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8 장 일명선사와의 운명의 만남

오늘의 쉼터 2014. 6. 22. 12:15

제 8 장 일명선사와의 운명의 만남

 

 

도옥은 앞장서서 앞뜰을 지나 일곱 돌층계를 올라 대전으로 들어갔다.

초롱 등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고 향로에서는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세밀히 관찰한 결과는 대전 안이 상당히 단조롭다는 것이었다.

도옥은 양몽환을 바라보며

「일명 선사는 고승인 것 같구려.」

하는데 뒤에서

「두 분께서는 어디서 온 분인데 무슨 일로 일명 선사를 찾으시는지요?」

하는 냉랭한 소리가 들려 왔다.

  도옥과 양몽환은 깜짝 놀라며 돌아 섰다.

  대전 문 앞에 삼 십세 정도의 승복을 입은 중이 서 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몹시도 말랐으나 눈에서는 광채가 나고 있다.

  도옥이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띠우며

 

「대사님의 경공(輕功)이 훌륭하시구려. 언제 오셨는지 저희들은 전혀 몰랐으니까요.」

 

  대답하면서 중에게 다가 갔다.

그 중은 도옥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경계하는 표정 이었다.

  양몽환은 며칠간 도옥과 사귀어서 그의 성격을 아는지라

혹시나 일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해서 재빨리 도옥을 가로 막고 예를 갖추어

 

「저는 곤륜파의 문하생 이옵고 이 분은 천용방의 향주 도옥 형님입니다.

우리가 일명 선사님을 뵙고자 하는 것은 악의가 있음이 아니라

다만 한 가지 여쭈어 볼 일이 있어서 찾아 왔습니다.」

 

  찾아온 뜻을 말했다.

 

「두 분께서 일명 선사님을 찾아 오셨다면 대사님을 만나는 규칙정도는 아실 터인데.」

 

「저희들은 그것을 몰랐소이다. 스님께서 하교(下敎)하여 주십시오.」

 

  중의 얼굴에는 의아하다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어떤 사람이 당신들을 보냈는지 모르지만 그런 예의도 가르쳐 주지 않았단 말이요?」

 

  양몽환은 지금까지의 일을 전부 말하여 주려고 하다가 그만 두었다.

만일 이 중과 일명 선사 사이에 관계가 있다면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났다고 생각되어

한참 동안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 중은 양몽환이 아무 말을 못하는 것을 보더니 노한 소리로

 

「당신은 왜 대답도 없이 가만히 있소.

그렇다면 일명 선사를 만나려는 생각을 버리시오」

 

  도옥이 양몽환의 뒤에서 웃으면서

 

「우리가 대호산 청풍사까지 찾아 왔는데 일명 선사님을 만나 뵙지 못한다니 말이 되오?

청풍사 이 좁은 곳에서 피한다 하더라도 어디로 가겠소.

공연히 허세를 부리면 절간도 한 줌의 재로 만들고 말 것이오.

선사님을 조용히 만나게 해주는 것이 좋을 거요.」

 

  그러자 중은 쌀쌀하게

 

「그럼 한 번 해 보시지?」

 

  도옥이 깔깔 웃으며

 

「내가 못 할 줄 아는 모양이군? 자 그럼 내가 불길을 보여 주마?」

 

하고는 정말 품속에서 부시를 꺼내어 불을 놓으려고 했다.

 

  이때 양몽환은 재빨리 도옥에게 달려와 손을 잡았다.

 

「도형 이게 무슨 짓이오. 할 말이 있으면 좋은 말로 하면 되지 않소?」

 

  도옥은 양몽환의 간곡한 사정에 부시를 거두면서

 

「양형님이 아니면 내 이 절을 불살라 일명 선사가 내게 대하는 꼴을 보려고 하였는데.」

 

  중은 도옥이 부시를 꺼내어 불을 지르려 할 때 저지하려고도 않고

두 눈만 크게 뜨고 바라보며 웃고만 있었다.

그는 도옥이 불을 지를만한 담이 있나 없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는 양몽환이 도옥을 만류하여 도옥이 부시를 도로 거둘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비로소 쌀쌀히 물었다.

 

「당신들은 정말 일명 선사를 찾아뵙는 규칙을 모르오?」

 

  양몽환은 정색을 하며

 

「정말 모릅니다. 대사께서 가르쳐 주시오. 누가 규칙이 있는 줄이나 알았습니까?」

 

  중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거만스럽게 웃었다.

 

「두 분 다 정말로 규칙을 모르는 것 같아 용서하겠소만

일명 선사님을 쉽게 만나 뵙기는 어려울 것이오.」

 

하고는 몸을 돌려가려고 했다.

  양몽환이 황급히 달려가

 

「대사님 , 잠깐만!」

 

  중이 몸을 돌리자 양몽환은 정중히 읍을 하고는

 

「우리는 천리 밖에서 일명 선사님을 찾아뵙고 지도를 받고자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하오니 대사님께서 너그러이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읍을 했다.

  중은 눈을 껌벅거리더니

 

「당신네들이 꼭 일명 선사를 만날 작정이라면 이곳에서 살아야 하오.」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도옥은 왼손으로 비폭류천(飛瀑流泉), 오른손으로 분운취월(分雲取月)의

두수로 일격을 가해 버리고 말았다.

  도옥의 재빠른 공격에 놀란 중은 몸을 날려 뒤로 물러났다.

  도옥이 손을 멈추고 웃으며

 

「난 또 무슨 대단한 규칙이라구,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진작 말 했으면 시끄럽지 않지!」

 

하고는 상대방의 대답도 듣지 않고 옷자락을 펄럭이며 주먹과 발로 중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중도 이번에는 물러나지 않고 왼손으로 거호문외(拒虎門外)의 수로

도옥의 공격을 막아내고 오른손으로는 홍안서익(鴻安舒翼)의 수로 바른 쪽 어깨를 내려 쳤다.

그러나 도옥은 그의 역습을 가볍게 피하고는 두 손을 합쳐 무서운 장풍을 일으켰다.

중은 얼떨떨했다.

  중은 도옥의 이 무거운 힘에 감탄해 마지않았다.

이 여자 같이 예쁘장한 사내에게 크게 당하는구나 하고 생각되는 찰나,

도옥의 두 손이 한 번에 혈도를 내려쳤다.

  중은 재빨리 몸을 뒤로 날려 겨우 철추 같은 주먹을 피하였다.

  도옥은 공격을 멈추면서 웃었다.

 

「어떠냐? 한 번 더 겨루어 볼 생각이 있냐?」 

 

  그러자 중도 만만치 않았다. 도옥의 말을 듣고는 냉소를 터뜨리며 쌀쌀히 대답했다.

 

「갑자기 먼저 수를 쓰는 걸 무슨 재주라 할 수 있겠느냐?

 어디다시 한 번 겨루어서 만약 내가 지면 일명 선사님께 안내하여 주겠다. 어떠냐?」

 

  도옥은 중이 아직도 굴복하지 않는 데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곁으로는

태연히 웃으면서 대답했다.

 

「대사님 말씀이 옳습니다. 자 그럼 몇 합 더 싸워 보실까요?」

 

하고는 웃으면서 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었다.

 

  서너 발자국 되는 거리에 왔을 때 번개처럼 몸을 굽히며 바른 손을 날려

쌍용취주(?龍取珠)의 수로 두 눈을 찔렀다.

  중은 도옥의 반격을 기다렸다는 듯이 탁발도강(託鉢渡江)과 배산운장(排山運掌)의 수로

날카롭게 반격을 가했다.

  두 사람은 각 가지 묘수를 써서 공격과 반격을 교환했다.

중은 어쩐 셈인지 싸울수록 점점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도옥이 좀 지친 것 같이 보이자 양몽환이 대신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십여 합을 싸웠을 때 도옥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양형! 저 중놈의 주먹 쓰는 법을 잘 보십시요. 전에 그 두 중놈들과 같지 않소?」

 

  양몽환이 유심히 보니 과연 그렇다.

하림을 빼앗아간 중놈들과 똑같은 수법인 것으로 미루어 이들은 한 패거리임이 분명했다.

 

「양형! 좀 쉬시구려. 제가 마자 해치우지요.」

 

하고 양몽환을 제지하며 다시 뛰어 들었다.

 

  도옥은 중을 노리고 돌면서 무섭게 공격하는 것이었다.

  도옥의 무술은 과연 감탄할 만했다.

이창란이 필생의 심력을 기울여 연구해낸 절기(絶技)인

삼십 육가지의 비나권(飛拏拳)이라는 수법을 쓰고 있었다.

  수법은 수월산장(水月山莊)에서 하림이 우흥비와 싸울 때 쓰던

유운장(流雲掌)과 비슷하나 그 초술신법(招術身法)이 오묘하여

유운장에 비하면 몇 십 배나 더 훌륭한 것 같다.

  양몽환은 도옥이 중을 죽여 버리면 일명 선사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아

급히 제지하려는 찰나,

도옥은 중의 기문혈(期門穴)을 찌르고 말았다.

그러자 중은 맥없이 쓰러지는 것이었다.

흥분된 도옥은 양몽환을 향하여

 

「왜 그렇게 서 계시오,

내가 지독하게 여겨져 그러우?

만일 모두 양형과 같이 인자한 마음만 갖고서야 어떻게 되겠소.

내가 적을 죽이지 않으면 적이 반드시 나를 죽이는 거요.

그러하니 내 말을 앞으로 명심해 들어 두시오.

강호에는 이 도옥 보다 더 지독한 사람이 많이 있다오.

어질게 대하다가 적에게 반격을 당하고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는 일,

그저 황천땅을 밟는 것뿐이오.」

 

  양몽환은 고개를 흔들며

 

「아니, 나는 그런 뜻이 아니라 그 중놈이 죽어버리면……」

 

「죽어 버린다면 우리가 일명 선사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군,

기문혈은 사혈(死穴)이 아니요, 좀 지나면 깨어나게 될까요.」

 

  양몽환은 도옥의 말을 듣고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었다.

과연, 얼마 후에 그 중은 천천히 깨어났다.

  양몽환은 중 옆으로 가서 앉아 혈도를 뚫어 주려고 하는데

중은 양몽환의 손을 치면서 아니꼬운 듯이

 

「친절하시군. 나 혼자서 할 수 있으니 염려 마시오.」

 

하고 억지로 일어나 않아서 눈을 감고 내공의 힘을 조절하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무안한 듯 뒤로 물러서자

도옥은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중의 옆으로 가 혈도 뚫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중은 시간이 좀 지나자 눈을 뜨고 서서히 일어나 도옥을 보고는

 

「당신에게 졌으니 당신만 일명 선사님께 데리고 가겠소.

당신 동행은 못 데리고 가니 그렇게 아시오.」

 

  양몽환은 당황하여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불원천리하고 우리는 일명 선사님을 뵈려고 함께 먼 길을 찾아 왔는데.」

 

  그러나 도옥은 고개를 흔들었다.

 

「양형! 중놈은 내가 기운이 빠진 줄 알고 해치울 모양인데 난 끄떡없소.

걱정 마시고 기다려주시오. 그러면 내가 일명 선사를 끌고 나오리라.」

 

「도형 혼자선 위험천만이요, 나도 동행하리다.」

 

  도옥이 웃으며 중을 쳐다보자 중은 입가에 싸늘한 웃음을 띠우고 대전 뒤쪽으로 걸어갔다.

  두 사람은 급히 중의 뒤를 따랐다. 후문을 통해 수림사이를 지나 험한 절벽으로 내려갔다.

  양몽환은 일명 선사가 절에 있지 않고 어째서 험한 산 밑에 살고 있을까 하고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도옥의 표정도 이상하게 느끼는 듯 했으나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걸어만 갔다.

  중은 두 사람을 데리고 절벽을 내려와서 다시 꾸불꾸불 몇 바퀴나 골짜기를 빠져가고

점점 길은 좁아졌다.

  그리고 나중에는 겨우 한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아졌다.

  도옥은 만일 무슨 일이라도 있으면 내려칠 듯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조심스럽게 중의 뒤를 따랐다.

  그러나 중은 아무 일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다시 얼마를 더 가자 눈앞에 큰 봉우리가 가로 막고 있는 산 중간에

넓은 초원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걸음을 멈춘 중은 한 굴 입구를 가리키며

 

「일명 선사님은 저 굴 속에 계시는데 죽음이 두렵지 않거든 가보시지!」

 

  빈정대듯 말했다.

 

  도옥은 그 중이 가리키는 석동(石洞)을 자세히 보았다.

입구는 약 사오 척 정도 되고 오른 쪽으로 꾸부러져 있어 안은 매우 캄캄했다.

양몽환이 먼저 입구에 가서

 

「도형!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제가 들어가 보리다.」

 

  그러나 도옥은 양몽환을 말리며

 

「심산유곡에는 원래 독사와 맹수류가 많이 있는 법이오,

중에게 물어 보고 나서 들어가도 늦지 않을 것이오.」

 

  그러자 중은 도옥이 묻기도 전에

 

「승려는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오.

굴속엔 독사, 맹수가 우굴 거리지만 당신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오.

만일 무서우면 굴에 들어가지 말고 곧장 돌아가는 것이 좋지 않겠소?」

 

  도옥은 얼굴이 붉어지며

 

「무섭지 않다, 다만 굴속에 일명 선사가 없으면

내가 나와서 너를 찢어 죽일 테니 그렇게 알아라.」

 

  중은 앙천대소하며

 

「하하 네가 굴에 들어가면 살아나올 줄 아느냐!……」

 

  도옥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눈을 부라렸다.

 

「양형! 이 중놈을 놓치지 말고 지키고 계시오.

내 굴 안에 들어가 보고 만일 사람이 없으면 나와서 이놈을 그냥 두지 않겠소.」

 

하고는 번개 같이 굴속으로 들어갔다.

 

「도형! 나도 들어가겠소.」

 

하고 안으로 뛰어 들려고 하자

 

  중이 양몽환을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당신 둘 중에 한 사람은 남았다가 시체를 거두어야 하오,

기어코 죽으려거든 저 사람이 죽은 다음에 들어가 죽어도 늦지는 않을 것이오.」

 

  양몽환은 중을 노려보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당신은 왜 저 사람이 꼭 죽는다는 거요?」

 

  중은 허허 웃으며,

 

「믿어지지 않으면 좀 두고 보시오.」

 

  양몽환은 중의 손을 뿌리치고

 

「나는 믿지 않는다.」

 

하고는 굴속으로 뛰어 들자

 

  재빨리 입구를 막아서면서 꾸짖는 것이었다.

 

「당신이 꼭 들어가려거든 잠시 기다렸다가 들어간 동행이 나오거든 들어가시오.

당신은 일명 선사님을 찾아뵙는 규칙도 모르오?」

 

  양몽환은 중의 꾸지람을 듣고 속으로 이것이 바로 일명 선사를 면회하는

절차인가 보다 여기고 할 수 없이 굴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안에서 큰 소리가 나며 쏴하는 바람 소리와 함께 도옥의 얼굴이 백지장이 되어

두 손을 가슴에 대고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깜짝 놀라 앞으로 다가 서면서 도옥의 손을 잡았다.

 

「도형! 어찌된 일이오?」

 

  도옥은 양몽환을 바라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숨을 조절하는데

표정은 몹시 고통스러운 모양이었다.

  양몽환은 그의 모습을 보고 상처가 가볍지 않은 것 같아 탄식했다.

 

「도형이 이 아우의 일로 중상을 입었으니 나도 어떻게 할지 모르겠소.」

 

  그러나 도옥은 입가에 미소를 띠우고 고개를 흔들었다.

양몽환은 도옥을 부축하여 풀밭에 앉히고 팔목에 달려 있던

네 개의 금환이 두개 밖에 남아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는

두개는 굴속에서 사용한 것이라고 알아챘다.

  도옥은 풀밭에 앉아 호흡을 조절하고 천천히 일어나서는

품에서 환약 두 알을 써내 입에 넣어 삼키며 양몽환을 보고 웃었다.

 

「일명 선사는 정말 절기의 기인이요,

나는 그의 장풍을 맞고 몸을 지탱할 수 없었소,

굴 안이 좁아서 피할 수도 없고 장풍이 내장까지 뚫고 들어오기에

금환 두 개를 던지고 그만 뛰어 나왔소.」

 

  양몽환은 눈을 크게 뜨며

 

「많이 다친 것 아니오?」

 

「환약 두 알을 먹었으니 아마 괜찮을 것이오.

이 약은 우리 스승의 친구 되시는 분이 만든 것으로 이 약을 먹고

삼개월 이내에 재발하지 않으면 괜찮다오.

양형도 일명 선사를 만나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소제와 같이 돌아가

본방의 고수들을 데리고 다시 청풍사로 오는 것이 어떻겠소?」

 

  양몽환은 도옥의 무술로서도 일명 선사의 장풍을 막아낼 수 없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어 다시 도옥을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도형의 말씀도 좋습니다만 갔다 왔다 하는 데 시간도 걸리고

또 도형께서 소제의 일로 상처까지 입었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소.

제가 한 번 들어갔다 오리다.」

 

  도옥은 하림 소저의 신변을 걱정하는 양몽환의 마음을 알고 말리지 는 않았다.

 

「양형의 의도가 정 그러시다면 말리지 않겠소.

그러나 조심하시고 조급하게 굴지 마시오. 소제는 밖에서 소식을 기다리겠소.」

 

  양몽환은 몸을 돌려 중을 바라보며

 

「내가 지금 들어가는 것도 이 절의 규칙에 어긋나는 것인가요?」

 

하고 물었다.

 

「사람이 죽으려고 마음먹는 데는 누가 말려도 듣지 않는 법이라오.」

 

  양몽환은 담담히 웃을 뿐 대답도 하지 않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두 번을 굽어 들어가자 길은 점점 넓어지나 여전히 안은 어두웠다.

  앞을 바라보는 양몽환의 눈에는 두 장(丈) 밖에 거무스레한 물체가 보이는데

사람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 더 들어가던 양몽환은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며 무엇이 날아오는 것 같아

급히 손을 들어 막았다.

그러자 두 번째의 공격이 가해왔다.

이번에는 먼저 보다 좀 더 강한 것 같았다.

양몽환은 몇 발자국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몸이 어찔해졌다.

  이래서는 만 되겠다고 그러면서 정신을 가다듬으려는데 세 번째 공격이 가해왔다.

  과연 도옥이 말 한 대로 세 번째의 힘은 더욱 강했다.

양몽환은 재빨리 몸을 비키며 정면으로 오는 바람을 피해 서서 두 손으로 막아내었다.

  양몽환은 평소에 생각도 못하던 오행상극의 방법으로 여덟 자 가량 앞으로 돌격하여

들어가자 않아 있는 사람이 보이는 것이었다.

  일명 선사는 양몽환이 자기의 장풍을 이겨내지 못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그것을 뚫고 들어오자,

 

「얏!」

 

  벽력같이 외치며 두 손을 높이 들어 계속 일급수를 썼다.

  이 일급수는 거리가 가까우며 힘이 먼저 삼 장 보다 강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이 오행상극법으로 반격하자

일명 선사의공격도 아무 소용이 없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그때 드디어 일명선사의 탄식 소리가 들려 왔다.

 

「아! 나도 늙었구나!」

 

  양몽환은 큰 소리로

 

「소생 양몽환이 선사님께 문안드리오.」

 

  하고는 엎드려 인사를 하였다. 그러자

 

「가까이 오시오, 이야기나 들어 봅시다.」

 

「소제는 선사님을 뵙고 가르침을 받을 일이 있사옵니다.」

 

하고는 경계하면서 천천히 일명 선사 앞으로 다가 갔다.

 

  양몽환이 댓걸음을 옮기자 갑자기 안이 환해지며 등잔에 불이 켜졌다.

  그리고 머리가 긴 괴인이 회색 가사를 입고 큰 방석에 않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는 광채가 나고 이는 유난히도 하얗다.

  하루 종일 볕이라고는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굴속에서

갑자기 이런 괴인을 만나게 된 양몽환은 가슴을 두근거리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일명 선사는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말하는 것이었다.

 

「안심하시요. 당신은 나의 공격을 막아내었고 나는 기운이 지쳐버렸으니

앞으로 아무 일 없을 것이오.

소승이 굴에 들어 온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누구와 만난 일이 없소.

당신이 일부러 오셨으니 여기 앉아 이야기나 나눕시다.」

 

  양몽환은 이 말을 듣고는 대담하게 일명 선사 앞에 나가 공손히 읍(揖) 했다.

 

「소란을 피워 죄송하옵니다.」

 

  사람을 압도하는 눈빛으로 양몽환을 주시하던 일명 선사는

 

「당신은 나의 신술(神術)을 당해낼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용케도 나의 삼원 장풍을 물리쳤소.

이 다섯 자에 불과한 좁은 곳에서 이 노승의 힘보다 강하지 못하면

내 장풍을 이겨내지 못하는 법이라오,

나의 십 수나 되는 수법을 막아 내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하였고

당신처럼 뛰어난 무술을 지닌 사람은 난생 처음이오.

자, 그럼 무슨 용건인지 말하여 보시오.」

 

  양몽환은 다시 절을 하고는

 

「선사님을 잠시 나마 귀찮게 한 일을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선사는 유쾌하게 웃으며 양몽환에게 자리를 권하며 앉으라고 했다.

  양몽환은 순간,

노승이 과거 무술계에서 이름을 떨치던 명인이었으나 깨달은 바 있어

불가(佛家)에 귀의한 것 같이 생각되었다.

예를 갖추어 가리키는 자리에 앉자 노승은 양몽환의 예의 바른 태도에

속으로 기쁜지 웃으면서 묻는 것이었다.

 

「무슨 연유로 이런 곳에 오셨는지 말씀을 해 보시오.」

 

  양몽환은 잠시 생각한 후 심소저 하림이 잡혀간 전후곡절과

그간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 하여 주었다.

  양몽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일명 선사는 전신을 부르르 떨며

경련을 일으키고는 한참 만에 크게 탄식을 하고는 눈을 지그시 감을 뿐

아무 대답도 없는 것이었다.

  등불에 비치는 그의 부르르 떠는 손과 입술로 보아 그의 마음속에는

격정이 일어나는 것 같이 보였다.

  얼마를 지난 다음 일명 선사는 갑자기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오른 손으로 땅에 끌린 옷자락을 천천히 올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다리가 얼마나 긴지 양몽환은 깜짝 놀라며

 

「선사님의 다리는……」

 

  선사는 끌어 올렸던 옷자락을 놓으면서 큰 소리로

 

「내 힘이 당신에 비하여 어떻소?」

 

「선사님의 장력은 소생 보다 몇 배 더 강한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일명 선사는 머리를 끄덕이며

 

「당신은 명인에게 무술을 배운 것 같으나 아직 힘이 부족하오.

그러나 이 몸이 졌으니 말 하오만……」

 

하고는 말을 그쳤다가는 갑자기 두 손을 모아 얼굴을 감싸면서

 

「자비하신 부처님, 사문의 비밀을 누설하는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는 그의 눈에서는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양몽환이 옆에 앉아 선사의 기도를 들으며

지고(至高)에 달한 선사가 올리는 기도 소리에 자신의 심경도 엄숙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도를 마친 일명 선사는 다음과 같은 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당신이 찾는 그 소녀는 우리 사문(師門)에서 잡아 갔다오.

소승은 계율을 어긴 죄로 두 다리를 잘리고 가르치던 제자와 함께 쫓겨나

이 대호산에 정착하여 청풍사를 건축하게 되었다오.

소승은 두 다리가 없는지라 누구와도 만나려 하지 않소.

다행히 이속에 천연동굴(天然洞窟)이 있기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따름이오.

소승도 다리가 없어지기 전에는 지위도 꽤 높았었지요.

그러나 소승이 이곳에 옮긴 후에는 나를 찾는 사람은 누구든지

먼저 내 십 수의 장풍으로 모두 쫓아 버렸다오.

십여 년간 적지 않은 사람이 소승한테 그런 변을 당한 셈이오,

모두가 내 장풍의 위력 덕분이오.」

 

하고 말을 마치자 가쁜 숨을 몰아쉬고는 입으로 선혈을 토하며 옆으로 쓰러지려고 했다.

  깜짝 놀란 양몽환이 황급히 일명 선사를 부축하면서

 

「선사님 왜 그러시오니까?」

 

  그러자 일명 선사는 가쁘게 숨을 쉬며 쓸쓸히 웃었다.

 

「내가 쫓겨날 때 내 장혈(藏血)과 복결(腹結)의 양혈(兩穴)을 찔렸는데

이 상처는 우리 문중의 몇 사람을 빼 놓고는 치료할 사람이 없을 것이오.」

 

「그러면 선사님 스스로 고칠 수는 없는 상처입니까?」

 

  일명 선사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나는 알기는 아나 고칠 수가 없다오.

그들이 나를 살려둔 것은 나를 용서한 것이 아니라 십년 간 고생시키려는 것이었소.

 내가 아마 당신과 대적할 때 너무 많은 힘을 썼나 보오,

그때 상처 입은 혈(穴)이 발작을 일으킨 것이오」

 

「제가 선사님의 상처를 부지불식중에 건드린 셈이군요.」

 

「그러나 내가 당신과 싸우지 않았다 하더라도 육 개월 밖에는 더 살수 없었소.

나는 십여 년간 홀로 이 굴에서 치료하려고 했으나 헛수고였다오.

요즘은 전신마비증을 간혹 일으키고 더구나 상처는 매일 자오시(子午時)가 합쳐질 때는

칼로 도려내는 듯 아프다오,

내가 죽음을 앞두고 우리 사문의 나쁜 짓을 말하려는 의도는 사문에 죄를 짓는 짓이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무언가 표적을 남기고 가겠다는 생각에서요.」

하고는 피를 토하며 전신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그러는 선사는 몹시 고통스러운 것 같았다.

  양몽환은 어찌할 바를 몰라 일명 선사를 부축한 채 망연히 서 있을 뿐이었다.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선사는 진정되는 것 같았다.

 

「내 상처에 대해서는 나를 따르는 제자도 모르고 있는 것을 당신에게 말하려는 의도는

첫째 당신 사매를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고

둘째는 심산의 사원에서 인피(人皮)를 뒤집어 쓴 악한들을 무예계에 폭로하려고 하는 것이오.」

 

하고는 갑자기 두 눈에 광채를 발하며 양몽환의 손을 잡는 것이었다.

 

「그들의 소굴은 인적이 드문 심산에 있소.

또한 그들의 무술은 절묘하여 그들을 당해 낼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오.

그 외에 그 곳에는 진기한 설삼과(雪參果)라는 열매가 있는데 한 알만 먹으면

기사회생(起死回生)하여 늙은이를 젊게 하는 나무가 있다오.」

 

「그럼, 기련산의 대각사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 시온지?」

 

「어떻게 아오?」

 

「소생이 일찍 한 선배님에게서 설삼과에 관하여 들은 바가 있어서

한 번 말씀 올려 본 것뿐이옵니다.」

 

  일명 선사는 더 캐묻지 않고 계속하여

 

「그렇소. 바로 기련산 종운암의 대각사요.」

 

하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급히 부축하여 일으켜 추궁과혈(推官過穴)수법으로

장혈과 복결의 양혈을 문질렀으나 아무 호과가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일명 선사는 눈을 조용히 뜨며

 

「나는 이제야 알았소. 만일 당신이 위험한 대각사를 찾아 가려거든

반드시 고수급의 무인을 몇 사람 데리고 가시오.」

 

하고는 숨을 헐떡거리며

 

「그들의 독장(毒掌)은 맞으면 죽게 되지만

건원지신공(乾元指神功)으로 막을 수 있소.」

 

  일명 선사는 여기까지 말하고도 더 말할 것이 있는 듯 하였으나

더 계속하지 못하고 피를 뿜으며 눈을 감고 말았다.

  양몽환은 만일 자기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더 살 수 있었을 텐데

자기 때문에 일명 선사가 더 일찍 죽었다고 생각하자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졌다.

눈물을 흘리며 시체를 정중히 눕히고 두 번 절을 하고 돌아섰다.

  양몽환은 천천히 굴을 나오다 뒤를 돌아보았으나 깜깜한 굴속에는

다만 등불만이 깜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양몽환이 밖으로 나오자 도옥은 반가워서 달려와 부둥켜안았다.

그러나 울어서 퉁퉁 부은 양몽환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황급히

 

「무슨 일이요?」

 

「아무 일도 아니지만 일명 선사가 돌아가셨다오.」

 

  슬픈 표정으로 대답하자,

 

「못된 중놈이 죽었기로서니 뭐 그렇게 슬퍼 울기까지 하시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중이 노발대발하며 꾸짖었다.

 

「뭐라고? 네까짓 무술로 우리 선사님을 죽였다고?」

 

「무예가 출중한 선사님께 내가 어떻게 대적할 수 있겠소?

선사님은 자기의 병 때문에 돌아가셨다오.」

 

  중은 더 이상 양몽환을 상대하지 않고 번개같이 굴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한참 후에 금환 두개를 손에 쥐고 나와서는 아무 소리 없이

양몽환에게 던지는 것이었다.

거리가 가깝고 또 갑작스러운 일이라 재빨리 피하기는 했으나 바로 두 어깨에 상처를 입었다.

  두 개의 금환이 옷을 찢고 스쳐가자 어깨에서는 선혈이 낭자하고 금환은

맞은편에 있는 바위 위에 날아가 떨어져 바위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다시 중은 쌍환(?環)을 던지며 덤벼들었다.

양몽환은 거호내외(拒虎內外)의 수로 중의 공격을 막으면서 외쳤다.

 

「대사님, 좀 기다려 주시오. 내 말을 듣고 싸우잔 말이오.」

 

  두 눈알이 툭 튀어 나오고 얼굴이 새까만 중은 있는 대로 분통이 터져 양몽환의 말을

듣지도 않고 손과 발을 내 저으며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은 중의 공격을 피하기만 하였다.

십 여 합을 싸웠으나 중은 계속하여 공격을 가해 올 뿐이었다.

  이때까지 옆에서 관전을 하고 있던 도옥은 참을 수 없는 듯 날카로운 소리로 외쳤다.

 

「양형! 인자한 마음일랑 걷어치우시오. 내가 상대해 주리다.」

 

하며 달려 나올 기세였다.

 

  양몽환은 도옥이 싸우기만 하면 꼭 죽일 것 같아 할 수 없이 적수박용(赤手搏龍)으로

중의 바른 팔을 꽉 쥐고 정색하며 말했다.

 

「당신 스승은 양혈(兩穴)이 발작하여 죽었소.

다시 굴에 들어가 장혈과 복결을 자세히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이오.

선사에서 대각사를 떠나오실 때 같은 사문의 동료에게서 독수를 맞은 것이오.」

 

  그제야 공격을 멈추며 눈물을 펑펑 쏟는 것이었다.

  양몽환이 팔을 놓아 주자 그는 곧 굴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도옥은 양몽환을 보고 웃으며 천천히 바위 근처로 기어가

금환을 주어 팔뚝에 달아매었다.

  양몽환은 도옥에게 굴속에서 벌어졌던 전후사연을 전부 이야기해주었다.

  두 사람이 굴 밖에서 한참 기다려도 굴속에 들어간 중은 나오지 않았다.

얼핏 불길한 예감이 든 양몽환은 도옥과 함께 들어갔다.

  그 곳에는 벽에 대고 머리를 부딪쳐 골이 깨어진 채 선사 옆에 죽어

쓰려져 있는 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위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양 등불만이 비치고 있을 뿐 고요하기만 했다.

  양몽환은 두 시체를 잘 거두어 놓고

 

「양몽환이 사매를 구하여 다시 이곳에 돌아와 두 분의 제사를 지내 드리겠소이다.」

 

하고 몸을 일으켜 도옥의 손을 잡고 굴을 나와 돌을 운반하여 굴 문을 막아 버렸다.

도옥도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양몽환을 거들어 주었다.

굴 문을 막아 놓고 절벽 위에 오르자 풀을 뜯어 먹고 있던 적운 추풍구가 두 사람을 보고

 한번 크게 울고는 달려 왔다.

두 사람이 함께 말 위에 올라 청풍사를 지나면서 들여다보니

대문은 여전히 활짝 열려져 있고 모든 것이 죽은 듯 적막했다.

의구한 청산을 바라보는 양몽환의 가슴 속에는 여러 가지 감회가 새롭기만 했다.

 

  (수천 백만 년이 지나도 청산은 변함없건만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들이

저 세상의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갔는지 모를 일이다.

뜬 구름 같은 인생이 죽어 이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이 무엇이랴?)

 

  불현듯 어렸던 시절이 회상되는 것이었다.

  자기와 함께 놀며 자라난 견(娟)소저의 귀여운 자태가 꿈결처럼 떠올랐다.

 

  (한 떨기 국화, 새벽이슬을 머금은 양 청순했던 견(娟) 소저는

꽃다운 나이에 요절하여 한줌의 흙으로 청산에 묻히고 말았다!)

 

  양몽환은 견소저의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두 볼을 적셨다.

  양몽환의 눈물진 얼굴을 본 도옥은

 

「사매 생각이 나서 그러시우?」

 

하고 물었다.

 

  양몽환은 견(娟)소저의 생각에서 깨어 나 얼른 눈물을 닦으며

 

「나는 일명 선사와 사매가 함께 이 세상을 떠난 것 같게만 생각되는구려.」

 

  도옥은 어이없이 웃고는

 

「양형! 일명 선사의 일 같은 것은 무예계에 허다한 일이 아니오?

그런 감정은 부녀자나 할 일이지 우리 대장부가 할 일은 못되오.」

 

하고 말 하고는 무슨 화풀이나 하는 듯 채찍질하여 급히 말을 몰았다.

  강서(江西)에서 감숙(甘肅)까지 가는 길은 육로나 수로도 차이가 있으니

수로로는 호북(湖北)에서 배를 타고 강을 따라 올라가서 삼협(三挾)을 지나

사천(四川)에 이르러 배를 버리고 육로로 감숙으로 들어가며 육로로는

호북에서 협서(陜西)성을 거처 감숙으로 갈수가 있다.

  이 먼 길을 가는 데는 수로를 택하는 것이 보편적인 교통수단이지만

도옥은 적운 추풍구를 타고 가는 길이므로 수로를 버리고 육로를 택하였다.

가는 도중 식사와 말의 먹이를 주기 위하여 좀 쉰 일 이외에 줄 곧 쉬지 않고

주야로 달리니 엿새째 되는 날 점심때에 감숙성의 영대현(靈臺縣)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양몽환이 오일 간 밤낮을 달려온 적운 추풍구를 쳐다보니 온 몸이 땀과 먼지투성이다.

  양몽환은 감격하여 도옥의 손을 잡고

 

「도형과 소제는 부평초처럼 떠돌다가 서로 만나 이와 같이 저를 도와주시니……」

 

  말끝을 흐리며 사례하자 도옥은 눈을 껌벅거리며 말을 받았다.

 

「그러시다면 이 몸을 친구로 생각 하지 않아도 좋소이다.

실은 저는 서북에 놀러 오고 싶어 왔을 뿐이오. 만일 내가 오고 싶지 않다면

당신이 원하여도 소용없을 것이오.」

 

  양몽환은 무안하여 얼굴을 붉혔다.

그러나 도옥은 도리어 유쾌한 듯 웃다가 양몽환의 팔을 끌면서

「기련산도 얼마 남지 않았소,

우리 어디 주막이나 찾아 하루 푹 쉽시다. 일명선사 말씀이 대각사의

중들이 비범한 묘기를 가진 고수라고 하셨다는데

우리 두 사람으로는 당해내지 못 할 것이오.

먼저 적당히 손을 써서 양형의 사매를 구해 내고 틈을 엿봐

설삼과를 훔쳐 맛을 좀 보는 것도 좋겠구려.」

 

  양몽환은 묵묵히 도옥의 뒤를 따라 가면서 마음속으로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다.

 

  (스승과 등인대사(澄因大師)께서는 하루에 칠 팔백리 길을 가실 수 있으니

벌써 대각사에 도착하셨을 지도 모르지, 만일 하림 소저를 정말 대각사의

중이 잡아 갔다면 두 분이 혹시 거기서 만났는지,

만났다면 하림을 구하셨을 지도 모른다.

혹은 스승님과 등인대사께서 설삼과를 구한 다음 청운암을 떠나 버려

하림이 잡혀 온 소식을 듣지 못하였을까?

또는 하림을 잡아간 중이 아직 대각사에 도착하지 않았는지 그것을 모르겠구나!)

 

온갖 생각이 다 났다.

 

  도옥은 양몽환을 돌아보자 무슨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지라

 

「또 무얼 생각하고 있소?」

 

하고 물었다.

 

「스승께서 대각사를 떠나가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소.」

 

「스승이라니? 곤륜삼자(崑崙三子) 말이오?」

 

  양몽환은 도옥이 경어를 쓰지 않는 말씨를 듣고 마음이 좀 언짢았으나

그의 성격이 원래 괴팍하다는 것을 아는지라 개의치 않고 웃으면서

 

「저의 스승님과 등인대사라는 분이 삼사숙(三師叔)의 상처를 치료하고자

대각사로 설삼과를 구하러 가셨는데 두 분 어른께서 이미 대각사로 떠나셨는지 모르겠구려.」

 

  도옥은 양몽환의 사부(師父)의 행차에 대하여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또 삼사숙(三師叔)의 상처를 받은 내력에 대해서도 또 그의 사부(師父)가 언제 어디서

대각사로 갔는지도 묻지 않았다.

다만 담담히 웃으면서 양몽환과 나란히 한 여관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여관에서 편히 쉬면서 여관 시종을 시켜 적운 추풍구의 먼지를 털고

몸을 닦아 주게 하였다.

  말이 목욕을 다하자 말을 쓰다듬어 주는 도옥의 안색이 몹시 서글퍼 보였다.

한 참 후에 시종에게 마초를 더 갖다 주게 했다.

말이다 먹는 것을 보고는 혼자 여관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얼마 후에 도옥은 손에 약품 두 뭉치와 쇠솥을 들고 방으로 돌아와

시종을 불러 숯불을 피워 오라고 시켰다.

  그러고 나서 도옥은 두 뭉치의 약품을 풀어 놓고 자세히 살펴보고는

혼합하여 쇠솥에 쏟아 넣는 것이다.

이 때 시종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화로 불을 가져다 놓았다.

  도옥은 쇠솥을 화로 위에 올려놓고 품안에서 적홍색의 약 가루봉지를 꺼내어

가루를 솥에 쏟아 넣고는 뚜껑을 꼭 닫고 옆에 않아서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도옥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 고개를 기웃거리며

 

「도형! 무엇을 하는 것이오?」

 

「일명 선사가 말한 청운암 대각사의 중놈들이 모두 나쁜 놈이란 말을 믿고 있소?」

 

「물론 거짓말은 아니라고 생각하오.」

 

「나도 같은 생각이오. 그래서 독에는 독으로 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요.」

 

「그럼 당신은 지금 독약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요?」

 

  도옥은 머리를 끄덕거리며 웃기만 할 뿐 양몽환의 물음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양몽환은 더 이상 물으려 하지 않고 다만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도옥은 솥 안의 약품이 용해되자 철침(鐵針) 몇 쌈을 꺼내어 솥에 넣고는

뚜껑을 단단히 닫고 그 뜨거운 불에 하루 밤을 다렸다.

  다음날 도옥은 일어나는 길로 솥뚜껑을 열어 솥 안의 철침을 꺼내보니

이미 파랗게 독이 들어 있었다.

  도옥이 철침을 다 싸 넣고는 여관을 나서 두 사람은 다시 적운 추풍구에 올라 길을 떠났다.

  서북 지방의 땅은 넓고 광대하나 사람은 적고 산이 많아 서쪽으로 갈수록 길이 점점 험해졌다.

  적운 추풍구는 두 사람이 방향을 잡아 주는 대로 산을 넘고 물을 뛰어 넘어 이틀간을 달렸다.

삼일 째 되는 날 그들은 비로소 기련산에 도착하였다.

  도옥이 산세를 굽어보았다. 첩첩이 이어진 산들은 구름과 맞닿아있고

그 웅장함이 오악에 비길 만 하였다.

  때는 봄인 데도 높은 산 위에는 추위가 엄동과 같다.

두 사람은 그래도 무공(武功)으로 추위를 참고 말을 달려 산을 넘고 넘었다.

  산은 넘을수록 점점 큰 산이 가로 막고 산바람은 살을 여미는 듯 차기만 했다.

  그런데다 이 기련산맥은 천리나 계속되는 산봉이 흩어져 있어 청운암을 찾는 것은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감이 들었다.

양몽환은 도옥을 불러 세웠다.

 

「도형! 우선 나무꾼을 찾아서 길을 묻는 게 좋을 듯 하오.

애를 써도 우리가 이 기련산을 다 뒤질 수는 없을 것 같소.」

 

  도옥은 말을 세우고 뒤 돌아 보면서

 

「그러나 나무꾼에게 길을 물어도 소용없을 것이오.

왜냐하면 청운암은 심산이라 인적이 드문 곳에 있을 거요.

일명 선사도 말하지 않았소?

만일 대각사를 아는 나무꾼이 있다 하여도

벌써 대각사 놈들이 죽여 버렸을 것이 아니겠소?」

 

「대각사 중이 제 아무리 악자라 하더라도 아는 사람이 그렇게 없을라구?

그들의 악행은 음폐되어 사람들이 몰라도 그 절이 장엄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 않겠소?」

 

「만일 그렇다면 벌써 강호에 대각사가 소문나 있을 것이오!」

 

  도옥은 말을 계속한다.

 

「양상공 말씀도 일리가 있으나 제 생각은 좀 다르다오.

강호의 일은 일반적인 생각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이오.

그러면 내가 우리 천용방을 예로 들어 말씀드리리다.

우리 방 제자들이 강남 방방곡곡 어디에도 산재해 있지만

우리 천용방 사람이 아니면 찾기 어렵다오.

무예계에서도 우리 천용방의 총당이 금북에 있다는 것은 다 알지만

금북 어느 곳에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몇 사람 안 되오.

 대각사는 못 된 중들의 소굴이라 반드시 비밀로 지켜질 것이오, 

하물며 절에만 있다는 설삼과야 어떠하겠소.

내 생각으로는 그들의 소굴에는 다른 사람이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아마 주위 수 십리는 방비가 상당히 엄할 것이오.」

 

「그러면 청운암 대각사는 찾을 수 없단 말씀이오?」

 

「근심하지 마시오.

만일 당신 사매가 진정 대각사 중들에게 잡혀갔다면 아직 대각사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오.

사람을 데리고 걷기란 퍽 힘든 일이 아니겠소?

게다가 남의 이목을 피해야 하고 사매를 잡아 오는 중이 경신술이 있다 하여도

육로로는 못 올 것이오.

내 생각에는 그들은 적어도 우리 보다 닷새 후에나 올 것이오.

그러니 닷새 이내에 대각사를 찾아내기만 하면 늦지 않을 것이오.」

 

「기련산이 이렇게 큰 데 도형의 적운 추풍구를 가지고도 이 산봉을 다 뒤질 수 없을 것이오.」

 

  도옥이 웃으면서

 

「그건 걱정 없소. 우선 높은 봉우리 몇 개를 골라 불을 질러 놓으면 이 곳은 원시림이라

조그마한 불이라도 그만 크게 번질 것이 아니겠소.

대개 사오 백리 이내에서는 불이 보이는지라 대각사에서도 불을 보고 반드시 사람을 보내어

조사할 것이오.

그러면 우리는 그들 모르게 뒤쫓아 가면 그놈들이

우리를 청운암 대각사에 데려다 주는 셈이 되지 않겠소?」

 

「도형의 생각도 좋지마는 산불이 만일 기련산을 다 태워 버리면

나무꾼의 짐은 물론 애석하게 짐승들이 피할 데가 없어 죽지 않겠소?

더욱이 아까운 것은 이 무한한 삼림이 타버리는 것이오.」

 

「그건 걱정 마오.

이 기련산은 천리나 뻗어 있고 수많은 봉우리가 있는데

그 봉우리 마다 눈이 쌓여 있어서 만일 산불이 난다고 하더라도

봉우리 위의 눈이 녹아내려 삼일 안에 불은 꺼져버릴 것이오.

불이 날지라도 이 기련산에 비하면 창해일속격(滄海一栗格)이라오,

일하는 데 이것 것 생각 다 하다가는 무슨 일을 하겠소.

강호에서 무엇을 구하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한 장부가 되어야 하오,

이 방법이 나쁘다면 양형께서 무슨 더 좋은 방도를 찾아 내보시구려.」

 

  양몽환은 도옥의 말에 말문이 막혀 눈만 크게 뜨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도옥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어 한 참 만에 비로소 대답했다.

 

「도형의 말대로 대각사의 중을 오게 할 수 있나 없나

횃불 몇 개를 만들어 시험해 봅시다. 그려.」

 

  도옥은 깔깔 웃었다.

 

「이 기련산 첩첩산중 일자무애(一姿無涯)한 곳에서

이 방법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을 거요.

앞으로 더 들어가 불을 놓을 곳이나 찾아봅시다.」

 

  양몽환은 난생 처음 강호에 나왔는지라 경험이 도옥에 비하면 천지 차(差)였다.

그가 하자는 대로 했다.

 

  도옥이 말을 더욱 급히 달리자

적운 추풍구의 몸은 온통 땀으로 젖어 있어 말도 상당히 지친 것 같았다.

 

「도형! 말이 지친 듯하니 내려서 좀 쉬웠다가 갑시다.」

 

하고 몇 번 말해도 도옥은 개의치 않고 힘껏 고배를 잡아당기며 말을 모는 것이었다.

  이렇게 달리기를 백여 리나 더 산길을 달려와서야 도옥은 비로소 말을 세우고 내렸다.

 

「쉬지 않으면 말이 정말 지쳐 죽을 것 같소, 말이 죽는다면 우린 만 길이나 되는

낭떠러지에 떨어져 박살이 나서 죽는 수밖에 도리 없소.

나야 괜찮지만 양형은 영원히 사매를 다시는 보지 못 할 것이 아니겠소.」

 

  말은 비록 예사로 하지만 표정은 몹시 심각했다.

말을 쓰다듬어주면서 한편으론 하얀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속으로는 천만가지 할 말이 많으나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양몽환은 점점 더 도옥의 성격을 짐작할 수 없었다.

도옥은 한참 말을 닦아 주고는 양몽환을 향하여

 

「우리 여기서 쉬었다가 불 놓을 장소를 찾읍시다.」

 

  두 사람은 소나무 가지에 올라 앉아 건량을 꺼내어 나누어 먹었다.

  양몽환은 묵묵히 있을 뿐 적당한 화제를 생각해 내지 못 하고

건량을 먹으면서 사방의 산세만 관찰하고 있었다.

  그때 도옥이 갑자기 소리쳤다.

 

「양형! 서남방 저 양봉우리 사이를 보시오.

우리 그곳에 있는 숲에다 불을 지릅시다.

그러면 아마 밤 오시에 삼 백리 내에서는 불을 볼 수 있지 않겠소?」

  양몽환은 그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과연 서남방 쪽에 큰 숲이 보였다.

 

「그렇군! 마침 좋은 숲이구려.」

 

「자, 배도 불렀으니 가서 불을 놓읍시다.」

 

  하고는

 

「양형의 사매가 미인인 것 같은데 우리 사매 이요홍보다 어떨지 모르겠구려.」

 

했다.

 

  양몽환은 빙그레 웃고 말았다.

바로 그때 서쪽에서 흰 물체가 공중으로 나르는 것이 보였다.

이것을 놓치지 않은 도옥은 큰 소리로

 

「아! 백학이!」

 

하고는 몸을 일장 오륙 척 솟구쳐 소나무 가지를 잡았다.

그리고는 몸을 한바퀴 돌려 나무 꼭대기에 오른 도옥은 백학을 향하여 금환을 던졌다.

  양몽환은 급히 말리려 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그러나 큰 학은 허공을 한바퀴 돌고는 그 큰 날개로 도옥이 던진 금환을 가볍게 쳐서

떨어뜨리고는 쏜살같이 도옥을 향하여 달려드는 것이었다.

 

  도옥은 백학이 이런 위력을 가지고 있는 줄은 뜻밖이었다.

한 동안 칼을 빼어 든 채 싸우지 못하고 땅으로 뛰어 내리자

그 학은 더욱 빠른 속도로 달려들었다.

도옥이 날쌔게 피하는 바람에 학은 그만 속도를 멈추지 못하고 소나무에 부딪치자

수 백 년이나 묵은 소나무 가지가 힘없이 부러지고 말았다.

  학은 일격에 맞지 않자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가 재차 도옥에게 내려 닥쳤다.

  이때 도옥이 칼을 뽑아 앙관천상(仰觀天象)의 수법으로 학을 치자

두 날개를 오므렸다가 갑자기 피면서 재빨리 칼을 치고 우익으로 일격을 가하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도옥의 머리를 할퀴려고 배 밑으로 오므렸던 두 다리를 쭉 뻗었다.

  학이 날개로 치는 바람에 도옥은 칼을 놓칠 뻔 하였다.

그러나 재빨리 땅에 납작 엎드려 겨우 학의 공격을 피했다.

  도옥은 다시 일어났다.

그러나 학이 재차 공격하여 왔다.

이 산봉우리는 별로 높지는 않으나 눈으로 덮여 있어서 매우 미끄러웠다.

  도옥은 조금 전 학의 공격을 피하느라고 낭떠러지 끝에 굴러 왔는데

이 때 학이 다시 공격하여 오자 앞으로 피하던 도옥은 절벽 밑으로 굴러 떨어질 위기였다.

이때 도옥은 재빨리 몸을 돌려 회선약류(廻線弱柳)의 수법으로 학을 향하여 내려 쳤다.

  힘껏 내려 쳤으나 몸은 갑자기 어디로 끌려가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칼끝의 금환을 학이 오른다리 발톱으로 낚아채며

왼쪽 발톱으로 번개같이 내려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옥은 몸을 젖혀 겨우 피했다.

도옥은 마음속으로

 

  (이젠 죽었구나, 나 금환이랑 도옥이 이 짐승의 날카로운 발톱에 죽는구나…… )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때 갑자기 은빛 무지개가 찬란하게 번쩍이듯 번개같이 달려든

학은 눈 깜짝 할 사이에 날카로운 발톱을 오므렸다 피며 도옥의 금환검을 채가고 말았다.

도옥은 금환검을 뺏기지 않으려고 학의 다리에 매달렸다.

  그러자 양몽환의 다급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앗! 도형! 빨리 손을 놓으시오,

이 백학의 주인은 소제가 알고 있소, 만나면 칼을 돌려 줄 것이오.」

 

  도옥은 학에 매달려 두 장(丈)쯤 올라갔다가 양몽환의 외침을 듣고 할 수 없이

손을 놓고는 땅에 내리자 품속에서 독침을 한 움큼 꺼내 학을 향하여 던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학은 유유히 위로 올라가 두 날개를 펄렁거리며 빙빙 산봉우리를 도는 폼이

마치 동정을 살피는 것과 같았다.

  그러던 학은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서서히 돌다가 갑자기 양몽환을 향하여

쏜살같이 내려오는 것이었다.

  도옥은 독침을 한 주먹 꺼내어 다시 학을 향하여 던졌다.

  도옥은 독침 하나라도 맞기만 맞으면 아무리 신통한 법물이라도

도리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독침이 날아오르자 학은 바른 쪽 날개를 한 번 펄럭이자

별안간 강풍이 일어나면서 도옥이 던진 독침은 산산이 흩어져 사방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도옥은 어리둥절하며 더 대적 할 용기마저 잃은 듯 양몽환에게 내려 꽃이던

학의 날카로운 발톱을 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언제인가 괄창산에서 한 번 이 학과 대결한 경험이 있는 양몽환은 학의 성질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 학은 주백의(朱白衣)가 기르는 학으로서 두 날개는 신력(神力)을 가지고 있는

부리와 발톱은 금석(金石)도 깨뜨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 학이었다.

  이때 학은 양몽환을 알아보았는지 공격해 오던 몸을 되돌려 낮게 나르다가

금환검을 떨어뜨려 주고는 길게 한번 울었다.

그리고는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올라가 북쪽을 향하여 날아가 버렸다.

  양몽환은 학이 보이지 않게 된 다음에야 학이 떨어 뜨려 준 금환검을 집어

도옥에게 주면서 속으로

 

  (이 학이 갑자기 기련산에 나타난 것으로 보아 주백의(朱白衣)도 이 기련산에 온 모양이로군……)

생각하고는 전에 묘지에서 주은 수건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 고마운 사람……)

 

하는데 도옥은 양몽환을 불렀다.

 

「저 학이 양상공을 알아보는 것 같구려.」

 

「그런 모양이오. 학의 주인과 몇 번 만난 일이 있죠.

그러나 저 학이 나를 알아볼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정말 천년영금(千年靈禽)이란 비범한 모양이군.」

 

  도옥은 냉소하면서

 

「흥! 저 놈의 주인을 만나거든 앞으로는 저놈을 놓아 주어서

사람을 놀라게 하지 말라고 주의를 시켜 주시오.」 

 

  양몽환은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했다.

  대답 없이 웃고만 있는 양몽환을 바라보던 도옥은

 

「양형 생각엔 내가 저 학의 주인을 당하 못하리라 생각하오?」

 

「무슨 말씀을……… 그 사람으로 말하면 아주 착하고 어진 사람이요

나도 알게 된지는 얼마 안 되지만 언제라도 우리가 함께 만나게 되면

소제가 두 분을 소개 해 드리겠소.」

 

「하………소개시켜 준다고요.」

 

「왜 싫으시오?」

 

「글쎄……불이나 놓읍시다.」

 

하고는 산 밑으로 달려 내려가고 마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몽환의 머리 속은 어지러워지기만 했다.

 

  (저 학이 기련산에 나타났으니 반드시 주백의도 기련산에 왔을 것이다.

만일 주백의와 만나 도옥과 서로 싸움이라도 한다면 소개를 시켜 주는 것이

도리어 적을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양몽환은 멍청이 서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데 도옥이 몇 십 장종 뛰어 내려가서

가만히 서 있는 양몽환의 모습을 돌아다보고는 큰소리로 불렀다.

 

「양형! 빨리 내려와야 불을 놓지 않소!」

 

  그제야 양몽환도 급히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그들은 서남쪽을 향하여 달려갔다.

  고개를 넘어 서자 만경삼림(萬頃森林)이 펼쳐지고 넓고도 울창한 숲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나무 잎은 수척이나 쌓여 있어 발이 푹푹 빠졌다.

  도옥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참 좋군! 이 원시림은 만경이 넘겠는데! 불을 질러 놓으면 장관일 것이오.

자 빨리 불을 지릅시다.」

 

하고는 숲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갔다.

  양몽환은 천천히 불이 활활 붙는 숲을 바라보며

이 불길이 얼마나 많은 짐승을 죽일지 몰라 슬픈 생각마저 들었다.

  양몽환은 부시를 몇 번이나 그어 가랑잎에 불을 붙이려다

그만 두고 몇 번이나 주저하던 양몽환은 납치당한 하림을 생각하며

원수라도 갚을 듯이 이를 악물며 불을 피웠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바람이 불어 닥쳤다.

  순간, 양몽환의 눈앞에는 대각사의 중들이 장풍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과 도옥은 각기 장검과 금환검을 뽑아 들며 황망히 일어났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중과부적 마주 나서며 싸운다는 것은

무엄한 모험에 지나지 않을 것만 같은 것이 양몽환이나 도옥의 계산이었다.

  이때, 도옥은 재빨리 금환검을 휘둘러 파죽지세로 달려오는 중을

몇 걸음 물러서게 한 다음 급히 양몽환과 나란히 섰다.

 

「양형! 안 되겠소. 저놈들이 죽기로 결심한 모양이오.

 내가 먼저 길을 터놓을 테니 북쪽으로 달리시오.」

 

「그럼 도형은?」

 

「나도 도망치겠소, 며칠 후에 여기서 만나기로 합시다.

누가 먼저든지 불을 놓으면 신호를 삼읍시다.」

 

  연방 금환검과 장검을 휘두르며 중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하던 도옥은

품속에서 한주먹의 금환(金丸)을 꺼냈다.

그리고는 중들의 면상을 향하여 힘껏 던지는 것이었다.

 

「이 중놈들아! 금환 맛이나 보라!」

 

 외치고 지쳐 나가며 맞은 편 계곡으로 몸을 날리는 순간,

양몽환도 장검을 휘두르며 멈칫해서 물러서는 중들의 사이를 뚫고 몸을 날리고 말았다.

 


 (제 1 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