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무흔검(無痕劍)

61. 마운봉의 음모

오늘의 쉼터 2014. 6. 21. 15:02

 

61. 마운봉의 음모

 

 

위중평은 표묘진을 뚫고 나오자 문득 뇌리에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앞서 독각흉승이 나타나 명명주재의 명을 전하고 총총히 떠나간 기세로 미루어 보아

허무궁 쪽에 지금쯤 필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았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급히 달려가 협력을 해야 한다.

위중평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 수양진인을 가리키며 냉랭하게 외쳤다.

 

"허무표묘진법도 알고 보니 별로 대수롭지 않군. 이 정도로서 견식은 충분히 하였으니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말을 끝낸 그는 금루선연과 함께 몸을 솟구쳐 허무궁 쪽으로 날아갔다.

열두 표묘객 중에 네 명이 살상되고 더욱이 자기네들이 천하무적이라고 자부했던

진법마저 어처구니 없이 뚫리고 말자 수양진인은 이를 부드득 갈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바로 이 때 서남쪽으로부터 싸늘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수양진인은 그 휘파람 소리에 안색이 크게 변하며 나머지 일곱 명을 이끌고 서남쪽으로 치달렸다.

음산한 분위기에 둘러싸인 유혼곡의 입구에는 어디서 몰려 왔는지 골짜기 입구엔

강호의 인물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 중 가장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사람은 두 명의 백발노인과 뚱뚱하고 깡마른 두 화상이었다.

이들은 골짜기 입구에 당도하자 제각기 긴장된 신색으로 주위를 살피고는

어둠에 싸여 있는 유혼곡 깊숙한 지점까지 접근해 들어갔다.

그러나 골짜기 안은 주위를 둘러싼 소나무만이 바람에 흔들려 으스스한 신음 소리를 낼 뿐이었다.

골짜기 안으로 들어간 군호들은 아무도 보이지 않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오대파의 대지선사는 불룩한 배를 쓰다듬으며 짜증섞인 투로 말했다.

 

"빌어먹을, 마치 귀신한테 홀린 기분이군.

명명주재는 우리를 초청해 놓고 마중할 사람도 보내지 않다니."

 

형산파의 철장진삼상 여강이 그의 말을 받아 냉소를 쳤다.

 

"그 악마는 워낙 음독하기 짝이없으니

이번에도 혹시 무슨 독개를 꾸미고 있는 게 아닐까요?"

 

개방삼로 중에 한 사람인 백미개선이 흰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모두들 마음을 차분하게 갖게. 비록 야심이 크고 수단이 악랄한 명명주재이지만

이런 비겁한 수단으로 우리를 해치려 하진 않을 걸세.

노부의 생각 같아선 비무장(比武場)을 골짜기 저편에 설치해 두었거나 아니면

양쪽 절벽 위에 마련해 놓은 것 같네."

 

맞은편 골짜기에서 홀연 뾰족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역시 영웅의 견해는 다르군요.

명명주재께서는 이번 허무대회에 행여나 허명을 지닌 졸부들이 섞여 분위기를 흐려 놓을까

염려가 되어 일부러 유혼곡을 비무장으로 선택한 거예요."

 

"그게 대관절 무슨 뜻인가?"

 

맞은편 골짜기에선 계속 여인의 앙칼진 음성이 들려왔다.

 

"자신이 있으면 이쪽으로 건너 오세요.

묘수선고는 복우장주와 함께 명명주재를 대신해 여러분들의 행차를 환영하는 바예요.

이 정도 너비의 웅덩이와 백여 장 밖에 안 되는 절벽으로 인해

여러분들이 건너 오지 못할 것이라곤 생각지 않으니까요. 호호호…"

 

백미개선은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너비 십여 장이 되는 깊은 웅덩이를 단숨에 뛰어넘는다니…

백미개선은 내심 욕설을 토했다.

 

'교활한 놈!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절반 이상의 세력을 감소시키려 들다니

정말 대단한 놈이군…'

 

하지만 그는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도리어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명명주재의 수단은 과연 고명하군 노부는 감탄을 금치 못하는 바이오."

 

광소 소리가 골짜기에 메아리쳐 퍼지는 가운데 백미개선은 삼로와 함께

옷자락을 날리며 거대한 독수리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맞은편 골짜기로 날아갔다.

이렇게 되자 난처해진 것은 십대 문파의 장문인들이었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그 자리에서 한 걸음도 옮기지 못했다.

소림사의 승려는 무당의 일진자와 천현도장에게 나직이 불호를 외우며 심각한 음성으로 말했다.

 

"빈도의 생각 같아선 두 분 장로와 함께 먼저 건너가고 싶소.

나머지 동도들은 이곳에 남아 나중에 있을 본 대회에 응해도 좋을 것이오."

 

일진사는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로선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소."

 

이렇게 하여 능력이 있는 사람은 삼분지 일 정도 맞은편 골짜기로 건너갈 수 있었지만

나머지 군호들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묘수선고는 깊은 웅덩이를 중간에 두고 간드러진 웃음을 터렸다.

 

"나머지 사람들은 왜 건너 오지 않소?

혹시 이 묘수선고의 마중이 늦었다고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요? 호호호…"

 

이런 풍자적인 말투는 자존심이 강한 강호인들에겐 칼로 살을 에이는 것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무예가 뒤떨어지니…

이 때 복우장주와 묘수선고가 한술 더 떠 사뭇 공손하게 공수의 예를 취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대회에 참석하지 않겠다면 더 이상 권유하지는 않겠소.

자, 그럼 우리는 이만 실례하겠소."

 

말을 끝낸 이들은 호들갑스러운 웃음을 터뜨리며 마치 원숭이처럼 절벽을 올라

눈 깜박할 사이에 절봉에 올랐다.

이쪽으로 건너온 군호들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이곳은 괴석이 난립해 있는 우뚝 솟은 절봉…

절봉 한복판에 주위 다섯 장 가량의 평탄한 석평(石坪)이 있었고

그곳에는 몇몇 괴인들이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복우장주는 주위를 한 번 훑어보더니 음성을 높여 외쳤다.

 

"귀한 손님들이 당도했는데 왜 아무런 말씀도 없소?"

 

붉은 머리칼을 어깨까지 치렁치렁하게 늘어뜨린 두타(頭陀)가

흉광이 번득이는 황소 눈깔을 부라리면서 입을 열었다.

 

"흐흐흐… 오늘 밤 이곳 유혼곡에 또 몇 분 귀객이 늘어났으니

실로 축하할 만한 일이오."

 

이 자는 귀객(貴客)이라는 발음을 이상하게 하여 귀객(鬼客)이라는 뜻을 은근히 표현한 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소개해 주었다.

팔선(八仙) 중에 이미 탈피를 한 봉래야선을 제외하고 나머지 일곱 사람은 모두 당도해 있었다.

명명주재가 아직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백미개선 등은 일곱 사람과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었을 뿐

오늘 밤 이곳에 모인 목적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잠시 후 절봉 뒷쪽에서 옷자락이 바람결에 스치는 소리가 들리며 유령같이

허무궁의 수뇌인 명명주재와 칠성(七聖)의 맏이인 주성(酒聖) 여백(黎伯)이 나타났다.

명명주재는 포권의 예를 취하며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입을 열었다.

 

"이렇게 귀한 손님들이 찾아오셨는데 대접을 제대로 하지 못해 면목이 없소."

 

백미개선은 수중의 청죽타구봉(靑竹打拘棒)으로 땅을 내리찍으며 냉랭하게 말했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 구차한 말은 집어 치우고 어서 핵심을 얘기해 보시오."

 

무당의 천현도장도 앞으로 한 걸음 내딛어 금사불진을 살짝 떨치며 외쳤다.

 

"무당파는 귀하와 하등의 원한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상청궁을 야습하였으며,

더군다나 십대 문파의 장문인을 납치해 갔는지 분명한…"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쪽에서 음산한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흐흐흐… 속세를 떠난 사람치고 말이 많은 편이군."

 

독각흉신은 천현도장의 말을 중단시키며 계속 입을 놀렸다.

 

"오늘 이곳에서 이유를 따질 필요는 없소.

싸워서 이기는 것 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오.

무당파는 항시 무림의 영수로 자처해 왔는데 어찌 야습을 당해

거의 전멸이 되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소.

더욱이 십대 문파의 장문인이 납치 당했다는 것은 일종의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겠소?

그 수치스러운 일을 들춰내 일부러 공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독각흉신은 본래 야만스럽고 경우를 전혀 따지지 않는 인물이다.

군호들은 각기 안색이 변하여 분노를 금치 못했다.

특히 소림의 배골화상(排骨和尙)은 성격이 강맹해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비통하게 불호를 외웠다.

그가 불호를 외운다는 것은 즉 모종의 행동을 취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두 명의 백발노인이 앞으로 뛰쳐나와

명명주재를 가리키며 성난 음성으로 외쳤다.

 

"듣자하니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군.

정녕 무력으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라면 더 이상 지체 말고 어서 나서라."

 

명명주재는 무표정한 얼굴로 군호들을 한 번 훑어보더니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누구인지는 몰라도 솔직한 면이 있어 마음에 드는군.

오늘 이곳은 바로 여러분들의 뼈가 묻힐 곳이니

죽기 전에 적당한 위치를 물색하는 게 좋을 것이오."

 

백미개선이 타구봉을 떨치며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 그럼 노부가 먼저 귀하에게 몇 수 가르침을 받겠소."

 

명명주재는 아니꼽다는 듯 피식 웃었다.

 

"나는 아직 다른 일이 남아 있소…"

 

그는 선뜻 봉래야선을 가리키며 싸늘하게 외쳤다.

 

"우선 저 배반자를 생포해 허무궁으로 데려가 주시오."

 

담뱃대를 떨치며 봉래야선을 향해 덮쳐갔다.

그의 몸이 상대방에게 가까이 접근해 가기도 전에 담뱃대에서 펼쳐진

무수한 한성(寒星)은 이미 보봉의 가슴 앞 모든 혈도를 위협했다.

봉래야선은 명명주재의 말에 머리 속이 쭈삣해지며 복우장주를 맞이해 반격을 전개했다.

한편 백미개선은 명명주재가 자기의 조건을 무시하자 진노한 나머지

타구봉을 내리 찍으며 표연히 명명주재 앞으로 접근해 갔다.

 

"혹시 이 거렁뱅이를 업신여겨 싸움을 피하려는 게 아니오?"

 

멸명주재는 조금도 당황해 하지 않고 자연스레 그의 말을 받았다.

 

"별말씀을… 개방을 타구봉법이 독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알고 있는데

내 어찌 경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겠소."

 

그는 능청스럽게 말을 내뱉았지만 여전히 싸움을 할 의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백미개선은 울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타구봉을 살짝 떨치며 질풍같이 세 군데 혈도를 공격했다.

독각흉신이 으스스한 웃음을 터뜨리며 한 갈래의 강맹무비한 강기를 전개해 그를 응수했다.

백미개선이 몸을 잽싸게 회전시키며 타구봉으로 살짝 원을 그리자 독수흉신의

태을강기(太乙剛氣)는 곧 무형화됐다.

그들은 능란하게 공격과 수비를 전개했다.

정식으로 싸움이 붙자 삼지마승은 무엇이 재미있는지 히죽히죽 웃어댔다.

 

"팔선은 팔선을 상대하고 거렁뱅이는 거렁뱅이를 적수로 맞았으니

나는 소림의 절예를 시험해 봐야겠군."

 

소림의 배골화상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삼지마승은 잔인하고 난폭하기 그지없어 배골화상이 몸을 고정시키자

하마를 연상케 하는 큰 입을 벌리며 외쳤다.

 

"바로 자네가 내 상대인가?"

 

세 개밖에 남지 않은 손으로 지풍을 전개했다.

여섯 갈래의 예풍(銳風)이 무서운 속도로 배골화상을 향해 뻗쳐 갔다.

배골화상도 깡마른 얼굴에 지독한 살기를 흘리며 불문의 십이금강장법을 즉시 펼쳤다.

 

"펑!"

 

두 갈래의 장풍은 사방으로 비껴 가며 허공에 몇 줄기의 회오리 바람을 일으켰다.

 

"다시 일 장을 받아 보아라."

 

삼지마승이 우악스럽게 외치며 쌍장을 곧장 정면으로 밀어냈다.

배골화상도 피식 웃으며 장세를 펼쳐 정면으로 응수했다.

 

"펑!"

 

쌍방은 제각기 뒤로 한 걸음씩 물러났다.

막상막하라 그들은 능란한 신법을 펼치며 다시 일곱 장씩을 격출해 냈다.

순간 강기가 사방으로 퍼져 가며 예리한 폭음과 함께 고막을 진동시켰다.

이 무렵 백미개선과 독각흉신은 이미 승부가 가려졌다.

 

"으앗!"

 

경악에 찬 비명 소리가 들리며 독각흉신은 견정혈(肩井穴)에 일격을 맞고 연거푸 뒤로 밀려났다.

백미개선은 강호를 위해 해(害)를 제거할 일념으로 수중의 타구봉을 떨치며

현기(玄機), 장태(將台) 두 군데 혈도를 찍어 댔다.

독각흉신은 부상을 입어 도저히 몸을 피할 수 없음을 알자 백미개선의 가슴을 향해

머리를 쳐박으며 덮쳐갔다.

백미개선은 그의 속셈을 간파하고 몸을 회전시켜 타구봉으로 칠감(七坎), 장문(章門)

두 혈도를 노렸다.

이것으로 독각흉신은 다시는 무공을 전개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게 될 것이다.

느닷없는 한 줄기의 급풍(急風)이 전광석화와 같이 날아와 큰 소매를 떨치며

호천구사신공(昊天九死神功)한 것이다.

백미개선은 뜻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습을 받게 되자

초식을 급히 거두며 다시 일 장을 전개했다.

 

"펑!"

 

백미개선은 비실비실 뒤로 대여섯 걸음이나 물러나 겨우 몸을 고정시켰다.

명명주재가 절대 상대방에게 숨돌릴 기회를 줄 리가 만무했다.

순간 명명주재의 두 번째 장력이 물밀 듯이 앞으로 격출되었다.

백미개선은 또다시 명명주재의 기습을 받게 되자 황급한 나머지 정면으로 맞받았다.

불현듯 한 줄기의 인영이 쏜살같이 날아오며 청아한 목소리로 외쳤다.

 

"남의 위기를 통타 기습을 가하는 것도 영웅이라 할 수 있느냐?"

 

"펑!"

 

이어 경천동지의 폭음이 터지며 멀리 메아리쳐 갔다.

졸지에 나타난 인영이 명명주재의 일 장을 받은 것이다.

그들은 일 장을 교환하고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제서야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별안간 나타난 사람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장백파의 장문인 위중평이었다.

백미개선은 내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한편 명명주재는 상대방과 막상막하라는 사실에 속으로 크게 놀랐다.

더욱이 상대가 위중평임을 알자 그의 놀라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위중평의 공력이 상상도 못할 정도로 증진돼 있는 것을 보자

등줄기로 스며드는 싸늘함을 느꼈다.

그는 짙은 살기를 뿌려댔다.

자기의 편이 될 수 없다면 오직 죽이는 것이 현명한 방법!

그의 입가에 한 가닥 음흉한 미소가 스쳐갔다.

 

"이놈, 네가 아무리 하늘을 날으는 신통한 재주가 있다 해도

오늘 노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겉으로는 태연하게 웃으며 말했다.

 

"위중평, 일 년 사이에 실력이 많이 늘었군."

 

"이 비열한 놈, 여러 말 할 필요 없다.

왕년에 네놈이 뿌린 악의 씨앗을 오늘 내가 거두러 왔다."

 

그는 조화신공을 쌍장에 주입시키고는 상대방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한 발 한 발 천천히 앞으로 다가갔다.

명명주재는 그의 강경한 태도에 안면을 굳히며 변해 으스스한 냉소를 터뜨렸다.

 

"흐흐흣! 노부가 너의 자질이 아까워 수 차 목숨을 살려 두었더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이번에는 응서하지 않으리라."

 

그는 강렬한 안광을 폭사하며 천천히 호천구사신공을 펴기 시작했다.

장내의 분위기는 금세 고조되었다.

별안간 일신의 괴소가 바람결에 실려 왔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괴소-.

중인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다.

 

어느 사이에 나타났는지 뼈만 앙상하게 남아 송장을 연상케 하는 강시괴인이 현장에 당도해 있었다.

두 눈을 감은 채 담담히 위중평 앞으로 다가갔다.

 

"주인, 명명주재를 나에게 맡기지 않겠소?"

 

위중평은 어쩔 수 없이 한쪽으로 비켜서며 대답했다.

 

"좋소. 그럼 양보하겠소."

 

강시괴인은 다짜고짜 붉은 소매를 떨치며 뼈를 에이는 듯한 음풍을 격출해 냈다.

그의 목표는 명명주재, 명명주재는 뜻하지 않게 도중에서 엉뚱한 사람이 뛰쳐나와

이유불문하고 장풍을 전개하는 것을 보자 머리카락을 빳빳이 세우며

호천구사신공을 정면으로 격출했다.

음유(陰柔)하고 강양(剛陽)한 두 갈래의 장풍이 허공에서 접촉되자

명명주재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창급히 이성(二成)의 공력을 높였다.

허공에서 천지개벽하는 듯한 굉음이 터지며 수십 줄기의 회오리 바람은

성난 파도처럼 사방을 에워쌌다.

명명주재는 방금 위중평과 일 장을 교환한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유령처럼 나타난 괴인과 일 장을 교환해 아무 이득도 보지 못하자

더욱더 혼비백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중평은 자질이 뛰어났기 때문에 놀라면서도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괴인도 가볍게 자기의 일 장을 받아내다니

명명주재는 눈이 왕방울만해졌다.

"친구, 당신은 어느 문파에 속해 있는 고인인지 우선 이름부터 밝히시오."

강시괴인의 관자놀이에 가벼운 경련이 일었다.

금루선연이 옆에서 고소를 터뜨리며 나섰다.

"그는 위상공의 시좁이다 네가 이끌고 있는

그 무슨 칠성, 팔선, 십삼표묘객 보다는 훨씬 공력이 뛰어날 것이다."

 

위중평은 얼른 금루선연에게 시선을 던졌다.

행여나 강시괴인의 짜존심이 상할까봐 염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금루선연은 익살스럽게 혀를 내밀었다.

 

"내가 뭐 과장된 말을 했나요?"

 

명명주재는 더욱더 당황했다.

위중평이 어떤 내력을 지니고 있기에 이런 무공이 탁월한 고인을 시종으로 삼게 되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개방삼로를 비롯해 무당의 두 명인, 그리고 천현도장, 운암상인 등도 강시괴인의 내력이

무엇이며 무엇 때문에 위중평의 시종이 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명명주재가 자세히 생각을 굴릴 여지도 없이 강시괴인의 두 번째 공격이 전개됐다.

순간 하늘마저 가둬버릴 듯한 장영과 소용돌이치는 한풍.

근 백 년이란 세월을 두고 연마에 몰두한 강시괴인의 장력은 그 위력이 어마어마했다.

명명주재는 힘을 다해 상대방의 장풍을 맞이하는 수밖에 없었다.

 

"우르릉 펑!"

 

쌍방의 인영은 합쳐졌다가 이내 갈라졌다.

이들의 괴초식은 방관자들로 하여금 연신 혀를 내두르게 했으며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명명주재는 천둥같은 목소리로 장내를 진동시키더니 별안간 공중에서 양 팔을 펼치며

마치 굶주린 독수리가 토끼한테 덮치듯 질풍같이 떨어져 내렸다.

이에 질세라 강시괴인도 일진의 괴소와 함께 붉은 광채를 번득이며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리고는 소매를 나비처럼 떨치며 곧장 명명주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군중들은 그의 괴이한 초식이 눈만 둥그렇게 뜨고 지켜볼 뿐이었다.

강시괴인이 자신의 절초를 전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금루선연은 고소하다는 듯

손뼉을 치며 외쳤다.

"이제 명명주재도 골탕을 먹게 되었군."

두 줄기의 인영은 허공에서 풍차가 돌 듯 합류되었다가 이내 떨어졌다.

 

"꽈광! 펑!"

 

평지에 흙먼지를 곁들인 광염이 일자 관전자들은 분분히 뒤로 밀려났다.

 

"콰르릉 쾅!"

 

태산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듯한 폭음과 함께 쌍방은 허공에서 두 번째 장풍을 교환했다.

그리고 각기 큰 원을 그리며 몸을 회전시켰다.

명명주재의 가장 득의한 절초 중에 하나가 바로 허공에서 연거푸 장풍을 격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연거푸 장풍을 전개한 후 땅에 내려와 숨을 돌려야지만 다음 공격을 전개할 수 있었다.

그는 허공에서 거듭 쌍방과 장풍을 교환한 후 몸을 급히 회전시키며 비스듬히

이 장 밖에 있는 바윗돌 위로 떨어져 갔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일이 생겼다.

그가 몸을 고정시키기도 전에 괴인은 양 소매를 나풀거리며 다시 덮쳐오는 것이 아닌가?

명명주재는 이러한 공격을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강시괴인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뒤엎고 허공에서 세 번째 장풍을 격출했다.

명명주재는 도저히 피할 수 없게 되자 흥성이 대발하여 이를 악물며 필살의 일 초를 전개했다.

회두망월(回頭望月).

문자 그대로 고개를 돌려 달을 바라보라는 뜻의 초식이다.

급풍과 광염이 이는 가운데 강시괴인의 입에선 괴상 야릇한 소성(嘯聲)이 터져 나왔다.

야수가 적의 심장을 노리며 덮쳐가듯 싸늘한 소성.

명명주재는 안색이 순간 창백하게 변한 채 초조한 듯 뒤로 대여섯 자 가량 물러났다.

강시괴인은 명명주재가 내려섰던 바윗돌 위로 내려섰다.

눈을 가늘게 내리감은 채 그의 얼굴은 무표정하였다.

그는 천천히 바윗돌 위에서 내려와 명명주재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명명주재의 안색이 창백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강시괴인의 장풍에 다소 손해를 본 것이 분명했다.

칠성과 팔선이 지켜 보는 앞에서 손해를 보게 된 명명주재는 놀라움보다도 당황함이 앞섰다.

그는 격동으로 인해 전신에 경련이 이는 것을 억지로 진정시키고는

눈빛을 유난히 빛내며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귀하의 무공은 과연 대단하군.

이번에는 무기로서 승부를 가리고 싶은데 귀하의 생각은 어떻소?"

 

이어 말을 끝내는 즉시 절봉 아래로 질풍같이 달려갔다.

위중평은 형형한 눈빛으로 두 사람의 싸움을 주의깊게 지켜보며

자기의 초식으로서 과연 명명주재를 당해낼 수 있을지 스스로 평가해 보고 있었다.

위중평은 명명주재의 신분으로 약속을 해놓고 도망갈 리는 만무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가 무기를 가지러 갈 때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어떤 흥계를 꾸미고 있으리라고는…

그렇게 이들의 싸움은 우선 중단됐다.

군마의 시선은 곧 봉래야선과 복우장주 그리고 삼지마승을 상대하고 있는

백골상인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네 사람은 최소한 삼백 초식 이상을 교환하고도 승부를 내지 못했다.

이 때 위중평의 귓전에 모기만한 음성이 들려왔다.

 

"얘야, 어서 그곳을 떠나라. 그 절봉은 곧 폭발할 것이다.

시간을 지체할 수 없으니 곧장 아래로 떨어져 내려라.

내가 아래서 너를 받겠다. 여기서…"

 

그것은 백골상인의 음성이었다.

어떠한 일에도 당황한 적이 없는 백골상인인데…

위중평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이미 깨닫고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금루선연의 허리를 낚아채며 소리 높여 외쳤다.

 

"모두들 속히 이곳을 떠나시오. 절봉이 곧 폭발할 것이오.

노선사, 어서 저를 따르십시오."

 

그는 이미 금루선연을 품에 안다시피 하며 절봉 아래로 뛰어 내리고 있었다.

위중평의 말이라면 설사 죽으라 해도 그 자리에서 복종할 강시괴인이기에

결과를 염려하지 않고 역시 뒤따랐다.

한편 군호들은 위중평의 외침에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무조건 절봉 아래로 뛰어내리지는 못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영향도 있겠지만

절봉 아래로 뛰어내린다 해도 역시 죽음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이 때-.

 

"우르르릉! 꽝!"

 

일순간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사방으로 날으며 절봉은 허리에서부터

절단되어 무너지기 시작했다.

산사태, 모든 것을 휩쓸 듯한 무서운 산사태.

한편 위중평과 금루선연이 백여 장이 넘는 절벽의 고도를 동시에 떨어져 내리자

그 속도는 걷잡을 수가 없이 빨라졌다.

사이에 귓전에서 무서운 폭발음이 들려왔다.

이어 흙모래와 나뭇가지가 그들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위중평의 굇전에 다시 백골상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얘야, 당황하지 말고 어서 진기를 고정시켜라. 내가 도와 주겠다."

 

위중평은 얼른 정신을 가다듬고 왼쪽 발등으로 오른쪽 발등을 걷어차며

떨어져 내리는 속도를 다소 늦추었다.

아래서 시꺼먼 물체가 치솟아 올랐다.

잡초를 뭉쳐 만든 방석 모양의 물건으로서

마침 위중평의 발밑에 붙어 일종의 탄력을 주었다.

강시괴인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간신히 숨을 돌리며 사뿐히 땅에 내려설 수 있었다.

그들이 내려선 곳은 바로 골짜기를 양쪽으로 갈라 놓은 깊은 웅덩이의 가장자리였다.

하늘을 찌를 듯했던 마운봉은 중턱에서 절단돼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미처 몸을 피하지 못한 몇몇 무림의 고수는 대관절 어떻게 되었을까?

십중팔구 요행을 바랄 수 없었던 게 분명했다.

금루선연은 길게 안도의 숨을 내쉬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정말 큰일날 뻔했어요. 명명주재가 그렇게 악랄한 짓을 할 줄이야…

자기네 편도 역시 죽음을 당했잖아요?

우리도 한 발만 늦었더라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거예요."

 

위중평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악독한 놈은 난생 처음이오.

백골상인이 전음술로서 그의 음모를 알려 주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침통한 표정으로 산허리가 쓰러져 버린 절봉을 바라보며

몇몇 무림 선배의 안위를 마음 속으로 기원했다.

강시괴인은 큰 변을 치루고서도 여전히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냉막한 표정으로 한쪽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돌연 위중평의 귓전에 백골상인의 다급한 음성이 전파되었다.

 

"어서 서남쪽으로 달려가 십대 문파를 구해 주어라.

노부는 명명주재의 뒤를 쫓아야 하므로 너와 만날 시간이 없을 것이다.

나중에 비래봉(飛來峰)에서 다시 보자."

 

위중평은 금루선연과 강시괴인에게 즉시 입을 열었다.

 

"십대 문파의 사랑들이 위기에 처해 일는 것 같으니 우린 어서 출발해야겠소."

 

"그들은 사사건건 우리에게 시비를 걸어왔는데 뭐가 답답해서 그를 또 도와줘야 하죠?"

 

그녀는 토라진 표정으로 쏘아붙이면서도 위중평을 따라 서남쪽으로 질주해 갔다.

 

얼마의 거리를 달리자 과연 한 패의 승려와 무림인이 협공을 받으며

몹시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들은 마치 시위를 떠난 세 자루의 화살처럼 싸움 현장으로 달려갔다.

명명주재는 처음서부터 마운봉에 모인 고수들을 일망타진할 음모를 계획으로

사전에 절봉 중턱에 대량의 화약을 매장해 놓은 것이 분명했다.

봉래야선이 자기에게서 탈피하자 칠성, 팔선같은 절정의고수에게서도

혐오감과 경각심을 갖게 된 것이다.

십대 문파의 사람은 이미 대다수가 부상을 입은 채 진식에 갇혀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

 

"손을 거두어라."

 

위중평은 거침없이 외쳤다.

호통 소리에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고막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손을 거두었다.

위중평은 형형한 눈빛으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일일이 훑어보고는

다시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부득이한 상황하에서 명명주재에게 본의 아닌 충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명명주재는 이미 달아났다.

너희들 중에 만약 허무궁에서 이탈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지금이 바로 기회다."

 

여기까지 말한 그는 갑자기 싸늘하게 말했다.

"그러나 눈이 어두워 반항을 하는 자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허무궁의 졸개들은 각기 다른 세 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넋빠진 것처럼 멍해지는 자,

슬그머니 몸을 돌려 뺑소니를 치는 자,

그리고 눈을 부라리며 앞으로 덮쳐오는 자도 있었다.

위중평은 냉소를 치며 만면에 살기를 번득였다.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니 내 수단이 악랄하다고 탓하지는 말아라."

 

처절한 비명 소리가 온 골짜기를 진동시키며 허무궁의 졸개들은 하나둘씩 송장으로 변해 갔다.

위중평이 출수를 하자 한쪽에서 있던 강시괴인도 미친 듯이 지풍을 날렸다.

그러자 마졸들은 구멍이 뚫리거나 사지가 절단된 채로 쓰레기모양 뒹굴어 다녔다.

남아 있는 마졸들은 더 이상 싸울 의욕을 잃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위중평과 강시괴인은 그들을 더 이상 추격하지 않았다.

피로 얼룩진 골짜기의 고요…

차가운 달빛이 땅에 쓰러져 있는 시체에 비치어지며 밤의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고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십대 문파의 사람들은 막 위기에서 벗어났으나

십대 문파의 장문인을 살해한 흉수인 위중평을 보자

새로운 공포가 뇌리를 파고들었다.

십대 문파의 사람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위중평은 냉랭하게 웃었다.

 

"하하하…여러분들은 소인의 마음을 군자의 생각으로 측량하지 마시오.

위기는 이미 해체되었으니 여러분들은 어서 떠나십시오.

그 몇몇 노선배들은 아마 마운봉에서 변을 당했을 것이오."

 

대지선사는 초조한 안색을 금치 못하며 말했다.

 

"그게 정말이오?"

 

"저 봉우리 윗부분이 왜 보이지 않는지 알고 있소?"

 

군호들의 표정이 울적해졌다.

오정선사는 장탄식을 하며 나직이 불호를 외우더니 합장을 했다.

 

"시주가 추리를 위기에서 구해준 은혜 잊지 않겠소."

 

이어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다가와 세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위중평은 문득 흑옥인마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강기 괴인에게 물었다.

 

"노선사, 흑노선배님은 어찌 보이지 않습니까?"

 

강시괴인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그는 동쪽으로, 나는 북쪽으로 서로 갈라졌고 그 후론 보지 못했소."

 

위중평은 불길한 예감에 다급하게 말했다.

 

"혹시 그 어른께서 무슨 변을 당한 게 아닐까요?"

 

세 사람은 군호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동쪽으로 달려갔다.

얼마의 거리를 달리자 위중평은 멀리서 고함 소리와 싸늘한 기합 소리가

은은히 들려 오는 것을 알았다.

강시괴인은 통천이(通天耳)란 신통한 무공을 터득해 위중평 보다 청각이 더 예민했다.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고함 소리를 듣고 앞서 신법을 재촉해 쏜살같이 달려갔다.

금루선연이 다급히 말했다.

 

"흑옥인마가 협공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어서 가봐야겠어요."

 

위중평은 태연하게 미소를 지었다.

강시괴인이 앞서 달려갔으니 흑옥인마가 설사 위기에 처해 있다 해도

곧 모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금루선연과 신법을 재촉해 앞으로 날려갔다.

과연 흑옥인마가 여덟 표묘객에게 포위당해 있었다.

강시괴인은 허공을 가로질러 덮쳐가며 큰소리로 외쳤다.

 

"흉노, 내가 왔네."

 

그의 외침과 함께 한 표묘객이 비명을 지르며 이 장 밖으로 날아갔다.

흑옥인마는 흐뭇한 듯 호탕하게 웃었다.

 

"역시 자네의 실력이 나보다 뛰어났군."

 

그는 정면으로 공격해 오는 삼음묘표객을 향해 쌍장을 밀어냈다.

 

 

"끼악!"

 

삼음표묘객은 일 장 밖으로 밀려나며 벌렁 나자빠졌다.

표묘진법은 혼란을 빚기 시작했다.

수양진인이 홀연 옆으로 빠져 나가며 사납게 외쳤다.

 

"모두들 검을 거두게."

 

이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불연히 말했다.

 

"오늘은 우리가 패배를 시인하겠다.

하지만 허무궁이 존재하는 한 이 원한은 기필코 갚고 말 것이다."

 

그리고는 나머지 다섯 사람과 선후로 몸을 솟구쳐 떠나갔다.

흑옥인마는 위중평을 향해 호탕하게 웃었다.

 

"으헤헤… 하마터면 표묘진법에 갇혀 벗어나지 못할 뻔했으니 정말 부끄럽소."

 

이어 강시괴인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며칠 동안 이 강시노괴와 함께 술을 나누고 싶은데…"

 

위중평은 얼른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노선사께서 원하는 일인데 내 어찌 반대를 하겠습니까?

어서 떠나도록 하십시오."

 

흑옥인마는 대뜸 강시괴인을 끌어당기며 재촉했다.

 

"자, 어서 떠나세."

 

이 성격이 괴팍한 두 노마두는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금루선연은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주시하며 웃음을 금치 못했다.

 

"호호호… 정말 잘 어울리는 두 괴물이군요."

 

 

 

 

'무협지 > 무흔검(無痕劍)' 카테고리의 다른 글

63. 마종(魔終)  (0) 2014.06.21
62. 신가보의 위기   (0) 2014.06.21
60. 허무표묘(虛無漂渺)  (0) 2014.06.21
59. 고찰마영(古刹魔影)  (0) 2014.06.21
58. 늑대와 양   (0) 2014.06.21