함에 저억이 놀랐다.

영공의 백독장은 동물과 식물의 백가지 독을 뽑아 이용한 무술로서

비록 신불 영원(神佛靈遠)의 태음기공(太陰氣功)처럼 기묘하고 정화한 것은 못되나

독하기로는 태음기공보다 더 했다. 더구나 독이 사람의 몸에 들어가면

 제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죽고 마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지독한 백독장으로 일격을 가한 영공은 속으로

 

  (네놈은 오늘로 마지막이렷다!)

 

했는데 도리어 건원지신공으로 역습해 올 줄은 몰랐다.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다. 손바닥에 경련 같은 아픔을 느끼는 순간

온 몸이 나른해 지며 영공 자기가 쓴 백독이 반대로 자신의 오장 속으로 역습하는 것이었다.

영공은 기절하듯 놀라며 자기의 몸으로 들어오는 백독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섰다.

그러나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혈도를 막을 재간이 없었다.

이때!

한 쪽에서 두 사람의 격투를 보고 있던 철미륵 영해(鐵彌勒靈海)가 나는 듯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재차 공격해 오는 이창란의 손바람을 영문격랑(迎門擊浪)으로 막고

영공의 거골(巨骨) 천주(天柱)의 두 혈도를 폐쇄시켰다.

그러자 이창란은 분을 참지 못하여 다시 지팡이를 휘두르며 횡단무산(橫斷無山)으로

철미륵의 공격을 막자 천중사추(川中四醜)의 네 명이 앙 쪽에서 뛰어 나와

철미륵을 공격하는 한편 영공을 사로잡으려고 달려들었다.

영해는 대노하여 큰 소리로 외치며 두 주먹을 휘둘러 이용분수(二龍分水)로 달려드는

공세를 막았다.

그리고 수를 변화시켜 공격하려는 찰나! 이창란의 지팡이가 영해의 머리위에서

 

<휭! 휭!)

 

소리를 내며 내려치려고 했다.

이에 질겁한 영해는 뒤로 자빠지듯 몇 발자국 물러나지 않고 배길 도리가 없었다.

그러자 운(雲), 뢰(雷), 전(電), 섬(閃) 등 네 명의 증들도 선장을 각기 휘두르며 뛰쳐나와 합세했다.

문자 그대로 난장판이 벌어졌다.

더구나 제원동은 비발을 승일청은 자모담(子母膽)을 허공에 휘두르며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고

내달려 공격했다.

번개 같이 날아간 제원동의 비발은 일운(一雲)의 머리를 반조각으로 쪼개고 승일청의 자모담은

일뢰(一雷)의 가슴팍에 사정없이 꽂혔다.

머리가 깨진 일운은 두 다리를 번쩍 들다 쓰러지고 일뢰는 입으로 피를 토하며 죽어 버렸다.

고함과 신음과 살벌하고도 날카로운 쇳덩이의 구르는 소리는 천지를 진동하는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동료를 잃은 친, 섬 두 중은 간담이 서늘해지며 싸울 마음을 잃고

도망갈 구멍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천중 사추에게 생포된 영공은 자기편들의 무참한 죽음을 멍하니 바라보며

코와 입으로 피를 쏟으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는 영공을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던 이창란은 지팡이를 들어

영공을 찌를 듯이 다가서다 대성일갈 했다.

 

「소천의와 대각사 간에는 아무 원수진 일도 없는데

무슨 분풀이로 부골독침(附骨毒針)을 찔렀는가?」

 

그러나 영공은 그따위 물음에는 대답도 할 필요가 없다는 듯 들은 척도 안했다.

그러자

 

「말하지 않아도 좋다.」

 

한 후 영해를 돌아보며

 

「나는 이 영공을 데리고 가서 부골독침을 뽑게 하겠소.

만일 영공을 구하려는 생각이 있으면 반년 안에 천용방 총당(天龍幇總堂)으로 오고

그렇지 않으면 원망하지 마시오.」

 

하고 잘라 말했다.

 

이 말에 벌컥 화가 난 영해가 일어나며 냉소했다.

 

「홍! 데리고 간다고? 그러나 이 기련산(祈連山)을 빠져 나가기 전에

먼저 네 목숨이 붙어있지 못할 걸……」

 

하는 가 했는데 어느 틈에 전, 섬 두 중에게 눈짓하고 질풍 같이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생각 밖의 돌변한 사태에 놀란 최문기가 뒤를 쫓으려고 했다.

이때 이창란이 최문기를 제지하며 손짓으로 그냥 두라는 시늉을 하자

어느 사이에 승일청의 손이 허공에 올랐는지 허공을 가르는 자모담이

영해의 뒤통수를 향하고 유성같이 날랐다. 정말 번개 보다 더 빠른 승일청의 자모담이었다.

정신없이 두 명의 중과 함께 달리기에 바빴던 영해는

 

  <휘익!>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자모담을 보는 순간 몸을 교묘히 피하여 암력을 발휘하면서

자모담을 쳐서 막아 버렸다.

순간!

제원동의 노기등등하고 빛나는 눈에는 영해의 뒤편에 서있는 하림을 발견하고 쏜살같이 달려갔다.

제원동이 달려오는 모습을 얼핏 본 일양자와 등인대사는 하림의 앞으로 나서며 제원동을 막고

눈을 부라리는 것이었다.

그러는 한편…,

아무 영문도 모르는 이요홍은 하림과 나란히 서서 담소하다가 돌연한 사태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한편에서는 제원동이 달려들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최문기와 승일청이 달려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때 모든 준비를 갖추고 위험한 사태를 예기하고 있던 옥영자(玉靈子)와 혜진자는 여유 만만하게 칼을 뽑아 들었다. 심각한 순간이었다.

서로 쌍방은 눈을 부라리며 대기하고 마주섰다. 이런 위급한 시기에 눈을 부라리던 제원동은

큰 소리로 상대방에게 말을 걸었다.

 

「백의 소녀도 곤륜파의 문하냐?」

 

  벼락같이 지르는 소리에 일양자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렇소. 최단주처럼 고귀한 분이 일개 제자의 신분을 묻는가?」

 

그 말에 제원동은 고개를 끄덕이며 은연중에 암기를 써서 비발을 하림의 머리로 날리려고

정확히 겨냥했다.

그러나 하림과 같이 붙어서 있는 이요홍 때문에 비발을 날릴 수 없었다.

어쩌다 실수하여 이요홍의 머리를 맞추게 되면 큰일이었다.

 

「이향주! 조금만 물러서시오!」

 

하고 외쳤으나 이요홍은 꼼짝도 하지 않고 오히려 뚫어지게 노려 볼 뿐이었다.

 

  (제원동이 이 하림과 무슨 원한 관계라도 있다는 것일까?)

 

  이요홍이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제원동의 노기 띤 비발의 위력을 너무나 잘 아는 이요홍은

하림이 상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엎어지듯 하림을 끌어안으며 제원동에게 가냘프게 외쳤다.

 

「아저씨! 이 하림과 무슨 원수가 있다고 그러십니까? 제 발‥‥」

 

  애원하듯 호소했다.

 

  이요홍의 애절한 호소에 제원동은 얼굴을 씰룩거리며 분을 참는듯하다가

 

「백의 소녀의 신분을 확실히 알려 준다면 참겠다!」

 

말을 마치자 서슬이 시퍼런 눈초리로 일양자를 향하여

 

「높으신 관주께서는 거짓말은 안하리라 믿소.

저 소녀는 남의수사 심사랑(藍衣秀士沈士朗)의 딸이 아니오?」

 

  순간! 

 

 일양자는 착잡한 심경에 미처 대답할 길이 없었다.

얼마 동안 머리를 숙이고 생각하던 일양자는 옆에 서 있는 등인대사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때, 역시 등인대사는 수십 년 전의 일이 문득 되살아나 지금까지 비밀로만 간직했던 일이

청천하에 폭로되는 것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고 또 만 가지 감회가 일시에 몰려들었다.

이와 같이 이상한 분위기에 휩싸여 일양자와 등인대사가 미처 대답하지 못하고

곤궁에 빠져 있을 때,

영리하고 기민한 이요홍이 나서며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아저씨! 의부(義父)의 몸에 박힌 독침이 곧 발작할 시간이 됐어요.

발리 돌아가 구해 주세요.」

 

하고 간청하듯 외쳤다.

 

위기일발의 직전에서 이요홍의 기민한 간청은 제원동의 마음을 돌려놓고 말았다.

제원동과 하림 사이에는 어떠한 원한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대로 방관한다면

곤륜파와 천용방은 이 자리에서 생사를 건 싸움이 벌어지지 않을 수 없는 위기에 놓여 있음을

간파한 이요홍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자리에서 만은 싸움을 하지 않도록 하려고 했다.

그러한 이요홍의 계획은 적중했다.

이요홍의 기민한 제의에 이창란도 수긍하며 지금 이 시기가 곤륜파와 싸울 적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이창란은 아직 노기등등하여 비발에만 진기를 넣고 있는 제원동의 어깨를 두드리며

 

「제단주!」

 

하고 불렀다.

 

이창란의 부르는 소리에 제원동은 고개를 돌리며

 

「무슨 분부라도? 방주님!」

 

「제단주의 마음은 알겠소마는 지금 곤륜파와 싸울 때가 아니요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 같소.」

 

  제원동은 아무리 울화가 치밀어도 방주 이창란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제원동은 방주의 말을 듣고 급히 허리를 굽히며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비발을 거두었다.

 

  이창란은 싱긋이 웃으며 제원동의 어깨를 한 번 더 두드린 다음

일양자에게 향하여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실례가 많았소.

차후 기회가 있어 인연이 닿으면 귀파의 천강장법과 분광검법을 한번 구경하고 싶소이다.」

 

하며 다음 기회를 은근히 약속하였다.

 

  그러자 일양자도 못지않게 웃으며 여유 있게 대답했다.

 

「감사하오이다. 많은 지도를 바라겠소이다.」

 

「하‥‥ 하‥‥ 지도라? 그렇지.」

 

  거만하게 웃던 이창란은 갑자기 웃음을 그치고 이요홍을 바라보았다.

 

「너는 왜 그렇게 서 있느냐? 빨리 돌아가지 않고?」

 

  그러자 무영녀 이요홍은 생글 생글 웃으며

 

「아빠가 먼저 가세요. 저는 하림 동생과 할 이야기가 있어요.」

 

 딸의 귀여운 모습을 바라보며 이창란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스무 살이 됐으면 아빠의 마음도 알아야지.」

 

하고는 일양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딸애를 부탁하오.」

 

한마디 남긴 후 부하들을 거느리고 산모퉁이를 돌아 유유히 사라져 갔다.

이창란 일행이 사라지자 이요홍은 하림의 손을 잡으며

 

「동생!」

 

하고 불렀다.

 

「예. 홍 언니!」

 

「동생은 무슨 일로 제단주와 원수가 됐지!」

 

  하림은 눈을 깜박 깜박 하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몰라요. 저도 오늘 처음 듣는 소리예요.」

 

하고는 밝은 눈을 돌려 옆에 서 있는 등인대사에게로 향했다.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세요.

그리고 저의 아버지 이름이 심사랑인가요?」

 

  그러나 모든 것이 괴롭다는 듯 입을 꾹 다물고 눈을 지그시 감은 등인대사는

얼굴이 굳어지며 한숨처럼 나직이 한마디 하는 것이었다.

 

「나도 모른다. 앞으론 더 묻지 말라!」

 

  하림은 참고 참았던 눈물을 뿌리며 등인대사의 발아래 엎어지듯 꿇어앉았다.

 

「사백님! 어찌된 일인가요? 왜 말씀을 안 해주세요!」

 

  몸부림치며 등인대사를 흔들었다.

 

  등인대사는 모든 괴로움을 잊으려는 듯 묵묵히 섰다가 하림을 내려다보며

 

「울지 마라. 시기가 오면 너의 스승님이 말해줄 거다.」

 

하고는 돌아서 버렸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말의 울음소리가 났는가.

했는데 말발굽소리도 요란하게 한 필의 말이 나타났다.

  안장도 단정하게 매어져 있는 말은 이요홍의 옆으로 와서 섰다.

그리고는 낮은 소리로 짧게 울었다.

  하림은 말을 쓰다듬으며 이요홍에게 말했다.

 

「홍 언니! 이 말은 오빠의 친구 도옥(陶玉)이라는 분의 말이네요.」

 

하고 말하자 하림의 말을 듣고 있던 이요홍은 속으로 저억이 놀라며

 

「동생도 도사형을 알아?」

 

하고 물었다. '

 

그 말에 하림은 고개를 저으며

 

「오빠가 말해 줬어요.」

 

하고 대답했다.

 

하림의 대답을 들으려는 것이 이요홍의 의도는 아니었다.

하림을 만나는 순간부터 양몽환의 소식을 듣고 싶어 했던 이요홍이다.

이요홍 자기가 먼저 양몽환의 말을 하림 앞에서 꺼낼 수 없다.

더구나 하림과 양몽환의 관계를 벌써부터 알고 있는 이요홍으로서는

차마 하림에게 양몽환의 소식을 물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다행히 하림의 입에서 먼저 양몽환 오빠의 이야기가 나온 것을

내심 기뻐하는 이요홍은 밖으로는 나타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화제를 양몽환의 신변에 까지 이끌고 가서

나중에 자기의 뜻한바 양몽환의 소식을 들으려는 계획이었다.

이요홍은 화제를 바꾸어

 

「동생! 동생은 언니가 있어?」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는 듯이 물었다.

 

「예, 있기는 있어도 오빠의 친구예요.

그분의 기막힌 무술이 아니었다면 저나 오빠는 벌써 죽었을 거예요.」

 

이요홍은 양몽환의 친구이자 무술이 기묘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랐다.

다만 양몽환이  하림과 함께 있지 않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동생은 아까 오빠가 그 언니와 함께 어디로 갔다고 말했지 않아?」

 

「그랬어요. 그러나 그 언니는 오빠의 말을 잘 순종할 거예요.

무슨 딴 마음 같은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이요홍은 약간 얼굴을 붉혔다.

그만큼 하림은 오빠나 언니라는 여인을 믿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림의 천진난만하고 하나도 의심 없이 믿는 그 순진성에 탄복하며

이요홍 자기는 그렇게 못하는 것을 부끄러이 여겼다.

그러나 이요홍의 마음은 약간 슬퍼지는 듯 했다.

 

  (이렇게 순진한 하림을 속이고 어제 양몽환을 차지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자기의 대범하지 못한 마음을 돌이켜보며 조금 낙심했다.

 

그러자 하림이 다가오며

 

「언니! 왜 그래요? 내가 말한 것이 언니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하며 이요홍의 손을 잡고 물었다.

 

그러나 이요홍은 아무 말 없이 하림에게 다정하게 웃어 보인 후 빈 안장만 달고 온

도옥의 말(馬) 적운 추풍구(赤雲追風駒) 앞으로 다가서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째 말만 오고 도옥 사형(陶玉師兄)은 오지 않으니 무슨 일이라도 났을까?」

 

  그러자 하림이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정말! 웬일일까요? 함께 찾아봐요!」

 

하고는 혜진자에게 다가가서

 

「사부님! 저와 홍언니는 도옥 사형을 찾으러 나가도 될까?」

 

하고 읍하며 물었다.

 

이때 혜진자의 옆에 있던 옥영자가 하림의 말이 옳은 듯 하림을 거들어 주었다.

 

「글쎄 무슨 일인지, 같이 가서 찾아보도록 하면 어떨까?」

 

  혜진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하는 뜻을 표했으나

 

「길이 험하고 산이 깊은데 어떻게 찾는단 말이냐?」

 

하고 도리어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때 이요홍이 재빨리 나서며

 

「이 적운 추풍구가 우리들을 인도하여 갈 것이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고 보내 줄 것을 간청했다.

 

혜진자는 기쁜 듯이 웃음을 띠며 고개를 끄덕였다.

혜진자의 응낙한다는 뜻이 떨어지자마자 이요홍은 적운 추운구의 등을

 

  <탁!>

 

  두드렸다.

 

  그러자 적운 추풍구는 이요홍의 손을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가늘게 울며

남쪽으로 머리를 돌리며 달려 나갔다.

갑자기 뛰어 달리는 말을 쫓던 이요홍과 하림은 자기들의 걸음으로는 따라 간다는 것이

어려움을 알자 경신법(輕身法)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적운 추풍구의 속도는 이요홍과 하림의 경신법을 무시하는 듯

천리마(天里馬) 그대로 훨훨 나는 듯이 달려 이요홍과 하림이 허겁지겁 달려오면

다시 달리고 하며 거의 두 시간 동안이나 달렸다.

이윽고 높은 산봉우리에 먼저 달려온 적운 추풍구는 이요홍과 하림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맞은편 산봉우리를 향하여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경신법을 이용해서 적운 추풍구를 따라 달렸다 해도 산봉우리 까지 도달했을 때는

구슬땀이 백옥같이 이마에 송 송 솟고 있었다.

산봉우리에 다다른 이요홍과 하림은 그 아래 밝은 호수와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발견하고

마음이 상쾌했다.

무심코 호수와 시냇물을 바라다보던 하림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이요홍을 불렀다.

 

「언니! 저 쪽에 굴이 있죠? 저는 두 번씩이나 저곳에 가 봤어요.」

 

  언니는 이곳으로 나를 구해가지고 왔어요.

 

「뭐라고? 이곳에 왔었다고?」

 

이요홍이 놀래며 묻는 말에 하림은 그냥 고개만 끄덕이며 앞장을 서서 굴로 향하여

내려가고 있었다.

두 번씩이나 이곳에 다녀간 하림은 굴속의 형태나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눈을 감아도 넉넉히 찾아 들어갈 자신이 있는 하림은 주저하지 않고

굴속으로 들어갔다.

하림이 들어가는 뒤를 바짝 따라 이요홍이 눈을 휘둥그레지며 들어간 것은 물론이다.

얼마나 들어갔을까?

 

과연!

 

그 곳에는 금환이랑(金環二朗) 도옥이 반듯하게 누운 채 움직이지를 못하고 있었다.

 

순간!

 

하림은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구나 도옥과 같이 어렸을 때부터 같이 자란 이요홍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원래 이요홍은 도옥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몽환이 나타나자 도옥에게 쏟았던 모든 정이 양몽환으로 바뀌어

이요홍은 양몽환과 도옥 두 남자를 두고 어느 남자를 택하는 가에 상당한 고심을 했다.

그러나 정이라는 것은 알 수 없는 것,

어느덧 이요홍은 도옥을 완전히 잊고 양몽환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아무도 보살펴 주는 사람도 없는 곳에 도옥이 혼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본 이요홍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까?

이요홍은 천 가지 감회가 일시에 몰려와 더 참을 수 없어 엎어지듯 달려가

정신없이 쓰러진 도옥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이요홍이 흘리는 뜨거운 눈물은 도옥의 얼굴 위에 무수히 떨어졌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도옥은 자기를 품에 안고 있는 사람이 꿈에도 잊을 수 없었던

이요홍이라는 것을 알고

 

「이 소저! 이렇게 나를 찾아 주다니……」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이요홍과 도옥의 슬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하림도 두 줄기 눈물을 흘리며

 

「흥 언니! 빨리 손을 쓰세요. 울기만 하지 말고……」

 

하고 이요홍의 어깨를 흔들었다.

 

하림의 말을 들은 이요홍은 눈물을 닦고 정신을 수습한 후 도옥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그러나 다행히 눈에 뜨일 만큼의 상처나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이요홍은 다시 자기의

옛정을 생각하며 슬피 울 뿐이었다.

 

그때!

 

굴 안을 메우는 듯한 소리가 나면서 한 떼의 무리가 웅성웅성하며 달려들었다.

하림과 이요홍이 소스라치듯 놀라 급히 한곳으로 몸을 피하고 동정 을 살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요홍과 하림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그들은 바로 일양자의 일행이었다.

 너무나 슬피 우는 이요홍의 울음소리를 들은 일양자는 일행을 재촉하며 달려 온 것이었다.

도옥의 온 몸을 샅샅이 뒤져본 일양자는 도옥을 습격한 적의 솜씨에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곁으로는 아무 상처도 없었다.

그러나 도옥의 몸은 요혈, 경맥 모든 혈도가 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적의 솜씨가 얼마나 날카롭고 교묘한지 일양자는 도옥의 몸 어디서부터 혈도를 들어

피를 통하게 해야 좋을지 분간할 수조차 없었다.

 

얼마를 심각히 생각한 일양자는 적의 수법이 보통의 혈도 폐쇄 수법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채고 추궁과혈수법(推官過穴手法)으로 도옥의 혈맥을 문질렀다.

 

그리고 얼마 후!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듯 긴 숨을 몰아쉬며 벌떡 일어났던 도옥은 다시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일양자는 이마에 솟은 땀을 닦으며 이요홍을 돌아보았다.

 

「지금 도옥은 며칠 굶어서 기운이 없는 탓이오.

곧 음식을 먹이도록 하면 생명은 걱정할 것 없소!」

 

하고 말했다.

 

이요홍은 급히 맑은 물을 떠다 도옥의 입에 흘려 넣은 후 죽을 쑤어 먹였다.

이요홍의 정성어린 간호와 가벼운 음식으로 의식을 회복한 금환이랑 도옥은

 이요홍 옆에 앉아 있는 일양자를 발견하고 이요홍에게 물었다.

 

「누구신지? 저 도사님은?」

 

 도옥의 의식이 회복된 것을 기뻐하던 하림이 이요홍보다 먼저

 

「양몽환 오빠의 사부이십니다. 정신이 좀 드시는지요?」

 

하는 하림의 말을 듣고 있던 도옥은 저억이 놀라며 지난 며칠간 하림에게

너무나 경솔했던 것에 자책을 느꼈다.

더구나 양몽환의 사부라면 바로 현도관 주인 일양자 그 사람이 아닌가?

또한 하림이 혼미 상태에 빠져 있을 때 도옥을 양몽환으로 착각한 하림에게

한 자기의 경솔했던 짓을 일양자 스승에게 고해 바쳤다면…… 정신이 아찔했다.

그러는 한편에서는 도옥의 심정의 변화를 알길 없는 이요홍은 도옥의

겁내는 듯한 얼굴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요? 조금만 더 편히 누웠다 일어나세요.」

 

하고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병세를 걱정했다.

그러나 도옥은 일양자와 하림을 번갈아 보다가 하림의 귀여운 모습에서

안도의 기색을 찾아내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눈을 떠서 일양자에게 고개를 끄덕여 고맙다는 목례를 했다.

그러자 일양자는 온 얼굴에 웃음을 띠며

 

「당신의 상처는 별로 눈에 띠지는 않소만 모든 요혈에 응결이 있소

내 미천한 무술로는 고치기가 힘들어 겨우 혈맥을 열어 놓았을 뿐이오.」

 

하고 도옥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리하게 몸을 쓰지만 않으면 이삼일 후에는 완쾌될 것 같소.」

 

하고 말했다.

 

  도옥은 일양자의 말을 듣고 곧 일어나 앉으며

 

「고맙습니다. 선배님께서 고치지 못한 것을 어찌 완쾌되길 바라겠습니까?

다행히 완쾌되면 나를 해친 그 원수를 찾아 꼭 복수하겠습니다.」

 

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

 

「아니오! 내가 보기에는 당신을 상하게 한 상대방의 수법이 상당히 교묘하고

날카로운 무술을 가진 고수인 것 같소 그러니 만반 조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일양자의 노파심에서 하는 말을 도옥은 냉소하며

 

「그것은 제가 할 일이오니 염려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며 여유 있는 대답을 했다.

 

일양자는 도옥의 늠름한 태도에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왔다.

 

하림은 준비하였던 음식을 도옥의 머리맡에 놓으며

 

「너무 상심마시고 몸조리 하세요.

움직이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하고 눈물어린 소리로 도옥에게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하림을 보고 있던 도옥은 그녀의 순진한 마음씨에 마음이 흐뭇했다.

 

그러나 태도를 바꾸며

 

「움직이지 않으면 어떻게 원수를 찾아 복수하겠소?」

 

하고 성한 사람처럼 몸을 일으켜 굴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도옥은 몇 걸음 달리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일양자의 무술로 간신히 응결된 피만 회복시켰을 뿐 아직 피가 마음대로 돌지 못하는 몸은

도옥의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았다.

 

이요홍과 하림이 급히 달려가 쓰러진 도옥을 부축하여 다시 자리에 눕혀 놓았다.

그러나 도옥은 분을 풀길이 없는듯 이를 가는 그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좌르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이러한 광경에 마음이 쓰라린 이요홍은 슬픈 얼굴로 도옥을 내려다보며

 

「왜 그렇게 조급히 구세요?」

 

하고 꾸짖듯 말하자 도옥은 웃음도 울음도 아닌 이상한 외마디 소리로

 

「으흐……」

 

하면서 비통해 하는 것이었다.

 

그때!

 

도옥의 신음소리가 굴 밖으로 새어 나가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적운 추풍구가

대답하듯 길게 울었다.

 

도옥은 자기의 준마 적운 추풍구의 울음소리를 듣고 새 기운이 용솟음쳤다.

손짓으로 이요홍과 하림을 불러 부축하게 한 도옥은 아까워는 빈대로

한 걸음 한 걸음 굴 밖을 향해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굴속에서 나타난 도옥을 발견한 적운 추풍구는 꼬리를 흔들며 등을 낮게 굽혔다.

말의 뜻을 알아챈 도옥은 주저 없이 말 잔등에 올라탔다.

그러자 자기의 주인을 태운 적운 추풍구는 다시 한번 길게 목을 뽑아 울었다.

그리고 그 울음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밀리 사라지는 자기의 울음소리를 잡기나 하려는 듯

질풍같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뜻밖의 일에 기절하듯 놀란 이요홍은 내달리는 적운 추풍구를 향하고 경신법을 이용하여

곧 뒤를 따랐다.

그러나 적운 추풍구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깊은 산 속에는 이요홍의 가느다란 흐느낌만이

퍼지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후 뒤따라 온 하림에게 위로 받으며 발길을 돌리려는데 일양자와 등인대사가 마주 달려왔다.

 

「 무슨 일일까?」

 

하고 눈을 둥그렇게 뜨고 의아해하는 하림과 이요홍 앞으로 급히 달려온 일양자는

이요홍을 바라보며

 

「이소저! 이곳은 안전하지도 못하고 더구나 아까 방주께서 이소저를 부탁한다는 말도 있었소.

속히 이 곳을 빠져 나가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소.」

 

하고 함께 가기를 권하는 것이었다.

 

이요홍은 가만히 생각하다 일양자의 말대로 이곳을 벗어나기로 하고 하림과 함께

일양자와 등인대사의 뒤를 따라 산을 내려왔다.

 

한편!

 

질풍같이 달리는 적운 추풍구 준마 위에 타고 있던 도옥은 아직 회복되지도 못한 몸으로

찬 바람을 맞는 것은 무리였다.

 

그러나 속히 원수를 찾아 복수하려는 일념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던 도옥은 갑자기

혼미하여 지는 정신을 수습하지 못하고 말고삐를 놓는 순간 이 척이나 높이 날았다가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를 지났을까?

향긋한 풀 냄새와 잔잔히 얼굴을 간지르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뜬 도옥은 푸른 잔디가 매끈하게 깔려 있는 풀밭에 누워 있다는 것과

바로 옆에 사랑하는 준마 적운 추풍구가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시 눈을 감았다.

온몸이 쑤시듯 아프고 혼미하여지는 정신을 수습하며

 

(아, 나 금환이랑 도옥은 여기 이름도 모르는 산에 묻히고 말 것인가?……)

 

여기까지 생각한 도옥은 자기가 자기의 병을 너무나 잘 알았다.

소생하지 못하고 죽을 것만 같았다.

깊은 한숨을 몰아쉬며

 

(만일 내가 이곳에서 죽는다면 저 준마 적운 추풍구는 어떻게 될 것인가?

어느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끌려가 고생한다면…… 차라리 나와 함께 죽느니만 못하다……)

 

이렇게 생각이 들자 도옥은 정말 자기 자신이나 적운 추풍구의 신세가 처량해 졌다.

 

「그렇다면!」

 

도옥은 있는 힘을 다하여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 맞아 품속에서 독침을 꺼했다.

우선 적운 추풍구부터 찔러 죽인 다음 자기도 스스로 독침을 찔러 죽으려고 결심했다.

 

도옥은 독침을 빼들어 높이 손을 쳐들고 암암리에 기력을 모았다.

그러는 도옥의 이마와 목덜미에서는 비 오듯 땀이 흘렀다.

 

그러나…,

 

이미 기진맥진한 도옥의 팔은 힘이 모두 쇠퇴하여 더 기력을 쓰지 못하고 힘없이

독침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도옥은 온 몸의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며 다시 그 자리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깊은 잠에 빠진 듯 숨소리 하나 없이 쓰러져 있는 도옥은 이상한 짐승의 울부짖음에

차차 정신이 들며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다음 순간!

 

머리끝이 쭈뼛해지며 등허리에는 식은땀이 좌르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화다닥!)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는

 

「호랑이! 호랑이가?」

 

하는 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흘러 나왔다.

 

과연…,

 

두 마리의 호랑이를 상대로 적운 추풍구가 무시무시한 싸움을 전개하고 있었다.

맹렬한 기세로 앞발을 벌리고 달려드는 한 마리의 호랑이를 뒷발로 걷어차며

세척이나 높이 뛰었던 적운 추풍구는 다른 한 마리의 호랑이에게로 육박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러자 호랑이는 자기의 동료가 말의 뒷발에 채여 머리가 깨지며죽는 것을 보고

이미 전의를 상실했는지 높은 나무를 나는 듯이 뛰어 넘어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과연…,

 

적운 추풍구의 뒷발에 나둥그러진 한 마리의 호랑이는 달려들던 그대로 앞발을 벌린 채

머리가 깨져 있었다.

 

두 마리의 호랑이를 간단히 물리친 적운 추풍구는 급히 도옥에게로 달려와 길게 목을 뽑고 울었다.

길게 울던 적운 추풍구는 등을 굽히며 도옥이 올라타기를 바라는 듯 도옥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순간…,

 

도옥은 적운 추풍구의 목을 껴안으며 흐느껴 울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독침으로 너를 죽였더라면 나는 이미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운 추풍구는 도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만 껌벅이고 있을 뿐

속히 도옥이 자기 등에 오르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는 듯 또 한번 길게 우는 것이었다.

 

그제야 도옥은 적운 추풍구의 등 위로 몸을 무겁게 올려놓았다.

도옥을 태운 적운 추풍구는 천천히 발을 옮겨 산 모퉁이를 돌았다.

이때 별안간 뒤에서 호랑이가 떼 지어 몰려오는 날카로운 울부짖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천천히 가던 적운 추풍구는 발을 멈추고 호랑이의 소리를 가만히 확인한 후

질풍처럼 앞을 보며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쫓아오는 호랑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뜸하고 완전히 사라지자

적운 추풍구는 걸음을 늦추었다.

적운 추풍구의 걸음이 늦추어지자 도옥은 긴장되었던 마음을 놓으며 졸졸 흐르는 샘가에서

말을 세워 내렸다.

도옥과 말은 똑 같이 심신이 피로했다.

샘가로 다가가 목을 축인 도옥은 풀 위에 누우며 말을 쳐다보았다.

 

이때, 적운 추풍구도 약간 마음을 놓는 듯 먼 하늘을 이리 저리 바라보며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해도 떨어지고 어두워지는 밤하늘에는 하나 둘…… 별들이 떠오르기 시작하고 주위는

어둠을 재촉하는 고요한 산 속이다.

심신의 긴장이 어느덧 풀리며 포근히 잠이 들려는 도옥은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머리를 들었다.

 

바로 그때 ,

 

이상하게 들려오던 소리는 갑자기 속도가 빨라지고 그 소리는 쇠붙이와 쇠붙이가 맞부딪치는

둔탁한 소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이때 먼 하늘을 바라보던 적운 추풍구도 귀를 쫑긋거리며 앞으로 다가왔다.

 

도옥은 말 잔등에 손을 없으면서 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적운 추풍구도 도옥의 마음을 아는 듯 가만히 사방을 휘둘러보다

이윽고 한 곳을 주시하는 것이었다.

급히 적운 추풍구가 바라보는 곳을 따르던 도옥은 얼마 멀지 않은 곳에 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쇳소리는 그 굴속에서 나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다. 이 깊은 산 속 더구나 굴속에서 쇳소리가 나다니)

 

이상한 호기심에 끌린 도옥은 적운 추풍구를 앞세우고 한 걸음 한걸음 굴 가까이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도옥이 접근해 옴을 미리 알고 기다렸다는 듯이 굴속에서는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 나왔다.

 

「누구냐?」

 

하는 소리가 들렸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지남철에 끌려가는 쇳덩이처럼 도옥의 몸이

굴속으로 삼켜 들어간 후였다.

더구나 병세로 허약해진 도옥의 몸은 종이조각 그것이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도옥은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캄캄한 굴속!

 

천천히 살피며 들어와도 모를 어둠 속의 굴속을 순식간에 끌려 들어온 도옥의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도옥은 바짝 정신을 차리며 어둠 속에서 눈이 익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차차 주위의 윤곽이 나타나며 어느 정도 사물을 식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도옥의 바로 뒤에서 음침하게 웃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도옥은 또 한번 혼이 나간 사람처럼 놀라며 급히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괴물이 웅크리고 있었다.

무릎 아래서부터 두 발이 모두 잘라지고 산발한 머리와 눈알이 빠져 구멍만 나 있는 얼굴,

더구나 팔이 꺾어져 간신히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괴물,

그러나 그뿐이 아니었다.

양 어깨에는 굵은 쇠사슬이 칭칭 감겨져 몸을 움직일 때마다

 

  <철렁! 철그렁 꽈르르륵>

 

 쇠붙이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괴물이 음침하게 웃음을 웃으며 말하는 데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마터면 기절하여 깨어나지도 못할 만큼 끔찍하고도 무시무시한 형상의 괴물이었다.

 

「히 히…… 네가 나를 죽이려 왔다고? 힛 …… 히……」

 

 도옥의 몸은 좍 소름이 끼쳤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으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했다.

말만 못한다면 송장이나 다름없는 괴물을 대하고 도옥은 사지를 부들부들 떨었다.

 

「아닙니다. 정말 아닙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왜 죽이겠습니까?

 더구나 내 몸은 매우 중한 상처가 있는 사람입니다.」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그러자 밖에 있던 적운 추풍구가 길게 울었다.

말의 울음소리에 놀라는 듯 괴물은 도옥의 팔을 쥐며

 

「네가 타고 온 말이냐?」

 

하고 물었다.

 

그러나 그 물음보다 가죽만 남아 대롱거리는 괴물의 손이 도옥의 팔을 잡는 순간

도옥의 온 몸은 뼈가 부러지는 듯 아픔을 참을 길이 없었다.

 

「마 ‥‥ 맞습‥‥ 니다‥‥ 제가 ‥‥ 타고 온 ‥‥ 그런데 이 손을‥‥좀‥‥ 놔주어요」

 

하고 신음 소리도 겨우 대답할 수 있었다.

 

도옥의 죽는 소리에 괴물은 다시

 

「힛 ‥‥ 힛 히 ‥‥」

 

음침하게 웃으며 쥐었던 도옥의 팔을 놓았다.

 

「상처라고 그랬지?」

 

  괴물은 도옥의 팔을 놓고 쇠고랑 소리를 철그렁거리며 물었다.

  그때 까지도 배가 쑤시는 것을 주무르고 있던 도옥은 묻는 대로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괴물은 굉장한 신법을 가진 도인인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번개같이 일어났기 때문이었고 또 한편 그의 손이 무서웠기도 했기 때문이다.

  도옥은 괴물의 동정을 살피며 대답했다.

 

「예, 독침입니다.」

 

「흠, 독침이라? 그렇다면 내가 고쳐주겠다.」

 

「정말입니까?」

 

「그렇다. 그러나 내 청이 하나 있다.」

 

「무엇입니까?」

 

「네가 만일 내 소원을 들어 준다면 병을 고쳐 주겠고 안 듣는다면 너도 나처럼

눈알을 파내고 다리를 꺾어 평생 여기서 나와 함께 살게 만들겠다.」

 

  순간! 도옥은 다시 식은땀이 좌르르 나며 모골이 곤두섰다.

 

「예, 무슨 말이든지 듣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렇다면 네 병도 고쳐주고 천하제일의 무술도 가르쳐 주겠다.」

 

「그러시면 청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고 도옥이 조급하게 묻자 괴물은 손을 저으며

 

「네 상처를 치료한 다음에 말해도 늦지 않다. 어디 좀 만져 보자!」

 

하고는 도옥의 몸에 손을 댔다.

 

도옥은 선뜻!

놀라며 가슴을 두근거렸다.

그러나 마음을 침착히 냉정을 찾으며 당황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도옥의 몸을 이리저리 만져 보던 괴물은 갑자기

 

「 맞았어!」

 

고함을 치고는 곧 말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네 상처는 투골타맥수법(透骨打脈手法)으로 습격당한 것이다.

이병은 천하 무술인이라 해도 고치는 사람은 몇 사람 없다.

다행히 수법이 미숙하여 상처가 깊지 않으니 망정이지 큰 일 날 뻔했다.

 

「그렇다면 죽는다는 말입니까?」

 

「물론이지.」

 

「그런데 이 투골타맥수법이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정말 죽습니까?」

 

「그것은 말이다. 약 삼백년 전에 아미태산(阿彌泰山)의 삼음신니(三音神尼)가 창조한 것이다.

그 때 삼음신니와 천기진인(天機眞人)이라는 두 사람이 천하제일의 무술을 다투기 위하여

밤 낮 사흘 동안을 싸웠으나 오천 여수가 지나도 승부가 나질 않았지,

그래서 나흘째 되는 날 서로 지상(至上)의 내공(內功)으로 싸운 결과 둘이 모두중상을 입고

말았지.」

 

  여기까지 말한 괴물은 잠깐 숨을 돌린 후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싸울 수 없이 된 둘은 서로 화해하고 자기들의 무술을 기록하여

그것을 귀원비급(歸元秘?)이라 명명하였지.

그런데 지금 무술인들이 그것을 찾으려고 온갖 심혈을 기울였으나……」

 

하고 입을 다물었다.

도옥은 무서운 공포 속에서도 괴물의 말이 이창란의 말과 같은 것을 알고

 

  (혹시 이 괴물이 귀원비급을 ……)

 

이상한 생각을 하며 괴물의 거동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괴물은 음성을 낮추며

 

「그런데 투골타맥수법으로 너를 찌른 놈은 어떤 놈이더냐?」

 

하고 묻는 것이었다.

 

도옥은 괴물의 물음에 잠시 생각한 후

 

「어두워서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때, 돌연

 

괴물의 얼굴이 찌그러지며 태도를 바꾸어 날카롭게 물었다.

 

「그런데 너는 대체 어떤 놈이냐? 어떻게 이곳을 알고 왔느냐?」

 

「영원이란 놈이 가라고 시켰지? 내 무공을 배우려고?」

 

  갑자기 돌변한 괴물의 태도에 도옥은 섬뜩 놀래며 뒤로 물러 않았다.

 

  그러자 괴물은 도옥의 앞가슴에 손을 대며

 

「바로 말하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

 

하고 고함을 질렀다.

 

순간!

도옥의 머리 속에는 어떻게 하든지 위기를 면하고 귀원비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괴물의 말대로 영원(靈元)이라는 사람과 어떤 원한 관계라도 있는가를 알아보고 싶었다.

 

도옥은 마음을 대담하게 가지며

 

「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불의의 습격을 받아 이곳까지 피신하던 길일뿐 영원이란 사람도 모릅니다.

더구나 무술을 배우겠다는 마음도 없습니다.」

 

하고 차근차근히 대답했다.

살기등등한 괴물 앞에서 까딱 잘못하는 날이면 개죽음을 당한다는 것을 도옥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안심이 되는 군 …… 그런데 이상한 일이로다.

투골타맥수법을 쓸 줄 아는 사람은 나와 영원이라는 제자 한 놈 뿐인데 ‥‥

누가 너에게 이 수법을 썼단 말인가……」

 

하고 혼자 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나 도옥은 못 들은 척 하고 다른 말을 했다.

 

「삼음신니가 모든 무술을 귀원비급에 수록했다면

이 투골타맥수법도 역시 비급에 기록되어 있겠군요!」

 

「그렇고 말고!」

 

「그럼 그 비급만 찾아내면 투골타맥수법도 배울 수 있겠죠?」

 

  도옥의 말에 괴인은 심란한 듯 침울한 표정을 짓다가 탄식했다.

 

「음 ‥‥ 배울 수 있지, 비급만 손에 넣는 날이면,

천하무적! 두려울 것이 없었을 것을 ……」

 

  이때 도옥은 괴인의 침울한 표정과 그의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내심

 

  (이 괴인도 역시 비급을 찾으러 다니다가 이 꼴이 되었구나)

 

  생각하며 괴인의 다음 행동을 주시했다.

 

  괴인은 얼마 동안 가만히 앉았다가 갑자기

 

「으음 ……」

 

하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괴인의 손이 번쩍! 오르며 맞은 편 바위를 향하여 다섯 손가락을 펴는 순간!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맞은편의 집채 같은 바위가 가루처럼 산산이 부서져

삽시간에 온 굴속을 뒤덮어 버렸다.

 

「앗!」

 

도옥은 자기도 모르게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엎어 졌다.

그러나 눈알이 빠진 괴인은 그런 것이 보일 리는 없었다.

바위가 부서지든 말든 그대로 꼼짝없이 앉아 있는 괴인과는 반대로 도옥의 맑고 큰 눈이

공포에 떨 뿐이었다.

 

잠시 후, 괴인은 노기 띤 목소리로

 

「내 만일 불의의 습격만 받지 않았더라도 비급은 내 손에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얼굴에 분노를 가득 나타내며

 

「어떤 놈이든지 비급을 갖은 놈이 나타난다면 생사를 걸고 뺏어 불에 태워 버리겠다.

그러면 나에게 겨눌 놈이 없겠지!」

 

괴인의 성난 얼굴과 행동은 난폭 그것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살기가 충천했고 자기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는 듯 입에서는 피를 쏟고 있었다.

도옥은 그의 무시무시한 성질에 자못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 장발(長髮)의 머리칼은 십년 이상이나 자랐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십년 동안이나 병신의 몸으로도 비급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쇠사슬에 묶여서도 단념하지 못 하다니‥‥)

 

이렇게 생각한 도옥은 이 괴물의 무서운 집념과 욕망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옥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괴인에게서 병을 치료 받기만 하면

이굴 속을 빠져 나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도옥은 괴인의 화가 풀어지기를 기다려

 

「그런데 저에게 청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물었다.

 

「그것 말인가?」

 

별 것 아니라는 듯 괴인은 도옥의 손을 더듬어 가볍게 쥐면서

 

「너는 나를 스승으로 모시고 이곳에서 일년 동안만 시중해라!」

 

도옥은 가슴이 섬뜩하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러나 병만 치료된다면 제자가 될 필요 없이 도망칠 것을 결심 하고

곧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스승님!」

 

  괴인은 즐거운 및을 감추지 못하며

 

「기특하다! 나는 너에게 일년 동안 매서운 무술을 가르쳐 주겠다.」

 

「 고맙습니다. 스승님」

 

「음! 그래서 네가 무술을 습득하면 사형(師只,) 영원(靈元)이를 죽이고 그의 목을 베어 오너라.」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순간, 도옥은 대답할 바를 몰랐다.

 

(어찌 스승이 제자에게 무술을 가르쳐서 사형을 죽이라 할 수 있을까)

 

(퍼뜩!)

 

생각이 들었으나 곧 머리를 흔들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놈이 색계(色戒)를 법하여 내가 책망할까 두려워 내 다리를 자르고 눈알을 빼어

앞도 못 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 어깨뼈에 구멍을 뚫어 이렇게 쇠사슬로 묶어 놓고 도망갔다.

그래서 나는 오늘까지 삼십년 동안이나 여기에 갇혀 있다.」

 

놀라는 도옥을 보지 못하는 괴인은 분함을 참지 못하는 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놈은 마땅히 무술계에서도 죽어야 한다.

그 놈이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은 내 절학을 배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네가 이 원수를 갚아다오!」

도옥은 괴인의 말을 듣고 모든 진상을 알게 되었다.

그러는 도옥의 가슴 속에도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스승을 이렇게 까지 해 놓다니 ……)

 

  증오에 찬 눈빛을 빛내며

 

「스승님! 이 제자가 꼭 복수하겠습니다.」

 

하고 굳은 결심을 보였다.

 

괴인은 도옥의 말을 듣고 어린애처럼 기배하며 쥐었던 도옥의 손을 놓고 등을 두드렸다.

 

「장하다. 꼭 복수해 다오.」

 

「예,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마음이 흡족하여진 괴인은 기뻐하던 얼굴을 고치며

 

「그런데 그놈의 무술이 아주 악랄하고 무섭단 말이야.

특별한 무술이 아니고는 이길 수 없지.

내가 전에 장법(掌法)을 기록한 책을 읽어 연구하고

또 새로 창조한 책이 있는데 그놈은 이것을 노리고 있어.

어떻게 해서든지 내게서 장법을 배워 가려고 노린단 말이다.」

 

하고 말하는 괴인의 이야기에 자기도 모르게 흥분한 도옥은 불끈 주먹을 쥐며 일어났다.

그러나 씩은 나무 기둥처럼 그 자리에 풀씩 주저앉고 말았다.

너무나 괴인의 말에 도취되었다가 자기의 병세도 생각지 못하고 일어섰던 것이다.

그의 병세는 그를 다시 쓰러지게 하고 말았던 것 이었다.

 

한편!

 

눈으로 볼 수는 없으나 청각이 예민한 괴인은 그 소리를 듣고 능히 짐작할 수 있는

도옥의 행동에 도망가려는 줄 알고 급히 도옥의 등 뒤 명문요혈(命門要穴)을 잡으며

 

「웬일이냐? 도망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도옥은 옴짝 달싹 할 수 없는 몸에 간신히 힘을 주며

 

「스승님.」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고는 내심 차후의 모든 일에 극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러면?」

 

「제자의 상처가 갈수록 중해져 몸을 조금 움직여 보았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고 곧이어

 

「스승님의 말씀을 듣고 그 사형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 더 아픈 것 같습니다.」

 

  그제야 괴인은 잡았던 명문요혈을 놓아 주었다.

명문요혈이 풀리자 도옥의 몸에서는 식은땀이 좌르르 흘렀다.

 

「그래? 그렇다면 먼저 상처부터 치료해야겠군!」

 

하고 말한 후 괴인은 도옥을 반듯하게 눕혀 놓았다.

도옥은 두려움이 앞섰으나 자기의 지금과 같은 병세로서는

도저히 이 괴인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죽으나 사나 괴인에게 몸을 맡겨보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괴인은 도옥의 몸을 이리 저리 만져본 후

 

「음……」

 

하고 신음 소리 비슷한 소리를 내며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괴인은 도옥의 등에 손을 돌려 십팔대혈(十八大穴)과 사람의 몸에 있는

삼백육십오혈(三百六十五穴)중 가장 중요한 삼십육혈을 차례차례로 찔러 나갔다.

 

그리고 다시 잠간 손을 멈추었다가 숨을 몰아쉬며 사(死),운(暈),아(啞),마(麻)의

사혈도(四穴道)를 단숨에 찔렀다.

 

순간!

 

도옥의 몸은 땀구멍에서마다 물이 솟아나듯 땀이 내솟으며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 깊은 잠에 빠져 들고 말았다.

그로부터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는 여덟 시간의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러한 도옥의 몸은 어느 한 곳도 아픈 곳은 없었으나 큰 병을 않고 난 사람처럼

기진맥진하여 운신할 수가 없었다.

그때까지 옆에서 도옥의 숨소리만 듣고 있던 괴인은 도옥이 긴 숨을 쉬며

깨어나는 것을 눈치 채고 도옥을 부축하여 일어나 앉게 하였다.

그리고 자기의 공력을 암암리에 집중시켜 도옥의 명문혈을 통해 온 전신에 퍼지도록

기력을 운행하여 힘껏 넣어 주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맥을 못 추던 도옥의 몸은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르며 피가 끊는 듯

생기와 건강을 일시에 찾게 되었다.

 

  (참, 신비한 무술이다!)

 

  감탄할 여유도 없이 괴인은 도옥을 다시 자리에 눕히며 한잠 더 자라고 일렀다.

 

「조금만 더 자라, 내가 손을 늦게 썼더라면 너는 두 경맥이 굳어져 죽을 뻔 했구나!」

 

  도옥은 이 괴인에게 무엇이라고 감사의 말을 해야 할지

유구무언(有口無言) 바로 그것이었다.

  괴인은 도옥에게 어느 음식이나 먹지 못하게 하였다.

 

「음식을 먹으면 치료가 소용없이 돼!

하루 동안만 참으면 되는데 사나이가 하루쯤 못 굶어!」

 

  준엄히 타이르고 계속하여 아홉 번을 더 치료했다.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정오에야 도옥의 병은 완전히 치료되었다.

 

「됐어! 잠시 쉬었다가 음식을 먹어라!

나는 너를 치료하느라고 너무 진기를 써서 좀 쉬었다가 무술을 가르쳐 주마!」

하고는 돌아 앉아 기력을 운행하기 시작했다.

 

  한편…,

 

  괴인의 말대로 얼마 동안 쉰 도옥은 암암리에 기력을 운행하여 보았다.

 

  과연!

 

 혈맥이 순하고 건강한 몸을 되찾은 것 같았다.

그길로 일어나씨 굴속을 한바퀴 돌며 몸도 움직일 겸 자세히 둘러보았다.

도옥은 굴속의 한 구석에 놓여 있는 대바구니에서 약간의 음식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오래되어 음식은 거의 썩어 있었다.

그렇다고 주린 창자를 채울만한 다른 음식도 따로 있을 리 없었다.

대바구니를 뒤집어 음식을 쏟아 놓고 덜 썩은 밀가루 떡 조각을 찾아 먹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럭저럭 도옥의 굴 속 생활은 다시 사흘이 흘렀다.

지루하기 그지없는 사흘!

괴인은 별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술을 가르쳐 주지도 않은 채 사흘이 지나갔다.

생각 같아서는 곧 도망가고 싶은 도옥이었지만 혼자만의 계략이 이루어진 후에라도

늦지 않다는 것을 도옥은 알고 있었다.

더구나 십수 년 동안 굴 속에 감금된 채 지내오는 동안 모든 인연과 두절되고

또 그만큼 성질도 변하여 바쁘거나 급한 일을 망각해 버린 괴인에 비하면

일주일 동안의 굴 속 생활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나흘째 되는 날.

이윽고 괴인은 도옥의 병세를 물었다.

 

「예, 스승님, 이제는 완쾌 되었습니다.

속히 무술을 가르쳐 주셔서 원수를 갚게 해 주시기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흥, 그래? 그래야지. 그런데 복수를 하려면 나의 무술을 꼭 배워야 한다.

나와 같은 사람과 상대가 되는 무술을 가진 사람은 이 천하에 몇 명이나 되는지,

겨우 한 두 사람이나 될까? ……」

 

「스승님! 그러시면 저에게 무술을 가르쳐 주셔서 꼭 복수하도록 해 주십시오.」

 

  도옥은 눈을 반짝이며 진심으로 무술을 배우고자 간청했다.

그렇게 말하는 도옥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괴인 스승은 만족한 듯이

 

「그런데 말이다. 투골타맥수법으로 너를 찌른 놈은 원래 원수사인가?」

 

「스승님! 제자가 상처를 받을 때 너무 날이 어두워서 미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얼굴을 볼 수 있었다면 원수인지, 아닌지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괴인은 한참 동안 무엇인가 깊이 생각하는 듯하다가

 

「그러면 이리 오너라!」

 

하고 앞장서서 더 깊고 캄캄한 굴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으로 굴 문을 잠그는 것이었다.

 

  철그렁! 도옥은

 

  (이제는 갈데없이 이 괴인처럼 되는구나!)

 

하고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괴인은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자기의 기력을 운행하여

모든 진기가 모이는 것을 느꼈는지

 

「내가 하는 대로만 따라 하면 된다!」

 

하고는 도옥에게 자기의 천하제일의 무술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순간적인 절망을 벗어난 도옥은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괴인 스승이 하는 대로 하나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배웠다.

배우면서 연구하고 연구하며 배우는 사이에 어느덧 반달이라는 날이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다름없이 무술을 가르치던 괴인은 잠시 쉬는 동안을 이용하여 도옥을 불렀다.

 

「너 하고 무술을 연습해온지도 보름이 지났다.

그런데 너는 이 노승의 이름을 왜 묻지 않느냐?」

 

순간!

 

도옥은

 

「아차!」

 

하고 머리를 쳤다.

 

(큰 일 났구나,

벌써 귀성존명을 알아 두어야 할 일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제자의 도리가 아니다.

용서를 빌자!)

 

이렇게 무심했던 일을 생각하는 동안!

 

도옥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괴인 스승은 호탕하게 웃으며 곧 말했다.

 

「하 …… 하 …… 내가 알려주지 않았으니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고 묻는다 해도 대답하진 않았을 거야, 하 ……」

 

「스승님……」

 

「그래, 그러나 무술계에서 나를 아는 사람도 없을 거야 ……」

 

「그것은 스승님께서 무술인들과 상대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는 도옥의 말이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같았음인지

괴인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만족해하는 것이었다.

얼마 동안 그렇게 기뻐하던 괴인 스승은 잠시 숙연해 지는 가 했는데

도옥에게 손짓하여 가까이 오라는 표시를 했다.

도옥이 허리를 굽히며 괴인 스승 앞으로 나가자 괴인은 도옥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내 이야기를 잘 들어라.」

 

하고는 조용한 음성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천하제일의 무술인이 되려고 수십 년 동안 지켜오던 대각사의 주지 자리를

나의 수제자 영원에게 넘겨주고 대각사를 떠났지.

그리고 각처를 유랑하며 무술도 배우고 어느 정도 자신이 생겼을 때,

그 당시 명성이 쟁쟁하던 소림(小林), 무당(武堂) 양파와 겨누어 보기로 결심 했지.」

 

「 스승님!」

 

「가만히 들어라. 그래서 나는 어느 날 호북성(湖北省)으로 가서

밤중에 칠성봉 삼원관(七星峯三元觀)으로 들어갔어.

그곳에서 나는 무당파의 장로 네 명에게 싸움을 걸었지.

그들은 모두 장검을 들었지만 나는 맨 주먹 뿐이었거든.」

 

「그러면 스승님이 대각사의 주지였나요?」

 

「그렇다니까, 그러나 거의 삼백 수나 겨누었는데 승부가 나질 않는구나. ……」

 

「그럼 스승님 혼자서 네 명의 장로와 싸우셨습니까?」

 

「 그렇지!」

 

「정말 굉장한 일이군요.

더구나 맨 주먹으로 겨누셨으면 보통 무술인이라고 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괴인 스승은 도옥의 칭찬에 그때 패기 있던 지난날을 추억하는 듯

얼굴에 기쁜 빛을 나타내고는 아무 말 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갑자기 머리를 흔들었다.

 

「그렇지만 나도 네 명의 장로를 이길 수는 없었지. 그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서 나는 더 싸워볼 생각을 그만두고 그 길로 고산의 소림사(小林寺)로 떠났지.」

 

「그럼 도망을 쳤습니까?」

 

「도망? 하 …… 하 …… 그렇기도 하겠지,

그러나 그만하면 내 무술도 어느 정도 고수라는 것이 증명되었고

그들과 더 싸울 필요가 없기도 했지!」

 

  도옥은 그의 괴물 같은 모습에서 당시 네 명의 장로와 겨누던

날래고 매서운 모습을 발견하는 듯 했다.

 

  그만큼 괴인 스승의 얼굴에는 날카로운 투지가 배어 있었다.

 

「스승님! 고산 소림사에서도 싸웠어요?

고산 소림사의 나한당(羅漢堂)이라는 곳은 강호(江湖)의 고수라는 고수들이

전부 모여 있어서 빠져 나오질 못한다는 데요?」

 

  괴인은 도옥의 물음이 귀엽다는 듯 다시 통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 …… 하 …… 하 …… 그렇지,

그중에서도 장경각(藏經閣)이라는 곳이 더 무서운 곳이다.」

 

「장경각이요? 그곳은 어떤 곳입니까?」

 

「음, 그곳은 사원(寺院)의 중요한 보물을 감추어둔 곳이다.

나는 그곳으로 몰래 들어가 감원(監院)의 제일고수(第一高手) 다섯 명과

천지가 흔들릴 만큼 굉장한 싸움을 벌렸지!」

 

하는 것이었다.

 

도옥은 그의 대담무쌍한 행동에 아연해질 뿐 이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무당파의 장로들 보다 더 무술이 세든가요?」

 

「과연 놀랄 만 했어. 무술계의 구대 문파(九大門派) 가운데에서도

제일로 손꼽는 소림파는 모두 절학을 지닌 고수였지.」

 

「그럼 스승님께서는 어떻게 겨루셨습니까?」

 

  도옥의 물음에 괴인은 실소하고 잠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맨주먹뿐인 내가 어찌 상대가 되겠느냐?

불과 삼백 여수 만에 나는 그곳을 도망쳐 나왔지.

그래서 나는 가만히 생각해봤다.

지금나의 무술이라는 것은 큰 바다위에 떠 있는 나뭇잎과 같은 것임을 알고

곧 서역(西域) 황벽산(荒僻山)에서 십년간을 떠돌아다니다가

삼음신니(三音神尾)의 권법책(拳法冊)을 입수하여 삼년 동안 연구한 후 대각사로 돌아 왔지.

거기서 나는 사형인 영원에게 무술을 가르쳐주었다.

영해, 영공 두 사형은 천성적인 재간이 큰 사형보다 못하며

또한 원래 나에게 미움을 받아 오던 때여서 무술을 가르칠 때에도 역시 차이를 두어 가르쳤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사랑하고 아껴주던 영원이란 놈이 나를 이렇게 다리를 자르고

눈알을 빼고 손목의 근육도 빼어 버리고 쇠고랑까지 채워 놓을 줄은 누가 알았겠느냐?……

벌써 십여 년 전 일이다.」

 

하고 비통해 하며 이를 북북 갈았다.

 

그러는 그의 얼굴에는 참혹하고 살기와 분노의 기색이 완연했다.

그러던 괴인은

 

돌연!

 

도옥의 견정혈(肩井穴)을 힘을 주어 잡는 것이었다.

너무나 순간적인 일이 없으므로 피하지도 못하고 온 몸이 새파랗게 질리며 도옥은

양팔을 허우적거렸다.

 

「이놈! 나를 배반한 이놈! 내 다리와 눈까지 빼간 이놈……」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말에 거의 실신 상태에 놓였던 도옥은 있는 힘을 다하여 외쳤다.

 

「스승님! 빨리 손을 놓으세요! 저는 제자 도옥입니다. 스승님!」

 

  도옥의 외치는 소리를 들은 괴인은 황망히 도옥의 견정혈에서 때며

 

「뭐? 도옥이라구? 영원이가 아니고 도옥이라구?」

 

「옳습니다. 새로 제자가 된 도옥입니다.」

 

  괴인의 손에서 풀려나온 도옥은 이마에 솟은 땀을 씻었다.

 

「도옥이라? 그럼 이 스승의 이름을 아느냐?」

 

「예,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스승님!」

 

  그러자 괴인은 얼굴을 씰룩거리며 분노를 터뜨렸다.

 

「스승의 이름도 모르는 놈을 무엇에 쓴담!」

 

하는 말과 함께 도옥의 몸은 눈 깜박 할 사이에 굴 밖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굴 밖으로  나가떨어진 도옥은 온 몸의 뼈가 부서지는 것 같은 아픔을

간신히 참으며 일어나 않았다.

그리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도망칠까? 아니다. 굴속에다 나무를 처넣고 불을 질러 태워 죽일까?

도망가기는 지금보다 더 좋은 때는 없다.)

 

이렇게 생각한 도옥은 머리를 흔들었다.

 

(도망가지도 말고 죽이지도 발말, 죽인다면

그의 절학인 삼음신니의 권법(拳法) 책을 얻을 수 없다.

어떻게 하든지 그에게서 그것만을 빼앗아야겠다)

 

  다시 고쳐 생각한 도옥은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면서 다시 굴속으로 들어갔다.

  비록 눈이 없어 보지 못하는 그였으나 청각은 예민할 대로 예민했다.

  도옥이 다시 굴속으로 들어오는 기척을 안 괴인은 돌아오는

도옥의 곡지혈(曲池穴)을 꽉 잡으며

 

「왜 되돌아 왔어?」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는 것처럼 냉랭하게 묻는 것이었다.

  도옥은 곡지혈이 괴인의 손아귀에 들어가 꼼짝할 수 없음을 알고 애원 하듯 빌었다.

 

「스승님! 제자는 아무 죄도 범한 바 없습니다.

어찌하여 쫓아내십니까?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스승님!」

 

  도옥의 간절한 애원에 그제야 잡았던 곡지혈을 놓아주며 비통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세 명의 제자가 있었지.

그러나 모두 나를 배반하고 심지어는 나를 이 모앙으로 만들어 놓았어.

그런 것을 생각하면 내 다시 제자를 두어 무엇 하겠는가?」

 

  도옥의 마음속에는 굴 밖에서 생각했던 것을 괴인이 벌써 짐작하고 있는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스승님! 절대로 도옥은 스승님을 배반하지 않겠습니다.

맹세코 스승님의 원수를 갚아 드리겠습니다.」

 

  괴인은 냉소하며

 

「흥!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맹세 하겠습니다.」

 

  그제야 괴인은 약간 노여움을 풀며

 

「그렇다면 너는 스승의 이름을 아는가?」

 

「아직 여쭙지 못하여서 모르고 있습니다. 스승님!」

 

「모른다고?」

 

하면서 괴인은 음성을 높이며 얼굴을 찌푸렸다.

 

  도옥은 화다닥 놀라며

 

「어찌 제자의 몸으로서 스승님의 존명을 감히 여쭙겠습니까?」 

 

  그제야 괴인은 도옥의 말에 흡족한 듯 노기를 띠웠던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웠다.

 

「옳다! 훌륭한 제자다. 내가 너를 책망한 것을 원망마라!」

 

「어찌 스승께서 제자를 책망하시는데 추호라도 원망을 하겠습니까?」

 

「암! 그래야지!」

 

「스승님!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도옥은 감격하며 괴인의 손을 쥐었다.

 

「음! 기특하다. 내 이름은 각우(覺愚)라고 한다.

네 제자였던 세 명의 사형 이외에는 아무도 내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다.」

 

「스승님! 스승님의 무술을 이어 받아 꼭 원수를 갚고 온 천하 무술계에

스승님의 존명을 떨치게 하겠습니다.」

 

  순간!

 

  각우의 얼굴에는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더구나 십여 년 동안 굴 속에서 절망과 고독으로 살아온 각우에게는

도옥의 말이 각우의 심정을 뒤집어 놓은 듯 했다.

  또한 도옥의 얼굴은 비록 보지 못하나 그의 굳은 결심을 듣는 순간,

각우에게는 더 기쁜 일이 있을 수 없었다.

 

「과연! 너는 내 제자다.

꼭 내 무술을 배워서 명성을 떨치게 하고 네 평생의 소원도 이루어 주길 바란다.」

 

  드디어 각우는 도옥을 신임하게 되었다.

 

  (모든 무술을 가르쳐서 훌륭한 제자로 만들어 놓겠다.)

 

  각우는 힘 있게 결심했다.

 

「스승님! 제자는 명심하고 비록 이 몸이 죽는다 해도

은혜를 잊지 않고 원수를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도옥은 사실 괴인 각우의 무술과 권법책이 소원이었다.

  그러나 괴인 각우의 의심을 받으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도옥이었다.

그러나 도옥의 내심을 알길 잃는 괴인은 만족해하며

 

「좋아! 좋아! 그럼 이제부터 무술이나 연습할까?」

 

하고 도옥의 손을 잡으며 일으켜 세웠다.

 

그 후…

 

  유수와 같은 세월은 끊임없이 흘러 삼개월이라는 기일이 지나갔다.

굴속에서 각우의 무술을 그대로 연마하며 게을리 하지 않고 땀을 흘리기 어언 삼개월…

 땀과 먼지 범벅이 된 괴인 각우와 도옥은 연습을 마치고 마주 앉았다.

땀이 철철 흐르기는 각우와 도옥이 마찬가지였지만 십수 년 동안 자란

각우의 머리칼은 그  음흉한 얼굴을 뒤덮어 어디가 얼굴인지 분간할 길이 없었다.

더구나 캄캄한 굴속에서는 더욱 그랬다.

도옥의 목소리로만 가깝게 있다는 것을 아는 각우는 가볍게 탄식하며 도옥을 불렀다.

 

「너의 재질은 먼저 세 명의 제자보다 월등하고 영리하다.

내가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은 다 가르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권법책에 기록된 무술을 내가 완전히 배우지 못해서

너에게도 배워줄 수가 없구나!」

 

하고 가볍게 탄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옥은 삼 개월 동안 각우의 모든 무술을 배우면서도

그의 머리 속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은 것은 바로 권법책의 입수 하나였다.

어디에 감추어 두었는지 알 길도 없고 그렇다고 권법책의 행방을 물을 수도 없는

도옥은 혼자 전전긍긍 권법책을 노리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마침 각우의 입에서 먼저 권법책의 발을 들은 도옥은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도옥은 머리를 짰다.

 

「스승님! 지금까지 가르쳐 주신 것만 해도 절대적인 무학입니다.

아무리 삼음신니가 기록한 무술책이라 해도 이보다 어찌 더 하겠습니까?」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각우는 유쾌하게 웃으며

 

「하…… 하…… 모르는 소리 무궁무진한 것이 삼음신니의 권법책이다.

그 중에서도 그가 심혈을 기울여 창작해 낸 태음기공(太陰氣功)이라는 무술은

내력을 배양하는데 가장 놓은 무술이다.

그것을 배우려면 못 걸려도 일 년은 연마해야 비로소 기반이 서고 공력(功力)이

대증(大增)하는 것이다. 그 무술이 너무나 무섭고 또 날카로워서

나는 가르쳐주기를 주저했을 뿐이다.

네가 만일 태음기공을 배우겠다면 가르쳐주마!」

 

하는 것이었다.

도옥은 불현듯 배우고 싶은 생각이 치밀었으나 앞으로 일 년이라는

세월을 또 보내야 한다는 것에 약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은가? 배우겠다면 다시 일 년이고 안 배우겠다면

각우의 오해나 의심을 받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한 도옥은 한 가지 묘책을 생각하고 곧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도 태음기공의 무술이 너무나 무섭고 날카로운 수법이어서

배워주시지 않으려 하시는데 어찌 제자 된 몸으로 배우겠다하겠습니까?」

 

하고 의심받지 않도록 조심하며 사양하는 뜻으로 말했다.

도옥의 말을 들은 각우는 약간 이상한 빛을 띠우며 가볍게 탄식 했다.

 

「태음기공이 비록 무섭고 날카로운 무술이지만 역시 천하의 무공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네가 거절한다면 할 수 없지만 그러나 내가 한번 외워 볼 테니 네가 듣고 배우든지,

마음대로 결정해라!」

 

  말을 마친 각우는 자기가 외우고 있던 태음무공의 비결을 줄줄 외워 내려갔다.

  도옥은 눈을 똑바로 뜨고 귀를 세웠다.

  그리고 각우의 외우는 비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머리 속에 새겨두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적부터 각우가 외워준 비법을 생각하며 하루 종일 열심히

연마한 도옥은 대강의 기초를 알 수 있었다. 세월도 흘렀다.

 

  山中無甲子

  산중무갑자라

  첩첩 산 속에서 흐르는 세월을 따져 보아 무엇 하겠는가?

  세월은 다시 흐르고 흘러 육개월의 세월이 흘러갔다.

 

  그동안…,

 

  약간의 건량(乾糧)을 구하기 위하여 굴 밖을 몇 번 나왔을 뿐

각우와 함께 굴속에서 지내며 무술의 연구에만 모든 심혈과 정력을 쏟은 도옥은

각우와 생활도 비슷해졌다.

 

길게 자라나는 머리칼과 수염 그리고 어두운 곳에서도 사물을 분별할 수 있는 눈,

뿐만 아니라 행동도 민첩하여 지고 그 위에 무술까지 각우의 절학을 이어 받은 도옥이었다.

각우 스승 섬기기를 지성으로 봉공하는 도옥은 산과 들에서 열리는 신선한 과일과 철따라

열리는 복숭아와 배를 구하여 스승을 대접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반면…,

 

십여 년 동안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던 각우는 도옥의 충성에 감동하여 자기가 가지고 있는

절학의 무술을 전부 가르쳐 주는데 또한 열성을 다했다.

 

「내 평생에 연구하여 창작한 무예는 너에게 이미 다 가르쳤다.

다만 네가 더 계속해서 연구하겠다면 삼사년 동안 더 배워 주겠지만 지금까지

 너에게 가르쳐 준 무술은 거의 삼음신니가 수록한 권법책에서 배운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가르쳐 주려는 것은 각 문파의 무술 중에서 장점만을 골라 창작한 수법이다.」

 

  각우는 도옥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말하는 것이었다.

 

「싱싱한 과일을 좀 구해 오너라. 갈증이 나는구나!」

 

  도옥은

 

  순간…,

 

  각우의 표정에서 어떤 괴로움을 발견하고 그의 말대로 복종했다.

 

「스승님! 곧 구해 오겠습니다.」

 

  도옥은 급히 굴 밖으로 나왔다.

 

  굴 밖으로 나온 도옥은 각우가 무슨 말을 하려다 참는 듯한 표정을 보고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일까?‥‥)

 

  궁금히 여기며 산비탈 길을 뛰었다.

 

  그리고 잠시 후,

 

  굴속으로 다시 돌아온 그의 품에는 여러 가지의 싱싱한 과일이 듬뿍 안겨져 있었다.

  그러나 도옥의 기대와는 반대로 각우는 도옥이 집어 주는 과일만 먹을 뿐 아무 말도 없었다.

도옥은 계속하여 과일을 집어 주며 그의 입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먹었을까?

조용하고 캄캄한 굴속에는 과일 씹는 소리가 그치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는 네가 지금의 무술로도 상당한 실력이지만 아직 세 명의 사형(師兄)과 대적할 만한

무술은 못 된다고 생각한다.」

 

「제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삼 년 동안만 더 무술을 인마한 후 원수를 갚겠습니다.」

하고 도옥은 스승 각우의 뜻에 따르는 척 했다.

그러나 각우의 대답은 의외로 달랐다.

 

「그것도 좋은 일이지마는 나는 이미 십여 년 동안이나 기다렸는데

이제 더 어찌 기다릴 수 있겠느냐?」

 

  도옥은 자기의 계획대로 순조로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 흐뭇해했다.

  만일 각우가 삼 년 동안 더 무술을 가르친다 해도 그의 말에 따를 생각은

추호도 없던 도옥은 의외의 각우의 말을 듣고 내심 기뻤다.

그러나 마음을 침착히 가지며

 

「그러면 스승님! 지금이라도 목숨을 걸고 원수를 갚고 오겠습니다.」

 

  도옥의 음성은 떨렸다.

  그러나 도옥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각우는 도옥의 충성에 감동되어

도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네가 이 년 동안을 더 연마 한다 해도 그놈들의 공력은 파라갈 수없을 것 같다.

목숨이 아깝지. 너는 올해 몇 살이냐?」

  각우는 도옥의 생명을 아꼈다.

천하의 무술계에서 쟁쟁한 자기의 세 제자 영원,영공,영해가 비록 지금은 원수라 하더라도

그들과는 상대도 안 되는 도옥을 대적시켜 개죽음을 시킬 의사는 없었다.

  한편 도옥은 각우의 물음에 가슴이 섬뜩했다.

아직 무술도 미숙하고 각우의 일격을 막아 낼만한 무술도 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각우를 실망 시킨다면 지금까지의 공든 탑이 나무아미타불 이었다.

도옥은 침착한 어조로 그러나 힘 있게 말했다.

 

「제자는 금년, 이십 삼 세가 됩니다.」

 

  각우는 얼마 동안 고개를 끄덕 끄덕 하고는 혼자 소리 중얼거렸다.

 

「흠! 스물 셋이라 ……

칠년만 더 있으면 네가 가르친 무술을 자유자제로 움직여 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너의 사형의 공력도 역시 많은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안 된다. 안돼…… 영원히 복수는 못하게 되겠구나!」

깊은 절망 속에서 신음하듯 처참하게 중얼거린 각우는

땅이 꺼질 만큼 한숨을 내 쉬며 도옥의 손을 가만히 잡는 것이었다.

 

「도옥아! 나는 너와 같은 제자를 얻은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는 서로 헤어져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아직 너에게 배워줄 무술이 많이 있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걸린다.

비록 내가 제자를 잘못 두었던 죄로 이와 같이 추한 병신이 되었지만

끝내 그들은 내게서 삼음신니의 권법책을 빼앗지는 못했다!」

 

  말을 마친 각우는 자기의 품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품속에서 손이 나올 때에는 비단 보자기로 싼  엷은 책 한 권이 드리워져 나왔다.

「이것이 바로 삼음신니의 권법을 기록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너에게 주마! 이 책 속에 있는 무술은 거의 다 너에게 가르쳐 주었다.그러나 내가 배우지 못한 것도 있을 것이다.」

하고 도옥의 손을 더듬어 책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태연하고 한편 빛이 감돌았다.

「도옥아! 그 책을 자세히 보고 혼자 연마 하여라.

그리고 거기에는 불화착골법(拂火措骨法)이라는 속성무공(速成武功)이 있을 것이다.」

 

  도옥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하며 각우에게 권법책을 받았다.

 

  (아! 이 귀중한 책을 아낌없이 나에게 주는 각우 스승님! 감사합니다.)

 

마을 속으로 백배 사례하는 한편 이 권법책을 얻기 위하여

각우 스승을 죽이려던 한 때의 생각을 뉘우쳤다.

  도옥은 흥분을 진정하지 못하며 각우가 가르쳐 주는

불혈 착골법을 찾아 한장 한장 넘겼다.

  책은 모두 열다섯 장으로 엮어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표지까지 합친 것이다.

표지 두장을 빼면 열세 장의 책에 불과했다.

  그리고 책은 종이 한 장에 한 가지의 무술이 그람으로 그려져 있고

극히 간단한 글로 주석을 달아 놓았다.

  그래서 권법책에 적힌 무술은 종이 수대로 열세 가지의 무술이었다.

도옥은 온 신경을 집중시켜 조심스럽게 책상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열 두장 째를 넘기자 각우의 말대로 불혈 착골법의 무술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혈 착골법의 도해와 주석은 도옥의 두뇌로서는 풀길이 없었다.

얼마 동안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뚫어지게 바라보았으나

끝내 그 뜻을 알 길이 없는 도옥은 적혀있는 글을 그대로 각우에게 읽어 주었다.

  도옥이 읽기를 마치자 각우는 얼마 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몸을 흔들며

도옥을 불러 자세하게 풀이해 주었다.

도옥은 각우의 말을 일일이 듣고 생각한 끝에 그림과 글을 풀이할 수 있었다.

  그만큼 도옥이 영리한 것과 같이 각우의 두뇌도 보통이 아니었다.

도옥보다 몇 배 몇 십 배나 영리하고 기민한 각우였다.

그날부터 각우와 도옥은 불혈 착골법에 매달려 연구하고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림은 적의 혈도를 용이하게 무찌르는 열두 가지의 방법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었으나

그것은 심오하고 기묘하여 한 가지 수를 배우면 그 한 가지 수를 활용하여

무궁무진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신비한 무술이었다.

  며칠을 두고 스승과 제자는 열심히 배우고 가르쳤다.

  쉬지 않고 맹렬히 연습하는 동안 몸 안에 있는 혈도의 어느 부위를 찌르면

중상, 경상, 급살(急殺)까지 눈에 환하게 보이는 듯 역력히 떠오르게 되고

자기 마음대로 몸을 날려 적을 공격 할 수 있을 만큼의 무술이 몸에 익게 되었다.

각우는 며칠 동안의 연습을 끝낸 다음 도옥을 불렀다.

 

「이제는 불혈 착골법도 마음대로 쓸 수 있으며 또 적의 공격 위치도 이해했을 줄 안다.

그러나 얼마나 정확성이 있는가가 의문이다.

어떤 무공술을 막론하고 처음에는 힘들다.

그것을 여러 번 연마해야만 비로소 운용할 수가 있는 법이다.」

 

하고 말을 마친 각우는 얼굴에 웃음을 띠며 다시 계속하여 말했다.

「나는 그동안 너에게 온갖 무술을 가르쳐 주었다.

어디 네 무술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싶다. 일어나서 내 공격을 받아라!」

 

  도옥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한편…,

 

  (이제는 두려울 것이 없다. 권법책도 내 손에 있고 그 동안의 무술도 늘었다.

이런 기회에 내 실력을 보여주고 이 굴 속을 빠져 나가리라)

 

  이렇게 생각한 도옥은 속과는 달리 겁먹은 소리로

 

「스승님의 절세 무공에 제자가 어피 적수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각우는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아니다. 네 실력을 알고 싶다.

내가 키워 준 제자의 무술을 모른다면 무슨 스승이겠느냐? 빨리 일어나라?」

 

  당장 일격을 가할 만큼 무서운 표정으로 한 걸음의 양보도 없었다.

 

  도옥은 속으로 흥! 비웃으며 마지못해 일어나는 것처럼 엉거주춤 일어났다.

 

  도옥이 일어나는 것을 눈치 챈 각우도 약간 웃으며

 

「다만 네 실력을 알기 위해서이지 싸우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네 실력을 다 발휘하지 않는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먼저 나를 공격해라!」

 

  자신이 넘치는 태도로 말하며 도옥의 공격을 기다렸다.

도옥은 웃으며

 

「그럼 스승님! 공격하겠습니다.」

 

하는 말과 함께 도옥이 몸을 날려 각우에게 일격을 가했다.

각우는 바람 소리로 상대방의 위치와 공세를 판단하고 급히 몸을 피하며

왼 손을 들어 사정없이 흔들었다.

삽시간에 굴속에는 돌과 모래가 날리기 시작했다.

  각우의 장풍은 상상 밖으로 강하여 도옥이 막아내기는 힘들었다.

도옥은 될 수 있는 대로 몸을 피하며 공격을 가했다.

 

  한편…,

 

  십여 년 동안 감금된 채 적수가 없어 무술을 발휘하지 못했던 각우의 무술은

탈출구를 찾은 듯 조금도 여유를 주지 않고 공격을 가해왔다.

이리 저리 몸을 피하여 각우의 허를 찌르려고 노리고만 있던 도옥은

종처럼 공격의 기회를 주지 않는 각우의 민첩한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그뿐 아니었다.

  그의 굳게 다문 입은 조금도 양보의 빛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살벌하고 무서웠다.

쇠고랑 줄을 철렁거리며 이리 휘두르고 저리 휘두르는 번개처럼 빠른 행동과 날카로운

공격에 도옥의 가슴은 콩알만큼 작아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도옥은 있는 힘을 다하여 각우의 공격을 피하는 한편 때를 놓치지 않고 각우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이리하여 스승과 제자의 싸움 아닌 싸움은 거의 절정에 달했다.

도옥이 운용하는 무술은 거의가 다 각우가 가르쳐 준 무술,

그래서인지 도옥의 공격을 쉽게 막아 내며 도리어 도옥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할 지경이 되고 말았다.

전력을 다해서 대적해도 각우는 끄덕하지 않는 것이었다.

도옥은 처음의 생각이 얼마나 경솔하고 잘못된 생각이었던가를 곧 뉘우쳤다.

스승을 무찌르고 굴속을 도망치려던 처음의 생각과는 달리 어떻게 하면

각우의 공격을 피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을까? 하는 일념뿐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물러날 수도 없는 일이고 보면 문제는 더욱 간단하지 않았다.

몸을 피하며 도옥은 생각 끝에 불혈 착골법을 쓰기로 결심 했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도옥은

 

돌연…,

 

몸을 날리며 각우의 뒤 쪽으로 공격을 가했다.

그러나 각우는 쇠고랑을 여유 있게 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도옥이 쓰려는

불혈 착골법을 미리 아는 듯 왼쪽 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휘익!>

 

  소리를 내며 휘둘렀다.

 

  각우의 강한 장풍을 의외로 당하게 된 도옥은 재빨리 두 손바닥을 펴서 막지 않을 수 없었다.

이윽고

 

  <평!>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두 장풍이 맞부딪치고 말았다.

 

  순간!

 

도옥은 두 팔의 힘이 일시에 빠지며 머리가 빙글 도는 듯 하는가했는데

오장 육부가 뒤집히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맞은 편 바위에 등을 기대며 쓰러졌다.

그러나 각우는 잠시의 공격도 멈추지 않고 다시 달려들었다.

도옥은 쓰러진 채 간신히 각우의 공격 을 피 하며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스승님! 그만, 그만 하십시오. 이 제자는 더 막을 수 없습니다!」

 

  다급하게 외치는 도옥의 소리에 그제야 공격을 멈추며

 

  각우는 다정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몸을 쓰지 않은 탓인지,

나도 힘은 든다마는 이왕 시작했으니 몇 수만 더 겨누고 쉬자!」

하고는 미처 도옥이 피할 사이도 없이 왼 쪽 팔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휘익!>

 

  정말 무섭고 날카로운 장풍 이였다.

 

  조금만 도옥의 행동이 늦었더라면 지금 맞은 편 바위가 부서지는 것 대신에

도옥의 몸이 콩가루가 되었을 것이었다.

  각우의 손바람이 도옥을 간신히 넘기고 맞은 편 바위가 부서지며 굉장한 바람에

도옥의 옷은 나뭇잎처럼 날려 각우의 어깨를 치면서 굴러 떨어졌다.

생각지도 못했던 각우는 그것이 도옥의 공격인줄 착각하고 몇 걸음 물러나며

다시 맹렬하게 공격을 가해왔다.

  도옥은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각우의 공격권에서 벗어났다.

도옥은 더 이상 싸울 기력을 상실하고 바위에 기댄 채 가쁜 숨만 몰아 쉴 뿐이었다.

 

  <씨익! 씨익!>

 

  도옥의 가쁜 숨소리는 굴속에 가득 찬 먼지와 손바람으로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남다르게 청각이 예민한 각우는 곧 도옥의 숨소리를 알아차리고는 호탕하게 웃었다.

「하 …… 하…… 하 …… 도옥아! 정말 너는 훌륭했다.

나의 공격을 삼십 여수나 막아낸 너의 무술은 훌륭하다. 내가 가르친 보람이 있구나!」

 

  도옥은 기진맥진하여 일어나지도 못한 체 가쁜 숨을 씩씩거리며

숨찬 소리로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자는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스승님이 손을 멈추지 않으셨다면 상처를 입었을 겁니다.」

 

  각우는 흡족해 하며

 

「어떠냐? 불혈 착골법과 열 두 수의 공격 변화도 익숙해졌느냐?」

 

「네, 스승님! 대부분은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나 유어역랑(遊魚逆浪)신법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 열 두 수의 방법을 다시 읽어 보라! 큰 소리로!」

 

  도옥은 다시 책장을 펼쳐 들고 원문을 읽었다.

 

  도옥이 읽어 주는 원문을 가만히 듣고 생각에 잠겼던 각우는 무슨 생각을 했음인지

 

  돌연…,

 

  왼팔을 휘둘러 도옥을 내리쳤다.

열심히 권법 기록만 보고 있던 도옥은 의외의 강한 공격에 미처 피하지 못하고

황망히 손을 들어 앞을 가리고 몸을 비스듬히 눕히면서 각우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는 한편 오른 손을 번개같이 들어 각우의 곡지혈(曲池穴)을 찔렀다.

 

순간…,

 

의외의 강경한 반격과 협공을 받은 각우는 정신이 아찔했다.

아무리 절학을 통달한 각우라도 갑자기 공격을 당하고서는 어쩔 수 없었다.

순간적인 아픔으로 몸을 움직이려던 각우는 도옥이 날카로운 유어역랑(遊魚逆浪)과

불혈 착골법을 병행하여 일시에 달려들자 각우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쓰러지고 말았다.

 

「으윽!」

 

  그러나 도옥은

 

  순간!

 

  번개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때다. 이 각우만 죽인다면 천하에 불혈 착골법을 아는 사람은 나하나 뿐이다.

뿐인가? 권법책을 각우가 다시 찾는다면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권법을 배울지도 모른다.)

 

  이렇게 잔인한 생각이 드는 순간!

도옥은 각우의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왼쪽 팔을 잡아 비틀었다.

 

  (딱!)

 

  드디어 남은 팔마저 부러지고 말았다

그와 함께 온 몸의 관절이 모두 이탈되고 말았다.

각우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이마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는 반면에 자기가 발휘한 불혈착골법의 위력에 도옥은 스스로 놀라 멍청히 서 있었다.

 

얼마 후!

 

각우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냉랭하게 바라보던 도옥은

 

「스승님! 제자의 죄를 용서 하소서.」

 

하면서 각우의 부러진 팔을 잡았다.

각우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몸을 뒤흔들며

 

「불혈착골수법은 정말 매섭군! 빨리 혈도를 풀고 뼈를 이어주게.」

 

 사실 각우는 도옥의 심중을 알 길 없었다.

다만 도옥이 실수하여 자기의 팔이 부러졌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도옥에게 팔을 맡겼을 뿐이었다.

그러나 도옥은 각우의 왼 팔을 잡고 암암리에 오른 손에 기력을 운행 집중하며

원 손에 힘을 주었다.

이때 각우의 기대와는 달리 부러진 팔의 아픔은 고사하고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

통을 이기지 못한 각우는 땀을 뻘뻘 흘리며 외마디 비명 소리를 질렀다.

그러는 각우를 잔인하게 내려다보던 도옥은 지금까지의 기력을 운행 집중시켰던

오른 손으로 일격을 가했다.

 

그러자 신음소리와 함께 각우의 귀, 눈, 코, 입에서는 검붉은 피가 쏟아져 흘렀다.

부들부들 떨면서 피를 쏟던 각우는 긴 머리칼을 곤두세우며 벽력같이 소리를 쳤다.

「이 반역한 놈! 너는 영원이보다 더 악하고 무서운 놈이구나!」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로 도옥을 받았다.

불의로 가벼운 공격을 받은 도옥은 냉소하며 발운견일(撥雲見日)의 한 수로 각우가 일으킨

머리 바람을 막으며 두 손바람을 일시에 펴서 밀었다.

그러자 씨잉 하고 허공을 째는 바람 소리와 함께 각우의 몸은 둥실둥실 날아 맞은편 바위에

 

  <쾅!>

 

하고 부딪치며 두개골이 깨져 산산 조각이 나면서 죽고 말았다.

이리하여 일대의 무술인 각우는 제자에게 배신을 받아 다리와 눈알이 빠지고

쇠고랑을 맨채 한 많은 일생을 끝마치고 말았다.

생각하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자기의 수제자로 삼으려고 온갖 무술을 가르쳐 주었건만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배신과 죽음뿐이었다.

이미 눈알이 빠진 각우의 머리는 바위에 부딪쳐 깨져 버리고 생시에도 감지 못했던

눈은 죽어서도 감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자기를 키워주고 무술을 가르쳐 주고 권범책까지 물려받은 은혜를

그의 두개골을 빠개 주므로써 갚아버린 도옥은 의기양앙 했다.

 

(음 ‥‥ 이제는 천하가 다 내 세상이다.

어느 놈이 나보다 더 무서운 무술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이제부터 나는 무술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좌충우돌, 내 이름을 천하에 떨치리라!

그리고 나를 투골 타맥 수범으로 찌른 놈은 곤륜 삼자인지도 모른다.

기어코 원수를 갚으리라!)

 

결심한 도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 년 동안이나 무술을 닦은 굴속에서 홀홀히 나오고 말았다.

때는 이미 가을도 지나 북풍이 부는 십이월!

굴속을 빠져나온 도옥은 그 길로 기련산(祈連山)으로 몸을 날렸다.

기련산 일대의 백설 뒤덮인 산은 은빛 세계로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일 년 동만 굴속에서 무술을 연마한 도옥의 몸은 어디를 가도 두려울 것 없는

세련된 무공으로 단련되어 있었고 더구나 신묘한 신법을 부지기수로 익힌 도옥으서는 깊은 산중, 북풍이 몰아치는 차가운 바람이 겁날 리 없었다.

주위 사방을 휘 둘러본 도옥은 답설무흔(踏雪無痕)의 경공법을 발휘하여 왼 쪽 산봉우리를

향하여 쏜살같이 날았다.

봉우리 위에는 뼈를 쑤시는 찬 바람이 불었으나 추위도 몰랐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도옥은 아랫배에 힘을 주어 우렁차게 외치자

쩌렁 찌렁 산울림이 먼 산 계곡으로 울려 퍼졌다.

 

돌연!

 

산울림 속에서 말 우는 소리가 들려 왔다.

과연 서쪽 먼 곳에서 검은 점 하나가 유성같이 달려오는 것이었고

그것은 바로 도옥의 애마 적운 추풍구였다.

도옥은 반가움을 금하지 못하고 달려오는 적운 추풍구의 목을 얼싸 안았다.

근 일 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주인을 잃은 적운 추풍구는

 굴속에서 주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며 배회하다가 도옥의 외침 소리에

주인의 음성을 알아차리고 달려온 것이었다.

적운 추풍구는 도옥이 자기의 몸을 안고 쓸어 주자

가늘게 울음소리를 내며 땅바닥을 긁었다.

 

  (너도 기쁜 모앙이구나!)

 

  도옥은 적운 추풍구가 하나도 변함없이 건강하게 나타난 것도 기뻤지만

안장에 끼웠던 보검 금환검(金環劍)도 그대로 있음이 더욱 기뻤다.

도옥의 가슴은 부풀어 올라 무엇인지 외치지 않으면 터질 것만 같았다.

도옥은 하늘을 향하여 앙천대소(仰天大笑)하고 외쳤다.

 

「도모인(陶某人)은 이제 두려울 것이 없구나!

나의 무술과 적운추풍구의 날램을 누가 따르랴!」

 

  소리높이 외친 도옥은

 

  (퍼뜩!)

 

  아름다운 소저 이요홍과 하림을 생각했다.

 

(그렇다. 이요홍! 꽃같이 아름다운 이요홍……

이요홍과 나는 어려서부터 같이 자랐지……

그러나 하림의 아름다움에는 못 따라 간다.

그러나 이요홍이나 하림이나 모두 양몽환에게만 정신이 있는 모앙인데……)

 

  그는 한참 생각했으나 누구를 먼저 찾아 갈까 결정을 짓지 못했다.

그런데 문득 곤륜 삼자에게 복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그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활활 타올라 더 주저하지 않고 곤륜산으로 나르는 듯이 달렸다.

서 쪽에 위치한 곤륜산은 끝없는 사막을 지나야 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 풀 한포기, 물 한 방울도 없는 사막에 모래만이 날리는

길을 달리고 달렸다.

그러나 아무리 도옥이 강하고 또한 적운 추풍구의 날으는 듯한 빠름도

한없이 넓은 사막에서는 대해(六海)의 일엽편주 그것이었다.

 

천신만고, 모진 모래바람과 갈증을 이겨내며 달리기 사흘‥‥

사람과 말이 지칠 대로 지쳐 더 걸음을 옮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러서야

겨우 자이달목분지(紫異達木盆地)를 횡단하여 신강성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신강성을 지나면서부터 도옥의 적운 추풍구는 더 기세 있게 달려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