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12 장 대각사의 승(憎)들 <鳳舞鸞翔>

오늘의 쉼터 2014. 6. 22. 12:26

제 12 장 대각사의 승(憎)들 <鳳舞鸞翔> 

 

 

한편 두 황의 승려는 온 몸에 심한 상처를 받고

옥영자 일행을 안내하여 북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달리고 달려 몇 개의 산을 넘자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졌다.

혜진자는 앞서 가는 중을 불러 세웠다.

「아니, 대각사가 어디쯤 있어요?」

하자 왼쪽의 승려가 얼굴을 돌리며 서북쪽의 높이 솟은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바로 저 봉우리 위에 있소.」

혜진자는 아무리 시력을 다해 바라보아도 저녁노을에 반짝이는

백설(白雪)과 운무(雲霧)에 쌓인 산봉우리만 어렴풋이 보일 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한편 하림은 험한 산세를 보고 감탄했다.

 

「오빠! 저렇게 높은 산봉우리에 절을 짓자면 굉장히 어렵겠죠?」

 

「산 위에는 목재와 바위돌이 많아 별로 어렵지도 않을 걸.」

 

  하림은 생긋 웃으며 응석부리듯 양몽환에게 다가섰다.

 

「오빠는 무엇이든지 다 알고 있군요!」

 

  두 분 사숙의 면전에서 칭찬하는 하림의 말에 양몽환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자 하림은 다시 계속해서 말했다.

 

「오빠! 언니는 참 예쁘죠? 성격도 온순하고 다정해서 정말 떨어지기가 싫어요.」

 

  양몽환은 얼떨결에 대답했다.

 

「응, 참 좋은……」

 

하고는 불쪽 그리운 정이 솟구쳐 목이 메는 듯 했다.

아련하게 떠오르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이라든가,

정다운 목소리를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그리워졌다.

양몽환은 그녀를 잊으려는 듯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산사로 안내하는 두 승려는 몸에 심한 상처를 입고서도

야비한 웃음을 입가에 풍기며 서로 음탕한 눈으로 연방 하림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다.

요염한 하림의 모습에 넋마저 잃은 듯 했다.

심지어 자기들의 임무마저 잃고 추잡스러운 웃음을 풍기며 바라보는 것이었다.

 

구름 위로 솟은 높은 봉우리는 보기에는 그렇게 먼 것 같지 않았지만 막상 가보니

여간 먼 곳이 아니었다.

어둑어둑하게 저녁 땅거미가 질 무렵에야 간신히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입구에 도달하여 주위를 두루 살폈다.

수백 길이나 되는 절벽이 양쪽에 서 있고 그 사이로 한길 남짓한 십오 리 정도 협곡이 뻗쳐 있었다. 그 협곡만이 산봉우리로 통하는 단 하나의 길인 것이었다.

양 쪽의 절벽은 수 백 길이나 되고 마치 깎아지른 듯 험하게 솟아 음산했다.

나무포기 한 그루 보이지 않는 음침한 협곡은 갈수록 좁아지고 길도 험해졌다.

길은 갑자기 좁아지고 또 얼마나 길고 험한지 알 길이 없었다.

옥영자는 이와 같은 산의 형세를 유심히 살핀 후 잠시 동안 생각했다.

두 절벽 으슥한 곳에 적이 매복하고 있다가 느닷없이 공격해 오면

큰일이라고 생각하고는 왼 쪽 승려에게 바짝 다가섰다.

만일 적이 불시에 습격해 온다면 불문곡직하고 중을 죽이든지

혹은 혈도를 찔러버리려고 오른 손에 힘을 모았다.

 

한편 혜진자도 짐작되는 바가 있어 양몽환과 하림에게 다가가 나직이 속삭였다.

만전을 기하자는 뜻이었다.

 

「만일을 위해서 너무 떨어지지 말고 꼭 붙어서 따라와라.」

 

하고는 오른쪽 승려에게 바짝 다가섰다.

두 승려는 자기들 옆에 바짝 붙어 따르는 두 사람을 보고는

히죽이 냉소하며 가슴을 툭 내밀고 기고만장해서 걸어갔다.

양몽환과 하림도 그들과 약 일장을 두고 뒤 따랐다.

삼십 장을 들어가서 왼 쪽으로 돌아보니

양측에 절벽은 더욱 깎아지른 듯 몹시 험악하여 곤륜이자(二子)는

한층 긴장해서 바짝 두 승려의 뒤를 따랐다.

거의 일각의 시간을 걸어서야 적의 기습도 받음이 없이

무사히 길고 깊은 수백 장이나 되는 협곡을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협곡을 나서자 하늘로 우뚝 솟은 봉우리가 저녁노을 속에 어스름히 보였다.

높은 봉우리 바로 앞에는 한없이 넓은 풀밭이 우거져 있었고

또 그 둘레는 험한 산봉우리 들이 병풍을 친 듯 둘러져 있었다.

그것들은 앞의 봉우리보다 높지는 않았지만

이미 장막을 드리운 어둠에 자세히 살필 수는 없었다.

두 승려가 인도하는 대로 우거진 풀밭을 지나 산봉우리 밑에 도착했을 때

홀연 요란한 외침과 더불어 느닷없이 어둠 속에서

네 명의 승려가 뛰어나와 험상궂은 눈을 부릅뜨고 앞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는 동발과 철필이 들려 있었다.

그러자 길을 인도하던 두 승려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들의 동료들이 나타나자

몸을 슬쩍 날려 네 사람의 승려 뒤로 숨어 버렸다.

 

혜진자는 즉각 몸을 가다듬고 갑자기 처한 사태를 판단했다.

혜진자는 산봉우리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부득이 승려를 물리쳐야함을 깨닫자

재빨리 장검을 빼어 들고는 냉엄하게 쏘아보며 말없이 달려들었다.

네 승려는 길을 인도해 온 두 동료가 자기들의 등 뒤로 숨어 버리자

즉시 몸을 돌려 오른쪽의 동발을 일제히 휘둘러 혜진자의 날카로운 칼끝을 막는 것이었다.

혜진자는 행화춘우(杏花春雨)의 기묘한 수법으로 빗발 같은 검광을 뿌리며

질풍 같이 달려들어 네 승려를 한꺼번에 후려쳤다.

이 신기한 수는 추혼십이검법(追魂二劍法)중의 하나로서

상당한 위력을 지닌 절묘한 수법인 것이다.

그러나 네 승려 역시 대각사의 호법나한(護法羅漢)들로

네 개의 동발을 일제히 춤추듯 휘둘러 막자

혜진자의 장검은 놀랍게도 뒤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혜진자는 깜짝 놀라 멈칫했다.

그녀는 적어도 그 독특한 수법에는 자신만만하여 네 승려들을

여지없이 때려눕히고 요절을 낼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약간 멈칫하는 그 순간 또다시 네 자루의 철필이 날카롭게

얼굴 위로 날아들어 오는 것이었다.

순간! 혜진자는 번개 같이 몸을 뒤집으며 두 걸음을 물러나면서

장검을 휘둘러 은빛 무지개를 고려 네 승려의 철필을 후려쳐서

막아냄과 동시에 네 승려를 향해 질풍처럼 쳐들어갔다

혜진자의 칼끝이 바람을 가르고 번개 같은 검광이 번쩍이었다.

깜짝 놀란 네 승려들도 동발을 휘둘러 맹렬히 달려들었다.

혜진자의 장검과 동발이 서로 얽히는 가운데 어느덧 그들은 수합을 더 교환하게 되었다.

옥영자는 네 승려의 동발과 철필의 수법이 너무나 비상하여 수십 합 이내에는

결코 승부가 나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하자 장검을 빼어 들고 뛰어 들어갔다.

  그때 마침!

머리끝까지 화가 치민 혜진자는 성난 호랑이 같이 표변해지고 검법이

추혼십이검으로 바뀌며 뛰어 들어 갔다.

삽시간에 검광이 눈부시게 번쩍이며 칼바람을 일으키자 급기야 네 승려는

허겁지겁 뒤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또 한번 몸을 날려 달려들던 혜진자의 장검이 맹렬히 휘둘러졌다

그리고는 백운출갑(白雲出甲)의 수법으로 바뀌어한 승려의 철필을 떨어뜨렸다.

일격을 성공시킨 혜진자의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당당해져서 삽시간에 천지를 가를 듯

더욱 모질게 검풍검광(劍風劍光)을 일으키자 마치 황하(黃河)가 넘쳐흘러 내리는 듯 했다.

다급해진 네 승려는 황망히 동발과 철필을 거두며 뒤로 물러나고야 말았다

그러자 혜진자도 그 이상은 더 공격하지 않고 장검을 거두었다.

일양자의 행방을 알기까지는 이들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잠시 후 혜진자는 네 승려를 매섭게 노려보며 큰 소리로 호령했다.

 

「네 분의 무공은 이미 알았소. 속히 귀사의 주지 스님에게

곤륜산 금정봉(金頂峯) 삼청궁(三淸官)의 곤륜파 장문(崑崙派掌門)인

옥영자와 혜진자가 뵙고자 왔다고 통보하여 주시오.」

 

  네 승려는 혜진자와 일행들을 바라보고는 불만스럽게 반문하는 것이었다.

 

「방문차 오셨다면 왜 폐사의 사람들에게 상해를 입히셨습니까?」

 

  그러자 혜진자는 타이르듯 말했다.

 

「귀사의 사람을 해친 것은 우리가 아니오.

또한 우리의 말과 일거일동을 수상스럽게 숨어서 엿보고 엿듣는 이상

그 정도로 맞아도 싸지 않소? 이런 일로 통보하여 주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올라가겠소.」

 

  한편,

  네 승려는 혜진자의 솜씨에 기가 죽었던 터라

그들의 세력으로는 이들 일행을 막을 수 없음을 절실히 느꼈다.

또 일파의 장문인이 친히 찾아봤다는 말을 듣자 무림(武林)에 고명을 떨치는

이들과 상대하기가 어려운 것을 짐작하고는 오른 쪽에 서 있던 승려가 주춤하며 나섰다.

 

「곤륜파의 장문인께서 오셨으면 저희들이 응당 주지 어른께 말씀을 드려야 하겠죠.

하지만 봉우리 위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습니다.

잠시 여기서 기다려 주십시오.

주지 스님께서 뵙겠다는 허가를 내리실 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옥영자는 너무나 예절을 모르는 네 승려의 언행에 울화가 치밀고 분통이 터지고 말았다.

 

「당신들의 대각사에서는 애써 찾아온 손님에게 이토록 무례하게 대접하오?

빈도가 수 십 년 동안 강호 생활에서 이와 같이 어처구니없는 대접은 처음이오.

당신들은 우리가 강제로 들어갈 수 없다고 우습게 생각하는 모양이군!」

 

  옥영자의 말이 떨어지자 뜻밖에 산 위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이어

 

「감히 어떤 자가 여기 나타나서 소란을 피우느냐!」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의 그림자가 유성(流星)처럼 달려와 우뚝 서는 것이었다.

옥영자가 눈여겨보니 상대방은 약 오 십 세정도의 승려로서 청색 승포를 입었고

얼굴은 기다란 것이 당나귀 같고 손에는 선장(禪杖)을 들었다.

  네 승려는 그 청색 승려의 승포자락을 보자 황망히 한 쪽으로 비키며 공손하게 합장 배례했다.

  네 승려의 앞으로 나선 청의승은 혜진자를 유심히 쏘아 보고는 냉랭한 어조로 묻는 것이었다.

 

「여러분들은 어디서 오셨소이까?」

 

  청의승의 태도가 황의승보다 더욱 방자하고 무례함에 옥영자는

치미는 노기를 더 참을 수 없었다.

얼굴을 굳히며 고함을 질러 버렸다.

 

「곤륜파의 장문인 옥영자가 귀사의 주지님을 뵙고 상의할 일이 있어 왔소.」

 

  이때 청의승은 하림의 얼굴과 마주 치자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며

웃는 낯으로 공손히 입을 열었다.

 

「아 실례했소이다. 도장(道長)은 먼 길을 수고스럽게 오신 일파의 장문이시군요.

소승은 일청(一淸)으로서 본사의 지객승(知客僧)으로 있소이다.

주지 어른을 만나 뵙고자 하시면 저를 따라 올라 오시오.」

 

하고는 선장을 옆으로 비껴들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는 것이었다.

옥영자는 그 즉시 일청의 뒤를 따라 산으로 오르고 양몽환과 하림은

그의 뒤를 그리고 혜진자는 제일 뒤를 따랐다.

  네 승려는 각자 두어 걸음 비키며 길을 열었다.

  처음에는 산세가 비록 험하긴 하였으나 그런대로 길은 있었다.

그러나 올라 갈수록 점점 험해지고 삼백 장을 오르고 난 다음에는 길이 없어지고

온통 눈으로만 덮여 있는 산정은 바람만 차갑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러자 얼음 위로 서슴지 않고 걸어가는 일청은 상당한 경신술의 조예가 있어 보였다.

  옥영자와 혜진자는 기력이 심오한데다가 험한 곳을 수없이 다니던 몸이라

하등의 곤란함을 느끼지 않았으나 양몽환은 간신히 갈 수 있을 정도고 하림은

이마에 땀을 몽글 몽글 흘리고 있었다.

  강호의 경험이 풍부한 옥영자는 곧 일청이 일부러 가깝고 좋은 길을 두고

그들의 경신술을 시험하기 위하여 험난한 곳을 택한 것이라고 눈치 챘다.

  얼음길이 끝나자 이번에는 소나무 숲가에 이르렀다.

그러나 숲은 얼마나 울창한지 어둠 속에서는 시커먼 덩어리로 보일 뿐

얼마나 깊고 험한 곳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이때 걸음을 멈춘 일청은 옥영자를 돌아보고 히죽이 웃었다.

 

「숲 속으로 길이 있긴 하나 이리저리 꾸부러져 있기 때문에 시간이 걸립니다.

그보다 나무 가지 위로 건너가는 것이 빠르오.」

 

하고는 옥영자의 대답도 듣지 않고 획 몸을 날려 가냘픈 소나무가지 위에

가볍게 서고는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옥영자도 어렵지 않게 따르고 혜진자는 하림의 손을 붙잡고 뒤를 따라 달려갔다.

  다행히 숲은 그리 넓지 않은 편이었다. 조금만 더 넓었더라도 양몽환은

소나무 가지에서 힘에 지쳐 떨어졌을 것이다.

  소나무 숲을 지나고 또 다시 절벽에 올라서 겨우 산 위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때는 벌써 이경이 가까웠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절의 대지(垈地)는 약 오백무(五百畝)가 되는 것으로

 험한 산세를 그대로 성처럼 의지하고 건축된 것이었다.

  일청은 곧이어 일행을 어느 방으로 안내 하였다.

그 방은 손님 접대용인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절 안에 들어선 후에는 일청이 있는 까닭인지 여러 중들을 만났지만

옥영자 일행을 본척만척 하였고 아무도 그들을 막는 사람은 없었다.

  옥영자가 대각사의 생긴 형세를 유심히 관찰하여 본 결과 일반 사원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함이라든가 산성(山城)처럼 지은 것이 사원이라기보다 대궐과 같음을 느꼈다.

  그리고 널따란 사원 앞뜰에는 푸른 잔디밭이었고 어스름 달빛 아래 오락가락하는 승려들이

여러 명 보였다.

승려들은 가지가지 다른 색깔의 승의를 걸치고 있었고 상당히 바쁜 듯

서로 내왕하면서도 동료간에 한마디 말도 건네는 것을 볼 수 없고 인사도 없이

각기 제 갈 길만 가는 것이었다. 언뜻 느낌이 신비스럽기도 하고 혹은 음산하여

소름이 끼칠 것 같고 마치 귀신들의 무리 속에 놓인 것처럼 무서운 감마저 들었다.

옥영자와 혜진자는 강호에서 오랫동안 떠돌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로

여러 가지 괴이한 일과 음산한 곳을 여러 번 겪고 다녀 보았지만

이 곳처럼 귀기(鬼氣)가 서리고 불안하며 괴이한 곳은 처음이었다.

그런데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야릇하고 음산한 기운마저 도는 데는 과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러한 눈치를 재빨리 알아챈 듯 한 일청은 더욱 음산하게 히죽 히죽 웃는 것이었다.

 

「여러분들은 잠시 이곳에서 기다려 주십시오.

소승이 주지 어른의 분부를 받고 오겠소이다.」

 

하며 나가다 갑자기 몸을 돌이키면서 명령하듯 했다.

 

「소승이 말하기 전에는 절대로 이곳을 한 치라도 떠나서는 아니 됩니다.

명심하십시오.」

 

  그러자 옥영자는 노기를 띤 어조로 따지고 들었다.

 

「우리가 이렇듯 절차에 따라 뵙고자 한 것은 무예계의 예의에 따른 것이오,

기껏 이까짓 석실(石室)에 앉혀 두었다고 우리들을 가둘 수 있을 것 같소?」

 

  자리를 박차고 몸을 일으키고는 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일청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먼 길에 오셨는데 좀 쉬십시오.」

 

하면서 두 손을 모함다가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그와 동시!

  서릿발 같은 한 줄기 장력(掌力)이 옥영자에게 밀어 닥치는 것이었다.

  바로 그 찰나!

  옥영자의 느닷없이 쳐든 오른 팔에서 일진 장풍이 몰아쳐 나갔다.

  옥영자는 이때 일청에게 당장 쓴 맛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개같이 들어

즉시 오른 팔에 진기를 몰아 번쩍 쳐들면서 한 줄기 장풍을 후려쳐 보냈던 것이다.

  불과 눈 깜짝하는 사이였다.

  순간 두 줄기의 장풍이 힘차게 부딪치고 소용돌이 쳐 폭풍처럼 얽히자

옥영자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지만 일청은

세 걸음이나 휘청거리며 물러서더니 슬쩍 몸을 돌이키며 달아나 버렸다.

  승패는 그 즉시 나고 말았지만 옥영자는 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왜냐 하면 지객승 정도의 일청이 자기의 무서운 일장을 그 정도나마 막는 것으로 보아

주지나 장로들은 일청보다 공력이 월등하리라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옥영자는 이번 길이 결코 평탄한 길이 아니라고 마음을 다져 먹었다.

  그나마 속으로는 분노가 태산 같았으나 표면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히 자기가 앉았던 자리에 돌아왔다.

그리고는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방법을 곰곰이 궁리하고 있었다.

 

네 사람은 거의 한 시간동안이나 기다렸으나 일청은 나타나지 않았다.

몇 번인가 혜진자가 뛰쳐나가려는 것을 나중에 주지에게 따지자는

옥영자의 제지로 간신히 만류하였다

 

그때 갑자기 북소리가 세 번 울려 퍼지며 이어 우렁찬 종소리가

적막을 깨뜨리고 아홉 번 울렸다.

그리고는 다시 죽은 듯 잠잠해졌다.

그리고 종소리가 난지 얼마 후 지객승이라는 일청이 총총히 달려왔다

그런데 그의 손에는 선장이 들려있지 않았다.

또 태도도 공손해져서 옥영자에게 합장하고 웃으며 말했다.

 

「폐사의 주지 스님께서 여러분들이 오셨다는 통보를 받고

소승으로 하여금 모셔 오라는 분부이시오.」

 

  그러자 옥영자는 혜진자를 쳐다보고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일청을 따라 나갔다.

혜진자도 따라 나갔다. 잔디밭을 지나 돌을 깔아 놓은 길을 건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번이나 이리 돌고 저리 돌고 해서 갔다.

  이윽고 안내된 곳은 한 채의 커다란 대전(大殷)이었고 불을 휘황하게 켜놓고

사람의 그림자가 우왕좌왕하는 것이 보였지만 조금도 요란한 소리는 없었다.

  일청은 그들을 데리고 곧장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이 대전은 전부 청석(靑石)으로 세워진 것이었다.

높이는 거의 삼장(三丈) 정도의 넓이로 대전 안에는 소나무 기둥으로 만들어진

스물 네 자루의 커다란 촛불이 주위를 밝게 비쳐주고 있었다.

 

그리고 앞 쪽의 가운데 쯤 제단이 놓여 있으나 노란 휘장으로 가리어 있어서

어떤 불상이 놓여 있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 앞에는 커다란 청석으로 다듬어진 연대(蓮臺)가 세 개 놓여 있고 연대 위에는

방석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방석 위에는 월백승의(月白僧衣)를 입은 세 승려가 앉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기다란 눈썹이 눈까지 덮는 얼굴에 붉은 윤기가 돌고

피부가 하얀 신선 같은 노인이 고요히 눈을 감고 않아 있었다.

옥영자는 그 노인의 모양을 보고는 즉각 내공이 정순(精純)하여 다시 젊어지는

경지에 도달한 자인 것을 알고 속으로 놀라며 긴장했다.

 

그리고 그 오른 쪽에는 뒤룩뒤룩 살이 찌고 볼이 아래로 축 늘어진 승려가 앉아 있었다.

얼핏 보아서는 꼭 미련퉁이 같았다.

반대편 왼쪽에는 몸집이 작고 뼈만 남은 것 같은 승려가 처량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오른 쪽의 승려와는 극히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이 바로 대각사의 세 장로로서 가운데에 앉아 있는 자가 주지 신불(神佛) 영원(靈遠)이고

오른 쪽의 뚱보는 철미륵(鐵彌勤) 영해(靈海), 왼 쪽이 바로 고불 영공이었다.

 

그리고 세 장로의 양 쪽에 청색 승의를 입은 승려가 두 사람씩 서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굵직한 철선장을 들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오십세 정도로 보이는 승려들이었다.

그 밖에 신불 영원의 뒤에는 십오륙세 되어 보이는 예쁘게 생긴 소사미(小沙彌)가

양쪽에 서 있었다.

 

지객승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가 합장하고 읍하며 공손히 입을 열었다.

 

「곤륜파의 장문인 옥영자등이 제자를 따라 왔습니다.」 

 

  그러자 영원은 눈을 뜨고 옥영자 일행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하림에게로 눈이 멈추었다.

 

「곤륜파의 장문인께서 폐사에 왕림하신 것은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하고 묻는 그의 몸은 옴쭉 달싹도 안하는 것이 교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옥영자는 속으로 은근히 불쾌하였으나 참고 한 손을 들어 예를 표했다.

 

「정수(精修)에 방해됨을 알면서도 이렇게 달려봤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빈도의 사형 일양자가 반달 전 벗인 등인대사(澄因大師)와 설삼과 한 알을

구하고자 귀사에 방문한다고 떠난 이후 소식이 묘연하여 이렇듯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왼 쪽의 영공이 갑자기 냉소하며 나섰다.

 

「설삼과를 구하기가 그렇게 쉬운 줄 아시오?

아마 사형께서 헛수고만 했겠소.」

 

혜진자는 얼굴빛이 변하며 노기를 띠웠다.

 

「설삼과라는 것도 별 것 아니요.

우리가 이렇게 찾아온 것은 사형의 소식을 알고자 하는 것 밖에 없소.」

 

  영원이 파안대소하며

 

「대각사는 평소 강호인들과 내왕이 없으며 특히 곤륜파와는 조그만 관련도 없소.

이곳은 불가의 성지(聖地)인데 당신들 마음대로 소란을 피워도 좋은 곳으로 생각 마시오?」

 

  너무나 무례한 언동에 혜진자는 치미는 울화를 참지 못해 온몸이 떨려왔다.

옥영자도 더 참을 수 없었던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대각사가 철벽(鐵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오.

우리들이 이와 같이 방문한 것은 무예계의 예의를 준수하자는 것뿐이요.

귀사가 빈도의 사형 행방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소란을 피울 정도로

끝내고 말지는 않을 것이요!」

 

  그러나 영원은 거만하게 코웃음 쳤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고의로 소란을 피우고자 온 것이요?」

 

  옥영자는 재빨리 두 걸음 물러나면서 장검을 빼어 들고는 날카롭게 외쳤다.

 

「대사께서 만일 빈도 사형의 행방을 말해주지 않으신다면 옥영자는

무력으로라도 대답을 받겠소!」

 

  그러자 영원은 소맷자락을 한번 가볍게 휘둘렀다.

그와 함께 스물네 자루의 큰 촛불이 꺼질듯 파르르 떨었다.

그 순간 주위가 깜박하고 어둠에 싸였다.

옥영자와 혜진자는 갑자기 도는 찬 기운에 가슴이 선뜻 했다.

잠시 후에 촛불이 다시 밝아졌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어야할 세 장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대전에 남아있는 사람은 오직 혜진자 일행뿐 승려들도

세 장로와 함께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변고는 너무나 의외여서 옥영자도 한동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곧이어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한번 소맷자락을 휘두르자 찬 바람이 휘몰아쳐 왔지만

이것은 높은 경지에 도달한 내공력의 술수라면 행할 수 있다.

단지 차가운 기운이 진동하는 것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이곳은 심상한 곳이 아니구나.)

 

하고 궁금히 여기는 순간이었다.

청색의 네 승려가 사방에서 갑자기 나타나면서 포위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었다.

순간 옥영자는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고 급히 혜진자에게로 다가갔다.

 

「내가 먼저 저들의 실력을 알아보겠으니 나서지 말아요.」

 

하고는 선뜻 한걸음 나서는가 하는데 서쪽의 승려를 한 칼에 찌를 듯 달려들었다.

옥영자의 억센 완력에 장검은 날카로운 칼바람 소리를 내며 번쩍거렸다.

그러나 청색 승려들도 만만치는 않았다. 대각사의 일대 제자(一代第子)이며

선장에는 역시 심오한 재능이 있는 듯 하였다.

서로가 치고 찌르고 부딪치는 찰나!

 

  <철렁!>

 

쇳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면서 장검이 튕겨져 나갔다.

그러자 옥영자는 재빨리 장검을 거두어 들였다.

 

다음 공격을 위해 호흡을 가다듬는 찰나!

 

좌우 선장이 한꺼번에 휘몰아쳐 오지 않는가!

옥영자는 그 즉시 몸을 빼 돌렸다.

그러자 온몸의 진기를 모아 장검 끝에 집중시키고는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몸을 날렸다.

승용인봉(乘龍引鳳)의 한수로 번개같이 몸을 날리며 승려들이

휘두르는 선장 속을 뚫고 들어갔다.

그러자 장검과 선장이 불꽃을 튀겼다.

그때 옥영자의 몸이 한번 공증에 치솟았다.

 

「얏!」

 

하고 사방을 찢는 고함을 질렀다.

 

그것은 숨쉴 겨를도 없이 분광검법(分光劍法)을 벌렸던 것이었다.

칼바람은 더욱 세차게 네 승려를 몰아 세웠다.

원래 곤륜파의 분광검법은 민첩하고 날카롭기 이를 데 없었다.

그러한 비법이 옥영자의심후한 내공력에 힘입어 그 공세는 날카로움이 번개와 같았다.

양몽환은 그들이 어울려 싸우는 모양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네 승려들 속에 뛰어들어 이리 치고 저리 찌르며 활약하는 옥영자의 모습은

한 마리의 노 한 용과 같았다.

날렵한 솜씨로 휘두르는 분광검법을 양몽환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변화를 세심히 관찰했다.

양몽환은 이미 터득하고 있는 검법이지만 옥영자의 손에서는

그 위력이 십 배나 더 증가된 것으로 보여 이제까지 해득할 수 없었던

몇 가지의 변화도 관찰할 수 있었다.

 

옥영자의 칼끝은 더욱 정기를 품고 번쩍 거렸다.

한편 네 승려들도 여전히 선장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찌르면 피하고 차면 뛰고 처절하게 얽혀 갔다.

그러나 삼십여 합이 지나도록 승패는 판가름이 나지 않았다.

옥영자가 날카롭게 공격할수록 네 승려는 더욱 침착하게 대적하는 것이었다.

옥영자는 짧은 시간에 그들을 격퇴 시킬 수 없음을 느꼈다.

더구나 먼저의 세 장로들은 자기들을 전연 무시하고 그 모습조차 나타내지도 않았다.

이대로 싸움을 질질 끌다가는 곤륜파의 명예에 수치가 되겠다고 생각한 옥영자는

유혈의 참극을 각오하고 또다시 검법을 바꾸었다.

즉시 옥영자는 추혼십이검의 절기를 전개하는 듯 하면서

왼 손을 번쩍 쳐들어 내밀며 곤륜파의 묘기인 천강장법(天?掌法)을

벼락같이 휘두르기 시작했다.

장검은 은성(銀星)이 흐르듯 푸른빛을 가르며 번쩍이고 장풍은 성난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칼 빛은 남북을 가르고 장풍은 천지를 뒤흔들듯 하자

네 승려도 그만 뒤로 물러나지 않을 수없었다.

  과연 네 승려는 옥영자의 수법을 바꾼 공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연신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계속해서 공격한다면 곧 승패가 판가름 될 순간이었다.

옥영자는 칼끝을 겨누고 자세를 가다듬었다. 최후의 일격을 가할 자세였다.

 

  바로 그때였다.

 

한 승려가 다급하게 괴상한 소리를 벼락같이 질렀다.

그것을 신호로 그들의 장법(杖法)이 불시에 돌변하면서 서로의 자리를 엇바꾸며

날렵하게 달려들었다.

옥영자를 꼼짝없이 가운데 몰아넣고 전후좌우로 휩싸며 마구 달려 들어왔다.

미처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는 장법이었다.

옥영자는 꼼작할 수 없었다.

네 승려는 더욱 기세등등해 졌다.

그들의 선장은 급기야 하나의 광막(光幕)을 이루어 옥영자의 공격을

완전히 봉쇄해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옥영자가 위태로운 순간!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혜진자가 장검을 휘둘러 풍뇌교격(風雷交擊)의 수법을 전개하면서

질풍처럼 달려들면서 재빠르게 두 승려의 선장을 막아냈다.

바람에 네 승려의 장막은 흩어지고 두 패로 나뉘어 밀려 나고 말았다.

그리하여 옥영자는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동시에 그 여세를 몰아 한번 크게 호령하면서 장검으로 연달아 세 번을 치고 들어가자

마치 노 한 용이 날뛰는 것 같았다.

연이은 날카로운 세수(三手)로 드디어 승려들은 밀리고 밀려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 네 명의 승려들은 그래도 과거 이름 있는 일대(一代) 제자들과 어깨를 같이하는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제각기 삼십년 이상이나 무예의 심후한 공력을 쌓은 자들이었다.

 때문에 바로 대각사에서는 세 사람의 장로를 제외하고는 무공과 신분이 장로 다음 가는

높은 자들이었다.

이름만 보아도 이들을 존경하는 뜻에서 한일자(一)로 이름을 지었다.

 

즉 일풍(一風), 일청(一淸), 일월(一月), 일명(一明), 일운(一雲), 일뢰(一雷), 일전(一電),

일선(一仙)로 불리워지고 그 중에서 일명 대사(一明大師)는 세 장로에게 반(反)하다가

문하에서 축출 당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일풍, 일청, 일월은 더욱 심후한 무공이 있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옥영자와 혜진자 두 사람과 싸우는 네 승려는

일월, 일뢰, 일전, 일선 사대 제자들이었던 것이다.

 

  혜진자가 느닷없이 뛰쳐나와 일전과 일선 두 승려를 떠맡고 맞붙어 싸우자

옥영자도 마음 놓고 일월과 일뇌 두 승려를 상대했다.

검으로 찌르고 베고 손으로 후려치는 그 기세가 얼마나 당당하던지

두 승려는 갈팡질팡 반격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쩔쩔매었다.

혜진자도 다른 두 승려와 어울려 십여 합을 교환했으나 쉽사리 승부가 나지 않았다.

옥영자가 필살의 일격을 가하려던 바로 그 때였다! 이 어찌된 일인가?

 

느닷없이 우렁찬 고함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것은 밖으로부터 지객승 일청과 또 다른 청의승이 선장을 휘둘러

일진광풍을 몰아세우며 달려와 옥영자의 뒷등으로 달려드는 것이었다.

이때 옆에서 지켜보던 양몽환은 크게 놀랐다.

그러나 벌써부터 정기를 가다듬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던 양몽환이었다.

두 승려가 밖에서부터 뛰어들어 옥영자에게 덮치자

즉각 장검을 봉아 들고 옥녀투사(玉女投射)의 수법을 전개하면서

그들의 앞을 막고 나섰다.

 

일청과 같이 뛰어 들어 온 청의승은 각생전(覺生殷)을 책임지고 있는

일월이라는 승려로서 이 두 승려의 공력은 다른 네 승려보다

비할 바 없이 높은 자들이었다.

양몽환이 장검을 휘두르며 막고 나서자 일청은 선장으로 후려쳤다.

그러자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양몽환의 칼이 튀었다.

순간적인 일이었다. 양몽환은 불현듯 뒤로 물러났다.

단 한 수로 상대방의 실력이 자기보다 월등하다는 것을 즉시 깨달았다.

양몽환은 그 같은 술법으로 더 이상 맞붙었다가는 십 합도 못 싸워

패하게 될 것임을 짐작하고 즉각 주약란이 전수하여준

오행미종보(五行迷縱步)의 경신술로 바꾸어 두 승려와 맞붙게 되었다.

돌연 왼 쪽에서 오른 쪽으로, 오른 쪽에서 왼쪽으로 뛰었는가 하면

엎드려 있었고 엎드려 있는가 하면 벌써 몸은 공중에 높이 날고 있었다. 

그림자처럼 홀연히 사라졌다가 질풍처럼 사납게 달려들었다.

일청과 일월 두 승려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도대체 양몽환의 실체를 볼 수도 없었다.

다만 두 승려는 허공으로 선장을 휘두를 뿐이었다.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맴도는 승려들은 머리 속까지 어지러웠다.

옥영자와 싸우는 일운과 일뢰 두 승려보다 더 낭패된 꼴이었다.

온 정신을 차리고 손에 땀을 쥐고 보고 있던 하림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처음 같아서는 그 당장에 양몽환이 박살날 것만 같아 얼마나 마음을 조였는지 몰랐다.

그러나 곧이어 형세가 일변되어 두 승려가 맴도는 꼴을 보고는

지금 어떠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손뼉을 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야! 오빠 훌륭해요. 두 중은 헛손질만 하고 있어요. 빨리 처치하세요!」

 

옥영자는 하림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불현듯 양몽환을 바라보았다.

과연 양몽환은 기기묘묘한 신법으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것이

일정한 변화가 있을 뿐더러 두 승려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어놓고

공격하는 것이 결코 그 수범이 곤륜파의 신법은 아니었다.

순간, 혜진자는 궁금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짧은 순간!

한 줄기의 날카로운 바람이 왼 쪽 어깨를 스치는 것이었다.

 

「아차!」

 

  혜진자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동시에 정신을 가다듬었다. 재차 날아온 선장의 일격을 피한 혜진자는

맹렬한 공격을 다시 퍼부었다.

순간의 틈을 노리고 달려들던 두 승려는 멈칫했다.

양몽환은 일청과 일월 두 승려를 오행미종보법으로 공격하고 있고

일운과 일뢰 두 승려는 옥영자의 칼바람에 눌리고 다만 일전과 일선

두 승려와 싸우는 혜진자만이 승부가 쉽게 나지 않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승부는 명백한 것이었다.

  돌연 전각의 한 모퉁이에서

 

「쓸모없는 것들! 여섯 놈들이 세 놈을 당하지 못한단 말이야! 나한테 맡기고 물러가라!」

 

하는 고함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리는 마치 벽력과 같아 천정의 대들보까지 울리는 바람에

모두 손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청의 승려들은 일제히 대전 입구를 막아섰다.

그곳에 나타난 사람은 조금 전에 감쪽같이 사라졌던 철미륵 영해였다.

소와 같이 뒤룩한 몸집을 어기적거리며 대전 안을 가로질러 천천히 다가왔다.

그 얼굴은 노기에 살점이 후들거렸고 눈은 가로 찢어져 불길을 토하는 듯

한 것이 흉측하기가 그지없었다.

 

옥영자는 이들 대각사의 승려들과 벌써 두 번째 싸움을 통하여

대각사 승려들의 무공이 비범한 것을 십분 알고도 남았다.

그런데 그들을 거느리는 대각사 장로인 영해 화상이니

그 무예나 공력이 필시 뛰어나리라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옥영자도 더욱 정기로 몸을 가다듬어 만반의 태세를 차리고 대기했다.

그러자 영해 화상은 다섯 걸음 앞에서 우뚝 멎고 냉소를 터뜨렸다.

 

「도장의 검법이 제법인 것 같으니 소승이 가르침을 받고자하오!」

 

말이 떨어지자마자 한 걸음을 앞으로 내디디면서 느닷없이 일장을 후려쳐 왔다.

순간 옥영자는 몸을 누이는 듯 하면서 장검을 휘둘렀다.

영해는 보기에는 극히 둔해 보였지만 한 번 움직이자

그 동작은 상상 밖으로 날렵하였다.

일장을 벼락처럼 후려치고는 어느 틈에 왼쪽 다리를 빙글 돌리면서 몇 걸음 물러섰다.

옥영자는 영풍단초(迎風斷草)의 검법으로 맞섰다.

영해는 양 손과 발길로 장풍을 일으켜 순식간에 네 번을 갈겼다.

이때마다 그 장풍은 더 거세였고 휘몰아쳐 오는 위력은 더욱 맹렬하였다.

옥영자는 장검 끝에 진기를 집중하고는 은색 무지개를 그리듯 원을 그리며

연달아 네 장풍을 옆으로 빗나가게 했다.

동시에 재빨리 뛰어 들어가 계속해서 세 번을 찔렀다.

옥영자의 날쌘 칼끝도 역시 철미륵 영해의 장풍에 걸려 빗나갔다.

피차간에 찌르고 받기를 몇 번 일진일퇴의 싸움이었다.

옥영자는 새삼 철미륵 영해의 공력이 놀라운 데에 섬뜩한 마음이 들었다.

섣불리 공격하니 보다는 서서히 공력을 가다듬어 필살의 일격을 노리기로 했다.

  그러 자 영해도 공격을 멈추었다.

 

「곤륜파의 장문인이라 과연 비범하오.

어디 다시 한 번 받아 보시오!」

 

하고는 곧장 앞으로 달려들었다.

옥영자는 그 즉시 장검을 비폭유천(飛瀑流泉)으로 영해의 왼쪽 가슴을 찔러 들어갔다.

이 수법은 다음의 도전음양(倒轉陰陽)수법을 전개하여 상대방이 피하기만 하면

꼼짝없이 도전음양 법에 걸려 상대방의 허리를 후려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해는 피하지 않고 맹렬히 왼 손을 번쩍 들어 검을 후려치는 동시에

오른 손으로 직묘천문(直卯天門)으로 옥영자의 머리에 장력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이 일장이야 말로 영해의 내공력을 총 집중시킨 것으로 맹렬하기 비할 바 없었다.

옥영자는 부득이 검을 거두어들이는 동시에 황급히 일곱 자나 훌쩍 물러났다.

그러자 영해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바싹 앞으로 다가서며

번갈아 두 손의 장풍을 날려 순시(瞬時)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옥영자 역시 검 끝에 진기를 총 집중시키고는 맹렬히 휘두르며 막아냈다.

옥영자의 칼에서 번쩍이는 은색 무지개 빛과 영해의 장풍으로

대전의 커다란 촛불마저 몸부림쳤다.

잠력(潛力)과 잠력의 엄청난 대결이었다.

표면으로는 두 사람이 각각 절묘한 수법으로 상대방을 누르고 공격 하는 듯인 보였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무서운 싸움이었다.

모든 공력을 재빠른 일거수일투족에 집중시켜 싸우고 있기 때문에 찰나적으로

단 일격에 쓰러뜨리거나 쓰러지거나 하는 살기를 품은 처절한 것이었다.

약 십 오합이 지났을까? 옥영자는 점차 감당할 수 없음을 느꼈다.

영해의 잠력이 더욱 강력해지고 괴이한 수법으로 바뀌어갔다.

그 반대로 옥영자의 검광은 차츰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옥영자의 내공력의 진기가 점점 소묘하여 기진맥진하여 갔다.

어느새 철미륵 영해의 일장에 쓰러질런지 모를 절박한 위험에 놓여지게 된 것이다.

이때 옆에서 냉정하게 보고 섰던 혜진자는 위급한 옥영자를 구하려고 몸을 날리려는 순간,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울렸다.

 

그와 함께!

 

신음 소리가 나자 일시에 싸움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이 어찌된 영문인가?

문 앞을 막고 있던 여섯 승려중의 두 승려가 암기에 맞고 쓰러졌고

촛불도 반이나 암기에 꺼진 가운데 밖에서 세 사람의 그림자가 번개같이

대전 안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놀라운 변고였다. 모든 대전 안의 사람들이 느닷없이 뛰어든 세 사람을 쏘아 보았다.

그러자 철미륵 영해도 정신 팔려 더 공격하려고 하지 않았다.

천천히 다가온 세 사람은 우뚝! 멈춰 섰다.

유심히 바라보던 옥영자는 깜짝 놀랐다.

이것은 또 어찌된 영문이란 말인가!

그 세 사람 중 가운데가 바로 대사형 일양자가 아닌가!

그의 오른 쪽은 자비스러운 모습이 함빡 풍기는 등인대사가 철선장을 들고 서 있었다.

그러나 대사의 얼굴은 매우 수척했다.

그리고 왼 쪽에는 미소년으로 분장한 주약란이었다.

이들 세 사람이 갑자기 이곳에 나타나자

먼저 양몽환에 일양자 앞에 달려 나아가 엎드리고

하림도 미친 듯이 곧장 등인대사에게로 달려갔다.

그러 자 옥영자는 한 손을 들어 세우고 약간 허리를 굽히며 예를 올렸다.

 

「대사형 그간 안녕하시오?」

 

하자 혜진자도 눈물이 솟구치는 얼굴을 숙이며 예를 올렸다.

 

「대사형, 그리고 노대사께서 모두 저 때문에 고생을 하셨으니

이혜진자는 죄송스러워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

 

  일양자는 옥영자와 혜진자에게 예를 하며 머리를 숙였다.

「장문인에게 문안드리오. 수개 월 전 문중 계율을 어긴바 있소이다.

대각사를 나가는 즉시 벌을 받겠습니다.」

 

  옥영자는 담담히 웃으며

 

「대사형의 말씀은 너무 과분합니다.

사매로부터 부득이한 일인 것을 모두 들어 알고 있는데

어찌 사형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도리어 머리를 숙였다.

 

  일양자도 또 고개를 숙이며

 

「장문인께서 너그러이 용서하시니 이 몸은 더욱 부끄럽소.

우선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하고는 한걸음 물러서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양몽환을 일으키며 혜진자를 보고 기쁜 듯이 미소를 띠었다.

  이들이 이와 같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촛불은

다시 나타난 두 소사미(小沙彌)에 의해 켜지고

신불 영원과 고불 영공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영원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나무아미타불 두 분이 무사히 빠져나온 것을 축하하오.」

 

  그러자 일양자는 냉소를 터뜨렸다.

 

「지하실쯤으로 우리를 영원히 가둘 수 있으리라 생각했소?」

 

하고 쏘아붙이자 영원은 히죽이 웃으며

 

「말씀이 너무 지나칩니다.

불과 몇 개의 석난(石欄)과 철 기둥으로 어찌 두 분을 가둘 수 있겠소.」

 

하는데 영공의 차가운 어조가 터졌다.

 

「어느 분이 지하실 문을 열고 두 분을 구해 드렸는지

이 부처님이 알고 싶소.」

 

그러자 주약란이 한걸음 나섰다.

 

「내가 한 짓이오!」

 

서슴지 않고 앞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영해가 노려보며 눈썹을 치켜올리자 영공이 가로 막고 나섰다.

 

「여러분들이 오늘 대각사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순간! 얼굴이 갑자기 험악해 지면서 하림을 주시하고는 느닷없이

소맷자락을 훌렁하자 강렬한 바람이 소매 끝에서 일어났다.

촛불이 부르르 떨며 대전 안이 어두워지는 순간,

영해 옆에 섰던 두 소사미가 훌쩍 몸을 날려 하림에게 달려들었다.

 

두 소사미는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민첩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림의 옆에 있던 등인대사가 마주 달려 나오는 순간!

어느새 주약란의 양손에서 번쩍하고 휘둘러진 장풍에 두 소사미는

일장씩 맞고 날카롭게 부르짖으며 물러났다.

촛불이 흔들리며 대전 안을 밝혀주었다.

여전히 두 패의 인물들은 초긴장된 분위기에서 서로 노려보고 있었다.

한편 곤륜 삼자와 등인대사는 한결같이 진기를 북돋아 공력을 가다듬고는

적의 일격을 막으려고 도사리고 있었다.

영해와 영공도 이미 일격을 가하려고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다만 주약란과 신불 영원만이 예사로이 서 있으나 그들의 얼굴도 한결같이 엄숙하였다.

 

이때 두 소사미는 주약란의 일장을 맞고 쓰러지듯 영원에게로 물러섰다.

두 소사미는 영원에게 극진한 총애를 받는 몸으로 이들의 무공 역시 영원으로부터

직접 전수 받은 것이다.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두 소사미가 주약란에게 일장씩 맞고 혼 줄이 났으니

영원은 비록 내색은 안 했지 만 속으로는 극도로 분노하고 있었다.

영원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며 두 손바닥을 맞붙이고는 비벼대기 시작했다.

독기가 가득 찬 눈으로 주약란을 노려본다.

 

곤륜 삼자는 즉각 영원이 공력을 손바닥에 집중시키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행여 주약란이 그의 일격을 당하지 못할까봐 천천히 그녀의 옆으로 몸을 옮겨 왔다.

서로가 서로를 노리던 그때였다!

 

홀연!

 

영원이 일성을 대갈하며 오른 손을 후려치자 한줄기의 강렬하고도

웅후한 기운이 그들에게로 닥쳐왔다.

곤륜 삼자도 그 즉시왼손을 피며 장풍을 일으켜 마주쳤다.

그러자 영해와 영공도 때를 놓치지 않고 양 손에 공력을 쏟으며 옆에서 후려쳤다.

요란하고도 강렬한 장풍이었다.

그때 등인대사가 벼락같이 소리 지르며 필생의 공력을 모아 후려쳤다.

몇 줄기 세찬 장풍이 부딪치자 회오리바람처럼 선풍이 일어나고

커다란 스물 네 자루의 소나무 기둥의 촛불이 일시에 절반이 꺼지고

남은 일곱 여덟 자루의 불꽃도 가늘게 펄럭였다.

이토록 심후한 내공력으로서 생사를 걸고 승부를 가릴 때는

조금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었다.

오직 수 십여 년 간 쌓아온 공력만이 판가름 하는 것이었다.

곤륜 삼자와 등인대사는 대각사의 세 장로가 합친 장력과 부딪치자

이상스럽게 심신(心身)이 울렁거렸다.

더욱이 영원이 후려쳐 온 장력은 매섭고 세차면서도

은연중 부드러운 기운이 겹쳐 밀려 왔다.

성난 파도와 같이 닥쳐온 거센 장력은 곤륜삼자의 내공강력(內功强力)으로

밀어버렸지만 여파처럼 밀려온 음산한 한기는 미처 막지 못해 몸에 스며들고 말았다.

그 모양을 보고 대뜸 알아차린 일양자는 고함을 질렀다.

 

「물러나시오!」

 

동시에 양몽환과 하림이 먼저 뛰어 대전 밖으로 나가고

곧이어 등인대사와 곤륜 삼자 등이 뛰쳐나왔다.

그러자 영원의 너털웃음을 웃으며 떠드는 소리가 들려 왔다.

 

「가시려고?」

 

하면서 말도 채 끝나기 전에 영원은 대전 밖으로 뛰어 나오고 있었다.

 

주약란은 급히 양몽환의 검을 뺏어 들며 소리쳤다.

 

「저 화상의 장력이 음산한 것으로 보아 극독의 재간을 지니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다시 한번 독이 들어 있는 일장을 맞았다가는 틀림없이 우리들 중에 누가 상할 터이니

여러분들은 먼저 이곳을 피하십시오. 제가 한번 막아 보겠습니다.」

 

간곡히 하는 말이었지만 그 말 속에는 어딘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침범하지 못할 위엄이 있어 곤륜 삼자는 대답할 바를 몰랐다.

그러자 주약란은 다시 다급한 어조로 또 말했다.

 

「여러분이 저의 충고를 듣지 않으시면 누구라도 상처를 입을 거예요.

그때 가서 후회하여도 소용없습니다.」

 

이렇게까지 말하자 더 어쩔 수가 없었다.

일양자는 한 번 깊이 읍하고는 칼을 휘둘러 길을 뚫고 먼저 앞장을 서서 뛰어 나갔다.

그 뒤를 이어 혜진자, 양몽환, 하림이 따르고 옥영자와 등인대사는

뒤에서 쫓는 자를 막으며 달려 나갔다.

옆에서 조무래기 승려들이 악착같이 달려들었으나 일양자가 휘두르는 칼에

상처만 입고 혼비백산해서 우왕좌왕 할 뿐이었다.

이때 벌써 철미륵 영해와 고불 영공도 모두 대전 안에서 밖으로 뛰어 나와 있었다.

그러다  일양자가 자기 제자들을 무찌르고 절 밖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고는 노할 대로 노했다.

제각기 고함을 터뜨리며 몸을 삼장(三丈)이나 치솟더니 발보등공(拔步登空)의 절묘한

경신술로 쫓아가려고 했다.

그와 같은 경우를 대비하고 있던 주약란은 동시에 전신의 진기를 운집(運集)하고

하늘높이 껑충 치솟아 날카로운 소리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검과 몸이 혼연 일체가 되어 한 줄기의 은빛처럼 두 승려에게 부딪쳐 갔다.

이와 같은 검법은 검술 가운데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검술(劍術)로서 십 장 이내의 적을 겨누는 대로 해칠 수 있으나 주약란은

아직 공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겨우 검과 일치되는 정도 밖에는 구사할 수 없었다.

그 정도나마 검술의 검법은 역시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눈부시고 밝은 빛에 휩싸인 주약란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단지 차가운 기운이 번쩍이고 칼끝에서 휘몰아치는 광풍이 몰아칠 뿐이었다.

두 승려는 미처 손쓸 들도 없었다. 얼결에 일장의 장풍으로 후려치면서

곧장 땅 위에 내려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일장 넘어 뒤로 물러나고야 말았다.

  아직 공력이 낮은 주약란도 두 승려의 장력이 앞을 막자

더 나갈 수 없어 역시 땅에 떨어졌다.

곧이어 그녀의 몸을 에워싸듯 했던 은빛 무지개도 봄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 검술은 상당히 공력을 소모시키는 것으로 땅에 내려선 주약란은 몹시 숨이 가빴다.

그녀는 기력을 재빨리 모으고는 운기조식(運氣調息)을 취하는 것이었다.

  이 동안 신불 영원은 눈을 깜짝하지 않고 사뭇 놀랍다는 듯이

주약란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냉랭한 어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나이가 어린 것이 제법 검술로 사람을 상하게 할 줄 알다니!」

 

하고는 돌연 험악한 어조로 변했다.

 

「너의 그 경술은 어디서 배웠느냐?」

 

하고 외쳤다. 주약란은 태연히 웃으며 쏘아붙였다.

 

「어디서 배웠던 당신은 상관할 바 없소!」

 

그 말에 영원은 성을 내는 듯싶다가 갑자기 일장을 후려쳐 왔다.

그는 일부러 말을 시키고는 그 사이 암암리에 전신의 내공력을 집중시켰던 것이었다.

피할 틈도 없었다.

미처 대피할 겨를도 없이 주약란은 진기의 힘을 모아 왼 손으로 맞받아 쳤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있는 힘을 다하여 힘껏 맞받아 쳤어도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온 몸에 한기가 스며들지 않는가!

불길한 예감이 번개같이 스쳐갔다.

얼떨결에 자기도 모르게 후려친 장풍을 거두어들이는 순간,

뚜렷한 한 가닥의 음한(陰寒)의 기운이 속속들이 스며들어왔다.

분명히 상처를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황망히 운기하여 내부(內部)를 보호하는 동시에

요혈(要穴)을 폐쇄하고 몸 안에 스며드는 한기(寒氣)를 막으려고 했다.

그러자 영원이 통쾌하게 웃으며 조롱하는 것이었다.

 

「너는 이미 나의 일장을 피하지 못하고 태음기(太陰氣)에 상처를 입었어!

네 아무리 대단한 내공력을 지였다 해도 칠 일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

살 길은 단 하나! 네가 쓰는 검술의 비법을 나에게 알려주고

그 대신 치료를 받는 것뿐이야! 어때?」

 

주약란은 코웃음을 치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몸을 돌리는 듯 하면서

즉시 힘껏 뛰어 올라 수 장 밖으로 달려 그곳을 벗어 나왔다.

그때 일양자 일행은 개미떼 같이 몰려드는 조무래기 중들을

 헤치고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철미륵 영해와 고불 영공도 부랴부랴 고함치며

몸을 날려 쫓아가는 동시에 여섯 명의 황의 승려가

각자 동발과 철필을 들고는 한일자로 서서 주약란의 퇴로를 막았다.

  주약란은 비록 영원의 지독한 태음기공(太陰氣功)에 내부(內部)를 상하였지만

워낙 공력이 정심(精深)한 까닭에 어느 정도 진기를 돋워 감당할 수 있었다.

주약란은 최후의 온 정기를 집중시켰다. 순간!

날카로운 기합소리와 함께 혼연 일체가 되어 잠깐 사이에 주약란은 간 곳이 없고

은빛 무지개만 가득했다.

  여섯 명의 황의승은 일제히 동발과 철필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무슨 소용 있으랴!

은빛이 번쩍이고 칼바람이 성난 듯 울자 동발과 철필은

하늘 높이 튕기어 오르고 눈 깜짝할 사이에 두 승려의 팔과 다리가

무참히 잘려나가며 춤을 추었다.

 

  비명과 함께 내뿜는 선혈!

 

  이를 목도한 영해와 영공은 불같이 노했다.

영공은 폭풍같이 달려와 주약란의 등 뒤에 맹렬한 일장을 후려쳤다.

영해도 가로 찢어진 눈을 부라리며 비응박토(飛博博免)의 무술로

위에서 덮쳐 내리며 맹렬한 일장을 갈겼다.

 

  주약란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두 번이나 검술로서 강적과 맞서 보았으나

내부에 깊이 영원의 태음기에 상처를 입은 몸으로는 더 이상 공력을 집중하고

검술을 펼칠 수가 없었다.

재빨리 오른쪽으로 비키면서 영해의 일격을 피하는 동시에 검을 휘둘러

위에서 덮치는 영공의 공격을 막았다.

  주약란은 눈앞이 어질어질 하도록 기진하였다.

그러자 영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래야지!)

 

영해는 숨 돌릴 사이도 주지 않았다.

영해가 다시 일성을 대갈하며 두 손을 번갈아 후려치니

강렬한 장풍이 물밀듯 닥쳐와 주약란의 온 몸을 덮을 기세였다.

주약란은 도저히 그 억센 장력을 충분히 막아 낼 기력이 없었다.

부득이 몸을 피해서 하늘 높이 뛰어 오르자

일장의 장풍이 아슬아슬하게 발밑으로 스쳐 갔다.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謀免)하자 영공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신용현조(神龍現造)의 술수로 왼손을 높이 들어 머리를 노리고

손을 휘둘러 판관번부(判官飜簿)의 술수로 주약란의 오른 쪽 손목을 거머쥐려고 하였다.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주약란의 손에 들린 장검이 기묘한 변화를 일으켰다.

한 줄기 싸늘한 검광이 번갯불처럼 하늘을 가르고 칼바람이 일더니

느닷없이 영공의 현기(玄氣), 장문(掌門), 장대(將臺) 삼대 요혈을 찌르고 들어오지 않는가!

너무나 기묘한 검법이었다.

깜짝 놀란 영공은 생전 처음 당하는 무서운 검법에 눌려 황망히 공세를 거두고

세 걸음이나 뒤로 뛰었다. 아무리 공력이 심후한 영공이라도 그길 밖에는 없었다.

짤막한 시간이었다.

 

주약란이 장검을 휘둘러 바람을 일으키자 그 몸은 공중에 있었고 능공허도(凌空虛渡)의

경신법을 전개하여 땅에 다시 떨어질 때는 십여 장 밖에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순간,

 

몇 번 껑충 껑충 뛰는 가 했는데 이미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다만 달빛어린 밤하늘만 고요할 뿐이었다.

그때 영해와 영공이 단념하지 않고 뒤를 쫓으려는 것을 급히 영원이 막아섰다.

 

「저 젊은이가 세상에 보기 드문 절묘한 재간을 지니고 아직 공력도 남아 있소.

그대로 몇 년 더 쌓는다면 우리들 쯤은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야!

다만 아까 나하고 싸울 때 나의 태음기공에 맞아 한독(寒毒)이 몸에 퍼져

그대로는 일곱 날을 넘기지 못하고 죽을 걸세.

애석한 것은 다만 그 기묘한 경술을 배우지 못하게 된 점이지.」

 

하고 길게 탄식하는 것이 점술을 배우지 못한 것에 매우 억울한 듯 한 모습이었다.

갑자기 그는 고개를 들고 교교한 달을 쳐다보며 미친 듯이 웃었다.

 

「허나 억울할 것은 없어! 그토록 신기한 검술을 알고 있는

그도 나의 태음기공에 상하였으니 절세의 무술을 지닌들 무슨 소용이 있나?  하하하……」

 

너털웃음을 더욱 크게 웃는 꼴이 주약란이 꼭 죽는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며

통쾌히 여기는 모양이었다.

홀연! 너털웃음을 뚝 그친 영원은 금세 음침한 얼굴로 돌변 하더니

달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진 듯 했다.

영원이 극히 괴상한 표정으로 바꾸자 그 영문을 몰라 영해와 영공도 따라 멍해졌다.

이들은 비록 오랫동안 신불 영원과 같이 생활하여 왔지만

아직까지 영원의 성격을 좀처럼 파악 할 수 없었다.

평소에 희로애락을 좀처럼 나타내지 않는 목석같은 염원이 오늘 따라 웃다가

침울하였다가 하며 느닷없이 자기 본심을 드러내자 어쩔 줄을 모르게 된 것이다.

한참 후에야 영원은 정신을 차린 듯 냉정히 영해와 영공을 바라보며 호령했다.

 

「다친 사람들에게 치료를 시킨 뒤 모든 제자들을 동원하여

이틀 이내로 청의 소년의 행방을 탐지하도록 해라.

사로잡는 것이 가장 좋지만 안 되면 죽여도 좋아!」

 

하고는 대전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영(令)이라고 거역하랴!

영원의 명령이 엄하게 떨어지자 즉시 대각사는 안팎으로 아연 긴장하기 시작했다.

영해와 영공은 재빨리 일운, 일뇌 두 승려의 몸에 박힌 무니주(牟尼珠)를 빼고

잡힌 혈도를 풀어 주었다.

곧이어 팔이 잘린 제자를 정실(精室)에 옮기도록 명령하였다.

그 후 절에 있는 모든 一대, 二대, 三대의 승려들을 여러 조(組)로 나누어

주약란의 행방을 찾게 하였다.

동시에 수색용의 커다란 솔개도 일곱 마리를 모두 풀어 놓았다.

대각사가 기르고 있는 커다란 솔개는 모두 수백 년 이상 되는 것으로

그 몸집이 크고 사납기가 한 량 없었다.

영해가 온갖 정력을 다 기울여 아홉 마리를 잡아서는 모두 설삼과 한 알씩을 먹이고

수년 동안 길을 들이기 위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여 훈련시키자

제법 솔개들은 쓸만 했다.

넓은 천지간을 거칠 것 없이 날며 적을 수색하고

혹은 소식을 전하는데 비할 데 없이 민첩했다.

그중에도 세 마리는 사람을 태우고 날을 수 있었다.

그 아홉 마리 중 한 마리는 주약란의 일장에 죽고

또 한 마리는 현옥과 싸우다가 물려 끝내 죽음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한편 대각사 사지(死地)에서 간신히 빠져 나온 주약란은 기진한 원기를 돋우어

산봉우리를 달리고 또 달려 잠시 후에는 곤륜삼자 일행을 따를 수 있었다.

하림이 그녀가 오는 것을 보고 반갑게 쫓아와 손목을 붙잡으며 위로하듯 물었다.

 

「대(黛) 언니 다친 곳은 없어요? 얼마나 저는 걱정을 했는지‥‥.」

 

  주약란은 힘없이 끄덕이며 장검을 양몽환에게 도로 내주었다.

 

「아니, 그러나 중과부적이라 혼자 당할 수가 없어서 우리는 빨리 이곳을 피해야 돼!

그들이 쫓아올는지도 모르니까.」

 

  잠시 후… ,

 

지친 몸들을 쉬고 있던 곤륜 삼자 일행은 그녀의 무예의 공을 높이 우러러 보던 터라

그녀의 다급한 충고를 두말없이 받아들이고 곧 발걸음을 옮겼다.

어스름히 동녘이 밝아 왔다. 밤새도록 달리고 달려 그들은 이미 몇 번이나

산등성이를 넘고 또 넘었다.

 

어느덧 칠팔 십리는 달렸으리라! 하림은 온 몸에 비 오듯 땀을 흘렀다.

양몽환 역시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헐떡이었다.

일양자나 등인대사도 오랫동안 감금생활에 지친 몸이라 이마에는 땀이 배었다.

 

그들은 어느 평탄한 잔디밭에 이르자 제각기 쓰러지며 휴식을 취했다.

그들은 모두 지난  밤의 싸움에 공력은 소진되고

또한 밤새도록 달려오므로서 지칠 대로 지쳐 지그시 눈을 감고

운공조식(運功調息)하기에 힘썼다.

 

찬란한 태양은 백설이 덮인 산 위에 솟아올라 빛나고 있었다.

밤이슬에 촉촉이 젖은 풀은 생기를 띠웠고 노을에 물든 산천경개는 신비스럽도록 아름다웠다.

그때 홀연! 머리 위에서

 

「꺄룩!」

 

  학의 울음소리가 고요한 아침의 분위기를 깨뜨렸다.

일양자등이 놀래 눈을 떠 바라보니

날씬한 백학이 주약란 옆에 사뿐히 내려와 앉는 것이었다.

머리의 벼슬은 불꽃 같이 붉었고 신선 같은 위엄이 풍겼다.

햇빛에 비치는 주약란의 얼굴도 또한 언제나 혈색이 좋아 불그레하니 탐스러웠던 것이다.

그렇던 것이 지금은 뺨은 여위고 안색이 창백했다.

언뜻 보니 이슬 같은 눈물마저 그녀의 뺨을 타고 내리고 있었다.

꼭 다문 입술은 파르르 떨렸고 양미간을 찌푸리고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병색이 완연했다.

심한 고통을 참느라고 무한히 애쓰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일양자는 놀란 얼굴로 혜진자에게 다가갔다.

 

「적과 싸우다 몹시 다친 모양이오! 사매가 어서 가보시오, 상처가 대단한 모양이오!」

 

그 말에 모든 사람이 놀라 뒤돌아보았다.

혜진자와 양몽환 그리고 하림이 달려가서 급히 부축했다.

과연 주약란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모두들 아연 실색했다.

하림이 조용히 무릎을 꿇고 부축하며 손수건을 꺼내어 흐르는 눈물을 살며시 닦아 주었다.

송송 솟아나는 땀방울도 정성스럽게 닦아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도울 바를 몰라 주약란을 잡은 채 쩔쩔 맸다.

그러나 일양자만은 초초하고 급한 중에도 침착성을 잃지 않은 듯 나직이 꾸짖었다.

 

「림아! 그분의 운공(運功)에 방해되지 않도록 물러 나거라!」

 

  하림이 몸을 일으켜 양몽환의 옆에 서면서 걱정스럽게 물었다.

 

「오빠, 대 언니의 상처가 괜찮을까요?」

 

  그러자 양몽환도 침울하게 대답했다.

 

「글쎄 괜찮겠지…… 곧 나을 거야.」

 

하자 주약란은 양몽환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짧은 순간!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주약란은 담담히 웃으며 다시 힘없이 눈을 감았다.

  비록 짤막한 순간 서로 눈이 마주쳤지만

그 눈동자에는 한없는 애정이 담겨 있었고 말 못할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양몽환의 가슴도 메어질듯 아팠다.

 

하림은 깊은 수심에 잠겨 애처롭게 눈물만을 흘리고 서 있었다.

초조와 불안에 떠는 시간이 일분, 이분 흘러갔다.

일양자나 양몽환은 그 시간이 하루의 긴 시간과 같이 안타깝고 지루하고 또 고통스러웠다.

얼마 후, 주약란은 눈을 뜨고 그 창백한 얼굴에 가냘픈 미소를 띠웠다.

그리고는 소매로 땀방울을 씻으며 힘없이 말했다.

 

「사실은 간밤 싸움에 대각사 노승의 태음장력에 몸을 상했습니다.

그 한독(寒毒)이 점점 내부에 침입하여 지금은 삼양(三陽) 삼음(三陰)의 육혈이

모두 한독에 상처를 입고 말았는가 봅니다.

아마 이대로 팔일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혜진자가 침울히 한숨을 쉬며

 

「모두가 우리들을 구하기 위해 강적과 혼자 맞서다가 이러한 중상을 입게 되었으니

우리 곤륜파의 二대에 걸친 제자들이 죽어도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구려.」

 

하며 눈물을 흘렀다.

 

그때 옥영자가 분함을 참지 못해 장검을 빼어 들고 소리쳤다.

 

「곤륜 삼자가 대각사의 승려들을 모두 죽여주겠소.

소저의 은혜를 감지 못하고 또 원수마저 갚지 못한다면 무슨 얼굴로 소저를 대하며

세상 사람을 대하겠소!」

 

  그러나 주약란은 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오! 대각사의 세 승려는 제각기 독특한 절기(絶技)를 지니고 있어요!

죽기를 무릅쓴다고 해도 보람 없이 목숨만 버릴 뿐 저의원수는 갚지 못할 거예요.」

 

  그러나 옥영자는 분함을 참지 못했다.

 

「그런들 은혜를 보답하고 의로움에 죽는데 무슨 후한이 있겠소?」

 

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적을 이기지 못함을 잘 알면서 목숨을 가볍게 버릴 필요는 없어요.」

 

  옥영자가 얼굴을 붉히고 더 이상 고집을 못 피우자 일양자가 입을 열었다.

 

「주소저의 무공이 우리보다 뛰어나고 정묘하고 해박한데도 태음장력에 상했으니

감히 우리가 대적하기에는 어려운 노릇이겠죠.

어쨌든 이 복수는 천천히 도모하기로 하고 목전의 과제는

시각을 다투는 위급한 소저의 내상을 치료해야 하는 것이오!

그런데 대각사의 설삼과가 기사회생의 효험이 있다고 하는데

과연 그 설삼과라면 주소저의 내상을 치료 할 수 있는지요?」

 

  주약란은 양몽환을 바라보고 뜻있게 웃었다.

 

「요 며칠 전에 대각사의 설상과가 벌써 한 알 도적맞았기 때문에 방비가 더 엄할 거예요.

더구나 태음장의 한독은 공력에 섞어 후려치는 것으로 상대방의 강력(强力)을

 따라 혈맥 안으로 침입하는 것이어선 설삼과로 치료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에요.」

 

  양몽환은 실망한 듯 침울히 중얼거렸다.

 

「그럼 주소저 내상은 결코 치료할 수 없다는 말씀이오?」

 

  양몽환이 그토록 깊은 관심을 보이는 태도에 주약란은 기쁜 듯이 웃었다.

눈동자에는 순간적으로 기쁜 빛이 반짝 했다.

 

「내가 살 길은 단 한가지 뿐 이에요.

아주 독특한 내공력을 지닌 사람이 나의 삼양, 삼음의 육맥을 통하게 하고

칠일만 정양하면 완전히 나을 수 있어요!」

 

  이 말에 곤륜 삼자는 물론 모두가 실망한 낯빛을 지었다.

삼양 삼음의 육맥은 인체 내의 맥혈(脈穴)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혈맥을 통하게 하는 수법으로는 안 되고

독특하고도 심오한 내공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한참 후 일양자가 아주 낙방한 듯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빈도들은 능력이 없으니 주소저께서 그러한 분이 지금 어디에 계신지 말씀해 주시오.

빈도들이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그 사람을 모셔와 주소저의 내상을 치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약란은 웃음을 띠고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이 세상에 꼭 한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수 천리 떨어진 곳에 계실 뿐만 아니라

천성이 고고해서 낯선 사람과는 절대 만나지 않으십니다.

비록 여러분이 도와주시려고 해도 뜻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하는 그녀의 말이 만약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으면 곤륜삼자는 결코 참지 못했을 것이다.   

곤륜삼자는 단지 그녀의 신묘한 절기를 보았고 또 모두가 그녀의 은혜를 입은 바

비록 그녀의 언사가 지나친 점이 있으나 불쾌함을 참고 묵묵히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주약란은 다시 말을 이었다.

 

「그 분은 바로 저의 은사에요.」

 

했다.

 

  이 말이 떨어지자 모두 놀란 빛으로 그녀의 얼굴을 주시했다.

어떠한 강호 기인이기에 이와 같은 제자를 길렀을까 하고

그 이름이나마 들어 보자는 듯 귀를 기울였다.

 

  주약란은 다시

 

「저의 스승은 멀리 절남땅 괄창산에 계십니다.

이곳에서는 만리(萬里) 길이 넘어요. 온종일 공력을 기울여 천리를 간다 해도 열흘이 걸려요.

가는 도중에 저는 결국 죽고 말 거예요.」

 

하고 힘없이 웃으며 양몽환을 바라보았다.

 

  일양자는 오랫동안 강호를 두루 돌아다닌 경험으로 은근히 짐작되는 바가 있었다.

그것은 주약란이 죽음을 앞에 놓고도 저토록 침착하고 냉정하니

이는 필시 어떤 방법을 알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좀처럼 말하지 않으려는 듯한 주약란의 표정에서는 일양자도 묵묵히 섰을 뿐

그 방법이 무엇인지 알 재간이 없었다.

 

  그러자 퍼뜩!

 

  일양자의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머리를 들고 얌전히 서 있는 큰 백학이었다.

그는 고제서야 마음이 놓였다.

이처럼 거대하고 신통한 백학이라면 주약란을 태우고 능히 칠일 이내에

괄창산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때 혜진자도 백학에게 눈을 돌렸다.

혜진자도 역시 그와 같은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지난번 괄창산에서 묵인 철갑사의 뱀 가죽을 빼앗기던 일과

자기가 전신의 공력을 집중해서 백학을 쳤으나 백학은 아무렇지도 않던 일을 생각해 냈다.

다시 주약란의 이마에서는 땀이 방울방울 솟아 흐르고 있었다.

살며시 땀을 밖아 주며 지난 일을 생각했다.

요주의 여인숙에서 자기의 뱀독을 치료하여 주던 것이 떠오르자 만감이 엇갈렸다.

그때 갑자기 하림의 고함이 터졌다.

 

「오빠! 저것 보세요!」

 

하림이 손을 가리키는 하늘에는 한 마리의 큰 솔개가 서 쪽에서

엄청나게 큰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고 있었다.

 

「오빠! 저 새가 바로 대각사의 화상들이 나를 잡아갈 때 태우고 간 흉측한 새와 똑같아요!」

 

  그러자 주약란이 옥수로 손짓하자

얌전하게 옆에 있던 백학이 사나운 날개로 바람을 날리며

하늘로 높이 솟구쳐 유성처럼 올라갔다.

백학이 검은 솔개와 마주 치는 순간!

단 한번 쪼았는가 했는데 거대한 솔개가 직선으로 떨어져 다리를 쪽 뻗는 것 이었다.

그리고 백학은 유유히 허공을 들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주약란은 이마를 잔뜩 찌푸리고 걱정했다.

 

「대각사의 커다란 솔개들은 심히 영리한 것이에요.

이 솔개가 우리를 발견하였으니 인제 곧 대각사의 승려들이 나타나겠죠.

 더 이상 이곳에 지체할 수가 없군요. 빨리 떠나야겠습니다.」

  일양자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럼 주소저는 괄창산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아야 갰군요.」

 

  주약란이 웃으며

 

「현옥을 타고가면 삼일 내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일양자는 잠깐 생각하더니 앞으로 나섰다.

 

「주소저의 상처가 몹시 중대한데 먼 길에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내 생각으로는 몽환을 딸려 보내 돌보게 할까 하는데 두 사람이

저 백학의 등에 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그러나 주약란은 하림을 바라보며 주저할 뿐 얼른 대답을 못했다.

그때 하림은 얼굴에 가득히 웃음을 머금고는 주약란에게로 다가왔다.

 

「대언니! 사실은 나도 같이 따라가고 싶지만 세 사람은 타지 못하겠죠?

오빠는 무슨 일이라도 나보다 월등해서 언니를 잘 돌볼 거예요.

언니의 상처가 났거든 현옥에 태워서 곤륜산으로 보내주세요.」

 

하고는 양몽환에게 다가갔다.

 

「오빠는 언니를 잘 돌봐 주세요.

나는 사백부님들과 곤륜산에 먼저 가서 기다리겠어요.」

 

그러자 양몽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약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주소서, 현옥은 두 사람이 타도 날을 수 있을까요?」

 

  주약란도 웃으며 하림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일변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들뜬 것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백학의 잔등에 천천히 올라타고는

 

「타세요.」

 

했다.

 

양몽환이 백학에 오르자 백학은 커다간 날개를 한번 펄럭이고는

 

하늘로 높이 치솟아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사라지는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림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백학이 완전히 사라지자 혜진자에게로 다가오는 그녀의 표정은 우는 듯한 서글픈 표정이었다.

등인대사가 그 모습을 바라보고는 측은한 마음이 들어 염려된 듯 눈살을 찌푸리며 다가왔다

 

「림아, 괴로워하지 마라.」

 

  하림은 수줍은 듯 머리를 숙였다.

 

「 괜찮아요. 오빠는 대 언니가 낫는 대로 꼭 저를 찾아 올 거예요.」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우는 듯 웃는 듯 착잡한 표정이었다.

등인대사가 가볍게 탄식하며 무거운 표정으로 일양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하다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바로 그때!

 

「획!」

 

바람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 왔다.

 

그리고 잠시 후, 서쪽 산굽이에서 다섯 명의 승려가 나타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질풍같이 달려와서는 씨근덕거리며 그들 앞에 와서 우뚝 서는 것이었다.

앞장을 선자는 바로 고불 영공이고 그의 뒤로는 일운, 일뇌, 일전, 일선등 대각사의

일대 제자 승려 네 사람이었다.

그러자 어느 틈에 일양자는 장검을 빼어들고 옥영자를 바라보며 

 

「먼저 소형이 한판 싸워 보겠소.」

 

하고 몸을 가다듬었다.

 

고불 영공은 일양자를 주시하며 줄곧 비웃기만 하고 있었다.

뒤의 네 승려는 은근히 양쪽으로 갈라지며 포위태세를 취했다.

옥영자와 혜진자는 행여나 사형이 불리할까 싶어 제각기 장검을 빼어들고

포위하는 네 승려들을 막고 나섰고 등인대사는 철선장을 비껴들고 하림의 옆에 붙어 섰다.

 

  바로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일양자와 영공은 여섯 자의 거리에 맞섰다. 장검을 비스듬히 치켜들고

눈을 반쯤 감은 채 엇비슷이 서면서 왼손으로는 가슴을 보호하는 만반의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영공은 의외로 연신 비웃기만 할뿐 공격해 오지는 않았다.

이는 본래 고수(高手)가 힘을 다하여 싸우려고 할 때의 상투 수단이었다.

상대방에게 일부러 틈을 주어 은근히 숙이면서 사실은 속으로 공력을 집중하고

상대방의 틈을 노리는 수법이었다.

그러던 차에 또 다시 날카롭고 힘찬 웃음소리가 동쪽에서 들리는 가 했는데

이번에는 철미륵 영해가 일풍, 일청, 일월 세 승려를 거느리고 바람처럼 나타나는 것이었다.

영해가 나타나자 영공은 한층 더 비웃으며 말뿐을 여는 것이었다.

같이 왔던 청의 소년은 어디 갔소?」

 

  일양자는 반쯤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면서 오만하게 웃었다.

 

「그것을 당신이 알아 무엇 하오. 그런 것은 묻지도 마시오.」

 

하고 쏘아붙이고 말았다.

 

  그러자 영공의 얼굴이 갑자기 찌그러지더니

느닷없이 앞으로 달러들면서 두 손을 번갈아 휘둘렀다.

곧이어 강렬한 장풍이 덮쳐왔다.

 

일양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선뜻 옆으로 피하연서 장검으로 영공의 오른 발을 내려쳤다.

그러자 영공은 왼손을 번쩍 들어 장풍을 일으켜 장검을 빗나가게 하였다.

그와 동시에 다시 오른손으로 창운적월(蒼雲摘月)의 술수로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일양자는 장검을 바람처럼 휘둘러 찌르고 또 찔러 연달아 세 번을 찔렀다.

영공도 일양자의 검법이 상당히 날카롭다고 느끼자 또다시 장법을 바꾸어

주사장(朱絲掌)의 기법(奇法)을 쓰면서 일양자의 칼끝을 따라다니며 장풍을 퍼붓자

일양자는 그만 열세로 몰리고 말았다.

 

  영공이 우세를 보이자 영해는 우선 하림을 잡아놓고 보자는 심사인지

번개같이 하림에게로 달려들었다. 이때 등인대사는 미리부터 협산초해(狹山超海)의

철선장법으로 영해를 후려쳤다.

동등한 기세로 날뛰던 영해도 우선 한손으로는 철선장과 맞서지 못하고 비대한

몸을 빙글 돌리면서 물러났다가는 다시 호령을 지르며 왼 손으로는 공격하는 동시

오른 손으로는 비스듬히 후려치면서 불길처럼 달려들었다.

등인대사는 호령하면서 세 걸음 후퇴하고는 선장을 역소오악(力掃五嶽)법으로 바꿔 후려치자

철선장에서는 무서운 바람이 일어났다.

그래도 영해는 물러가지 않고 곧장 앞으로 달려들면서 황소 같은 몸을 번개같이

날려 왼 손으로 장풍을 일으켜 철선장을 후려치는 동시에 오른손으로

등인대사의 머리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등인대사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면서

즉각 이십사식 복용장법(二十四式伏龍掌法)을 전개하여 삽시간에 풍뢰(風雷)를 몰고 온 듯

바람이 진동하고 장영(杖影)은 태산마저 박살낼 듯 맹렬하였다.

이 장법이야말로 등인대사가 득의(得意)로 행하는 비법이었다.

철선 장풍이 몰아치는 이장 둘레에는 누구도 감히 얼씬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대한 몸집을 번개같이 날리는 영해는 용케 막으며 싸웠다.

영해와 등인대사가 얽혀 싸우자 승려 일곱 명도 역시 선장을 휘두르면서 공격하여 왔다.

옥영자가 일성을 대갈하며 일운, 일전, 일뇌 , 일선 네 승려를 혼자 떠맡고 나서

장검을 휘둘러 앞질러 나갔다. 혜진자도 하림 옆으로 뛰어와서는 하림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일풍, 일청, 일월 세 승려와 맞아 싸웠다.

지금까지 무예계에서 전에 없던 무리 싸움이다.

서로 얽히고 설켜 자웅을 분간하기 힘들었다. 일양자는 비록 영공의 주사장(朱絲拳)에

열세에 몰렸으나 옥영자는 네 승려를 상대로 우세한 입장에 놓여 있었고 등인대사 역시

영해와 막상막하의 불꽃이 튀는 상태로 맞붙어 싸우고 있으며 혜진자와 하림 또한

세 승려를 상대로 우세한 입장에서 싸우고 있었다.

 

영공은 연달아 주사장풍을 휘둘러 숨 돌릴 틈도 주지 않으며 맹렬히 후려쳤으나

좀처럼 일양자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일양자는 내공력이 강할 뿐 아니라 대적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영공의 주사장에

비록 기선은 빼앗겼지만 경신술과 추혼십이검으로 싸움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때 돌연!

 

「아앗!」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졌다.

 

옥영자의 검광이 번쩍이는가 했는데 일운 화상의 오른손 세 손가락이 분수처럼

피를 뿜으며 잘려 나갔다.

이 광경을 본 영공은 연달아 후려치고는 선뜻 일장 너머로 물러섰다

얼굴은 분함을 못 참아 일그러졌고 눈에는 살기와 독기를 내뿜었다.

온 몸의 진기를 모으며 일양자를 노려보고 다가드는 것이 꼭 맹수 같았다.

 

영공은 노리고 노렸다가 맹렬한 필살의 일격으로 일양자를 때려눕힐 눈치였다.

일양자도 즉각 그 속셈을 알아 차렸다.

그 즉시 공력을 새롭게 가다듬고 마음을 도사린 채 영공의 움직임을 날카롭게 살폈다.

일순! 고요한 귀기(鬼氣)만이 감도는 찰나 영공의 말라빠진 오른손이 천천히 올라갔다.

 

다음 순간!

 

이 어찌된 일인가! 나뭇가지처럼 앙상하던 손이 부풀어 오르더니

두 배로 커졌다 영공이 필살의 장력이라고 자랑하는 백독장법(百毒掌法)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일양자는 공력만 믿고 영공이 먼저 손쓰기만을 기다리지 않는가!

영공이 회심의 미소를 풍기며 음산하게 다가봤다. 순간에 사생결판이 나는 것이다.

 

  홀연!

 

일성 기합(氣合)소리가 산곡에 울리고 동시에 한 여인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림에게 소리쳤다.

 

「하림! 언니가 도우러 왔어‥‥.」

 

동시에 그 몸은 공중에 치솟았는가 했는데 두 자루의 연자추혼표(燕子追魂漂)가

번쩍 눈부시게 빛나면서 기이한 소리와 함께 혜진자와 하림이 싸우고 있는

일월과 일승에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두 승려는 순간 무엇이 자기들에게 날아오는지도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연자추혼표는 번쩍! 하는 섬광(閃光)을 풍기고는 반곡선(半油線)을

그리면서 두 승려의 머리 위 일곱 자 상공에서 일직선으로 쏜살같이 내려쳤다.

번갯불보다 더 빨랐다.

두 승려는 어떠한 암기(暗器)인지도 모르고 선장을 마구 들어 후려쳤다.

동시에 쩡! 쩡! 하는 소리와 함께 두 자루의 연자추혼표가 빗나갔다.

빗나가면서 그 끝에서 또 무엇이 번쩍하며 튀어나갔다.

그것은 머리털처럼 가늘면서도 반짝이는 철선(鐵線)이었다. 바로 독침(毒針)이었다.

순간, 

두 승려의 활과 다리가 따끔했다.

독침이 꽂힌 것이었다.

연자추혼표의 내부에 이중 장치가 되어 독침까지 품고 있을 줄이야!

대뜸 독침에 맞은 상처가 못 견디게 쑤셔왔다

그제야 두 승려는 독침을 맞은 줄 알고 대경실색하며 선장을 떨어뜨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짧은 순간이 지난 후의 일이었다.

또 다시 한 줄기의 시퍼런 검광이 일청에게 덮쳐들면서 바람을 가르는 것이었다.

일청은 미처 정신을 차릴 여유도 없다가 다급한 김에 선장을 놓친 것도 잊고

엉겁결에 빈손을 들어 막았다.

 

「으악!」

 

  처절한 비명이었다.

 

  일청의 팔이 어깨 밑에서부터 쌍둥 잘려 일장 밖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일풍이 기겁을 하고 뒤로 몸을 돌리는 그 찰나!

이번에는 혜진자의 일풍이 가슴을 찔렀다.

 

「으윽!」

 

일풍은 빳빳이 곤두섰다.

그러자 혜진자는 한번 발을 들어 걷어찼다

그와 함께 일풍의 시체는 저만치 떨어져 뒹굴고 말았다.

이제 남은 자는 겨우 일월 한 사람뿐이었다.

일월은 완전히 기가죽고 말았다.

그러던 차에 하림이 장검을 휘두르며 쳐들어갔다.

혼비백산해서 간신히 선장으로 후려쳐 피하며 몸을 뒤로 날렸다.

그러나

 

「아뿔싸!」

 

일월이 뛰어든 곳은 바로 일양자와 영공이 맞붙은 중간이었다.

때마침 영공이 노리고 노렸던 백독장을 일양자에게 막 후려치는

그 순간에 뛰어들었으니 결과는 뻔했다.

 

「으악!」

 

  일월의 입에서는 단 한마디의 비명뿐이었다.

영공도 어떻게 백독장을 회수할 틈조차 없었다.

추풍낙엽처럼 일장 밖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코와 입에서 피를 내뿜는 것이었다.

사실 백독장이 아니고 단순히 영공의 내공 장력만을 맞았다 해도

일월의 공력쯤으로서는 그 당장에서 피를 토하고 죽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백독장이라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었다.

그 순간. 싸우던 모든 사람들은 제각기 한발씩 물러서며 손을 멈추었다.

 

그때 일양자의 눈에는 아를다운 한 흑의의 소녀가 하림과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삼장 밖에는 눈부시도록 흰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덮은 신선 같은 노인이

황색 두루마기에 용두장(龍頭杖)을 들고 서 있는 것이었다.

그가 바로 천용방(天龍幇)의 방주인 해천일수(海天一?) 이창란(李滄欄) 그 노인이었다.

그리고 하림과 손을 잡고 이야기하고 있는 소녀는 다름 아닌

무영녀(無影女) 이요홍( 李瑤紅)이었다.

 

그리고 이창란 옆에 누런 베옷에 붉은 집신을 신은 천중사추(川中爛醜)가

그들을 호위하듯 서 있었다.

한편 이창란의 뒤에는 천용방의 홍기단주(紅旗壇主)인 백보비발(百步飛?) 제원동(齋元同)과

흑기단주(黑旗壇主)인 자모신담(子母神膽) 승일청(勝一淸) 그리고 백기단주(百旗壇主)인

개비수(開碑手) 최문기(崔文奇)들이 나란히 서 있었다.

 

해천일수 이창란은 날카로운 눈초리로 사방을 한번 휘둘러보고는

일양자의 두 손을 맞잡고 흔들면서 웃는 얼굴로 물었다.

 

「도장의 삼형제가 모두 이 기련산에 오셨는데 무슨 큰일이라도 있었소?」

 

  일양자는 머리를 숙이며 정중히 예를 하였다.

 

「빈도들이 이곳에 온 것은 대각사 고승들에게 설삼과 한 알을 구하여

여기 있는 사매의 뱀독을 치료하고자 왔소이다마는 설삼과는 구하지 못하고

오히려 살육전만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하는 말에 이창란은 크게 웃으며 끄덕였다.

 

「곤륜 삼자들이면 무예계에서 대항할 자가 없는 바인데

대각사의 몇 승려가 어찌 대적할 수 있겠소이까?

그런데 설삼과는 구하셨는지요?」

 

하고는 혜진자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과연 혜진자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는 미소하며

다시 영해와 영공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뚱뚱하고 홀쭉한 두 분 승려는 대각사의 어떠한 인물이오?」

 

  일양자는 미소하며 대답했다.

 

「뚱뚱보나 말라깽이나 두 분 모두 대각사의 장로랍니다.」

 

  그 말을 들은 이창란의 허연 눈썹이 곤두섰다.

그리고 얼굴에 가득히 노기를 띠고 영해와 영공을 한참동안

차갑게 쏘아보고는 은근히 비웃는 것이었다.

 

「마침 잘 되었소이다. 세분 도형은 설삼과를 구하여

영사매의 뱀독을 치료하였으면 앞에 있는 이 두 중을

우리 천용방에게 양보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내가 그들에게 옛 빚을 청산해야 갰소이다.」

 

  일양자는 잠시 동안 여러 가지로 생각했다.

 

(이창란의 말로는 결코 조롱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혜진자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설삼과를 구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 승려들은 왜 앙도하라는 것일까?)

 

  그러나 일양자는 웃으며 쾌히 응낙한다.

 

「이방주께서 대각사와 청산할 빛이 있으시다면 빈도들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

 

하고는 천천히 물러났다.

 

  이때 대각사의 일대제자 일곱 명 중에 일풍과 일청 그리고 일월은 황천길로 떠났고

남은 승려는 일운, 일뇌, 일전, 일선 네 승려였지만

그나마 한 사람은 손에 상처까지 입은 처지였다.

이와 같은 일은 대각사 수십 년 이래 처음 겪는 처참한 참패였고 손실이었다.

 

영해와 영공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한다.

금시라도 미처 날 뛸 것 같은 험상이었지만 이창란의 정체를 모르는

그들은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참고 있는 것이었다.

 

이창란은 용두지팡이(龍頭杖)를 짚고 앞으로 천천히 나왔다.

그러자 천중사추(川中四醜) 네 사람도 단단히 경계하면서 뒤따랐다.

 

이창란은 중들과 정면으로 마주서며 우뚝 섰다.

정기가 이글거리는 두 눈을 치며 한 사람씩 쏘아보았다.

이윽고 천천히 지팡이를 들어 영해를 가리키고 무슨 말인가 하려는데

앞질러 영공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당신과 같은 늙은이와는 생전 처음 만나는 것 같소이다.

그런데 묵은 부채를 청산한다고 하니 도대체 무엇을 가리켜 하는 말인지

분명히 말이나 하고 지팡이를 들던지 하시오.」

 

하자 이창란은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좋소! 정히 그러하시다면 내가 한 사람 이름을 대어 드리면

곧 묵은 부채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것이요.

잘 들으시오.

묘수어은(抄手漁隱) 소천의(簫天儀)라는 사람을 알겠소?」

 

  그제야 영공은 음산하게 웃었다.

 

「나는 또 무슨 큰일이라고 하하…… 맞았소!

소천의 그 놈을 알다 뿐이겠소.

바로 내가 그에게 부골독침(附骨毒針)을 놓은 사람이오.

하하하 복수는커녕 늙은이 한 목숨만 버리게 될 결!」

 

  그러자 이창란은 고개를 들어 같이 따라 크게 웃었다.

 

「하하하……」

 

어찌나 우렁차고 기운찬지 온 산이 쩌렁쩌렁 울리고 메아리 되어 퍼지는 것이

꼭 호랑이의 고함소리 같았다.

 

그 순간 영공은 깜짝 놀랐다.

그때서야 이 늙은이를 얕보면 안 되겠다고 은근히 조심하는 눈빛이었다.

 한번 호탕하게 웃고 난 이창란은 지팡이를 들어 허공에 원을 하나 그리고는

 

「좋아! 좋아! 이 늙은이가 대각사의 절기를 구경하기에 씩 좋은 기회로군 그래

하하하 …… 설사 이 늙은 한 목숨이 달아나더라도 한은 없지!」

 

영공은 그 틈에 번개 같은 눈초리로 이창란의 뒤에 서 있는

세 사람의 단주(壇主)들을 둘러보았다.

역시 세 단주들도 무예가 깊어보였다.

그는 속으로 지독한 결심을 하고 나섰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두 발로 힘껏 땅을 걷어 차 몸이 공중에 뜨자 벼락같이 두 손을 벌렸다.

그러자 두 줄기의 장풍이 이창란을 허공으로 날려 보내는 듯 했다.

그러나 이창란도 역시 무예계를 한 손에 쥐려는 인물로 쉽사리

그 정도의 장풍에 당황할 위인은 아니었다.

영공이 일장을 후려치자 이창란도 그 즉시 용두 지팡이를 휘둘러

영공의 두 팔을 후려치는 것이었고 지팡이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태산이라도 뒤엎을 것 같았다.

영공은 깜짝 놀랐다

간신히 허리를 굽혀 피한 영공은 그 길로 여덟 자나 물러났다.

 

이창란의 반격이 그토록 날카롭고 빠를 줄은 몰랐다.

더구나 후려치는 용두 지팡이에 두개골이 무참하게 박살날 뻔 했다.

그러한 영공의 눈이 크게 떠졌다.

겁먹은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