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6 장 오직! 하나만을 위하여 <飛燕留情>

오늘의 쉼터 2014. 6. 22. 12:12

제 6 장 오직! 하나만을 위하여 <飛燕留情>
 

 

  주백의는 양몽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소이다. 그러나 금선사독을 치료하는 데는 소천의의 말대로

대각사의 설삼과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요.」

 

「그렇다면? 주형께서는 다른 방법이라도!」

 

  양몽환은 바싹 다가앉았다.

그러나 양몽환의 초조해 하는 얼굴에서 눈을 돌린 주백의는 무슨 소리냐는 듯 딴 소리를 했다.

 

「이미 골수에까지 뻗힌 사독을 어찌하오?」

 

  잠시 커다란 기대에 부풀었던 양몽환은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 같은 실망을 느꼈다.

 

  (신비하고 기이한 이 주백의에게는 다른 방법이 있을 줄 알았는데……)

 

  양몽환은 기대가 켰던 만큼 실망도 켰다.

  배 안에는 다시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루한 정적을 깨치고 하림이 견딜 수 없다는 듯한 어조로

 

「오빠! 그만 돌아가요.」

 

하는 말에 일동은 긴 잠에서 깬 듯 했다.

 

「여기서 쉬시고 가시면 어떻겠소, 거의 날이 밝을 때가 되었는데……」

 

  주인으로서의 주백의는 하림의 말을 받아 만류했다.

 

그러나

 

「말씀은 감사하오만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며 정중히 사양하고 양몽환은 일어났다.

 

  주백의는 할 수 없다는 듯 따라 일어나며

 

「좋은 음식도 대접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정 가시겠다면 제가 여인숙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양몽환은 사양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호수 위에서 돛대도 닻도 없이 바람 부는 대로 밀려가던 배는

주백의의 젓는 노에 물을 가르며 호반으로 뱃머리를 돌리며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배는 살 같이 달려 순식간에 호반에 닿았다.

그러자 그 곳에는 언제부터 기다리고 있었는지,

회색 도포 차림의 사람이 얼굴을 볼 수 없게 등을 돌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주백의는 배에서 내리는 하림을부축하며

 

「오빠를 잘 지켜요.

잘못 하다가는 남에게 뺏기겠어요.」

 

하면서 한 편으로 양몽환을 살짝 흘기는 것이었다.

그 흘기는 눈은 얼마나 차고 또 말할 수 없는 수만 가지 비밀을 간직한 듯 했다.

 

  순간…

 

  양몽환은 주백의의 당돌하고도 이상한 행동에 처음부터 느껴온

 

  (주백의는 필시 남자가 아닌 여자임에 틀림없다!)

 

는 생각이 다시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양몽환과 하림은 주백의의 말이 별로 악의 없는 말이라고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어딘가 뼈가 들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양형께서도 이요홍이라는 여자를 조심 하십시오.

여자의 질투는 물을 얼게 하고 또 녹게도 합니다.」

 

하고 말한 다음 곧 이어

 

「그럼 저는 여기서 작별 하겠소이다. 부디 보증하시오.」

 

하고는 돌아서 버리고 말았다.

 

  바람이 살랑거리는 새벽길을 천천히 걸어 사라지는 주백의의 뒷모습은

어딘가 쓸쓸함이 가득했고 애처로웠다.

  이윽고 주백의의 가냘픈 모습이 시야 밖으로 사라지자

제 각기 다른 생각에 골몰하던 양몽환과 하림은 여인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오빠! 이상해요. 친구 분의 말씀이.」

 

  하림은 오빠를 감시하고 이요홍을 조심하라던 이야기를 상기하며

 

「농담인걸 뭐……」

 

「그래도, 오빠가 나를 싫어하면 죽어 버릴래요.」

 

하며 양몽환의 손을 꼭 잡는 하림을 돌아보며

 

「걱정할 것 없어」

 

하고 입을 굳게 다무는 양몽환은 하림의 손에 힘을 주어 마주 잡았다.

 

  이윽고 여인숙으로 돌아온 양몽환과 하림은

서로 피곤한 몸을 쉬기 위하여 제각기 방으로 들어갔다.

  양몽환은 길게 다리를 펴고 누우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 괴로운 하루가 지나갔구나)

  여러 가지의 일들이 명멸하다 사라졌다.

 

  하림도 잠이 든 듯 사방은 고요했다.

이런 일, 저런 일, 오늘 하루의 일을 생각하던 양몽환도

어느덧 스르르 눈이 감기며 막 잠이 들려는 바로 그 시각이었다.

어디선가 숨이 끊어지는 듯한 신음 소리가 들려온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으악!」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려온 후였다.

 

  용수철을 튀긴 듯 몸을 벌떡 일으킨 양몽환은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뛰어 나온 양몽환의 눈에는 혜진자의 방에 등불이 켜진 것을 발견하고

황급히 그곳으로 달려갔다.

  박차듯 문을 연 양몽환은 아연 할 수밖에 없었다.

침대에 비스듬히 쓰러진 동숙정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고 혜진자는 반듯하게 누운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한 쪽 벽에 주백의의 차갑고도 날카로운 눈이

양몽환의 행동을 지키고 있다는 것을!

  양몽환은 이미 혈도가 찔린 채 쓰러진 동숙정을 끌어내어 반듯하게 눕히고

혜진자의 가슴에 귀를 대는 순간

 

「양형!」

 

하고 부르는 소리에 소스라치듯 놀란 양몽환은 주백의를 발견하는 순간

 

「앗! 주형이?」

 

하고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계속하여

 

「이게 무슨 짓이오?」

 

  눈썹을 치켜올리며 일격을 가할 태세로 주백의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주백의는 재빨리 양몽환의 공격을 막을 태세로 몸을 움츠리며

 

「잠깐! 나는 이미 당신의 사숙인 혜진자의 기경팔맥(奇經八脈)을 찔렀고

삼백육십사처(三百六十四處)의 관절을 모두 분해 했소.

만일 양형이 스승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관절은 모두 부러지고 골수까지 뻗친

사독이 관절과 심장까지 뻗칠 것이오.」

 

하는 것이었다.

 

「뭐라고? 그러면 당신은 혜진자를 죽이려고?」

 

「그렇다면?」

 

  양몽환은 순간 길게 한숨을 쉬며 혜진자를 내려다보았다.

과연 주백의의 말대로 혜진자는 겨우 숨만 쉴 뿐 시체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혜진자에게 손을 댈 수도 없었다.

만일 주백의의 말대로 손을 대면 혜진자는 곧 숨질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양몽환은 피가 거꾸로 뻗치는 분노를 느끼며 주백의를 향하고 돌아섰다.

  그러나 주백의는 문 밖에 서서 밤하늘의 밝은 달을 유유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는 주백의는 태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양몽환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주백의의 앞에 버티고 서서 눈썹을 치켜 올렸다.

 

「아무리 나보다 묘한 절기를 가졌다 해도 사람의 생명을 끊은 당신을 그냥 둘 수는 없소!」

 

하고는

 

  적수박용(赤手縛龍)의 한 수를 쓰며 주백의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주백의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음! 이 비겁한 놈! 도망을 쳤구나!)

 

  양몽환은 몸을 날려 지붕으로 올라가 주백의 행방을 찾았다.

 

  그때,

 

  양몽환이 서 있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

 

  <휘익!>

 

  사람의 그림자가 뛰어 달아나는 것을 발견했다.

양몽환은 경신법(輕身法)과 팔보간섬(八步間蟾)으로 달려 재빠른 동작으로

백운추월(百雲秋月)로 내리쳤다.

 

  그러나 양몽환의 강한 백운추월을 날쌔게 피하며 돌아서는 순간-

 

「앗!」

 

  그 사람은 주백의가 아니었다.

 

「하, 하…… 제법인걸………」

 

하며 유유히 양몽환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은 회색 도포의 사나이,

바로 주백의가 탄 배에 노를 졌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양몽환은 어떻게 된 영문인지 어이가 없었다.

 

  (백운추월의 일격을 재빨리 피한 것은 있을 수 있다 하더라도

도대체 회색 도포가 왜 여기에 있는가?)

 

  한 편 무안하고 화가 치밀어 미처 말을 못하자 회색 도포는 비웃는 듯 차갑게 웃으며

 

「하…… 하…… 그 따위 무술로 우리 주인 주백의와 싸우겠다니 정말 가소롭군,

먼저 내가 한 번 맛을 보여 주어서 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또 얼마나 넓은가를 보여 줘야지!」

 

하는 말에 회색 도포가 주백의의 하인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하인에게까지 조롱을 받은 양몽환은 분함을 참지 못하며

 

「좋다 우리 사숙을 죽이려는 주백의의 하인이라면 우선 너부터 처치해 주마!」

 

하고 공격할 태세를 취했다.

 

  그러자 하인은

 

「곤륜 삼자의 제자가 매우 말이 불손하군!

그럼 한번 겨루어 볼까? 꼭 삼십 수만!」

 

하고 말을 마친 회색 도포의 하인은 허공에 두 손을 벌리고

 

  <휘익!>

 

내젓는 것이었다.

 

  그러자 공중의 바람은 삽시간에 파도처럼 변하며 양몽환의 몸을 이리저리 흔드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휘청거리는 몸에 힘을 주며 천강장을 발휘하여 대적했다.

  그러나 회색 도포의 손바람에 비하면 천강장은 파도 위의 조각배 그 것이었다.

  도저히 적수가 아니었다. 적수라기보다 당해 낼 재주가 없었다.

불과 이십여 수만에 양몽환은 정신이 혼미해지며 기력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양몽환이 휘청거리며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알아 챈 회색 도포는 빙긋이 웃으며

애초에 말한 꼭 삼 십 수 까지만 채우려고 바람을 늦추어 현상 유지로 이끌고 나갔다.

 

  그런데 홀연!

 

  멀지 않은 곳에서 아름다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이 정신 빠진 늙은이야! 할 일 없으면 잠이나 잘 것이지,

그러다가 실수하여 양상공을 다치면 어쩌려고? 썩 비켜요!」

 

하는 것이었다.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회색 도포는 황망히 물러서면서

 

「아니 올씨다. 그저 장난삼아……」

 

  그러자 다시 여인의 소리가 들렸다.

 

「장난도 분수가 있지, 왜 이 작은 주인의 마음을 몰라요?」

 

하는 것이었다.

 

  그때야 회색 도포는 두 손을 마주 쥐고 웃으며

 

「양노제(樣老第), 죄송하오.」

 

하고는 땅을 박차며 하늘로 치솟아 사라졌다.

 

  어리둥절한 양몽환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서 있다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사십 여세의 정숙한 부인이 흰 두루마기를 입고 쌍칼을 멘 채 서서 미소하고 있었다.

 

「양상공! 죄송하오, 그 늙은이를 대신하여 사과하오.」

 

하고는 제비처럼 빠른 동작으로 멀리 걸어가고 말았다.

 

  양몽환은 귀신에게 흘린 듯 두리번거리다가 급히 달려가

 

「노선배님! 걸음을 멈추시고 제 말씀을 들으시오.」

 

하며 외쳤다.

 

  양몽환의 외치는 소리에 걸음을 멈춘 부인은

 

「양상공은 너무 겸손하오. 노선배라는 말은 마시고 무슨 말씀인지 하세요.」

 

「죄송합니다만 조금 전에 말씀하신 작은 주인은 주백의를 가리키는 말인가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부인은 약간 주저하더니

 

「저의 작은 주인처럼 고귀한 분이 양상공과 같은 친구를 사귄 것은 드문 일이에요.」

 

하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속으로 창자가 꼬이는 듯 기분이 나빴으나 참으며

 

「흥 영광이오, 그러면 회색 도포와 당신은 모두 주백의의 하인이군!」

 

하고 비꼬았다.

 

  그러자 입술을 파르르 떨던 부인은

 

「젊은 사람이 너무 경솔 하군요!」

 

「흥! 경솔한 것은 없습니다.

먼저 주백의가 저의 사숙을 해쳐 곤륜파의 명예를 걸고 싸우려 든 참이오.」

 

하고 노기 띤 얼굴로 부인을 보았다.

그러자 부인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살며시 웃고는

 

「그러하신가요? 그러나 양상공을 두려워 할 뿐 곤륜파는 안중에도 없어요.」

 

  부인은 양몽환을 남긴 채 절정의 경공법을 이용하여 나는 듯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부인이 사라진 방향을 보다 할일 없이 여인숙으로 돌아온 양몽환은 부인의 경공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과연 놀라운 신법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혜진자의 방문을 열었을 때였다.

 

「앗!」

 

  차가운 공기를 내뿐 듯 날카로운 눈초리를 번득이며 서 있는 것은 주백의 바로 그였다.

  그리고 침대에 쓰러졌던 동숙정은 밝은 정신으로 하림과 함께 혜진자의 몸을 부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뿐만 아니었다.

 

  혜진자의 이마 위에는 하얀 학(鶴)한 마리가 실 같이 가늘고 맑은 침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맑은 학의 침은 혜진자의 입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는 한 편 주백의에게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일시에 몰려와 급기야는 주백의의

발 앞에 엎드리고 말았다.

 

「주형! 이 못난 사람을 용서하시오!」

 

  그러나 주백의는 눈 하나 깜짝 없이 혜진자의 입만 주시하고 있었다.

백학의 입에서는 하얗고 맑은 침이 쉼 없이 흘러 혜진자의 입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숙연해진 방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조용했다.

  이때 하림이 양몽환 옆으로 다가서며 조용히 낮은 목소리로

 

「어딜 갔다 오셨어요?

오빠의 친구 분이 학을 구해 가시고 오셨어요.」

 

  그러나 양몽환은 기가 막힌 듯이 멍청히 서있을 뿐 아무 말도 못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부인의 말대로 나는 너무 경솔하구나, 주형을 무슨 낯으로 대하는가!)

 

  생각할수록 양몽환은 주백의에게 큰 죄를 진 것만 같았다.

이윽고 혜진자의 입에서 시선을 돌린 주백의는 천천히 방 안을 둘러 본 다음

백학의 머리를 가만히 「툭!」 쳤다.

 

  그와 함께 백학은 흘리던 침을 멈추고 종종 걸음으로 주백의의 뒤로 가 웅크리고 앉았다.

  주백의는 혜진자의 몸을 몇 번 주무른 다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오른쪽 손을 쫙 펴서 허공을 한번 휘두른 다음 숨도 쉬지 않고 혜진자를 향해 내리쳤다.

  순간!

온 몸에 비 오듯 땀을 흘리며 일시에 혜진자가 일어나 앉는 것이었다.

  드디어 혜진자의 몸에 스며있던 사독은 땀으로 변하여 쏟아지고

막혔던 관절의 삼십육 혈이 풀리며 병은 치료되고 말았다.

양몽환은 와락 주백의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참고 참았던 눈물을 뿌렸다.

  그러나 주백의는 아무 말 없이 앉은 자세 그대로 눈을 감고 있기만 했다.

그러는 주백의 이마에서도 구슬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윽고 눈을 뜬 주백의는 양몽환의 몸을 가만히 떼어 앉힌 후 동숙정에게 조용히 말했다.

 

「미안 했소, 옆에 사람이 있으면 곤란해서…… 잠시 쉬게 하였었소,

그리고 혜진자가 깨거든 가벼운 음식을 주시오.」

 

하고 주백의가 밖으로 나가자 뒤따라 백학이 따라 나갔다.

양몽환은 황급히 따라 나가며

 

「주형!」

 

하고 불렀다.

그러나 주백의는 돌아보지도 않고 걸어 나가는 것이었다.

 

  이때 하림도 뒤따라가며

 

「고마워요. 은혜를 잊지 않겠어요.」

 

했다.

 

  그제야 주백의는 걸음을 멈추며 하림에게 웃어 보였다.

하림은 주백의의 앞길을 막으며

 

「백학을 좀 타고 싶어요.」

 

「이 다음에 태워 드릴게요. 오늘은 백학이 너무 피곤해요.」

 

「그러다 못 만나면?」

 

「꼭 약속해요.」

 

  하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학을 기르고 싶어요.」

 

하는 것이었다.

 

  주백의는 어이없는 듯 하림을 바라보며

 

「천 년은 길러야 하는데? 천년 동안 살 수 있어요?」

 

「천 년?」

 

  하림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럼, 다음에 만나지요!」

 

하고 주백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땅을 가볍게 차며 지붕으로 오르자

곧 백학이 뒤따라 긴 날개를 펼치며 오르고 연기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순간!

 

  양몽환도 급히 경신법을 이용하여 몸을 날려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외쳤다.

 

「주형! 주형!」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 종적이 묘연했다.

  얼마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헤매던 양몽환은

동빛이 밝아오는 새벽녘에는 호반에 까지 나와 있었다.

그러나 허사였다.

 

  찾기를 단념한 양몽환은 흐르는 땀을 닦으려고 손수건을 꺼내려는 순간,

  흘연! 강렬한 향냄새와 이상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었다.

정신이 아찔하여 눈을 감았다 뜨는 그의 눈앞에는 하얀 손수건을 든

주백의의 얼굴이 나타나 있었다.

  기절했다 깨어난 사람처럼 혼란한 정신을 수습하느라고 멍청히 섰던 양몽환은

주백의가 내미는 손수건도 받지 못하고 서 있기만 했다.

 

「어서 이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으세요,」

 

하는 상냥한 주백의의 목소리에 기운을 겨우 차린 양몽환은

 

「무어라고 말해야 좋을지………」

 

할 뿐 손수건을 받을 생각도 못 했다.

 

  주백의는 손수 양몽환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밖아 주며

 

「그러면 왜 따라 오셨어요?」

 

하고는 양몽환의 얼굴을 살피며 어린애를 달래는 듯한 목소리로

 

「잊어 주세요. 자꾸 추억만 남게 돼요.」

 

말을 마친 주백의는 손수건을 눈으로 가져갔다.

 

  양몽환은 고개를 돌려 망망한 호수를 바라보다가 비록 남장을 했다 해도

여자임을 감추지 못하는 주백의의 하얗고 가느다란 목과 귀여운 손을 바라보며

 

「한낱 졸장부인 저에게 주형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갚을 길이 없습니다.

다만 주형의 용서만 바랄뿐……」

 

하며 말을 맺지 못했다.

 

  주백의는 살며시 양몽환의 손을 잡으며

 

「괜찮아요. 저는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있어요.」

 

하며 양몽환을 위로 했다.

 

  주백의의 다정한 말에 힘을 얻은 양몽환은 수심을 거두고

즐거운 낯으로 주백의 얼굴을 주시했다.

 

  그 순간-

 

  서로 잡은 손에는 점점 힘이 가해지며 눈과 눈은 불을 튕기듯 말없는 정이 오고 갔다.

  얼마가 지났을까……

  양몽환은 쥐었던 손을 먼저 가만히 놓으며

 

「주형!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주겠소?」

 

하고 물었다.

 

  주백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명랑하게 대답하며 생끗이 웃었다.

 

「주형의 고명한 수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하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저를 해치려고요?」

 

하고는 생글 생글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별로 신통한 재간은 못돼요. 그러나 원하신다면 가르쳐 드리겠어요.」

 

「진심으로 알고 싶습니다.」

 

  주백의는 양몽환이 너무나 진지한 태도로 묻는 말에 감동된 듯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저의 발자국을 보고 그대로 연습하세요.

이것은 오행미종보(五行迷從步)라고 불러요. 그럼 다시는 찾지 마세요.」

 

하고 말을 남기고는 하늘을 날아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하늘로 사라진 주백의를 바라보는 양몽환의 얼굴에는

주백의의 흘리는 눈물이 빗방울처럼 떨어졌다.

 

  주백의가 눈물을 뿌리며 사라지자 양몽환은 가슴을 치며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왜 주백의를 이해해 주지 못하는가)

 

  자신이 처해있는 운명을 저주하며 힘없이 발길을 돌려 여인숙으로 향하던

양몽환은  문득…,

  주백의의 말이 생각났다.

 

  (내 발자국을 보고 그대로 연습하세요)

 

  그렇다.

 

  양몽환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며 사방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과연…,

 

  주백의의 말대로 양몽환의 눈에는 지금 금세 밟은 듯

생생한 다섯 개의 발자국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양몽환은 발자국이 흩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다섯 개의 발자국을 파가지고 급히 걸음을 옮겼다.

  여인숙으로 돌아오던 양몽환은 걸음을 되돌려 수풀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가

발자국 다섯 개를 펴 놓았다.

발자국은 어느 누구의 발자국과 마찬가지의 발자국이었다.

  그러나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거듭하여 볼 때 마다

무궁무진하게 변화되는 기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에도 상당한 고심 끝에 이루어졌다.

 

  (과연 신묘하고도 변화무쌍한 무술이구나)

 

  감탄하던 양몽환은 발자국대로 밟으며 발 딛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열 번, 백 번, 천 번을 연습하고 잠시 쉬는 동안은 연구하기에 게으르지 않았다.

다시 일어나 열 번, 백 번, 천 번……

거의 저녁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땀을 씻고 주백의의 발자국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 양몽환은 배고픔과 고단함을 참으며 혜진자의 방으로 들어가 문안을 드렸다.

  방바닥에 엎드려

 

「사숙님 좀 어떠하십니까?」

 

하는 양몽환을 침대에 누운 채 바라보던 혜진자는 빙긋이 웃었다.

 

「나는 다 나았다.

내 병을 고쳐준 이야기도 너의 사매에게서 들었다마는 너는 어딜 갔다 이제 오느냐?

너를 찾는다고 사매가 나가서 돌아오질 않아 숙정이도 사매를 찾아 나갔다.」

 

  혜진자는 단숨에 말을 했다.

그러는 그의 모습은 차차 건강이 회복되는 듯 했다.

  양몽환은 깜짝 놀라며

 

「언제 나갔습니까?」

 

「두 시간이 넘었다.」

 

「그럼 곧 찾아오겠습니다.」

 

하직하고 물러 나오는 데 돌아오던 동숙정을 만났다.

 

「사매를 찾지 못하였소?」

 

  양몽환은 급하게 물었다.

 

  그러나 동숙정은 고개를 흔들며

 

「교주성 안을 다 찾아 봐도 없어요.

남문을 나가더라는 사람의 말을 듣고 칠팔십 리나 뛰어 가 봤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양몽환은 낙심하며

 

「그럼, 동사매는 사숙님을 시중하고 계십시오. 내가 곧 찾아오겠습니다!」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워진 거리는 지나가는 행인도 별로 없었다.

  양몽환은 경신법을 이용하여 남쪽을 향하고 단숨에 백리 길을 달렸다

  그러나 어두운 밤에 싸인 대지는 캄캄하고 하늘에 별만 빛날 뿐

하림의 모습은 찾을 길이 없었다.

  더구나 지나가는 행인도 없어 누구에게 물어 볼 수도 없었다.

주위를 휘둘러보던 양몽환은

 

  (어디로 갔는지조차 모르고 이렇게 여기서 헤맨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날이 밝기를 기다려 다시 찾자!)

 

하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급히 두 필의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옳지, 혹시 저 사람들은 말을 타고 달려오는 동안 길에서 하림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한 양몽환은 그들에게 물어 보기로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양몽환의 생각을 모르는 그들은 양몽환을 스치며 질풍같이 달려가고 말았다.

  양몽환은

 

「아차!」

 

  (꼭 물어봐야겠는데 그냥 가다니……)

 

하는 생각을 하자마자 땅을 박차며 쏜살 같이 달려 달리는 두 필의 말고삐를 갑자기 휘어잡았다.

질풍같이 달리는 말고삐를 갑자기 휘어잡자 말은 두 발을 번쩍 들었다 놓으며

앞으로 엎어지듯 섰다.

  그 바람에 말 위에 탔던 사람이 말 잔등에서 떨어지려다 간신히 몸의 중심을 잡으며

대성일갈로 호령하는 것이었다.

 

「어떤 놈이냐? 앞을 가로 막는 놈이!」

 

  벽력같이 외치는 소리는 밤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그 순간!

  캄캄한 중에서도 찬 빛이 완연한 칼을 뽑아든 마상(馬上)의 두 사람은

일시에 양몽환을 겨누고 달려들었다.

 

「앗!」

 

  양몽환은 위험을 느끼고 말고삐를 놓고 땅에 납작 엎드려 칼을 피한 후

다시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양몽환은 두 손을 마주 잡고 읍하며

 

「무례한 짓을 용서하시오. 다만 말씀을 묻고자 할 뿐입니다.」

 

  양몽환의 정중한 사과에 마상의 두 사람은 말에서 내리며

 

「뭐라고? 말을 묻는 놈 같지 않은데? 도적놈이 아니면 왜 앞을 막는가?」

 

  서슬이 시퍼런 그들 앞에서 양몽환은 다시

 

「진심으로 사과하는 바입니다.」

 

하고 또 읍을 했다.

 

  그때야 어느 정도 안심이 된다는 듯 뽑았던 칼을 칼집에 넣으며

 

「말은 무슨 말을 묻겠다는 거요? 빨리 말하시오. 우리도 바쁜 사람들이니……」

 

하며 말도 조금 누그러졌다.

 

「혹시 이곳으로 오는 동안 흰 옷을 입은 십칠 팔세의 소녀를 보신 일이 없는지요?」

 

하고 물었다.

 

  그들은 양몽환의 말을 듣자 서로 눈짓을 하고는 곧 말에 올라가려 했다.

  양몽환은 급히 말고삐를 잡으며

 

「왜 대답을 안 하시고 가려 하오?」

 

하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말 위에 올라탄 두 사람 중의 한 사십여 세 쯤 되어 보이는 사나이가 냉소하며

 

「말할 수 없소!」

 

하고는 말 궁둥이에 채찍을 가했다.

 

  양몽환은 말고삐를 쥔 손에 힘을 주며

 

「무슨 말씀이오. 보았으면 보았다고 하시오.」

 

「보기는 보았소마는 더 이상 말할 수는 없단 말이오.」

 

「그렇다면 좋소, 말하기 전에는 이곳을 빠져 나가지 못하오.」

 

  강경하게 대드는 양몽환의 만만치 않은 기세에 약간 누그러지며

 

「어디로 갔는지 말해 주어도 소용없소.」

 

하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잠시 그들의 동정을 살피며

 

  (수상하다. 이놈들을 굴복시키지 못 한다면 하림의 행방은 묘연할지도 모른다.)

 

  번개같이 생각이 떠오르자

그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온 몸의 공력을 집중하였다가 일시에 우뢰 같은 소리로

 

「얏!」

 

  외침과 동시에 땅을 박차고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잠시의 여유도주지 않고 창응수연(蒼鷹搜燕) 한 수로 오른 쪽의 거한을 향해

 

  <휘익!>

 

  내려 쳤다.

갑자기 공격을 받은 거한은 말에서 뛰어 내리며 횡신란호(橫身欄虎)로

앞을 막고 엽저유도(葉底柳桃)로 다섯 손 가락을 피며 양몽환을 향해 달려들었다.

  양몽환은 공격을 피하며 싸움을 벌인 이상 속전속결(速戰速決)을 결심했다.

  두 명의 괴한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조금 무리였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몸을

 

  <휘익>

 

  공중으로 날며 오른 손의 수를 갑자기 변화시켜 적수박용(赤手縛龍)의 한수로 비수 같이

날려 거한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손목을 잡힌 거한은 온 몸이 죄어드는 아픔을 참을 길이 없어 땅 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신음했다.

  이때 양몽환의 첫 일격에 주춤했던 괴한이 대검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양몽환은 잡았던 거한의 손을 놓으며 주백의의 오행미종보를 써서 거한을 피했다.

 

  순간!

 

  대검을 흔들던 거한은 정신이 혼미하여져 휘청거리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양몽환의 몸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뒤였다.

  거한이 두리번거리며 양몽환을 찾는 동안 하늘 높이 올라갔던

양몽환은 무서운 속도로 내려오며 두 발에 힘을 주어 거한의 두 어깨를 사정없이 내려 밟았다.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양몽환만 찾아 두리번거리던 괴한은 난데없이 내려 밟는

양몽환의 발길에 어깨가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참지 못하고 칼을 떨어 드렸다.

  그 틈을 이용하여 괴한의 엉덩이를 향하고 힘껏 걷어차는 양몽환의

또 다른 일격에 흔들거리던 괴한은 삼장(三丈)이나 높이 솟았다가 머리를 땅에 박으며

떨어져서는 옴짝 달싹도 못했다.

  양몽환은 숨 돌릴 사이도 없이 좀 전에 손목을 잡았던 괴한에게 달려가

다시 적수박용법으로 손목을 잡고 힘을 주어 눌렀다.

  그러자 괴한은 콩알 같은 땀을 뚝뚝 흘리며 눈알을 치뜨고 숨을 몰아쉬었다.

더구나 오장 육부가 찢어지는 듯한 아픔에는 더 견딜 재간이 없었다.

  간신히 양몽환의 손에서 손목이 풀린 괴한은 기진맥진하여 정신을 차릴 기력마저 없어

혼미한 속에서 눈만 멀뚱멀뚱 거렸다.

  그러다 겨우 일어나 앉은 괴한은 주위를 휘이 둘러보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으나 달빛에 눈이 익숙해지자 같이 온 친구는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있고 양몽환의 날카로운 눈이 자기를 노려보고 있다는 것 을 깨달았다.

  완전히 기운을 회복한 괴한은 양몽환을 힐끗 보며

 

「흥! 솜씨가 보통은 아니군! 귀파 귀성(貴派貴性)이나 좀 알 수 없을까?」

 

하는 말은 허세가 대단했다.

 

  양몽환은 실소를 금치 못하며

 

「정신 나간 놈이군! 속히 백의소녀(白衣少女)의 행방이나 말하라!」

 

  추상같이 호령 했다.

 

「사나이 대장부가 소녀의 행방을 무술로 알아내겠다는 것이 참으로 가소롭군!」

 

여전히 허세와 냉대로 대하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주먹을 쥐며

 

「말하지 못하겠다면 좋다. 그러나 나를 원망하지는 마라!」

 

하고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오른 손으로 괴한의 요혈을 찌르고

그와 동시에 왼 손은 적수박용으로 괴한의 손목을 움켜 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의 반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불과했다.

  그리고 잠시의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대성일갈!

 

「아직 정신을 못 차렸어! 빨리 백의 소녀의 행방을 말하라!」

 

했다.

 

  괴한은 생각치도 못했던 협공에 다시 몸을 비비 꼬고 비지땀을 줄줄 흘릴 뿐

입을 열지 못하고 아픔만 참는 듯 했다.

괴한이 끝끝내 하림의 행방을 말하지 않는 것에 있는 대로 화가난양몽환은

이를 악물며 손에 힘을 주어 괴한의 손을 비틀고 말았다.

 

「우두둑!」

 

소리와 함께 괴한의 손목은 나뭇가지 부러지듯 부러져 버렸다.

 

「어이쿠!」

 

괴한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까무러쳐 네 활개를 펴고 쓰려져 버렸다.

  그러나 하림의 행방을 알고 싶어 하는 양몽환은 사실

이 괴한들과 상대로 싸우려는 마음은 없었다.

막상 괴한의 손목이 부러지고 까무러치자 천성이 악하지 못한 양몽환은

곧 마음이 달라졌다.

  쓰러져 까무러친 피한에게 다가가 부러진 손목의 뼈를 다시 이어 맞혀 주고

추궁과혈(推宮過穴)의 수법으로 혈맥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괴한은 긴 잠에서 깨듯 기지개를 하며 일어나 앉았다.

  양몽환은 음성을 부드럽게 낮추며

 

「백의 소녀는 나의 둘도 없는 사매이오.

당신들이 보았으면 그 행방을 가리켜 주오!」

 

  괴한은 완전히 패자가 할 수 없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려는 듯하다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괴한의 태도를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던 양몽환은

 

「무슨 곡절이라도 있는 것 같은데……

말 못할 사정이라면 방향만이라도 가리켜 주십시오!」

그제야 괴한은 그렇게라도 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막 입을 열려는 찰나!

 

「으하…… 하……」

 

하는 음산하고도 찬 물을 끼얹는 듯한 냉소 소리가 들려 왔다.

 

  순간…,

 

  양몽환은 몸을 도사리며 뒤쪽을 주시하자

오십 세 정도의 거한이 허리에 삼재추(三才推)를 차고 나타났다.

 

「퍼뜩!」 

 

  양몽환은 그가 흑기단 단주(黑旗壇壇主) 개비수 최문기(開碑手崔文奇)라는 것을

즉시 알 수 있었다.

  최문기의 출현에 양몽환은 약간 당황했다.

그러나 냉정을 되찾고 그의 앞으로 한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최문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 난 또 누구라고? 곤륜 삼자의 제자인 당신이군!

그런데 어째서 우리 방(幇)사람들과 싸우오?」

 

  양몽환은 문득 생각했다. 

 

  (최문기와 상대하여 싸운다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만일 내가 싸워서 우리 스승님에게까지 화가 미친다면 제자의 도리가 아니다.)

 

  이렇게 단정한 양몽환은 두 손을 모아 공손히 읍하며

 

「노선배님을 이곳에서 뵈옵게 되니 영광입니다.

후배가 귀방의 제자들인 줄 모르고 그만 실례했소이다.」

 

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최문기는 말없이 눈을 돌려 쓰러져 있는 두 제자에게

 

「빨리 일어나 가지 못해!」

 

  서슬이 시퍼렇게 고함을 지르자 쥐구멍이라도 찾는 듯

쩔쩔 매다가 말에 올라타 달아나고 말았다.

 

  제자들이 슬슬 기며 도망쳐 달아난 후 최문기는 날카로운 눈을 번득이며

양몽환을 향해 돌아 섰다.

 

「제자의 복수는 내가 맡겠소.

그러나 곤륜 삼자의 얼굴을 봐서 목숨만을 살려 주지」

 

하고 공격 태세로 양몽환을 쏘아 봤다.

 

  사태가 이렇게 갑자기 돌변하자 일전(一戰)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양몽환은 자신도 모르게 몸 안에 있는 모든 공력이 집중되며 정신과 마음이 정리되고

침착해 지는 것이었다.

 

  (싸우겠다면 응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단단히 결심한 양몽환은 최문기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최문기의 오른 손이 번개처럼 날며 양몽환의 견정혈(肩井穴)을 찌르고

그와 동시에 왼손은 강한 손바람을 내면서 일시에 협공해 들어 왔다.

 

「앗!」

 

  조금만 늦었어도 양몽환은 여지없이 최문기의 일격에 비참하게 쓰러질 뻔 했다.

더구나 천용방의 단주(壇主)이며 무술계의 고수인 최문기의 일격이니 만큼 위세도 대단했다.

 

  그러나 언제 어느 때라도 상대방의 행동을 놓치지 않고 대기 상태에 있는

양몽환의 몸은 결코 둔하지는 않았다.

  재빠른 동작으로 몸을 누운 듯 피한 양몽환은 적수박용의 한 수와 등인대사의

십팔나한 장법 중의 금강개산(金剛開山)을 동시에 발휘하여 최문기의

손목과 가슴을 겨누고 나는 듯이 달려들었다.

  그러나 최문기는 과연 고수이자 단주였다.

양몽환의 날쌘 공격을 쉽사리 피하며 다섯 손가락의 내력(內力)을 발휘하여 역습해 들었다.

  양몽환의 기민하고 빈틈없는 공격과 최문기의 무예계에 익숙한 솜씨와 노련한 공격은

허공에서 불을 튀기는 용과 호랑이의 싸움 그것이다.

  둘이서 공격하고 역습하는 주위 일대는 그야말로 수라장이었다.

돌이 날고 모래와 먼지가 사방으로 날았다.

그뿐 아니라 새파란 풀과 잔디는 밟혀 뭉그러지고 채소밭에 우박이 떨어진 것과 흡사 했다.

  어느덧 서로 불을 뽑는 공격이 맞부딪쳐 싸우기 오 십 여수,

천용방의 단주 최문기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울화통이 터질 지경 이었다.

 

  (요따위 피라미와 오 십 여수까지 싸워도 승부를 못 내다니……요놈을 그냥 한 번에!)

 

하는 순간!

 

「번쩍!」

 

  두 손을 허공으로 쳐들었다 크게 원을 그리며 온 몸에 들어있는

진기(眞氣)를 일시에 내뿜으며 차가운 겨울의 회오리바람 같은 강하고

억센 바람을 일으켜 주위 일대를 파도처럼 뒤 흔들어 놓았다.

  양몽환은 너무나도 거센 바람에 몸을 지탱할 수가 없어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고

영락없는 큰 파도를 만난 일엽편주 그것이다.

도저히 최문기의 바람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하…… 하……」

 

  최문기는 통쾌하게 웃으며 비틀거리는 양몽환을 향해

 

「맛이 어떤가? 이 최문기의 무술이…… 그러나 목숨만은 붙여주겠다.

공연한 짓 하지 말고 썩 물러가라!」

 

  어린 자식을 꾸짖듯 큰 소리로 호령했다.

  최문기의 호령 소리를 들은 양몽환은 머리끝까지 분이 치밀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물고 배처럼 기우뚱거리는 몸에 중심을 잡고 겨우 똑바로 섰다.

그리고 최문기를 노려보는 순간!

  천강장 법 중에서 운용분무(雲龍噴霧)와 주백의의 오행미종보법으로

최문기의 복부를 겨누고 칼날처럼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양몽환의 날카로운 공격에 최문기는 눈앞이 아찔하며

뱃속의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고는

 

「아차!」

 

하고 탄식했다.

 

  (만만치 않은 존재구나, 이번에는 즘 맛을 보여 주어야 갰군……)

 

  여유 있게 생각하며 양몽환을 찾았다.

 

  그러나 금방까지 눈앞에서 버티고 섰던 양몽환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순간,

노련한 최문기는 양몽환의 전술을 미리 알아채고 어디서 바스락 소리만 나기를 기다렸다.

자취 없이 사라진 양몽환이 미구에 달려들 것을 오랜 무술 생활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최문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벽력같은 소리와 함께 차가운 손바람이

 

「휘익!」

 

하고 불어오는 순간,

최문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풍불류(廻風拂柳)로 바람을 막으며 내려쳤다.

그리고 순식간에 몸을 납작하게 엎드리며 돌아다보았다.

  그러나 거기 있어야 할 양몽환은 보이지 않고 일장 밖에 서 있던

아름드리나무가

 

「우지직!」

 

  소리를 내며 동강이 나고 마는 것이었다.

 

「으윽!」

 

  최문기는 가슴이 서늘해지며 양몽환의 기막힌 무술에 아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냉정을 되찾은 최문기는

 

「이놈! 어디에 숨어서 하찮은 요술을 부리느냐!

숨지 말고 이 최문기의 앞으로 썩 나서라!」

 

하고 소리소리 질렀다.

 

  그러자 최문기의 바로 뒤에서

 

「여기 대령했소이다. 이 최문기 놈아!」

 

하는 것이 아닌가.

 

  최문기는 또 한번 놀라며 획 돌아다보았다.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아직 그림자도 보이지 않던 양몽환이 바로 자기 뒤에 태연히 서 있지 않는가?

 

  처음에는 싸움을 하더라도 목숨만은 살려주리라 했던 것이

도리어 자기의 목숨이 붙어 있을까 걱정하게 되었다.

 

  (요놈 잡히기만 해라. 그저 한칼에!)

 

  그러나 최문기의 무서운 결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하게 서있는 양몽환을 본 순간 이때 까지 와는 달리 이를 북북 가는 최문기였다.

  최문기는 자기의 오랜 무술 생활에서 얻은 모든 기술을 다하여 진기를 모아 공격하려고

양몽환을 보면 자취도 없이 안개처럼 사라져버릴 뿐 변변히 공격도 못하고

벌판에 허수아비 같이 서 있지 않을 수 없었다.

  화는 버럭 나고 양몽환은 보이지 않고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곤륜파의 놈들은 모두 이 따위 요술쟁이란 말인가?)

 

  부글부글 속만 태우고 있던 최문기는 두리번거리며 선 채로

몸을 돌려 이리저리 양몽환을 찾아 잔뜩 노리고 있었다.

 

  그때 홀연…,

 

  나뭇잎이 살랑살랑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 이상한 소리군!」

 

하고 어디서 나는 소린가 하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

어느 사이에 나타났는지 양몽환의 자태가 힐끗 보이는가 했는데

엉덩이의 한 쪽이 빠개지는 듯한 아픔과 함께 최문기의 몸은 공중으로

이장이나 높이 솟았다가

 

  <꽈당!>

 

하고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주백의의 오행미종법을 이용한 양몽환이 하늘 높이 솟았다가

독수리처럼 최문기의 몸을 향해 덮치던 양몽환의 발길이 최문기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걷어찬 때문이었다.

  얼마 만에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난 최문기는 귀신같이 나타나서

일격을 가하고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는 양몽환을 상대로 싸운다는 것은

자기 얼굴에 침만 뱉는 격이 될 뿐 아무 이득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요술쟁이와 싸우다니! 더구나 이 소문이 천용방 제자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일찍 피하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자 미친 듯이 달려 도망을 쳐버리고 말았다.

  최문기가 피해 달아나는 것을 바라보던 양몽환은

 

  (오늘은 이만큼 해두자, 필시 복수하러 올 것이다. 그러면 그때 다시 해도 늦지 않다!)

 

하고 몸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고 다시 하림의 행방을 찾아 길을 떠나려고 했다.

그러던 양몽환은 아무래도 천용방의 말을 탄 두 제자가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더구나 두 제자를 찾아 나서기까지 한 흑기단 단주 최문기의 행동이 수상하게 생각되었다.

 

  (천용방에서 사매를 납치해 간 것이 틀림없다!)

 

  생각하면 할수록 천용방의 제자들이 머리에 떠올라

하림은 틀림없이 천용방에 있으리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양몽환은 잠시 더 생각한 다음 우선 천용방으로 가기로 하고

최문기가 달아난 방향의 길을 잡아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혹시 후에 양몽환 자기를 찾아 올 사람을 위하여 자기가 지나갔다는

표적을 십리마다 바위 위에 표시해 놓았다.

그 표시는 곤륜파의 기호로 했다.

 

  훤히… 동녘이 밝아올 무렵,

 

  백리 길을 단숨에 달려온 양몽환은 마을로 찾아가 잠시 쉬며

요기를 한 후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쉬지 않고 달리던 양몽환은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만일 내 생각대로 하림이 천용방에 납치되었다면,

시간으로 봐서 하루 낮과 밤 그리고 지금 반나절 밖에 안 되었다.

아무리 빠른 속도로 갔다 해도 지금 내가 걷고 있는 걸음 보다는

빠르지 못할 것은 분명한 일, 앞서가서 동정을 살피는 것 보다

뒤를 따라가는 것이 하림의 몸을 안전하게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양몽환은 좀 쉬어 가기로 하고

장강(長江) 도선장(渡般場)의 당가집(唐家集) 마을로 들어갔다.

  사방으로 통하는 길의 요새(要塞)인 당가집 마을은 동정을 살피기에 적당했다.

  양몽환은 피곤한 몸도 쉴 겸 인화한 거리의 술집을 찾아 이층으로 올라가

한 병 술을 청해 자작으로 한잔, 한잔 마시고 있었다.

  피곤하던 몸에 들어간 한 병의 술은 양몽환의 피로를 풀어 주기에 알맞았다.

  조금씩 졸던 양몽환은 탁자에 엎드린 채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피곤이 사라지며 잠이 깬 양몽환은 이미 해가 중천(中天)에 뜬것을 알고 적이 놀라며

심부름하는 동자(童子)를 불러 술값을 물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심부름 하는 동자는 양몽환이 술값을 치르려고 하자 싱글싱글 웃으며

 

「손님의 술값은 친구 분이라는 사람이 이미 치렀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화닥닥 놀라며 일어나는 바람에 탁자가 기웃 둥 하고 위에 있던 술병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깨져 버리고 말았다.

 

  그 소리에 놀란 술집의 많은 손님들의 시선은 일시에

양몽환의 당황하는 얼굴로 집중 되었다.

  양몽환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태연하게

 

「친구 분이라는 사람이 아무 말도 없이 가던가?」

 

심부름하는 동자에게 물었다.

동자는 깨진 술병을 집으며

 

「예……」

 

하고 대 답했다.

 

「음, 어떻게 생겼던가? 몇 살이나 돼 보이고?」

 

「글쎄요, 한 스무 살쯤 됐을까요?

바싹 마르고 키는 난쟁이처럼 작아요.

손님이 여기 들어오신 후 잠시 후에 들어와서 바로 여기서 술을 마셨는데 못 보셨어요?」

하고 도리어 양몽환에게 묻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머리를 기웃거리며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인지 알 길이 없어

그가 마시고 있었다는 곳을 바라보았다.

  과연, 동자의 말대로 빈 술병과 안주 그릇이 놓여 있었고 탁자 한끝에

얼른 나타나지 않을 만큼 작은 글씨가 쓰여 있었다.

 

  <옥인(玉人)은 무사하오. 마음 놓으시오.>

 

라는 글씨였다.

그것은 금강지(金剛指)의 무공을 이용하여 손가락으로 쓴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 서명도 없는 글씨만으로는 그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다.

  삼개월여 동안 무술계에서 얻은 경험으로는 글을 써서 남기는 사람은

오직 신출귀몰하는 기인임을 알았다.

그런데 양몽환 자신도 모르는 기인을 동자가 알리는 만무했다.

  양몽환은 더 묻지 않고 은전(銀錢)을 탁자위에 놓으며 글을 지우고 웃으며 말했다.

 

「이 돈은 깨진 술병을 변상하는 것이다. 남는 돈은 네가 가져라!」

 

  한 마디를 남기고 술집을 나왔다.

 

  거리로 나온 양몽환은 이곳저곳 배회하며 하림의 행방을 알려고 했으나 캄캄하였다.

그러던 양몽환은 이토록 찾아다니는 자기의 마음속에 차지하고 있는 하림의 존재가

얼마나 무거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에 새삼 놀랬다.

  사실 하림과 같이 있는 동안은 몰랐다. 그러나 하림이 자기에게서 없어져 버린 지금,

자기의 마음속에는 잠시도 떠나지 않는 하림의 모습을 처음으로 느끼고 사랑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중천에 높이 뜨던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날이 으스름 어두워졌다.

  그때까지 하림의 생각에만 골몰했던 양몽환은 발길을 돌려 여인숙을 찾아 가려고

몇 걸음  발을 옮기다 이상한 말발굽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자리에 서고 말았다.

  점점 가까이 들리는 말발굽 소리는 한 필의 말이 끄는 마차의 소리라는 것도 직감할 수 있었다.

  이때까지 하림의 생각으로 골몰했던 양몽환은 하림이 천용방으로 납치된다면

필시 마차를 이용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지금 저 마차 속에 하림이!)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순간!

 

  양몽환은 으슥한 곳으로 몸을 숨기고 마차가 지나기만 기다렸다.

 

  과연!

 

  마차는 생각대로 양몽환의 앞을 지나 도선장 마당에서 멈추었다.

  마차가 멈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품안에서 소라껍질 같은 물건을 꺼낸 마부는

그것을 입에 대고 불었다.

 

  <붕! 붕! 붕!>

 

  그리고는 강가를 가만히 살피고 있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소리 없이 마차로 달려가 귀를 기울었다.

 

「?」

 

귀를 기울이던 양몽환은 마차 안에서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듣고는

앞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번개처럼 몸을 날려 마부를 쓰러뜨린 양몽환은 마차의 문을 열어 제겼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힘없이 문을 닫고 돌아서고 말았다.

  신음 소리는 틀림없는 하림의 신음 소리일 것이라고 믿었던 양몽환의 눈에는

하림은커녕 낯도 모르는 세 명의 사나이가 녹초가 되어 쓰러져 있었던 것이었다.

  양몽환은 실망한 나머지 넋을 잃고 멍청히 서 있었다.

 

  그때,

  양몽환의 일격에 쓰러졌던 마부가 정신을 차리고 멍청히 서 있는 양몽환의

뒤에서 협공을 가해 왔다.

 

「앗!」

 

하며 몸을 피한 양몽환은 거의 손바람이 보통 솜씨가 아니라는 것에 적이 놀랐다.

  그러나 마차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이 하림이 아닌 이상 공연한 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었다.  

마부의 일격을 피한 양몽환은 다시 반격하려는 마부에게 손을 흔들며

 

「아니오! 잠깐만! 천용방의 제자이신가요?」

 

하고 한 편 제지하며 연거푸 물었다.

 

  양몽환의 겁 먹은듯한 소리와 천용방이라는 말에 마부는 태도를 고치며

 

「그렇소! 당신은?」

 

하고 날카롭게 되물었다. 

 

  양몽환은 대답 대신

 

「마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찌된 일이오?」

 

하고 물음에 마부는 양몽환의 행동이 천용방과 무슨 관계가 있는 사람인줄 알고

 

「압송하던 사람은 뺏기고 우리 편 사람만 저렇게 다쳤소.」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양몽환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 서서 가려고 했다.

  그러자 마부는 당황하며 양몽환의 앞을 가로 막았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요?」

 

하고 대들듯이 물었다.

 

  아무 말 없이 이곳을 피하려던 양몽환은 약간 위험을 느꼈으나 태연 하게

 

「알 필요 없소이다.」

 

「뭐라고? 알 필요가 없다고?

도대체 어떤 놈인데 남의 마차를 함부로 열고 행패를 부리느냐?」

 

  말이 끝나는가 했는데 갑자기 손바람을 일으키며 달려들었다.

  가만히 피하려던 양몽환은 돌변한 사태에 얼굴을 찌푸리며

대수롭지 않게 공격을 막아내고 폐문추월(閉門推月)의 한 수를 써서

마부의 혈맥을 꽉 막아 놓았다.

  혈맥이 막힌 마부는 땅바닥에 끓어 앉으며

 

「아이쿠!」

 

  한 마디의 신음 소리를 내고는 버둥거렸다.

  양몽환은 마부 앞으로 서서히 다가가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살려 주겠소!」

 

  그 말을 들은 마부는 말을 못하고 손짓으로 막힌 혈맥을 가리키며 눈물을 줄줄 흘렸다.

  무서운 고통이었다.

피가 응결되며 목이 꼿꼿해 지는가 하면 금세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괴로움이었다.

  양몽환은 그의 괴로워하는 표정을 보고 더구나 애초부터 싸우려던 생각도 없었으므로

그의 막힌 혈도를 열어 주었다.

막혔던 혈도가 열려 다시 살게 된 마부는 엎드린 채 절하며

 

「제발 목숨만은 붙여 줍쇼.」

 

  애걸하고 또 애걸했다.

 

「그러면 묻는 말에 숨김없이 대답하겠소?」

 

하자 마부는 또 절을 하며 애걸했다.

 

「예, 예 무엇이던지…… 말씀만 합쇼.」

 

「그렇다면 당신들이 압송하던 사람은?」

 

「예, 여자입니다.」

 

「여자라고?」

 

「여부 있습니까? 하얀 옷을 입은 십칠 팔세의……」

 

  순간! 양몽환은 목이 타며 갈증을 느꼈다.

  그런가 하면 몸이 부들부들 떨리며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누가 납치해 갔소?」

 

「중처럼 차린 두 명의 괴한입니다.」

 

「어디로 갔소?」

 

「그런 건 모릅니다.

싸움을 벌려 우리 편만 상처를 입고 이렇게 달려오는 길이 올씨다.」

 

「알았소, 미안하오.」

 

  양몽환은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바로 그때 ,

 

  <삐거덕! 삐거덕!>

 

  노 젓는 소리가 그치며 두 척의 배가 닿았다.

  그리고 그 배에서 네 명의 거한이 내려 양몽환의 앞에 나타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