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비연경룡

제 4 장 칼끝이 빛나는 그 의미는 <寶?一劍>

오늘의 쉼터 2014. 6. 22. 10:22

제 4 장 칼끝이 빛나는 그 의미는 <寶?一劍>
 

 


수 백 년 동안이나 무술계에서 전해오던 제일기보(奇寶)를 눈앞에 대하자

그들의 마음은 더 없이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양자는 떨리는 손으로 함을 열었다.

그러자 붉은 주사(珠砂)로 귀원비급이라고 쓴 네 글자가 빛났다.

일양자는 심장이 심히 고동침을 느끼고 급히 함 뚜껑을 덮었다.

그리고는 품 안에서 노란색 수건을 끄집어내어 조심스럽게 함을 싸서

등에 젊어지고 연화대에 앉아 있는 천기진인과 삼음신니 법체에 예배를 드린 후,

양몽환과 함께 석실을 물러 나왔다.

그들은 빨리 온 길을 통해 석굴을 나왔다.

일양자는 고개를 치켜들고 길게 외치니 그 소리는 용이 우는 듯 산곡을 울렸다.

혜진자와 등인대사 일행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차에 굴 속 아래에서

일양자의 외치는 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오자 마음을 놓았다.

그 후 약 일각이 지나자 양몽환이 먼저 올라오고 곧 뒤 따라 일양자가 올라 왔다.

혜진자는 반가움에 웃으며 일양자를 맞았다.

 

「왜 그렇게 시간이 걸렸지요? 등 위에 메고 있는 것이 귀원비급인가요?」

 

  일양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꽃나무 함정에 빠져 하마터면 못 나을 뻔 했지만 귀원비급을 찾았으니

천리 길을 고생하고 온 것도 허사는 아니었소.」

 

하며 감개무량 한 듯 길게 한숨을 쉬고는 곤경에 빠졌던 이야기를 했다.

혜진자는 양몽환을 보고

 

「젊은 사람이 마음이 세심하고 예민할뿐더러 깨닫는 것 또한 매우 빠르니

큰 사형이 이렇게 좋은 제자를 둔 것을 축하합니다.

이런 사람들로서 곤륜파는 장차 더욱 흥할 것이오.」

 

양몽환은 사숙의 칭찬에 얼굴을 붉히고 부끄러워했다.

일양자는 양몽환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귀원비급은 손에 넣었으나 차후 조용한 곳을 어디로 선택하여

비급의 오묘한 함의(含意)를 연구하여야 할 것이며 또한 무술계의 유일한 보급의 무공을

일 년 혹은 이 년으로는 도저히 돌파할 수 없으니 그 동안 소문이 퍼진다면 틀림없이

파란이 일어날 것이다.

이것이 만일 사랑하는 제자와 곤륜파까지 미친다면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무술계를 뒤집는 커다란 사건이 되어 결국은 온갖 참혹한 싸움을 벌려 존망(存亡)을

결정할 것이니 그것이 정말 걱정거리였다.

이와 같이 귀원비급은 비록 절세적인 보물이지만 한편으로는 참혹한 싸움을 일으킬

화근이기도 했다.

혜진자는 일양자가 비급을 가졌어도 즐거운 기색이 없고 우울해 하는 것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귀원비급을 손에 넣었으면 즐거울 것인데 왜 그렇게 침울 하시죠?」

 

하고 그녀는 묵인철갑사피(墨鱗鐵甲蛇皮)를 품안에서 꺼냈다.

 

「이번에 서로 큰 수확이 있었어요.

큰 사형은 귀원비급을 얻었고 저는 무술계에서도 긴요한 보물을 얻었죠. 이걸 봐요.」

 

일양자는 태양 아래 번쩍이는 뱀의 비늘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과연 진귀한 물건이군! 이렇게 큰 묵인철갑사는 정말 드문 것인데 어디서 이런 것을 구하셨소?」

「귀한 인연에서죠. 이렇게 큰 것을 만나도 잡을 수도 없을 것인데 정말 우연한 기회에 힘들이지

않고 구했어요. 큰 사형이 찾은 귀원비급과 이것만 있으면 우리 곤륜파도 무술계 각 파와

한 번 겨누어볼 수가 있을 듯 하죠?」

 

하는 바로 그때였다. 

 

 홀연!

 

차가운 냉소 소리가 들려 왔다.

그 소리는 매우 나지막하고 맑았다.

일양자는 벌떡 일어나 사방을 돌아 봤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의 무술로서는 오장내(五丈內)에 낙엽 떨어지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는데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사람의 소리를 듣고도 사람을 발견 못했으니

마음속으로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혜진자나 등인대사도 그 비웃음소리를 들었지만 사방을 돌아보아도

사람의 그림자는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 하림의 찢어지는 듯 한 소리가 고막을 울렸다.

 

「앗! 그 큰 백학이 또 날아 왔어요!」

 

일양자와 혜진자 그리고 등인대사는 정신을 모아 냉소한 사람을 찾는 중이라

머리 위까지 날아 온 백학을 모르고 있었다.

하림의 고함 소리에 비로소 급히 고개를 들었으나 이미 늦었다.

백학은 두 날개에서 바람을 일으키며 일양자를 향하고 번개같이 나르면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묵인철갑사피를 채어 가 버렸다.

혜진자는 깜짝 놀라 재빨리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뛰어 오르면서 벽공장으로

 백학을 치자 한줄기 강한 장풍이 백학에 적중했으나 백학은 몸을 두 번 흔들흔들 할 뿐,

 

「캬옥!」

 

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혜진자는 귀물을 빼앗으려고 힘껏 장풍을 내쳤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 분통이 터질듯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는 수밖에 없었다.

일양자는 그녀의 마음을 잘 알고 천천히 옆으로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삼장 길이나 되는 묵인철갑사를 죽인 그 백학은 비범한 놈이요.

단지 사피(蛇皮)만 채가고 사람은 상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분명

그 백학은 배후에서 사람이 조종하고 있는 것이요.

당신의 벽공장 일격은 적어도 천 근(千斤)이상 되는데 거학은 끄덕도 않으니

아마 백학을 키우는 사람은 틀림없이 신선 같은 협객일 것이요.

방금 들린 냉소도 역시 백학의 주인이니

그는 목적을 사피에 두어 사람을 상하질 않게 하나보오.

백학과 구렁이를 싸우게 한 것도 사피를 얻고자 한 것 같으오.

이미 잃은 보물인데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빨리 갑시다.」

 

혜진자는 탄식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여섯 사람은 즉시 달리기시 작했다.

혜진자는 묵인철갑사피를 잃은 것이 마음에 걸려 기분이 매우 개운치 못했다.

일행은 양몽환이 청의 소년을 만난 곳까지 왔을 때 일양자는 발을 멎고 말했다.

 

「여기서 건량이나 먹고 쉬어 갑시다.」

 

여섯 사람이 않아 양몽환이 먼저 일양자와 혜진자 그리고 등인대사에게 공손히

건량을 드린 후에 비로소 하림과 동숙정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림은 건량을 먹으며 동숙정을 불렸다.

 

「언니! 곤륜산에도 거학이 있을까요?

있으면 한 마리 잡아 길러서 사부님께 드릴 묵인철갑사를 찾아오도록 해야겠는데……

봐요! 그 백학이 철갑사피를 덮쳐 간 후 사부님께선 줄곧 낙심해 있어요.」

 

하며 한숨을 길게 쉬는 그 모습은 매우 애처로웠다.

일양자와 혜진자 그리고 등인대사도 그녀의 말을 듣고 일제히 고개를 돌려 보니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고 수심에 가득 차 있었다.

이를 본 혜진자가 일양자에게 나지막하게

 

「림아는 정말 순진한 애예요.」

 

했다.

 

그때 또 다시 계곡을 진동하는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혜진자가 벌떡 일어나 보니 추하기 이를 데 없는 네 사람이 백발노인을 에워싸고

이곳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삽시간에 다섯 사람은 가까이 다가 왔다.

그들 가운데 노인의 모습은 우아하고 손에는 용두(龍頭)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노인을 에워싸고 있는 추한 네 사람은 모조리 누런빛 삼베옷에 짚신을 신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인상은 사람 같지 않았다.

노인은 약 육장 가까이 까지 와서 발을 멎으며 일양자에게 두 주먹을 앞가슴에 모아

인사하는 것이었다.

「곤륜삼자는 무술계에서도 쟁쟁한 분이라 오늘 노부가 다행히 이곳에서 만나보게 되었으니

영광으로 생각하오!」

 

말이 끝나자 껄껄하고 대소했다.

그 웃음소리는 온 산이 들썩들썩 했다.

일양자는 노인의 우아한 모습을 보자

벌써 천용방 방주 해천일수 이창란임을 알았으며 그를 에워싸고 있는 추한

네 사람의 기이한 옷차림으로 천중사추(川中四醜)임을 알 수 있었으나

태연이 합장하여 웃는 얼굴로 말했다.

 

「이 방주께서는 천용방을 창설하고 널리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 곤륜삼자가

어찌 이 방주와 비교가 되겠소?」

 

이창란은 미소를 짓고 말했다.

「겸손하신 말씀, 곤륜파는 무술계 구대파(九大派)의 하나이며

천용방은 불과 무술계의 외인들이 모인 사문파(邪門派)니

감히 무술계 구대 문파와 길고 짧은 것을 비할 수가 없을 것이오!」

말이 끝난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며 눈에서는 예리한 광채가 반짝였다.

그리고는 일양자가 메고 있는 노란색 보자기를 발견하고 말을 이었다.

 

「풍문에 의하면 무술계에서 전해 오던 장진도를 관주께서 손에 넣었다는데 그 말이 정말이요?」

 

그 말을 듣고 일양자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신분이라 하는 수 없이 한참 생각하다 말했다.

「옳소. 소도가 그 물건을 손에 넣은 것은 사실이오.」

 

이창란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관주께서 장진도를 얻으셨다면 귀원비급을 찾기는 문제가 없겠습니다.

혹 관주께서 등에 메고 계시는 황색 보자기 안에 귀원비급이 들어 있지 않소?」

 

노골적인 물음에 일양자는 얼굴을 돌리고 말했다.

 

「바로 귀원비급올씨다. 그런데 이 방주께서 묻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창란은 냉랭하게

「귀원비급은 비록 무술계의 신기한 보물이지만 이창란이 강탈할 마음은 없소.

지금 괄창산에는 수많은 고수들이 운집하여 장진도를 손에 넣으려 하고 있소

그러나 노부에게 공평한 해결 방법이 있소이다.

그것은 귀원비급을 관주께서 잠시 보관하시되 절대 사사롭게 봐서는 안 되며

귀파 장문인과 노부의 이름으로 구대문파 장문과 천하 영웅을 초청하여

이차 무술 대회를 열어 수백 년 동안 현안인 서열문제를 해결하고

그 다음으로 귀원비급 소유권을 결정한다면 일거양득의 방법이라 생각하오.

관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일양자가 대답하기도 전에 혜진자가 나섰다.

 

「귀원비급은 곤륜파가 찾았으니 그야 물론 곤륜파에 속할 것이며 이차 무술 대회는

이 방주께서 청첩만 내신다면 곤륜파는 꼭 찾아갈 것이나 대회를 주최할 마음은 없소이다.」

 

이창란은 냉소하더니 말했다.

 

「당신은 무술계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혜진자 여협인가 본데 노부는

지금 당신의 사형과 말하고 있으니 여협께서는 될 수 있으면 나서지 않는 것이 좋겠소.」

 

혜진자는 얼굴이 붉어졌으나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일양자는 노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차 무술대회와 귀원비급과는 같은 일이 아니며 연결시킬 필요도 없소.

소도는 급히 돌아가야 할 길이라 방주와 변론할 사이가 없으니

곤륜산의 금정봉 삼청궁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수시로 왕림 하여 주시오.」

말이 끝나자 양몽환 등을 재촉하여 떠났다.

 

그러자 이창란은 수중의 용두 지팡이로 앞길을 막고 대소하며 말했다.

 

「당신들은 앞으로 삼십 리를 못가서 다른 사람의 제지를 받을 것이니

비록 노부가 손을 대지 않는다 해도 귀원비급은 당신이 간직할 수는 없을 거요.」

 

「곤륜삼자는 아직껏 남의 위압을 받아본 일은 없소이다.

이방주의 고마운 말씀은 잊지 않고 있겠소.」

 

「만일 다른 사람이 달려들어 뺏는다면 천용방도 한몫 들 수 있을까요?」

 

「그야 물론이죠. 이 방주께서 흥미만 있다면 마음 놓고 손을 쓰시오.」

 

이창란은 길을 트며 웃고 말했다.

 

「그렇다면 약속하겠소. 만일 다른 사람이 뺏는다면 천용방도 한몫 끼겠소!」

 

하고 몸을 돌려 서서히 가 버렸다.

일양자는 이창란이 간 후 양몽환과 하림을 보고 말했다.

 

「만일 어느 사람을 불문하고 싸우게 되더라도 너희들은 싸움에 참가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무술계의 고수들이라 너희들이 손만 대지 않으면 어린 너희들을 해치진 않을 것이다.」

 

양몽환은 스승의 담담한 말씀 가운데 분명히 귀원비급을 목숨으로 수호하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고

 

「사부님!」

 

하고 불렸다.

그러나 일양자는 고개를 흔들며 말을 제지한 후 일행을 재촉했다.

약 이십 리나 갔을 때 유곡 한쪽 소나무 위에서 돌연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수 십장 높은 곳에서 흰 수염에 죽장을 쥔 노인이 두루마기를 펄렁거리며 앞을 가로막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말했다.

 

「현도관주! 그간 안녕하셨소? 아직도 늙은 이 친구 문공태(聞公泰)를 기억하고 계시오!」

 

혜진자는 냉소하며 말을 받았다.

 

「화산파 장문인은 정말 굉장하시군! 이곳까지 따라왔으니……」

 

팔비신옹 문공태는 웃으며

 

「따라온 사람이 나 혼자뿐일까?

점창쌍안(點蒼?雁) 이외 아마 십여 명의 무술계 친구들도 왔고

천용방 다섯 깃발 아래의 단주 세 명도 왔으니 고악산 소실봉의 무술대회부터 오늘날까지

삼백여 년 이래 공전의 성대한 모임이 되었으니 아마 재미난 일이 많을 거요.」

 

일양자는 냉랭하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문형도 이 성회(盛會)에 참가하려고 오셨군!」

 

문공태는 대소하더니

 

「겸손한 말씀. 저야 제일 좋은 자리에 앉아 구경이나 하려고 왔죠.」

 

일양자는

 

「흥!」

 

하더니 말했다.

 

「귀원비급은 바로 내가 등에 메고 있소! 뺏을 마음이 있으면 한번 뺏어 보시구려.」

 

그러자 문공태는 얼굴색이 돌변하더니 말했다.

 

「분광검법과 천강장도 그리 대단한 무술의 절학이 아니니 나도 몇 수는 받아낼 자신이 있소.

그러나 우리 화산파와 곤륜파는 종래에 원수도 없으니 만일 도형께서 비급 연구에

한몫 끼어 주시면 힘이 되어 주겠소.」

 

일양자는 웃으며

 

「문형의 호의는 이 도인이 잘 받들겠으나 곤륜삼자는 남에게 무릎을 끊고 부탁은 않겠소이다.」

 

문공태는 수중의 죽장으로 앞을 가로 막고 말했다.

 

「그럼 할 수 없군. 도형의 솜씨나 한 번 구경할까요?」

 

일양자는 등에서 장검을 뽑아 들고 말했다.

 

「상대해 드리죠. 문형의 금환(金丸) 휘두르는 절기를 견학하면 죽더라도 한이 없을 것이오.」

 

문공태는 한수 소지천남(笑指天南)으로 앞면을 후려치자

일양자는 팔방풍우(八方風雨)의 수로 청죽장을 막는 동시에 한 수 백운출수(白雲出岫)로

재빨리 앞가슴을 찔렀다.

 

문공태는

 

「훌륭하군!」

 

하면서 회풍불유(回風佛柳)의 수로써 장검을 휘두르고 땅을 박차며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그리고는 맹렬히 공격을 가했다.

일양자는 크게 웃으며 분광검법을 전개하자

그는 내공이 웅후 하므로 같은 검법이라도 양몽환과는 달리 수마다 오묘한 변화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들은 어언 간에 십육 칠 수를 겨누었다.

문공태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연거푸 공격을 가하고는 일약 일장이나 뒤로 물러간 후

오른 손으로는 죽장을 쥐고 왼손으로는 허공을 쳤다.

돌연, 수염이 꼿꼿이 서더니 두 눈을 부릅뜨고 일양자를 향해 서서히 다가왔다.

일양자는 그의 거동을 보고 평생의 공력을 집중, 공격해 올 것을 알고 자세를 가다듬고

칼끝을 비스듬히 잡은 채 기력을 집중하고 온정신을 모아 상대방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혜진자도 암암리에 마음이 초조해지며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이때 돌연 껄껄 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두 분께서는 생사의 결투를 다음에 하시고 저를 한 번 보시오.」

하고 냉랭하게 말하며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점창쌍안이었다.

 

문공태와 일양자가 돌아보자

 

「두 분과 공교롭게 또다시 만나니 다만 우리들의 인연이 깊은 모양이요.」

 

말을 하며 그들에게 다가섰다.

 

원래 문공태는 모든 공력을 모아 일격에 일양자를 해치우고 금환(金丸)을 휘둘러

혜진자와 등인대사들을 처치할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점창쌍안(點蒼?雁)이 나타나자

기분이 나빠져 화풀이로 점창쌍안을 먼저 격파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점창쌍안도 약한 자는 아니다.

도포 차림으로 긴 수염에 얼굴빛이 가지색인 사람이 점창파 삼안(點蒼派三雁)중의

둘째로 운중안 교곤(雲中雁교坤)이며 얼굴이 희고 푸른 옷에 선비차림을 한 사람이

바로 세 째 추풍안 엽혜(追風雁葉惠)이고 첫째 번천안 마가홍(?天雁馬家宏)세 사람을 합쳐

점창삼안(點蒼三雁)이라 호칭하였다.

그들 가운데 첫째인 마가홍이 무술이 가장 강한데다

또한 점창파 십사 대 장문인(點蒼派十四代掌門人)이었다.

이번 쌍안이 호남성까지 유람 왔을 때 일양자가 장진도를 손에 넣었다는 소문을 듣고

귀원비급을 뺏을 생각이 나서 장문 사형에게 알리지도 않고 멀리 괄창산까지 추적해 온 것이었다.쌍안은 문공태의 거동을 보자 재빨리 기력을 운행하여 암암리에 문공태와의 싸움 준비를 했다.

이 때 돌연, 뒤에서 기합 소리와 함께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였다.

그곳에는 언제 왔는지 사수구원(蛇?丘元)과 혜진자가 맞붙어 싸움이 한창이었다.

혜진자는 분광검법으로 적에 대항하자 검광은 하늘을 뒤덮었으며 사수구원의 맹렬한 공격도

경쾌한 혜진자의 검술에 완전히 힘을 쓰지 못했다.

사태를 추측한 문공태는 쌍안과 싸워 이기더라도 진력만 소비할 뿐 큰 이득은 없을 듯하여

조용히 사태를 관망한 후 기회를 틈타 손을 쓸 것을 결심했다.

그리고는 쌍안에게 냉소하며 말했다.

 

「차후 많은 시간이 있을 것이니

그때 가서 당신들 점창삼안(點蒼三雁)의 무공을 구경함이 어떻겠소?」

쌍안도 역시 그의 말을 모르는바 아니었고 그들도 귀원비급에 목적을 두고 있으니

만일 먼저 문공태와 싸운다면 다른 사람은 어부의 이를 얻을 것이라

문공태가 손을 멎고 싸우지 않는다니 자신의 의사와도 맞는 일이라

그들은 담담하게 일소하며 아무 말 없이 싸움을 구경하였다.

그동안 혜진자도 팔십 여수나 겨누었으나 승부는 쉽사리 나지 않았다.

혜진자는 기합 소리도 늠름하게 추혼십이검법을 발휘하자

검광은 삽시간에 수 천 가락의 빛으로 변하여 사수구원을 덮쳤다.

그러자 구원은 지탱하지 못해 계곡의 기슭까지 후퇴했다.

만일 여기서 혜진자가 계속 공격한다면 구원은 절벽 낭떠러지에 떨어져 박살이 날 것이다.

그러나 혜진자는 인자한 사람이다.

사람을 상하게 할 마음이 없는 듯 칼을 거두며 말했다.

 

「당신의 사두 지팡이의 수법도 이만 저만한 것은 아니요 마는 귀원비급을 뺏을 솜씨는 못되오.」

 

구원은 대꾸도 못하고 가쁜 숨만 헐떡헐떡 쉬고 있기만 했다.

이때 문공태가 냉랭하게 말했다.

 

「구형, 이미 졌으니 빨리 이곳을 떠나지. 무얼 우물 주물하고 기다리고 있소?」

 

구원은 문공태의 호통에 화가 나 이를 갈며 몸을 후들 후들 떨면서 얼굴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문형! 우리는 어느 때든지 한번 생사를 두고 싸울 때가 있을 것이니 너무 호통 마시오!」

 

문공태는 냉소하더니

 

「구형은 절대 곤륜삼자의 적수가 아님을 벌써 말해 둔바 있소.

보시오! 오늘에야 나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지 않았소.

만일 나와 겨누어 보려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상대가 되어 드리겠소.」

 

구원은 문공태가 옆에 서서 빈정거리자 노기가 충천했다.

 

그는 곧 품속에서 판관필(判官筆)같은 무기를 두 자루 끄집어내더니

혜진자를 노려보며 작은 소리로

 

「귀하의 인자하신 마음으로 저는 죽지 않았으나 마땅히  진 것으로 간주해야만 합니다만

구성(丘姓)을 가진 저는 종래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 한 쌍의 비룡봉(飛龍棒)으로 몇 수 겨루어 볼까 합니다.」

 

그가 여전히 진 것을 인정하지 않고 덤비자 혜진자도 화가 치밀었다.

 

「당신이 어떤 절학을 지니고 있는지 써 보시요! 제가 꼭 상대해드리겠소.」

 

구원은 음침하게 웃었다.

 

「좋소! 그럼 여협께서 주의 하시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진자는 재빨리 장검을 휘두르고 한 수 낭권유사(浪捲流沙)로

앞가슴을 찌르자 구원은 비룡봉을 휘둘러 막았다.

 

혜진자는 이번만큼은 용서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잇달아 기봉등교(起鳳謄蛟),

신용음현(神龍陰現), 석파천경(石破天警) 등 추혼십이검법의 세 절기를 발휘하여

맹공하자 광풍을 이루어 한 검광이 구원을 에워싸니

그는 속수무책으로 간신히 피했다.

일양자는 구원이 수중의 사두 지팡이를 버리고 이상한 무기를 끄집어낸 것을 심히

이상하게 여기어 구원의 거동을 주시하여 보았으나 일시에 짐작이 가지 않았다.

혜진자에게 조심하라고 당부하려 했을 때 혜진자는 잇따라 세수의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구원은 손과 발이 제대로 맞지 않아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마음을 놓고 돌아 서던 일양자를 긴장시키고도 남을 만큼 날카로운 혜진자의

비명 소리가 고막을 찌르는 것이었다.

그때 혜진자는 맹렬한 공격으로 구원을 물리쳐 격퇴시킨 후

곧 이어 소지친남(笑指天南)의 한 수로 내려치려는 순간,

뒷걸음질치던 구원의 눈에서 날카로운 광채가 나며 살기 돋친 구원의 고함이 터졌다.

 

「혜진자! 정말 그따위로 악랄한 수법을 쓴다면 나도 참을 수 없소 원망하지 마오!」

 

그러나 혜진자는 눈썹하나 까닥하지 않고 수법을 춘운조전(春雲조電)으로 변화시켜

내공을 합해 일격을 가하려고 손을 높이 들었을 때였다.

갑자기 손목이 따끔하는가 했는데 어느 사이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심한 통증을 느끼며 비명을 지르고 말았던 것이었다.

과연, 혜진자의 손목에는 보기에도 징그러운 한 마리의 독사(毒蛇)가 손목을 문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러자 손목의 힘이 일시에 빠지며 정신마저 혼란해지는 혜진자는

제대로 몸도 가누지 못하고 곧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것이었다.

황급히 돌아섰던 일양자는 즉시 달려들어 독사를 한칼에 난도질을 쳐 떨어뜨리고

 

「그만 싸움을 거두시오! 당신은 정말 사람을 죽일 작정이오?」

 

하고는 비틀거리는 혜진자를 부축했다.

 

그러나 일양자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도 눈을 부라리던 구원은 냉랭하게 대답했다.

 

「만일 보통 독사 같으면 내공이 음후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없으나

나의 금선사(金線蛇)는 금강동철(金剛銅鐵)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도 지탱할 수가 없소.

만약 손목을 물고 있는 뱀을 자르면 상처를 입은 뱀은 독을 상처를 통해 뿜어내어

한 시간도 못가서 오장으로 퍼져 죽고 말 것이요. 믿지 못한다면 한번 시험하여 보시구려.」

 

 일양자는 금선사를 자세히 보니 과연 평생을 두고 보지 못한 뱀이라

혜진자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빨리 앉아서 공력을 운행하여 곡지혈(曲池穴)을 폐쇄하고 독이 온 전신에 퍼지지 않도록 하오.」

 

이 때 혜진자는 오히려 침착해져서 담담하게 웃으며 정이 담뿍 어린 얼굴로 쳐다보고 말했다.

 

「죽는 것도 두렵지 않소. 절대로 그들의 협박에 넘어가지 마오.」

 

그녀는 말을 마치자 서서히 앉아 눈을 감고 공력을 운행했다.

일양자는 혜진자가 손목이 뱀에게 물린 채로 앉아서 눈을 감고 입가에 웃음마저

띠우고 있는 모양을 보고는 수 십 년간을 사랑한 옛날이 생각나 말할 수 없는 정회가 솟아올랐다. 일양자는 등 뒤에서 천천히 노란 보자기를 푸르면서 구원에게 말했다.

「당신의 목적은 오직 귀원비급을 뺏으려는 것이겠으니 당신의 소원을 풀어 주겠소.

그러나 먼저 금선사 독을 풀어 줘야 하오.」

그러자 구원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꾸짖듯이 말했다.

 

「내가 만일 당신을 속이려면 아무 약이나 드리면 되지만 나 구모인(丘某人)은

아직 그런 유치한 사람은 아니오.」

 

그 말을 듣자 일양자는 마음이 섬뜩해짐을 느끼며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럼, 해독약이 없다는 말이요?」

「생명은 보존할 수 있으나 무공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며 많이 살아 봤자

십년 이상 못 살 것이오. 십년 후 독이 재발한 후엔 기사회생의 영약이 있더라도

생명을 구할 수는 없을 거요.」

 

「그럼 십 년만 더 있게 하여 주오. 독만 풀어 준다면 이 귀원비급을 드리리다.」

그제야 구원은 품안에서 흰 병을 끄집어내더니

푸른 알약을 한 알 입에 넣어 씹은 후 오른 손으로 비룡봉의 손잡이를 열었다.

그러자 봉 끝이 저절로 열렸다.

그는 혜진자에게로 다가가 약간 긴장한 기색으로 먼저 꿈틀거리는 뱀 머리를

비룡봉의 갈라진 구멍으로 넣은 후 입에서 씹은 알약을 뱀 대가리에 훅! 하고 뱉었다.

뱀은 물고 있던 혜진자의 손목을 놓고 봉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구원은 그 틈에 손을 봉 자루에서 떼었다.

그러자 열린 구멍은 또다시 저절로 닫혔다.

구원은 숨을 돌이켜 쉬고 말했다.

 

「지금 해독을 해야 하는데 이 산중에는 도구와 약이 없으니

괄창산을 나가서 손을 쓸까 하오.」

 

일양자는 미간을 찌푸리고 노기 어린 목소리로

 

「대장부의 일언이 중천금인데 내가 한 말을 못 믿겠다는 거요?

내가 약속을 이행치 않을까 겁은 내지 마시오.

이 비급을 먼저 드리리다.」

 

하며 노란 보자기를 주었다.

구원은 귀원비급을 받으며

 

「만약 내가 당신을 못 믿었다면 솔직한 이야기를 않았을 것이오.

그녀의 사독을 풀려면 적어도 백도 이상의 끓는 초가 있어야 하는데

초가 끓는 그 김에 손을 넣어 몸의 독을 한 곳으로 몰아내고

그 후약으로 여독을 완전히 풀면 하루 만에 효력을 볼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산을 나가려면 최소한 하루가 걸리는데 그녀가 지탱할 수 있겠소?」

 

구원은 손에 든 병을 흔들며 말했다.

 

「나의 이 옥로해독단(玉露解毒丹)은 주로 각종 독을 푸는 것이오.

만약 보통 독사에 물렸다면 한 알만 먹어도 무사할 것이오.

지금 이약으로 그녀의 오장육부에 독이 들어가질 못하도록 하고

괄창산을 나가서 처방 약으로 치료하도록 하면 늦지 않을 것이오.」

 

일양자는 탄식하며 약병을 받아 얼굴을 돌려 혜진자를 보니

미간에 가느다란 검정 점이 스며 나오고 오른 손 상처는 벌써 시꺼멓게 변하였으므로

일양자는 마음이 쓰라림을 어쩔 수 없었다.

일양자는 서서히 그녀의 옆으로 다가 가서 약을 두알 꺼내면서 말했다.

 

「먼저 이 두 알약을 먹고 난 후 빨리 산을 떠나도록 합시다.」

 

그러나 혜진자는 그때 공력을 운행하느라고 일양자의 말을 듣지도 못하였다.

 

그때 등인대사가 말했다.

 

「잠시 그냥 두었다가 나중에 먹여도 늦지 않을 것이요」

 

일양자는 이미 평소의 침착성을 잃고 초조한 빛이 얼굴에 가득차있었다.

이를 본 등인대사는 마음속으로  (음! 두 사람의 사이는 사형제의 관계뿐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등인대사가 고개를 돌려 하림을 보니

그녀는 큰 눈을 둥글게 뜨고 우울한 기색으로 스승의 상처만 물끄러미 쳐다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 때 돌연 문공태의 일갈 소리와 함께 청죽장을 휘돌리며 한 수 난권유사(欄捲流沙)로

구원을 내리 치면서 왼 손 다섯 손가락을 쫙! 벌려 구원의 수중에 있는 귀원비급을 뺏으려고

달려들었다.

순간, 구원은 문공태를 막을 수 없어 급히 팔구척이나 후퇴하자

옆에 섰던 점창쌍안이 좌우에서 덮쳐들었다.

그들의 맹렬한 공격에 일시 대적하지 못한 구원은

왼쪽 어깨에 손바람을 맞아 몸의 중심을 잃었다.

이때 엽혜가 재빨리 덮쳐들어 구원의 수중의 비급을 뺏어 일약 절벽으로 뛰어 가더니

오른 손에 비급을 들고 왼 손으로 절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발생한 변화는 딴 사람이 미처 손쓸 사이도 없었다.

그들 가운데 가장 불만을 품은 사람은 문공태이었으며

그가 먼저 일격을 가하지 않았다면 쌍안이 동시에 힘을 합쳐 덤벼도 비급을 뺏기기는 만무했다.

상상 이외로 일대 장문의 신분으로 무술계의 계율(戒律)을 깨뜨리고 돌연 습격하였으나

결국은 쌍안만 좋은 일을 얻은 격이 되었다.

문공태는 노발대발하며 구원을 그냥 버려둔 채 점창쌍안을 추격 했다.

엽혜와 사형 교곤이 구원을 일격으로 써 상처를 입히자

재빨리 귀원비급을 날치기 했던 것이다.

교곤은 사제가 비급을 뺏어 절벽으로 도망가는 것을 돕기 위해

등에서 오구검(吳鉤劍)을 뽑아 들고 적을 막으니 추격해 온

문공태는 청죽장을 휘두르며 한 수 한월창파(寒月滄波)로 앞면을 찌르고

교곤은 오구검으로 야화소천(野火燒天)의정수로 청죽장을 막았다.

교곤은 손목을 아래로 내리면서 금강제미(金剛製尾)의 수로 변화시켜

딱딱한 땅을 박차고 허공에 몸을 날려 검수를 전개하려 했지만

팔비신옹 문공태의 잇따른 복마장법(伏魔杖法)의 전광석화처럼 빠른 공격에

지탱할 수가 없어 부득이 계곡 끝까지 후퇴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공태는 귀원비급에 온 마음이 쓸려 있어 청죽장으로 한 수 개산도류(開山倒流)로

교곤을 밀치고 절벽으로 추풍안 엽혜를 추적할 생각이었다.

교곤은 문공태의 잇따른 맹공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와 길을 피해 주지 않고

악착같이 오구검을 휘두르며 대갈일성하고 한수 독장오악(獨掌五嶽)으로 문공태의

한 수를 받아내니 문공태는 온 힘을 다해 막는 교곤의 힘에 밀려 세 발자국이나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교곤은 온몸의 피가 끌어 오르며 칼을 잡고 있는 손이 아파 하마터면

오구검을 놓칠 뻔 했다.

그는 암암리 에 (과연 저 늙은 놈의 명성이 헛된 것이 아니군! 조심스럽게 대해야겠는데!)

라고 생각하는데 문공태는 이미 공력을 집중하여 일장을 내려치니

교곤은 받을 수가 없어 급히 오른 쪽으로 피했다.

장풍은 절벽에 부딪혀 돌과 먼지가 온 하늘에 날자

그 틈을 이용한 문공태는 경공법을 발휘하여 재빨리 절벽을 수장이나 올라갔다.

그러자 교곤은 황급히 그 뒤를 쫓았다.

한편 일양자는 귀원비급을 담담하게 여기고 다만 혜진자의 생사 안부에만

그의 온 정신을 쏟아 급히 구원에게 물었다.

 

「지탱할 수 있겠소?」

 

구원은 탄식하며 말했단

 

「상상 이외요. 일파의 장문인 문공태가 습격을 하다니,

그가 먼저공격을 않았던들 점창쌍안이 돌연 습격을 하여 나를 상하게 못할 것이오.」

「 구형! 비공을 잃어도 별 것 아니요.

책은 비록 절세의 진귀한 보물이지만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되었으며 우리 곤륜파는

책을 손에 넣은 지 하루도 채 못 되어 허무하게 한 사람의 생명을 않게 되었소.

구형! 정성들여 나의 사매를 치료해 주시면 그녀가 무공을 잃더라도……」

 

일양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길게 한숨을 몰아쉬더니 눈물을 짓는다.

구원은 감개무량하여 한참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도사님! 만일 당신이 사매의 원수를 갚으시겠다면

제가 그녀를 치료한 후 둘이서 생사를 걸고 싸웁시다.」

 

「그러나 이 일은 장차 곤륜파가 당신에게 복수를 할는지 나도 결정할 수 없는 일이요.

당신의 상처는 어떻소? 나의 도움이 필요하겠소?」

 

「아니! 점창쌍안이 내 어깨뼈를 쳐서 팔을 하나 잘라 내야 한대도 나는 죽지는 않을 것이요.」

말이 끝난 구원은 암암리에 기력을 운행했다.

그러나 어깨가 부서지듯 아프고 팔을 올릴 수가 없었다.

일양자는 재빨리 한 발 앞서서 구원의 팔을 잡고 위로 올려 왼 손으로

그의 풍부혈(風府穴)을 쥐고 밀었다.

그러자 구원은 땀을 줄줄 흘리면서도 신음은 하지 않았다.

일양자는 손을 멎고 말했다.

 

「손을 들어 보시오. 들 수 있소?」

 

구원은 말대로 왼 손을 들었다 내렸다 하고는 말했다.

 

「부러진 뼈를 이어 주셔서 감사하오.

보아하니 점창쌍안의 공력도 별 것 아니요

비록 내가 습격을 당했지만 어깨뼈만 부러졌을 뿐이니

문공태의 장력에 맞았더라면 어깨뼈가 가루가 됐을 거요!」

두 사람이 말을 주고받고 하는 사이에 혜진자는 기력을 운행하여 눈을 떴다.

일양자는 급히 사매 옆으로 달려가 옥로해독환을 동숙정에게 주었다.

동숙정은 무릎을 꿇고 스승에게 약을 바쳤다.

혜진자는 다섯 알을 먹은 후 고개를 들어 보니

일양자 등 뒤에 보자기가 없음을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 귀원비급은 어떻게 했어요?」

 

그러나 일양자는 대수롭지 않은 듯

 

「불길한 물건이니 없어져도 괜찮소.」

 

하는 것이었다.

 

「귀원비급으로 저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뜻인 줄은 알지만

아마 저는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아요.」

 

일양자는 그녀가 무공을 완전히 잃어버렸으며 앞으로 십년 밖에

더 살지 못 한다는 말을 차마 할 수는 없었다.

 

「금선사 독은 풀 수 없는 것도 아니며 구원이 이미 치료해 줄 것을 약속 했소.」

그러나 혜진자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초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방금 기력을 운행할 때 이미 독이 내장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어요.

더구나 요혈이 막혀 기력이 미치지도 않아요.」

 

그러자 구원이 혜진자의 말을 받았다.

 

「독이 심장, 폐, 간장에만 스며들지 않았다면 생명은 보존할 수 있소.

다만 당신은 공력을 완전히 잃을 뿐이오.

독도 재발하지 않을 거요.」

혜진자는 마음이 섭섭해짐을 느끼며 구원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것은 죽는 것보다 못한 일인데 왜 자비심을 베풀었소?」

 

구원은 방금 싸울 때에 혜진자가 몇 번이고 자기를 봐준 생각이 나자

양심의 가책을 받고 머리를 숙인 채 아무 말도 못했다.

일양자는 웃으며 위안하듯

 

「십년이란 세월은 그리 짧은 세월이 아니오.

일단 치료를 받은 후 조용한 곳을 택하여 십년을 당신을 위해 살겠소.」

 

이 말을 들은 혜진자는 수심이 가득 찼던 얼굴에 희색이 감돌고 입가에는

웃음마저 띠우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듯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하림도 눈물을 흘리며

 

「저와 오빠도 사부님을 모시고 십년을 같이 지내겠어요.」

 

그리고는 양몽환을 향하여

 

「오빠도 저와 같은 생각이죠?」

 

하는 것 이었다.

 

「물론!」

 

하는 양몽환의 묵직한 대답은 하림과 혜진자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주었다.

 

「그곳에 가면 나도 백학을 한 마리 잡아 키워서

사부님 드릴 묵인철갑사를 잡아 오도록 시키겠어요.」

 

혜진자는 하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불쌍하게도 나의 제자가 된 너에게 한 수도 배워 주지 못했는데

내가 이 모양이 되었으니……」

 

이때 웅성웅성 하는 소리가 들리며 요란한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달아난 엽혜가 비급을 짊어지고 수중에 호미변(虎尾 革+便)을 든 채

앞서 절벽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 뒤로 문공태와 교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뒤쫓아 오고 있었다.

세 사람이 도루 돌아옴을 이상하게 여긴 일양자는 앞을 막으며 뛰어 나가려는데

구원이 먼저 불편한 몸도 불구하고 비약하여 오른 손의 비룡봉을 휘두르며

엽혜 앞을 막았다.

그러자 엽혜는 호미변으로 한 수 신용반미(神龍盤尾集)로 구원을 내리 쳤다.

구원은 급히 몸을 돌리며 비룡봉으로 영운봉일(迎雲捧日) 한 수로 막았다.

엽혜는 변을 회수하며 구원에 바싹 붙어 왼손을 앞가슴 쪽으로 밀어 내면서

오른 손을 펴자 호미변 끝이 구부러지면서 비스듬히 구원의 어깨를 쳤다.

느린 듯한 그 한 수에 하마터면 구원은 맞을 뻔 했으나 다행히도 오른쪽으로

수척이나 몸을 굽혀 일격을 피했다.

그 때 뒤쫓던 문공태가 가까이 와서 청죽장을 휘둘러 화룡점청(畵龍點晴)의 수로

엽혜의 등 뒤 명문혈을 사정없이 갈겼다.

그러나 추풍안도 만만치 않은 존재인지라 문공태의 일격을 쉽게 피하고

재차 공격해 올 문공태의 일격을 피하려다 전세가 불리함을 자인하고

엽혜는 납작 땅에 엎드렸다.

엽혜가 문공태의 두 수를 피하자 교곤이 뒤 쫓아와 오구검을 번쩍이며

문공태의 하반신을 쳤다.

문공태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일학충천(一鶴沖天)의 수법으로

땅을 박차고 허공에 치솟아 교곤의 일격을 피하고 내려오는 힘을 빌려

청죽장을 빙빙 돌리며 조빙남해(潮氷南海)로 염혜를 맹공 했다.

이때 혜진자는 엽혜의 등에 있는 귀원비급을 발견하고는 일양자를 불렀다.

 

「저 비급을 도루 뺏어 오세요.」

 

그러나 일양자는 몇 발자국 가더니 곤란한 듯 걸음을 멈추자

혜진자는 다시 재촉했다.

 

「빨리 가세요. 저 비급에 독을 풀 수 있는 처방이 기록돼 있을지도 몰라요)

일양자는 여전히 주저하기만 했다.

이때 등인대사는 그의 곤란한 입장을 알고 있었으므로

 

「당신의 사형이 이미 귀원비급을 구원에게 선사했는데 어찌 다시 뺏어 오겠소.」

그러자 혜진자는 노기를 띠우며

 

「그럼 비급을 구원에게 주고 나의 십년 목숨과 바꾼다는 말이요?」

혜진자는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만일 내가 괄창산에 오지 않았더라면 그이는 귀원비급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절세의 진귀한 보배가 단 나의 십년 목숨과 바꾸어지다니

이 혜진자의 십년 생명이 너무 값비싸구나.」

 

그때, 일양자는 돌연 몸을 돌려 천천히 혜진자에게로 다가와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비록 비급을 연구하여 신선이 되어도 인간 세상에 십 년간을 살아있는 것만 못하리라.」

살며시 눈을 감는 혜진자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그리고 조용히 상아(女+裳娥)는 영약을 훔친 것을 후회하여야 할 것이며 저녁마다

그리움에 밤을 새울 것입니다.)

하고 생각하며 풀 위에 앉아 얼굴에 미소를 띠웠다.

 

한편 문공태는 쌍안과 맹렬히 이십 수나 싸운 후 팔십일수 복마법(八十-手伏魔法)을 전개하며

힘을 다 해 간신히 지탱하고 있었다.

돌연 큰 웃음소리가 들려오면서 절벽 위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얼마 되지 않아 이창란과 천중사추 그리고 천용방 홍기단주 백보비발 제원동, 백기단주

자모신담 승일청(白旗壇晝子母神膽勝-淸) 흑기단주 개비수 최문기(黑旗壇主開碑手崔文奇)들이

나타났다.

이창란은 계곡으로 뛰어 내려와 용두 지팡이로 한 수 분랑열유(分浪裂流)로 문공태와

점창쌍안의 싸움을 말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세 분께서는 먼저 손을 멈추시오 이창란이 몇 말씀 올리겠소.」

문공태가 사방을 둘러보니 무술계 고수들이 서 있음을 발견하고 청죽장을 멎고는 웃으며 말했다.

「이방주의 분부라면 문공태가 공손히 듣겠소.」

이창란은 추풍안 엽혜가 등에 지고 있는 비급을 힐끗 보고는 일양자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도형! 비급을 훔친 사람을 이곳까지 쫓아왔는데 어떻게 처리 하겠소?」

일양자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 귀원비급은 이미 도모의 것이 아니라 제가 구형에게 선사했소이다.」

「도형은 정말 마음이 너그럽군요. 이 노인이 감탄했소.」

그는 구원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그럼 구형은 선사 받은 진귀한 보물을 점창 쌍안에게 선사하셨군?

일양자에게 미안하지도 않소?」

 

구원은 얼굴이 시뻘게지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구모인이 어찌 일양자의 호의를 무시하겠소? 돌연한 습격을 받고 뺏기었소.」

 

이창란은 대소하더니

 

「그렇다면 누구라도 주먹만 휘둘러 뺏으면 되겠군! 우리 천용방도 한몫 낍시다.」

 

그러자 문공태가 대노했다.

「비급을 뺏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요.

그래도 규칙이 있을 것이 아니요?

귀방의 세 단주와 이 방주 그리고 천중사추를 합치면 여덟 사람이니 실력이 제일 강하오.

이방주가 규칙을 정해서 처리하도록 합시다.」

 

천중사추는 문공태가 노골적으로 자기들의 실력을 경멸하자

화가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으나 방주가 옆에 있으므로 아무런 수도 쓰지 못했다.

이창란은 미소를 짓고

 

「문형 말씀도 옳소 천용방 사람은 비록 많아도 싸움에는 참가하지 않을 것이니 마음 놓구려……」

 

이창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엽혜는 어찌된 일인지 슬금슬금 피했다.

그러자 문공태는 급히 뒤 쫓으려 하는데 이창란이 손을 번쩍 들어 한줄기 장풍을 일으켰다.

순간 악! 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엽혜의 몸이 허공에서 땅 위로 떨어져 뒹굴었다.

운중안 교곤은 급히 달려가 사제를 부축하고 물었다.

 

「기력을 운행해 봐! 내상이 어떤가?」

 

엽혜는 피를 토하며

 

「아! 나의 상처는 매우…… 엄중……」 

 

 숨이 끊어지는 듯 가늘게 떠는 그의 말을 들은 교곤은 이창란을 노려보며

 

「오늘 이방주의 일격은 우리 점창쌍안이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창란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품안에서 금빛 알약 한 알을 주며 말했다.

 

「먼저 이 약을 당신 사제에게 먹이고 당신네 점창파가 복수할 생각이 있으면

감숙성으로 오시오. 언제든지 맞이하겠소.」

 

교곤은 사제의 상처가 매우 위중하여 화낼 여유도 없이 약을 받아 먹이려는데

엽혜는 고통을 참고 등에 메고 있던 구슬 함에서 귀원비급을 꺼내 들고 높이 치켜들면서

실성한 사람처럼 두리번거렸다.

문공태와 이창란은 그가 비급을 찢어 버릴 생각임을 알고 약속한 듯 동시에 달려들었다.

이창란은 한 손으로 비급을 뺏으며 한 손으로는 용두 지팡이로 문공태를 막았다.

이창란의 지팡이를 청죽장으로 막은 문공태는 오른 손이 마취 된 듯 아팠으나

이를 악물며 달려들자 이창란은 지팡이로 문공태를 치고 왼 손으로는

엽혜의 오른 손목을 쥐어 잡았다.

엽혜는 최후의 발악으로 왼 손에 힘을 주어 귀원비급을 찢어 버리고 말았다.

이창란은 노발하며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줘 엽혜의 손목을 부러뜨리자

엽혜는 처량한 신음 소리와 함께 기절하고 말았다.

이때 교곤이 오구검으로 이창란을 내리쳤다.

그러나 비급을 손에 넣은 이창란은 용두 지팡이로 받아 치자

교곤의 오른 팔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이 오며 오구검은 약 이장이나 멀리 날아 떨어 졌다.

그는 얼굴을 돌려 보니 사제는 기절해 있었고 싸워 봐야 이길 수도 없으니

비참한 마음으로 사제를 끌어안고서는 부러진 손목뼈를 이었다.

문공태는 이창란이 비급을 빼앗아 들자

마음이 다급해져 품안에서 금환(金丸)을 한 알 꺼내어 던지려고 했다.

이때 이창란의 뒤에서 홀연! 냉랭한 말소리가 들려 왔다.

 

「금환 던지는 수법은 별로 묘한 것이 아니요. 나의 비발(飛?)은 어떻소?」

문공태가 뒤를 돌아보자 제원동이 손에 머리통만한 동발(銅?)을 쥔 채 노리고 있었다.

그 옆에 승일청은 한 쌍의 자모담(子母膽)이란 암기를 들고 만반의 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냉소하고 

 (장차 만날 때가 있겠지. 이놈들 두고 보자)

속으로 벼르며 금환을 도로 품안에 넣었다.

 

문공태가 금환을 품안에 넣자 돌연 이창란이 대소하고는 찌어진 귀원비급을 던져 주고는

천천히 일양자 옆으로 가까이 가며 냉랭하게 말했다.

 

「이상하다 했더니 흥! 비급이 저따위니까 인심을 썼군! 가짜 비급으로 바꾸고……

정말 당신의 수법은 고명하오.」

 

일양자는 노기가 충천했다.

 

「뭐라고? 나는 아직 비급을 꺼내본 일도 없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이오?」

 

그러자 이창란은 냉소하며

 

「여러 사람 앞에서도 내가 가짜와 바꾸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소.

 비록 천용방은 보잘 것 없는 무리들이 모였지만 당신네들의 구대문파는 거들떠보기도 싫소!」

 

이때 옆에 있던 등인대사가 손을 저으며 나섰다.

「현도관주는 생전 거짓말을 않는 사람이오.

우리는 비급을 손에 넣은 후 펼쳐 보지도 않았소이다.」

 

이창란은 비웃음이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그리고 보니 좋은 사람을 원망했군!

비급은 지금 문형 손에 있으니 여러분이 보시면 알 것이오.」

문공태는 비급을 들고 천천히 두 사람 앞으로 왔다.

그리고는 땅위에 비급을 펼쳤다.

천용방의 세 단주, 천중사추, 양몽환 등 이곳에 모인 사람이 에워만 가운데

일양자가 주사(朱砂)로 붉게 귀원비급이란 네 글자가 쓰인 책표지를 넘기자

안에는 흰 종이에 큰 자라 한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현도관주는 미간을 찌푸리며 또 한 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또 종이에 검은 글이 한줄 쓰여 있었다.

 

「콩을 많이 먹으면 설사가 나는 법이오.

두부를 끓여 먹으면 살생도 않고 술안주에도 제일이다.」

 

계속 책장을 넘겼으나 여러 가지의 짐승들을 그려 놓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오셨다 가시느라고 수고가 많았소.

여기 여러 가지의 짐승들이 노고(勞苦)를 치하 합니다.」

어이가 없어 눈만 껌벅거리던 일양자는 즉시 장진도에 쓰인 글씨와 비급의 글씨를 대조했다.

그리고는 그것이 가짜라는 단정을 내렸다.

일양자는 장진도를 던지고 탄식하며 말했다.

 

「귀원비급은 이미 먼저 온 사람이 가져갔고 우리는 그 사람의 속임수에 빠졌소!」

수백 년간을 무술계에 전해 오던 진귀한 책은 이로써 다시 미궁에 빠지고

그들은 모두 멍하니 말문이 막혀 서 있었다.

이창란은 일양자의 기색과 거동을 보아 일양자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느끼자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교곤은 다 죽어 가는 사제를 업고 달아나고 있는 것이었다.

이미 해는 저물어 가고 허황하기 짝이 없는 시간은 말없이 흐르기만 했다.

이창란은 일양자와 문공태를 번갈아 보며 작별을 고했다.

 

「삼년 안에 구대문파를 무술대회에 초청할 것이오, 그때 만납시다.」

 

그리고는 용두 지팡이를 들고 천중사추 등 부하를 거느리고 자리를 떴다.

개비수 최문기는 이창란의 모습이 사라지자 구원을 보고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은 천용방주에게 약속한 육개월의 시간을 이행하겠소?」

 

구원은 냉소하며

 

「내가 죽지 않는다면 물론 약속을 이행할 것이오.」

 

그러자 제원동이 나섰다.

 

「그러시면 오시기를 공손히 기대하고 있겠소.

그러나 무술계 구대문파가 무당파(武當派)의 졸장부들을 그냥 두지 않을 것을

기억해 두시고 혼자 힘으로 당할 수 있는지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라오.」

 

하고는 떠나 버렸다.

 

등인대사는 제원동이 사라지자 선장을 쥐고 뒤따라가려는 것을 현도관주가 제지했다.

그러자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가지 못하고 서있었다.

천용방 사람들이 돌아간 후 문공태는 일양자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천용방의 웅심이 대단하오. 우리들도 일찍이 준비해야 하겠소.」

 

하고 몸을 돌려가려는데 구원이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문형! 할 말이 있으니 발을 멈추시오.」

 

문공태는 고개를 돌리며

 

「무엇을 묻겠단 말이오?」

 

「아직 두 가지 일이 해결되지 않았으니 추후라도 결산할 날을 결정해야 할 것 아니요?」

 

「흥.」

 

지금이라도 좋다면?」

 

「오늘은 혜진자의 사독을 치료해야겠소.」

 

「그럼 화산 절봉에서 기다리겠소. 언제든지 오시오.」

 

 내뱉고는 어깨를 흔들며 돌아서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문공태가 사라지자 구원은 혜진자 옆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안심하십시오. 당신의 깊고 웅후한 내공으로 서너 시간 내에는

독이 내장까지 스며들지 않을 것이며 또한 저의 옥로해독단의 힘으로

한 사흘은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니 괄창산만 나가면

제가 곧 약을 처방하여 독을 풀겠습니다.」

 

  혜진자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소만 치료를 받아 내가 완쾌되면

기필코 당신에게 복수할 것이니 조심하시오.」

 

  구원은 웃으며

 

「얼마든지! 그러나 온 천하를 뒤져도 당신의 공력을 회복시킬 약은 없을 것이오.

복수 할 생각은 아예 마시오.」

 

  혜진자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리쉴 뿐이었다.

그러자 일양자가 나서며

 

「지금 그런 이야기 할 때가 아니오. 속히 갑시다.」

 

하고는 하림과 동숙정에게 혜진자를 좌우에서 부축하게 하고는 길을 재촉했다.

당대 명성이 자자한 여협이었지만 뱀독에 상처를 입은 혜진자는 혼자서는

한 발도 움직일 수 없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

하림은 너무도 안타깝고 슬퍼 눈물이 줄줄 흘러 내렸다.

사부님의 분부이었으나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를 몰랐다.

하림은 양몽환에게 말했다.

 

「오빠! 사숙님의 병을 고치려면 어떤 약이 제일 좋을까요?」

 

양몽환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알 수 있나……」

 

그러자 하림은 구원을 노려보며

 

「당신의 금선사가 나빠요. 만일 그 흰 거학만 만났다면 틀림없이 죽여 버렸을 거예요.」

 

하림의 말을 들은 일양자는 매우 감동했다.

그 순간, 그의 머리 속에는 당대의 풍진기인(風塵奇人)의 생각이 나자 구원에게 물었다.

 

「구형! 금선사독은 정말 온 천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도 고칠 사람이 없겠소?」

 

구원은 냉랭하다 대답했다.

 

「만일 저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명의를 구해 보시구려!」

 

일양자는 웃으며

 

「강서 파양호에 있는 묘수어은 소천의가 독증을 잘 고친다는 소문인데?」

 

「금선사와 묵인철갑사는 백이십팔 종류의 독사 가운데 가장 독이독한 것이오.

보통 사람은 한 번 물렸다면 곧 죽고 마는 것이오.

그러나 나는 평생 동안 뱀을 다루어서 뱀독을 치료하는 데만은 자신이 있소

또 나의 옥로해독단은 천하의 명약으로 성품(聖品)이라고는 못하지만

뱀독에는 매우 효과가 있는 것이오.

금선사와 묵인철갑사가 아닌 뱀에게 물렸을 때에는 단 한 알로서도 완전히 고칠 수 있는 명약이오. 제 아무리 묘수어은 소천의가 의술에 능해도 독을 치료하는 데는 저보다 못할 것이오.

또 묘수어은은 벌써 무술계에서 은퇴하였는데 비록 파양호에 있다지만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오.」

 

「그렇다 하더라도 구형이 독을 치료한 후에 묘수어은을 찾아가 치료할 수 있는가를

알아 봐야겠소.」

 

구원은 흥! 하고 냉소를 할뿐 입을 다문 채 묵묵히 걷기만 했다.

길을 걸으면서도 일양자는 혜진자가 아픔을 참지 못하고 가늘게 떨며 신음할 때마다

그녀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이 피보다 더 진한 것을 느끼는 것이었고 혜진자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일양자의 가슴은 칼로 에이는 듯 했다.

일양자는 옥로환 다섯 알을 먹였다. 과연 효과가 빨랐다.

혜진자의 찌푸렸던 미간에 땀이 멎으며 일양자를 보고 가벼운 미소를 짓는다.

일양자는 혜진자에게 다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조금만 더 참으시오 어떻게라도 오늘 저녁에는 산을 나가도록해서

빨리 치료를 받아야만 하겠소.」

 

「너무 걱정 마세요」

 

혜진자의 말을 받아 구원이

 

「당신 사매의 내공이 웅후하다 해도 내공으로 독을 배출할 생각은 마시오.」

 

하고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혜진자는 구원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이 그런 독사를 가진 줄 알았다면 나는 먼저 당신의 두 팔을 잘랐을 걸……」

 

「그러나 만일 당신이 싸울 때 저에게 베풀어준 자비심이 없었더라면

옥로해독단을 당신에게 선사하지도 않았을 거요」

 

「그것은 우리의 귀원비급을 뺏어 가려는 속셈 때문이었죠?」

 

「흥! 당신네들이 귀원비급을 속여 나에게 주었다 해도 불과 짐승의 그림책이 아니오.

내가 당신의 병을 치료 않는다면 당신이 나를 어쩌겠소.」

 

구원은 몸을 돌리는 것이었다.

일양자가 선뜩 나서며 구원의 앞을 막고 말했다.

 

「귀원비급이 가짜라는 것은 저도 사전에 몰랐소.

당신을 속일 생각은 절대 없었소.」

 

이때 등인대사는 화가 치밀어 옴을 느끼며 선장으로 앞을 막고 구원에게 말했다.

 

「사나이 대장부가 한 말인데 치료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남자대장부요?

구시주께서 승낙을 위배하고 의리를 저버리는 것은 도승도 참을 수 없소.」

 

 구원은 하하하고 대소하더니

 

「그러시다면 나도 사양하지 않겠소. 자! 덤비시오. 얼마든지!」

 

가슴을 펴 보이며 거만한 자세로 등인대사를 노리는 것이었다.

그때 일양자도 비위가 뒤집히고 울화통이 터지는 것이었지만 분노를 진정시키며 웃으며 말했다.

 

「구형은 명성이 쟁쟁한 사람인데 어찌 약속을 이행치 않겠다.

하시오? 만일 우리 사매를 고쳐 주시면 십년 안에는 복수하지 않겠소!」

 

「복수는 두렵지 않소. 당신 노승이 너무 거만하여 저의 충고를 잘 안 들으니

그냥 독이 오장에 스며들어 죽게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오!」

 

「그럼 그로 하여금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요?」

 

「뭐 곤란한 것 없소. 다만 내 말만 들으면 그만이오.」

 

「그야 간단하죠.」

 

대답하는 그의 말은 간단했으나 마음은 무거웠다.

일양자는 혜진자에게 나지막하게 말했다.

 

「구원이 치료해 줄 것을 승낙 했으니 잠자코 그의 말을 들으시오.」

 

「치료를 받고 회복한다 해도 폐인(廢人)이 될 것인데 치료는 받아 무엇 하겠어요」

 

「그러나 십년 동안에 명약을 찾아 공력을 회복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오.」

 

혜진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하루 저녁을 지나 날이 밝을 무렵, 산봉우리에 오른 일양자는 앞을 보니

약 칠팔십 리 앞에 작은 마을이 보였다.

그는 그 길로 봉우리를 내려와 사매에게 말했다.

 

「왼 쪽으로 약 칠팔십 리 되는 곳에 마을이 있소.

길을 재촉하여 빨리 도착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곳에서 독을 치료하면 좋을 것 같소.」

 

구원은 눈을 감고 기력을 운행하고 있는 혜진자를 힐끗 보면서

 

「그다지 바쁘게 서두를 것 없소.

아무래도 이 삼일 동안은 상처가가 중하지는 않을 것이오.」

일양자는 할 수 없이 그의 말에 주저앉으며 길게 탄식할 뿐이었다.

하림도 하루 밤의 피로를 풀고 양몽환 옆으로 붙어 않으며 물었다.

 

「오빠! 우리 사부님의 치료는 가망이 없나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장차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아! 가엾은 사부님!」

 

하림은 처량한 기색으로 눈물을 흘렸다.

 

「울지 마. 우리 손이나 씻을까?」

 

 둘은 나란히 냇가에서 얼굴을 씻었다.

  양몽환은 하림의 앞머리를 쓰다듬으며

 

「왜 그렇게 울기를 잘하지?」

 

「슬프면 눈물이 나와요. 잘 우는 것이 아녜요.」

 

  양몽환은 웃음이 나왔으나 무안할까 싶어 참았다.

그때 어디서인지 픽! 하는 비웃음 소리가 들려 왔다.

재빨리 고개를 돌려 보았으나 아무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하림도 역시 웃음소리를 듣고 사방을 자세히 보았으나 역시 아무도 없었다.

하림은 양몽환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사람의 웃음소리가 아니에요?」

 

「무공이 대단한 사람의 웃음소리 같은데!」

 

「그럼 빨리 사부님께 알리죠?」

 

「잠깐!」

 

「왜요?」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사부님께 말씀드릴 수는 없어!」

 

하림은 알아차린 듯 고개만 끄덕였다.

일양자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하여 과연 점심때쯤 작은 마을에 다다랐다.

마침 점심때라 일양자 일행과 함께 음식점으로 들어가던 양몽환은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인과 눈이 마주쳤다.

얼굴이 고아하고 푸른 두루마기를 입은 여인은 많은 사람들 속에 끼어

혼자 특출하게 식탁 머리에 앉아 있었다.

홀연,

그 고상한 여인은 얼굴을 돌려 양몽환을 보고 생끗이 웃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몽환은 그녀의 호수와 같이 맑은 눈에서 번개 같은 광채가 번쩍이는 것을

느끼고는 재빨리 외면해 버리고 말았다.

때마침 일양자가 약제를 사 가지고 오자 양몽환은 약을 받아 들며 다시 여인을 힐끗 돌아보았다.

그러나 여인은 태연하게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귀함을 느끼게 하는 인상이므로 양몽환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는 생각하면서 사부님을 따라 안뜰로 들어서자

일양자는 구원에게 빨리 손을 쓰도록 재촉했다.

구원은 치료 도구를 준비한 후 불을 피우라는 말을 하고 큰 솥에 일양자가 구해온

약제와 다른 독초를 넣고 끓였다.

구원은 펄펄 끓는 초를 보고 일양자에게 말했다.

 

「먼저 당신 사매의 도포를 벗기시오

그리고 상처에 수증기를 쬐인 후 독을 뽑아내도록 합시다.」

 

일양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다른 치료방법은 없소?」

 

그러자 구원은

 

「금선사는 천하에서 가장 독한 뱀이요 더구나 그녀의 생사에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요.

다른 방법이라고는 나도 모르오.」

할 수 없이 혜진자 옆으로 다가간 일양자는 차마 옷을 벗으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

머뭇거리기만 했다.

 그러자 혜진자의 가는 음성이 들렸다.

 

「무슨 말씀이 라도?」

 

그제야 용기를 얻은 일양자는 눈을 감았다 뜨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옷을 벗고 증기를 쐬어야 한답니다.

하림에게 부축토록 하고 속히 옷을 벗으시오.」

 

「사독을 뽑는다는 말인가요? 그만 두겠어요

이미 죽기를 결심한 몸입니다.」

 

「안 돼요 당신이 십년만 더 생명을 보존한다면 천하를 뒤져서라도

명약을 찾아 당신의 공력을 회복하게 하고야 말겠소.」

 

하는 일양자의 얼굴은 비통하기만 했다.

 

「만약 영약을 구하지 못하면?」

 

「구원을 죽이 후 자결하겠소.」

 

  이 말을 들은 혜진자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고였다.

 

「하림 혼자만 남으면 어에 곤륜파를 유지해 나가겠습니까?

나는 곤륜파의 귀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일양자는 쓴 웃음을 짓고 말했다.

 

「천재적인 몽환이가 십년 후면 틀림없이 빛을 낼 것이니 걱정 없소!」

 

「십년 후의 일을 지금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하고는 할 수 없다는 듯이 훌훌 옷을 벗었다.

구원은 수증기를 쪼이는 방법을 동숙정과 하림에게 일러주고 일양자와 밖으로 나왔다.

동숙정은 혜진자를 대나무 침대에 누인 후 대나무 침대를 펄펄 끓는 솥 위에 걸쳐 놓았다.

그러자 뜨거운 김은 혜진자의 몸을 감싸고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렸다.

이윽고 혜진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동숙정과 하림은 울상을 하고 고통에 시달리는 스승을 쳐다보며 쉴 새 없이 땀을 씻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물같이 줄줄 흐르던 땀은 펄펄 끓는 솥 안으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동숙정은 하림과 함께 스승을 침대 위에 옮기고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는 곧 구원과 스승을 불렀다.

구원은 작은 은장도로 혜진자의 상처를 째고 두 손으로 짰다.

그곳에서는 시커먼 검정 피가 줄줄 흘러내리고 나중에는 뻘건 피가 흘러나오자

구원은 또 품안에서 작은 병을 꺼내어 상처에 흰 가루약을 발랐다.

그리고는 일양자를 보고 말했다.

 

「이젠 되었소. 열 두 시간마다 한 번씩 이 약을 발라 주면 십 년 안에는

절대로 재발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리고 팔보 화독산(八寶 化毒散)을 부러진 뼈를 이어 준데 감사의 뜻으로 선사하오.

저는 화산에 가서 문공태와의 약속을 이행해야 할 것이니 만일 제가 죽지 않는다면

저를 찾아와 복수를 하시오.」

 

일양자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십년 안에 복수는 않을 것이오.」

 

「그러나 당신들이 저와 싸울 때처럼 다른 곳에서 다른 일에 부딪쳤을 때

그런 정을 베풀어 주는 것을 희망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나 피치 못할 경우라면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오.」

 

구원은 사두지팡이를 들고 두 손으로 읍하며 떠나자 일양자는 합장을 하며

그를 보낸 후 나지막하게 양몽환에게 분부했다.

 

「다들 가서 쉬어라.」

 

 자기 방에 돌아온 양몽환은 며칠 동안에 발생한 여러 가지의 일이 감개무량했다.

  자신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쉰 양몽환은 천천히 창가에 다가가 먼 밤하늘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서 유성처럼 흰 물체가 날아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한 마리의 큰 백학이었다.

 백학이 머리 위를 날아간 후, 그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백학은 산에서 날아 온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런데 백학은 며칠 동안 이상하게도 항상 우리를 암암리에 미행하고 있는 듯 한 데

하는 생각이 지나갔다.

그러나 미행한 사람의 정체를 보지 못한 그로서는 누구에게도 어떻다는 명백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백학이 또다시 나타났다.

양몽환은 스승에게 이야기를 할 것을 결심하고 창문을 받고 급히 밖으로 나왔다.

혜진자는 아주 달콤한 잠에 들었고 일양자는 대나무 침대 위에 앉아 눈을 감고

기력을 조절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몽환은 스승에게 아무 소리 없이 제방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이틀이 지난 후, 과연 혜진자는 정신이 호전되었다.

암암리에 기력을 운행해 보았으나 사지까지는 힘이 다다르지 않을 뿐더러

온 몸이 아파 떨어져 나갈듯 했다.

그녀는 구원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고 수 십 년 동안에 쌓아 놓은 무공이

일조일석에 사라짐을 생각하며 비장한 실망에 빠졌다.

만일 그때 일양자의 위안만 없었더라도 그는 살 용기도 잃었을 것이다.

현도관주는 그녀의 우울한 모습을 보자 말했다.

 

「오늘 하루 더 쉬고 내일은 파양호에 가서 묘수어은 소천의를 찾아

천하제일이라는 의술을 한 번 시험해 봅시다.

아마 그의 의술은 골수에 스며든 독도 뽑아낼 수 있고

당신의 무공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오.」

 

「소천의가 파양호에서 떠났다는데?」

 

「그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면 나는 꼭 찾아내고야 말 것이오.」

 

「그렇지만 천용방은 삼년 안에 무술대회를 열겠다는데……

곤륜산에 돌아가 장문 사형과 의논 해야죠?」

 

「그럼 먼저 당신의 제자인 동숙정을 상청궁으로 보내어

내가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해 주시오.」

 

「곤륜파가 수 백 년 동안 쌓아 올린 위업을 우리들 손으로 몰락시킬 수 있어요?

만일 그렇게 된다면 무슨 면목으로 역대 조사(視師)를 대하겠어요?

차라리 제가 죽으면 아무 걱정도 없을 거예요.」

 

「그럼 먼저 파양호로 가서 당신의 사독을 고친 후 곤륜산으로 돌아갑시다.」

 

「수 천리를 찾아 갔다 못 찾으면 어떻게 하죠?」

 

「만일 그가 없으면 그때 가서 이야기하지.」

 

  혜진자는 일양자 도움을 마음속으로 감사했다.

  이튿날 일양자 일행은 영계현성을 떠나 파양호로 향했다.

그들은 괄창산 선하령(仙霞嶺)과 무이산맥(武夷山脈)을 넘었다.

  닷새가 지난 후 진운현(縉雲縣)의 경계를 지나 선하령으로 들어서면서부터

산세(山勢)는 한층 더 험했다.

일양자와 양몽환은 걱정 없었으나 혜진자가 탄 가마를 메고 가는 가마꾼이

지쳐 잠시 쉬기로 했다.

그들은 산기슭에 불을 피우고 건량을 나누어 먹었다.

가마꾼은 음식을 좀 먹더니 쿨쿨 코를 골며 잠에 빠져 들었다.

일양자는 사매가 잠을 이루지 못하자 과거에 새미 났던 무술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양몽환과 하림도 생전 처음 듣는 무술계 기담(奇談)을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이때 홀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급히 사방을 둘러보던 양몽환은 적이 놀랐다.

밤의 어둠이 내려앉은 산길을 유유히 걸어오는 사람은

바로 영계현 음식점에서 만났던 청의(靑衣)의 여인 바로 그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