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장 안개 속에 감추어진 마음들 <龍霧沈烟>
어깨를 다친 괴한은 구원병을 보자 용기백배하여 양몽환에게 호통 치는 것이 가관이었다.
「이마에 쇠똥도 채 벗겨지지 않은 놈이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나오는 대로 지껄이느냐?」
양몽환은 하림이 천용방(天龍幇)에 잡혀 있다는 말을 듣고 화가나 있던 차
어깨를 다친 놈에게 한 바탕 호통을 듣고는 더 참을 수없었다.
「흥! 덤벼라!」
하고는 추혼십이검(追魂十二劍)중의 한 수인 행화춘우(杏花春雨)의 수로 다섯 명을 향해
찔러 나갔다.
다섯 놈은 모두 양몽환의 장검이 자기를 노리는 줄 알고 약속이나 한 듯 뒷걸음쳤다.
양몽환은 한 수에 다섯 놈을 굴복시키고는
「내 너희들을 한칼에 죽일 것이로되 목숨만은 살려 둔다.
그러나 우리 사매가 어디로 잡혀 갔는지 바른대로 말하지 않을 때엔
이 칼이 용서치 않을 테니 그리 알아라.」
하고 준엄하게 소리치자 어깨를 다친 괴한은 그제야 더 버티지 못하고
「백의 소녀를 탈취 해 간 자는 두 사람의 중(和尙)이오.
어디로 갔는지는 우리들도 모르는 일이오.
이건 절대 내가 당신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요.
속이려면 제가 아무 곳이라도 가르쳐 주어도 당신은 모를 것 아니요.
그 백의 소녀가 당신의 사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소마는
우리 천용방(天龍幇)에서 잡은 걸 다른 놈들에게 빼앗긴 것은
우리 천용방(天龍幇)으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우리가 여기서 삼십 리 정도 떨어진 묘지 근처에서 빼앗겼는데
그곳에 가서 찾아보시오!」
이 말을 들은 양몽환은 낙심천만이나 그곳을 찾아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급해진 양몽환은 정신없이 가다보니
과연, 길옆에 가르쳐준 묘지가 있지 않는가.
희뿌옇게 비치는 달빛 아래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묘 옆에는 큰 노송(老松)이 몇 그루 서 있을 뿐 소름이 끼치도록 고요했다.
그리고 길 숲에는 시뻘건 핏자국이 점점이 흩어져 있고 풀들이 짓밟혀 쓰려져 있었다.
그러나 핏자국과 짓밟힌 풀 이외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양몽환은
심소저의 행방이 점점 오리무중(五里霧中)에 빠져가는 것만 같아 초조하고 기가 막혔다.
(이 세상에 중이 한 두 명도 아니오,
또한 넓은 천지에서 내 무슨 수로 심소저를 찾는단 말인가?)
적막한 묘지에 서서 싸늘하게 비치고 있는 달빛을 쳐다보며 생각하는
양몽환의 마음은 망망한 대해에 떠 있는 돛 잃은 일엽편주와 같은 신세였다.
더구나 교교한 달밤에 간장을 여미는 듯한 구슬픈 올빼미의 소리에
양몽환은 더 한층 구슬퍼지고 심란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었다.
어느덧 밤은 벌써 오경(五更)이 지나 머지않아 먼동이 틀 때가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양몽환의 심정은 어지럽기만 했다.
금북(今北)의 천용방총당(總堂)으로 하림을 찾으러 가려던 결심도 헤이해지고
찾아갈 곳마저 잃어 버렸다.
(어디로 가야 한다는 말인가?)
광대 무한한 천지에서 찾을 길은 갈수록 막연했다.
심소저의 행방은 마치 수중(水中)의 조약들 마냥 아무리 세상을 누벼도 가망이 없는 것만 같다.
생각할수록 슬퍼져 장탄식을 하며 쓸쓸한 새벽 별을 쳐다보는 양몽환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두 볼을 적실 뿐이다.
이때, 양몽환의 탄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왔다.
이 소리에 깜짝 놀라 몸을 돌리는 양몽환의 눈에는 새벽바람에 황초(荒草)가
<쏴!>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황량한 묘지는 더욱 무섭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더 지체하기를 단념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양몽환은
비석위에 한 물체가 어른거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양몽환은 정신을 가다듬고 주위를 경계하면서 가만히 다가갔다.
그러나 그것은 하얀 비단 수건이었다.
그리고 그 수건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묵필로 굵게 쓰여 있었다.
「나는 큰 뜻을 품었으나 사매가 화를 당해 나까지도 마음이 산란해 지는구나,
그녀의 행방을 찾을 길이 아직 없으나, 사매는 무예가 뛰어난 사람이라
도적들을 죽였을 것이오니 당신께서는 자중하시길 바라오,
한 달 안에 꼭 좋은 소식이 있으리라.」
문장은 수려하나 퍽 난필인 것으로 보아 이 글을 쓴 사람의 마음도
상당히 어지럽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양몽환이 거듭 읽을수록 무서움은 더 했고 무서움이 초조함으로 변해
간장이 바싹바싹 타는 것 같았다.
그는 이를 갈며 하염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수건의 내력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주머니에 꾸겨 넣고 몸을 돌려 급히 뛰어 나갔다.
단숨에 사 오리(四五里)를 달려 온 양몽환은 걸음을 멈추고
(어디로 갈 것인가?)
자신에게 묻고 있을 때…,
해는 벌써 떠올라 황금빛 햇살이 양몽환을 비쳐 주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천만가지 생각으로 착잡한 심정이라 누를 길 없고
이 철석같은 사나이 마음은 더욱 산란해졌다.
이 때였다.
돌연, 뒤에서 바위를 굴리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양상공(相公)! 별일 없으셨소! 우리가 여기에서 다시 만날 줄은 몰랐구려!」
양몽환은 급히 돌려 바라보자
그곳에는 언제 나타났는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노인이야 말로 자기가 현도관(玄都觀)을 떠날 때 동정호(洞廷湖)에서 만났던
천용방(天龍幇) 장강(長江)의 우홍비(尤鴻飛) 바로 그 사람이었다.
우홍비(尤鴻飛) 뒤에는 등에 칼을 멘 두 장정이 눈을 부릅뜨고
세 마리 건마(健馬)의 고삐를 잡고 있었다.
머리끝이 주삣해진 양몽환은
「아차!」
하고 마음속으로 탄식했다.
(무심코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누가 옆에 오는 줄도 모르고……이제 속절없이 죽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죽는 것은 서럽지 않으나 내가 죽으면 심소저는 누가 찾으며 스승이 가르쳐 주신
십이 년간의 교양(敎養)은……)
하고 여기 까지 생각이 미치자 곧 정신을 가다듬어 우홍비를 쳐다보면서 냉소를 퍼부었다.
「우홍비 총타(總舵)님! 귀방(貴幇)의 세력은 강남(江南)에 두루 미쳐 있으나
아직 도둑놈 본성은 버리지 못하였구려!
여기까지 말을 달려 몰아 온 것은 이 양 아무개의 목이 탐이 나서 그러는 것이 아니요?」
이 말을 들은 우홍비는 얼굴이 상기되어 약간 노기 띤 음성으로
「양상공, 그게 무슨 말씀이오?
본방(本幇)과 귀파(貴派)와의 적의(敵意)는 이미 해소된 지 오래오,
무슨 말씀인지 도저히 알 수 없소이다.」
양몽환은 냉소하며
「흥! 귀방 사람들은 입으로는 번지르 하게 뇌까리나 하는 것들은 비겁하기 짝이 없소,
귀방과 우리는 이미 적의가 없어졌다고 하면서 우총타께서 이 황량한 곳까지
말을 달려 돌아옴은 무슨 연유이시오? 더구나 부하까지 데리고.」
그러자 시커먼 눈썹 속에 파묻힌 눈알을 사방으로 굴리며 우홍비는 냉담하게
「양상공! 당신 말에도 일리는 있소이다만 영사(令師) 현도관 어른께서도
이런 말을 하여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소.
어제 밤 여기서 얼마 안 되는 곳에서 우리 부하들이 습격을 당해
네 명이나 중상을 입은 데다 압송하던 사람마저 빼앗겼다는 말을 듣고 달려 왔는데
뜻밖에도 양제(楊弟)를 만나게 된 것이오?」
하고는 말을 잠시 머졌다가 다시 눈을 부라리며 말을 이었다.
「어제 밤 본방(本幇) 부하들이 당가집(唐家集) 나루터에서 만났다는
칼 쓰는 젊은이가 바로 양제였었소?」
양몽환은
「예! 그렇소이다.
우총타님께서도 귀방이 압송하던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시고 계시는지?」
우홍비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면서
「모르오만은 젊은 처녀라 하오.
그러나 자세한 사정은 모르나 총당(總堂)의 명령으로 금북(今北)으로 데려가는 도중
어제 밤 네놈이나 부상을 당했을 뿐 아니라 그 처녀도 빼앗기고 말았다는 것이오.」
우홍비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양몽환은 노기충천하여 대갈일성!
「우리 사매는 강호(江湖)를 처음으로 밟았고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아니하였는데
당신들은 순진한 처녀를 잡아 무엇을 하려는 심사이시오?」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러나 한편 적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우홍비는
「뭐라고? 그 소녀가 양제의 사매라니, 아니 그게 정말이오?」
양몽환은 우홍비가 놀라는 기색을 눈치 채고 좀 안색을 고쳤다.
「바로 이 후배와 같이 동정호에서 우총타님을 만났던 심(沈)소저가 바로 사매랍니다.」
우홍비는 짙은 두 눈썹을 움직이더니
「그렇다면……… 나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 서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오.
게다가 홍기단주(紅旗壇主)에게 총당(總堂)까지 잘 보호하여 데려오라는 것으로 보아
당신의 사매를 해칠 뜻은 없는 줄 아오.」
양몽환이 여기까지 듣고는 분함을 참지 못하여
「천진한 내 사매는 강호에 나온 일도 없는데 귀방과 무슨 원한이 있겠소?
당신들이 그녀를 잡은 처사는 대장부로서 할 일이 못되오.」
우홍비는 안색이 달라지더니 약간 노기 띤 목소리로 말했다.
「천용방의 이름은 강호에 진동하는데 어찌 감히 비겁하다 하오,
양제! 이런 사람을 얕보는 생각이야 말로 천하에 웃을 일이 아니겠소.」
양몽환은 무술계에서 십여 년간 이름을 떨치고 천용방 홍기단(紅旗壇)의 주인인
제원동(齋元同)이 한갖 여자의 미색을 탐하여 비겁한 짓은 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무슨 이유일까? 홍기단의 부하들은 명령이라 마음대로 행동 할 수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제원동(齋元同) 본인의 의사가 아닐까.)
심소저는 아직 어리고 순진하며 대사(大師)께서 차양사에 계실 때는
심소저를 한발 자국도 밖으로 내놓은 적이 없었다.
이번에 처음으로 나와 함께 강호(江湖)에 발을 들여 놓았을 뿐이다.
제원동이 여색이 발동하여 하림을 잡지 않았다면
더 이상 다른 원인을 찾아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때였다.
갑자기 그의 뇌리에 스치고 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주백의(朱白衣)가 파양호반에서 하던 말이 그의 가슴 속에서 파도를 일으켰다.
(음……… 천용방의 방주인 이창란……
그리고 본부인의 딸인 이요홍………
그렇다 바로 이요홍이 제원동을 시켜 하림을 납치해 갔을지도…… )
이렇게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이요홍에게로 의심이 가는 것이었다.
우홍비는 양몽환이 멍청히 생각에 잠겨 혼자 중얼거리는 것을
강호 장강의 용이라는 우홍비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양제! 내 말 즘 들어 보시요.
나는 당신 스승에게서 구원을 받은 일이 있소만 몇 십 년간 보답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소.
하림이 잡힌 사연이 어떠하던 간에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하림 소저를 찾는 것이 아니겠소.
우리 천용방의 부하들이 강남 각 지방(江南各地方)에 퍼져 있으니
곧 이들에게 연락하여 귀 사매의 행방을 찾는 것이 좋을 듯 하오,
마침 하림 소저를 뺏어 간 두 놈의 행각(行脚) 중을 알았으니
양제가 단신으로 찾아 가는 것이 좋겠소.
다만 사매의 소식을 듣거든 곧 나에게 통지해 주시오.
본 방의 특수한 연락 방법은 하루에 사오백(四五百)리를 전달할 수 있으니
이 우홍비를 믿고 함께 찾아보도록 하시오.」
양몽환은 이 방법 외는 별다른 수가 없을 것 같아 대답을 막 하려는 참에
저 쪽에서 말 한필이 달려오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말은 쏜살같이 수백 장(丈)의 거리를 눈 깜짝할 사이에 달려와 섰다.
양몽환은 우홍비의 말에 대답할 겨를도 없이 달려 온 말을 쳐다보니
이 말이야 말로 보기 드문 명마(名馬)인데다 마상의 주인공 또한 놀랍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담황색의 저고리를 입고 허리는 흰 비단으로 둘러져 있었다.
바지는 담황색의 비단이오. 살결은 눈과 같이 희고 얼굴은 헌칠하여
마치 절세의 미인이 정좌하여 있는 것 같았다.
양몽환과 비교한다면 양몽환은 준수한데 비하여 그는 용모가 아름답다는 점이다.
그는 말을 몰아 양몽환 쪽으로 가까이 와서 한참이나 양몽환을 보고서는
말에서 뛰어 내려 우홍비의 손을 잡고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우홍비님께서 저 보다 한발 먼저 도착하셨습니다.
본방에서 빼앗긴 여죄수의 행방에 대해서 단서라도 잡았습니까?」
양몽환은 하림 소저를 여죄수라 하는데 화가 치밀어 우홍비가
채 대답하기도 전에 냉소를 머금고 대갈일성을 질렀다.
「귀방은 강호(江湖)에 불법조직을 하여 함부로 사람을 체포하고
말끝마다 죄인이라 하니 그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말해 보시요?」
그러자 청년의 안색이 변하는 순간 아름다운 그 얼굴에는 노기를 감추지 못하고
등 뒤에 멘 기형(奇形)의 금환검(金環劍)을 뽑아 양몽환을 겨누면서 외쳤다.
「너는 누군데 감히 함부로 주둥아리를 놀리느냐?」
양몽환이 그의 칼을 보니 이상하기도 했다.
칼에 금방울 세 개가 달려 있어 햇볕에 금방울이 반짝거리고 칼을 움직일 때마다
세 방울이 딩동 딩동 금 주판알을 튕기는 소리가 났다.
그 소년은 내공(內공)을 발휘하여 손에 힘을 주자 금방울이 움직였다.
그는 양몽환을 향하여 한바탕 시위를 하는 것이었다.
황의(黃衣)의 청년의 칼에 달런 금방울을 진동시키는 내공(內功)의 힘에 놀란 양몽환은
곧 정신을 가다듬고 장검을 빼어 들어 반격할 태세를 갖추려 할 때 우홍비가 앞으로
한 발 나서면서
「두 분께서는 잠시 노기를 멈추시고 내 말을 들어 보시요.
강호에는 예로부터 모르고 지은 잘못은 죄가 아니라는 말도 있소,
제가 두 분을 소개해 올리리다.」
하고는 양몽환을 가리키며
「이 분은 곤륜파(崑崙派)의 일양자 도장(一陽子道長) 문하(門下)의 양몽환이옵고
이분은 본방 두단주(本街 頭壇主) 문하(門下)의 제자 금환이랑(金環二郎) 도향주(陶香主)
도옥(陶玉)입니다.」
하고 그 청년을 돌아보면서 말하였다.
「우리 단(壇)에서 잡은 사람과 무슨 관계되는지는 모르지만
어찌 말끝마다 기분 나쁜 말만 하시오?」
「그 소저가 바로 양제의 사매라 하오.」
우홍비가 대답했다. 도옥이 검을 거두면서
「무엇이라구요?
그럼 우리가 잡았던 소저가 곤륜파(崑崙派)의 여제자(女弟子)란 말씀입니까?」
「나는 아직 보지 못하여 단언할 수는 없으나 양제의 말에 의하면 그러하오.」
양몽환도 검을 다시 거두며
「나는 요주(饒州)서부터 찾아 돌아 다녔소.」
도옥은 다시 우홍비에게 물었다.
「제단주(齋壇主)께서 무엇 때문에 곤륜파의 여제자를 잡으라고
홍기령(紅旗令)을 명하였을까요?」
장강의 용(龍)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나는 단지 한 소저를 압송하는 본방 제자들을 도와주라는
홍기령의 영을 받았을 뿐 그 간의 사정은 아는 바 없소.」
그러자 도옥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양몽환의 손을 잡으며
「우리 천용방은 비록 불법조직이라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모두가 천리(天理)에 따르고 인정에 호소하는 의협 행위라 말할 수 있을 것이오,
우리가 살인과 방화를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탐관오리(貪官汚吏)를 죽이고
토호의 집을 불사르는 짓뿐이오.
강호에는 오문(五門)의 도적 떼가 있습니다만
그 중에도 우리 제자들이 가장 많으오.
그러나 준엄한 단규(壇規)로 규제하고 있다오.
지금 나는 사정을 잘 모르겠소만
우리 부하가 이곳에서 봉변을 당하였다기에 급히 달려온 것이요.
당신의 사매만 찾으면 그간의 일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구려
양형께서 저와 같이 본방 용두 방주님께 가서 시비곡절을 알아보면
그 내용을 잘 알 수 있을 거요.
그러나 우선 당신의 사매가 있을 거처를 알아내는 것이 급한 일이 아니겠소?」
양몽환은 도옥의 말을 듣고
「도형의 고견을 듣고 보니 어둠 속에서 불빛을 본 것 같소.
하림소저를 찾는데 귀방의 힘을 좀 빌리고 싶소이다.」
도옥이 웃으면서
「별 말씀을 다 하시오. 소제와 동행하심이 어떠하옵니까?」
우홍비는 옆에서 금방 싸우려던 두 젊은이가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한 정경을
바라보고서 한 마디 했다.
「두 분께서는 마치 옛 친구 같구려,
우리 여기서 이야기할 게 아니라 당가집(唐家集) 장강(長江) 나루에 있는
제 배에 가서 한 잔 들면서 하는 게 어떻소.
그리고 수륙(水陸) 두 방면의 부하들에게 연락하여 하림 소저의 거처를 알아봅시다.」
하고는 삼장(三丈) 밖에서 두 필의 말을 잡고 있는 장정에게 말을 가져오게 하여
양몽환에게 타기를 권하고 자기도 타는 것이었다.
「도옥(陶玉)의 적운 추풍구(赤雲追風駒)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니 양상공 우리 먼저 갑시다.」
하고 말을 마치자 채찍을 높이 들었다 내리쳤다.
그러자 말은 기운차게 달려 나갔다.양몽환도 십여 장(丈)쯤 달려 왔을 때 뒤를 돌아보니
적운 추풍구가 먼지를 자욱이 일으키며 달려오는 것 같더니
삽시간에 옆으로 획지나 금방 인마가 보이지 않았다.
양몽환과 우홍비가 당가집 장강 나루에 당도하여 보니
도옥이 먼저와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세 사람은 배에 올라 자리를 잡자
우홍비가 품에서 흰 비단에 금용을 수놓은 기치를 꺼내어 선두에 달아매고 나서는
단검을 찬 열두 장정을 불러 엄숙히 몇 마디 명령을 하자
그들은 곧 육척의 작은 배에 분승하여 파도를 헤치면서 앞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우홍비가 일을 마치고 그들 옆으로 돌아와 시중드는 청의 동자(靑衣童子)에게
술상을 차리라고 이르자 잠시 후에 술상이 벌어져 주흥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양몽환의 마음은 하림의 일로 걱정이 태산 같아 술 마실 흥이 나지 않았지만
억지로 두 잔을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았다.
우홍비가 양몽환의 태도를 보고는 건배로 한 잔을 더 권하며
「양상공, 내가 벌써 여기 저기 퍼져 있는 우리 부하들에게
하림 소저의 행방을 찾아보도록 연락하여 놓았으니
한 이틀만 기다려보시오 좋은 소식이 있을 터이니
걱정 마시고 한 잔 더 드시오.」
「만일 소저의 소식이 있으면 내가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적운 추풍구를 빌려 드릴 테니 달려가시면 되지 않겠소.」
하고 도옥이 말했다.
양몽환은 감격하여
「감사하오,
더구나 초면인 사람에게 적운 추풍구를 빌려 주시겠다니 감사할 뿐이오.」
「이 말은 내 사매 이요홍(李瑤紅)에게 주기로 약속 하였으니 두 달 후에는 제 소유가 아닙니다.
그 동안이라도 많이 빌리시오.」
양몽환은 이요홍(李瑤紅)이란 이름을 듣자
안색이 찌푸려지는 것을 억지로 참으면서 웃고 말았다.
「그러시다면 소제는 더욱 감사할 뿐이오. 형님이라 부르겠소.」
말을 마치고 일어난 양몽환은 공손히 절을 했다.
그러자 도옥도 일어나 답례를 하며
「소제는 나면서부터 고독하였는데 형을 보니 마치 및 친구를 대하는 것 같으니
이것도 무슨 인연인가 합니다. 양형! 잠시 근심을 잊으시고 술이나 드십시다.
사매를 납치한 사건에 대하여는 제가 직접 제단주(齋壇主)에게 알아보리다.」
양몽환은 사양할 수 없어 단숨에 세 잔을 비웠다.
술기운이 돌자 양몽환은 하림의 일을 잊어버리고 주흥에 도취되어
도옥과 이런 일 저런 일 서로 주고받다가 취해서 세상모르게 잠에 빠졌다.
한참 자다 일어나서 보니 벌써 밤은 깊었고 자기는 깨끗한 선실에 뉘어져 있었다.
탁자 위에는 큰 촛대에 불이 켜져 있고 맞은 편 침대 위에는 도옥이 누워 있었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양몽환이 일어난 것을 보자 따라 일어나면서
「양형께서는 며칠 동안 편히 주무시지 못한 것 같구려,
굉장히 피곤한 것 같은데……… 벌써 일곱 시간이나 주무시었소.」
양몽환이 침대에서 내려오면서
「술에 취해 그만 하루를 헛보냈구려.」
두 사람이 이야기 하는 사이에 청의 동자가 세숫물을 가지고 들어왔다.
양몽환이 세수를 끝내고 도옥과 함께 간식을 들고 배위로 나오니
때는 벌써 삼경(三更)이었다.
조용히 비치는 달빛 아래 시원한 바람은 더욱 마음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양몽환은 도옥을 불렀다.
「도형! 지금 우리가 어디를 가고 있소?」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
남창(南昌) 부근에서 수상한 중 들을 발견하였다는」
도옥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양몽환이
「하림 소저의 행방도 찾았습니까?」
하고 다급하게 물었다.
그러나 자기가 너무 급하였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붉어졌다.
도옥이 웃으면서
「말씀 올리기 거북하나 아직 하림 소저의 행방은 묘연하다 하는구려,
다만 발견 되었다는 그 중들이 차림새가 하림 소저를 빼앗아 달아난
중놈들과 비슷하다고 하는구려.」
「그럼 지금 남창(南昌)으로 가는 길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소식을 전하려고 양형을 찾았더니 곤하게 주무시기에 그냥 배를 띄웠지요.」
하고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
「실례에 말 같소마는 양형과 하림 소저의 사이가 보통이 아닌가 싶은데?……」
도옥의 말을 듣고 양몽환은 그만 얼굴이 붉어져 한참이나 대답을 못 하였다.
한참 만에 양몽환이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며
「그녀는 순진한 소녀로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지라 걱정이 되는 구려」
「형의 말씀을 직접 듣지는 안았지만 나는 벌써 태도를 보고서 알아챘다오.」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눌수록 우의가 두터워져 갔다.
서로 떨어지기가 아쉬운 듯 삼경(三更)이 지나서야 두 사람은 각각 선실로 돌아가 편히 쉬었다.
다음 날 아침 배는 남창(南昌) 부두에 닿았다.
도옥은 양몽환의 손을 잡고 배에서 내리자 부두에는 벌써 천용방의 제자들이
마중 나와 있다가 이들을 맞이했다.
도옥은 내리자마자
「두 중 녀석들이 어디에 있느냐?」
약 사십세가량 된 장정이 허리를 굽히며
「사람을 시켜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제 저녁에 열래(悅來)여관에 머물고 있는데 아직 떠나지 않았다는 연락이옵니다.」
도옥은 알았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며 세 장정에게 말했다.
「너희들 중 두 명은 남아서 이 적운 추풍구를 지키고 있다가
우총타가 오시면 모시고 오고 딴 사람은 우리를 그 여관으로 안내 하여라.」
가운데 있는 장정이 두목인 듯 좌우에 서 있는 두 사람보고 말을 지키라 이르고
자기는 도옥과 양몽환을 안내하여 여관으로 향했다.
양몽환은 도옥이 천용방에서 지위가 우홍비보다 높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자기는 손님이므로 겸손하지 않을 수 없어서
그 안내하는 청의 거한(靑衣巨漢)에게
「존함이 무엇인지요?」
라고 물었다.
그 청의 거한은 양몽환의 묻는 말에 몸을 굽혀 대답했다.
「저는 수사 이오(氷蛇李五)라 하는 장사꾼입죠.
용두방(龍頭幇)님의 은전으로 장강총타(長江總舵) 밑에서 녹을 받으며
남창 삼백리의 수로(水路)에서 장사의 책임을 맡고 있사옵니다.」
「여관에 든 중들이 한 백의 소녀를 데리고 있는걸 보지 못 하였소?」
양몽환은 물음을 계속했다.
「저는 우홍비 어른의 명령을 받고 줄곧 네 사람을 보내어 여관에든
두 중을 감시중이 옵니다만 두 중 이외는 다른 동행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세 사람은 걸음을 재촉하여 잠시 후에는 여관에 당도 할 수 있었다
이 열래 여관은 남창에서 제일 큰 여관이었다.
세 사람이 여관에 도착하였어도 아직 여관 문은 잠겨져 있었다.
수사이오,(水蛇李五)가 주먹으로 쾅쾅 대문을 두들기자
안에서 자고 있던 종이 눈을 부비며 나와 새벽부터 누가 귀찮게 구나하며
화를 내려다 이오를 보자 놀라 졸리던 눈이 번쩍 뜨며 황망히 읍하며
「영감님 ,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그러나 수사이오는 인사도 받지 않고
「어제 밤 너의 여관에 든 중들이 아직 있느냐?」
종은 웃음을 띠면서 대답한다.
「두 대사께서는 이진원(二進院)에서 주무셨는데
아직 떠나지 않은 줄로 압니다.
영감님, 제가 가서 깨울 테니 여기서 좀 앉아 쉬십시오.」
「괜찮다. 우리를 그리로 안내 해라?」
종은 세 사람이 모두 검을 찬 것을 보자
더 무어라 말을 못 하고세 사람을 안으로 안내했다.
이윽고 방문 앞에 이르러
「대사님들 일어나시오!」
외쳤다.
그러나 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다.
화가 난 이오가 발길로 문짝을 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 어찌된 일인가, 끔찍하기도 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그만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한참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방 안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목 두 개가 선반에 얹혀 있고
역시 두 개의 몸뚱이는 침대 위에 뒹굴러 있지 않는가!
도옥은 시체로 변한 두 사람이 자기 부하라는 것을 알자
어이가 없어 이오의 얼굴만 쳐다본다.
수사이오는 당황하고 놀래어 양몽환을 쳐다보면서 도와 달라는 눈치다.
도옥은 천천히 이오에게로 가서 퍽 부드러운 소리로
「이수사 걱정 마오!
이 중대한 일에 무술도 없는 두 사람만으로 감시케 한 것이 잘못이오.
저들의 죽음이 원통할 뿐이오.」
이오는 얼굴이 백지장이 되어
「중을 감시하는 두 사람은 남창 수사 중 고수급에 해당하는 사람이었는데……」
하며 벌벌 떨기만 했다.
그러자
「그러면 내가 말을 잘못 했는가?」
「처……천만에 말씀……
그만 이놈이 죽을 때가 되어서 허튼 소리를 했습니다.」
도옥은 한 걸음 나서면서 이오의 손목을 잡고 담담히 말했다.
「경거망동하여 두 중을 놓쳤으니 천용방의 엄한 규율을 어찌 한단 말이오.
정상은 딱하나 죄는 용서할 수 없소!」
하고는 왼 손으로 이오의 견정혈(肩井穴)을 찔렀다.
양몽환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른 손으로 완저반운(腕底飜雲)의 수를 써서
도옥의 왼손을 막고서는
「이번 일은 이수사의 잘못이 아니라 생각하오,
그 중들이 비상한 재간이 없었다면 우리 사매도 잡히지 아니 하였을 것이 아니겠소.」
「양형! 그러면 이수사를 용서 한단 말씀이오?」
「도형에게 부탁드리는 바요.」
도옥은 웃으면서 잡았던 이오의 손목을 놓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양형의 간청대로 한 번 용서 하리다.」
이오는 손목을 놓아 주고 용서한다고는 하지만 도옥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도옥은 금방 일어났던 일을 까맣게 잊은 듯 목 없는 시체만
묵묵히 들여다보고 양몽환을 불렀다.
「양형의 말씀이 옳은 것 같구려,
두 중의 무술이 비상하여 점혈(點穴)의 수법으로 혈맥을 끊었소.」
라고 말하는 사이에 장강의 신교(神蛟) 우홍비가 달려와 시체를 조사한 후에
눈살을 찌푸리며 수사 이오에게 두 시체를 치우라고 일렀다.
이오는 말을 듣자마자 두 시체를 싸서 어깨에 지고 나가 버렸다.
이오가 돌아간 후 우홍비는 미안한 듯 양몽환에게 말을 건넸다.
「그들이 어제 밤 이곳에서 묵고 나갔으니 멀리 가지는 못 하였을 것이오.
남창 팔 백리 이내에 우리 방 제자들이 지금쯤은 모두 연락을 받았을 것이니
그 중놈들이 하늘을 나를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이상 우리 천용방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오.
양제께서는 심려 마십시오, 빠르면 오시(午時)에 늦어도 오늘 밤 안에
그들의 행방을 기필코 찾아내고야 말겠소.」
양몽환은 마음이야 조급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이 대답했다.
「우총타님과 도형께서 하림 소저를 찾아내려다 뜻밖에도
화상들에게 화를 입어 도리어 두 제자마저 살해되었으니 뵐 낯이 없소이다.」
「별 말씀을 다 하시는 구려?
이 일은 이미 양형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닙니다.
본방에도 인명의 피해를 입었으니 본방으로서도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는 일이오.
천하의 사원을 샅샅이 뒤져 그 중놈을 찾아내고야 말겠소.」
하고는 양몽환의 표정을 살핀 후 도옥을 부르는 것이었다.
「도향주(陶香主)! 양노제(楊老弟)의 일은 여기서 의논할 것 없이
배로 돌아가서 계책을 세우심이 어떻겠소?」
「그것도 좋은 말이오.」
이때 청의의 장정이 도옥의 적운 추풍구와 같이 기다리다가 허리 굽혀 인사를 했다. 도옥이 말고삐를 받아 쥐고 양몽환과 나란히 걸어가자 우홍비는 이들의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이 강가에 이르렀을 때 이오가 바삐 나와 막으면서 도옥을 불렀다.
「지금 막 연락을 받았는데 그 두 중놈들이 남창 동북 이십 리 지점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뭐라고? 틀림없나?」
도옥이 묻자 이오는 허리를 연신 굽히며 벌벌 떨었다.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도옥은 고개를 끄덕인 후 우홍비에게
「우총타(尤總舵)는 수로(水路)로 가시오. 나는 양형과 함께 적운 추풍구를 타고 육로로 가겠소.」
하고는 말에 먼저 오르고
「양형도 오르시오.」
정중히 재촉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도옥의 얼굴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부드럽게 변했다.
(나에게 말할 때는 항시 웃는 빛이나 도옥의 속마음은 알 길이 없으니 앞으로 좀 조심해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데 도옥의 재촉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양몽환은 머리를 숙여 보인 후 말 위로 훌쩍 올랐다.
도옥이 말고삐를 쥐는 순간 적운 추풍구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삽시간에 이십 여리를 달려 도옥은 말고삐를 늦추며 말을 세웠다.
양몽환을 돌아보며 웃으면서 말했다.
「두 중놈이 북쪽으로 가려면 파양호(?陽湖)를 건너야 하는데
이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 제 생각으로는 십중팔구
여기서 지름길을 택하여 서북으로 돌아 장강(長江)을 건너 낙화(樂化)를 지나
구령(九嶺)산맥으로 들어 갈 것 갔소.」
「소제는 강호지방은 초행이오, 도형의 생각대로 하구려.」
「수사 이오의 보고가 틀림이 없고 내 생각이 적중 한다면 점심때쯤에는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오.
만일 그들이 이 길로 들어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우리 천용방의 울타리를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오.」
하고는 말 머리를 서북쪽으로 돌렸다.
적운 추풍구가 달리자 말에 탄 양몽환은 마치 구름을 탄 기분이었다.
때였다.
갑자기 도옥의 말소리가 들렸다.
「과연 내 생각이 맞았구려, 저기 두 중놈이 가고 있지 않소.」
양몽환은 앞에 앉은 도옥에 가로 막혀 앞이 잘 보이지 않아
고개를 옆으로 돌리려 하는 데 갑자기 도옥이 마치 날쌘 제비처럼
몸을 날려 삼장(三丈) 밖의 길 위로 뛰어 내리는 것이 아닌가.
이 바람에 말도 멈추는지라 양몽환이 얼떨떨하여 앞을 바라보니
도옥이 길을 가로 막고 있고 그와 삼척(三尺)되는 곳에 두 중이 서있는데
한 중녀석은 키가 팔척(八尺)인데다가 어깨에는 선장(禪杖)을 매고 있고
또 다른 한 녀석은 오척(五尺)단구인데 등에 계도(戒刀)를 메고 회색 승복을 입고 있었다.
도옥은 길을 막고 양몽환에게 빨리 오라고 불렀다.
양몽환은 말에서 내려 도옥의 옆으로 가 두 중놈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키가 큰 놈은 얼굴이 솥밑 같이 새까맣고 생김새가 몹시 흉악했다.
그리고 작은 놈은 얼굴이 황토 같이 누렇고 꼬챙이처럼 말랐으나 눈에서는 빛이 나고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도 내공의 힘을 지닌 것을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두 중놈은 침착한 태도로 도옥과 양몽환의 태도를 살핀 후
적운 추풍구를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말이 상당히 좋구려.」
「그렇습니까? 대사님! 그러면 제 말을 드리지요.」
라고 도옥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때 작은 중놈이 연거푸 ‘하하하’ 하고 웃고는
「출가인(出家人)은 도보가 습관이라 말은 좋지만 우리들에게는 필요가 없소이다.
시주님의 호의는 감사하오.」
도옥이 양몽환에게 작은 소리로
「양형, 주의 하시오. 이 놈들이 아무래도 수상하오.」
하고는 금환검을 빼어 들고 표변했다.
「남창 열래 여관에서 본방의 제자를 살해한 것은 네놈들의 짓이지?」
작은 중은 쥐 눈을 반짝거리며 교활하게 웃었다.
「무슨 말씀을?……우리는 중이오.」
「그러면 당가집 묘지에서 곤륜파의 제자를 잡아가고
본방 네 명의 제자에게 중상을 입힌 것도 아니란 말이냐?」
「출가승(出家僧)으로 어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작은 중이 대답하자 양몽환은 더 참지 못하고 한걸음 나섰다.
「네놈들은 불문의 가사를 뒤집어쓰고 살인 겁색(劫色) 못된 짓만 하는구나.
그 소저를 어디다 두었느냐?」
한 참 말이 없던 큰 중이 이때 비로소 입을 열었다.
「시주께서는 백의를 입은 소저를 말씀 하시는 것이옵니까?」
「그렇다! 지금 어디에 있느냐?」
큰 중은 껄껄 웃으며
「아마 당신의 생전에는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없을 줄로 아오.」
이 말을 들은 양몽환은 화가 치밀어 검을 빼어 공격 하려는 찰나,
도옥이 먼저 금환검을 뽑아 작은 중의 가슴을 찌르는 것이었다.
작은 중은 날쌔게 도옥의 금환검을 피하며 계도를 뽑아 들었다.
중의 동작은 무척 빨랐다.
그러나 도옥은 더욱 비호라 계속하여 공격하자
작은 중은 일장 밖으로 피해 도망갔다.
양몽환은 검을 든 채 도옥의 싸움을 관전하며 내심 도옥의 검술에 탄복해 마지않았다.
작은 중도 보통은 아니었다.
도옥의 선수에 일단 물러났다가 다시 도옥을 향하고 검을 휘두르며 들어오는 데
그 무술이 또한 굉장하여 우열을 가리기 곤란했다.
두 사람은 잠깐 사이에 벌써 이십여 합을 싸웠다.
도옥은 싸우면서도 상대방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옥은 검법을 바꾸어 이창란(李滄欄)이 가르쳐 준 진환삼절(進環三絶)수를 써서 공격 하자
작은 중은 도옥을 당해내지 못하고 한쪽 어깨가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삼절수는 이창란(李滄欄)이 평생을 두고 연마한 검술이었다.
도옥은 어릴 때부터 전수받아 수년간 닦아온 무술인바 오늘 처음으로 써 본 것이다.
이때 황급히 양몽환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도형! 조심하시오!」
도옥이 양몽환의 주의를 듣는 순간,
단도 세 개가 휙휙 그의 옷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마터면 적중 할 뻔 했다.
한 팔이 잘린 작은 중이 단도 세 개를 연거푸 날린 것이었다.
이때를 이용하여 큰 중이 철선장으로 공격했다.
도옥은 슬쩍 공격을 피하며 뒤로 물러났을 때였다.
도옥이 작은 중의 팔을 자른 후부터 한 번 싸우고 싶던 양몽환이
도옥이 다시 공격하기 전에 검을 들고 소리치며 앞으로 달려 나온 것이었다.
「도형! 이 중 놈은 제게 맡기시고 좀 쉬시오!」
도옥이 웃으면서 금환검(金環劍)을 거두자
양몽환은 장검을 빼어들고 키 큰 중에게 달려 들어갔다.
큰 중은 영운봉월(迎雲逢月)의 수로 양몽환의 장검을 막고는 철선장을 내려 쳤다.
재빨리 피한 양몽환은 추혼십이검법(追魂十二劍法)중의 영풍단초(迎風斷草)의 수로 내리쳤다.
그러자 사오척이나 뒤로 나가떨어지며 철장을 떨어뜨리고 입에서 피를 내뿜었다.
세수에 그만 상대방을 해치우는 양몽환의 검술을 본 도옥은 마음속으로
감탄과 질투로 엇갈렸지만 겉으로는 웃으면서,
「곤륜파의 검술이 대단하오. 소제는 감탄하였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양몽환은 쓰러진 중에게 다가가 칼을 앞가슴에 댄 채 도옥을 보며
「별 말씀을 다 하시는 구려. 소제의 검술은 도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오.」
그러나 도옥은 담담히 웃을 뿐 대답을 하지 않고 천천히
양몽환의 옆으로 다가 와서 중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큰 소리를 치더니…… 이런 풋내기 인줄 몰랐군.」
하고는 눈을 부라렸다.
「백의 소녀를 어디다 두었느냐?」
큰 중은 피를 토하며 히죽 웃고는
「모른다. 죽이던지 살리던지 네 마음대로 해라.」
이때 어깨가 떨어진 작은 중은 도옥의 눈을 피하여 달아나려는
눈치를 챈 도옥은 바른 손을 들어 금환 하나를 집어 던졌다.
드디어 처참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도옥은 껄껄 웃으며 뛰어가 금환을 뽑아 승복에 피를 깨끗이 닦고
적운 추풍구를 끌고 돌아와 양몽환을 보고 웃으면서
「한 놈은 먼저 황천으로 보내고 한 놈 남았으니 천천히 해치웁시다.
여기는 관도(官道)라 지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조용한 장소로 옮겨 이야기나 나눕시다.」
하고는 중을 질식시켜 말에 태웠다.
양몽환은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도옥이 하는 대로 맡겼다.
도옥은 한적한 곳으로 말을 끌고 가서 중을 내려놓고는 그의 몸을 주물렀다.
그러자 얼마 후에 깨어났다.
도옥은 만면의 미소를 띠우고
「스님! 우리 서로 좋게 지내는 것이 어떻겠소?
소녀가 있는 곳만 가르쳐 주면 살려 주겠소.」
그러자 중은 고개를 흔들며
「소승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소!」
그러자 도옥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
「좋아! 맛을 좀 봐야 정신을 차리겠지, 네 놈이 얼마나 견디나보자.」
하고는 양몽환을 쳐다보고 싱긋이 웃고는 한두 번 중을 발길로 찼다.
그리고는 허리띠를 풀러 두 발을 꽁꽁 묶어 굵은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놓았다.
그리고 바로 밑에 마른풀을 모아 불을 놓았다.
매운 연기에 콧물과 눈물이 뒤범벅이 되고 말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양몽환은 비록 중이 나쁜 인간이라 할지라도
이런 짓은 너무 잔인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도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매우 즐거운 듯이 만면에 웃음을 띠우고 득의양양해 있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자 같은데 마음은 몹시 지독하구나)
하고 도옥의 잔인성에 머리를 흔들었다.
중이 용서해 달라고 외치자 도옥은 그를 나무에서 내려놓고 웃으면서
「어떠냐? 그래도 말하지 않겠다면 새로운 방법을 맛보여 주지!」
그제야 중은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제발……… 소녀는 벌써 우리 패들이 데려 갔소.」
「그러면 너의 패가 또 있단 말이냐?」
「그렇소! 당신에게 말씀드리지만 그 소녀는 다시 찾아오지는 못할 것이요.」
「이놈, 그럼 어디에 있느냐?」
「당신들이 정 그 소녀를 만나려거든 대호산(大湖山) 청풍사(靑風寺)에 가서
주지 일명선사(一明禪師)를 찾으시오……」
하고는 잠시 후에 다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 밖에 없소.」
「곤륜파의 여제자가 청풍사에 있다는 말이냐?」
「확실히는 모르지만 청풍사를 찾아 가면 알게 될 것이오.」
순순히 자백했다.
「알았다. 그럼!」
도옥은 칼을 뽑아 중의 목을 쳐버렸다.
그러자 피가 낭자하고 목은 팔구 척 밖에 나가 떨어졌다.
양몽환이 말리려 하였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도형! 도형께서는 중의 말을 믿는 다는 말이오?
필시 우리를 속였을지도 모르오.」
도옥은 금환검을 다시 칼집에 넣고 나서 웃으면서 대답했다.
「물론 옳은 말이오, 나 역시 중의 말을 믿지 않는다오.」
「그렇다면 죽어버린 중에게 다시는 사실을 물을 수 없지 않소?」
「저 놈은 교활하여 다시 물어도 실토하지 않을 것이오.
그가 대호산 청풍사의 일명 선사를 말한 것은 첫째로 화를 남에게 전가하려는 것이고
둘째로는 우리를 헛고생만 시키려는 것일 것이오.
일명선사께서는 일대의 괴걸로 퍽 많은 도적들을 회개시켜 그의 문하에 두지 않았소?
저 놈이 일명 선사를 아는 걸 미루어 일명 선사도 저놈들의 출신을 알고 있을 것이오.
저 놈은 이미 죽어 버렸지만 우리가 그들의 모습을 알고 있으니
일명 선사를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 연후에 저놈들의 신분을 물어 봅시다 그려.
만일 그 놈들도 한패라면 그때 해치우면 되지 않겠소?
하림 소저를 찾으려면 아무래도 청풍사에 한번 가봐야 하겠소.
양형의 생각은 어떠하오.」
양몽환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머리를 끄덕이며
「소제는 도형의 고견에 그만 감복 하였소. 자 우리 그만 출발 합시다.」
「양형의 심정이 뜨거운 솥에 든 개미 같은 심정인데
어찌 천금같은 시간을 헛되이 하겠소?」
웃으며 적운 추풍구를 끌고 와 말에 올라타면서
「어서 타시오. 낙화에 사서 점심을 들고 밤까지는 구령 산맥에 들어가도록 합시다.」
「산길이 상당히 험하겠는데……」
「산이 험한들 적운 추풍구가 그쯤 못 넘어 가겠소.
양형, 걱정 마시고 어서 타시오.
내일 점심 전에는 대호산에 도착 할 수 있을 것 같소.」
양몽환은 말에 올랐다. 도옥이 고삐를 쥐자 말은 질풍같이 달려
잠깐 사이에 삼십 리를 달려 장강(長江)강변에 이르렀다.
도옥은 강변에 말을 세우고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양몽환은 이 휘파람소리 이것이 천용방의 암호인가 하고 생각하는 바로 그때였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니면 미리 대기하고 있었는지
강가의 갈대밭 속에서 두 척의 배가 이 쪽을 향해 오는가했는데
어느덧 강가에 닿아 버렸다.
도옥이 양몽환의 손을 붙잡고 배에 오르자 다른 배에 타고 있던
두 사람이 도옥의 적운 추풍구를 배에 태우고는 순식간에
도도히 흐르는 장강을 건넜다.
강가에 내린 도옥은 배를 젓던 장정들에게 분부했다.
「우총타 어른을 뵈면 내가 곤륜파의 양몽환과 같이 대호산 청풍사로 갔다고 일러라.」
말을 마친 도옥은 말에 오르자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양몽환의 손을 붙잡아 올려 말에 태우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것은 마치 광풍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도옥은 적운 추풍구의 재주를 양몽환에게 보여 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
더욱 더 빨리 달려 낙화에서 쉬지도 않고 그냥 달렸다.
말이 어찌나 빠른지 길을 가던 사람들은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다만 뽀얀 먼지 뿐 말 위에 어떤 사람이 타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거의 이백 여리의 거리를 달려 왔을 때 도옥은 말을 세웠다.
여기는 구령산맥 근처의 고호집(高湖集)이라는 곳이었다.
해는 겨우 미시(未時), 한 시간 동안에 이백 리를 달려온 셈이다.
말에서 뛰어 내린 도옥은 앞에 가로 막힌 산을 가리키면서
「앞에 보이는 높고 험한 구령산맥(九嶺山脈)을 넘어 가려면
의령(義寧)을 지나 다시 백여 리의 산길을 가야만 대호산에 이를 수 있으니
아직도 육칠백(六七百)리는 더 달려야 하겠소.」
양몽환은 심소저의 신변이 매우 걱정스러워
한시라도 빨리 대호산에 가고 싶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러면 우린 오늘 밤에 도착하지 못하겠구려.」
「육칠백 리 산길에 얼마나 장애물이 있을지 모르지만 하루 낮 하루 밤은 걸릴 것 같소.」
양몽환은 이 말을 듣자 얼굴이 좀 붉어졌다. 이것을 본 도옥은
「염려 마시오! 내게는 적운 추풍구가 있지 않소?
내일 오경(五更)전에 양형을 대호산에 모셔 드리겠소.
하림 소저가 청풍사 안에 있다면 날이 밝기 전에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오.」
하고는 웃으면서 양몽환의 손을 끌고 어느 주막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요기를 마치고 도옥은 건량(乾糧)을 사 가지고 나와 말에 올라타자
적운 추풍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을 보고 울부짖고는 나는 듯이 달려갔다.
잠시 후에 높은 산에 당도한 도옥 일행은 첩첩산중에 구름과 산이 이어져 있을 뿐
얼마나 길이 먼지 알 수 없다.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길은 점점 더 험해졌다.
그러나 적운 추풍구는 두 사람을 등에 태우고도 이 험준한 산을 평지와 같이 달렸다.
이렇게 달리기를 한 시간 정도 지나 도옥은 말을 멈추고
양몽환과 말에서 내려 잠시 쉬고는 다시 계속하여 길을 재촉했다.
어느덧 해는 저물고 동녘 하늘엔 밝은 명월이 떠올랐다.
양몽환은 한 몸에 두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말이 가엾은 생각이 들었으나
도옥은 쉬지 않고 더욱 더 빨리 달릴 뿐 쉬려고도 하지 않았다.
양몽환은 미안한 생각이 들어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도형! 적운 추풍구는 명마 중에 명마라 하겠지만
이렇게 달리면 적운 추풍구 역시 감당해 내지 못 할 것 같소,
좀 쉬었다 가십시다. 내일 간다 하더라도 늦지는 않을 것 같소.」
도옥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지금 양형의 심정은 대호산 청풍사에 가 있을 텐데……」
양몽환은 중을 죽이던 그 잔인함과 자기에 대하는 친절이 아무래도 석연치 않았다.
한동안 생각하다가 진정으로 감격하며
「도형께서 이 양몽환에 대한 정과 의(義)에 대한 보답을 할 날이 있을까 염려되는구려.
이 우정은 영원히 마음에 아로 새기어 남아 있을 것입니다.」
도옥은 양몽환을 돌아보면서 정색하며 여유 있게 웃었다.
「지기지간(知己知間)에 어찌 구별이 있겠소?
그러면 좀 섭섭한 생각이 드는구려.」
양몽환은 천성이 순진하여 도옥의 이 말에 대답을 못하였다.
그러나 재치가 있는 양몽환은 자기의 궁박한 처지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금방 찾아내었다.
「도형께서는 도형의 사매가 당신에게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소?」
도옥은 웃으면서
「제 사매 이요홍(李瑤紅)은 여장부라 할 수 있지요.
무술도 그렇고 용모도 아름답다오.
나와는 어려서부터 같이 자라나서 사이도 좋습니다만
아직 정(情)이고 사랑이고 하는 것은 느껴보지 못하였다오.
나는 몇 년 동안 강호를 돌아다니면서 적지 않은 절세미인을 보아 왔지만
내 사매보다 예쁜 미인은 보지 못 하였소.
다음에 기회 있으면 제가 소개해 드리리다.」
양몽환은 이미 이요홍을 만나 보았다고 말하려다 그만 두었다.
만일 사실대로 말을 한다면 혹시 그들 간에 오해라도 일으킬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다음에 이요홍을 만나게 될지라도 좀 더 주의 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다시 말을 탄 두 사람은 삼경(三更)이 되기 전에 구령산맥을 넘어
우영현성(省)에 이르러 잠시 쉬며 땀을 씻은 다음 다시 말을 달렸다.
얼마 후에 막부(幕阜)산맥을 지나 오경 전에 대호산(大湖山)에 도착했다.
그러나 사람과 말이 땀으로 목욕을 한 듯 흠뻑 젖어 있었다.
오늘밤 비로소 적운 추풍구가 자기의 최대 역량을 발휘한 것 같았다.
이때 적운 추풍구의 목을 쓸어 주며 얼굴을 비비던 도옥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갑자기 비통해지며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옆에 서 있던 양몽환은 저 사람이 어째서 금방 웃다가 우는지 이상하게 생각되어
「도형! 왜 그러시오?」
라고 물으며 달려가자 도옥은 급히 눈물을 닦으며
「이 적운 추풍구도 몇 달 후에는 내 것이 아니라오.」
하고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웃는 것이었다.
「내 사매에게 주어도 마찬가지겠지,
그녀는 천하일색의 미인이니까.」
울다가 웃다가 종잡을 수 없이 변하는 얼굴에는 득의만만한 미소를 띠우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도옥의 태도를 보고 마음속으로 불안 하였으나 아무 말도 않고 다만
담담한 미소로서 답하고 말았다.
두 사람은 건량(乾糧)을 꺼내어 돌 위에 앉아 나누어 먹었다.
양몽환은 건량을 먹으면서 앞에 보이는 높다고도 말다고도 할 수없는
첩첩 산중에서 청풍사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은근히 근심이 되었다.
도옥은 양몽환이 청풍사의 일명 산사를 찾지 못 할까
걱정하는 줄 알고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양형의 얼굴에 근심이 있는 것은 청풍사를 찾지 못 할까봐 그러는 것 같은데?……」
양몽환은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 수 십 리나 되는 넓은 땅,
수많은 골짜기를 어떻게 전부 찾아다닐 수 있겠는지 적이 근심이 되는 구려」
도옥은 큰 소리로 웃으며
「그것이 뭐 걱정된다고 그러시오?
대호산에 와서 청풍사를 찾지 못할까봐 그러시오?
아니 사냥꾼이나 나무꾼을 만나 물어 보아도알 것이오.
만일 사냥꾼이나 나무꾼을 만나지 못 한다 하더라도
내게 청풍사를 찾을 방법이 있으니 염려를 마시고
여기서 쉬었다가 원기를 북돋아 가지고 가십시다.
일명 선사를 만나 한바탕 싸워야 될지도 모르니 말씀이오.」
하고는 지그시 눈을 감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그의 말을 듣고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그냥 앉아있었다.
두 사람은 내공의 힘을 발휘하여 원기를 되찾자 피곤이 씻은 듯 가시었다.
도옥은 몸을 일으켜 웃으면서
「자, 청풍사를 찾아 떠납시다!」
하고는 경신술을 발휘하여 앞에 보이는 산을 향하여 건너뛰었다.
양몽환도 도옥을 따라 뛰어 가면서 뒤를 돌아보자
적운 추풍구 역시두 사람을 쫓아 달려오는 것이었다.
도옥의 경신술은 대단했다.
옷자락이 바람에 날리는 것만 보이는데
마치 날쌘 제비가 구름을 차고 나는 것 같이
순식간에 수 십 장이 넘는 산 위에 올라 서 있는 것이었다.
그는 양몽환이 아마도 쫓아오지 못하는 줄 알고 돌아보았으나
양몽환 역시 놀랍게도 자기보다 다섯 자 뒤에 서 있지 않는가.
도옥은 담담히 웃으며 다시 상봉을 향하여 자기의 온갖 힘을 다해
지금보다도 몇 배 빠르게 달려 상봉에 올랐다.
그러자 양몽환은 일장이나 뒤에 처져있어 도옥은 내심으로 기뻐했다.
이 때 해는 동녘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상봉에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온 하늘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찬란하고 햇빛을 받은 나무는 마치 새로 생기를 얻은 듯 했다.
도옥은 양몽환에게
「해는 떴는데 나무꾼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으니
할 수 없이 대호산을 풀 한포기 남기지 않고 다 태워 버리면 어떻겠소?」
양몽환은 미처 대답을 못했다.
그러나 다시 도옥은 북방을 가리키면서 웃었다.
「저기 붉은 담이 보이는 구려, 묘(廟)같이 보이니
우선 가보고 다시 이야기 합시다.
만일 청풍사가 아니면 화공법을 써 보는 수밖에 없지.」
양몽환의 대답도 듣지 않고 북쪽을 향하여 뛰어 나갔다.
양몽환도 도옥을 따라 달려갔다.
그곳에는 규모가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아담한 절이 한 채 있었다.
얼마 후, 절 앞에 당도한 두 사람 앞에는 금자(金字)로 청풍사(淸風寺)라 쓴
현판이 붙어 있는 기둥 앞에 섰다.
그리고 붉은 색을 칠한 둥근 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다.
그 문에서는 대전까지 들여다보였다.
이 절은 대전까지 합해도 팔구간(間)에 불과 하고 붉은 벽돌담에다
흰 돌로 길을 깔고 뜰에는 송죽(松竹)이 빽빽이 심어져 있었다.
아마도 이 절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절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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