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10 장 사투(死鬪)속의 기련산 <龍騰虎躍>

오늘의 쉼터 2014. 6. 22. 12:19

제 10 장 사투(死鬪)속의 기련산 <龍騰虎躍> 
 

 

  도옥의 의미 있는 말을 한참 동안 음미해 보던 양몽환은 하림의 손을 꼭 쥐며

 

「사매! 나중 적과 싸우게 되면 우리의 환경이 그만큼 불리하게 될지도 몰라.

사매는 조금도 사정을 두지 말고 싸워야 돼요.」

 

하는 말에 하림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러는 동안….

 

  적은 이미 십장 이내로 접근하였다.

더구나 하림의 하얀 옷이 뚜렷한 모양인지 가볍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싸늘한 빛을 발하는 세 개의 물체가 번개같이 하림을 노리고 날아왔다.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치고 장검을 들고 있던 양몽환은

즉각 운무금광(雲霧金光)의 수법으로 하림을 노리고 날아오는 세 자루의 암기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공격 하려는 그때 갑자기 이상한웃음 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일어나며 싸늘한 광채를 발하는 단검이 번개같이 날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있었다.

  양몽환이 몸을 피한다면 그 칼은 하림에게 명중할 만큼 위급했다.

  양몽환은 피하기를 단념하고 이를 악물며 칼을 흔들어 막았다.

 

돌연….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기는 순간,

양몽환은 손바닥이 찢어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며 장검을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나 재빨리 몸을 가눈 양몽환은 바로 자기 앞에 건장한 중이 단검을 들고

차마 찌를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 있는 것에 또 한 번 자지러지게 놀랐다.

한동안 양몽환을 바라보던 중은 차가운 눈을 흘기며

 

「너희들이 불을 질렀느냐?」

 

하고 묻는 것이었다.

 

  이때 옆에 있던 도옥이 불쪽 나서며

 

「우리가 질렀소, 왜 그러시오?」

 

하고 가로 막고 나섰다.

 

그 동안 주위에는 또 다른 여덟 명의 중들이 그들을 둘러쌌다.

양몽환은 이 중들의 무술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조금 전에 당한 단검으로 

미루어 알아차리고 실력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리고 가만히 하림에게 조심하라는 눈짓을 했다.

 

  한편…,

 

  도옥은 양몽환과 일합을 교전한 중만이 홍의를 걸쳤을 뿐 다른 사람들은 전부

회색의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대각사의 중들이 이들의 승의로서

계급을 나타내고 이 홍의의 중이 이들 중 우두머리인 것을 알았다.

  오랫동안 무림의 강호에서 무술의 경험을 쌓은 도옥인지라

두려워하는 기색도 없이 그들을 관찰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중들을 살펴보던 도옥은 천천히 양몽환에게로 다가 왔다.

그러고 그는 갑자기 몸을 굽히며

 

  <휘익!>

 

  옥녀투사(玉女投謝)의 검법으로 번개 같이 앞에 서 있는 홍의승을 찔렀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 너무나 돌발적인 행동은 비단 홍의승 뿐 아니라 양몽환도 의외라고 생각하였다.

  양몽환은 사실 도옥이 자기에게 할 말이 있어서 다가오는 줄로 알았던 것이다.

  가까운 거리에서 돌발적인 공격은 피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었으나

그 홍의승 역시 비상한 재간을 지니고 있었다.

홍의승은 즉각 비키지 못할 줄 알고 날아오는 칼끝을 따라 몸을 뒤로 젖히는 듯 하고는

어느덧 재주를 한번 넘고 일장 넘어 뒤로 달아나 버렸다.

  도옥은 일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즉시 땅을 힘껏 차면서 그림자처럼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리나 홍의승은 일격을 피함으로서 약간이나마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재차 날아오는 도옥의 공격을 오른 손의 계도를 휘둘러 금환검을 맞받았다.

 

  한편…,

 

  도옥은 홍의승 무술이 비상하여 모험을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으리라 직감하고는

금환검으로 마주쳐 오는 중의 계도를 막으면서 수법을 변화시켜 홍의승의 앞가슴을 노리고 찔렀다. 이는 극히 위험한 수법으로서 도옥의 금환검이 홍의승의 옷깃을 스치고 지나갈 정도였다.

 그러나 홍의승은 그와 같은 도옥의 검법에 재빨리 자기 자신부터 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원래 그는 도옥의 금환검을 맞받아 빗나가게 한 후 기선을 제하며 공격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깊이 숨을 들여 마신 홍의승은 뒤로 자빠지는 순간!

다시 오른 쪽으로 구르며 간신히 도옥의 살수(殺手)를 피하였다.

이때서야 여지 것 기회를 얻지 못했던 여덟 명의 중들이 재빨리 달려왔다.

일제히 도옥을 향하여 달려가는 증들을 양몽환과 하림이 뛰어 나가 앞을 막았다.

  이리하여 싸움은 시작되었다.

 

  홍의승은 연거푸 도옥의 협박하는 듯한 공격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도옥이 다시 검법을 변화시키려는 순간…

 

  홍의승은 우레와 같은 소리를 지르며 손에 든 계도를 맹렬히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그러자 그의 칼날에서는 싸늘한 빛이 춤을 추듯 번개 치듯 삽시간에 도옥에게

십 여 번을 후려치고 찌르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옥 역시 금환검에 붙은 금환을 댕그랑거리고 맹렬히 휘둘러서 대적하여 나갔다.

그러자 칼과 칼이 바람과 바람이 마주쳐 마치 세찬 파도가 몰아치듯 섬광이 번쩍이는 것이었다.

  생사를 건 혈투는 더욱 격렬하여지고 그들은 삽시간에 백여 수를 교환하게 되었다.

 

한편, 양몽환과 하림은 여덟 명의 증들이 연합 공격하는 가운데

이 십여 수가 지나면서부터 하림은 점점 기운이 빠져갔다.

  그리고 손에 들린 장검도 차츰 둔해졌다.

 

원래 양몽환과 하림은 서로의 등을 기댄 채 싸우고 있었는데 이제 하림의 공격이

늦추어지므로 해서 양몽환의 검이 그만치 압력을 많이 받게 되었다.

 

  불리하다고 생각한 양몽환은 갑자기 행화춘우(杏花春雨)의 수법을 전개했다.

저공에 수많은 은성(銀星)을 뿌리며 그의 장검이 풍차같이 돌아가는 바람에

네 명의 중이 황급히 물러섰다.

 

  이틈을 탄 양몽환은 재빨리 몸을 돌리는 동시에 다시 장정으로 역시 절묘한 수법인

팔방풍우(八方風雨)를 전개하여 하림을 공격하던 네 명의 중에게 지쳐 들어갔다.

그러자 그들도 역시 한 걸음 물러섰다.

 

  양몽환이 사용한 이 두 수법은 곤륜파의 분광검법(分光劍法)중

추혼십이검 가운데서 가장 절묘한 수법인 것이었다.

한번 양몽환의 칼맛을 본 여덟 명의 중들은 감히 더 공격할 생각을 못했다.

 

  이 동안 도옥과 홍의승은 생사의 치열한 결투에서 맹렬히 계도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계도는 마치 눈보라가 휘날리듯 찬 바람을 일으키고 금환검은 용이 하늘에서

몸부림치는 듯이 꿈틀거리며 번쩍이고 있었다.

 

  그러나 도옥은 왼 손에 감아 쥔 독침을 아직 그대로 쥔 채였다.

그만큼 도옥은 자기의 승산에 자신이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양몽환은 재빨리 전세를 살폈다.

  홍의승의 계도는 빠르면서도 완전한 공세를 취하는 주동적 입장에 있고

도옥은 비록 열세를 보여주지 않고 있지만 긴 시간동안 싸운다면

결코 유리할 수 없는 입장에 놓여 있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도옥에게 응원을 할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야앗!」

 

  찢어지는 듯한 도옥의 외침과 함께 그의 금환검의 수법이 변하면서 금환이 부딪치는

소리를 요란스럽게 울리며 하늘 가득히 검광을 이루어 삽시간에 홍의승을 여덟 번이나

공격하며 들이 닥치는 것이었다.

 

  이 여덟 번의 수법이 맹렬함은 마치 해소(海소)를 일으킨 파도와 같았다.

홍의승은 도옥의 공세를 감당치 못하고 단번에 일곱, 여덟 자를 물러섰다.

 

  이때…,

  도옥은 왼 손에 독침을 벼락같이 뿌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십여 개의 독침은 쏜살같이 홍의승에게 날아갔다.

  그러나 홍의승은

 

「야앗!」

 

하며 한소리 크게 부르짖으며 왼 손의 소매를 휘둘러 독침을 전부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리고 곧이어 홍의승은 허공을 훌쩍 날아 마치 독수리 같이 도옥에게 덤비면서

계도를 맹렬히 휘둘러 세 번을 계속하여 찌르고 내려치고 또 찍었다.

  이 세 수는 그야말로 전광석화로 금환이랑 도옥으로 하여금 갈팡질팡 하게끔 하였다.

극히 위험하다고 할 순간 양몽환이 번개같이 몸을 날려 용행일식(龍行一式)의 자세로 떨쳐갔다.

그리고 그의 칼은 그의 몸 보다 더 빨리 만봉출소(萬蜂出巢)의 한 수를 변화시키면서 홍의승을

찌르며 들어갔다.

그러는 양몽환의 칼(劍) 끝이 부르르 떨면서 마치 은꽃(銀花)을 뿌리는 듯 눈부시게 빛났다.

홍의승은 창황지중에 계도를 들어 막자 양몽환의 장검은 그의 칼을 따라 쓱 밑으로 내려간 순간!

홍의승의 오른손 무명지와 함께 새끼손가락이 쌍동 잘리고 말았다.

그러나 홍의승은 굴하지 않고 여전히 이를 악물며 계도를 휘둘렀다.

 

이 때…,

 

  도옥이

 

  <휘익!>

 

하며 금환을 번개같이 내던졌다.

홍의승은 고통에 정신이 없던 차

 

  <휘익!>

 

하는 순간… ,

 

고개를 돌렸지만 금환에 비죽 나온 강철 끝에 한쪽 귀가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뒤를 이어 도옥이 또 다시 달려 나가 재빠르게 세 번을 찔렀다.

홍의승은 연이은 상처에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도옥의 공격을 받아내는 한편

계도를 맹렬히 휘둘렀다.

그것은 마치 목숨을 떼어놓고 싸우는 맹수와 같았다.

양몽환은 도옥을 위험에서 구하고 하림을 돌아다보았다.

하림은 여덟 명의 중들에게 꼼짝없이 둘러싸여 무척 위험한 상태에서 싸우고 있었다.

여덟 명의 중들은 동료들이 위기에 몰려 생사가 위급한데도 본척만척 하고

연약한 한 여자에게만 몰려든 꼴은 참으로 볼상 사나웠다.

아마도 그 중들은 하림에게 엉큼하고 고약한 마음을 품고 있는 눈치였다.

하림은 비록 곤륜파의 무예를 전수받은 몸이긴 하나 원래 가냘프고 연약한 여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니 사면팔방에서 우락부락한 여덟 명의 중들이 한꺼번에 어울려 달려드니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나마 여인의 특기인 경신법 술수도 마음대로 발휘할 수도 없고 하여

갈팡질팡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 모양을 바라본 양몽환은 노기가 왈칵 치밀었다.

더 이상바라만 볼 수가 없었다.

한번 크게 호통 치면서 비호처럼 뛰어 들어갔다.

그 즉시 오행미종보법(五行迷縱步法)을 전개하며 난무하는 선장과 계도가운데서 날뛰니

마치 회오리바람처럼 눈 뜨고 볼 수조차 없이 어지러웠다.

  바른 쪽에서 칼바람이 불면 한 중의 팔이 잘려 나가고 왼쪽에 검광이 번쩍하면

또 한 중의 눈에서 선지피가 분수처럼 내 뿜었다.

  삽시간에 여덟 명의 중들은 전부가 잘리고 찔리고 하여 땅바닥에서 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피투성이가 된 중들의 처참한 신음 소리는 차마 귀로 들을 수가 없었다.

선지피는 대지를 물들이고 살점은 사방에 흩어졌을 뿐이었다.

  도옥은 여전히 홍의승과 사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양몽환은 도옥을 거들어 주고 싶었으나 조금 전에 그를 구할 때 불쾌한 빛을 띠우던 일을

생각하고 옆에서 지켜보기로 작정하였다.

 

  돌연….

  새 울음 같은 삐! 삐! 하는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양몽환은 그 소리가 틀림없이 적의 후원부대의 신호인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옥에게 도망가라고 소리칠 수가 없어 안타깝게 바라보고만 서 있을 뿐이었다.

  도옥 역시 적의 후원이 곧 도착하리라는 것을 알고 무척 초조해졌다.

재빨리 검을 맹렬히 휘두르는 척 하고는 슬쩍 뒤로 물러났다.

그제야 홍의승은 같이 온 중들이 모두 피바다를 이루고 쓰러진 것을 보고는

대경실색(大驚失色)했다.

 

  (아니? 이건……그래 이토록 무참하게 쓰러질 수 있단 말인가?)

 

  여덟 명의 중들은 그래도 보통 이상으로 무예가 뛰어난 자 들이었다.

  홍의승은 자기 눈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홍의승은 양몽환을 후딱 쳐 다 보았다.

  그는 양몽환이 오행미종보법과 같은 묘기를 자기와 싸운 경험에서 볼 때

결코 터득했으리라고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홍의승이 짧은 순간 넋을 잃은 그 틈을 노려 도옥은 두 손을 번쩍 날렵하게 흔들었다.

뭔가 번쩍하고 날아갔다.

그것은 양손에 끼었던 세 개의 금환이 번개같이 날아가고 있었다.

두개가 연달아 내던져 졌고 또 하나가 뒤늦게 던져졌던 것이었다.

  홍의승은 다급했다.

생각도 못했던 도옥의 금환이 쌍을 지어 날아들자 가까스로 계도로 후려쳐 버렸다.

그러나 이 일을 어쩌랴!

또 하나의 금환이 번쩍 날아들지 않는가!

홍의승은 앞이 아찔하였다.

재주껏 몸을 피해 보았다.

그러나 헛수고였다.

어느새 금환은 홍의승의 얼굴에 사정없이 박힌 후였다.

 

「으악!」

 

오른 쪽 눈은 금세 튀어 나오고 뜨거운 선혈은 샘물같이 솟구쳤다.

그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처참한 비명을 지르고는 땅 바닥에 쓰러져 이리저리 뒹굴며 꿈틀거렸다.

그러자 도옥은 요란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몸을 훌쩍 날려 그의 금환검을 높이 쳐들었다가

원을 그리며 후려쳤다.

드디어 홍의승의 몸은 무 토막처럼 쌍동! 두 동강이로 잘라지고 말았다.

도옥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양몽환과 하림을 보고 웃고는 땅에 떨어져 있는

네 개의 금환을 집어 닦아 다시 자기 손목에 끼웠다.

그리고 사방을 휘둘러보고는 한 번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느닷없이 적운 추풍구(赤雲追風駒)가 달려와 섰다.

 

「자! 적이 곧 몰려 올 것 같소 어서 이곳을 빨리 떠납시다.」

 

하고는 말고삐를 하림에게 건네어 주었다.

그런 후 자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동쪽을 향하여 손살같이 달려갔다.

  양몽환은 멍해져서 바라보니 도옥은 이미 십여 장 앞을 바람처럼 달리고 있는 터라

어쩔 수 없이 하림에게 재촉했다.

 

「사매! 피곤하지, 어서 타!」

 

하림은 고개를 흔들었다.

 

「오빠 타세요. 나는 뛰어 가겠어요. 어서요!」

 

  서로가 사양할 처지가 아니었다. 도옥은 벌써 보이지 않았다.

  초조하여진 양몽환은 두 말 않고 하림을 번쩍 들어 말 위에 태우고는

자기도 함께 타고 달렸다.

  적운 추풍구는 역시 천리마로서 얼마 안가 도옥을 따를 수 있었다.

  양몽환이 훌쩍 땅위에 내리면서 도옥을 부르자

도옥이 먼저 싱긋이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내가 바로 달리지 않았다면 아마 두 분은 틀림없이 한동안 서로 사양하느라

시간만 지체 했을 거요. 그렇지요?」

 

  양몽환은 그만 말문이 막혔다.

도옥의 호의(好意)가 너무나도 고마웠던 것이었다.

 

「도형이 이와 같이 대해 주시니 정말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도옥이 담담하게 웃으며 힐끗 하림을 쳐다보고는 농을 하였다.

 

「보답이라니…… 양형 타라고 준 것도 아닌데 무슨 말씀을」

 

  그의 천성이 괴팍하다는 것을 안 양몽환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때 하림도 역시 말에서 내리며 도옥을 보고는 말참견을 하였다.

 

「굉장히 좋은 말이에요. 달리는 것이 마치 나는 것 같이 빨라요」 

 

  도옥이 오연(傲然)히 웃으며 또 농을 했다.

 

「만일 이 적운 추풍구를 나의 사매에게 준다고 약속하지 않았던들

심소저에게 주고 싶습니다만 매우 애석하게 되었습니다.」

 

하림이 쑥스럽게 웃었다.

 

「사매는 매우 어여쁘신 분이죠?」

 

도옥은 그 말에 대답 없이 가볍게 탄식하고는 양몽환을 돌아봤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오?」

 

「이제 이 기련산에 더 있을 필요가 없으니 돌아가는 것이 좋겠군요.」

 

「강서(江西)로 가시겠소? 아니면 곤륜산으로 가실 겁니까?」

 

  양몽환은 약간 생각하여 본 끝에

 

「내가 강서를 떠날 때 나의 셋째 사숙(三師叔)께서 요주(饒州)의 여관에 계셨으나

지금쯤은 곤륜산으로 돌아 가셨을 겁니다. 먼저 곤륜산으로 돌아가서

장문사숙(掌門師叔)님을 만나 뵈어야겠군요.」

 

했다.

 

도옥이 돌연 크게 웃으며

 

「만일 이 기련산을 빠져 나가지 못하면?」

 

  양몽환은 멈칫 하였으나 곧 진정했다.

 

「우리가 대각사 중들의 포위를 뚫지 못한다는 말씀이오?」

 

  도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하였다.

 

「나도 금방 그 홍의승과 싸우기 전까지는 대각사 중들의 재간을 너무 얕잡아 보고 있었소.

즉 일명 대사(一明大師)가 양형에게 한말이 맞는 것 같소.

나는 이 대각사에 일명 대사 같은 분이 기껏 많아야 서너 분 있을 줄 알았는데

방금 홍의승과 싸워본 결과 내가 생각하고 있던 선입관은 완전히 흔들려 졌소.

우리가 방금 싸운 홍의승은 대각사에서 중간 위치를 차지하는 제자인 모양이니

무공이 강한 서 너 사람만 피하면 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큰 착오였소

더구나 무예에 있어 독특한 일파를 이루고 있는 것과 홍의승의 재간으로 보아

대각사에는 굉장히 무서운 자들이 있는 것 같소.」

 

하고는

 

「그런데 조금 전에 양형이 전개 시켰던 그 검법의 위력은 굉장하더군요.

아마 곤륜파의 비전절학(秘傳絶學)인가 본데요.」

 

하고 사뭇 신기한 듯 물었다.

 

  사실 곤륜파의 분광검법(分光劍法) 가운데의 추혼십이검(追魂十二劍)은

장문될 사람에게만 전수하게 되어 있는 비법(秘法)이였다.

  곤륜파의 장문이라 해도 함부로 전수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며 곤륜삼자(崑崙三子)가

모두 동의한 제자에게만 전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전수하기 전에는 또 조사(祖師)의 신상(神像)에 엄숙히 절하여야 하는 법이었다.

때문에 외부 사람은 분광검법이 있는 줄은 알지만 추혼십이검이 있는 줄은 모르는 것이었다.

일양자(一湯子)가 귀원비급(歸元秘?)을 찾으려 할 때 단단히 벌을 받을 각오부터 하고 난 후에야

만일을 위하여 양몽환에게 전수한 것이었다.

방금 양몽환이 하림과 도옥을 위하여 추혼이십이검 가운데 세수(三手)를 사용하였을 뿐인 데도

이를 본 도옥은 놀랐던 것이다.

 

  양몽환은 곤륜파의 비밀을 언급하기 곤란하여 적당히 얼버무렸다.

도옥은 비록 다시 묻지는 않았지만 불쾌히 생각하는 듯이 얼굴빛이 찌푸려졌다.

  이때 천진한 하림이 눈치도 없이 또 그 말을 꺼냈다.

 

「오빠! 그 검법은 정말 멋있더군요.

시간이 있으면 나에게도 가르쳐 주세요.

네? 그 검법만 배운다면 아까와 같은 나쁜 사람들을 겁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하고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양몽환을 쳐다보았다.

 

  난처해진 양몽환은 못 들은 척 얼굴을 돌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양몽환의 무관심한 행동에 하림은 자기를 무시하는 것 같아 서러움을 느꼈다.

그만 두 줄기의 눈물을 흘리며 양몽환에게 섭섭한 투로 말했다.

 

「오빠! 내 말에 화나셨어요?」

 

  양몽환이 고개를 흔들자 다시 침울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면 왜 얼굴을 돌리시고 대답을 안 하세요?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양몽환은 마지못해 고개를 흔들었다.

  바로 그때 찢어지는 듯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장 세 사람의 그림자가 바람을 몰고 뛰어오자

다짜고짜로 하림에게 덮쳐드는 것이었다.

  천만 뜻밖이었다.

  미처 검을 뺄 여가가 없는 양몽환은 몸을 홱! 돌리면서 운용분무(雲龍噴霜)라는

수로 일격을 사정없이 가했다.

이 일장은 천강장 삼십육식(天?掌三十六式) 가운데 있는 세 수 중의 절묘한 장법의 하나였다.

더구나 양몽환이 전력을 다하여 갈겼으므로 그 위력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나 상대자 역시 비범한 자였다.

왼 손으로 곧장 이산경해(移山頃海)로 양몽환의 일격을 맞받으면서

오른 손으로 하림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양몽환은 자기의 장력과 상대방의 장력이 맞부딪치는 순간,

그만 몸이 떨리면서 세 걸음이나 물러났다.

귀가 왱! 울렸고 거의 넘어질 뻔 하였다가 가까스로 몸을 바로 잡았다.

  그때 다행히 옆에 서 있던 도옥이 금환검을 빼어들고 틈이 벌어진

양몽환을 보호하고 나섰기에 무사하였다.

  도옥은 연이어 해시신루(海市神樓), 야반봉연(夜半蜂煙)

그리고 천망나작(天網羅雀)의 검법을 변화시키면서 맹렬히 공격했다.

  이 틈에 양몽환도 검을 빼어 들고는 천운적월(穿雲摘月)의 수법으로

적의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적은 황색 승의를 입은 중이었다.

중은 도옥의 날카롭고 맹렬한 공세와 양몽환의 일격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원래 하림을 사로잡으려고 하였으나 사태가 급하게 되자 느닷없이

하림의 연약한 몸에 일장을 후려쳤다.

하림은 그 장력에 일장 너머 날아가 떨어졌다.

그런 후 황의승은 즉시 몇 걸음을 물러서는 것이었다.

  황의승에게 하림이 내동댕이쳐지자 양몽환은 분노의 불길이 치솟았다.

 

「도형은 나의 사매를 좀 보살펴 주시오! 이 중놈은 내가 처치하겠소!」

 

하고 외치자 벌써 분광검법을 전개하여 싸늘한 검광을 번쩍이면서

맹렬한 기세로 찌르고 찔러 댔다.

  그러나 그 황의승은 여전히 빈손으로 양몽환의 장검을 상대하는데

두 손이 한 번 휘둘릴 때마다 강렬한 장풍이 일어나 양몽환의 장검을 빗나가게 했다.

  양몽환은 즉시 상대방의 실력이 자기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오합이 지나자 분광검법과 함께 추혼십이검을 섞어서 위험할 때마다

추혼십이검의 검식(劍式)을 사용하여 상대방을 물리치곤 하였다.

  황의승이 보기에는 양몽환의 검법이 비록 날카롭고 정기가 있으나 공력이 부족한 것 같았다.

때문에 자기의 복호장법(伏虎掌法)으로도 충분히 대적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가끔 양몽환의 검이 분명히 빗나가고

또한 일장을 가하려고만 하면 생각지도 못한 기묘한 검법이 전개되어

그로 하여금 뒤로 물러나게 하는데 의혹을 느끼는 것이다.

  한편, 도옥은 하림에게 달려갔다.

쓰러진 하림을 안아보니 얼굴빛은 죽은 듯 창백하여 의식을 잃고 있었다.

중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도옥은 항상 그가 비상용으로 지니고 다니는 구전보명단(九轉保命丹) 한 알을

하림의 입속에 넣어 주었다.

그런 다음 하림이 편하도록 비스듬히 껴안고 하림의 안색을 살피는 한편

양몽환과 황의승이 어울려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하였다.

  그러자 또다시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고요한 밤의 정적을 뚫고 들려 왔다.

  도옥은 그 순간! 불순한 마음을 먹었다.

 

  (양몽환의 공려이 약하면서도 패하지 않는 것은 그 기묘한 검법에 의지하고 있기 때뿐이지 …… 이제 시간이 지나 상대방도 양몽환의 심법에 익숙하여 진다면 양몽환이 분명 패하고 말 것이다.

더구나 잠시 후에는 적의 후원부대가 도착할 모양이니 이제 양몽환은 꼼짝없이 죽고 말 것이

아닌가? 만약 양몽환이 죽는다면 이 아름다운 하림은 별 수 없이 내 차지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도 그는 양몽환의 기묘한 검법술을 눈여겨 훔쳐보고 있었지만 막상 그런 결심을 하자

주저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하림과 같이 적운 추풍구에 타고는 앞으로 달려갔다.

하림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도옥에게 몸을 맡기고는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한편 양몽환은 그런 줄도 모르고 황의승과 싸우고 있었으나 하림의 상처가 염려스러워

마음 놓고 싸울 수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적의 휘파람 소리가 또 다시 들려오지 않는가!

  양몽환은 더욱 초조함을 느꼈다.

안절부절못하다 돌아보는 그때 마침 도옥은 하림을 껴안고

적운 추풍구를 타고 달아나는 참이었다.

  양몽환은 그제야 마음을 푹 놓았다.

  천리마는 빠르기가 한이 없었다.

또 도옥이가 하림에게 잘 대해주리라 믿고는 투지를 크게 불러 일으켜

만봉출소(萬峰出巢)의 술수로 칼(劍)끝에서 은꽃(銀花)을 찬란하게 뿜어내며

검풍을 일으켜 맹렬한 공격을 가하였다.

  황의승도 그 이전에 양몽환이 도옥에게 주의하는 틈을 타서

재빨리 품속에서 오른 손으로 동발(銅鉢)을 꺼내고 왼 손으로는

한 자루의 철필(鐵筆)을 빼어 들었다.

그러자 양몽환이 은꽃을 튀기며 맹렬히 공격해 오는 것과 부딪친 것이다.

 

  번쩍!

 

하는 순간,

황의승은 마치 수 백 자루의 장검이 사면팔방에서 그를 찌르려고 달려드는 것만 같았다.

어디서 어떻게 막아야 할지 분별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우물거릴 수도 없었다.

이를 악물고는 동발을 맹렬히 휘둘러 광막(光幕)으로서 자기 몸을 완전히 보호하는 한편

왼 손의 철필로서 봉황점두(鳳凰點頭)의 술수로 앞으로 힘껏 내 밀었다.

  동발과 장검이 맞부딪쳐 튀는 요란한 쇳소리가 울리며 불똥이 튀자

눈 깜짝할 사이에 황의승의 철필은 양몽환의 가슴에 있는 현기(玄氣)요혈로 날아왔다.

양몽환은 황의승이 자기의 절묘한 일검을 막아낼 뿐더러 오히려 자기의 현기 요혈을

노리고 찌르는데 깜짝 놀랐다.

재빨리 뒤로 석자 정도 물러서면서 운무금광(雲霧金光)의 검법으로 들어오는

황의승의 철필을 후려쳤다.

  그와 동시에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한발 물러서면서 상대방을 노려보았다.

서로 상대방의 재간에 놀란 나머지 가볍게 공격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었다.

  쥐죽은 듯 조용한 숨 막히는 순간이었다.

 

서로가 노려보며 공력을 가다듬었다. 양몽환은 즉시 자기가 처한 사태를 판단하였다.

이제 잠시 후에는 적의 후원이 올 것은 분명하였다

  그렇다면 오래 끌수록 자기에게 불리하여짐을 깨달았다.

적이 오기 전에 황의승을 쓰러뜨리고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양몽환은 이를 악물고 결심했다.

 

단 한칼에 사생결단을 내고자 마음먹는 순간에는 양몽환의 몸은 공중에 솟아 있었다.

추혼십이검의 묘기를 다하는 장검에서는 은빛 칼 무늬가 일어나면서

눈부시게 찌르며 몰아 세웠다.

  그러나 황의승도 보통은 아니었다.

그래도 대각사 제자 여덟 명중에서는 고수에 속하는 인물이었다.

속칭으로 대각사 십팔 호법나한(護法羅漢) 가운데의 복호나한(伏虎羅漢)인

원각(元覺)이란 자인 것이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린 동발은 수비에는 이를 데 없이 완전무결한 방패였고

철필은 날카로운 공격 무기였다.

 

양몽환이 유성처럼 찌르고 들어가면 동발을 휘둘러 막으면서 철필을 휘둘러

그 틈을 노리고 달려 왔다.  양몽환의 추혼십이검의 검광이 황의승을

싸고돌긴 해도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잠시 후, 드디어 중들이 몰려 달려 왔다. 황의승 원각(元覺)은 신바람이 났다.

원기가 백배해서 더욱 기세가 사나워져서는 동발을 휘둘러 광막을 치고

자기 몸을 막는 한편 철필을 높이 들고는 찍고 차고 찌르며 연달아

세수를 쓰면서 숨 돌릴 사이도 없이 공박해 왔다.

 

번개같이 빠른 공격에 양몽환은 우선 자기 자신부터 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을 빼면서 검으로 철필을 후려쳐 위기를 모면했다.

양몽환도 황의승이 숨 돌릴 사이도 주지 않고 공격하려고 하자

그 기미를 눈치 채고 황급히 물러났다.

 

양몽환도 칼을 내려뜨리고 그제야 주위의 중들을 보니

모두 네 사람의 황색 승의를 입은 중들이 서 있었다.

이때 원각 승이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녀석의 검술이 매우 기묘하여 조예가 깊은 듯 하오.

전부 무기를 쥐고 포위하도록 하시오.」

 

  네 사람의 중들은 즉각 제각기 한 자루의 철필과 동발을 꺼내어들고 사방에 둘러섰다.

그리고 나서야 원각 승이 철필을 들어 선수를 쓰며 공격하여 왔다.

 

양몽환도 그 즉시 장검을 휘둘러 동발을 후려치고는 다시 주위를 살펴봤다.

네 중들은 그 틈에 올가미를 씌우듯이 포위망을 좁혀 들었다.

모두가 기세등등해서 호시탐탐 틈을 노리고 있었다.

 

양몽환은 그러한 처지에 놓였으면서도 태연하게 한 번 웃었다.

웃었는가 했는데 장검은 벌써 찬 바람을 가르며 번쩍거렸다.

원각도 지지는 않는다.

그 즉시 동발을 휘둘러 장검을 피하는 폼이 무척 빨랐다.

 

그 순간에 철필을 휘둘러 운용두갑(雲龍頭甲)법으로 재빨리 양몽환을 찔렀으니 말이었다.

양몽환도 황급히 몸을 비켰다. 철필이 바람을 가르면서 빗나갔다.

그 틈을 노려서 양몽환도 도살금전(倒撒金錢)의 검법을 재빨리 펼치면서 원각의 등을 후려쳤다.

강적들의 포위아래 싸움은 서로가 처절하였다. 양몽환은 강적들의 포위 속에서도

추혼십이검의 비법을 다 하였다.

칼끝에서는 살기가 번쩍거렸다.

한번 후려칠 때마다 신랄하고 날카로웠다.

 

그러나 상대방 원각도 대각사 십팔나한 중에서도 기명(奇名)을 날리는 맹사였다.

동발에서 광막이 일어나 앞을 가렸고 철필은 날카롭고 어지럽게 좌우상하에서 춤추듯 했다.

절기(絶技)와 절기의 대결이었다.

비법(秘法)과 비법의 승부였다.

장검과 동발은 불꽃을 튕기며 맞섰다.

원각이 다시 비법으로 달려들었다. 한화토예(寒花吐?) 법으로 양몽환의 등

척심혈(脊心穴)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양몽환도 즉각 몸을 돌렸다.

동시에 장검을 휘둘러 동발을 후려쳤다. 재차 철필이 날아들었다.

장검으로 막기에는 늦었다.

 

당황한 양몽환은 땅을 힘껏 걷어차면서 몸을 공중으로 날려 가까스로 피했다.

그러나 몸이 채 땅에 서기도 전에 눈앞이 번쩍! 하면서 다른 황의승의 철필이

그의 앞가슴을 노리고 들어왔다.

 

그는 총망중에도 왼손을 전광석화와 같이 적수박용(赤手縛龍)의 수법으로

다섯 손가락을 펼쳐서 적의 손목을 움켜잡는 동시에 다리에 힘을 주고 땅위에 굳건히 내려섰다.

그 때문에 적의 철필은 양몽환의 가슴의 옷자락을 약간 찢기는 하였으나

그의 손목은 양몽환에 의해 꽉 움켜잡혔다.

  황의 승은 손목이 으스러지는 아픔을 느끼며

그만 입을 딱 벌리고 철필을 땅에 떨어뜨렸다.

주위에 섰던 다른 중들과 원각은 양몽환이 검술에나 금나(擒拏)수법에

그토록 조예 깊고 모두 통달하고 있는 줄은 몰랐는 듯 망연자실 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우두커니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그의 동료를 구하려고 급히 몸을 움직이는 순간이었다.

  양몽환은 언뜻 손에 잡힌 중의 가슴에 칼을 겨누었다.

 

「꼼작도 하지 마라! 만약 섣불리 굴면 당신의 동료를 먼저 죽여 버리고 말겠소.」

 

  그 말에 네 명의 중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꼼짝 못했다.

분하지만 어찌는 도리가 없었다. 씨근덕하고 노려만 보더니

천천히 뒤로 이장이나 물러나는데 여전히 포위 태세는 갖추고 있었다.

후원 온 자도 역시 십팔 나한중의 우두머리들로 평소에 정이 두터웠던 터라

그의 동료가 죽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었다.

  돌연 복호나한(伏虎羅漢) 원각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네가 아무리 발광해 보았자 소용없는 노릇이지……

오늘날까지 이 기련산에서 무사히 살아서 되돌아간 사람은 없었으니까 말이야!

여하튼 오늘 저녁만은 용서하겠으니 놓아 주겠다. 속히 이 자리를 떠나라!」

 

  양몽환은 이들 황색 승의를 입고 있는 증들의 무예가 놀랍다고는 느꼈다.

그러나 자기가 한 놈쯤 죽여 봤자 이 포위망을 무사히 뚫고 나갈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지금 자기 손에 잡혀 있는 증도 갑작스러운 무술의 변화에 얼떨결에 잡힌 것이지

결코 자기의 무술이 월등해서 잡힌 것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말대로 손에 잡힌 중을 놓아주고 순순히 이 자리를 무사히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좋소. 그러나 한 가지 청이 있소.」

 

원각이 비웃으며 거만하게 거들먹거렸다.

 

「말해보지. 우선 들어보고 들어 줄만한 것이면 들어주지.」

 

「뭐 별 것 아니오. 당신들은 모두 대각사의 분들이시오?」

 

「그렇소.」

 

  양몽환이 웃으며 다시 물었다.

 

「당신들은 모두 황색 승의를 입고 한결 같이 동발과 철필을 사용하는데

법호(法號)는 어떻게 되오?」

 

  원각이 그 물음에 우쭐해서 대답했다.

 

「이 기련산에서 살아서 돌아가지를 못할 터이니 알려주지.

우리는 모두 대각사의 십팔 명 호법나한(護法羅漢)들로서

전부 동발과 철필을 무기로 사용하고 황색 승의를 걸쳤소. 알만하오?」

 

  이 말을 들은 양몽환은 깜짝 놀랐다.

 

  (그렇구나! 결국 이들은 호법제자들에 불과하니 주지나 감사(監事) 같은 이는

더욱 재간이 놀랍겠군. 일명 대사가 이곳에 가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더니 그 말이 틀림없군.)

 

  양몽환은 다시 자기의 사부와 등인(澄人)대사의 행방도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섣불리 그 말을 내었다가는 곤륜파의 강적을 만들지 모른다는 생각에

침을 삼키고 말았다.

그리고 겉으로 태연한척 한 번 웃고 나서는 움켜잡고 있던 중을 놓아 준 후

자기를 둘러 싼 중들 틈으로 유유히 걸어 나갔다.

과연 다섯 명의 중들은 그들이 약속한대로 그가 떠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양몽환은 걸음을 재촉하여 도옥이 사라진 방향으로 달렸다.

산등성이를 넘고 십 리나 달렸을까?

솔잎들이 싸늘한 바람에 흔들거리는 소리만 들려올 뿐 도옥과 하림은 찾을 길이 없었다.

양몽환은 무작정 달렸다.

 

어느 곳인지 눈과 얼음이 가득 덮여 있는 산봉우리에 도달한 양몽환은

걸음을 멈추고는 산세를 살폈다.

그러나 다만 보이는 것은 오직 높고 험하고 깊은 산뿐이었다.

동서남북조차 분간할 수 없는 산 속에 도옥과 하림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더구나 어느 쪽으로 가야 할 것인지 아득하기만 하였다.

또 얼마를 뛰었을까?

 

몸은 지치고 숨은 턱에 찼다.

살을 에일 듯 한 설한풍에 몸은 떨리고 수족은 얼어붙었다.

손을 부비고 발을 동동 굴려 추위를 막았다.

허기진 몸에 추위마저 겹친 양몽환은 간신히 산 밑으로 내려 왔다.

두 번이나 처절한 결투에 솜같이 늘어진 몸을 이끌고 오던 양몽환은

어느 푸른 잔디가 깔린 바람 없는 산골짜기에 이르렀다.

 

양몽환은 절로 다리가 떨리며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는 그만 죽은 듯이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어디선가 고즈넉이 들려오는 퉁소 소리에 잠이 깬 양몽환은

산봉우리 위로 솟아올라 눈부시게 빛나는 햇빛에 눈이 감겼다.

 

벌떡 몸을 일으키고 눈을 부비 던 양몽환은 갑자기 떨려오는 한기에 몸이 으스스 떨렸다.

깜짝 놀란 그는

 

  (아니, 내가 지금 병이라도 걸렸나? 지금이 어느 때라고?)

 

하고 생각하니 그는 앞이 캄캄하였다.

 

억지로라도 일어나 앉아 내공의 힘을 내어 병을 막아야 했다.

하기야 허기진 몸을 차디찬 설한풍에 내 맡기고 지친 몸을 가눌 길 없이

밤이슬을 맞으며 노숙으로 지새운 몸이 견디어 배길 도리가 없었다.

진기(眞氣)를 몸 안 각처에 일주(一週) 순행(巡行)시켰으나 몸은 여전히 불편했다. 

게다가 머리 속도 쑤시고 아픈 것이 심상치 않았다.

그렇다고 하림과 도옥을 찾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픈 몸을 일으켰다.

이때 한동안 그쳤던 퉁소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고즈넉이 들려오는 그 소리는 비록 크지는 않았으나 똑똑히 들렸다.

처음 듣기에는 단지 아름답다고만 생각하였다.

그러나 유심히 듣는 동안 점차 퉁소소리는 우는 듯 웃는 듯

원한이 사무친 여인이 울며 호소하는 듯한 애절한 음으로 변했다.

 

무심히 듣고 있는 양몽환은 스스로도 그 곡조에 휩싸여 감동하여 비감이 들었다.

깜짝 놀란 양몽환은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하였으나 퉁소 소리는 뿌리칠 수가 없었다.

  어느덧 그는 죽은 옥견(玉娟) 누나가 우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는

그도 울기 시작하였고 차츰 격앙되는 퉁소 소리에 따라 통곡으로 변하고 말았다.

 

얼마 후에 그토록 처량하던 퉁소 소리는 그쳤다.

그제야 양몽환도 후딱 맑은 정신으로 돌아왔다.

눈물에 앞가슴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묵직한 슬픔은 개이지 않았다.

자기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속으론 빨리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또다시 퉁소 소리가 들리자 마음은 곡조에 따라 울렁거리고

저절로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을 간신히 참으며 정신력을 집중하여

운공(運功), 조식(調息)을 취하였다.

즉 그자신의 정신력으로 마성(魔聲)과 같은 그 퉁소 소리에 대항하려고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럴수록 몸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것이었고

드디어는 참지 못하고 일어나 춤을 추려고 하는 참이었다.

 

홀연!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지나면서 그 퉁소 소리 뚝 그치고 다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으스스 몸이 떨릴 뿐!

 

간신히 몸을 일으킨 양몽환은 몇 걸음 걷다가 불의에 그만 쓰러졌다.

그 특이한 퉁소 소리는 사람의 혼백을 끄는 마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몽환이 그 마력에 대항하느라고 전신의 내공력(內功力)을 많이 소모시켰던 것이다.

이 결과 그로 하여금 격렬한 싸움보다 더 지치게 한 것이다.

땅에 넘어지자 그는 사지가 노곤하고 온 몸이 오싹오싹 떨려왔다.

 

그가 이렇게 지친 틈을 타 이미 몸에 침입한 풍한(風寒)이 발작을 일으키는 모양이었다.

  얼마 동안 허우적거리다 몸을 일으킨 양몽환은 삽시간에 온 몸은 불같은 열이 나며

머리가 빠개지는 것 같이 아파 옴을 느꼈다.

 

그래도 얼마만큼은 죽을 기를 쓰고 걸었지만 끝내 주저앉고 말았다.

양몽환은 가까스로 마지막 힘을 모아 운기(運氣)하여 보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관절요혈(關節要穴)이 모두 해이해짐을 재삼 느꼈다.

마지막 믿었던 단전(丹田)의 진기도 마지막으로 올라와서 덩어리가 되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양몽환도 그 지경이 되고서야 자기의 병이 보통 무거운 병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 낙심했다. 퍼져 오르는 열을 더 참을 수가 없었다.

만사를 단념하고 천천히 누워버렸다 만사는 끝난 듯싶었다.

 

그러나 정신만은 그래도 아직 맑았다.

하늘에 떠도는 흰 구름과 햇빛을 받아 찬란히 번쩍이는 산봉우리의 빙설(氷雪)과

또한 웅장하게 뻗은 소나무들도 바라보았다.

 

양몽환은 이제 대각사의 중들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 부딪쳐도 살아나지 못하리라 생각 하였다.

한심 하였다 그렇다고 달리 무슨 수는 없었다.

  갑자기 적막한 산곡(山谷)에 울리는 한 마리의 날카로운 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양몽환이 소리 나는 곳을 쳐다보자

 

엄청나게 크고 이상하게 생긴 새 한마리가 그의 머리 위를 획 하고 지나갔다.

그 새의 모양은 독수리와 비슷한 점도 있었으나 몸집이 열 배나 더 큰 것이

결코 독수리는 아니었다.

 

양몽환이 혹시 하림이 타고 왔다는 종류의 새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러자 그 괴상하게 생긴 거조(巨島)는 홀연 방향을 바꾸어서는

양몽환의 머리 위를 다시 지나갔다.

그 새가 하는 짓이 몹시 수상스러워 보였다.

 

일순!

 

양몽환은 섬뜩한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쳤다.

 

 (그래! 저 새는 분명 대각사에서 기른다는 그 새가 틀림없어!

저 새가 적의 행방을 찾고 있다면……그렇다면 원각의 말대로

이 기련산을 무사히 빠지기는 힘들겠는데 ‥‥)

 

그렇게 생각하고 지금의 자기 몸을 돌아보는 양몽환은 불안하기만 했다.

양몽환은 적을 피하고 싶은 욕망이 부쩍 일어났다.

 

부지중 몸을 일으키려고 해보는 순간,

온 몸이 부서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도저히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만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따뜻한 햇빛아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니 마음은 더욱 편안하여졌다.

누웠기에 불편하여 어깨의 장검마저 풀어 옆에 놓은 후 살포시 잠이 들어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요란한 고함소리에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고 바라보니 황색승의를 걸친 세 사람의 중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거만하게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운데의 중은 바로 복호나한인 원각이었다.

 

역겨운 웃음을 띠우고 바라보던 원각은 묘연한 어조로 빈정거렸다.

 

「기련산 청운암(靑雲巖) 백리 이내에 들어온 자로서 살아나간 예는 없지!

누워서 뭐하는 거야? 일어나서 다시 우리와 삼백 합만 싸워보자.

어디 다시 뚫고 나가는가 보게」

 

  양몽환은 담담하게 웃으며

 

「지금 병이 나서 신음하고 있는데 어찌 싸울 수가 있겠소.

죽이던 살리던 마음대로 하시오.」

 

하고는 태연히 눈을 감아 버렸다.

 

원각이 냉소하더니 동발을 들고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와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과연, 열기에 떠서 붉어진 얼굴과 하룻밤 사이에 초라하여진 모습을 보고는 선뜻

 손을 내밀어 양몽환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대단한 열임을 확인한 그는 한참 주저하다가 웃으며 이죽거렸다.

 

「병들어 있는 자는 죽이기는 쉬운 일이지. 그렇다고 살려둘 수도 없고 말이야 ……

그렇지! 자네 어제 저녁의 행동은 사내다운 점이 있었으니 특별히 보아주기로 하지.

좋아! 우리 장문주지에게 보이어 결정짓게 하지.

그때 가서 죽게 되던 살게 되던 그건 자네의 팔자 조화(造化)에 달렸네.」

 

  양몽환은 눈을 뜨고 태연하게 반박했다.

 

「생사의 문제는 아직까지는 이 양몽환이가 마음에 새겨두지 않고……」

 

라고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옆에서 불쑥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사는 인간의 대사 중에 대사인데 마음에 두지 않다니요?

이상한 사람인데요. 당신은.」

 

  세 중들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왔는지 그들 뒤에는 흑의의 여인이 서있지 않은가!

 

그 여인의 복장 역시 괴이하였다.

얼굴에는 검은 헝겊으로 복면을 하였고 전신은 새까만 옷으로 감싼 듯 한 것이

하얀 곳이라고는 오직 가냘픈 두 손 뿐이었다.

그나마도 너무나 하얀 살결에 그의 옷과 퍽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몸매는 가냘프고 매끈한 것이 오른 손에는 옥으로 만들어진 퉁소가 들려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그녀의 흑의 단장 차림은 마치 신비한 마귀의 그림자 같기도 하였고

바람 따라 펄럭이는 검은 옷자락과 몸매는 공포감마저 주었다.

 

원각은 황급히 세 걸음 물러서면서 왼손에 철필을 쳐들었다.

그리고는 다급하게 호통했다.

 

「당신은 누구요? 공연히 사람을 놀라게 한다면 가만 두지 않겠소!」

 

  혹의의 여인은 옥퉁소를 흔들면서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너희들 같은 땅이나 쓸고 황불이나 피우는 보잘것없는 중놈들이

내가 누구인 것을 물어볼 자격이나 있느냐?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있다면 빨리 물러 가거라!

보아하니 늙은 놈들이라 사정 보아서 이번만은 용서 해 주겠다.」

 

하고는 갑자기 찬 바람이라도 일 듯한 엄한 어조로 호령하였다.

 

「만일 너희들이 다시 쓸 데 없는 말로 내 호의를 거절한다면 서슴없이

진짜 나한(羅漢)으로 만들어 주겠다.」

 

  보다 대담하고 준엄하게 호령하는 말투에 원각과 다른 두 중들은 그만 얼이 빠졌다.

한참 후에야 원각이 공손하게 물었다.

 

「그러시다면 소저는 본사 주지 스님이나 감사님들을 잘 아시는 것 같은 말씀이신데

어느 분께서 무슨 일을 맡고 계신가를 예를 들어서 한사람만 말씀하여 주시오.

그러므로서 우리들도 절에 가서 책임 추궁을 면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흑의의 여인은 귀찮아진 모양이었다. 몸을 한 번 획 움직이자

어느새 세 중들에게로 달려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한 중에게 한수(一手)씩을 안겨 주었다.

 

어처구니없도록 전광석화와 같은 솜씨에 세 중들은 도시 무엇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단지 그 일격에 눈앞이 아찔하고 머리 속은 뒤집히는 것 같았다.

흑의 여인의 수법은 언뜻 보아 찌르는 것 같기도 하고 후려치는 것 같기도 하는 한편

또 어찌 보면 격파하는 것 같기도 하고 휘두르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떻게 막아야 할런지 분별이 안 서는 괴상한 수법이다.

각각 한 수씩 맞아 본 세 중들은 상대방의 솜씨가 놀랍고 기묘한데 어안이 벙벙했다.

그제야 원각은 생각난 듯이 소리쳤다.

 

「혹시 소저는 옥소선자(玉簫仙子)라는 분이 아니십니까?」

 

  흑의 여인은 그제야 만족한 듯

 

「그렇소. 인제 내가 누구인지를 알았으면 더 혼나기 전에 빨리 되돌아가시오.

 내 이름만 들먹이면 늙은 중들도 그대들을 나무라지 않을 터이니까.」

 

  원각은 그만 오금이 저렸다.

정체를 알 길 없는 이 여마(女魔) 는 바로 사년 전에도

대각사에 나타나 한 알의 설삼과(雪參葉)를 달라기에 주지 않았더니

단인필마(單人匹馬)로 대각사를 발칵 뒤흔들어놓은 예가 있는 터였다.

 

당시 세 사람의 대각사 장로(長老)는 마침 폐관(閉關)에 임하고 절을 비우고 있었다.

또한 그들 여덟 제자들도 세 사람은 행각(行脚) 나가고 한 사람,

즉 일명 대사는 쫓겨나고 다만 남은 네 사람의 직계 제자들과 그리고 원각과 같은

항렬의 제 이대 제자 대부분이 그녀를 잡으려고 하였지만 결국 한 알의 설삼과는

옥소선자에게 빼앗겨 버렸던 것이다.

 

이로 인하여 옥소선자라면 대각사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원각도 마침 그 때 출타 중이었으므로 나중에야 그 사실,

즉 격렬한 싸움의 상황을 동료들에게서 듣고 기억하여 두었던 것이다.

 

마침 그 생각이 떠올라 원각은 혹시나 하고 물어본 것이 적중하였던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은 이대로 물러가기는 곤란했다.

비록 옥소선자가 그들의 스승격인 일대 제자 네 사람과 싸워 이겼다고 하지만

그대로 돌아갔다가는 책임을 면하기 어려웠다.

 

옥소선자도 그들의 눈치를 대뜸 알아 차렸다.

잠시 동안 그 모양을 훑어보던 옥소선자는 날카롭게 부르짖으며 휙 하니 몸을 날렸다.

동시에 그녀의 무기인 옥소(玉簫)를 휘두르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번개같이

열 번을 찍고 찌르고 했다.

 

한 수 한 수가 기기묘묘했다.

세 중들은 일제히 철필과 동발로 허둥지둥 막아 보았으나

결국 일장(一丈) 가까이 물러 감으로서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이들은 소문대로 자기들의 실력으로는 도저히 맞설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자칫하다가는 죽기를 면치 못할 것만 같았다.

 

옥소선자가 여유를 주는 틈에 겁에 질린 그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부랴부랴

달아나 버리고 말았다.

 

옥소선자는 그 모양을 바라보고 가볍게 웃고 있었다.

비록 웃음소리가 간드러지고 듣기에는 아름다웠지만

오히려 그 웃음이 복면 속에서 흘러나오고 보니

어쩐지 으스스하게 소름마저 끼치는 것 같았다.

양몽환도 속으로 섬뜩하여 아무래도 잘못 걸렸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세 중들이 그림자도 없이 사라지자 옥소선자는 양몽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어디서 오셨나요? 또 무슨 일로 대각사 중들하고 시비가 생겼죠?」

 

하고 묻는데 의외로 그녀의 어조는 다정하기만 하였다.

 

양몽환은 그녀의 검은 복면 너머로 은은히 비치는 그녀의 웃음 짓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양몽환도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후배는 양몽환이라고 하는데 곤륜파의 문하(門下)입니다. 친구를 찾기 위하여

이 기련산까지 들어왔다가 대각사의 중들과 싸우고 이 기련산을 빠져 나가던 길이였습니다.

간신히 이곳까지는 왔으나 그나마 병들어 신음하던 때에 선배님의 의로운 협조로

목숨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옥소선자는 쑥스럽게 웃었다.

 

「선배님, 선배님 하지 마세요. 듣기가 매우 거북해요. 호호.」

 

하면서 무릎을 꿇고 그의 이마를 짚어 보고는 대단한 열에 깜짝 놀랐다.

 

「열이 대단하군요!」

 

양몽환은 쓸쓸하게 웃었다.

 

「어제 저녁 그들과 밤늦도록 까지 싸워 몸이 지쳤는데다가 밤이슬을 맞으며

노숙하였더니 아마도 한기가 스며든 것 같습니다.」

 

  옥소선자는 몸을 일으키며 웃는 얼굴로

 

「그래 지금 마음 같아서는 살고 싶어요? 아니면 죽고 싶어요?」

 

하고 묻는 것이 놀리는 것만 같았다

  양몽환이 잠깐 생각하여 보니 죽는 것은 억울할 것 없지만

만약 여기서 죽는다면 하림의 소식도 모르는 지금 이곳에서 죽을 수는 없었다.

또 살아날 수 있다면 구태여 죽을 필요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죽겠다면 어떻고 살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미리 말씀하여 주시면 생각해 보고 대답하지요.」

 

  옥소선자는 웃으며 또 빈정거렸다.

「글쎄 …… 십여 년 동안 대강(양자강) 남북으로 돌아다니면서

죽음에 직면한 사람을 수 없이 보아 왔지만 한 번도 그들을 구해준 예가 없었거든요.」

 

  그 말을 듣자 속으로 섬뜩하여진 양몽환은 여자의 마음은 남자보다 독하다더니

그 말이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옥소선자는 계속하여 말했다.

 

「그러나 당신만은 살려 주기로 하죠! 그 대신 조건이 있어요,

곤륜파의 삼자(三子) 재간으로 평생 사사(事師)해 보아야 별 수 없으니

나를 따라가자는 거요.

나를 따라 간다면 지금 당장 병을 고쳐줄 뿐 아니라

나의 온갖 무예의 비법도 전수하여 십년 후에는

이 강호에서 손꼽히는 인물로 만들어 주겠어요.

그렇다고 나를 꼭 스승으로 모시라는 것은 아니에요.」

 

  말이 끝나자 양몽환은 단호히 거절했다.

 

「사문을 배반한다는 것은 가장 대기(大忌)할 노릇이오.

이 양몽환은 죽으면 죽었지 그렇게 해서 살기는 원하지 않소!」

 

옥소선자가 웃으며 끄덕이었다.

 

「그렇다면 꼭 죽겠다는 말씀이군요.」

 

「글쎄 죽고 사는 거야 부득이한 건데 내 마음 대로 할 수 없지요.

그렇다고 죽는다고 해 보아야 대수로울 것도 아니고 …… 마음대로 하시오.」

 

  양몽환은 귀찮은 듯이 눈까지 감아버렸다.

 

  그 말에 옥소선자는 깔깔 웃었다.

 

「당신 곧 죽어가는 처지에 말은 굉장히 여물군요.

그렇다면 오히려 소원해도 죽지 못하게 방해해야겠어요.」

 

하고는 덥석 양몽환을 안고는 답설무흔(踏雪無痕)이라는

상수급의 경신술을 발휘하여 줄달음쳤다.

  병세가 위중한 양몽환은 버둥거릴 힘도 없어 그냥 몸을 내 맡겼다.

옥소선자는 몇 번 산등성이를 넘고 넘어 어느 산 밑에 도달하자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그러더니 양몽환을 다시 허리에 끼고는 어느 정도의 금이 벌어져 있는 절벽을 올라갔다.

그 위에는 비쭉 나온 커다란 바위로 굴 모양을 이룬 곳이 있었다.

그곳은 산봉우리 중간에 위치한 곳이었다.

깊이와 넓이는 두 어장 남짓한 천연적인 바위굴이었다.

암굴 밑은 절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형세는 무척 험해서 암굴은 천연적인 요새 같았다.

  옥소선자는 양몽환을 내려놓고 그때야 비로소 천천히 그녀의 복면을 벗었다.

의외에도 아리따운 여인이었다.

 

「어때요? 지금도 나를 따라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하면서 싱긋이 웃는 얼굴은 마치 양몽환을 유혹하는 것 같았다.

더구나 그 웃음은 너무나 유혹적이고도 교태로워 단번에 가슴이 울렁거려

양몽환은 고개를 돌려야만 했다.

  그러자 옥소선자는 하얀 알약을 한 알 양몽환에게 먹이면서 웃으며 말했다.

 

「우선 나의 정신단(定神丹)을 먹어요.

밤이 되면 대각사에 들어가 설삼과를 한 알 훔쳐 주겠어요.

그 설삼과는 세상에서 구하기가 무적 힘든 영약이에요.

그 설삼과를 한 알만 먹으면 무슨 병이라도 깨끗이 나을 수 있고 효력도 놀라워요.

당신도 병이 중한 것으로 보아 그 약 아니면 이삼 개월에 쾌유되긴 힘들겠는데요.」

 

  태도가 크게 달라진 것을 본 양몽환은 오히려 불안했다.

그리고 이 여인의 성격이 도옥과 비슷하여 때로는 차가웠다가

또 때로는 다정하여지는 것이 무척 변덕스럽다고 여겼다.

  이와 같은 상태에서는 남이 하는 대로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양몽환은

주는 약을 삼키고는 눈을 감고 자는 척 했다.

  그러다 얼마 후 그는 정말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가 지난 후, 심한 갈증에 양몽환은 눈을 떴다.

사방을 둘러보니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그의 몸 둘레에는 부드러운 풀들이 덮여 있었다.

그러나 옥소선자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몸도 움직일 수없었다.

갈수록 갈증은 더욱 심하여

 

「물! 물 좀 주오!」

 

하고 부지중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수수 하는 소나무 흔들거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을 뿐

몇 번 물을 달라고 외쳐보았지만 아무 대답도 없었다.

심한 갈증에 따라 그는 점점 괴로워 졌다.

그나마 잠시 후에는 반 의식불명의 상태에서 물을 찾고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없는 깊은 산골이었다.

더구나 절벽에 있는 어두운 굴속에서 옥소선자도 가고 없는 이상

그 누가 그의 요구에 응해 달려오랴?

물을 찾는 소리는 더욱 애절하게 울려 멀리까지 바람에 날려 흩어져갔다.

그 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하얀 손이 그를 가볍게 안으며 차가운 물통을 갖다대지 않는가?

정신없이 반통이나 마신 양몽환은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자기에게 물을 갖다 준 사람을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았다.

희미하게 떠오르는 그림자를 자세히 보던 양몽환은

그것이 바로 옥소선자의 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옥소선자는 강호에 종횡무진 하던 마녀와 같은 인물이었으나

지금은 한없이 다정한 마음씨를 베풀고 있었다.

그녀는 걱정스럽게 탄식하며 말했다.

 

「병세가 위증해서 큰 걱정이군요.

대각사의 설삼과만 있다면 걱정 없는데 대각사의 장로들이 모두 절에 있으니

설삼과 한 알을 훔치기가 여간 힘들지 않게 생겼어요.」

 

  그 말투가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은 양몽환에게

딱한 입장을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겨우 정신이 좀 돌아선 양몽환도 같이 걱정하였다.

 

「대각사의 중들이 그토록 많이 모여 있는데 혼자서 당해낼 수 있습니까?」

 

옥소선자가 또 한 번 안타깝게 탄식 했다.

 

「하지만 설삼과가 아니면 당신의 병을 고칠 수가 없단 말이에요.」

 

  양몽환은 은근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들은 아무 연고 없이 우연히 만나게 된 사이로서

나를 그같이 걱정하실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더구나 여태껏 남을 구원하여 본 예가 없다는 분이.」

 

  옥소선자가 그 소리를 듣고는 깔깔 웃었다.

 

「대단히 죽고 싶어 하시는 것 같은데 결코 원대로 내버려 두지는 않겠어요. 호호 ……」

 

  양몽환도 쓸쓸히 웃고는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미 반나절을 자고 났으니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열에 들뜨는 몸의 고통을 참으려고 안간힘만 써졌다.

그러나 신음 소리는 절로 나왔다

옥소선자는 내공에 조예가 깊은 무예가였다.

어둠 속이었지만 양몽환의 그 고통에 허덕이는 모양을 환히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담담히 불쌍하군! 하는 정도로 생각하던 그녀였지만

웬 일인지 양몽환의 신음 소리를 듣다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불같이 일어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내 오늘날까지 반생 동안 죽는 사람도 수없이 보고 상한 사람도 많이 보았지만

동정 하고 싶은 마음은 손톱 끝만치도 품어보지 않은 나였지 않은가?

그런데 왜 이 낮선 병자에게만은 내가 이토록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고 또 친절을 베풀지?

정말 모를 일이야.)

 

하고 생각하면서도 불현듯 양몽환의 이마에 손을 짚어 보는 것이었다.

 

「몹시 아파요? 네?」

 

하고 물었다.

그러나 한참 몸이 괴로워 짜증이 난 양몽환은 그녀의 몸을 밀쳐 손을 흔들었다.

 

「내 몸에 손대지 마시오!」

 

  옥소선자는 멈칫하였다.

그녀의 반평생에 남자로부터 이와 같은 모욕을 당해본 경험이 없었다.

괘씸한 노여움이 금시에 불같이 솟았다.

  그러자 그 순간에 미묘한 감정이 마음 구석에 싹텄다.

  자신도 알 수 없는 마음은 미묘하게 움직였다.

수년간 그는 남자로만 행세해 왔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가 여자라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마녀라고 불리던 그녀는 그 순간부터 온순한 여인으로 변하고 말았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양몽환의 옆으로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그에게 부딪쳐 그로 하여금 성을 내게 할까 여간 근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퉁소를 빼어 손에 들고 입을 양몽환의 귀에 가까이 갖다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잠이 들도록 노래를 한곡 불러 드릴게요.

네? 당신이 잠이 들면 다시 대각사에 가서 무슨 수를 써서든

설삼과 한 알을 꼭 얻어서 당신의 병을 낫게 하겠어요.」

 

  양몽환은 그녀를 한번 쳐다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옥소선자는 한 번 다정하게 웃어 주고는 옥으로 만들어진 퉁소를

입에 갖다대고 차분히 불기 시작했다.

고즈넉한 아름다운 퉁소의 가락에 양몽환은

고통도 잊은 양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띠었다.

  그 모양을 본 옥소선자는 더욱 신이 나는 듯 정성을 가다듬어 불자

한 가닥의 맑고 밝은 퉁소 소리는 황홀한 경지까지 양몽환을 이끌어갔다.

어느 듯 그는 저절로 눈이 살포시 감겨지는 것이었다.

  그가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그 분위기를 깨뜰고 달려왔다.

옥소선자는 놀란 듯 퉁소를 입으로부터 떼고는 나직한 음성으로 주의를 주는 것이었다.

 

「염려 말고 누워 있어요.」

 

하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굴 앞에는 한 사람의 그림자가 입구를 막고 섰다.

옥소선자는 행여나 양몽환에게 해를 미칠까봐 상대방이 손을 쓰기 전에

먼저 몸을 날려 공격 하였다.

손에 든 퉁소로 상대방에게 맹렬한 공격을 가하는 눈치가

상대방으로 하여금 절벽에서 떨어뜨릴 각오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의 무예도 어지간히 놀라웠다.

삽시간에 지팡이와 비슷한 규용봉(?龍棒)을 양 손에 들고는

바로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공격을 막아낸다.

옥소선자는 손을 멈추며 빈정거렸다.

 

「왜 나에게 이토록 치근치근 따라 다니고 귀찮게 굴어요.

일파의장문인으로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이십 년만 더 쫓아다녀 봐요. 내가 관심을 갖는가!」

 

  상대방도 껄껄 웃더니

 

「여자들은 깜찍한 거짓말을 잘 한다더니

과연 그렇군! 나는 벌써 당신의 애인이 있는 줄은 눈치 챘지만

절대 없다고 딱 잡아떼고 속이다가 이제 잡혔으니 뭐라고 변명 할 테요?

그렇다고 내가 순순히 물러갈 놈은 아니니 ‥‥

우리가 이미 오륙 년간을 싸워 왔는데 여전히 응낙하지 않겠다면 계속 싸워야지……」

 

  말하고는 험상궂게 얼굴빛이 변하면서 한 쪽에 누워있는 양몽환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 눈초리에는 질투와 시기에 불타 살기가 등등하였다.

  심상치 않은 거동에 옥소선자는 그가 일격에 양몽환을 죽여 버리려 한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녀는 경계를 하면서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이곳은 좁으니 아래로 내려가서 싸우기로 해요.」

 

  괴한은 음산한 어조로

 

「그것 좋지!」

 

하며 몸을 돌려 절벽 아래로 내려갈 듯이 몸을 추스르더니

 

느닷없이!

 

천만 뜻밖에도 날쌔게 양몽환에게로 덮쳐 들어왔다.

그러나 옥소선자가 그보다 한걸음 빨랐다 그가 몸을 획 돌이키는 순간에

벌써 그녀의 오른 손의 퉁소는 번개같이 횡단무산(橫斷無山)으로 날아가면서

양몽환에게 덮쳐드는 거한의 앞길을 막아버렸다. 

동시에 양몽환을 등지고 퉁소를 맹렬히 휘둘러 공격을 퍼부었다.

그 괴한은 기습(奇襲)이 실패로 돌아가자 끓어오르는 질투와 노여움이 범벅이 되어

화가 터질 대로 터졌다.

 

규용봉(?龍棒)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키는 소리가 들리면서 옥소선자를 집어 삼킬 듯 하였다.

삽시간에 그들은 삼사십 합을 교환하였다.

그렇게 격전하던 옥소선자는 좋은 생각이 들었다.

 

(수십 차례 싸워 결판을 못낸 우리가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하지 않고는

상대방을 제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수백 합 이내에는 판결이 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그의 힘을 빌려 대각사의 설삼과를 훔쳐서 양몽환에게 먹이고 보자.)

 

  이렇게 생각한 옥소선자는 그 즉시 퉁소를 거두어 들였다.

그러자 상대방도 멈칫해서 휘두르던 규용봉을 멈추고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때 옥소선자가 정색하며 말했다.

 

「오늘 정말 나와 생사를 걸고 싸울 작정이신가요?」

 

  갑작스러운 물음에 어리둥절하던 괴한은 급히 부인했다.

 

「오륙년 동안 수십 차례 싸웠지만 결코 옥소선자를 죽이려고 생각한일은 없지 .」

 

옥소선자는 흐뭇한 듯이 애교를 떨며 말했다.

 

「그러시다면 일년 동안이나 줄곧 나만 쫓아다닌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이죠?」

 

  상대방이 그 말에 더듬거렸다.

 

「그 …… 그야 여러 번 이야기 한바와 같이 ‥‥

그러니깐 나와 부부만 되어준다면 ‥‥

그렇지 공동파(??派)의 장문인을 당신에게 양보하여 줄 것이며

또 우리가 연합하게 된다면 무예계에서 패권을 잡게 될 것은 분명하구.」

 

  옥소선자는 입을 비쭉하면서 말했다.

 

「그까짓 공동파의 장문이 무슨 대단한 것이라고 그보다

지금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 주시겠어요?」

 

  상대방이 껄껄 웃으며 가슴을 내밀었다.

 

「나 음수일판(陰手一判) 신원통(申元通)은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는 자요.

무슨 일이라도 말씀만 하시오.」

 

  사뭇 자신만만한 듯 오만하게 거들먹거렸다.

옥소선자는 다시 아양을 떨었다.

 

「당신과 함께 대각사에 가서 설삼과 한 알을 훔쳐 와야 갰는데 같이 가주시죠?」

 

  신원통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라운 듯이 머뭇거렸다.

 

「아니? 우리 공동파와 대각사는 하등 알력이 없는데 왜 그 짓을 하오?

또 대각사의 세 분 장로가 버티고 있는데 위험한 짓이란 말이오.」

 

  그러자 옥소선자는 냉소하며 비웃었다.

 

「당신 즉 음수 일판이라는 자가 얼마나 담이 적고 겁쟁인지 이제 알았어요.

그만두세요, 당신이 못 간다면 나 혼자라도 가겠어요.」

 

  옥소선자의 격장지계(激將之計)에 빠져 신원통이 불끈하였다.

 

「못가긴 왜 못가. 하지만 설삼과를 어디에 쓸 것인지 얘기부터 하시오.」

 

하고는 양몽환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옥소선자는 웃으며 또 간드러진 아양을 떨었다.

 

「나의 동생이 병에 걸렸기에 그것으로 치료하려는 거예요.」

 

  신원통은 그 말에 싸늘히 웃으며 쏘아붙였다.

 

「동생? 동생 좋아 하시는군. 솔직히 애인이라고 말씀하시지 .」

 

  얼굴이 확 붉어진 옥소선자는 성을 낼듯하더니

웃으며 또 간장을 녹이듯 생글거렸다.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그는 틀림없이 나의 동생이에요.

믿지 않으면 그만 두시지, 도와주고 안 도와 주는 것은 둘째로 치고

함부로 말하면 다시 상대도 않겠어요.」

 

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녀가 멋지게 꾸민 진지한 태도에 신원통은 반쯤 믿게 되었다.

더욱이 옥소선자라는 인물은 강호 일대에서는 악독하다는 평판은 들어도

음탕하다는 얘기는 없는 바였다.

또 다시 상대도 않겠다는 말은 그만큼 뜻을 두고 있다는 의미도 되는지라

기분이 많이 풀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의심스러운 태도로 다시 물었다.

 

「당신에게 동생이 있었다는 얘기는 처음 듣는데.」

 

  옥소선자가 고의로 노한 듯한 태도로 쏘아붙였다.

 

「당신에게 이야기할 이유가 뭐 있어요?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었는데.」

 

  옥소선자가 화가 난 듯 돌아서자 신원통이 비위를 맞추느라고 애썼다.

 

「그래요. 그래! 내가 잘못했소.」

 

  옥소선자가 그 눈치를 보고는 한술 더 떠서 가만히 한숨까지 쉬었다.

 

「하나 밖에 없는 나의 동생이 죽는다면 나도 죽고 말겠어요.」

 

했다.

 

  한 옆에서 줄곧 그들의 우스꽝스러운 말을 듣고만 있던 양몽환은

자기가 그녀의 동생이라는 말에 우습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다.

즉시 일어나 부인하려고 하였으나 몸을 움직일 수 없어 그만 두고 말았다.

 

음수일판 신원통이 크게 웃었다.

 

「당신이 동생이라면 이 신원통이 수고를 해야지.

염려 마시오. 지금 곧 가는 것이 어떻소?」

 

  그때서야 마음이 풀어진 듯한 옥소선자는 양몽환에게 다가와서는

 

「동생, 푹 쉬도록 해요. 누나는 곧 설삼과를 얻어 오겠어.」

 

하고는 몸을 돌려 신원통과 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자 다시 굴 같은 곳에 적막이 되찾아 왔다.

양몽환은 완전히 피곤함을 잊고는 생각에 잠겼다.

요주(饒州) 여인숙에 남겨둔 삼사숙(三師叔)인 혜진자(慧眞子)와

그리고 사부와 등인대사. 또 도옥과 하림에 대한 생각이 번갈아 일어났다.

더욱이 남장을 한 주백의가 자기에게 보여준 깊은 애정에

그의 마음은 산란하기 끝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우르릉 산이 무너지는 듯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고는 잠시 후에 고요해졌다.

움직이지 못하는 양몽환은 다만 누워서 금환이랑 도옥이 놓은 불길에 봉우리 위의

천년 묵은 눈들이 녹아 눈사태를 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짐작만 하고 있자니 궁금한 마음은 초조하기까지 하였다.

또 잠시 지나자 다시 귀신의 울음소리 같은 피리 소리가 들려 왔다.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양몽환은 필시 대각사의 중들이 절을 수색하고 있으리라고 짐작 하였다.

불안해지는 마음을 달랠 수가 없었다.

그는 무리를 해서라도 기어나가 굴 밖의 동정을 살피고자 하였다.

간신히 굴 밖까지 기어나가 조심스럽게 살펴보니

하늘은 맑고 별들이 반짝이는 것이 보이긴 하였으나

기운이 쇠한 양몽환의 시야에는 그 외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외치는 괴이한 고함소리가 위에서 들려 왔다.

그리고는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절벽 아래로 달려오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나더니

한 사람의 그림자가 획 하고 눈앞을 스쳐 아래로 급히 달려 내려갔다.

언뜻 보니 바로 도옥이 아닌가?

다시 살펴볼 틈도 없이 그의 뒤를 세 사람의 황색 승려가 추적하여 갔다.

  이 같은 광경을 본 양몽환은 크게 놀랐다.

분명히 도옥이가 위기에 몰려 쫓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렇다면 도옥의 한 몸으로서는 황색 승의를 입은 세 중들을 당하지 못할 것이 확실했다.

양몽환은 자기가 병든 몸인 것도 잊고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다음 순간, 머리가 빠개지는 고통과 어지러움에 다시 쿵하고 쓰러졌다.

  양몽환이 쓰러지는 소리는 비록 크지는 않았으나 위에서 도옥을 쫓던 중 하나가

들었는지 걸음을 멈추고는 다시 천천히 올라왔다.

이것을 모르는 양몽환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켜 땅 위에 주저앉았다.

  이때 입구까지 온 그 중은 양몽환을 발견하고 겁에 질려 들어오지도 못하고

 

「누구냐! 누구냔 말이야!」

 

하고 고함만 지르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가만히 장검을 쥐었으나 다시 살며시 옆에 놓았다.

지금의 몸으로는 도저히 맞싸울 수 없는 형편인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오히려 모르는 척 해서 태연을 가장하고 묵묵히 앉아 있는 것이 좋을 듯 했다.

  그래서 황의의 중이 연거푸 물었으나 아무 대답도 안 했다.

한편 황의승이 보기에는 장검을 앞에 두고서도 태연히 않아있기만 하는 것이

싸우려는 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태연히 앉아있는 것에 황의 승은 도리어 기가 질렸다.

한동안 그렇게 서서 노려보기만 하던 중은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동발과 철필을 들어 몸을 보호하고는 천천히 양몽환에게로 다가 왔다.

  양몽환도 섬뜩했다.

만약 자기가 꿈적 하기만 하면 상대방이 전광석화와 같이 공격을 가할 것이

 뻔함을 알고는 꼼짝없이 잡히는 수밖에 없다고 체념 하였다.

  겉으로는 여전히 태연한척 하였다.

그러나 너무나 양몽환의 침착한 태도에 오히려 의심이 바싹 난 중은

양몽환의 둘레를 빙 한바퀴 돌면서도 감히 손을 대지 못하였다.

  한편, 황의승도 이리 저리 생각하던 중이었다.

(아마 이 사람은 필시 내공의 수련이 절묘한 경지에 도달한 도인에 틀림없어!

렇지 않고야 이렇게 태연할 수가 있을까?

바로 앞에 벼락이 떨어진 대도 눈 하나 깜짝 않을 거야!

그래 함부로 손을 쓸 수가 없지,

이런 도인들은 여간해서 손을 쓰지 않지만 한번 움직였다하면

단 일격에 상대방을 쓰러뜨린다지 않는가! 조심해야지.)

 

하면서 유심히 살펴볼 뿐 공격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양몽환도 온 기력을 가다듬고 짧은 이 시간을 지루하게 여기며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날 수는 없었다.

끝내 그 중은 슬그머니 철필로 양몽환의 가슴을 쿡! 찔러 보았다.

그러나 갑작스런 반격을 예기하고 바짝 긴장한 몸에 들이 대는 철필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양몽환은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왼 쪽으로 비킨다는 것이 그만 몸이 기울어져 나둥그러지고 말았다.

이 행동에 중은 그제야 크게 안심하고 파안대소했다.

 

「꼴좋다! 이 엉터리 도사님의 수단에 그만 깜빡 속을 뻔 했군 하하하」

 

하더니 철필을 번개 같이 휘둘러 양몽환의 아랫배를 노리고 찔렀다.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양몽환은 본능적으로 몸을 굴려 피하고는 벌떡 일어서면서

옆에 있던 장검으로 중의 잔등을 후려쳤다.

  황의승은 재빨리 오른 손의 동발로 장정을 막아 내고는

철필로 두 번을 연달아 찌르고 들어 왔다.

양몽환은 간신히 철필을 피하고는 기운이 진하였는지 픽하고 다시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장검은 승려의 철필에 튕겨 석자 밖으로 떨어졌다.

 

그 승려는 다시 껄껄 웃었다.

 

「네 이놈! 이까짓 재간으로 감히 이 기련산 청운암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다니?

이 부처님께서 일찌감치 서천(西天)으로 보내주지.」

 

유유히 철필을 들고 양몽환의 선기혈(旋肌穴)을 찌르려고 노리자

그만 양몽환은 눈을 감았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이었다.

그 찰나! 느닷없이 황의 승려의 왼팔이 떨어져 나갈듯이 아프고 저렸다.

그 바람에 그만 철필을 놓치고 말았다.

너무나 놀란 황의 승려는 몸을 홱 돌이키면서 동발을 휘둘렀다.

그런데 이것이 또 어찌된 일이냐?

뒤에 있어야 할 사람은 그림자도 없었다.

 

황의승은 오히려 자기 힘에 겨워 앞으로 몇 발자국 비틀거려야 했다.

눈이 동그래서 다시 몸을 돌이키는 순간 획 하는 가느다란 음향과 함께

그의 오른 팔이 떨리면서 동발까지 떨어뜨리고 말았다.

도깨비장난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황의 승려는 양팔의 기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그는 자기의 양팔을 못 쓰게 한 수법이 무엇인가를 그제야 깨달았다.

바로 미립타혈신공(米粒打穴神功)의 수법이었다.

말로만 들었지 처음 당해보는 수법이었다.

너무나 놀란 그는 땀을 흘리며 애원하는 어조로 굴복했다.

 

「어느 분이신지는 모르지만 소승의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또 폐사(幣寺)의 몇 분 장로님의 얼굴을 보시더라도.」

 

  그는 상대방의 무공에 너무나 놀란 나머지 용서를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대각사의 장로들을 들먹임으로서 상대방을 위협하고 생명을 구해보고자 한 것이다.

사실 이 미립타혈신공(米粉打穴神功)은 일종의 초인간적인 경지에 도달한 자만이

터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말만 들어 보았지 강호에 이러한 절기(絶技)를 지니고 있는 무예가가 있다는

소문도 들어 보지 못한 바였다.

자기 같은 실력으로 함부로 날뛰다가는 스스로 죽음을 불러들이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황의승이 애걸하는 소리에 이장(二丈)밖에서 냉소 하는 소리가 들려 왔다.

 

「대각사의 늙은 중들을 다른 사람은 혹시 겁낼지 모르지만 나는 겁내지 않아.

단지 너를 죽임으로서 내 손이 더러워질까 염려스러워죽이지 않을 터이니 빨리 사라져라.」

 

황의 승려는 옳다구나 하는 듯이 두 손을 축 늘어뜨린 채로 발걸음을 옮겨 달아났다.

그러자 양몽환의 얼굴에는 희색이 감돌았다.

양몽환은 어둠 속에서도 들려오는 음성의 임자가 분명히 주백의인 것을 즉시 알았다.

그가 막 그녀를 부르려고 하는데 미풍이 산들 불더니

그의 귓가에 정다운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제가 한 걸음만 늦었어도 당신과 하림사매는 둘 다 지쳐 죽고 말 뻔 하였군요.」

 

하고 놀리는 듯 속삭였다.

 

  양몽환은 탄식하며 바라보았다.

 

「어떻게 당신이 또 하림 사매를 구한 모양이군요.」

 

  주백의가 웃으며 끄덕이었다.

 

「하림사매를 구한 것까지는 좋은데 나는 아주 혼났지 뭐예요.

글쎄 정신을 차리자마자 첫 말이 오빠! 하더니 나에게 막 매달리지 않아요? ……

글쎄 내가 원, 자기 오빠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하고 농담조로 이야기 하다 끝에 가서는 쓸쓸한 어조가 되어 있었다.

 

  양몽환은 만감에 서린 듯 한 어조로

 

「당신이 나의 사매를 구해준 것도 고마운데 또 나의 목숨까지 구해 주었군요.」

 

  양몽환은 깊이 고마움을 표했다.

 

주백의는 픽 웃으며

 

「입으로는 달콤하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담……

어서 하림사매에게나 가보세요?」

 

  양몽환은 숙연하게 얼굴을 숙였다.

 

「병이 대단하여 지금 갈 수가 없을 것 같군요.」

 

  그러고 보니 실로 난처한 일이었다.

주백의의 백학인 현옥은 하림을 지키고 있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겼던 주백의는 어색한 어조로 수줍게 말했다.

 

「내가 업어다 드릴까요?」

 

  양몽환은 주저 하다가 거절했다.

 

「거북한 일인데요.」

 

하고 뒤돌아 앉았다.

주백의는 더욱 부끄러움에 어쩔 줄을 몰랐다.

사실 주백의가 양몽환에게 진면목으로 대한 이상 비록 남장을 하였다하더라도

여자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하물며 처녀가 총각을 업고 간다는 것은 도대체 말도 안 되는 말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이 말없이 업혀 간다면 어색한 감정을 탈 없이 넘길 수도 있겠지만

고지식한 양몽환의 대답에 주백의가 부끄러워 한동안 말도 못하고

어쩔 줄 모르게 된 것이었다.

  오랫동안 주백의가 말이 없자 그때서야 양몽환은

자기의 대답이 너무나 매정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아프게 찔렀으리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황망히 물었다.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군요?」

 

  주백의가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당신을 생각해서 사매에게 데려다 준다니까 점잔만 빼고 앉았어요.

그렇게 냉정하게 쏘아붙이니 나는 천박한 계집이 되고 말았지만」

 

하며 주백의는 스스로의 설움이 복받쳐 그만 눈물을 흘렸다.

  주백의의 눈물을 보자 사태가 이상하다고 느낀 양몽환은 황망히 사과했다.

 

「비록 내가 말을 잘못했다 하더라도 무심코 한 말을 용서해 주시오.」

 

하고는 양몽환도 눈물이 글썽 해지고 말았다.

  이와 같은 양몽환의 진지한 태도에 주백의는 마음속으로 미안해했다.

  다시 웃으며 오히려 달래기 시작했다.

 

「누가 잘못했다고 뭐라고 그랬어요?」

 

「그럼 왜 우십니까?」

 

주백의가 손수건을 꺼내어 양몽환의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

 

「나는 내 신상이 슬퍼서 울었지만 당신은 왜 우시지?」

 

양몽환은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고개를 숙이는데

한 옆에 떨어진 장검을 발견하였다.

그제야 도옥이 낭패한 모습을 기억해내고는 즉시 주백의에게

 

「한 가지 어려운 부탁이 있는데 들어 주시겠습니까?」

 

하고 간절한 소원이라도 말하려는 듯이 쳐다보았다.

 

  주백의는 방긋 웃으며 물었다.

 

「무슨 부탁이세요? 어떠한 부탁이라도 해 드리겠어요.」

 

  양몽환은 속으로 실제에 있어 주백의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공손하게 대했다.

 

「도옥이란 친구가 저쪽으로 지금 막 중들에게 쫓겨 갔는데 그 친구를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갑자기 주백의가 코웃음을 쳤다.

 

「그 야단스러운 복장을 하고 손목에 금환을 한 친구 분 말이죠?」

 

하면서 주백의는 얼굴마저 찌푸렸다.

 

  양몽환은 멈칫하여

 

「아니 그 친구가 당신에게 무슨 죄라도 지었습니까?」

 

  주백의는 다시 비웃는 얼굴로 빈정거렸다.

 

「그까짓 재간으로 나에게 죄를 질 자격이나 돼요?

그따위 친구는 상대 안하는 것이 좋을 거예요.」

 

  양몽환은 주백의가 언제 도옥을 만나 본 일도 없으면서

모르는 사람을 어찌 이다지도 탐탁치 않게 생각할까?

하고 불쾌해 지고 어떻게 된 노릇인지를 몰라 눈살을 찌푸렸다.

  주백의는 그러한 양몽환의 모앙에 도옥을 그까짓 것이라고

비판하여 화라도 내게 하였나 하고는 겸연쩍은 어조로

 

「왜 말을 안 하세요? 무슨 잘못한 일이라도 있어요?」

 

하고 눈치껏 물었다.

 

  양몽환은 고개를 흔들며

 

「아니요. 그런 것이 아니고 당신은 도옥과 만나 본 일도 없을 터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영문을 모르겠는데요?

도옥의 성격이 비록 음침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종 수단이 악독할까? 그렇다고 나에게 베푼 은혜는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 된 도리로서 은혜를 잊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당신에게 부탁한 것인데 그처럼 말씀하시니

더 이상 할 말이 없군요.」

 

  양몽환은 쓸쓸히 대답했다.

 

  주백의는

 

「좋아요! 정 그렇다면 이번만 구해주죠.」

 

  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사라지고 말았다.

 

  잠시 후, 양몽환은 다시 뜨거운 열에 점차 의식을 잃어갔다.

거의 반 혼미 상태에 빠졌을 때 인기척을 느끼고 양몽환은 말했다.

 

「벌써 돌아 왔어요? 빠르군요.」

 

하자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웃음소리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

 

「빨라? 호호. 누나는 마음속으로 조급해서 죽을 뻔 했는데 좀 어때요?

빨리 이 설삼과를 삼켜요 어서! 대각사 중들이 쫓아오니 이곳을 떠나야 돼.」

 

하고는 향기가 폐부로 찌르는 설삼과를 입에 물렸다.

청아한 향기에 정신이 좀 맑아진 양몽환은 자기를 안고 있는

사람이 주백의가 아닌 옥소선자인 것을 알았다.

우연의 일치로 친근하게 대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조금 의심을 품고 따라 들어온 신원통은

그제야 의심을 푼 듯 크게 웃었다.

 

「동생! 빨리 자시게, 이 설삼과는 천하제일에 명약으로 만병통치야.

동생을 위해서 이 신원통이 내공력을 소모시키면서 싸웠단 말이야.

또 최근에 연마한 삼음장(三陰掌)을 처음으로 써서 쓰러뜨렸지. 하하 ……」

 

하고는 아주 생색을 냈다.

 

그때였다.

 

갑자기 싸늘한 빛의 두 암기(暗氣)가 날았다.

그러자 신원통은 노기를 띤 음성으로 고함쳤다.

 

「중놈들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하고는 몸을 날렸다.

 

곧이어 무기와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격렬하게 들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